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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란으로 바위치기’ 의료소송

    ‘계란으로 바위치기’ 의료소송

    “우리나라 법치의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아십니까? 바로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법과 제도가 덤터기 씌우는 부당한 판정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의료사고 말입니다.”의료사고.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더 큰 병을 얻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를 이르는 이 말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선고’나 ‘파국’의 다른 말쯤으로 각인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듯 의료사고는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한 일방통행식 폭력의 성향을 갖는다. 이 공공연한 폭력성은 대부분 제도권 내에서 형성된 ‘침묵의 카르텔’이 주도해 왔으며 피해자는 힘없는 ‘개인’들이었다. 그 ‘개인’들이 이제야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그들이 뭉쳐 제도권 내에서 공공연히 빚어지는 의료사고의 가해자 찾기에 나선 것.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는 의료소비자의 주권과 참의료 실현,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 결성된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의시연)’ 출범식이 있었다. 이 단체는 지난 2001년 몇몇 의료사고 피해자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회 인사들이 모여 만든 ‘의료사고 시민연합’이 모태가 됐다. 이 단체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한 강태언(42) 의시연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런 폭력이 없어야 하며, 있다면 그 진실이 한 점 의혹없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으나 공정한 법적 절차에 의해 피해를 구제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정부에서도 이 사안을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의 의료사고 현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설문과 의료소송 관련 감정신청 건수, 의료분쟁 관련 민원을 종합해 연간 5000건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2000년 병원 입원환자 중 최고 9만 8000명 가량이 의료 과실로 사망한 점 등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50만건, 많게는 100만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물론 통계는 없다. 의료사고는 병원과 의료인의 부적절한 치료행위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병원 내 감염, 응급의료사고, 약물에 의한 약화사고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인데, 본인이 모르는 경우도 허다해 통계 산출이 어렵고, 그나마 국가기관에서 그런 실태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병원 감염사고만 해도 그렇다. 우리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미국에서도 연간 200만명 이상이 병원에서 감염돼 이중 10% 정도는 목숨을 잃고, 여기에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도 연간 50억 달러를 넘는다. 우리나라도 응급실에서 숨지는 환자 2명 중 1명은 죽지 않아야 될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는 병원들이 수익을 내세워 응급실에 전문의 대신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집중 배치해서 생기는 오진과 응급처치 과실 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지난 95년 의료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6년간의 소송 끝에 본안소송과 의료비 소송을 모두 이겼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더는 되새기고 싶지 않다며 이해를 구했다. 강 국장은 현재의 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문제도 지적했다.“재판부가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없어 사안에 대해 외부에 감정을 의뢰하는데, 여기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의사들이다. 그러다 보니 뻔한 사안, 즉 일주일이면 나올 감정의견이 1년 후에 나오기도 하고, 의사들도 대부분 진실 규명에 비협조적이다. 어차피 같은 부류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례는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의사조직의 폐쇄성도 의사들의 양심적인 감정을 막는 장애물이다. 게다가 판결에 절대적인 증거도 거의 병원 측이 독점하고 있어 여기에 개인이 맞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의료분쟁 조정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가 병원이나 의사들에 의해 악용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재판 과정에서 병원측 과실이 드러날 상황이면 병원이나 의사들은 기를 쓰고 이 제도를 이용하려고 든다. 재밌는 현상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례를 만들기보다 차라리 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89년 의료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안한 의료분쟁조정법도 16년째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그 법안이 또 웃긴다. 이게 무과실 보상제 등 의료인들 보호에 편중돼 의사와 병원 안전에만 포커스를 맞춰 놨는데, 그러고도 이걸 통과시키지 못해 14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아마 이 법안이 채택됐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책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더 이상 의료분쟁의 감정을 같은 부류인 의사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당연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정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지만 있으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것 말고 공정성을 담보할 대책은 없다. 또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인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에도 흔한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의료분쟁에 있어 사실은 어떤 주장이나 논리보다 중요한 것 아닌가. 이렇게 한 뒤에 의사들이 면책논리를 내세워야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런 견해도 내놨다.“특히 잦은 분만 사고의 경우 태아 심박동그래프기록만 보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우리나라는 이의 법정 제출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명백한 의료과실로, 의사가 잘못을 인정한 사안조차도 재판에서는 병원이 이긴다. 의료 사고로 미숙아가 됐는데, 재판부는 미숙아여서 생긴 문제라고 보는 식이다. 이 때문에 가슴을 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더는 우리 사회에 돈과 권력의 ‘카르텔’이 자행하는 의료사고라는 폭력은 없어야 한다는 그는 대부분의 의료사고와 분쟁이 의사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인 만큼 앞으로 이를 바로 잡는데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그는 조카를 의료사고로 잃은 한 젊은 의사의 편지를 소개하며 말을 맺었다. 한사코 공개를 꺼린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소송을 진행해 오면서 의사협회의 제 식구 감싸기식 객관성이 결여된 답변 내용, 피고 의사의 파렴치한 거짓말, 사고 조작 등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달아…. 젊기에 분노했고, 의사였기에 의사의 잘못과 파렴치한 변명을 쉽게 알아채고 더 철저하게 따져왔지만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난 뒤 오히려 더 쉽게, 더 크게 좌절하고….”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아들 뇌병변 장애 4년소송 패소한 송인주씨 송인주(여·40·가명)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제기한 의료분쟁 소송에서 패소했다. 지난 2001년 2월에 낸 아들 유섭(7·가명)의 뇌병변장애가 의료진의 과실이라며 마산 F병원(현재는 창원으로 이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병원측 손을 들어줬다. 송씨는 그 판결에 대해 “지금도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하다.”며 울먹였다. 종합병원의 수간호사로, 결혼 후 슬하에 1남1녀를 둔 송씨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유섭이를 가진 지 31주 되던 지난 99년 6월 무렵이었다. 갑자기 복통 증세를 느껴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 M씨는 태반 조기박리와 복막염이라며 수술을 권했고, 그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임신 31주 5일 만에 유섭이를 미숙아로 출산했다. 그는 “내가 간호사였지만 그 때는 의사의 진단을 믿었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왔다. 간호사로 차트 읽기에 능숙한 그가 우연히 자신에게 태반조기박리는 없었으며, 복통도 복막염이 아닌 단순한 대장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는 그때까지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인큐베이터에 있던 유섭이에게 산소부족으로 보이는 청색증이 나타났다. 송씨는 “뒤늦게 인큐베이터 산소공급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안 병원측이 무려 2시간 반 만에야 인공호흡을 시켰다.”며 “산소가 2∼3분만 공급되지 않으면 뇌사상태에 빠지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먼저 태어난 두 아이는 건강하며, 유섭이의 병증을 의심할 만한 어떤 가족력도 없었다. 유섭이는 조기출산한 미숙아였지만 의사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할 만큼 건강이 좋아 출산 직후 신생아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아프가(APGAR)지수가 정상 범주인 7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유섭이는 병원에서 정상적으로 퇴원했으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긴 송씨에 의해 이듬해인 2000년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송씨는 “지금도 그 때의 청색증과, 청색증 원인인 인큐베이터의 산소공급 중단이 문제라고 믿고 있다.”며 “이런 확신으로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그 후,4년여를 끌어온 소송에서 패한 뒤 그는 항소를 포기했다. “그 판결 이후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게 한없이 고통스럽고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송씨는 “법원은 마땅히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며, 법원의 양심은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이어야 한다.”며 “비록 나는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셈이 됐지만 나같은 억울한 사람이 해마다 수십만명씩 새로 생기는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의료인과 법조인의 양심을 믿지 못하고, 정부의 존재를 비웃는 나라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잊고 싶으며, 유섭이 같은 아이들이 최소한의 재활훈련과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력에 걸맞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춰주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얘기하는 동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野 “이광재가 유전사업 제의” 李 “증거대라”

    野 “이광재가 유전사업 제의” 李 “증거대라”

    한나라당은 10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철도공사에 러시아 유전사업 참여를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이 의원의 ‘개입 의혹’ ‘지원설’은 제기됐지만, 사업 참여를 제의했다고 폭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한나라당은 “감사원이 이미 작년 11월 이번 사업에 대한 우리은행 대출과정의 문제점을 포착, 감사에 착수했으나 이를 중단했다.”며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러시아 유전개발의혹 진상조사단(단장 권영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8월12일자 철도공사 회의자료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나라당이 공개한 ‘사할린 유전·정유사업에 대한 설명·토론회 의사록’ 자료에 따르면 당시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사업내용을 보고하면서 “유전사업 참여동기는 이 사업을 주도하는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에서 청에 사업참여를 제의,RISK(위험) 보상 차원으로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를 역제의한 상태(유전사업 불참시 건자재 사업은 포기)”라고 나와 있다.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장인 권영세 의원은 “보고서 내용을 보면 이광재 의원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은 깊숙이 관여한 게 확실하다.”면서 “이밖에 북한 건자재 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여권의 다른 실세 등도 관여한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 의원은 작년 11월30일자로 감사원이 우리은행에 보낸 ‘감사자료 제출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한 뒤 “감사원은 이미 지난해 11월 이전 이 사건을 알고 감사에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감사원측은 “특감을 중단한 적은 없으며 조사일정이 지연됐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광재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한나라당에 대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나는 외교안보위가 아니라 산자위 소속 위원이고 국회에는 외교통상위가 있지 외교안보위도 없는데 이는 문건 내용이 부정확하고 누군가가 나를 팔고다닌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철도공사가 누구로부터 제의를 받고, 누구에게 (북한 건자재사업을) 역제의했는지를 분명히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이날 이번 파문과 관련한 한나라당의 특검 요구 등의 움직임과 관련,“한나라당은 관련 의혹을 검찰에 맡기고 더이상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종수 문소영기자 vielee@seoul.co.kr
  • 신화작가 이윤기 산문집 ‘시간의 눈금’

    신화작가 이윤기 산문집 ‘시간의 눈금’

    지난해 초겨울 즈음이었나.‘신화 작가’ 이윤기(58)와는 도통 연락이 닿질 않았다.“휴대전화도 놔두고 산 속으로 글 쓰러 갔다.”는 가족의 변명 같은 전언만 들었을 뿐. 그렇게 겨우내 시간을 쪼개 손질해낸 작품이어서일까. 새로 내놓은 산문집 ‘시간의 눈금’(열림원 펴냄)에는 그가 ‘관록의 자’로 가지런히 정렬한 사유의 흔적들로 꽉 찼다. 그런데 신기하다. 작가의 신변잡기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의 외양은 반듯반듯 줄을 섰는데, 사유의 반경은 더없이 분방하다. 일곱 번째인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은 모두 53편. 틈틈이 여투어 두었거나 여러 지면에 실었던 것들을 한데 묶었다. 맺힐 것 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속에서는 소설가, 신화학자, 번역가로서의 작가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화제들이 연달아 바통 터치한다. “천년 혹은 이천년 전 이야기를 읽어야 행복감을 느낀다.”고 스스로 단언하듯 신화학자로서의 치열한 사유 흔적이 맨먼저 시선을 뺏는다. 신화가 시간이 흘러흘러 문화로 굳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웅변하는 것도 그대로 ‘이윤기 스타일’이다. 예컨대 혼자 몸으로 ‘하늘님’의 아들 셋을 낳아 지탄받았던 몽골 전설 속의 여인 ‘알랑 고아’(작가의 몽골 애정은 매우 각별하다.) 이야기. 이 신화적 모티프가 후세에 다른 공간들에서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얼마나 다른 문화로 모양새를 바꾸는지, 해박한 신화지식을 동원해 결론을 끌어내는 식이다. 생명과 문명의 시원을 생각하는 글이 없을 리 없다.“마른 말똥을 주워 불을 피우고 밥을 데워 먹어도 나는 조금도 초라해지지 않는다.”고 느낀 몽골의 한적한 초원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AD와 BC 같은 건 잊어버릴 것”을,“온가슴으로 고대와 만날 것”을 권한다.“변하지 않는 것은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고 ‘장차 올 과거’이기도 하다.”는 작가는 그 자신 “어제와 내일이 혼재하는 시제, 즉 ‘예스터-모로(yester-morrow)’를 살며 어제와 내일의 이음새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허락을 받아 작가의 서재 이곳저곳을 뒤져보는 듯싶을 때도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았다는 동몽골 초원의 청명한 코호르 강 등 여행길에서 손수 찍어모은 사진들도 간간이 보인다.1남1녀를 ‘트랜스 플랜테이션’(그가 이름붙인 이른바 ‘자식 옮겨심기’)에 성공한 그 나름의 ‘자유방임형’ 교육방식과 가족관(89쪽),3년 전부터 양평 시골집 텃밭에다 “회초리 같은 묘목”을 심으며 땀의 진가를 배운 노동예찬(246쪽) 등은 작가 삶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는 글들이다.9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천국보다 낯선/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수업시간에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라고 무심코 말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반론을 제기했다. 요즘 세대에게 헉슬리의 세계는 유토피아처럼 보인다고 했다. 생각을 요하는 대목이었다. 무스타파 몬디가 통치하는 멋진 신세계는 카스트 사회이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 그것이다. 엡실론은 매사에 열등한 천민이다. 마땅히 불행해야 할 그들은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들은 신분질서 속에서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유롭고 평등하다.’ 교육과 계몽에 의해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면서 현재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생명공학에 힘입은 신세계의 통치자는 자신이 원하는 신분질서를 애초부터 단숨에 프로그램하는 것이 가능하다. 신분에 맞춰 프로그램된 인간들은 자기 현실에 불평을 토로하거나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다. 신분상승의 욕망 자체가 오작동이기 때문이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 여자들은 예순이 되어도 열일곱 살의 피부와 탄력성을 유지한다. 요즘 드라마에서 여자들은 스물아홉 살도 끔찍해서 열여덟 살로 퇴행하고 싶어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나이든 여자에게 보낼 수 있는 찬사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것뿐이다. 젊음만이 숭배받는 시대에 젊어지려는 욕망은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나이든 여성들은 행여 주접이라고 할까봐 질병이라는 면죄부로 성형을 윤리화한다. 눈꺼풀이 처져 눈썹이 안구를 찌른다. 아파서 자식들 고생시키는 것보다 처진 눈꺼풀을 쌍꺼풀로 만드는 게 여러모로 낫다는 것이 느지막이 성형한 여성들이 주로 하는 변명이다. 어쩌다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특정한 여성들에게는 세월이 비켜가고 있었다.‘봄날’의 고현정은 1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래시계’의 고현정보다 더욱 어려 보이고 아름답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사랑공감’의 이미숙은 ‘겨울나그네’(1986년)의 이미숙보다 더욱 젊어 보이고 우아하다. 사반세기가 흘렀는데도 그녀의 얼굴은 세월을 역행하고 있었다. 세월은 가도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은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물론 이들 여성은 육체를 자본으로 하는 스타들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한 맥주 광고는 ‘나 오늘 쌍꺼풀 했다, 축하해야지.’라는 카피를 내보냈다. 작년 연말 대학 입시부정이 전국을 떠들썩하도록 만들었다. 조직적인 휴대전화 입시부정뿐만 아니라 수공업적인 대리시험도 있었다. 교육부는 원서에 붙은 사진을 대조하여 얼굴이 전혀 다른 19명을 애써 적발했다. 그 중 1명만 대리시험자이고 나머지는 전부 본인들이었다. 성형과 포토샵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처럼 성형은 특정 연예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부처에서부터 ‘남녀노소상하’ 불문하고 전국민적 운동이자 산업이 되었다. 딸이 되고 싶은 엄마들, 아들이 되고 싶은 아빠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육십대이지만 십대의 아름다움을 가진 레니나는 아들 세대와 사랑에 빠진다. 따지고 보자면 시간이 멈춘 곳에 세대가 있을 수 없고 세대가 없는 곳에서 아들 세대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동시대인이자 동세대들이다. 세대 구분이 없는 곳에서 근친상간, 원조교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무력과 무능의 전시에 불과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주름살 사이에 삶의 이야기가 없는 무역사적인 동안(童顔)들을 보고 있으면 기묘한 느낌이 든다. 천국에는 시간이 없다. 시간과 역사가 멈춘 곳이 천국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모두 시간이 멈춘 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시간이 동결된 얼굴들은 천국보다 낯설다. 낯선 천국보다 친숙한 지옥이 그나마 편안하다면, 나에게 헉슬리의 세계는 여전히 디스토피아이다. 아니면 유토피아를 보지 못하는 내 맹목과 무능에 대한 변명일까?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나의 삶, 나의 아침/허중희 지음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아침형 인간’이 선진 시민사회의 대세처럼 여겨졌었다.“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서양의 격언을 체화시킨 이들 ‘아침형 인간’에게 ‘아침잠이 보약’이라는 범인들의 반박은 그저 게으른 자의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었다.‘아침형 인간’의 갑작스러운 유행은 사람마다 제각각인 신체 리듬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성으로 인해 안티 세력을 만들어냈고, 더 나아가 ‘저녁형 인간’을 옹호하는 세력을 규합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삶, 나의 아침’(허중희 지음, 황금물고기 펴냄)은 ‘아침형 인간’붐을 주도했던 관련 서적들의 출간이 뜸해지는가 싶던 차에 나온 책이다. 유행과 상관없이 평생 새벽 기상 습관을 유지해온 각계 명사 16인의 아침시간 활용법과 인생 철학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보통 새벽 4∼5시 사이에 일어난다. 특별히 뭔가 할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일상이다. 어머니의 새벽기도에 덩달아 눈을 떴고, 대학생때는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느라 새벽 잠을 놓쳤던 것. 그는 아침형 인간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자신의 신체 리듬을 잘 활용해 깨어있는 시간에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벤처업계의 신화인 정문술 미래산업 전 회장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잠을 깬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배달된 일곱 종류의 조간 신문을 통독하는 것. 하루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구상하고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강지원 변호사는 원래 밤에 늦게 자고, 아침잠을 즐기는 올빼미형이었다. 그러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을 맡은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오전 6시25분부터 시작되는 방송을 위해 하늘이 두쪽 나도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아침형 인간’으로 변한 경우. 그는 아침이 주는 신선함과 여유를 사랑하게 됐고,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하나 둘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교수는 “늦잠을 자는 사람은 새를 알지 못한다.”고 단언한다.40년 넘게 새와 함께 해온 자신의 인생은 아침이라는 고요하고 풍요로운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자부한다.‘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박사는 저녁에 소식하면 단잠을 자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잠을 설쳐가면서 일찍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잠이 부족할 경우 뇌건강이 나빠지고 치매도 빨리 찾아온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책에는 이들외에 송자 대교회장, 산악인 엄홍길, 방송인 배한성, 수필가 피천득, 조동성 서울대 교수, 연극인 유인촌, 국회의원 박찬숙, 연극연출가 이윤택, 여성 인권지킴이 김강자, 옥수수 박사 김순권, 만화가 신문수씨의 생활습관과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잭 웨더포드 지음

    “등 위에 올라탄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고 싶은 대로 질주하는 말의 눈에 나타난 표정을 생각해 보라.”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묻는 저자 잭 웨더포드의 질문에 대한 한 몽골 학생의 대답이다. 테무진은 너무도 유명한 칭기즈 칸의 본명. 아마도 칭기즈 칸의 생애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설명은 찾기 힘들 듯 하다. 꼼꼼한 답사와 고증을 거친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정영목 옮김, 사계절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제목(원제 ‘칭기즈 칸과 근대세계 형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서구의 시각에서 칭기즈 칸과 그 후손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그러나 저자의 접근법은 ‘야만과 공포’를 강조하는 서구의 기존 접근법과 다르다. 이를테면 ‘내재적 접근법’에 가깝다. 번개 같은 기병으로 약탈과 방화만 일삼았던 잔혹한 몽골군이라는 표면적 인상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를 유지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보기에 몽골군의 잔인함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됐다. 몽골군은 다만 굴복시킨 적 가운데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구분, 쓸모없는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쓸모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권력, 돈, 지식을 가진 사람들, 바꿔 말해 지도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반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도 이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기록에는 이들의 호들갑과 공포, 동시에 자신들의 무능함과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과 책임회피가 가득할 뿐이다. 또 결정적으로 몽골은 쇠망했고 지금은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다. 중국도, 유럽도, 인도도, 이슬람도, 그 어느 누구도 몽골을 좋게 말할 리 없다. 오죽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우르크하이가 몽골군을 상징한다는 해석까지 나왔을까. 저자는 잔혹함보다는 칭기즈 칸이 부린 ‘통합의 마술’에 주목한다. 무기는 비밀리에 전해오던 몽골왕실의 기록 ‘몽골비사’와 수년간 직접 몽골을 둘러본 ‘현장답사’의 경험이다. 칭기즈 칸은 떠돌이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혈연관계를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이 관계가 혈연관계와 똑같을 수 없다. 여기에는 100% 계약의 개념이 개입한다. 칭기즈 칸은 대내적으로는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거의 균등한 분배체계를 갖춘다. 대외적으로도 주변국들과 이런 관계를 철저히 지킨다. 항복하면 안전을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처절하게 짓밟는다. 이 와중에도 지배층과 군인은 죽이되 나머지 피정복민은 양자 입적과 혼인 등의 방식으로 몽골에 동화시킨다. 자기네 왕에게 억압당하던 피정복민들에게 몽골이 제공하는 것은 평등한 분배체계의 혜택과 정치적 안정이었다. 이는 칭기즈 칸이 대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침략과 야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칭기즈 칸 본인도 법에 따른다는, 일종의 법치주의 선언도 한다.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출신에 따른 차별 금지, 완전한 종교의 자유 보장, 필수 공익사업자에 대한 면세 조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폭발적인 힘은 분배체계의 개선을 통한 단합에서 나온 셈이다. 이런 서술을 쭉 읽다 보면 칭기즈 칸의 통치기술은 놀랍게도 로마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혈연관계의 확장이나 피정복민 융화정책, 교통과 통신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 여기에다 대제국 건설에 앞서 몽골의 지배권을 두고 20여년 동안 대립한 자무카와 칭기즈 칸의 얘기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관계와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 물론 이런 거창한 얘기만 담긴 것은 아니다. 저자의 전공이 부족민연구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몽골인에게 말총과 남자의 허리띠는 어떤 의미인지, 결투를 할 때 씨름하는 것과 칼을 꺼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각종 설명이 양념처럼 곳곳에 배어 있다.1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재승박덕? 개혁 파괴력? 유시민 왜 싸우나

    재승박덕? 개혁 파괴력? 유시민 왜 싸우나

    “유시민은 어떤 사람이에요?” 기자는 개인적으로 20∼30대들한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만큼 유시민이란 정치인에 대한 젊은층의 호감도는 높은 편이다. 특히 최근 열린우리당 의장 경선에 출마한 유 의원이 정동영계에 ‘선전포고’를 한 뒤에는 ‘유빠’(유시민 오빠부대)들의 숨이 한층 거칠어졌다. 질문은 “유시민이 1등할 수 있나요.”로 ‘업그레이드’됐다. ●‘유빠’ 들 “유시민이 1등 할 수 있나요” 그러나 유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정치권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급락한다. 기자가 전수(全數)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사석에서 유 의원을 호평하는 의원을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김현미 의원이 “유시민을 지지하는 의원은 5명도 안된다.”고 한 것도 과장은 아닌 인상이다. 의원들은 유 의원을 싫어하는 근거로 주로 인격적으로 모욕을 가한다든가 잘난 체를 한다든가 하는 ‘인간성’을 거론한다. 지난해 총선 때 비례대표 출마자 A씨는 흥분한 채 유 의원을 비난하는 모습을 기자에게 내보인 적이 있다. 비례대표 순위 결정 투표 전날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유권자인 유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뜸 “나는 내일 투표 안 할 거니까 이런 전화 할 필요 없어요.”라는 매몰찬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이강래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유 의원이 의총에서 다른 사람 발언 도중 소리를 지르고 연장자에게 면박을 주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런 유 의원에 대해 “100m 미인”이라고 꼬집는다.“유 의원을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사람들은 그의 달변과 개혁성을 높이 평가하겠지만, 가까이서 직접 겪어본 사람들의 평판은 대체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의원들 다수가 反유시민 하지만 유 의원은 지난 29일 이런 숱한 비난을 불식시킬 정도의 ‘눈물어린’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유 의원은 “글로 옮기기 민망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 분이 있다. 어떤 분이 어떤 말을 하고 다녔는지 알 만큼은 안다. 나는 그분들에 대해 한 마디 변명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경쟁후보의 인격적 특성을 공격하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와 싸우는 선거에서도 잘 쓰지 않는 반칙이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동영계 적대 발언 이후 유 의원은 당내 다수의 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유 의원의 파괴력이 그만큼 간단치 않다는 얘기도 된다. 우선 정동영·김근태 등 차기 대권주자들은 유 의원이 ‘호랑이’로 크지 않을까 잔뜩 경계하는 눈치다. 중진들은 비타협적 개혁성향을 보이는 유 의원이 약진할 경우 퇴진압력을 받는 상황을 그리고 있을 법하다. 특히 ‘차차기’를 노리는 전대협 출신 등 386운동권들이 나이와 학생운동 경력 등 ‘상품성’이 겹치는 유 의원 비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정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성매매 여성 구출 외면한 경찰

    서울 하월곡동 ‘미아리 집창촌’화재가 나기 전날 성매매여성의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전화가 경찰에 걸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만 제대로 다뤘어도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피해자는 누구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정신지체장애자였다. 그런데도 경찰은 형식적 조사만 하고 피해자와 업주를 업소로 돌려보냈다. 불법 영업을 조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은 “성매매여성 가운데는 글자도 모르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흔하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더욱 고약하다. 의사표현이 분명치 않을수록 더욱 강도 높은 진실규명 노력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못 배웠다는 편견을 갖고 인권마저 가볍게 봤다면 이게 어디 제대로 된 경찰인가. 경찰은 당연히 장애자인 피해자를 업소가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윤락행위법 등 전과 십수범인 업주는 입건이 아니라 구속수사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져 군산 대명동, 개복동 화재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고자 성매매특별법을 만들어놓고도 또다시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한 기막힌 꼴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긴급구조 수사를 소홀히 한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함께 성매매특별법 시행 6개월만에 ‘사문화’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성매매 단속의지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성매매법은 부작용 우려도 많았지만 성매매업소가 40% 감소하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사법당국의 일관된 정책의지를 기대한다.
  • [사설] ‘경찰은 실종신고에 관심없다’

    집앞에서 실종된 항공사 여승무원이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경찰이 ‘실종’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다시금 보여준다. 이 사건 경과를 보면 희생된 최모씨는 지난 15일 밤 친구들과 헤어진 뒤 택시를 타,16일 새벽 1시20분쯤 집 앞 횡단보도에서 내린 사실이 택시 운전기사에 의해 확인됐다. 최씨 가족이 실종신고를 한 시각은 16일 오후2시쯤이다. 전날 밤 최씨에게서 곧 귀가하겠다는 연락을 받은 데다 그 시각에 예정된 국제선에 탑승하지 않아 신고한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미(未)귀가’로 치부했다가 17일에야 늑장 수사에 나섰으니 범죄에 대한 감각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그 사이 살인 용의자는, 희생자 실종 5시간여만에 인근 현금인출기에서 100여만원을 빼낸 것을 비롯해 20일까지 경기도 일원에서 20여차례에 걸쳐 모두 800여만원을 인출했다. 경찰이 신속하게 공조·광역 수사를 벌였다면 이 과정에서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적어도 수사망을 좁혔을 것이다. 다시 한번 그 무성의에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는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살인사건이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실종 신고’라는 절차를 밟았지만 경찰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사건이 확산되고 수사는 장기화했다. 예컨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에서도 피해여성 3명의 가족·동료들은 실종 신고를 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오죽하면 그 유족들이,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기초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지난 연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겠는가. 갈수록 가출·실종 신고가 늘어나 현재의 경찰력만으로는 이에 일일이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그 많은 신고 가운데 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을 가려내 수사에 착수하는 일은 경찰의 몫이다. 인력·장비·예산의 부족, 시스템 미비 등 해묵은 변명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경찰은 포상이 걸린 사건에만 진력하지, 실종 신고에는 무관심하다.’는 세간의 의혹을 스스로 깨기 바란다.
  • [스포츠 돋보기] 예고된 마찰 ‘대표차출’

    프로축구 FC서울과 대한축구협회가 박주영 등 청소년대표팀 소집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내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수원컵 대회를 공동주관하는 수원시는 박주영의 ‘출전’에 한껏 고무돼 있었으나 막상 그가 못나오게 되자 대회 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며 FC서울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온라인 예매분을 포함해 이미 2만장 넘게 티켓이 팔린 상황에서 대회 흥행은 물론 대규모 환불사태마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는 축구협회와 FC서울이 박주영의 차출을 놓고 그동안 충분히 의견을 조율할 여유가 있었음에도 수수방관해 오다 현실로 드러난 ‘예고된 사태’나 다름없다. 양쪽 모두 변명의 여지는 있다. 우선 협회는 이례적으로 대표팀 소집 이후에도 오는 20일 K-리그 경기에 출전을 허용했고,FC서울이 이마저 만족하지 못하자 대표팀 소집 다음날 구단에 일시 복귀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는 것. 이에 대해 FC서울은 다른 구단과 달리 소집대상자인 박주영 김승용 백지훈 등 3명이 모두 주전인 만큼 17일 소집에 응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구단의 원초적인 불만은 협회가 지나치게 자주 대표선수를 빼가고, 이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경우 정상적인 팀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박주영의 수원컵 불참은 지난달 말 그가 전격 프로에 데뷔하면서부터 예견됐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하다 팬과의 약속을 저버린 꼴이다. 대표선수 차출을 둘러싼 프로구단과 협회의 해묵은 갈등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만 국제기준에 맞게 대표선발 규정을 보완하는 등 중장기 기준 마련이 절실함에도 여태껏 최소한의 대안 조차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사실에 팬들의 분노는 더한다.‘슈퍼 루키’의 등장으로 프로축구가 부흥기를 맞은 시점에서 이번 구단과 협회의 마찰은 찬물을 끼얹는 셈이어서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한·일 우정의 시대 끝나는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정신적 침략행위다. 독도를 1905년 일개 현의 고시로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더니 100년만에 또다시 망동을 부리고 있다. 부산시가 대마도를 한국 영토라고 고시한 뒤 ‘대마도의 날’을 제정하면 일본 국민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우리는 시마네현의 도발이 극우파 책동을 넘어, 일본 중앙정부 및 정치권과의 합작품이라고 본다. 이는 인접국과 관계를 뒤흔드는 외교 사건이다.“지방정부가 하는 일이니 간여하기 어렵다.”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시마네현이 독립국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지난달 23일 조례안 상정 뒤 일사천리 통과 과정은 한국과의 우호·선린을 완전히 무시하는 모양새였다. 현 시점에서 최선은 시마네현 의회가 스스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때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사태는 일본측이 책임져야 한다.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된 올해가 ‘수교 후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당장의 실익이 없는 독도 논란 가열과 그로 인해 일본이 입게 될 정치·외교적 타격을 잘 따져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한국 정부는 뜨거운 가슴과 냉정한 머리로 대처해야 한다. 먼저 일본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부각시키려는 이면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ICJ회부는 당사국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무력충돌까지 우려되는 극한상황에 이르면 유엔 안보리가 개입해 ICJ중재를 권고한다. 일본을 추궁하되 유엔이 나설 정도의 긴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핵·국가경제를 고려할 때도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이 아파하는 구체적 대응책이 나와야 하고, 중·장기 국제선전전에 대비해야 한다. 독도여행 제한철폐 등 영유권 강화 조치는 옳다. 주변 영해와 접속수역 단속을 강화해 독도조례안을 제정하니까 어로에 더 불편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항의하면 자업자득이라고 일축하면 된다. 곧 발표될 ‘대일(對日) 독트린’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넘보고, 과거사를 왜곡하면 할수록 손해를 볼 것이란 메시지를 분명히 담아야 한다.
  • [사설] 교원평점 때문에 학교폭력 덮는다니

    중학 1학년 때 일진회에 가입한 딸을 갖은 노력 끝에 평범한 여고생으로 되돌린 김영희씨의 사연을 보면 분노부터 치솟는다.“믿는 마음으로 부탁을 드리려고” 찾아간 어머니에게 교장·학생지도교사·담임교사 등은 “외면하는 눈초리로”“단 1분도 들으려 하지 않고”“가정교육이 잘못됐으니”“무조건 전학 가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믿기 싫지만 이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일부 교사들의 처리 방식이다. 일진회 문제가 불거진 뒤 우리는 일진회를 해체시키고 가담 학생을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되돌아오게 하는 데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수적임을 여러차례 지적했다. 교내 폭력을 해결하는 책임이 궁극적으로 교사들에게 달렸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일진회에 대한 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우려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과 교육계 쪽에서는 일선학교가 여전히 폭력문제를 숨기는 데만 신경 쓴다는 불평·증언이 이어진다. 게다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부 교사가 불량서클 학생들을 불러, 일진회는 없으니 자진신고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입단속했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처럼 교내폭력 사태를 은폐하는 데 급급한 까닭을, 교사들은 교원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유 있는 설명이지만 이는 어차피 부수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폭력 행위를 방지하고 피해·가해학생을 제자리로 돌아오게끔 이끄는 일은 교육의 본질에 속하는 영역이다. 이를 묵인하고 방치하는 짓에는 어떠한 변명도 용인될 수 없다. 김영희씨의 딸이 되돌아온 데는 담임교사들의 노력이 가장 주효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학교폭력 해결은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
  • [13일 TV 하이라이트]

    ●한강수 타령(MBC 오후 7시55분) 엄마는 가영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며, 먹고 싶은 걸 다 말하라고 한다. 준호는 가영이 또 친정에 간 것을 알고는 서운해 한다. 엄마는 시장에 가서 가영이가 임신했다고 자랑하며 고기 등 음식 재료를 산다. 나영은 가영의 임신 소식을 신률에게 전하고, 신률은 축하 인사를 전해 달라는데….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은은한 대나무 향이 넘실대는 전남 담양. 쭉쭉 뻗은 대나무 숲에서 산림욕도 즐기고, 죽순 요리로 입맛을 돋우며, 온천으로 피로도 풀 수 있는 곳 담양으로 가는 여행을 함께 떠난다. 서울의 밤을 달리는 서울 야경열차. 분위기와 재미를 함께 찾는 사람들에게 맞춤인 야경열차를 소개한다. ●문화사시리즈-지금도 마로니에는(EBS 오후 10시50분) 63년 겨울, 김중태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는 많은 이들의 참여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다른 대학 학생들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대규모 시위를 준비한다. 김지하가 방황으로부터 천천히 벗어나던 이 때 김승옥은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을 시작한다. ●열린 TV 시청자세상(SBS 낮 12시10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폭적인 호응을 얻으며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게임산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상파 방송에서도 게임 관련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게임 관련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모색해 본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인내심이 극에 달한 아리는 미연을 앞에 두고 맺힌 속을 털어 놓지만, 미연은 들어온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살갑게 굴길 바라는 아리가 도리어 이상하다. 급기야 마음이 약한 아리는 제 풀에 찔끔 울어버려 더 자존심이 상한다. 미연은 아리방에 찾아와 나름대로 변명을 하는데….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수군을 폐지하라는 어명을 전하는 선전관. 진중은 혼란에 빠지지만 전라좌수영은 장수부터 군졸들까지 모두 수군 폐지 어명에 동의할 수가 없다. 송희립은 부하들을 잃고 상심해 있을 격군장 영갑을 위로하고, 영갑 역시 죽은 부하들을 생각해서라도 수군을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 [사설] 日정부 교과서왜곡 책임지고 막아라

    독도 및 역사왜곡과 관련한 일본의 움직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잇단 도발에 이어 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졌다. 일본 극우단체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식민통치를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판 교과서를 만들어 문부성에 검정을 요청했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고, 국가적으로 우경화를 추구하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준에 이르렀다. 새역모 교과서는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는 기술을 하고 있다.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조선을 구했다고 강변하며,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싣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는 다음달 초 나올 예정이지만 올바르게 고쳐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지난 2001년에도 새역모 교과서 파문으로 주일 한국대사가 소환되는 등 한·일 관계가 경색됐었다. 이번에는 독도 문제까지 겹쳐 상황은 더욱 나쁘다. 수교 후 40년만에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민간 출판사가 주도하는 교과서 개정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힌다.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도 지방정부의 일로서 철회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성의의 문제라고 본다.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기준에는 근린 고려조항이 있다. 규정을 떠나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일본이 그래선 안된다. 새역모의 교과서 왜곡과 시마네현의 망동은 중앙정부가 나서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일본의 자숙이 없으면 주일대사 소환, 문화교류 제한 등 추가조치가 예상된다. 한·일 우정의 해 행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11월 부산 APEC정상회의에 고이즈미 총리가 참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벌써 커지고 있다. 북핵, 한류 열풍, 경협에 차질을 빚더라도 일본을 혼내야 한다는 한국민의 여론이 비등점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재계 인사이드] “CEO는 실적으로 평가받을 뿐”

    “최고경영자(CEO)는 기업 성적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더라도 그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주주들도 경영진을 경영 실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해 용인 SK아카데미에서 가진 ‘계열사 팀장들과의 대화’에서 밝힌 CEO의 평가 기준이다. SK㈜와 소버린자산운용이 오는 11일 정기주총에서 최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놓고 ‘한판 승부’가 예고된 가운데 주주들의 ‘표심’이 최 회장의 말대로 ‘경영 실적’을 판단의 잣대로 삼을지 관심이 쏠린다. 사실 최 회장이 경영진에 복귀한 이후 SK㈜는 국내 재벌 기업 가운데 기업지배구조와 투명경영, 경영실적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 아니라 포스트 재벌 모델을 구축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SK㈜는 우선 ‘일하는 이사회’ 모델을 구현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3월 사외이사 70%로 새 이사회를 구성한 이후 정기 이사회와 전문위원회의 출석률이 각각 94%와 100%에 달했다. 또 총 148개의 안건을 협의 검토해 독립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이사회가 회사 경영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도 해외 출장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사회에 참석했다. 여기에 투명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장 직속의 윤리경영실을 신설하기도 했다. 경영실적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SK㈜는 지난해 매출 17조 3997억원, 순이익은 1조 6448억원을 올려 국내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그 결과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S&P는 SK㈜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을 했으며, 지난달 홍콩 경제전문 월간지인 ‘아시아머니’는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등급’에서 SK㈜를 ‘소수주주권 인식 제고와 IR(기업설명회)을 위한 활동을 가장 많이 한 기업’ 공동 1위로 뽑기도 했다. 주주들이 정기주총에서 최 회장의 이런 성과를 표심에 얼마나 담을지, 혹은 소버린측 주장대로 도덕성을 CEO의 평가 잣대로 삼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서울광장] TV드라마 수출 1억달러시대/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TV드라마 수출 1억달러시대/이용원 논설위원

    2003년 가을 동남아 한 국가의 총리 부부와 각료들이 방한했다. 청와대 오찬을 앞두고 총리 부부는 탤런트 김현주·소지섭과 자리를 함께하도록 해 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그들이 주연한 SBS 드라마 ‘유리구두’는 그 나라에서 서너달 전 방영돼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장관들은 사인을 받으려고 늘어섰다. 그들은 “우리집 애들이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해서”라고 변명했지만, 사인을 받은 뒤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여느 팬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오찬은 예정보다 늦게 시작됐다. 한국 TV드라마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 일화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관가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한류(韓流)’ 현상이 아시아 일대를 휩쓴 지도 여러해 됐다. 대중가요·영화·TV드라마 등의 한류 주역 가운데 인기 품목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역시 TV드라마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가 손쉽게 접근해 즐기기에는 TV드라마만한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그 TV드라마를 아시아인들이 얼마나 즐겨 보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가 나왔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TV 프로그램의 수출액은 모두 7146만달러이며, 이 가운데 91.8%인 5771만달러가 드라마 수출분이었다. 한국 드라마 수출액이 5000만달러를 넘어섰다니! TV 채널을 기껏 돌려봐야 셋에 불과하던 시절 드라마는 미국산 외화 시리즈가 주도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고전처럼 되새기는 ‘맥가이버’‘제5전선’들이 그 예다. 그때는 TV용 드라마의 수출입 규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러던 게 2002년부터 수출액이 수입을 능가했고 지난해에는 100대44로 급격히 격차를 벌려 놓았다. 드라마 수출 5000만달러 돌파는 그러나 머잖아 빛이 바랠지 모른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1억달러 달성이 가능하리라는 분석 때문이다. 그 장밋빛 전망의 요인으로는 먼저 편당 수출가의 상승을 들 수 있다.2003년 2198달러이던 평균 수출가는 지난해 4046달러로 84.1% 올랐다. 이 상승폭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지레 낮출 근거도 따로 없다. 일본 시장이 급속히 커지는 것도 기대를 높여 준다. 수출액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재작년 19%에서 지난해 57.4%로 급성장했다. 현재 방송 중인 MBC 드라마 ‘슬픈 연가’를 후지TV가 4월 말부터 방영하기로 하는 등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일본 방송가의 러브콜은 올해 더욱 확산되리라 보인다. 이밖에 동남아에서의 인기 상승, 중동 지역 진출 등이 호재로 작용하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국산 드라마의 아시아 확산이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곳곳에서 한류 열풍이 정점을 지났다거나, 유지되더라도 몇 년 새 끝나리라는 경고음이 들린다. 예컨대 연초 타이완·베트남·캄보디아를 순방해 조사한 국회 문화관광위 팀은 “한류 열풍이 길어야 5년, 짧게는 2∼3년 안에 끝난다.”는 현지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전망을 전했다. 문화상품 수출이 가져오는 부가가치를 새삼 길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드라마 수출 규모가 1억달러를 돌파한다면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상품은 상당히 친숙한 존재로 자리잡았다고 자신해도 될 듯하다. 이를 위해 방송사를 비롯해 드라마 제작사, 정부, 국민은 각각 제 할 일을 돌아보고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사설] 이헌재파동 청와대 뭐했나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투기의혹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청와대가 이 부총리에 대한 재신임 결정을 천명한 지 불과 닷새 만이다. 청와대로서는 2년 만에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이 부총리의 경륜에 미련을 가져 일어난 일이겠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보인 청와대의 행태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이 부총리는 부동산 매각과정에 어떠한 불법이나 편법, 이면거래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허위계약서 작성 의혹을 비롯,16억원짜리 전답을 매입한 트럭 운전기사와 농협의 매입자금 대출, 투기지역 지정 심의 4일 전 부동산 매각 완료 등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이 부총리는 부동산 매각 이후 소유권 변동사항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으나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올 초의 이기준 교육부총리 파동 때처럼 이번에도 청와대가 팔짱을 낀 채 해명을 이 부총리와 재경부에만 맡긴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반인권적 진압의혹이 제기됐던 유효일 국방차관에 대해 청와대가 진상을 조사해 공표한 것과 대조된다. 의혹의 당사자는 어떤 소명을 해도 ‘변명’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여론재판의 특징이다. 이 부총리의 부동산 처리문제도 진상을 규명, 진퇴여부를 청와대가 판단했어야 옳았다. 이 부총리가 잘못이 없는데도 여론재판에 밀려 물러나게 했다면 청와대의 잘못이다. 재신임을 하지 말아야 할 상황인데 그리했어도 잘못이다. 청와대가 조사 후 판단을 했다면 부동산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부총리의 퇴진으로 시장친화적인 정책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고 정책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인물이 후임 경제부총리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인사검증 시스템 쇄신과 함께 일정액 이상 재산 변동은 공직자 본인이 소명토록 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 지식인의 두 얼굴/폴 존슨 지음

    장 자크 루소의 명성은 그의 저서인 ‘에밀’‘사회계약론’‘학문과 예술론’의 기저에 깔려 있는 교육론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그가 글로 쓴 것과는 반대로 실생활에선 아이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5명이나 고아원에 내다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연구에 천착했지만 정작 그의 집에서 수십년간이나 일했던 하녀에겐 동전 한닢 지불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도 여성과의 교제가 사회악이라고 여길 만큼 비정상적인 인물이었고, 논쟁을 즐기기로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퍼붓던 망상증 환자였다. 이렇듯 사회적 명성 뒤에 숨은 지식인들의 또 다른 모습은 두 가지 면에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개인적·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명이나 사상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했다면 그것만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견해, 또 하나는 그 지식인들이 창조한 것은 하나의 관념, 이데올로기, 또는 인간에 관한 특정 유형일 뿐이지, 과학적이거나 인간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바탕을 둔 이론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영국 언론인 출신의 저술가 폴 존슨이 지은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은 후자적 관점에서 근대 이후 사회정신과 이데올로기를 이끌어온 지식인들의 업적과 생애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명성 뒤에 가려진 추악한 이면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위인의 명성 이면의 도덕적·윤리적 판단은 필수 지은이가 말하는 지식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지식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거대한 관념체계를 형성하고 교조와 명령, 권유를 통해 일반인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며 세상을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당대나 후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대하며, 지식인들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판단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저자는 근대적 개념의 최초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부터 시작해 300여년에 걸친 위인적 지식인들의 철학과 기념비적인 성과를 소개하면서 몇 가지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지식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성립시키고, 얼마나 세심하게 그 증거를 검토했는가?그들은 얼마나 진리를 존중했으며 개인생활에도 똑같이 적용했는가?물질적 이익 앞에 그들의 철학은 어떻게 왜곡됐는가?그들은 배우자와 가족들을 어떻게 대우했으며, 지인들과 얼마나 깊은 우정을 나눴는가? 등등. ●습관적 거짓말쟁이 헤밍웨이 저자에 따르면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 교육철학에 한 획을 그은 루소는 자식들을 다섯이나 고아원에 내다버렸다. 후일 이 사실이 알려지자 루소는 “그녀(아이 엄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란 해괴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루소는 세탁부 출신인 아이들 엄마를 23살 때부터 애인으로 곁에 두고 살면서 ‘천하고 무식한 계집종’이라고 멸시했으며, 그의 ‘고백록’ 중 상당 부분은 거짓말과 각종 변명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였음을 지적한다. 그는 “최상급의 작가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 직업의 중요한 부분은 거짓말이나 날조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전문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했는데,5살때 길길이 날뛰며 달아나던 말을 혼자힘으로 막아냈다든가, 그의 부모에게 영화배우와 약혼하게 됐다는 등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의 저서전 ‘이동축제일’은 루소의 ‘고백록’만큼이나 미덥지 못하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이밖에도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전형적인 남성 우월주의자로서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으며,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은 평생에 걸쳐 분노와 공포감에 휩싸여 기행을 일삼았다. 베르톨드 브레히트, 조지 오웰, 노엄 촘스키 등 또한 ‘이성의 몰락’이란 비판 속에 지은이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폭정은 사상이 지배하는 전제정치 책을 읽다 보면 사실 지은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신봉자이자 보수적 성향의 저널리스트로서 지나치게 인간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켰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보편적인 인류가 아닌 특정한 개인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응, 특히 그들이 친구, 동료, 하인, 가족들에 대한 방식을 주로 검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반문한다. 학자와 작가, 철학자가 아무리 저명하다고 할지라도, 대중을 향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말해줄 권리가 있는가?하고. 대중을 그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온갖 지식인들의 위원회, 연맹,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빽빽이 박힌 성명서에 그는 강한 의구심을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지은이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다. “그 무엇보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망각하는 것, 즉 인간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인간이 관념의 앞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만 한다. 모든 폭정 중에서 최악의 폭정은 사상이 지배하는 무정한 전제정치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설] 수능부정 방지, 감독교사에 달렸다

    교육부가 그제 발표한 ‘수능 부정행위 방지 종합대책’ 시안을 보면 갖가지 부정행위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부정을 저지른 수험생의 응시 기회를 1∼2년 박탈하고, 몸 수색·본인 확인을 거부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며, 휴대용 금속·전파탐지기를 활용하는 등의 대책은 나름대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종합대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시험장 감독교사의 책임에 관한 부분이다. 부정행위를 막고자 첨단기기를 동원하고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현장에서 감독·관리 책임을 맡은 교사가 제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지난번 휴대전화를 이용한 조직적인 부정행위로 모두 365명이 수능 무효 처분을 받았지만 현장에서 감독교사에게 적발된 사례는 2건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시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규정·절차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시험 부정 방지는 규정과 기기의 보완에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현장에서 감독을 맡을 교사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지난번 대규모 수능 부정이 밝혀진 뒤 교사들은 다양한 변명과 참회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시험 부정을 묵인·방관한 것은 교육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많은 정직한 학생들이 도리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텐가. 아울러 대규모 수능 부정이 적발된 뒤에도 감독교사들에 대한 책임 추궁은 전혀 없었다. 시험 감독 결과에 대해 교사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마련해야만 ‘수능부정 방지 대책’은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 소설가 김별아 ‘화랑세기’속 요부 ‘미실’ 출간

    작가 김별아(36)가 1500년 전의 여인을 불러냈다. 새 작품 ‘미실’(문이당)은 신라시대의 요부(妖婦) 미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얽은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말 국내 문학상 사상 최고상금인 1억원의 세계문학상을 따내 문단의 시샘이 쏠렸던 작품이다. 왜 ‘미실’이었을까. 소설집 ‘꿈의 부족’(2002년) 이후 3년 만에 내민 장편의 여주인공이 하필이면 왜 우리 역사 최고의 팜 파탈이었을까. 역사의 먼지를 헤집어 소환해낸 주인공에게 작가의 애정은 유별나다.“미실은 어머니로서, 한 여자로서도 어느 한쪽 꿇리지 않고 당당한 인물이었어요. 요녀와 성녀의 이미지를 한 몸에 끌어안고 살았던.‘모성’과 ‘욕망’이 충돌하지 않고 한 인물 속에서 용해된 여성 캐릭터를 구현해 보고 싶었죠.” “남성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이 늘 모성과 욕망의 어느 한쪽 이미지로만 치우치는데, 그 극단적 묘사법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자기운명에 굴하지 않은 주체적 여성 미실(549∼606)은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 “백 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 있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수식될 만큼 미색이 빼어났던 여인. 진흥·진지·진평 등 3대 신라왕을 섬긴 데다 사다함·세종·설화랑·미생랑 등 네 명의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태자 동륜(진흥왕의 아들)과도 염문을 뿌리며 왕실을 주물렀던 역사 속 인물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뛰어난 미모로 본능에 충실했으면서도 운명에 굴하지 않는 ‘현대적’ 여성상”은 소설에 제대로 녹아났다. 왕실에 색(色)을 바치는 전문여성집단 ‘대원신통’에서 태어난 미실은 어려서부터 온갖 기예와 미태술을 익힌다. 지소태후의 아들 세종의 눈에 들어 입궁한 뒤 곧 권력다툼에 휩쓸려 밖으로 내쳐진다. 화랑 사다함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지만, 왕실의 부름으로 다시 입궁한다. 이후 미실은 스스로 권력을 움켜쥐려는 욕망을 실현해 간다. 작가의 설명처럼 “권력을 키워 가는 과정에서도 아이를 8명이나 낳으며 모도(母道)를 충실히 걸었던 독특한 여성상”을 묘파하는 데 소설은 전력투구한다. ●용어 하나하나 史實에 맞춰 사용 작가는 이 소설에 3년여를 공들였다.“중국 후한의 장수 삭매의 사랑과 운명을 무협소설풍으로 그린 단편 ‘삭매와 자미’(소설집 ‘꿈의 부족’)를 쓸 무렵 역사 소재 소설을 구상했다.”며 “그러나 역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었다.”고 말했다. 그 원칙은 철저히 지켜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꽃 이름, 고사성어 하나까지 시대적으로 들어맞는 것인지 따졌을 정도다. 신라시대에 나올 수 없는 용어들은 추려냈다. 때로는 고어투의 문체가 적당히 끼어들어 소설에서는 고졸한 맛이 난다. 최근 여성 작가들이 황진이·나혜석 등 역사인물들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경향이 아이디어 빈곤 때문이 아닌지 짐짓 물었다. 대답은 솔직했다.“인정할 부분”이라더니 힘센 변명 한마디를 덧붙인다.“요즘처럼 빨리 돌아가는 현실에선 소설의 ‘영원성’을 포착해 내기가 힘드니까.” 받아 놓은 큰 상금은 대체 어디에 쓸 거냐는 질문에 “열살짜리 아들과 9월쯤 캐나다로 날아가 한 2년 지내다 오겠다.”며 엉뚱한 소리다.“죽을 때까지 쓰는 게 삶의 목표”라니 작가의 좌표에서 발을 빼려는 계산은 아닐 테고. “역사소설을 좀더 써보겠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서울시에서 주문한 조선시대 배경의 소설을 준비하느라 요즘은 조선왕조실록에 푹 빠져 지낸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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