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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오군란직후 창설 조선신식군대/「친군」 군복 113년만에 햇빛

    ◎한국자수박물관,학계 고증거쳐 첫 공개/두꺼운 청색모직천… 소매에 홍색띠/신분·소속 밝힌 원형 「장표」 앞뒤에 부착/“군복발전사 구명할 중요자료”로 평가 임오군란직후 창설된 조선신식군대인 「친군」병사가 착용했던 군복상의가 1백13년만에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한국자수박물관(관장 허동화)이 소장하고 있다가 9일 학계의 고증을 거쳐 처음 공개한 이 군복은 우리나라 군복변천사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청색바탕의 두터운 모직천에 홍색띠를 소매및 아래단에 댄 이 군복상의 앞·뒷면 중앙에는 지름24㎝의 원형 「장표」가 부착됐다.신분및 소속을 명기한 장표중앙에는 붉은 글씨로 「친군」,위쪽에는 작은 글씨로 「신건좌영」이라고 소속부대를 가로글씨로 표시했다.그리고 오른쪽엔 「우초F대」라고 표기했다.인쇄체인 다른 글씨와는 달리 왼쪽에 붓글씨로 「병정 김기원」이라고 군복의 주인공 이름까지도 밝혀 놓았다. 옷의 형태는 가장자리는 둥글린 깃에 앞길을 왼쪽으로 여며 겨드랑이에서 매듭단추로 고정시키도록만들었다.폼과 진동은 풍성하지만 소매부리는 진동에서 점차 좁혀 마무리해 실용성을 높였다.앞뒤 도련은 10㎝너비의 홍색모직으로 단을 둘렀는데 앞·뒷단 중앙과 옆단에는 여의무늬를 넣어 멋을 부렸다.제작방법은 대부분 손바늘질로 지어졌으나 덧붙인 부분은 재봉틀을 사용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이는 당시 궁중에 재봉틀이 이미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이번에 발굴된 군복의 가치는 특히 「장표」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본래 군복을 소속부대별로 색깔로 구별하고 장표를 사용한 것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 갈 정도로 유서가 깊기 때문이다.그러나 실제 장표가 붙어 있는 군복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군제도는 임오군란진압을 위해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원세개(18 19∼19 16년)의 제안에 따라 고종이 조선군군제를 개편해 만든 군제.원세개는 18 82년8월 당시 조선장정 1천명을 선발,훈련시켰으며 이를 「신건친군」(약칭 친군)이라고 칭했다.이때 훈련받은 부대가 장표에 표시된 대로「신건친군좌영」이다.그러나 친군영제도는 당시 청·일양국을 중심으로한 열강의 부침에 따라 4년도 못돼 다시 개편되었고 18 88년이후는 종전의 고유군복으로 환원됨에 따라 수명을 다한 것으로 돼있다. 조선시대의 군복은 중앙군과 지방군, 군복색깔에 다른 구분법등이 사용되어 왔다.이 군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검은 두루마기에 붉은 소매를 달고 뒷솔기를 길게 째 붉은 안감을 댄 형태의 「동달이」군복에서 보다 간편하고 행동하기에 편리한 형태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군복을 감식한 유희경한국복식문화연구원장(68)은 『지금까지 「친군」제도가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뿐 이들 병사가 입었던 군복에 관한 자료및 실물이 전무한 상태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자료가치가 높다』고 말했다.또 문화재전문위원인 이강칠마사박물관장(67)은 『이번에 발견된 군복은 옷제작당시의 정치적 여건에 의해 비록 중국적 특색을 띠고 있지만 이 시대군복중 유일한 유물로서 우리나라 군복발전사를 규명할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떻든 이 군복은 열강의 흥망에 따라 복제가 바뀌는등 정치적 곡절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 복식사에 비워져 있던 부분을 되찾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항구도시 부산문화 한눈에/시편찬위,지역변천사 소개 착자발간

    환태평양시대를 주도해 나갈 국제항구도시 부산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지역안내지 「부산문화」가 부산직할시 시사편찬위원회에 의해 발간됐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부산포해전」의 승전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이 책은 부산의 자연,역사,문화유산,문화가등으로 구성돼 있다.부산의 역사편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 부산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개관하고 있다.특히 제3장에는 조선시대,임진왜란시기,근대개항기,일제강점기에 걸쳐 다른 어떤 지역보다 외세노출강도가 심했던 부산역사를 심층적으로 기록해 사료가치를 높였다. 또 30여쪽에 달하는 부록편은 부산에 위치한 무대공연장,전시장,화랑가,극단,무용단,음악단,박물관을 비롯해 공공도서관,박물관,문화재,유적지·공원등 부산문화의 현주소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싣고 있다. 이밖에 임시정부청사등 관련 컬러사진과 광복·남포·중앙동등 시내중심가와 서면·전포·대연동등 문화중심가의 안내지도를 곁들인 점도 눈에 띈다.집필은 강대민경성대교수,오건환시사편찬위원등 6명이 부문별로 맡았다. 박부찬부산시장은 발간사를 통해 『이 책이 4백만 부산시민의 애향심을 높이고,국제도시 부산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타지역인에게 제공해줌으로써 부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큰줄기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고대 그리스 조각품/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외출”

    ◎헤리클레스 등 명품 망라… 관람객 밀물 고대 그리스문화의 정수인 조각품들이 미국 도심의 한복판에서 옛명성을 다시 떨치고 있다.워싱턴의 「내쇼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그리스의 기적」이란 조각품 전시회가 그것이다.이 전시회는 특히「민주주의의 여명으로부터 잉태한 그리스조각」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단순히 그리스문화의 생성과 발전과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상황과 문화예술과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과시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전시회는 오는 4월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아테네의 열풍」을 이어가게 된다. 관람객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크게보아 두가지의 소득을 얻을수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변천사를 훑어보는 것이고 또하나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양태를 살피는 일이다. 우선 눈에띄는것은 그리스의수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크리티오스의 소년」.기원전 4백80년쯤의 양식으로 얼굴과 몸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그러나 아쉬운 점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광채를 발하던 소년의 눈이 지금은 뻥 뚫려있다는 것이다.눈에 끼운 장식물이 없어진 때문이다. 기원전 작품보다 월등히 정교해진 조각으로는「헤라클레스」와「아테네」등이 선보이고 있다.대부분 5세기의 작품들이다. 이 두작품은 각각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과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워싱턴의 전시장으로 건너온 것이다. 평민들이 금사과를 헤라클레스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새긴「헤라클레스」와 무기를 들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신을 새긴 「아테네」는 정교하면서도 무게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고대 그리스조각에 대해 문외한들에게도 이번 전시회는 좋은 학습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조각예술이 활기차게 피어날 무렵,때마침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치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귀족인 클레이스테네스는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시민들과 동맹을 구축하고 일련의 민주개혁 조치를 단행했다.이에따라 선거제도가 생겼고 노예와 여자들을 뺀 주민들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졌다. 고대의 조각을 보면서 한쪽으로는 민주주의의 태동을 회고할수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 미국인및 조각예술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이 전시회는 그리스정부에서 거의 모든 재원을 지원했다.게다가 훼손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조각품을 먼곳까지 실어왔다. 현지에서 전시해도 될것을 미국에까지 옮겨올 정도로 대단한 정성을 들인 것은 그리스의 저력을 뽐내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가 고대 그리스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애써 감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아테네예술이 순수한 목적보다는 상징물을 통해 귀신이나 마귀를 쫓기위한 주술및 제식에서 비롯됐기때문에 내용이 폭력적이고 미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안목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민주정치가 꽃핀 뒤쪽에 전혀 다른 부정적 요소가 깔려있었음을 알고 전시회를 찾아야 할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한국청동거울 변천사 한눈에

    ◎청주박물관,선사∼근대 동경 180점 전시 국립청주박물관이 우리나라 청동거울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한국의 동경」특별전을 20일까지 본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 특별전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사용해 온 동경을 한자리에 모아 그 형태및 제작기법의 시대적 변천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동경에 대한 공예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시되고있는 유물은 국보 제14 3호 화순 대곡리출토 청동기시대 동경과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출토 백제시대 동경등 1백28건 1백80점이다. 예로부터 거울은 사물을 비춰볼수 있는 도구로 고안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신령스런 의기로 의미가 확대되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상징적인 무늬가 담겨지고 형태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동경은 뒷면에 기하학적인 집선문을 도안하고 꼭지를 두세개 다는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삼각형 또는 별모양의 윤곽안에 거친 무늬가 채워지다(다뉴추문경)차츰 정교한 무늬로 발전(다뉴정문경)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수입한 한경과 이를 모방한 거울(방제경)이 주류를 이룬다. 고려시대에는 거울의 수입과 국내제작이 모두 활발히 이루어져 다양한 종류가 나타난다.문양은 하나의 꼭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신 어용 화조 인물 신선 시구등을 새기고 있고 형태도 사각형 직사각형 팔각형 꽃잎모양등으로 다채롭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동경의 크기는 커지나 무늬가 간략해져 제작기술이 단순화된다.
  •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20)

    ◎임진왜란때 태극기 단 전선/명 종군화기의 노량해전그림에 원형/중국·왜선과 구별… 국가상징물로 인식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였다.당시 참전했던 명나라의 한 종군화가가 6.5m의 화폭에 시간상으로는 3개월,거리로는 약30㎞에 해당하는 전투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여기에 태극기의 선구적 원형이 나타나 있다.이 태극기는 중국선박과 일본의 선박으로부터 한국의 선박을 구별하기 위해 쓰여진 국가의 상징물이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증거로 보아 한국인은 오래 전부터 태극을 국가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그림속에는 태극 말고도 네 귀퉁이에 구름의 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지금의 태극기 괘의 위치와 일치한다. 이 해전도를 그린 사람의 임무가 종군화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쟁상황을 그대로 그린 것이며 화면에 나타난 전투지역이 실제 노량지역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극기의 기원이 조선 수군의 군기에서 유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1882년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 군선과 상선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있었다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현재 해군사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상장정」은 중국정부가 외국과 맺은 조약,외국사신의 서신등을 모아놓은 것으로 이속에 각국의 국기 59종 중 아름다운 태극기가 수록되어 있다.통상장정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1874년 태극기를 포함한 각국의 국기가 청국에 전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총이아문발신,동치13년(1874)3월9일 미국공사의 서신을 접수하였다.근자에 여러 나라의 대표가 모여서 정한 18장의 기의 양식이 있는데 각장마다 그 그라의 음을 알려준다.이것은 서양에서 선박이 운항할시 그 의사 전달방법을 본따 정한 것이다.우리나라에도 기보 한권을 보내왔으니 잘 살펴 정리해두면 중국배들이 그 방법에 따라 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동치13연5월27일,남북양대신수신』 위글의 내용은 병선과 상선이 항해할 때 국가를 식별하고 의사전달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국제신호서를 미국공사가 청국 총리아문에 전달한 것으로 서신의 성질상 활용부서인 남북양 함대로 재 시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당시 미국은 동아시아를 거대한 무역대상국으로 보고 국제관례상 필요한 국기를 수집하여 그것을 국제신호서에 게재하여 사용하던 중 이미 외교관계가 수립된 중국에 국제신호서를 전달하여 항해시 활용토록 한 것이다. 당시 미국과 우리 나라는 외교관계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태극기를 달고 중국의 항구에 정박한 우리나라 상선에서 태극기를 입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량해전에 나타난 태극기와 통상장정의 태극기는 괘의 모양을 제외하고는 노랑 바탕에 중앙의 태극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태극기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무엇보다도 삼국이 노량해상에 집결하여 국운을 가름하는 전쟁에서 중국·일본함대와 구별하기 위해 선명한 태극기를 우리나라 군선에 게양하였다는 것은 민족 자존의식을 나타낸 것이며 이런 의식이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할 때 노량해전에 휘날린 태극기는 민족 혼을 일깨우는 우리나라의 영원한 표상이 될 것이다.
  • 「조선노동당」 사건 관련/말지 사무실 압수수색

    국가안전기획부는 15일 하오11시45분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 39의13 「말」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최근 북한 「로동당」노선을 따르는 남한내 간첩조직인 「조선로동당 남부지역당」사건과 관련,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이 잡지사 최진섭기자(31)의 소지품과 서적등에 대해 실시됐다.압수수색영장은 서울지검 송민호검사가 신청,서울지법 고영호판사로부터 발부받아 집행됐다. 안기부 요원들은 이날 「말」지 사무실에서 최기자의 기자수첩등 자료 13점과 「북한의 통일정책 변천사」 「민중의 역사」등 34권의 서적을 압수했다.
  • 가을맞이 서양화·조각회원전 “풍성”

    ◎오리진회화전/화집 곁들인 108명 작품 전시/한국조각가전/조각의 변천사·진수 한눈에 국내 서양화단과 조각계를 대표하는 그룹들이 대규모 회원전을 꾸민다. 홍익대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동문들로 구성된 오리진회화협회의 제34회협회전이 15일부터 22일까지 인사동 관훈미술관과 덕원미술관에서 열리며,조각계의 주요작가를 망라한 제8회 한국조각가 협회전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4∼16일)에서 개막됐다. 1963년 9명의 회원으로 출범한 오리진회화협회는 홍익대미술대학의 구심점을 이루는 거대단체로 현재 회원은 1백8명.올해 회원전에는 이들 작가가 저마다 3∼4쪽분량의 카달로그를 직접 제작하여 화집을 출판하고,일본 후쿠오카와 다가와미술관 추천의 일본작가 9명을 명예회원으로 추대하여 작품을 함께 내게 했다. 탈이미지의 형식실험,오브제와 개념주의적 방법의 탐구,새로운 형상과 표현의 방법등으로 변모와 확장을 계속해온 오리진회화협회는 그러나 국내서양 화단내에서 영향력을 너무 떨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받고있다. 현재 회장은 김태호씨(홍익대교수)이며 이두식 서승원 고영훈 윤형재 주태석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다수 회원으로 포함돼있다. 한국조각가협회(회장 최기원)의 회원전은 한국현대조각의 새로운 토대를 모색하며 마련된 특별전이다. 최기원 김영중 김인겸 금누리 전뢰진등 국내조각계의 중진·중견 1백40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한국조각의 흐름과 진수를 접할수있는 귀중한 자리가 되고있다. 그동안 서구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현대조각의 이념과 방법에서 벗어나 자생적 대응들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한다는 의미가 큰 이회원전은 작가마다 2천년대를 준비하는 90년대 조각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자세로 임했다고.
  • 조선시대회화전/고서화감상전/고미술명품전 “풍성”

    ◎조선/정선·이등 등의 진품90점 공개/고서/퇴계·율곡서간문·민화등 다채/당대의 화풍·변천사 본격 조명기회 하한기 화랑가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높은 고미술명품전이 인사동의 두 화랑에서 마련된다. 대림화랑이 15∼25일에 펼치는 「조선시대회화전」과 학고재가 매년 여름에 꾸미는 특별기획 「고서화감상전」(23일∼8월31일)이 그것들로 고서화에 관한 한 오랜 경륜과 식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두 화랑대표가 자신있게 내놓는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양도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고미술품들이 개인 수장고에 묻혀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명품전이어서 고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같다. 대림화랑의 「조선시대회화전」은 화랑대표 임명석씨가 10년전부터 추진해 오다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시대 명서화가들의 미공개작품을 조선왕조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망라하는 것으로 90점이 공개된다. 이중 왕실출신의 화가 이징의 「수묵화조도」,은호 이함의 「쌍응도」,동국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선의 「해주허정도」,조희용의 「백매도」,장승업의 「영모절지도」,김규진의 「장생오우도」등 대부분이 미공개 진품들이다. 미술사가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와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동양미술사)의 고증을 거친 이 기획전은 당대의 화풍과 변천사를 학문적 토대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대림화랑은 또 이 전시회와 함께 태조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화가들의 교유기,작품일지등을 다룬 70쪽분량의 연표와 전시작품의 해설과 원색도판을 실은 2백10쪽의 대형화집 2천부를 발간했다. 학고재의 고서화 감상전은 「여름미술관­품위있는 글씨,소담한 옛그림」이란 제목으로 마련되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특별히 겨냥해서 꾸며진다. 어른은 물론 학생들도 관심있게 고미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아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교훈적인 글씨와 재미있는 내용의 민화들을 주로 장만했다. 출품작은 여섯부류로 구성되어 조선중기에서 구한말,근대에 이르는 화가들의 그림과 조선후기 서예인들의 서예작품과 조선시대 명현 대신 문인들의 간찰,조선후기의 민화,무낙관그림,청나라의 서화등이 망라된다. 1백36점의 출품작중에는 퇴계와 율곡의 서간문에서부터 김옥균 박영효등의 작품,근대6대가인 청전,의재등의 작품,중국화가 장대천등의 작품들이 고루 있다. 옛정취 물씬 풍기는 품위어린 글씨와 소담한 그림속에서 모처럼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근대법원 1백년사」 나온다/대법원,95년 발간 목표로 준비

    ◎1895년 한성재판소 설치이후/사법·재판제도 변천 시대별로 점검/「사법부파동」 유발한 판결문등도 수록 우리나라 법원의 근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엮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1일 법원사편찬실무자회의(간사 윤재윤 서울고법판사)를 열고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사법제도가 도입된 1895년이후의 법원 역사를 총괄한 「법원 백년사」(가제)를 오는 95년에 발간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이를 위해 다음주 안으로 대법원규칙을 새로 마련,김성일 법원행정처차장을 위원장으로 학계·법조계인사를 초빙해 「법원사편찬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편찬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백년사」에서는 구한말인 1895년 을미개혁으로 공포된 재판소구성법에 따라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재판기관인 한성재판소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사법제도와 재판제도의 변천과정을 시대별로 총정리하게 된다. 「백년사」는 특히 시대사 뿐만아니라 각급 법원의 연혁과 「사법부 파동」「법관 서명사건」「박인수사건」등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각종 자료 및 명판결문등도 수록해 사서로서만 아니라 법원자료집으로서도 활용할 수 있게 엮어진다. 대법원이 「백년사」발간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동안 각급법원별로 변천사등을 정리한 책자등이 몇차례 발간되기는 했으나 우리의 사법제도를 포함한 전반적인 법원사를 정리한 책이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이에따라 지난89년부터 각급 법원에 실무자를 지정,기초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대학등에 자문을 구하는 등 준비작업을 계속해 왔다. 처음에는 각급 법원의 연혁과 해방이후의 법원역사만을 실으려 했으나 오는 95년이면 우리나라에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된지 꼭 1백년이 되는 점을 감안,일제치하의 36년이 아무리 질곡과 암흑에 짓눌렸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우리 역사라는 인식아래 이를 모두 포함시켜 「백년사」를 꾸미기로 뜻을 모았다. 대법원은 「편찬위원회」가 발족되는대로 그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등을 정리한 뒤 집필위원을 선정,「백년사」의 집필을 위촉할 예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백년사의 발간은 그동안 한번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근대이후 우리 법원의 역사를 완비한다는데 의미가 이다』고 밝히고 『특히 단순한 홍보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원고의 집필을 가급적 법원인사가 아닌 학자등 외부인사에게 의뢰,엄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감없이 정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대입제도 고치는게 능사 아니다

    ◎「문제지 도난」 이후의 「개선론」 진단/광복뒤 10번 변경… 졸속대증수술 거듭/94년시행 새 제도 지금 손대면 대혼란 서울 신학대학의 문제지도난사건이후 대입제도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입시부정·학위남발등 그동안 나타난 학사부조리를 들어 대입제도를 종전보다 더욱 강화된 국가관리로 해야 한다는 소리 또한 높다. 상반된 두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가 대학교육의 이념과 성격 등을 고려할때 학생선발권을 대학이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상론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실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수 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모두 10번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 고려대 박도순교수(교육학)는 『대입제도변천사를 살펴보면 시기마다 약간의 굴곡이 있었지만 크게 보아 대학자율에서 국가관리체제로 변모해오다 최근에는 대학의 독자성과 특수성이 강조되어 다시 학생선발주체가 학교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학생선발권이대학에 있었을 때에는 부정입학·정원초과모집등 학사부조리가 문제점으로 대두돼 왔다. 이러한 학사부조리는 수요보다는 공급이 많았던 초기에는 일반의 관심권 밖에 있었으나 점차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대학의 자율성보다는 대입시험이 갖는 공공성도 확보돼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국가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가가 대입정책에 개입하면서 나타난 문제점은 국가고사와 대학별고사를 치르는데 따른 입시의 이중부담,대학선발기능의 약화,과열과외조장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어진 것이 오는 94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내신성적,대학수학능력시험,대학별고사에 의한 학생선발제도이다. 새 대입제도는 내신성적을 40%이상 반드시 반영하되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국가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라는 2개의 틀을 제시,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학생들을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 85년 교육개혁심의회에서 현행 대입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된뒤 88년 연구팀을 구성,3년동안의 연구와 공청회 등을 통해 확정된 것으로 대입선발고사가 가져야 하는 자율성과 공공성을 절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내신성적반영을 의무화함으로써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나아가 국가에서 출제하는 수학능력시험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치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대학의 학생선발기능도 충족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지 도난사건이 나자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새 대입제도가 시행도 되기전에 바꾸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새 대입제도에 대한 반론은 주로 상위권 대학,학생·학부모보다는 일부 교수들이 제기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대입제도를 완전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대입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즉흥적으로 개정돼서는 안되며 대학의 관리능력,입시제도가 고교교육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세대 교무처장 이성호교수(교육학)는 『장기적으로 볼 때 대입제도가 가야할 방향은 대학자율』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당장 국가관리 입시제를 폐지하고 각 대학에 일임한다면 더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며 급격한 제도변화에 따른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 또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육부 모영기대학정책실장도 『대학의 자율관리능력,대입시의 고교교육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새 대입제도가 만들어졌다』면서 『충분한 협의과정을 거쳐 확정된 제도에 대해 시행되기도 전에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지난해 예체능계대학 입시부정사건이 일어났을 때 입시관리를 국가에서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을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공산국 가서야 새삼 깨달았다”

    ◎“체험의 중국연수”… 단국대 최정식군의 “개안”/“개방진통”… 빵과 이념갈등 확인/빈곤의 평등속 실업 날로 심화/우리기업 진출에 자부심… 백두산선 분단에 비감 『이제 막 시장경제체제에 눈을 뜬 12억 중국인들의 저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며 이미 중국 곳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입간판이 눈에 띄는등 국력신장을 새삼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하계대학생국외연수계획에 따라 최근 중국에 다녀온 단국대공대 기계공학과 학생회장 최정식군(25)은 「죽의 장막」에 대한 첫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최군은 학과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지난달 27일 단국대중국연수단(단장 한정련공대학장)일행 30여명과 함께 배편으로 인천을 떠나 지난 5일까지 9박10일동안 중국을 살피고 돌아왔다. 학과학생회장을 맡으면서 교내시위에도 종종 참가해 왔다는 최군은 『공산권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수가 학생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것만 같아 처음 연수제의를 받고 무척 망설이기도 했으나 실제로 중국공산주의의실상을 체험해 본 결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군은 특히 『연변대 경제학부 박승헌교수의 특강을 통해 중국경제의 변천사와 실상을 다소나마 깨우칠 수 있었다』면서 『중국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개혁」밖에 없다고 강조한 박교수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개방은 이곳 저곳에서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출퇴근할 때 북경시를 꽉 메운 8백50만대의 자전거와 1인당 3백30달러의 낮은 GNP.시민들의 허름한 옷차람,보잘것 없는 생필품등은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경제의 낙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를 둘러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에서 38선과 평양을 지나 백두산에 오를 경우 하루면 될텐데 인천∼위해∼북경∼연길을 경유해서 장백산(중국사람들은 백두산을 이처럼 부름)에 오르다 보니 통일에의 염원이 더욱 강력해지더군요』 최군은 이어 『공산주의는 만인이 평등하고 고루 잘 사는 줄로만 알았으나 이번 중국연수를 통해 그곳에도 빈부의 격차와 실업등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교포학생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등 공산권미수교국가와 소련,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등 과거 일당독재와 함께 사회주의를 맹신해 왔던 국가에 대한 연수를 계속 확대시켜 대학생들에게 현장교육의 기회를 늘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털어 놓았다.
  • 1859년 제작/부산항 해도 발견/영국군이 측량

    【부산】 1백30년전인 1859년도에 제작된 부산항의 해도가 21일 국립수산진흥원 해양자료센터에서 처음 공개돼 학계와 관련기관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항의 변천사를 입증할 수 있는 이 해도는 철종 10년(1859년)에 영국해군 소속의 측량선인 악테온호 선장 존 워드씨에 의해 측량 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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