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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규씨 민주화 인정 ‘심의보류’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변정수)는 9일 관련자 및 유족 여부 심사분과위원회를 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행위에 대한 민주화운동 인정여부를 논의한 끝에 ‘심의보류’ 결정을 내렸다. 심의보류는 분과위에서 안건을 당분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은 채 추가자료조사를 벌인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분과위는 시해사건 당시 수사·재판기록을 군사법원 등에 요청,자료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그러나 수사·재판기록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시해에 대한 민주화운동 여부 판정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보상심의위 관계자는 “분과위는 보통 과반수 출석,과반수 찬성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왔지만 이번 사안은 워낙 논란이 많다 보니 박 전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의 수사·재판기록 전문을 입수해 분석한 뒤 민주화운동 여부를 결정키로 전원이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결정에는 분과위 회의에 앞서 비공개로 진행된 시해사건 당시 군검찰관이었던 전창렬 변호사와 김 전 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의 증언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박사모’는 “한 나라의 국부(國父)를 시해한 중대 범죄자가 민주화 인사가 되는 것은 민주화에 대한 모독”이라며 민주화보상심의위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논술 비타민]

    아래 제시문 (가)와 (나)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통적 문화 현상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견해가 나타나 있다.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를 토대로 하여 논술하라.(서강대 2004학년도 정시 논술) ●(가-1) 최근에 나타난 현상인 블로그(blogs: weblogs에서 유래)는 자체 발표하는 웹 검색 일지이며,일종의 개인적인 온라인 일기이다.블로깅 소프트웨어 덕분에,누구든지 간단한 웹사이트를 쉽게 자주 갱신할 수 있게 되었다.…(중략)…블로그는 규칙적으로 갱신되고,좋아하는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하며,하나의 주제나 관심거리에 집중하고,언급된 사이트에 대한 논평을 포함한다.블로그는 때로는 일기 같고 때로는 팬이 제작한 잡지 또는 하부 문화에 대한 색인(索引) 같다.거의 모든 블로그가 관련 있거나 좋아하는 블로그의 목록을 포함하고 있으며,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게 해 주는 링크에 대해 ‘토론한다’.비슷한 관심거리에 관한 블로그의 무리가 자체 조직되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공동체가 토론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겨난다.…(중략)…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쟁점들을 서로 다른 대중을 위해 재구성하고,모든 사람들이 발언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우리들은 가상 공간을 통하여 직업적인 작가,예술가,방송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출판업자나 방송인이 될 수 있다.다자간 통신매체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하워드 라인골드,(참여 군중)에서 ●(가-2) 가상 공간에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필요도,예의를 지키며 조리 있게 대화해야 할 필요도 없다.유즈넷의 역사가 그 증거이다.혐오스럽고 짜증나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거칠고 속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또는 의사 전달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 때문에 토론이 불쾌해지곤 한다.그들만 아니었다면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유익한 토론이 되었을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대단히 집착하고 그것이 부정적인 관심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또 어떤 사람들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호전성,편협함,가학적인 충동을 마음껏 표출한다.온라인상의 대화에서 싸움을 즐기는 사람,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고집불통,돌팔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그리고 괴짜의 존재로 말미암아 공유지(共有地)의 딜레마라는 고전적인 비극이 발생한다.만약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개된 통로를 이용한다면,과다한 무임 승차객들이 그 대화를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셈이 될 것이다.-하워드 라인골드,(참여 군중)에서 ●(나-1) 문:피의자의 작품을 청소년들을 비롯한 피의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읽는다면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가요? 답:만일 청소년들이 저의 작품을 읽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저의 작품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기 때문에……. 문:지금 여고생이나 여중생의 임신이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로 성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미성년자들이 이 소설과 같은 음란한 내용의 책을 본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았는가요? 답:미성년자들이 저의 소설을 읽는다면 분명히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그러나 굳이 저의 소설이 아니더라도…….-소설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검사와 작가의 문답 ●(나-2) 육체를 성적(性的)인 맥락에서 성적인 자극과 흥분 상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외설이라고 한다면,예술이 그와 같은 표현 형식을 사용할 때는 분명히 예술도 외설이 아닐 수 없다.일반적으로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고착화된 ‘예술이 아니면 외설’ 이라는 식의 개념 정리는 그런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다.육체는 성적으로 다루어질 자유를 가지며,예술을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외설적 성 표현물을 모조리 금기시할 수는 없다.(문제가 되는 것은) 범죄적 수준의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에 해당하는 성 표현물들로 국한된다.이 점에서 외설과 형법에서 말하는 ‘음란’은 의미가 달라진다. 소설은 법이 보호하는 예술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속하고,예술은 존재 그 자체로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예술은 현실을 반성하고,현실의 보이는 것 그대로를 회의하고 정체를 뒤집어 보는 실험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예술적 실험은 본질적으로 기존 가치,질서와의 충돌을 내포할 수 있다.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하나의 본질적 기능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예술은 사회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위 작가에 대한 변론기에서 ●(다) 우리는 인간의 태도를 ‘*거리감’ 유지의 능력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인간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본능에 얽매여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물과의 거리와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이로써 인간은 스스로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본질을 초월하는 존재로서,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거리와 간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이로써 인간은 더 높은 위치와 더 넓은 시야를 획득하게 된다.이때 비로소 사물 자체의 고유한 존재와 의미 안에서 사물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오로지 인간만이 하나의 의미 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의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인간만이 자신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가치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그리고 인간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세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사물을 파악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기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며,문화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그러므로 인간의 세계는 결코 완성된 세계도 고정된 세계도 아니다.인간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계속 형성되어야 할 열려 있는 세계이다.‘세계 개방성’은 인간이 세계를 향해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세계가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註* 인간은 환경에 얽매여 있는 동물과는 달리 환경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환경에 맞서 환경을 지배한다.막스 쉘러(M.Scheler)는 이런 인간의 능력이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중략)…. 여기서 인간 행동의 기본 구조로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주어진 바로서의 지양을 의미하는 ‘*중재된 직접성’ 그리고 자발적인 중재를 의미하는 중재된 직접성이다.이 중재된 직접성은 그 근본에 있어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의 원초적인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기본 자유’라고 한다.(註* 인간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정신 작용을 통하여 반영된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중략)….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라,상대적이고 조건지워진 자유이다.인간의 자유는 이미 인간의 유한한 본질에 의해 그리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인간은 각각 제한된 가능성들과 대결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에 당위와 가치의 규범이 미리 주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또한 제한된 자유이다.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의미가 없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선(善)의 인정과 실현 안에 발생하는 의미 있는 자기 발전이다.자유는 선과 존재의 당위에 예속되어 있다.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는 참된 의미를 갖게 된다.…(중략)…. 이렇듯 인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인간 현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개별적인 결단이 자유로운 선택 안에서 발생한다면,이 결단은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자유를 전제한다.이 자유를 통하여 우리의 현존재는 근본적이며 본질적으로 자유롭게 된다.기본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조건지우면서 선재(先在)하고 있다.이 기본자유는 우리의 전체 행동이 자연의 예속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자리에 책임을 지는 한,우리의 전체 행동을 규정짓는다. 기본 자유를 통해 질료적이고 감각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개방성 안으로 자유롭게 되는 정신적 인식이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다른 한편 기본 자유는 가치와 가능성들에 대한 정신적 인식을 통해 구체적인 선택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중재한다.이 선택이 의식적인 자기처리와 자기 규정을 의미하면 할수록,그리고 우리의 자존의 중심으로부터 혼신의 노력으로 참된 책임 아래 완성되면 될수록 인간의 자유는 더욱 더 실현되고 발전된다.-에머리히 코레트,(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1.사오정·저팔계 고민하다 사오정과 저팔계는 오늘 신이 났다.삼장 선생이 외식을 시켜 준단다.사오정 일행은 인근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종업원이 즉석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사오정과 저팔계는 삼장 선생에게 다가가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이 녀석,그새 장난쳤구나.” 삼장의 머리 뒤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사오정의 모습을 사진에서 발견한 삼장 선생은 사오정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마냥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사오정과 저팔계는 논술 연습을 했다.삼장 선생은 답안을 보더니 “오늘 답안의 문제는 뭔지 생각해 보렴.힌트는 아까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다.”며 답안지를 돌려 주었다.‘사진?’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에그!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연필로 쓴 뒤에 볼펜으로 다시 썼는데 다 쓰지도 못했네? 길게도 썼네….”“쓸 내용이 너무 많은데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어.내용이 중요하지 뭐.”“하긴 그래.”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네.다 잘 된 거 같은데….’ 둘은 고민을 거듭했다. 2.논달선생 삼장,진단하다 “흠,오늘은 원고 분량이 문제다.” 삼장 선생의 진단에 둘은 맥 풀린 표정으로 “우린 뭐 대단한 문제가 있나 했어요.그건 대수롭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삼장 선생은 놀란 표정으로 “어허!이 녀석들 큰일 날 소리 하는구나.논술고사에서는 제한된 분량에 꼭 맞는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채점할 때 일일이 줄과 글자 수를 확인해 꼭 반영하기 때문에 감점 요인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느니라.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해라.” 3.논달선생 삼장,꾸짖다 모든 대입 논술고사에서는 분량이 정해져 있다.적게는 600자에서 많게는 2000∼3000여자 정도다.문제나 유의 사항에 분량에 관한 내용이 제시돼 있는데,이러한 규정은 상당히 엄격하다.가령 1600자 내외라고 하고 ‘160자’라는 단서가 있으면 이 답안은 1440∼1760자 범위에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이 분량보다 적거나 많으면 감점 요인이 된다.감점의 편차도 다르다.가령 모자라거나 많은 부분이 1∼10자면 1점,10∼30자면 2점,30∼50자면 5점,하는 식으로 편차에 따라 감점이 이뤄지느니라.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오정아! 너는 대수롭지 않다고 했지만 너처럼 앞부분은 볼펜으로 다시 쓰고,뒷부분은 연필로만 써 냈다면 어떻게 채점이 될까? 보통 볼펜으로 쓴 부분만 인정되기 때문에 분량 면에서 감점,연필로 쓴 부분은 무시되므로 내용적인 면에서도 감점이 이루어진단다.백번 양보해서 연필로 쓴 부분을 인정한다 해도 분량이 초과했기 때문에 감점을 면치 못한다.내용 면에서 일부 잘못한 것은 그 부분만 감점 당하지만 분량 조절을 못하면 여러 측면에서 감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느니라. 분량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단락의 개요를 작성할 때부터 몇 단락이나 쓸 수 있는지 가늠해 전체 뼈대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가령 1000∼1400자 답안이라면 4∼7단락 정도가 적당하다.그 이상의 분량을 써야 한다면 최소 5단락 이상은 돼야 보기 좋다.따라서 전체 분량에 알맞은 단락 개요를 작성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개요 작성이 끝나면 답안지에 연필로 각 단락을 쓸 공간을 미리 표시하고 써나가면 분량 조절에 도움이 된다.가령 첫 5줄은 서론,다음 7줄은 본문 첫째 단락 등 답안지를 분할해 사용하라는 것이다.한두 줄 모자라거나 넘칠 수는 있지만 분량이 크게 넘치거나 부족하게 되는 실수는 막을 수 있단다.대체로 서론과 결론은 본문 단락들보다 약간 적게 쓰는 것이 전체 균형상 바람직하다.또 하나,답안을 내기 전 연필로 표시한 것은 꼭 지워야 한다.이 표시를 남기면 0점 처리되는 경우도 있단다.답안 내용과 교정부호 이외 낙서나 표시가 있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란다. 4.사오정 깨닫다 “명심하겠습니다.그런데 아까 힌트가 사진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사진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그 정해진 크기 속에 찍고 싶은 광경을 적절히 조절해 넣을 줄 알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논술의 분량이 제한돼 있는 것도 사진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하고 싶은 얘기를 정해진 분량에 맞게 조리있게 서술할 줄 알아야 좋은 논술이 된다는 얘기다.할 말이 많아서 길어졌다는 것은 논술에서는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정해진 분량에 맞춰 할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평가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다.’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논술 비타민]

    아래 제시문 (가)와 (나)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통적 문화 현상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견해가 나타나 있다.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를 토대로 하여 논술하라.(서강대 2004학년도 정시 논술) ●(가-1) 최근에 나타난 현상인 블로그(blogs: weblogs에서 유래)는 자체 발표하는 웹 검색 일지이며,일종의 개인적인 온라인 일기이다.블로깅 소프트웨어 덕분에,누구든지 간단한 웹사이트를 쉽게 자주 갱신할 수 있게 되었다.…(중략)…블로그는 규칙적으로 갱신되고,좋아하는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하며,하나의 주제나 관심거리에 집중하고,언급된 사이트에 대한 논평을 포함한다.블로그는 때로는 일기 같고 때로는 팬이 제작한 잡지 또는 하부 문화에 대한 색인(索引) 같다.거의 모든 블로그가 관련 있거나 좋아하는 블로그의 목록을 포함하고 있으며,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게 해 주는 링크에 대해 ‘토론한다’.비슷한 관심거리에 관한 블로그의 무리가 자체 조직되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공동체가 토론을 통해 자발적으로 생겨난다.…(중략)…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은 쟁점들을 서로 다른 대중을 위해 재구성하고,모든 사람들이 발언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우리들은 가상 공간을 통하여 직업적인 작가,예술가,방송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출판업자나 방송인이 될 수 있다.다자간 통신매체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하워드 라인골드,(참여 군중)에서 ●(가-2) 가상 공간에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필요도,예의를 지키며 조리 있게 대화해야 할 필요도 없다.유즈넷의 역사가 그 증거이다.혐오스럽고 짜증나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거칠고 속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또는 의사 전달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 때문에 토론이 불쾌해지곤 한다.그들만 아니었다면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유익한 토론이 되었을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대단히 집착하고 그것이 부정적인 관심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또 어떤 사람들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호전성,편협함,가학적인 충동을 마음껏 표출한다.온라인상의 대화에서 싸움을 즐기는 사람,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고집불통,돌팔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그리고 괴짜의 존재로 말미암아 공유지(共有地)의 딜레마라는 고전적인 비극이 발생한다.만약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개된 통로를 이용한다면,과다한 무임 승차객들이 그 대화를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셈이 될 것이다.-하워드 라인골드,(참여 군중)에서 ●(나-1) 문:피의자의 작품을 청소년들을 비롯한 피의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읽는다면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가요? 답:만일 청소년들이 저의 작품을 읽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저의 작품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기 때문에……. 문:지금 여고생이나 여중생의 임신이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로 성의 무방비 상태에 있는 미성년자들이 이 소설과 같은 음란한 내용의 책을 본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았는가요? 답:미성년자들이 저의 소설을 읽는다면 분명히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그러나 굳이 저의 소설이 아니더라도…….-소설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검사와 작가의 문답 ●(나-2) 육체를 성적(性的)인 맥락에서 성적인 자극과 흥분 상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외설이라고 한다면,예술이 그와 같은 표현 형식을 사용할 때는 분명히 예술도 외설이 아닐 수 없다.일반적으로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고착화된 ‘예술이 아니면 외설’ 이라는 식의 개념 정리는 그런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다.육체는 성적으로 다루어질 자유를 가지며,예술을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외설적 성 표현물을 모조리 금기시할 수는 없다.(문제가 되는 것은) 범죄적 수준의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에 해당하는 성 표현물들로 국한된다.이 점에서 외설과 형법에서 말하는 ‘음란’은 의미가 달라진다. 소설은 법이 보호하는 예술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속하고,예술은 존재 그 자체로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예술은 현실을 반성하고,현실의 보이는 것 그대로를 회의하고 정체를 뒤집어 보는 실험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예술적 실험은 본질적으로 기존 가치,질서와의 충돌을 내포할 수 있다.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하나의 본질적 기능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예술은 사회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위 작가에 대한 변론기에서 ●(다) 우리는 인간의 태도를 ‘*거리감’ 유지의 능력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인간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본능에 얽매여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물과의 거리와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이로써 인간은 스스로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본질을 초월하는 존재로서,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거리와 간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이로써 인간은 더 높은 위치와 더 넓은 시야를 획득하게 된다.이때 비로소 사물 자체의 고유한 존재와 의미 안에서 사물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오로지 인간만이 하나의 의미 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의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인간만이 자신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가치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그리고 인간만이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세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사물을 파악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기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며,문화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그러므로 인간의 세계는 결코 완성된 세계도 고정된 세계도 아니다.인간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계속 형성되어야 할 열려 있는 세계이다.‘세계 개방성’은 인간이 세계를 향해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세계가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註* 인간은 환경에 얽매여 있는 동물과는 달리 환경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환경에 맞서 환경을 지배한다.막스 쉘러(M.Scheler)는 이런 인간의 능력이 인간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중략)…. 여기서 인간 행동의 기본 구조로서 나타나는 것은 직접 주어진 바로서의 지양을 의미하는 ‘*중재된 직접성’ 그리고 자발적인 중재를 의미하는 중재된 직접성이다.이 중재된 직접성은 그 근본에 있어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의 원초적인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기본 자유’라고 한다.(註* 인간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정신 작용을 통하여 반영된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중략)….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라,상대적이고 조건지워진 자유이다.인간의 자유는 이미 인간의 유한한 본질에 의해 그리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인간은 각각 제한된 가능성들과 대결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에 당위와 가치의 규범이 미리 주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또한 제한된 자유이다.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의미가 없는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선(善)의 인정과 실현 안에 발생하는 의미 있는 자기 발전이다.자유는 선과 존재의 당위에 예속되어 있다.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는 참된 의미를 갖게 된다.…(중략)…. 이렇듯 인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인간 현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개별적인 결단이 자유로운 선택 안에서 발생한다면,이 결단은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자유를 전제한다.이 자유를 통하여 우리의 현존재는 근본적이며 본질적으로 자유롭게 된다.기본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조건지우면서 선재(先在)하고 있다.이 기본자유는 우리의 전체 행동이 자연의 예속성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자리에 책임을 지는 한,우리의 전체 행동을 규정짓는다. 기본 자유를 통해 질료적이고 감각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개방성 안으로 자유롭게 되는 정신적 인식이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다른 한편 기본 자유는 가치와 가능성들에 대한 정신적 인식을 통해 구체적인 선택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중재한다.이 선택이 의식적인 자기처리와 자기 규정을 의미하면 할수록,그리고 우리의 자존의 중심으로부터 혼신의 노력으로 참된 책임 아래 완성되면 될수록 인간의 자유는 더욱 더 실현되고 발전된다.-에머리히 코레트,(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1.사오정·저팔계 고민하다 사오정과 저팔계는 오늘 신이 났다.삼장 선생이 외식을 시켜 준단다.사오정 일행은 인근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다.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종업원이 즉석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사오정과 저팔계는 삼장 선생에게 다가가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이 녀석,그새 장난쳤구나.” 삼장의 머리 뒤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사오정의 모습을 사진에서 발견한 삼장 선생은 사오정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마냥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사오정과 저팔계는 논술 연습을 했다.삼장 선생은 답안을 보더니 “오늘 답안의 문제는 뭔지 생각해 보렴.힌트는 아까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다.”며 답안지를 돌려 주었다.‘사진?’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에그!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연필로 쓴 뒤에 볼펜으로 다시 썼는데 다 쓰지도 못했네? 길게도 썼네….”“쓸 내용이 너무 많은데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어.내용이 중요하지 뭐.”“하긴 그래.”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네.다 잘 된 거 같은데….’ 둘은 고민을 거듭했다. 2.논달선생 삼장,진단하다 “흠,오늘은 원고 분량이 문제다.” 삼장 선생의 진단에 둘은 맥 풀린 표정으로 “우린 뭐 대단한 문제가 있나 했어요.그건 대수롭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삼장 선생은 놀란 표정으로 “어허!이 녀석들 큰일 날 소리 하는구나.논술고사에서는 제한된 분량에 꼭 맞는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채점할 때 일일이 줄과 글자 수를 확인해 꼭 반영하기 때문에 감점 요인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느니라.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해라.” 3.논달선생 삼장,꾸짖다 모든 대입 논술고사에서는 분량이 정해져 있다.적게는 600자에서 많게는 2000∼3000여자 정도다.문제나 유의 사항에 분량에 관한 내용이 제시돼 있는데,이러한 규정은 상당히 엄격하다.가령 1600자 내외라고 하고 ‘160자’라는 단서가 있으면 이 답안은 1440∼1760자 범위에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이 분량보다 적거나 많으면 감점 요인이 된다.감점의 편차도 다르다.가령 모자라거나 많은 부분이 1∼10자면 1점,10∼30자면 2점,30∼50자면 5점,하는 식으로 편차에 따라 감점이 이뤄지느니라.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오정아! 너는 대수롭지 않다고 했지만 너처럼 앞부분은 볼펜으로 다시 쓰고,뒷부분은 연필로만 써 냈다면 어떻게 채점이 될까? 보통 볼펜으로 쓴 부분만 인정되기 때문에 분량 면에서 감점,연필로 쓴 부분은 무시되므로 내용적인 면에서도 감점이 이루어진단다.백번 양보해서 연필로 쓴 부분을 인정한다 해도 분량이 초과했기 때문에 감점을 면치 못한다.내용 면에서 일부 잘못한 것은 그 부분만 감점 당하지만 분량 조절을 못하면 여러 측면에서 감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느니라. 분량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단락의 개요를 작성할 때부터 몇 단락이나 쓸 수 있는지 가늠해 전체 뼈대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가령 1000∼1400자 답안이라면 4∼7단락 정도가 적당하다.그 이상의 분량을 써야 한다면 최소 5단락 이상은 돼야 보기 좋다.따라서 전체 분량에 알맞은 단락 개요를 작성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개요 작성이 끝나면 답안지에 연필로 각 단락을 쓸 공간을 미리 표시하고 써나가면 분량 조절에 도움이 된다.가령 첫 5줄은 서론,다음 7줄은 본문 첫째 단락 등 답안지를 분할해 사용하라는 것이다.한두 줄 모자라거나 넘칠 수는 있지만 분량이 크게 넘치거나 부족하게 되는 실수는 막을 수 있단다.대체로 서론과 결론은 본문 단락들보다 약간 적게 쓰는 것이 전체 균형상 바람직하다.또 하나,답안을 내기 전 연필로 표시한 것은 꼭 지워야 한다.이 표시를 남기면 0점 처리되는 경우도 있단다.답안 내용과 교정부호 이외 낙서나 표시가 있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란다. 4.사오정 깨닫다 “명심하겠습니다.그런데 아까 힌트가 사진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사진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그 정해진 크기 속에 찍고 싶은 광경을 적절히 조절해 넣을 줄 알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논술의 분량이 제한돼 있는 것도 사진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하고 싶은 얘기를 정해진 분량에 맞게 조리있게 서술할 줄 알아야 좋은 논술이 된다는 얘기다.할 말이 많아서 길어졌다는 것은 논술에서는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정해진 분량에 맞춰 할 말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평가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다.’라는 주제로 강의가 진행됩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기고] 의문사위 주장 옳지 않다/장석권 단국대 헌법학 명예교수

    의문사위는,지난번 간첩·빨치산 출신으로 복역중 공안당국의 강제전향을 거부하다 옥사한 3명을 의문사로 결정한 것과 관련,그 배경과 위원회의 입장을 지난 16일 공식적으로 밝혔다.그리고 “위원회 결정은 준사법적 성격의 결정으로 재판과 같아,어느 누구도 감독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이에 관해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간첩이나 빨치산에게도 기본권은 동일하게 보장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그들이 간첩이나 빨치산이기 때문에 국민으로 처우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처음부터 의문사 진상규명 대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자로 선정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우리 헌법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결연히 투쟁한다는 ‘방어적 또는 투쟁적 민주주의’를 선언하고 있다.따라서 의문사진상규명 대상자가 되려면 최소한 대한민국의 존재가치를 긍정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의미다.그러나 그들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타도하여 공산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적대세력의 전위적 역할을 담당한 자들이기에 처음부터 의문사 진상규명 대상자가 될 수 없다.우리 헌법뿐만 아니라 독일 헌법은,제18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본권을)남용하는 자는 이 기본권을 상실한다.’고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와 자유민주제도에 관해 의문사위는 사상·양심의 자유가 초국가적이며 보편적인 인간의 자유이기 때문에,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이는 양심의 자유를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왜냐하면 전쟁당사국의 요원이나 병사의 경우,처음부터 상대국 파괴와 살상을 절대적인 사명으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사상·양심의 자유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별도의 법률 즉 포로의 지위를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적용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원칙이다.그러나 간첩이나 빨치산은 이 협정에서조차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따라서 그들이 체포 수감 중에 비록 사상전향 공작에 저항행위를 했더라도 그것은 인간적인 사상·양심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고,단지 그들이 속한 집단이 그들에게 부여한 사명을 고수하기 위한 저항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향거부가 인권제도 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2조 제2호는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여…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했으며,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 아니라,전향거부 운동을 함으로써 인간의 기본권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활동을 한 것뿐이다.그리고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에게는 물론 간첩·빨치산이라 할지라도 폭행이나 고문·가혹행위 등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 등의 폐지는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폭행·가혹행위 등의 부작용이 자행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폐지한 것이지,그들의 저항으로 폐지된 것이 아니다. ●위원회 결정은 어느 누구도 감독·규제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사법적인 판결은 물론 어떠한 위원회의 결정도 단심으로 종결되는 경우는 없다.의문사위가 변론이나 이의제기를 거쳐서 결정한 것도 아닌데,어떤 간섭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석권 단국대 헌법학 명예교수
  •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 이시윤 경희대 교수

    #1 3년 전 친일파 후손이 땅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냈다.분개했지만 방법이 없었다.친일파 후손이라도 사유재산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1997년 대법원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1심 재판부는 소를 각하했다.조국을 배반한 사람의 권리까지 보호해준다는 것은 신의성실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일반 상식과 통한다는 점에서 속시원한 판결로 받아들여졌다.법률적 근거도 있었다.‘신의칙(信義則)’은 민사소송법의 일반 대원칙으로 명문화돼 있다. #2전두환 전 대통령.지난해 “내 전 재산은 29만원”이라며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해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대검 중수부가 대선자금 수사로 채권시장을 뒤지다 370억원대 비자금을 찾아내면서 웃음거리가 됐지만. 만약 전씨가 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 개입한 사실이 ‘법률적’으로 확인된다면 민사집행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될 수도 있다.이 역시 민사소송법의 ‘재산명시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의칙의 명문화,재산명시제도 도입 등을 주도한 민사소송법의 1인자 이시윤(李時潤·69) 경희대 교수를 만났다. ●일본도 ‘신의칙(信義則)’ 문구 그대로 사용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해야 한다는 신의칙이란 한마디로 소송의 윤리관입니다.” 이 교수는 90년 민사소송법 개정작업에 참가해 직접 이 문안을 작성했다.뿌듯한 점은 96년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던 일본이 이 문구를 그대로 번역해 넣었다는 사실.“늘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나간다는 일본도 이것만은 우리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의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판사로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지금이야 나아졌지만 그 시절만 해도 법을 안다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그때 이런 것은 막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무를 익히고 싶어 판사의 길을 택했지만 때때로 대학 강단에 섰다.7년 동안 법대 조교수로 일한 경험도 있다.‘관료법관’에 얽매이지 않아 친정인 법원에도 마음껏 쓴소리를 한다.어느 글에서 ‘판사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나그네’라고 꼬집기도 했다.또 초대 헌법재판관으로서 헌재와 대법원간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헌재의 기형적 출발은 대법원의 기관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한다.특히 법원의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민주주의 최고기관인 국회를 통과한 법에 대해서도 위헌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이 헌재인데 판결은 왜 예외입니까.형사소송법에도 비상상고제가 있고 민사소송법에도 재심제가 있습니다.그것처럼 헌재의 결정은 4심이 아니라 비상심급입니다.”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그는 로스쿨이나 법조일원화 방안에도 적극 찬성이다.“우리는 죽어라 법전만 본 사람들을 뽑아다 1·2·3심 판사라는 승진 개념으로 묶어놨어요.이것을 없애야 합니다.다양한 전공자가 법전을 들춰봐야 하고 판사를 ‘case manager’로 인식해야 합니다.미국이나 독일에서는 외려 1심 판사를 더 선호해요.걸러지지 않은,새로운 사건을 다룰 수 있거든요.” 이 교수는 이북 출신이다.얼마 전 열차폭발 사고로 고통을 겪었던 평북 용천이 고향이다.말투에 언뜻 이북 사투리가 묻어난다.열네살 되던 해,할아버지가 지주라는 이유로 숙청을 피해 가족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는 고달팠다.그나마 아버지가 하급 공무원이 된 덕에 공부는 계속할 수 있었다.성장기의 기억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강한 불신의 대상이다. ●조순형 전 대표 친분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위 참가 언뜻 81년 이 교수가 광주고법 부장판사로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당시 법원은 정찰제 판결 때문에 ‘시국사범 공장’이라는 냉소를 받고 있었다.안기부 요원이 판사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었고,출세욕이나 조직논리에 휩싸인 공안검사가 판사실 앞에서 무언의 시위를 벌이던 시절이다.극단적 국가폭력이라는 상황에서 당시 느낌은 어땠을까.이 교수는 한토막 일화로 답을 대신했다.“집시법 위반사건이었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면서 고문 때문에 살이 뭉개진 다리를 내보입디다.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울더군요.안되겠다 싶어 잠깐 휴정하고는 배석판사부터 혼냈습니다.그리고는 괜히 살인 혐의 피고인 불러내서 고함치고 호통치고 그랬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기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盧 탄핵 결의문 엉성… 기각 예상했었다” 이 교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와 친분이 깊다.요즘 근황을 묻자 이 교수는 “참 훌륭한 사람들인데 아깝다.”고만 말했다.개인적 덕과 지도자로서의 덕은 다른 것 아니냐고 묻자 “우리 사회가 격변기라 그렇습니다.난세(亂世)가 아닌 치세(治世)에 태어났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 다 후회없는 인생이라고 봐요.” 조 전 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이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몫으로 배정된 소추위원 변호인단에 참가했다.별로 내키지 않아 법정변론에는 나가지 않았다.“탄핵 결의문을 보니 엉성하더군요.그 때 기각을 예상했습니다.김기춘 의원에게도 말해뒀습니다.이걸로는 어렵다,그렇지만 법치의식을 주입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최선은 다해보겠다고.” ●“민법개정작업 끝냈지만 성년후견제 도입 아쉬워” 이 교수는 최근 큰 일을 끝냈다.광범위한 체계에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함부로 손대기 어려웠던 민법 개정작업.김대중 정부 시절 시작한 작업을 5년여만에 끝냈다.성년 연령 19세 조정,담보제 개선 등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몇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노령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성년후견제’ 도입도 검토해야 하고,등기의 공신력을 높여 등기부만 보고 거래한 사람은 보호해주는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길어지는 인터뷰가 힘들었는지 연신 입술을 축인다.괴롭혀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기자양반 덕분에 내 인생을 한번 돌아봤어요.재미있네요.”라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10월10일 평북 용천 출생 ▲서울고-서울법대-독일 뉘른베르크 법대 ▲1958년 고등고시 10회 합격 ▲1960년 서울대 등 강의 ▲1974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75년 서울지법 부장판사 ▲1981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1988년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 ▲1993년 감사원장 ▲2000년 경희대 법대교수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행정수도 협의체’ 黨·政·靑 가동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5일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당·정·청이 주1회 대책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이전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당정은 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과 관련한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건설교통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범정부 대책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고위 당정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이같은 의견을 모았다고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이 전했다. 당·정·청 협의체는 김영주 청와대 정책수석과 한덕수 국무조정실장,김한길 당 신행정수도 특별대책위원장이 참여한다.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대비하기 위한 범정부 대책반은 건교부와 법무부,법제처,신 행정수도건설 추진단,변호인단 등으로 구성키로 했다. 대책반에서는 헌법재판소에 정부측 의견서를 내고 공개 변론에 대비하기로 했다.당정은 신 행정수도 후보지에 대한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 시장 동향을 면밀하게 감시,특이 사항 발생시 즉시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하기로 했다.신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국민 설득작업은 정책적인 부분은 정부에서,정치적인 부분은 당에서 주도키로 했다. 이해찬 총리는 “신행정수도 건설은 30년간 고민해 온 수도권 과밀현상을 풀 수 있는 해답이고,신행정수도 건설이 흔들리면 수도권 재정비와 국토균형발전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이제 당정이 적극적으로 국민 설득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盧대통령에 ‘행정수도’ 의견조회

    ‘신행정수도 특별조치법’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중인 헌법재판소는 14일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건설교통부,법무부,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서울시 등 6개 이해관계 기관에 대해 의견조회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15일 평의를 열고 서류검토 및 공개변론 여부 등 재판 절차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헌재는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감안,평의에서 재판을 공개 변론으로 진행할 것인지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 사건에 대한 정부측 대리인단에는 헌재 재판관 출신인 하경철 변호사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양삼승 변호사가 포함됐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측 대리인단으로 활동했다.두번째로 ‘노 대통령 구하기’에 나서게 된 셈이다.정부측 대리인에는 법무법인 ‘화우’ 소속의 김건흥·황상현 변호사 등 5∼6명도 참여한다. 하 변호사와 양 변호사는 이 사건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연결짓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극히 조심스러워하고 있다.양 변호사는 “이 헌법소원은 대통령 탄핵과 아무 연관이 없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의 법률적인 문제만 다룰 뿐”이라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하 변호사가 평소 친분이 있던 모 장관의 부탁을 받고 사건을 맡은 뒤 대통령 탄핵심판 때 호흡을 맞춘 나에게 제의했다.”고 말했다. 헌법소원 사건은 공개변론이 강제조항이 아닌 데다 ‘신행정수도 특별조치법’이라는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은 정부측이 피청구인 자격이 될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청구인측 대리인단인 이석연·이영모·김문희 변호사측과 정부측 대리인단이 법정공방을 펼칠지는 미지수다. 강충식 박경호기자 chungsik@seoul.co.kr˝
  • 헌재, 전원재판부 회부안팎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헌법소원 청구가 이례적으로 접수 하루만인 13일 전원재판부로 회부되면서 심리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수도 이전이 국민적 관심을 벗어나 국론분열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점을 감안,헌법재판소가 최대한 신속히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사건을 맡은 제3지정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3명의 재판관 중 최소 한명 이상은 이번 사건이 법적인 요건은 갖췄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3명의 재판관 모두가 각하 의견을 내지 않는 한 전원재판부로 회부되기 때문이다.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소원은 각하돼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온 정부는 1라운드에선 패배한 셈이다. 헌법소원 대리인인 이석연 변호사는 “일반사건의 경우 30∼40%가 사전심사에서 각하되지만 이번 사건은 적법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전원재판부로 회부됐다.”고 말했다.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뒤에도 법적으로 각하는 가능하지만 지정재판부가 전원재판부로 회부했다는 점을 볼 때 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전원재판부에서는 평의를 열고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의 활동 중단 여부를 가리는 가처분신청과 본안사건을 심리하게 된다.이르면 15일 전원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첫 평의를 열 수도 있다. 가처분신청에 대한 인용은 9명의 재판관 중 5명 이상이 찬성하면 결정된다.인용이 결정되면 추진위의 활동은 전면 중단된다. 전원재판부가 공개변론을 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이다.공개변론 여부는 전적으로 전원재판부 결정 사항인 만큼 현재로서는 가능성 여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헌법재판소법 30조2항에는 필요한 경우 공개변론이 가능하다고만 돼있다. 공개변론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대리인단과 정부측은 각종 의견서나 증거조사를 신청,위헌 내지는 합헌에 대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소원의 인용 결정은 6인 이상의 재판관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만 가능하다.나머지의 경우는 각하 또는 기각 결정에 해당한다. 전원재판부가 각하,기각,인용 중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지정재판부처럼 신속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강충식 박경호기자 chungsik@seoul.co.kr
  • 헌재, 전원재판부 회부안팎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헌법소원 청구가 이례적으로 접수 하루만인 13일 전원재판부로 회부되면서 심리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수도 이전이 국민적 관심을 벗어나 국론분열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점을 감안,헌법재판소가 최대한 신속히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사건을 맡은 제3지정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3명의 재판관 중 최소 한명 이상은 이번 사건이 법적인 요건은 갖췄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3명의 재판관 모두가 각하 의견을 내지 않는 한 전원재판부로 회부되기 때문이다.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소원은 각하돼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온 정부는 1라운드에선 패배한 셈이다. 헌법소원 대리인인 이석연 변호사는 “일반사건의 경우 30∼40%가 사전심사에서 각하되지만 이번 사건은 적법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전원재판부로 회부됐다.”고 말했다.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뒤에도 법적으로 각하는 가능하지만 지정재판부가 전원재판부로 회부했다는 점을 볼 때 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전원재판부에서는 평의를 열고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의 활동 중단 여부를 가리는 가처분신청과 본안사건을 심리하게 된다.이르면 15일 전원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첫 평의를 열 수도 있다. 가처분신청에 대한 인용은 9명의 재판관 중 5명 이상이 찬성하면 결정된다.인용이 결정되면 추진위의 활동은 전면 중단된다. 전원재판부가 공개변론을 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이다.공개변론 여부는 전적으로 전원재판부 결정 사항인 만큼 현재로서는 가능성 여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헌법재판소법 30조2항에는 필요한 경우 공개변론이 가능하다고만 돼있다. 공개변론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대리인단과 정부측은 각종 의견서나 증거조사를 신청,위헌 내지는 합헌에 대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소원의 인용 결정은 6인 이상의 재판관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만 가능하다.나머지의 경우는 각하 또는 기각 결정에 해당한다. 전원재판부가 각하,기각,인용 중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지정재판부처럼 신속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강충식 박경호기자 chungsik@seoul.co.kr˝
  • [씨줄날줄] KAL기 폭파 재조사/이기동 논설위원

    우리의 잠재의식 가장 깊은 곳에 악몽처럼 자리한 사건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바로 1987년 탑승객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가의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다.원혜영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이 사건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시키는 특별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의문사위 특별법은 조사대상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다.원 의원 등은 조사대상을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인한 사망’으로까지 확대시켜 이 사건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KAL기 사건이 북한 지도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우리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을 상정한 법개정인 셈이다. 이 사건은 1990년 3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졌고,김일성 부자의 지시로 공작원 김현희 일당이 88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하지만 사건 직후부터 악성 음모론이 뒤따랐다.전두환정권이 저지른 자작극이고,김현희도 남한 정보당국이 만든 가공인물이라는 것이다. 음모론의 최초 발신처는 북한 관영매체였지만,뒤이어 유가족들과 우리 사회 진보세력 사이에 무섭게 번져나갔다.실체 없는 음모론의 바닥에는 전두환정권이 능히 이런 자작극을 벌일 만큼 부도덕하다는 정치적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음모론 소설이 회자됐고 2002년 9월 제출된 전면재조사 국회청원에는 지금의 여당 소속 국회의원 다수가 서명했다.공중파 방송들은 앞다투어 음모론을 확대재생산했다.김현희의 변론을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는 최근 발간한 책에서 자기한테도 진실을 물어온 방송제작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한다. 안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을 믿게 만들 방도는 세상에 없다.하지만 그 사이 17년이 흐르고 정권이 4번 바뀌었다.이렇게 많은 사람을,이렇게 오래 속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김현희가 북한공작원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안동일 변호사는 김현희가 혹독한 훈련을 받고도 겉만 빨갛게 변한 ‘사과형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한다.재조사를 한다 해도 무슨 방법으로 그 방대한 재판기록,증인명단에서 음모론의 증거를 찾아낼지 모르겠다.모두가 좀더 냉정해질 수는 없을까.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손가락 보낸 ‘분노의 母情’

    의붓딸을 성폭행한 아버지가 보석으로 풀려난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손가락을 잘라 법원에 보내며 항의했다.그러나 항소심 구속기간이 끝나 법원은 22일 아버지를 석방했다.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 어머니 김모(42)씨는 이날 법무법인 청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부에 진정서·탄원서를 수없이 보냈는데도 남편이 보석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몸의 일부분이라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노모(50)피고인과 1994년 결혼했다.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홍콩에서 교수로 있던 노 피고인은 7년 동안이나 김씨가 데리고 온 딸 S(당시 6세)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기소됐다.당시 어머니 김씨는 일본에 살았고 노 피고인은 S양과 홍콩에 거주했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자,검사와 피고인 모두 항소해 재판이 4차례 열렸다.구속기한이 만료되는 상황이지만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이호원)는 심리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보석을 허가했다.형사소송법은 항소심 구속기간을 4개월로 규정하고 있어 오는 26일까지 피고인을 석방해야 한다. 이 소식을 일본에서 들은 어머니 김씨는 지난 18일 오른쪽 검지 한마디를 잘라낸 뒤 택배로 재판부에 보냈다.21일 비닐봉지에 든 손가락과 손가락이 없어진 손을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김씨는 “내 딸을 망친 자를 용서할 수 없다.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분신하겠다.”는 혈서도 보냈다. 그러나 이 부장판사는 이날 “법에 따라 노 피고인을 풀어준다.”면서 “산부인과에 사실조회를 신청한 상태라 결과를 보고 새달 14일에 변론을 진행할 것”고 밝혔다.이어 “혈서는 탄원서처럼 소송기록에 첨부할 수 있지만 손가락은 재판자료가 될 수 없어 냉장 보관토록 했다.”면서 “되찾아가도록 연락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날 오른쪽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딸아이를 증인석에 세우는 일까지 했는데도 재판부가 중죄인을 풀어주려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노 피고인의 변론을 맡은 이정재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는데도 고소인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무죄를 확신하는 만큼 끝까지 법정에서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박경호기자 ejung@seoul.co.kr˝
  • 상고제한제·로스쿨 도입검토

    한해 동안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1800만건이 넘는다.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갖가지 송사(訟事)에 연루된 셈이다. 사법개혁위원회는 이같은 상황 아래 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꿀 개혁과제를 한창 논의하고 있다.사실상 법조인 선발에서부터 국민의 사법참여 등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는 부분이 없다. ●대법원의 구성과 기능 대법원은 통일적으로 법령을 해석하고 가치기준을 제시한다.또 개개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권리를 구제해준다.대법원의 주 임무이다.하지만 가치기준 제시의 기능이 약화돼 있다.재판업무를 담당하는 12명의 대법관이 한해 동안 1만 8000여건을 처리하다 보니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처럼 이념과 가치,규범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심리를 충분히 할 수 없다. 때문에 사개위는 대법원의 구성과 기능을 개편,상고심 사건에 대한 효율적인 처리방안을 찾고 있다.첫째,상고제한 제도의 재도입이다.소송가액과 중요성을 기준삼아 일정 사건에 대해 상고를 금지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안이다.둘째,고법에 상고부를 둬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대신 대법원은 중요 사건과 고법 상고사건 중 예외적으로 이뤄지는 특별상고 사건 등을 맡는다. 셋째,대법원에 대법관이 아닌 ‘대법원 판사’를 추가로 임명,경미한 사건을 처리토록 하는 방안이다.넷째,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자는 주장이다.대법관의 증원은 개별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와 깊이있는 심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4개 방안 중 대법원은 상고부 설치의 둘째 안에,변협측은 대법관 증원의 넷째 안에 비중을 두고 있다. ●법조 일원화 일정기간 변호사나 검사로 활동한 법조 경력자들을 법관에 임용하는 제도이다.사법연수원 수료생 가운데 법관을 뽑는 현행 경력 법관제와 크게 다르다.법관들이 사회경험이 적어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재판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제도의 장점이다.변호사의 진출영역을 확대하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사개위는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검사 중에서 법관 임용을 해마다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2012년쯤 신규 임용법관의 50% 정도를 변호사나 검사에서 임용한 뒤 최종적으로는 모든 신규 법관을 이 제도에 따라 선발하자는 주장이다.현행 제도에서는 1년에 20∼30명의 변호사를 법관으로 임용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없지 않다.잠재적 법관인 변호사 풀(pool)이 아직 미흡하다.또 양질의 법관 임용을 위해 처우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법조인 양성 및 선발 법조인의 양성에 대한 논의는 현 사법고시 제도의 병폐에서 출발한다.대학의 고시학원화를 막기 위해서다.로스쿨(Law-School)제의 도입은 방안 중의 하나다. 로스쿨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법학 수료에 필요한 기초적인 소양 테스트로 학생을 선발한 뒤 3년 동안 실무 위주의 법학 교육을 실시,수료자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미국에서 대표적인 법조인 양성제도이다.로스쿨은 다양한 전공을 가진 법률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그러나 로스쿨은 대륙법 체계인 우리 사법체계에 엄청난 변화와 함께 많은 비용 부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찮다.나아가 로스쿨은 사법고시에 몰릴 학생을 다시 유인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로스쿨 외에 기존의 4년제 법학부에다 2년제 법률대학원을 설치하는 이른바 ‘4+2체제’와 기존 제도를 유지하되 사시 합격자를 더 늘리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 사법참여 법조인의 전유물인 재판에 국민들이 참여하는 제도 즉,미국식 배심제(陪審制)와 독일식 참심제(參審制)가 논의되고 있다. 배심제에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외국에서는 통상 12명)이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법관은 형량만을 결정한다.미국에서는 전체 형사사건의 1%에 해당하는 중요 사건을 배심제로 재판한다. 배심제가 시행되면 검사와 변호인은 미리 준비한 조서와 증거를 판사에게 제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어떻게 배심원들을 설득하느냐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때문에 변호사의 전관예우는 자연히 사라지는 데다 변호사의 출신 학교와 사시 기수보다 변호사의 변론 능력 등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참심제는 보통 2∼3명의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는 물론 양형문제까지 판단하는 제도다.참심제의 경우 참심원들이 법관과 함께 재판을 하도록 해 법관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재판 및 심의 과정이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반면 법률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참심원이 재판과정에서 법관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재판참석에 머물 수 있고,참심원과 법관이 합의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사법 서비스 개선 사개위의 논의 대상에서 민·형사법 절차,형사피해자 보호 등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영역의 사법 서비스 개선 방안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불구속을 확대하기 위해 영장 심사 때 발부·기각 외에 보석이나 다른 조건을 붙여 영장을 발부하거나 영장의 집행을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구속적부심,구속집행정지,구속취소,보석 등 복잡한 석방제도를 이해하기 쉽고 간편한 제도로 재정비하고 금전 외 신원보증이나 사회기관 위탁 등을 통해서도 보석이 가능하도록 보석 조건을 다양화하는 안건도 올라와 있다. 민사재판 개선도 과제다.채권자 취소소송 활성화,재산조회 요건 완화,고액임금자에 대한 임금 압류제한 폐지 등 강제집행 강화를 통한 채권자 권리확보 방안과 가처분제도 개선을 위해 신속한 가처분 결정,불복·집행정지 제도의 보완도 안건에 속해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9월부터 지법서 ‘국선 전담변호사’ 시행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몹시 후회하고 있지요?” “재판장님,앞길이 창창한 피고인을 선처해 주십시오.” 국선변호인이 맡은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국선변호인의 형식적인 변론활동은 법정에서 사라질 것 같다.국선변호만 맡는 전담 변호사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국선변호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는 9월부터 서울중앙·인천·수원·대전·대구·부산·광주지법 등 7개 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 전담변호사제를 실시한다고 20일 밝혔다.서울중앙지법은 4명,그외 법원은 각 2명씩 모두 16명의 전담변호사를 선정해 실시한 뒤 성과에 따라 전국법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종전의 국선변호인은 개인적으로 수임한 사건을 다루면서 부수적으로 국선변호를 맡아 국선변호 사건이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국선변호인의 보수는 재판부가 건당 15만∼75만원 범위에서 결정하지만 지금까지는 국선변호 활동이 형식적이어서 상당수 사건의 보수가 15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앞으로 전담변호사는 국선변호 사건만 맡게 되기 때문에 변론활동이 충실해질 수 있게 됐다.지난 해 전체 형사사건(28만 3267건)의 32.8%(9만 2959건)가 국선변호로 진행될 만큼 그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전담변호사에게 지나치게 많은 국선변호 사건이 몰리면 변론활동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는 점을 감안,월 평균 25건을 처리토록 할 예정이다.이를 감안하면 국선변호사의 한 달 평균 보수는 최저 375만원에서 최대 1875만원이 보장된다. 대법원은 전담변호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도 마련했다.우선 전담변호사는 국선사건을 제외한 어떠한 민사·형사·가사·행정·특허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며 기타 상담이나 연구조사 등 영리활동이 제한된다. 또 변론 전에 피고인을 반드시 접견하고 재판,수사기록을 복사한 뒤 열람하도록 했다.충실한 변론활동을 위해서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대통령 생각할게 많지만 부끄럽지 않게 잘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9일 탄핵심판 소송 대리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의 자리를 마련했다.한 참석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다시 돌아와보니 생각할 게 너무 많다.대통령 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며 복귀’ 한달의 감회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만찬에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이용훈 전 대법관,양삼승 전 헌법재판소 초대 연구부장 등 탄핵심판 소송 대리인단 11명이 참석했다.이종왕 변호사는 외국 출장 관계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간사 대리인이던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청와대측 인사로 이들을 맞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최근 신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 논란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송광수 검찰총장의 발언 등으로 노 대통령이 극심한 마음고생을 한 흔적이 묻어났던 것으로 전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사망한 고(故)유현석 변호사를 대신해 참석한 아들 원규(서울고법 부장판사)씨에게 “생애 마지막 변론이었을 텐데 문상을 못 가서 정말 미안하다.안타깝다.”며 위로했다. 중국 음식을 먹으며 2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된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수고했다.고맙다.”는 정도만 언급했다고 한다.한 참석자는 “우리는 목적을 갖고 초청된 사람들도 아닌데 그다지 화기애애하지 않았다.오히려 딱딱한 자리였다.”고 귀띔했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대리인단을 대표해 “탄핵심판이 끝나고 주위에서 ‘성공 보수’를 얼마 받았느냐고 물어서 웃은 적이 있다.”면서 “대통령이 건강하게 국정에 복귀한 것이 가장 값진 성공 보수”라며 인삿말을 건넸다.노 대통령은 “여러분들의 노고로 다시 돌아온 만큼 부끄럽지 않게 대통령을 잘하겠다.”고 화답했다는 후문이다.청와대측은 참석자들에게 두 달여 동안의 탄핵심판 역사가 담긴 ‘탄핵백서’와 만년필,감사패 등을 건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민변 ‘양심적 병역거부’ 공동변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이석태)은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2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위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법률지원에 나선다고 14일 밝혔다.이돈명·최병모·임종인 변호사 등 75명이 참여했다. 이석태 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하는 변호사 75명이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했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변호사들이 동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상고이유서와 더불어 공개변론 신청서,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이 회장은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다시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儒林(11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주자는 공자가 말한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해서 공부했지만 요즘의 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해서 공부한다(古文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라는 구절에서 자기 자신의 도덕적 함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으며,이것을 타파하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의 길임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자의 핵심 철학인데,이는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그리스 시대에 대유행을 보이던 소피스트,즉 궤변주의에 대해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질타하였던 소크라테스의 육성을 연상시키는 사자후인 것이다. 소피스트들의 궤변적 변론술은 ‘비논리적인 것을 논리적인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기만술’인데,주자가 살았을 당시에도 지식인들은 진정한 깨우침을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궤변술을 통해 명성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를 주자는 다음과 같이 꾸짖고 있다. “오늘도 경전을 토론하는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의 병폐가 있다.그 하나는 본디 저속한 것을 끌어올려서 숭고하게 만들고,본디 비천한 것을 끝까지 캐물어서 심오하게 만들고,본디 비근한 것을 이끌어서 고원하게 만들고,본디 명확한 것을 굳이 희미하게 만든다.” 유학이 주자에 의해서 중흥된 것은 원나라라는 이민족의 침입 앞에 민족적 저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민족의 북방 지배는 한족에 대한 정치적 위협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치명적이었던 것이었다.또한 정부는 부패하고 부도덕하며,당파싸움은 치열하며 많은 지식인들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한족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유학은 이미 1000년 이상 불교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민족의 교의에 무릎을 꿇게 되면 한족의 정신적 뿌리인 유학은 어떻게 되겠는가.” 주자는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유학의 도를 부흥시키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위대한 사상가였다.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려 후기의 시대상황 역시 무신집권에 의한 정치적 불안,불교의 부패와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고려 후기의 학자 안향(安珦)이 1289년 원나라를 왕래하여 주자서를 베껴 오고,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온 후 주자학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되게 된 것이다.그후 성리학은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는데,특히 정도전,권근(權近) 같은 성리학자는 이성계를 도와 법전을 제정하고,국시(國是)를 유교로 삼는 정치이념을 성립함으로써 활짝 꽃피게 되었던 것이었다. 특히 조광조가 살았던 당대는 중종이 알성시의 문제에서 말하였듯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도 못하고,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않은 난세 중의 난세였던 것이다. 세조는 어린 단종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하였으며,중종 역시 신하들의 반정에 의해서 물러난 연산군 대신 옹립되어 왕위에 오른 허수아비 왕이었던 것이다.왕조의 건립 이래 두 번이나 신하가 임금을 쫓아내고 죽이는 불충의 난이 일어난 무법천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가 ‘훈구파의 강력한 반발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던 개혁은 실패하고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해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나는 아껴 마시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봉분 옆 풀밭 속에 웃자라 있는 들꽃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었다.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나비의 날개를 붙잡아 보았다.
  • 儒林(11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주자는 공자가 말한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해서 공부했지만 요즘의 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해서 공부한다(古文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라는 구절에서 자기 자신의 도덕적 함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으며,이것을 타파하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의 길임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주자의 핵심 철학인데,이는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그리스 시대에 대유행을 보이던 소피스트,즉 궤변주의에 대해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질타하였던 소크라테스의 육성을 연상시키는 사자후인 것이다. 소피스트들의 궤변적 변론술은 ‘비논리적인 것을 논리적인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기만술’인데,주자가 살았을 당시에도 지식인들은 진정한 깨우침을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궤변술을 통해 명성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를 주자는 다음과 같이 꾸짖고 있다. “오늘도 경전을 토론하는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의 병폐가 있다.그 하나는 본디 저속한 것을 끌어올려서 숭고하게 만들고,본디 비천한 것을 끝까지 캐물어서 심오하게 만들고,본디 비근한 것을 이끌어서 고원하게 만들고,본디 명확한 것을 굳이 희미하게 만든다.” 유학이 주자에 의해서 중흥된 것은 원나라라는 이민족의 침입 앞에 민족적 저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민족의 북방 지배는 한족에 대한 정치적 위협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치명적이었던 것이었다.또한 정부는 부패하고 부도덕하며,당파싸움은 치열하며 많은 지식인들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한족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유학은 이미 1000년 이상 불교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민족의 교의에 무릎을 꿇게 되면 한족의 정신적 뿌리인 유학은 어떻게 되겠는가.” 주자는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유학의 도를 부흥시키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위대한 사상가였다.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려 후기의 시대상황 역시 무신집권에 의한 정치적 불안,불교의 부패와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고려 후기의 학자 안향(安珦)이 1289년 원나라를 왕래하여 주자서를 베껴 오고,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온 후 주자학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입되게 된 것이다.그후 성리학은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는데,특히 정도전,권근(權近) 같은 성리학자는 이성계를 도와 법전을 제정하고,국시(國是)를 유교로 삼는 정치이념을 성립함으로써 활짝 꽃피게 되었던 것이었다. 특히 조광조가 살았던 당대는 중종이 알성시의 문제에서 말하였듯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도 못하고,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않은 난세 중의 난세였던 것이다. 세조는 어린 단종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하였으며,중종 역시 신하들의 반정에 의해서 물러난 연산군 대신 옹립되어 왕위에 오른 허수아비 왕이었던 것이다.왕조의 건립 이래 두 번이나 신하가 임금을 쫓아내고 죽이는 불충의 난이 일어난 무법천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가 ‘훈구파의 강력한 반발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던 개혁은 실패하고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해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나는 아껴 마시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봉분 옆 풀밭 속에 웃자라 있는 들꽃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었다.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나비의 날개를 붙잡아 보았다.˝
  • 17대총선 낙선·불출마자 어디서 뭐하나

    17대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됐다.그 어느 선거보다 거셌던 격랑은 잠잠해졌고 낙선했거나 출마를 접은 이른바 ‘전직의원’들도 점점 국민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그러나 ‘정치무대’에서 잠시 내려섰을 뿐 그야말로 ‘전직’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은 많지 않다.대부분 나름의 영역에서 버젓한 ‘현역’으로 살아가고 있다.17대 국회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의 근황을 살펴본다. ■ 은둔잠행파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와 홍사덕 전 원내총무,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 등이 이에 속한다.최 전 대표는 총선 후 지인들 외에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다가 지난 4일 미국으로 건너갔다.친지들을 만난 뒤 이달 말쯤 귀국할 계획.정치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으며,서울이나 경남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재기를 노리는 듯하다는 것이 주변 얘기다. 홍 전 총무는 서울 종로의 개인 사무실에 머물면서 산행을 즐기고 있다.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면서 서울이나 고향인 경북 영주의 재·보선 가능성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보좌진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정계 은퇴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던 조 전 대표는 링컨 원서를 구해 읽는 등 독서에 푹 빠져 있다.부인 김금지씨는 “재·보선에 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지인들의 재기 권유로 결심을 굳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외에 민주당 유용태 전 총무는 조만간 서울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그러나 정치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인들에게 여러차례 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김영환 전 의원은 파리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한두달 머물 예정으로 총선 직후 파리로 날아간 그는 “정치인 김영환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깊은 생각 중”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앞에서 쓴 시(詩) 등을 담은 이메일을 통해 “하루종일 파리 시내를 거닐며 사색과 독서를 하고 저녁에는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 글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책을 쓸 생각이라고. ■ 재기모색파 여야 가릴 것 없이 낙선자의 상당수는 당연히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다.여권의 경우 전직의원뿐 아니라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몇몇 인사들도 와신상담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어느 때보다 재·보선 지역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한 인사는 자민련 정진석 전 의원이다.그는 17대 당선자 가운데 구속 1호인 열린우리당 오시덕 의원의 낙마에 대비해 충남 공주·연기 지역구를 샅샅이 훑고 있다.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항만공사(BPA) 설립을 적극 지원한 데 이어 사단법인 ‘수산해양포럼’을 창립,대표로 있으면서 재·보선을 준비하고 있다.지난 주엔 출판기념회도 가졌다.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공석인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중앙당 회의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재기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최근 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뒤 대한태권도협회장 이외의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자신의 사퇴를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해 신기남 의장 체제를 와해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일각의 시각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서청원 전 대표의 석방동의안 가결을 주도했던 박종희·김용학 전 의원도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박 전 의원은 연말까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지역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한 셈이다.김 전 의원도 지역구인 강원 영월에 머물며 무료변론을 벌이는 등 지역활동을 시작했다.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및 위증죄 등으로 재판에 계류돼 있는 만큼 재·보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이성헌 전 의원은 조만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한 뒤 재·보선을 통해 17대 국회에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 강창희 전 의원은 지난 8일 유럽으로 떠났다.65일간 아프리카와 북극까지 배낭여행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복안이다. ■ 새 진로 모색파 본업으로 돌아갔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물론 이들 중에도 기회가 닿으면 정계로 복귀할 뜻을 지닌 인사가 상당수다. 16대 국회 때 정보통신 분야에서 활약한 열린우리당 허운나 전 의원은 정보통신부가 설립한 대전의 정보통신대학 ‘ICU’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한나라당 부산지역 의원들의 좌장격이던 김진재 전 의원은 지난 6·5 재·보선에서 허남식 부산시장 후보지원캠프를 진두지휘하기도 했지만,앞으로는 자신이 소유한 ㈜동일고무벨트 경영에만 전념할 계획이다.영화계의 큰 별인 신영균·강신성일 전 의원은 영화인으로 돌아갔다.특히 신 전 의원은 제주도 영화기념관 건립을 주도하는 등 영화인으로서 열정을 쏟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전 대표는 여의도 한서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로펌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송훈석 전 의원도 최근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약사 출신인 김성순 전 의원은 지난 3일 충남 논산의 건양대 보건의료학과 석좌교수로 취임했다. ■ 해외유학파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은 오는 9월쯤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1년 정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면서 경제 및 외교안보 분야를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추 전 의원은 이를 위해 자택에 머물며 매일 전화로 배우는 스피치 영어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당 정균환 전 원내총무와 함승희 전 의원도 이르면 다음달 말 함께 미국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과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출국,1년 정도 머물 예정이다.정 전 총무는 “요즘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외국인으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우느라고 정치현장에 있을 때 못지 않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새로 태어나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같은 당 설훈 전 의원은 1년간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로 초청돼 이미 베이징으로 떠났다. 진경호 박지연 김준석기자 jade@seoul.co.kr˝
  • 17대총선 낙선·불출마자 어디서 뭐하나

    17대총선 낙선·불출마자 어디서 뭐하나

    17대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됐다.그 어느 선거보다 거셌던 격랑은 잠잠해졌고 낙선했거나 출마를 접은 이른바 ‘전직의원’들도 점점 국민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그러나 ‘정치무대’에서 잠시 내려섰을 뿐 그야말로 ‘전직’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은 많지 않다.대부분 나름의 영역에서 버젓한 ‘현역’으로 살아가고 있다.17대 국회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의 근황을 살펴본다. ■ 은둔잠행파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와 홍사덕 전 원내총무,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 등이 이에 속한다.최 전 대표는 총선 후 지인들 외에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다가 지난 4일 미국으로 건너갔다.친지들을 만난 뒤 이달 말쯤 귀국할 계획.정치에 대한 뜻을 접지 않았으며,서울이나 경남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재기를 노리는 듯하다는 것이 주변 얘기다. 홍 전 총무는 서울 종로의 개인 사무실에 머물면서 산행을 즐기고 있다.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면서 서울이나 고향인 경북 영주의 재·보선 가능성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보좌진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정계 은퇴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던 조 전 대표는 링컨 원서를 구해 읽는 등 독서에 푹 빠져 있다.부인 김금지씨는 “재·보선에 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지인들의 재기 권유로 결심을 굳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외에 민주당 유용태 전 총무는 조만간 서울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그러나 정치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인들에게 여러차례 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김영환 전 의원은 파리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한두달 머물 예정으로 총선 직후 파리로 날아간 그는 “정치인 김영환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깊은 생각 중”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빈센트 반 고흐의 묘지 앞에서 쓴 시(詩) 등을 담은 이메일을 통해 “하루종일 파리 시내를 거닐며 사색과 독서를 하고 저녁에는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 글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책을 쓸 생각이라고. ■ 재기모색파 여야 가릴 것 없이 낙선자의 상당수는 당연히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다.여권의 경우 전직의원뿐 아니라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몇몇 인사들도 와신상담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어느 때보다 재·보선 지역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한 인사는 자민련 정진석 전 의원이다.그는 17대 당선자 가운데 구속 1호인 열린우리당 오시덕 의원의 낙마에 대비해 충남 공주·연기 지역구를 샅샅이 훑고 있다.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항만공사(BPA) 설립을 적극 지원한 데 이어 사단법인 ‘수산해양포럼’을 창립,대표로 있으면서 재·보선을 준비하고 있다.지난 주엔 출판기념회도 가졌다.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공석인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중앙당 회의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재기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최근 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뒤 대한태권도협회장 이외의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자신의 사퇴를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해 신기남 의장 체제를 와해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일각의 시각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서청원 전 대표의 석방동의안 가결을 주도했던 박종희·김용학 전 의원도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박 전 의원은 연말까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지역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한 셈이다.김 전 의원도 지역구인 강원 영월에 머물며 무료변론을 벌이는 등 지역활동을 시작했다.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및 위증죄 등으로 재판에 계류돼 있는 만큼 재·보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이성헌 전 의원은 조만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한 뒤 재·보선을 통해 17대 국회에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 강창희 전 의원은 지난 8일 유럽으로 떠났다.65일간 아프리카와 북극까지 배낭여행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복안이다. ■ 새 진로 모색파 본업으로 돌아갔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물론 이들 중에도 기회가 닿으면 정계로 복귀할 뜻을 지닌 인사가 상당수다. 16대 국회 때 정보통신 분야에서 활약한 열린우리당 허운나 전 의원은 정보통신부가 설립한 대전의 정보통신대학 ‘ICU’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한나라당 부산지역 의원들의 좌장격이던 김진재 전 의원은 지난 6·5 재·보선에서 허남식 부산시장 후보지원캠프를 진두지휘하기도 했지만,앞으로는 자신이 소유한 ㈜동일고무벨트 경영에만 전념할 계획이다.영화계의 큰 별인 신영균·강신성일 전 의원은 영화인으로 돌아갔다.특히 신 전 의원은 제주도 영화기념관 건립을 주도하는 등 영화인으로서 열정을 쏟고 있다. 민주당 박상천 전 대표는 여의도 한서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로펌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송훈석 전 의원도 최근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약사 출신인 김성순 전 의원은 지난 3일 충남 논산의 건양대 보건의료학과 석좌교수로 취임했다. ■ 해외유학파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은 오는 9월쯤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1년 정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면서 경제 및 외교안보 분야를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추 전 의원은 이를 위해 자택에 머물며 매일 전화로 배우는 스피치 영어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당 정균환 전 원내총무와 함승희 전 의원도 이르면 다음달 말 함께 미국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과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출국,1년 정도 머물 예정이다.정 전 총무는 “요즘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외국인으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우느라고 정치현장에 있을 때 못지 않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새로 태어나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같은 당 설훈 전 의원은 1년간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로 초청돼 이미 베이징으로 떠났다. 진경호 박지연 김준석기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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