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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김성현씨 별세 안극순(전 전남도 교육위원)씨 부인상 안민주(동신대 교수)·민영·현주(아논컴퍼니 대표)씨 모친상 기현곤(마취통증의학과 개원의)씨 장모상 11일 광주 국빈장례문화원, 발인 13일 오전 (062)606-4000 ●김동현씨 별세 김태환(하프프라이스북 대표)·문환(신도리코 베트남 법인장)·계환(연합뉴스 선임데스크팀)·명옥·연옥씨 부친상 김흥수씨 빙부상 허영주·이경리·박경미씨 시부상 12일 천안하늘공원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7시 (041)553-8000 ●최용호씨 별세 최창봉(KBS 시사제작2부 기자)씨 부친상 12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4일 (02)927-4404
  • [부고] 최현배씨 모친상, 한지연씨 조모상, 김성산씨 별세, 박경만씨 부친상

    ■ 최현배(광주일보 사진부장)씨 모친상 △ 곽성례씨 별세, 최현배(광주일보 사진부장)·창수(동양검사기술)·정아씨 모친상, 곽옥남·최윤진씨 시모상, 서영필씨 장모상, 11일 오후, 전남 나주장례식장 101호, 발인 13일 오전. 061-332-8114 ■ 한지연(대구신문 기자)씨 조모상 △ 정경옥씨 별세, 한지연(대구신문 기자)씨 조모상, 11일 오전 10시, 대구수성요양병원 장례식장 201호, 발인 13일 오전 10시. 053-766-4444 ■ 김성산(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씨 별세 △ 김성산(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씨 별세, 백형심씨 배우자상, 김수정·수아씨 부친상, 정후석씨 장인상, 11일 오전, 광주 천지장례식장 302호, 발인 13일 오전 7시. 062-527-1000 ■ 박경만(한겨레신문 전국부 선임기자)씨 부친상 △ 박인규 씨 별세, 박경만(한겨레신문 전국부 선임기자) 씨 부친상, 11일 오전 1시, 강진군산림조합 추모관, 발인 13일 오전 9시. 061-430-5444
  • [부고]

    ●이영숙씨 별세 이남련(예일평가법인 이사)·옥경(국민건강보험 보장지원실 팀장)·무영(코리아중앙데일리 뉴스룸 국장)·민영(SK하이닉스 PI리서치랩 팀장)씨 모친상 남미림(주한미국대사관 경제담당 전문위원)·이현아씨 시모상 한태영씨 장모상 10일 성남시의료원, 발인 12일 오전 6시 20분 (031)738-7444 ●정두호씨 별세 이이순씨 남편상 정안숙·향숙·재윤·지윤(경향신문 사진부장)·희윤씨 부친상 10일 부산 해운대 백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30분 (051)893-4444 ●최장환씨 별세 최재웅(아사히신문 외교안보팀장)·미경·덕희(부천 창영초 교사)씨 부친상 양진하(제이트로닉스 부사장)씨 장인상 유미정씨 시부상 10일 서울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2072-2020 ●박인규씨 별세 박경만(한겨레신문 전국부 선임기자)씨 부친상 11일 강진군산림조합 추모관, 발인 13일 오전 9시 (061)430-5444
  • 김성산 금호아시아나 부회장 별세

    김성산 금호아시아나 부회장 별세

    김성산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이 11일 별세했다. 74세. 김 부회장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금호고속(옛 광주고속)에 입사했다. 이후 48년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몸담았다. 금호고속, 금호터미널, 금호렌터카, 금호리조트 사장 등을 거쳐 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사기위인’(捨己爲人·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고객을 위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이끈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담아 ‘고객행복경영’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쌍촌사회복지관 등 복지단체에 10년 이상 후원을 이어 왔고, 광주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과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는 데도 큰 관심을 쏟았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 302호실이며 발인은 13일 오전 7시.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아시안게임 한국 첫 金… ‘육상 거목’ 최윤칠 별세

    아시안게임 한국 첫 金… ‘육상 거목’ 최윤칠 별세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름하던 국민을 위로한 ‘한국 육상의 거목’ 최윤칠 대한육상연맹 고문이 8일 별세했다. 고인은 한국전쟁 직전 열린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며 일제 치하를 벗어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92세. 1928년 7월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려서부터 ‘장거리, 마라톤 신동’으로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1950년 4월 열린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는 함기용, 송길윤에 이어 3위에 올랐으며 1954년 마닐라아시안게임 15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고국에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5000m에서는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국내 최정상급 장거리 선수였지만 올림픽 메달과는 아쉽게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해방 뒤인 1948년 런던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지만 38㎞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 근육 경련으로 결승선을 3㎞ 앞두고 기권하는 불운을 겪었다. 한국전쟁 중 열린 1952년 헬싱키올림픽 마라톤에서는 3위에 29초 뒤진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중간 순위를 3위로 잘못 전달받는 바람에 순위를 유지하는 레이스를 펼치다 4위에 그쳤다는 안타까운 후일담도 전해온다. 고인은 현역 은퇴 후 대표팀 코치로 후배 육성에 나서 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당시 이창훈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을 거들기도 했다. 또 대한육상연맹 이사를 지내는 등 국내 육상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 국민훈장, 1992년 대한민국 체육포장을 받았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02)2227-7500.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이순임씨 별세 윤석찬·석훈·석진(KIST 원장)·성일(피에조테크놀로지 사장)·은희·선희(서울시청 평생교육과)씨 모친상 진재민·서동경·최연경·신순철(도봉구청)씨 시모상 8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923-4442 ●남정희씨 별세 김정호(MBC 통합뉴스룸 인권사회팀 부장)씨 모친상 7일 서울 성모장례식장, 발인 10일 (02)2258-5940 ●최희자씨 별세 박성하(리치공인중개사무소 대표)씨 모친상 엄중식(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겸 기획조정실장)씨 장모상 7일 서울 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20분 (02)3010-2000
  • [부고] 정호윤씨 부인상, 최중기씨 별세, 김영무씨 장인상

    ■ 정호윤(전북도의회 의원) 씨 부인상 △ 한복연 씨 별세, 정호윤(전북도의회 의원) 씨 부인상, 8일 오전, 전주 효자장례타운 201호, 발인 10일 오전 8시. 063-228-4441 ■ 최중기(한국바른자세연구원 대표)씨 별세 △ 최중기(동국대 평생교육원 주임교수, 한국바른자세연구원 대표)씨 별세, 윤지유(필리핀 PIC대학 박사)씨 남편상, 6일 오후 11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8일 오전 8시, 장지 용인 평온의숲. 031-787-1503 ■ 김영무(팍스경제TV 대표이사)씨 장인상 △ 강태규씨 별세, 신영자씨 남편상, 강은정·강성식씨 부친상, 김영무(팍스경제TV 대표이사)씨 장인상, 이명순·이주현씨 시부상, 7일 오전 10시42분, 강원도 홍천군장례식장 203호실, 발인 9일 오전 6시30분. 033-436-1919
  • [부고]

    ●강태규씨 별세 신영자씨 남편상 강은정·성식씨 부친상 김영무(팍스경제TV 대표이사)씨 장인상 이명순씨 시부상 7일 홍천군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6시 30분 (033)436-1919
  • [부고] 안훈씨 장모상, 박시하씨 부친상

    ■ 안훈(BBS불교방송 전 광고사업국장) 씨 장모상 △ 이복노미 씨 별세, 안훈(BBS불교방송 전 광고사업국장) 씨 장모상, 6일 0시 8분, 대구 수성구 수성요양병원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장지 경북 군위 선영 명복공원. 010-4301-2389 ■ 박시하(BBS불교방송 경영기획국장) 씨 부친상 △ 박근성 씨 별세, 박시하(BBS불교방송 경영기획국장) 씨 부친상, 6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안산제일장례식장 202호, 발인 8일. 031-406-6191
  • [부고]

    ●황병기씨 별세 황태종(파이낸셜뉴스 광주·전남 취재본부장)씨 부친상 6일 광주광역시 스카이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10-8631-6191
  • “힘내… 사랑해…” 94세 현역 최고령 의사가 남긴 마지막 말

    “힘내… 사랑해…” 94세 현역 최고령 의사가 남긴 마지막 말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인 한원주(94)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가족과 직원들에게 세 마디 말을 남기고 소천했다. 경기 남양주 매그너스요양병원과 유족 측은 한원주 과장이 지난달 30일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5일 밝혔다. 지난달 7일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하던 고인은 같은 달 중순쯤 노환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지난달 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돌아와 자신이 말년을 헌신한 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한 원장님은 마지막까지 의료인으로서 반듯한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병원 관계자뿐 아니라 환자들도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고 전했다. 80대 중반부터 요양병원에서 ‘의사’의 소임을 다한 고인을 직원들은 예우 차원에서 ‘원장님’이라고 불렀다. 고인은 ‘사랑으로 병을 나을 수 있다’는 지론으로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와 ‘국내 최고령 현역 여의사’라는 이력은 각종 TV 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한규상)와 독립운동가 어머니(박덕식) 사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이후 활발하게 병원을 운영했으나 약 40년 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병원을 정리했다. 그리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수십년간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후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 일하기 시작해 별세 직전까지 매일 1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부고]

    ●김용규(전 수원시부시장)씨 별세 김승중(메트로신문 유통&라이프부 부국장)경중(PI첨단소재 차장)철중(수성이앤지 부사장)혜중씨 부친상 박시혜영(수디자인커뮤니케이션 대표)오경화·황란이씨 시부상 5일 아주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31)219-4601 ●강금선씨 별세 김중규(세종의소리 대표)씨 모친상 5일 경북 의성 공생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4)834-9906
  • ‘잊혀진 어린 영웅’ 6·25 참전 인천학생 2000명의 못다한 이야기

    ‘잊혀진 어린 영웅’ 6·25 참전 인천학생 2000명의 못다한 이야기

    ●1996년 7월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 70년 전 한국전쟁 때 국군에 자원입대했던 인천 지역 까까머리 중고생들의 참전 역사를 추적기록해 온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이경종(86)씨와 그의 장남인 이규원(58·이규원치과) 원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씨는 참전 중학생 중 한 명이다. 부자는 1996년 7월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 편찬위원회’를 창립했다.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을 직접 찾아다니며 참전 과정을 육성 녹음했다. 흑백 사진과 관련 유물 등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수집해 2004년 12월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전액 자비로 세웠다.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지역 학생 2000여명과 참전한 스승의 나라사랑을 기억하고 전사한 학생 208명과 스승 심선택(당시 24세) 소위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고위층 자녀들의 군 복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 부자는 이름 없이 잊히는 어린 전쟁영웅들의 이야기를 밝히고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씨는 1995년에 전쟁 중 생긴 허리병 때문에 입원 중이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신문에서 ‘정부가 6·25 참전 용사 증서를 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중·고등학교 졸업장 모양의 참전 증서가 정말 액자에 담겨 배달돼 왔다. 아직 어머니 가슴속이 그리운 솜털 뽀송뽀송한 청소년기 4년을 조국에 바친 보상이 50년이 지난 후 종이 증서 한 장으로 온 것이다. 참전하지 않은 중학교 동창들은 상당수 학업을 계속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됐지만, 이씨는 전역 후 생계가 어려워 곧장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학력은 ‘중졸’이다.●당시 수많은 또래들 인민의용군 끌려가 실종 “그들은 너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들이었습니다.” 참전 증서를 받아 들자 이씨는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출발해 20일 동안 부산까지 걸어가서 참전했던 옛일이 하나둘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지나갔다. 이씨는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으로, 인천 동구 송림동 333번지에 살고 있었다. 당시 수많은 중학생 또래 청소년들이 인민의용군에 끌려가 대부분 실종되는 터라, 그는 용유도로 피란 가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인천이 수복되고 지역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무렵인 그해 10월 초 인천학도의용대가 창립됐다. 이씨를 비롯해 인천 지역 청소년 및 청년 수천명이 가입했다. 그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자, 인천이 다시 북에 점령되면 예전처럼 인민의용군에 끌려갈 것을 우려했다. 공포가 인천 전역으로 엄습해 오자,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4000여명은 1950년 12월 18일 인천 병사구사령부(현 병무청)에서 나온 국민방위군 관계자를 따라 동인천역 앞 인천 축현초등학교(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를 출발해 경남 통영충렬초등학교에 있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로 향했다. 이씨의 홀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마련했는지 두 살 많은 형(기종)과 이씨에게 6000원(당시 80㎏짜리 쌀 10가마 상당)씩을 눈물을 흘리며 손에 쥐여 줬다. 옆집 살던 두 살 어린 조순범(당시 중학교 1학년) 등 중학생 50여명도 인천학도의용대 남동지대장이었던 최수보(당시 고려대 2학년) 선배를 따라 길을 나섰다. 출발지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부모들은 전쟁 중에 어린 자식을 군에 보내야 하는 절절함이, 학도병들은 유난히 추웠던 그해 12월 통영까지 500㎞ 거리를 매일 25㎞씩 20일을 걸어야 하는 막막함이 겹치면서 모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인천은 이듬해 1월 초 또다시 북에 점령당했다.1950년 12월 하순의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처음 인천에서 출발할 당시 4000여명에 이르던 행렬은 안양, 수원을 지나면서 절반으로 줄었다.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돌아간 것이다. 칼바람을 맞으며 추풍령 고개를 지날 때에는 굶거나 얼어 죽어 가는 국민방위군 행렬을 만났다. 길가에 나뒹구는 국민방위군 시신이 허다했지만, 땅이 꽁꽁 얼어 묻어 줄 형편이 안 됐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40세 미만 제2국민병역으로 조직됐으나 운영이 미숙해 1·4후퇴 때 부산으로 걸어서 철수하다 아사자·동사자·병자가 약10만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참한 모습을 본 이씨 등 일행은 국민방위군 입소를 포기하고 해병이 되고자 마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중학교 4학년(현 고1) 이하는 체력검사에서 대부분 탈락했다. 할 수 없이 마산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1951년 1월 10일 천신만고 끝에 부산진초등학교에 임시로 문을 연 육군제2훈련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거부됐다. 우여곡절 끝에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는 편법으로 입대했다. 같은 달 31일 군사 기본훈련을 마친 이씨는 공병학교로, 조순범은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가면서 헤어지게 됐다. 이씨의 형은 해병이 됐으나, 얼마 안 돼 질병으로 귀가했다. 이씨는 1954년 12월 5일 만기 전역했다.●李씨, 장남 권유로 소년병 참전과정 기록 참전 증서를 받아 든 후 이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학생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전우들이 그리웠다. 그러던 1996년 7월 어느 날 장남인 이 원장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들은 “아버지 제가 도와 드릴 테니 모두 만나 보고 그분들의 참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20만원이 든 봉투와 카메라, 수첩, 소형 녹음기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아무도 관심 없는 인천 소년병에 대한 얘기를 더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6·25 참전 인천 학생들이 진술한 녹음테이프와 인터뷰 수첩, 참전 사진과 제대증, 교육필증 등 참전 관련 각종 공문이 점점 쌓이면서 이 원장은 때로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기도 했다. 이 원장은 부친에게서 듣기만 했던 6·25 참전 인천 지역 학생들이 수천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전사자도 2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낸 뒤에는 의무감마저 생겼다.●참전사 4권 출판… 향후 10권까지 계획 1951년 1월 31일 이후 소식이 끊긴 옆집 후배 조순범의 전사 사실을 알게 된 건 6·25 참전 학생인 변광선(인천상업중 4년) 선배가 제공한 자료에서였다. 1998년 4월 서울 국립묘지를 찾은 이씨는 조순범의 묘비를 쓸어 안고 “너는 전쟁터에서 죽고 나는 살아 돌아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됐구나”라며 통곡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아들 이 원장도 눈물을 쏟았다.인천학도의용대 남동지대장을 맡아 중학생 50여명을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최수보(별세)씨는 1997년 7월 7일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단 1명의 낙오도 없이 후배들을 데리고 부산통신학교로 갔다. 그는 대학생이라 훈련소 현지에서 장교 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자신이 데려간 어린 후배들과 함께 사병으로 복무하며 그들을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 이씨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나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어린 중학생 대원들을 잘 보호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고했다. 50여년 세월이 흐른 뒤 참전 인천 지역 학생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은 실마리만 있어도 무조건 달려갔다. 그곳에서 작은 정보라도 얻으면 그것으로 또 다른 연결점 찾기를 반복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발품을 판 결과 2500여점에 달하는 6·25 참전 인천학생들과 전사학생들의 흔적이 담긴 증서·인쇄자료·훈장증·전사 통지서 등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이 자료들을 모아 2004년 12월 자신의 병원 건물 1~2층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아들 李원장 “전후세대 전쟁 참뜻 이해했으면” 참전관은 추모기억추억 등 3개의 테마공간으로 이뤄졌다. 이 원장은 “참전관이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가 전쟁의 참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중순 약 10억원을 들여 대로변 5층 건물 1·2층 연면적 660㎡ 규모로 확장 이전해 새로 문을 연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은 인천 학생 참전 역사 기록사업은 책으로도 펴낸다. 1996년 만든 편찬위원회가 2000여명의 참전 과정과 전사자 208명에 대한 모든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7년 첫 번째 책을 출판한 뒤 2013년 4권까지 나왔다. 앞으로 총 10권까지 제작할 계획이다. 오늘도 이씨는 이규원치과 1~2층에 마련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에 들어선다. 먼저 출근한 아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면 이씨는 “감사합니다” 하며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장남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아들은 “에이, 아버지~” 하며 멋쩍어한다. 그런 부자를 바라보는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 오른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김공춘 국가무형문화재 탕건장 명예보유자 별세

    김공춘 국가무형문화재 탕건장 명예보유자 별세

    김공춘 국가무형문화재 제67호 탕건장 명예보유자가 지난 3일 별세했다. 102세. 고인은 1925년부터 고모 김수윤에게 탕건 짜는 기술을 배워 제주에서 활동해왔다. 1980년에 탕건장 보유자로 인정됐고 2009년 명예보유자 인정 전까지 탕건 제작 기법의 보존과 전승 활동에 헌신했다. 탕건(宕巾)은 조선 시대 사대부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갓 아래 받쳐 쓰던 모자의 일종으로, 탕건장은 가느다란 말총을 섬세하게 엮어 탕건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창선 씨 등 1남 3녀가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별세 직전까지 매일 진료… 94세 ‘최고’ 의사 잠들다

    별세 직전까지 매일 진료… 94세 ‘최고’ 의사 잠들다

    ‘사랑으로 병을 나을 수 있다’는 지론으로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했던 국내 최고령 현역 여의사 한원주(94) 남양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경기 남양주 매그너스요양병원과 유족 측은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지난달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5일 밝혔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한규상)와 독립운동가 어머니(박덕실) 사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해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남편과 미국으로 유학 가 내과 전문의를 딴 뒤 귀국해 개업의로 일했다.활발하게 병원을 운영했으나 약 40년 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병원을 정리하고 의료선교의원을 운영하며 영세민과 노숙인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돌봤다. 수십년간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8년 의료선교의원에서 은퇴했지만 남양주시 매그너스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을 맡아 지난달 7일까지 직접 환자를 진료했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요양병원의 의사로 일하는 것을 시작했고 별세 직전까지 매일 1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다.그는 “사랑, 관심, 배려만으로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며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했고 1주일에 한번씩 환자들에게 건강 강의를 꼭 진행했다. 고인은 말년을 헌신한 병원에 입원해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내다가 영면에 들었다. 고인이 오래 생각해온 마지막 뜻이었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모든 직원의 정신적 지주였던 원장님께서 돌아가셔서 갑자기 어깨가 다 무너진 것 같다. 환자분들도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원장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반듯한 모습으로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셨다”면서 “병상에서 ‘원장님’하고 불러드리면 눈을 크게 깜박이셨으며,조용히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고 울먹였다. 고인은 별세 전 자녀들과 영상통화 당시 고요한 표정으로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단 세마디를 남겼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부고] 김승중씨 부친상, 김진석씨 모친상

    ■ 김승중(메트로신문 부국장)씨 부친상 △ 김용규(전 수원시부시장)씨 별세, 김승중(메트로신문 유통&라이프부 부국장)·김경중(PI첨단소재 차장)·김철중(수성이앤지 부사장)·김혜중씨 부친상, 박시혜영(수디자인커뮤니케이션 대표)·오경화·황란이씨 시부상, 5일 오전 2시,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5호실, 발인 7일 오전 7시. 031-219-4601 ■ 김진석(TJB대전방송 충남북부지사장)씨 모친상 △ 박정희(대전 성심보육원 초대원장)씨 별세, 김진석(TJB대전방송 충남북부지사장)씨 모친상, 4일 오전 10시, 대전성모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6일 오전 10시, 042-220-9971
  • [부고] 여경구씨 모친상, 최현섭씨 별세, 안경호씨 모친상

    ■ 여경구(한화생명 경인지역본부장)씨 모친상 △ 오세순씨 별세, 여경구(한화생명 경인지역본부장)씨 모친상, 4일, 남양주 나눔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6일, 장지 강원도 철원군 목련공원, 010-6315-8841 ■ 최현섭(전 한국생태학회 회장)씨 별세 △ 최현섭(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전 한국생태학회 회장)씨 별세, 최수창(알레그로 마이크로시스템 수석 디자인 엔지니어)·최수만(에쓰씨케이 상무)·최수영(산업디자이너)씨 부친상, 2일 오후 6시5분,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40분, 장지 경기도 남양주시 천주교소화묘원. 02-2030-7902 ■ 안경호(전 동서식품 상무)씨 모친상 △ 최광숙씨 별세, 안경호(전 동서식품 상무)씨 모친상, 3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 발인 6일. 010-4327-8102
  • 文대통령, 이효재 교수 별세 ‘애도’...“민주화 지대한 역할”(종합)

    文대통령, 이효재 교수 별세 ‘애도’...“민주화 지대한 역할”(종합)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사회학자인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위터·페이스북 등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17년 청와대 녹지원에 한 번 모신 것이 마지막이 됐다”며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효재 선생님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셨다”며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 크게 상심해 낙향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2017년 10월23일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이재경 전 이화여대 교수, 김희은 여성사회교육원장과 함께 청와대 상춘재를 관람했다. 이 교수의 상춘재 방문 소식을 전해 들은 문 대통령은 수보회의를 마친 뒤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당시 이 교수는 문 대통령에게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되었으니 이제 통일에 힘써달라”고 주문했고, 문 대통령 내외는 이 교수의 손을 맞잡으며 “건강에 유의해달라”고 각별히 당부한 바 있다. 호주제 폐지 등 여성운동 선구자 이효재 선생은 이날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치하는 것을 이끌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했다.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같이 쓰기 선언,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 여성 50% 할당제 등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학살과 관련한 시국 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했다. 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구성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교수 별세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교수 별세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한국 1세대 여성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별세했다. 96세.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58년 모교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광주 학살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운동가로서도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했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한편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에 참여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노력도 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이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모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효재 선생님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면서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 실패했을 때 크게 상심해 낙향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2017년 청와대 녹지원에 한 번 모신 것이 마지막이 됐다.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딸 이희경씨, 동생 은화(전 이화여대 교수)·효숙·성숙씨, 올케 이부자씨가 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장으로 고인을 배웅하기로 했다.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 마련됐다. (055)214-1910.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명예교수 별세...정치권 애도 물결

    ‘한국 여성운동 선구자’ 이이효재 명예교수 별세...정치권 애도 물결

    정치권이 여성학·사회학자이자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기틀을 닦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 별세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4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1세대 여성운동가 이 교수님께서 오늘 우리 곁을 떠나셨다”며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은 행동하는 지성이셨다. 국내에 여성학을 처음 도입하고 분단사회학을 개척하셨다”며 “또한 부모성 함께 쓰기 1호 선언,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50% 여성 할당,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남북 여성 교류 등을 주도하셨다. 해직교수협의회장으로서 군사독재에 저항해 싸우기도 하셨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며 “선생님 같은 선구자들이 계셨기에 우리 역사가 이만큼이나마 진전했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의 지성과 용기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선생님께서 평생 소원하신 성평등의 대한민국,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능력만큼 성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가 선뜻 나서지 못하던 시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선 분”이라며 “당신은 우리시대의 양심이자 한평생 평등을 위해 살아오신 실천가이셨다. 당신의 헌신적인 삶이 있었기에 한국사회는 이 만큼 변해왔다”고 애도했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고인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관련한 인연을 언급하며 “제 남은 생애 아무 욕심이 없다. 선생님이 이루고 싶었던 그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도 “인생의 등불과 같던 이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며 “선생님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가겠다”고 했다. 야권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 교수님의 뜻을 이어받아, 여성들의 실질적인 지위향상은 물론 여성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또한 페이스북에서 “여성의 인권에서 더 나아가 국가의 약자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말 모든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앞장서 길을 내신 분”이라며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은 고인이 내디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성장해왔다”고 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학과 개설을 이뤄낸 대한민국 원조 페미니스트로서 평생을 여성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신 이이효재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라며 “제가 국회의원이 처음 되었을 때, ‘당당하고 아름다운 정치인’이 되라는 격려말씀은 늘 설렘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이이효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한편, 이이효재 선생은 이날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77년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설치하는 것을 이끌었으며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초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한국여성사회교육원 창설 등 학자이자 여성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했다.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 같이 쓰기 선언,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 여성 50% 할당제 등을 이끌었다. 1980년에는 광주 학살과 관련한 시국 선언으로 교수직에서 해임됐다가 복직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구성하고 1991년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드는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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