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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어촌전시관 내년1월 개관

    부산의 어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부산어촌민속전시관이 내년 1월 문을 연다. 부산시는 북구 화명동 지하철 화명역 인근 3000여평의 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740평 규모인 부산어촌민속전시관을 최근 완공했다고 27일 밝혔다. 시는 현재 내부 전시물 설치작업을 진행 중이다.‘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어촌문화 여행’을 전시 테마로 하는 전시관에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발달해온 부산의 어업역사와 전통문화변천사를 보여주게 된다.2층 제1전시실에는 구포 감동진 나루터를 비롯, 경북에서 부산 구포에 이르는 낙동강 700리 주변에서 선사시대 때부터 이뤄져왔던 각종 고기잡이 유물과 강변생활에 관한 자료, 어구 등이 실물 또는 모형으로 전시된다. 3층의 제2전시실은 다대포와 기장, 송정 등 바다를 무대로 이뤄진 부산 어촌들의 변천사와 전통어업, 항구 등에 관한 자료들로 채워진다.이와 함께 어린이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특별전과 낙동강 탐사, 전통 어구, 어법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의 현장학습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근대 국가표준 도량형기 문화재 된다

    1900년대 초부터 40여년간 사용된 곧은자·저울·추 등 국가표준 도량형기 300여점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소장한 근대기(1902∼1945년) 국가표준 도량형기(度量衡器) 154건 331점을 문화재로 등록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황동으로 만든 원통형 고리 조분동을 비롯해 곧은자, 되·말, 철재 및 목재 대저울, 저울추 등이 포함됐다. 이번 문화재 등록예고는 기술표준원에서 근대 도량형기의 중요성과 표준 역사를 알리고, 영구보존하기 위해 신청함으로써 이뤄진 것이다. 길이와 부피,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인 도량형기는 어느 나라이든 표준을 정해 통용돼왔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도량형이 지역마다 달라 혼선을 빚었으며,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근대적인 도량형을 도입,1905년 3월21일(광무 9년) 서양식 미터법을 바탕으로 대한제국 최초의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이 제정됐다. 이후 새로운 도량형이 정착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예고된 도량형기는 근대기 도량형 제도의 변천사를 실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의 표준 도량형 용기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으며, 당시 생활모습과 정부의 계량기 관리제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그동안 학계에서 도량형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근대기 대한제국의 개혁 노력에 대한 역사학계의 논쟁에 불씨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 도량형기가 문화재로 등록예고되면서 지난 1일 등록예고된 순종·순정효황후 어차(御車)에 이어 동산문화재로서는 두 번째 근대 문화재가 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12)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12)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 부근 지바현에 있는 아시아경제연구소는 개발도상국이나 지역별 경제, 정치, 사회 등에 대한 기초적이며, 종합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1960년 당시 통산산업성 산하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아시아경제연구소(일본 약칭:아지켄)는 150명의 연구원 가운데 여성이 50% 가까울 정도로 여성의 힘이 막강하다고 후지타 마사히사 소장이 소개했다. 아지켄은 관련국들과 인적교류도 활발하다. 연구소 개발스쿨에는 16개 개발도상국에서 1명씩이 초대돼 같은 수의 일본인 연구원과 함께 연수중이다. 개발스쿨 연수자는 150여명이다. 설립 이후 아지켄의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거쳐간 각국 연구자는 지난해까지 600명에 가까웠다. 아지켄은 특히 한국, 타이완, 중국, 타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미즈노 준코 신영역연구센터 장의 설명이다. 집중연구 분야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변했다.1960∼70년대에는 인도와 중국,70∼80년대는 한국, 타이완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연구가 왕성했다.80∼90년대 들어 다시 중국 연구가 활발하다. 아프리카 연구도 90년대 이후 활발하다. 미즈노 센터장은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70년대는 매우 많았지만 80년대들어 이 지역에 대한 일본 전체의 관심이 약화되며 연구 인력도 함께 줄었다.”고 소개했다. 아지켄은 몇 %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이 예산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 연구에 쓰여지기 때문에 정부개발원조(ODA) 원조액의 일부로 계상된다. 대학과의 공동연구도 활발하다. 도쿄대와는 학술제휴도 맺었다. 도쿄대, 와세다대의 아프리카 연구 등에 아지켄 연구원이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아지켄을 그만두고 대학교수로 옮긴 경우도 많다.60여만권 장서를 구비한 초현대식 도서관에는 한국어로 된 자료도 풍부, 각종 연감·인명록 등이 발행 연도별로 일목요연하게 비치돼 있다. 국가별 연구원수는 중요도에 따라 변한다. 한국 담당은 6명(1996년 한국의 OECD가입으로 개도국서 제외되며 줄었다.), 중국은 10명, 북한은 1명이고, 아프리카는 1명이 2∼3개국씩을 각각 담당한다. 인도연구도 중요한 연구 영역에 속한다. 해외연구활동도 활발하다. 현재는 20명 정도의 연구원들이 자원개발, 에너지, 빈곤, 농업자원 등의 문제를 2년간 현지에서 연구하며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 중국,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등에서 연구중이다. 연구소측은 “미얀마에서는 2년간 연구 주제를 정하는데, 비정치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서 “대학이나 연구소에 못 가는 경우는 현지의 일본대사관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상황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을 제외하고 연구원이 못 들어가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 아지켄의 연구성과는 ‘아시아의 인구’,‘석유대국 러시아의 부활’ 등 단행본이나 월간, 계간지 등을 통해서 발표된다. 정기간행물 7종류 등 연간 60여권의 출판물을 낸다. 발행물은 회원제도 있다. 기업·대학 200여곳이 연 14만엔의 회비를 내고 정기간행물을 배달받거나 책값을 할인받는다.200여명의 개인 회원은 회비가 연간 1만엔이다. 아지켄은 대학 교수 등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매년 연구실적을 평가받는다.“지난해와 재작년의 평가는 매우 좋았다.”고 야마시타 도모미 연구기획과 과장이 밝혔다. 아지켄은 사회과학 계열 연구소로는 일본내는 물론 아시아(공산국가 제외한)에서도 최대급이라고 자부했다. 개발도상국 연구에 대한 성과물이 많아 일본과 해외에서 지명도가 높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측과 공동으로 지난 2000년 ‘21세기 한·일경제관계 강화 방안’을 연구,“자유무역협정(FTA)은 한·일 경제 긴밀화에 유효한 수단으로, 기본적인 합의틀을 만들기 위해 양국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아지켄은 일본 국책 연구소의 변천사를 대변해준다. 연구소는 도쿄시내 중심부에 있다가 1980년대 정부관계 기관의 수도권 분산 정책으로 1999년 지바현 지바 신도시로 옮겼다. taein@seoul.co.kr ■ 김광림 전차관·최장집 교수등 한국 명사 66명과 깊은 인연 |도쿄 이춘규특파원|아시아경제연구소는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의 산업화시대의 주역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지금까지 66명의 한국 저명인사가 이곳서 연구활동을 했다. 1986년부터는 2년 정도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정부 관료들이 그 후 최고위 관료로 진출했다. 김광림 전 재경부 차관, 오종남 전 통계청장, 박재윤 전 재경부장관 등이 아지켄에서 연구했다. 1996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이 연구소의 초청 프로그램에 따라 연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에는 한국 정부와 기관 지원 등으로 바뀌었다. 특히 총리를 역임한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미즈노 준코 연구소 신영역연구센터장이 소개했다. 그래서 인적교류 초기에는 정영일 등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다수가 이 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유명 학자들도 많이 거쳐갔다. 한국 민법의 대가 곽윤직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1971년 반년간 연구했고,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85년 2월부터 1년간,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79년말부터 5개월,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96년 8개월간 연구활동을 했다. 이곳을 거쳐간 한국 인사들이 많다 보니 OB회도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중이고, 모임 때 미즈노 센터장 등 일본측 연구원들도 참석할 정도다. 연구소 관계자들도 한국에 많이 간다.1967년부터 이 연구소 연구원 21명이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현재는 두 명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한국서 연구중이다. 미즈노 센터장은 “우리가 한국에 가면 정부측 협력이 매우 잘 된다.”면서 우호적인 관계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면 2002년 아지켄이 한국의 금형공장 400곳을 연구할 때, 산업자원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고 미즈노 센터장은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60년대 당시 도쿄시내 이치가야에 있던 이 연구소를 방문한 뒤 “한국도 이 곳 같은 연구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taein@seoul.co.kr ■ “돈 버는 강박감없는 싱크탱크 한국은 프런티어정신이 강점” |도쿄 이춘규특파원|후지타 마사히사 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은 “수익사업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계열 연구소다. 중립성 유지는. -매우 자유로운 입장이다. 정치와 관련된 연구는 하지 않고, 학문적인 기초연구를 아주 깊이있게 한다. ▶중점 연구 분야는. -중국, 인도, 동아시아 지역통합, 세계의빈곤삭감과 개발 전략 등 4가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연구과제 설정은 내부자가 주도하며, 외부인도 5,6명이 참여해 40여가지의 세부 연구과제를 단기, 중기로 선정한다. ▶일본 사회의 평가는 어떤가. -일본 전체의 사회적 기초연구를 객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정부가 궁금해하는 사안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독특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강박관념이 없는 싱크탱크다. 몇 %정도만 위탁 연구를 한다. ▶연구소 평가위원회 구성은. -외부인 15명으로 구성되는데, 대학 교수가 반정도 된다. 그리고 신문사나 민간기업의 전문가, 다른 민간 싱크탱크, 경제산업성 관계자가 참여한다. 평가는 A로 높게 받고 있다. ▶한국과 한국경제의 강점은. -프런티어(개척) 정신이다. 어디에 가도 느낀다. 일본 기업은 대도시에서만 사업을 하지만, 한국 기업은 시골 소도시에서도 펼친다. 위험을 감수하는 프런티어 정신이 놀랍다. ▶한국과 한국경제의 약점은. -중소기업까지 전부 잘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정부의 영향이 강하다. 이는 좋을 때도 있긴 하다. 일본은 모두 함께 하는 것이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한·일 양국이 장·단점을 보완적으로 활용, 상승작용을 하는 게 좋다.(후지타 소장은 미국에 25년 사는 동안 수많은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수시로 한국에 가서 스스럼없이 만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의 과제는. -일반론으로 말하면 구조개혁을 잘 하고, 아시아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 등 긴급과제 연구는. -북한 연구는 약한 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같은 회원국이기 때문에 잘 협조하고 있다.12월에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다. taein@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11) 프랑스 콩코드재단

    [세계의 싱크탱크] (11) 프랑스 콩코드재단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기’ 프랑스 우파 지식인들이 지난 97년 창설한 싱크탱크 ‘콩코드 재단’ 홈페이지(www.fon dationconcorde.com)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다. 한 문장으로 압축된 이 문구는 콩코드 재단의 정체성은 물론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콩코드 재단은 파리 8구 테레란로 9번지의 7층에 세들어 있다. 좁은 사무실과 두 칸의 회의실이 전부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콩코드 재단이 프랑스에서 지닌 의미는 자못 크다. 콩코드는 창립 9년 만에 ‘엘리제궁과 가장 가까운 싱크탱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프랑스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 재단의 초기 멤버 가운데 6명이 지난 2002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선에 공을 세운 뒤 입각했다. 도미니크 페르벤 법무부 장관, 르노 뒤트레유 공직·국가개혁부 장관, 에르베 게마르 농업·수산·전원부 장관 등이다. 여기에 시라크 대통령의 오랜 정치고문인 제롬 모노가 재단 창립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후원자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집권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재단의 주요 회원이다. 콩코드 재단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앙가주망(사회참여)’을 기치로 한 사회주의 지식인의 목소리가 강한 프랑스 사회에서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도핀대 경제학과 교수인 미셸 루소 소장은 “좌파에 대응하자는 데 공감한 지식인들이 모여서 재단을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논거는 좌파에게서는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적 입장도 명백하다.‘중도 우파’를 내건 재단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조정하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개혁을 촉진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재단측은 단기적 목표가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내년 대선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공언한다. 콩코드 재단의 또 다른 특징은 ‘거버넌스 담론’에 기초한 새로운 개념의 싱크탱크라는 점이다. 단순한 학자들의 연구기관이 아니라 학계, 재계, 정·관계 등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연계해 활동한다. 현재 정식 회원은 1800여명이다. 여기에 콩코드 재단과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 8000여명이다. 이들은 주로 상·하원 의원, 고위 공무원,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 지방자치단체 의원 등으로 콩코드 재단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게 재단측 설명이다. 재단은 소장과 3명의 부소장 아래 ‘전문가 협의체’와 ‘분야별 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교수·작가·기업 대표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협의체는 재단이 연구할 이슈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면 분야별 위원회가 매달 첫째 주 월요일 정기 모임을 갖고 활발하게 논쟁을 벌이면서 심층 연구한다. 이어 정책 포럼·외부 토론회·심포지엄 등을 거쳐 간행물 형태의 보고서를 발표한다. 위원회는 행정 개혁, 국방, 국가 정체성, 지방분권, 에너지 대책, 복지, 기업과 고용문제 혁신, 국제협력 및 개발, 고등교육 개혁 등의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섀도 캐비닛을 방불케한다. 최근엔 사회보장제도를 둘러싼 국가 부채 문제를 놓고 이슈를 제기했다. 지난 25일에는 ‘부채의 역사, 경제에 미치는 부담과 해결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 예산부장관을 지낸 알랭 랑베르가 연사로 나섰다. 아울러 지난해 대학생과 청년들이 창립한 ‘콩코드의 힘’(Impulsion Concorde)이 콩코드재단의 든든한 네트워크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우리 미래는 우리 세대가 결정한다.’는 슬로건을 창립 목표로 내세운 ‘콩코드의 힘’은 18∼30세 연령층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와 관련, 콩코드재단과 연계해 논쟁을 제기해 주목받았다. vielee@seoul.co.kr ■ 佛 싱크탱크 변천사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의 주요 싱크탱크는 30여곳이다. 영국이나 미국식 개념의 정책 어젠다 개발은 주로 정부 부처 산하의 위원회가 분야별로 담당한다. 이들이 관계 및 학계·연구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외무부의 정책분석위원회(CAP)를 들 수 있다. 종합적 성격의 싱크탱크는 민간 연구소에서 맡는다. 물론 대부분 학술적 활동에 머물러 있어 영미식 싱크탱크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비교적 연혁이 오래된 국제관계연구소(IFRI)와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등이 대표적이다.IFRI는 외교·안보분야,CNRS는 기초학문 분야와 통계 분야에서 유명하다. 영미식 싱크탱크가 등장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 대표적인 단체가 1985년 중도 좌우파 연합을 기치로 내건 생시몽 재단과 범 우파 연합의 성격을 띠고 1997년 창설된 콩코드 재단이다. 이 재단들은 정·관·학계는 물론 기업·언론인 등이 함께 모여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이른바 ‘거버넌스(분야간 협력체제) 담론’에 바탕한 싱크탱크다. 최근 한국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파트너십’에 따른 두 싱크탱크의 등장과 활동은 프랑스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학문적 수준의 연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체의 현실 참여로 주목받았다. 총체적 시각으로 정책을 내놓고 이슈를 제기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특정 정파나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생시몽 재단의 경우는 미국 자본이 뒤에서 후원해 ‘세계화’를 미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이유로 좌파 진영의 질타를 받았다.‘제3의 길’에 가까운 노선을 취했던 생시몽재단은 좌파 지식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 지난해 문을 닫았다. 생시몽 재단에 견줘 콩코드 재단은 공공연하게 미국식 자본주의 논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좌파 지식인들은 “‘우파 그룹이 만든 ‘생시몽 재단’” “권력 재탈환을 겨냥한 우파의 결집”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콩코드재단은 ‘부의 창출 없이는 사회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모토 아래 경제와 기업 활동 촉진에 주력하고 있다. vielee@seoul.co.kr ■ “안정 바라는 유럽인 우파지지 계속할것” |파리 이종수특파원|콩코드재단의 미셸 루소 소장은 “정치적 독립성과 역동성이 콩코드 재단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제관계연구소(IFRI)는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이고 공적 영역에만 활동이 국한돼 있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는 관료적이고 규범적이어서 창의성이 모자란다.”며 다른 싱크탱크의 한계를 지적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선의 일등공신으로 ‘엘리제궁과 가장 가까운 싱크탱크’라는, 다분히 냉소적인 기사를 봤다.”고 반문하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국가 영역에서 독립됐다는 뜻이다. 우리의 정치 지향점이 우파이기 때문에 특정 정파를 도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그들과 입장이 같지는 않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매우 가깝다. 그러나 재단 운영은 자율적이다. 우리는 그저 현실의 여러 문제를 분석하고 논쟁을 제기할 뿐이다.” 그는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 파와의 차이를 강조했다.“우리는 중도 우파다. 그들의 사상은 우리보다 훨씬 과격하다. 위험한 면도 있고….” 자연스레 질문은 최근 유럽에서 우파 혹은 극우파(최근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의 경우)가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 넘어갔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유럽에서 넓은 의미의 우파가 미칠 영향력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즉, 이민자와 이슬람 문제 때문인데 사회 안정을 바라는 유럽인들은 우파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당연히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들이 이슬람 문화권이지 유럽문명의 세례자는 아니라는 것이다.“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한다면 인도는 왜 안되는가.”라고 덧붙였다. 이민자 문제의 해결 방안을 물었더니 역시 우파 지식인다운 반응이 나왔다.“(사견을 전제로)끔찍하다. 당장 멈춰야 한다. 우리는 이민자가 필요하지 않다. 왜 아프리카인들은 프랑스만 쳐다보고 있는가. 왜 일본이나 한국으로 가지 않는가. 여기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공간적으로 가깝다는 것과 그들에게 학교·건강 분야에서 공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과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다.” 올해 초 학생 소요 사태를 야기한 ‘최초고용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이었다.“대학생들이 과격 시위를 한 것은 30년 가까이 프랑스 사회를 지배해 온 사회주의 문화 탓이다. 시라크 대통령이 최근 사회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듯 속도는 조절하더라도 제도 자체의 문제는 없다고 본다.” 내년 대선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당연히 사르코지가 이긴다. 대선은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좌우 각축 속에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사르코지다. 좌파에게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필요한 것은 변화다.”고 말했다. 루소 소장은 파리시 공무원과 세 차례 소도시의 시장을 역임한 뒤 파리-도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vielee@seoul.co.kr
  • “공공성에 대한 연구·운동 매진”

    진보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꼽히는 참여사회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10주년’은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주변 여건은 그다지 밝지 않다. 노무현 정권의 정체와는 무관하게, 어쨌든 지난 몇년은 진보의 실패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이런 문제 의식에 따라 연구소는 대대적인 변신을 꿈꾸고 있다. 이병천 소장은 “민주화에 따른 절차적 합리성에 매달리다 보니 내용적인 민주화, 사회경제적인 민주화라는 부분에 미흡했다.”면서 “이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공공성’ 혹은 ‘사회성’ 차원의 연구와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27일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에 앞서 열리는 심포지엄의 주제는 ‘공공성과 한국사회의 진로’다.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는 “참여연대도 이념적으로 절차적 민주화에 머물렀고 활동도 개별 센터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제대로 된 전망을 제시하기 어려웠다.”면서 “참여연대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의견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연구소의 10년을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한 순환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다른 순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4년 참여연대가 출범한 2년 뒤 1996년 탄생한 연구조직. 참여연대의 시민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시민운동이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도 맡아왔다. 가장 눈에 띄는 연구성과로는 재벌에 대한 심층분석이 꼽힌다.1998년 IMF위기를 계기로 ‘재벌’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 연구소는 흔히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과 재벌기업과의 혼맥을 파고들기도 했고, 지분율 변동까지 포함한 5대재벌,30대재벌의 변천사를 분석한 ‘한국의 재벌’이라는 두툼한 연구서를 완결판으로 내놓기도 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달라지는 한가위] 추석때 직장 상사에 선물 “옳지 않아”

    [달라지는 한가위] 추석때 직장 상사에 선물 “옳지 않아”

    수확의 계절,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게 추석의 의미일 게다. 그래선지 연초의 설 때보다도 더 활발하게 선물이 오고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직장 동료끼리의 선물 교환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있더라고 공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직장 내 추석 선물에 대한 203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 1. 직장상사가 뭐 선생님이라도 되나 “솔직히 말해 직장에 좀 먼저 들어온 것 뿐이지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일로 맺어진 인연일 뿐이죠. 그 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기는 힘들어요. 요즘 세상은 과거보다 이직도 잦아서 언제 헤어질지도 모르는데….” 대기업 김모(39) 팀장은 직장생활 13년차가 되도록 단 한 번도 회사 상사에게 명절이라고 선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상사는 명절 때 정을 주고 받는 상대가 아니다. 그 역시 후배들로부터 선물 받은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기대를 해 본 적도 없다. 김 팀장은 “만날 보는 사이끼리 명절 때 선물 주고 받는 게 얼마나 어색한 일이냐.”면서 “씁쓸하긴 해도 영원한 원수도 친구도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생각이 이럴진대 20대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직장인 김모(28)씨는 “명절이라고 상사한테 선물을 보낸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사내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거래업체와 추석이나 설이라고 해서 선물을 주고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면서 “마찬가지로 직장 내부에서도 선물을 주고 받는 데 아무런 대가가 없기는 힘들기 때문에 선물 주고받기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 2. 선물은 연말에 한다 대기업 과장 차모(38)씨는 직장 상사와 무언가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그 시점으로 추석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연말쯤 간소한 선물로 상사를 포함한 팀원들과 정을 표시하고 있다.“추석이란 게 사실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한해 농사 잘 된 것 자축한다는 의미가 강하잖아요. 농사짓는 분들에겐 의미가 크겠지만, 요즘 직장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회사의 한 해를 마무리짓는다는 차원에서 직장인들에게 의미있는 때는 사실 연말이죠. 한해 동안 수고했다는 표현으로 작은 메모와 함께 재미있는 선물을 주고 받으면 서로 부담없고 좋더군요.” # 3. 솔직히 정말로 돈이 없다 경제적인 이유도 크다. 샐러리맨들의 주머니 사정이 가멸었던 적이 언제 있었겠는가마는 오랜 경기침체도 직장인들의 선물 인심을 더욱 박하게 만든다. 중소기업 직원 황모(28·여)씨가 딱 그런 경우다. 황씨는 상사가 여러 명이다 보니 누구에게는 하고 누구에게는 안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가족과 친지의 선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당에 직장 선배들까지 챙기다 보면 지갑이 거덜난다.”면서 “이번 추석도 그냥 이메일이나 한통 보낼까 하는데, 추석 보너스도 안 나온 사정을 주위 분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했다. # 4. 아부하는 걸로 비쳐지면 어떡해요 남의 시선에 대한 의식도 작은 것 하나 건네는 걸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바닷가가 고향인 최모(31)씨는 “평소 고향에서 부모님이 미역이나 김 등 해산물 좋은 것이 나오면 직장 상사들에 드리라며 보내시는데 보는 눈도 많고 해서 회사에 갖고 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아부형 인간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작은 정성 하나 건네는 데도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3년차 대리 정모(29·여)씨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적이 신경 쓰인다. 그는 “굳이 나만 따로 선물을 해서 ‘잘 보이려고 한다.’는 식의 눈총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명절을 그냥 넘어가기는 좀 뭣해서 팀 전체적으로 돈을 모아 지난 주말 팀장에게 넥타이핀을 선물했다.“따로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개인적인 관계를 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무리 개인적인 존경심이나 애정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해도 자칫 ‘왕따’가 되는 수가 있어요.” # 5.“그래도 할 사람은 한다” 그래도 하는 사람도 있다. 공무원 6년차인 조모(32)씨는 집안 어른들 선물보다 직속 상사의 선물에 더 신경을 쓴다.“추석은 묘하게도 인사고과 평가시즌과 맞아 떨어집니다. 한해 풍년 자축하는 추석 때 잘못 했다가는 정말로 직장에서의 한해 농사 망치게 되는 거죠. 다들 서로 ‘난 안한다’고 하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죠.”공무원들은 통상 10월 말이 인사고과를 정리하는 시점이다. 조씨는 “옛날처럼 전입 순으로 진급하던 시절도 아닌 상황에서 승진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면 추석인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풍경스러운 상황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적잖다. 중소기업 직원 김모(37)씨는 처음 입사했을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10여년 전 입사 때만 해도 추석이나 설날이면 오후 느지막이 부장 댁에 모든 부원들이 작은 선물 하나 사들고 가서 음식을 함께 하며 술도 한잔 걸쳤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회사 직원들간 명절 나는 풍습은 이래저래 비인간적인 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영규 서재희기자 whoami@seoul.co.kr ■ 추석선물 변천사 알아보니 추석 때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신세계백화점이 1965년 이후 추석 선물세트 매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선물용 상품´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70∼80년대 사이다.50년대와 60년대 초만 해도 추석선물은 계란, 찹쌀, 고추, 소고기, 돼지고기 등 수확한 농축산물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상품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65년 라면 50개들이 한 상자, 맥주 한 상자, 세탁비누 30개 세트, 전기냄비, 다리미 등이 선물로 팔리면서부터다. 특히 ‘삼백(三白)산업’의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설탕이 고급 선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그래-뉴설탕’이라는 이름의 6㎏(780원),30㎏(3900원) 상품이 최고급품으로 꼽혔다. 70년대 들어 식생활과 무관한 화장품, 여성 속옷, 양산 등이 추석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세트’는 다방문화, 커피문화의 신호탄이었고 라디오와 흑백TV, 콜라와 과자가 선물로 보편화됐다. 70년대에는 학용품이 당시 국민학생용 추석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배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방문해 선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용 선물도 준비를 해가야 했던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76년 가격으로는 연필세트가 150∼300원, 연필·필통세트가 350∼400원, 가방이 2200∼3000원에 판매됐다. 추석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다양해진 것은 80년대 들면서다.70년대까지 1000여종에 불과했던 게 3000여종으로 확 늘었다. 식생활의 고급화를 보여주듯 200여종에 불과하던 식품 선물세트가 1000여종으로 가장 큰 폭으로 늘었고 넥타이·지갑벨트세트·스카프·와이셔츠 등 신변 잡화용품이 700여종으로 증가했다. 90년대의 추석선물은 고가제품과 실용적인 중저가 선물세트로 양극화됐다. 저가 ‘할인점 선물세트’가 보급된 반면 96년 이후 고가의 수입양주는 선물베스트셀러 상품으로 등극,130만원을 넘는 ‘레미마틴 루이14세’ 양주와 100만원을 넘는 영광굴비 등 호화 선물들도 나왔다. 선택성, 간편성, 편의성 등 이유로 선물 대용이 된 상품권이 94년 4월 본격 발행돼 점차 이용도가 높아졌다. 2000년대 추석선물은 양극화 현상의 연장으로 분석된다. 고가 백화점 상품과 할인점 중저가 선물세트가 주류가 되고, 상품권이 대표적인 선물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와인 세트가 위스키 세트를 물리친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전통적인 한국 명절에 와인은 물론 치즈나 트러플(송로버섯) 등 세계적인 진미상품이 선물로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충북 음성군 생극면을 지난 영남대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경기도로 접어든다. 종착지인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아 행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음 직하다. 교통의 요지인 용인으로 가는 길목인 옛길은 경기도 안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경기도 관문인 죽산에서 시작되지만 17번 국도와 맞물려 옛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도로가 직진화되면서 군데군데 남은 길은 인근 마을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가는 첫길 죽산 죽산에 들어서면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간지주와 미륵입상이다. 그나마 옛길의 흔적을 알려준다. 미륵입상 앞에는 향토유적 제20호인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 서편으로 나있는 좁고 긴 콘크리트 도로는 지금은 사라진 안성선 철도 노반이 있던 자리다. 경부선 천안역에서 출발해 안성평야를 지나 안성에 이르는 철도였다.1927년 9월15일 이천시 장호원까지 개통되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1944년 11월1일 안성∼장호원이 철거되고 1989년 1월 도로교통의 발전으로 폐선되었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철로가 전쟁물자로 공급되는 바람에 철거됐다.”고 전했다. 500여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거리 마을이다. 옛 과거길이자 관리가 다니던 관도임을 증명하듯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재임기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영남대로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의 공덕비도 섞여 있다. 비석거리를 지나면 말을 바꾸어 타던 분행역터다. 지금은 분행마을이다. 청미천을 넘은 옛길은 17번 국도를 따라 10여㎞를 내달아 용인시 백암면에 다다른다. 국도가 옛길을 덮어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자투리 옛길은 좌항초등학교 쪽으로 접아들면서 잠시 국도와 이별한다. 좌찬역이 있던 좌전마을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은 양옆이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의 입구를 표시하던 비석이 서있었다는 이문(里門)터가 있다. 지금은 매몰돼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았다. 국도와 다시 연결되는 길목이 좌찬고개다. 이 고개는 박포라는 장수가 정도전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그 대가가 보잘 것 없다고 비난하다 귀양을 온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박포의 벼슬이 좌찬성이고 귀양지가 좌항리라서 좌찬현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개는 완만하지만 걸어서 넘기가 쉽지 않다. 좌전마을 뒤편에는 밤나무 5000여그루가 들어선 농원이 있다. ●수탈용 수여선 아스라히 국도 건너 남아있는 옛길에는 의병장 임경재의 비석과 석상이 자리잡았다. 양지 인터체인지를 지난 영남대로는 42번 국도와 만난다. 폐도화되다시피 한 길 옆으로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가 운행되었던 수여선 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농로지만 직선으로 곧게 뻗은 것이 철로였음을 짐작케 한다.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이천쌀과 소금을 강탈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수탈의 현장이다.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 인근 양지천에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새로 놓은 다리까지 3개의 교각이 나란이 버티고 있는 일명 3세대 다리가 있어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다리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실물 박물관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옛길은 용인을 포함한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개발붐에 밀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근에 동백지구와 구갈 2·3지구를 포함한 크고 작은 아파트단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나타나 있는 영남대로와 지금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옛길을 회상하며 대로변을 걷는 모양새다. 그나마 남아있었다던 용인시 처인구청 인근 옛길은 소멸됐고 번잡한 시내 중심가 도로들로 자리메움했다. ●산천개벽의 상징 용인시청 국도를 따라 3㎞가량 지나면 오른쪽으로 기초자치단체의 청사로는 최대규모로 알려진 용인시 행정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지나 옛길은 잠시 국도 신세를 면한다.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최근 입주를 시작한 동백지구 연결로로 사용되는 데다 대규모 어정가구단지가 자리잡아 옛길의 정취는 온데간데없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길이야 어찌됐든 멱조고개(일명 메주고개)는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나서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한다. 멱조고개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경찰대학 앞을 지나지만 이 길이 영남대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다. 그나마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이 용인 향교이다. 그렇지만 이 향교도 원래는 구성면 마북리에 있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으로 6·25때 소실된 후 남아있던 부재를 사용해 다시 지은 것이다. 구성동사무소를 지나면 연원마을이다. 이곳도 온통 아파트단지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었지만 지금은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다. 바로 옆마을 새터말에는 장승이 있지만 길목에는 월마트가 자리잡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옛길은 풍덕천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수지구청이다.23번 국도를 따라 간다. 풍덕천에서 옛길은 공사가 한창인 판교택지개발지구로 이어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던 낙생초등학교 옆 너더리 마을도 얼마 전까지 부동산중개업소로 가득 찼으나 지금은 개발로 모두 철거돼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이어 영남대로는 청계산을 거쳐 종착지인 서울로 치닫는다. 글 사진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판교의 유래 개발이 한창인 판교(板橋)는 옛 명칭이 널다리였다. 마을 이름을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다리’로, 다시 한자표기인 판교동으로 굳었다.‘널다리’란 이름은 마을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넓은 판자로 다리를 놓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하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다리의 경우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으로 교각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말대로라면 ‘널다리’의 경우 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돼 판교의 명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판교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은 정씨의 해석대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수 있는 천혜의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연구한 자료에서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용인시 원삼면 맹리와 독성리에 각각 위치한 느다리와 쪽다리는 마을이 아닌 들(坪)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다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흔히 개울에 놓여있는 다리(橋梁)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흥구의 잔다리와 이웃하고 있는 백암면의 홈다리와 같은 뜻을 가지는 전형적인 땅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잔다리와 홈다리는 다리(교량)가 아니라 ‘작고 좁은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이며 느다리와 쪽다리도 같은 발상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 잔다리는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고 홈다리도 몇 집이 살고 있지만 느다리와 쪽다리는 그저 들판으로 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느다리는 구한말 ‘지명지’에 늘다리라고 나오고 있으며 판교평(板橋坪)이라고 옮기고 있다. 또한 쪽다리는 편교평(片橋坪)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늘다리의 경우 ‘널+다리’라고 생각해 널빤지의 뜻을 가진 판(板)자를 쓰고 다리는 교량으로 생각하여 다리의 의미를 지닌 교(橋)자를 사용한 것으로 편교도 조각의 뜻을 가진 편(片)자와 교(橋)를 사용했으니 판교나 편교나 소리나는 발음의 뜻을 임의로 취하여 붙인 표기라는 설명이다. 느다리는 맹골 마을에서 발원하여 미평리의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다리(橋)를 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쪽다리는 작은 도랑이 전부이기 때문에 굳이 다리를 놓을 필요는 없어 위의 들(坪)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판교 시가지 명칭은 판평(板坪)으로 봐야 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쇼트트랙 대표선발전] 안현수 “휴~”

    안현수(한국체대)와 진선유(광문고)가 대표선발전에서 종합 1위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남녀 각 3명이 새 얼굴로 물갈이됐다. 토리노올림픽 3관왕 안현수는 27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06∼07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마지막날 남자부 1000m에서 1위로 골인, 전날의 부진을 씻고 종합 1위(42점)를 차지했다. 첫날 500m 5위,1500m 4위로 종합 6위에 머물러 탈락 위기를 맞았던 안현수는 자신의 주종목인 1000m 결승에서 이호석(경희대)과 성시백(연세대)을 따돌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 대역전에 성공했다.3위로 골인한 ‘토리노 전사’ 이호석도 종합 5위(34점)로 막차를 탔고,2∼4위는 송경택(강릉시청), 김병준(광문고), 김현곤(강릉시청)이 차지하며 세대교체를 알렸다. 지난 4월 대표선발 자격대회에서 안현수를 제치고 1위에 올라 세대교체의 기수로 떠오른 성시백은 1000m 2위로 선전했지만 전날 500m 실격으로 한 점도 얻지 못한 것이 화근이 돼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여자부에서는 역시 토리노올림픽 3관왕 진선유가 종합점수 63점으로 주니어대표 출신 전지수(한국체대·47점)를 제치고 종합 1위에 올랐다. 전날 전지수에 밀려 중간 종합 2위로 처진 진선유는 그러나 1000m에서 변천사(한국체대)에 이어 2위로 골인,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전날 종합순위 6위로 위기를 맞았던 변천사는 1000m 1위에 힘입어 종합 3위(42점)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강윤미(한국체대)는 6위로 탈락했다. 주니어대표 출신 전지수(한국체대)와 정은주(서현고)가 각 2위와 4위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김민정(경희대)도 5위로 막차에 올랐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쇼트트랙 매서운 세대교체 바람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2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06∼07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첫날 500m와 1500m에서 토리노올림픽 스타들이 대거 중하위권으로 추락, 거센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주니어대표 출신 전지수(한국체대)는 여자 500m 1위에 이어 1500m에서도 3위를 차지, 총점 47점으로 1위에 올랐다. 전지수는 남은 1000m 경기에 관계없이 최소 5위를 확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2006주니어선수권대회 5관왕 정은주(서현고)도 3위에 올랐다. 반면 토리노올림픽 3관왕 진선유(광문고)만이 2위(42점)로 자존심을 지켰을 뿐, 변천사(한국체대)와 강윤미(한국체대)는 각각 6,7위로 부진했다. 남자부에서는 토리노올림픽 대표 이호석(경희대)이 4위(21점)에 오르며 그나마 선전했지만 토리노올림픽 3관왕 안현수(한체대)는 6위로 처져 대표 선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오세종(동두천시청), 서호진(강릉시청), 송석우(강릉시청)는 최하위권을 밀렸다.‘토리노 전사’들이 비틀거리는 사이 송경택(강릉시청)과 김병준(광문고), 김현곤(강릉시청)은 나란히 34점으로 1∼3위를 달렸다. 27일에는 1000m 경기가 열리고,3종목의 점수를 합산한 뒤 상위 순위부터 남녀 각 5명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쇼트트랙 거듭날까

    ‘파벌 파문’ 쇼트트랙, 다시 태어날까. 06∼07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이 26∼27일 이틀간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 린다. 지난 4월 선발전 자격대회를 통과한 남녀 총 29명이 참가해 월드컵과 동계아시안 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남녀 5명씩의 대표를 최종 선발한다. ●파벌싸움은 끝났다? 효자종목 쇼트트랙은 지난 시즌 계파별 연습에 이은 국내선수간 레이스 방해 의혹 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심지어 학부모가 대한빙상연맹 관계자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파벌 파문’에 오랜 후유증까지 앓아온 연맹은 대표 선발전과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 파벌싸움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일단 가장 많았던 추천 선수 선발제도를 없앴다. 오로지 성적으로만 뽑아 특혜 시비를 애초부터 없애겠다는 의지다. 또 선발전 심판진 전원을 외국인으로 구성, 공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표팀 운영방식도 팀 훈련에서 개인지도 체제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대표팀이 구성된 뒤 남녀 코치가 따로 있었지만 선수들이 이를 따르지 않고 개인훈련을 받아온 지도자에게 훈련을 받는 등 파행으로, 파벌 문제의 단초가 됐었다. 이에 따라 선수들은 대표에 선발된 뒤라도 평소처럼 각자의 코치밑에서 훈련을 하게 된다. 국제대회에도 개인 코치들과 함께 참가하고 연맹에서는 행정적 뒷바라지와 작전이 필요한 계주 등을 위해 ‘팀 리더’만 파견한다. 레이스 출전 시비도 근절하기 위해 선발전 상위 순위부터 자신이 출전하고픈 종목을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파벌 해소를 위한 고육책이지만 자칫 성적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국제대회에서도 이제는 같은 한국선수라기보다는 경쟁자로서의 인식이 강해 치열한 몸싸움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자칫 한국선수끼리의 지나친 경쟁으로 다른 나라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세대교체 이뤄질까 지난 4월 선발전 자격대회부터 세대교체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남자부에서는 성시백(연세대)이 ‘토리노 전사’ 안현수(한국체대)와 이호석(경희대) 등을 제치고 종합 1위에 올라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성시백은 2003년 세계주니어선수권과 04∼05시즌 월드컵 5∼6차 대회에 출전, 경력을 쌓았지만 지난해 4월 대표선발전에서 탈락, 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쳤다. 이후 홀로 훈련하며 재기를 노렸다. 최강 안현수를 모델로 훈련을 해온 것에서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여자부에서는 지난 1월 세계주니어선수권 5관왕에 오른 정은주(서현고)가 돋보인다. 주니어의 딱지를 떼고 이제부터는 명실상부한 성인무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참이다. 선발전 자격대회에서 진선유(광문고)와 변천사(한국체대)에 이어 종합 3위에 오르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돼 온 체력에서도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 물론 소심한 성격 탓에 몸싸움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종합선수권에서 정은주에 이어 4,5위에 오른 박선영(세화여고)과 전지수(한국체대)도 기대주다. 하지만 기존 대표선수들도 건재하다. 여자부 최은경(한국체대)만이 부상으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토리노 여전사’ 진선유, 변천사, 강윤미(한국체대)가 버티고 있다. 남자부에서는 토리노 대표 5명이 모두 태극마크를 노린다. 안현수와 이호석, 오세종(동두천시청)은 자격대회에서 5위 내에 입상, 이름값을 했다. 그러나 송석우(전북도청)와 서호진(강릉시청)은 하위권으로 밀려 위기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남궁원에서 이준기까지… 대한민국 미남 변천사

    남궁원에서 이준기까지… 대한민국 미남 변천사

    글 오정연_<씨네 21> 기자 지난 4월 고故 신상옥 감독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주변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신상옥 감독을 통해 스타가 된 수많은 배우를 만나는 것은 필수 코스, 신성일과 함께 당대 최고의 미남 스타였던 남궁원을 만났다. 믿기 힘든 말이겠지만, 40여 년 전 그녀들이 열광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남궁원을 취재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는 당시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었다며 눈을 빛내셨다. 요즘 세대들은 우수 어린 눈매와 반항아 같은 분위기로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 불렸던 신성일을 당대의 대표 배우로 여기지만, 그 무렵 남궁원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대표급 미남배우였다고 한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 지금 신세대 스타와 겨뤄도 손색없을 만큼의 당당한 풍채, 짙은 눈썹이 먼저 각인되는 눈매… 요즘의 기준에서 보자면 다소 ‘느끼하다’는 평가도 가능할 그 외모는 아무나 따라잡을 수 없기에 더욱 이상화된 서구적인 남성성의 표준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미의 기준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도 무리없이 통용될 정도. 클래식이 변함없이 사랑받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서구적인 마스크의 미남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기 위해 다소 무리한 시간적 점프. TV나 영화에 나오는 남자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첫 번째 기억은 톰 크루즈였다. 그 무렵 역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란 것이 있던 시기였다. <탑건>이며 <칵테일> 등에서 그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영화의 완성도가 어떠하든 별 상관없었다. 그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그가 케이티 홈즈와 사이언톨로지 등으로 믿을 수 없는 추태를 일삼기 전까지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흥행수표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외모를 지녔든 할리우드의 빛나는 그들은 너무 먼 존재였다. 그 빈 자리를 메워주던 이들은 최재성, 손창민, 최수종 등,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인공이다. 터프한 카리스마(최재성), 부드러운 친근함(손창민), 유머감각 속에 감춘 예민함(최수종). 그들은 각각 차별화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고, 외모는 정확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한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는 최수지, 이미연 등 비슷한 시기에 청춘스타로 불렸던 여자 연예인들도 마찬가지. 어딘가 한구석쯤 서구적인 면모를 지니지 않고서는 스타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래한 것은 완벽한 미남의 시대. 깊게 패인 눈과 긴 속눈썹, 완벽한 신체 비례를 지닌 장동건, 정우성 등 당대의 대표 미남스타들은 한 구석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서구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들은 고독한 반항아, 더없는 사랑을 바치는 순정남, 구질구질한 루저까지 무난하게 소화했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완벽한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연기파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장동건은 연기의 기초를 다지겠다며 갑자기 학교에 진학하거나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해병대에 자원(<해안선>)하는 등 나름대로 고민의 시기를 보냈고, 정우성은 덥수룩한 머리를 늘어뜨린 지질한 캐릭터로 변신을 시도(<똥개>)하더니 몇 년째 감독의 꿈을 키우고 있다. 과거의 대표미남들은 이제 스타가 아닌 영화인이 되기를 원한다. 꽃미남이 몰려온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계속해서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완벽한 미남을 능가하는 것이 꽃미남. <가을동화>의 원빈은 극 중에서는 송혜교를 얻지 못했지만 숱한 여인네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금은 연애 중>의 권상우는 이의정과 함께 수많은 누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소년의 얼굴과 남자의 몸을 지닌 그들은 터프하되 위협적이지 않았고, 마초*적이지만 통제 가능했다. 강한 척 큰소리를 뻥뻥 치지만 그 속은 어찌나 연약한지 수시로 굵직한 눈물을 글썽거렸고, 세상을 다 아는 척 휘젓고 다니면서도 누나가 수습해야 할 문제를 만들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모든 여성들에게 내재되어 있다는(과연?) 이른바 ‘모성애’가 극성을 부린 시기라고나 할까. 물론 꽃미남 역시 고도의 진화를 거듭했다. 남자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우락부락한 근육, 매끈한 피부, 고도의 옷맵시까지 한 두가지가 아니게 됐다. 무조건적인 근육질보다는 적당히 마른 듯 근육이 느껴지는 몸매가 인기를 끌었다. 여자보다 아름다운 얼굴도 중요하지만 여자 못지않게 스타일에 신경 쓰는 태도 자체가 중요하다는 메트로섹슈얼**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멋을 부리되 그런 티를 내지 않는 고도의 스타일 전략이 관건인 위버섹슈얼***이었다. 여자의 눈은 즐거워졌지만 남자의 삶은 팍팍해진 듯 보였다.(알다시피, 여자들의 삶은 그런 면에서 예전부터 팍팍했다.) 다원화된 미남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간 것은 단순히 미에 대한 기준만이 아니다. 흡사 야리야리한 인형과 같은 강동원뿐 아니라 거칠고 단단한 소지섭이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즘. 탄력있는 몸을 지닌 비의 귀염성 가득한 작은 눈이, 뺀질거리는 태도가 오히려 친근한 김래원의 쌍거풀진 큰 눈과 대등하게 사랑받게 됐다. 이준기의 여린 턱선이든, 지진희의 서글서글한 미소든 상관없었다. 신이 내린 외모가 아니라 한순간 상대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만한 한 방, 흔히들 개성이라고 말하는 한 가지가 가장 큰 힘을 지니게 됐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남의 세계 역시 다원화된 것이다. 심지어(?) 늘 궁시렁거리면서 평범한 넥타이 부대의 외모를 선보인 <연애시대>의 감우성마저 특정 계층에게는 이준기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맛있게 투덜거리는 재주, 결정적인 순간에 세심한 마음씀씀이를 지닌 탓이다. 바야흐로 한 가지만 개발하면 미남 계열에 합류할 수 있는 좋은 시대라고? 극도로 세분화된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워졌다고 달리 말하면 어떨까. TV 속에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어여쁜 아이돌이 가득한 대신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요즘. 이른바 무난하게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 미남이 될 수 없게 됐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경쟁은 한결 심화된 셈이다. * 마초macho : 스페인어로 ‘남성’이라는 뜻으로, 남성 우월주의 혹은 남성 우월주의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 패션과 외모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도시 남성을 일컫는 말. 남성성에 여성성이 가미된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았다. *** 위버섹슈얼ubersexual : ‘위 월간<샘터>2006.09
  • [사설] 청와대 정무팀 부활보다 중요한 것

    참여정부 들어 청와대 정무조직 변천사는 어지럽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정무수석이 있었으나 2004년 비서관급의 정무팀으로 격을 낮췄다. 그 이듬해 정무팀마저 해체했다. 당정분리를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엊그제는 정무팀을 부활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관계가 계속 삐걱거려온 이유는 제도 탓이 아니라고 본다. 정당과 국회를 어떤 시각으로 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청와대비서실은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여야를 떠나 정당은 다르다. 지금처럼 일년에 두차례씩 선거를 치르는 상황에서 여론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 지도부가 추구하는 정책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여당이 개혁을 실종시키지 않도록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그렇지 않다면 당이 전하는 여론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 한다. 김근태 당의장이 추구하는 뉴딜론도 합리적인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당이 인기없는 대통령을 공격한다고 판단함으로써 엇박자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 대선을 위해 그렇게 해야 된다면 (비판·차별화를)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선거를 떠나 대통령이 비판을 두려워해 국민의 소리를 놓친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또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먼저 여당과 소통 통로를 트면 야당, 국회와 가까워진다. 정부 채널과 별도로 민생 현장을 알 기회가 늘어난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뜻을 여당을 통해 밀어붙이는 데 정무팀 부활을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 대선 간여를 강화하는 데 써서도 안 된다. 정치권과의 소득없는 대치전선을 걷어버리고 많이 듣는 쪽을 택해야 한다. 정무팀과 별도로 만들기로 한 정무특보단 인선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 ‘추억의 전투식량 팔아요’… 전문식당 등장

    ‘추억의 전투식량 팔아요’… 전문식당 등장

    “추억의 전투식량을 팔아요.” 충남 당진군 신평면 삽교호 함상공원에 ‘전투식량 전문식당’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식당이 문을 연 것은 지난달 15일. 함상공원 사무실 2층(50석)과 구축함 2층(80석) 카페에서다. 메뉴는 쇠고기비빔밥, 야채비빔밥, 김치비빔밥, 김치국밥, 건빵이다. 건빵은 1000원, 홍삼건빵은 3000원이다. 다른 메뉴는 모두 3800원을 받는다. 모두 ‘비상 전투식량’으로 추운 겨울 산속에서 군사훈련을 받다가 전우들과 나눠 먹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은 별다른 맛이 없을 수도 있지만 플라스틱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붓고 10분 기다렸다가 참기름을 뿌리고 비벼 먹는 그때 맛은 별미였다. 한 직원은 “하루 손님이 60∼70명에 이른다.”며 “친구들과 단체관람을 와서 ‘아빠에게 선물하겠다.’면서 서너 봉지씩 전투식량을 사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입장료(어른 5000원)와 전투식량을 묶은 패키지권을 구입하면 1800원이 싼 7000원에 함상공원 관람과 함께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다. 함상공원은 2002년 4월 함정과 함포의 변천사, 전투복, 낙하산, 함포 등을 갖춘 상륙함인 화산함(길이 100m·폭 15m)과 구축함인 전주함(길이 120m·폭 12.5m)을 인수, 문을 연 뒤 주말에 3000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신화용 대표는 “전투식량은 경남에 있는 군납업체로부터 조달해 온다.”고 말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006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마로니에북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8개국 60명의 필자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르의 영화를 총망라했다.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대순으로 배열된 영화들은 스틸컷을 곁들인 글로 소개되고 있는데, 시간 순서대로 읽다 보면 영화들 사이로 여러 가지 흐름이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 ▲장르 변천사와 기술적 발전 ▲영화 안팎에서의 관계망 ▲작품 간의 영향관계 등 영화의 소우주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 태극전사 승부 추억만들기

    태극전사 승부 추억만들기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13일 토고를 꺾어 월드컵 진출 사상 원정 경기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19일 강호 프랑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뤄냈다. 국민들 마음 속엔 16강 진출에 대한 꿈으로 가득하다.4강 신화의 재현이 기다려진다. 월드컵 축제 분위기는 뜨겁다. 경기가 새벽에 열려도 상관없다. 서울광장 등 응원 장소엔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소 적막이 흐르던 새벽 4시 아파트가 환해진다. 탄성이 터진다. 길거리엔 온통 월드컵 얘기뿐이다.“스위스에 지지 않아. 토고 프랑스전처럼 하면 우리가 이길거야.” 국민 모두가 축구해설가다. 선수들은 골을 넣고, 국민은 춤을 춘다. 갈등의 벽을 넘어 온 나라가 하나 된 이 순간.‘대∼한민국’을 함께 외친 이 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면 ‘월드컵 거리’에서 추억을 만들어 보자.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① 광화문·청계천 T2광장 “2006년 독일월드컵의 감동을 가슴에 담아 보세요.” 길거리 응원의 명소인 서울 광화문과 청계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는 ‘2006년 월드컵’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명소들이 있다. 이번 월드컵 기간중에만 전시되는 조형물과 흉상들로 2006년 독일월드컵을 사진으로 담아두기에 제격이다. ●광화문 태극전사 동상에서 멋진 기념촬영을 태극전사들이 월드컵에서 선전을 거듭하면서 광화문 태극전사 동상 주변에는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시민들로 북적 거린다. 태극전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2006년 독일월드컵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광화문 세종로 양쪽에는 8m 높이의 웅장한 태극전사 5명의 동상이 서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수문장 이운재와 이영표(12번)가 축구공을 든 동상을, 맞은 편인 한국통신 빌딩 앞에는 대한민국 대표 공격수인 박지성(7번), 이천수(14번), 박주영(10번)의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딸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정지선(34·양천구 목동)씨는 “이운재 선수가 공을 잡은 모습과 박지성 선수의 멋진 킥 모습, 이천수 선수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승리를 자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면서 “아이에게 월드컵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교보빌딩 앞에 있는 9m 높이의 초대형 축구공 조형물인 ‘드림볼’은 승리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밤에는 5만여개의 LED(발광다이오드)가 화려한 빛을 뿜어낸다. 미국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를 모아 놓은 곳. 직접 응원 글을 적어 붙일 수도 있다. ‘꿈은 다시 이뤄진다. 토고 깨고, 프랑스 이기고, 스위스 밟고,16강→8강→4강, 아자아자!’(광풍이) ‘대한민국이여!2002년을 기억하라!그때의 감동을 다시 울리자!’(최이영) 기다란 간판에는 수만장에 이르는 응원 문구가 적혀 있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청계천 T2광장에는 2002·2006 태극전사들 한자리에 청계천 변에 있는 한국관광공사 T2광장에 가면 36명의 태극전사 흉상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월드컵 멤버 23명을 포함해 2002년 국가대표와 히딩크, 아드보카트 등 전·현직 코칭 스태프들을 만든 흉상이다. 가로 4.5m의 대형 군상 3점에는 각각 12명의 상반신이 새겨져 있다. 작품은 작가 김래환씨가 태극전사들을 직접 만나 정면과 측면 사진을 찍어 4년동안 제작했다. 김씨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조각가로 지난 2002년에도 ‘조각으로 보는 한국의 명사 100인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계 인사들을 조각해 조각계를 놀라게 했다. 김씨가 태극전사들의 인물 외형을 재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둬 동상을 둘러보며 태극전사들의 특징을 직접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회사원 김은지(21)씨는 “히딩크 감독과 안정환, 이천수 선수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면서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상은 다음달 9일까지 전시된다. 김래환씨 홈페이지(www.krh007.com)를 방문하면 안정환, 최진철, 홍명보, 이천수, 이운재 등 태극전사들의 조각작품 제작과정 등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볼 수 있다. ② 상암 월드컵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장을 상암에서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가면 독일월드컵의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2006 독일월드컵’ 메인 스타디움인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장 모형물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은 10분의 1 규모로 축소한 것으로 모형이지만 크기가 무려 가로 34m, 세로 27m에 이른다. 내부에 인조 잔디가 깔린 경기장이 있어 실제 미니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독일 뮌헨에 있는 아레나 경기장은 누에고치 처럼 부푼 2874개의 에어 쿠션의 집합체로 2002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6월 1일 완공됐다. 경기장 규모는 6만 6000석, 좌석이 7층 규모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전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볼 만한 경기장 중 하나’라고 소개할 만큼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외관은 반투명 재질로 밤이면 10만여개의 조명이 미확인비행물체(UFO)처럼 파란색과 빨간색, 흰색 빛을 뿜어내 ‘UFO 구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미숙(32·마포구 공덕동)씨는 “모형물은 마치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 독특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마치 독일 현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고 즐거워했다. 아레나 조형물은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만나는 북측 광장에 있다. ●월드컵기념관에서 4강 감동 다시한번 인근에 있는 ‘2002 FIFA 월드컵 기념관’에 가면 붉은 감동이 물결친다.2002년 4강 신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400평 남짓한 내부에는 4강 신화에 공헌한 거스 히딩크 감독 등 축구인 6명의 흉상과 월드컵 당시 23인의 태극전사들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과 축구공, 축구화, 기념주화, 기념품 등을 볼 수 있다. 영상관에는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와 명장면을 모은 ‘6월의 붉은 함성’을 상영하며,31일간의 대장정’ 코너에는 A∼H조까지 당시 월드컵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전적 등 각종 정보와 함께 모형으로 제작된 피파컵과 당시 입장권 등을 볼 수 있다. 태극전사와 기념사진 촬영 코너에서는 4강 신화의 주역들과 즉석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위탁 운영하며,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 걸린다. 월드컵 중계를 보느라 매일 밤을 지새운다는 축구 마니아인 관람객 노기철(27)씨는 “2002년에 태극전사들이 첫게임에서 폴란드를 2대 0으로 이기고, 두번째 게임에서는 미국과 1대 1로 비긴 뒤 마지막 포르투갈 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해 16강에 진출했는데 이번 월드컵과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면서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 전에서도 우리가 1대 0으로 이기고 조 1위로 올라간 뒤 4강 신화를 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다. 관람요금은 일반 1000원,12세 이하 어린이 500원이다. 자세한 정보는 기념관(3151-0231)이나 홈페이지(www.world cupmuseum.co.kr)에서 얻을 수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③ 풋볼 빌리지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축구에 쏠려 있다.‘월드컵 열풍’을 타고 한 은행이 유명 선수의 사인과 유니폼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6일 중구 을지로 1가 하나은행 본사 1층 ‘풋볼 빌리지’. 예금 인출을 위해 은행을 방문한 김지선(21)씨는 깜짝 놀랐다.“이게 정말 귀엽게 생긴 오언 오빠가 입던 옷이야.” 그녀는 부스 안 영국 대표팀 오언의 유니폼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애교섞인 표정을 지었다. 은행에 오가는 다른 손님들도 한번씩 부스를 둘러 본다. 풋볼 빌리지는 독일 월드컵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는 뜻에서 지난달 22일 열렸고 다음달 9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은 대한축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역대 월드컵 기념주화 부스 등 모두 24개 부스로 꾸며졌다. 그 안엔 독일월드컵 32개 출전국 유니폼과 역대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유니폼, 축구황제 펠레 소장품 등이 전시돼 있다. 하루에 100여명 정도가 들른다. ●유명선수 사인과 미니어처 하나은행 본사 정문 오른쪽에는 월드컵 관련 기념물이 가득하다. 먼저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포토존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또 독일월드컵 32개 참가국 유니폼이 있다. 유명 선수들을 작은 인형으로 꾸민 미니어처들은 각각 선수 본인의 개성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린 데이비드 베컴과 그라운드에 떨어지기 직전 오른팔을 벌려 공을 쳐내는 올리버 칸 등 모습도 다양하다. 또 호나우지뉴와 에릭손 감독 등 유명 축구인의 사인과 박지성과 웨인 루니 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명 선수들이 그려진 축구공, 한복 옷감 축구공 등 이색 축구공들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발길이 떨어지지 않은 곳은 펠레 소장품 부스.15살 무명시절 축구공과 1981년 찍은 발 사진이 인상적이다. 사진 속 발엔 수십 개의 굳은살이 박여 있다. 자연히 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박지성 선수의 최근 공개된 발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한국 축구 발전상과 추억 전시관의 왼쪽에 마련된 우리나라 축구 100년사에선 추억과 향수가 느껴진다. 먼저 1970∼2005년 월드컵 본선과 예선에 참가했던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우리나라 대표팀 유니폼 변천사를 본다. 박지성 등 현 대표는 물론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전에서 허윤정 선수 등 왕년의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도 있다. 퀵서비스 배달 차 은행을 방문한 이선길(57)씨는 왕년의 스타들을 가리키며 “당시에는 동네에 TV가 둘밖에 없어 10원 내고 흑백 TV가 있는 만화방에 가면 사람들로 꽉 차 있던 기억이 난다.”면서 “지금은 해설가가 오버액션을 하고 매스컴이 분위기를 띄워 관객들이 춤을 추기도 하지만 당시엔 골을 넣어도 ‘골인’하고 박수 한 번 치고 말았다.”고 전했다. 축구화와 축구공의 변천사도 재미있다.1920년엔 지푸라기로 축구공과 축구화를 만들었다.1940년대는 쇠가죽으로 만들었다.1946년 한국 최초 축구공 제작자인 고 김성강씨가 사용한 쇠가죽 커터기와 현존하는 축구공 장인 이덕수씨가 제작한 축구공도 있다. 경비원 김기남(51)씨는 1960년대 쇠스파이크가 달린 축구화를 보고 “지금 플라스틱 스파이크도 위험한데 당시 선수가 공을 차기 위해 높이 발을 들었을 때 저 쇠스파이크에 맞으면 아주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흑백 사진 등 후진국 시절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부스도 있다.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 대표팀의 유니폼과 사진, 여권, 당시 신문 기사 등이 마련된 부스. 박병창(73)씨는 “그 때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애국심과 헝그리정신으로 열심히 뛰었다.”고 전했다. 약소국이었기 때문이었을까?당시 참가국들의 국기가 그려진 월드컵 팸플릿엔 태극기는 없다. 대한민국은 당시 헝가리와 터키에 각각 9대 0,7대 0으로 패했지만 북한은 1대 0으로 이탈리아를 꺾어 작은 고추장의 힘을 보여줬다. 24일 우리 대표팀이 스위스를 물리쳐 ‘대∼한민국’이 전국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풋볼빌리지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④ ‘홍명보’ 응원관 최근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전국의 미혼남녀 6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선수 가운데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선수로 홍명보 대표팀 코치를 꼽았다.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뒤 두팔을 벌리고 지은 환한 미소를 못 잊어서일까. 아직도 홍명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10일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반디앤루니스 서점 앞엔 월드컵 시즌 동안 CF모델로 계약을 맺은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코치와 함께 하는 축구 응원관’을 열었다.14평 정도로 작은 규모이지만 즐길 거리가 많다. 담당 직원인 정우진씨는 “우리나라 최고 인기 축구 스타인 홍명보의 자서전과 CF는 물론 축구를 주제로 한 다양한 비추미들이 있고 많은 서비스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비추미는 세상을 비추는 존재를 뜻하는 삼성생명의 캐릭터이다. ●홍명보 포토존에서 ‘찰칵∼’ 이 공간은 홍명보 코치와 함께 하는 축구 응원관인 만큼 홍 코치의 CF와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국민에게 대표팀을 힘껏 응원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영상물이 돌아간다. 방문하면 무엇보다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 즐겁다.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담당 직원이 직접 공간 내에 있는 카메라로 찍은 뒤 바로 인쇄해 준다. 양복을 입은 채 공을 차는 홍명보의 포토존이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또 사진의 예쁜 배경이 될 비추미 디오라마존이 있다. 디오라마존에선 비추미들은 타원으로 움직이는 벨트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아간다. 여기엔 모두 18개 비추미들이 있다. 오버헤드 킥을 하는 비추미와 골을 쳐내는 골기퍼 비추미, 슛하는 모습, 태클하는 모습, 두 개 막대 풍선을 서로 치는 비추미, 북을 치면서 응원하는 모습, 아나운서와 해설가가 중계하는 모습, 승리한 뒤 태극기나 월드컵을 들고 뛰는 모습 등…. 월드컵에서 가능한 다양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 외에도 농구와 탁구, 레슬링을 하는 비추미들도 있어 축구 선수 외 다양한 비추미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벤트로 재미도 보고 상품도 타고∼ 우리나라 축구 응원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다. 방문자가 응원메시지를 남기면 인상적인 메시지를 뽑아 상품을 준다.1등은 미니볼,2등은 축구화,3등은 홍명보 자서전을 각각 받는다. 여기에 뽑히지 못한 20여명은 대신 비추미를 받는다. 추첨은 15일마다 이뤄진다. 이미 지난달 25일과 지난 5일에 실시됐고 오는 30일과 월드컵이 막을 내리기 직전에 1차례씩 실시될 예정이다. 또 다른 이벤트는 ‘승리팀을 맞혀라.’24일 한국 대 스위스 전의 승자를 맞히는 것. 토고 전과 프랑스 전 때도 실시됐다. 승리팀을 맞힌 사람 가운데 150명은 차량 휴대전화 충전기를,200명은 축구 비치볼을,250명은 여행용 지도를 각각 받는다. 이 외에도 방문한 모든 사람은 축구 비추미 스터커 엽서를 가져가도 된다. ●약속 기다리며 서비스와 게임을 만일 약속 시간보다 일찍 코엑스몰에 도착했다면 이 홍명보 코치와 함께 하는 축구 응원관에서 기다릴 것을 추천한다. 휴식공간이 있어 쉬면서 편하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올 때까지 비치돼 있는 잡지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휴대전화 무료 충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응원관 바로 앞과 후드 코트 방향으로 20m 정도 가면 컴퓨터 축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대형 화면 속의 축구공을 차는 것. 축구 게임은 모두 2가지인데 하나는 편을 나눠 그라운드 양측의 골대 안으로 화면 속에 있는 공을 차 점수를 낸다. 또 다른 게임은 혼자서 페널티킥을 차는 것. 각 게임은 1분 정도 소요된다. 이 축구 게임 외에 두더지 잡는 게임과 비추미 육상 경기, 사다리 타기 게임 등 3종류가 더 있다. 홍명보 코치와 함께 하는 축구 응원관과 여기서 열리는 각종 이벤트는 월드컵이 끝나는 다음달 10일까지 계속된다. 그 뒤엔 또 다른 주제의 비추미관으로 운영된다. 홍명보 코치와 함께 하는 축구 응원관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 주말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이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현대 뮤즈들의 개척의 삶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신(詩神) 뮤즈. 제우스의 딸로 문예와 음악, 학술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신 중심의 사고가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인 뮤즈의 역할은 점차 인간으로 옮겨갔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뮤즈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매혹의 조련사, 뮤즈’(프랜신 프로즈 지음, 이해성 옮김, 푸른숲 펴냄)는 현대 예술가와 뮤즈에 관한 이야기다. 뮤즈는 흔히 예술가의 파트너로 시적 영감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같은 전형적인 뮤즈 상(像)을 뛰어넘는다.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열어간 뮤즈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탄생시킨 꼬마 앨리스 리델에서부터 팜므파탈로 치부되곤 하는 오노 요코까지, 여섯 명의 뮤즈 이야기가 담겼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뮤즈들은 적극적으로 예술가를 보살피고 때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들을 혹독하게 조련시키기도 한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 갈라 달리와 니체·릴케·프로이트의 연인으로 유명한 루 살로메가 그 대표적인 예다. 뮤즈들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 땅의 여성들이 시대의 억압과 폭력에 맞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1만 5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경기도 농업기술원, 농경문화 체험엔 딱이죠

    경기도 농업기술원, 농경문화 체험엔 딱이죠

    “도심속에서 농경문화를 체험해 보세요.” 경기도 화성시 기산동 경기도농업기술원(원장 김영호)은 첨단농업기술을 연구·보급하는 곳이지만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농촌체험 현장’이나 다름없다. 농업기술원 주변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전원 풍경이 적지 않게 훼손됐지만 원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면 농촌냄새가 물씬 풍긴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7만여평에 심어진 사과·배·복숭아 등 각종 과수나무들의 꽃과 향기로 절정을 이룬다. 시설 가운데 1998년 2월 문을 연 ‘농업과학교육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698평 규모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연간 3만여명이 다녀가는 등 인기를 끌면서 최근 관람객 20만명을 돌파했다. 이 중 ‘농경문화전시실’은 사라져 가고 있는 전통 농경 문화의 유산을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재현해 놓았다. 관람객들이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을 설치했다. ‘첨단과학전시실’은 새로운 농업기술과 농자재, 실물 모형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기능성음료 성분 추출과정도 쉽게 소개 최근 설치된 ‘생명공학전시관’은 빨간 장미가 파란 장미로 변하는 과정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능성 음료의 추출과정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특히 경기도농업기술원은 국내에서 장미품종 국산화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장미 생산규모는 연간 1600억원에 달하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온 품종들이다.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돼 관심을 모았던 노랑색계 장미 ‘옐로뷰티’가 바로 이곳에서 육성됐다. 꽃의 색과 모양이 아름답고 꽃대가 단단해 흰가루병에도 강해 상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밖에 도농업기술원에 마련된 야외전시장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기구인 ‘측우기’와 ‘해시계’ 등이 설치돼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곳곳에 연자방아, 디딜방아, 각종 절구류, 장독대, 정자 등이 마련돼 있어 가족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육성 중인 벼품종과 특용작물, 원예작물, 첨단 유리온실에서 키우는 토마토, 채소류, 허브, 시클라멘 등도 볼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직접 모내기를 하는 기회도 제공된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2000여평의 ‘식물자원연구원’에는 525종의 국내외 식물들이 전시돼 있어 자연학습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농업기술원의 시설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정도 소요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단체 방문할 경우에는 농업기술원 기술공보팀(031-229-5846)으로 신청하면 도우미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방문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해 인터넷으로 전송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농업기술원은 서울에서 1시간 20분, 수원에서는 20분 이내에 위치해 있어 주말을 이용한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수원에서 1번국도를 따라 화성 병점사거리까지 가서 영통과 삼성기흥반도체쪽으로 4㎞쯤 가면 왼쪽에 이정표가 보인다. ●선사 ~ 근대 농업 변천사 한눈에 김영호 농업기술원장은 “농업의 변천사는 물론 육성중인 각종 작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면서 “자녀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어 수도권 지역은 물론 멀리 충청지역 주민과 학생들까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도농업기술원에서는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벼가 자라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도록 ‘벼 재배화분’을 무료로 배급해 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북한 평양에 시범농장을 조성, 벼를 재배하는 등 대북사업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농장 규모를 지난해 3㏊에서 올해는 100㏊로 대폭 늘렸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김해 변천사 한눈에 본다

    경남 김해시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김해 스토리뱅크’가 다음달 문을 연다. 25일 김해시에 따르면 김해시의 역동적인 역사와 행정·문서 변천사, 지역 정보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스토리뱅크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날 현재 공정률은 98%. 부원동 구지관 1층 120여평에 들어서며, 사업비는 8억여원이다. 스토리뱅크는 환영, 시간속의 김해, 역동하는 김해, 도약하는 김해 등 4개 테마로 구성돼 있으며, 김해의 역사이야기와 문화유산 소개, 시청이야기, 행정변천사, 김해의 미래상 등을 담았다. 김수로왕 때부터 오늘에 이르는 김해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영상실과 지역의 문화재와 관광지, 먹을거리 등 전반의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검색센터도 들어선다. 시 관계자는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인도 김해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지역의 민간단체와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우도 전통어로 방식 ‘원’ 복원

    ‘원(垣)을 아시나요.’ 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 주민들이 30∼40년 전 전통어로 방식인 원을 복원키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원은 바닷가 일정한 구역에 돌담을 쌓아놓고 밀물에 따라 몰려든 고기떼들이 썰물이 지면 그 안에 갇히는 자연 친화적인 가두리 장치. 물이 빠지면 주민들은 배를 타지 않고 원 안에 몰려든 고기들을 뜰채(속칭 족바리)와 작살 등으로 고기를 잡던 곳이다. 원은 제주도 해안마을 전역에 분포했으나 20여년 전 해안 개발 바람과 그물 등으로 고기를 잡으면서 이용가치가 떨어졌고 돌담은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다. 우도면 지역에는 큰원, 작은원, 서뚱머흘원, 박하르방개원 등 모두 21개의 원이 있었으나 돌담이 무너지고 군데군데 자취만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우도면 주민들은 5월까지 원담복원 고증을 거쳐 원 2개소를 우선 선정해 6월중 복원을 마칠 계획이다. 원 복원이 완료되면 어로 변천사 견학장소와 관광객들의 고기잡이 체험장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양순규 우도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주민들의 옛 추억이 서려있는 원을 복원해 전통어로의 맥도 잇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의 부속 섬인 우도는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비슷해 우도라 이름지어진 산호섬으로 백사장이 유명하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재벌 위상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따라야”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재벌 위상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따라야”

    서울신문이 지난해 1월10일부터 매주 월요일에 연재한 연중기획 시리즈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가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가(家)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서울신문은 지난 4일 이병남 ㈜LG 인사팀장(부사장)과 김선웅(변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유태현(재벌의 경영지배구조와 인맥혼맥의 공동 집필자) 서울시립대 지방세연구소 박사, 본지 산업부 박건승 부장과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계의 혼맥 변천사,2세들의 경영권 승계, 기업지배구조,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 등을 놓고 결산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사회 재계 혼맥의 흐름이 과거에는 정·관계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재계내에서 인연을 맺는 경우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병남 부사장 재계 2,3세의 혼인은 과거보다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권력층에 치우쳤던 혼맥이 점점 줄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김선웅 소장 재계 혼맥은 정치·사회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주도세력으로 경제인들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인맥과 혼맥을 되짚어 볼 필요성은 충분합니다. 서민들도 자기 수준과 비슷한 상대를 배우자로 꼽는데 재벌가(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이들은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를 이미 굳혔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에도 대단한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세력을 두텁게 하는 파트너로 같은 재벌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태현 박사 재벌의 혼인방식은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초기에는 정·관계 사이의 혼인사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급속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신 재벌간의 혼인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계가 정·관·법조계 등 자신들과는 다른 영역에서 상층부를 형성한 계층과의 혼인을 줄이고, 동질감이 높은 다른 재벌과의 혼인을 늘리는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과거 한국의 재벌은 정·관계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갈 만한 역량을 확보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로는 90년대 들어 투명사회를 지향하면서 정·관계가 각종 비리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는 상황이 자주 나오면서 재벌 입장에선 더 이상 이들이 매력적인 혼인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세번째로는 재벌의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재벌 이외의 계층도 재벌과의 혼인을 부담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지요. 네번째로 재벌 2∼3세의 잦은 교류가 이들의 혼인 사례를 늘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업을 하다 보면 관계가 돈독해지고, 자연스럽게 교류가 잦아집니다. 더구나 재벌 2, 3세들은 서로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이 유학을 하는 과정에서 친밀감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혼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가 재벌의 혼인 방식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회 재계는 ‘부(富)의 세습’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며,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2세들의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김 소장 2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든, 전문경영인이 승계하든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2세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곧잘 불법과 편법을 동원한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세상사 인지상정’이며, 국민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지원에 힘입어 세워진 재벌이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관행에 따라 부의 세습을 이룬다면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지요. 또 능력 검증이 안된 2세들에게 그룹의 흥망을 맡기는 것은 심각히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2세들이 물론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으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가고 있지만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나 계열사의 지원 등을 통해 능력이 부풀려지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이런 토양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의 정당성을 받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사장 오너 CEO냐, 그렇지 않으냐가 좋은기업지배구조로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불법·편법 재산 상속이 문제이며, 보유한 주식 이상으로 과도한 지배권을 행사하려 할 때 문제가 됩니다. 또 정당한 절차를 거쳐 2세 경영인에게 승계됐다면 이는 시장에서 판단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투명해지고, 시민단체가 수시로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편법·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는 앞으로 어려워질 것입니다. 혈연이라고 해서 승계를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법률속에서 정당하게 이뤄지느냐로 파악해야 합니다. 기업과 오너와의 관계도 구분해서 볼 시점입니다. 예컨대 ‘X파일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할 때 삼성전자의 주가 변동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장은 기업과 오너의 이슈를 분리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죠. ●사회 좋은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지배구조가 그 사회가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효용성과 도덕성의 문제로 귀결되는데요. ●김 소장 척박한 국내 경영 환경에서 가족경영은 기업 성장에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경영이 우수하냐, 전문경영이 우수하냐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경영성과를 비교할 만한 실증적인 사례가 국내에 많은 것도 아닙니다. 전문경영이 대세인 미국에서도 포드 가문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포드가(家)는 한때 가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더니 임금만 계속 올려 기업 경쟁력이 약해졌지요. 결국 대주주인 포드가문이 개입해 경쟁력을 회복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양측의 성과 비교는 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이 부사장 오너들은 아무래도 경영을 길게 봅니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오너 경영일지라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접근하는 전문 경영과 오너 경영의 문제는 너무 형식 논리로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가 정신이 더 중요하며, 우리 사회가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주는 방향으로 경영환경을 개선해줘야 합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면에서 이를 뒷받침해야겠죠. ●유 박사 재벌의 혼맥은 엄밀히 보면 개인사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를 비난하거나 지나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재벌이 혼맥관계를 통해 비정상적인 급성장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그것이 결국 사회적 위화감 조장으로 이어지고 건전한 시장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재벌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이 사회와 국민의 도움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이 지위와 위상에 걸맞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줘야 합니다. 정리 류길상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결산 좌담회 (참석자) ●이병남 LG그룹 인사팀장(부사장)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硏 소장 ●유태현 서울시립대 박사 ●사회 : 박건승 산업부장 ■ 취재 뒷이야기 서울신문의‘재계 인맥·혼맥 대탐구’가 지난 3월27일자 풍림산업편을 끝으로 1년 2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이미 단행본(‘ 재벌 家脈 ´ 상편)으로 출판된 4대 그룹편이 23회 원고지 1200장 분량이었고, 나머지 그룹도 34회 1700장이 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그간 산업부 기자들의 취재 소감과 애환을 들어 봤습니다. -오너 일가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중견 그룹도 4대 그룹 못지 않았습니다.T그룹은 처음부터 “회장님 면담 불가, 가족도 노출 불가”라며 완강히 버텼습니다.“어차피 나갈 기사니 줄 것은 주자.”는 참모의 진언에 “턱도 없는 소리”라는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하던 총수도 막상 기사가 나오자 서울신문 가판을 여러부 들고 퇴근했다고 합니다. -취재 초기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던 모 그룹도 막판에는 회장 동생이 기자를 직접 찾아와 집안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털어놨습니다. -‘크렘린’ 같기로는 식음료회사인 N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창업주 일가 기사를 취재한다는 보고를 했다가 홍보담당 임원이 회장에게 엄청난 질책을 당했다고 합니다. 겨우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막내 사위와 연결이 돼 가계도 ‘얼개’를 그리고, 수차례 ‘단골식당’을 찾은 끝에 막내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계도 완성에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오너일가의 반대로 가족사진은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57회 연재하는 동안 가족사진 없이 나간 경우는 처음입니다. 식음료회사는 소비자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오너가 좀더 세상에 떳떳이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삼부토건의 경우 오너의 아들인 조시연 이사와 개인적으로 술자리도 몇번 같이 하는 등 친분이 있어 ‘땅짚고 헤엄치기’식 취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시작할 때 최대한 협조해주겠다고 약속한 그가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조 이사의 형이 과거에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집안 얘기가 공개되면 장자의 사망 내용도 다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너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다는 것이었죠. -한 집 걸러 이혼 부부가 속출하는 세태는 재벌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집안마다 한두 쌍의 이혼은 기본이었고 A그룹은 2남2녀 중 두 딸이 모두 이혼했는데 그중 한 명은 두 차례나 내로라하는 집안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혼 부부가 자녀를 뒀는데 그들의 혼기가 찼을 경우에는 혼사 문제를 고려해 이혼은 했지만 여전히 부부로 이름을 올려달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반면 이혼은 했지만 자녀가 어리거나 없다면 아예 혼인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B그룹 회장의 경우 일찌감치 이혼했지만 새로 만난 부인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인지 현 부인 사진에 대해 까다롭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다보니 형제가 분란을 겪은 그룹도 적지 않았습니다. A그룹 총수는 분쟁 이후 사과를 받았냐는 질문에 “우리 형님이 그렇게 말할 분이 아닙니다.”고 반박했고, B그룹 총수는 ‘여전히 내가 적통인데 형님이 내 자리를 차지했다.’는 뉘앙스가 짙었습니다. 형제간 계열분리된 C그룹은 서로 왕래가 없을 뿐 아니라 소식도 모르고 지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형제간 불화설이 나돌던 D그룹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6개월만에 불화설이 사실로 확인돼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산업부 ukelv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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