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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적인 경제청문회 되도록(사설)

    국민회의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10일 청와대 회담을 통해 정국을 정상화하고 경제구조 조정 등 경기회복에 적극 협력키로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의 첨예한 대치정국 해소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한다. 그동안 대결양상으로 일관했던 여야가 오랜만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경제회생과 민생안정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두 총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협의체 구성과 민생관련 법안의 회기내 처리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5개항의 합의사항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정치권이 당파를 초월해서 더이상 경제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국난극복의 협력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경제청문회를 여야합의에 의해 실시키로 한 것이다. 이번 여야 총재회담의 성사여부가 걸렸을 만큼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청문회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몰고 온 정책오류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러한 국난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데 초점을 모으려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외환위기를 비롯,재벌기업들의중복·과잉투자와 대외경제정책등 주요과제들을 청문회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그러나 야당측은 청문회를 통해 새삼 경제실정의 주범으로 각인되는 것을 크게 경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청문회 대상과제나 소환될 증인의 범위 등 실무적인 문제를 놓고 여야간의 이견이 불가피하고 청문회가 진행되더라도 책임공방이 심화돼 본래의 취지가 퇴색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경제청문회가 행여 또 다른 정쟁(政爭)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여야 모두 정책실패의 원인규명과 개혁의 교훈을 얻는 데 힘써야할 것임을 강조한다. 특정 개인의 비리를 캐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것이 아니라 대승적(大乘的)차원에서 건전한 국가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는 뼈저린 반성의 기회로 삼고 값진 교훈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의 경우 갖가지 원인(遠因)이 있다고는 하지만 단기적 처방이나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이미 검증이 끝난 사실임이 인식돼야 한다. 수백억달러의 경상수지적자 상태에서 외환자유화 조치를 가속화한 점이나 지난해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만을 기다리다 실기(失機)한 사실 등의 변명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생산적인 청문회로 과거의 실책을 빨리 마무리하고 경제회생을 앞당기도록 정치권에 바란다.
  • ‘역사’ 두렵거든 바른 길을/金三雄 주필(특별시론)

    수명의 사형수중에는 16세 소년도 떨며 옆에 서 있었다.“아플까요?”라고 소년이 묻자 “아니야,전혀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소년을 감싸주며 ‘프랑스만세’를 외친 마르크 블로흐는 맨 먼저 쓰러졌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역사가이며 소르본대학 교수를 지낸 58세의 블로흐는 나치병사들에 의해 이렇게 처형되었다.“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느 것인가요?”란 첫마디로 시작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역사를 위한 변명’의 저자는 독일패망을 목전에 두고 리옹 근처의 벌판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접었다. 역사란 무엇에 쓰는가,역사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효용가치란 자장면 한그릇보다 못할지 모른다.블로흐는 그 명제를 완성하지 못한채 비명에 갔지만 역사에 대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이와 관련,‘시간은 세계사의 심판관’(헤겔)이란 말은 명언이다.시간이 축적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를 쪼개면 시간이 된다.신을 믿지않고 종교를 부정하더라도 시간과 역사만은 믿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과 역사만큼 진실과 거짓,정의와 불의를 공정하게 판별해주는 심판관은 다시없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통곡도, 백이숙제의 원망도 시간이라는 역사가 모두 해결해주었다.단종의 절규와 사육신의 분노도 시간이 모두 들어주었다.천도(天道)마저 침묵한 사마천의 아픔,백이숙제의 억울함, 단종과 사육신의 피맺힌 한을 천도를 대신하여 시간이 풀어주고 역사가 옳게 평가했다. ○당대사를 보라 당장 우리시대의 당대사를 살펴보자.나라를 판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매국노와 변절자들이 ‘친일파’로 지탄받아 후손들이 조상을 원망하면서 살고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던 살인자들은 떳떳하게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반면 그들에 저항하여 몸을 던졌던 분들은 ‘민주열사’로 대접받는다.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역사가 눈멀었다고 하겠는가.아직 친일파와 양민학살 세력이 활개치고 있지만,그들은 명분과 국민의 눈총에서 점차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시간은 한국사의 심판관이기도 하다. ○대한매일의 역사관 ‘生의 권력의지’를 필생의 중심개념으로설정한 니체가 시간의 가치를 탐구한 것은 당연하다.그는 인간의 삶의 시간성을 동물의 무시간성과 구별하여 “그대곁을 지나가는 가축을 보라.저들은 내일이 무엇이고 오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고락에만 매달려 있으니 곧 그들의 순간의 일편(一片)에만 매달려 있기때문에 우수도 권태도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그러면서 니체는 인간의 숙명적 기능을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아는 것’이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시간과 역사의 가치를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권력을 탐하거나 물욕에 빠지는 사람,퇴폐행각을 즐기는 부류,곡필아세를 명예로 착각하는 지식인이 너무 많다.이런 현상은 시간 역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순간의 쾌락과 동물적 포만을 즐기려는 반시간 반역사적인 ‘인간모독’이다. 1세기전 국운이 바람앞의 촛불과 같았을 때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맡았던 선각자들은 국권수호에 온몸을 던졌다.이들은 지사적 순결주의, 도덕주의, 순교주의까지 지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거룩한 언론인들이었다.이들의 한결같음은 항일구국운동가,정론언론인,바른 역사학자라는 일체성이다.아마 이들이 믿었던 신이 있었다면 ‘역사’또는 ‘역사법칙’이 아니었을까. 당시 많은 권력자,지식인들이 시류를 좇아 매국의 대열에 설때 이들 선각들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역사의 대열에 섰던 것이다.白凡의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역사법칙의 준거라 할 것이다. 역사를 흔히 대하장강(大河長江)에 비유하지만,역사는 모든 오물을 받아들여 스스로 썩는 강물과는 다르다.역사란 받아들일 것은 받고 배척할 것은 배척하면서 종국에는 반드시 바르고 옳게 회귀하는 것이 역사,그 대하장강의 법칙이고 엄숙성이다. ‘역사’가,그 평가가 두렵거든 진실과 정도를 걸으라.이는 바로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역사관이며 마르크 블로흐가 꿈꾸었던 ‘역사의 쓰임새’이기도 하다.
  • 서울신문 영욕의 53년 나래 접으며

    ◎솔직한 참회 재탄생 초석으로 정론 벗어났던 일 냉혹히 자성/날카로운 시선·질책 겸허히 수용 서울신문이 지령 16851호,1998년 11월10일자를 마지막으로 영욕 53년의 나래를 접습니다. 11일자로 우리의 뿌리,자랑스런 항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수십만 독자와 함께 해온 서울신문 반세기를 마감하며 지난날의 정도(正道)를 벗어났던 일들에 대해 냉혹한 자기반성을 하고자 합니다. 시대에 따라 국민과 독자의 애증(愛憎)이 교차되는 시선 속에 우리 서울신문 가족들은 땀과 눈물로 서울신문을 가꾸고 키워왔습니다. 53년의 연륜을 지닌 서울신문 제호를 새시대 역사의 흐름 속으로 띄워보내며 회한(悔恨)이 서리지 않을리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6·25전란(戰亂) 가운데서도 진중신문을 발행하여 국민들에게 전황을 알려주는 사명감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고 약자를 부축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에도 힘썼습니다. 환경지키기에 앞장서고 농촌경제 발전을 지원했습니다. 한글 전용신문 발행과학자·문필가·예술가 지원 등 민족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강한 사회면,격조높은 문화면으로 언론계의 선두에 서기도 했습니다. 자본에 휘둘리거나 상업적 사익(社益)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우선하는 논조,센세이셔널리즘에 흐르지 않는 품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결코 스스로에게 관대(寬大)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울신문 구성원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거나 소유구조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등의 변명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설령 열을 잘했다고 해도 하나의 잘못이 그대로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성의 아픔이 클수록 재탄생하는 대한매일의 정론(正論)을 향하는 발걸음이 곧고 굳건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유당 정권의 나팔수로 검은 것을 희다고,흰 것을 검다고 한 부분에 대한 응징으로 4·19 민주혁명 당시 사옥이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며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세월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며 참회하고자 합니다. 한 세기 한국언론사에 이토록 진솔하게 과거의 잘못을 고해(告解)한 언론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극적 식민지 역사 속에,그리고 권력의 부침(浮沈)속에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생존술과 상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해오며 민주언론의 선봉을 자처하는 사례가 없지 않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참회를 재탄생하는 대한매일 앞날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합니다. 언론의 본분을 지키는 데 피와 땀을 흘림으로써 과거의 잘못들을 속죄코자 합니다. 서울신문은 이미 공익정론지 대한매일로서의 변신을 시작했습니다. 재경부 포항제철 한국방송공사가 대주주인 소유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작과 경영에 일절 간여치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노사(勞使)합의라는 공정보도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우리의 이같은 처절한 자성과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익(公益)정론지 대한매일로 재탄생할 것임을 국민과 독자앞에 다짐합니다. 날카로운 시선과 애정의 질책으로 대한매일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대한매일 노사 공동선언문 노조와 회사는 편집권을 존중한다. 회사는 편집권의 독립성을 침해 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기자는 언론의 정도(正道)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反)한 기사를 쓰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기자는 공정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사는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점에 합의한다. 1.편집권은 회사의 사시(社是)와 독자의 알 권리에 반하는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다. 2.노조와 회사는 외부로부터의 지면제작 개입을 배제한다. 3.회사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없는 편파적인 취재와 보도를 지시할 수 없다. 4.취재기자는 자신이 취재해 보도한 내용이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 됐을 때에는 데스크,편집자,국장단에 시청을 요구할 수 있다. 5.언론 자유를 위협사는 사태가 생기면 노사는 합심해서 이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6.회사는 기자에 대해 회사의 영업 및 수익활동 등 본연의 업무와는 직접관련없는 일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영업 및 수익활동 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7.노사는 이상의 내용을 성실하고도 적극적으로 지킨다. 1988년 10월19일 ◎남긴 功/재벌 비판·신문말 다듬기 성과/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 결집/문화예술 활동 전폭 지원 서울신문이 진취적으로 남보다 앞서 계획하고 이루어낸 업적은 적지 않다. 특히 한글 전용과 신문말 다듬기를 연구하고 실천한 것은 한국 신문사상 선구적인 것이다. 19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부분적으로 냈던 서울신문은 23돌 창간기념일인 68년 11월22일부터는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썼다. 70년 2월14일 ‘신문말다듬기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신설했다. 위원회에는 국어학자와 문인 등 7명의 심의위원을 두어 신문말을 다듬거나 새로 만들었다. 심의위원은 정인승 허웅 한갑수 李應百 朴木月 柳周鉉 정재도씨였다. 신문 제작 방침이 수정돼 74년 1월4일 종전 체제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귀중한 성과를 남겼다. 위원회가 정리한 낱말은 1,600여개에이르며 71년 6월28일까지 33회에 걸쳐 지면에 연재됐다. 이때 만든 새 말 가운데 ‘사재기’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이 많다. 요즘 신문들의 한글 전용 편집에도 긴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가 낸 ‘韓國新聞協會二十年’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서울신문이 힘쓴 이 말다듬기의 성과는 모든 신문의 신문제작현장 종사자들에게 많은 준용과 새로운 대응어를 발굴,사용해 나가게 하는 기폭제 구실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신문은 상업주의와 선정주의(煽情主義)에 휩쓸리지 않고 공익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재벌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비판하는 데 과감했다. 재벌에 약한 여느 신문과는 달랐다. 지난 10월9일과 10일 부산 동아대에서 열린 언론정보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박용원씨(동아대 신방과 석사과정)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재벌을 가장 많이 비판한 신문이다. 상업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서울신문은 과장,억지윤색,냄비열정의 폐풍을 벗어나 침착하게 보도하는 전통을 세웠다. 서울신문을 매개로해 수행된 공익사업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서울 세종로 한복판의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서울신문이 애국선열조상건립워원회를 조직하여 성금을 모아 세웠다. 서울신문사 주도로 1966년부터 72년까지 세운 애국선열의 동상은 15기에 이른다. 서울신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신각종도 서울신문의 노력으로 새해를 여는 울림을 계속하게 되었다. 금이 간 원래의 종을 대신할 새 종을 서울신문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보도와 행사 개최를 통해 어느 신문보다도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열성적이었으며 농어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서울신문이 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를 결집하고 국력을 집중하도록 하는 데에 큰 힘을 보탰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서울신문 53년의 공이 전적으로 무시될 수는 없다. ◎끼친 過/절대권력 정당화·비호로 점철/10월 유신 지지·군부정권 미화 급급/4·19혁명때 태평로 사옥 불타기도 대한매일로 새롭게 태어나는 서울신문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뼈아픈 족적을 남겼다. 1960년 4월19일 오후 2시. 성난 데모대는 태평로 사옥 앞으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먼저 취재차량에 불을 질렀고 이어 윤전실로 들이닥쳐 다시 불을 질렀다.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에 번졌다. 곧바로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데모대원들이 물탱크차를 빼앗아 다른 곳으로 몰고 사라져 버렸다. 자유당 李承晩 독재권력을 비호한 관제언론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최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선정한 한국언론의 대표적인 왜곡보도사례 50건 가운데는 서울신문의 보도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자유당 4捨5入 개헌 정당화(56년),10월 유신 지지(72년),全斗煥 권력 장악 정당화와 미화(81년),4·13 호헌(護憲)조치 옹호(87년) 등이다. 절대권력의 정당화에 앞장서고 민주화를 외면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언론의 선두로 꼽혀왔다.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된 서울신문의 이미지는 항상 권력의 편에서 당시의 권력자를 옹호하는 전위대였다. 10월 유신때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와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해바라기 지식인’을 동원,유신대통령의 선출을 정당화하는 글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10·26사태후 80년 ‘서울의 봄’에 이르는 이른바 안개정국 시절엔 신군부 등장의 역사적 필연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5공의 全斗煥정권이 등장하자 “동천의 붉은 해가 불끈 솟았다.‥‥‥”며 그를 찬미하는 연재물을 게재했다.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도 “북괴방송,광주사태 집중적 선동” “광주시위 선동 남파간첩 검거” “공포의 유혈 무법천지” 등으로 ‘대공(對共)’문제와 ‘파괴성’을 권력의 편에 서서 부각시켰다. 해방후 53년에 걸쳐 점철되어온 서울신문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일관된 허물은 ‘권력의 대변지’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나온 시대는 역대 독재권력이 한국전쟁 이후 가열된 냉전시대의 안보논리를 그들의 체제유지논리로 위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시대를 같이 한 한국 제도권 언론의 곡필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울신문이 적어도 이같은 독재권력을 지지하는 선두에 섰다는 사실이다. 서울신문이 언론의 본분을 벗어났던 대목은 이밖에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정치문제에서 집권여당의 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고 상대적으로 야당의 입장을 폄하하는 지면을 제작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판도 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심도있게 보도한다는 취지를 왜곡하여 절대권력자의 일방적인 논리를 전파하는 데만 급급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제 대한매일은 서울신문의 지나온 역사를 깊이 자성하면서 철저한 자기비판을 토대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
  • 노인 울리는 단풍관광/걸음 느린 할머니 5명

    ◎산에 남겨 놓고 車 출발/차 떠난뒤 지리산서 일행에 돈 빌어 서울 도착/“효도관광이 고려장관광 될뻔” 피해 가족 분통 지난 3일 삼천리산악회(서울 관악구 신림동)를 통해 지리산에 단풍관광을 갔던 金南姬 할머니(71·여·관악구 봉천3동 관악아파트 122동 904호)는 산악회의 횡포에 분통을 터뜨렸다. 산악회에서 동원한 차세대관광의 버스가 산에서 조금 늦게 내려온 金할머니 등 노인 5명을 남겨두고 서울로 출발해버렸던 것이다.출발하지 않은 같은 산악회의 다른 전세버스에 동승하려 했지만 “타고 온 버스가 뒤에 있을 지도 모르니 찾아보라”며 태워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출발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1시간 가량을 헤맨 끝에 택시를 잡아 구례까지 간 뒤 기차로 갈아탄 끝에 4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용돈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던 金할머니는 일행에게 돈을 빌려 ‘미아’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金할머니는 “새벽 5시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버스가 정원을 초과해 선채로 내려간 사람도 많았다”면서 “산악회와 여행사에 항의하러갔지만 사과보다는 책임을 떠넘기는데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金할머니는 회비 1만원을 내고 여행길에 올랐다.출발할 때 전세버스는 모두 11대.점심은 싸 갔다.차량이 많다보니 산악회의 직원은 버스마다 배치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달 동네 주민들과 함께 설악산에 1박2일로 단풍관광을 다녀온 金모씨(45·경기 수원시 권선동)는 여행사에서 잡아준 숙소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金씨는 “당초 계약내용에는 1급 호텔에서 자기로 돼 있었으나 침대도 없는 허름한 방에서 숙박했다”면서 “여행사에 항의를 했지만 연휴라 방을 잡지 못했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단풍철을 맞아 상당수 관광객들이 여행사의 삐뚤어진 상술로 피해를 보고 있다.여행사들이 관광일정을 멋대로 바꾸거나 축소하고 관광버스의 정원 초과,추가 요금 강요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YMCA 시민중계실 간사 金宗男씨(33)는 “여행 전에 미리 상품의 내역을 꼼꼼히 살피고 숙박비,식사비,입장료 등 명세서를 제시받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서 “추가비용 요구 및 계약불이행 등의 피해는 소비자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친일의 군상:11/여자 밀정 裵貞子(정직한 역사 되찾기)

    ◎伊藤博文의 꼭두각시로 매국·배족 선봉에/1885년 도일… 이등박문 만나 ‘스파이 교육’ 받아/러 견제·고종퇴우 막후활동… 만주지역서 독립운동가 탄압/태평양전쟁때 韓人 부녀자 100여명 위안부로 내몰아/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된뒤 후회의 눈물/시골 아전의 딸로 출생 대원군 실각후 집안 몰락/어릴때부터 조정에 반감/한때 官妓여승으로 전전 1949년 2월 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姜明珪 조사관 일행이 서울 성북동 언덕길을 급히 오르고 있었다. 한 양옥집 앞에 다다른 姜조사관 일행은 백발의 한 노파를 끌어내 수갑을 채우고 남대문로 반민특위 사무실로 연행했다. 그 노파의 나이 79세. 겉으로 보기엔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가 반민특위로 잡혀오자 특위 요원들이 이 노파의 얼굴을 보려고 姜조사관 주위로 모여들었다.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그 나이에 수갑에 채워져 끌려왔을까? 과연 이 노파는 누구인가? 裵貞子(1870∼1952). 흔히 이름 앞에 ‘요화(妖花)’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배정자가바로 그 노파였다. 정사(正史)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한국근대사의 이면사(裏面史)에 ‘일제의 앞잡이’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배정자급(級)에 드는 친일파는 몇 안된다. 한말 일제의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협조하였고 ‘한일병합’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조선인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었다. 친일파 가운데 우두머리급에 드는 친일파였다. 해방후 반민법 위반으로 반민특위에 잡혀온 여성피의자는 총 6명. 그들중 첫번째로 잡혀온 사람이 바로 배정자였다. 흔히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마타 하리’를 든다. 고급창녀 출신의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1917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배정자를 바로 이 ‘마타 하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정자는 1870년 경남 김해 고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던 裵祉洪의 딸로 태어났다. 아명은 분남(粉男). 부친은 1873년 대원군 실각후 그 졸당(卒黨)으로 몰려 대구 감영에서 처형되었다. 모친은 이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렸다. 그가 세살때의 일이었으니 그의 초년은 순탄치 못했다. 이후 그는 모친과 함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밀양에서 관기(官妓)로 팔렸으나 도중에 뛰쳐나와 양산 통도사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우담(藕潭)이란 승명(僧名)으로 목탁을 두들기던 그는 2년만에 다시 절을 뛰쳐나와 배회하다가 밀양 관청에 체포됐다. 여기서 우연히 은인을 만났다. 당시 밀양 부사 鄭秉夏는 그의 부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로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일본으로 가서 살도록 주선해주었다. 1885년 15세 되던 해 그는 일본인 밀정 마쓰오(松尾彦之助)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에게 뜻밖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배정자는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개화파 인사 安경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金玉均과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물굽이를 틀어준 사람은 바로 이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은 당시 일본 정계의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의 빼어난 미모에 끌린 이토는 하녀 겸 양녀로 자기 집안에들여앉히고 ‘다야마 데이코(田山貞子)’라는 일본이름을 지어주었다. 裵貞子의 ‘貞子’는 여기서 생겨났다. 이토는 재색(才色)을 겸비한 그를 장차 고급 밀정(스파이)으로 키울 요량으로 수영·승마·사격술·변장술 등을 가르쳤다. 소위 ‘밀봉교육’을 시킨 셈이다. 일본으로 간지 9년만인 1894년 배정자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는 신임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하야시(林權助)의 통역이었으나 본분은 일제의 밀정. 첫 임무는 당시 조선황실 내의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공사관에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엄비(嚴妃·고종의 계비)의 친인척을 통해 황실과 선을 댔다. 고종(高宗)은 미모에다 출중한 일본어 실력을 갖춘 그를 총애하였다. 당시 한 신하가 고종에게 “비기(秘記)에 가로되,갓 쓴 여자가 갓 쓴 문(門)으로 출입하면 국운이 쇠한다 하였습니다. 통촉하옵소서”라고 아뢴 바 있다. 양장에 모자(갓)를 쓴 그가 대안문(大安門·덕수궁의 정문으로 현재 명칭은 ‘大漢門’임)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러일전쟁 직전 친러파는 고종의 신변안전을 위해 ▲평양 천도 혹은 ▲고종의 블라디보스토크 천거(遷居)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비밀이 누설돼 일본측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이 정보를 빼내 일본공사관에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배정자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3월 이토가 초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자 배정자는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빠 裵國泰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으로,동생은 경무감독관(현 경찰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토를 등에 업은 그는 밀정이자 막후 권력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일제와 함께 고종에게 퇴위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기세는 1909년 이토가 통감자리에서 물러나고(6월) 다시 4개월 뒤 하얼삔에서 安重根 의사에게 살해됨(10월26일)으로써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토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은 ‘한일병합’후 부임한 조선주둔 헌병사령관 아카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는 배정자의 과거 밀정경력을 높이 평가하여 헌병대 촉탁으로 채용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그는 일본군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는 이 지역에서 수년간 군사첩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봉천(奉天·현 瀋陽)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만주지역 거주 조선인들의 동향을 정탐,귀순공작을 담당했었다. 배정자는 1920년 일제가 옛 일진회(一進會)의 잔당들을 규합,만주지역 최대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창설할 때 배후인물로도 활동하였으며 나중에 이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이 단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 탄압과 체포를 위해 조직한 무장 첩보단체로,초대회장 崔晶圭는 대한제국 시절 참위(소위)출신이었다. 매국노 李容九의 한일합방 청원을 지지했던 崔는 보민회에서 활동한 공로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한편 만주지역에서의 맹활약(?)으로 독립투사 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하자 배정자는 1922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가 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가 경무국 촉탁으로 다시 고용하였다. 나중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600여평의 토지를 받기도 했는데 은퇴한 뒤에도 총독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군 위안부 송출업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70 노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여성 100여명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가서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강요하였다. 해방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취재차 형무소를 찾은 한 기자에게 그는 “따끈한 장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애걸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정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고 한낱 늙은 죄수의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제와서 전비(前非)를 어찌 변명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신대도 달게 받고 가겠습니다. 다만 제 아들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뒤늦게 자신의 죄과를 후회했다. 배정자의 형량과 얼마동안 징역을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죽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종로구청에 보관돼 있는 호적에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2월27일 서울 성북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묘하게도 그가 죽은 날짜는 그의 출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어릴 때 조정(朝廷)에 대한 증오 때문에 조국을 배반,매국녀(賣國女)가 된 배정자는 해방후 조국에서 8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裵貞子의 남성편력/빼어난 미모에 화려한 경력 소유/결혼·동거 등 거쳐간 남자 7∼8명 裵貞子는 빼어난 미모와 화려한 경력에다 연령·민족을 불문한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남자’는 田在植. 한 때 관기로 있을 때 대구 중군(中軍) 田道後의 아들 전재식을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 배정자의 일본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전재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재회,결혼했다. 이 사이에서 田有和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경응의숙(慶應義塾)에재학중이던 전재식이 병사하자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났다. 두번째 남편은 일본공사관의 조선어 교사였던 玄暎運. 1895년 당시 외부(外部·현 외무부) 번역관(주임관 6등)이던 현영운은 배정자의 도움으로 10년만에 육군 참장(종2품·현 준장)으로 승진,농공상부 협판(차관)직을 맡았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1년 가까이 살다가 이혼하였다. 그리고는 현영운의 후배인 朴榮喆(일본육사 15기 졸업,함북도지사·중추원 참의 역임)과 결혼하여 5년간 동거하다가 또 이혼하였다. 이후 일본인 오하시(大橋),은행원 崔모,전라도 갑부 趙모,대구 부호의 2세 鄭모 등과도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대륙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중국인 마적 두목과 동거한 적도 있다. 1924년 57세로 밀정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25세의 일본인 순사와 동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정무위/國監 하이라이트

    ◎퇴출 5개은 불법대출 등 추궁/전 은행장 5명 “부실이유 IMF탓”/대출과정 외압여부 대부분 부인 29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5개 퇴출은행의 선정기준과 부실경영의 책임이 도마위에 올랐다.의원들은 5개 퇴출은행장 등 임직원 19명을 출석시킨 가운데 부적격 업체와 부실 자회사로의 불법대출과 대출과정에서의 외압 여부 등을 추궁했으나 이들 은행장은 대부분 부인했다. 전직 은행장들은 금감위와 은행감독원의 퇴출결정에 이의를 달지는 않았으나 회계기준이 은감원 기준에서 4월 들어 국제기준을 갑자기 적용한 데에는 아쉬움을 표명했다.이들은 부실의 이유를 IMF 체제로 돌렸으며 부실 자회사로의 대출은 금융시스템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변명했다. 한나라당 李思哲 의원은 “금감위가 전직 은행장들을 불법·편법 대출에 따른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지했는데 인정하느냐”고 물었으며 徐利錫 전 경기은행장 등은 “불법대출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IMF 체제 이후 경기침체와 환차손 등으로 대출이 부실해졌다”고 말했다.許翰道 전 동남은행장과 李在鎭 전 동화은행장은 “자회사인 리스사에 대출해 준 것은 리스사가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유동성을 지원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李麟求 의원은 “퇴출은행에 공적자금을 지원했으면 정상화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유도성’ 질의를 했으며 崔東烈 전 충청,許翰道 전 동남은행장은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정상화의 길이 있었을 것이고 회계 기준 변경에 시간을 줬으면 BIS 비율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퇴출은행 신탁상품의 이면계약은 당사자인 고객과 금융기관의 문제로 정부가 해결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다만 퇴출은행이 책임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있으면 청산시 고객의 재산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국민회의 보안의식 허와 실/柳敏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국민회의 정책위원회가 이사중이다.여의도 중앙당사 이웃 극동VIP빌딩 4층에 입주한다.국민신당이 쓰던 곳이다.이사 이유는 ‘보안유지’.그동안 언론에‘원치 않는’ 문서유출이 적지 않았다고 국민회의측은 지적한다. 270평 남짓한 4층을 동·서로 구분,동쪽은 정책위의장 등 정책위 간부가, 서쪽은 전문위원들이 쓴다.단 전문위원실쪽은 철제문에다 ‘통제구역’으로 설정,전자식 식별장치인 보안카드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게 돼있다. 국민회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미처 익지도 않은 여당의 정책이 무차별로 새나오는 것이 작은 문제는 아니다.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기사화돼 당 이미지가 국내외적으로 실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위의 ‘철통보안’에 앞서 몇가지 지적해둘 게 있다.우선 정부 정책과는 달리 당 정책은 폐쇄성보다는 공개적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가급적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1차 여과를 거치는 것이 당의 정책이다.이번 ‘철통보안’조치가 행여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막아 ‘밀실정책’을 양산할 수도 있다.‘서류보안’을 철저히 하더라도 여론수렴자에게는 폐쇄적이지 않아야 할 의무가 당에 있다고 본다.언론유출 여부는 정책의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국민회의측이 서구식의 ‘사안별 브리핑제’를 활성화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여기에는 몇가지 함정이 있다.몇가지 전제도 요구된다. 브리핑을 한다면 일방적 정부 주장이나 입장만을 서둘러 발표하고 끝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이런 상황에서 기자출입을 봉쇄하고 브리핑만 한다는 것은 당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골라 알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더욱이 누가 뭘 브리핑할 것인가도 불투명하다.국민회의에는 부대변인만 7명에 이른다.그러나 정책 전문성을 갖고 브리핑에 나설 정책담당 부대변인은 없다. 브리핑을 하더라도 비교적 솔직하고 정확한 브리핑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동안 몇몇 언론과 마찰이 생기고 나면 당측은 뒤늦게 변명에 나서 말을 조금씩 바꾸는 일이 많았다.국민회의가 ‘철통보안’에 신경쓰는 만큼 정책의 품질에도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한다.
  • 총격요청 수사결과­발표문 요지

    ◎배후 등 공범 수사/한씨 “이회성씨에 보고” 진술 번복/피의자 3인 “총격요청 했지만 보고는 안했다” ▲수사배경=한성기가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이회성에게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 5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에게도 사전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오정은 한성기등이 이회창 후보 당선 시공을 인정받아 대가를 얻을 목적으로 범행에 이른점에 비추어 볼 때 추진 상황을 사전에 이후보 진영에 보고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돼 이회성 장진호 오정은의 비선조직과 통일부 안기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배후 및 공범관계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 후보 지시’ 아직 못밝혀 ▲이회창 후보 수사 결과=오정은은 97년 10월 한성기로부터 진로의 부동산 매각과 화의신청을 도와주면 장진호가 박찬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박찬종을 이후보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비서관과 민정비서관에게 부탁했다.11월 하순 한성기와 함께 이후보의 승용차에 동승,박찬종 고문 자택까지 안내해 이후보와 박고문의 회동을주선하는 등 이후보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 피의자 등이 모두 이후보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을 지시받거나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어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이후보가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회성 관련 의혹=이회성은 대선기간동안 조선호텔 객실에서 한성기를 1회 만난 것은 사실이나 10여분 동안 선거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무력 시위 요청 내용에 대해 사전 사후에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변명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에서는 97년 11월 하순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이런 식으로 가면 대선에 절대 불리할 것 같다.4·11 총선과 같이 북풍을 일으켜 대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했고 12월 다시 만나 “북경에 가서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그러나 검찰에서는 그 진술을 번복했다. 결론적으로 한성기와 이회성이 단둘이 은밀히 만났다면 한성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출국전에 무력 시위를 요청할계획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국전 계획보고 가능성 또 한성기는 12월8일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북풍 요청 사실을 말하려고 했으나 사람이 많아 말을 다하지 못했고 이회성의 지시에 따라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을 만나 “북경으로 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 무력시위를 요청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한성기가 중국 출국전에 이회성을 만나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보고했을 의심이 가므로 보고 여부에 관해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시 이회성고문에게 무력 시위 요청 사건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번복했다.이회성도 자금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진위에 관해서는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장진호씨가 자금 지원 ▲장진호 관련 의혹=장진호는 97년 10월 한성기 오정은으로부터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비선 조직을 결성할 계획이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7,000만원을 지원했으며 12월 초순에는 한성기의 북한 주민접촉 신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 주고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은 점이 확인됐다.장진호는 안기부 조사시 97년 12월초 한성기로부터 “12월10일쯤 북경을 방문해 북한측에 모종의 부탁을 하려 하는데 앞으로 휴전선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했다.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장진호가 무력 시위 요청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을 개연성이 있으나 장진호가 한성기 등에게 무력 시위를 요청하도록 지시했거나 자금 지원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향후 수사 계획=피의자들은 검찰 송치후 배후 관련 부분을 제외한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으나 사건이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과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 자백을 번복하고 배후를 부인하고 있어 계속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 ◎범행 동기/이회창 후보 당선땐 승진·채무변제 등 기대 26일 검찰이 발표한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吳靜恩張錫重은 94년 현대종합상사 부장인 吳모씨의 소개로 알게된 뒤 吳靜恩은 張錫重의 대북 무역업에 관한 편의를 봐주고,張錫重은 북한관련 정보를 吳靜恩에게 제공했다.韓成基와 吳靜恩은 97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吳靜恩은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金泳三대통령 퇴임후의 신분유지에 불안을 느껴 韓成基와 함께 李會昌 후보 선거운동을 위한 비선조직을 구성키로 합의했다.한성기와 오정은은 97년 10월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비선조직 운영자금 7,000만원을 제공받아 2,000만원은 韓成基가,5,000만원은 吳靜恩이 조직운영비로 사용했다. 피의자들은 대선 기간중 吳靜恩 韓成基가 李會昌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이에 따라 張錫重이 97년 10월16일 북의 아세아 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고 추진하던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대가로 북한측에 96년 4·11 총선 직전에 발생한 판문점 무력시위와 같은총격전 등을 요청하여 보수세력의 지지를 결집시켜 李후보의 지지율을 제고키로 했다. 李후보가 당선될 경우 오정은은 청와대 별정직 3급 공무원으로서 현직 유지가 가능하고 승진 또는 출신지역에서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성기는 안기부장 특보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석중은 대북사업 중 발생한 현대측에 대한 2억원의 채무변제 유예가 가능하고 앞으로 오정은 등을 배경으로 원활한 대북사업을 할 수 있는 등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와 같이 개인적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국기를 위협하는 판문점 총격요청 범행에까지 이르게 됐다. ◎총격요청 공모/“선거 이틀전 터트리면 야당서도 대응 못할것” 장석중은 북한에 농업용 자재를 제공하고 농산물을 받아오는 계약재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북대 김순권박사의 방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부탁했다.장석중이 현대에 대한 채무 2억원을 변제하지 못하고 담보물건에 대한 경매를 통보받는 상황에 이르러 오정은에게 그 해결을 부탁하자 오정은은 정·재계에 지면이 넓은 한성기를 장석중에게 소개했다. 오정은의 소개로 한성기 장석중이 만나 김박사의 방북을 고리로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장석중의 현대에 대한 채무를 연기받는 방안을 논의하던중 오정은이 북한에 김박사를 보내면 장석중의 사업뿐 아니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 아니냐고 제의했다. 이후 97년 11월 하순 오정은과 한성기가 만나 李후보 지지율 문제를 논의하다가 한성기가 국민회의 공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선 총격전인데 시시한 것 갖고는 안되고 한번 ‘쾅’하고 크게 터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오정은은 만약 그런 사건을 일으키면 오히려 여당이 덮어쓸 가능성이 많다고 하자 한성기는 선거에 임박해 이틀 정도 하면 야당이 대응할 여유가 없다면서 내가 북경에 가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97년 11월말경 삼청동 오복집에서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이 만났다.이 자리에서 한성기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4·11총선 때처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가 있어야 하며 홍보가 중요하므로 사전에 북측과 약속된 지점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여 북측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내려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찍어 방영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장석중이 그런 문제는 자신있다며 북한측과 한성기를 만나도록 주선해주겠다고 했다.또 장석중이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 일정을 책임져 달라고 하자 오정은은 챙겨보겠다고 약속했다. 오정은은 통일원에서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얻어내고 장석중은 한성기를 북경으로 안내하여 북측인물과 접촉을 주선하며,한성기는 북측인사들을 만나 대선 직전 북한군의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97년 12월 초순 장석중이 북경 방문시 대선문제 등을 논의할 목적으로 북경 주재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협력처장 리철운에게 전화하여 한성기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김박사의 방북건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니 대선관련 요청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97년 12월9일 삼청동 오복집에서 3인이 만나 무력시위 요청에 관한 북한측과의 접촉상황 등을 최종점검하면서 만약 공안기관에 노출되면 김박사의 방북 등 남북교류 부분에만 목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자고 약속했다. ◎권영해씨 직무유기/사건내용 알고도 자료인계 안해 권전안기부장은 97년 12월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북측이 휴전선에 1개 소대를 보내 무력 시위를 일으키거나 김대중 후보의 친북활동 자료를 제공하여 주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언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이대성은 12월12일 중국에서 귀국하는 한성기를 김포공항에서 임의동행해 조사한 결과 한성기는 부인했으나 소지품 등을 통해 첩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이대성은 권영해에게 한성기 조사 결과와 동행한 장석중이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권영해의 별도 지시가 없자 한성기를 석방했다. 권전안기부장은 첩보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해 한성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특정 후보의지지율 제고를 위해 북과 내통해 휴전선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했다.그런데도 대공수사실로 관련 첩보 및 증거물을 이첩하여 수사토록 하지 않고 퇴임시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의 암장을 기도,이후보의 당선을 음성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장석중씨 사전인지 의혹 권영해는 범행의 동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해 은폐하려한 점에 비춰 피의자에게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그 동기를 추단해 볼 수 있다.권은 자신의 조사 지시로 범행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권 교체후 새 안기부 수사팀에 본건 관련 자료를 공식 인계한 사실도 없을 뿐 아니라 부장의 지시가 없을 경우 수사 부서로 이첩되지 않아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범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 후보당선 음성적 지원 특히 안기부에서 공작원인 장석중 등이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유는 12월12일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서 조사받은 한성기가 다음날 북경에있는 장석중에게 안기부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렸음에도 장석중이 상급자 공작관에게 이실직고하지 않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총격요청 경과/북 박충 만나 무력시위 부탁/“평양에 알아보겠다” 답변 97년 12월10일 오후 장석중 한성기가 중국 북경에 도착해 캠핀스키 호텔에 투숙했다. ▲1차 접촉=12월10일 오후 6시 한성기의 호텔 방에서 장석중의 전화를 받고 찾아온 북한 대외경제위 소속 리철운과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장석중은 한성기와 같이 북경에 온 목적은 첫째 김순권 박사 옥수수 계약재배건이며,둘째는 대선에 관한 특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리철운이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묻자 한성기는 김대중 후보의 친북자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 자료가 있으면 부탁한다고 말했다.또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람과의 회담 주선을 부탁했다. ▲2차 접촉=같은 날 오후 8시 캠핀스키 호텔 다방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북한의 리철운 김영수,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라고 소개한 박충이 만났다.한성기는 이 자리에서 현재 대선상황은 전쟁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이회창 후보 특보 자격으로 북한에 왔다고 밝혔다.또 박충에게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을 들어달라고 요청,박충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다는 답변을 들었다.이어 한성기는 박충과 따로 만나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하여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했다.또 요청을 들어주면 김박사를 북한에 보내주고 신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대가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박충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평양에 전문을 보내 출국하기 전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3차 접촉=12월11일 오전 11시쯤 캠핀스키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리철운 김영수 등이 만나 계약재배건 등 대북사업계획을 논의했다. ▲4차 접촉=12월12일 오전 8시30분쯤 같은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이 북한의 박충 리철운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박충은 한성기가 말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으나 회답이 없다고 전했다.박충은 또 지금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통보를 했다. ◎결론/적과 내통 긴장 조성/자유민주주의 뒤흔든 사건 ▲사건의 성격=이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제15대 대선중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인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과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 등이 재벌의 자금지원으로 비선조직을 가동,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측인물과 내통,판문점에서의 총격까지 요청,국가의 안녕과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뒤흔드는 가증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져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특수직무유기 사건’은 국가최고정보기관의장이 총격요청사건을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아 대공정보·수사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또 하나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대선기간 중 일어난 ‘북풍’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검찰의 입장=‘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적과 내통해 긴장을 조성,보수계층을 결집시켜 대선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기도한 것으로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건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엄정하게 사법처리 했다. 관련자들은 소속 정당,신분,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배후관계 등과 관련,의심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증거법상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하였다. ▲향후 수사계획=북한과 관련된 사항이 많고,피의자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감정절차,구속적부심 절차와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들과 접견한 뒤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배후관계 등에 강한 의혹이 있음에도 수사 애로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고 증거법상의 제약으로 기소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혐의자들에 대한 공모,자금 지원 여부 ▲김순권 박사의 방북카드를 대가로 무력시위 요청 경위 ▲권영해의 특수직무유기행위와 정치권과의 연관관계 ▲판문점 총격요청을 전후한 한성기,장진호,이회성 등의 접촉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 아울러,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가혹행위여부에 대해서도 인권옹호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겠다.
  • 재계 ‘실행계획’ 마련 고심/재계·공정위·금감위 반응

    ◎5대 그룹 업종단위 재분류가 가장 큰 과제/금감위,“우량기업 지급보증 해소 대가 없다” 정부가 5대 그룹의 이(異)업종간 상호 지급보증을 연내 모두 없애도록 촉구하자 재계는 그 배경을 분석하면서 실행계획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그러나 당국은 업종분류에 명쾌한 해석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5대 그룹의 지급보증 규모가 크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전경련은 다음주 초 5대그룹 구조조정담당 실무자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협의할 예정. 재계는 그러나 5대 그룹의 상호 지급보증이 회사단위로 발생하고 있어 이를 업종단위로 재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응들.예컨대 (주)대우에는 무역과 건설이,삼성물산은 무역과 건설·유통·의류부문 등 산업연관표상에 동일업종으로 볼 수 없는 사업이 혼재돼 있다.빚보증이 사업부문별이 아니라 법인명의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문제라는 얘기다. 또 이업종간의 빚보증을 동일업종간 빚보증으로 맞교환하는 것이 허용될 경우 우량계열사의 보증을 받아둔 A은행과부실계열사의 보증을 받은 B은행이 맞교환에 응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것.때문에 올해안에 이업종간 지급보증 해소가 가능하려면 금융권이 움직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업종간 상호 지급보증 해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종 업종의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통계청이 91년에 발간한 표준산업분류를 기준으로 할 경우 관련 업종과 이종 업종의 분류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입장.실제 표준산업분류의 경우 대분류,중분류,소분류,세분류,세세분류로 업종을 나누고 있다.예를 들어 농업·임업을 1개의 업종으로 대분류해놓고 축산업을 중분류하는 식이다. 대분류가 17가지,중분류 95가지,소분류 259가지,세분류 627가지,세세분류가 2,243가지에 달한다.이 분류법에 따르더라도 서로 연관성이 있는 업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자의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실무관계자들은 금감위가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일언반구 의논도 없이 발표한 데 불만을 표시. ○…금융감독위원회는 5대 그룹이 이업종간 상호 지급보증 해소에 의문을 제기하며 어려움을 표명하는 것은 당근(출자전환)은 챙기고 채찍(상호지보 해소)은 피하려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한마디. 금감위는 곧 채권금융기관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것이며 기본적으로 우량기업 지급보증은 대가없이 해소하되 다른 기업은 시장가치에 따라 지급보증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만 설명.
  • “정책집행 되는게 없다”강한 질책/金 대통령 경제대책회의서 지적

    ◎경기부양 불구 돈줄 꽉막혀/실업대책 효과 체감도 낮아 金大中 대통령이 20일 대노(大怒)했다.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였다.“대통령 취임 이후 이처럼 강하게 질책한 것은 처음”이라는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의 전언이다.金대통령이 질책한 이유는 은행은 은행대로,정부 재정은 재정대로 돈과 실업예산이 있는데,현장에선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문제점 때문이었다. 金대통령은 “집권후 우리는 외환위기 극복 등 많은 일을 했으나 주로 외국의 도움 덕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수출증대보다는 수입감소로 경상수지 흑자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우리가 노력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고 질타한 金대통령은 미국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가국,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사례를 열거했다.이어 “도대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며,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질책을 계속했다. 정부의 경제부양책에 대해서도 나무랐다.“경기회복을 위해 재정·금융의 유동성을 늘렸고,소비자 금융은 물론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도 해주도록 요구했으며,국영기업체에는 모든 발주를 서두르라고 지시했으나 나타난 게 뭐가 있느냐”고 지적했다.공기업부문도 국내·외적으로 개혁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톤을 높였다. 특히 장관들에게 “금리인하,엔고 등 ‘신3저 현상’을 활용할 방안이 있느냐” “은행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왜 장관들이 현장에 나가지 않고 부하들 보고만 듣고 있는가” “중소기업에 대출하지 않는 은행에 대해서는 우대금리나 정부예금을 가지고 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이어 “은행의 구조조정이 끝났으니 더 이상의 변명이 필요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실업대책예산도 도마에 올랐다.무려 10조원이 넘는 예산인데도 도무지 눈에 띄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金대통령은 “실업문제는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위험사태가 안 올 것”이라며 “처음부터 실업대책 내각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장관들을 일일이 호명해가며 대책을 추궁했다. 토론이 끝난 뒤 金대통령은 金鍾泌 총리에게 직접 실업대책위원장을 맡도록 당부했다.장관들에게도 국민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언론 인터뷰와 현장행정으로 경기와 실업대책,부정부패 척결조치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게 하라고 독려했다.金대통령은 金총리가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하자 그때서야 “모두 힘을 내 잘하자는 의미”라며 “여러분을 격려한다”고 악수를 나누며 회의를 끝냈다. ‘찬바람’이 분 1시간45분간의 회의는 장관들에게 지난 8개월 재임기간보다 훨씬 길었을 것 같다.
  • 은감원,누구를 위한 ‘침묵’ 인가/白汶一 기자(경제 프리즘)

    은행감독원이 5개 퇴출은행을 상대로 특별검사를 벌인 것은 ‘부실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뻔히 부실기업인 줄 알면서도 외압이나 청탁에 굴복해 돈을 빌려줘 결국 기업과 금융이 동반 부실화한 전례를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때문에 부실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은 감독당국의 권한이자 의무다. 그런데 은감원의 12일 특검결과 발표를 보면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은행별 부실행태를 밝히지 않은 것을 차치하고라도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수사의뢰한 은행장들의 명단을 쉬쉬하며 끝내 감춘 것은 감독당국의 자세가 아니다. 범죄혐의가 확정되기에 앞서 개개인의 명단을 밝히면 ‘피의 사실의 사전공표’에 해당된다는 은감원의 주장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은감원이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은 특검결과에 따른 행정조치다. 특정이익을 목적으로 피의 사실을 고의로 흘리는 것과 감독당국으로서 특검결과를 국민앞에 떳떳이 밝히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퇴출은행을 인수한 우량은행에는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총 9조3,000억원이나 지원됐다. 따라서 국민들은 퇴출은행의 부실화 원인과 책임소재를 알 권리가 충분히 있다. 은감원은 이를 알고도 침묵했다. 금융감독이 투명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감독당국과 금융기관이 유착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빨(은행장)이 빠지면 잇몸(감독당국)이 시린 것’처럼 은감원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아니면 특검결과에 책임을 못질만큼 금융감독 자체가 부실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누구를 위한 금융감독’인지 당국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싶다.
  • 선택과목 재조정 필요(공무원 시험 변화의 바람:4)

    ◎과목별 난이도 들쭉날쭉… ‘運’이 당락 좌우/실력은 갖추어도 “난이도 예측 잘해야 합격”/고시에도 ‘눈치작전’ 필수… 제도개선 시급 신림동 고시생 사이에는 ‘폭탄 터졌다’는 말이 있다.하필이면 유난히 어려운 선택과목을 골라 시험을 망쳤다는 얘기다.‘폭탄’은 컴퓨터 게임의 지뢰찾기에서 나온 표현이다. 올해 사법고시 1차 시험에서는 스페인어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한다.스페인어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것이다.지난해 스페인어가 쉬웠고 영어가 어려웠지만 올해에는 반대였다.영어는 상대적으로 쉬웠다.폭탄이라는 말에는 ‘실력보다는 운’이라는 수험생들의 비아냥도 없지않다. 수험생들은 선택과목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 여부로 당락이 결정나기도 한다고 말한다.합격선에 수험생들이 몰려 있는 마당에 1∼2점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이런 탓에 선택과목을 정하는 데 눈치작전은 필수라고 수험생 韓모씨(28)는 전했다. 올해 어려웠던 과목을 내년에 선택하면 쉬울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올해 스페인어를 선택한 사람들은 지난해 쉬웠던 점을 들어 난이도 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실력이 아닌 운따라 합격하는 현상을 없애려면 선택과목의 난이도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수험생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는 수험생들의 이런 항의성 주장에 난이도를 조정하려는 노력보다는 변명에 급급하다.행자부 인사국 고시출제과의 한 관계자는 “수험생들은 난이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관계자는 근거로 올해 스페인어의 응시자 평균은 43점이었고 영어 46점,불어 45점,일본어 44점이었고 독일어가 49점으로 높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하지만 지난해 영어는 43점이었고 스페인어는 무려 53점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행자부의 논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지난해 스페인어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유리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행자부는 또 필수과목은 100점 만점이고 선택과목은 80점으로 배점을 달리했기 때문에 과목선택이 당락을 결정짓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특히 합격자 중 상위 10% 이내의 성적자들은 어떤 과목을 선택하더라도 비슷한 성적이 나오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시 관련자들은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신림동 한 고시학원의 기획실장은 “선택과목마다 난이도를 감안해 영어의 최고득점이 95점이었고 스페인어의 최고득점이 75점이었다면,스페인어의 75점이 영어의 95점과 같도록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시전문 월간지인 고시계의 黃泳成 편집인은 “사법고시 1차의 경우 수험생의 90% 이상이 1선택으로 형사정책을 선택하고 있고,2선택은 경제법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선택과목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黃씨는 또 행정고시의 사회법과 노동법은 내용만 비슷하고 이름만 다를 뿐이고 국사의 시험과목도 국사와 한국사로 나뉘어져 있는 등 선택과목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 재원 조달 검토없이 추진

    ◎“제2의 홍콩 건설” 의욕 앞서 발표 서둘러/정부의 외자유치·경기부양 계획에 찬물 정부가 영종도 ‘국제자유도시’ 건설 방침을 백지화하자 졸속행정의 전형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건교부는 지난 4월 대통령업무 보고에서 “영종도 일대 2,000만평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아·태 경제권의 국제업무·금융·물류·관광의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영종도 주변을 ‘제 2의 홍콩’으로 만들어 다가올 서해안시대에 대비한다는 포석이었다.당시 건교부 고위관계자는 “한국의 강력한 개방의지를 대외에 천명함으로써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한편 이를 통해 고용을 늘리고 건설경기를 부축하겠다는 뜻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건교부는 8일 대통령 보고내용을 6개월만에 번복하면서 “최근 경제난에 따른 예산확보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4월 대통령 보고 때와 현재의 경제사정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교부의 변명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에도 IMF사태로 경제난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는데도 정부는 건설계획은 물론 투자,재원조달,외자유치 계획 등 어느 것 하나 치밀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오히려 자인한 꼴이 됐다.당연한 결과로 건교부의 ‘한건주의’는 정부의 개방의지와 외자유치 및 경기부양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건교부 내부에서조차 ‘조변석개(朝變夕改) 정책’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한 관계자는 “의욕만 앞선 나머지 일만 저질러 놓고 뒷감당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자유도시 구상이 백지화됨으로써 동아시아의 허브공항을 추구하는 인천국제공항의 밑그림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공항입지,교통망과 더불어 허브공항의 3박자를 이루는 부대시설 조성계획이 초기부터 삐걱거리는 바람에 홍콩·말레이시아공항보다 후발 주자인 인천신공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중국은 포동지구와 홍콩에 각각 1억500만평과 3억2,000만평의 국제자유도시를 개발하고,싱가포르와 말레이지아도 1억9,000만평,2,700만평씩의 자유도시를 조성해 신공항과 연계·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투기자본’에 구제금융 주선/그린스펀 FRB의장 구설수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미국 금융가의 황제’라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독한 구설수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강력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로 미국과 세계 경제를 주물러온 그린스펀 의장이 러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업체의 구제금융을 주선한게 문제가 됐다. 그린스펀은 1일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FRB가 지난 주 부도위기에 놓인 대형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에게 민간 은행들의 협조융자 제공을 주선한 것에 관련,의원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의원들은 14개 대형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LTCM에 협조융자를 제공하도록 FRB가 주선한 것은 투기를 일삼는 부자들을 위해 구제금융을 제공한 셈이라고 공격했다. 답변에 나선 그린스펀 의장은 먼저 36억달러의 구제금융 협상에 개입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그러면서 LTCM위기가 시장혼란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나아가 세계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줄 위험이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목청은 높아만 갔다.일부 의원들은 LTCM를 구제하기 위해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만들 것이 경쟁제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해주록 법무부에 요청해 ‘그린스펀 망신살’은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 부패 정치인 퇴출 與野 모두 나서야/金時佑(발언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불신하는 풍조가 있다.이는 우연히 생겨난 일이 아니다. 국세청장과 차장까지 동원하여 정치자금을 조성했으면 경위야 어떻든 우선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부끄러움을 알고 자숙해야 한다.그 후에 당 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공당의 태도일 것이다. 모두 똑같은데 왜 나만 잡아가느냐,그것이 억울해서 국회의원들은 갖은 추태를 보이는 모양이다.그러나 이는 소인배의 시비이지 정치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표적수사 시비나 억울함은 여론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당사자들이 목청을 높여 말할 것이 아니다. 더욱이 임시국회까지 이용하고,지역감정까지 악용하고 있으니 이는 나라야 어찌되건 제 몸만 보호하려는 비열하고도 오만한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배고픈 백성이 밥 한 그릇을 훔쳐 먹어도 유치장 신세이고 단돈 만원을 훔쳐도 벌을 받는다.그런데 수천만원,혹은 억대의 돈을 받고도 이를 눈감아주지 않는다고 대가성이 있느니 없느니 자기변명만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의원과 사람이 물에 빠지면 강물이 오염되기 전에 국회의원부터 건져야 한다는 항간의 유행어가 웃자고만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의 모습이 당당해져야 한다. 늘 질서를 파괴하고 기강을 무너뜨리며,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누리는 선량한 백성들의 생활리듬을 깨뜨리는 자들은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이른바 힘있는 자들이었다. 이제 그런 정치인들은 퇴출돼야 한다.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경제질서가 잡힌다.공권력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범죄를 다스리는데 추상같은 힘을 보여야 한다.여기에 무슨 시한이 있고 여야가 있겠는가. 경제 살리기가 더 급하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며 부정부패 척결을 그만두자는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주장이야말로 가치관을 혼돈시키고 역사를 그르치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특권이란 국회의원에게 옳은 일을 하라는 방패막이지 결코 범죄행위를 엄폐하라는 보호막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소신있고 애국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을 원한다.당리당략과 아전인수격의 정치논리에 신물을 느끼고 있다.나라를 위하는 일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부정부패를 도려내는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무엇때문에 이전투구인가.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 白堊館 포르노(林春雄 칼럼)

    70년대 후반,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카터 대통령의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가 백악관에서 얼마동안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대통령과 부인,미혼 자녀들의 백악관 생활비는 정부가 지불할 수 있으나 결혼한 자녀의 생활비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의문의 제기였다.이 문제가 언론의 시빗거리가 되자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와 아들 가족의 생활비는 개인적으로 지불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은 대통령과 아들의 식비를 어떻게 나누어 냈는지 후문은 전해듣지 못했으나 백악관은 그러고야 무사했다.석유파동때는 겨울을 앞두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한 바 있었다.공교롭게도 그해 겨울 백악관 난방비가 전년에 비해 더 많이 지출됐다는 사실이 다음해 봄에 밝혀졌다.대통령은 이 문제에도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했다. ○사생활과 대통령직 수행 백악관이란 그런 곳이다.수백명의 기자들이 24시간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고 있고 세계의 촉각이 모아져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이런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백주,그것도 근무시간에 젊은 여직원과 일을 벌였다.대통령의 도덕성이 문제인 것은 무론(無論)이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판단력이다.그런 일을 하고도 무사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수 미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의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대통령직 수행은 별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이런 점은 항상 점잖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면이다.미국사람들이 얼마나 실용적인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미국의 이같은 실용주의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건을 보고 어떤 칼럼니스트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우려했다.미국의 상업주의가 사태를 이토록 키워놓았다는 것이다.백악관의 그 순결한 이미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미국의 지도력은 또 얼마나 손상됐는가.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미국식 지옥’이란 사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위증을 입증하기 위해 그토록 수치스럽고 혐오스런 성행위 내용을 세밀하게 묘사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케네스 스타 검사는 이같은 ‘백악관 포르노’를 제작해 내기 위해 물경 400만달러의 국민세금을 추가해 소진(消盡)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악역을 한 것은 역시 언론이다.음란한 용어가 무려 5,000자나 포함된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클린턴의 대배심증언마저 끝내는 방송되고 말았다.이런 저런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의 추악한 상업성이다. ○위험 천만한 언론 상업성 평소 어느 신문이 이런 유의 내용을 활자화했다면 “비열한 선정주의”라고 필시 펄펄 뛰었을 미국의 권위지들도 대통령의 일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모든 것을 활자화했다.음란성 표현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공익 언론의 기초적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일반의 것은 안되고 백악관의 것은 괜찮을 성질의 일이 아니다. 한국언론도 마찬가지다.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문윤리 규정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고려해 적절치 못한 용어는 다소 완화해 소개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쓸 것은 다 썼다. 이번 사건이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특히 상업언론에 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비리정치인 사죄가 먼저다/白京男 동국대 교수·정치학(기고)

    ◎지역감정 부추겨 사정 피하려 해서야… ‘국민의 정부’가 국세청 대선자금 모금을 비롯,정치권 사정을 일관성있게 진행하자 한나라당은 ‘표적사정’ ‘편파수사’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민주화투쟁으로 얻어진 50년만의 정치발전을 후퇴시킬지 모를 지역정서에 호소,사정중단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정부는 권력으로 법을 남용하고,악용한 비리 정치인을 끝까지 추적하여 정치권에 대한 누적된 국민의 불신을 제거하고 ‘제2건국’을 위한 ‘법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검찰에게 공정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사정은 그 출발점인 법이 바로 서지 않고,정치부패의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나라가 바로 설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정치개혁의 제1과제가 정치부패의 척결에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은 6·25이후 최대의 국난을 자초한 가장 큰 이유를 정치권의 부정부패에서 찾고 있다. 부정부패는 법을 준수하지 않은 탈법행위이다. 독재시대의 법은 정치도구가 되어 권력을 가진 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국민들이 그 피해를 보아왔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는 정치부패를 근절하는 정치개혁에 제1의 목표를 세우고,법을 바로 세운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부패의 폐습을 근절키 위해 정치개혁을 한다는 것을 믿지않고 사정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들은 이나라의 구태의연한 정치의 악습을 동원하여 사정을 비껴나가려 하고 있다. 그들은 ‘야당파괴저지투쟁’ ‘제2의 민주화운동’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궐기대회’란 이름으로 정부가 사정을 중단하게 힘을 밀어주면,그 대가로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민족화합 차원에서도 동서지역 화합은 이 시대의 절박한 정치적 과제로 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과제를 모를리 없는 지도적인 야당 정치인들이 터부시되고 있는 지역정서를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의 비리는 관행으로 봐줘야 정치의 민주화가 이뤄지고 안정이 온다는 논리다. 지역감정에 의해 50여년 동안 피해를 보아온 국민회의는 “야당시절 광주에서 그러한 집회를 한번도 한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정을 피하게 해달라고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오늘의 야당은 여당시절 정치윤리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과연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했는가 의심이 든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라는 인식이 왜 없을까. 영남권에서 출발한 지역정서가 서울로 입성을 하리라 우려한 국민회의도 수도권에서 ‘세도(稅盜) 한나라당 진상보고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원칙적인 면에서 고찰한다면 이번 사정은 정당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검찰의 고유권한을 존중해 줘야 한다.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법,올바른 법을 세워 이나라에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사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권과 권력의 남용,축재의 도구가 되고 정의가 실종된 법을 바로 세우자는 제2 건국의 원점에서 출발하는 입장이다. 사정을 비판하는 구여당측 엘리트들은 그들의 과거 정치행태가 어떻게 정의로웠고 민주적이었나를 국민에게 낱낱이 밝히고 나서,정의와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검찰의 사정을 비판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은 사정 당사자들이 자신의 변명을 법정에서 하기를 한결같이 원한다. 국민을 볼모로 국회기능도 마비시켜 정치일정에 제동을 걸고있는 모습도 썩 좋지 않다. 과오가 있다면 은폐하지 말고 국민의 이성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떳떳한 모습이다. 국민들은 이런 때일수록 법치국가의 원리란 무엇인가 곰곰히 따져볼 때다.
  • 벌거벗은 대통령의 ‘변명’

    ◎“약간의 선물 주었지만 매수 하지는 않아”/“사생활을 범죄로 취급 특별검사들 지나쳤다” 클린턴 대통령의 연방 대배심 증언 마디마디는 숨기고 싶은 한 자연인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는 평가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르윈스키와 함께 있을 때 행한 특정한 성적 교제는 부적절하고 사사로운 접촉이었다.부적절한 관계는 97년 초 나의 요구로 끝났다.그후에도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내용의 성적 대화가 포함된 전화통화를 했다.우정으로 시작된 관계에 이같은 행동이 포함된 데 유감으로 생각하며 내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 ◇성적 관계: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목적이나 의도로 그 같은 신체적 부위(사타구니,가슴,허벅지 안쪽,엉덩이)와 접촉하는 행위를 포함하며,다른 행위는 배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만약 오럴 섹스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 접촉은 위에서 언급한 어느 신체 부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술에 의한 것이다. ◇르윈스키: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마음 아프다.그녀는 근본적으로 좋은 여자다.착한 마음을 가진 좋은 젊은여성이다.그녀의 침묵을 돈을 주고 사려하거나 버논 조던 변호사로 하여금 침묵을 매수하도록 하지 않았다. ◇선물:그것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작별 선물이었다.그녀는 새 일자리를 얻고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하게 됐으며 나는 약간의 선물을 주었다.항상 사람들에게 많은 선물을 해왔으며 특히 선물받았을 때는 항상 선물을 보냈다. ◇검사들의 질문:당신의 속임수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솔직히 나의 사생활을 범죄로 만들려고 시도함에 있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 因果를 안다면/知詵 스님·백양사 주지(서울광장)

    산행을 하면서 보니 올 가을 단풍은 그렇게 곱지는 않을 듯싶다.엘니뇨 현상으로 여름내내 비가 많이 내려 이 땅 곳곳에 수해가 나더니 결국은 나무잎새마다 햇빛 공급량이 적어진 까닭인 것 같다. 농작물도 남북이 다같이 풍성한 수확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금년 가을·겨울이 풍요롭지 못하게 되니 인심도 각박해질 것 같다.가뜩이나 IMF 한파로 경제가 어렵고 실직자 문제가 심각한데 수해로 인한 피해 또한 엄청나니 예전 산행 때보다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우울한 북한 소식이나 남한 정치권의 부정 비리 인사에 대한 전례없는 사정 소식이 이 가을을 더욱 슬프게 한다. 어찌 보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지는 요즘의 세상살이로 너무도 혼란스럽고 무가치해 보이곤 한다.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층 불행해지는 현실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인과응보의 모습인 것이다.의식주가 해결되면 참가치로만 살아가야 하건만 그러지 못했으니 말이다. ○비판뒤에 실천은 없어 요즘 사회가 점점 어렵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몇 가지만 얘기한다면 첫째로 사람들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부와 권력,즉 부귀영화를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의 잘못되고 유치한 인생관이 그것이다. 도덕윤리는 그만두고 간단한 공공질서 하나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대개가 개인의 영적 위안만 기구하는 데 안주하거나 신앙의 대상에 매달려 부귀영화를 비는 기복신앙으로 흐른다.아는 자와 가진 자들의 신앙에는 지적 호기심이나 고급 취미,대형 집단에의 소속감으로 흐르는 경향마저 있다. 이런 것이 나쁘다고 매도하려는 소리가 아니다.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의 현실고(現實苦)를 먼저 나서서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것이다.잘못된 현실에 대해 분석과 비판은 잘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개혁하려는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아 이 잘난 사람들은 너무 비과학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다(모른다)는 점이다.지구 온난화,이상기온,환경공해,IMF,수해,부정비리및 사회병리 현상 등 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지은 업의 필연적 결과다.그런데도 스스로 지어낸 과보를 남들에게 떠넘긴다. ○IMF·수해도 필연의 결과 비리 정치인들을 보면 인과응보가 내생에까지 가지 않고 현생에 이뤄지고 있어 ‘스피디한’ 세상에 걸맞은 법칙처럼 보인다.그들은 과보를 빨리 받아서 좋고 현정권의 더딘 개혁에 복통이 날 지경이던 서민들은 시원해서 좋다. 잘 나가던 때 죄업 많이 지은 정치인들이여,과보 받을 준비를 미리 하시라. 그간의 분단 독재 체제 속에서 지역감정 이용,각종 조작과 부정부패 등으로 일신의 영달을 일궈온 변신의 천재들은 발악같은 변명을 그치고 인과의 역사 앞에서 참회할 일이다.모든 사람들이 앞으로도 인과를 불신하면 무서운 세상이 될 것이다.윤회라는 것도 긴 질서와 다름 없다.과거를 반영 못한 현재,현재를 바탕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삼세(三世=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올바른 질서(道)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예외 없는 인과의 법칙에 우리 모두가 겸허해지는 가을이 되자.
  • 딸 기르기/朴婉緖 작가(서울광장)

    언젠가 여학생들이 친구에게 폭력을 쓰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여과없이 방영돼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여학생이 저런 꼴을 당하는데 구해줄 생각은 안하고 카메라를 들이댄 방송국에 대한 비난의 여론도 있었지만,계집애들까지 저 지경이 됐으니 세상 참말세라는 개탄의 소리와 함께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런 계집애가 나왔을까 하는,딸 가진 부모에 대한 비난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거기서 계집애 소리 빼면 말이 안되는 걸 보면,폭력이 나쁜 게 아니라 계집애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죽도록 얻어맞던 아내가 참다 못해 남편을 고소하자 법정에 나온 남편이 자기의 폭력행위에 대해서 사과는 커녕 변명도 안하고,너무도 당당하게 여편네가 어떻게 감히 남편을 고발할 수 있느냐고 노발대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대체로 남자의 폭력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으려는 게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사항이다. 사실 남학생이 학교근처에서 그 정도로 친구를 괴롭혔다면 그게 무슨 뉴스 거리가 됐겠는가. ○남성폭력 묵인하는 사회 성적인 폭행을 당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진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해자의 연령은 노년층에서 아동까지 날로 광범위해져서 딸 가진 이들을 전전긍긍하게 하고 있다. 어린 딸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그 가해자는 대개 이웃의 같은 또래거나 한두 살 더 먹은 소년이기 십상인데 딸 부모의 입장에서는 딸이 일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는 것보다 더 억울한 것은,사내아이의 부모에게 항의해봐도 그쪽에서는 남자가 뭐 그럴수도 있다는 식으로 자식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생각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딸도 강하게 키우려는 건 딸 가진 부모의 정당한 자구노력 이 아닐까. 내가 자식을 기를 때만 해도 아들은 사내답게, 딸은 여자답게 기르고 싶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사내다움이라고 여기는 강건함,용기,적극성과 여자다움으로 치는 온유함,희생정신,참을성은 서로 보완해 가며 사람 사는 세상을 살맛 나게 받쳐주는 서로 대등한 양대 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소망이 무너진 오늘날 같은 세상에서 다시 딸을 낳아 기르게 된다면 우선 강하게 키우겠다. 마음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잘 먹이고 충분한 체력단련을 시키겠다. 그리고 그걸 어떤 때써야 하는지 힘과 폭력의 다름도 가르치겠다. 그래도 흉한 꼴을 당했을 때,운수 나빠 개한테 물렸거니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뻔뻔스러움도 가르치겠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무장 가해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지 왜 피해자가 죄의식을 느끼느냐 말이다. 희생할 가치가 없는 것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지 않도록 자기 사랑의 중요성도 가르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수심을 가르치겠다. 성 폭행의 소질이 있는 녀석을 쉬쉬 덮어둘 게 아니라 드러내놓고 규탄하고 손가락질해서 이 사회에서 발을 못붙이게,만일 이 가부장 사회가 그들을 눈 감아준다 해도 여성들끼리만이라도 잊지말고 공개적으로 능멸해서 생전 장가도 못 들게 할 수 있는 복수심 말이다. 이런 방법이 비록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해도 어쩌겠는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인 남성들이 단지 자신들에게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명확한 불의를 덮어두려는 걸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구성원의 반만 행복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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