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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女 시험 계속 떨어지자 택한 방법이…

    대입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한국사는 꼭 넘어야 할 벽이다. 암기해야 할 내용이 많아 어렵게 느껴지지만,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2% 부족’의 고배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자주 출제됐던 부분을 정리하고, 지난해 7급 필기시험 한국사 과목에서 100점 만점을 맞은 합격자의 조언을 듣는다. 우선 5급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응시 전까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고급) 성적을 미리 받아 놓아야 한다. 검정시험 성적표가 있어야 5급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정시험은 연중 네 차례 시행된다. 올해 첫 시험(제22회)은 오는 25일 전국 52개 지역에서 치러진다. 결과는 다음 달 11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누리집(historyexa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용기 에듀윌 강사는 “한국사 기출 문제를 분석했을 때 이번 시험에서도 수험생들에게 물어볼 주제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면서 “고급 문제의 경우 50문제 중 전·근대 시기 관련 문제는 30개, 근대 이후의 문제는 20개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강사는 선사시대 내용에서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 구분하기, 단군신화 및 8조법금 분석, 고조선 발달사 등이 주로 다뤄진다고 설명했다. 삼국시대는 6가야 연맹과 금관가야, 대가야 비교, 고구려·백제·신라 발전사, 임나일본부설 비판, 신라의 왕호 변천사, 수도·중심지 이동, 통일신라와 발해의 중앙행정 조직 등이 자주 등장한다. 고려시대의 경우 호족 정책, 지배세력의 변천사, 무신집권기 정치·경제·사회상, 공민왕의 개혁 정치, 대외 관계, 서경 천도 운동 등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삼국시대만큼이나 숙지해야 할 내용이 많은 조선시대에는 세종과 성종의 편찬사업, 고려와 조선의 지방행정 조직 비교, 성균관·서원·향교·서당 등의 구분, 붕당정치, 인조반정 이후 친명배금 정책과 광해군의 중립정치 비교, 영조와 정조의 개혁 정책, 세도정치 등이 수차례 활용됐다. 근대기에서는 흥선대원군의 개혁,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비교,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등의 출제 빈도가 높다. 일제강점기는 시기별 일제 통치·경제 정책, 3·1운동과 6·10만세운동, 항일운동 간 비교, 임시정부 활동, 중일전쟁 이후 광복군·의용군 활동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대사에서는 모스크바 3상 회의, 정부 수립 과정, 6·25전쟁, 4·19혁명 및 5·16 군사정변, 유신 체제와 신군부 등장, 광주민주화운동과 더불어 6·10항쟁, 7·4 남북공동성명과 관련된 지식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아영(28·여·일반행정직)씨는 지난해 시험 한국사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전 시험에서는 15점을 받고 크게 낙심한 바 있다. 박씨는 “2010년 생애 첫 공무원 시험에서 한국사 점수가 15점이었다”면서 “비록 시험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른 것이라고 하지만 성적이 너무 나빠서 내가 우리나라 국민이 맞나 하는 생각도 했다”면서 웃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영어 다음으로 힘들었던 과목이었을 만큼 한국사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고 말하는 그가 만점을 받은 비결은 ‘많는 푸는 것보다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있었다. 박씨는 처음 한국사를 공부할 때 주변에서 추천하는 학습법을 그대로 따랐다. 요약 노트를 만들 시간에 기본서를 한 번이라도 더 읽고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 보라는 게 주위의 조언이었다. 2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공부했지만 점수는 늘 70~80점에 머물렀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는 기본서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박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주제가 나뉜 가운데 역사적 사실이 시대별로 기술된 기본서를 골랐다”면서 “시간 순으로 적힌 책이 한국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험을 앞두고 15차례 이상 반복해 기본서를 정독했다. 또 법원직·경찰직·소방직 공무원 시험 등에 출제된 한국사 기출 문제도 풀어 보면서 나름의 정리 작업을 병행했다. “문제를 풀면서 확실히 이해한 지문과 그렇지 않은 지문, 헷갈리기 쉬운 지문과 주의해야 할 지문을 따로 표시한 뒤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는 박씨는 “문제를 많이 푸는 일도 좋지만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푸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수험생활 3년차에 비로소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암기가 필요한 내용을 골라 공책에 담았다. 또 암기 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른바 ‘연표식 정리’를 활용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들을 먼저 세기별로 크게 분류한 뒤 몇몇 주요 사건이 발생한 연도를 외우면서 공부했다”면서 “역사 흐름을 알면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몰라도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답을 빨리 찾으려면 주요 사건의 발생 연도는 암기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박씨는 네 차례 도전 끝에 공직에 진출했다. 그는 한국사 점수를 높이려 노력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돈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지긋지긋한 빚의 전쟁

    돈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지긋지긋한 빚의 전쟁

    화폐의 전망/필립 코건 지음/윤영호 옮김/세종연구원/436쪽/2만 2000원 흔히 돈이라 불리는 화폐. 이 화폐는 경제의 논리가 생성된 이후로 줄곧 핵심 요소로 작용해 왔다. 실제로 화폐 없는 경제는 있을 수 없으며 현대경제는 화폐가 가진 순·역기능의 조절과 해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혹자는 지금 글로벌 위기의 본질을 화폐정책의 실수에서 찾기도 한다. ‘화폐의 전망’은 바로 그 화폐의 본질을 꿰뚫어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 혼란을 해부해 눈길을 끈다. 책 제목만 볼 때 그저 단순한 화폐 관련 총서로 비쳐진다. 하지만 돈의 맥락에서 금융의 역사와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튼실한 대안을 제시한 역저다. 조개껍질 같은 초기의 화폐 형태에서 지폐, 전자화폐까지 온갖 형태로 변화해 온 화폐사의 추적이 책의 기본 바탕이다. 그러면서 화폐의 변천사와 맞물린 부채며 신용의 사례를 들춰 위기의 본질을 보게 만드는 구성이 흥미롭다. ‘금융업은 국가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두 집단으로 분리하고, 두 집단을 서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채운다.’ 19세기 초반 미국 사상가 존 테일러가 일찍이 간파한 돈의 해악이다. 저자는 이 말을 들어 현재의 금융 위기야말로 돈의 본질과 깊이 연관돼 있음을 들춰낸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갈등은 사실상 돈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됐고 경제사도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투쟁사라는 것이다.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부채의 총 가치는 연간 경제 생산가치의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 시각에서 돈과 부채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어떻게 변해 왔고 변할 것인지를 더듬는다. ‘돈은 부채이고 부채는 돈이다.’ 돈과 부채의 연관성을 현대경제의 필수요소라는 신용으로 연결하는 대목도 독특하다. 2011년 8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채무국의 지위를 의미하는 AAA 등급을 상실했다. 요컨대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데 필요한 신용이 감소한 것이다. 책은 그 결과로 야기된 혼란에 주목해 지금 경제가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 준다. 신용은 금융거래에 사용될 수 있지만 투기조장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해악의 사례들이 그런 측면에서 곁들여진다. 저자는 지난 40년 동안 누적된 엄청난 부채는 단번에 상환될 수도 없고 상환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채무국들은 공식적인 디폴트를 선언하든 정부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든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것이란 진단이다. G2로 불리는 미·중 관계의 언급도 흥미롭다. “채무·채권국의 관계를 포함해 좀 더 강력하고 긴밀한 협력을 취하겠지만 단시일 내에 중국의 위안화가 현재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대치하지는 못할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1948~2047년 정부 변천사·미래상 한눈에

    1948~2047년 정부 변천사·미래상 한눈에

    안전행정부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행정 변천사와 각종 정책 관련 기록물을 전시하는 정부행정역사관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1층 로비에 개관했다고 24일 밝혔다. 역사관은 11부 4처로 구성된 정부조직법(1948년)과 국가공무원법(1949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안(1961년) 등 정부 변천사를 담은 다양한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또 그동안 정부가 걸어온 길과 2047년까지 정부·행정의 미래상을 보여 주는 ‘100년 달력’도 전시됐다. ‘테마로 보는 행정’에는 1960년대 중앙청 복구공사 완료와 정부 신청사 신축, 정부세종청사 건설 등 정부청사의 변천과 공무원 임용 및 교육 등의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안행부는 공직자의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올바른 공직자상을 정립하기 위해 전시물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유정복 안행부 장관은 “선배 공무원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 미래 지향적인 공직 생활을 다짐하는 장으로 정부행정역사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윤아, ‘총리와 나’ 재미 높이는 패션 변천사 ‘눈길’

    윤아, ‘총리와 나’ 재미 높이는 패션 변천사 ‘눈길’

    ’총리家’에 입성한 윤아가 다채로운 패션 모드를 예고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총리와의 계약 결혼이라는 코믹한 설정과 LTE-A급 전개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KBS 2TV 월화 드라마 ‘총리와 나’(김은희, 윤은경 극본/이소연 연출)에서 ‘남다정’으로 열연 중인 윤아의 ‘스타일 3단 변신’이 극 중 캐릭터 변화를 한 눈에 보여주며 또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윤아는 극 중 역할 변화에 따라 팔색조 패션 변신을 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수수한 ‘다정룩’을 거쳐 우아하고 세련된 감각의 총리 부인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과정에서 선보이는 다채로운 패션 모드는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며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는 극 중 다정(윤아 분)이 권율(이범수 분)과의 결혼으로 인해 ‘총리家 안방마님’으로 나선 가운데 이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매력의 스타일 변신을 예고한 것. 그간 윤아는 기본 청바지에 남방, 티셔츠 등을 매치한 수수한 단벌 ‘다정룩’으로 털털하면서도 상큼발랄한 남다정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더하며 몰입도를 높여왔다. 특히, 다정 캐릭터에 100% 맞추기 위해 매회 비슷한 톤의 의상을 입는 등 캐릭터에 충실하면서 현실감 있는 패션 센스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샀다. 그런 윤아가 ‘총리家’에 입성하고 나서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총리 부인 패션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모노톤의 깔끔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라인으로 도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가 하면, 화사한 비비드 컬러의 의상으로 여성미를 한층 부각시키며 럭셔리의 품위를 뽐내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총리와 나’ 제작진 측은 “그간 빈틈 많은 남다정 역할에 어울리는 단벌 ‘다정룩’으로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더해온 윤아이지만 ‘총리家 안방마님’이 된 직후부터는 패션이 확연하게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향후 고혹적인 매력은 물론 우아한 여성미까지 윤아가 선보일 다채로운 ‘총리 부인’ 패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처럼 내추럴한 매력부터 ‘총리 부인’의 우아한 품격까지 결혼과 함께 달라진 윤아의 ‘스타일 3단 변신’에 누리꾼들은 과연, 본 방송에서는 이 같은 윤아의 패션이 어떻게 선보일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이범수-윤아의 본격적인 결혼 생활로 제 2막에 접어든 ‘총리와 나’는 고집불통 대쪽 총리와 그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20대 꽃처녀의 코믹 반전로맨스로 매주 월-화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깔깔깔]

    ●연인들의 변천사 3 ▶담배 피울 때 초기:화장실이나 밖에 나가서 조용히 피우고 온다. 중기:피워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허락을 구하고 피운다. 말기:대놓고 너구리 잡는다. ▶하품을 할 때 초기:피곤한가 보다. 중기:냉수 먹고 속 좀 차려! 말기:입 찢어진다 찢어져! ▶군대 갈 때 초기:헤어져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어! 중기:남들도 다 가는데 뭐! 말기:거기 말뚝 박으면 월급 많다던데! ▶헤어진 다음 날 초기:거의 정신을 못 차린다. 중기:미리 준비한 대타를 이용한다. 말기:선본다.
  • [깔깔깔]

    ●연인들의 변천사 2 ▶데이트 비용 초기:없어서 못쓴다. 중기:차 값이나 영화비 둘 중 하나면 된다. 말기:있던 돈도 아깝다. ▶바람을 피울 때 초기:눈 시퍼래서 죽이느니 살리느니 한다. 중기: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맞짱 뜬다. 말기:적극적으로 권장하며 투자한다. ▶주로 가는 곳 초기:레스토랑, 콘서트장 등 깨끗하고 비싼 곳. 중기:만화방, 비디오방 등 저렴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 말기:집앞 놀이터, 길거리 자판기, 다방 등 싸고 가까운 곳. ▶노래방에서 100점 나왔을 때 초기:박수쳐 주며 가수 데뷔하라고 한다. 중기:점수와 실력은 반대라고 말한다. 말기:기계 고장 났다고 방 바꿔 달라고 한다.
  • [깔깔깔]

    ●연인들의 변천사 1 ▶만나는 이유 초기: 안 보면 허전해서 중기: 생일이나 기념일 선물 받으려고 준비하는 과정 말기: 싸우려고 ▶헤어질 때 초기: 서로 집까지 왔다 갔다 반복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중기: 가는 것만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 말기: 자기 집 가는 버스가 늦게 오면 괜히 화난다. ▶결혼에 대하여 초기: 당연히 할 거라 믿는다. 중기: 할까 말까 갈등한다. 말기: 한다면 인간승리다. 신중할 때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북 완주 삼례 예술촌

    [명인·명물을 찾아서] 전북 완주 삼례 예술촌

    전북 완주군 삼례읍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화려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강을 낀 삼례읍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호남 최대의 역참지.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운집해 2차 봉기를 했던 저항의 현장이자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대상이 됐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다. 1980년대 이후 전주시의 위성도시로 전락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던 이곳이 최근 들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군과 문화예술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 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예술적 생명을 불어넣은 조그만 읍지역이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만경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건설했던 철도 역사와 양곡 보관창고들은 예술적 주제를 풀어내는 장소로 변신했다. 옛 삼례역은 막사발미술관으로, 양곡 보관창고는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전라선 복선화로 철로가 옮겨가면서 기능을 잃은 옛 건물들을 군이 사들여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2년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1920년대 지은 창고 5동과 1970~80년대 지은 창고 2동으로 구성됐다. 2010년 이후 기능을 잃은 이 창고들은 지방자치단체와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노력한 끝에 예술촌으로 재탄생했다. ‘삼삼예예미미’라고 이름 붙였다. 예술촌은 건물의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면서 변신을 꾀해 근현대 예술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외관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는 현대 미술로 채웠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낡은 벽체, 녹슨 함석지붕 등은 어느 유명한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신 높은 천장을 지탱하기 위해 구조물을 세우고 통풍과 습기 제거를 위해 내부 벽면에 ‘W’자 모양으로 둥근 기둥을 설치했다. 또 ‘H’자 모양 사각 나무 기둥으로 벽면을 장식했다. 이 때문에 예술촌은 밖에서 볼 때는 낡고 거대한 창고에 지나지 않지만 안은 완전 딴판이다. 허름한 양곡창고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대반전에 보는 이들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예술촌은 책박물관, 책공방 북아트센터, 디자인 뮤지엄, 미디어아트 갤러리, 김상림 목공소, 문화카페, 서점 등이 어우러져 있다. 책박물관은 서울과 강원 영월에 있던 박물관과 서점을 옮겨왔다. 책의 시대별, 주제별로 4개 전시공간으로 구성됐다. 어린 학생에게는 책에 대한 흥미를, 전문 연구자들에게는 감동을 주는 전시를 연출한다. 1999년 영월에서 책박물관을 시작했던 시절부터 삼례로 옮겨오기까지 과정을 전시로 구성했다. 옛 교과서, 교과서 삽화 등 흥미로운 전시물이 가득하다. 국내 최초의 무인 서점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정직한 서점’으로 헌책방이다. 책값은 한 권에 2000원 이상 내키는 대로 내면 된다. 정직한 서점에서 종종 열리는 고서, 헌책, 문방구를 사고파는 재활용 벼룩시장도 인기다. 정직한 서점은 가정과 기관에서 푸대접받는 책 기부를 연중 환영한다. 책 공방 북아트센터는 전시와 체험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책을 만드는 각종 기계와 도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책의 인쇄와 제본, 제책작업 등 책 제작 전 과정을 체험하고 견학하는 인파들이 줄을 잇는다. 직접 책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스크랩북, 티셔츠 인쇄, 가족앨범북 만들기 등 초·중·고생을 위한 방과후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디자인 뮤지엄은 삼례문화예술촌 탄생의 논의가 시작된 자리다.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최하는 국제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수상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없어 안타까워했던 예술인들이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키자는 논의를 한 게 예술촌 탄생의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 디자인 뮤지엄은 다양한 산업디자인 제품, 세계적 대표성 디자인, 역사성 디자인, 모자 디자인, 패션 디자인, 학생들의 졸업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해 디자인의 시대적 변천사를 정리해 놨다. 김상림 목공소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목가구의 전시, 제작 체험 공간이다. 사람 모양으로 깎아 만든 자목상, 못을 사용하지 않은 짜맞춤 가구, 장인들이 사용하던 공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목수교실, 목공교실도 운영해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다양한 목공예품 제작 체험도 가능하다. 미디어아트 갤러리에서는 시각 미디어, 설치·조각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나를 찾는 미술여행’이란 테마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창의 인성교육도 한다. 예술촌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옛 삼례역사는 막사발미술관으로 꾸몄다. 김용문씨 등 작가 20명이 제작한 막사발과 해외 작품 등 300여점이 전시됐다. 이곳에서는 세계막사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막사발 도예교실을 운영하는 등 막사발 연구와 체험활동을 펼치고 있다. 막사발을 굽는 재래식 불가마도 있다. 이같이 지자체가 사라질 위기를 맞은 애물단지 시설물을 예술촌으로 재생시키면서 삼례읍은 이제 완주군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한국관광공사가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할 정도다. 삼례읍 외곽도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만경강을 굽어보는 비비정(등록문화재 221호) 옆에는 전망대를 겸한 휴게 공간 ‘비비낙안’이 들어섰다. 삼례와 익산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옛 양수장 옆에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농가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고 있다. 완주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옛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400년 동안 한지를 만들어 왔다고 전해지는 소양면 대승리 한지마을에 공예공방촌을 개관했다. 내년에는 구이면에 주류박물관을 열고, 국내 최초의 담배박물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담배박물관 건립사업은 관련 자료 8만여점을 모은 소장자와 협의를 하고 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1일 “과거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여 미래를 위해 과거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지역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옛것들을 오늘에 되살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으로 풀어내고 이를 지역의 대표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내년1월 25일 시행 ‘사회복지사 1급 시험’ 마무리 전략

    내년1월 25일 시행 ‘사회복지사 1급 시험’ 마무리 전략

    전국 17개 시·도에서 선발하는 지방직 사회복지 9급 공무원이 되려면 사회복지사 2급 이상 자격증이 필요하다. 특히 내년 3월 22일 서울시를 포함한 전국에서 사회복지직 9급 공채를 실시해 1200명 이상을 채용할 예정이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은 사회복지 관련 14과목을 이수하면 취득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은 별도로 마련된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받을 수 있다. 내년 1월 25일에 치르는 1급 시험은 과목당 문제 수가 30문제에서 25문제로 줄어 시험 난이도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내년 시험까지 약 두 달 남은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은 총 3교시에 걸쳐 진행된다. 김진원 에듀피디 강사는 1교시 사회복지기초 과목 가운데 ‘인간행동과 사회 환경’ 영역에서 주로 등장하는 개념으로 여러 학자들의 발달 단계 이론을 꼽았다. 그는 “생애주기(태아기~노년기) 단계별 발달 특징과 더불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장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 등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인간행동과 사회 환경 영역에서는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주요 이론들을 잘 숙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강사는 이어 ‘사회복지 조사론’에서 사회조사 방법(종단 조사와 횡단 조사), 연역법과 귀납법, 측정 및 척도, 신뢰도 측정 방법, 실험 설계, 조작적 정의, 질적 연구 방법론 등 과학적 연구 및 조사와 관련한 개념들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2교시 과목인 ‘사회복지 실천’은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사회복지 실천론’ 영역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으로는 사회복지실천의 목표, 속성, 윤리강령과 관련된 부분을 비롯해 사회복지사의 역할 및 사회복지 실천 현장을 다루는 부분, 관계 형성과 면접 기술과 연관된 내용이 있다. 전미숙 에듀윌 강사는 “사회복지 실천론은 전반적으로 골고루 출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부분은 사회복지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잘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 ‘사회복지 기술론’ 영역은 크게 실천 기술의 정의, 개인 대상 모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실천, 집단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실천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 강사는 “가족 대상 사회복지 실천과 집단 대상 사회복지 실천 모두 각 실천 모델과 실천 과정을 전반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2교시 과목의 마지막 영역인 ‘지역사회 복지론’은 우선 지역사회의 개념을 파악하고 지역사회 복지 실천 추진체계, 지역사회 복지 운동, 여러 학자들이 밝힌 지역사회 복지 실천 모델, 지역사회 복지 실천 원칙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이 중에서도 이론과 모델에 초점을 맞춰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전 강사의 분석이다. 전 강사는 “다른 영역보다도 사회복지 실천론·실천 기술론은 사례 문제가 가장 많이 출제되기 때문에 이론 및 개념을 사례에 접목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출문제 중 사례 관련 문제를 꼼꼼하게 정리해 두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3교시에 보는 ‘사회복지정책과 제도’는 거시적 차원의 개념들로 가득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도 이 과목의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사회복지 정책론’의 경우 사회복지 정책의 역사적 전개, 복지국가 유형, 4대 사회보험, 사회복지정책 전달 체계 등을 익혀야 한다. ‘사회복지 행정론’ 영역에서는 사회복지 조직 구조, 조직 유형,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 규칙, 정보관리시스템, 직무 설계 및 직무 분석 등이 단골 출제 손님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법제론’ 영역은 사회복지 정책의 기본이 되는 법률을 다루는 영역으로서 수험생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관련 입법 변천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사회보장기본법, 사회복지사업법, 4대 보험 관련법(산업재해재상보험법, 고용보험법, 국민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등),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와 관련한 법(한부모가족지원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등)이 문제로 활용된다. 김 강사는 “보통 사회복지 법제론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수험생들이 과락을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 법제론에서 0점을 맞더라도 사회복지 정책론과 사회복지 행정론 각 영역의 점수 합이 30점 이상이라면 과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수험생들에게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개콘 김나희 ‘핫팬츠’부터 ‘간호사’까지…섹시변신 변천사

    개콘 김나희 ‘핫팬츠’부터 ‘간호사’까지…섹시변신 변천사

    김나희 변신 화제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우먼 김나희의 간호사 변신이 화제다. 지난 3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좀비 프로젝트’에서 김나희는 간호사 복장으로 출연해 남심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김나희는 몸에 딱 달라붙는 간호사 의상을 착용해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김나희는 지난 8월에도 해변을 지나가는 여성 역을 맡아 꽃무늬 핫팬츠를 입고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또 김나희는 지난 좀비 프로젝트에서 물벼락을 맞고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근영 남자친구’ 김범, 이상형 발언 변천사

    ‘문근영 남자친구’ 김범, 이상형 발언 변천사

    배우 문근영(26)과 김범(24)의 열애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김범이 과거에 밝힌 이상형 발언도 화제가 되고 있다. 김범은 약 4년 전인 지난 2009년 KBS2 월화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면서 “귀엽고 애교가 많은 여자가 좋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1년 뒤 ‘2010 한류드림페스티벌- 한류스타와의 밤’에서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위로 10살까지 가능하다. 정신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대화가 통하는 여자면 좋겠다”며 달라진 이상형을 언급했다. 지난 8월 문근영과 함께 출연한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기자간담회에서는 “워낙 일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동료 연예인와의 만남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인터넷 연예매체 티브이데일리는 1일 1일 인터넷 연예매체 티브이데일리는 김범과 문근영이 최근 유럽 등지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복수의 방송 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김범과 문근영이 드라마 촬영 중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보도 직후 문근영의 소속사인 나무엑터스 관계자는 매체와의 통화에서 “문근영과 김범이 ‘불의 여신 정이’를 통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 아직은 알아가는 단계고 조심스럽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을 예쁘게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인정했다. 김범의 소속사인 킹콩엔터테인먼트 관계자 역시 매체를 통해 “김범과 문근영이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를 통해 가까워져 최근 연인으로 발전했다. 유럽 여행을 간 것은 사실이나 휴식 차 지인들과 함께 다녀온 것이다. 아직 알아가는 단계인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두 사람의 모습을 예쁘게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플러스]

    민관 협력 최우수 복지행정상 성동구(구청장 고재득) 29일 보건복지부 선정 ‘2013년 복지행정상 민관 협력부문’에서 전국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성동구지역사회복지협의체는 민관 협력 아래 지역 복지 계획 수립과 평가, 위기·긴급 가정 공동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성동희망기금’ 운영, 지역 복지 인력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성동복지학당’ 운영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민생활과 2286-5015. ‘癌 동거시대 이야기’ 강연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다음 달 6일 오후 2시 구청 대강당에서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암센터 종신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로 세계적 암 권위자인 김의식 박사 초청 강연을 연다. ‘암 동거시대 이야기’란 주제 아래 90여분간 강의한다. 보건지도과 2094-0833. 100여명 채용… 취업 박람회 송파구(구청장 박춘희) 30일 오후 2시 구청 대강당에서 ‘함께하는 취업·진로박람회’를 연다. 기업채용관에선 롯데백화점 등 20여개 업체가 참여해 100여명을 채용한다. 부대행사관에서는 성공적 재취업을 위한 자격증, 교육훈련프로그램 정보 등이 제공된다. 일자리지원팀 2147-2531. 노원 과거·미래사진 전시회 노원구(구청장 김성환) 다음 달 1~15일 중계동 북서울미술관 지하1층 커뮤니티 전시장에서 ‘노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진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향토역사와 주민 생활변천사 등을 테마별로 전시한다. 오전 9시~오후 6시 언제든지 관람 가능하다. 무료다. 자치행정과 2116-3136.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한강 잔혹사 무동·백마도 10여개 섬, 택지 조성 위해 훼손 ‘양화진의 절경’ 선유봉, 깎이고 깎여 ‘섬’ 신세로 한강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하중도)들이 명멸(明滅)했다. 한강 2000년사 속에서 실재했던 뭇 섬들은 불과 50년 전에 뭍으로 변하거나 사라졌다. 큰 섬을 꼽으라면 팔당 하류부터 당정섬(미사리 섬), 석도(무학도), 잠실도(잠실섬), 뚝섬, 저자도, 율도(밤섬), 여의도, 난지도를 들 수 있다. 부리도, 무동도, 반포도(서래섬), 노들섬(중지도), 백마도도 당당했다. 이 중 석도, 무동도, 부리도, 저자도, 백마도는 한강변을 메워 택지를 조성하는 모래로 쓰이면서 파괴됐다. 밤섬과 당정섬도 같은 운명이었지만 20여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잠실도와 뚝섬, 서래섬, 여의도, 난지도는 이름만 섬(도)일 뿐 육지가 됐다. 밤섬과 함께 ‘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당정섬은 경기 하남시 산곡천과 한강이 만나는 팔당대교 하류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있다. 석도는 고덕천과, 잠실도와 부리도는 성내천과 탄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각각 형성됐다. 잠실도와 부리도는 별개의 섬이었지만 합쳐져 육지가 되었다. 무동도는 탄천이 흘러나오는 지금의 청담동쯤에 있었다. 반포 서래섬은 이름이나마 남았지만 무동도는 무자비한 채취에 흔적도 없다. 저자도는 청계천과 중랑천, 여의도와 밤섬은 만초천(욱천)과 봉원천, 난지도는 한강 이남의 안양천과 한강 이북의 홍제천과 불광천이 맞닿는 곳에 있었다.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한강대교) 건설 당시 이름이 없던 모래 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다. 노들이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이며 강 건너편 노들나루(노량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키로 했으나 한강대교를 오가는 차량이 내는 소음과 예산문제로 백지화되고 나서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난지도는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33배나 더 큰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됐다. 난초와 지초 향기가 진동하던 섬이 쓰레기 침출수의 악취를 풍기는 인공산이 된 셈이니 비극이 따로 없다. 백마도는 김포대교 아래 모래섬이었지만 신곡수중보 공사로 가라앉았다. ‘한강 잔혹사’는 섬을 없애기도 했지만 새로운 섬을 생성시키기도 했다. 선유도와 세빛둥둥섬이 새롭게 태어난 인공 섬이다. 선유도는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잠두봉)과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18세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 ‘선유봉’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한강제방 축조와 여의도 윤중제 조성용 골재로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해 결국 섬 신세가 됐다. 1390억 원을 들여 반포한강공원에 지어진 3채의 세빛둥둥섬은 세계최대의 인공 섬이다. 강물에 휩싸여 떠내려가지 않도록 쇠사슬로 고정한 유리성(琉璃城)이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앤 자연섬에게 바치는 레퀴엠(진혼곡)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훼손한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생각게 한다. ■뚝섬 과거사 경상·충청·강원도 연결하는 도성 동남쪽 관문 다리 건너고 배로 한강 넘어야 닿아 섬으로 인식 한강 제방이 생기기 전 한강 강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된 1987년 이후 한강의 강폭은 최대 900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제방이 없었던 1960년대 이전의 한강은 서울~원산 간 경원선(지금의 중앙선 구간) 철길이 경계선을 이뤘다. 홍수 때면 여의도, 이촌, 신사, 잠원, 반포, 압구정, 뚝섬, 잠실 등 한강 양안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홍수기 한강의 넓이는 평균 1800~2000m였고, 잠실섬을 중심으로 현재의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석촌호수 남단까지를 측정했을 때 최대 3500m에 이르렀다. 갈수기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노량진과 흑석동 쪽에 붙어 흐르는 50~100m의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백사장이었다. 옛사람들은 왜 뚝섬을 섬으로 여겼을까. 긴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뚝섬은 한양인 듯하지만 한양이 아니었다. 도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의 경계지점이자 도성의 동남쪽 관문이었다. 1751년에 제작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門分界之圖)를 보면 뚝섬을 섬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만 살곶이다리를 건너 뚝섬, 광나루, 송파나루로 향하는 지점에다 ‘뚝섬’이라는 지명을 적어 놓았다. 중랑천을 건너서 다시 배를 타고 한강을 넘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로 연결되는 뚝섬을 섬으로 여긴 까닭이다.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은 경기도 광주를 거쳐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려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3도의 물산이 모이는 광나루와 송파나루가 흥청대기 마련이다. ‘광주 가는 나루’라고 해서 광나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양도성을 나서면 광희문~왕십리를 거쳐 개천(청계천)과 중랑천이 한강본류와 만나는 살곶이다리(箭串橋)를 건너야 뚝섬에 닿았다. 함흥에서 도읍으로 돌아오던 태조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에게 화살을 날렸던 바로 그 장소이며 조선에서 가장 긴 돌다리였다. 중랑천을 따라 도봉천과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를 생각해 보면 옛사람들이 뚝섬을 섬으로 여길 만했다. 뚝섬(纛島)이라는 지명은 태조 때 왕을 상징하는 깃발인 독기(纛旗)가 떠내려온 장소라고 하여 생겼다. 처음에는 독도라고 부르다가 이후 둑섬, 둑도, 뚝도를 거쳐 뚝섬으로 굳어졌다. 장안평이나 전관평(살곶이벌)처럼 넓은 벌을 형성하는 비옥한 땅이어서 한성부의 배후 농업지대 역할을 했다. 마장동(馬場洞)이나 면목동(面牧洞)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을 키우고 사냥을 하던 드넓은 목장이었다. 이곳에 경마장과 골프장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현재의 서울숲이 조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뽕밭 변천사 홍수방지 제방쌓기서 택지·도로 조성으로 변질 잠실섬·부리도 육지화… 금싸라기 땅으로 개발 한강의 섬은 어떻게 없어졌으며 강변 백사장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물난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방을 쌓는 것이 1960년대 제1차 한강 개발의 주목적이었지만 차츰 택지조성과 제방 둑에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로 목적이 변질됐다. 이름하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불린 한강 제방쌓기가 이권사업으로 등장한 탓이다. 1960~1970년대 동부이촌동, 흑석동, 서빙고, 반포, 압구정동, 구의, 잠실 등이 주 대상지역이었다. 국유하천인 한강을 막아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했다. 모래와 골재는 한강에 지천으로 널린 모래섬과 강변 암벽을 폭파해 메웠다. 그 결과 섬은 사라졌고, 한강제방에는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가 생겼고, 한강변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들은 재벌이 됐다. 잠실섬은 본래 광진구 자양동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아득한 옛날’ 홍수 때 허리가 잘려나가 섬이 됐다고 한다. 이때 새로 흐르게 된 북쪽 물길이 신천(新川)이다. 또 잠실섬 서쪽에 부리도가 있었는데 갈수기에는 하나의 섬이었다가 강물이 불면 딴 섬이 되었다. 행정적으로 잠실섬은 고양군 뚝섬면, 부리도는 광주군 중대면으로 갈렸다. 잠실에는 16세기 무렵까지 뽕나무가 무성했지만 잦은 홍수로 피폐해졌다.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이 잠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1960년대 말까지 서울의 끝은 뚝섬과 광나루였다. 잠실섬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1969년 경기도 광주에 조성한 300만평 규모의 광주대단지(성남)에 집단이주한 주민 10만명의 교통불편 민원과 서울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강북의 기존 시가지와 광주대단지를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잠실 공유수면 매립과 잠실섬의 육지화, 잠실대교의 개설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1971년 4월 한강 남쪽 본류인 삼개나루(삼전도) 쪽 흐름을 차단하는 물막이공사가 완료됐다. 잠실섬이 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북쪽 지류인 신천 쪽을 막지 않고 남쪽 본류인 삼전도 쪽을 막은 것은 택지를 더 많이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유일한 호수인 석촌호수는 이때 막은 강물이다. 롯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이 땅에 동서 390m, 남북 265m, 바닥면적 합계 56만㎡의 엄청난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잠실 롯데월드는 여의도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보다 4배 가까이 큰 덩치를 자랑한다. 석촌호수를 가로지르는 송파대로 좌우 동호(東湖)와 서호(西湖) 중 서호를 20년 장기 대여해 실외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동호 남쪽에 이곳이 옛 송파나루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서호 옆에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세운 삼전도비(大淸皇帝恭德碑)가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을 이른다면 잠실의 변화는 ‘상전금지’(桑田地)란 신조어를 낳을만하다. 뽕밭이 금싸라기 땅(地)이 되었으니 말이다. 1972년 7월 잠실대교와 송파대로가 준공돼 서울과 성남시가 이어졌다. 1978년 잠실매립이 마무리되자 75만 평이 생겼다. 여기에 국유지와 시유지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벌이자 무려 340만 평에 이르는 신생 도시 한 개가 생겼다. 이른바 잠실지구이며 올림픽유치의 꿈을 이룰 잠실 메인스타디움이 깃들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매립 당시 토사가 부족하자 개발업체 측이 ‘몽촌토성 언덕을 헐어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했으나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성백제의 역사를 한순간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joo@seoul.co.kr
  • 지난 70년간 역사교육의 허와 실

    [역사 교육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한종 지음/책과함께/504쪽/2만 5000원 뉴라이트 계열의 교학사 역사 교과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해방 전후부터 최근까지 역사 교육의 변천사를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역사 교육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지난 70년간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은 역사 교육의 실상을 23개의 주요 장면을 통해 조목조목 짚는다. 저자는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교육, 그중에도 역사 교육만큼 정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역사 교육은 통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에 힘쓰던 사람들도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역사를 강조하고 중시한 점은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해방 이후 역사 교육의 과제는 독립 한국에 걸맞도록 역사 교육을 바로 세우고 자국사 교육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과 민족 전통에 토대를 둔 민족주의자들의 의견이 맞선 가운데 단군신화에서 나온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채택됐다. 이는 일민주의라는 이승만 정부의 통치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돼 있다. 1970년대 들어 국사 교육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에 따라 강화됐다. 사회과에 속해 있던 국사가 독립 교과가 되고,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도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의 국사 교육 강화 정책에는 국사를 국정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민중 중심의 역사 서술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대두됐다. 후반에 출범한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역사교육 운동에 앞장섰는데 이러한 변화를 경계한 보수 세력의 반발로 1994년 국사 교과서 준거안 파동이 불거지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역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에 비해 다양한 문제들이 논의의 대상이 됐다. 근·현대사 인식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논쟁으로 확대됐고, 21세기 들어서는 일본 우익단체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한·일 간에 역사 분쟁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21세기 역사 교육은 다인종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문제에 대처하고 사회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어야 하며, 국민들이 자발적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교육이어야 한다”면서 “갈등과 대립을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을 지양하고, 여론이나 교육정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역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서울 사랑하게 해주는 ‘택리지’/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옴부즈맨 칼럼] 서울 사랑하게 해주는 ‘택리지’/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요즘 창조경제가 화두다. 그러면서 ‘창조’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각계에서 내리는 정의는 그야말로 각인각색 ‘창조적’으로 다양하다. 필자가 창조에 대해 하나 더 덧붙이고자 하는 정의는 ‘3D’다. 즉, 창조를 하기 위해선 다른 존재, 다른 생각, 다른 행동(Be Different, Think Different, Act Different)이 반드시 요구된다. 무조건 과거를 허물어 부수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세우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역발상으로 바라보고 결합시켜 새로운 방안으로 물꼬를 터 활용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기본요건이다. 혁신과 비교하자면, 혁신이 과거를 벗어야 할 허물로 상정한다면 창조는 과거를 디디고 일어설 지지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창조는 앞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도 함께 돌아보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 택리지’는 창조적 사고와도 통한다. ‘서울 택리지’는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오늘날의 서울이 되기까지를 돌이켜보게 하는 기획이다. 서울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떻게 발전해 갈지를 성찰하고 전망하게 해준다. 매주 금요일 연재되는 노주석 기자의 ‘서울 택리지’는 구해보기 힘든 과거의 사진자료와 현재를 대비해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듭한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미래의 발전방향을 설정하게 한다. “얼마 전인데도 까마득하네”하며 어린 시절 서울의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며 아스라한 향수에 젖게 하기도 한다. 화신백화점 터가 어떻게 변해왔고, 거기에 얽힌 풍운아 박흥식의 흥망성쇠, 화신백화점 터가 서울에서 갖는 의미 등도 생각거리를 제공해줬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의 소나무가 앞산의 소나무를 뜻한다는 것과 같은 서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운상가가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으로,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형성한다는 취지로 조성되었다는 것은 새로 안 사실이었다. 애독자로서 덧붙여 바라는 것은 유행가, 영화, 소설 등 문화에 비쳐진 서울 모습 등도 관련이 있을 경우 같이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령 유행가에 등장하는 ‘제3한강교’의 변천 스토리,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던 선술집에서 강남포차로의 변천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관련한 강남 개발사 등등 ‘장소’적 접근뿐 아니라 ‘문화적’ 시각에서도 서울 스토리가 소개되길 바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는 인문지리적 접근을 갖춘 새로운 지리지의 효시였다. 노주석 기자의 ‘서울 택리지’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서울의 정치·사회·문화를 아우르는 신 인문지리지로서 서울에 관한 ‘스토리’를 보다 더 발굴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아는 만큼 사랑한다’는 것과도 통할 것이다.‘서울 택리지’가 한 신문의 기획물을 넘어 ‘끊임없이 진화 중’인 서울의 발전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데 지표가 되는 기록물이 되었으면 한다. 때마침 10월 12일과 26일에 선유도, 여의도, 반포 한강공원에서 한강 스토리텔링 투어가 진행된다고 하니 참여해 ‘진화 중인 한강의 박동’을 체험해 보고 싶다.
  • [서울광장] 실패로 돌아간 육의전 재개발의 교훈/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실패로 돌아간 육의전 재개발의 교훈/서동철 논설위원

    로마나 아테네를 찾는 여행자들은 시내 어디를 파도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부의 강력한 문화재 보호 정책에 따라 누구도 삽질 한 번 잘못 했다가는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로마나 아테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화재 보존의 강도는 유럽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역사가 있는 나라라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재 보존 노력에는 찬사를 보내는 한국인들이 애써 외면하려는 사실이 있다. 서울 역시 어디를 파도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600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했던 도시다. 당시에도 갖가지 건물이 빼곡하게 사대문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특히 종로는 조선 상업의 중심지였다. 길 양쪽에는 오늘날과 다름없이 상점이 줄지어 있었는데, 태종이 추진한 시전행랑 조성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2010년 탑골공원 옆 모서리에는 육의전빌딩이 세워졌다. 일종의 국가조달 상점인 육의전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발굴 조사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광복 이후에 이르는 6개의 문화층이 드러났다. 조선시대 대표적 상업 시설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지하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빌딩 신축이 결정된 것은 2008년이다. 중요한 유적이었으니 훼손을 우려하는 여론을 무마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지하에 유구를 보존하고, 건물을 세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박물관을 세우는 계획도 더해졌다. 지하의 선사 유적지를 보존하고, 아파트를 올린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ra Amata) 고인류학 박물관의 전례가 있으니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종로구청이 건축주를 고발했다는 뉴스가 며칠 전 들려왔다. 건물주는 신축 계획이 통과되자, 박물관의 운영 재원을 마련하려면 건물을 한 층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지만 박물관 개설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물관이 아니더라도 육의전 유구는 결코 보존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몰골로 변했다. 건축 계획 당시 ‘개발과 보존의 윈윈전략’이라고 기사를 썼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육의전의 사례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면 서울이 아니라 전국 어디든 지하 유적의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란 국민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하 문화재 보존에 대한 국민 전체의 컨센서스가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실제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각에 이르는 종로 초입은 이미 거대한 빌딩 숲으로 변모해 버렸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종로 유적을 부분적으로라도 보존하는 방안이 없지는 않다. 공공기관을 재배치하는 방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종시 입주 대신 종로의 건물을 매입한다면 사실상 영구적 보존 방안이 된다. 최종 결정 과정이 남아 있지만, 해양수산부가 세종시에 머문다면 부산청사 구입에 들어갈 비용을 돌려 쓰면 된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세종시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면, 문화부는 고유 목적인 문화 중흥에 기여해도 좋을 것이다. 경복궁 터를 비워주어야 하지만, 이전 부지를 마련치 못해 애태우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당장이라도 종로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 민속박물관이 종로의 도심형 박물관으로 거듭나면 교통의 요지에서 더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된다. 사들인 건물은 리모델링하고, 지하 일부를 발굴하면 그대로 ‘조선 상업사관’이 된다. 지하 유구의 영구 보존을 겸하는 새로운 개념의 민속박물관은 세계의 어느 박물관 교과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명물이 될 것이다. 인사동과 민속박물관, 종묘, 국악의 거리를 잇는 일대가 거대한 전통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는 것은 덤이다. dcsuh@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2) 종로(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2) 종로(상)

    ■ 늙은 종가 며느리 같지만 위풍 여전… 우리에게 종로는 무엇인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종로는 서울이고, 서울은 종로’라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인구 2500만 명이 드나드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의 중심도시로 급팽창한 서울의 중심이 더는 종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종로는 600년 가까이 서울 유일의 도심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도심 중 하나로 ‘내려’ 왔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종로는 번성하던 문중을 지키며 늙어가는 종갓집 며느리 같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행사는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 종로라고 외치는 듯하다”라고 종로의 흥망성쇠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 비록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다는 운종가(雲從街)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종로는 여전히 한민족의 핏줄에 새겨진 대표거리이다. 광화문~숭례문까지 남북축선이 정치적 중심이라면, 광화문~동대문까지 동서축선을 이루는 종로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도성의 하루를 열고 닫는 종루(보신각)와 팔도의 물자가 모이는 시전행랑(市廛行廊)이 그 중심에 있었다. 수많은 것이 스쳐 지나가고 땅속에 묻혔지만, 종로에는 조선 초부터 지금까지 600년 가까이 서울을 지키는 ‘다섯 가지’가 건재하다. 종각과 종묘,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흥인지문(동대문) 그리고 시장이 그것이다. 개항 이후 종로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보신각 종소리에 따라 성문 여닫는 제도는 1908년 폐지됐다. 1899년 5월 전차가 개통돼 성문 안으로 전차가 드나들면서 문을 여닫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1900년 4월 전기 가로등 3개가 종로의 밤거리를 대낮처럼 밝힌 이후 가장 아름답고, 활기차고, 제일 좋은 상점과 시장이 있는 곳으로 군림했다. 1931년 지금의 종로타워 자리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 화신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장안의 모던(Modern)보이와 자유부인은 화신에서 쇼핑하고, 르네쌍스 다방에서 클래식음악 감상하고, 단성사에서 영화 보고, 청일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담론을 즐겼다. 대중문화의 본거지였다. 주단 거리, 양복점 거리, 서점·출판사·학원, 포목점, 귀금속 상점의 성쇠가 거듭됐다. 육의전(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의 명맥이 살아있었다. 근래 들어 국내 최대의 귀금속거리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종로4가 예지동은 예로부터 돌이나 옥을 다듬는 공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석수방골, 옥방골로 불리던 곳이었다. 6·25전쟁 이후 단성사와 종묘 뒤편을 중심으로 시계노점상이 한 곳 두 곳 모이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세공업소와 귀금속 상가, 공방이 상권을 형성했다. 1980년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의 봉익동 이전은 영역확대의 신호탄이었다. 종로의 풍경은 귀금속의 메카로 바뀌었다. 서울YMCA는 1903년부터 종로의 터줏대감이었다. 이 땅에 시민사회운동과 사회체육의 씨앗을 뿌렸다. 종로서적은 1963년 문을 연 이래 2002년 문을 닫을 때까지 출판문화의 대명사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종로서적 앞’은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약속장소였다. 종로는 학원 일번지이기도 했다. 경복학원, 대성학원, 양영학원, 신성학원, 금자탑학원, 종로학원, 정일학원, YMCA학원, 제일학원 등이 학생들을 불러모았다. 탑골공원은 연산군 때 폐사된 원각사 터에 조성됐다. 1895년 고종이 황실음악연주회장으로 팔각정을 짓기 전까지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원각사비는 민가 안에 방치돼 있었다. 1919년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돼 민족운동의 성지가 되었지만 원각사 백탑은 또 유리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종로라는 길 이름을 낳은 종루는 탑골공원 옆 인사동 입구에 있었다. 태종(1413년)이 한양의 동서대문을 연결하는 종로와 광통교~남대문이 만나는 곳에 누각을 세우고 큰 종을 달았다. 오늘날 종로 네거리 한가운데이자 사대문 한복판이다. 종을 쳐서 도성문을 여닫고 통행금지(人定)와 해제(罷漏)를 알렸다. 보신각(普信閣)이 된 것은 1885년 고종이 중건하면서 사액을 내린 데서 이름 붙여졌다. 종루는 모두 3번 불타고, 8번 다시 짓고 옮기는 수난을 겪었다. 지금의 종은 ‘보신각종이 수명을 다했다’는 1984년 1월 15일자 서울신문 보도가 나가자 거국적인 국민성금운동이 벌어진 끝에 8억 원의 성금을 거둬 만든 새 종이다. 종로(鐘路)인가 종로(鍾路)인가. 종로의 한자표기를 놓고 한바탕 혼선이 일었다. 쇠 북 종(鍾)인가 아니면 (술을 담는) 쇠그릇 종(鐘)인가의 논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옳다. 강희자전을 보면 ‘고이자 통용’(古二字通用)이라 하여 서로 통용되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혼용해 썼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종로구 표기를 ‘종로구’(鍾路區)라고 표기하면서 쇠 북 종으로 굳어졌을 뿐이다. 쇠 북 종이면 어떻고 쇠그릇 종이면 또 어떤가. 종로는 그만큼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곳이다. 모든 이질적인 것을 녹여버리는 용광로 같은 곳이다. 1953년부터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이 울리면서 한국의 새해는 보신각에서 맞는 세밑풍속도가 생겼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타종행사가 계속되는 한 종로의 흥행은 이어질 것이다. ■ 지금의 삼성전자 같았던 화신백화점 화신백화점은 1930~50년대의 삼성전자였고, 박흥식은 당대의 이병철이었다. 화신은 식민시기 서울의 신화요, 대표 브랜드였다. 1937년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6층의 화신백화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첨단빌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와 옥상 전광뉴스판이 설치됐다. ‘화신 가서 엘리베이터 타고 6층 식당의 비빔밥을 먹은 것’이 화젯거리였다. 6·25전쟁 이후 지금의 SC제일은행 자리에 신신백화점을 추가로 지어 전성기를 누렸다. 풍운아 박흥식을 빼고 화신백화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 계열사 흥한화섬의 자금난으로 부도가 나 1980년 그룹이 해체됐고, 1987년 백화점도 철거됐다. 이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려 한때 그의 이름이 인명록에서 빠진 적도 있었다. 지금도 포털에서 ‘박흥식’을 치면 동명의 프로야구 선수와 비슷한 비중의 인사로 취급받지만, 그를 제외하고 일제강점기를 거론할 수 없다. 본정통(충무로)에 있던 미쓰코시(신세계백화점), 조지아(옛 미도파백화점) 등 일본계 4개 백화점을 따돌리고 조선 최대의 백화점, 백화점 왕으로 군림한 식민지 조선의 자랑이었다. 상품권을 발행하고, 재고정리, 할인행사, 주택을 내건 경품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국 350여 곳의 화신 연쇄점이 화신 왕국의 수족이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는 친일부역인사 1호로 박흥식을 체포해 구속했다. 풀려난 것도 1호였다. 법원은 “일제하에서 겨레의 상권을 수호했고 한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떨쳤다”라며 무죄를 언도했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구속됐다가 풀려나면서 제출한 ‘남서울 신도시계획안’은 10년 후 강남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오늘의 강남지역 2410만 평에 11년간 270억 원을 들여 32만~48만 명을 거주케 한다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친일기업가에 특혜를 준다는 여론을 의식한 정권이 등을 돌리면서 박흥식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구설수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화신백화점 선전 노랫말에는 ‘종로 십자가 봄바람 부는데 웃음꽃 피는 화신의 전당/안으로는 융화 밖으로는 신용 그 이름도 아름답다 화신이여’라고 하여 ‘융화’의 ‘화’ 자와 ‘신용’의 ‘신’ 자를 따서 작명한 것처럼 홍보했다. 일부에서는 친일사업가 박흥식이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화(和)자에 믿을 신(信)자를 덧붙여 ‘일본을 믿는다’는 뜻으로 백화점 이름을 작명했다고 몰아붙였다. 백화점 외벽에 초대형 ‘和’ 자를 새긴 것도 시비 삼았다. 일본의 건국정신이 대화혼(大和魂)이고 ‘일본’이라는 나라이름이 야마토(大和)의 한자표기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남아있는 화신백화점의 모태가 된 ‘화신상회’라는 간판으로 미뤄볼 때 박흥식이 1931년 화신상회를 인수하면서 그 이름을 딴 것이 확실해 보인다. 화신백화점 자리를 화신그룹의 뒤를 이은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이 인수해 종로타워를 지은 것도 흥미롭다. 이 나라 최고의 요지를 탐내지 않을 회사가 있겠냐마는 두 회사의 소유권 이전은 우연이라고 치기엔 공교롭다. 다만 ‘종로의 전설’ 화신백화점 자리에 백화점이 아닌 오피스빌딩을 지어 종로상권의 위축을 불렀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건축가 라파엘 비뉼리가 설계한 종로타워는 ‘화신백화점의 역사와 종로의 도시적 맥락을 무시했다’(영남대 이우종 교수), ‘도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 군림하는 건물’(건축가 우대성)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광복 이후 지어진 최악의 건물 3위에 올랐다. 정체성 불명의 구멍 뚫린 건물이 종로의 전통과 풍광을 괴이쩍게 만들었다. joo@seoul.co.kr
  •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좋은 호텔은 좋은 여정을 만든다.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이오니아해, 에게해에 자리한 좋은 호텔 세 군데를 소개한다. ●Athens 아테네 올림픽을 기억하는 신의 도시 ▶hotel 고대 도시의 품격을 품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Hotel Grande Bretagne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접어드는 길은 혼잡하다. 얼키설키 얽힌 도로 위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노라면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흐려지고 만다. 로망 이전에 아테네는, 전 세계에서도 매연으로 이름 높은 그리스 제일의 도시인 것이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는 그런 아테네의 심장부에 자리하면서도 혼잡한 도심의 기운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문을 연 건 1874년. 140년이 넘는 세월은 호텔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 고대 도시 아테네로의 여정을 알린다. 로비의 와이파이 존을 찾아다니며 현실의 끈을 놓지 못하는 현대인은 그래서 그랜드 브르타뉴에서 초라해진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세워진 이래 아테네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이 열렸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그것이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두 번의 올림픽 당시 모두 공식 호텔로 지정됐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기록이다. 호텔의 유명세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 등 왕족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문도 한몫 했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클래식과 디럭스 타입의 객실을 비롯해 7개 타입의 스위트 객실을 선보인다. 비교적 좁은 편인 낮은 등급의 객실이라도 고풍스럽기는 한결같다. 완벽한 조망을 바란다면 디럭스 스위트가 제격이다. 객실은 디럭스 타입과 동일하지만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는 넓은 발코니를 지녔다. 세세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는데, 객실에는 각각 다른 5종류의 베개가 비치돼 있다. 부대시설로는 인도어 수영장과 아웃도어 수영장, 스파 등이 자리했다. 압권은 레스토랑이다. 멀리 아크로폴리스를 품은 ‘GB 루프 가든’의 풍경은 시간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한낮에는 태양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어두운 밤에는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 아크로폴리스를 맞게 된다. GB 루프 가든에서의 식사는 맛을 음미하고 배를 채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여행의 참맛을 되뇌게 하는 행복한 각성이다. 그랜드 브르타뉴에는 GB 루프 가든을 포함해 7개의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찾아가기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호텔까지 쉽게 닿을 수 있다. 시내에서 이동한다면 지하철 신타그마역을 이용해도 된다. 호텔의 위치는 호텔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 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브르타뉴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이다. 호텔은 국회의사당과 신타그마 광장 바로 옆에 자리했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트렌드와 미식 중심지인 에르무, 미트로폴레오스 거리와 이어진다. 아크로폴리스, 제우스 신전, 판아테나이코스 근대 올림픽 경기장 등 아테네의 굵직굵직한 볼거리 또한 차로 10분여 거리로 가깝다. 홈페이지 www.grandebretagne.g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Drive 코린토스Corinth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는 코린토스 운하가 흐른다. ‘육지에 파 놓은 물길’이라는 운하의 뜻 그대로 코린토스 운하는 인공적으로 판 물길이다. 1881년에 시작된 공사는 1893년에 끝나 코린토스에서 살로니코스까지 700km 바닷길을 단 6.3km로 줄였다. 운하를 파려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지만 매번 여러 반대에 부딪쳤다. 신이 막아 놓은 것을 왜 파느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살로니코스에 비해 코린토스의 해수면이 높아 살로니코스가 잠기고 말 거라는 비과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었다. 67년, 네로 황제는 포로 6,000명을 동원해 공사에 착수했지만 그들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이리저리 한눈에 담기는 코린토스 운하는 펠로폰네소스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지나는 길이다. 코린토스 운하만 스쳐 지나기 섭섭하다면 루트라키 해변이나 아크로코린트로 향하는 것도 괜찮다. 한적한 루트라키 해변에는 그리스 대중 음식점인 ‘타베르나’가 줄지어 서 있다. 입맛 당기는 해산물 요리는 시끌벅적하게 그리스 스타일로 즐겨야 그 맛이 배가 된다. 아크로코린트는 아크로폴리스의 3배 높이인 해발 575m에 세운 도시국가다. 코린토스와 살로니코스를 모두 굽어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해 여러 차례 땅의 주인이 바뀌는 비극을 겪었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쌓았던 아크로코린트의 성벽은 길이가 4.6km, 두께가 무려 두께 7m에 달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0min Drive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아크로폴리스는 폴리스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각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는 흔히 아테네를 일컫는다. 아테네는 1,000여 개에 이르는 도시국가 중 하나인데, 대표적인 도시국가로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하기 전 여행자들은 으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들른다. 이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자그마하게 자리했지만 지금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웅장하게 변모했다. 아크로폴리스의 변천사와 출토 유물 등의 전시물도 볼 만하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참여한 박물관 건물은 그 자체로도 유명하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높은 언덕에 자리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언덕까지는 걸어야 하고, 그 길 중간에는 음악당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있다. 닫힌 문 사이로 일부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당은 아크로폴리스에 입장한 후에야 제대로 된 반원형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불레의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선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을 보게 된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남쪽 벽의 여인 조각상 가리아티드로 유명하다.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도리아식 기둥의 황금 비율을 선사해 최고의 신전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늘 그래 온 것처럼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중이다. 입장료┃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5유로 아크로폴리스 전망대 12유로 ●Pylos 필로스 이오니아 해의 숨결 ▶hotel 상상 그 이상의 리조트 코스타 나바리노Costa Navarino 코스타 나바리노는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다. 오랜 열정과 땀의 결실이다. 코스타 나바리노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는 1987년. 그리스의 해운 선주 바실리스는 펠로폰네소스 남서쪽에 자리한 메시니아 주의 땅을 일부 구입하며 코스타 나바리노의 서막을 올렸다. 코스타 나바리노가 첫 손님을 맞이한 해는 2010년. 2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리조트에는 1만6,000그루가 넘는 올리브 나무와 8,000그루가 넘는 과실수가 옮겨 심어졌다. 황량했던 황톳빛 땅은 나무가 우거진 푸른 땅으로 변모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는 일대를 더욱 푸르게 꾸민다. 2009년에 선보인 코스타 나바리노의 듄 코스는 푸르름의 결정판이다. 티박스에 서면 골프 코스와 조화를 이룬 바다와 강, 언덕의 푸르름이 한눈에 담긴다. 듄 코스는 US 마스터스 챔피언인 베른하르트 랑거와 골프 매니지먼트 회사인 트룬 골프가 설계했다. 듄 코스 외에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2011년에 완성된 베이 코스가 하나 더 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가 특별한 이유는 코스타 나바리노는 골프 리조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하며 내세우지 않은 시설조차 코스타 나바리노에서는 이리도 훌륭하다. 코스타 나바리노는 그 밖에도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수영장은 기본. 리조트 내에는 워터 슬라이드를 갖춘 아쿠아파크까지 자리했다. 정규 테니스 코트에 어린이 전용 테니스 코트까지 갖췄으니 기타 스포츠 시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오니아 해를 마주한 1km 길이의 해변이 자리했지만 리조트에 머물며 해변에 나갈 일은 흔치 않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건물은 돌로 된 성채를 연상케 하는 메시니아의 전통 양식을 따랐다. 건물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까닭에 무심코 길을 나섰다가는 헤매기 일쑤다. 리조트 지도는 필수. 리조트 내 시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18곳에 달하는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그리스 정통 요리에서 아시아 요리까지, 전 세계 맛 기행이 리조트 내에서 이뤄진다. 스시 등 아시아 요리를 선보이는 라운지 바인 ‘인비’와 야외극장과 인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 루이지’는 특히 인기다. 조식은 뷔페 레스토랑인 ‘모리아스’에서 진행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직접 만드는 신선한 요구르트와 다양한 종류의 꿀과 잼이 특징이다. 객실은 로마노스 리조트에 320개, 웨스틴 코스타 나바리노에 444개가 마련돼 있다. 모든 객실에는 리조트 시설과 바다가 조망되는 넓은 발코니가 딸려 있다. 일부 1층 객실은 전용 인피니티 수영장을 갖췄다. 찾아가기 아테테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45분 거리다. 아테네 공항에서 출발하는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280유로. 국내선을 이용, 칼라마타 공항에서 리조트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칼라마타 공항에서 48km 거리로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70유로다. 홈페이지 www.westincostanavarino.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h 20min Drive 모넴바시아 Monemvasia 육지에서 섬이 됐다가 다시 육지와 연결된 모넴바시아. 필로스에서는 3시간, 칼라마타에서는 2시간 30분 거리다. 아테네에서 모넴바시아로 가려면 무려 5시간이 걸리지만 당일치기로 모넴바시아를 찾는 이들도 꽤 된다. 길에 버리는 시간조차 아깝지 않을 만한 가치가 모넴바시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넴바시아는 펠로폰네소스 남동쪽 라코니아 주에 우뚝 선 섬이다. 본디 반도에 속한 땅이었지만 375년의 대지진을 겪으며 섬으로 분리됐다. 이 섬은 수백 년이 지난 6세기, 다시 육지와 400m 둑으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어 ‘모네Mone’과 ‘엠바시Emvassi’가 합쳐진 말로 ‘하나의 입구’라는 뜻이다. 실제 모넴바시아로 들어가려면 단 하나의 입구를 지나야 한다. 그렇게 닿은 모넴바시아는 식물의 뿌리처럼 뻗은 고샅으로 이어진다. 입구의 고샅은 중앙 광장으로, 또다시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구분된다. 아랫마을을 굽어보며 선 윗마을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은 아랫마을에는 보수를 거친 800여 채의 옛집과 4곳의 교회가 남아 있다. 중앙 광장에서 바다 쪽 절벽을 굽어보면 절벽에 매달린 집들의 모양새에 모넴바시아는 역시 그리스 섬이구나 싶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고샅을 훑으면 육지의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겠다고 얌전히 테이블 옆을 지키니 여행자들에게 길들여진 ‘섬 고양이’인가 싶다가도 다가서면 흠칫 놀라 몸을 낮춰 피하니 ‘육지 고양이’인가 싶다. 육지 혹은 섬. 풀리지 않는 숙제다. 모넴바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샅을 훑고 바다를 감상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 일이 전부라면 전부다. 하루 이틀 더 묵어 간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고샅을 품은 그 집, 바다를 안은 저 집의 정취가 모두 달라 며칠 머물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모넴바시아는 그런 곳이다. 스페체스 섬은 자동차가 없는 곳이다. 천천히 오가는 마차가 이곳의 예스러운 정취를 더해 준다. ●Spetses 스페체스 오토바이가 넘실거리는 섬 ▶hotel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 호텔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The Poseidonion Grand Hotel 정기선이든 전셋배든 수상택시든, 스페체스로 향하는 배들은 크기와 형태를 막론하고 다피아 선착장Dapia Port으로 향한다. 멀리, 배에서 바라보는 스페체스는 늘 바라 온 그리스 섬이다. 에게해를 비추는 햇빛은 청록빛에 물들고, 바다로 쏟아질 듯 섬의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자리한 집들은 파스텔톤 황톳빛을 머금었다.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스페체스의 풍경은 또 다르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포세이도니온 호텔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어 스페체스의 전형과는 조금은 다른 스카이라인을 그려 낸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인 코트다쥐르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테네의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와도 동일한 양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히 지은, 외견만 고급스런 호텔이 아니라 제대로 정성을 들여 세운 품격 있는 본격적인 호텔이다.’ 비즈니스 개념의 호텔만이 존재했던 19세기. 포세이도니온은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호텔로 1914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 각국의 왕족들이 호텔을 다녀갔고 그들의 흔적은 호텔의 옛 장부에 생생하게 남았다. 숙박객들의 이름과 숙박료를 꼼꼼하게 적은 옛 장부는 로비 한 편을 장식하며 호텔의 역사를 말해 준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방과 거실을 분리한 듯한 형태의 로비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로 꾸몄다. 로비 천장은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하고 층과 층은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했다. 포세이도니온은 6층은 됨직한 3층 건물이다. 현대의 실용성만 놓고 본다면 형편없는 건물이겠지만 사치스럽기에 웅장하고 화려할 수 있었다. 다만 1914년에 머물렀다면 호텔은 낡아 버렸을 것이다. 호텔은 2004년부터 5년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시행해 2009년 6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타일, 벽돌 등의 자재는 기존의 것을 유지했기에 웅장하고 화려한 옛것과 깨끗하고 편리한 새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히스토릭 윙Historic Wing과 포세이도니온 뉴 윙Poseidonion New Wing으로 구분된다. 각 건물에는 슈피리어, 디럭스, 스위트 등급의 객실이 자리한다. 정원, 바다의 조망에 따라 객실 등급은 또다시 세분화된다. 낮은 등급의 객실은 아담한 침실과 욕실이 있는 단출한 시설이지만 편안한 침대와 침구를 갖췄다. 반면 스위트 등급의 객실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럽다. 그중 전용 엘리베이터로 닿을 수 있는 로열스위트는 호텔에서도 단 하나뿐인 객실이다. 3개의 침실에는 각각 욕실이 딸려 있으며, 넓은 거실은 값비싼 가구로 채웠다. 압권은 에게 해를 끌어안은 발코니. ‘발코니의 넓이가 부의 기준’이라는 그리스의 문화를 몸소 깨닫게 하는 장소다.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은 ‘베스트 클래식 부티크 호텔Best Classic Boutique Hotel In The World’ 등 2012년에만 호텔 어워드 3관왕을 차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찾아가기 펠로폰네소스 아르골리스 주 남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코스타 항에서 스페체스까지 가는 페리를 매일 4회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15분. 운항 시간은 수시로 바뀌므로 호텔에 문의하는 게 좋다. 수상 택시는 코스타 항을 비롯해 포르토 헬리 등지에서도 이용 가능하다. 24시간 운항하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에 타려면 따로 문의해야 한다. 아테네에서 스페체스 섬으로 바로 간다면 피레에프스(피레우스) 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면 된다. 배의 종류에 따라 2시간 30분~3시간가량 소요된다. 홈페이지 www.poseidonion.com 유의사항 그리스의 2,000여 개의 섬 중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은 200여 개다. 그리스 섬 사람들은 연중 섬에 살지만 11~4월에 여행자들이 섬을 찾기는 힘들다. 이 시기에는 호텔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등 여행자 편의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다. 이유는 다름아닌 날씨 때문. 강수량이 집중되는 시기라 그리스의 찬란한 햇빛은 고사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포세이도니온 호텔 또한 같은 이유로 이 시기에 문을 닫는다. 1~10min Walk 스페체스Spetses 스페체스 섬에는 차가 없다. 호텔에서 짐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개조 트럭이 존재하지만 일상적으로 운행되는 차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섬이라는 단어는 고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법. 자동차마저 사라져 버린 섬의 정적은 가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페체스 섬의 실상은 정적과는 거리가 멀다. 섬은 차가 없는 대신 오토바이로 넘쳐난다. 10초에 한두 대의 오토바이는 반드시 보게 되니 하릴없이 섬을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여행자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주는 가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토바이를 타면 섬 구석구석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만 작은 섬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섬을 걷다 보면 섬의 풍경과 일상이 느리지만 여유롭게 눈에 담긴다. 조금 멀리 이동할 일이 있다면 마차를 타면 된다. 섬의 정취에 예스러운 정취를 더하는 아주 멋진 교통수단이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에서 걸어서 1분이면 다피아 선착장이고, 다피아 선착장 인근에는 스페체스 섬의 다운타운이 형성돼 있다. 말이 다운타운이지 걸어서 10분이면 훑을 만한 기념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다. 기념품 가게의 단골 메뉴는 마차, 집, 고양이 등 스페체스의 풍경이 새겨져 있는 마그네틱이다. 여기에 영어로 휘갈겨 적은 ‘스페체스’라는 글씨는 기념만 되지 않는다면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조악하다. 신발, 의류, 모자,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많다. 무언가를 사고 말고를 떠나서 모든 가게들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스페체스의 풍경에 녹아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을 제외하면 한산하다. 스페체스의 ‘그리스’ 할아버지들은 한산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른한 그들의 일상은 여행자들에게 그리스를 말하는 풍경이 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17~18세기의 스페체스는 ‘부富’로 대변되는 섬이었다. 스페체스의 작은 섬에는 범선을 만드는 큰 조선소가 있었고 이곳에서는 화물과 대포를 모두 실을 수 있는 범선을 생산했다. 17세기 이전, 그리스는 해적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러한 범선이 생산되며 순조로운 무역이 가능해졌다. 스페체스 섬에 부를 가져다준 본거지는 올드하버다. 오늘날 제일 항구의 명예는 다피아 선착장에 내줬지만 당시 올드하버의 영화로운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드하버에는 요트 등 개인 소유의 배들이 즐비하고, 인근에 자리한 부유한 선박 소유주들이 지은 호화로운 집들이 스페체스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가옥은 그리스에서 가장 비싼 집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올드하버는 다피아 선착장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피아 선착장과 가까운 락사리나 부부리나Laksarina Bouboulina의 집도 스페체스 섬이 풍요로웠던 시절에 지어졌다. 부부리나는 1821년 투르크와 맞선 독립전쟁에 전 재산을 내어 놓고 독립군을 이끈 여걸이다. 그리스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 유로를 쓰기 이전 그리스의 화폐인 드라크마에도, 거리 이름에도 부부리나는 살아 있다.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부부리나를 존경하는 그리스인들 덕분에 스페체스는 풍요로움과와 더불어 영광의 섬으로 불리게 됐다. 부부리나의 집은 1991년에 부부리나 박물관으로 선보였다. 집 안에 오래된 무기와 책, 도자기, 편지와 문서, 그림, 개인 소장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부부리나의 후손이 40분간 영어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며 6유로의 입장료는 옛 집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만 쓰인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15min 에피다브로스Epidaurus 에피다브로스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병의 치유를 기원하던 장소다. 에피다브로스에 모인 환자들은 일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대규모 반원형 극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에피다브로스는 그리스, 로마의 오케스트라 극장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음향 시스템 또한 완벽하다. 에피다브로스의 무대에는 당시의 음향 시스템을 시험하고자 전 세계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소리를 치는 이들도,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소리는 잘 들린다. 소리가 벽을 치고 증폭돼 울리는 것마냥 아주 잘 들린다. 에피다브로스의 반원형 극장은 1만4,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입장료 6유로 1h 30min 나프플리온Nafplion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우스 주에 자리한 나프플리온. 투르크와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 임시정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나프플리온은 아테네와도 2시간 30분가량 거리로 가까워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나프플리온을 기점으로 삼고, 에피다브로스를 함께 돌아보면 된다. 타운 홀이 자리한 신타그마 광장은 나프플리온 여정의 출발점이다. 여유가 된다면 나프플리온이 한눈에 조망되는 아크로 나프플리온과 팔라미디 성채에 올라 본다. 아크로 나프플리온의 언덕 아래로는 바다 혹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이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나프플리온의 골목은, 일상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그런 일이 늘 그렇게 일어나는 것처럼 골목 사람들은 여유롭다. 나프플리온의 개들도 골목 개 행세를 한다. 원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프플리온의 골목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척, 그들의 생활에 녹아 들어 골목 사람처럼 굴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꽃보다 화려하게 치장한 기념품 가게에서 꺾이고 만다. 어느 관광지에나 있는 그저 그런 기념품이 아니라 꽤 괜찮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몇 있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골목을 벗어나 바다로 난 길로 향하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성채가 보인다. 부르지 섬이다. 베네치아인들의 요새였던 곳으로 19세기에는 사형 집행인들이 은퇴 후 이곳에서 생활했다 한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02-3789-7054 www.turkishairlines.com ▶travie info 항공 한국에서 그리스로 가는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인천, 이스탄불, 아테네를 연결하면 빠르고 편리하다. 인천과 이스탄불 구간은 매일 1회, 이스탄불과 그리스 구간은 매일 4회 운항된다. 시차 그리스가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화폐 유로를 사용한다. 2013년 7월 기준, 1유로는 1,477원. 전압 220V, 50HZ. 한국의 전기 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 [대입 전형 간소화·수능 개편안] 수능 도입 20년… 새 내용·변천사 살펴보니

    [대입 전형 간소화·수능 개편안] 수능 도입 20년… 새 내용·변천사 살펴보니

    2017학년도에 한국사가 19년 만에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부활한다. 통합형 수능 체제에서 수능에 필수 반영됐던 한국사는 1999년 수능 탐구영역에서 선택과목제가 도입되면서 사회과목 중 하나인 선택과목이 됐다. 한국사가 대입 독립·필수과목이 되는 것은 24년 만이다. 수능이 생기기 전인 1993학년도까지 다른 사회 과목과 마찬가지로 한국사는 필수과목이었다. 2017학년도에는 다른 사회과목이 공통사회 또는 사회탐구로 묶이는 가운데 한국사만 단독으로 필수가 된다.최근 한 달 동안 한국사 교육 강화 방안을 찾기 위해 당정협의회가 2차례 열리는 등 논의가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가 수능 필수가 되기까지 진통을 겪은 것은 국어·수학·영어도 필수가 아닌 선택형 수능 체제에서 한국사만 필수로 예외를 두는 게 합리적인지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사 수능 필수로 인해 선택형 수능 체제는 다소 흔들리게 됐다. 한국사 수능 필수로 인해 사교육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수능 및 대입 제도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4년 도입돼 올해 20주년을 맞은 수능이 전년도와 동일하게 치러진 해는 단 4차례에 불과했다. 나머지 16년 동안은 시험시기, 배점, 응시과목, 성적산출방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겪었다. 1994년 첫 수능은 연간 두 차례 계열 공통으로 시행됐지만, 두 시험 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난과 함께 이듬해부터 연간 한 차례 시행으로 바뀌었다. 또 인문, 자연, 예체능 등 계열별로 문제가 달라졌다. 수능과 함께 부활했던 대학별 본고사는 1996학년도까지 유지되다 1997학년도에 폐지됐다. 200점이던 배점은 1997년 수능부터 400점으로 확대됐고, 1999년에는 탐구영역 선택과목제와 함께 표준점수제가 도입됐다. 2001 수능에서는 제2외국어 영역이 추가됐고, 2002 수능 때는 총점 제도가 폐지되고 5개 영역 종합등급이 기재됐다. 선택형 수능으로 개편된 2005년부터 원점수 대신 영역별 표준점수 성적이 학생들에게 제공됐다. 2011 수능부터 영역별로 EBS 방송교재와 70% 연계 정책이 실시됐고, 2014 수능은 난이도에 따라 국어·수학·영어를 A·B형으로 분리한 수준별 수능이 치러진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대입제도와 수능이 워낙 자주 바뀌다 보니 교육 정책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사교육 의존도만 커졌다”고 평가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기고] 달러 뇌물로 본 관료보호주의/김덕만 한국교통대 교수·전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기고] 달러 뇌물로 본 관료보호주의/김덕만 한국교통대 교수·전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언제부터인가 뇌물을 받거나 주는 데 미국 달러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쇠고랑을 찬 고관대작들은 공히 뇌물로 거액의 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예로 지난달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은 CJ로부터 30만 달러를 받아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2002년 손영래 전 국세청장은 SK 측으로부터 여행경비 조로 1만 달러를 받았고, 그후 4년이 흐른 2006년에 정상곤 부산 국세청장은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청장 내정 축하금이라며 1만 달러를 건넸다.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원세훈은 건설업자에게서 4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 왜 이렇게 달러 화폐가 뇌물 수단으로 악용될까. 간단하다. 달러는 현금으로 수표와 달리 추적이 불가능하다. 국제기축통화인 달러화는 신권이 아닌 구권(헌 돈)이 널리 유통돼 어느 시점에 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또 환전할 경우 뇌물로 받은 돈인지 아니면 자기 돈인지 증명하기도 어렵다. 추징금 수사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 집안에서 나온 돈 중에는 대통령 집권 시절에 통용되던 1만원짜리 낡은 구권이 대량으로 나왔다는 걸 보면 한국 원화 화폐는 이같이 수수시점 추적이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달러화는 또 원화에 비해 거액 운송이 수월하다. 지난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130원 내외다. 어림잡아 환산해 보면 100달러짜리 한 장이면 5만원짜리 두 장 이상의 가치다. 007가방 한 개에 5만원짜리를 넣으면 5억원 정도 들어간다고 하니, 100달러짜리는 11억원이 넘게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태우씨는 대통령 시절 기업 총수들로부터 사과 상자나 골프 가방에다 돈을 넣어 전달받았다고 하는데 당시 달러화를 넣었다면 원화 대비 10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금액이 건네졌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국제적으로 망신스럽기도 하고 창피스럽기도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의 ‘뇌물 변천사’ 코너에는 교육효과 제고 차원에서 1만원권 지폐를 넣은 사과상자 견본이 진열돼 있기도 하다. 요즘 구속된 비리공직자들이 받은 달러 뇌물에 대해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비리공직자들은 한결같이 ‘꾼 돈’ ‘친인척이 준 돈’ ‘경조금’ ‘선물’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해명을 잘해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근무해 오며 연봉을 1억원 정도 받는 고위공직자가 돈이 없어 직무관련자에게 수만 달러를 꾼다는 것이 말이 될까? 또 어떤 대가성 없이 순수한 의미로 수만 달러의 축하금을 상사에게 갖다 줄 이유가 있을까. 그 돈이 뇌물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부정한 청탁에서 비롯된 금전수수로 믿는다. 이 같은 부정청탁 수수를 근절하겠다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 이번 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로 넘어갔다. 안타깝게도 이 법안은 정부 내 의견조율 중에 국민권익위 입법취지보다 훨씬 퇴보한 기형적인 법안이 돼 버렸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당초 입법취지대로 ‘대가성 유무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복원하지 않으면 법 제정은 하나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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