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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대통령, 노무현 따라해놓고 최초라고 주장”

    “李대통령, 노무현 따라해놓고 최초라고 주장”

    “내가 남편에게 야단칠 일을 가지고 국가가 왜 나서서 야단인지 모르겠다.” 2007년 ‘신정아 사건’으로 세인들 입에 오르내린 변양균(63)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한 아내의 반응이다. 사건 이후 침묵했던 변 전 실장이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바다출판사 펴냄)을 내놨다. 여기서 신정아 사건에 대해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변 전 실장은 신정아 사건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거나 변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불찰이고 뼈아픈 잘못이었지만, 그 결과가 그리 참혹할 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불찰이고 잘못이었다.”면서 “그런데 대통령과 내가 몸 담았던 참여정부에 그토록 큰 치명타가 될 줄은 몰랐다.”고 언급했다. “정치적 사건으로 그처럼 악용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란 주장이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에 대한 강한 불만도 드러냈다. 검찰이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아내와 아들까지 소환”했을 뿐 아니라 “여든 넘은 집안 할머니도 불렀다.”고 했다. 또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투입된 것을 두고 “국가 반역죄라 해도 그렇게 많이 동원될까.”라고 물었다. 권력을 남용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소설”이라 일축했다. “법원에서 신정아씨와 관련된 문제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의혹은 “누명과 억측”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책을 쓴 이유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참회다. 변 전 실장이 사표를 내던 날, 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이, 다음날 권양숙 여사가 아내를 따로 불러 따뜻하게 위로해준 사실도 밝혔다. 서민과 경호원들에게 불편을 줄까봐 ‘서민 배려 쇼’를 절대 거부하고, 헬기를 이용하고, 지하주차장을 이용했던 모습도 그렸다. 또 국무회의 때 직접 커피를 타 마시며 주변 사람들과 친근하게 소통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전했다.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똑같이 따라하면서,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라고 홍보한 걸 봤다.”는 언급과 함께. 그랬던 노 전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내에게야 평생 사랑으로 대신할 길이 있겠지만, 먼저 가신 노무현 대통령께는 참회할 방법이 없게 됐다.”고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36) 목졸려 살해된 시신, 라면박스만 없었어도… 범죄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영혼이라도 달랬으면…” 옛 대공분실에 弔花

    “영혼이라도 달랬으면…” 옛 대공분실에 弔花

    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내 복도엔 검은 책상 위에 하얀색 국화 바구니가 올려져 있었다. ‘근조’(謹弔)라고 적혀 있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지난달 30일 타계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애도하며 바친 것이다. 밤새 불도 켜 뒀다. 이곳은 김 고문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경찰에 검거돼 모진 고문을 당했던 옛 대공분실 자리다. 1987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장소이기도 하다. 경찰 관계자는 “한 직원이 김 고문이 별세한 후 쓸쓸한 마음에 불을 켜 뒀고, 몇몇이 같은 맥락에서 조화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직경찰 “인권센터에 분향소를” 독재 정권의 한 축으로 고문을 자행하며 국민에게 고통을 안겼던 경찰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옛 대공분실에 김 고문의 정식 분향소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미묘한 파장이다. 경찰청 미래발전과 이준형 경위는 경찰 내부망 등에 “경찰청 인권센터에 김 고문의 분향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물고문으로 숨을 거둔 박 열사의 기념관 옆에 김 고문의 기념관도 만들어 다시는 국가 공권력에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경찰관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면서 “시대적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공분실 자리에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세웠다. 불행한 과거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다. 평일에는 과거 고문이 가해졌던 취조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한편 김 고문 별세 사흘째인 이날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이홍구 전 국무총리,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등이 다녀갔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누적 조문객은 수는 3만 4000명에 이른다고 장례위원회 측은 밝혔다. ●누적 조문객 수 3만 4000명 미국 로버트케네디 인권센터에서도 애도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센터 설립자인 캐리 케네디는 서한에서 “김근태 선생의 가족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오늘 느낄 상실감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군사독재정권과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 선생의 일관성은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작가 공지영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신진호·이영준기자 sayho@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1677년 네덜란드 헤이그. 판 데르 스픽은 자신의 집에 하숙했던 친구의 책상을 조심스레 포장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는 시신도 없는 텅 빈 관(棺)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참이었다. 친구의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던 중 도난당했다. ‘신을 모독한 불경스러운 자’라는 꼬리표가 시신 역시 편치 못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그 친구는 몇 주 전, 자신이 죽으면 책상을 암스테르담의 한 출판사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포장재에는 어떤 것도 적지 말고 세관에 내용물을 신고하지도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조심성 많은 친구의 도움 덕에 책상은 무사히 출판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티카’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곧 금서로 지정돼 압수되었다. 비록 익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글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던 것. 그 책의 저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였다. 베네딕투스가 불경한 자로 낙인 찍힌 것은 1656년, 그의 나이 겨우 24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종교재판을 피해 에스파냐에서 포르투갈로,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1632년에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이름은 ‘바뤼흐’. 이 말은 히브리어로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었다. ●불경한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니 당시 신생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유대인 상인들을 받아들여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공화국은 종교와 인종에 관용적이었던 만큼 한계 또한 분명히 규정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존의 신앙 이외에 이단적 교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 금지의 선을 넘어버렸다.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에 나가도…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부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 스피노자가 신성모독의 발언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유대인 공동체는 그의 파문을 결정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태어난 이후 발생한 14건의 파문 중 이와 같은 분노의 파문서는 없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책이나 가르침을 퍼뜨린 적 없는 청년이 받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저주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파문을 전후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요컨대 파문은 일종의 경고였던 셈. 그러나 스피노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 회유도, 격리시키겠다는 협박도, 암살 기도의 공포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부모님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상속을 거부했고,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고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이 파문 사건에 대해 어떤 억울한 심정도, 항변도 토로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열려 있는 길로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련다.” 신성모독죄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 여겼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신이란 말 그대로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다. 그런 존재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요컨대 신이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 그 자체며, 세상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 인간이 성취해야 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 즉 자유로운 삶이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로운 삶을 일구는 것이야말로 구원이었다. 하지만 기존 교회 속의 신은 복종을 원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러한 신은 인간을 자유가 아닌 예속 상태에 두기 위한 상상의 작품이었다. 교회는 응답하고, 심판하고, 처벌하는 신, 즉 인간화된 신을 꾸며냈다. 스피노자에게 공화국이란 종교의 예속과 반대되는 자유를 의미했다. 전제군주와 결탁한 교회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유대인들이 정착했던 자유의 국가. 바로 이곳 네덜란드가 그러한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그 공화국은 1669년 스피노자의 친구인 쿠르바흐에 대한 종교적 탄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제주의 최고의 비결이자 그것을 떠받치는 큰 기둥은 사람들을 계속 기만의 상태에 처해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억압될 수밖에 없게끔 공포를 조장하고 그것을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그것이 구원인 양 오히려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전제주의를 이끄는 원리가 공포라면, 공화국의 존립 근거는 무엇보다도 자유에 있었다. 그렇다면 쿠르바흐에 대한 탄압을 공모한 공화국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려버린 셈이었다. 자유에 대한 억압, 그것은 곧 공화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우려는 2년 후 현실로 드러난다. ●자유인, 그 불온한 자 1672년 프랑스의 침공에 네덜란드는 가까스로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죽음과 기근이 만연했다. 이 절망의 틈새를 군주제를 원했던 오란예 집안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위기의 원인을 공화국의 탓으로 돌렸다. 폭도로 변한 군중은 공화국의 지도자인 데 비트 형제를 거리로 끌어내 처참하게 살해하고, 살점은 구워 먹거나 기념품으로 팔았다. 비통함에 빠진 스피노자는 ‘극한의 야만인들’이란 격문을 들고 거리로 나서려 했지만 하숙집 주인이자 친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완강히 스피노자를 막아 세웠다. 왜 군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공화국을 거부하고 전제주의라는 예속을 향해 달려가는가. 스피노자는 공화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알았다. 자유는 국가가 ‘보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구성’하지 않는 한, 어떤 국가 체제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스피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에티카’에 적어내려 간다.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하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산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권력은 오로지 수동적 신체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돈과 명예, 신의 이름으로 쾌락과 절망, 희망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우리에게 복종을 이끌어냈다. 지배자들에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작동할 수 없는 능동적 신체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에티카’는 단지 자유인이라는 자기 구원을 위해 능동적 신체를 구성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지배자들에게는 불온한 것이었다. ●자유를 생산하는 앎과 삶 스피노자는 1676년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 대학이란 기존의 법과 종교의 계율 위에서 작동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대학은 철학함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자유의 철학을 생산하기에도 부적합한 곳이었다. 대학교수직을 거절한 스피노자는 하숙집 책상 위를 자기의 공부 현장으로 삼았다.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와 만남은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는 대학 강당 대신 헤이그의 하숙집에서 조용히,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자유인의 삶을 만드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돈, 명예나 신, 그 무언가에 의해 미래에 찾아올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 미래로 유예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자유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시신마저 사라진 뒤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바지 두 벌, 셔츠 일곱 장, 손수건 다섯 장뿐이었다. 예속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구원의 열정. 그리고 자유인의 소박하지만 정갈했던 삶. 바로 이것이 혁명을 외친 적 없었던 스피노자를 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남산 강학원 연구원 신근영
  • [사설] 핫라인 불통 대중국 외교 재정비 서둘러라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미국, 일본, 러시아 정상과 전화 통화를 가졌다. 지난 19일 정오 북한이 발표한 지 두 시간 만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처음 통화했다. 이어 오후 2시 50분에는 일본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오후 4시 30분에는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과는 여태껏 통화하지 못해 대(對)중국 외교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중 외교는 한반도 정세를 좌우하는 4강 외교의 주요 축이다. 특히 북한의 급변 사태와 관련해서는 중요성이 실로 막중하다. 그런데도 핫라인이 불통되고 있다니 재정비가 절실하다. 김정은 체제는 20대의 어린 나이, 3대째 권력 세습, 급조된 권력이양 등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향후 북한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귀결된다.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면 4강과의 유기적인 외교 시스템이 먼저 가동돼야 한다. 4강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핵심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한·미 공조는 건실해졌다. 이번 일만 해도 민감한 조의 문제 등을 포함해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반면 대중 외교는 매끄럽지 못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긴급상황 발생 때도 정상 간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고 외교 당국자는 해명한다. 우리 측이 후 주석과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중국 측의 무성의로 무산된 상황에서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후 주석은 중국 지도자급 인사들을 대거 대동하고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까지 표시했다. 남북한을 대하는 자세가 분명 다르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와대 측은 한·중 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대외용일지는 몰라도 대중 외교의 현주소마저 부정해서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이다. 현 정부 들어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됐다. 그럼에도 최근의 해경 살해 사건은 물론이고 대북 문제 등을 놓고 껄끄럽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대미·대중 외교의 균형감 부족도 한·중 외교에 구멍이 뚫린 원인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외교적 균형을 잘 잡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안정을 기할 수 있다.
  • 한명숙 또 징역5년 구형…새달 13일 항소심 선고

    곽영욱(71)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한명숙(67) 전 국무총리에게 다시 징역 5년이 구형됐다. 선고는 새해 1월 13일에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성기문) 심리로 16일 열린 한 전 총리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은 이같이 구형하면서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1심은 한 전 총리 측의 비합리적 변명에 근거해 공소 사실을 배척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구형에 앞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한 전 총리는 “무리한 수사였고 부당한 기소이기에 1심과 마찬가지로 진술을 거부한다.”면서 검찰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곽 전 사장에게서 공기업 인사 청탁과 함께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과 추징금 5만 달러가 구형됐으나 지난해 4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 전 총리는 이후 2007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을 앞두고 한만호(50)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도 기소됐으나 지난 10월 1심에서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인사]

    ■K-water ◇원장 △교육 양기현△연구 고덕구◇지역본부장△수도권 양해진△충청 장용식△전북 이석천△전남 신송운△경북 정성영△경남 김영도 ■스포츠한국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직무대행 이재원 ■삼성화재 ◇지역단장 △수원 이수철△송파 최창원△제주 홍성익△성남 유상춘△일산 김성태△서울남서 김희창△춘천 임건△대구 장성민△원주 이성기△구리 김인영△노원 박황제△김해 진치근△서울서부 송광섭△강북 김계원△부산중앙 최의현△동서울 김일권△의정부 안재호△대전 박정민△안산 지수일△서울중앙 황진현△전북 백남주△충남중앙 김완식△부평 권중우△거제통영 송원일△포항 오재엽△둔산 강경완△마산 이재근△울산 권영걸△창원 조정배△강동 길경섭△부천 서정석△강서 장영철△광진 김석호△충남 이상엽△부산 홍순영△전주 이상필◇영업단장△대경대리점 이종구△영남대리점 김경석◇부장△선박항공보험부 김태함△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영업력강화 권순천△보상혁신 박진수<업무센터>△경기 안정희△강북 윤영기△강남 이동진△호남 임상순△대구 이상오△부산 조영부<보상센터>△성남 김태우△안양 장동철△강서 장준영△북부 장원△서부 김상식△부천 이명철△경남 김승일△강원 전광복<방카슈랑스영업부>△강서 김진호△강북 박종삼△중부 안영진△영남 정주영<영업부>△마이애니카 김승현△대기업3 한기대△단체보험 오대웅△법인3 신현근<전략영업>△1부 이승주△2부 박원규△3부 이보성<기업컨설팅>△영업1부 서석주△영업2부 김갑수<센터>△글로벌서비스 이종엽△인재개발 황인철△지방손해사정 김진석△전문손해사정 이정혁<제휴영업>△1부 허영길△2부 김종수 ■LIG손해보험 ◇승진 △부회장 김우진<사장>△영업총괄(법인영업총괄 겸직) 김병헌<상무>△인사총무담당 정하진<이사>△자산운용담당 김상헌△자보담당 김옹중△법인영업1본부장 박희재△교육〃 이병일△신채널〃 허재영△장기보험담당 심재웅△충청본부장 민광기◇담당 선임△사천교육담당 정태종△법인마케팅담당 조철호△대구본부장 이화성◇보직 변경△경영관리총괄 장남식△준법감시인 이중삼△장기일반보상담당 김강현△직할영업본부장 양태훈△고객마케팅담당 김승화△경영기획담당 홍성준△자동차보상담당 변치규 (2012년 1월 1일자) ■대우증권 ◇지점장 신임 △진주 정영자△의정부 김승호△가락 정인경△안산 박창길△원주 정미애△목포 전성국△여수 주기은△대구 최영미◇부서장 신임 <부장>△업무개발 이철영△법인영업2 송태준△RETAIL사업추진 박지유△PE 서정협<팀장>△은퇴설계연구 채희경△미래전략 임덕균△홀세일사업추진 신종선<실장>△홍보 이남주◇지점장 전보 △갤러리아총괄 민경부△센텀시티 손한균△한티역 장동훈△범어 배충렬△역삼역 남재승△목동중앙 조익표△역전 조천환△서현 한일면△잠실 김재하△강남 이권철△동수원 이우준<지점장>△마산중앙 이수항△구미 조장욱△방배동 배진묵△강서 안성환△성서 김규돈△동해 권혁건△장한평 예병규△광교2 최홍석△수원 황순영△동래총괄 이창현△칠곡 임재순△마포 권순동△독산동 김대엽△대치 박상훈△청량리 서문석△창원 손명호△반포 송관훈△인천 이동기△서초동 이종서△상인 이한성△속초 장세준△창원시티 황성권△영등포 이덕재△신촌 조용우△관악 성기정△제주 신관용△통영 이호△목동 남미옥△개봉동 이화선△주안 최진선△익산 안준영△이촌동 김주영◇부서장 전보△감사기획팀장 박창옥△기획실장 강성범<부장>△DCM 이종학△인프라운영 정진늑△신사업영업 강홍구△인더스트리3 김진혁△ECM 정문환△IT기획 황재우△법인영업1 김형종△인더스트리1 안성준△인더스트리2 박현주△인더스트리4 이경우△리서치지원 오철우 ■신한생명 △부사장 김상진◇본부장△영업 오원철 황인상△여신운용 서용덕△증권운용 한태경 ■동국제강 ◇승진 <상무>△전략경영실 부실장 이성호<이사>△인천제강소 생산담당 곽철△당진공장 관리담당 김길문△인천제강소 〃 김연극◇보직변경△본사 영업/수출 총괄 변철규△당진공장장 연태열△본사 원료자재담당 강국△포항제강소 관리담당 김철환△본사 판매생산계획담당 김종율△포항제강소 품질담당 김세동 ■유니온스틸 ◇승진 <이사>△본사 냉연도금영업담당 김상엽◇보직변경△부산공장장/R&D담당 이용수△부산공장 품질경영담당 최종철△본사 칼라영업담당 임동규 ■인터지스 ◇승진 <전무>△부산영업본부장 정순일<이사>△중국 연합물류담당 박동호<이사대우>△중부지사장 정연립 ■DK UIL ◇승진 <부사장>△대표이사 김상주<이사>△천진법인장 성장용△생산기술본부/R&D센터장 이범희 ■국제종합기계 ◇승진 <부사장>△대표이사 남영준<상무>△생산담당 김찬동△상근감사 진흥열<이사>△기획담당 현성덕△재무담당 나병수◇보직변경△엔진센터장 한명교 ■DK UNC ◇승진 <사장>△대표이사 변명섭<전무>△SI사업본부장 김광선<상무>△SM사업본부장 정성홍<이사>△IS사업실장 표영<이사대우>△기업고객사업실장 안두수
  •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데뷔」1년만에 일약「KBS의 얼굴」로 자란 인기「탤런트」김자옥(金慈玉·22)이 연애를 한다는「핑크」빛 소문이 방송가에 나돌고 있다. 앳되고 청순한「마스크」의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도 이제 한 여성으로서 성장해 가는 것일까? 인기가 오르면서 자연히 소문도 늘어가는 것이 연예가의 통례다. 김자옥(金慈玉)도 예외가 아닌듯.  71년 11월 매일극『심청전』의「히로인」으로 발탁되어 좋은 연기로 기반을 잡자 방송가에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김자옥(金慈玉)이 가수 이상렬(李相烈)과 뜨거운 사이라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한중록』에서 혜경궁 홍(洪)씨 역을 맡아 폭 넓은 연기로「팬」을 확보해 가자 이번엔 같은 방송국의「탤런트」이(李)모군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후『신부들』의 주역을 맡은 다음에는 또 그녀가 30대의 남자와 (서울 중구) 소공동 밤거리를 거닐더라는 소문이 번졌다.  결국 김자옥(金慈玉)이 일일극의 주연을 맡을 때마다 연문(戀聞)이 하나씩 늘어간 셈일까?  동료「탤런트」들은 이러한 소문을 두고 김자옥(金慈玉)이 예상보다 감쪽같이「데이트」를 잘하는 모양이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 큰 계집애가 연애하는 것은 하나도 어색할 게 없잖아요? 그렇지만 하나 같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화가 날뿐이죠』  소문의 진원을 묻는 기자에게 김자옥(金慈玉)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아빠가「탤런트」생활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시지 않는데 이런 소문이라도 아신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거예요』  「아빠」의 얘기를 할 만큼 김자옥(金慈玉)은 아직도 어리고 순진한 편이긴 한데···.  『말이 많은 곳엔 그런 것이 다 화제가 되겠지만 너무 심해요.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밖엔···.』  억울해 죽겠다는 듯 예쁜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또 있겠지만 저로서야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믿지 않아도 할 수 없다면서 김자옥(金慈玉)이 밝힌 해명은 다음과 같다.  『이상렬(李相烈)씨는 제 친한 친구 이상숙의 오빠예요. 상숙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였고. 그러니까 가끔 만났죠.「탤런트」가 되기 전부터「오빠」라고 따르던 사인데 무슨 연예예요. 그런 감정은 추호도 느껴본 적이 없고 그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집에서는 다 알아요』  요즈음은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본 지도 아주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다음 동료「탤런트」이(李)모군은 언니의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동창생이란다. 김자옥(金慈玉)이「탤런트」가 되기 전부터 가끔 집에 놀러 왔기 때문에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었고 방송국에 들어오자 아는 사람이 없어 자연히 이(李)군과 방송국 근처의 다방에서「코피」를 들고 얘기를 나눈 정도로 만났을 뿐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이(李)군도 같은 얘기다.  『방송국에서 선배로 또 오빠로서 대했을 뿐인데 연애라니 어림도 없는 얘기지요』  결국 두 사람은 다 남매처럼 대했다는 것으로 해명이 끝난 셈.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데이트」로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만하다.  다음 소공동을 같이 거닐던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김자옥(金慈玉)은 형부의 친구라고 말한다.  『재일교포인데 형부와 아주 절친한 친구예요. 형부를 통해 알게 되어 같이「볼링」을 하러 가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김자옥(金慈玉)의 말을 빌면 그건「데이트」가 아니고 그저 한번 만난 것뿐 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뒤에는 다시 못만났다고.  혹시 맞선을 본 것이 아니냐고 묻자 자신이나 집에서나 아직 시집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펄쩍 뛴다.  『25살 넘어서 결혼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지금은「데이트」는 해도 결혼 상대를 찾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야 연기가 무언인지 알아가는 햇병아리예요.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헛소문을 진실처럼 험구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이러다간 아빠와 외출을 해도「핸섬」한 중년 신사와「데이트」하더라고 소문이 나겠다며 웃는다.  연예계 신입생인 그녀가 뒷공론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인기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 눈치.  『「탤런트」생활을 생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도 여자니까 때가 되면 시집을 가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자연스런 일 아니겠어요. 꼭 맘에 드는 작품 하나만 흡족하게 하고 미련없이 떠날 생각이에요』  꼭 맘에 든 작품의 배역이 언제 주어질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주어지면 심혈을 기울여 조용히 연기자 생활을 마무리 짓겠단다.  『연기자는 건강해아 하는데 전 몸이 좀 약해요.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어요』  지난 여름『한중록』을 마치고 집에서 빈혈로 쓰러진 것을 봐도 연기자로서 치러야 할 중노동을 이겨내기에는 몸이 약한 것 같단다.  단시간내에 인기의 정상에 오른 김자옥(金慈玉)은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인 김(金)모씨의 2남5녀 중 세째 딸.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아동극을 시작했으니 연기 경험은 퍽 많은 셈이다.  배화여중 1년 때부터 배화여고 2년 때까지 TBC-TV에 아역 배우로 출연,『우리집 5남매』등 많은「프로」에 나갔다.  성인으로「탤런트」가 된 것은 여고 졸업 후, 70년 2월 MBC-TV 「탤런트」2기생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MBC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다가 그만두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브라운」관을 떠났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71년 11월 KBS-TV의『심청전』에「스카우트」되면서 본격적인「탤런트」로「데뷔」, 1년만에 정상급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붙임성이 있고 상냥해서 동료「탤런트」들간에 귀염둥이로 통하고 있는 김자옥(金慈玉). 이제 그녀도 사랑할 나이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오(五)> [선데이서울 73년 2월11일 제6권 5호 통권 제226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 부산저축銀서 1280억 불법대출… ‘2대주주’ 박형선회장 징역 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염기창)는 13일 은행으로부터 1280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2대 주주인 박형선(59) 해동건설 회장에게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또 추징금 1억 5000만원도 부과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개인적 이익을 얻을 욕심으로 부산저축은행 임원들에게 이면계약의 이행을 요구했다.”면서 “결국 개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한 은행예금 약 1억 2800만원이 부실화돼 피해가 예금채권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박씨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며 오히려 신문의 왜곡된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점 등을 볼 때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변명만을 일삼는 사회 지도층의 왜곡된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따끔하게 다그쳤다. 결국 “범행으로 인해 부산저축은행의 예금채권자에게 끼친 막대한 피해 규모, 박씨의 비윤리의식과 무책임함이 초래한 시장경제질서의 큰 혼란을 야기한점 등을 고려할 때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씨는 경기 시흥 영각사 납골당 사업권을 인수한 뒤 부산저축은행에 영향력을 행사, 1280억원의 불법대출을 받고 대전 관저지구 아파트 건설 사업과 관련해 지인 명의로 매입한 사업부지를 부산저축은행 특수목적법인(SPC)에 되팔아 9억 4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우생순, 또…女핸드볼 세계선수권 8강 불발

    국제핸드볼연맹(IHF) 임원이 “그 판정은 분명한 실수”라고 했다.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이미 종료 휘슬은 울렸다. 세계 8위 한국여자핸드볼이 세계선수권대회 16강에서 탈락했다. 12일 브라질 산토스에서 열린 대회 8일째 토너먼트에서 앙골라(18위)에 29-30으로 졌다. 한국이 앙골라에 당한 첫 패배(5승)다. ‘우생순 군단’이 세계선수권대회 8강에 오르지 못한 건 2001년 이후 10년 만이다. 2003년 3위를 시작으로 8위(2005년), 6위(2007·2009년) 등 꼬박꼬박 정상급에 올랐던 한국의 이른 탈락이다.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불만족스러운 성적표다. 결과에는 변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예고된 결과였다. 국가대표팀은 올림픽예선을 압도적으로 통과해 세계대회에 딱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 아시아선수권대회(12월·카자흐스탄), 올해 핸드볼 코리아리그(4~7월), 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10월·중국)까지 쉴 틈 없는 일정을 보내 몸 상태도 좋지 못했다. 라이트백 류은희(인천시체육회)가 부상으로 빠져 전력에 큰 구멍도 생겼다. 게임메이커 김온아(인천시체육회) 역시 무릎과 어깨 통증으로 대회 내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앙골라전에서는 심판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2분 퇴장만 무려 7번(앙골라 2번) 당했다. 60분 경기 중 15분을 6명이 뛴 셈이다. 동점(27-27)이던 후반 24분 김온아가 2분 퇴장을 당했고, 이어 심해인(삼척시청)까지 2분 퇴장으로 코트를 비웠다. 두 상황 모두 석연치 않았다. 앙골라는 이 사이 두 골을 보태 승기를 잡았다. 심판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사설] ‘선관위 테러’ 단독범행 누구도 안 믿는다

    경찰청은 어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 공모씨가 10·26 재·보선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에 대한 분산서비스 거부(디도스·DDoS) 공격을 주도한 것은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공씨의 자백을 근거로 이렇게 발표했으나 단독범행으로 믿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공씨는 경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것이 내가 모시고 있는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하면 (젊은 층이)투표소를 못 찾아가 젊은 층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경찰이 지난 1일 공씨를 긴급체포한 이후 수사한 결과물은 매우 초라하고 실망스럽다. 공씨의 배후에 누가 있고, 디도스 공격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 궁금증을 하나도 풀지 못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와 야권 유력 후보의 홈페이지에 대한 공격이 몰고 올 파장은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국회의원의 9급 비서가 다 기획하고 지시했다고 한다면 누군들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검찰과 각을 세워 왔다. 검찰과의 밥그릇 싸움에는 열심히 일치단결해 뛰었던 경찰이 정작 국가의 기강을 문란하게 한, 정치권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중대 사안 수사는 한심한 수준으로 끝을 냈다. 수사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제 검찰에 공이 넘어 갔다. 검찰은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선관위 테러’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해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된다면 검찰은 또 한번 치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中서 공사중 다리 붕괴하자 당국하는 말이…

    최근 중국에서 공사 중인 다리가 붕괴하자 당국이 말도 안 되는 해명으로 수습하려 해 논란을 사고 있다. 6일 중국광파망 등 현지 매체 보도를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7시께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바오허구의 한 고가다리 건설 현장에서 다리 일부가 붕괴해 일반인을 포함한 6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허페이 건설 당국은 다음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번 다리 붕괴는 사고가 아니라 ‘파괴성 실험’이었다.”면서 “현장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현장 담당자는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면서 당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다.” “그 실험이란 게 대체 뭐냐?” “부상자들도 나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나?” 등의 댓글을 통해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즉 중국 건설 당국의 ‘파괴성 실험’ 발언이 중국 내에서도 전대미문의 변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허페이 고가다리 붕괴 사고에서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비단뱀 먹이로 새끼고양이를…영상 유포자 징역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영국에서 한 20대 남성이 자신이 키우는 비단뱀에게 살아 있는 새끼고양이를 먹이로 줘 충격을 주고 있다. 3일(현지시각) 영국 매체 더 선 보도에 따르면 비단뱀에게 새끼고양이를 먹이로 던져준 뒤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유포한 20대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는 한 남성이 산타모자 안에 새끼고양이를 집어넣고 자신의 침대 위에 풀어놓는다. 그러자 이 고양이는 모자에서 조심스럽게 나와 침대 위를 몇 걸음 걷는데 이때 주위에 있던 노란색 미얀마산 비단뱀이 달려들어 고양이 몸을 휘감고 만다. 비단뱀은 이내 고양이를 머리부터 통째로 삼키는데 이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오지만 크리스마스 캐럴 ‘북 치는 소년’ 음악에 묻히고 만다. 7분가량 이어지는 이 끔찍한 영상은 ‘비단뱀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더 많은 비단뱀 먹이 영상을 올리겠다”는 말과 함께 게재됐다. 영국동물보호협회(RSPCA) 측에 따르면 대대적인 추적 끝에 영상을 올린 주인공의 계정이 런던 북부 이즐링턴에서 ‘플릭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당 남성을 체포했다. 영상을 본 수의사 피터 웨더번 역시 “해당 고양이는 생후 4개월 정도로 보인다”며 “그의 행동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비단뱀 주인은 2006년 제정된 동물복지법을 위반해 징역 6개월과 벌금 2만파운드(약 3500만원)를 물게 됐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소설가 공지영 “알바들 꺼져” 트위터 논란

    소설가 공지영 “알바들 꺼져” 트위터 논란

     최근 트위터에 쓴 글로 구설에 올랐던 소설가 공지영씨가 이번엔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한 ‘피겨 요정’ 김연아와 가수 인순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공씨는 1일 자신의 트위터(@congjee)에서 인순이가 종편채널 축하쇼에서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 “인순이님 걍(그냥) 개념 없는 거죠 모(뭐)”라고 비난했다.  또 김연아가 TV조선의 프로그램 소개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는 “연아 ㅠㅠㅠ 아줌마가 너 참 예뻐했는데. 네가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다. 연아 근데(그런데) 안녕!”이라고도 적었다.  공씨의 글은 인터넷을 통해 퍼진 뒤 네티즌들은 공씨를 비난했다. 공씨 역시 중앙일보를 통해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했었기에 인순이나 김연아를 비난할 입장이 못된다는 것이다.  한 트위터리안은 공씨의 트위터에 “중앙일보에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하지 않으셨나요? TV조선이나 JTBC에 출연한다고 비난하실 입장은 아닌 거 같네요.”라고 지적했다. 공씨는 이 글에 “2006년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고 항변했지만 “정권이 다르면 논조도 다르냐.”, “변명하지 말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공씨는 “나 욕참고 말할게. 비슷 알바 다 꺼져라 응? 노무현 때였다.”라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도 공씨의 트위터에는 공씨의 발언에 대한 비판 의견과 지지 의견이 잇달아 올라왔다. 논란이 커지자 공씨는 2일 오전 “데뷔때부터 23년동안 쭉 악의적 기사와 악플 악평에 시달렸어요. 악의로 읽고 악의로 해석하고 악의로 첨삭하는 이들 앞에 장사는 없어요.”라며 더 이상의 종편 채널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씨는 지난달 23일에도 트위터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날치기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을 재인용하면서 손 대표를 향해 “잘 몰라서 묻는 건데 한나라당서 파견되신 분, 맞죠.”라고 비판해 논란을 일으켰었다. 민주당은 다음날 논평을 통해 “명망있는 사회 지도층으로서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언급”이라면서 공씨에게 공식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오늘의 눈] 법관을 위한 변명/이민영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법관을 위한 변명/이민영 사회부 기자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혼한 판사는 가사사건을 맡으면 안 될까. 종교를 가진 판사는 종교 관련 재판을 하면 안 될까. 그도 아니면 성폭력 재판에서 남성 판사를 배제해야 할까. 마지막 질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판사는 관련 재판을 하면 안 될까.’ 대부분 “에이, 그건 아니지.”라고 답하다가 마지막 질문에서 조금 갸웃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는 최근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각료까지 거론하며 한·미 FTA 비준안 통과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판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과 정치적 중립,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까지 뛰어들었다. 판사의 SNS 사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최은배 판사가 FTA 관련 재판을 맡는다면 공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앞선 질문에 모두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은 헌법에 따라 직무상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기계적 중립’이라는 말이 허구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다. 최루탄, 날치기, 물대포, 경찰서장 폭행 등 한·미 FTA를 둘러싼 뉴스를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대담론이 아닌, 우리네 삶과 직접 관련된 이런 이슈에서 무색무취 상태의 기계적 중립은 수식에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번 사안에 대해 페이스북 등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SNS를 통한 의견 표명이 공적이냐, 사적이냐는 문제는 이견이 있는 만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판사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인 그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앗아갈 권리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판사의 생각과 직무는 별개가 돼야만 하고, 판사는 객관적 양심에 따라 판결하면 된다. 그래도 동의할 수 없다면 마지막 질문. 당신은 고민 없이 서류더미에 파묻혀 판결을 양산하는 ‘재판 기계’ 판사를 원하는가. min@seoul.co.kr
  • “잔디·심판 때문에 주영·성용도 없고”…조광래의 변명

    “잔디·심판 때문에 주영·성용도 없고”…조광래의 변명

    축구는 수학이 아니다.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1위 한국이 146위 레바논에 졸전 끝에 1-2로 졌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 쿠웨이트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2-1 역전승을 거둠에 따라 한국의 최종예선 진출 여부는 3차예선 마지막 경기가 끝나 봐야 알 수 있게 됐다. 물론 한국이 내년 초 홈에서 벌어질 경기에서 쿠웨이트에 지고 최종예선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축구 강국들도 지역예선을 통과할 때 항상 애를 먹는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도 레바논에 질 수 있다. 일본(17위)도 북한(124위)에 졌다. 이게 축구다. 또 축구의 치명적 매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뒤다. 상대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조 감독은 경기 뒤 패배의 원인을 우선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의 잔디에서 찾았다. 그는 “더 좋은 경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라운드 상태가 국제 경기를 하기에 창피할 정도로 나빴다.”고 말했다. 틀린 말 아니다. 잔디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레바논도 똑같은 경기장에서 뛰었다. 축구하면서 패스 안 하는 팀 없고, 잔디 안 밟고 드리블하는 팀 없다. 한국과 레바논 양 팀 모두 똑같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조 감독은 전날 공식훈련을 통해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최종예선에도 원정경기가 있고,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잔디 핑계는 받아들일 수 없는 변명이다. 조 감독은 이어 심판 핑계를 댔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주심이 투입된 것도 문제다. 경기 운영 자체도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면서 “원정 경기의 어려움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심판의 판정은 좀 지나쳤다.”고 말했다. 조 감독의 생각처럼 경기 중 몇몇 장면에서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애매한 상황에서 홈 팀의 편을 들어주는 이른바 ‘홈어드밴티지’는 축구계의 불문율이다. 오히려 심판은 전반 20분 한국의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옐로카드가 한 장 있는 상황에서 어리석은 반칙을 저지른 구자철(볼프스부르크)에게 구두 경고만 주는 등 원정팀이 누리기 힘든 호사를 제공했다. 심판은 전혀 불공정하지 않았다. 이것도 납득할 만한 변명이 아니다. 조 감독은 마지막으로 박주영(아스널)과 기성용(셀틱)의 결장에서 패인을 찾았다. 그는 “박주영이 결장하면서 전반적으로 팀의 결정력이 떨어졌다. 기성용이 중원에서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줬지만 둘 다 빠져 팀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고 밝혔다. 틀린 말 아니다. 하지만 둘의 공백은 기정사실이었고, 이런 상황을 전술의 묘를 발휘해 넘어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고 하면 끝날 일이다. 대표팀 구성 및 베스트11, 교체전술 등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는 조 감독 자신인데,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결국 조 감독은 변명 같지 않은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축구팬들에게 패배의 안타까움보다 더 큰 실망을 안겼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사설] 건보이사장 후보 추천과정 문제 있다

    손건익 보건복지부 차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공모한 김종대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의 공모서류 대리접수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가 봐도 명백한 특혜이자 노골적인 압력이다. 파문이 일자 손 차관은 기자실에 찾아가 “사무관 시절 모셨던 상사가 특송으로 서류를 접수시키겠다고 해 수고를 덜어 주려고 대신 제출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향력을 행사할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손 차관의 이런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복지부 산하 기관장 인사다. 손 차관은 억울해할지 모르지만 옛 상사의 서류를 대리접수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사람을 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투명성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 손 차관의 처신은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할 기관장 인사에 꼼수와 편법이 동원됐다는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사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 우리 사회는 올 들어 전관예우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전관예우 타파에 앞장서야 할 정부 고위인사가 전관예우 실천에 앞장선 꼴이 아닌가. 이런 식의 인사로 무슨 개혁이 가능하겠으며,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김 전 실장은 건강보험 통합을 끝까지 반대했던 건강보험 조합주의자다. 옛 상사의 전력을 모를 리 없는 손 차관이 그를 위해 응모서류를 들고 뛰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못해 공직자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김 전 실장은 최종 두 명의 후보군에 들었으며 대통령의 재가만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후보 추천과정은 물론 후보자의 자격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임용절차를 취소하고 재공모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이유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가 그렇게 허술하게 결정돼선 안 된다.
  • [장태평 징검다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정치

    [장태평 징검다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정치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치권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박원순 시장이 탄생했고, 안철수 돌풍이 불었다. 이는 기성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라고도 하고, 정당정치의 위기라고도 하고,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세대의 반기라고도 한다. 필자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앞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치권에 말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관련한 정당 공천에서도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다. 주민들에게 신망이 전혀 없는 사람을 후보자로 공천하여 당의 선거를 망친 국회의원이 많았다. 이 결과는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선거에도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문제는 기초단체장을 지역 국회의원이 공천하는 현 정당공천제도다. 기초단체장들이 모두 입을 모아 없애자고 해도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이 제도를 선호하고 있다. 정당공천제도로는 누가 지역을 위해 기여할지보다 누가 자신에게 충성을 할지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제도는 그야말로 지역주민이 자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중앙당에서 지역의 공천권을 행사하지도 않고, 국회의원이 지방자치 선거의 공천권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힘 있는 사람들은 현상을 자세히 보려는 마음이 부족하다. 일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알아서 변명까지 해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결국에는 가래로 막지 않으면 안 될 일로 만들어 간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국민들은 정치의 실패를 얘기하며 실망하는데, 정작 정치인들은 이런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정치권의 집단이익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 선거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데도, 정치인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그런 징후를 더욱 크게 보여 준 것이다. 빙산의 90%가 물속에 있는데도 물 밖의 얼음만을 빙산으로 생각한다. 아니 최근 우리 정치인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기에도 힘겨운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제1야당은 후보도 내지 못했고, 거대여당은 크게 패배했다. 정치는 국민들의 가슴속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와 요구를 찾아내어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는 거라고 한다. 그렇기에 정치적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으나 반드시 나타날 요인들을 찾아내고 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첫째, 이미 나타났던 과거를 보지 않는다.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교훈이고 스승이다. 둘째, 미래를 보지 않는다. 미래는 없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땅에만 만족했다면,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했겠는가? 과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기업인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듯이 정치인들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도자는 조직이 공유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고, 지역별로, 정파별로 갈라져 무작정 싸울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공직 등 전문 직종에 있다가 새로이 정치인이 된 사람들 중에 기성 정치인보다 한술 더 뜨는 정치인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정치인들은 정파를 위해 개인 의사를 양보하고, 국가를 위해 정파의 이익을 뒤로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세계는 격변하고 있다. 서로 싸우면서 내부의 힘을 소실한다면, 그동안 쌓아 올렸던 성과가 무너질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 정치가 국민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여 통합하고, 시대적 변화에 맞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그러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우리 정치권에 주는 간절한 부탁이라 생각한다.
  • [셧다운제, 게임중독 구원투수 될까] (중) ‘인터넷 레스큐 스쿨’로 달라졌어요

    [셧다운제, 게임중독 구원투수 될까] (중) ‘인터넷 레스큐 스쿨’로 달라졌어요

    #사례 17세 주원(가명)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게임을 시작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친구들이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고 부러워했다. 으쓱거리며 더욱 게임에 몰두했다. 중학교 때는 엄마에게는 학원 간다고 하고서 아예 PC방에서 살다시피했다. 집에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주말에는 무서운 아빠가 있어 게임을 하지 못했다. 그럴 때면 애먼 동생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두들겨 패곤 했다. 학교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보다 못한 엄마 손에 이끌려 지난해 반강제적으로 11박 12일 동안 진행되는 ‘인터넷 레스큐 스쿨’에 참가했다. 거기에서 비로소 자신이 게임 중독임을 알게 됐다. 개인상담, 집단상담, 다양한 체험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엄마, 아빠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됐다. 일단 게임 계정을 지웠고, 아빠와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금씩 올라가는 성적은 부수적인 성과였다. 세상의 모든 중독은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다. 일단 완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중독의 치유는 중독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자각(自覺)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게임 중독자들은 중독 사실을 지적받을 경우 대다수가 ‘부정→변명→핑계대기→합리화→역공’ 수순을 취한다. 일단 자신은 게임 중독자가 절대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정한다. 그러다가 현재 게임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다고 자위하거나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게임을 하기 때문에 어울리기 위해서 하는 것뿐이라고 원인을 외부로 떠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유명 프로게이머 등을 들먹이며 자신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합리화한다. 그 다음에는 게임하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만 중독이니 뭐니 하며 괴롭히냐며 화를 내면서 역공을 한다. 이윤조 서울청소년상담센터 상담팀장은 1일 “게임중독은 개인적 우울증, 가족관계, 교우관계 등의 문제로부터 비롯되곤 한다.”면서 “중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 거부하면 상담을 통한 치유에 성공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게임중독의 폐해는 단순히 중독 그 자체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폭력, 범죄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자가진단을 통해 점검해본 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유아기부터 노출되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서너 살 어린아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 부모들이 대견해하곤 하지만 사실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학습 기능보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부모의 지혜로운 가정 교육을 당부했다. 여성가족부는 2007년부터 한국청소년상담원과 함께 ‘인터넷 레스큐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여름방학 동안 12일 입소 프로그램을 여덟 차례 진행했다. 중학생 이상 게임 과다 청소년이 대상이다. 개인에 대한 상담, 체험 활동과 전문의의 진단과 평가는 물론 가족 상담, 부모 교육까지 이뤄져 중독에 대한 자각과 치유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한다.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주 1회씩 사후 관리를 해준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참가자들의 게임 중독 개선율이 2007년 57.6%, 2008년 53%, 2009년 61.4%, 2010년 63% 등을 나타내는 등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게임 중독에서 치유되는 성과를 올렸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계산적이지 못한’ 수원을 위한 변명

    ‘트레블’(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챔피언스리그, K리그 3관왕)을 노리던 프로축구 K리그 수원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FA컵은 결승전 오심 탓에 놓쳤고, AFC챔스리그는 편파적인 심판까지 합세한 중동의 침대축구에 막혀 버렸다. 마지막 남은 목표는 K리그 우승. 하지만 이것조차 쉽지 않다. 라이벌 FC서울과의 승점 동률로, 골득실에서 간신히 1골 차로 앞서 불안한 3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남은 30라운드를 제외하더라도 챔피언 결정전까지 가려면 최소 3경기를 이겨야 한다. 그런데 2주 동안 FA컵 결승(원정)-AFC챔스리그(난투극)-정규리그-AFC챔스리그(카타르 원정)로 이어지는 강행군으로 체력은 완전히 고갈된 상태다. 세 마리 토끼를 쫓다 한 마리도 못 잡게 된 상황. 사실상 정규리그를 포기하고 FA컵에 전력을 쏟아 우승한 성남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지난 27일 AFC챔스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수원 구단 관계자는 “FA컵도 AFC챔스리그도 경기력에서 졌다면 이처럼 상실감이 크지는 않을 텐데 모든 게 산산조각 난 기분”이라면서 “내년 AFC챔스리그 진출권(3위)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맞다. 솔직히 수원이 어리석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시즌 운영을 했어야 한다고 충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장사도, 정치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팬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프로스포츠다. 팬을 위해, 매 경기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프로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프로구단이 “우리 정규리그는 포기했으니 팬 여러분 K리그 트로피는 기대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K리그에선 실제로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을 전면에 내세워 전략적 시즌 운영을 펼치는 구단이 있다. 그렇게 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물론 구단 사정을 뜯어 보면 이해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 이게 승부 조작의 토양을 제공하기도 했다. ‘계산적이지 못한’ 수원은 매 경기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세 마리 토끼가 시야에 들어왔다. 팬을 위해 어느 하나를 포기해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이게 수원이 K리그 최고의 충성도를 자랑하는 서포터스와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비결이다. 선택과 집중을 못 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불과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두 개의 우승컵을 놓쳤다는 것뿐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시집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최돈선 시인

    [저자와 차 한 잔] 시집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최돈선 시인

    ‘지금은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얼굴이/비 오는 날 파밭을 지나다 보면 생각난다.(중략)/그대는 하이얀 파꽃으로 흔들리다가/떠나는 건 모두 다 비가 되는 것이라고/조용히 조용히 내 안에 와 불러보지만/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후략)’ 굳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가을은 ‘시’라는 단어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하지만 막상 찾으려고 하면 마음에 와 닿는 시집 한권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돈선(왼쪽) 시인의 시집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해냄 펴냄)가 더욱 반갑게 다가선다. 세상을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시인이 독자들에게 사람과 사랑, 인생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일상의 평범한 단어를 잘 깁기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바뀔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최돈선 시인을 소설가 이외수(오른쪽)의 문학촌인,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만났다. 춘천에 산다던 그가 왜 화천에 가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외수와 최돈선이란 두 작가의 관계를 먼저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수가 “내 운명을 바꾸어 준 사람이 최돈선”이라고 단언할 만큼 그들의 인연은 깊다. “춘천교대에 다니던 어느 날, 제대 뒤 복학한 이외수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날부터 죽이 맞아 붙어 다녔지요.” 이미 등단해서 이름을 날리던 최돈선과 화가를 꿈꾸던 이외수의 만남은 그 자체가 ‘사건’이었다. 숱한 일화를 남긴 그들의 인연이 ‘백수’ 이외수를 소설가로 만들었고 결국 노년을 함께 할 만큼 질기게 이어진다. “이번 시집은 친구 이외수가 준 선물입니다. 치매가 깊어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느닷없이 그동안 써 놓은 시를 내놓으라는 겁니다.” 시를 고르는 것은 물론 삽화를 그리고 표지 글씨를 쓰는 일까지 친구가 ‘알아서’ 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낸 그도 이번 시집에 유난히 애착이 간다. 최 시인의 이력은 조금 복잡하다. 대학 재학 중 신문사 2곳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월간문학 신인상까지 받은 그였지만 시를 밥으로 바꿀 능력은 없었다. 결국 7년 동안 다니던 교대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됐다. 5년 뒤에는 중등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전남 완도와 강원 춘천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학교도 최종 정착지는 아니었다. 교사 생활 10년이 지날 무렵 홀연히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흐르고 흐르다 회귀하는 연어처럼 친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 삶의 궤적이 그의 시편들에 촉촉한 언어로 투영돼 있다. “시가 뭐냐고요? 먹다 남은 술병 같은 것이지요. 술을 마시다 보면 술병 속에 한탄과 한숨과 이야기가 고이기 마련이잖아요.” 그의 시는 결이 곱다. 현학적 언어나 누굴 가르치겠다는 의도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 “주변의 사람과 사물에 내재돼 있는 리듬을 끌어내는 게 제가 할 일이지요. 그래서 묘사보다는 자연적인 울림을 중시합니다.” 한때 사회 참여 시도 써 봤지만 체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오로지 서정시에만 마음을 뒀다. 그러다 보니 서정시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절에는 외로움도 컸다고 술회한다. 그의 시집에는 서문이 없다. “시인이 시로 이야기하면 됐지요. 나 자신을 설명하는 건 변명 같아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탈색을 거듭한 그의 눈에는 온기가 강물처럼 흐른다. 시인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 언뜻 시선을 들어보니 잘 익은 시들이 그의 손길이 닿은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다. 글 사진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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