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변사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 망명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 동성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 노모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 동맹
    2026-06-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28
  • 「배후관련」 지목된 「세모」 유병언사장

    ◎“「오대양」 진상규명위 만들고 싶다”/“박순자씨는 78년 「구원파」서 배척당해/송 여인을 자금비서로 고용한적 없다” 『오대양집단변사사건에 세모측이 관련돼 있다』는 민주당 박찬종의원의 주장이 발표되자 유병언사장을 비롯한 세모측 관계자들은 『말도 안되는 허위날조』라며 펄쩍 뛰고 있다. 세모측이 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즉각 고소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신자들이 박의원 사무실에 몰려가 공개사과 등을 요구한 20일 하오 유사장을 직접 만나 해명을 들어봤다. ­박의원이 오대양사건의 배후세력에 세모와 「구원파」가 개입돼 있다는데. ▲내가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을 연극으로 꾸민 주범이라는 말이냐.한마디로 이같은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것이다. 「오대양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오대양관련자들과 일일이 면담해 87년 사건당시 경찰수사자료와 맞춰보고 싶다. ­유사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질적인 대표라는데. ▲과거 권목사의 요청으로 보수를 받지않고 강연을 해준 적은 있으나 80년대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복음침례회는 물론 다른 교파의 교회에도 나간 적이 없다. ­박순자씨가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집단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대전지역 책임자라는데. ▲박순자씨에 대해서는 87년 사건당시의 경찰조사자료를 통해 박씨가 지난 75년 「구원파」가 초교파운동을 벌일 때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대로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등의 행동을 하다 눈총을 받게되자 78년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구원파」의 대전지역책임자는 현재 세모의 주주인 변우섭박사였다. ­송재화씨가 유사장의 자금담당비서라는데. ▲우리 회사에는 자금담당비서라는 직책이 없다.나는 지금 공학박사를 비서로 쓰고 있을만큼 비서는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대양사건」의 전모가 이번 기회에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집단자살과 자금문제는 이미 87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당국에 의해 모두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경찰등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믿고 싶다. ­83년1월에 찍은 간부합숙훈련 사진속에 송재화씨가 끼여 있는데. ▲당시 세모의 전신인 삼우트레이딩의 대리급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품질관리교육이었는데 이 사진에는 회사의 간부들말고도 송씨등 다른 사람들이 많이 끼여 있었다.
  • 검찰,박 의원 주장 내사/「오대양」수사/송 여인 소재파악 나서

    ◎폭로자료 대전지검에 보내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 부장검사)는 19일 폭행치사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도현씨(38)등 자수자 7명과 입건된 이복희씨(30)등 2명을 포함,9명을 20일 상오 충남도경으로부터 송치받아 자수동기와 집단변사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수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민주당의 박찬종의원이 19일 『오대양의 배후에 주식회사 세모가 관련됐다』고 주장한데 대해 진위여부를 내사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박의원이 주장한 내용 가운데 송재화씨(45·여)가 오대양의 사채모금과정에 관련됐다는 부분을 중시,송씨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송씨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광주지역책임자로 숨진 오대양교주 박순자씨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채를 끌어모으다 4억8천만원을 가로채 사기 혐의로 지난 89년 1월 구속기소돼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검은 19일 「오대양사건」에 세모의 유병언사장이 관련돼 있다는 민주당 박찬종의원의 주장이 담긴 보도자료및 7가지의 관련 근거를 담은 녹음 테이프 등을 수사반이 설치된 대전지검으로 보냈다.
  • “「오대양」사건 유 「세모」사장 관련”/박찬종의원 주장

    ◎전화통화 내용등 자료 제시/“거액 사채 유입 가능성” 민주당의 박찬종의원은 19일 『오대양사건의 배후에는 종교계에서 「구원파」로 불려지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실제대표인 주식회사 세모 사장 유병언씨(50)가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대양 사장인 박순자씨는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집단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지역책임자 정도이며 박씨가 끌어모은 사채는 「구원파」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박순자씨가 「구원파」 대전교회 신자로 알려진데다 ▲박씨와 금전문제로 관계가 깊던 송재화씨(45·여)가 유씨의 자금담당비서로 알려지는 등 세모의 간부급직원이 분명하다는 점 ▲오대양 대전본사와 세모직원들간에 변사사건발생 얼마전 두차례에 걸쳐 전화통화가 있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송씨는 지난 89년 4억8천여만원의 사채를 갚지 않아 사기죄로 구속됐는데 박의원은 당시 송씨의 수사기록에서 송씨와 박씨및 세모간에 서울신탁은행 서울 다동지점을 통해 현금거래가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의원은 『오대양사건 당시 함께 숨진 이기순씨(당시 39세)의 남편이며 「구원파」의 신도였던 임모씨(당시 42세)에 따르면 「구원파」의 대표자는 권모 목사이지만 실제대표는 유씨였고 유씨는 신도들의 헌금으로 삼우트레이딩의 운영자금에 충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 의원 고소”/세모측 밝혀 민주당의 박찬종의원이 「오대양사건」의 배후세력으로 주식회사 세모와 이 회사 유병언사장을 지목한데 대해 세모측은 『이는 모두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소장이 날조한 것으로 세모를 모함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주장하고 『박의원을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풀리지 않는 오대양 의혹/오승호 사회1부기자(오늘의 눈)

    4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세인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졌던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이 김도현씨 등 오대양직원 6명의 집단자수를 계기로 다시 핫뉴스가 됐다. 그러나 이들의 자수로 미스터리의 실체가 벗겨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끝내 공염불로 끝나가고 있다. 미궁속에 빠져있는 전대미문의 이 사건은 오대양교의 교주로 알려진 박순자씨가 상당한 권력층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소문과 광신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행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사건발생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적지않은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충남도경은 자수한 9명의 신병을 검찰로 송치할 날짜를 겨우 이틀 남겨둔 17일까지 사건전모는 물론 집단자수의 동기조차 시원스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이날까지 3명 살해,4명 암매장사건만을 간신히 매듭지었을 뿐 32명의 집단변사사건은 4년전 수사결과를 부분적으로 재확인하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종결지은 상태다.따라서 앞으로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또 다시집단자살로 귀결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4년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었던 만큼 지금와서 단시간내에 갈증을 해소하듯 속시원히 해결되리라는 것도 섣부른 기대라 할 수 있다.그러나 지난 10일이후 보여준 경찰의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수사태도는 이 기회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뭔가 석연치 않은 자세로 집단자수해온 사람들이 4년전 집단변사사건 때는 이미 수감돼 있는 등 집단변사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수사의지」를 의심케 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경찰은 어떤 사건이든지간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로 의혹을 푼다는 수사의 기본을 결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 이상 다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우리는 경찰의 수사내용안에서 사건을 역사의 장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 사족을 단다면 사건을 넘겨받을 검찰에서나마 무언가 실마리가 풀렸으면 하는 것이다.
  • “추곡수매량 감축 계획한 일 없다”/16일 상위(의정중계)

    ◎“추경 건설예산 삭감,경기과열 막아야”/“전경환씨,「오대양」 박여인 만난일 없어” ▷내무위◁ 이상연내무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16일 이틀째 정책질의를 벌인 내무위에서 특히 야당의원들은 ▲87년 경찰이 사건발생 1주일만에 수사를 종결한 점 ▲사채1백70억원의 행방이 불투명한점 ▲집단변사체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나 법의학회 의견도 교살에 의한 타살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한점 ▲전경환씨와의 관련여부등을 의혹으로 내세우며 진상규명을 위한 여야공동진상조사단 구성까지 제의. 민자당의 오경의의원은 『오대양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치안본부차원에서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의혹을 하루빨리 밝혀야한다』면서 『경찰이 사이비종교단체의 외국사례및 인민사원사건등을 수사에 활용해 판단을 그르치고 있는것이 아니냐』고 질의. 신민당의 이영권의원은 『오대양 교주 박순자씨는 오대양경영시 대통령·도경국장 등으로부터 30여개의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았는데 표창을 받게된 공로를 밝히라』고 요구. 이내무장관은 『전경환씨는 새마을충남도지부 주관행사에 여러차례 참석한 적은 있으나 오대양회사를 방문하거나 박순자씨를 면접한 사실이 없는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당시 수사결과 충남도청이나 정부기관에서 특별히 지원하거나 비호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으나 사채의 행방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의 수사와 함께 여타배후에 대한 수사도 계속하겠다』고 답변. 이장관은 또 『자수자들이 범행후 3년이 지난 오늘 갑자기 집단자수한 동기의 진의에 대한 수사와 집단변사사건의 실상에 대한 재수사,오대양의 정체에 대한 수사를 다각적으로 계속해 나가고 있다』면서 『철저한 수사로 사건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전날의 답변수준에 불과한 수사상황을 보고. ▷건설위◁ 여야의원들은 추경예산심의를 하면서 국내 건설경기과열에 대한 진정책을 집중 거론,18일부터 신도시 아파트 부실공사문제를 본격 따지기에 앞서 예비공방. 특히 신민당의원들은 건설경기과열에 따른 물가불안을 이유로 건설부소관 추경예산안의 대폭 삭감을 주장했으나 건설부측은 『물가에 별로 영향이 없다』고 강조. 이날 이웅희·김운환의원(이상 민자)등은 『시멘트를 비롯한 건자재난이 극심함에도 불구,건설부가 고속도로건설에 시멘트를 사용할지 아스팔트를 사용할지를 아직 결정치않은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정부측의 근본적 건자재수급계획수립을 촉구. 정웅·신기하·김영도의원(이상 신민)등은 『현재 신도시건설을 포함한 국내건설경기가 과열돼 각종 건설자재나 인력난 등과 관련한 물가인상요인이 크다』면서 『건설부 추경예산을 국토확장사업비 3천8백억원을 전액 삭감해 건설경기과열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 이에대해 박규열건설부기획관리실장이 『물가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답변했으나 야당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하자 이진설건설부장관은 『물가에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한자리수이내 물가안정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추경예산이 편성됐다』고 설명. ▷농림수산위◁ 농림수산부 소관 추경예산안 제안설명과 농림수산부 산하단체에 대한 현안보고를 청취한 이날 여야의원들은 올 가을 91년 추곡수매동의안 처리를 앞두고벌써부터 정부측과 신경전. 김영진의원(신민)은 『농림수산부는 지난해 추곡동의안을 근거로 91년2월13일 각 시도에 하달한 「91년산 추곡통일계 예시」공문을 통해 91년산 통일벼 수매예시량은 작년보다 무려 3백만섬이 감소한 1백50만석,수매가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밝히라』고 요구. 이에 대해 조경식농림수산부장관 등 정부측은 『올 추곡수매량과 수매가는 금년도 작황에 따른 생산량이 확인돼야 결정할 수 있다』면서 『6백만섬 수매량 결정은 사실이 아니고 수매량 및 수매가에 관해서는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동의를 요청할 무렵 정부방침이 확정되는 것』이라고 답변. 그러나 이형배의원(신민)등은 『정부는 금년도 추곡수매량을 지난해보다 무려 2백50만섬이 적은 6백만섬 수매를 계획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을 풀지 않는 모습. 조장관은 이에 대해 『6백만섬을 우선 계상한 것은 양곡관리기금의 운용을 위한 부산물일 뿐 실제 수매가와 수매량은 추후에 별도로 계상되는 것』이라는 등 해명에 진땀.
  • 박 교주 남편,“오대양관 무관”/자진 출두… 진술

    ◎혐의점 못찾아 수사 제자리/“출두용의” 최의호 전전무에 기대 【대전=박국평·오승호·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도경은 15일 상오 숨진 교주 박순자씨의 남편 이기정씨(57)가 자진출두함에따라 이씨를 대상으로 당시 오대양과의 관련여부를 집중추궁했으나 4년전 수사결과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아내인 박씨의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평소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 실상을 아는 바도 없다』고 말하고 『사채등 자금의 운영과 행방 역시 아내만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같은 이씨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 돌려보낸 용인집단변사사건 당시 주방장이었던 최초의 현장 목격자 김영자씨(45·주방장)를 다시 불러 그때의 상황을 이씨와 대질신문했다. 그러나 김씨는 철야조사에서도 『당시 현장을 목격한뒤 곧바로 대전으로 달려와 충남도경에 신고했다』는 종전의 진술만을 되풀이,더이상의 증거를 캐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지난 13일 자진출두했던 박순자씨의 동생 박용택씨(38·당시 오대양전무)도 이날 하오9시10분쯤 다시 불러 지난 85년 8월 오대양을 퇴사하게 된 동기와 퇴사한뒤 운영했던 옷가게의 자금출처,자진출두했을때 진술의 진위여부를 캐고 있다. 한편 경찰이 소재를 찾고 있는 최의호씨(31·전오대양전무)도 이날 충남도경에 전화를 걸어와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곧 경찰에 출두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에따라 경찰은 최씨가 출두하는대로 참고인 진술을 들은 뒤 이번 김씨등의 자수사건을 일단 매듭짓기로 했다. 경찰은 그러나 3명을 살해 암매장한 김도현씨(38)등 오대양직원 9명의 자수와 관련,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는 자수동기와 노순호씨 살해일자및 이복희자매의 살해·암매장 가담 여부,사채의 행방과 용인집단변사사건의 진상 등에 대해서는 보강및 확대수사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 “집단 변사는 타살”주장/김현 의원

    ◎법의학회·과수연 문서 제시/“다른 곳서 살해 뒤 옮긴 것” 【대전=박국평·최용규기자】 국회 김현의원(42·무소속)은 15일 충남도청 기자실을 찾아 기자회견을 자청,『4년전 경기도 용인에서 발생한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요구했다. 김의원은 이날 사건당시 변사현장의 사진 12장과 수사결과,이경수(당시 45세)·박순자씨 등의 사체감정서,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및 대한법의학협회 특별의 답변내용 등 관계자료를 제시하면서 『이씨가 다락방에서 박순자씨 등 31명을 죽인뒤 마지막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는 당국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이씨마저도 타살된 집단타살극』이라고 말했다.
  • 「오대양」수사 “짙은 안개속”/진전없는 수사 중간점검

    ◎「집단변사」 결정적 단서 못찾아 원점에/자수자진술 진위 확인에 수사력 집중 4년동안 의문에 싸여있던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은 김도현씨(38·관리부차장)등 직원들의 집단자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채 또다시 미궁속에 빠질 공산이 짙어지고 있다. 이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충남도경은 김씨등이 지난 10일부터 한꺼번에 자수해온 뒤 1주일째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오대양사건」의 전모에 대해서는 당시 수사결과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머물러 이렇다할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집단으로 자수한 6명 말고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오대양교주 박순자씨의 동생이며 당시 오대양 전무였던 박용택씨(38)와 박씨의 남편 이기정씨(57)및 살해·암매장된 총무과장 노순호씨의 부인 박명자씨(35)등 6명의 자진출두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오대양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진술만을 받아냈다. 경찰은 김씨등이 자수한 초기부터 이들이 채권자인 박상배씨(55)를 폭행한 혐의로 4개월동안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집단변사사건과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김씨등이 사건이 발생한지 4년 가까이 지나 세인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시점에서,그것도 집단으로 자수해온 점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중시,집단자수 동기와 배후 및 타살여부,1백30억원의 사채등 자금의 행방 등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그동안 지난 12일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도현씨 등 7명과 불구속 입건된 2명 등을 포함,15일까지 모두 15명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살인 및 암매장 사건만을 종결지었을 뿐 4년남짓만에 다시 화제가 된 집단변사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들이 집단으로 자수하게 된 동기마저 이들의 진술대로 「양심의 가책」과 「박교주에게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이유외에는 아무런 새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보여준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태도만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벅차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에대해 충남도경 채천득강력과장은 15일 『지금까지는 집단 자수한 6명과 자진출두한 사람들의 진술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선에 머물렀으나 이제부터는 2차수사에 들어가 이들이 한 진술의 진위여부를 밝히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경찰은 앞으로 「오대양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인 집단자수 동기를 밝히는데 모든 수사력을 모을 것임에 틀림없다. 경찰은 경기도 용인 오대양공장 천장에서 발생한 집단변사사건의 타살여부와 사태의 행방 등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제보가 없는한 한계에 부딪친 느낌이 짙다. 이에따라 경찰은 15일부터 집단자수한 6명이 출소한 지난 87년12월24일부터 자수직전인 지난 10일까지의 행적을 밝히기 위해 오대양 직원과 신도 등 70여명의 생존자에 대한 소재확인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과정에서 보여주듯 경찰은 아무런 단서를 찾지못해 애를 먹고 있다. 여기에다 경찰은 자수자들을 오는 18일쯤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어서 집단자수동기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시되고 있다.
  • “「변사 현장」서 반나생활”/LA거주 오대양생존자 밝혀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지난 87년 「오대양」사건당시 유일한 생존자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살고있는 유재순씨(여·59)는 자신은 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난 87년 8월27일 하오1시쯤 아래층에 있는 육아원 아동들과 노인들에게 옥수수죽을 끓여주기 위해 천장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당시 천장은둔생활은 비좁은 공간과 더위때문에 32명 모두가 극도의 탈진상태를 보였으며 대부분이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채 반나상태로 지내왔다고 밝혔다.
  • 부동산여걸 15년에 “수천억 치부”/「강남 큰손」 조춘자씨 주변

    ◎한때 교사·세무원… 토지투기로 떼돈/의원보좌관 단체 지원… 정계와 교분/사기 등으로 22회 입건… 1년6개월 복역도 1백36억원의 주택조합계약금과 중도금을 가로챈 혐의로 13일 저녁 경찰에 구속된 조춘자씨(42)에 대한 화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조씨는 「강남의 큰손」 「제2의 장영자」로 불릴만큼 전국에 수백만평의 땅을 소유,재산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소문나 있다. 백억대의 사채를 힘들이지 않고 끌어들이며 고위급 정치인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등 끝없는 풍문을 자아낸 조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 이때 조씨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민자당교육원부지 1만9천3백여평을 매입하지도 않은채 조합아파트를 건립한다면서 조합원을 모집,D투자신탁 주택조합으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었다. 이때부터 베일에 싸여있던 그녀의 신상명세가 여성잡지 등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조씨는 대전 출생으로 지난 69년 공주교육대 교육학과를 졸업한뒤 시골의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다 70년 국세청 5급공무원(현재 9급)공채시험에 합격,세무공무원 교무과에 근무했으며 결혼하기 위해 직장을 떠났다. 조씨는 3년동안의 세무공무원 시절에 익힌 세무지식과 본래부터의 특출한 이재감각,폭넓은 대인관계등을 바탕으로 70년대초부터 남대문시장과 동대문 평화시장 상인들의 장부정리등을 해주면서 한달에 1백여만원씩의 수입을 얻기 시작했다.당시로는 집 한채값과 맞먹는 돈을 한 달에 벌어들였던 것이다. 이때 벌어들인 자금으로 27살때부터 본격적인 부동산투기에 뛰어들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돌밭을 구입하는 등으로 땅을 사들이던 조씨는 특히 장영자씨의 부동산구입을 도왔던 유모씨의 도움으로 「떼돈」을 벌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동산투기로 재미를 보던 조씨는 투기방법이 더욱 대담해져 재개발아파트 「딱지」를 사들여 이중·삼중으로 전매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차익을 남기다 결국 85년 10월 사기혐의로 구속돼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조씨는이밖에도 지난81년부터 각종 사기및 배임혐의로 22차례에 걸쳐 입건되기도 했다. 87년 4월 출소한 조씨는 89년 1월 서초구 방배동에 정암개발이라는 부동산중개회사를 차리고 90년 4월 자본금 3억의 정암산업,얼마뒤에는 자본금 16억원의 용성산업을 세워 조합주택건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사업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다 지난해 11월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군인아파트부지 1만7천여평을 낙찰받으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1백5억원의 현금을 동원,낙찰보증금을 내면서 또한번 「큰손」임을 과시한 조씨는 낙찰뒤 20일내에 내게 돼있는 나머지 계약금 1백5억원을 마련할 자금이 달려 구청에서 승인한 가구수보다 1백61가구를 초과모집하게 됐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조씨는 그러나 『한달안에 2백억원을 동원,모두 변제해줄 수 있는데 왜 나를 감옥에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호언해 「통큰」여자사업가임을 또한번 보여주었다. 또 서초구 양재동에 시가 1백30억원짜리 1천여평의 대지와 강남구 역삼동에 50억원짜리 단독주택을 보유하고 있지만 쉽게 팔리지않아 자금회전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검찰에 연행될때 모두 1억원어치가 넘는 각종 보석및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당수사관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평소 『땅값은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사도 남는다』는 「땅철학」을 주변사람들에게 늘어놓으며 『똑똑하고 능력있는 정치인을 키우겠다』고 호언해 배후에 상당한 정치세력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조씨는 국회의원보좌관출신들이 운영하는 정치문화연구원을 지원하고 있다. 조씨의 정치적 근거로 알려진 주식회사 거삼은 지난해 설립된 광고대행회사로 대표는 전민자당 박모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박모씨이며 박씨는 회사설립뒤 외부에서 박사급 연구원을 초빙,거삼안에 정치문화연구원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24세때 집안의 중매로 진로그룹에 근무하다 지금은 강원도에서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모씨(49)와 결혼,슬하에 딸 둘(18,11세)을 두었다.남편과는 7∼8년전부터 별거해오다 지난 3월 이혼하고 딸 둘과함께 시가 9억원을 호가하는 서초구 서초동 56평의 삼풍아파트에서 살고있다.
  • 「오대양」수사 다시 원점에/박 교주 동생 출두 불구

    ◎결정적 단서 못찾아내/박씨,“암매장 목격” 시인… 공소시효 지나 풀어줘 【대전=박국평·오승호·최용규기자】 지난 10일 오대양직원 6명이 자수한데 이어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핵심인물들이 잇따라 자진출두,사건발생 3년10개월여만에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의 실마리가 좀처럼 풀리지않아 또다시 미궁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충남도경은 오대양의 관리부차장이었던 김도현씨(38)등 자수자 가운데 7명을 지난 12일 폭행치사및 사체유기혐의로 구속시켰을뿐 14일 하오까지 교주로 알려진 박순자씨등 32명의 집단변사사건과의 관련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특히 13일 하오5시50분쯤 자진출두한 박씨의 이복동생 박용택씨(38)가 오대양의 전무여서 사건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철야수사를 벌였으나 역시 혐의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박씨는 경찰에서 『최근 언론에서 나를 마치 「오대양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있는 것으로 확대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진출두했다』고 밝히고 『오대양사건및 사채등 자금의 행방에 대해서는 누나인 박씨와 함께 집단변사한 박씨의 큰아들인 이영호씨(당시25세)만 관리했기 때문에 누구도 모른다』고 자신의 관여사실을 부인했다. 박씨는 그러나 지난 85년4월 살해된 황숙자씨의 암매장현장에 있었던 점은 시인했다. 경찰은 이에따라 박씨에게 사체유기혐의를 적용할수는 있으나 5년인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에 검찰의 지휘를 받아 신병을 풀어주기로 했다. 경찰은 당초 김씨등이 집단으로 자수해오자 이들이 단순히 오대양사건이 발생하기전 오대양총무과장 노순호씨(당시 32세)등 4명을 살해·암매장한 사실과는 별도로 석연치않은 자수동기와 그동안의 행적,1백억원이 넘는 사채의 행방및 오대양집단변사사건과의 관련여부등을 캐내기위해 전면 재수사에 나섰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85년이후 3년동안 3명의 동료직원을 살해해 암매장한 김씨등이 한꺼번에 자수하게된 동기마저 「양심의 가책」때문이라는 것외에는 더이상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까지 집단으로 자수한 6명외에 박용택씨등 자진출두한 8명을 포함,모두 14명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오대양직원의 살해및 암매장사건 관련여부에 치중하느라 집단변사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데는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해 사실상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변사 32명 집단자살 가능성”/여교주 동생 박용택씨 일문일답

    ◎“누나는 카리스마… 모든 일 독단처리” 오대양교주 박순자씨의 친동생으로서 한때 오대양계열 공영정밀 전무로까지 일해 오대양 집단변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박용택씨(38·경기도 안양시 호계동)는 13일 경찰에 출두,『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자수동기는. ▲오대양변사사건 및 암매장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잘못 보도되고 있어 해명하기 위해 왔다. ­뒤늦게 출두한 이유는. ▲하루정도면 사실이 밝혀져 이같은 보도가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자수한 김도현씨 등은 황씨 사체를 같이 암매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무근이다.황씨가 숨졌는지조차도 몰랐다. ­그동안 행적은. ▲오대양을 떠난뒤 옷장사를 하느라 군산 및 의왕등 모두 4군데로 주소를 옮기며 살아왔다.최근까지 안양에서 장사했고 소문과는 달리 자동차는 갖고 있지 않다. ­누나 박순자씨에 대한 기억은. ▲누나는 카리스마적인 성격이 강해 모든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으며 오대양자금도 도맡아 관리하는 등 동생인 나에게도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하루에 감기약 2병씩을 마시지 않으면 심한 두통을 호소할 정도로 중독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대양변사사건과는 관계가 없는가.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나던 때에는 천안의 친구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으며 그동안 채권단이라는 사람들이 한차례 찾아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해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자 돌아간 적은 있었다.그러나 숨진 32명은 집단생활을 해왔고 이들의 행동에서 강한 신념을 느낄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집단 자살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경환씨가 지난 85년에 오대양을 두차례 찾아갔고 특정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내가 오대양에 근무할때까지는 전씨가 찾아 온 적은 없었으며 다른 종교단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 「오대양」의 실체는?/배후세력 있을까

    ◎관련자 자수에도 증폭되는 「의혹」/거액 사채 싸고 「조종」­「생존」세력간 다툼 추정/실체 노출·제2살인 숨기려 자수강요 풀이도 「한국판 인민사원사건」으로까지 불려지고 있는 「오대양 집단변사사건」과 살인암매장사건을 낳은 「오대양」의 실체는 무엇이며 과연 배후조종세력은 있을까. 동료를 살해,암매장했던 오대양직원들의 집단자수를 계기로 4년전 32명이 집단변사한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온갖 의혹이 증폭돼 배후세력의 실존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암매장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점차 김도현씨(38)등 자수자들이 뭔가에 쫓기고 있는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김씨 등의 자수동기및 행적을 보면 배후세력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꼈거나 압력또는 협박에 못이겨 자수의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배후세력이 실체가 탄로될 지경에 이르렀거나 또다른 부정을 숨기기 위해 김씨 등을 자수시킨게 아니냐는 논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함께 오대양과 관련된 생존자들끼리 행방이 묘연한 사채 1백70억원을 둘러싸고 이권다툼을벌이다가 조직을 부활시키려는 세력과 「배후세력」이 알력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약세에 놓였던 「부활세력」이 쫓겨 경찰에까지 오게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집단변사한 교주 박순자씨는 오대양을 세우기 전 모종파에 관련돼 있었으며 13일 새벽 경찰에 출두한 숨진 노순호씨의 부인 박명자씨(36)와도 이때부터 알고 지낸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다른 종교와의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오대양의 계열회사인 오대양과 공영정밀에는 모두 65명이 있었으며 사건이후 생존한 직원 53명과 신도들은 조직이 와해돼 대부분 흩어져 있는지 아니면 또다른 종교집단을 구성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일체 알려져 있지 않다. 배후조종세력의 존재가능성은 자수한 김씨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선 자수한 김씨등이 채권자 이상배씨를 폭행한 혐의로 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난 날보다 5일 전인 87년8월24일 구속돼 이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채권자 이씨는 변제의사가 없던 오대양측으로부터 『돈을 갚아 줄테니 어음을 모두 갖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김씨등과 만나 집단폭행을 당했고 이 때문에 김씨등이 구속됐다.이는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철창행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또 노씨가 살해된 87년8월19일 주택은행 대전지점에서 노씨의 저금통장으로 50만원이 인출됐으며 4일 뒤인 23일에는 경기도 오산의 야산입구에 노씨의 승용차가 버려져 있는 등 누군가가 사건을 조작하려 한 점도 눈에 띈다. 또 집단변사사건의 경우에도 박씨가 가장 먼저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이 단체에서 신처럼 떠받들고 있던 교주 박씨를 신도가 살해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살해된 장소의 정황으로 보아 적어도 건장한 청년 10여명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따라서 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진짜 실력자인 인물 또는 조직은 어떤 것인가라는데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교주 박씨의 상위에 있는 종교집단이나 정치적인 폭력집단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사건해결의 핵심인물로 지적돼온 숨진 노씨의 부인 박명자씨가 뒤늦게 경찰에 출두,『남편의 피살소식을 교주 박씨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자신은 사채의 향방과 관련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배후세력이 수사에 혼선을 줄 목적으로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있다.
  • 박용택씨(여교주 동생) 자진출두/경찰,철야조사

    ◎“「오대양」·살해 암매장과 무관” 주장/생존자 70여명 소재 정밀추적 【대전=박국평·오승호·박대출·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도경은 13일 수배됐던 박명자씨(35·숨진 노순호씨의 부인)와 박용택씨(38·오대양교주 박순자씨의 동생)가 잇달아 자진출두함에 따라 이들의 오대양사건 관련 여부를 집중 추궁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채 이 사건 수사는 주변을 겉돌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전오대양 직원 가운데 또다른 희생자가 있는지의 여부를 캐기 위해 당시의 전직원을 대상으로 전면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또 오대양 관련자의 뒤늦은 집단자수가 4년전 용인에서 일어났던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뒤 행방이 묘연한 사채 1백억여원 등의 재산을 둘러싼 조직간의 이권다툼 때문이거나 조직을 부활시키기 위한 역공작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박용택씨 출두◁ 박씨는 이날 하오5시50분 경찰에 자진출두,철야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경찰에서 『최근 각 언론의 보도가 너무나 왜곡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왔다』며 자신이 오대양사건 및 노씨 등의 살해,암매장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모든 의문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특히 박씨는 『오대양 계열인 공영정밀전무로서는 일반행정업무만을 담당했을 뿐 자금문제는 누나 박순자씨가 직접 관리했다』며 이날 상오에 자수한 박명자씨와 같은 진술을 했다. 박씨는 지난 84년10월 누나 박씨의 부탁으로 오대양에 입사,전무로 있으면서 일반업무를 처리했으나 오대양의 교리와 집단생활방식이 맞지 않아 85년9월 오대양집단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는 지난 85년의 황숙자씨 살해,암매장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경찰은 박씨로부터 더이상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명자씨 출두◁ 이날 상오1시40분쯤 경찰에 출두한 박씨는 『집단변사사건은 물론 남편 노씨등 3명의 살해,암매장사건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박씨는 『남편이 살해당한 사실은 살해 직후인 87년8월19일 교주 박순자씨로부터 직접 들어 알고 있었으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게되는 당시 오대양의 분위기 때문에 입을 열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오대양 출신자 소재 수사◁ 경찰은 박명자씨가 남편의 살해사실을 즉시 알고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오대양의 생리」를 감안,이들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오대양의 직원이었던 모든 출신자의 소재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87년 당시 오대양의 직원을 박순자씨를 사장으로 한 오대양에 40명,이복동생인 박용택씨가 전무로 있던 공영정밀(오산)에 25명등 모두 65명으로 파악,자수한 직원 9명,살해 또는 암매장당한 4명,집단변사한 4명(나머지는 신도들)을 빼면 생존자가 당시직원 50여명과 가정부등 70여명선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검증◁ 경찰은 13일 상오11시20분부터 대전지검 송해은검사의 지휘로 대전시 서구 가수원동 구 오대양사무실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자수한 직원 9명을 비롯,박명자·정하진씨등 11명이 나온 이날 현장검증에선 숨진 황숙자씨(당시 40·여)의 구타부분을 시작으로 오대양총무과장 노순호씨의 1·2차폭행,살해,암매장장면이 20평가량의 시멘트블록건물인 오대양사무실과 동구 하소동 오대양농장창고(8평가량)에서 차례로 진행됐다.
  • 박 교주 동생등 2명 긴급수배/「오대양」관련

    ◎사채향방·노 총무 피납의 「열쇠」간주/자수자 「살해날짜」진술 엇갈려/7명 구속·2명 입건/「32명 변사」 연계 수사/노씨등 시체 3구서 골절상 발견 【대전=박국평·박대출·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도경은 12일 오대양총무과장 노순호씨(당시36세 )등 3명의 살해암매장 사실이 확인됨에따라 이 사건이후 행방을 감춘 유일한 관련자인 박용택씨(38·박순자씨의 이복동생)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숨진 노씨의 부인 박명자씨(35)도 이번사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박씨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이 박용택씨를 찾고 있는 이유는 박씨가 당시 오대양계열인 공영정밀 전무로 있으면서 1백억원이 넘는 사채의 유출경로를 잘알고있는 것으로 보고있는데다 이번 노씨등 암매장사건 관련자중 유일하게 행방을 감춘 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경찰은 지난 11일 형사대를 박씨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급파했으나 이미 박씨는 행방을 감춘뒤였다. 박씨는 지난 87년 오대양사건이후 인천에서부터 현주소지까지 5번이나 주소를 옮겨 더욱 의혹을 사고 있다. 박씨와 함께 경찰의 수배를 받고있는 박명자씨 역시 김도현씨 등의 자수 이후인 11일 서울에서 같이 살고 있는 11살난 딸에게 『미국으로 물건을 사러간다』는 말만 남긴채 행방을 감췄다는 것이다. 박여인은 남편 노씨보다 먼저 오대양에 입사해 남편을 총무과장으로 추천,함께 근무하면서 회사의 경영상태를 잘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노씨가 대전으로 납치될 당시인 87년8월17일 서울 처가에 있던 노씨에게 전화를 걸어 『하오2시40분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만나자』고 유인,자신은 나타나지도 않고 노씨를 납치당하게 만든 것으로 당시 경찰수사결과 드러났었다. 경찰은 이들의 소재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한편 자수한 김씨등 9명의 석연치 않은 자수동기와 엇갈리는 진술부분,그리고 용인집단변사사건과의 관련여부 등에 대해서도 전담반을 편성해 보강수사를 펴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등 6명은 자수 당일인 10일엔 하나같이 노씨의 살해 일자를 87년8월15일이라고 진술했다가 이후 경찰이 그때까지는 노씨가 살아있었다는 반증을 제시하자 「기억에 없다」면서 노씨 살해 일자를 엇갈리게 진술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자수한 전 오대양 직원 9명중 김도현씨(38)등 7명을 폭행치사및 사체유기혐의로 12일 하오 구속하고 가담정도가 경미한 심해련씨(25)와 이복희씨(30)는 불구속 입건했다. 1차감식을 마친 충남대 임상병릭학팀(팀장 황규상박사)은 숨진 노씨등 3명의 사체에서는 왼쪽 다리부분과 늑골에 골절상이 발견됐으나 박형심으로 추정되는 사체에서는 아무런 외상이 없는 것을 밝혀내고 신원확인에는 실패,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체의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한 부검을 의뢰키로 했다. 구속자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도현(38) ▲이세윤(45) ▲오민철(34) ▲김강규(32) ▲한호재(38) ▲문윤중(37) ▲이인희(27·여)
  • 「오대양」사건 의문점과 수사방향/진술번복등 갈수록 “의혹투성이”

    ◎자수동기,“양심가책”서 “교주환멸”로/사채규모도 “1백70억”“5백억” 혼선 오대양직원들의 집단자수에 따라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도경은 집단변사사건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단서를 찾지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난 4년전부터 지적됐던 ▲수사의 서두른 종결 ▲사채 1백70억원의 행방등 의문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됐다. 여기에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들의 갑작스런 집단자수의 동기와 노순호씨(36)살해일자의 엇갈린 진술,사건뒤에도 집단생활을 계속해온 점등이 의혹으로 남으면서 기존의 3가지 의문과 맛물려 의문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범행이 완전히 묻힐 수 있을 정도로 4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시점에서 이들이 동시에 자수한 점과 노씨를 살해한 시기가 엇갈리는 점,자수후 무거운 처벌등을 고려할 때 자수동기에 당연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이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했다』고 말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범행이 들통날까봐 두려워서』 『교주 박순자씨에 대한 회의 내지 환멸때문』이라고 자수동기를 다르게 말하고 있는데다가 노씨에 대한 살해시기가 당초 87년 8월 15일에서 15∼19일이라고 하는등 한결같던 진술이 차츰 뒤바뀌고 있어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가중되고 있다. 경찰은 숨진 노씨의 부인 박명자씨와 교주 박씨의 이복동생인 용택씨등 2명이 사건해결의 핵심이라고 판단,검거전담반을 편성해 이들의 연고지에 급파,행방을 찾고 있다. 노씨의 부인 박씨는 교주박씨와 오대양설립 이전부터 서울의 모종파에서 알고 지내왔으며 설립이후 남편 노씨를 교주 박씨에게 소개,오대양의 총무과장직을 맡게 하는등 교주 박씨와는 각별한 사이로 지내와 사건전체에 깊이 관여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용택씨는 이때문에 집단변사사건의 계기 가운데 핵심으로 알려진 거액의 사채도입및 운영에 깊이 연루돼 있다는 점이 이번 수사의 초점으로 등장되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자수한 오민철씨가 경리일을 맡았으며 당시 신과 같이 떠받들던 교주 박씨와 함께 나란히 사진촬영도 했던 것으로 미루어 자금운영의 핵심인물인 것으로 보고 사채의 향방을 추궁하고 있다. 자수한 이세윤씨(45)등 10여명은 사건이후 서울 청계천에서 종교성이 짙은 집단생활을 해왔으나 정작 경찰에는 「교주 박씨에 대한 종교적 환멸감」자수동기의 일부분이라고 밝혀 모순을 내보이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11일하오 자진출두한 집단변사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김영자씨와 정화진씨가 이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집단변사사건과 암매장사건의 연결고리를 풀수 있는 인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이밖에 박종태씨(52)등 채권단이 밝힌 오대양의 사채 1백70억원의 행방은 온데간데 없고 액수에 대해서만 2백90억원,3백60억원,5백억원 등으로 갈수록 부풀려지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이같은 수사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단순사건으로 매듭지으려 하고 있어 전면재수사라는 발표는 여론을 의식한 전시용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 오대양사건의 진상은…(사설)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이 당시의 사건관련자 6명이 느닷없이 자수하고 나섬으로써 주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4년동안이나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의 진상이 이번에는 밝혀지게 될 것인지 그것이 우선 궁금하다. 그러면서 이같은 참혹한 사건이 어떻게해서 지난 몇년동안이나 집단변사의 정확한 경위나 동기가 밝혀지지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는가에 대해 다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더욱이 관련 6명이 자수를 하지않았다면 계속 미스터리상태로 묻혀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될 때 관련수사기관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묻지않을 수 없다.마찬가지로 진실을 밝히는 것에 대한 사회의 노력부족은 충분히 반성의 대상이 된다고 여긴다. 우선 수사측면에서 이번사건은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그하나가 수사를 서둘러 종결하지 않았나하는 의문이다.경찰이 당초 이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한 회사총무과장 노씨가 이미 살해당했는데도 여지껏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고있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그런가하면 이번에 자수자가 6명이나 되고 이밖에도 몇명이 더 있다는데도 경찰은 모르고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수사의 미진함을 확인하게된다.이런 이유로 경찰은 일찍 이사건의 추적을 그만두지않았나하는 결론이 가능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찰은 종종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건의 수사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적당히 처리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자주 문제가 돼왔다는 것에서 이번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보게된다는 것이다.어떻든 어떤 사건이든 끈질기게 추적해야한다는 수사의 기본을 이사건은 결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이사건을 둘러싸고 권력층과의 관련설등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았다는 데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이사건에는 이밖에도 적지않은 의혹이 있는게 사실이다.우선 집단자살이 노씨등 3명의 살해사건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끝에 일어났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그것은 그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더욱이 광신적인 종교집단이기 때문이다. 또하나는 6명의 불분명한 자수동기에도 의문을 갖게된다.무엇때문에 4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자수를 하게됐는지가 궁금하다.이들은 사건이후 양심의 가책과 교주인 박씨에게 속아살아온 사실을 깨닫게 돼 자수하게됐다고 밝히고있으나 충분한 자수동기에는 미흡하다. 당시의 오대양 교도들이 사건뒤에도 공동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나 최근들어 서로 알력끝에 뿔뿔이 헤어졌다는 사실 등도 쉽게 이해되지않는 것 들이다. 경찰은 이사건의 진상을 중심으로 사건의 경위,동기등 모든 의혹을 이번기회에 밝혀내야한다.앞으로 자수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미스터리의 실체가 밝혀질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본다.미궁으로 남겨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경찰의 수사결과를 기대한다.
  • 「4년 미궁의 집단변사」 규명될까

    ◎노순호씨 행적·사채 1백억 행방 추적 4년동안 미궁속에 빠져있던 오대양의 집단변사사건의 전모는 과연 풀릴 수 있을까. 이 사건의 관련자로 여겨지는 7명이 10일과 11일 충남도경에 자수해옴에 따라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들의 진술여부에 따라서는 당시 사건의 전모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둘러싸고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또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항간에 소문으로 나돌았던 전경환씨와 오대양및 이 사건의 주범이자 교주인 박순자씨와의 관계,박씨가 3백45명의 채권자로부터 빌려쓴 97억원의 행방,오대양의 중소특례수출입허가취득경위,오대양산하 공영정밀이 중소특례수출허가를 취득하면서 수출업체로 변경된 점등 석연찮은 부분이 규명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사건의 초점은 87년 8월29일 오대양용인공장기숙사 천장에서 한꺼번에 32명의 사체가 발견된 집단변사사건의 의문점을 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오대양사건을 수사했던 경기도경과 충남도경은부검을 통해 사인만 규명했을 뿐 자살동기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수사를 끝냈다. 경찰은 다만 이들이 교주 박씨의 심복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사교인 「오대양교」의 실체와 집단자살에 이르기까지의 배경 등은 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신문하고 있다. 검 경은 특히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유력한 용의자로 현상금과 함께 수배됐던 이 회사 전총무과장 노순호씨(사망당시32세)가 집단변사사건이 있기전 살해됐다는 자수자들의 진술과는 달리 그 이후에도 노씨를 본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있어 노씨의 사인을 규명하는데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 검 경은 이밖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제발로 경찰에 찾아와 자수한 동기 또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수사결과만 놓고 볼 때 오대양사건은 교주 박씨의 지시에 따라 자수자를 포함한 신도들이 3명을 살해하고 1명을 암매장하는등 공범관계에 있고 채무관계로 빚독촉에 시달린 박씨와 신도들이용인공장으로 피신해 있다가 자수자들의 진술을 포함한 이러저런 이유로 집단자살했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 여고시절 말수가 적은 소녀였던 박씨는 신학대학을 나와 「살아있는 신」으로 행세하며 「오대양교」를 창설,이회사 사원이자 신도인 사원들을 철저히 농락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튼 이 사건의 관련자 7명이 자수해옴에따라 오대양사건이 재조명될 것임은 틀림없다.
  • 「오대양」배후·타살여부 재수사/검찰

    ◎추가자수 3명등 9명 모두 구속영장/대전 「농장」서 암장시 4구 발굴/자수동기·행적등 집중추궁/박순자씨 동생 박용택씨 행방추적 【대전=박국평·박대출·최용규기자】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을 수사중인 충남도경은 11일 이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배됐던 오대양 총무과장 노순호씨(당시 32세)가 사건발생 이전에 이미 살해,암매장당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노씨등 3명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은 지난 10일 김도현씨(38)등 당시 오대양 직원 6명과 11일 상하오에 걸쳐 심해련씨(25·자수한 오민철씨부인)와 이복희(30)이인희씨(27)자매가 잇따라 경찰에 자수,노씨를 비롯,황숙자(당시37·여·기숙사가정부)조재선씨(당시29·보모)등 3명을 지난 85년부터 87년사이 오대양 사무실과 식당등에서 집단으로 폭행,살해해 암매장했다고 진술함으로써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에 따라 11일 하오1시50분부터 암매장 현장인 대전시 동구 하소동 오대양 농장옆 밭에서 2m 간격으로 매장된 시체 3구와 위암으로 숨져 암매장된 박형심씨(자수한 이세윤씨의 처)등의 사체4구를 찾아냈다. 경찰은 이날 암매장된 시체가 모두 발굴됨에따라 10일 자수자 6명과 11일 자수한 3명 등 9명을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10일 자수한 김도현씨(38)등 6명에 이어 11일 상·하오에 걸쳐 자수한 심해련씨와 이복희씨자매는 경찰에서 『황숙자씨는 우리 3명을 비롯,여자 7명이 5시간 동안 집단 폭행해 숨지자 같은 장소에 암매장 했다』고 범행을 시인했으나 복희·인희씨 자매는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날 상오 2개월된 딸을 안고 자수한 심씨는 『당시 분위기로 보아 박순자씨의 지시를 어길 수 없어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며 딸을 부둥켜 안고 울먹였다. 경찰은 이들이 사건 발생 4년 가까이 됐는데도 집단으로 자수한 사실에 의문을 갖고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집중하기로 했다. 또 경찰은 김씨 등이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자수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절반이상을 넘긴 상태에서 추적을 받지 않는데도 갑작스럽게 집단 자수한 점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그동안의 행적과 자수 준비과정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또 이날 하오 자진출두한 정화진(38) 김영자씨(54)가 오대양사건 당시 용인공장 식당 천장에서 도피생활을 하고있던 교주 박순자씨등 32명에게 음식을 공급했으며 앞서 이날 상오 자수한 심씨와 사건이후 서울 청계천에서 함께 지내온 사실을 중시,오대양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노씨등 살해 암매장사건 관련자중 유일하게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교주 박씨의 동생 박용택씨를 찾기 위해 박씨의 주소지인 경기도 과천시에 형사대를 급파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암매장 현장을 확인,사체를 모두 발굴함에 따라 자수한 김씨 등의 여죄와 자수동기,오대양사건과의 관련여부 등을 수사하는 한편 발굴한 유해 4구를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식을 의뢰키로 했다. 한편 이 사건담당 송해은검사는 자수한 김씨 등의 살해암매장사건은 일단 오대양의 집단변사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끈으로 묶은채 매장/대전발굴현장 【대전=박국평·박대출·최용규기자】 자수한 김도현씨 등에 의해 살해·암매장된 「오대양」신도 노순호씨 등 4명의 사체발굴작업이 11일 하오1시55분쯤 대전시 중구 하소동 옛 오대양농장옆 무밭에서 벌어졌다. 사체발굴반은 이날 작업을 시작한지 35분만인 하오2시30분쯤 지난 86년 5월 숨진 오대양의 보모 조재선씨(당시 34세)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1구를 찾아냈다. 발굴단은 이어 하오3시45분쯤 황숙자씨(당시 43세·85년 4월사망)와 박형심씨(당시 45세·87년1월 위암으로 사망)의 유골을 발굴했으며 하오4시15분쯤 노순호씨(당시 36세·86년8월 사망)의 유골을 마지막으로 찾아냈다. 작업반은 조씨의 유골가운데 두개골 부분을 처음 발견하자 이어 손으로 나머지 부분도 조심스럽게 흙을 퍼내 찾아냈다. 흙갈색으로 변한 조씨의 유골은 북쪽을 향해 온몸을 묶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노끈과 함께 오른쪽 무릎이 세워지고 왼쪽다리는 무릎안쪽으로 비스듬히 눕혀져 있었다.
  • “가책느꼈다”지만 「의혹」증폭/「오대양」전직원들 왜갑자기 자수했나

    ◎「암장」 새 사실 스스로 밝혀 더 의문/“배후세력 협박 못이긴 도피성” 추측도 지금은 사라져버린 「오대양」의 직원 7명이 갑작스레 집단자수한 이유는 무엇일까.또 「오대양」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이들의 자수가 얼마나 도움을 줄 것인가. 김도현씨 등 당시 직원 7명의 자수는 희대의 집단변사사건의 진상을 밝혀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수동기 등에 대한 의혹만 증폭시켜 주고 있다. 지난 85년 이후 3년동안 3명의 동료직원을 살해해 암매장한 이들이 사건발생 4년만에,그것도 자신들이 살해 암매장했다는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고있던 터에 단순히 「양심의 가책」만을 이유로 한꺼번에 자수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할수 밖에 없다. 경찰은 김씨 등이 문제의 사건당시에는 구속된 상태여서 일단 집단변사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들의 자수동기및 사건관련 여부를 둘러싸고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교주 박씨의 지시에 따라 채권자 이씨를 무려 6시간동안 무차별 폭행했는가 하면 신도들을 무참히 살해 암매장할 정도로 교주에 대한 숭배가 가히 광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그뒤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오다 자신들의 광신적인 행위가 얼마나 허망했던 것인지를 뒤늦게 깨닫고 자수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4년동안이나 범행을 철저하게 은폐해오다가 오대양사건에 대한 세인의 기억이 거의 사라진 지금에서야 살인행위를 털어놓게 된데 대해서는 온갖 추측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오대양의 실질적인 실력자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어 사건의 종결을 위해 이들의 자수를 강권했을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은 「광신도들에 의한 집단자살」로 수사를 일단 종결했으나 세간에서는 좀처럼 의혹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종의 배후세력의 협박 등에 시달려온 끝에 신변안전을 위해 감옥행을 택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또 이들의 자수행위가 조작이라면 행방불명된 더 많은 신도들이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당시 교주 박씨가 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사채와 관련,모종파에의 헌금설,정치자금지원설 등이 난무했던 점도 이들의 행위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4∼6년이 지난 사건을 놓고 범행일자·시간·살해경위 등에 대해 한결같은 진술을 하고 있어 자수에 앞서 자주 만나 입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오대양사건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 노순호씨(당시·36살)를 87년 8월15일 살해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노씨는 이보다 4일 뒤인 같은달 19일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동서를 만난 것으로 당시 경찰조사결과 밝혀진 바있어 이들의 진술 자체에서도 많은 의문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