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피부를 벗겨내고, 근육을 한점 한점 떼낸다. 뇌를 열어 뇌수를 헤집고, 흘러 내리는 창자를 쓸어 담아 주무른다. 턱을 덜렁거리게 빼내 목구멍을 관찰하고, 대나무에 내장을 줄줄이 꿰어 생선 말리듯 널어 말린다. 18세기 일본 에도시대(1603∼1867년)때 그려진 해부도들의 살풍경이다. 잘리고, 썰리고, 벗겨지고, 헤집어지고, 주물러지는 몸은 일본인의 것이나, 살을 자르고 뼈를 써는 건 서양의 메스와 톱이다. 서양의 도구로 찢겨지고 분해되는 동양의 몸. 서구 근대의 습격에 직면한 동양의 운명이자, 동양이 근대와 접속하는 기회였다.
●해부의 충격에 직면한 일본인들의 수용과 변용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그린비 펴냄)는 일본 ‘난학’(蘭學·에도시대 중기 이후 네덜란드어 서적을 토대로 서양의 학술·문화를 연구하던 학문의 총칭)의 중심이었던 해부학에 관한 책이다. 의학적으로는 사람 몸에 대한 해부서이고, 문화사적으로는 일본 에도시대 문화 전반에 대한 해부서다. 철학적으로는 세계관과 인식에 대한 해부서이고, 정치적으로는 동서양 힘의 관계에 대한 해부서다.
지은이 타이먼 스크리치(런던대 교수, 일본학연구소장)는 미술사학자다. 신미술사학(예술작품에 반영된 이데올로기와 작품을 둘러싼 사회체계 검토를 통해 예술이 사회와 별개가 아님을 밝히는 연구사조)의 방법론을 차용한 그는 책의 상당 분량을 각종 해부도로 채웠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행해진 해부 문화를 광범위하게 검토하면서도 해부 그 자체보다 해부의 충격에 직면한 일본인들의 ‘수용’과 ‘변용’에 주목했고, 해부라는 외래의 방법론으로 전통의 심장부를 공격한 난학자들의 학문 경로를 탐색했다.
해부는 앎에 대한 욕구다.‘보고자 하는 강박’이자,‘자신이 본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강박’이다. 곧 과학 정신이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휘둘러진 메스는 계몽주의 이래 강력해진 서양의 합리성을 상징한다. 해부의 주체는 칼이고, 객체는 몸이다.‘합리적’ 서양의 칼은 ‘비합리적’ 동양의 배를 가르고 짼다. 일본인의 몸 위에서 펼쳐지는 서양의 해부기술은 결국 일본 그 자체에 대한 서양의 해부였다. 메스로 일본인의 몸을 여는 행위는 책 제목처럼 에도의 몸을 여는 행위였고, 일본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몸과 문화와 의식을 여는 행위였다. 에도 시대 해부학의 급격한 전파는 서양 과학을 선망하는 일본 학계의 첨단적 유행이었던 셈이다. 해부된 신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듯, 해부당한 일본 또한 과거의 일본이 아니었다. 난학을 통해 일본은 서구가 찍어 놓은 근대의 발자국을 밟아갔다.
●난학의 유행은 국가 정치 기획과도 상통
난학의 유행은 국가의 정치 기획과도 무관치 않다. 부국강병의 논리 하에 한 개인의 신체가 국가에 종속되는 현상은 이때도 발생한다. 신체 내장에 계급을 부여하는 행위는 플라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다. 혈액이 심장으로 모였다 다시 흘러 나가는 모습은 국가의 심장인 왕이 담당한 핵심적인 위상을 설명하는 비유로 차용됐다. 서열이 매겨지는 건 개인만이 아니라 국토 전체였다. 저자는 “도로의 핵심에는 심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도 교토가 일본의 심장, 즉 천하의 기원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한다.
난학이 일본 전통의술과 부딪히며 권력투쟁을 벌이는 대목 또한 ‘시대 초월적’이다. 열고 열리는 상호작용이 정치시스템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미 FTA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2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