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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故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 연보

    1932년 8월 17일(음력 7월 16일). 대구 출생 1951년 7월. 경북고 졸업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 졸업(11기), 육군 소위 임관 1968년 6월.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중령) 1971년 11월. 보병 제21연대장(대령) 1974년 10월. 제9공수특전여단장(준장) 1979년 1월. 보병 제9사단장(소장) 1979년 12월. 수도경비사령관(소장) 1980년 8월. 국군보안사령관(중장) 1981년 7월. 전역(육군대장), 정무 제2장관 1982년 3월∼1986년 5월.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 1987년 8월 민주정의당 총재 취임 1988년 2월. 제 13대 대통령 취임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회선언 1988년 10월. 미국 방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89년 2월. 조지 H.W. 부시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1990년 5월.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 1990년 12월. 소련 방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3년 2월. 대통령 퇴임 1995년 11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 혐의 구속수감 1997년 4월. 대법원 징역 17년 확정 판결 1997년 12월. 특별사면·출감 2006년 3월. 을지무공훈장 등 11개 서훈 취소 2021년 10월26일 별세
  • [속보] 노태우 전 대통령 지병 악화로 별세…89세

    [속보] 노태우 전 대통령 지병 악화로 별세…89세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89)이 26일 숨졌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씨는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 [포토]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포토]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1년 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 대장 전역식. 2021.10.26 연합뉴스
  • [속보]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속보]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태우 씨는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 안중근 의사 유족도 끝까지 가난과 병마 삼일장도 못 치렀다

    안중근 의사 유족도 끝까지 가난과 병마 삼일장도 못 치렀다

    보훈수당 50만원·기초연금으로 생활양천구 임대아파트서 거주하며 투병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 박태정씨가 91세 나이로 별세했다. 25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정근 지사의 며느리 박씨가 지난 23일 숨을 거뒀다. 고인은 고령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지난달부터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았다. 고인은 국내에 거주하는 안 의사 형제의 가족 중 안 의사와 가장 가까운 유족으로 알려졌다. 안정근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차장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북간도 파견위원으로 독립군 통합운동에도 힘썼다. 광복 이후인 1949년 중국 상하이에서 숨졌다. 박씨는 가난과 병마와 싸우느라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장례를 치를 여유가 없어 이날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뒤 고인을 경기 용인공원묘지에 안장했다. 발인에는 고인의 친인척과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박씨의 남편이자 안정근 지사의 차남인 안진생씨는 해방 이후 귀국한 뒤 해군에 입대해 장교로 복무하다 1960년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안씨는 1980년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 본부 대사로 재직하던 중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임되고 뇌경색으로 1988년 사망했다. 8년간의 투병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가족들은 월세를 전전하다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했다. 박씨 가족들에게 집 한 채를 기부하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갔으면 한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의 두 딸과 손녀 등 가족 네 명은 장녀인 안기수(66)씨가 보훈처에서 받는 수당 50여만원과 박씨의 기초연금 외에는 수입원이 없었다. 박씨는 지난해 낙상 후 건강이 악화돼 요양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안기수씨는 박씨를 간호하다가 올해 3월 66세로 별세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씨의 남은 딸과 그 손녀도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면서 “보훈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 [부고]

    ●서인자씨 별세 정진수(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항수(현대 GBFMS 상무)·혜원씨 모친상 이혜원·송수미씨 시모상 박갑정(BKW 사장)씨 장모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50분 (02)2258-5961
  • [포토] 고 이태원 대표 빈소 조문 행렬

    [포토] 고 이태원 대표 빈소 조문 행렬

    배우 김태훈이 25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의 조문을 마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고 이태원 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지난 24일 향년 83세 일기로 별세했다. 고(故) 이태원 전 대표는 1959년 ‘유정천리’ 제작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장군의 아들’ ‘서편제’ ‘취화선’ 등 기념비적인 한국 영화들을 제작했다. 2021.10.25 뉴스1
  • 故이건희 1주기 추도식 조촐히 열려...흉상도 제막

    故이건희 1주기 추도식 조촐히 열려...흉상도 제막

    25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1주기를 맞아 유족들이 추도식을 엄수했다. 삼성인력개발원에는 이 회장의 흉상도 새롭게 세워졌다. 이날 추도식은 오전 10시쯤 경기 수원 선영에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 유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같은 모습은 추도 행사를 대규모가 아닌 간소한 규모로 갖길 바랐다는 고인의 생전 뜻에 따른 것으로, 더불어 최근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현재 수도권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르면 사적모임으로 분류되는 추도식의 경우 접종 완료자 4명을 포함해 최대 8명까지만 참석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유족 행사에 이어 경기 용인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 설치된 이 회장 흉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이 부회장 외에 삼성 측 사장단 5명만이 함께했다. 이건희 회장 흉상이 삼성인력개발원에 마련된 것은 생전에 고인이 밝혔던 ‘인재제일’ 철학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그룹 차원의 별도 추모행사는 열지 않았지만, 사내 블로그에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또 사내 게시판에는 ‘세상을 바꾼 거인, 고 이건희 회장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으로 12분 분량의 1주기 추모 영상과 신경영 특강 영상을 공개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은 지 6년 5개월 만이었다.
  • 故 이건희 회장 1주기 추도식...이재용 등 가족만 참석

    故 이건희 회장 1주기 추도식...이재용 등 가족만 참석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추도식은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 선영에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약 20분 동안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은 지 6년 5개월 만이었다. 고인은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오른 뒤 탁월한 경영 능력과 안목으로 반도체와 모바일 등 분야에서 ‘세계 일류기업’의 토대를 닦은 경영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날 삼성그룹은 별도의 공식 행사는 열지 않았지만 사내 블로그에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또 사내게시판에는 ‘세상을 바꾼 거인, 고 이건희 회장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으로 1주기 추모 영상과 신경영 특강 영상을 공개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추도식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 한국영화 세계의 ‘별’로 키운 ‘큰 별’ 지다

    한국영화 세계의 ‘별’로 키운 ‘큰 별’ 지다

    ‘서편제’ ‘취화선’ 등 10여편 제작한 거목임권택·정일성 감독 합 맞춘 ‘거장 트리오’ 지난해 낙상사고 후 입원 치료 중 눈감아건설업 하다 극장인수하며 영화계 입문‘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을 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거목 이태원 전 태흥영화사 대표가 24일 별세했다. 83세. 태흥영화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이 전 대표는 1938년 평양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때 가족과 떨어지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에서 상경한 뒤엔 ‘조직’에 몸을 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4년 건설업체를 설립해 경영하다가 1974년 의정부 극장을 인수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그해 영화 배급사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상영과 배급에서 동시에 성과를 이뤘다. 영화계에서 자신감을 키운 그는 태창영화사를 인수하고 1984년부터 태흥영화사로 개명해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까지 훗날 ‘영화계 거장’으로 이름을 남긴 셋이 의기투합해 처음 제작한 영화 ‘비구니’는 불교계의 극심한 반발로 제작이 무산됐지만, 태흥영화사의 제작은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이장호 감독의 ‘무릎과 무릎사이’(1984)와 ‘어우동’(1985),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연이어 흥행했다. 1989년 제작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그해 국내 영화상을 휩쓸고,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이 전 대표의 이력은 “무한한 신뢰”를 보낸 임권택·정일성 감독과 함께하면서 빛을 발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장군의 아들’(1990), ‘축제’(1996), ‘취화선’(2002), ‘천년학’(2007)까지 10여편 가까이 제작하면서 한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렸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보여 준 ‘서편제’(1993)는 서울에서 처음 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종로 단성사에서 3개월간 상영을 이어 갔다. ‘춘향뎐’(2000)으로는 이 전 대표와 임 감독이 꿈에 그리던 칸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고, ‘취화선’으로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전 대표는 1988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 1994~1997년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지냈다. 영화계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3년엔 백상예술대상 영화 특별상을 받았다. 영화 ‘공정사회’로 제35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이지승 감독이 그의 아들이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26일 오전 10시.
  • [부고]

    ●김경림(전 외환은행장)씨 별세 김수연씨 남편상 김준환(금융감독원 국장)·승환(LG유플러스 팀장)·지환(서강대 교수)씨 부친상 김지희(외교부 공사참사관)·지미숙(LG유플러스 책임)·박지인(연세소울정신과 원장)씨 시부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02)3410-6914 ●홍월자씨 별세 최성은(SC제일은행 이사)·열준(현대로템 책임연구원)·열수(우진제어기술 이사)씨 모친상 백강녕(잡스엔 대표이사)씨 장모상 이순주씨 시모상 23일 강릉 동인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30분 (033)650-6165 ●이수미(하남 풍산초 교사)씨 별세 나윤배씨 부인상 나상훈씨 모친상 이재훈(KBS 개그맨)·철훈(JYP엔터테인먼트 중국지사 대표)씨 누님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20분 (02)3010-2000 ●김문호(전 제주지방검찰청 수사과장)씨 별세 김대익·대영(제주일보 편집국장)·양희씨 부친상 23일 부민장례식장, 발인 26일 (064)744-4444 ●한근환씨 별세 김원준(경기남부경찰청장)씨 장인상 24일 고려대 구로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10분 (02)857-0444 ●송대호씨 별세 송영상(유진투자증권 감사총괄)·영희·영무(국민건강보험공단 부장)·영선씨 부친상 이두식(제주대 수의과 학장)·김홍표(한국원자력연구원 부장)씨 장인상 정명희·박은규(율현초 교사)씨 시부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30분 (02)3010-2000
  • ‘한국 영화계 거목’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 별세

    ‘한국 영화계 거목’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 별세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을 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거목 이태원(83) 태흥영화사 전 대표가 24일 별세했다. 태흥영화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아들이자 영화제작자인 이효승씨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지난해 5월쯤 낙상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 이 전 대표는 1984년에는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다수의 영화를 제작하며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었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시작으로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등을 제작하며, 임 감독과 깊은 인연을 쌓았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제작한 영화는 임 감독의 ‘하류인생’(2004)이다. 1990년대에는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또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1994), 은관문화훈장(2002),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6일 엄수된다.
  • [부고] 김원준(경기남부경찰청장)씨 장인상

    △ 한근환씨 별세,김원준(경기남부경찰청장)씨 장인상=24일,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장례식장 202호실,발인 26일 오전 5시 10분,장지 충북 청주 선산. 02-857-0444
  • 95세 영국 여왕, 하루 입원후 퇴원…“건강 좋아”

    95세 영국 여왕, 하루 입원후 퇴원…“건강 좋아”

    올해 95세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병원에 입원해 하룻밤을 보낸 뒤 퇴원했다고 버킹엄궁이 21일(현지시간) 밝혔다. BBC 등에 따르면 버킹엄궁은 “여왕이 며칠간 휴식을 취하라는 의료진 권고에 따라 20일 오후 검사차 입원했다가 21일 점심 때 윈저성으로 돌아왔으며, 여전히 건강 상태가 좋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버킹엄궁 관계자를 인용해 여왕이 이날 오후부터 출근해 가벼운 업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버킹엄궁은 여왕이 방문한 병원이 어디인지,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입원 사유를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코로나19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당초 북아일랜드 10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20∼21일 1박 2일 일정으로 북아일랜드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의료진 조언을 받고 일정을 취소했다. 궁은 “여왕이 앞으로 며칠간 휴식하라는 의료진의 권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1952년 왕위에 오른 영국 최장수 국왕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내년에 즉위 70주년을 맞는다. 로이터에 따르면 여왕이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은 2013년 위장염 증세를 보였을 때로 추정된다. 그는 2018년에는 백내장 수술을, 2003년에는 무릎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와 70년 넘게 해로한 남편 필립공은 지난 4월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부고]

    ●박수경(전 한일은행 지점장)씨 별세 박미영·중현(한미약품 상무)·진효·선영·중태(부산 기장군 문화관광과 생활체육팀장)씨 부친상 최종술(영성냉동 공조부장)·이정무(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씨 장인상 김효미·고경희(SC제일은행 대리)씨 시부상 21일 부산서호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30분 (051)949-1025 ●최순남씨 별세 이만의(전 환경부 장관)씨 장모상 21일 전남 곡성군 곡성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10시 (061)362-7575
  • [부고] 김창남씨 장모상, 이경훈씨 모친상

    ■ 김창남(서울파이낸스 금융부장)씨 장모상 △ 이인희씨 별세, 김연규씨 부인상, 김선영·김은영·김은정(서울 영등포구 주무관)씨 모친상, 김인구(㈜큰길 차장)·김창남(서울파이낸스 금융부장)·변영훈(경기도 포천시 주무관)씨 장모상, 20일 오후 8시20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9호실(21일 오전 9시30분 입실 예정), 발인 22일 오전 11시30분, 장지 인천 연수구 흥륜사 정토원 02-6986-4459 ■ 이경훈(윤영덕 국회의원 보좌관) 씨 모친상 △ 김자순 씨 별세, 이경훈(윤영덕 국회의원 보좌관) 씨 모친상, 2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장례식장 3호실, 발인 22일 오전 6시. 031-923-7000.
  • 파월 “北 김정은, 그 작은 얼간이? 절대 공격 못 해”

    파월 “北 김정은, 그 작은 얼간이? 절대 공격 못 해”

    골수종과 파킨슨병을 앓다 코로나19 돌파 감염으로 인해 별세한 콜린 파월(84) 전 미국 국무장관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북관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지난 7월 파월과 인터뷰했던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인 밥 우드워드가 19일(현지시간) 그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첫 흑인 합참의장이자 국무장관이던 파월 전 장관은 42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외교 현안에 관한 고언을 쏟아 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파월 전 장관은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는 길을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의 우위를 과시했다. 그는 이어 “(미국을 선제공격할 경우) 갈등의 결과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란과 북한은 우리의 적이 될 수 없고, 이란도 마찬가지”라면서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파월 전 장관은 또한 중국 등을 포괄한 지정학적 차원의 문제로 대북 문제를 다뤘다. 그는 “중국은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을 원한다”면서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시작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작은 얼간이(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 그는 ‘자폭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장악 이전에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파월 전 장관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탈레반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백명을 갖고 있다. 우리는 아프간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미군은 궁극적으로 (아프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이 내가 철군에 반대하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 “지금 류성룡 같은 정치인 있습니까”

    “지금 류성룡 같은 정치인 있습니까”

    ‘인간 서애…’ 책 펴낸 후손 유창하씨“백성 위해 선조 뜻 거스른 서애처럼국민들 위해 목숨 거는 사람이어야”“지금 정치인 중에 류성룡 같은 이가 있습니까?” 유창하씨는 최근 출간한 저서 ‘인간 서애 류성룡 이야기’(지식산업사)를 소개하며 이렇게 물었다. 조선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에게 병서를 손수 써 준 경제·군사 전략가이자, 학문으로도 으뜸가는 이였다. 임금의 미움을 사 말년에 파직당한 뒤에는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한 ‘징비록’을 남겼다. 초가삼간에서 청빈하게 지내다 별세했을 때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사흘간 조의를 표하도록 했는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루를 더 지내기도 했다. 류성룡의 후손이기도 한 유씨는 5년 전 한 TV프로그램을 보다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학생들이 문제의 답을 맞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지막 문제의 답이 ‘징비록’이었다. 당연히 맞히겠거니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유씨는 문중에서 받은 자료에다가 시중에 출간한 서적과 각종 연구 자료, 도서관 소장 자료 등을 모두 뒤졌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한학자를 찾아가 묻기도 했고, 후손을 만나 틀린 부분을 바로잡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 걸렸다. 책은 정승으로서의 삶,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나눠 썼다. 임진왜란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백성들을 위해 임금 앞에서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던 당당한 재상, 자식들에게 올바른 공부 방법을 알려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책을 모두 읽으면 유씨의 말대로 “현실이라는 바탕에 충효와 실용의 기둥을 세우고, 개혁으로 지붕을 덮어 백성을 위한 집을 지은 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씨는 “애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책을 쓰긴 했는데, 막상 다 쓰고 나니 정치인들이 한 번씩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 표지에 ‘이 시대 류성룡은 어디 있는가?’라는 문구를 붙인 이유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류성룡의 어떤 덕목을 본받아야 할까. 유씨는 두 가지를 들었다. “류성룡은 백성들이 임진왜란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여린 사람이었다”고 한 그는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제사 모시듯 하라’는 류성룡의 말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도 선조가 왜의 침공으로 나라를 중국에 바치고 도망가려 했을 때 류성룡이 목숨 걸고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던 이야기를 덧댔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를 비롯해 정치인들은 백성에겐 한없이 여리고, 옳은 일을 위해선 목숨도 거는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 [부고]

    ●황금하씨 별세 박관우(조선영상비전 영상본부 국장)씨 장인상 19일 서울 청구성심병원, 발인 21일 낮 12시 (02)352-4445 ●신상운씨 별세 김영수(현대씨앤알 경영지원본부장)씨 장인상 19일 대구시민전문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 5시 30분 (053)324-4444
  • “정치인들, 류성룡에게서 덕목 2가지 꼭 배워야”

    “정치인들, 류성룡에게서 덕목 2가지 꼭 배워야”

    “지금 정치인 중에 류성룡 같은 이가 있습니까?” 유창하씨는 최근 출간한 저서 ‘인간 서애 류성룡 이야기’(지식산업사)를 소개하며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내며 조선을 지켜낸 재상이다. 충무공 이순신에게 병서를 손수 써서 주기도 한 경제·군사 전략가이자, 학문으로도 으뜸가는 이였다. 임금의 미움을 사 말년에 파직당한 뒤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한 ‘징비록’을 남겼다. 초가삼간에서 청빈하게 지내다 별세했을 때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사흘간 조의를 표하도록 했는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루를 더 지낸 일화는 그가 얼마나 백성에게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류성룡의 후손이기도 한 유씨는 5년 전 한 TV프로그램을 보다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학생들이 문제의 답을 맞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지막 문제 답이 ‘징비록’이었다. 당연히 맞추겠거니 했는데, 틀리는 모습을 보고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유씨는 문중에서 받은 자료에다가 시중에 출간한 서적과 각종 연구 자료, 도서관 소장 자료 등을 모두 뒤졌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친한 한학자를 찾아가 묻기도 했고, 후손을 만나 틀린 부분을 바로잡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이 걸렸다.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정승으로서의 삶, 2부는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부마다 10개씩 꼭지를 두고, 꼭지마다 관련 읽을거리를 붙였다. 임진왜란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백성들을 위해 임금 앞에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던 당당한 재상, 자식들에게 올바른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진다. 책을 모두 읽으면 유씨의 말대로 “현실이라는 바탕에 충효와 실용의 기둥을 세우고, 개혁으로 지붕을 덮어 백성을 위한 집을 지은 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기자생활 25년 공력으로 쓴 터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유씨는 “애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책을 썼지만, 막상 다 쓰고 나니 정치인들이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책 표지에 ‘이 시대 류성룡은 어디 있는가?’라는 문구를 붙인 이유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류성룡의 어떤 덕목을 본받아야 할까. 유씨는 2가지를 들었다. “류성룡은 눈물 많고 마음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임진왜란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 모시듯 하라’는 말을 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정치가는 그저 여리기만 해선 안 됩니다. 선조가 왜의 침공으로 나라를 중국에 바치고 도망가려 했을 때 류성룡은 목숨 걸고 ‘아니되옵니다’를 외쳤습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를 비롯해 정치인들은 백성에겐 한없이 여리고, 옳은 일을 위해선 목숨도 거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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