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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장정자씨 별세, 문수진·태식·혜신·혜림씨 모친상, 김성용(연합뉴스 논설위원)·박병욱(삼성SDS 프로)·박석중(전문건설공제조합 부지점장)씨 장모상 = 9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1일. (02)2258-5963 ●김순열씨 별세, 정창주씨 부인상, 정지훈·지석(삼양홀딩스 HRC장)씨 모친상 = 9일 광주 수완장례식장, 발인 11일. (062)959-4444
  • 송해 동상 앞 국화꽃과 소주…“아버지 그립습니다” 시민들 추모 물결

    송해 동상 앞 국화꽃과 소주…“아버지 그립습니다” 시민들 추모 물결

    송해 별세 이틀째, 시민들 추모 행렬낙원상가 앞 송해길엔 국화꽃과 소주고인 생전 단골 국밥집 찾아 그리움 나눠서울대병원 빈소에도 조문 이어져‘2000원짜리 국밥, 이발소, 지하철, 소주 한잔.’ ‘국민 MC’ 송해(송복희·95)의 삶은 소박한 서민 그 자체였다. 그런 삶을 증명하듯 생전 송해가 자주 오갔던 ‘송해길’에는 9일 거센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송해 선생’ 흉상 앞에는 근조 화환과 흰 국화꽃 100여송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종이컵에 따라 두고 간 소주 한 컵과 해바라기 등 꽃다발도 함께 있었다. 송해길 안내판 옆에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악단장에게 용돈을 뺏어 어린이에게 주시던 재미난 장면이 그립다’는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시민들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헌화를 하거나 송해의 흉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묵념을 하거나 흉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도 많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와 빗속에서 헌화한 이명수(59)씨는 생전 송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휠체어를 타고 폐지를 줍다가 마주쳐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형님이라고 하라’며 장난 섞인 호통과 함께 국밥이나 믹스커피를 사 주곤 했다”며 “장애인 운동선수 활동을 하며 딴 메달을 보여 주니 ‘아들아, 나보다 열심히 살아라’며 칭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에서 왔다는 정춘길(68)씨는 “송해가 60대에 전국노래자랑 MC를 시작해 30년간 꾸준히 진행하는 걸 보고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면서 “라디오를 진행하던 30년 전부터 송해는 나의 롤모델이자 인생 선배였다”고 말했다.생전 송해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2000원짜리’ 국밥집에도 송해를 기억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송해의 단골 메뉴였던 우거지 국밥을 먹은 박영수(66)씨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강서구 화곡동에서 찾아왔다”면서 “우거지와 고기를 뭉텅이로 넣고 막 끓인 2000원짜리 국밥을 먹던 이 시대의 큰 별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은 한 그릇을 처음으로 싹싹 비웠다”고 말했다. 송해가 찾았던 이발소에도 종일 그를 기억하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상록회 사무실 인근의 송해 단골 이발소 주인은 “오늘 오는 손님마다 송해 이야기를 꺼내며 저마다 기억하는 송해를 그리워했다”며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주변 식당과 상점은 모두 다닌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틀째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우 최불암·이순재·전원주, 방송인 전현무·임성훈, 코미디언 김숙, 가수 이미자 등이 오전부터 빈소를 찾았다. 10일 오전 4시 30분 영결식 뒤 운구차는 낙원동 송해길과 여의도 KBS 본관을 들른 뒤 장지인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으로 향한다. KBS에서는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마지막 길을 연주로 배웅한다.
  • ‘D.P. 조석봉’ 배우 조현철, 부친상 조의금 군인권센터에 기부

    ‘D.P. 조석봉’ 배우 조현철, 부친상 조의금 군인권센터에 기부

    배우 조현철이 부친상 조의금을 군인권센터에 기부했다. 군인권센터는 9일 “조현철 씨가 군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센터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며 후원금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단체는 구체적인 기부액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기후원을 중단한 경우가 많아 재정이 어려워졌는데 매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달 22일 별세한 아버지 조중래 명지대학교 교통공학과 명예교수의 장례식 때 받은 조의금을 기부하려 여러 단체를 알아보던 중 고(故) 변희수 하사를 생각, 군인권센터 기부했다. 조씨는 육군 군사경찰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에 조석봉 역으로 출연해 제58회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변 하사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센터는 “소중한 기부를 해주신 고 조중래 교수님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조현절 배우 등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소중한 마음을 무겁게 담아 활동하겠다”고 했다. 조씨의 부친은 교통공학 전문가인 조중래 명지대학교 공과대학 교통공학과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달 22일 7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현 법조인회를 만든 인권운동가 고 조영래 변호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배우 조현철은 지난달 6일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아빠,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했다.
  • [부고]

    ●김영아씨 별세, 송태정(우리금융지주 브랜드전략실 상무)·태승·은경·희경·지경씨 모친상, 윤병옥·임은정씨 시모상, 박재우·박세경씨 장모상 = 7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10일. (02)762-4444 ●류정성씨 별세, 류형근(삼성증권 지점장)·승표(한샘 IT전략팀장)씨 부친상 = 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02)2258-5940
  • “연예계 큰 등대” “한국 대중문화사의 박물관”

    온 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국민 MC’ 송해의 별세 소식에 추모 물결이 뜨겁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대신 맡곤 했던 이호섭 작곡가는 8일 통화에서 “제 인생의 멘토이자 길잡이였고 우리 연예계 전체의 큰 등대였던 분인데, 별세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지난 4일 현장 녹화를 마치고 고인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나눴다는 그는 “녹화 뒤 보고 차원에서 전화를 드렸을 때만 해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셨는데, 2~3일 사이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찾는 분이 많으니 힘내시고 빨리 복귀하셔야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대신 수고해줘서 고맙다‘고 따뜻한 덕담을 건네주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작곡가는 “‘전국노래자랑’은 선생님의 분신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애정을 가지셨다”면서 “선생님은 어려운 시기마다 웃음이라는 코드를 갖고 서민을 위로한 우리시대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했다. ‘전국노래자랑’ 진행과 관련해 멘트와 동선, 카메라 앵글 등에 대해 세세한 조언을 받았다는 그는 또 “낙원동 사무실을 악극단 선후배와 은퇴한 연예계 선배들의 아지 트로 내주고 식사도 챙기셨다”면서 “정도 많으시고 연예인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도 많이 하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평소 고인이 아꼈던 후배로 잘 알려진 MC 이상벽은 “같은 실향민이고 돌아가신 선친과 연세가 같아서 늘 아버지처럼 모셨다”면서 “평소 지하철을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셨고 술 인심이 후해 대폿집에서 밤새워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돌이켰다. 3년간 ‘나팔꽃 인생 60년 송해 빅쇼’의 사회를 맡기도 한 그는 “공연 전 눈을 감고 묵상을 하면서 리허설을 하시는 습관이 있는데,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안 했던 것을 시도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한 자세가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겠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 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1974년 MBC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다는 코미디언 이용식은 소셜미디어에 “천국에 가셔서, 그곳에 계신 선후 배님들과 코미디 프로도 만들고, 그렇게 사랑하셨던 ‘전국노래자랑’을 이번엔 ‘천국노래자랑’으로 힘차게 외쳐달라”고 썼다.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2015)를 집필한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최근 한류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한복판 에 계셨던, 한국 근현대 대중문화사의 박물관”이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 34년 함께 울고 웃다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 34년 함께 울고 웃다

    34년간 매주 일요일 시청자들의 안방을 밝은 웃음과 감동의 눈물로 가득 채운 원조 국민 MC, 죽는 날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은 프로 방송인, 영원한 현역이자 만인의 오빠.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이자 한국 방송사의 산증인이었던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피란 대열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경험을 살려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넌 경험 때문에 예명으로 ‘바다 해’자를 썼다.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 만큼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고, 방송 초기엔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도 활약했다.  그를 영원한 ‘송해 오빠’, ‘일요일의 남자’로 우뚝 서게 해 준 KBS ‘전국노래자랑’과의 인연은 1988년 5월 시작됐다. 공연을 진행하며 남다른 입담을 발휘한 게 평생 직업으로 이어졌다. ‘딩동댕동’ 하는 프로그램 시그널과 “전국~ 노래자랑~”으로 시작하는 송해의 목소리는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의 귀에 생생히 남아 있다. 1994년 개편 때 잠시 하차한 걸 제외해도 국내 단일 프로그램 진행자 중 최장수, 최고령이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 누구보다 큰 애정을 보였다. 현장 녹화 전날 촬영지를 찾아 식당, 목욕탕 등에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무대를 통해 수백만명을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밀고 당기듯 재치 있는 진행, 참가자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모습은 그를 국민 MC를 넘어 만년 오빠로 거듭나게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안고 살던 그는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고향 땅을 밟고 2003년엔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도 촬영했다. 당시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 무대에 오른 송해는 “평양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꿈이 이뤄졌으니 여한이 없다”며 감격했다.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하다가도 카메라 불만 켜지면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것 같다 해서 방송가에서는 ‘작두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지역, 직업, 장애, 성별, 세대로 인한 갈등이 ‘전국노래자랑’에서는 해소된다”며 “이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임 MC를 누구에게 맡기겠냐는 질문을 받고는 “아직도 이렇게 또렷한데 누굴 줘”라고 말할 정도였다.  송해는 생전 구수한 입담으로 대중을 울리고 웃겼다. 사람을 워낙 좋아한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고, 최근까지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소탈한 삶을 살았다.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이 ‘딴따라’다. 나는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는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머니를 북에 두고 온 아픔과 장성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슬픔, 사별한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묻고 늘 웃음을 전하려 애를 썼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참가자를 심사하는 실로폰의 ‘땡’과 ‘딩동댕‘ 소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 대기획으로 방송된 KBS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며 “나 역시 ‘전국노래자랑’에서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부쩍 건강이 나빠지며 프로그램 진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송해는 지난해부터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도 확진돼 걱정을 샀다. 별세 직전인 지난 4일엔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현장 녹화가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재개됐지만, 장거리 이동 부담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 95세 현역 최고령 ‘원조 국민 MC’ 송해 별세

    95세 현역 최고령 ‘원조 국민 MC’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매주 일요일을 알리던 구수한 목소리를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현역 최고령 MC 송해(본명 송복희)가 8일 별세했다. 95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등에 따르면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인근에 살면서 전날까지 저녁 식사를 챙긴 딸이 자택을 찾았다가 선생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988년 5월부터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병원에 입·퇴원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다.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최근 2년여 만에 재개되자 하차를 고심하면서도 스튜디오 녹화를 통해 제한적으로 출연을 이어 가는 방안 등을 제작진과 논의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 중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장례는 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5시. 장지는 부인 석옥이씨가 안장된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이다.
  • 이제는 천국~ 노래자랑…95세 MC 송해 별세

    이제는 천국~ 노래자랑…95세 MC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매주 일요일을 알리던 구수한 목소리를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현역 최고령 MC 송해(본명 송복희)가 8일 별세했다. 95세. 경찰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해 측은 “인근에 살면서 전날까지 저녁 식사를 챙긴 따님이 자택을 찾았다가 선생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1988년 5월부터 인기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최근 들어 고령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이따금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이달 재개되자 프로그램 하차를 고심하면서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일부 참여하는 방안 등을 제작진과 논의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5시. 장지는 부인 석옥이씨가 안장된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이다.
  • 尹 “송해 선생님, 국민 마음 속에 오래도록”… 금관문화훈장 추서

    尹 “송해 선생님, 국민 마음 속에 오래도록”… 금관문화훈장 추서

    故 송해 대중문화예술 발전 공적 기려…95세尹 “송해 선생님 별세 소식 슬픔 금할 길 없어”“국민MC로서 국민에 큰 웃음과 감동 선사”윤석열 대통령이 8일 향년 95세로 별세한 ‘국민 MC’ 송해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송해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특히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국내 대중음악이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고인을 기렸다. “최장수 ‘전국노래자랑’ 진행 맡아 연령 아우르는 대중음악 발전 기여” 대통령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고(故) 송해 희극인에게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고 밝혔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금관은 1등급 훈장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보내 유족에게 조전과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윤 대통령은 조전에서 “선생님께서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가수이자 코미디언으로서, 그리고 국민 MC로 활동하면서 국민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줬다”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에도 힘쓰며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매진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열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지만, 일요일 낮마다 선생님의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며, 삼가 고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조전을 마무리했다.송해, 오전 강남 자택서 세상 떠나최고령 진행자 세계 기네스 기록 등재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 송씨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코로나19로 2020년 3월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뒤에도 스튜디오 촬영으로 스페셜 방송을 진행하며 ‘일요일의 남자’로 시청자들을 만나왔다. 송씨는 ‘전국노래자랑’ 외에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에 출연하고, 드라마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2011년에는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12장의 앨범을 냈을 정도로 출중한 노래실력을 자랑했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부인 석옥이씨는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속보] 尹, ‘국민MC’ 송해에 금관문화훈장 추서…“큰 웃음·감동 선사”

    [속보] 尹, ‘국민MC’ 송해에 금관문화훈장 추서…“큰 웃음·감동 선사”

    故 송해 대중문화예술 발전 공적 기려…95세 尹 “송해 선생님 별세 소식 슬픔 금할 길 없어”“국민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윤석열 대통령이 8일 향년 95세로 별세한 ‘국민 MC’ 송해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송해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특히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국내 대중음악이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고인을 기렸다. 대통령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고(故) 송해 희극인에게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고 밝혔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금관은 1등급 훈장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보내 유족에게 조전과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윤 대통령은 조전에서 “선생님께서는 반세기가 넘는 기간 가수이자 코미디언으로서, 그리고 국민 MC로 활동하면서 국민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줬다”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에도 힘쓰며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매진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열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지만, 일요일 낮마다 선생님의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며, 삼가 고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조전을 마무리했다.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 송씨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부인 석옥이 씨는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여야, ‘국민 MC’ 송해 별세 애도…“국민께 감동 선사”

    여야, ‘국민 MC’ 송해 별세 애도…“국민께 감동 선사”

    여야는 8일 ‘국민 MC’ 송해(95·본명 송복희)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 국회 문체위원장을 지낸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네스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등재된 송해 선생님이 별세했다”며 “새달 10년만에 전국노래자랑 울산 남구편 개최를 앞둔 시점이라 더 황망하다”고 적었다. 그는 “(울산) 남구청장으로 재직하며 전국노래자랑을 몇 차례 유치한 적 있다”며 “그 때 뵌 송해 선생님은 참으로 소탈하고 망향의 아픔도 많고 애국심도 깊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추억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1988년부터 34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했던 송해 선생님.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외침이 귓가에 생생하다”며 “선생님이 우리 사회에 준 큰 울림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도했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무의 나이테처럼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힘의 원동력임을 일깨워주는 분이었다”고 했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의원은 “평생 소원이던 고향 방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해 죄송하다”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평생 기여한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송해는 황해도 재령군 출신이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 MC 송해 선생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조 대변인은 “송 선생님은 존경받는 희극인이자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지킨 최장수 MC로 국민께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며 “한결같이 곁에서 우리를 응원하던 국민MC 송해 선생님, 늘 감사했다”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은 늘 미소 띤 얼굴과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유머로 휴일 오전 우리에게 큰 선물을 선사했다”며 “소탈함에서 묻어나는 인간미로 국민과 애환을 함께 해온 큰 예능인이자 무대 위 존재만으로도 후배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겠다’던 진정한 희극인 송해 선생님, 하늘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국에 도착한 이낙연 전 대표는 “국민에게는 아프게 또 하나의 시대가 갔다”며 “선생님은 국민의 사랑을 받은 명실상부한 ‘국민 MC’면서도 한참 어리고 부족한 저를 마치 친구처럼 대해주셨을 만큼 국민 모두의 어른이자 벗”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출국하기 전에 전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며 “낙원동 ‘송해의 길’ 사업을 앞두고 떠나신 것이 더욱 마음 아프다”고 했다. 민주당 복당을 추진하고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저는 때때로 강연에서 송 선생님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며 “잘하는 출연자에게는 꼬마에게도 큰절하고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격려했다. 자기를 낮추고 버리는 희생,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 송해선생 팽생 동지 아내 석옥이 여사옆에 잠든다

    송해선생 팽생 동지 아내 석옥이 여사옆에 잠든다

    국민 MC 송해 선생이 평생 동지아내 석옥이(1934∼2018) 여사 옆에 잠든다. 석 여사는 대구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 송해 공원 인근에 영면해 있다. 송해 선생은 생전에 “석 여사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고 여러 차례 뜻을 전한 바 있다. 고향이 황해도 재령인 송해 선생은 아내의 고향인 달성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달성군의 명예 군민이자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날 송해기념관 입구 그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본뜬 동상 앞에 방문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선생님 안녕히 잘 가세요”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송해 기념관과 송해 공원을 찾는 발걸음이 점점 늘어났다. 송해 기념관 직원들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아침 출근길에 접하고 울컥했다. 온몸에 찬 기운이 들었다”며 “기념관 방문객들은 송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국민의 아버지’셨다”고 평가했다. 달성군 화원읍에 사는 김영미(56)씨는 “선생님은 우리 고장 사람이 아니었지만 군민들은 모두 고향 사람이상으로 생각한다.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달성군은 장지에 인접한 송해 기념관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하고 이날 저녁부터 조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송해 기념관과 송해 공원은 각각 2021년, 2016년에 달성군이 방송인 송해 씨의 인생과 삶을 모티브로 조성한 관광지다. 송해 공원은 연간 관광객 60만 명이 찾아오는 도심 공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 2000원 국밥·지하철 출근… 일상도 함께했던 국민MC 송해

    2000원 국밥·지하철 출근… 일상도 함께했던 국민MC 송해

    ‘국민 MC’ 송해(95·송복희)가 8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송해는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전국노래자랑’에 하차 의사를 밝혔지만, 전날까지도 사무실에 출근했다 퇴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와 고인의 장례를 ‘희극인장’으로 치르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등 빈소와 장례 절차 등을 최종 조율 중이다. 현역 최고령 MC로 통하던 고인은 1927년 4월27일 연백 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宋福熙).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 먹은 뒤 ‘바다 해(海)’를 사용해 이름을 다시 지었다.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다. 3년8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했다. 그곳에서 사회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경험을 쌓다 동아방송, MBC 등에서 본격적으로 방송활동을 했다. 고인의 상징과도 같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은 환갑이 넘은 1988년 5월 경북 성주 편부터 자리를 지켰다. 34년간 공개 녹화를 통해 무려 1000만 명 넘는 사람을 만났다. ‘일요일의 남자’라는 수식어를 얻고 국민 MC로 인정 받았다. 2003년 8월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보기도 했다. 2003년 8월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보기도 했다. 지난달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고, 지난 3월엔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지난 4일 야외 녹화를 진행했으나 참석하지 못했다.매일 같은 시간 지하철 3호선 송해는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출근 시간과 이동 노선을 외우고 있을 정도로 3호선의 유명인사였다. 송해는 고령에도 30년 넘게 지하철을 이용했다. 자택이 있는 서울 매봉역 인근에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이 있는 낙원동 근처 종로3가역까지 거의 매일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가며 하는 걷기 운동을 최고의 건강관리 비결로 꼽았다. “BMW(버스(Bus), 메트로(Metro·지하철), 워킹(Walking·걷기)) 애호가”를 자처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위해서도 늘 대형 전세버스에 동승해 이동했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과도 격의 없이 소통했하고, 지방 공연 때도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가서 KTX를 타고 이동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국밥과 소주였다. 서울 종로2가 교차로에서 탑골공원 안쪽으로 약 200m 들어가면 나오는 ‘이천원 국밥집’은   그의 단골집이었다. 4000원 이발소를 이용하고 길을 걷다 붕어빵을 사 먹었다. 송해는 ‘매일 소주 3병’이 건강비결이라고 할 정도로 애주가였다. 송해는 “매일 오후 4시 종로에 위치한 목욕탕을 간다”면서 “목욕이 정말 건강에 좋다. 땀구멍이 있지 않나. 몸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노폐물이 쌓여서 그런 것이다. 그럴 땐 땀을 흘려서 노폐물을 빼줘야 한다”라며 ‘전국노래자랑’ 녹화 전날 대중목욕탕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기도 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기분” 추모 네티즌들은 “삼가 고인이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방송계의 큰 별이 졌다” “지난 30년 고생하셨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셔라” “연세가 많아 걱정 많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나실 줄 몰랐다” “많이 그리울 겁니다” “항상 기사 나올 때마다 불안 했는데 덕분에 즐거웠다” “좋은 삶을 사셨나 보다 다들 슬퍼하네요” 등이라고 애도했다. 또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기분이다” “오랜 시간동안 ‘전국노래자랑’을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편히 쉬세요”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네요… 안타깝습니다. 송해 선생님 그동안 많이 행복했습니다” “믿기지가 않는다”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겠다” 등이라고 추모했다.
  • [포토] 전국노래자랑 ‘영원한 MC’ 송해 별세

    [포토] 전국노래자랑 ‘영원한 MC’ 송해 별세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씨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 송씨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 [속보] 송해 95세로 별세…“편히 쉬세요” 추모 물결

    [속보] 송해 95세로 별세…“편히 쉬세요” 추모 물결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95)가 8일 별세했다.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송해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황해도 재령군 출신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아 약 35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8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코로나19로 2020년 3월 ‘전국노래자랑’ 현장 녹화가 중단된 뒤에도 스튜디오 촬영으로 스페셜 방송을 진행하며 ‘일요일의 남자’로 시청자들을 만나왔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60년을 해로한 부인 석옥이씨는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1994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네티즌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송해 선생님 없는 ‘전국노래자랑’ 벌써 너무 허전하다”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신 느낌” “한시대가 저문 느낌” “어릴 때부터 뵙던 분인데” “편히 쉬시길” “‘전국노래자랑’서 보여주신 따뜻한 모습 잊지 않겠다” 등 추모하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 ‘전국노래자랑’ 최고령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전국노래자랑’ 최고령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34년간 진행하던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지난 4일 전남 영광군 법성포 뉴타운 특설무대에서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가 코로나19 이후 2년여 만에 재개했지만 송씨는 장거리 이동 등의 부담 등으로 현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송씨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 대열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 1955년 ‘바다 해’자를 예명 삼아 ‘창공악극단’으로 데뷔했다. 1988년부터 KBS 1TV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왔다. 34년간 공개 녹화를 통해 무려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 [속보] 현역 최고령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속보] 현역 최고령 MC 송해 별세…향년 95세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씨는 이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송씨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상 이유로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후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 [부고]

    ●김영동씨 별세, 김낙현(부산교통공사 고객홍보실 홍보팀장)씨 부친상 = 7일 경북 서안동농협 장례식장, 발인 9일. (054)854-9980 ●김주태씨 별세, 이영호(경남도민일보 자치행정부 기자)씨 장인상 = 7일 진주장례식장, 발인 9일. 010-8654-3960
  • 소니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데이 前사장 별세

    소니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데이 前사장 별세

    일본의 대표적 기업인 소니를 글로벌 기업으로 올려놓은 이데이 노부유키 전 사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 84세. 소니는 7일 이데이 전 사장이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장례식은 가족과 친인척들만 참석해 추후 치러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소니에 입사했다. 소니 사업의 핵심 부문인 음향사업본부장과 홈비디오사업본부장 등을 거친 뒤 1995년 인문계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사장에 취임했다. 10년간 사령탑으로 일하며 소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0년대 거품경제 몰락의 후유증을 앓던 일본에서 소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힘이 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등 소니의 대표 상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정보기술(IT)에 주목한 이데이 전 사장은 ‘디지털·드림·키즈’라는 키워드를 내걸고 ‘바이오’(VAIO) 브랜드로 노트북 산업에 재진출해 큰 인기를 끌었다. 1998년 역대 최대인 5000억엔(약 4조 7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에 취한 채 기술 개발을 등한시하고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TV 등 주력 상품에 대한 기술력에서 삼성전자에 밀려난 뒤 2002년 4월 삼성전자에 시가총액을 역전당했다. 워크맨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한때 인수를 검토했던 애플에 휴대용 음악산업까지 밀렸다.결국 이데이 전 사장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5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소니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과거 성공을 잊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삼성이 앞으로 경험할 어려움은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과거의 성공을 잊을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이데이 전 사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요시다 겐이치로 현 소니 사장은 “고인이 인터넷의 영향력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소니의 디지털화를 적극 추진했던 선견지명은 지금도 놀랍다”고 추모했다.
  • 日 소니 전성기 이끌고 바이오 노트북 만든 이데이 전 사장 별세

    日 소니 전성기 이끌고 바이오 노트북 만든 이데이 전 사장 별세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소니를 글로벌 기업으로 올려놓은 이데이 노부유키 전 사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 84세. 소니는 7일 이데이 전 사장이 지난 2일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은 가족과 친인척들만 참석해 추후 치러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소니에 입사했다. 그는 소니 사업의 핵심 부문인 음향사업본부와 홈비디오사업본부 부장 등 요직을 거친 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인문계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사장으로 취임했다. 소니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의 경영 방식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1990년대 거품경제 몰락의 후유증을 앓던 일본에서 소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힘이 컸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IT에 주목한 이데이 전 사장은 ‘디지털·드림·키즈’라는 키워드를 내걸고 ‘바이오(VAIO)’ 브랜드로 노트북 산업에 재진출했고 바이오 노트북은 큰 인기를 끌었다. 소니는 1998년 역대 최대인 5000억엔(약 4조 7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독이 됐다. 성공에 취한 채 기술 개발에 등한시했던 소니는 TV 등 주력 상품에 대한 기술이 삼성전자에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2002년 4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소니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결국 이데이 전 사장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2005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소니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과거 성공을 잊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삼성이 앞으로 경험할 어려움은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과거의 성공을 잊을 수 있을지에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이데이 전 사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요시다 겐이치로 현 소니 사장은 “이데이 전 사장은 소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특히 인터넷의 영향력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소니의 디지털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그 선견지명은 지금도 놀랍다”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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