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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게릭병 9년 이정희씨의 ‘동병상련’

    9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정희(李廷姬·52·여)씨가같은 처지의 환자들을 위해 고교 동창들이 푼푼이 모아준 3,200만원을 흔쾌히 내놓았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루게릭이 걸려 ‘루게릭병’으로 통하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은 감각과 정신은 정상이지만 근육이 위축돼 결국에는 호흡곤란으로 누워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불치병이다.국내의 환자수는 1,200명.하지만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약물과 운동요법만이 있을뿐,변변한 요양시설도 없어 환자와 가족들이 엄청난 치료비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학원 강사에 산악회 활동도 열심이던 이씨는 93년 갑자기찾아온 병마에 숟가락조차 들지 못하게 됐다.지금은 회사를그만두고 이씨의 병간호에 나선 남편 김인국(金仁國·67)씨의 도움 없이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이씨는 “같은 처지환자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면서 “더 할 수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마음은 루게릭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다음달 한국ALS협회(회장 이광규)가 정식 발족된다는 소식에 배화여고 17회 친구들이 모은 돈을 선뜻 내놓게 했다.이씨는 “서서히죄어오는 죽음에 대한 고통은 한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면서 “우리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여성선언] 생명이 긴 스타만들기

    올림픽이 개막되자마자 여자 스포츠 스타 한 명이 탄생했다.18살 나이에 여자 공기소총 부문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강초현(유성여고 3년)이 바로 그녀다.도무지 인생의 세파라곤 겪어본 적이 없을 듯 보이는 그녀의 맑디 맑은 얼굴.은메달에 그친 서운함으로 눈물을 흘리는 티없이 순수한 모습.그래서 더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이 각 신문마다 몇회에 걸쳐 소개됐다. 필자 역시 그 기사를 접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그래,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구나 하면서.무엇보다 인생의 어려움과 가난이 그녀에게는 좌절과 방황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동적이었다.아니,고마움까지 느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리라.그런 고통이 그녀를 남들보다 더 성숙하게 만들었기에. 깜찍한 외모,월남전에서 다리를 잃고 고생하는 아버지를 업고 다닌효녀,어머니의 파출부 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가정환경,어머니가 아버지의 병간호 때문에 집을 비울 때는 군소리 없이 집안일을 떠맡았던 착한 심성,머리맡에 강초현의 만점짜리 표적지를 놓고 늘 딸의성공을 빌었던 든든한 후원자 아버지의 죽음,그로 인한 좌절,그리고올림픽에서의 은메달.줄여 말하자면 어린 나이,가난,예쁜 외모,그리고 성공 등 강초현은 분명히 만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요소를 두루갖추고 있다. 같은 날 강초현 선수에 뒤이어 은메달을 획득한 유도의 정부경 선수가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된 걸로 봐서 강초현의 스타성은 확실히 그진가를 발휘한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심란하다.올림픽대회가 끝나고선수들이 귀국하면 또한번 강초현의 이야기로 떠들썩할 것이다. 방송출연과 인터뷰가 밀려들 것이고,어쩌면 광고제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그녀에 대한 얘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스포츠계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은 강초현 선수에게 “연예인 해도 될 만큼 예쁜”,“깜찍한” 등의 수식어도 적지 않게 따라다닌다. 그녀의 이미지와 상반돼서 더 인상적인 ‘겁없는 총잡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요란한 관심과 애정이 그녀를,또는 그녀와 같은스포츠 스타들을 몸살나게 할지도모른다.얼마나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런 식의 관심집중과 부담속에서 고통받거나 좌절했는지 우리는기억하고 있지 않은가.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스타 만들기 시스템’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무엇보다 대중들이 ‘스타’와 ‘스캔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심과 애정이 좀더 은근하고 깊이 있었으면 좋겠다.그녀가 우리의 지지로 힘을 받아 훈련과 자기 수양에 더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여론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이며,깊은 심적 수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강초현 선수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월남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의 문제를 상기해 볼 수도 있겠다.그녀가 고통을 어떻게 행운의계기로 바꾸어냈는지도 궁금하다.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스포츠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이건 비단 스포츠 스타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존재한다.그들을 대하는 시선이 깊이있어진다는 것은 바로,나자신에 대한 내 시선이 깊이있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모쪼록 이번만은 우리의 스타 강초현이 내적으로 더 무르익을 수 있도록 그녀를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세인의 관심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나이와 연륜을 갖게 될 때까지,그래서 그녀가 아주 길게 우리 곁에 머무는 스타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박 미 라 페미니스트저널 if 편집위원
  • 남북이산상봉/ 평양 상봉 이모저모

    ◆이날 저녁 평양 옥류관에서의 마지막 만찬에는 남북 장관급 수석대표로 나왔던 전금진(全今鎭) 내각 책임참사가 참석,눈길을 끌었다. 전 참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번 추석을 즈음해 경의선 철도 착공을 말했는데 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8월말 (평양에서의) 2차 상급(장관급) 회담에서 잘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또 조선일보의 북측 취재와 관련,“안좋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100년 숙적으로 살겠습니까.일없어요(괜찮아요)”라고 말해 앞으로 북측 취재가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오후 평양 청년중앙회관에서 공연된 민족가극 ‘춘향전’은 시종 3·4조의 애절한 가사와 느린 가락으로 남측 이산가족들의 호응을 받았다. 웅장한 관현악 연주,화려한 무대장치와 조명은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시켰고 각 장면마다 기교적인 전통무용과 탈춤까지 가미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어릴 때 고향에서 ‘견우와 직녀’ ‘금강산 칠선녀’ 등을 구경한적이 있다는 김원찬씨(77·경기 남양주시 평내동)는 “고전적 순수성을 잘 살려 마치 선녀가 무용하는 것 같았다.남측도 너무 현대판에치우치지 말고 앞으로 전통문화를 살려야할 것”이라고 평했다. ◆평양을 방문한 100명의 남쪽 이산가족들은 당초 203명의 북측 가족들을 만나기로 돼 있었으나 아쉽게도 164명만 상봉이 성사됐다. 나머지 39명은 이미 사망했거나 여러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밝혀졌으나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에서 주소를 파악하지 못한 채 급히 남측에 생사여부를 통보하느라 행정착오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반면 당초 상봉대상자엔 없었으나 이번 상봉에서 아들 박치문씨를만난 박용화씨(84·제주시 연동)나 딸 순애씨를 만난 김찬하씨(77·인천 강화군) 등 추가 상봉자도 12명에 달해 아쉬움을 덜어줬다. ◆개별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오전 북측가족들은 단체로 준비한 선물박스를 남측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선물박스에는 들쭉술 3병,보약 5통,락원담배 10갑,조선고려술,도자기 등이 담겨져 있었다. 북측 가족들은 “김정일(金正日) 장군님의 배려로 이렇게 귀한 선물을 남측 가족들에게 전하게 돼 무한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남측 가족들은 선물을 다시 북측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평북 영변이 고향으로 방북단 중 최고령자인 강기주씨(91·서울 도봉구 도봉6동)는 “둘째아들을 이렇게 만나고보니 오래 살기를 정말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흐뭇해 했다.1·4후퇴 당시 피난길이 너무멀고 날씨도 추워 아들 경희씨(62)를 청천강 인근 친척집에 맡겨두고온 강씨는 “내일이면 또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가슴 아프지만 아들이 북한에서 잘 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최경길씨(79·경기 평택 팽성읍)는 50년만에 만난 부인 송옥순씨(75)가 치매로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자 이날 공식 오찬장에서 송씨에게 밥을 떠넣어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으라”고 말을 건네며눈물을 글썽였다.그러나 송씨는 남편의 간절한 호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최씨는 “아내 옆에서 하루 세끼 식사를 챙겨주고 약도 지어주고 싶지만 이젠 또 다시 아내를 북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아들 의관씨(55)에게 아내의 병간호를 신신당부했다. ◆이몽섭씨(75·경기 안산시 초지동)의 딸 도순씨(55)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준비해주신 선물”이라며 아버지에게 선물을 건넸다.도순씨는 “우리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살아왔다.아버님이 장군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아버지가 잘못을 했다해도 지나간 과오를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성록씨(79·대구 서구 비산동)의 딸 영자씨(53)는 “50년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이다.통일되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살자”라고 말했다. 이에 최씨는 “나는 남쪽이니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말을 받았다. 평양 공동취재단
  • 배학복씨 어머니 모교 정신여고에 전재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계몽운동가인 김마리아(金瑪利亞·1892∼1944)선생의수양 딸인 배학복(裵學福·87)여사가 어머니의 모교인 서울 정신여고에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를 기탁했다. 배씨는 13일 오후 정신여고 김마리아 회관에서 전교생 4,000여명이 참가한가운데 열린 김마리아선생 56주기 기념 추모예배에서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곧 어머니의 뜻”이라며 이 학교 이창배(李暢培)교장에게 공증서를 전달했다. 배씨는 김선생이 동경유학을 마치고 함남 원산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당시 교사와 제자로 만났으며 이후 김선생이 2·8독립선언과 애국부인회 사건 등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뒤 병을 얻어 앓아 눕자 병간호를 하면서 모녀지간으로 발전했다.지난 84년 타계한 인하대 2대 학장인 고 최승만선생의 부인이기도 한 배씨는 지난 1월에는 인하대에 남편의 저서 인세를 모은 1억원을 전달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최고경영자들 ‘病과의 전쟁’

    재계와 금융계의 최고경영자들이 병마(病魔)에 시달리고 있다. 연초부터 국내 주요 대기업과 은행의 총수,그리고 전문경영인들의 와병 소식은 이들의 ‘중병’이 구조조정과정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한것으로 추정돼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현재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인사는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과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김영환(金榮煥) 현대전자 사장,그리고 송달호(宋達鎬) 국민은행장 등 한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12월 12일 주치의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한 삼성 이 회장은 텍사스주 휴스턴의 MD 앤더슨암센터에서 암검사를 받고 있다.모친 박두을(朴斗乙)여사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이 회장의 병간호를 위해 부인 홍라희(洪羅喜)씨가 8일 오후 출국했고,처남인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 회장도 지난 6일 미국으로 떠났다.이 회장의 아들 재용(在鎔)씨 부부가 줄곧 이 회장 곁에서 간병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정 명예회장도 지난해 12월초 현대 중앙병원에서 폐암수술을받은 뒤 출국,이 회장이치료받고 있는 MD 앤더슨암센터에서 가료중이다. 지난해말 고혈압으로 쓰러진 현대전자 김 사장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옮겨질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지만 정상생활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한 위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송 행장은 지난해 말부터 외부행사에는 전혀 참석치 않고 중요 결재만 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굄돌] 새 천년의 희망,그 불꽃

    1999년이 저물고 있다.사람들 마다 크고 작은 기억을 아로새긴 채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있다.저무는 해를 보면서 사람들은 새 천년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20세기의 마지막 수업’,이렇게 이야기하면 매우 거창하게 느껴지지만얼마전 있었던 마지막 수업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한 학기 동안 우리 나라 관광지의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발표 수업날,종석·선순·홍일·일선·진영이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초췌했다.이들은 종묘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종묘를 수없이 방문했고,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수없이 찾아냈다.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비디오로 소개하며 종묘의 의미를 되새김하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이들을 지켜보던 많은 학생들이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종묘에 관한 자료를 찾던중 종묘를 소개하는 홈페이지가 없어 누구에게 막연히 맡기는 것보다 종묘지킴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밤을 새워 종묘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며 시연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학생들이 격려의 박수를 쳤다. “오늘 저희들은 교양과목 시험이 있었습니다.처음으로 백지시험을 치렀습니다.시험을 충실히 치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크지만,한 학기동안 열정을다해 조사한 결과를 그냥 놓칠 수 없어 우리들의 젊음을 걸고 발표준비를 했습니다.후회는 없습니다.우리들은 21세기의 관광산업을 우리가 열어간다는각오로 준비했습니다” 남산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없어 관광상품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캐릭터를만든 학생들,경기도립박물관의 문제점과 대안을 낸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짬짬이 틈을 내어 보육원 어린이를 병간호하던 학생의 모습도 떠오른다.21세기는 캐치프레이즈로 열리지 않는다.새 천년의 희망 그 불꽃은 동해에서떠오르는 해에서 채화되지 않는다.이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새 천년을 열어간다.새천년의 희망,그 열정을 지켜보자. [한범수 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
  • 백년해로엔 건강이 필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우리나라 속담에 “긴 병에 효부·효자없다”는 말이 있지만 미국에서도 같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약품의 발달로 노년층환자의 생명은 연장되고 있는데 반해 그에따른 ‘매정한’ 이혼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치료약의 발달로 목숨은 유지하지만 완전히 건강을 되찾지 못한 배우자가 말년에 소득도 없이 치료를 받으면서 다른 배우자에게 경제적은 물론 육체적으로 부담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백년해로’는 둘다 건강할때 얘기라는 것이다. 미국전국장애자조직이 지난 84년부터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환자를 가진 노년가정의 이혼율이 84년 9%에서 94년 11%로 늘어난 뒤 올해의 경우 13%를 보이며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동맥경화로 고생하던 한 환자는 결혼 30년만에 2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우여곡적끝에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나누고자 얼마전 가족병간호협회를 만들었는데,회원이 순식간에 3,000명으로 늘었다. 웰리슬리 대학 아드리안교수는 “나이든 부부 사이에 환자가 생기면 이혼하는 경향이 늘었는데,남편이 아픈 경우보다 아내가 병석에 있을 때 이혼율이더 높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hay@
  • 美 연방공무원 ‘가족휴가’ 파격 지원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잘 노는 미국인들이 앞으로 더 많은 휴가를 갈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대통령이 23일 미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갖도록 실업보험기금을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클린턴대통령의 이 방침은 미국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1960년대에 비해 주당 평균 22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에 따라 가족들이 금전적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우선 연방정부 공무원 가운데 병간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병가가 현재 13일에서 12주로 늘어날 계획이며,신생아나 입양자녀를 키우기 위한 휴가 때에도 실업보험기금에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날 루이지애나주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클린턴 대통령은“많은 가족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휴가를 내지 못했으나 부모들에게 소득상 손실을 입지 않고도 자녀들과 더많은 시간을 보낼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특히 최근 잇따른 청소년 폭력사태의 원인은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과 가족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혜택은 우선 연방공무원들에게만 정해진 것이어서 혜택을 받는사람은 한정돼있으나,백악관은 정부근로자가 이같은 혜택을 받게 되면서 차츰 민간근로자에게도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hay@
  • [역경을 딛고…] 고대에 10억 기중한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7)

    나는 곧 그 집의 자랑거리가 됐다.일에는 빈틈이 없었다.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다.못쓰는 이부자리를 빨고 다려 꾸미고,풀로 다듬고 물들여 새것으로 만들고,밤을 새가며 저고리도 만들어 주니 ‘복덩어리’를 얻었다며좋아했다.주인이 인정을 해주니 나도 힘드는 줄 몰랐다. 하지만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주인집이 이듬해 부도가 났다.온갖 패물에 전화까지 내다 팔아야 할 정도였다.주인은 아이들 차비는 못줘도 내 월급 1만원은 거르지 않았다.그런 주인이 고마워 월급 일부를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었다.내가 뭘 도와야 할까.생각 끝에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주인집가족들은 “한 식구인데 왜 나가느냐”고 말렸다.나도 떠나기 싫었다.정말가족처럼 정든 사람들이었다.하지만 떠나는 것이 돕는 길이었다.7개월 만이었다. 몇개월 뒤 5·16이 일어났다.사회가 어수선한 탓인지 마땅한 일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암표 장사를 시작했다.명동극장 주변에서 보름쯤 했는데 단속때문에 그만두고 하숙집으로 들어갔다.열일곱 식구의 수발을 해야 했다.고된 일이었다.하루에 2시간도 못잤다.손가락 마디가 갈라지고 발에는 얼음이 박였다.그때 발톱 10개가 모두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대로다.10개월쯤 하다 일을 그만두었다.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주인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집을 드나들 때마다 연탄의 개수를 셌다.언젠가 “연탄 한 장이 없어졌다”며의심을 하길래 싸움을 하고 나와버렸다.그 어려움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아온 나인데,억울하고 분했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목이 메고 말문이 막힌다. 그 뒤 보모 자리를 얻었다.박정희대통령 영부인인 육영수여사의 친척 뻘 되는 사람의 집이었다.아이가 조금 자라자 육여사의 이모라는 분이 함께 살자고 했다.이른바 침모 생활이었다. 여간 까다로운 분이 아니었지만 지극 정성으로 돌보니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그 분은 청와대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친척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재혼을 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소개받은 사람은 용산에 사는 한 노인이었다.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갖고 있었을 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었다.4남매가 있었지만 모실 만한 형편도 안됐고 돈도 없었다.육여사의 이모도 내키지 않아 하다가 “사주팔자를 봤더니 궁합이 좋더라”며 적극 권했다. 재혼을 했다.내가 48세였고 노인은 60세였다.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다만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출옥 후 3년간 옷 하나 해 입지 못하고 번 돈 35만원으로 장사 밑천을 댔다. 문방구,벽지,철물 등을 파는 잡화점을 내고 전차를 타고 다니며 배달도 직접 나갔다.당시 용산에 있던 사창가에서 홑이불을 걷어다 한장에 20∼30원씩받고 빨아 가게 밑천을 댔다.열심히 했더니 가게가 커지기 시작했다. 10여년을 고생했다.집을 사고 시골에 땅도 살 만큼 돈을 모았다.남편의 자식들도 돌보았다.공장을 짓도록 돈도 대고 혼인에다 시동생들 장례까지 집안 대소사를 다 치렀다.작은 아버지의 사업 자금도 댔다.그사이 남편은 중풍을 맞았다.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장사를 계속했지만 남편이 치매 증세까지 보여 병간호를 위해 가게를 그만두었다.
  • 어느 농민의 이웃사랑 11년/정읍시 내장동 이춘조씨

    ◎“아무리 가난해도 도울 힘은 있지요”/넉넉지못한 살림에도 무의탁노인 10명에 성금 【정읍=조승진 기자】 “살기가 어렵다고 해서 매년 해 오던 이웃돕기를 멈출 수는 없지요.조그만 정성일 뿐입니다” 11년째 이웃돕기를 실천해 온 이춘조씨(63·내장동 553)가 19일 정읍시 내장동사무소에서 10만원씩 든 봉투 10개를 수줍게 꺼내 설 명절이 더욱 쓸쓸한 10명의 무의탁 노인들에게 전달했다. 이씨는 “직접 찾아 뵙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동사무소까지 나오시도록 불편을 끼친 게 오히려 송구스럽다”고 했다. 4천여평의 논 농사가 고작인 이씨의 자선은 슬하의 3남 2녀가 모두 장성해 서울 등지로 독립하면서 내외만 남은 87년부터 시작됐다. 17살때 부모를 여윈 이씨는 막노동 등 맨몸으로 자수성가하면서 자녀들의 교육과 결혼 등 앞만 보고 살아왔으나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과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한을 간직해 오다 주변의 소년소녀 가장과 홀로사는 노인 돕기에 나섰다.처음에는 추석과 설에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쌀을 10가구에 한가마씩 기증했다.그 뒤 일년에 두번씩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이제까지 200가마 상당의 쌀이나 현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왔다. 특히 이번 성금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아내 정인순씨(58)가 1년전부터 고혈압 증세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등 우환중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주위를 더욱 감동케 하고 있다. 이씨는 “아내 병간호로 시간이 없어 예년처럼 방문 전달을 못했다”며 “어릴때부터 이웃들에게 받은 도움에 비하면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 바쁜 일정속 투병 최종현 회장 위로

    ◎숙소인근 병원 입원 소식에 문병 준비/“감염우려 면회 불허”에 쾌유기원 친서 김영삼 대통령이 바쁜 정상외교 일정에서 짬을 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최종 현전경련회장(선경그룹회장)을 위로했다. 최회장은 최근 뉴욕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김대통령은 뉴욕도착직후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암전문센터의 중환자실에 최회장이 입원해있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병문안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회장 가족들과 선경측은 김대통령의 방문의사를 전달받고 『폐수술후 감염우려가 있어 병원측이 가족들을 포함,누구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왔다.김대통령은 이에 뉴욕방문을 수행한 김호식 재경비서관을 통해 최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는 친서를 26일 상오(현지시간) 김영만 선경부회장(재미한국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전달했다. 김대통령이 친필로 직접 작성,서명한 서한에는 「최종현 전경련 회장의 조속한 쾌유를 빌며 우리 경제발전에 더많은 기여를 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한국의 대표적 경제인의 한명인 최회장이 와병중이고,최회장의 부인이 병간호중 별세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서한전달 배경을 설명했다.
  • 최종현 회장 폐암수술 주변 표정

    ◎선경·전경련 충격속 “평소 건강… 별일 없을것”/재계 “경영 챙기기 어려울것” 후계구도 관심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폐암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선경그룹의 임직원들과 전경련 직원들은 놀라움과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선경그룹은 『그러나 페암초기이고 수술경과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그룹 경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회장은 평소 단전호흡과 기훈련으로 몸을 다져 건강했던 편이다.그러다 이달초 감기증세가 심해 서울대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으며 의료진이 『폐암증세가 있다.정밀진단을 받아보는게 좋겠다』고 권고해 급히 미국으로 떠났다.그룹 관계자들은 최회장이 담배를 안피워 폐암사실이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지난 18일 미국에서 부인 박계희 여사가 최회장의 병간호를 하다 과로로 별세한 사실이 전해져 한층 애통해하는 분위기다. 선경그룹은 그룹 경영에 미칠 파장을 우려,최회장의 폐암진단 사실을 극비에 부쳐왔다.지난 5일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던 최회장은 지난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때 「감기」를 이유로 참석하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었다.마침 삼성자동차의 구조조정 보고서파문때문에 입장이 곤란해 들어오지 않는게 아니냐는 추측들이 돌았었다. 한편 재계에서는 선경그룹이 최회장의 그룹 경영에 이상이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나이가 나이인데다 폐암수술의 후유증을 들어 예전처럼 그룹경영을 챙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면서 후계구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장남인 최태원 그룹경영기획실 상무를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또 올초 연임된 전경련 회장직도 건강상의 이유로 내놓을 경우 후임 회장의 선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선경 최종현 회장 미국서 폐암수술/경과 좋아 곧 귀국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67·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부인 박계희씨는 최회장의 병간호를 하다 과로끝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지난 18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의 한 선경그룹 관계자는 『최회장이 지난달 서울대 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고 이달초 폐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맨해튼의 슬로원 메모리얼 캐터링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뒤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경과가 매우 좋다』고 밝혔다.그는 『최회장이 비교적 초기에 암을 발견한데다 수술이 잘 돼 건강회복에 지장이 없으며 이 병원에서 당분간 치료를 받은후 수주일 내에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경 측은 최회장을 간호하던 부인 박씨가 최회장이 수술받은지 이틀만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고 덧붙였다.
  • 「눈물의 가난」 극복 12살 소녀가장

    ◎포상받은 수원 정자초등교 6학년 박윤주양/고혈압 아버지 숨지자 할아버지 병상에/7순 할머니 함께 어머니없는 집안 돌봐/“가난하고 힘들지만 사랑이 있어 행복…” 『할머니,선생님 모두 사랑해요.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것이 행복해요』 경기도 수원시 정자초등학교 6학년 박윤주양(13)의 표정은 언제나 해맑다.부모 없이 7순의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소녀가장인데도 구김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윤주양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92년.전화국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졌다.아버지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급 고도장애 판정을 받고 병석에 누워 투병생활을 계속했다.이듬해 여름에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던 어머니마저 가족을 두고 집을 나갔다.그 뒤부터 아버지의 병수발은 겨우 아홉살짜리 윤주의 몫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일곱살이던 동생 윤미양(11·정자초등학교 4년)도 돌봐야 했다.할머니를 도와 시장을 보는 등잔심부름과 설겆이,청소 등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았다. 고생도 아랑곳 없이 지난해 6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충격으로 할아버지마저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거동이 어렵게 됐다.윤주 자매는 팔을 걷어부치고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다. 윤주양은 『조금이라도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 항상 웃는다』고 어른스레 말했다. 윤주양 가족은 고모부 등 친척들로부터 조금씩 도움을 받아 살림을 꾸려간다.부모가 남긴 17평 아파트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에 들지 못해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한다. 윤주양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다. 어려서부터 선생님들에게 의지해 살아왔기 때문이다.4학년때 김순이 선생님,5학년때 서선영 선생님,교감·교장 선생님 등 모두가 보호자이자 부모나 다름없다.윤주양은 『아버지 장례식때 찾아와 도와주며 위로해주신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잊을수 없다』고 말했다. 담임 김현숙 교사(33·여)는 『윤주는 집안일을 하는 습관 때문인지 학교에 가장 먼저 나와 적극적으로 청소를 하는 등 모범생』이라고대견스러워 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윤주양은 모든 교사들의 적극 추천으로 「모범 소녀가장」에 뽑혀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상을 받는다. 윤주양은 『대통령 할아버지를 만날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면서 『빨리 훌륭한 사람이 돼 모든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 입영통지서 받아도 취소가능/질병·유학 등 사유땐 인정

    병무청은 23일 재학중 군에 입영하기 위해 입영원을 냈더라도 유학이나 질병 등 부득이한 이유가 있으면 입영원을 취소해주기로 했다.지금까지는 입영을 통지하기 전에 취소원을 내야 입영취소가 가능했다. 병무청이 부득이한 이유로 입영취소원을 받아주는 경우는 다른 대학 편·입학,폐교,유학,학군무관후보생지원,본인질병,부모 병간호,학업계속,군 지원 등이다.이같은 이유로 입영을 취소하려면 학교장 확인서나 진단서 등 관련서류를 입영일 5일전까지 지방병무청이나 시·구,읍·면·동에 내면 된다.
  • 보살핌/강세영 계명대 교수·여성학(굄돌)

    목욕탕 사우나실에서 한 중년 여성이 친구인 듯한 다른 여성에게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하소연하고 있었다.요점은 자신이 결혼 초 시부모에게 무척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장남이어서 시동생들을 다 키워 결혼시켰고 이제는 병든 시아버지의 간호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동서들의 무성의에 대한 이 여성의 비난은 시아버지의 병간호가 어쨌든 집안의 여자들이 맡아야 하는 일임을 인식시키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였다.특히 어떤 친구가 들려준 자신의 얘기는 우리들이 꽤 오랜 시간동안 보살핌에 대해 토론하도록 만들었다.친구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병중에 계실 때 집과 병원을 오가며 몇년간 간호하였고 최근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를 간호하였다.그런데 친구는,의논도 없이 자신에게 아버지의 간호를 맡겨 버린 다른 가족들이 부당하게 느껴졌었다고 하였다.친구가 부모의 병간호를 떠맡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그것을 당연시한 이유는 친구가 가족중미혼으로 남아있는 여형제라는 점이었다.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정신적·육체적 헌신이 요구되는 일이다.여성은 자식,(시)부모,그리고 남편등 사람을 보살피는데 반평생을 보낸다고 한다.남성에게는 많은 선택지중 하나인 이 일이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이다.그리고 분명히 일의 일종인데도 사랑의 행위로서 평가되곤 하여 그 일에 대한 불만조차 갖기 어렵다.남성에 비해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비하면 보살피는 일은 여성에게 오히려 적합한 것으로 적극적으로 「수여」되고 있는 것이다.더욱이 사회의 복지정책과 서비스의 미비는 여성을 더욱 힘겹게 한다.
  • 유지환양의 퇴원/박성수 사회부기자(현장)

    ◎“실종자가족 모습선해 마음편치 않아요” 2일 상오 10시 30분 강남성모병원 5206호실 주변은 아침 일찍부터 계속 걸려오는 축하전화와 보도진들로 크게 술렁거렸다.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기적의 생존자인 유지환양(18)이 긴 입원치료를 마치고 이날 퇴원한 것이다. 지난달 11일 생환직후 이곳에 실려와 22일만에 병실문을 나서는 유양은 퇴원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시종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루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옆방 승현이에게 축하전화가 걸려와 비로소 나가는가 싶더라구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양은 평소처럼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제 여유를 되찾은 듯 어머니 정광임씨(47)의 손을 꼭쥐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빨리 이 곳을 나가 가장 먼저 아빠가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달려가 용기를 드리고 싶어요』 유양은 줄곧 아버지 걱정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며 당분간은 아버지 병간호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병실에 놓여졌던 책과 소지품들을 치우던 어머니 정씨도 생환당시의 감격이 되살아 나는 듯 딸이 누워있던 침대를 어루만지며 말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막상 퇴원한다고 하니 실종자 가족들과 유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그들이 하루빨리 평온을 되찾았으면 좋겠는데…』 어머니 정씨는 다른 유족들에게는 『무슨 죄라도 지은 기분』이라고 그동안의 심경을 털어놨다. 유양을 치료해온 이 병원 김인철원장 등 병원관계자들은 『현재 유양의 건강은 매우 좋은 상태』라며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보니 그동안 안정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었지만 유양의 차분한 성격이 퇴원을 앞당길 수 있었다』며 축하의 박수를 잊지 않았다. 이날 유양의 퇴원에는 어머니 정씨와 회사 임직원 3명이 같이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두 모녀는 다른 유가족들의 슬픔을 자아낼까 두렵다며 재빨리 병원을 떠나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그러나 유양의 퇴원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안겨준 슬픔의 매듭이 아닌 「상흔」의 재확인이어서 안타까웠다.
  • 낙수로 입술 적시며 13일 버텼다/유지환양 「기적의 생환드라마」

    ◎어둠·죽음의 공포 잊으려 애써 잠 청해/잠결속 기계소리… 온힘 다해 발움직여/달려온 어머니가 손잡자 “아 살았구나” 『아,발가락이 움직인다』 사고발생 2백85시간40분만에 발견한 기적같은 생명의 몸짓이었다.가냘픈 10대소녀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그리고 역시 여자는 강했다. 사고발생 13일째인 11일 하오1시47분쯤 슬래브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던 「ㅅ」자 공간.구조대원들은 긴장했다.최명석(최명석·20)군이 구출된 곳에서 기껏해야 4m거리.『잠깐…잠깐…작업중지,중지』 정상원(30)대원이 소리쳤다.『분홍색 매니큐어를 엄지발가락에 바른 여자의 발이 꿈틀대는 것이 얼핏 환상처럼 스쳐가더군요』 정대원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극적상황의 발단은 지난달 29일 하오5시54분 무너진 A동 지하1층 도자기 매장.유지환(18·삼풍백화점직원)양은 평소와 다름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매장에 진열된 도자기를 닦고 있었다.1분여 지났을까.정확히 하오5시50분.갑자기 「꽝」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볼 틈조차 없었다.아득한 곳으로 추락하는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한기가 느껴져 깼다.조금전까지 함께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던 매장의 언니들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다만 칠흑같은 어둠만이 곁에 있었다.서서히 희미하게 콘크리트더미와 육중한 쇳덩어리가 보였다. 『갇혔구나』 입이 타들어갈 만큼 갈증을 느꼈으나 주변에 물이 없었다.4년전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지,그리고 가계를 혼자 꾸려오다 아버지 병간호에 매달리고 계신 불쌍한 어머니,가끔 다투기도 했던 오빠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김건모의 노래등 X세대로 불리는 가수들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지냈던 친구들의 정겨운 얼굴도 차례로 떠올랐다. 『지환아』 마치 어머니가 옆에서 부르는 것같았다.서러웠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하나.그러나 걱정도 잠시.『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눈물이 났다.처음 며칠은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들었다.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고 며칠을 지냈는지도 전혀 모른다.설움에 겨웠고 눈물도 말라버렸다. 목이 탔다.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위에서 녹물이 조금씩 떨어졌다.도저히 그냥 먹을 수 없을 것같아 입술에 적시만 했다. 몹시 역겨웠지만 아버지,어머니,오빠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차분히 했다.억척스럽게 적셨다. 이렇게 견디다 보면 혹시 구조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가졌다. 『일단 모든 것을 잊고 자자』 몹시 무서웠다.이제는 시간감각까지 잃어버렸다.깨어있는 것이 공포였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녹물을 입술에 적시는 것도 지겨웠다.냉커피 한잔만 마셨으면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같았다. 『내가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주인공이 되다니…』 다시 잠을 청했다. 지금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그래도 엄마는 아직까지 나를 찾고 계시겠지.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더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잠결에 기계음소리가 강하게 들렸다.그러나 소리칠 힘이 없었다.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어왔다.마지막이다 싶어 온 힘을 다해 『사람 살려요』라고 외쳤다.처음엔 반응이 없다가 20여분뒤 육중한 콘크리트더미사이로 뭔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발가락부터 움직였다.그리고 『이름은 유지환이고 18살이에요.살려주세요』.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같은데 어머니가 울먹이며 손을 잡아왔다.꿈인가.눈을 가린 수건때문에 어머니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그러나 손끝으로 엄마의 체온이 전해졌다.『엄마를 만나니 안심이 되네요』 ◎“내자식 살아온 듯”… 온국민 환호/유양 생환하던 날/구조 중계보며 가슴 졸여 손에 땀을 쥐게한 기적의 생환이었다.일요일인 지난 9일 아침 최명석(21)군의 기적적인 생환의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유지환(18)양이 구조되자 시민들은 환호와 감격이 어우러진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마치 더이상의 낭보가 없는 것처럼 환호하며 감격해 했다. 유양의 생환은 극한상황에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의지력과 인내심의 한계가 어떤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준 더할나위 없는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간밤 비피해와 합동구조반의 생존자 확인 실패로 다소 우울한 아침을맞았던 시민들은 긴 장마 끝에 언뜻 보인 햇빛처럼 신섬함을 맛봤다. 너나 없이 내자식,내형제가 되살아온 것처럼 환희를 만끽했다.그리고 모두 열광했다. 『목이 마르니 물좀 주세요』는 유양의 얘기가 TV를 통해 생중계되자 그동안 느껴온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감격에 젖었다.유양이 구조되기에 앞서 TV화면을 통해 발가락을 움직이자 지난 2일 삼풍백화점 아르바이트생 이은영양이 그 역경을 뚫고 극적으로 구조된 뒤 2시간만에 병원에서 숨졌을 때 느꼈던 우울을 한꺼번에 말끔히 씻어냈다. 유양의 극적 구조는 시신이라도 온전히 수습되기를 기대하던 실종자 가족에게도 또다시 희망을 불어넣어줬다.시민들의 기대도 한껏 높아졌다. 『아직 내아들,내딸이 살아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여운 이웃들이 더 생존했으면…』 서울교대 체육관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마음을 졸였다.『그래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모두들 가슴 벅차했다. 10일 하룻동안 40구의 사체가 무더기로 발굴돼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던 실종자 가족들.연일 드러나고 있는 공무원들의 비리에 치를 떨던 시민들.연일 가슴 졸이며 붕괴현장을 지켜봤던 이들의 가슴 속에 희망과 바람이 되살아 나고있다. 열사흘째 칠흙같은 콘크리트 더미에 갇혀 있었으면서도 『마실 것을 달라』는 유양의 요구에 모두 내 일이라도 된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강인한 정신력,살려는 끈질긴 의지,인간한계를 뛰어넘은 인간승리….시민들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자랑스런 젊은이의 모습 바로 그것으로 여겼다. □유지환양 시간대별 구조상황 ▲11일 하오 1시47분=최명석군이 발견된 지점 근처인 지하1층 도자기 전문점 부근에서 포클레인 작업 중 생존자 발견. ▲1시50분=대화로 인적사항 확인.『수유동에 사는 「유지환」이다』 ▲1시55분=음료수 요구.건강상태 양호 확인.유압절단기로 장애물 제거작업 착수. ▲2시1분=소형 유압기로 콘크리트 상단 들어올림. ▲2시3분=물과 담요·들것 투입. ▲2시6분=강남성모병원 119차량 대기. ▲2시12분=해머·드릴로 구멍 뚫고 통로 만들기 시작. ▲2시17분=유양,지하1층 도자기판매장 직원임을 확인. ▲2시35분=유압기로 출구 확장. ▲2시37분=유양의 발가락 움직임. ▲3시10분=뒤엉킨 철근·콘크리트 뚫고 통로 개척. ▲3시25분=현장 구조작업에 지장 초래한다고 구조요원 제외한 나머지 철수요구 방송. ▲3시28분=유양 구조,병원 후송. ▲3시35분=강남성모병원 도착.
  • 김 대통령/“효는 한국병 치유책”/청와대서 어버이날 행사

    ◎1백세이상 노인에 「장수지팡이」 선물/손여사,녹지원서 큰절로 인사… 박수받아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8일 제23회 어버이날을 맞아 효행상 수상자와 무의탁 노인,1백세 장수노인등 2백86명을 청와대로 초청,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김대통령 내외는 행사장인 녹지원에 도착,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특히 손여사는 노인들에게 큰절로 인사해 열렬한 박수답례를 받았다. 김대통령 내외는 김도임씨(58·여)등 경로·효친 유공자 36명에게 상을 준뒤 MBC 어린이합창단 30명과 「어머님 은혜」를 합창했다.이어 이수임 할머니(78·신양요양원)와 박광수 할아버지(70·사할린 동포)에게 각각 카네이션을 달아 주었다.김대통령 내외도 어린이합창단원으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았다. 김대통령 내외는 올해 1백세가 된 김복연할머니와 어명갑할아버지에게는 장수지팡이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국민포장 동백장을 받은 김도임씨의 살아온 일생 얘기를 듣고 『가장 귀한 상을 받은 것을 더없이 축하한다』고 격려했다.김씨는 18세때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인과 결혼해 20년 동안 시부모의 병간호를 하고 소아마비 아들을 11년동안 업어서 등·하교시켰으며 올해 97세 된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도 15년동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매일 아침 7시5분전에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 날씨와 건강 얘기를 나눈다』고 말하고 『외국에 나가서는 시차와 일정때문에 국내에서처럼 시간을 맞추지는 못하지만 어디를 가든 매일 전화를 드린다』고 소개했다.김대통령은 『소련과 우리나라 사이에 전화 통화가 불가능했던 시절 열흘 동안 전화를 못드렸는데 출국전 사정을 말씀드렸음에도 아버님이 몹시 섭섭해하셨다』고 회고했다. 김대통령은 격려인사말에서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밝게 하는 것의 근본은 효도』라고 강조했다.또 『세계 11번째 경제강국으로서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는 우리나라도 효를 근본으로 하는 문화와 교육,그리고 도덕의 발전이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국민들도 발상을 전환해 정부가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은 효』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최근에 반인륜적인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다』면서 『전통적 가족제도와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해 깊은 각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일자리,의료혜택,주거문제 등 노인복지를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약속하면서 『올바른 분배를 통해 그늘진 곳을 없애 나가도록 대통령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화염병 화상 “치료비 누가 대나”

    ◎동국대앞서 불벼락 맞은 시민 박동희씨 병상 호소/학교/“불법 집회… 책임없다”/경찰/최루탄 쏜적 없어 외면 회사원 박동희(27·서울 용산구 갈월동)씨는 지금 참으로 딱한 처지에 놓였다. 그는 25일 하오6시쯤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후문앞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산하 「진보를 향한 연대」소속 10여개 대 학생 2백여명이 시위를 하다 던진 화염병에 맞아 한쪽 눈가가 찢어지고 얼굴과 목에 2도화상을 입고 필동 중앙대부속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오6시쯤 직장인 필동 「만영문화사」(인쇄·복사업체)이웃 가게로 물건을 사러가다 졸지에 당한 변이다. 그러나 박씨의 병실에는 남동생만 병간호를 하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찾아와 주는 사람이 없다.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대학시위로 부상한 학생은 학교측에서 치료비를 다소 보조해준 예가 있으나 일반시민에게는 대책도,하소연할 길도 없다. 경찰은 시위대의 교문 밖 진출을 막는 데 주력했을 뿐 최루탄을 쏜 적도 없어 이번 사태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말한다. 집회장소가 됐던 동국대에서도 집회를 허가한 적이 없는데다 집회신고도 하지 않는 불법시위이기 때문에 학교가 보상할 책임이 없다고 한다. 동국대 총학생회는 자기들이 이 시위를 주도하지 않았고 「진보를 향한 연대」소속 대학생들이 규탄대회를 동국대에서 열지 말도록 만류까지 했다면서 사건이 동국대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결국 시위현장을 지나가다 졸지에 병원신세를 진 시민의 억울한 사정은 제쳐두고라도 치료비마저 피해자 혼자 책임져야 하는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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