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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수경양 징역 10년 선고/서울지법

    ◎「군사상 이익 공여」등 공소사실 모두 인정/함께 방북했던 문 신부엔 8년형 서울 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황상현부장판사)는 5일 「평양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몰래 다녀온 임수경피고인(22ㆍ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불어과 4년)에게 국가보안법의 특수탈출 및 잠입 등 모두6개죄목을 적용,징역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임피고인과 함께 구속기소된 「정의구현사제단」소속신부 문규현피고인(42)에게는 징역8년에 자격정지8년이 선고됐다. 임피고인은 징역15년,문피고인은 징역10년을 구형 받았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두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피고인들의 밀입북은 우리나라의 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한편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해 국가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했으므로 엄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평양축전」에 참가해 북한이 대남적화통일전략을 정당한 것처럼 대외적으로 선전하는데 이용됐을 뿐아니라 남한의 통일논의를 혼란에 빠뜨렸다』고비난했다. 재판부는 또 『임피고인이 북한당국자에게 「전대헙」의 구성과 조직,운동권의 활동 상황 등을 보고한 것은 현대전이 군사력뿐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 등에 걸친 총력ㆍ정보전이란 점에 비추어볼때 군사상의 이익을 북한에 제공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군사상이익공여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말하는 「순수한 통일의지」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를 전복해 북한의 통일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같은 시각은 어떤 명목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피고인은 이날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 가족 등 70여명의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고를 받았다. 한편 피고인 가족들과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이 끝난뒤 『재판부가 특수탈출ㆍ잠입과 지령수수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에 동조했다고 판시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사제단,비난성명 이날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의 1심공판은 자유변론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개재판의 원칙과 법의 형평을 잃은 부당한 재판』이라는 성명을 냈다.
  • 「낭만적 통일론」에 사법적 쐐기/임수경양 10년선고의 배경과 의미

    ◎“밀입북 모험주의는 질서 파괴행위” 판단/“법정 소란으로 정상참작 못받아” 분석도 서울형사지법이 5일 임수경양과 문규현신부에게 징역 10년과 8년의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문익환목사,서경원의원 등의 잇단 밀입북사건에 대한 1심 사법처리가 모두 마무리 됐다. 그동안 계속된 법정소란과 변호인들의 집단사임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두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중형을 선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이번 사건을 「뜨거운 통일에의 열망」이라는 낭만적시각에서 보는 평가는 어떠한 명목으로는 정당화 될수없다』고 못박고 『피고인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헌법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역행하고 통일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모험주의적 밀입북은 진정한 통일에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통일논의에 대한 사법적견해를 밝혔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단에 따른 중형선고에 대해 일부에서는 다소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임피고인이 아직도 배우는 학생이며 문피고인또한 성직자라는 사회적 신분이 충분히 고려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이에 앞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던 서경원피고인과 문익환ㆍ유원호피고인에게 징역15년과 10년씩이 선고된 점을 감안할 때 형의 형평이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이다. 이에대해 법조계에서는 뉘우침이 없는 진술사제 및 법정에서의 거친 태도,묵비권을 행사하는 등의 재판거부행위 등이 피고인들의 신분이나 정상을 참작하기 곤란하게 만든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임피고인은 공판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갖가지 구실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회피해 왔다는 것이 공판에 관여했던 검찰과 법원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따라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줄곧 공소사실을 부인해온 특수잠입 및 탈출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더욱이 이번 재판은 첫 공판때부터 피고인 및 방청객들의 법정소란행위로 휴정과 감치명령이 거듭되는 등 잇단진통을 겪었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마침내는 결심공판을 앞두고 70여명의 변호인단이 변호인 사임계를 내는 불행한 사태에 까지 이르기도 했다. 결심공판에서는 피고인들이 퇴정한 가운데 검사와 국선변호인만으로 공판을 진행해야 했다. 이때문에 재판부가 방청객을 제한하는 등 비상수단을 쓴 것도 문제라 할 수 있으나 변호인단이 형식에만 치우친 나머지 정작 「변론」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자리를 비웠던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이 끝난뒤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혀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검찰은 『이번 선고형량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뒤 2∼3일안에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이번 사건은 항소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 올라가 또다시 공방을 벌일것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두 피고인이 항소심에서도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엇갈린 진술을 거듭하고 재판부를 모독하는 행위를 재연할 경우 관대한 처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어떻든 임피고인에 대한 선고형량은 임양을 「평양축전」에 보낸 「전대협」의장 임종석피고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임수경양 15년 구형/서울지검/문신부엔 10년

    ◎구호 외치자 퇴정시킨뒤 재판/변호인 사퇴… 국선변호인 선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 학생축전」에 몰래 다녀온 「전대협」의 임수경피고인(22ㆍ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불어과 4년)에게 징역15년에 자격정지15년이,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피고인(41)에게는 징역10년에 자격정지10년이 구형됐다. 서울지검 공안부 이종왕ㆍ문성우검사는 22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황상현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들 두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잠입탈출 지령수수 및 찬양고무 등 )를 적용,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논고문을 통해 『임피고인은 북한의 대남공작 및 지령에 따라 입북한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한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의 주장을 찬양ㆍ고무하는 등 국민에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다』고 지적하고 『또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좌경세력들의 상투적인 수법인 법정투쟁을 벌이는 등 개전의 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피고인들의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 당분간격리해야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날 변호인단 70여명이 방청제한 등에 항의,사임계를 제출한데 따라 김정환변호사 등 3명을 국선변호인으로 선임해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변론에 나선 신선길변호사는 『변론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재판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구속만기일(2월14일)이 얼마 남지않았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에앞서 두 피고인은 이날 상오10시15분쯤 법정에 들어서면서 『반민주적이고 반통일적인 재판을 거부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다 재판부의 명령을 받은 교도관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갔으며 이에따라 공판은 피고인없이 진행됐다. 선고공판은 다음달 5일 열릴 예정이다.
  • 「노리에가 재판」/미의 새 골칫거리로(특파원리포트)

    ◎“CIA와 밀월” 폭로땐 미 체면 손상/부시ㆍ변호인,문서공개 싸고 신경전 가열 【김호준 워싱턴 특파원】 부시미행정부가 파나마의 전 실력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의 생포에 환호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정보문제 전문가들은 마약밀매 혐의로 미 법정에 기소된 노리에가가 미 정부를 얼마나 손상시키고 당황케 할것인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리에가는 미 정보활동에 오랜동안 관여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자신의 변론과정에서 많은 미 비밀 공작활동의 내막과 관련,인물 등을 드러나게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정보문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노리에가는 독자적인 스파이와 도청망을 갖고 있었고 쿠바 정보기관과도 밀접히 연계돼 있어 노리에가 미국의 비밀작전을 까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미 관리들은 말한다. 노리에가와 미 정보기관의 관계는 그가 페루 사관학교에 재학시 동료 생도들에 관한 정보를 제보하기 시작했을 때인 195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에 노리에가는 미 육군정보부대의 중요한 정보원이 되면서 파나마군에서 진급을 거듭,장래의 지도자로 급속히 부상했다. 노리에가의 마약밀매 혐의는 그가 중령때인 닉슨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에서 제기됐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 마약단속반 관리는 노리에가의 마약밀매 행위가 심각하다고 판단,그의 암살을 상부에 건의했으나 이 건의는 1972년 당시 마약단속기관 총수인 존 잉거솔에 의해 각하됐다. 노리에가가 미의 적대국인 쿠바에 관한 가치 있는 정보원이 되자 미 육군정보관리들은 노리에가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마약밀매 관련자료를 서류철에서 없애버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 검찰이 노리에가 기소를 준비하고 있었을때 DEA측은 기소에 강력히 반대했다. 노리에가는 마약밀매와 마약단속에 다함께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마약사건 담당 변호사들의 관측이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은 파나마에 전자 도청포스트를 설치,파나마내 부패행위를 근접 추적하는 한편 인근 국가들의 통화내용을 엿들어왔다. 이와 관련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8일 부시가 CIA 책임자로재임하고 있던 지난 76년부터 파나마에 있는 미국의 도청장치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조건으로 CIA가 노리에가에게 매년 11만달러를 지급했다고 폭로했다. 1976년 부시(현 대통령)가 지휘하던 CIA는 파나마에서 이 도청활동에 관계하는 미 육군상사 수명이 노리에가에게 스파이로 고용돼 있음을 적발했다. 파나마내 전자감시장치를 운영해온 NSA(국가안보국) 관리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노리에가가 쿠바내 정보원에게 미국이 감시해온 전화번호의 명단을 넘겨준 것으로 의심했다. 당시 NSA 총수였던 류 앨런은 부시를 찾아가 육군상사들 기소계획에 대한 지지를 구했지만 부시는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기소는 거부했다. 일부 고위 정보관리들은 미 육군 정보기관과 노리에가의 밀접한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건의는 채택되지 않았다. 노리에가 장군의 정치적 파워가 커진 것은 파나마가 세계무역과 외교의 교차로로 부상하는 것과 일치한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 초반에 파나마는 은행거래와 파나마에 적을 둔 회사에대해 비밀보장을 제공,국제금융센터로 발돋움했다. 그 결과 파나마는 불법자금의 세탁과 합ㆍ불법 무역 스파이 활동 등의 초점지대가 됐다. 동구국가들은 서방기술을 빼내기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했고 CIA도 정보활동을 은폐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했다. 노리에가에게는 외국세력을 서로 대결시켜 어부지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쿠바의 카스트로와 미국을 포함하여 서로 적대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다같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1983년에 CIA는 미군이 침공한 그라나다에서 쿠바군에게 항복명령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메시지를 카스트로에게 전달하는데 노리에가를 이용했다. 미 NSC(국가안보회의) 요원이었던 올리버 노스 중령은 미 의회가 금지시킨 콘트라 지원과 관련하여 3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선고를 받았다. 노스 중령 기소장에 의하면 노스는 노리에가의 협조를 갈구했고 그래서 1986년 런던에서 비밀리에 노리에가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리에가는 니카라과 정치 지도자 암살을 제의했다. 노스는 당시 NSC 보좌관인 포인데스터의지시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시 미 대통령은 『노리에가가 입을 여는 것에 겁을 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노리에가는 비밀문서의 공개를 요구해 재판진행을 중단시키려 들지 모르나 제도는 작동할 것』이라며 사태를 낙관했다. 그러나 노리에가측의 한 변호사는 『노스는 모든 것을 찢어발겼지만 노리에가는 아무것도 찢어발긴것이 없다. 여기엔 무언가 시사하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위협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기본권의 보루」로 거듭났다

    ◎본격가동 1년… 그 위상과 결실/소송촉진특례법등 7건에 “위헌” 결정/행정부 견제 역할… 국회 입법에도 영향력 제6공화국들어 새로 출범한 헌법재판소(소장 조규광)가 당초 기대이상으로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헌법의 수호와 국민기본권의 보장을 사명으로 88년9월18일 문을 연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 첫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 1년동안 모두 7건의 위헌결정을 내리고 6건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였다. 48년 정부수립 이후 위헌결정이 단 3건뿐이었고 그나마 제4공화국 이후에는 단 1건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 할수 있다. 새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25일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1항 단서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국가에 대해서도 재산권의 가집행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위헌 결정은 지난 71년 6월 국가배상심의위원회 사건에 대한 위헌판결 이후 19년만의 일이었으며 최고헌법 수호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드높인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어 ▲사회보호법 제5조의 필요적 보호감호에 관한 2건 ▲금융기관의 연체대출금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2항등 2건 ▲국회의원 선거법 제33조와 34조의 국회의원 후보의 기탁금 국고귀속 규정 ▲변호사법 제10조2항의 변호사의 개업장소 제한규정등을 위헌이라고 재판했다. 헌법재판소가 이처럼 문제가 제기된 법률에 대해 잇따라 위헌결정을 내리자 재야법조계를 중심으로 이해당사자들은 두손을 들어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관계법률에 따라 행정집행에 편의를 제공받았던 정부로서는 그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급기야는 관계부처 장ㆍ차관들이 재판에 직접 나가 변론을 돕는등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가 제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입법부나 사법부에 못지 않게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현행법률에 대한 잇따른 위헌 결정은 행정부 뿐만 아니라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도 영향을 미쳐 법안심의 과정을 보다 신중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의 헌정사상 헌법재판제도는 제1공화국 때인 48년7월 헌법위원회로 출발,제2공화국 때인 60년6월에는 헌법재판소,제3공화국 때인 62년12월에는 대법원사법심사제도,제4공화국 때인 72년12월과 제5공화국이 들어선 80년10월에는 헌법위원회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 기간동안 위헌결정이 겨우 3건뿐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활동이 미미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6공화국에 접어들면서 사회 각 분야가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크게 혁신되면서 헌법재판의 비중과 역할 또한 엄청나게 신장됐다. 새 헌법재판소가 활동을 벌인 이후 모두 1백55건의 위헌법률 심판이 청구됐고 3백93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1백55건의 위헌심판 청구사건은 그 특성상 대부분 기각된 것은 사실이나 위헌결정이 내려진 7건 말고도 아직 47건에 대해서는 심리가 계속되고 있다.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스스로 헌법의 이념과 규정에 따라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인 헌법소원 또한 상당수가 기각됐으나 받아들여진 6건 말고도 1백건은 아직 심리중이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헌법소원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검찰의 공소권 행사에관한 것으로 모두 1백37건이나 돼 검찰의 피의자에 대한 무혐의 처분이나 기소유예ㆍ불기소 처분에 대한 피해자측의 불만도를 알게 해주고 있다. 헌법소원은 이밖에도 사형제도ㆍ사회보호법ㆍ도시계획법등 법령에 관한 것(64건)과 공권력에 의한 재산권 침해에 관한것(34건)등이 있었다. 이들 헌법소원의 각하 이유는 소원청구 대리인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을 무시하거나 소원청구 기간이 이미 지난 뒤에 청구하는 등 소원청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위헌법률심판 사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노동쟁의조정법 등으로 꼽히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헌법재판소는 구랍 29일 일종의 「공청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제7조(찬양ㆍ고무ㆍ동조)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위헌론쪽 주장과 『자유권 행사가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되는 것일뿐 자유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합헌론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앞으로 국가보안법ㆍ사립학교법ㆍ노동쟁의 조정법등 시국과 관련된 법률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국의 흐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국가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의 위치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수사재개 명령을 내린데 대해 검찰이 또다시 「무혐의」 처분결정을 내려 헌법재판소와 검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이들 주장의 논거가 되고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이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헌법재판소장 회의에 참석한데 이어 오는 5월 터키에서 열리는 유럽지역 헌재소장 회의에도 옵서버로 참석하게 되는 등 그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곧 종로구 재동에 새청사를 기공하는 일등은 헌법재판소의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일이어서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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