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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중국 후한시대 양진(楊震)이라는 관리가 있었다.그는 학문과 타고난 인격때문에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청백리였다.양진이 태수라는 벼슬자리에 있던 어느날 밤 아래 있는 관리 한 사람이 찾아와 전에 입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며 뭉칫돈을 꺼내 놓았다.시체말로 정치헌금일 수도 있고 뇌물일 수도있었다. 가난한 태수 양진에게는 뭉칫돈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명분도 그럴싸했다.달라고 해서 가져온 것도 아니고 보는 이도 없는 한밤중 은밀한 내방이었으니까 슬며시 눈만 감으면 그만인 상황이었다.그러나 양진은 돈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고 받을 이유도 없다면서 거절했다.그러자 난처해진 관리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태수님,너무하십니다.어찌그리 소인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십니까.염려하지 마시고 거두어 주소서.밤이 깊었는데 누가 보겠습니까?아무도 모르는 일이오니 받아주십시오.” 그말을 들은 양진은 조용히,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것이 저 유명한양진의 사지(四知) 이야기다.그날밤 관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별 촌놈 다 보겠네”라며 돈보따리를 움켜쥔 채 양진의 단칸방을 빠져나갔을 것이 뻔하다.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 30년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펴낸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칼·완력·보석·돈 그리고거울·정신은 하나의 상호 관련된 체제를 형성한다.총은 돈을 벌게 해줄 수있고 또는 희생자의 입에서 비밀정보가 나오게 만들 수 있다.그리고 돈이 있으면 정보나 총을 살 수 있으며 정보를 사용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돈을 늘리거나 또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도 있다’고 갈파했다. 돈과 권력은 상호관련이 있어서 언제나 밀월을 즐긴다.문제는 권력이 타락하면 검은 돈이 춤추고 검은 돈이 춤을 추면 권력의 성이 무너진다는 것이다.그동안 우리네 정치사에는 ‘너 이놈,썩 물러가지 못할까’라고 호통치는양반들이 없었다.호통은커녕 오히려 ‘너 이놈,썩 가져오지 못할까’라며 총구를 겨누고 돈을 모았던 그네들 때문에 흙탕물이 되곤했다. 가관인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뻔한 일들을그럴싸한 구실로 포장하는가 하면 국민을 들먹거리고 애국을 들먹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어사 박문수가 탐관오리를 포박한 후 여죄를 추궁하자 구차스런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자 박문수의 추상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너 이놈,하늘 무서운줄 모르느냐.”양진이 말한 천지(天知)와 박문수가 말한 그 하늘 아래 우리모두는 존재한다.어디 그뿐인가.너와 내가 그 하늘 밑에 상존하고 있다.그러니까 천지(天知)·지지(地知)의 절대상황 앞에서 ‘아는 바 없다’ ‘전혀모르는 일이다’ 하고 잡아떼는 것은 여간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유념해야 한다.그리고 시작도 끝도 깨끗해야 하며 마무리는 더욱 말쑥해야 한다.‘하늘이 알고땅이 알고’라는 준엄한 역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증인·참고인 신문 이모저모

    이틀째 증인·참고인 신문을 벌인 27일의 ‘IMF 환란조사 특위’의 청문회는 姜慶植전경제부총리 등 환란위기의 와중에 핵심에 있었던 인물들이 대거나와 특위위원들과 팽팽한 입씨름을 벌여 ‘청문회 하이라이트’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걘? 질의에 나선 국민회의 金民錫의원과 姜전부총리간에는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고도의 신경전’을 벌였다.姜전부총리가 신상발언을 요청하자 金의원은 제동을 걸다가 張在植위원장이 허용하자 “질문시간에서 姜전부총리의 발언시간을 빼줄 것”을 요청했다.특히 姜전부총리는 “외환위기에 대한 용어 자체에 혼돈이 있다”며 외환위기에 대한 정의를 놓고 金의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검㈏煥光祺?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따금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金의원이 일본계은행들의 대출금 회수 등을 거론하며 “외환위기를 예고하는 지표를 제대로읽었는가”라고 묻자 姜전부총리는 “하나하나 말할 기회를 달라”며 반박할 자신이 있다며 아쉬운표정을 짓기도 했다.?검㈏煥光祺?는 대권을 꿈꿨다는 내용이 담긴 자신의 일기가 거론되자 “남의 일기에 대해 자꾸 얘기하지 말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국민회의 秋美愛의원의 계속된 일기내용 공세에 한때 답변을 거부하자 張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에 쓴 일기라도 환란규명에 관련이 있다고 판단될 수 있다”고 秋의원을 거들었다.秋의원은 “일기에는 자기 반성과 성찰이 없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만 나와 있다”고 일침을 가하고 “마음을 건드렸다면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검㈏煥光祺?는 증인신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張위원장에게 신상발언을 요청하는 등 경제청문회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對국민용’으로 활용하려는계산이 엿보였다.姜전부총리는 신상발언에서 “경제운영의 책임자로서 환란을 막지 못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설사 본인의 답변이 변명같이 보일지라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姜전부총리는 첫날 다른 증인들이 답변에 대비,서류가방에 답변자료를 준비해온 것과는 달리 맨손으로 청문회장에 들어서 눈길을 끌었다.그러나 정작청문회가 시작되자 주머니에서 A4용지 20여쪽 분량의 자료를 꺼내 질의에 대비하는 등 청문회에 대비,치밀한 준비를 해왔음을 보여줬다.崔光淑 bori@
  • 경제청문회 증인 신문 이모저모

    李經植전한은총재,洪在馨·林昌烈전경제부총리 등이 증인·참고인으로 나선 25일의 경제청문회는 외환위기를 추궁하는 특위위원들과 당시 상황논리를앞세워 책임을 벗어나려는 일부 증인들간의 설전으로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특위위원들은 첫 증인으로 나선 李전총재 등이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거나 면책성 발언을 늘어놓자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李전총재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했다.李전총재는 특히 답변도중 어려운 경제학 용어를 써가면서 당시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면박을 받기도 했다.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이 단도직입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냐”고 묻자 “결과적으로 환란사태가 온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잘못을 인정했다.▒張在植위원장은 증인들이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은 ‘경제통’인 점을 감안,증인신문에 들어가기 앞서 “얄팍한 경제지식이나 변명으로 진실을 호도하면 또 한번의 죄를 짓는 게 될 것”이라고경고하기도 했다.張위원장은 “변명과 책임회피적 해명을 하지 말고 진실을 가려달라”며 증인들에게 거듭 진실규명에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국민회의는 이날 증인신문의 중요성 때문에 일부 ‘공격수’를 바꿨다.李允洙의원을 잠시 빼고 ‘비장의 카드’로 아껴뒀던 金民錫의원을 등장시켰다.金의원은 지난 97년 한보청문회에서 맹활약했고,국회 재경위 등의 활동을통해 닦은 실력으로 경제관료와의 ‘한판싸움’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선수교체전략’은 26일에도 이어져 국민회의 金元吉정책위의장이 증인으로 나서는 姜慶植전부총리를 맡을 예정이다.▒李전한은총재등 4명의 증인은 이날 오전 청문회가 열리기 20분전 청문회장에 들어와 증인선서문에 서명하는 등 증언 준비를 했다.李전한은총재는 답변에 대비해 관련서류를 담은 검은색 007서류가방,洪전부총재는 자주색 손가방만을 갖고 나왔다.그러나 두 사람 모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李전한은총재는 “청문회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는 무슨 준비냐.어제 귀국해청문회 중계도 못봤다”고 답변했다.崔光淑 bori@
  • KBS ‘수신료 인상’ 홍보 눈총

    수차례의 자체 개혁 조치로 KBS의 공영성이 시청자들에게도 조금씩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그런데 지난 23일 방송된 ‘생방송 심야토론-방송개혁 어떻게 가나’는 이같은 분위기에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는 평이다. 나형수 KBS제작단 사장이 진행을 맡았던 만큼 이 프로에 방송사 입장을 벗어나 완전히 객관적인 내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그러나 갑자기 이형모 KBS부사장을 전화로 연결,10분간이나 KBS의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수신료를 인상해야 KBS 2TV가 광고없이 방송을 할수 있어 공영성을 이룩할수 있다는 논리다.그러나 여론은 ‘KBS가 먼저 변하지않고 수신료의 인상만을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차가운 상황이다. 그러자 마음이 다급해진 것일까.KBS는 방송의 디지털화와 2002년 월드컵 준비,사회교육방송과 국제방송 등 ‘KBS의 책무’를 강조하며 수신료인상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더욱이 ‘KBS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까?’라며 토론자들에게 동조를 요구하거나,‘참으로 좋은 방송을 위해선 재원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가며 KBS의 입장을 변명한 것은 ‘심야토론’의 본래 의도를희석했고 시청자를 쑥스럽게 했다. 한 토론자의 지적이 아니라도 KBS는 전파의 실질적 소유자는 시청자이고 방송정보의 소비자도 시청자이며 방송운영의 주체도 시청자임을 인식했어야 했다. 수신료 인상이 먼저냐,KBS의 뼈를 깎는 노력이 먼저냐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애매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방송개혁을 담보로 수신료 인상을 흥정할 수 없음은 확실하다.수신료 인상보다 방만해진 경영구조 조정등 자체 개혁 노력이 먼저라는 방송개혁위의 지적이 다시한번 생각나는 프로였다.許南周 yukyung@.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한하운 문화 빨치산사건(3회)

    이 무슨 야바우인가.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겠다던 바로 이튿날인 1953년 11월21일,이성주(李成株)내무부 치안국장은 한하운이 좌익이 아니라고 언명한다.그 사흘 뒤(11.24) 치안국은 한하운사건 조사경위를 밝혔는데 당시거의 모든 신문들이 그 발표요지를 기사화했으나 ‘서울신문’은 침묵하고있다.두 간부의 사직사유가 관계당국에 의하여 부당했음이 밝혀진 찰나였던지라 차마 그 기사를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비교적 냉정했던 ‘동아일보’(53.11.25)는 수사발표를 두가지로 요약 정리해준다.그 첫째는 한하운의 가공인물론으로 이 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하운 시초’를 낸 장본인으로 밝혀졌다고 해명하며,참고로 본명이 한태영(韓泰永)인 그의 간략한 생애와 시 창작의 계기를 밝힌다.두번째는 수사의 초점이 바로 시 ‘데모’에 모아졌음을 밝힌다.원작에 있던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뒤에 뒤를 줄대어/목쉰 조선사람들이 간다.’는 연과 4련 둘째줄에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이란 구절이 말썽이었다.특히 ‘핏빛깃발’은 바로‘적기가’를 연상하는 대목으로 수사의 초점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이 대목에서 한하운은 자신의 원작엔 그런 구절이 없었는데 편자(이병철)가 임의로 고친 것이라 발뺌했다고 전한다.수사당국은 이 시인의 진술을 믿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채 계속 조사하겠다고만 밝혔으나 이제 한하운이 가고 없는 터라 그 진위는 가릴 길이 없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데모’의 원작이 이미 1949년 월간 ‘신천지’에 실렸었고 그게 다시 첫 시집 ‘한하운 시초’에 게재되었으며,그로부터 4년 뒤에 재판이 나왔다는 사실이다.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무관심했다 해도 만약 그게원작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었을 터이다. 다만 이 문제의 시 한편이 매카시즘의 세례를 받은 뒤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는 1955년 시인 박거영이 경영하던 인간사에서 두번째 시집 ‘보리피리’를 낸 이듬해 6월15일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한하운 시전집’을 냈는데 여기서 시 ‘데모’는 원작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즉 위의 원작에 있던 구절을 삭제해버린 한편 끝 구절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를 ‘지나가고’로 고친다.이어 맨끝에다‘아 문둥이는 죽고 싶어라’를 첨부했는데 이 구절이야말로 당시 그가 겪었던 설움을 한마디로 토해낸 아픔의 부피를 전해준다.이것만으로도 그는‘자유대한’에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을 느꼈던지 시 말미에다 ‘註 ooo(1946.3.13일 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라고 조심스럽게 사족을 달고 있다. 그렇다고 한하운의 불안의식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1960년 8월15일 신흥출판사 간행 자작시 해설 ‘황토길’에서 그는 ‘데모’의 배경이었던 함흥 시절을 조목조목 풀이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매카시즘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이후 시집부터 시 뒤에 붙었던 [주]항목이 부제로 승진하여 앞머리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시 ‘데모’는 원상복구가 필요하다.그래서 한하운의 문둥이의 서러움이 단순한 그 자신만의 아픔이 아니라 모든 나환자의 고통임을,아니 문둥이처럼버림받은 국민대중의 아픔임을 밝혀주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그를‘빨갱이’로 몰아세웠던 언론은 관계당국의 수사발표 뒤 어떻게 했을까.‘평화신문’은 한하운이 방문하여 ‘병신인 나를 더 괴롭게 하는 의도를 알고 싶다고 전제하며’ 그 자신이 이병철로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말했다고 쓰면서도 시종 이런 변명이 자기가 쓰고도 월북하고 없는 이병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를 조사중이라고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바로한하운으로 하여금 ‘데모’의 원작을 훼손시키게 한 요인이다.누군들 1953년 휴전 직후의 매카시즘 체제 아래서 이보다 더 말끔한 양심을 유지할 수있었을까.양심의 문둥이들이 육체의 문둥이에게 내린 린치에 다름아니었다.任軒永 문학평론가
  • 안테나-재경부 책임회피성 발언 일관 의원들 질타

    역사적인 경제청문회는 18일 경제정책의 ‘총 산실’인 재경부의 보고 청취로 시작됐다.환란 당시 금융정책을 총지휘했던 만큼 재경원의 역할과 책임부분에 ‘집중포화’가 떨어졌다. 의원들은 외환위기 감지 시점과 가능성의 인지 여부를 따지며 재경원의 ‘직무유기’ 여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반면 재경원측은 경상수지 적자누적과 재벌의 연쇄부도,동남아 연쇄환란 등으로 직접적인 원인을 돌리며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의원들의 분노를 샀다.청문회 내내 이어질 ‘창과 방패’의 ‘머리싸움’이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李揆成재경부장관의 “재정경제부가 환란책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애매모호한 사과가 불씨가 됐다.자민련 鄭宇澤의원은 즉각 “환란의 핵심책임을 져야 하는 재경부가 자기반성의 의사가 전혀없다”고 몰아쳤고 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직무유기에 대한 사과없이 보고를 들을 수 없다”며 지원사격을 가했다. 특히 97년 하반기부터 공식 IMF 구제금융 요청일(11월21일) 전후의 책임소재를 집중 공격했다.재경부측은 “97년10월 하순부터 선택가능한 모든 대책을 검토·추진했다”며 제법 ‘당당한 논리’를 폈다.이에 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변명에만 급급하지 말고 책임있는 발언을 하라”고 소리를 쳤고 국민회의 金榮煥,자민련 金七煥의원 등도 “홍콩이나 대만 등은 금리를 두배나 올리면서 대책을 마련했는데 재경원은 왜 보다 적극적인금융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결국 李장관은 “막판에 이것 저것 안되니까 가능한 대책을 다 사용했다는의미로 해석해 달라”고 양보하는 등 진땀을 흘렸다.
  • ■주요 관련부처 움직임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18일부터 시작될 경제청문회 기관보고를 앞두고일요일인 17일에도 관련부서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하는 등 막바지 준비작업에 분주했다.외환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재경부 관리들은 답변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새다시피 하는 등 청문회 준비로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경제청문회의 첫번째 기관보고 부처인 재정경제부는 지난 주말 鄭德龜 차관 주재로 밤 늦게까지 회의를 거듭하는 등 긴장감 속에 대책마련에 분주.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하고 17일 저녁 귀국한 李揆成장관은 김포공항에서 과천청사로 직행,준비상황을 보고받기도.●재경부는 외환위기와 한보사태 등 5개 청문회 의제와 관련,의원들이 요구한 자료가 700여건이나 돼 오래 전부터 연일 밤샘작업을 해왔다.한 고위 관계자는 “변명이나 회피 보다는 환란 당시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설명한다는 기본입장을 정했다”며 “姜慶植 전 부총리 등 전직 간부들의 잘못을 인정할 수도,부인할 수도없는 것이 직원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한은은 국제부와 조사부 정책기획부 등 관련부서들이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기획부가 종합한 뒤 18일 全哲煥총재에게 최종 보고할 예정.한은 관계자는“全총재는 환란 당시에는 없었던 데다 외환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는 재경부이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며 “정치권에서 폭로성으로 나올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고 말했다.吳承鎬 金相淵osh@
  • 경기논쟁과 고금리대출

    정부는 주가오름세를 비롯,요즘의 금융지표개선 현상이 실물경제부문으로확산될 수 있도록 기업의 유상증자요건을 완화하고 시장금리도 인하추세를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도됐다.재정경제부는 12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회복 속도와 환율,금리 등 경제현안에 관한 정책토론회를 갖고이같이 방향설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그동안 한국은행과 논쟁을 벌여 온 금리문제는 선진국과 경쟁국들의 저금리추세를 감안,당분간 소폭적인 내림세를 견지키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한다.낮은 금리로 경기부양효과를 높이고 환율안정과 수출증대를 꾀한다는 것이다. 사실 고질적인 고금리체계만큼 경제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린 것도 없기 때문에 정부 방침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정부의 저금리방침이전해지면서 3년만기 국공채수익률이 사상 처음으로 5%대에 진입하는 등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심리가 자금시장에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정작 가계소비와 기업투자심리를 부추겨 경기호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은행대출금리는 여전히 고금리를 고수하고 있어 이의 해결방안이 시급히마련돼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은행의 일부 기존대출금리는 최고 16~18% 수준으로 예금과 대출금리의 격차가 무려 10%포인트 가량 벌어지는 등 지나친 예·대(預·貸)마진으로 은행들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은행측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초고금리상황에서 유치한 예금 때문에 대출금리 인하가 어렵다고 하나 당시예금은 대부분 만기가 됐으므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이러한 ‘대출고금리’현상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여서 상품구매력을 떨어뜨림으로써내수(內需)진작을 저해한다.기업 투자의욕도 불붙기 힘들게 된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시중금리 내림세에 맞춰서 대출금리를 하루 빨리 내려경기회복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안이하게 예·대마진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선진금융기법을 개발,수입원의 다양화를 이뤄가야 한다.게다가 은행구조조정에 투입되는 60조원의 공적자금이 대부분 국민세금으로 조성되는 점을인식해서 이에 보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대출금리가 높은 선에 머물면 기업투자·생산은 침체를 면치 못하는 반면 예금창구를 떠난 여유자금은 증시나 부동산에 몰려 이상(異常)과열을 부추기고 투기성 달러유입을더욱 촉진,환율하락을 부채질해 수출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만드는 점을잊지 말아야 한다.
  • 여권 “姜慶植 경제논리를 깨라”

    이번 경제청문회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구여권과 신여권의 ‘경제논리 대결’로 볼 수있다. 환란위기의 진실규명을 서두르는 신여권으로서 최대 난제로 姜慶植의원(전경제부총리)을 꼽는다.환란 당시 경제사령탑으로서 ‘진실’의 열쇠를 쥐고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姜의원은 자타가 공인한 실무경제통인데다가 두차례의 경제부총리를 역임,만만치 않은 논리적 배경도 갖고있다. 이에대해 국민회의 金元吉정책위의장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며 “姜의원에 대한 대책없이 어떻게 청문회를 열수가 있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우선 姜의원에 대한 증언시기를 최대한 늦춘다는 복안이다.金의장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姜의원을 증인으로 불러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환란위기의 전과정을 꿰뚫고 있는 金의장이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다.吳一萬 oilman@
  • 반도체 빅딜 승복하라(사설)

    빅딜 업종가운데 초미의 관심사인 통합반도체회사의 책임경영 주체가 결정된 것은 다른 업종의 빅딜과 대외신인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반도체 빅딜은 그동안 현대전자와 LG반도체 양대 회사의 지분율문제와 빅딜 평가회사 선정문제를 놓고 심한 진통을 겪어와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반도체 회사의 평가작업을 맡아온 아더 D 리틀(ADL)회사는 심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가 선정한 광범위한 분야의 능력과 업적평가 기준 중 많은 분야에서 현대전자가 일관된 우위를 보여 통합회사의 경영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갖추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혀 지난 6개월간 끌어온 반도체 빅딜문제 해결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가 나오자 마자 LG그룹은 ‘ADL 의견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한마디로 유감된 일이다.정부와 재계 및 채권단은 지난 7일 오는 25일까지 반도체의 책임경영주체를 선정한 뒤 99년말까지 경영주체와 채권은행이 손실을 분담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기로합의한 바 있다. 이 발표는 바로 국민과의 약속이자 정부가 채권은행의 손실을 분담하는데 동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채권은행의 손실부담은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이는 정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서 재벌의 부실경영에 국민의 혈세를 지원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때문에 국민지원을 외면하는 자사(自社)이기주의는 용납될수 없다. LG 반도체는 중대한 약속을 파기하고도 이번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평가기준과 방법에 대한 사전합의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이것은 하나의 변명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현재전자는 전경련이 중재하여 평가업체로 선정한 ADL과 평가실사에 관한 정식계약을 체결했는데도 LG반도체는 평가방법과 배점기준을 미리 정해야 한다며 계약조차 하지 않은 것은 당초부터 빅딜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문을 면키 어렵다. LG그룹은 ‘불인정’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평가기관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5대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에 협력하는 것은 물론 재벌의도덕성 회복에도 기여하는 길이다.정부는 귀책사유가 있는 기업이 빅딜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신규대출중단과 대출금 회수 등 강력한 제제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 ‘빅딜발언’ 꺼리는 고급관료/金相淵 기자·경제과학팀(오늘의 눈)

    “아이는 있는데 아빠는 누군지 모르겠어요”. 최근 한 경제부처의 직원이 ‘빅딜’에 대해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빅딜이 경제정책의 최대 과제처럼 돼 있지만,알고보면 관료들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그동안 경제부처 장관들의 행보를 관찰해 보면 실상을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경제팀의 좌장인 李揆成 재정경제부 장관만 하더라도 빅딜 얘기만 나오면 “잘 되겠지요”라며 즉답을 회피하기 일쑤다. 지난 달 하순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 협상이 시한을 지키지 못할 우려가 컸을 때도 李장관은 구체적인 대책마련 대신 “조급하게 굴지말고 기다려 보자”고 여운을 달았다. 결국 협상은 시한인 11월 말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역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파문을 일으키자 뒤늦게 허둥대고 있지만,그동안 무엇을 했는 지 묻고 싶다. 22일 국무조정실의 빅딜 관련 정책평가에서 “목표는 있지만,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 새삼스러울 리 없다. 무엇보다 최근 간간이새어 나오는 소식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경제장관 누구도 내심으로 빅딜에 찬성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裵洵勳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엉뚱한 장소에서 뒤늦게 빅딜 반대의견을 밝힌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장관이라고 해서 경제관(觀)이 획일적이라는 법은 없다. 무리한 빅딜이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주장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누구도 최고 통치권자에게 소신을 밝혀 정책에 녹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장관들도 “분위기가 이런데 어떻게 감히 반론을 내놓겠느냐”는 항변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같은 변명이 자리에 연연하는 신판 복지부동의 한 단면이라면,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더욱이 나중에 청문회 같은 곳에 불려나갈 것을 우려해 기록에 남을 만한 발언은 아예 삼간다는 말까지 들린다.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아이가 싫으면 아예 안 기르겠다고 하든지,아니면 내 아이는 아니지만 잘키워보겠다고 하는 게 도리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내팽개쳐 놓거나 구박만 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 고종밀서 보도의 충격(대한매일 秘史:11)

    ◎이토 “밀서는 가짜” 억지주장/로이터통신 타고온 스토리기사/韓·中·日 신문들 뒤늦게 게재/대한매일 증거사진 싣자/통감부 ‘오보’ 정정요구 탄압 스토리가 중국에서 타전한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내용의 고종의 밀서가 런던의 일간지 ‘트리뷴’에 실리자 주영 일본 대사관은 스토리의 기사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즉각적으로 부인하였다. 고종이 조약에 날인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외교관례라는 주장이었다. 영국과 일본이 영일동맹을 체결할 때에도 영국의 에드워드왕이나 일본의 천황이 직접 날인하지 않고 양국의 대표자들이 서명한 것을 보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대표가 서명한 을사조약은 외교적인 관례에 따른 것임을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한국 정부가 외국에 주재하고 있던 공사와 영사를 모두 철수시킨 것은 황제가 이 조약에 동의했음을 뜻한다는 억지 주장도 폈다. 일본이 애써 부인하였지만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의 밀서는 로이터통신을 타고 거꾸로 동양으로 되돌아와 한국,일본,중국의 신문들에 다시 실렸다. 서울에서는 대한매일과 코리아 데일리 뉴스가 1907년 2월28일자 논설란에 트리뷴의 기사를 보도했고,헐버트가 발행하는 영문 잡지 ‘코리아 리뷰’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을 인용하여 한국 황제가 을사조약의 신빙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강요한 장본인이었고,한국에 통감으로 와있던 이등박문도 팔장을 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일단 고종의 밀서가 가짜라고 단언했다. 이등박문은 밀서에 대해 고종에게 자신이 직접 물어보았는데,황제는 즉석에서 부인하더라고 말하면서 이 문서가 아마 궁중 근처에서 나오기는 했겠지만 고종이 수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등방문으로서는 자신이 이러한 변명을 해야 하는 사실 자체가 몹시 곤혹스러웠다. 을사조약은 결코 일본의 강요에 의해서 체결된 것이 아니고,한일 양국이 자발적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해 온 근거가 흔들렸던 것이다. 그런 논란이 1년 가까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는데 대한매일이 고종의 밀서를 사진판으로 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의 독자들이 이러한 논쟁을 기사를 통해서 겨우 알 수 있었는데 대한매일은 고종의 밀서를 한 페이지의 좌우를 가로지르는 큰 사진판으로 실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미친 충격도 컸던 것이다. 당시의 신문은 사진을 거의 싣지 않는 때였다. 통감부는 하는 수 없이 한국 정부 외사국장(外事局長) 이건춘(李建春)을 시켜서 고종의 밀서 사진은 사실무근이니 이를 정정하라고 요구하는 공문을 대한매일에 보냈다. 그러나 대한매일은 밀서가 진짜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대한매일은 밀서가 거짓이 아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나 그 증거를 제시하면 관련된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보복이 떨어질 것이므로 이를 내놓을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이건춘의 명의로 온 기사 정정 요구를 일소에 부치고 묵살했다. 그러나 통감부로서는 대한매일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고종의 밀서 사건은 이와같이 1년에 걸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의 신문과 통신에 실리면서 이등박문의 입장을 난처하게만들었다. 일본은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 대한매일에 대한 근본적인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구하였다. 일본의 대응방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대한매일에 더욱 강력한 탄압을 가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의 논조를 무력화하고 마침내는 폐간시키려는 작전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통감부는 친일적인 한국어 신문을 지원하면서 하지(Hodge)라는 영국인이 발행하던 서울 프레스를 매수하여 통감부의 기관지를 만들어 대외홍보를 강화하였다.
  • 제2건국위 본격 가동­오찬 간담회 무슨 얘기 오갔나

    ◎金 대통령 “결단코 정치 이용 없다” 관개혁 선행 강조/邊 공동위원장 “세간 물의 일으켜 죄송” 깨끗한 활동 다짐/金 총리 “21세기 손색없는 조국 건설 도와 달라” 14일 金大中 대통령의 제2건국위 관련인사 초청 오찬 간담회는 오전 12시부터 시작됐다.이날 행사는 우선 金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이어 오찬 및 간담회순으로 진행됐다.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부터 30분 동안 邊衡尹 제2건국위 대표공동위원장으로부터 제2건국위의 활동 방향에 대한 건의를 받았다. 金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제2건국운동을 절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면서 민·관의 합심을 호소했다.특히,제2건국운동에서 무엇보다 관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金대통령과 참석자들간의 간담회 요지. ●金대통령=모든 분야에서 새출발을 위해 제2건국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조금도 흔들림 없이 이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이는 결단코 정치활동이 아닙니다.내가 일생의 소신을 바꿔가며 관변단체를 만들거나 정치에 이용하겠습니까.제2건국운동은 순수 민간,또는 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양쪽이 합심해야 합니다.또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이 개혁돼야 합니다. 관의 상층부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지만 중하위 공무원은 그렇지 않아 국민들이 이를 잘 느끼고 못하고 있습니다.과거에는 관은 관계없고 민간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국민 앞에 내놓고 관·민이 힘을 합쳐 개혁해야 합니다. ●邊衡尹 공동위원장=세간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변명하지 않겠습니다.앞으로 우리 할 일을 깨끗하게 해 나가겠습니다.23일 전체 보고회의에서 다시 종합적으로 보고하겠습니다.내년에는 이 운동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므로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십시오. ●金鍾泌 총리=제2건국운동은 대통령께서 강조했듯이 순수한 국민운동입니다.21세기에 손색없는 조국을 만들려는 대통령의 의욕에 여러분의 정성어린 도움을 바랍니다.국민의 이해 속에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을 정당하게 이끌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趙完圭 공동위원장=제2건국운동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정리했습니다.정치적 이용 운운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개혁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과제를 발굴하면 국민들도 따라올 것입니다. ●韓相震 위원=제2건국은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그러나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제2건국 이념의 근거를 삼기 위해서는 신뢰가 중요합니다. ●楊淳稙 공동위원장=이제 시대적 변화도 있어서 민주주의의 이념, 국체에 대한 국민의식이 결여돼 있습니다.외국은 초등학교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있습니다.제2건국운동을 위해서 우리도 이같은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姜汶圭 공동위원장=순수하게 기본을 바로 세우는 국민운동을 우리는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대통령께서 제2건국운동의 7대과제를 설정해주셨는데 그 다음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국민과의 연결고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고 접근해야 합니다.잘못하면 하향식의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金光雄 위원=공공부문 지도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잘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표창 뿐만 아니라 성공사례도 발표해서 사기를 진작시킬 때 개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통령=처음 제2건국운동을 말하면서 국민운동본부를 조직할까도 했지만 정치적 목적이란 오해가 있어 지금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그러면 의식개혁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공무원의 개혁은 사정과 표창의 방법이 있습니다.그러나 자발적으로 깨끗하고 능률적인 공무원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의식개혁이 중요합니다.공무원 의식개혁 하나만 잘돼도 50년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며,그러면 국민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베트남을 다녀와 만날까도 했지만 중요한 일이어서 먼저 뵙고 떠나고, 23일 좋은 안을 논의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 日 민주당 지지율 ‘날개없는 추락’(뉴스 인사이드)

    ◎12월 지지도 11%… 10월보다 10%P 떨어져/간 나오토 대표 불륜스캔들 영향 유권자 등돌려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제1야당 민주당의 지지율이 날개를 뗀듯 추락하고 있다.9일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실시한 1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유권자의 민주당 지지도는 11%로 지난번 10월 조사때의 21%보다 무려 10%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날 도쿄신문의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도는 9월 조사때보다 6%포인트 하락한 16.8%.정당 지지도가 두달새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극히 드문 일.지난달 주간 분슈ㄴ(文春)이 폭로한 민주당 간 나오토(菅直人)대표의 불륜스캔들 영향이 크다.민주당은 자민 자유당의 연립 정권 합의 이후 야당 공조가 균열조짐을 보이는 데다 지지율 급락마저 겹쳐 내년 봄 통합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초상집 분위기다.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간 대표가 “나에 대한 평가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진단한대로 자체적으로도 그의 불륜스캔들이 여론악화를 주도했다고 분석하고 있다.간 대표는 지난달 12일 주간 분슈ㄴ이 전직 TV캐스터인 도노모토유코(戶野本優子·32)와의 섹스스캔들을 보도한 1주일 뒤 “(그녀와) 업무상의 관계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해명했다.그러나 ‘궁색한 변명’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정치인의 불륜 스캔들에 비교적 관대했던 일본 유권자 의식에 변화의 조짐마저 감지된다. 간 대표는 지방을 돌며 스캔들 보도를 부인했으나 간대표에게 되돌아온 것은 더욱 냉담해진 유권자들의 반응뿐이었다. 반면 자민당은 모처럼 희색이 만면하다.7일 NHK방송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11월에 비해 4%포인트 오른 24%를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내각은 물론이고 자민당 지지율마저 동반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방위력 사업’ 전면 재검토를(사설)

    비리와 부정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방위력개선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이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무기나 장비의 기종선정부터 도입,부품구매에 이르기까지 어느곳 하나 비리나 부정이 끼이지 않은 데가 없지 않느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32개 방위력 개선사업 중 29개 사업에서 부당사항들이 적발됐다.2달러 남짓한 부품을 300배 이상이나 비싸게 사들여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는가 하면 국내 방산(防産)업체로부터도 바가지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음성정보 정찰기 도입은 기종과 장비가 모두 요구되는 성능에 맞지않고 기뢰부설함사업은 성능시험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일부 장비를 도입하여 작전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매년 국방예산의 30%에 해당하는 4조원 정도를 쓰고있는 방위력 개선사업을 눈을 감고 집행하고 있는지,아니면 알면서도 뒷거래로 적당히 넘기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감사 결과 또 한가지 놀랄 일은 문민정부 말기인 지난해 12월에는 대통령의 재가사항인 중기(中期)계획을 청와대의 축소지시에도 불구하고 국방장관이 전결로 처리했다는 사실이다.당시 정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지만, 방위력개선사업 집행이 기밀보안을 이유로 그동안 제멋대로였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은 국제무기시장에서 이미 부정거래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어수룩한 봉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결과 말고도 문민정부 초기 요란한 율곡사업특감이 있었고 지난 국정감사때는 UH60헬기 고가도입을 비롯,P3­C 대잠초계기 거액커미션,백두사업등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됐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군 수사기관만 아니라 다른 사정기관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방위력 개선사업과 관련된 모든 부정과 비리의혹을 철저히 수사하여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아울러 이 사업의 계획과 집행과정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여 부정과 비리가 끼어들 소지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말썽이 일어날 때마다 무기정보 수집능력이약하고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변명만 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더 이상 아까운 혈세의 낭비를 없애야 할 것이다.방위력 개선사업의 비리가 계속되는 한 튼튼한 국방은 기대할 수 없다.
  • ‘경제청문회 목적’ 꼭 달성해야/朴相基 연세대 교수·법학(기고)

    여·야당은 金泳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아직 일정과 증인채택 범위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으므로 실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국회가 갖고 있는 권한인 청문회를 국회의원들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이를 무산시킬 명분도 없다. 또한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국가적 피해가 막대할 경우 이에 대한 원인분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해 국정조사권이 있는 것이고 그 한 방법으로 청문회제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문회개최보다 중요한 것은 청문회를 통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환란의 주역이나 정경유착의 장본인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변명과 책임전가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청문회 폐지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청문회의 성공 여부는 뚜렷한 목표설정과 국회의원들,특히 여당 국회의원들의 능력 및 자세에 달려 있다. 만일 청문회가 정책실패에 대한 원인규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모든 책임이 여당측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거 우리는 5공 시절의 주인공들을 불러 청문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문제도 많았다. 그러나 무한권력이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하였다. 이번의 청문회는 IMF구제금융 신청과정을 비롯하여 기아,종금사 인허가,한보문제 등에 대한 정책결정과정이 정경유착,대통령의 무능,정책결정권자들의 무책임이 결합된 것이라는 일반의 추정을 확인해보는 작업이어야 한다. 철저한 준비작업없는 청문회는 증인들에게 농락 당하기 십상이다. 전문적인 자료준비는 물론이고 청문회 진행상의 기법까지도 포함하는 준비작업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사회자나 질문자의 한마디 말까지도 중요하다. 또한 선거법위반 등 형사사건이 계류중인 의원을 위원회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스타’가 되고자 한다면 감정 과잉보다는 품위와 수준,전문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은 이 모든 것을 평가하기에 충분히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 외채통계 수정작업 전말/‘외채집계 잘못’ 한은서 처음 발견

    ◎IMF 요구 반영아닌 순전히 자체 판단/한은 작업결과 한마디도 언급못해/대외신인도 감안 3개월동안 극비작업 외채통계의 수정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을까. 정부가 대외 신인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국은행을 통해 3개월간 극비 속에 작업했기 때문에 속사정이 자못 궁금하다. ●재경부의 궁색한 변명 재경부는 지난 18일 외채통계 수정작업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정작업 배경과 전망을 두가지로 설명했다. “IBRD(세계은행) 관계자가 외채통계 편제를 검토해 본 뒤 실사를 권고했다” “왜곡됐던 숫자가 바로 잡히면서 총외채가 이미 발표했던 규모보다 커졌지만 정부가 외채통계를 바로잡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에 신용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IBRD권고 아닌 한은작품 이번 작업을 주도했던 한은 국제부 관계자는 “IBRD나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외채통계 수정작업을 권고한 적은 없다”며 “회계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IBRD 등에서 미세한 부분까지 이래라 저래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이번 작업은 한은이외채통계를 점검하다 문제를 발견,재경부에 수정을 건의했으며 재경부가 받아들여 이뤄졌다는 얘기다. 한은은 당초 재경부와 함께 작업결과를 발표할 복안이었으나 단한마디도 언급도 하지 못한채 넘어갔다. 정부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체판단의 수정은 전례없는 일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국내은행 해외지점이 현지에서 조달하는 역외금융을 외채에 포함해 매달 공표해 왔다. 용어도 총외채 대신 총대외지불부담으로 바꿨다. IMF가 지난해 12월 국내은행 해외지점이 현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본점에서 해결해 주는 특수성을 감안,논리는 맞지 않지만 역외금융을 외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문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미 공표했던 외채통계는 IMF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나 이번 작업은 순전히 우리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업에서 96년 말 현재 외채규모까지 수정한 점으로 미뤄봐도 잠정치를 확정치로 바꾸기 위한 단순작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생산적인 경제청문회 되도록(사설)

    국민회의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10일 청와대 회담을 통해 정국을 정상화하고 경제구조 조정 등 경기회복에 적극 협력키로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의 첨예한 대치정국 해소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한다. 그동안 대결양상으로 일관했던 여야가 오랜만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경제회생과 민생안정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두 총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야협의체 구성과 민생관련 법안의 회기내 처리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5개항의 합의사항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정치권이 당파를 초월해서 더이상 경제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국난극복의 협력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경제청문회를 여야합의에 의해 실시키로 한 것이다. 이번 여야 총재회담의 성사여부가 걸렸을 만큼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청문회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몰고 온 정책오류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러한 국난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데 초점을 모으려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외환위기를 비롯,재벌기업들의중복·과잉투자와 대외경제정책등 주요과제들을 청문회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 그러나 야당측은 청문회를 통해 새삼 경제실정의 주범으로 각인되는 것을 크게 경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청문회 대상과제나 소환될 증인의 범위 등 실무적인 문제를 놓고 여야간의 이견이 불가피하고 청문회가 진행되더라도 책임공방이 심화돼 본래의 취지가 퇴색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경제청문회가 행여 또 다른 정쟁(政爭)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여야 모두 정책실패의 원인규명과 개혁의 교훈을 얻는 데 힘써야할 것임을 강조한다. 특정 개인의 비리를 캐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것이 아니라 대승적(大乘的)차원에서 건전한 국가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는 뼈저린 반성의 기회로 삼고 값진 교훈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의 경우 갖가지 원인(遠因)이 있다고는 하지만 단기적 처방이나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이미 검증이 끝난 사실임이 인식돼야 한다. 수백억달러의 경상수지적자 상태에서 외환자유화 조치를 가속화한 점이나 지난해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만을 기다리다 실기(失機)한 사실 등의 변명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생산적인 청문회로 과거의 실책을 빨리 마무리하고 경제회생을 앞당기도록 정치권에 바란다.
  • 공무원증 넉달만에 또 바꾼다니…

    ◎행자부 근시안적 행정… “예산만 낭비” 비난 행정자치부가 지난 7월 새로 만든 국가 공무원증을 불과 4개월여만에 다시 바꾸기로 해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행자부는 최근 공무원 신분증 뒷면에 성명란을 추가로 만들기로 했다.현행 신분증은 앞면에 이름이 있고 뒷면에는 소속기관과 직급·직위만 기록돼 있다.신용대출을 위해 금융기관에 앞뒷면이 다른 신분증을 복사해 내더라도 적발되지 않는 등 금융사고가 빈발해 신분증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게 행자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행자부의 이같은 해명은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4개월 전 신분증을 바꿀 때 충분히 예상됐던 문제였다. 행자부는 공무원증이 권위주의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따라 그동안 사용해 오던 공무원증을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정부 출범에 맞춰 7월1일부터 현행 공무원증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행자부는 당시 공무원증 분실 등 필요할 때만 교체하겠다고 했다.예산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실제로는 행자부 본부 직원 800여명의 신분증을 모두 바꾼 것을 비롯,대다수 부처에서 일괄교체했다.결과적으로 적지않은 예산만 낭비한 셈이다. 공무원들은 “교체비용이 개당 270원밖에 들지않았다고 실무자들은 변명하지만 무사안일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쳐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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