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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쓰촨성 대지진]中 “외국 구조대 도움 받겠다”

    쓰촨성 대지진이 발생한 지 72시간을 넘긴 15일. 생존자 구출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이 촉박해지자 중국 정부는 그동안 꺼렸던 외국 구조팀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이날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소방·경찰·해상보안청·국제협력기구(JICA) 등의 요원으로 구성된 긴급 구조대 60명 가운데 31명을 현지에 1차로 파견했다. 나머지 2차 구조대원들은 16일 출발할 예정이다. 중국이 해외의 구조팀을 받아들이기는 처음이다. 중국은 교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동안 외국의 구호 인력 지원 제안을 거절했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장비 부족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 정보산업국은 이날 이례적으로 웹사이트에 망치와 삽, 폭파 장치, 고무 보트 등의 각종 구호 장비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쓰촨성 두장옌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구호물자를 실은 버스와 트럭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생수통과 비스킷, 컵라면 등으로 가득 찬 관광버스도 목격됐다. 구호 병력과 장비를 실은 군용 트럭과 공병대도 주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고 신화통신 등은 전했다. 지진 발생 이후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접수된 구호물자와 기금은 8억 7700만위안에 달한다. 미 프로농구(NBA) 스타 야오밍이 200만위안을 기탁한 것을 비롯해 도움의 손길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참사로 인한 재산 피해는 약 20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손해사정 전문기업 AIR 월드와이드가 14일 밝혔다. 하지만 쓰촨성에서 1933년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하고 45일이 지난 뒤 댐이 붕괴한 사례를 들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출하려면 몇주일이 더 지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쓰촨성에 고립됐던 외국인 관광객 682명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화통신은 쓰촨성의 명승지 주자이거우 등지에 국내외 관광객 2517명이 잔류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고 국가관광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인 관광객 22명도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며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댐 지지대 엿가락 휘듯…‘2차 재앙’ 공포 확산

    [中 쓰촨성 대지진]댐 지지대 엿가락 휘듯…‘2차 재앙’ 공포 확산

    |두장옌 이지운특파원|쓰촨(四川)의 자랑 쯔핑푸(紫坪鋪)댐은 심한 균열을 드러내고 있었다.15일 댐 꼭대기에 설치된 2㎞ 길이의 난간 5분의4는 모두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도로와 인도는 갈라져 30㎝이상의 틈이 생겼고 계단도 분리된 곳이 허다했다. 댐 사무소 건물도 내력벽과 기둥이 금이 가고 부숴진 상태였다. 댐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철제 계단과 손잡이는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국가 우수관광지역 두장옌(都江堰) 가운데서도 명승지로 꼽히는 이곳은 댐 보수를 위해 급파된 군병력 2000명으로 북적였다. 수압으로 인한 붕괴 우려가 제기된 13일부터 이날 낮에까지 빠르게 물을 방류해온 댐은 다급히 물을 뺀 흔적이 역력했다. 물에 잠겼다 빠진 흔적이 얼핏 보아도 십수m가 넘는다. 댐 안쪽은 이미 습지까지 드러낼 정도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원주민은 “당국으로부터 댐에 문제가 있다는 통지가 내려왔다.”면서 “추가 매몰 가능성도 있어 일단 가족과 집을 떠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도 “그러나 당국은 절대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적어도 댐의 위험은 2차적인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기자가 현장에 있는 순간에도 산에서는 ‘쿵쿵’하는 큰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굴러내려오기도 했고, 도로는 1∼2시간 남짓 시간에도 봉쇄됐다 풀렸다 심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두장옌의 하류는 당장 곳곳에서 매몰된 시신을 수습하고 생존자를 찾는 가족들과 구조대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가족을 구하겠다고 울먹이며 도움을 호소하는 중년 여성은 ‘댐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었느냐.‘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들에게 2차 재앙에 대한 우려는 1차 재앙의 상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듯했다. jj@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매몰자들의 수호신 인민해방군

    32년만에 발생한 최악의 대지진에 군대가 톡톡히 활용되고 있다. 민간 구조요원들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고립 지역에도 먼저 들어간다. 걸어서 갈 수 없으면 낙하산, 헬기, 수송기를 이용해서도 들어가고 있다. 오랜 훈련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특수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와 공병대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해 지진 재앙에 빠진 이들을 구해내는 데 일등 공신이 되고 있다. 이번 대지진 복구를 위해 15일까지 13만명의 군병력이 투입됐다.4000명의 공수부대와 2560명의 해군 육전대를 포함해서다.70개 군 의료대는 피해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다. 군용 헬기 93대도 구호작전에 참여했다. 텐트 12만여개와 담요 22만여개, 코트 12만벌 등을 포함한 12.5t의 구호품을 투하했다. 대지진의 진앙지로 주민 7만명의 생사가 기로에 놓인 원촨(汶川)현이 폐허로 변해 도로와 다리가 끊긴데다 산사태가 발생해 차량 접근이 어렵게 되자 군인들은 90㎞의 진흙탕 산길과 험준한 산줄기를 밤새 걸어서 넘어갔다. 이들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쓰촨성 지진 피해 현장에서 어김없이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군인들은 콘크리트더미와 진흙 아래에 파묻힌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학교와 병원, 가옥을 샅샅이 뒤지며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포클레인 등 중장비의 동원이 어려울 때는 맨손으로 건물의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를 구해내고 있다. 두장옌시에서만 300명의 부상자를 구했다. 두장옌 상류댐에 아주 심각한 균열이 발생해 인구 60만명의 두장옌시가 수몰위기에 처하자 군이 긴급 투입돼 대참사를 막기도 했다. 또한 잉슈 등 고립지역에는 헬기 등으로 물과 식량 등 구호품을 공중 투하해 생존자들의 목숨을 연장시키고 있다. 지진이나 홍수 등 대규모 자연재난 때마다 구조에 앞장서온 군인들이 이번에도 중국 국민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원촨현 주민 7만 생사 오리무중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종찬기자|쓰촨성 대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현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 개통이 임박하고, 베이촨(北川)현과 양(綿綿)시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등 끊긴 도로들이 속속 복구되고 있다. 차이나텔레콤은 15일 오후부터 원촨현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통신망이 완전 복구됐다고 밝혀 앞으로 생존자 구조작업이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하지만 원촨현 주민 7만명의 생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티베트 고원 끝자리에 위치한 산악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주민 10만 6000여명 가운데 66%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지난 13일 밤에 중국 군병력과 무장경찰 일부가 걸어서 혹은 낙하산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으로 원촨현 진입에 성공해 구조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무장경찰 선발대가 확인한 것은 소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것이었다. 중심가에서 500명의 사망자를 발견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근 잉슈와 룽시 마을의 피해는 참혹 그 자체였다. 잉슈는 주민 1만여명 가운데 80%가 목숨을 잃었고 생존한 2300명 가운데 1000명은 심한 부상을 입었다. 도로와 교량 등 기반시설도 70%가 파손됐다. 원촨현의 길은 외길이 대부분이고 이마저 낙석과 흙더미로 덮인 상황이다. 도로 주변 산의 추가붕괴 가능성이 높아 중국군은 현재 원찬현 피해지점에서 수㎞ 떨어진 곳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원촨현 피해 지역에 폭우까지 내리고 있어 낙하산 부대의 진입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강한 여진이 계속되면서 추가 피해도 우려돼 구조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차량 통행재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근 민강 상류의 투룽댐이 지진의 영향으로 붕괴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 댐이 붕괴될 경우 원촨현 일대가 수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서는 시간이 생명인데 모든 상황이 원촨현 주민들에게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siinjc@seoul.co.kr
  • 한국인 유학생 5명 쓰촨성서 연락 두절

    |두장옌 이지운특파원·서울 이순녀기자|중국 지진 발생 지역에서 가까운 명승지 지우자이거우(九寨溝)를 여행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 5명이 지진 발생일인 12일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의 신고를 받은 외교통상부는 중국 공안의 협조를 얻어 이들의 행방을 찾고 있다. 이번 지진과 관련해 우리 외교통상부에 한국민과 관련된 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락이 끊긴 학생들은 부산외국어대에서 중국 톈진외국어대 교환학생으로 간 안형준, 손혜경, 그리고 톈진외대 유학생인 백준호·김동희·김소라씨다.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 현장에서는 6만명의 생존자가 구출되는 등 구조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실종자와 매몰자가 여전히 수만명에 달하는 데다 15일 오후 3시를 기해 매몰자 생존 한계 시간인 72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생사 여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물 잔해에 갇힌 생존자가 물이나 음식물 섭취없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만 사흘이며, 이후에는 생존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국무원은 이날까지 사망자가 모두 1만 9500여명으로 하루새 5000여명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신화통신은 앞으로 사망자 숫자가 5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지진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주민도 총 1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5일 군 병력 3만명과 헬리콥터 90대를 구조현장에 추가로 투입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지금까지 13만명이 넘는 군병력과 무장경찰을 투입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심각한 균열이 발견된 두장옌(都江堰)의 쯔핑푸댐을 비롯한 400여개의 댐 지역에 군 병력 2000명을 긴급 투입, 하류로 흘려 보내는 물의 양을 늘려 수위를 낮추는 방식으로 2차 재앙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산사태로 마비된 도로의 복구가 늦어지면서 생존자 구조 작업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피해지역에 전염병 발생 우려가 확산되면서 추가 피해가 염려된다. 진 피해지역은 아바, 청두(成都), 양(綿陽), 더양(德陽) 등 6개 시로 총 면적은 한반도 전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6만 5000㎢이다. coral@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땅이 딸 삼켰다”…통곡 연이어

    [中 쓰촨성 대지진] “땅이 딸 삼켰다”…통곡 연이어

    |양·두장옌·베이촨(쓰촨성) 이지운특파원| 통곡 소리와 흐느낌, 이름 부르는 소리, 날카로운 절규가 뒤얽혀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도시와 마을들을 에워싸고 공명처럼 울리고 있었다. 진앙지 원촨(汶川)과 함께 쓰촨(四川) 강진의 최대 피해 지역인 양(綿陽)과 두장옌(都江堰), 베이촨(北川)은 울음바다였다. 아들을 찾는 아버지, 남편을 찾는 아내,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붕괴 현장에서 비를 맞으며 날밤을 지새운 아들과 딸들…. 강진 발생 사흘째인 14일 베이촨의 베이촨중학교. 대지진에 짓눌려버린 꿈나무들의 매몰 현장에 다가서니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5층 학교 건물 가운데 3개 층은 땅 아래로 함몰돼 있었다. 지상에 남은 나머지 두 개 층도 무너져 내린 채였다. 그 틈 사이로 강직 현상이 한참 진행된 듯 보이는 시신들이 들여다보였다. 교사인 듯한 장년의 얼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활짝 웃었을 10대 중반인 듯한 소녀의 앳된 모습, 핏기 사라진 팔과 다리…. “내 아이가 지하 2층에 깔려 있다. 분명히 살아있다. 어떻게 좀 해줘요.” 30대 초반 주부 양모씨는 충혈된 눈으로 통곡하며 애원했지만 구조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중기와 포클레인 여러 대가 현장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수백명의 구조대원들은 한장 한장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교정 주변에 널부러진 시체는 파란 비닐백에 담겨지고 있었다. 깨진 머리, 짓이겨진 얼굴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었을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힌다. 군용 트럭에는 한 차 가득 이미 파란 비닐백들이 차 있었다. 주변의 약간 높은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두개의 거대한 산에서 밀려내려 온 흙더미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저기서 살아나올 수 있을까.” 마을이 도로까지 밀려나오고 아스팔트는 주름접힌 듯 갈라지고 솟아오르고…. 낙차가 5m 이상이나 난 곳도 있었다. 베이촨현에서 들어오는 길에는 수천대의 군용차량들이 지나쳤고 수만명의 군인들이 흩어져 끊어진 길을 잇고 무너져내린 돌과 흙을 치우는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 많은 병력과 물자도 현장에 도착하니 바다에 뿌려진 모래와 같았다. 두장옌시 쥐위안전(聚源鎭)중학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한 학부모는 “이틀 전 지진 발생 직후 학교로 달려와 잔해들을 뒤졌지만 딸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교사 천취안췬(陳權群)은 “수십개의 교실들이 통째로 무너져내렸다. 구조된 학생은 100여명뿐이다.800여명의 학생들이 잔해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며 발을 굴렀다. 양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무너진 집터와 빌딩 사이를 경찰과 군인들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때로 시멘트 구조물들을 잘라내는 기계음들과 포클레인이 움직이는 소음들도 울음 속에 묻혀서 들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도시는 울음과 비탄 속에 있었다. 양은 시 전체가 거대한 텐트촌과 주차장으로 변했다. 비가 그치고 날이 좋아지면서 전염병 우려로 구호당국은 걱정이 태산같다고 한 현장 관계자는 우려했다. 물 배급을 위해 늘어선 사람들,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 살아남은 사람들의 또 다른 전쟁터였다. jj@seoul.co.kr
  • 391개댐 균열등 피해… 긴급사태 선포

    |청두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종찬기자|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의 여파로 두장옌(都江堰)시 북쪽의 지핑푸 댐에 ‘아주 위험한’ 균열이 생겨 인민해방군 2000명이 급파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14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핑푸 댐 외에 고대 수리시설인 위쭈이 제방에도 금이 생겼다. 지핑푸댐이 붕괴되면 인구 60만명의 두장옌시가 수몰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 개발개혁위원회도 이날 홈페이지에 대형댐 2개를 포함해 391개 댐이 균열등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은 충칭(重慶)직할시내 17개 댐에 균열이 생겨 긴급사태가 선포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댐과 둑 등 수리시설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또한 프랑스의 핵 감시기구는 이날 쓰촨성 인근의 핵 시설들이 잠재적인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추가 조사를 통해 피해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피해지역에 전염병 우려가 확산되면서 대지진에 이은 ‘제2의 재앙’,‘제3의 재앙’이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의 구조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중국 무장경찰과 군 병력이 진앙지 원촨(汶川)현에 진입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이날 “10만명의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을 쓰촨성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지역이 워낙 넓은 데다 진입 도로가 끊기고 쓰촨성에 폭우마저 내려 구조작업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사망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날 현재 사망자는 2만명이 넘어가고 실종자도 8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특히 인구 11만명의 소도시로 지진 이후 주민 6만여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원촨현은 전체가 쑥대밭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잉슈는 도로와 교량이 70% 넘게 파손됐으며 주민 1만여명 가운데 80%가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2300명 가운데 1000명은 중상을 입은 상태다. 이때문에 군 헬기들이 잉슈 등 고립된 산악지역의 생존자들을 위해 의약품과 식량들을 공중 투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구조 작업이 본격화된 가운데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잇따르고 2000여차례의 여진이 발생하면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중국 지진전문가들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진앙지 주변에서 여진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iinjc@seoul.co.kr
  • [광우병 논란 각국 대처 어떻게] 광우병 발원지 EU의 대처법은

    |파리 이종수특파원|광우병의 발원지인 유럽은 관리 시스템을 잘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1989년 회원국들과 공조체제를 이뤄 광우병에 적극 대응하면서 발생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유럽의 광우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영국이 18만 3000여건으로 가장 많았다. 아일랜드와 프랑스가 각각 1353건,900여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포르투갈(875건) 스위스(453건) 스페인(412건) 독일(312건) 이탈리아(117건) 벨기에(125건) 네덜란드(75건) 등지서도 광우병이 발생했다. 인간 광우병 발병사례도 영국이 163건으로 가장 많았고, 프랑스 11건, 아일랜드 4건, 포르투갈·스페인 각 2건, 이탈리아 1건 등이다. 광우병은 1985년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뒤 인근 서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EU가 ▲입법 강화 ▲검사·통제 강화 ▲상시 모니터링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2003년부터는 대폭 줄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는 스페인이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에 인간 광우병으로 2명이 숨지자 2000년 광우병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당국은 도축되는 모든 쇠고기의 점검과 유통을 통제한다고 발표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광우병 발생지’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영국은 처음 광우병이 발견됐을 당시는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988년부터 광우병에 걸린 모든 소를 도살했다. 이듬해에는 소의 뇌와 척수, 비장, 편도선 등 모든 내장에 대해 식용금지 처분을 내리며 ‘오명 씻기’에 나섰다. 이어 1996년 광우병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영국 정부는 철저한 방역·보건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수술장비로 감염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나오자 1999년 이래 수혈용 혈액에서 감염경로가 될 가능성이 큰 백혈구를 제거하기도 했다. 또 보건부는 2억 파운드를 들여 외과 수술장비를 소독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경우 2000년 대형 유통업체에서 광우병 감염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유통시켰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쇠고기 전량 리콜 ▲쇠고기 제품 판매 금지 ▲학교 식단에서 쇠고기 제외 등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후 EU의 조치에 맞춰 광우병 감염원으로 추정되는 동물성 사료의 유통을 금지하는 등 중·장기 처방과 대책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4개월 이상된 소의 경우 도살하기 전에 광우병 병력과 진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당국의 관리 강화에 힘입어 광우병 확인 사례는 2001년 274건, 2002년 239건,2003년 137건 등으로 줄어들었다. vielee@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원촨 6만명 연락두절 피해클듯

    [中 쓰촨성 대지진] 원촨 6만명 연락두절 피해클듯

    중국 당국은 13일 지진의 진앙지인 원촨(汶川)현으로 진입하기 위한 도로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원촨현 인구 10만 5000명 가운데 6만여명의 소재가 불명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규모 희생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에서 92㎞ 떨어진 원촨현은 산사태로 주변 도로가 모두 막혀 외부와 고립된 상태였다가 이날 오후 늦게 구조대원들이 조금씩 진입하기 시작했다. 원촨현 인시우에선 9000명 인구중 생존자가 2300명에 불과했으며, 또 다른 마을에선 가옥의 80%가 무너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영TV가 보도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이날 오전 두장옌(都江堰)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두절된 도로를 복구해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재난 구조의 관건”이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원촨현에 접근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허비아오 쓰촨성 아바현 티베트자치주 정부 부비서장은 이날 신화통신과의 위성전화 통화에서 “잉슈(映秀), 싼장(三江), 쉬안커우(璇口), 우룽(臥龍)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6만명이 연락두절”이라면서 “이들의 안위가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수십개 학교가 붕괴되면서 수업 중이던 교사와 학생들의 집단 희생이 이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베이촨(北川)현의 베이촨 중고등학교 6층 건물이 무너져 교사와 학생 1000여명이 사망했거나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베이촨현은 산사태 등으로 도시 전체가 매몰돼 건물 80%가 무너지고,5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최대 피해지역으로 꼽힌다. 두장옌시에선 상허초등학교 건물이 붕괴돼 전교생 420명 중 320명이 사망했다.900명이 매몰된 주위안 중학교에서는 이날 오전까지 시신 50구가 인양됐다. 부실한 건물 공사와 과밀 학급이 학생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충칭과 쓰촨성 더양에서도 각각 2곳,5곳의 학교가 붕괴돼 수많은 학생들이 사망하거나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쓰촨성 쉬팡시에서도 화학 공장이 무너져 600명이 숨지고,2300명이 매몰됐다. 또 간쑤성 후이현 바오청 철로에서 청두로 가던 화물열차가 탈선하면서 화재가 발생, 인근 주민 9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군 병력과 무장경찰을 동원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신화통신은 군사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공군병력 3만 4000여명이 지상과 하늘을 통해 재난 지역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청두군구 병력 2800여명은 철로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 지도자와 국제기구 대표들도 애도를 표하고,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구호와 재건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도움의 뜻을 전달했다. 타이완은 구호팀을 급파했다. 타이완 중앙통신은 이날 내무부와 대륙위원회의 승인이 떨어지는 대로 타이완 국립수색구호팀이 중국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친 중국 성향의 마잉주 차기 총통이 현 정부에 파견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이날 성명을 내고 중국 국민이 강진의 피해와 충격을 하루빨리 극복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1) 높아지는 명분론,어정쩡한 방어대책

    [병자호란 다시 읽기] (71) 높아지는 명분론,어정쩡한 방어대책

    몽골 버일러들을 이끌고 왔던 용골대 일행이 도주하고, 청과 관계를 끊겠다는 인조의 유시문마저 용골대 일행에게 빼앗긴 뒤 조선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나덕헌과 이확이 홍타이지에게 배례(拜禮)를 거부하여 청을 자극했다는 소식까지 날아들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심은 더욱 커졌다. 빨리 방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묘 이후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어져온 ‘10년의 평화’에 익숙했던 조정이었다. 급작스럽게 내놓은 방어 대책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또 다른 논란이 빚어졌다. ●“나덕헌과 이확의 목을 쳐라” 홍타이지의 즉위식장에서 나덕헌과 이확이 보였던 행동은 어쨌든 대단한 것이었다. 나만갑(羅萬甲)의 ‘병자록(丙子錄)’에 따르면, 나덕헌 등이 무릎을 꿇지 않고 버티자 격분한 청나라 관원들은 두 사람을 마구 구타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머리 숙이기를 끝내 거부하자 식장에 있던 한인(漢人) 신료들 가운데는 부끄러워 눈물을 보이는 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청실록’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나덕헌과 이확의 행동이 안팎으로 충격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덕헌과 이확은 심양을 떠나 서울로 향할 때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오랑캐‘ 홍타이지의 즉위식장에서 목숨을 걸고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과연 조선 조정의 신료들이 자신들이 보였던 ‘기상’과 ‘절개’를 곧이곧대로 믿어 줄지 의문이었다. 그들은 더욱이 홍타이지에게서 받은 국서까지 휴대하고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홍타이지의 국서는 조선을 맹렬히 비난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협박, 조롱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국서를 그대로 가져갈 경우, 조정의 명분론자들로부터 어떤 비판이 날아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덕헌과 이확은 결국 귀국 길에 만주 통원보(通遠堡)란 곳에 이르러 홍타이지가 준 국서를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머물던 숙소에 몰래 던져 놓고, 대신 내용을 등사하여 조정에 올렸다. 이들이 의주에 도착하자 당장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가 상소했다. 그는 홍타이지의 국서 내용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통곡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덕헌 등이, 참람하고 말도 되지 않는 오랑캐의 서신을 받은 즉시 던져 버렸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빨리 나덕헌과 이확의 목을 베어 그것을 홍타이지에게 보여 주라고 촉구했다. 추상(秋霜) 같은 일갈(一喝)이었다. ●명분론이 높아지고,決戰論이 대두하다 홍명구의 상소를 통해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의 내용이 알려지자 조정은 다시 들끓었다. 비변사 신료들도 나덕헌과 이확이 자결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았다. 그들이 통원보에 이르러서야 국서를 몰래 버리는 바람에 홍타이지에게 ‘조선 사신이 국서를 기꺼이 받아갔다.’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고 통박했다. 조정의 분위기를 보면 두 사람은 이제 자결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덕헌과 이확을 성토하는 조정 신료들의 명분론은 극에 이르렀다.‘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의 국서를 받고서도 멀쩡하게 가지고 돌아온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덕헌과 이확은 결국 평안도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비변사는 통원보의 청나라 관리에게 나덕헌 등의 명의로 서신을 보내자고 주장했다. 나덕헌 등이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를 중도에서 뜯어 보고 버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는 것이었다. 대사성(大司成) 이식(李植)이 붓을 들었다. 이식이 쓴 국서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우리들은 귀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졸지에 갖은 곤욕을 다 당했다. 우리가 귀국하려 할 때 굳게 봉함된 국서를 받았다. 우리는 전례에 따라 뜯어 보려 했지만, 용골대와 마부대가 방해하여 그럴 수 없었다. 결국 한참 말을 달려 중도에 이르러 뜯어 보니 서면(書面)의 칭호와 말미에 찍힌 인문(印文)이 과거와는 크게 달랐다. 또 우리나라를 ‘이국(爾國)’ 운운하며 공경하기는커녕 노예처럼 여기고 있었다. 조선의 신하된 도리 상 차마 볼 수 없어 통원보에 이르러 숙소의 잡물 속에 던져 놓고 왔다. 원컨대 그 것을 가져다가 홍타이지 한에게 전해 주기 바란다.’요컨대 조선은 이식이 쓴 국서를 통해 홍타이지가 칭제건원(稱帝建元)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던 셈이다. ‘황제’ 홍타이지와 ‘제국’ 청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듭 못을 박은 이상 이제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미 용골대 일행이 도주했던 직후부터 청의 침략에 대비한 대책들은 쏟아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했던 사람은 단연 부제학 정온(鄭蘊)이었다. 그는 용골대 등이 도주한 직후 올린 상소에서, 원수(元帥)를 선발해 보내고 빨리 압록강을 방어할 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또 인조에게 개성까지 나아가 신료들을 독려하고 군율(軍律)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록강을 방어하고 개성으로 진주(進駐)하라? 여차하면 조정을 강화도로 옮기는 것만 생각하고 있던 다른 신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주장이었다. 정온은 그러면서 인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진정으로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공신들이 거느린 정예병들을 원수에게 배속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는 온 나라의 정예병과 무사가 전부 반정공신들 휘하에 배속되어, 평소에는 그들의 농장(農莊)을 관리하다가 유사시에는 호위(扈衛)를 핑계로 편안함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멀쩡한 정예병들이 적과 싸움은 포기한 채 강화도에 머물면서 ‘내란이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헌부 관원들도 정온과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정예병이란 정예병은 모두 반정공신 휘하 군관들에게 사병(私兵)처럼 편제되어 있는 것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정쩡한 인조의 태도 정온과 사헌부 신료들의 주장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그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훈신(勳臣)들이 ‘호위’를 핑계로 정예병을 사병처럼 틀어 쥐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실제 당시 평안병사 유림(柳琳)이 금군(禁軍) 가운데 10명을 데려가 군관으로 삼으려 했는데 호위청(扈衛廳)에서 거부하여 문제가 되었다. 사간원 신료들은 “변방 방어가 충실하면 서울이 편안해지고 서울이 편안하면 굳이 호위하는 무사가 많을 필요가 없다.”며 호위청 군관 가운데 500∼600인을 뽑아 변방으로 내려 보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인조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마뜩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호위하는데 중요한 훈련도감이나 어영청 병력을 덜어 내자는 주장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개성으로 전진하고 정예병을 과감하게 내어 주라.’는 정온의 요청에 대해 “그대의 차자(箚子) 내용이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또 사간원 신료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연소한 대간들이 사체도 모르면서 군사와 군량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시가 엄청난 위기 상황이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인조는 여전히 안이했다. 강화도로 들어가, 수많은 정예병들을 시켜 자신의 주변을 호위하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병자호란 직전 인조는 분명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636년 4월25일, 스스로를 통렬히 비판하는 하교를 내렸다.‘내가 용렬하여 시비(是非)를 분별하지 못했고, 게으른 데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이제 노력하겠으니 모든 신료들도 난국을 타개하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눈물겨운 호소였다. 하지만 근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인조는 병자호란 직전 ‘오랑캐와 일전을 불사하자.’는 명분론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실제로 ‘일전을 불사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했던 정온 같은 신하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인조의 책임은 컸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中 쓰촨성 대지진] 1976년 ‘탕산’과 달라진 점

    12일(현지시간) 오후 중국 쓰촨(四川)성을 덮친 강진의 피해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24만명의 사망자를 냈던 1976년 탕산(唐山) 대지진과 비슷한 대재앙이 연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0세기 최악의 지진´으로 불리는 탕산 대지진도 리히터 규모 7.8로 이번 쓰촨성 강진과 같은 진도다. 그러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3일 “32년전 탕산 대지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재앙을 맞은 중국의 대응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우선 재난 대처가 빨라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진 발생 한시간이 채 안 돼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하며 군 병력을 구호활동에 신속하게 투입했다. 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전용기를 타고 재해지역으로 날아가 구호활동을 진두지휘했다. 32년 전은 달랐다. 문화대혁명의 막바지를 지나고 있던 중국은 사태의 심각성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중국 당국은 탕산의 한 택시운전사가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까지 와서 피해의 심각성을 알린 후에야 군대를 파견했다. 언론의 신속 보도도 가능해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재해 발생 십여분 만에 첫 보도를 내놨다. 탕산 대지진 당시 중국은 수개월간 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언론은 통제되고 정보는 은폐됐다. 중국 당국은 자연재해 피해상황을 국가기밀로 분류했다. 탕산 대지진을 처음 외부에 알린 건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였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AI 예방치료약 정신착란 등 부작용 우려

    AI 예방치료약 정신착란 등 부작용 우려

    정부가 조류 인플루엔자(AI) 항바이러스제의 비축량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거의 유일한 AI치료제인 타미플루가 지난해 보건당국에 의해 10대 미성년자 금지약물로 지정돼 대안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2일 보건 및 방역당국에 따르면 서울 도심까지 확산된 AI로 일부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휴교에 들어가는 등 청소년의 AI감염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대표적인 AI 예방 및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정신착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10∼19세 미성년자에게 투약을 사실상 금지했다. 합병증이나 과거 병력 등으로 고위험 환자로 분류되는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투약받을 수 있게 했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어린이·청소년들은 AI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청소년층에서 집단적으로 AI 감염사태가 발병할 경우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를 복용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지금까지 타미플루를 복용한 환자 128명이 이상행동을 보였고, 이 중 100명이 19세 이하 청소년이었다. 특히 차량에 뛰어들거나 투신하는 등 이상행동으로 숨진 8명 가운데 5명이 10대였다.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10대 청소년에게 타미플루 투약을 금지시켰다. 매년 3만명의 환자가 타미플루를 복용하는 국내에선 아직 청소년의 이상행동 등이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조사인 로슈에 따르면 2005년 타미플루를 복용한 30대 여성이 악몽을 꿨다는 보고가 접수됐다.AI 항바이러스제의 안전성이 취약하다는 점은 그동안 수차례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 미 식품의약국(FDA)의 자문위원들은 로슈의 타미플루와 함께 같은 AI치료제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리렌자에 대해서도 경고문이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면서 문구 수정을 결정했다. 이 약품들은 애초 독감 치료제로 시판됐으나 AI에도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각광받았다. 하지만 일부 복용 환자들이 망상, 섬망, 자해 등의 부작용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국내 AI치료제 시장을 독점한 타미플루는 2001년 12월 국내에 처음 수입돼 판매되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신형근 정책실장은 “일단 AI가 발발하면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투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中 쓰촨성 대지진 최소 8500명 사망

    中 쓰촨성 대지진 최소 8500명 사망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종찬기자|중국 쓰촨성(四川省) 성도인 청두(成都) 부근에서 12일 오후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8500여명이 죽고 1만여명이 다쳤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지방정부 관계자 및 지진국의 발표를 인용,“오후 2시28분쯤(현지시간) 청두에서 북서쪽으로 92㎞ 떨어진 원촨(汶川)지역에서 규모 7.8 강진이 발생했으며 6.0이상의 여진을 포함, 최소 313차례의 여진이 잇따랐다.”고 보도했다. 이날 지진이 매우 강력한 데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청두 등 대도시가 멀지 않아 피해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 만명의 사상자 발생이 우려된다. 실제로 쓰촨성 두장옌(都江堰) 시에서는 학생 900명이 매몰돼 있고 5개 학교가 추가 붕괴된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촨 현에서는 건물 80%가 무너졌다. 청두 남동쪽에 위치한 충칭(重慶)의 한 초등학교 건물도 붕괴돼 4명의 어린이가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 국가안전총국은 진앙 주변의 한 지역에서는 2개 화학공장 지대가 무너져 수백명이 매몰됐다고 밝혔다. 쓰촨성 강진 7분 뒤 베이징에서도 리히터 규모 3.9의 여진이 발생해 고층 건물에 소개령이 내려져 수 천여명이 긴급대피하기도 했다. 이날 밤 여진이 닥친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베이징시민들은 밤새 불안에 떨었다. 지진에 따른 후폭풍으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상하이의 88층짜리 진마오빌딩(金茂大廈)을 포함해 주변 고층건물에 있던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또 쓰촨성의 청두(成都)국제공항이 폐쇄되면서 외국 항공사의 항공기가 잇따라 회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지진은 베이징, 상하이, 홍콩, 난창(南昌), 쿤밍(昆明), 후허하오터(呼和浩特)를 비롯해 태국 방콕과 타이완,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강력했다. 피해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군 병력의 현장 투입을 지시했으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피해지역 시찰에 나섰다. 그는 이번 강진을 ‘대재난’(major disaster)으로 규정하고 침착한 대응을 당부했다. 지진 전문가들은 강진이 발생한 곳은 티베트고원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산세가 험하지만 인구밀도는 낮은 곳이라 피해가 없었지만 인근 도시 지역에서는 큰 피해가 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일두 주 청두 총영사는 “1100여명의 유학생 등 한국 교민의 피해 사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강진은 지난 1976년 7월 25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唐山) 대지진(리히터 규모 7.8)이후 최대 규모다. jj@seoul.co.kr
  • [美쇠고기 파문] 수입 위생조건 개선 가능한가

    [美쇠고기 파문] 수입 위생조건 개선 가능한가

    정부가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국내 여론도 무마하려는 ‘더블 플레이’를 하고 있다. 수입위생조건은 예정대로 15일쯤 확정고시하고 이후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자칫 안팎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재협상은 안 하면서 가정법을 전제로 개정을 요구하겠다는 것도 ‘국면 타개용’으로 보인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8일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미국과 맺은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광우병이 생겨서 국민건강에 위험이 생길 경우 수입을 중단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 두 나라 대표가 합의·서명한 수입위생조건은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시행 이전의 재협상’은 미국과의 신뢰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협상 내용에 일부 잘못된 점을 시인하지만 지금 고치기에는 늦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응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수입 중단’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즉각적인 중단’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입을 중단한다는 의미가 함축됐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역학조사 결과를 우리측에 통보해 협의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병력을 가려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광우병 발생 이후에도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로 수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광우병은 발생했지만 역학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거나 특정 지역에 한정됐다고 통보할 경우 우리측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가 않다. 광우병 발생 이전에 도축했거나 선적한 쇠고기도 검역을 중단해야 하는지 논란거리이다. 정부는 수입 중단의 다른 조건으로 미국의 국제수역사무국(OIE) 광우병 지위가 변경되는 것을 들었다.OIE는 광우병 위험등급을 3단계로 나눠 1등급은 경미한 위험국(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등),2등급은 통제된 위험국(미국, 캐나다, 칠레 등),3등급은 미결정 위험국이다. 미국이 속한 2등급은 위험평가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만 시행기간이 1등급 수준인 7∼8년에는 이르지 않고 교육·신고·조사·검사 기간도 7년 미만인 경우로 정하고 있다. 이는 광우병 위험이 있지만 정부가 억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당분간 등급이 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으로 우리 정부가 수입위생조건의 개정을 요구해도 전면적이거나 즉각적인 ‘수입 중단’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일부 검역을 중단하거나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특정 지역의 수출작업장 승인만 거부하는 선에 그칠 수 있다. 일본과 타이완의 협상 결과에 따라 월령 문제는 바뀔 수 있다.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뼈있는 쇠고기를, 중국과 타이완은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살코기를, 베트남·러시아 등은 30개월 미만의 뼈있는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나라와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개방도 요구하지만 중국은 협상을 중단했고 일본은 30개월 미만까지 허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우리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강화된 사료조치의 시행 이후로 요구할 명분을 갖게 된다. 참여정부에서 차관을 지낸 한 관계자는 “당초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강화된 사료조치의 공포가 아닌 시행 시점에서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면서 “왜 방침을 바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SRM의 월령 표시 문제는 미국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사이클론’ 수습 뒷전… 영구 집권 골몰

    미얀마 군부가 최악의 사이클론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장기집권 연장을 꾀하는 그들에게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도전이 가뜩이나 만만찮은 짐이다. AP, 로이터는 6일 미얀마 국영 라디오를 인용, 중남부를 휩쓴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한 사망자가 2만 2000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실종자도 4만명을 넘어섰다. 인명피해 규모는 2004년 말 인도양을 강타한 해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때에 버금가는 규모여서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로 불리는 미얀마 군부도 국제사회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BBC는 군부가 사이클론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사이클론이 할퀴고 지나간 곳에서 경찰, 군병력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시민들만 쓰러진 나무를 잘라 걷어 내는 등 복구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군부는 오는 10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 관련 국민투표를 강행한다고 6일 밝히는 등 초강수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도 뉴델리에 본부를 둔 미치마 뉴스(www.mizzima.com)는 ‘재앙 속에 투표 실시하는 무자비한 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강력하게 정권을 비난하고 나섰다. 미치마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망명 민족민주동맹(NLD)의 뇨온 민 외무담당이 “국민들의 참상을 외면한 채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다.”고 꼬집었다고 전했다. 그는 사이클론으로 쉴 겨를조차 없어진 국민들이 투표에 무관심한 틈을 타 신헌법을 통과시키려는 속셈이 군부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가결 투표율 규정이 없는 점을 악용, 참가자의 과반만 넘기고 보자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투표 참가자가 적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미 지지자들 결집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덧붙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6일 미얀마 군정에 대해 재난지원 활동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초기 자금지원에 이어 실종자 수색 등 추가 지원을 하고 싶다.”며 미얀마 군정이 미국 지원팀의 접근을 허락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미얀마엔 50여개 기업체를 포함, 교민 850여명 등 한국인 1000명이 머물고 있다.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은 6일 미얀마를 강타한 사이클론과 관련,“현지 우리 교민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얀마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텐트·의약품 등 10만달러 규모의 긴급 구호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송한수 김미경기자 onekor@seoul.co.kr
  • 러 추가 병력배치… 그루지야 전운 고조

    그루지야와 그루지야내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 간의 내전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러시아 평화유지군 1000여명이 1일(현지시간) 친(親)러시아 성향의 압하지야에 추가 배치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이타르타스 등 러시아 언론은 이날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를 인용해 이렇게 전한 뒤 “추가병력 규모는 1994년 유엔중재로 이뤄진 그루지야와 압하지야의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3000명 한도내에 있다.”고 보도했다. 압하지야엔 2000명 정도의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이미 배치돼 있다. 이에 대해 그루지야는 국제법상 명백한 침략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그루지야와 압하지야 간의 내전의 불씨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1990년대 초 옛 소련 붕괴 이후 두 나라 사이에 내전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압하지야는 그루지야내 다른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야와 함께 친(親)러시아정책을 펴며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도 앙숙 관계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이 2004년 1월 취임후 러시아 그늘에서 벗어 나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나토에 가입하면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용골대와 마부대 일행은 다목적 사절이었다.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사절이자, 인열왕후의 죽음에 문상하기 위한 조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선의 동참을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홍타이지 명의의 국서말고도 후금의 여덟 버일러(貝勒, 만주 팔기의 우두머리)들과 몽골 출신 마흔 아홉 버일러들이 작성한 서신을 각각 1통씩 소지하고 있었다. 서신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용골대 일행 명버리고 후금 선택 강요 후금의 버일러들이 보낸 서신은 먼저 몽골 각부의 버일러들이 심양에 모두 모여 홍타이지에게 복종을 다짐하고 존호(尊號)를 올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후금군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것은 이미 천의(天意)와 민심이 후금으로 돌아갔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우인 조선국왕도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자제들을 보내 홍타이지를 추대하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했다.‘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동참하라?’ 그것은 한마디로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동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몽골 버일러들의 편지가 좀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우리가 지금 200여년 동안 사귀었던 명과 결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명의 관리들은 우리를 속였고, 나라에는 뇌물이 성행하고 간신들이 총명을 가려도 황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인심이 이미 해체되고, 장졸들은 유약하여 싸울 때마다 무너지고 있으니 명의 운명은 이미 다한 듯하다.’.‘하지만 우리 만주 황제는 은혜와 위엄을 아울러 갖추셨고, 법도와 기강이 엄숙하며 장졸들은 강하여 가는 곳마다 무적이다. 민심이 사모하니 천명(天命)이 장차 돌아가려 한다.’ 몽골 버일러들은 아예 ‘우리 황제’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당시를 명이 망하고 후금이 떠오르는 혁명(革命)의 시기로 규정했다.‘지는 해인 명을 버리고 떠오르는 해인 후금을 선택하라.’ 몽골 버일러들이 조선에 보낸 편지는 대충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2월22일 용골대 일행이 입경하여 문제의 서신들을 내밀었을 때 조선 신료들은 접수를 거부했다. 후금의 버일러나 몽골의 버일러를 막론하고 신하된 자가 다른 나라의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용골대와 몽골 버일러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용골대는 ‘우리 한(汗)의 공업(功業)이 높아 안팎의 모든 신료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몽골 버일러들은 ‘조선이 형제국이라 금한(金汗)이 황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기뻐할 것으로 여겼는데 거절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며 따졌다. 조선 신료들이 군신의 대의를 내세워 계속 거부하자 용골대는 바로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후금의 서신 거부 용골대 일행 쫓겨나 그럼에도 조선 신료들은 몽골 버일러들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용골대 등의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몽골 버일러들을 조선에 데려올 때는 조선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어 자신들의 낯을 세워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신료들이 ‘명을 배신한 서달(西 )’ 운운하며 그들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자 용골대 일행의 낭패감은 컸다. 조정에서 회답하는 여부를 논의하려 할 때 삼사의 신료들이 들고일어났다. 대사간 정온(鄭蘊)은 서달은 부모 나라의 원수이니 사절단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지금 우물쭈물하는 자세를 보이면 조선도 홍타이지를 추대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 유생들도 빨리 용골대 등의 목을 베고 서신을 소각하라고 촉구했다. 안팎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최명길(崔鳴吉)이 진화에 나섰다. 그는 후금과 몽골 버일러들의 서신 내용이 문제지 홍타이지의 글에는 별 문제될 내용이 없다며 분리해서 대응하자고 했다. 버일러들의 서신에는 엄정히 대처하되, 그들을 박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의와 원칙에 따라 용골대 일행을 대하되 임시 방편으로 화를 늦출 계획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26일 용골대는 자신이 가져온 버일러들의 서신을 받아주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궁궐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조정은 파장을 우려하여 역관 박난영(朴蘭英)을 모화관(慕華館)까지 보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편 마부대는 같은 날 10시 무렵, 종자들을 이끌고 인열왕후의 빈소에 조문했다.‘승정원일기’에는 이들이 명정전(明政殿)에서 조문했다고 되어 있으나 ‘병자록(丙子錄)’의 기록은 좀 다르다. 조선 조정이 전각(殿閣)이 좁다는 이유로 금천교(禁川橋) 위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조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막 조문하려는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 장막이 걷혀버렸다. 마부대 일행은 조선의 푸대접에 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훈련도감 포수들이 궁궐로 모여들었고, 인조를 숙위하는 금군(禁軍)들도 무기를 소지한 채 장막 근처에 있었다. 장막이 걷힐 때 마부대 일행은 무기를 든 병사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자신들을 해치기 위해 잠복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부대 일행도 놀라 허겁지겁 달아났다. 후금 사신들이 도성을 빠져나갈 때 구경꾼들이 길을 메웠다. 아이들은 일행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기와 조각과 돌을 던지기도 했다. 청나라 기록에는 당시 용골대 일행이 너무 급한 나머지 민가에서 말을 빼앗아 타고 돌아왔다고 적었다. 그것은 사실상 조선과 후금의 관계가 끝장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몽골 버일러들의 편지까지 들이밀며 조선을 협박하려 했던 후금의 오만도 문제였지만, 조선의 대응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조문할 장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 고의였는지 분명치 않지만 조문 장소 부근에 병력을 배치하여 의심을 산 것 등은 분명 실책이었다. 더욱이 ‘호차(胡差)들을 참수하라.’는 주장까지 난무하는 상황에서 용골대 일행의 의구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평안행 전령, 용골대에 잡혀 방어대책 들켜 용골대 일행이 도주한 뒤 오히려 조선 조정이 공포에 휩싸였다.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긴장과 불안감이 엄습했다.2월29일, 인조는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윤방(尹昉)은, 오랑캐 사신이 성을 내고 갔으니 침략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미리 강화도로 들어가 방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도승지 김경징(金慶徵)이 말을 끊었다.‘지금 마련해야 할 것은 방어 대책이지 피란 대책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정은 방어 대책을 마련한다며 부산해졌다. 김류(金 )는 포수(砲手)가 아니면 오랑캐를 막을 수 없다며 어영군과 훈련도감의 포수를 뽑아 안주(安州)로 보내자고 했다. 화약을 증산할 대책이 제시되는가 하면 서쪽으로 방수(防戍)하러 간 병사들의 신역(身役)을 감해주라는 명령이 내렸다. 인조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희성(文希聖)을 안주 조방장(助防將)으로 임명했다. 일찍이 1619년 심하 전역에 참가했다가 후금군에게 항복했던 전력이 있는 장수였다. 인조는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지금은 장수로서 재주가 중요하지 과거 전력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급박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3월1일, 인조는 팔도의 백성들에게 유시문(諭示文)을 내렸다.‘정묘호란 때는 부득이하여 임시로 화친을 허락했다. 하지만 오랑캐의 욕구는 날로 커져 이제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협박하고 있다. 이에 강약(强弱)과 존망(存亡)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니 모든 사서(士庶)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나가자.’는 호소였다. 대의명분을 위해 국가의 존망까지도 걸 수 있다는 의지는 결연했다. 하지만 3월7일, 오랑캐와 단교한다는 사실과 방어 태세를 확고히 하라는 인조의 명령서를 갖고 평안감사에게 가던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방어 대책을 마련한다며 부산을 떠는 와중에 서울에서 변방으로 이어지는 통신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조선은 속마음을 온전히 들키고 말았다.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사설] 성화 봉송 의미 훼손한 중국인 폭력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열린 서울에서 중국인들이 폭력을 행사해 여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친 중국 시위대는 대치하던 반 중국 시위대가 피신하러 들어간 호텔로 난입하려다 이를 막던 경찰을 둔기로 때렸다. 이들은 보도블록을 반 중국 시위대에 던지고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중국인들은 서울 곳곳에서 티베트 사태나 탈북자 송환에 항의하는 소수의 반 중국 시위대를 에워싸고 6000여명이란 다수의 힘으로 압도했다. 성화 봉송을 못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지만 일부 중국인에 의한 폭력 사태로 봉송의 의미가 크게 훼손됐다. 어떤 이유로든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성화 봉송에 차질이 없도록 경찰은 1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봉송로에 촘촘하게 배치했다. 경찰의 경비가 필요없을 만큼 많은 중국인들이 거리로 나와 ‘가자, 중국’을 외치며 성화를 지켰다. 비폭력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성화 봉송에 폭력이 개입돼 유감스럽다.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와 화합을 이룬다는 올림픽 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번 일로 티베트 사태를 관망하던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점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중 간 외교 마찰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 성화가 서울로 오기 전 일본 봉송 행사는 큰 충돌 없이 끝났다.5월 초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일본 방문이 예정돼 있어 중국인들이 자제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 유감을 표명했다. 이로는 모자란다. 정부는 폭력 가담자를 철저히 사법처리하고 중국 정부도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 탈레반 최고사령관 “파키스탄 공격 중단”

    파키스탄 탈레반 최고사령관인 바이툴라 메수드가 24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신정부에 휴전을 선언했다. 파키스탄 신정부도 탈레반 무장단체의 거점이 있는 남와지리스탄에 주둔했던 군병력의 철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따라 파키스탄 신정부와 탈레반 무장단체간의 평화협정 체결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파키스탄 신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선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무샤라프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탈레반 무장단체의 제거를 위해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여왔다. CNN,BBC, 발루치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암살 배후로 지목됐던 메수드의 공격 중단 명령이 적힌 전단이 국경지대 곳곳에서 발견됐다. 메수드의 이번 명령은 파키스탄 신정부가 이슬람 무장단체 지도자인 수피 무하마드를 풀어준 것에 대한 선물로 풀이된다. 파키스탄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사면초가에 빠진 탈레반이 입지를 넓히고 시간을 벌기 위해 신정부와 대치국면보다 협상모드를 갖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신정부도 탈레반에 대한 통제없이 정치적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양측의 관계가 연정이나 정책공조로는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개인정보 보호 국가 시스템 부재

    개인정보 보호 국가 시스템 부재

    옥션·LG텔레콤에 이어 23일 하나로텔레콤도 회원의 정보를 유통시킨 것으로 나타나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이날 하나로텔레콤 가입자 600만명의 개인정보를 텔레마케팅 업체에 넘긴 혐의로 박병무(47) 전 대표이사와 전·현직 지사장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정부는 구멍뚫린 개인정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27·여)씨는 요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잇따라 터진 개인정보 유출사고 탓에 회사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가입만 해두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이트를 찾아 탈퇴하는 데 정신이 팔리기 때문이다. 옷을 자주 구입하던 옥션은 해킹 사고 직후 탈퇴했다. 5년 동안 써온 하나로텔레콤도 23일 개인정보 유출 수사발표를 듣고 해지키로 마음먹었다. “개인정보를 적지 않으면 가입시켜주지 않는다기에 적었는데, 상업 사이트에서 주민번호까지 일일이 기입하게 해놓고 이렇게 부실하게 관리하고 이용하기까지 했다니 속에서 열불이 나요.” 이에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국회에 계류 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에 주력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인터넷 개인정보 유출과 보안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위반행위와 관련한 매출액 1%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각각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과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나눠서 규제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안을 ‘개인정보보호법안’으로 일원화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후 제재를 위한 법 개정보다 사전 방지책을 먼저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상업사이트가 주민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별다른 제재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방치한 점이 유출사고를 불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사이트에 회원 가입하려면 주민번호와 집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은 필수 가입사항이다. 상업사이트에선 마음만 먹으면 주민번호로 개인의 병력과 재산, 보험가입상태 등의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때문에 독일은 주민번호제를 폐지했고, 미국에선 상업사이트에서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게 하면 범죄에 해당한다. 주민번호가 남아 있는 스웨덴과 영국에서도 공공기관에서 문서를 검색해보지 않으면 개인의 주민번호를 쉽게 찾아낼 수 없도록 꽁꽁 숨겨두고 있다. 때문에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통합관리하면서 상업사이트에 신원확인을 대행해주는 제3의 공공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임강빈 교수는 “상업사이트가 개인정보를 장기간 보관하게 해둔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을 두고 상업사이트에서 가입자에 대한 인증과 적합성 확인을 요구할 때만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대안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주민번호는 개인의 어떤 정보라도 다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매직 키’이자 평생 안 바뀌는 ‘군번’”이라면서 “디지털 시대는 주민번호를 사용한 획일적 국민 관리가 필요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효섭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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