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별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확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추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서대문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해차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95
  • [길섶에서] 부부/안미현 논설위원

    아줌마들 사이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말 부부를 하려면 3대(代)가 덕을 쌓아야 한다.’ 처음 듣고는 한참을 깔깔거렸는데 이 말의 ‘허상’을 고발하는 통계가 나왔다. 통계청이 얼마 전 내놓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성의 가족생활 전반 만족도는 52.9%인 반면, 떨어져 사는 여성의 만족도는 41.1%에 그쳤다. 날마다 지지고 볶으며 얼굴을 맞대고 사는 동거 부부의 생활 만족도가 기러기 부부(국내파든 해외파든)보다 높다는 얘기다. 3대 어쩌고는 행복을 감추기 위한 위장전술이거나 함께 늙어가는 남편을 의식한 ‘밀당’(밀고당기기)일 공산이 높다. 왠지 속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다음 통계가 마음에 걸렸다. 부부 10쌍 가운데 1쌍은 ‘떨어져 산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서로 사이가 안 좋거나 건강 때문이라는 응답도 있었지만 대부분(78%)은 직장이나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답했다. 함께 살아야 만족도가 더 높은데도 맞벌이나 아이들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별거 아닌 별거를 하고 있다는 이 땅의 아내와 남편, 그들 이름은 부부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결혼 30주년 앞둔 푸틴, 이혼 공식 발표

    결혼 30주년 앞둔 푸틴, 이혼 공식 발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60) 러시아 대통령이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이혼을 공식 발표했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부인 류드밀라 푸티나(오른쪽·55)와 함께 크렘린에서 열린 발레 공연 ‘에스메랄다’를 관람한 뒤 국영 러시아 24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별거 중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이다. 결혼 생활은 이제 끝났다”면서 “부부가 함께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부인 류드밀라 역시 “(푸틴은) 완전히 자신의 일에 빠져 있다. 우리는 서로 거의 만날 시간이 없었다”면서 이혼 배경을 설명했다. 류드밀라는 또 “대중 앞에 서는 게 정말 싫었다. 비행기를 타는 일도 힘들었다”고 말해 지난 9년간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시절이던 1983년 7월 러시아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승무원 출신의 류드밀라와 결혼해 20대의 두 딸 마리아와 예카테리나를 두고 있다. 푸틴 부부는 두 딸에 대해 “아이들은 이미 성장했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부부는 2012년 5월 푸틴 대통령의 집권 3기 취임식 이후 공식행사에 함께 참석하지 않아 별거설, 불화설 등에 시달려 왔다. 앞서 2008년 모스크바의 한 신문이 푸틴 대통령이 부인과 비밀리에 이혼하고 31년 연하인 올릭픽 리듬체조 선수 출신 의원인 알리나 카바예바와 약혼했으며 심지어 둘 사이에 아기도 있다고 보도하면서 푸틴 대통령과 부인을 둘러싼 루머는 수년간 계속돼 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푸틴 대통령 이혼, 과거 염문설 체조선수 카바예바 때문?

    푸틴 대통령 이혼, 과거 염문설 체조선수 카바예바 때문?

    블라디미르 푸틴(60) 러시아 대통령이 영부인 알렉산드로브나 류드밀라 푸틴(55) 여사와 이혼을 발표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과거 스캔들 상대인 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예바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영부인과 함께 크렘린궁에서 열린 발레공연을 관람한 뒤 러시아 국영 뉴스채널 로시야24를 통해 30년 결혼생활이 끝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1983년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그간 러시아 언론에는 푸틴 대통령 부부의 별거설, 불화설 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최근 대통령 부부는 함께 있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국가 행사에서도 냉랭한 분위기가 감지돼 이미 별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부인 류드밀라 여사는 “우리 공동의 결정이었다. 우리는 거의 만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결혼은 끝났다”면서 “품위 있는 이혼”이라고 말했다. 또 이혼 사유에 대해 “영부인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게 싫었고 비행기를 타는 일도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이혼 발표에 과거 염문설도 원인이 되지 않겠냐는 시각이 조심스레 나오기도 한다. 지난 2008년 푸틴 대통령은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인 알리나 카바예바(29)와의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다. 당시 현지 한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푸틴 대통령과 카바예바가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열애설을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카바예바와 푸틴의 재혼 소식을 보도한 러시아의 한 매체는 폐간되는 후폭풍을 겪기도 했다. 알리나 카바예바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2007년 남성잡지 맥심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 미녀 베스트 100’ 중 9위에 올랐다. 지난 2004년 은퇴 뒤 누드 촬영과 액션영화 출연 등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2007년에는 푸틴 대통령이 속한 통합러시아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전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러시아 대통령, 류드밀라와 이혼…“오랜 별거뒤 품위 있는 이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류드밀라와 이혼…“오랜 별거뒤 품위 있는 이혼”

    블라디미르 푸틴(60) 러시아 대통령이 부인 류드밀라(55)와 이혼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발레 공연을 관람한 뒤 국영 방송인 24TV를 통해 자신들은 갈라섰으며 결혼은 끝났다고 밝혔다. 푸틴 부부는 1983년 결혼했으며 20대인 두 명의 딸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류드밀라와 별거했다는 오랜 소문에 대해서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류드밀라는 “우리 공동의 결정이었다. 우리는 거의 만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결혼은 끝났다”고 말했다. 이혼했느냐는 질문에 류드밀라는 “품위 있는 이혼”이라고 답했다. 이날 푸틴과 류드밀라 모두 법적으로 이혼했는지 명확히 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자신도 모른다고 말했다. 두 사람 이혼사유는 부인 류드밀라의 대중공포증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부부는 2012년 5월7일 세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함께 모습을 보인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올해초 푸틴 막내딸 예카테리나 푸티나는 한국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루머에 휩싸였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습례정과 인민대회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습례정과 인민대회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톈안먼(天安門) 서쪽에는 수백년 된 측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중산(中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끔 들르던 이곳은 쯔진청(紫禁城)이나 톈안먼 광장처럼 관광객이 크게 붐비지 않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습례정(習禮亭)은 명(明)·청(淸)나라 때 외국 사신 등이 황제를 만나는 예절을 가르치던 조그마한 육각정자다. 조선 사신이 ‘황제만세만세만만세’(皇帝萬歲萬歲萬萬歲)라는 푯말을 세워놓고 9품석 맨 끝에 서서 삼궤구고(三?九叩·무릎을 세번 끓고 머리를 아홉번 조아림)의 예를 익히던 굴욕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에서 지난달 24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특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푸대접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같은 시기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온 유기준 의원은 “시 주석을 만나는 시간이 잡히지 않아 (최 특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애를 태우다가 면담 30분 전에 급히 만나러 갔다. 귀국 시점이 몇 번 연기되기도 했다”며 북한의 찬밥론을 제기했다. 그는 북·중 관계에 대해서도 “(방중 기간 동안) 피부로 느낄 만큼 인식이 변하고 있다.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이 북·중은 일반적 국가관계라고 말했다”며 양국의 혈맹관계에 틈새가 벌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부 언론들도 최 특사가 면담한 인사, 시 주석의 지방 시찰, 시 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장면, 면담 후 발표문 일정 등을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 특사 김무성 의원이 환대받은 방중 때와 조목조목 비교하며 그가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찬밥론을 부추겼다. 이런 분석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장거리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 북한의 잇단 도발로 양국이 상당히 소원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던 터라 ‘피를 나눈’ 북·중 관계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갔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북한 특사의 환대 여부를 부각시켜 한·중 관계가 북·중 관계보다 비교 우위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데 있다. 한·중 관계는 북·중 관계와는 달리 이해관계에 기반한 결과물이다.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주고(give) 받는(take) 식의 관계’라는 얘기다.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국이 자동차·조선·전자·정보기술(IT) 등 많은 산업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선진 기술을 보유한 덕분이다. 5~10년 후 한·중 간 기술격차가 없어지거나 역전을 당해도 지금과 같이 ‘화창한’ 한·중 관계가 이어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중 간에는 핵무기·탈북자 등 대북 문제, 이어도와 대륙붕 경계, 서해 불법조업 등 경제적 문제, 고구려사 등의 역사 왜곡 문제 등 파괴력이 큰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현안들은 언제든 한·중 관계에 먹구름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최 특사에 대한 홀대를 마냥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khkim@seoul.co.kr
  • 칸 영화제 감독님들 황금‘입담’상은 없나요

    칸 영화제 감독님들 황금‘입담’상은 없나요

    26일 폐막으로 막바지에 접어든 제66회 칸국제영화제가 황금종려상을 다투는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상대에서 가장 크게 웃을 감독이 누구일지 지구촌 영화 팬들의 눈과 귀가 쏠린 가운데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들의 현장 평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유력 작품들의 윤곽도 잡혀 간다. 인터뷰 홍보 경쟁에 여념이 없는 스타 감독, 배우들의 ‘준비된 한마디’도 연일 영화제의 화제다. 현지의 영화기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평점이 가장 높은 작품은 코언 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1960년대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를 배경으로 활동한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를 모델로 르윈 데이비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연 오스카 아이작은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지만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라고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압축해 지구촌 곳곳에서 영화 기사의 제목으로 부각됐다. ‘위대한 개츠비’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캐리 멀리건과 유명 팝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도 출연한다. 조엘 코언 감독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영화에는 특별한 플롯이 없다”고 전제한 뒤 “(영화 속) 고양이야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축”이라고 너스레를 떨어 개봉을 기다리는 팬들을 더 설레게 만들었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작품들은 아시아권 감독들의 영화다. ‘죄의 손길’을 출품한 자장커 감독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폭력이 우려된다. 평범한 개인이 그런 폭력 속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지는지 말하고 싶었다”고 발언 수위를 높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중국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201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과거’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어디에서 작업을 하든 나는 이란 감독이지만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과 영화 간의 유대”라면서 “모든 영화는 관객 개개인의 것”이라는 명언을 던졌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수상 후보군에 들어 있다. 20편의 경쟁작 중 최저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은 일본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짚의 방패’. 그러나 감독이 현지 인터뷰에서 던진 ‘연출 철학’은 최고 평점을 받고도 남았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내가 가진 것으로 영화를 만들라’고 가르쳤다. 모두들 저마다 색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애쓰지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영화를 만들 때 독창성은 자연히 뒤따른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결혼’ 서태지, 입 열 때마다 ‘블랙홀’

    ‘결혼’ 서태지, 입 열 때마다 ‘블랙홀’

    서태지가 15일 배우 이은성과의 결혼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사생활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신비주의’ 답게 그의 소식이 알려질 때마다 온통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태지 블랙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모든 이슈를 뒤엎을 만한 반응이 따라온다.  서태지는 지난 2011년 배우 이지아와 이혼 소송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서태지아 이지아는 1996년 서태지의 은퇴 이후 1997년 미국에서 생활하며 결혼했고, 지난 2006년 이지아가 이혼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태지의 소속사에 따르면 서태지는 복귀 직전인 2000년 6월부터 이지아와 별거 생활을 했고 이지아가 2006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상급법원에 단독으로 이혼 소장을 제출했다. 미국 법정에 의해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2006년 8월 9일 법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5년 뒤인 2011년 1월 이지아가 서태지에게 5억원의 위자료와 50억원의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열애설조차 없었던 서태지가 이혼소송에 휘말렸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핵폭탄급’ 이슈였다. 게다가 당시 이지아는 배우 정우성과의 열애 사실이 알려진 상황이어서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결국 이지아가 “사생활 침해 등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소송을 끌고가기 어렵다”며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서태지가 직접 발표한 이은성과의 결혼 역시 순식간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있어 서태지의 위력을 다시한번 실감케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파파라치] 손흥민 팀동료 아내가 섹시 비키니 입고…

    [파파라치] 손흥민 팀동료 아내가 섹시 비키니 입고…

    네덜란드 출신 배우 겸 모델 실비 판데르 파르트(35)가 해변에서 환상적인 비키니 몸매를 드러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12일(현지시간) 실비 판데르 파르트가 최근 네덜란드 란제리 겸 수영복 브랜드 ‘훈커묄러’와 진행한 비키니 화보 중 일부를 공개했다. 화보 속 실비는 비키니를 입고 3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탄탄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를 뽐냈다. 실비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이자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의 주장인 라파얼 판데르 파르트의 아내로, 두 사람은 현재 별거 중이며 각자 새로운 애인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라파얼 판데르 파르트는 최근 함부르크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과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사진=더 선(훈커묄러) 인터넷뉴스팀
  •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하지만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년 만에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칠 여유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을 일했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상이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 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 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로 남성 쪽에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200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의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009년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시급 4500원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세가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 남성 쪽에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역지사지(易地思之)/김성수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역지사지(易地思之)/김성수 정치부 차장

    지난 주초 이명박(MB) 정부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와 만났을 때 나온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의전과 소통 부족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그 인사가 대뜸 질문을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최고위원 때 MB가 청와대로 여당(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을 부부동반으로 모두 초청한 적이 있다. 테이블을 둘로 나눠 최고위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앉고 부인들은 김윤옥 여사와 함께 앉았다. 그러면 나 최고위원의 남편은 어디에 앉아야 하나.” 정답은 간단했다. 나 최고위원의 옆자리, MB 테이블에 앉는 게 맞다는 거다. 김 여사 테이블에 동석하면 최고위원 부인들은 물론 나 최고위원의 남편도 서로 할 말도 없고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의전의 기본은 초청 받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지 초청하는 사람이 편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하면 된다. 상식에 근거한 당연한 얘기라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교롭게 며칠 뒤 MB와 관련해 역지사지의 교훈을 되새겨볼 만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황제테니스’ 사건이다. 인터넷 신청을 일시적으로 막는 ‘편법’으로 서울의 한 실내테니스장을 독점 사용했고, 5시간을 이용하고 3시간 요금만 냈으며, 북한 3차 핵실험(2월 12일) 직후 안보위기가 고조된 민감한 시기에 청와대가 사용이 가능한지를 전화로 문의했다는 것이 골자다. “요금도 다 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예약이 된 것으로 알았다”는 해명에도 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지난해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무장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황제골프’를 쳤던 사례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직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을 질타하는 여론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MB가 지시한 일도 아닐 터이니 억울할 것이고 “전직 대통령은 테니스도 치지 말라는 거냐”라는 반박도 나올 수 있다. 별거 아닌 일로 침소봉대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편법 이용으로 일반 서민들이 테니스장 이용 기회를 박탈당했다. 시민들이 불편할 수 있는 일을, 입장을 바꿔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해 사달이 났다. 어설펐고, 잘못된 판단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던 MB의 퇴임사도 무색하게 됐다. 특권 남용이라고 비난해도 딱히 할 말이 없게 됐다. 퇴임 두 달을 맞는 MB는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잔인한 4월’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을 듯하다.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올 각종 악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최대 치적이라고 자부했던 4대강 사업은 국회 및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조사를 받는다. ‘복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및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는 어떤 결말을 낳을지 현재로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역대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정치수용자인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국정을 바라보지 못하고 집권자의 시각에서 독주를 하다 정책 오류, 인사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이 잦았다. 결과적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고 자초한 일이지만 퇴임 이후의 말로는 쓸쓸하고 초라했다. 해외 망명지에서 불행하게 세상을 등지거나 감옥에 잡혀 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버린 대통령도 있었다. 아직까지 우리 정치사에서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도 뒷모습이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sskim@seoul.co.kr
  •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사방이 환했다. 저녁을 먹고 컴퓨터에 앉은 것 같은데 12시간이 금세 지났다. 눈은 퀭했고, 빨갰다. 재떨이의 담배꽁초는 수북했다. 사설 스포츠토토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았다. 간밤에도 그랬다. ‘손해본 것만 만회하면 바로 나와야지’라며 로그인했다. 저축은행에 이어 대부업체까지 손을 벌려 마련한 돈이었다. 반전을 꿈꾸며 클릭을 거듭했지만, 해가 밝았을 때는 다시 빈털터리였다. 3년째 되풀이 된 불면의 밤. 청년은 “돈과 시간, 꿈과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잃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19일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졸업생 김용진(가명·28)씨는 사설토토에 빠져 지낸 지난 3년을 힘겹게 곱씹었다. 시작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사설토토를 즐기는 친구를 보고 재미 삼아 시작했다. 2010년 가을,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때였다. 어차피 학교 수업 끝나면 집에서 매일 야구를 보는 그였다. 딱 5만원 걸었을 뿐인데 짜릿함은 배가 됐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방망이질 한 번이 달리 보였다. 스포츠의 세계가 무한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김씨는 종종 사설토토를 했다. 전보다 흥미진진하게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었다. 중독되기 시작한 건 첫 베팅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여느 때처럼 푼돈을 걸었는데 대박을 쳤다. 프로농구(KBL)·여자농구(WKBL)·미국프로농구(NBA) 몇 경기의 승패, 언더-오버, 핸디캡 등 12개 결과를 모두 적중시킨 것이다. 베팅한 돈 5000원은 채 1분이 안 돼 현금 120만원으로 통장에 꽂혔다. 심장이 펄떡거렸다. 씀씀이는 점점 커졌다. 쉽게 번 돈인 만큼 부담 없이 마구 질렀다. 며칠 뒤에는 농구 언더-오버에 걸었던 100만원이 285만원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초반에 그렇게 몇 번 따니까 힘들게 직장생활 할 필요 없이 사설토토로 돈을 벌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행운에만 의존하는 도박이 아니라 공부하면 정복할 수 있는 주식 같았다고 했다. 사전정보가 있고 그 정보를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본인만 잘한다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 돈벌이로 사설토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변수와 이변이 적고 베팅종류도 많지 않은 해외 축구를 집중적으로 팠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기본이고, 덴마크·핀란드·칠레·크로아티아·파라과이·에스토니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제3세계 축구까지 닥치는 대로 챙겼다. 경기를 본 게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률과 씨름했다. 상대전적, 홈·원정 승률, 주요 선수 컨디션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경기정보가 빼곡한 분석사이트(베트익스플로어러, 오즈포털)와 외국 베팅업체 사이트(벳365, 188벳, 윌리엄힐),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모든 경기의 점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라이브스코어 사이트를 분주하게 오갔다. 공책에 베팅업체별 적중률, 배당률의 흐름·변화주기 등을 빼곡하게 적으며 자기만의 비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추려진 통계 정보로 항상 경기시작 1분 전에 베팅했다. 한 경기에 20만~30만원씩, 확신이 있을 땐 최대 베팅금액인 100만원을 걸었다. 평일엔 6~7경기, 주말엔 10경기를 분석해 다양한 조합으로 베팅했다. 최고 1000만원을 딴 적도 있었지만 바로 베팅에 쓰거나 유흥비로 탕진했다. 몇 번의 ‘잭팟’은 흔히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환희보다 탄식과 분노, 오기가 일 때가 더 많았다. 사설토토는 ‘돈 먹는 하마’였다. 김씨는 인생에서 열심히 해서 정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재수 1년만에 수능점수 120점을 끌어올려 서울대에 입학한 의지의 사나이였다. 분석 결과가 빚나가 돈을 잃을 수록 오기가 생겼다. “내가 호구 같이 돈을 뜯기고 있다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기고 싶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죠.” 야무지게 부딪혔지만 매번 돈을 잃었다. 평범한 대학생 용돈으로는 적자 폭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돈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조회하다 부모님이 김씨 이름으로 붓던 적금을 발견했다.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농협에서 100만원씩 야금야금 빼냈다. 대출한도액 1500만원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끊을 수 없었다. 저축은행에서 금리 25%짜리 대학생 신용대출로 600만원을 빌렸다. ‘잭팟’ 한 번이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갇혔다. 번번이 실패. 결국 김씨는 지난해 11월, 무려 30% 이자를 내야하는 일본계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렸다. 더러는 땄지만, 대부분 돈을 잃었다. 빚은 2500만원까지 늘었다. 김씨는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마시던 소주도 전혀 생각이 안 났고, 연애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때론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하는 자괴감이 들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생활은 피폐했고, 항상 비참했다. 밤일을 하니까 인간관계가 단절됐고, 결국 고독함의 극치를 맛봤다”고 회상했다. 더러운 기분을 잊으려고 더욱 토토에 매진했다. 악순환이었다. 매일매일 그만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사이트 비밀번호는 ‘akwlakr’. 키보드를 한글로 치면 ‘마지막’이란 뜻이다. 굳게 마음먹고 사이트 탈퇴신청을 한 적도 있다. 회원가입된 상태면 자제하기 힘들 것 같아 아이디(ID)를 없애달라고 업체 측에 요청했지만, 계정은 2주가 지나도 안 없어졌다. 끊임없이 유혹메시지가 왔다. 아침마다 후회와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김씨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손을 털게 된 계기는 어머니였다. 적금을 담보로 친동생에게 돈을 빌려주려던 어머니는 김씨가 이미 대출을 받아갔단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2월 말의 일이다. 사실이 발각된 뒤 김씨는 일주일간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와 무릎 꿇고 빌며 “주식에 손을 댔다”고 둘러댔다. 빚 2500만원도 있다고 털어놨다. 순간 위기는 모면했지만, 어머니의 눈물은 내내 잊히지 않았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니까 다 되더라”고 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사설토토를 끊었다. 그는 지난 3년을 어떻게 정의할까. “친구들은 다 취업해서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데, 나는 뭐했나 싶어요. 갈 데까지 갔는데 도박의 마지막은 엄청난 외로움만 남더군요. 공허하고 황폐하고 고독하더군요. 해봤자 별거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앞으론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겁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공정사회’

    그녀는 보험계약자와 상담을 하는 중이었다. 딸이 전화했지만 계약을 꼭 따내고 싶어 딸의 귀가를 챙기지 못했다. 그날, 딸은 집으로 오지 않았다. 파출소에 가보았으나 조금 더 기다려 보라는 말을 듣는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오던 그녀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딸을 길에서 발견한다. 누가 내 딸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별거 중인 남편을 포함해 여기저기 접근해 보았으나, 모두 다 그녀를 미친 여자쯤으로 취급한다. 충격으로 병상에 누운 딸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말을 듣지 않아 제가 벌을 받은 거예요?” 그녀를 연기한 장영남은 얼마 전 ‘이웃사람’이란 영화에서도 10대 딸을 둔 엄마 태선 역할을 맡았다. 그 영화에서는 이웃 여자의 딸이 화를 입는다. 태선은 같은 처지의 엄마이면서도 이웃 여자의 마음에 진심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장영남은 ‘공정사회’에서 전혀 반대의 인물로 변신한다. 성폭력을 당한 딸을 보고 눈이 뒤집힌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공정사회’의 특징은 이런 유의 영화가 보통 그러하듯이 사건의 발단과 복수에 이르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지 않은 데 있다. 이지승감독은 사건과 복수에 방점을 찍기보다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주목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남녀가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온 힘을 다해 남자에게 매달리지만 힘센 젊은 남자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듯 ‘공정사회’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공정사회’에서 눈에 띄는 스타일은 ‘반복’이다. 영화는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분해하고 뒤섞은 다음, 그것을 반복해서 보여주기를 선택했다. 반복되는 장면은 전부 남성의 폭력 및 무관심과 연결된 것들이다. 사이가 틀어진 남편의 심드렁한 얼굴, 사건을 맡은 형사의 안일한 자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폭력적인 모습 등은 영화 전체에 걸쳐 수도 없이 되풀이되며 관객의 머리에 각인된다. 결국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른다. 어떤 점에서 ‘공정사회’는 여성이 처한 상황을 반복 학습하는 영화다. 보기에 편한 방식은 아니지만, 이지승은 ‘거듭되는 폭력적 상황에 지치고 힘을 잃어버린 인간의 고통’에 눈길을 주기를 의도한다. 영화는 동일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아줌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여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원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복수를 마친 그녀는 정작 다른 것을 원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녀도 알고 우리도 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범죄의 악순환을 막을 수는 없어도 폭력과 무관심의 벽에는 함께 맞서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것은 가능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래야 우리의 공정사회가 마련된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 민간인이… 서울 도심서 권총 자살

    민간인이… 서울 도심서 권총 자살

    서울 한복판에서 민간인이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총기의 출처와 입수 경위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2일 신길동의 한 식당 안에서 주인 오모(5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 23분쯤 “오씨가 자살한 것 같다”는 오씨의 전 부인 장모(54)씨의 119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오씨가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발견 당시 오씨는 식당 2층 방에서 머리 우측 관자놀이 부근에 총상을 입고 오른손에 총을 쥔 채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총알은 한 발 발사됐고 탄창에 남아 있는 총알은 없었다. 탄피 한 알과 사용하지 않은 실탄 한 알이 각각 숨진 오씨의 시신 오른쪽과 베개 밑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사고 시간은 새벽으로 추정된다”면서 “문이 안에서 잠긴 데다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이 흐트러지지 않아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말했다. 유서나 메모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씨가 사용한 총기는 미국 제닝스사에서 1980~90년대에 제작한 22구경 모델 J22 권총이다. 가격이 저렴해 유럽 몇몇 국가로 수출되고 미국에서는 호신용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권총이 경찰이나 군에서 보유하거나 관리 중인 총기는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오씨가 사용한 총기가) 밀수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군과 합동으로 입수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오씨 부부는 3년 전부터 별거를 해 오다 사고 전날 이혼 판결 통지를 받았다. 지난 11일 오씨는 전 부인 장씨와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나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장씨가 다음 날 오전 7~8시쯤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지만 오씨는 답이 없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장씨가 오씨가 살고 있는 식당을 찾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119에 신고했다. 한편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서 소지가 허가된 총포는 모두 18만 8000여정이다. 이 가운데 10만 3000정은 개인이 소지하는 총기다. 종류별로는 공기총이 11만 5000정으로 가장 많고, 엽총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오씨처럼 당국으로부터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총기 규모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유정복(현 안전행정부 장관) 의원에게 제출한 ‘2008~2011년 총기소지 허가 및 안전관리 실태’ 자료에 따르면 범죄 경력자 2333명이 엽총 등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범 우려가 있는 우범자 374명에 대해선 경찰은 총기 소지를 불허했다. 무허가 총기가 강력범죄의 잠재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심부름센터? 불륜 뒷조사센터!

    경찰청은 지난 1월 8일부터 심부름센터 불법 행위를 단속해 총 24건에 137명을 붙잡아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적발 사례 중 특정인의 소재나 연락처 등 개인의 사생활을 조사하는 행위가 16건으로 가장 많았다. 차량 등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불법으로 위치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4건, 개인 정보를 불법으로 취득 또는 누설하는 행위 3건이었다. 경찰이 서울을 대상으로 심부름센터 의뢰인 52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 의뢰인 중 42명(80.7%)이 여성이었다. 대부분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해 사생활 조사를 의뢰한 주부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번 단속을 통해 별거 중인 남편의 주소를 알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홈쇼핑업체 ARS 전화와 택배회사 운송장 조회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알아내거나 배우자의 위치를 뒷조사한 일당 등이 붙잡혔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뒤틀린 결혼생활의 상처를 보상받으려 자식에게 병적으로 매달리던 어머니. 전교 1등을 하라며 피칠갑이 되도록 고교생 아들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던 어머니의 시신은 수개월 뒤 별거 중인 아버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조작한 성적표를 내밀다 들통날 것을 우려해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시신을 둔 방의 문틈은 공업용 본드로 봉인됐고, 아들은 수능까지 치른 채 반년 넘게 시체와 동거했다. 2011년 11월, 세상을 뒤흔든 이 사건은 소설가 정찬의 단편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표제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수상작가인 정찬이 내놓은 일곱 번째 소설집에는 ‘세이렌의 노래’ ‘흔들의자’ 등 여덟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표제작 ‘정결한 집’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장치를 통해 소년과 어머니의 마음 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작가는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돌직구’처럼 엇갈린 인간 관계의 비극을 살핀다. 칼꽂이에 꽂힌 네 개의 칼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아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머니는 소년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인가 하면,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이기도 했다.’(19쪽) 현실과 몽상이 만나고 의지와 운명이 엇갈린다. 여자친구 명희가 작은 새처럼 허공으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아들은 처음으로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에게 맞는 것보다 버림받는 게 더 두려웠던 아들은 새벽빛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들던 때, 윤리나 패륜이란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른다. 30년 경력의 작가는 신문 사회면의 한 켠을 짤막하게 장식했을, 무미건조한 사건들에서 하늘을 활공하는 새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몸짓으로 탄탄한 서술을 창조해 낸다. 어쩌면 누락됐을지도 모를 사소한 팩트까지 챙겨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사태,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사건들에도 소설로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트로이의 목마 속에서 깨어난 오디세우스가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 사람들이 붙타 죽은 용산참사의 현장을 낯선 시선으로 내려다보거나(세이렌의 노래), 타워팰리스 66층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인 남편과 어지럼증을 함께 겪는(흔들의자) 식이다.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청년의 목소리도 들린다(녹슨 자전거). ‘오랫동안 모욕당한 사람들만이 갖는 상처’는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다. ‘세이렌의 노래’에선 망루보다 높은 하늘에서 참사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오디세우스의 입을 빌려 망루에 접근하는 경찰 헬리콥터를 현대판 트로이의 목마로 규정한다. 농성자들은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 죽인다는 괴물, ‘세이렌’일 따름이다. 작가는 왜 이런 소설들을 썼을까. 정찬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삶과 연관된 표현의 형식인데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낙 충격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들인 만큼 파헤쳐보고 싶었다”면서 “사건 자체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소설이란 고유의 형식 속에 용해시켜 나름의 미학적 방식으로 소화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또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모욕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이라고 단언했다. ‘사랑이 꿈과 기적 사이의 어떤 것이라면, 모욕은 절망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정치,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존까지 무너뜨린 사람들이 많다”며 “자본이 권력을 뛰어넘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만이 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1968년 6월 16일, 새벽 5시쯤.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김수영(왼쪽)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에 들었다. 선불로 받은 번역료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귀가하던 시인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풀잎처럼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김현경(오른쪽·86)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구술로 김수영의 삶을 풀어놨다. 원고는 조만간 자전적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펴냄)으로 빛을 보게 된다. 에세이에는 생전 김수영이 탈고했던 시구 속에 숨은 창작 배경과 일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김수영은 평소 집에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술만 취하면 무궁무진한 애교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 레퍼토리는 ‘수일과 순애’였다. 하지만 비위가 거슬려 술을 마신 날이면 주사가 심했다. 이혼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열흘간 별거까지 했다.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으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 ‘이혼 취소’는 이런 부부의 삶을 말해 준다. 몸도 돌보지 않고 폭주를 하는 날이면 시인은 자유당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4·19 직후 부정 선거에 대한 칼럼 청탁을 받고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냈는데, 지면에는 김수영 이름 석자만 있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김수영은 “멋있잖아, 이런 게 저항이지”라며 오히려 신이 나 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이종구(1990년 사망)로, 광산을 경영하던 김 여사 부친의 첩의 남동생이었다. 이종구와 김수영은 선린상고 2년 선후배로 일본 도쿄에서 함께 유학한 사이였다. 김 여사는 6살 차이인 김 시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고, 이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시인과 편지로 사랑을 나눴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귀국한 김수영은 ‘마이 솔 이즈 다크’란 한마디 영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1949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김 여사는 부산 피란살이 기간 동안 이종구와 동거한 뒤 김수영과 재결합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서울 성북동집. 김 여사는 “원래 거부 백낙승의 별장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정원 한쪽에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 ‘폭포’를 썼다”고 회고했다. 1968년 발표한 절명시 ‘풀’은 그해 5월 29일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김수영의 삶 속엔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8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넷째 수경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셋째 수강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다 납북됐다. 여동생 김수연씨 내외도 1969년 KAL기 납북 때 북쪽으로 끌려갔다. 김 여사는 현재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살며 김수영의 육필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김수영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미주통신] 오바마, 바람둥이 타이거 우즈와 골프 논란

    [미주통신] 오바마, 바람둥이 타이거 우즈와 골프 논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바람둥이로 이미지가 전락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골프 라운딩을 비공개적으로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1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말 ‘대통령의 날’ 연휴를 맞아 플로리다에 있는 한 유명 골프장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 하지만 이날 골프에는 우즈가 참석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우즈의 전 코치였던 버치 하먼으로부터 골프 레슨을 받는 등 장시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날 모임은 백악관 출입 기자들에게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으며 관련 사진이 하나도 공개되지 않자 기자들이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해 일부는 사생활 보호라는 입장에서 오바마를 옹호하고 있으나 늘 중산층 살리기를 역설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중적인 태도라는 언론의 비난이 거세어지고 있다. 한편, 이번 연휴 기간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는 두 딸과 함께 콜로라도주에서 스키 휴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 언론들은 ‘잠시 별거’라고 비꼬는 등 오바마의 연휴 휴가를 둘러싼 논란이 그칠 줄 모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오바마-우즈 골프 라운딩 논란을 보도하는 미 방송(KTLA)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설날이 서글픈 사람들 2제] 방 한 칸 없는 떠돌이들 “찜방은 마지막 안식처”

    많은 사람이 명절이면 마음의 안식을 찾아 이동한다.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를 고생스럽게 달려 그리운 고향을 찾는 것은 미우나 고우나 가족 때문이다. 하지만 도심 속 찜질방에서 설을 맞는 이들도 있다. 몸도 마음도 찜질방 만한 안식처를 찾기 어려운 이들을 만나 봤다. 7일 서울 성북구의 한 찜질방. 지난해 7월 출소한 김모(47)씨는 한쪽에 마련된 어두운 영화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평생의 절반이 넘는 25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김씨는 출소하는 날 18년 만에 가족을 봤다. 김씨는 “젊어서 나쁜 일은 한 번씩 다해봤다”면서 “그렇게 살고 나니 이젠 가족을 볼 면목이 없었다”고 말했다. 출소 후 갱생보호시설을 전전하다 이곳에 흘러들었다. 그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기는 하지만 그럴려면 집도, 직업도 없어야 한다”면서 “보조금을 타내려고 찜질방 등에 머무는 이들이 많은데 그러다 다시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밤이면 일수를 걷으러 다닌다는 김씨는 ‘장기투숙자 우대 가격’으로 매일 6000원의 찜질방비를 내며 지내고 있다.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장기투숙자는 이곳만 30여 명. 이모(38)씨는 1999년 한 방송사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가수다. 앨범을 내느라 큰돈을 들였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지금은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전국의 밤무대를 떠돌고 있다. 오후 10시쯤 찜질방을 나서 다음날 오전 6~7시까지 노래를 부른다. 시원찮을 때도 월 200만원은 벌지만, 신용불량자인 터라 매달 120만~150만원을 빚 갚아야 한다. 이번 설에도 ‘행사를 뛰느라’ 가족은 찾지 못한다. 이씨는 “찜질방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해 한 달 무료 이용 쿠폰을 받은 적도 있다”며 씁쓸히 웃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최모(32)씨는 전직 경찰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친척집에 머물면서 경찰 생활을 했지만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았다. 심부전증까지 앓게 돼 경찰을 그만두고 지금은 한 방송사의 청원경찰 일을 하고 있다. 눈칫밥을 먹기 싫어 친척집은 뛰쳐나왔다. 최씨는 “6년 사귄 여자친구가 근처에 살아 겸사겸사 찜질방에서 지낸다”면서 “수입은 적지만 맘 편한 게 제일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세상만사가 어지럽게 뒤섞인듯한 찜질방이지만 허모(62)씨에게는 집과 같다. 허씨는 1년 전 만 해도 목수였다. 처가와의 마찰로 가족과 별거를 시작하며 이곳에 왔다. 지금은 인력 사무소에 나가 하루하루 일감을 구해 근근이 산다. 새벽녘 인력사무소를 찾아 떠날 때면 비슷한 처지의 노인 10여명이 무료 배식소를 찾아 찜질방 밖으로 나서는 것을 본다. 허씨가 생각하는 찜질방은 이렇다. “별거 뒤 월세로 혼자 살았는데 쓸쓸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오래 있다 보니 참 이곳 사람들이 더 가족 같네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前초등교사, 사후 야동 1천여편 나와…유족 반응이

    인생의 마무리를 잘 해야한다는 조언이 담긴 황당한 사례가 인터넷상에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매체 뉴스포스트세븐은 10일 “아내와 아이에게 절대로 말하지 못한 비밀이 사후에 밝혀져 꾸준히 쌓아온 신뢰가 땅에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 회사 ‘키퍼스’가 전한 황당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 회사의 요시다 타이치는 “별거하고 있던 부친의 방에서 여성의 속옷과 화장품이 잔뜩 나왔다. 딸은 ‘이런 아버지, 빨리 죽어줘 좋았다.’라고 토할 듯 말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사후, 애인과 사생아의 존재가 발각돼 문제가 되는 일도 많다.”면서 “생전 본인은 상상할 수 없는 물건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요시다에 따르면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남성의 집에서는 1000개가 넘는 야한 동영상이 나왔고 이때 유족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소지품이 언제 ‘유품’이 될지는 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싶지 않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을 어떻게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최근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영화 ‘엔딩 노트’가 개봉해 유품 정리 등 사후 관리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