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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살해한 현직 경찰관 긴급체포…“가정사 있는 듯”

    현직 경찰관이 자택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경찰관 A(54) 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후 4시 20분쯤 자택인 화성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지인이 경찰에 “친구가 아내를 죽였다고 한다”며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변사자를 확인한 뒤 A씨를 체포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기도의 한 경찰서 관할 파출소에서 경위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체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세한 범행 동기 등은 파악하지 못했으나, 가정사가 있는 것 같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경찰, ‘의붓아들 의문사’ 고유정 현 남편 ‘피의자’ 신분 조사

    경찰, ‘의붓아들 의문사’ 고유정 현 남편 ‘피의자’ 신분 조사

    “아들 전신 10분 이상 눌려 질식”충북경찰청 국과수 부검 발표언론 사진 공개하자 의혹 해명사진삭제 논란 소방 “메모리 부족”경찰, 소방 찾아가 사진유출 따져얼굴에 짓눌린 자국, 목에 멍·상처법의학자 “손끝으로 누른 흔적 추정” 제주에 아들을 만나러 온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구속기소)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24일 고유정의 현재 남편 A(37)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남편이 살해 당하기 두 달 전 의문 속에 숨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고유정이 확신하다며 고소했던 현 남편은 경찰이 고유정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며 언론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는 이날 “오늘 오후 4시 10분쯤부터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면서 “자세한 진술이나 혐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A씨의 친아들이자 고유정의 의붓아들인 B(6)군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들 부부를 제주에서 대질조사했다. A씨는 경찰 출석 전 취재진과 만나 “고유정이 아이를 죽였다는 정황이 많음에도 경찰은 고유정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면서 “경찰은 과실치사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고유정이 아이를 살해한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조사와 그간 확보한 고유정 부부의 진술을 면밀히 분석해 B군이 숨진 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다. B군은 친아버지를 보러 왔다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충북 청주에 있는 고유정 부부의 집 침대에서 피를 흘리며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이 사망할 당시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면서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A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직업이 119 구급대원이어서 평소 깊은 잠을 못 자고 쉽게 잠드는 편이 아닌데, 사건이 벌어진 그날만큼은 이상할 만큼 빨리 잠들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며 ‘고유정이 아들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편 이날 충북지방경찰청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고유정의 의붓아들 B군이 엎드린 채 전신이 10분 이상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5월 1일 통보받은 국과수 정밀 부검 결과에서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이 10분 이상 강하게 눌렸을 가능성이 크며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5시 전후”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B군이 사망한 직후 이뤄진 1차 부검에서는 ‘질식사 추정’이라는 소견을 받았으며 자연사, 과실치사, 타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고 수사해왔다”면서 “단순 변사로 결론 내린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경찰은 전날 일부 언론이 사건 당일 119구급대원이 찍었던 B군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며 제기한 타살 의혹과 부실 수사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전 남편이 잔혹하게 살해되기 두달 전인 지난 3월 B군이 숨진 직후 남겨진 6장의 현장 사진에는 B군의 얼굴이 무언가에 짓눌린 채 고통 속에 숨진 모습이 담겼다. 입과 코에 다량의 피를 흘리고 숨진 B군은 특히 눈 주위에 침대 요에 새겨진 무늬가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강한 압력을 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각선의 줄무늬 자국은 침대에 깔려 있던 이불의 줄무늬 문양과 일치했다고 MBC는 보도했다. 또 B군의 목 뒤 사진에는 멍자국과 무언가에 의한 상처 자국이 선명하고 그 밑에 날카롭게 긁힌 자국도 발견돼 MBC는 단순 질식사가 아닌 타살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에는 가슴에 제세동기를 달고 양팔과 다리를 벌린 채 숨진 B군의 모습이 보인다. B군의 현장 사진을 분석한 법의학자들은 아이의 목 뒤에 멍처럼 보이는 검붉은 흔적에 주목했다. 사진을 확인한 한 법의학자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멍이 생기기 쉬운 부위가 아니다”라면서 “외부에서 손으로 누른 흔적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손가락 지두흔(손끝으로 누른 흔적)이나 조흔(손톱으로 긁힌 흔적)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면서 “손이나 손가락으로 아이의 등 부분에 어떤 압력이 가해진 흔적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고 밝혔다.그러나 B군의 몸에서 발견된 일혈점(붉고 조그만 점)은 질식사 시신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타살의 증거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목 부분에 멍 자국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은 B군이 사망한 뒤 시반이 형성되면서 생긴 것으로 부검 결과에서 경부 압박이나 폭행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B군의 목 부위의 긁힌 자국은 무엇인가에 눌리는 과정에서 생긴 찰과상인지, 가려워서 긁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당경찰서 관계자는 “B군 사망 사건의 수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면서 “최종적으로 수사 내용을 정리한 뒤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MBC가 숨진 직후 현장 사진 2장을 공개하자 나머지 사진 6장을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MBC는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사건을 최초로 수사한 청주 상당경찰서가 의붓아들의 현장 사진이 일부 공개되자 소방당국을 두번이나 찾아가 사진 유출 경로를 따졌다고 보도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경찰 “고유정 의붓아들 전신 10분 이상 눌려 질식사” 부검 발표

    경찰 “고유정 의붓아들 전신 10분 이상 눌려 질식사” 부검 발표

    경찰, 국과수 부검 결과 공개언론 사진 공개하자 의혹 해명얼굴에 짓눌린 자국, 목에 멍·상처법의학자 “손끝으로 누른 흔적 추정”소방 “메모리 부족해 사진 삭제” 논란경찰, 소방서 찾아가 사진유출 따져고유정(36)의 의붓아들 A(6)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된 경찰이 A군이 전신을 10분 이상 눌린 채 질식사했다는 일부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A군이 숨진 직후 찍힌 사진에서 얼굴이 짓눌리고 목 등에 멍자국과 긁힌 상처가 있어 타살이 의심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단순 질식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없고, 타살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해명했다. 충북지방경찰청은 24일 브리핑을 열고 “고유정의 의붓아들 A군이 엎드린 채 전신이 10분 이상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5월 1일 통보받은 국과수 정밀 부검 결과에서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이 10분 이상 강하게 눌렸을 가능성이 크며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5시 전후”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A군은 친아버지를 보러 왔다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충북 청주에 있는 고유정 부부의 집 침대에서 피를 흘리며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대로라면 같이 잠을 자던 친아버지 B(37)씨가 잠에서 깨기 5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A군이 사망할 당시 집에는 고유정 부부뿐이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A군이 사망한 직후 이뤄진 1차 부검에서는 ‘질식사 추정’이라는 소견을 받았으며 자연사, 과실치사, 타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고 수사해왔다”면서 “단순 변사로 결론 내린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일부 언론이 사건 당일 A군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며 제기한 타살 의혹과 부실 수사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전날 일부 언론은 A군이 사망했을 당시 119구급대원이 찍었던 사진을 공개하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MBC 보도에 따르면 전 남편이 잔혹하게 살해되기 두달 전인 지난 3월 A군이 숨진 직후 남겨진 6장의 현장 사진에는 A군의 얼굴이 무언가에 짓눌린 채 고통 속에 숨진 모습이 담겼다. 입과 코에 다량의 피를 흘리고 숨진 A군은 특히 눈 주위에 침대 요에 새겨진 무늬가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강한 압력을 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각선의 줄무늬 자국은 침대에 깔려 있던 이불의 줄무늬 문양과 일치했다고 MBC는 보도했다. 또 A군의 목 뒤 사진에는 멍자국과 무언가에 의한 상처 자국이 선명하고 그 밑에 날카롭게 긁힌 자국도 발견돼 MBC는 단순 질식사가 아닌 타살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에는 가슴에 제세동기를 달고 양팔과 다리를 벌린 채 숨진 A군의 모습이 보인다. A군의 현장 사진을 분석한 법의학자들은 아이의 목 뒤에 멍처럼 보이는 검붉은 흔적에 주목했다. 사진을 확인한 한 법의학자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피부가 벗겨지고 멍이 생기기 쉬운 부위가 아니다”라면서 “외부에서 손으로 누른 흔적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는 “손가락 지두흔(손끝으로 누른 흔적)이나 조흔(손톱으로 긁힌 흔적)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면서 “손이나 손가락으로 아이의 등 부분에 어떤 압력이 가해진 흔적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고 밝혔다. 아들과 함께 잠을 잤던 B씨의 몸무게는 65㎏ 정도로 법의학자들은 아버지의 다리로 우리 나이 6살인 A군의 몸을 눌러 질식사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며 타살 의혹을 뒷받침했다.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교수는 “성인 남자의 다리가 단순히 (A군의 몸에) 올라가서 압착성 질식사가 발생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면서 “다른 인위적인 외력 즉 타살에 의한 압착성 질식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염두해둬야 한다”고 말했다고 MBC는 보도했다.그러나 A군의 몸에서 발견된 일혈점(붉고 조그만 점)은 질식사 시신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타살의 증거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목 부분에 멍 자국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은 A군이 사망한 뒤 시반이 형성되면서 생긴 것으로 부검 결과에서 경부 압박이나 폭행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A군의 목 부위의 긁힌 자국은 무엇인가에 눌리는 과정에서 생긴 찰과상인지, 가려워서 긁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당경찰서 관계자는 “A군 사망 사건의 수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면서 “최종적으로 수사 내용을 정리한 뒤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유정의 남편 B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면서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B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직업이 119 구급대원이어서 평소 깊은 잠을 못 자고 쉽게 잠드는 편이 아닌데, 사건이 벌어진 그날만큼은 이상할 만큼 빨리 잠들었다고 진술했다. B씨는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면서 ‘고유정이 아들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편 소방당국은 MBC가 숨진 직후 현장 사진 2장을 공개하자 나머지 사진 6장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특히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사건을 최초로 수사한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는 의붓아들의 현장 사진이 일부 공개되자 소방당국을 두번이나 찾아가 사진 유출 경로를 따지기도 했다고 MBC는 보도했다. 이에 청주 동부소방서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이 찾아온 것은 이례적이었다”면서 “사진 삭제는 메모리 관리 차원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청주 동부소방서 현장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자세한 사항까지는 전달받지 못했다”면서도 “현장 사진 6장을 삭제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고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사진 메모리 용량 때문에 보통 2~3개월에 한 번씩 지운다”면서 “메모리 관리 차원에서 현장 사진을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수사·기소권 분리” “수사 지휘권 유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선진 수사구조다.”(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는 사법절차의 본질상 필요한 권한이다.”(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통제, 수사지휘권 존치 명분일 뿐”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 8일 열리면서 검찰개혁의 핵심 축인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9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관련 심포지엄에서도 열띤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정부안에 찬성 쪽인 서 교수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주체를 분리해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수사권 조정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법통제라는 표현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존치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면서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통제는 송치 후 보완수사 요구권 또는 기소권 행사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 교수는 “수사권 조정이 국민 입장에서 수사 구조가 어떻게 돼야 할 것인지 본질적 측면보다 검경 간 권한 조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법안이 어정쩡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전면적으로 폐지된 것도 아니고 경찰의 수사종결권도 종국적인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갈등만 키운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또 “국가 기관 간에 지휘 권한이 있다고 해서 예속 관계, 종속 관계로 볼 수는 없다”면서 “수사지휘를 하더라도 방식과 절차를 협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中 수사제도 따라하는 건 개선 아냐” 김웅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과 이형세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도 이날 토론자로 나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 단장은 “사실 수사지휘가 폐지되면 문제없다고 하는데 박종철 열사 사건처럼 변사 사건도 지휘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권 조정안에 포함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권은 중국 형사소송법과 유사하다”며 “중국 제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게 과연 개선인지, (훗날) 표절 시비 논란이 일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자 이 단장은 하나하나 반박하며 팩트 체크를 했다. 이 단장은 “검경 관계만 놓고 보면 중국 법이 우리 형사소송법보다 더 선진적”이라면서 “보완수사 요구권은 중국뿐 아니라 핀란드, 슬로바키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맞섰다. 수사종결권을 기소 결정권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해가 안 된다”면서 “종결권이 부여된다고 해도 사건 관계자가 이의 신청하면 검찰로 넘기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정체불명 개떼 습격받은 美 남성 변사…물린 자국만 100여개

    정체불명 개떼 습격받은 美 남성 변사…물린 자국만 100여개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 40대 남성이 개떼의 습격을 받고 숨졌다. CNN 등 현지매체는 플로리다주 하이랜즈 카운티 레이크플래시드에서 45세 멜빈 올즈 주니어가 개떼에 물려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이랜즈 카운티 경찰은 이 남성이 지름길을 택해 귀가하던 중 들개 무리를 만나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올즈 주니어의 몸에서는 최소 100여 개의 이빨 자국이 발견됐다. 개에게 물린 흔적 외에 다른 부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인근 숲에 덫을 설치해 잡종 핏불테리어 6마리를 포획했으며 남성의 몸에서 발견된 이빨 자국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들개의 습격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맞는지 밝히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폴 블랙먼 하이랜즈 카운티 보안관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올즈 주니어의 시신에서 채취한 DNA를 들개의 것과 비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다섯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올즈 주니어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가족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 신시아 힐은 “아들에게 개는 친한 친구 같은 의미 있는 동물이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다니 믿을 수 없다”면서 “한순간에 훌륭한 아들을 잃어 상처가 크다”고 오열했다. 올즈 주니어의 약혼자 자넬 워드는 그를 공격한 들개 무리가 이웃집에서 배회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나도 일전에 개떼와 마주친 적이 있지만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절대 접근하지는 않았다. 공격하려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사망 사건에 현지 경찰은 일단 개떼의 소유주를 추적하고 있다. 하이랜즈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 측은 “개에 물려 사망하는 보기 드문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분명 누군가 기르던 개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떼를 지어 다니는 개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당분간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개가 사람을 공격한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인천대공원 내 관모산에 출몰한 8마리 이상의 들개떼가 시민들을 공격했다. 조사 결과 어미 1마리와 새끼 7마리로 구성된 이 들개떼는 누군가 버린 유기견으로 밝혀졌다. 4월에는 의정부 일대에서 들개 4마리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고양이와 닭 등을 공격해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반려견으로 길러지던 개들이 유기되면서 들개로 돌변,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경고한다. 카라 김나연 활동가는 과거 기고글에서 “소위 들개라 불리는 유기견들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무책임에서 비롯된 희생양일 뿐“이라며 사람의 책임을 강조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오산 10대 백골 변사체 공개수사 전환

    오산 10대 백골 변사체 공개수사 전환

    경찰이 경기 오산 한 야산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된 남성(10대 추정)의 신원 및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공개수사에 나섰다. 3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일 오전 7시35분쯤 오산 내삼미동 야산 묘지 근처에서 백골 상태 남성 변사체가 발견됐다. 2018년 기준 15~17세 전후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혈액형이 O형이며 키는 164~172cm로 보인다. 상하 좌우 어금니 모두 심한 충치로 확인됐으며 치료받은 사실이 없다. 우측 아래 어금니는 생전에 탈구돼 치열이 고르지 못하고 머리카락은 약 8cm 전후 갈색 계통이다. 이 남성은 영문자가 가득한 쇠붙이 반지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 해 6월 이후 갑자기 연락이 끊겼거나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15~17세 전후 남성을 아는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연락처 031-888-2277)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10년 누명 벗기고 5700억 사기 막고… 모범검사 3인

    10년 누명 벗기고 5700억 사기 막고… 모범검사 3인

    13년 차 수사 베테랑 정현주(왼쪽·39·사법연수원 36기) 대구지검 금융·경제범죄전담부 검사 등 3명이 올해 상반기 검찰을 대표하는 ‘모범 검사’에 선정됐다. 정 검사는 공소시효가 열흘 밖에 남지 않은 사기 사건에서 신속한 대질 조사로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밝혀내 10년 동안 억울함을 호소해온 피고소인의 누명을 벗겨주었다. 경찰이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한 1억원대 사기 사건에서도 고소인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결과 등을 토대로 차용 사실을 자백받고 피해금도 갚도록 해 고소인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18차례나 법망을 빠져나간 기획부동산업자 A씨 사건에서 계좌추적을 통해 피해자 9명으로부터 10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포착하고 A씨와 관련자를 구속하기도 했다. 윤인식(가운데·36·38기) 서울북부지검 강력범죄전담부 검사는 자칫 암장될 뻔한 변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다. 타살 혐의가 없다고 보고된 이 사건에서 윤 검사는 변사체를 직접 검시해 타박상을 확인한 뒤 부검 지휘를 통해 유족인 아들의 범행인 것으로 최종 결론 냈다. 강도살인 사건에서 피의자를 설득해 사체와 돈을 땅에 묻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가 하면, 과학수사를 통해 피의자가 버린 쇠봉에서 피해자 혈흔도 찾아냈다. 오상연(오른쪽·37·39기)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는 수입 고기의 품목을 속여 14개 금융기관으로부터 5700억원대 사기 대출 범행을 저지른 일당을 추적해 유통업자와 금융기관 직원 16명을 구속하고, 금융감독원에 육류담보 대출의 문제점을 알려 제도 개선도 이끌었다. 검찰은 1997년부터 반기별로 일선 검찰청에서 묵묵히 일하며 성과를 낸 3명을 모범 검사로 선정해 오고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인사] 충북 보은군, 충북 진천군, 부산환경공단, 영남일보

    ■ 충북 보은군 ◇ 4급 승진 △ 산업경제국장 최원영 ◇ 4급 전보 △ 자치행정국장 안광윤 ◇ 5급 승진 △ 의회사무과 행정운영전문위원 김상식 △ 의회사무과 산업경제전문위원 전욱환 △ 충북도 남부출장소 김인식 ◇ 5급 전보 △ 기획감사담당관 최재형 △ 행정과장 임헌용 △ 지역개발과장 박철용 △ 장안면장 김영숙 △ 내북면장 이창수 △ 행정과 박정규 △ 삼승면장 임봉빈 △ 주민복지과장 구기회 ■ 충북 진천군 ◇ 4급 승진 △ 복지행정국장 이종하 △ 미래도시국장 연주흠 ◇ 5급 전보 △ 진천읍장 임보열 △ 행정지원과장 송현욱 △ 문화홍보체육과장 임승혁 △ 회계정보과장 김평환 △ 친환경농정과장 정성구 △ 보건소장 직무대리 김민기 △ 농업기술센터 소장 신순덕 △ 덕산읍장 신영목 △ 초평면장 손천수 ◇ 5급 승진 △ 전략사업담당관 이관우 △ 축산위생과장 서정배 △ 지역개발과장 김영길 △ 신재생에너지과장 이관희 △ 농업기술센터 기술담당관 이진석 ■ 부산환경공단 ◇ 1급 승진 △ 남부사업소장 김광근 ◇ 2급 승진 △ 위생사업소장 김철우 △ 집단에너지사업소장 윤태원 △ 재활용센터장 최광주 ◇ 3급 승진 △ 자원순환협력센터팀장 안희정 △ 생곡사업소 관리팀장 정원석 △ 환경연구소 분석팀장 송미경 △ 재활용센터팀장 최철호 ◇ 3급 전보 △ 청렴감사실장 황남규 △ 서부사업소장 김성응 △ 강변사업소 관리팀장 김주오 △ 남부사업소 관리팀장 김광규 △ 중앙사업소 관리팀장 정오영 △ 기획혁신팀장 김호영 △ 재정전산팀장 서종록 △ 총무인사팀장 박성배 △ 자원에너지팀장 최승렬 △ 수영사업소 운영2팀장 손석규 △ 녹산사업소 관리팀장 성동섭 △ 녹산사업소 운영팀장 최승주 △ 기장사업소 운영팀장 박두한 △ 명지사업소 운영팀장 이황수 △ 명지사업소 관리팀장 직무대행 이병관 ■ 영남일보 △ 경북본사 총괄국장 김기억 △ 논설실장 이재윤 △ 편집국장 박윤규 △ 광고사업국장 박재일 △고객지원국장 겸 CEO아카데미 부원장 윤철희 △ 교육인재개발원장 장용택 △ 동부지역본부장 장준영 △ 중부지역본부장 허석윤 △ 편집부국장 이창호 김진욱 △ 논설위원 김수영 △ 인터넷뉴스부장 김기오 △ 사회부장 유선태 △ 경북부장 변종현 △ 정치부장 진식 △ 경제부장 조진범 △ 문화부장 이은경 △ 기획취재부장 전영 △ 체육부장 박진관 △ 주말섹션부장 임성수 △ 경북본사1부장 임호 △ 편집위원 배재석 우원태 △ 전문기자 이춘호 김봉규
  • ‘영동 여고생 살인사건’ 제보자가 지목한 용의자 정체

    ‘영동 여고생 살인사건’ 제보자가 지목한 용의자 정체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영동 여고생 살인사건’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2일 18년 만에 나타난 제보자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의 흔적을 다시 추적했다. 지난 2001년 3월 충북 영동군의 한 신축 공사장 지하창고에서 변사체가 발견됐고, 시멘트 포대에 덮인 채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공사장 인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소윤(당시 만 16세) 양이었다. 전날 저녁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행방이 묘연했던 정소윤 양은 하루 만에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발견된 시신은 아르바이트 당시 입고 있던 교복 그대로였지만 양 손목이 절단되어 있었다. 절단된 양손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고 시신 발견 다음 날 인근 하천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정소윤 양의 손은 손톱이 짧게 깎여있었다. 평소 손톱 꾸미는 걸 좋아해 늘 손톱을 길게 길렀다는 정소윤 양. 당시 경찰은 공사현장 인부와 학교 친구 등 57명에 달하는 관련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사건 초기, 최초 시신 발견자인 공사장 작업반장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그는 살인과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이 사건은 18년이 지난 현재까지 장기미제로 남아 있는 상태다. 그리고 공소시효를 1년여 앞둔 지난 2014년 12월 13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방송을 통해 제보를 요청했고 제작진 앞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 자신이 정소윤 양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목격한 것 같다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내용이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만난 제보자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자신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마주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공사장 옆 가게에서 일하던 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고, 가게에서 나온 여성이 그 남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까지 목격했다는 것이다.제보자는 “옷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계절감이 조금 안 맞네, 이 날씨에 왜 저런 옷을 입고 있었지?”, “가방 좀 메고 있었다 뭐 그 정도. 등산 가방 비슷한 건데…”라고 말했다. 제보자는 두 사람이 사라진 뒤 여자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조금 센 비명 소린데 중간에 끊기는 소리였다”며 “그 남자가 검은 봉지를 들고 다시 나타난 걸 봤다. 라면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이었다. 동그랗고 납작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검은 봉지 안에 피해자의 손목이 들어 있었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문가들 역시 사건의 범인이 공사현장이 익숙한 인물, 즉 공사장 관계자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부검의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거기(공사장 지하 창고)를 전혀 모르는 외지(외부)의 사람이 들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적어도 거기에 와서 뭔가 한번 해본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로파일러 김진구 역시 “이 사건의 범인은 당시에 공사를 했었던 인부들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당시에 완벽하게 이 공사장 인부들에 대한 조사를 다 했느냐? 그렇지 않은 부분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 된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당시 수사기록을 어렵게 입수해 원점에서부터 검토하던 중 현장 인부들 가운데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고 사라진 인부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 당일, 눈을 다쳐 고향으로 간다며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는 목수 김 씨. 김씨는 제작진에게 사건 당일 등산 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말했다. “90kg정도 나가서 겨울에도 그리 두껍게 (입고) 안 다닌다”고 말했다. 제보자의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여고생을 죽이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 입술을 떨었다. 김씨는 살인 사건을 설명하며 “내가 강간 안 했다”고 발언했다. 제작진은 성범죄라는 설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발언을 듣자 “어떻게 성범죄인 것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사진 속 여고생의 모습을 보면 누구든 성범죄라 생각할 것”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제작진이 김씨에게 보여줬던 사진에는 교복을 단정히 착용한 채 숨을 거둔 여고생의 시신만이 존재했다. 해당 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은 인력난 등을 이유로 사건 재검토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고유정이 내 아들 죽였다” 현 남편이 살인죄로 檢에 고소

    “고유정이 내 아들 죽였다” 현 남편이 살인죄로 檢에 고소

    장례식에도 불참… 이웃 “너무한다” 원성 질식사 결론 냈던 경찰 고의 여부 재수사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에 대해 현재 남편이 ‘살인죄’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한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제주지검 등에 따르면 고유정의 현재 남편 A씨(37)는 이날 고유정이 자신의 아들 B군(4)을 죽였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남편 A씨는 고소장에서 고유정이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정황이 많다고 밝힌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의 구체적인 고소내용 등은 공개할수 없다고 밝혔다. A씨의 아들이자 고유정의 의붓아들인 B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쯤 청주의 자신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유정은 B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당시 “그날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고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같이 자던 아들이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고 국과수는 B군의 사인을 ‘질식사’로 결론냈다. 당시 외상 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유정은 B군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은 제주 친가에서 지내다가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 2월 28일 청주로 왔다. 당시 고씨 부부는 B군을 함께 키우기로 합의한것으로 전해졌다. B군은 사망 직후 제주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고유정은 B군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로 남편 A씨는 고유정에게 “왜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않느냐”며 화를 냈고 주변에서도 “의붓아들이지만 너무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가 왜 장례식 때 참석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청주 경찰은 고유정의 전 남편 살해사건 이후 B군의 사망을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되자 사망원인에 대해 고의와 과실, 단순 변사 등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신생아 낙상사고’ 은폐한 분당차병원 의사들, 재판서 혐의 부인

    ‘신생아 낙상사고’ 은폐한 분당차병원 의사들, 재판서 혐의 부인

    ‘사고’로 인한 사망을 ‘병사’로 은폐한 분당차병원 의사들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장두봉 판사는 13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분당차병원 산부인과 의사 문모씨와 소아청소년과 의사 이모씨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2016년 8월 임신 7개월째 산모가 낳은 1.13kg의 미숙아를 중환자실로 옮기던 중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기는 소아청소년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몇 시간 뒤 결국 숨졌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 같은 정황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사망진단서에는 병사로 처리했다. 통상 변사가 의심되는 경우 경찰에 신고하고 부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아기는 ‘병사’로 기재된 탓에 부검도 하지 못했다. 또 출산 직후 찍은 초음파 결과, 아기의 두개골에 골절 및 출혈 흔적이 있었으나 관련 기록 또한 모두 삭제됐다. 검찰은 해당 의료진들이 의료사고를 은폐하는 데 공모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문씨의 변호인은 “이 사건에 대해 사전에 공모한 바 없으며 전자의무기록삭제는 부원장 장모씨가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 변호인 또한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해 구체적인 의견 진술은 어렵지만 부인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병원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사고 은폐에 가담한 직원이 더 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해투4’ 오나미, 캐릭터의 저주? “지금까지 쭉 모태솔로”

    ‘해투4’ 오나미, 캐릭터의 저주? “지금까지 쭉 모태솔로”

    ‘해투4’에 개그콘서트의 신구 주역들이 총 출동한다. 정종철-이승윤-김준현-김원효-오나미-김승혜의 범상치 않은 토크전이 예고돼 기대감을 높인다. 유쾌하고 찰진 토크로 목요일 밤을 책임지고 있는 KBS 2TV ‘해피투게더4’(해투4)의 오는 6일 방송은 ‘개콘투게더’ 특집으로 꾸며진다. 이날 방송에는 개그계의 어벤저스 정종철-이승윤-김준현-김원효-오나미-김승혜가 출연해 안방에 꿀잼 핵폭탄을 투하할 예정이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는 범상치 않은 에피소드들로 중무장한 정종철-이승윤-김준현-김원효-오나미-김승혜가 출연해 오디오를 빈틈 없이 꽉 채웠다. 특히 김원효는 방탄소년단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원효는 “작년 시상식장에서 만난 방탄소년단이 내 유행어를 모두 알고 있었다”며 폭풍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합창 수준으로 ‘안돼~’를 크게 외쳤다. 영광이었다”며 감격한 마음을 전해 스튜디오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김준현과 오나미는 지난 5월 1000회를 맞은 개그콘서트의 뒷이야기를 털어놔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준현은 “‘고뤠?’라는 유행어로 CF를 20편 이상 찍었다. 아파트와 자동차 빼곤 다 찍어본 것 같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는 “‘고뤠?’ 유행어는 얻어 걸린 것”이라고 급 고백했다는 후문이어서 그 전말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오나미는 일명 ‘개콘의 저주’를 공개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솔로 천국 커플 지옥’이라는 코너의 ‘모태솔로’ 역할대로 지금까지 쭉 모태솔로다”라고 밝힌 것. 이에 더해 오나미는 “요즘은 주변사람들이 오히려 상대방의 소개팅 요구를 커트한다”며 울분을 토로했다고 전해져, 지인들의 소개팅 거절 이유에 궁금증이 수직 상승한다.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하는 마법 같은 목요일 밤 KBS 2TV ‘해투4’는 오는 6일 목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해방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간은 한국영화사에서 ‘해방기’로 부르는 시기다. 해방기 영화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일제 말기 국책영화사에 소속되어 군국주의 선전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과 그 영화사에 소속되지 않고 영화 작업을 쉬었던 영화인들이 다시 조우해 함께 영화를 만든 점이다. ‘조선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 친일부역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방기 문화예술계의 상위 조직들이 좌우 진영의 논리로 이합집산을 거듭할 때 이에 따른 영화계 조직의 구성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익 진영의 주도로 우익까지 아우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소속으로 1945년 9월 24일 조선영화건설본부가 설립되었을 때, 그 구성원은 일제 말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 참가했던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11월 5일에는 좌익 강경파의 주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이 설립되었는데, 최고 지도부를 제외하면 역시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참가한 기술 파트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인 12월 6일 두 조직은 조선영화동맹으로 통합되는데 이 때 지도부 면면만 보더라도 친일부역과 이념 성향을 초월한 인선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인적 관계나 기술적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였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전후한 시기,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를 통해 ‘조선영화’가 어떻게 ‘한국영화’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미국영화의 범람과 열악한 제작 환경 해방기 영화계 상황은 미국영화의 장악과 조선영화의 위기로 요약된다. 1948년 4월 23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의하면 1945년 11월부터 1948년 3월까지 미국 극영화가 422편, 미국의 뉴스영화는 289편이 수입되었는데 그중에서 극영화 400편, 뉴스 250편이 중앙영화배급사(CMPE)의 영화였다. 미국 9대 영화사의 배급 대행을 담당한 중앙영화배급사는 실질적으로 미군이 관장한 단체였다. 1946년 2월 일본에 도쿄사무소를 설립한 것에 이어 4월 조선사무소를 설치하고, 미국영화가 조선 영화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미국영화가 극장가를 독식하는 가운데 같은 시기 조선 극영화는 17편이 제작되는 데 그쳤다. 해방 후 첫 극영화로 이규환의 ‘똘똘이의 모험’(1946)이 개봉하고, 최인규의 ‘자유만세’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해방영화’로 인정받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당시 영화계는 영화 필름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극영화 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극 무대에 영화 장면을 덧붙여 공연하는 연쇄극이 다시 만들어지는가 하면 일반적인 상업영화용 필름인 35㎜ 대신 16㎜ 영화가 만들어졌고, 변사를 써야 하는 무성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기술적으로도 퇴보했다. 현재 필름이 보존되어 있는 영화 중에서 16㎜ 무성으로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1948), 16㎜ 발성으로 제작된 ‘청춘행로’(장황연·1949)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영화에 비해 상영할 영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다시 개봉했다. 1946년 2월 서울극장(해방 전 경성극장)에서 일제의 국책영화 ‘군용열차’(서광제·1938)가 ‘낙양의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재편집 후 상영되어 물의를 빚었고, 3월에는 일제의 검열로 창고에 있던 ‘신개지’(윤봉춘·1942)가 빛을 보았다. 5월 우미관에서는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1934)가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시점, 영화계는 건국이라는 절대적 과제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경찰 영화’와 독립운동가들을 내세운 영화를 들 수 있다. 조선해양경비대의 지원을 받은 ‘바다의 정열’(서정규·1947)을 위시로, 경찰 조직의 후원을 받은 ‘수우’(안종화·1948) ‘밤의 태양’(박기채·1948)이 정부 수립 직전 속속 공개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범죄액션 장르를 통해 경찰의 기능과 밀수 근절을 선전하는 영화들이었다. 또한 계몽문화협회를 주축으로 ‘의사 안중근’(이구영·1946), ‘윤봉길 의사’(윤봉춘·1947) 등 일제치하 애국지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계몽과 건국을 키워드로 한 극영화의 등장은 새로운 국가·국민 만들기와 맥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물론 괴기물 ‘목단등기’(김소동·1947)처럼 순수한 오락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최은희의 영화배우 데뷔작 ‘새로운 맹서’(신경균·1947)처럼 대중이 좋아하는 멜로드라마 장르를 빌어 건국과 관련된 주제를 담아낸 영화들이 선보였다.●해방기 영화인들이 총출동한 ‘자유만세’ 해방 1주년을 기념해 ‘해방 경축 영화’로 기획된 ‘자유만세’는 일제강점기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영화인들이 모여 의기투합한 프로젝트였다. 전창근(‘복지만리’(1941) 감독)의 각본으로 최인규가 연출을 맡았고, 촬영은 한형모(‘태양의 아이들’(1944)로 촬영기사 데뷔), 조명은 김성춘(‘살수차’(1935)의 조명 기사), 편집은 양주남(‘미몽’(1936)의 감독)이 맡았다. 또한 고려영화주식회사의 배급으로 고려영화협회가 제작을 맡았고 사회사업 단체인 ‘향린원’(‘집 없는 천사’(1941년)의 배경)이 공동제작으로 참가했다. 1930년대 중후반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고려영화사의 인맥이 그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 고려영화사의 대표였던 이창용이 빠지고, 최인규의 형인 최완규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또한 감독 안종화, 안석영, 윤봉춘, 이규환도 ‘연출응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서 당시 영화계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모두 나선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만세’는 어떤 내용으로 해방의 기쁨을 담아냈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던 1945년 8월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친구 남부(일본어 발음으로 나베·독은기)의 배반으로 투옥되었던 최한중(전창근)은 동료(박학)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료는 사살되고, 그 혼자 탈출에 성공한다. 한중은 대학병원 간호사 혜자(황려희)의 집으로 은신해 지하조직의 무장봉기를 다시 주도한다. 동료 박(김승호)이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다 일본 헌병에 붙잡히자 한중은 그를 구출한 후, 우연히 남부의 애인인 미향(유계선)의 아파트로 피신한다. 한중을 숨겨준 미향은 그에 매료되어, 지하조직이 있는 지하실로 찾아가 정보와 자금을 전달한다. 그 뒤를 밟은 헌병대에 의해 미향은 사살되고 한중 역시 총상으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다. 한중을 사모하던 혜자는 헌병이 잠든 틈을 타 그를 탈출시킨다.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한국영화에서 일제치하의 무장독립운동을 묘사한 첫 번째 작품으로 기록된다. 제목처럼 해방의 감격을 활극·멜로드라마 장르에 잘 녹여내 해방기 극장가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는 1947년까지 계속해서 상영되었고 “조선영화 최초 외국판으로 ‘자유만세’(고영 작품) 중국판이 만들어져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47년 6월 15일자). 흥미로운 대목은 1948년 이후에는 영화의 상영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이후 ‘자유만세’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필름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한국영화’가 된다는 것의 문제 ‘자유만세’가 다시 공개된 공식적인 기록은 1975년 ‘흘러간 명화 감상회’에서였다(동아일보 1975년 7월 5일자). 영화진흥공사가 8·15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해방 이후 한국영화 12편을 선정하고 상영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편 당시 기사는 1940년대 작품으로 유일하게 ‘자유만세’가 포함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려영화사 사장 최완규가 프린트 1벌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덕분이라고 설명하며 “월북한 연기자가 출연진에 들어 있어서 그 상영 당시 많은 장면이 가위질을 당했고 현재 남아 있는 프린트는 상영시간으로 5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전한다(경향신문 1975년 6월 28일자). 즉 원래 개봉 버전인 100분의 러닝타임이 당시 삭제 검열 등을 거치며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 중인 51분 버전과 비슷한 분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된 월북 배우는 바로 박학과 독은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보존된 버전에서 두 배우의 모습은 삭제되었지만 둘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먼저 영화의 시작부, 한중(전창근)과 그의 동료(박학)가 서대문 형무소를 탈출하는 장면이다. 박학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빠른 편집으로 구성된 숏들의 경우 그대로 살리고 총에 맞아 죽은 그의 얼굴의 클로즈업은 당시 검열에서 삭제되었다.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필름에는 나중에 촬영한 다른 배우의 얼굴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헌병대 형사 남부(독은기)의 경우 시나리오상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다른 인물의 클로즈업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그런데 그가 애인 미향(유계선)의 집에서 그녀를 만나고 가는 장면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그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배우들의 모습이 들어간 필름은 과연 언제 만들어졌을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현재 보존본의 오프닝 크레디트에 나오는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해설 자막이다. “29년을 경과하는 동안 6·25사변 등 역사의 격동을 겪으면서도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는 문구에서 이 영화의 재공개를 결정한 1975년 시점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녹음은 특히 전반에 있어서 실패”(경향신문 1946년 10월 24일자)라는 당시 기사 내용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존된 ‘자유만세’ 프린트가 매우 선명한 녹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물들의 대사 중 시나리오상 자주 등장하는 ‘조선’이라는 말은 전부 ‘한국’으로 바뀐 것에서 새롭게 녹음한 버전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이는 오프닝 크레디트에서 현상, 인화를 ‘한국영화문화협회’에서 담당했다는 정보와 연결해 봐야 한다. 한국영화문화협회는 미국의 민간원조기구인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된 단체인데, 카메라부터 녹음기까지 각 기재들은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스튜디오에 설비했다. 즉 다시 녹음한 프린트의 제작은 1957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정리하면 ‘자유만세’의 필름은 1948년 시점 검열을 받아 상당한 장면들이 삭제되었고, 1957년부터 1975년 재공개 사이 새로운 장면의 촬영과 편집, 재녹음 등 각 단계를 거쳐 새로운 프린트가 만들어졌다. 현재로서는 각 단계가 한 번에 이루어졌는지 별개로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인 과정과 시점을 특정하기 힘들지만, 새로운 ‘자유만세’의 프린트 제작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가 ‘한국영화’를 규정하려고 고민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만세’는 당국의 검열로 월북 영화인들의 출연 장면이 삭제된 후 다시 편집되고 녹음된 후에야 비로소 ‘한국영화’가 될 수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어린이 책] 져서 억울했던 토끼 “거북, 한 번 더 뛰자”

    [어린이 책] 져서 억울했던 토끼 “거북, 한 번 더 뛰자”

    토선생 거선생/박정섭 글/이육남 그림/사계절/52쪽/1만 3000원 토끼와 거북이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여러 번외 버전도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설, 자신의 실력만 믿고 늦장 부리던 토끼는 결국 경주에서 패배하고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가 승리했다는 스토리를 들으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러고 토끼는 그냥 가만 있었을까. 억울해서, 다시 한판 붙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그림책 ‘토선생 거선생’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통한의 패배에 눈물 짓던 토선생(토끼)은 거선생(거북이)에게 다시 경주를 제안한다. 뜻밖에 거북이의 무거운 등딱지를 자신이 메겠다는 전제조건도 붙인다. 경주 중반, 아니나 다를까 제 버릇 개 못 준 토선생은 또 잠깐 쉬었다 가는 여유를 부리고 등딱지가 없는 거선생은 추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등딱지를 돌려 달라는 거선생의 간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가던 토선생은 그만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구덩이에 점점 물이 차오르는 가운데, 거선생이 다시 나타난다. 인물들 간 대사는 박진감이 넘치고 책 속 그림은 색 없이 먹의 농담과 강약만으로 표현돼 ‘예스럽다’. 토끼와 거북이가 족자 안에 그려진 표지부터 ‘이건 이야기’라는 전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중간 중간 ‘독자 양반’, ‘작가 양반’을 소환하는 마당극 변사 같은 화자가 등장하는 것도 예스러운 그림과 잘 어울린다. 그림 속에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주막’, ‘우물가’, ‘씨름’과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도 있다.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겠지만 이들 그림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길섶에서] 기억, 옹이/박록삼 논설위원

    서울 광화문광장 한편에 있는 그 나무집 벽면에는 옹이가 빽빽하다. 옹이는 나무에 가지가 난 자리다. 튼튼한 목재로 써야 할 때는 잘 안 쓰곤 한다. 목재의 생채기로 다뤄지며 미관상 아름답지 않게 여기는 탓이다. 하지만 나무가 세월의 켜를 쌓아가며 둘레를 넓히는 동안 옹이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성장했으며, 그만큼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5년 남짓 한국사회 많은 국민들도 그랬다. 저마다 가슴에 옹이 몇 개씩 깊숙이 자람을 의식하며 지내 왔다. 고백컨대 그즈음 마침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실감이 안 났다. 눈물을 펑펑 쏟다가도 꿈속인 듯했다. 한동안은 가슴에 뭔가 얹힌 듯 시시로 울적했다. 주변사람들과 낄낄대며 술잔 기울이다가도 문득문득 그랬다. 시간이 더 흘러 잊고 지내다 몇 걸음 앞서가는 학생의 가방에서 노란 리본이 흔들거릴 때 다시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옹이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고작 24평짜리 집 하나 짓는데 왜 그처럼 옹이 많은 목재로 지었을까. 잊지 말자는 다짐일 테다. 또 당신 안의, 내 안의 생채기 같은 옹이의 기억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일 테다. 기억과 빛의 공간이다. 훼손하지 말자. 부디 정치를 빼고 순수하게 바라보고 기억했으면 한다.
  • 또 무면허로 카셰어링…고교생, 시속 180㎞로 질주하다 ‘덜컥’

    또 무면허로 카셰어링…고교생, 시속 180㎞로 질주하다 ‘덜컥’

    무면허 고등학생 2명이 ‘카셰어링’(자동차 공유)을 통해 빌린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180㎞ 속도로 질주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고속도로순찰대 제6지구대는 14일 고등학교 1학년 A(17)군을 무면허 운전, B(17)군을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군은 운전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지 않고 차를 빌려주는 ‘카셰어링’을 통해 빌린 코나 승용차로 지난 9일 오전 10시 13분쯤 남해고속도로 부산방면 냉정분기점 인근에서 약 30㎞ 구간을 평균 시속 180㎞로 달린 혐의를 받고 있다. A군이 운전한 차량에 친구 B군이 함께 타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구간 제한속도는 시속 100㎞로 이들은 30㎞ 거리를 시속 80㎞나 초과해 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고속도로순찰을 하다 과속 차량을 발견하고 5㎞를 추격한 끝에 A군이 운전하던 승용차를 멈춰 세웠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A, B군은 동네 친구 사이로 창녕과 창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고, 운전면허 나이 제한으로 면허가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이들이 운전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주변사람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전부여서 자칫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고 밝혔다. A군 등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 명의로 카셰어링 서비스를 통해 차를 빌려 부산으로 바람을 쐬러 가다 기분이 좋아져 과속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카셰어링 서비스에 운전자 신원확인을 강화하는 등의 법률적 보완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괴짜지만… 인간적인 과학자, 다윈

    괴짜지만… 인간적인 과학자, 다윈

    의학·신학보다 자연·생명에만 관심 집 뒷마당서 비둘기 사육 등 ‘바보 실험’ 7명 자녀·주변인들과 소통하며 연구 ‘종의 기원’은 새로운 시각에서 시작신이 자연을 설계했다는 자연신학에 맞선 진화론으로 근대 과학계를 뒤흔든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과학자’라 부른다. 심지어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다윈을 뉴턴, 아인슈타인보다 더 위대한 사상가로 치켜세운다. 에든버러대에서 의학공부를 한 지 2년도 못 돼 낙향하는가 하면 케임브리지대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생명에만 관심을 가졌던 다윈. 그는 어찌 보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문제아이자 이단아였다. 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대 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다윈보다 더 솔직한 다윈을 추적했다. 오랜 천착의 결실인 이 책을 통해 다윈은 이렇게 정의된다. ‘끊임없이 관찰, 실험하고 주변사람들과 소통한 인간적인 과학자’.비글호에 몸을 싣고 5년여에 걸쳐 진행했던 남아메리카 탐방은 다윈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은 단초임에 틀림없다. 다윈은 좁은 선실에서 우상인 찰스 라이멜의 저서 ‘지질학 원리’를 탐독했고 정박지마다 열대림과 해안의 온갖 동식물을 관찰, 채집했다. 19세기 과학계를 뒤집어놓은 진화론의 결정체인 ‘종의 기원’은 바로 갈라파고스를 포함한 그 탐험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종의 기원’을 비롯한 큰 업적이 어디서 발현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책은 다윈이 40년간 살며 위대한 발견을 도출해 낸 다운하우스의 시골집 뒷마당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 뒷마당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이들과 교류하고 고민했는지를 세밀하게 소개한다. 다윈은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한 과학자다. 줄창 생명과 자연에만 관심을 쏟는 다윈을 향해 아버지는 ‘가족과 네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는 폭언을 했다고 한다. 대신 다윈은 할아버지의 기질을 더 많이 받았다. 영국의 유명 시인 콜리지가 ‘다윈화하기’(darwinizing)라는 단어를 만들만큼 대담한 창의력을 지닌 의사 겸 시인이었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 저자는 할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아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려 한 것이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이라고 잘라 말한다. ‘발견을 위한 진정한 항해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일갈처럼 다윈은 당대의 주류인 자연신학에 의심을 품고 자연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의심과 실험의 역사적 장소가 집 뒷마당 실험실이다. 종의 이동 실험을 위해 오리발로 만든 달팽이 사육장과 갖가지 농도의 소금물 항아리들, 실험용 씨앗을 얻기 위한 잡초 정원, 변이 실험을 위해 만든 따개비밭과 비둘기 사육장….그곳에서 다윈이 진행한 온갖 관찰과 실험 과정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비둘기를 키우고 온실에서 덩굴식물을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벌들을 쫓아다닌다. 파리지옥에 손톱과 머리카락을 먹이로 주는가 하면 지렁이에게 합주곡을 들려주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진화론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저자는 특히 그 기발하고 독특한 실험이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만의 연구로 이루어진 게 아님을 강조한다. 7명의 자녀가 다윈 곁에서 언제나 기꺼이 조수 역을 맡았다고 한다. 사촌과 조카는 물론 집사와 가정교사까지 자신의 연구에 끌어들이는 데 능숙했으며 친구와 지인들을 동원해 표본을 구하거나 실험에 필요한 도움을 구했고 동료들에게도 수시로 조언을 받았다. 다윈 자신도 그 실험들을 가리켜 ‘바보실험’이라 부르곤 했다고 밝힌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다윈은 한때 새로운 풍경을 찾아 세계를 여행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주변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는 법을 터득하면서 보냈다. 우리도 실험가 다윈을 알아 가다 보면 친숙함 속에서도 친숙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마지막 ‘변사’ 생활 30년 최영준이 말하는 ‘목소리 마술사’“인간문화재 등록요? 좋죠! 무성영화 변사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로 인정받고 계승 발전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더 없이 반가운 일이죠. 나라잃은 설움에 가득찬 식민지 백성을 통곡하게 하고 목놓아 아리랑을 노래하며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과 변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던 문화적 횃불입니다. 변사의 역사가 짧다고요? 제가 마지막 변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무성영화가 단 한편밖에 남지 않던 시절 사명감 하나로 사재를 털어 변사공연을 이어왔습니. 100년 전통을 가진 무성영화와 변사를 하찮게 여겨 이 시대에 소멸시킨다면 크나큰 문화상실이자 후손에게 잘못이 될 것입니다.”변사, 일제시대 탄생한 광대… 무성영화, 관객에 전달애달픈 대사에 심금 올리는 목소리… 관객 울리고 웃겨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영화관에 들어서면 선명한 고화질 화면에 서라운드 음향이 펼쳐지는 디지털시대다. 이런 와중에 무성영화를 해설하고 연기하고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변사(辯士)가 아직도 활동한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끓어올랐다. 호기심으로 수소문한 최영준씨. 자신을 광대(廣大)라고 부르는 그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목소리 마술사’라는 변사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 백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무성영화 변사. 애달픈 스토리에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세파에 시달린 관객을 웃겼다 울리는 변사. 그러나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변사가 전국을 다니며 전성기를 누리듯 공연을 이어 간다니 그의 애환과 비결을 듣고 싶었다. 지난 3일 최영준씨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광대의 나이는 늘 철없는 열 살”이라며 굳이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30여년전 우연히 본 ‘검사와 여선생’에 꽂혀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제작해 변사로 나서새로운 장르여서 ‘무성영화 변사극’이라 명명”- 변사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모노드라마 1인극 연극배우로, 인천에서 ‘약장수’, ‘팔불출’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 서울로 진출하였죠. 그 당시 연극의 중심이었던 이대입구 소극장에서 한 작품 당 2년씩, 장장 4년간 장기공연을 마치고 차기작품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5년 전에 작고하신 변사 신출 선생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게 됐어요. 무성영화와 변사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제 눈에는 변사가 1인극 배우로, 무성영화는 훌륭한 무대장치로 보였던 겁니다.” 이걸 꼭 해야겠다 마음먹고 그 시절의 다른 흑백무성영화가 또 있는지 찾았다. 당시 한국에 ‘검사와 여선생’ 외에는 무성영화가 단 한편도 없었던 상황. 신파극으로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성영화로 직접 제작해서 변사로 나섰다. 그때가 1986년. 그 때부터 전국 순회공연과 미국 공연도 갔다. 장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서 그는 직접 장르 이름을 ‘무성영화 변사극’이라고 붙였다. - 무성영화 변사극이란 뭔가요.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가 있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도 있어야 합니다. 무성영화 변사극은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 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신파극, 악극, 그 시절 대중가요, 흑백 무성영화, 그리고 변사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이 시대의 관객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마당극이라는 그릇에 담았습니다. 저의 연출기법이죠. 장르의 융합이랄까, 하이브리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각기 독립된 장르의 장점을 섞어놓은 비빔밥 같은 장르이니 그 이름을 새롭게 붙인겁니다.” -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변사 연기에 도움이 되나. “한 우물만 파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죠.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시기에, 저는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살아 왔죠. 극단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연극배우, 연출,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작사, 작곡, 가수, 개그맨…, 라디오 DJ도 재작년까지 25년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부른 가수가 바로 접니다. 글쓰기, 연기, 연출, 노래, 작사, 작곡…. 발표한 음반도 열장이 넘습니다. 음반 한 장에 제가 만든 신곡이 평균 10곡이니 거의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아 붓는거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말이 쉽지 완전히 맨땅에 헤딩 하는거죠. 전사의 심장으로, 독학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가는 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저의 학습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는 방법입니다. 파란만장한 제인생의 이런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되어 ‘1인36역’의 변사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변사극 매력?…관객과 소통, 무성영화와 호흡마당놀이 형식… 관객 호응 일본 영화사도 놀라주 관객은 노령층… 노인 증가에도 콘텐츠 부족”- 무성영화 변사극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객과 대화하고 함께 얼싸안고 울고 웃는, 접촉을 통한 소통입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무성영화와 변사의 환상적인 호흡인거죠. 변사의 연기술과 웃음을 주는 애드립은 젊은 관객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공연입니다. 또한 마당놀이 형식을 도입해서 관객의 적극 참여를 유도합니다. 지난 2월에 일본 마츠다 영화사를 방문하였는데 무성영화 1000편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변사는 5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의 주목도가 떨어져 정부의 지원사업에 의지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제 공연 영상을 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9월에 초청공연을 갖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무성영화 상영이 역사적인 콘텐츠의 재연이라면,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은 변사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공연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변사극을 만들고 틀을 잡아 놓으면 후대에 누군가에게는 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 영역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죠.” - 변사극 공연, 지방에서 많이 하던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보다 지방이 문화 소외지역이라고 해서 그쪽 문화단체나 지자체에서 많이 초청을 해줍니다. 이게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보니 관객층은 주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어르신들이죠. 그런데, 사실 진짜 문화소외 지역민은 서울에 사는 어르신들이예요. 노인을 위한 구경거리가 없다면서 어쩌다 변사공연을 보시고는 ‘자주 보고 싶다, 많이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지만 즐길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잖아요. 앞으로 방방곡곡 더 많은 공연으로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고,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썼다는 미발표곡 ‘목포항’도 불렀고, 조금 뒤에는 ‘목포의 눈물’도 구성진 가락으로 읊조렸다. 아이들 같은 목소리로 동요도 여러차례 불렀다. 물론 변사의 역할을 소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와 유독 인연이 깊다고 했다. 연극배우 시절 극장 개봉영화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랏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개그맨 데뷰 후에는 어린이 영화 십여편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두 편을 썼는데요, 한 편은 지난달에 경주에서 촬영을 마쳤고요, 또 한 편은 8월에 제주도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영화음악도 제가 다 작사 작곡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변사 배우러 오면 말려…엄청 노력에도 돈은 안 돼그래도 배우겠다면 1인극 ‘팔불출’ 공연하라면 안 와10년 노력해야 제대로 된 변사… ‘노랑목’ 나와야 해”- 변사, 하고 싶다는 사람이 혹시 있나. “가끔씩 찾아옵니다만 제가 말리죠. ‘변사극 쉽지 않다. 떼돈 버는것도 아닌데 노력은 엄청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변사를 해보겠다고 하면 제가 30년 전에 공연했던 모노드라마 ‘팔불출’의 대본과 동영상을 주면서 ‘이 작품, 한번 공연하고 오라’고 합니다. 90분 동안 혼자 공연한 작품이거든요. 그러면 다 기겁을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더군요. 변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타고난 재능에 연기가 익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한 10년은 해야 제대로 된 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랑목이 나와야합니다. 변사 연기의 신의 한수는 노랑목입니다.” - 노랑목?, 이게 뭔가요. “이게 뭐냐하면요,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을 가만히 들어보시, 모기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아주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이 소리가 애달프면서도 심금을 울립니다. 발성이 달라요. 노랑목 연습은 입을 작게 벌리고,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고 말합니다. 그러자면 목구멍을 딱 막아야 합니다. 보통은 목을 열고 말하는데 이건 목구멍을 닫아야 해요. 그래야 비성, 두성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됩니다. 변사는 흘러간 옛 노래도 불러야 되고, 모든 배역의 목소리를 연기해야 하는데, 특히 남자 변사가 여자 주인공 목소리를 예쁘게 구사해야 합니다. 노랑목이 가능해지면 실제 여성보다 더 여성스런 목소리, 변성기 이전의 어린아이 같은 예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언제부터 이런 엔터테이너 소질을 보였나. “제가 어릴 때부터 연극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중반까지는 내성적이고 말도 없었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잠깐 연극부에서 활동을 했지만, 처음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할 때 연기는 모르고 자의식은 강해서 많이 힘들었죠. 더구나 대학을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이 맞지 않아서 1년 다니다 그만두었으니, 전공이 완전 다른 연극 문외한 이었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최고의 연극배우 이호재씨를 롤모델로 삼았어요. 그때 마침 그 분이 1인극 약장수를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그 배우의 ‘약장수’ 대사를 전부 몰래 녹음해서 숨구멍은 어디인지, 억양은 어떻게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 연구하고 따라했습니다. 그의 공연을 매일 봤고, 그의 대사를 전부 외웠습니다. 그 명배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 한 셈이죠. 그러다가 결국 제가 살던 인천에서 소극장을 만들어서 개관 기념공연으로 최영준 모노드라마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약장수’에 이어서 ‘팔불출’을 했는데, 한 작품을 2년씩 하루 두번 계속 공연하니 그 작품에 대해서는 도가 트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서울 서대문 푸른극장에 있는 공연기획사인 ‘태멘’으로 스카우트되어 모노드라마를 푸른극장 지하 말뚝이 소극장에서 계속 했습니다.” - 모노드라마 당시 반응은. “처음 인천에서 할 때는 객석이 텅 비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관객 없이 연습도 하는데 …. 연기 공부를 한다’ 하는 심정으로 독하게 계속하니 나중에는 입소문이 나서 극장이 미어터졌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400만원 줄테니 서울의 말뚝이 소극장에서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서울로 진출했던 거죠. 당시 선배들이 저를 두고 ‘너같은 어린 놈이 무슨 일인극이야. 일인극은 베테랑들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형, 나이 먹으면 힘이 없어서, 체력이 딸려서 못하는 게 일인극이예요’라고 받아치면 선배들이 저보고 ‘저런, 당돌한 녀석’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연극배우 이호재가 롤모델…대사 몰래 녹음해 연습고 강계식 선생의 한마디 충고가 신의 계시처럼 꽂혀‘희극 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울릴 줄 알아야’전유성도 고마운 사람… 인맥 동원해 영화도 만들어줘”- 그래도 격려해준 선배는 없었나.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민재 형이 약장수 공연 당시에 연출을 봐 주셨는데, 저의 연기 개인지도 교사였죠. 연기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인이죠. 변사를 체계적으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강계식, 고설봉 두 분이 생각납니다. 영화계에선 이향, 이런 분들과 신파극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이니 당시 이분들이 70대를 넘겼거나 80대에 가까웠습니다. 이분들이 신파시대의 마지막 세대예요. 제가 빨리 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갖고 있는 신파극의 유산을 놓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연기도 연출도 같이 하면서 그분들하고 여러 작품 신파극을 만들면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뭡니까’하면서 많이 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계식 선생이 저보고 ‘여보게 미스터 최, 자넨 말이야, 희극배우야. 희극을 전문으로 연기를 하라는 거야. 근데, 희극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울릴 줄도 알아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신의 계시처럼 제게 팍 꽂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하염없이 웃기다가 끝에는 관객을 반드시 울립니다. 슬픔으로 끝나야 그게 예술적이라는 거죠. 카타르시스도 있고. 그 당시 신파극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우고 터득했죠. 또 한분은 개그맨 전유성씨예요. 어느 날,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 계획을 들으시더니 감독을 맡아 주시고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영화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시고 제가 변사로 나설수 있도록 해주신 결정적인 귀인이자 은인이죠.” - 우리나라에 변사극 레퍼토리가 많나. 무성영화가 있으면 변사극이 가능한가. “무성영화라고 해서 다 변사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변사가 없어도 상영할 수 있습니다. 변사의 개입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영화입니다. 변사극의 무성영화는 반드시 변사가 개입해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예컨대 ‘검사와 여선생’을 변사 없이 무성영화로만 상영한다면 이상하고 싱거운 상황이 될 것입니다. 변사는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합니다. 변사의 능력이 흥행을 좌우할 정도로 변사극의 핵심입니다. 현재 저의 변사극 레퍼토리는 세편입니다. 1948년작 ‘검사와 여선생(감독 윤대룡) 1986년작 ‘이수일과 심순애’(감독 전유성), 2002년작 ‘나운규의 아리랑’(감독 이두용) 입니다.” -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올해안에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제가 무성영화로 제작, 감독할 예정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 무성영화에서 시도했던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경우 예를 들면, 변사가 영화속 배우들의 싸움을 말린다. 영화 속 김중배 얼굴에 두루말이 화장지를 던진다. 이수일이 돈을 뿌리는 장면에서 변사도 같은 동작으로 돈을 뿌린다… 등등. ‘홍도야 우지마라’에서는 변사가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쁜놈을 때려주고 화면 밖으로 나오고, 비맞는 영화 속의 홍도에게 변사가 우산을 건네주고, 화면 속 홍도의 편지를 변사가 받아서 홍도 남편에게 건네주는 등의 가상현실 같은 장치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애수를 자아내는 장면을 그대로 살려낼 겁니다.” “올해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 무성영화 제작 예정제작비 구애없이 다음 세대 위해 작품 남기는 게 할일언젠가 무성영화 박물관 설립하고 변사 양성하고 싶어”- 무성영화 제작에 큰 돈이 들텐데 제작비 조달은 어떻게 하나. “1억원정도 예상하는데, 변사극 공연으로 벌어서 영화 제작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작비용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손익 분기점이 올 때까지 계속 울궈 먹을수 있으니 그렇게 무식한 투자라고 생각하진 않는거죠. 많은 분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요구도 있고요. 다음 세대, 후학들을 위해 제가 살아있는 동안 여러 작품을 남겨놓는 것이 이 시대 마지막 변사로서의 할 일이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10년 전, 2009년에 미국 LA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이광진씨 초청으로 미국 서부지역 한국교민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서울 촌놈이 샌디에고, 오렌지카운티, LA,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태평양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갔죠. 가는 곳마다 대성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도 오지라는 알래스카에서 공연을 마치고, 공연장 출입구에 서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며 관객 배웅을 하는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20달러를 차비에 보태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마음만 받겠다’고 해도 한사코 주시면서 ‘나, 집에 가고 싶어. 한국에 가고 싶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가시던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분들에게는 저의 공연이 고국의 추억이며, 그리움이었던 거죠.”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무렵 서울로 왔단다.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한국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것이었다. 서울에선 휘문중고를 다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세가 기울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학했다. 대학을 그만두는 바람에 배워야 한다며,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그는 늘 학생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무성영화 박물관을 만들어 전 세계의 무성영화를 수집, 보관, 상영하고 변사학교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변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물론 무성영화 제작도 계속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포토] ‘진심어린 위로’하는 추모객…이철규 열사 30주기

    [포토] ‘진심어린 위로’하는 추모객…이철규 열사 30주기

    6일 오전 광주 북구 5·18망월묘지(민족민주열사묘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중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고(故) 이철규 열사의 30주기 추모제가 열린 가운데 한 추모객이 이 열사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 69세 남성 집에서 전라 시체로 발견된 28세 여성

    69세 남성 집에서 전라 시체로 발견된 28세 여성

    28세의 일본인 여성이 어느 부유층 남성의 집에서 전라의 시체로 발견됐다. 28세의 이가라 시유리는 최근 69세의 남성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전라의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변사체가 발견된 곳은 유명 부동산 회사의 간부로 일하고 있는 이시하라의 자택. 경찰의 수사 결과 숨진 여성의 몸에서는 치사량의 1000배에 달하는 마약 성분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가라 시유리는 부유층 남성과 젊은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속칭 ‘데이팅 클럽’에서 이시하라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숨진 당일 사망 직전 친구들에게 ‘마약이 섞인 술을 억지로 먹어 어지럽다’등의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둘이 만난 것은 회원제 사교클럽을 표명하는 회원제 데이팅 클럽으로 이가라는 도쿄의 고급 환락가인 긴자에서 호스티스로 일해 왔으며 2017년 남성 접대부인 호스트로 일하고 있는 남성과 결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언론들은 이시하라가 이가라에게 억지로 마약을 먹여 환각 파티를 벌이려고 하던 중 지나친 마약 복용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의 사법 당국은 현재 이시하라를 체포하여 범행을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DB 뉴스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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