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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강한 훈련으로 무적해병의 명성을/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열린세상] 강한 훈련으로 무적해병의 명성을/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지난 한주 해병2사단 총기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낭보가 아니었더라면 며칠 더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했을지 모른다. 동료 전우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김모 상병의 범행은 여타의 총기사건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난사(射)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조준하여 사격했다는 부분에서 더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더욱이 범행을 공모한 공범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이 주는 파장은 더욱 컸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우들에게 조준사격을 할 정도의 분노를 주었나. 바로 해병대가 자랑하던 그 전우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무생활 때문이었다. 통상 인터넷에서 ‘특전사가 세냐? 해병대가 세냐?’라는 설전이 벌어질 때마다 결국 특전사는 훈련은 힘든데 내무생활은 편하고, 해병대는 상대적으로 훈련은 쉬운데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내무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구타나 기합 등이 많다는 말이 되는데, 거의 대부분 집안의 외아들로 곱게 자란 젊은이들이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 아직도 구타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통계승 방식이다. 또 기수 열외라는 것이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악습은 아니고 2005~2006년쯤에 생겼다. 2000년대 이후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생겨난 왕따문화 세대가 군에 입대하며 생긴 현상이다. 과거처럼 구타를 자유롭게 하기 어렵게 되자 해병대문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때리기보다는 아예 제쳐놓는 것이다. 이를 투명인간화한다고 하는데, 심지어 식사 중에 식판을 엎어버린다든지, 빨래를 떨어뜨려 밟거나 버린다든지 하는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일까지도 행한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해병대의 빛나는 전통과는 상반된 비겁한 행위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해병대의 여러 사고가 유독 해병2사단에만 집중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해병2사단은 훈련만을 중점으로 하는 해병1사단과는 달리 육군의 철책경계부대와 다름없이 주로 해안경계임무에 투입된다. 문제는 그들의 경계범위가 일반 육군 사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데 있다. 많은 부대가 소대단위별로 각각의 소초에 흩어져 생활하다 보니 지휘관의 방침이나 감독이 일선에까지 잘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은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되며 그 어떤 부대 이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그럼에도 해병2사단에 비해 사고가 적은 것은 바로 흩어져 있는 부대가 아니라 모여 있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군은 이 기회에 그동안 수차례 지적되어 온 해병2사단의 경계지역을 재조정하여 과도한 피로도를 줄여주거나 해병대 본연의 임무에 맞는 기동군으로의 전환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포항에 있는 해병1사단의 상륙을 막기 위해 북한군은 동해안인 함경남북도 전역에 약 14만명 이상의 병력을 산개해 놓고 있다. 만약 해병2사단을 서해 후방으로 이전하여 전문 상륙군으로 육성한다면, 상륙작전으로 인해 6·25의 승리를 놓친 북한의 노이로제는 서해안에서도 평안북도까지 병력을 더욱 분산 배치할 것이다. 강한 군대인 해병대를 철책경계로만 쓰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는 해병대의 사고 예방과 함께 북한군 병력의 휴전선 집중도 약화를 초래하여 전쟁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해병대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군대 중 하나인 해병대.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철모에 불이 붙었음에도 대응사격을 했던 그 강한 정신력의 해병대. 해병대는 그들의 악과 깡이라는 전통을 가혹한 내무생활에서가 아니라 더욱 강한 훈련에서 세워주기 바란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해병대가 기수 열외나 치졸한 가혹행위 등 사나이답지 못한 행위들로 그 명예를 더럽히지 말았으면 한다. 훈련은 한층 더 힘들게, 내무생활은 즐겁게 하여 더욱 돈독한 전우애로 무장된 군대를 만들어 다시 한번 무적 해병의 빛나는 전통을 세워주기 바란다.
  • [나와 통일] (24)셰벤 前 통독 방위사령관

    [나와 통일] (24)셰벤 前 통독 방위사령관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한반도의 군대는 어떻게 될까. 이는 남북한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민감한 문제다. 21년 전 통일을 이룬 독일 역시 같은 고민에 빠졌었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되는 형태에서 동독 인민군은 서독연방군 ‘분데스베어’로 축소, 통합됐고 이 과정에서 정신적, 심리적 혼란을 겪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분데스베어’의 베르너 폰 셰벤 예비역 중장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독 군인들이 갖고 있었던 사상은 통일과정에서 ‘제2의 피부’처럼 벗겨 없어졌다.”면서 “한국에서의 상황이 독일처럼 전개될 경우 북한이 굴욕감이나 공감대 부족을 느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통일부와 베를린 자유대의 ‘독일의 통일·통합정책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셰벤과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동·서독 군대 통합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있었고, 7월 1일 동·서독의 경제·금융 통합을 위한 협의가 있었다. 군 통합까지는 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4개 신탁국가 간의 2+4 협상이 있었다. 이 협상에서 서독 46만명, 동독 17만명을 통합해 독일연방군 ‘분데스베어’의 병력을 총 37만명으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독의 인민군은 서독의 군복을 입고 ‘분데스베어’의 지휘를 받게 됐다. 계속 군 복무를 할 것인지, 제대를 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개인의 결정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계획이나 청사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과정은 개별적 사안으로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 동독 인민군 해체 작업은 부대에 따라서 3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소요됐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의 날’을 기억하나. -‘통일의 날’ 이틀 전인 10월 1일 동독이 바르샤바 조약에서 탈퇴했고, 2일에는 동독 인민군이 해체됐다. ‘통일의 날’에는 동독군의 모든 주둔지와 병영에 독일 연방공화국의 국기가 게양됐다. 독일 전국에서 통일을 자축하는 축제가 열렸지만, 동·서독 군 통합 행사가 열렸던 슈트라우스베르크의 거리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동독) 군인들의 가슴 속에는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해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군 통합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장 큰 걸림돌은 동독 군인들의 경직된 복종체계였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동독군들의 지휘체계에는 진취성이나 유연성이 부족했다. 5만명에 이르는 동독의 직업군인들은 4년 안에 동독 군의 남은 잔재를 없애는 임무에 충실히 협조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적으로 여겨 왔던 서독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독 군인들은 동독 장교들 사이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모욕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들은 “독일인으로서 독일인에게”라는 원칙을 갖고 동독군에 다가갔으며, 지휘부 접수는 우호적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와 동맹군으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았다. →통일 후 ‘분데스베어’의 역할과 위상에 차이가 있다면. -냉전시대의 종식은 ‘분데스베어’의 역할과 임무를 10년 안에 바꿔 놓았다. ‘분데스베어’는 국토방어 임무와 함께 세계평화 유지군으로 변모했고 나토(NATO)군의 강력한 회원국으로 편입됐다. 만일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유럽이 어떻게 통합됐겠는가. 독일인들은 40년간 서로 떨어져 살았고, 서로 다른 두 군사문화가 한 영토에 존재했다. 구 서독에서는 서유럽과 북대서양의 정체성이 자라난 반면, 구 동독지역에서는 또 다른 정체성이 성장해 왔다. →한반도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독일에서 일어났던 과정과는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국민들이 오랜 분단 뒤에 하나가 되기 위한 굳은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관련국의 통일을 위한 정치적 행보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둘째, 관련 당사국들 간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당사국들은 상황이 ‘윈·윈’이라고 여겨질 때 정치적 합의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셋째, 군 핵심간부(엘리트)들은 정치적 합의를 따라야 한다. 이는 정치적 합의가 국가와 가족의 미래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단될 때 이뤄질 것이다. →동·서독군의 ‘이념의 골’이 깊었을 텐데. -나는 동독 출신 군인들에게 주입된 사상이 마치 ‘제2의 피부’처럼 벗겨 없어지고, 책임감 있는 군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과정을 지켜봤다. 북한군에 주입된 사상은 동독의 경우보다 더 큰 작용을 하겠지만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적 포장’ 혹은 가면 뒤에 숨겨진 인격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향후 한국에서의 상황이 독일처럼 전개될 경우, 체제의 붕괴라는 어려움 외에 굴욕 혹은 공감대 부족이라는 추가적 어려움이 더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공격과 같이 일방적인 적대적인 행위는 평화협상을 지연시킨다. 이 문제는 남북한과 중국, 미국 정부 간의 협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북대서양에서 일어난 핵 충돌의 역사를 보면 강대국 간의 시행착오로 인해 발생한 충돌을 조용히 해결한 여러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남북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더욱 넓힐 수 있도록 인도돼야 하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안내돼야 한다. 남한은 남북한 국민 모두가 한 국가의 일원이라는 인식과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셰벤 예비역 중장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동독 인민군의 일부를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동부연방군 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1991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동부지역 방위사령부 및 군단 사령관을 맡았다. 중장으로 예편한 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ADAC(독일자동차클럽) 부회장을 지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명예연구원을 지내기도 한 셰벤은 ‘독일 통일 과정과 한국에의 교훈’이라는 프로젝트의 자문위원회에도 참여했다.
  • [Weekly Health Issue] 간경변

    [Weekly Health Issue] 간경변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간경화’라는 말이 마치 감기처럼 회자된 적이 있었다. 취약한 보건의식 등 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건강을 도외시했던 데다 치열해지는 경쟁사회는 간을 돌볼 여유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간염과 술, 과로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 국민들의 간은 병들어 갔다. 그 수렁에서 벗어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상황은 뚜렷하게 개선되는 추이를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흔히 간경화라고 부르는 간경변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간을 혹사하는 습관이 여전한 데다 B형에 이어 이제는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창궐할 태세다. 한때 ‘국민병’으로 불렸고, 지금도 수많은 환자를 고통 속에 신음하게 하는 간경변에 대해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로부터 듣는다. ●간경변이란 어떤 질환인가. 다양한 원인으로 간이 장기간 반복적인 손상을 받으면 어느 순간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간조직이 섬유화하면서 굳어져 간다. 이 상태를 간경변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간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복수·출혈·혼수 등의 합병증을 초래, 종국에는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간경변은 정상 회복이 어려운 불치 상태로 알지만 간이 늙어 간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간경변이 발생하는 경위를 설명해 달라. 간염 등으로 간이 손상되더라도 건강한 상태에서는 간세포가 재생되지만 이런 손상이 장기간 반복되면 간에 치명적인 흉터가 남는데, 이를 섬유화라고 한다. 아울러 재생결절이 같이 생기면서 점차 간이 굳어져 간다. 간 표면이 우둘투둘하게 변하는 이 상태에서는 정상 간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국내 유병률과 발병 추이의 특이성은. 암을 뺀 국내 40대 남성의 사망 원인으로는 간질환이 1위인데, 이는 대부분 간경변과 관련이 있다. 주목할 점은 여성보다 남성, 특히 중년 남성의 발병 빈도가 높은 점인데, 이는 술과 과로 외에 모자감염에 의한 만성 B형 간염이 주요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을 잘 관리해 발병률과 사망률이 감소 추세지만 다른 원인이 있어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 ●간경변 치료의 최근 추이를 설명해 달라. 과거에는 간경변이 한번 진행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불치 개념’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간경변도 잘 관리하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확실히 희망적이다. 게다가 간의 단단한 정도를 측정하는 간스캔을 활용해 초기 간경변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실제로 알코올성 간경변의 경우 금주하면 간경도가 호전되며, B·C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도 잘 치료하면 크게 호전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간경변의 원인을 유형별로 짚어 달라. 국내 간경변은 70% 이상이 만성 B형 바이러스성 간염에 의한 만성간염이다. 이어 10∼15%는 C형 바이러스성 간염, 10%가량이 술로 인한 간경변이다. 나머지는 자가면역성 간염이나 선천성 대사질환, 약물로 인한 독성간염 등이며,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문제는 술이다. 술로 인한 간경변의 빈도는 실제로 훨씬 높은데, 이는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을 가져 간경변으로 진행된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습관적인 음주를 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증상은 어떻고, 자각증상은 무엇인가. 초기에는 증상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간경변이 진행되어 간기능이 떨어지면 황달과 복수로 인한 복부팽만, 정강이 부위의 부종, 손바닥이 붉게 변하는 수장홍반, 목 부위에 거미 모양의 혈관종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밖에 호르몬대사에 장애가 와 남성의 젖가슴이 여성처럼 부풀거나 젖몽우리가 생기기도 하며, 고환이 위축되는 경우도 있다. 합병증으로 위나 식도에 정맥류가 생겨 피를 토하거나 혈변을 볼 수도 있고, 마치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혼미한 경우도 있는데 이를 간성혼수라고 한다. ●검사 및 진단법을 소개해 달라. 문진을 통해 간경변이 생길 만한 습관성 음주나 간염 병력을 가진 경우 진찰 소견을 통해 간경변을 의심할 수 있으며, 간이 단단하게 만져지거나 비장이 커진 경우 등의 진찰소견이 나타나면 임상적으로는 간경변으로 본다. 검사법으로는 혈액을 통한 간기능검사에서 간수치를 확인하면 된다. 간염과 달리 간경변은 AST가 ALT보다 높게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또 복부 초음파검사에서 간경변 의심 소견이 나오면 내시경검사로 식도정맥류와 같은 합병증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초음파로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는 CT(컴퓨터 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로 확인한다. 그러나 초기 간경변은 간기능검사나 영상검사상 이상 소견이 잘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 최근에는 간의 단단한 정도를 측정하는 간섬유화스캔을 이용하기도 하며, 최종 확진은 간조직생검으로 한다. 그러나 이는 임상적으로 판단이 애매할 때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치료 및 이에 따른 예후와 후유증은. 치료는 간경변의 1차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며, 원인이 확인되면 악화를 막기 위해 원인 제거에 중점을 둔다. 술로 인한 알코올성 간경변은 금주가 우선이며, 바이러스성 간염이 원인이면 바이러스의 활동성 여부를 판단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한다. 그러나 비활동성인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가 별 도움이 안 된다. 자가면역성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은 면역억제제를 투여하여 진행을 막기도 한다. 이미 간경변이 진행된 경우에는 합병증 확인 및 예방에 주력한다. 특히 이 경우 문맥(장에서 간으로 흐르는 피)에 문제가 생겨 문맥압 항진증이 생기며, 이로 인해 상부위장관 정맥류나 비장 비대, 복수가 생기기 쉬운데, 이런 상황이라면 합병증 예방을 위해 문맥압을 낮추는 약을 투여하거나 이뇨제를 사용해 복수를 조절한다. 문맥압 항진증이 합병증으로 온 경우 식도·위정맥류 파열로 사망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내시경으로 정맥류 결찰술을 시행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뇨제로 조절되지 않는 복수는 주사기로 제거하거나 알부민을 투여해 조절하기도 한다. 이때 세균성 복막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간성혼수의 경우에는 단백질 섭취를 제한하면서 혼수 치료제를 투여한다. 그러나 이런 합병증이 온 경우 대체로 예후가 나쁜 편이므로 나이 등을 감안해 간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18세 조기입영 차단

    김영후 병무청장은 7일 해병대 2사단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의 후속 조치로 “18세 자원의 현역 입영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청장은 오전 국회 국방위 긴급회의에 출석해 민주당 안규백 의원으로부터 “해병대는 18세부터 지원이 가능한데, 이때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통제하기 어렵다. 입대 나이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받자 이같이 답변했다. 김 청장은 “본래 20세부터 정상적으로 징병하지만, 병력이 부족할 때는 18~19세 자원을 조기 입영시켜 충족시켜 왔다.”면서 “앞으로 각군 참모총장과 상의해 19세부터 입영시키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자원 부족으로 충족된 19세 이하 지원병은 6만여명에 이른다. 이번에 사고를 저지른 김모 상병은 지난해 7월 18세의 나이에 해병대에 지원 입대해 군대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 나이 많은 후임병에게 무시를 당하는 등 ‘기수열외’를 받아 앙심을 품은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다. 한편 국방부 감사관실이 2009년부터 올해 3월 25일까지 해병 1, 2사단의 병원진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구타로 의심될 만한 고막 천공 등의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943명에 달했다. 이를 토대로 병영문화가 개선됐다면 이번 총격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방부는 입영 대상자에 대한 인성검사를 강화하고 결함이 있는 자원은 입영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국방위에 제출한 현안보고서에서 밝혔다.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국방위에 출석해 “군에서 관리하는 관심사병이 (전체의) 5% 정도”라면서 “병무청에서부터 인성검사를 하고, 해병대에서 거르고, 군 복무 전에 또 거르고 해서 3단계 정도로 거르겠다.”고 밝혔다. 군은 우수한 해병 간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원율이 저조한 해병대 학사장교를 학군장교로 전환하기로 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시리아 사상최대 30만명 시위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석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각)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부 하마 지역에서는 30만명이 시내 중심부 중앙광장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시위 현장과 터키의 접경 지역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 이날 하루 동안에만 28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현지 지역조정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하마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아마드 칼레드 압델 아지즈 하마 지사를 해임했다. 전국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각각 구성해 하마 지역에 집결하면서 시위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AP는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정오 금요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현지 관계자들은 알아사드 정권이 터키와의 국경 지대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터키로 넘어간 시리아 난민들이 세를 불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알 아사드 정권의 시간이 다 돼 가고 있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시리아, 사상 최대 규모 시위,하마 주지사 해임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석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각)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부 하마지역에서는 30만명이 시내 중심부 중앙광장에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현지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시위 현장과 터키와의 접경지역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 이날 하루 동안에만 28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현지 지역조정위원회 대변인은 말했다. 이날 하마지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바샤드 알 아사드 대통령은 아마드 칼레드 압델 아지즈 하마 지사를 해임했다.  전국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를 각각 구성해 하마 지역에 집결하면서 시위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AP는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이날 정오 금요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현지 관계자들은 아사드 정권이 터키와의 국경지대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이는 터키로 넘어간 시리아 난민들이 세를 불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알 아사드 정권의 시간이 다 돼가고 있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공산당을 이끈 10명의 주역

    ●천두수(陳獨秀·1879~1942) 공산당 초기 지도자. 청년 시절 반청(反淸) 활동에 몸담고, 5·4운동 후에는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 베이징대 교수 시절 ‘매주평론’ 등 사상지 발간. 상하이 지역 공산당 조직 결성. 제1차 당대회에 불참했지만 초대 중앙국 서기에 선임되는 등 5차 때까지 중앙국 서기, 중앙국 집행위원장, 총서기 등 역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두 말할 필요 없는 중국 공산당 역대 최고지도자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주역. 자신이 결성한 후난성 공산당 조직을 대표해 제1차 당대회 참석.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며 무장봉기 주도. 대장정 도중인 1935년 1월 ‘준이(尊義)회의’에서 당권 장악. 신중국 건국 후 당과 국가의 전권을 장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대오류에도 불구하고, 건국의 아버지로 신격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혁명운동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마오쩌둥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영원한 2인자. 건국 후 초대 총리(외교부장 겸임)를 맡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역임. 탁월한 정치적, 외교적 수완과 함께 고도의 청렴성으로 사망 후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총리로 추앙받음. ●주더(朱德·1886~1976)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독일 유학 중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중국 공산당 가입. 소련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민당군에 합류. 1928년 병력 1만명과 함께 마오쩌둥의 징강산 해방구에 가담. 제2차 국공합작 때는 8로군 총사령관으로 항일전쟁을 지휘. 건국 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을 역임. 문화대혁명 때 물러났다가 1971년 복권.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 6·25전쟁에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한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1928년 입당해 항일전쟁 때 부총사령관으로 주더 총사령관을 보필. 건국 후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등을 역임하며 군 현대화 추진.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 등을 지적하다 실권.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중화인민공화국 제2세대 지도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두 차례 실권됐다가 복권된 ‘오뚜기’. 항일전쟁 및 내전 시기에는 정치공작, 건국 후에는 국정에 참여.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해 마오쩌둥 추종자들과 대립. 마오쩌둥 사후 화궈펑(華國鋒)과의 권력투쟁 끝에 실권 장악. 개혁·개방 선도하며 중국의 발전 견인.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개혁파 지도자. 1989년 4월 사망하자 청년학생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여들면서 ‘톈안먼 사태’ 촉발. 1928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한 뒤 홍군의 일원으로 대장정 참여. 건국 후 공청단 제1서기 등으로 공청단 업무 주관. 1980년 2월 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개혁 및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1987년 대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 등으로 실각. ●장쩌민(江澤民·1926~ ) 제3세대 지도자. 상하이교통대 재학 시절인 1946년 입당. 건국 후 공장 관리자 및 공업연구소 책임자 등으로 일하다 문화대혁명 때 공직에서 축출. 복권된 뒤에는 상하이시 당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핵심인물로 부상. 1989년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실각하자 총서기로 선출됨. 1990년 4월 덩샤오핑의 마지막 공직이었던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전권 장악. 재임 중 한·중 수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성사. ●후진타오(胡錦濤·1942~ ) 제4세대 지도자.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대부.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졸업 후 학교에 남아 정치보도원으로 후배들의 정치교육 담당. 문화대혁명 때 간쑤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하방됐지만 승진을 거듭해 덩샤오핑에 의해 4세대 지도자로 낙점돼 1992년 최연소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후 2002년 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장악. ‘과학발전관’을 주창. ●시진핑(習近平·1953~ )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5세대 핵심지도자.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시중쉰(習仲勳)으로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들의 자제그룹) 계열.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의 실각 등으로 중학교 재학 중 산시성 오지로 하방. 10번이나 입당이 거부될 정도로 시련을 겪었으나 경력을 쌓고, 저장성 당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에 오른 뒤 같은 해 제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듬해 국가부주석, 지난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후계 입지 공고화.
  • MC몽 현역입대 불가

    MC몽 현역입대 불가

    가수 MC몽(36·본명 신동현)의 현역병 입대가 불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법제처는 28일 제24회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열고 MC몽의 입영 가능 여부에 대한 병무청의 유권해석 의뢰에 대해 “질병을 이유로 제2국민역(면제) 처분을 받은 자가 질병 치유 뒤 현역병 입영을 원하더라도 병역법상 연령(31) 초과로 입영 의무가 면제돼 제2국민역에 편입된 경우에는 현역병 입영이 가능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렸다. 법제처는 “징병제에서는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입법자가 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복무 의무를 지게 된다.”면서 “현역과 제2국민역 등 역종을 선택해 복무할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또 “입영 의무 연령을 31세로 제한한 옛 병역법 규정(현행 36세)은 효율적인 병력 관리 등 공익적 차원에서 연령 기준을 획일적으로 규정한 것”이라면서 “면제의 효과를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이어 “병역의무는 40세까지로 한다는 규정이 있어 40세 전에 지원하면 현역 입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예비역, 제2국민역을 포함한 모든 병역의무가 40세에 종료된다는 규정이지 입영 의무 등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MC몽은 생니를 뽑아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로 기소돼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연기한 데 대해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MC몽은 법제처 해석과 관련, “군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김정일 “정보전부대는 내 배짱이고 예비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우리나라 대형 사이트들에 대해 사이버테러를 일으킨 북한 정보전 부대에 대해 “핵무기와 함께 나의 배짱이고 예비대”라고 격찬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NK지식인연대 김홍광 대표는 29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군사학회와 국방소프트웨어 산학연합회가 주최하는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과 한국의 사이버전 태세’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발표할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대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09년 중순 북한군 장령(장성) 간부 강연회에서 정찰국 121소의 해킹 업적을 보고받으며 “현대전쟁은 기름(석유)전쟁, 알(탄약)전쟁으로부터 정보전쟁으로 바뀌었다.”면서 “단 한명도 다치지 않고 제국주의를 한 방에 궁지에 몰아넣었다. 정보전부대는 핵무기와 함께 나의 배짱이고 예비대”라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북한군이 작년 정찰총국 예하의 사이버부대인 121소를 ‘121국’으로 승격하고 사이버전 병력을 500명에서 지난해 이후 3000여명으로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美 오바마 아프간 출구전략 발표 기다렸다는듯 英·佛·獨 “우리도 아프간 철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3만여명을 내년 여름까지 철군시키겠다고 밝힌 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도 잇달아 자국군 철군 의사를 밝혔다.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인기 없는 전쟁’에서 하루빨리 발을 빼겠다는 취지다. ●佛·獨 “연내 철수작업 착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올해 안에 수백명의 우리 군을 아프간에서 철군시키겠다.”고 밝혔다고 미 ABC방송이 보도했다. 현재 프랑스는 카불 인근 카피샤 지역 등에 4000여명의 병력을 파병해 운용 중이다. 특히 프랑스 특공부대원들은 최근 탈레반 무장세력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는 등 아프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 내년 재선에 나설 사르코지 대통령이 철군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을 사로잡겠으려는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英 “2015년까지 9500명 철군 완료”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아프간에 보낸 영국 정부도 이날 “올해 여름부터 시작해 2014년까지 전투병 철군을 완료하고 2015년까지 현재 파병된 9500명의 철군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아프간에 군 4900명을 배치하고 있는 독일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도 “북부 아프간에 주둔 중인 독일군을 올해 말부터 철군시키겠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백악관 “인기없는 전쟁 끝내라” 국방부 “치안 고려 해 신중하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전 철수가 다음 달 시작되는 가운데 철군 속도와 규모 등을 두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뜨거운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철군 개시 초읽기 속에 백악관 보좌진들은 “인기 없는 전쟁을 빨리 끝내야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며 정치적 논리를 앞세우는 반면 군 관료들은 “아프간 치안 문제를 고려해 철군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주둔 미군의 세부 철수 계획을 22일(현지시간) 발표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이 21일 전했다. 이 계획에는 연도별 철군 규모와 향후 일정 등이 상세히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철군 속도와 규모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계획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미군이 최초 철군 인원을 얼마로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10만명의 미 병력 중 2009년 증파됐던 3만명이 우선 철군 대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손에 쥔 카드 중 가장 급진적인 안은 ‘12개월 내 3만명 전원 철군’이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 등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옵션으로 ‘병력 상당수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여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렸다. 반면 국방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전투 병력은 남겨 둬야 한다.”는 뜻을 고집한다. 아프간 무장세력이 치안 공백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방부는 올해 여단급 규모인 5000명만 아프간 전장에서 뺀 뒤 올겨울 5000명을 철군시키고 나머지 2만명은 내년까지 아프간에 남겨 뒀다가 철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바마가 어떤 카드를 선택하든 미군의 아프간 철군은 반전 여론에 떠밀려 계속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0)급성 수분 중독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0)급성 수분 중독

    2009년 여름, 한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 입원 중이던 40대 남성 환자가 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주일 전 사회복지시설에서 이상행동을 보여 이송돼 온 K(41)씨였다.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가슴과 배, 등, 허리까지 여러 곳에 멍 자국도 보였다. 담당 검사는 병원 내에서 발생한 구타 등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고 보고 부검 결정을 내렸다. 부검은 다음 날 바로 시행됐다. 팔꿈치에서 무릎관절까지 전신이 굳어 있었다. 적혈구가 몰려 생기는 암적색 시반(屍班)이 시신의 등에 나타나 있었다. 멍 자국 아래에는 피하출혈도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었다. K씨의 주요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죽음의 원인들이 하나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뇌와 허파가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었다. 위, 간, 창자 등 내장과 복부의 막과 벽도 마찬가지였다. 부종(浮腫)이 있었다. 배 안에는 복수액도 가득했다. 복수와 부종액을 합해 3ℓ가 나왔다. 거의 익사체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콩팥도 요로도 부어 있었다. 유리체액(안구를 채우고 있는 투명한 물질)에 대한 검사 결과 K씨의 나트륨 수치는 102mEq/ℓ에 불과했다. 나트륨 수치가 120mEq/ℓ 밑으로 떨어지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체내 염분량이 지나칠 정도로 줄어 있었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종적으로 K씨의 사인을 ‘급성 수분 중독’으로 결론내렸다.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을 먹는 바람에 물 중독이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 한 입원 환자는 경찰에서 “K씨가 화장실에서 바가지로 많은 양의 물을 마셔 이를 만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공포… 물 중독 사람이 스스로 마신 물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74년이다. 실제 정신질환자 중 일부는 끝없이 갈증이 생겨 물을 들이켜는 증세를 보인다. ‘다음증’(多飮症)이라고 부르는데 한 통계에 따르면 만성 정신질환자의 6~17%가 이 증세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신병력이 없는 사람은 물 중독으로부터 안전할까. 아래 사례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 준다. 2007년 1일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한 지역 방송국. ‘아침의 광란’이란 프로그램의 녹화가 한창인 가운데 세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스트레인지(28)가 힘겹게 마지막 물잔을 들이켰다. ‘물 마시고 소변 참기’라는 엽기적인 게임에 참가한 상황이었다. 3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고 15분마다 제공되는 물을 모두 마셔냈다. 1등을 차지하면 가정용 게임기 ‘위’를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7.5ℓ의 물을 마셨지만 안타깝게 최종 성적은 18명 중 2등이었다. 게임이 끝난 순간 그녀는 쓰러졌다.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연신 구토를 했다. 결국 그녀는 그날 자기 집에서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사인은 물 중독사였다. ●급하게 마신 물… 부정맥에 뇌부종 불러 물을 많이 마시면 죽음에 이르는 이유가 뭘까. 신체에 다량의 물이 한꺼번에 유입되면 우리 몸 체액 속에선 나트륨 등의 전해질 농도가 급격하게 옅어진다. 그러면 체액과 정상적인 세포들 간 삼투압 차로 ‘수분의 이동’이 일어난다. 옅은 농도의 체액이 모세혈관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때 우리 몸에 부종이 생기는데 흔히 ‘물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부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경우다. 부종은 위치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부위가 뇌다. 뇌는 폐쇄된 두개골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부풀어오르는 만큼 뇌압이 증가하게 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머리가 아픈 정도지만 많이 부으면 혼수상태나 호흡곤란 상태에 빠지고 결국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전해질 불균형은 치명적인 심장부정맥(심장박동이 분당 60∼80회의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고르지 않게 뛰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 중독 때문은 아니지만 지난달 13일 경기 도중 쓰러진 K리그 신영록(24·제주유나이티드) 선수도 전해질 불균형으로 인한 부정맥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물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물 먹기 대회를 마치고 사망한 스트레인지처럼 7ℓ 이상을 마시면 죽게 되는 걸까. 정답은 없다. 체질이나 몸집, 몸 상태 등에 따라 다르다. 스트레인지가 나갔던 물 먹기 대회만 해도 다른 참가자들은 포만감을 호소했을 뿐 이상이 없었다. 어쨌거나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국과원 관계자는 “요즘처럼 더울 때 심한 운동을 하고 나서 한번에 많은 물을 들이켜는 것은 건강에 안 좋다.”면서 “이미 땀으로 전해질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수분까지 다량 들어오면 혈중 나트륨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되도록 시간당 1ℓ 이상의 물은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물 대신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도 물 중독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백선엽 “깨소금까지 준비한 북한군 6월 25일 도발한 것은”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를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 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美, 알카에다는 죄고 탈레반은 살린다

    미국의 대테러 전략이 투트랙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중동 전역에 포진한 테러 집단 알카에다는 궤멸시키되 아프가니스탄의 전 정권인 탈레반 세력은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관련,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다른 나라의 협조를 받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회담을 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미국은 아프간을 통치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을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 침공해 권력에서 내쫓았다. 그런 탈레반과 협상을 도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프간 국민 상당수의 지지를 받는 탈레반을 궤멸시키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탈레반을 아프간 정치의 제도권으로 유인하거나 적어도 휴전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할 경우 미국은 아프간 철군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한편 탈레반을 극렬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와 분리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게이츠 장관은 이날 CNN에 출연해 미 국무부가 탈레반 측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확인하면서 “하지만 이 접촉은 아직은 사전 준비 단계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가 탈레반과 연결을 시도했고, 접촉이 시작된 지는 몇 주 정도 됐다고 밝혔다. 게이츠 장관의 이 발언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전날 미국이 아프간전의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려고 탈레반과 회담 중이라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게이츠 장관은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방이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대표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탈레반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평화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번 겨울까지는 진정한 화해의 협상이 별 진전을 볼 것 같지는 않다.”는 말로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미국은 지난해 탈레반 지도부를 자처하는 인물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 인물이 가짜로 드러나 해프닝에 그쳤고 아프간 정부가 접촉한 탈레반 조직원 역시 진위 여부가 불분명해 번번이 수포로 끝났다. 게이츠 장관은 또 최근 아프간 전황도 좋은 상태여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철군 계획을 짜는 데도 운신의 폭이 커졌다고 했다. 게이츠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당수 병력이 아프간에 남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게이츠 장관은 알카에다가 오사마 빈라덴 사망 후 전력이 현저하게 약화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지역 테러 그룹으로 쪼개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최근 살해된 알카에다의 핵심 인물이 빈라덴만은 아니다.”라고 말해, 알카에다 지도부 상당수가 제거됐음을 시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물마시고 소변참기 하던 20대 여성 급사한 이유

    물마시고 소변참기 하던 20대 여성 급사한 이유

    2009년 여름, 한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 입원 중이던 40대 남성 환자가 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1주일 전 사회복지시설에서 이상행동을 보여 이송돼 온 K(41)씨였다.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가슴과 배, 등, 허리까지 여러 곳에 멍 자국도 보였다. 담당 검사는 정신질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구타 등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고 보고 부검 결정을 내렸다. 부검은 다음 날 바로 시행됐다. 팔꿈치에서 무릎관절까지 전신이 굳어 있었다. 적혈구가 몰려 생기는 암적색 시반(屍班)이 시신의 등에 나타나 있었다. 멍 자국 아래에는 피하출혈도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었다. K씨의 주요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죽음의 원인들이 하나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K씨의 뇌와 허파가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었다. 위, 간, 창자 등 내장과 복부의 막과 벽도 마찬가지였다. 부종(浮腫)이 있었다. 배 안에는 복수액도 가득했다. 복수와 부종액을 합해 3ℓ가 나왔다. 거의 익사체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콩팥도 요로도 부어 있었다. 유리체액(안구를 채우고 있는 투명한 물질)에 대한 검사 결과 K씨의 나트륨 수치는 102mEq/ℓ에 불과했다. 나트륨 수치가 120mEq/ℓ 밑으로 떨어지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체내 염분량이 지나칠 정도로 줄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종적으로 K씨의 사인을 ‘급성 수분 중독’으로 결론내렸다.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을 먹는 바람에 물 중독이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 한 입원 환자는 경찰에서 “K씨가 화장실에서 바가지로 많은 양의 물을 마셔 이를 만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공포?물 중독 사람이 스스로 마신 물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74년이다. 실제 정신질환자 중 일부는 끝없이 갈증이 생겨 물을 들이켜는 증세가 나타난다. ‘다음증’(多飮症)이라고 부르는데 한 통계에 따르면 만성 정신질환자의 6~17%가 이 증세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신병력이 없는 사람은 물 중독으로부터 안전할까. 아래 사례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 준다. 2007년 1일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한 지역 방송국. ‘아침의 광란’이란 프로그램의 녹화가 한창인 가운데 세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스트레인지(28)가 힘겹게 마지막 물잔을 들이켰다. ‘물 마시고 소변 참기’라는 엽기적인 게임에 참가한 상황이었다. 3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고 15분마다 제공되는 물을 모두 마셔냈다. 1등을 차지하면 가정용 게임기 ‘위’를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7.5ℓ의 물을 마셨지만 안타깝게 최종 성적은 18명 중 2등이었다. 게임이 끝난 순간 그녀는 쓰러졌다.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연신 구토를 했다. 결국 그녀는 그날 자기 집에서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사인은 물 중독사였다.   급하게 마신 물? 부정맥에 뇌부종 불러 물을 많이 마시면 죽음에 이르는 이유가 뭘까. 신체에 다량의 물이 한꺼번에 유입되면 우리 몸 체액 속에서 나트륨 등의 전해질 농도가 급격하게 옅어진다. 그러면 체액과 정상적인 세포들 간 삼투압 차로 ‘수분의 이동’이 일어난다. 옅은 농도의 체액이 모세혈관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때 우리 몸에 부종이 생기는데 흔히 ‘물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부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경우다. 부종은 위치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부위가 뇌다. 뇌는 폐쇄된 두개골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부풀어오르는 만큼 뇌압이 증가하게 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머리가 아픈 정도지만 많이 부으면 혼수상태나 호흡곤란 상태에 빠지고 결국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전해질 불균형은 치명적인 심장부정맥(심장박동이 분당 60∼80회의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고르지 않게 뛰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 중독 때문은 아니지만 지난달 13일 경기 도중 쓰러진 K리그 신영록(24·제주유나이티드) 선수도 전해질 불균형으로 인한 부정맥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물의 양의 어느 정도일까. 물 먹기 대회를 마치고 사망한 스트레인지처럼 7.5ℓ 이상을 마시면 죽게 되는 걸까. 정답은 없다. 체질이나 몸집, 몸 상태 등에 따라 다르다. 스트레인지가 나갔던 물 먹기 대회만 해도 다른 참가자들은 포만감을 호소했을 뿐 이상이 없었다. 어쨌거나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국과원 관계자는 “요즘처럼 더울 때 심한 운동을 하고 나서 한번에 많은 물을 들이켜는 것은 건강에 안 좋다.”면서 “이미 땀으로 전해질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수분까지 다량 들어오면 혈중 나트륨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되도록 시간당 1ℓ 이상의 물은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물 대신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도 물 중독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시리아 반정부세력 국가위원회 출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지휘할 국가위원회를 출범시킨 가운데 알아사드 대통령은 바트당의 집권 종식 등을 포함한 개헌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대화’를 제안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그러나 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이행할 수 없다며 ‘선(先) 시위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반정부 세력은 병력 철수가 우선이라며 평행선을 달렸다. 반정부 세력이 ‘대화’ 대신 ‘투쟁’을 선언한 직후인 20일(현지시간) 알아사드 대통령은 다마스커스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위한 대화를 제의했다. 알아사드는 대화 결과에 따라 반정 세력이 요구한 조기 총선 및 집권 바트당의 집권 종식 가능성 등을 시사했지만 이는 시위중단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정부 세력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정작 주요 도시들에서의 군병력 철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현사태에 대한 군사적 해결 여지를 남겨 놓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19일 자밀 사이브 반정부세력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안팎의 모든 공동체와 정치세력을 규합해 혁명을 이끌 국가위원회의 창립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가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야당세력을 결집해 혁명을 지원하고 국제사회로부터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다. 사이브 대변인은 “리비아의 경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유혈진압하자 국제사회가 재빠르게 카다피 퇴진을 촉구했으나 시리아에서는 지금까지 1500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체포됐지만 국제사회가 침묵하고 있다.”며 세력 응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낚시왕’ 에이브람스의 마법…스필버그에게 바친 오마주

    ‘낚시왕’ 에이브람스의 마법…스필버그에게 바친 오마주

    J J 에이브람스는 미국 할리우드의 알아주는 이야기꾼이다. TV시리즈 ‘앨리어스’(2001~2006년, 연출·제작·각본) ‘로스트’(2004~2009년, 제작·각본) ‘프린지’(2008~2009년, 제작·각본)는 물론, 영화 ‘아마겟돈’(1998년, 각본) ‘미션 임파서블 3’(2006년, 연출·각본) ‘클로버필드’(2008년, 제작)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년, 연출·제작)까지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슈퍼8’ 카메라로 찍은 좀비영화 그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을 잡는다고 했을 때, 영화팬의 기대치가 한껏 치솟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올여름 극장가의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슈퍼에이트’가 16일 개봉했다. 1980년대 스필버그 사단이 만들었던 ‘E.T.’(1982년), ‘구니스’(1985년)의 정서를 ‘클로버필드’의 감각으로 버무려 재창조했다. 에이브람스가 제작자로 나선 스필버그에게 바치는 오마주(헌사·獻辭)이기도 하다. 그의 장기는 여전하다. ‘로스트’에서 검은 연기로 괴물의 존재를 은근하게 흘리고, ‘클로버필드’에서는 실루엣만 보여주다 끝낸 탓에 네티즌들은 그를 ‘떡밥의 천재’ ‘낚시의 제왕’으로 부른다. 에이브람스는 이번에도 중반까지는 부지런히 떡밥을 흘린다. 영화 초반에는 괴물과 마주쳐 경악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구겨진 순찰차를 통해 어렴풋이 괴물의 정체를 짐작하게만 할 뿐이다. 약 올리듯 조금씩 몸뚱이 일부를 드러내 관객을 애달프게 하더니 영화가 시작한 지 80분이 흐르고서야 전신을 드러낸다. 영화 무대는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릴리안. 엄마를 사고로 잃은 조이(조엘 코트니·큰사진 오른쪽)는 감독 지망생인 찰스(라일리 그리피스)의 영화에 특수효과 겸 분장 담당으로 합류한다. ‘슈퍼 8(㎜)’ 카메라로 찍는 좀비영화다. ●80년대 ‘E·T’ ‘구니스’ 정서 재창조 앨리스(엘르 패닝·작은사진 왼쪽·13) 등 친구들과 밤에 몰래 기차역에서 촬영하던 중 미 공군 화물열차가 갑자기 선로에 뛰어든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열차에서 빠져나온 ‘그것’은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납치하는 한편 자동차 부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것’을 회수하려고 군병력이 투입되면서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엘르 패닝 등 아역 연기 돋보여 미국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언론들은 ‘클로버필드가 E.T.와 만났을 때’라고 평했다. 영화깨나 본 관객이라면 더 많은 영화가 떠오를지 모르겠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스탠 바이 미’(1986)를 생각할 테고, 동네 친구들의 아찔한 모험담은 ‘구니스’와 겹쳐진다. 외계생명체와의 공생 혹은 화해의 메시지는 ‘E.T.’와 ‘미지와의 조우’(1977)를 떠올리게 한다. 아역배우 발굴에 빼어난 선구안을 지닌 스필버그와 에이브람스는 이번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꼬마’들을 캐스팅했다. 다코타 패닝(17)의 동생 엘르는 언니 못지않은 연기력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도도한 매력을 드러낸다. 깜찍함의 종결자였던 언니와 달리 엘르는 차가워 보이지만 넋 놓고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성숙함을 지녔다. 엄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지만, 앨리스의 등장으로 설레는 주인공 조를 맡은 조엘 코트니의 눈빛도 심상치 않다. 북미에서는 지난 10일 먼저 개봉했다. 10~12일 3968만 달러를 벌어들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쿵푸팬더2’가 3주째 박스오피스를 평정한 한국에서 어떤 성적표를 거둘지 궁금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베트남, 32년만에 ‘징집령’ VS 중국, 해병대 상륙훈련…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긴장고조

    베트남이 1979년 중국과의 국경전쟁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징병 명령’을 발동했다. “응 웬 떤중 총리가 군부의 요청으로 지난 13일 전시 징병 기준을 정한 징병 명령에 서명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15일 일제히 보도했다. 오는 8월1일부터 발효되는 징병령은 전시에 징병에서 제외되는 주요 국가기관 공무원, 독자 등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당장 전면적인 동원령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의 징병령 발동은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시사(西沙·파라셀)군도와 난사(南沙·스프래틀리)군도에서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마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예비적 조치로 징병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32년 만의 첫 발동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의 긴박감이 엿보인다. 중국과의 대결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주문하고 있는 자국내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화답’ 성격도 짙다. 응 웬 떤중 총리 스스로 여러 차례 “베트남의 모든 정당, 국민, 군대는 우리 해역의 주권을 보위하겠다는 가장 강한 결심을 표출해 달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2009년 발표한 베트남 국방백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현역 군인은 45만명, 예비역은 500여만명에 이른다.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강행하고, 징병령을 발동한 데 이어 다음 달 미국과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키로 하는 등 강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중국 역시 한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충돌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이달 초부터 남중국해의 한 섬에서 해병대 여단 병력이 상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베트남과의 충돌에 대비한 훈련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중국 해병대의 남중국해 훈련 사실은 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공개함으로써 베트남 등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해군 해병대는 약 2000㎞를 이동, 남중국해의 한 섬에 주둔한 채 낙하 훈련, 상륙 훈련, 야간침투 훈련 등 실전 훈련을 전개하고 있다. 여단장 천웨이둥(陳爲東)은 해방군보와의 인터뷰에서 “20여개 항목의 각종 해병대 실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해안 상륙, 해안 교두보 확보 등의 작전능력이 크게 배양됐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분쟁은 이달 말로 예정된 필리핀과 미국의 합동훈련, 다음 달 실시될 베트남과 미국의 합동훈련, 8월에 시작되는 중국 시추플랜트의 남중국해 작업개시 등 ‘악재’가 즐비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국방에 여성 참여 논의 활발/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옴부즈맨 칼럼] 국방에 여성 참여 논의 활발/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입대하여 끝없는 긴장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병사들의 자조 섞인 이 말은 30년 전에도, 2011년 현재에도 여전히 빛나는 젊은 시절을 나라를 위해 내놓은 청춘들을 위로하고 있다. 13일 자 ‘군 훈련소 신병입소자 뇌수막염 예방접종 검토’ 제목의 기사에서 국방부가 모든 신병입소자에게 예방백신 접종 추진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최근 군 의료진의 오진과 늑장 대처로 뇌수막염 장병 사망사건이 잇따르자 뒤늦게 군이 내놓은 해결책이다. 세상이 변하고 또 변하여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어도 군은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군 의료 개혁은 시급한 사안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수많은 장병과 그들의 가족이 안전하고 건강한 군대라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 군의 사기를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005년에도 이번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 전 국민적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군 의료에 대한 많은 개선점이 논의되고 추진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용두사미로 끝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군 의료체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전문 의료 인력의 부족은 계속해서 군 의료체계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선진국이 별도의 군 의료 인력 양성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 기사에서는 국방부와 육군이 지난주 군 의료체계 개선 후속 조치를 위한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일반대학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남학생들을 군 장교로 복무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방부에서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군 가산점제와 여성 ROTC 제도 시행이 군을 둘러싼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현역 군인의 사기를 높이고 제대 군인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보상해 줄 것인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국가는 이들이 군 복무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최선의 정책을 시행할 의무가 있다. 1999년 12월 위헌결정을 통해 군 가산점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부활이 논의됐다. 그러나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군 가산점제보다는 ‘남녀가 공평하게 국방의 의무를 분담하고 제대군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발굴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여성 ROTC 제도가 시행되면서 여성의 국방 의무에 대한 추상적 담론을 넘은 구체적인 논의들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여성 ROTC 제도는 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여성들에게 군 복무 기회를 확대하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보다 우수한 군 인력 자원으로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앞으로 군에서 여성의 역할은 점차 확대될 것이 분명하며, 이는 그만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적었던 군으로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병력자원 수급 차원에서도 여성자원의 활용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국방부가 일반대학 간호학과의 남학생들만을 대상으로 군 장교 복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군 인력의 효율적인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직도 남녀차별적인 관행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간호학과의 여학생 수가 전국적으로 남학생 수의 수십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여학생들에게도 군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은 여성의 군 인력 활용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국가를 지키는 일에 남녀가 유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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