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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파인증 받지 않은 ‘中 저가폰의 공습’

    전파인증 받지 않은 ‘中 저가폰의 공습’

    인터파크가 KT 자회사와 손을 잡고 중국 샤오미의 스마트폰 ‘홍미노트3’를 중국 현지 가격의 절반도 안 되게 팔다가 이틀 만인 지난 5일 갑자기 중단해 뒷말을 낳고 있다. 지난달엔 SK텔레콤의 일부 판매점도 샤오미의 구매 대행업체와 함께 11번가에 해당 제품을 판매했다. 7일 국립전파연구원에 따르면 현행법(전파법)상 전파를 이용하는 기기는 전파 간섭에 의해 주변기기에 장애를 주거나 기기 자체의 오작동·성능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제조사나 수입사가 전파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파인증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모든 휴대기기를 시판하기 전에 정부로부터 인증을 거치는 제도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대부분 나라에서 전파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인터파크 등이 이번에 판매한 홍미노트3는 전파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불법은 아니다. 직접 해외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여 판 게 아니라 구매 대행업체를 끼고 팔아서다. 현행법으로는 구매 대행업체는 전파인증 의무 대상자에서 빠져 있다. 개인이 자기가 쓰려고 ‘직구’한 외산 휴대전화도 1인 1대까지는 전파인증을 면제해 주고 있다. 인터파크 측 관계자는 “우리는 플랫폼을 제공했을 뿐 실질적인 판매는 구매 대행업체가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KT도 “구매 대행만 했기 때문에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것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제도적 허점 때문에 전파인증을 받지 않은 저가 휴대전화 등 중국산 제품의 유통이 최근 크게 늘었다. 지난해 전파 미인증으로 중앙전파관리소에 적발된 478건 가운데 76.8%(367건)가 중국 제품이었다. 2013년 364건 중 194건(53.3%), 2014년 370건 중 209건(56.5%) 등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불법으로 들여오거나, 구매 대행업체는 전파인증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을 악용한 사례 등이 많아서다. 구매 대행을 빙자한 ‘꼼수’가 불법을 부추기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에 외산 휴대전화를 구매 대행업체가 들여올 때는 개인 ‘직구’와 달리 전파인증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시행 직전 반대 여론이 높아 무산됐다. 전파연구원 관계자는 “해외에서 출시된 값싼 제품을 개인이 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없던 일이 됐다”면서 “그래서 구매 대행업체도 인증 없이 들여올 수 있도록 했는데 되레 그 법을 악용해 문제가 있는 제품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부작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전파인증을 받고 수입되는 제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현행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코트 복귀 예비역, 순위 싸움 ‘험지 출격’

    코트 복귀 예비역, 순위 싸움 ‘험지 출격’

    ‘예비역 농구선수’들이 코트에 돌아온다. 신협상무 농구팀에서 뛰고 있는 ‘말년 병장’ 8명의 제대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각 구단에서는 복귀 선수들의 활용법을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막판 순위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프로농구 정규리그에 이들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6일 신협상무에 따르면 현재 상무에서 뛰고 있는 변기훈(왼쪽·SK), 최진수(가운데·오리온), 김상규(오른쪽·전자랜드), 노승준(KCC), 민성주(kt), 김우람(kt), 박래훈(LG), 이관희(삼성)가 21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오는 27일 본래 팀으로 복귀한다. 전역 날인 27일은 아직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 없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몸 상태에 따라 경기에 투입되는 선수들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각 팀들은 벌써부터 예비역 선수들을 투입할 채비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상무 선수는 오는 11일 열리는 2015~16 KBL D리그(2부 리그) 준결승과 이튿날 있을 결승전을 마친 뒤 ‘말년 휴가’를 사용해 본래 소속 팀을 찾을 계획이다. 선수들은 이 기간 동안 동료들과 훈련하며 호흡을 맞춰 본다. 각 구단의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경기 투입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조동현 kt 감독은 “팀의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상무 선수들이 돌아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상무에서 쓰는 공과 프로농구에서 쓰는 공이 다르기 때문에 작년 말부터 상무 소속 kt 선수들에게 프로농구 공인구(몰텐 GL7X)로 하루에 500개씩 슈팅 연습을 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신협상무에서 큰 활약을 펼친 변기훈, 최진수, 이관희는 복귀 전망이 밝다. 상무 소속으로 D리그나 농구대잔치에서 뛰며 뛰어난 기량을 보여 줬기 때문에 즉시 전력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평가다. 문경은 SK 감독은 “변기훈은 상무 입대 전에는 팀에서 제2의 옵션과 같은 존재였는데 상무에서 실력이 좋아지며 에이스로 거듭난 것 같다”면서 “오는 29일이 제대 후 첫 경기인데 상황을 봐서 잠깐이라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최진수는 지난 연말 휴가 때도 팀에 와서 3일가량 이미 연습을 했다”며 “제대하자마자 바로 경기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구단 관계자도 “이관희는 속공 플레이에 능한 팀의 훌륭한 자원”이라며 “컨디션만 괜찮다면 바로 경기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승준, 김우람은 출전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추승균 KCC 감독은 “노승준이 현재 슛 밸런스가 안 좋다. 그래서인지 상무에서도 많이 뛰지 않았다”며 “바로 시합은 못 나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동현 kt 감독도 “김우람이 몸 상태가 안 좋아 재활을 하고 있다”면서 “아프다면 무리해서까지 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주말 하이라이트]

    ■송년기획 개그 콘서트(KBS2 일요일 밤 9시 15분) ‘개콘’ 레전드가 총출동한다. 현직 ‘개콘’ 식구들과 ‘개콘’의 전성기를 풍미한 레전드들이 동시 출격하는 동창회 콘셉트의 특집을 마련했다. 연말 시청자들을 위한 특별한 웃음 선물로 개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김병만, 김준현, 변기수, 허경환, 신봉선, 윤형빈, 정경미, 신보라, 안상태, 박휘순 등 추억의 스타들로 라인업을 구축해 현직 ‘개콘’ 식구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과거 주말 안방극장을 책임졌던 레전드 코너를 선보이거나 기존 코너들에 접목시켜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한도전(MBC 토요일 오후 6시 20분) 무한도전 막내 광희가 발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우 이성민과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이 함께한다. 한편 무한도전의 위기설 속에서 전문가들이 심층 분석에 나선다. 그리고 올해를 장식할 도전으로 멤버들은 1000만원의 상금을 목표로 10시간 동안 도망쳐야만 한다. 더이상의 리얼은 없는 최종 게임이 펼쳐진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0분) 최근 한국에선 특정 여성들을 지칭하는 ‘된장녀’, ‘김치녀’, ‘김여사’ 등의 단어가 늘면서 여성 혐오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다. 이처럼 여성으로 살아가기 벅찬 세상에서 발칙하고도 도발적인 20대의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 세 명이 함께한다. 이들을 배우 박철민이 직접 만나 진땀 나는 토크를 벌인다.
  • [사설] 국민 안중에 없고 삿대질만 하는 ‘보육싸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기 싸움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서로 책임지라며 버티는 싸움에 신물이 넘어올 지경이다. 걱정했던 보육대란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장 2주 뒤면 시작되는 새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확보하지 못한 교육청도 있다. 누리과정 무상보육을 시켜 달라고 국민이 먼저 애걸한 적이 없다. 통 큰 정책 선심을 쓰다가 느닷없이 모르쇠로 나앉은 꼴 아닌가. 정책 혼선에 민생만 올가미를 된통 뒤집어쓴 판이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잡아 놓지 않은 지역은 8곳이다. 서울, 경기, 광주, 전남은 편성됐던 유치원의 누리 예산마저 아예 전액 삭감했다. 중앙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는 데 반발해 맞불을 놓은 셈이다. 서울시의회는 애초 서울시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예산을 전부 삭감했다. 간신히 어린이집 누리 예산이라도 확보한 곳은 여당 의원이 다수인 지역들이다. 그마저도 임시 땜질이다. 교육감이 보수 성향인 울산만 9개월치 예산을 갖고 있을 뿐 대부분은 몇 달치 버틸 예산이 고작이라고 한다. 내년에 필요한 누리과정 예산 4조원 가운데 현재 확보된 돈은 28%쯤인 형편이다. 답답한 것은 이렇듯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달 초 국회는 누리과정의 내년도 정부예산을 3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보다 2000억원 더 줄였다. 대통령 공약사항이면서 예산을 또 줄였다며 교육청들은 반발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엄포다. 누리 예산을 지방재정으로 의무지출하도록 바꾼 시행령을 따르라는 지침만 반복한다. 말을 듣지 않는 교육청에는 다음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감액하겠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국민 인내심은 한계에 와 있다. 이런 분노와 반감을 달래려면 정부가 자세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누리 예산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국민이 있다고 보는가. 막내가 무상보육을 받는 대신 큰아이는 재래식 변기에 찜통교실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아버렸다. 이왕에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정책이라면 민생에 혼란이라도 더 주지 말아야 한다. 사정이 급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긴급회의를 제안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쯤 되면 정부 여당도 차차선책이라도 강구해야 할 것 아닌가. 교육청을 눌러 이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민 걱정을 덜어 줘야 하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라.
  • 서울시의회,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전액 삭감

    서울시의회,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전액 삭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누리과정’(만 3~5세 공통 교육과정) 예산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가 누리과정 보육료 지원 해법으로 ‘우회 지원’ 카드를 꺼냈지만 서울시의회가 어린이집은 물론 유치원 예산 삭감으로 맞대응했기 때문이다. 다른 시·도 의회까지 유치원 등의 예산 삭감에 동참하면 가까스로 봉합되는 듯했던 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이 다시 전국으로 확산되며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8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에서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용으로 편성된 252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액이 빠진 내년 교육청 예산안이 시의회 예결위를 거쳐 오는 16일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당장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뿐 아니라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의 유아 학비 지원이 중단된다. 일부 시·도 의회에서 “누리과정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자칫 유아 학비 중단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여지도 크다. 앞서 정부는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부족분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우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방교육청의 학교 환경 개선 사업 시설비 지원 명목으로 예비비에서 3000억원을 편성했다. 이를 학교 재래식 변기 교체, 찜통교실 해소 예산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대신 교육청은 이렇게 해서 여유가 생긴 예산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사용토록 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소요 비용 1조 7000억원 중 국고에서 지원된 예비비 5046억원을 제외한 1조원은 지방채로, 2000여억원은 시·도에서 추가 지방세를 지원받아 충당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필요 예산은 2조 1274억원으로 늘어난 반면 지원액은 2000억여원이 줄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전국 교육청의 누적 지방채가 1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도에 4조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편성하면 교육청의 모든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시의회 역시 교육청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정부가 2년 동안 임시방편으로 누리과정을 편성하는 바람에 초·중등 교육이 엉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2년째 이어지는 것은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하는 ‘유·보 통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 지원의 주체를 서로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육료 지원의 주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설] 허공에 뜬 누리예산, 공립유치원은 로또

    나라 밖에서 보면 신기했을 풍경이 그제 서울 곳곳에서 펼쳐졌다. 아이를 공립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온 집안 식구들이 동원됐다. 부모들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추첨하느라 진땀을 뺐고 경쟁률이 15대1인 유치원도 있었다. 환호성과 한숨이 뒤섞인 추첨장은 대학 합격자 발표 현장을 방불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공립 유치원 입소권에 “3대가 공들인 로또”라는 말이 따라붙는지 알 만하다. 공립 유치원의 인기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한 달에 수십만원이 드는 사립과 달리 몇 만원이면 보육비가 해결된다. 교육의 질과 교사의 자질은 오히려 우수하다는 인식이 크다. 독립 건물까지 갖춘 단설 유치원 입소는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한다. 공립 유치원 입소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뻔하다. 3~5세 무상보육인 누리과정의 정부 예산이 내년에는 더 줄었으니 보육 대란을 피할 길이 없다. 국회는 누리과정의 내년도 정부예산을 3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5000억원이던 액수보다 또 줄었다. 중앙재정은 한 푼도 못 내준다는 정부·여당과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정부가 책임지라는 야당의 줄다리기 끝에 막판 조율된 액수다. 그마저도 학교 시설 개선 명목으로 우회 지원하는 것이다. 일반 학생들은 재래식 변기와 찜통교실을 또 견뎌야 할 판이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에 들어가야 하는 돈은 2조 1000억원이다. 정부가 지난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바꿔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재정 의무지출 항목에 강제 편입시킨 상황이다. 그런데도 교육청들은 여전히 물러설 기미가 없다. “차라리 예산을 한 푼도 안 받고 보육 대란이 정부·여당 책임임을 명백히 하겠다”는 교육감도 있다. 사태의 책임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홍보 서한을 집집에 돌렸다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도 딱하다. 실타래를 풀어줘도 시원찮을 당국이 여론전이나 하고 있으니 학부모들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이래 놓고 출산장려를 하느냐”는 성토가 들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상보육에 대한 근본적 처방책을 더 고민해야 한다. 차제에 공보육 체계도 정교히 다듬길 바란다. 줬다가 도로 뺏는 황당한 보육 대란을 일으켰다면 공립 유치원 증설 요구라도 귀 담아 들으라. 신설 초등학교 정원의 4분의1 이상이던 공립 유치원 설립 규정을 도리어 절반이나 줄이겠다는 교육부의 개정안은 또 뭔가. 현장의 요구에 엇박자를 타는 정책이라면 원점에서 재고돼야 마땅하다.
  • 영하 20도에서 살아남는 독종… 깔끔이에겐 ‘쩔쩔’

    영하 20도에서 살아남는 독종… 깔끔이에겐 ‘쩔쩔’

    식중독은 여름철에 자주 걸리는 단골 질병 가운데 하나이지만 음식을 밖에 내놔도 잘 상하지 않는 겨울에도 걸릴 수 있어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겨울철 식중독 환자 수는 연간 평균 900여명으로, 이 가운데 55%(496명)가 노로바이러스에 노출돼 식중독을 앓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0~2014년에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이 연간 평균 40건씩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50%가 겨울철(12~2월)에 집중됐다. 흔히 겨울철에는 기온이 내려가 바이러스가 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노로바이러스는 생존력이 강해 저온에서도 산다. 심지어 영하 2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도 오래 생존하고 단 10개의 입자로도 감염될 수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연중 어느 때나 식중독을 일으키지만 추운 날씨로 실내 활동이 늘고, 손 씻기 등 개인위생 관리가 소홀해지기 쉬운 겨울철 사람 간 감염으로 쉽게 발생한다. 환자의 침, 오염된 손을 직접 접촉하거나 화장실 문 손잡이, 세면대 수도꼭지, 변기 손잡이, 식기 등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환자의 구토물이나 분변 1g에는 1억개 정도의 노로바이러스 입자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구토물이나 분변에서 비말(분비물)이 형성되고 이것이 다른 사람의 손에 묻어 입으로 들어가면 1~2일 잠복기 후 발열, 구토, 설사, 복통 등의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노로바이러스는 사람의 몸 밖에서 성장할 수 있는 세균이나 기생충과 달리 장내에서만 증식하기 때문에 식재료가 변질해 생길 수 있는 세균성 식중독과는 전혀 다르다. 드물게는 구토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바이러스 입자가 에어로졸(액체입자) 형태로 대규모 감염을 일으킨 적도 있다. 한 번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빠르게 옮길 수 있는 ‘2차 감염’이 가능한 감염병이다. 노로바이러스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혈액형이 따로 있다는 보고도 있다. 노로바이러스가 혈액형을 결정하는 항원을 감염의 수용체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특히 B형이 노로바이러스에 아주 강하다고 한다. 다행인 점은 높은 감염력에도 감염으로 인한 증세나 후유증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숙 경희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보통 24~48시간 후에 심한 설사, 복통, 구토가 생기지만 건강한 성인은 이런 증세가 매우 미미하고 하루 이틀 내 자연적으로 낫는다”고 말했다. 윤경림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증상이 심하면 소아의 몸속 전해질이 균형을 잃어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고 두통, 발열, 오한, 근육통 등 신체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빠르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예방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여느 바이러스 질환이 그렇듯 개인위생 관리가 필수다. 노로바이러스는 입자가 작고 표면 부착력이 강해 반드시 비누 등 세정제를 이용해 흐르는 물에 20초 이상 깨끗이 손을 씻어야 한다. 열에 강해 음식을 조리할 때는 중심부 온도 85도에서 1분 이상 익혀야 한다. 주변에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면 가정용 염소 소독제를 40배 희석해 화장실, 변기, 문 손잡이 등을 소독해야 한다. 조리 기구는 물론 조리대와 개수대도 열탕 또는 염소 소독한다. 노로바이러스는 증상이 사라지고 나서도 사흘간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노로바이러스 환자가 조리한 음식을 먹으면 음식물이 노로바이러스에 오염돼 식중독 발생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환자는 치유되더라도 사흘간 음식을 조리해선 안 된다. 환자를 간호한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면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 노로바이러스 환자는 일반적인 세균성 식중독보다 치료하기가 쉽다. 스포츠음료나 이온음료로 부족한 수분을 공급하고 탈수를 막는 보존적 치료가 이뤄진다. 단 설탕이 많이 함유된 음료는 피하는 게 좋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지사제를 복용해선 안 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히치하이킹, 인도 경제] 프리미엄이냐 저가냐 비데 기업 진출 딜레마

    한국에 비데가 도입된 시기는 1990년대 초반. 중소기업 쿼스는 2012년 설립된 후발 주자이지만 국내를 넘어 중국, 독일, 러시아 등지를 공략하며 성장해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 수출을 달성했다. 쿼스가 노리는 새 시장은 인도. 변기 옆 수도로 뒤처리를 하는 인도이지만, 아직 비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인도 델리에서 열린 국제무역박람회(IITF)에서 만난 정종갑 쿼스 차장은 중산층이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에서 비데 보급이 곧 확산될 것으로 확신했다. ●저가전략, 십년 뒤 현지 기업에 밀릴 수도 그러나 쿼스는 현지 공장을 세워 인도에 본격 진출할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싼 재료를 써 인도 현지에서 생산하면 자재비를 한국의 3분의1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겠지만, 저가 전략을 펴다가 십여년 뒤 인도 업체가 자체 생산에 나서면 가격 경쟁에서 밀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시장은 미국업체가 선점 중 국산 비데 품질을 유지하며 인도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런 시장기회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미국의 욕실업체가 델리에서 이미 한국 원화로 10만~100만원대의 다양한 가격대 프리미엄 비데를 판매하며 시장을 선점 중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이 미국 업체는 몇 년 전 한국 업체를 인수한 뒤 본격적으로 인도 비데 시장에 진입했다. 당시 한국 측은 신흥국 시장을 간과한 채 주요 수출선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비데 시장이 성숙 단계라고 판단, 비데 사업부를 정리했다. ●모디노믹스 전 ‘준비된 기업’은 승승장구 역으로 인도 시장에 꾸준히 접근해 최근 성장의 선순환을 이뤄낸 회사도 있다. IITF에 참가한 또 다른 기업인 종합문구업체 문교는 15년 동안 인도에 제품을 수출했고, 최근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인도 화가인 미나크시 아가르왈이 작품에 이 회사 제품을 쓴 게 입소문을 타며 최근 제품 인기를 끌어올렸다. 본격적인 인도 진출을 앞두고 두 회사가 처한 엇갈린 상황은 모디노믹스 정책 아래에서 이미 인도에 진출해 있던 ‘준비된 기업’에 먼저 기회가 주어짐을 상기시켰다. 뉴델리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동호 웨딩화보 공개 “신부 얼굴 보니?” 미모 대박

    동호 웨딩화보 공개 “신부 얼굴 보니?” 미모 대박

    동호 웨딩화보 공개 “신부 얼굴 보니?” 미모 대박‘동호 웨딩화보’그룹 유키스의 전 멤버 동호가 웨딩화보를 통해 결혼식이 임박했음을 알렸다.동호는 12일 웨딩화보를 통해 한살 연상인 신부의 얼굴을 공개했다. 화보에서 동호와 신부는 서로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가까이 대며 사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부는 단아한 모습으로 보는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동호는 “결혼을 앞두고 어린 나이에 아직 미숙한 부분도 있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서로를 만나 결혼까지 결심하게 됐다. 사랑하는 예비신부와 앞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동호의 결혼준비를 담당하는 (주)아이패밀리SC(아이웨딩)측은 “교제 이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통해 더욱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예쁜 커플이다”라고 전했다.한편, 동호는 오는 28일 오후 12시 서울 논현동 파티오나인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린다. 사회는 개그맨 변기수가, 축가는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과 가수 맥케이가 맡을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호 웨딩화보 공개 “미모의 신부 얼굴 살펴보니?” 대박 그 자체

    동호 웨딩화보 공개 “미모의 신부 얼굴 살펴보니?” 대박 그 자체

    동호 웨딩화보 공개 “미모의 신부 얼굴 살펴보니?” 대박 그 자체‘동호 웨딩화보’그룹 유키스의 전 멤버 동호가 웨딩화보를 통해 결혼식이 임박했음을 알렸다.동호는 12일 웨딩화보를 통해 한살 연상인 신부의 얼굴을 공개했다. 화보에서 동호와 신부는 서로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가까이 대며 사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부는 단아한 모습으로 보는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동호는 “결혼을 앞두고 어린 나이에 아직 미숙한 부분도 있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서로를 만나 결혼까지 결심하게 됐다. 사랑하는 예비신부와 앞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동호의 결혼준비를 담당하는 (주)아이패밀리SC(아이웨딩)측은 “교제 이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통해 더욱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예쁜 커플이다”라고 전했다.한편, 동호는 오는 28일 오후 12시 서울 논현동 파티오나인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린다. 사회는 개그맨 변기수가, 축가는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과 가수 맥케이가 맡을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준양·정동화 불구속 기소… 몸통 대신 꼬리만 잘랐다

    검찰이 11일 정준양(67) 전 포스코그룹 회장과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 처리하면서 8개월에 걸친 포스코 비리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앞서 불구속 기소된 이상득(80) 전 새누리당 의원과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17명, 협력사 관계자 13명 등 모두 3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포스코 수뇌부와 정치권 간의 검은 커넥션을 밝혀냈다”고 자평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수사 결과치고는 초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리의 ‘몸통’보다 ‘꼬리’에 집중됐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이날 정 전 회장을 뇌물공여와 배임수재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정 전 부회장 역시 횡령 및 배임수재 등 혐의로, 배성로(60) 동양종합건설 회장은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정 전 회장은 2009년 포스코 신제강공장 건설 중단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이 전 의원의 측근 박모씨가 운영하는 티엠테크에 포스코켐텍의 외주 용역을 몰아주도록 지시해 12억여원을 챙기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실기업인 성진지오텍 지분을 인수해 포스코 측에 1592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다. 거래업체인 코스틸의 납품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박재천(59·구속) 코스틸 회장으로부터 49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혐의도 포함됐다. 정 전 부회장은 2009년 8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베트남 사업단장과 공모해 385만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치·경제계 유력 인사와 유착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이 당시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55) 전 지식경제부 차관으로부터 “고교 동창을 취업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2011년 초 포스코건설 토목환경사업본부 상무로 일하게 해 줬다고 밝혔다. 경제계 실세와 절친한 사이였던 브로커 장모씨와 유착해 그가 청탁하는 베트남 도로 공사의 하도급을 주기도 했다. 장씨는 검찰 수사 도중 경제계 실세에게 “꼭 지켜 드리겠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화장실 변기에 휴대전화를 버리려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배 전 회장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코 측으로부터 875억원 규모의 일감을 특혜 수주한 데 따른 입찰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주요 피의자들이 모두 구속이 아닌 불구속 상태로 기소된 가운데 곳곳에 ‘구멍’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전 회장이 왜 배임을 저지르며 성진지오텍을 인수했는지, 박재천 회장이 회사 돈을 횡령해 조성한 135억원의 용처가 어디인지 등도 의문으로 남았다.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 선임에 개입한 사실들을 밝혀내고도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포스코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주주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 그리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소변량 체크해 건강관리 해주는 ‘스마트 변기’ 등장

    소변량 체크해 건강관리 해주는 ‘스마트 변기’ 등장

    소변을 보면 그 자리에서 소변량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똑똑한 변기가 일본에서 공개됐다. 최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열린 엑스포 ‘ME-BYO’ 에서는 노인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이 전시됐다. 그중 한 품목인 ‘Flowsky Toilet’은 일본의 유명 욕실용품 전문업체가 개발한 것으로, 사용자가 소변을 보면 소변이 변기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와 속도의 변화를 통해 소변량과 소변 배출 속도 등을 체크한다. 업체 관계자는 일본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 되고 있는 가운데, 노인들이 소변량과 속도를 자가 체크함으로서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스마트 욕실용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엑스포에서 공개된 또 다른 스마트 프로그램 중 하나는 목소리를 통해 사용자의 감정을 분서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성대의 떨림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정신질환 등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의사가 원거리에서 전화를 이용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업체는 “우리는 병원이 없는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스마트폰과 이 기술을 이용해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총 27개 바이오산업체가 참가한 이번 엑스포와 관련해 주최 측인 가나가와현 정부 측은 “노인들이 꾸준히 건강을 유지하며 활동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시에 노령화 인구 및 고비용의 의료비 지출로 인한 문제가 줄어들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작대기·크리스탈·도리·퐁당… 혹시 들어보셨나요

    마약상과 구매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각종 은어와 암호를 동원한다. 가장 흔히 쓰는 은어인 ‘작대기’는 주사기를 통해 투약하는 필로폰을 뜻한다. ‘아이스’는 필로폰 가루, ‘크리스탈’은 질 좋은 필로폰을 말한다. ‘뽕’이나 ‘술’, ‘물건’, ‘영양제’, ‘피로회복제’ 등도 다 필로폰을 지칭하는 말이다. ‘떨’, ‘고기’ 등은 대마초, ‘허브’는 합성대마, ‘도리’는 엑스터시를 뜻한다. 검찰 관계자는 “나라별로 선호하는 마약 종류가 다르다”면서 “국내에서는 필로폰이 가장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한 마약상은 인터넷에 “(거래로) 오른손 왼손은 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오른손 왼손’은 마약상과 구매자가 마약을 직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거래는 보통 ‘던지기’가 가장 많이 동원된다. 공중화장실의 특정 변기 뒤에 마약상이 마약을 붙여 두고 구매자가 이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약속 장소를 계속 바꾸는 것은 ‘뺑뺑이’라고 한다. ‘똥술’, ‘멍텅구리’, ‘반짝이’는 가짜 필로폰을 지칭하는 단어다. ‘한잔하자’, ‘찌르자’는 한번 투약하자는 뜻이다. ‘몰래뽕’, ‘퐁당’은 상대방의 술 등에 마약류를 몰래 넣어 마시게 한다는 은어다.
  • 작대기·크리스탈·도리·퐁당… 혹시 들어보셨나요

    마약상과 구매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각종 은어와 암호를 동원한다. 가장 흔히 쓰는 은어인 ‘작대기’는 주사기를 통해 투약하는 필로폰을 뜻한다. ‘아이스’는 필로폰 가루, ‘크리스탈’은 질 좋은 필로폰을 말한다. ‘뽕’이나 ‘술’, ‘물건’, ‘영양제’, ‘피로회복제’ 등도 다 필로폰을 지칭하는 말이다. ‘떨’, ‘고기’ 등은 대마초, ‘허브’는 합성대마, ‘도리’는 엑스터시를 뜻한다. 검찰 관계자는 “나라별로 선호하는 마약 종류가 다르다”면서 “국내에서는 필로폰이 가장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한 마약상은 인터넷에 “(거래로) 오른손 왼손은 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오른손 왼손’은 마약상과 구매자가 마약을 직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거래는 보통 ‘던지기’가 가장 많이 동원된다. 공중화장실의 특정 변기 뒤에 마약상이 마약을 붙여 두고 구매자가 이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약속 장소를 계속 바꾸는 것은 ‘뺑뺑이’라고 한다. ‘똥술’, ‘멍텅구리’, ‘반짝이’는 가짜 필로폰을 지칭하는 단어다. ‘한잔하자’, ‘찌르자’는 한번 투약하자는 뜻이다. ‘몰래뽕’, ‘퐁당’은 상대방의 술 등에 마약류를 몰래 넣어 마시게 한다는 은어다.
  • 우리, 집 지을래요?

    우리, 집 지을래요?

    협동조합으로 집짓기/홍새라 지음/휴 펴냄/316쪽/1만 8000원망원동 에코 하우스/고금숙 지음/이후 펴냄/332쪽/1만 6500원 한국사회 주택보급률은 2008년 이미 100%를 넘어섰다. 하지만 자가보유율, 즉 내 소유의 집이 있는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두 채, 세 채를 보유하고 있음을 뜻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솟는 전세난, 월세에 시달리며 반지하로 밀려나고, 출퇴근 생활권 외곽으로 쫓겨남이 불가피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집값 하락을 염려한다. 사실은 건설업자가 아파트를 지어도 더이상 팔리지 않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라며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을 취하는 이유다. 주거의 공간이 아닌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 다른 집, 대안적 주거에 대한 꿈은 더더욱 절실해진다. 단순한 내 집 마련이 아닌, 오손도손 살 수 있는 이웃과 또 다른 마을을 꾸릴 수 있고, 도시 안에서도 그리 남부끄럽지 않은 생태적 삶을 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두 권의 책이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나의 집을 갖는 것은 많은 이들의 꿈이다. 그중에서도 나만의 집을 직접 짓는 것은 그 꿈의 정점이다. 하지만 녹록하지 않다. 부지 선정, 비용 문제, 설계과정, 공사과정에서 건축업자와 갈등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산더미다. 이런 고통을 먼저 겪은 이들이 ‘또다시 집을 짓느니 차라리 흙 동굴에서 살고 말겠다’는 말까지 내뱉을 정도다. ‘협동조합…’ 속 이들은 달랐다. 우리 가족만 사는 집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 집을 지었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서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지를 매입하고, 협동조합 이름을 짓고, 설계하며 공동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수차례에 걸쳐 토론하며 의견을 나눴다. 같은 가족끼리도 원하는 집의 모양과 쓰임이 다르기 일쑤인데, 직업도 다르고 살아왔던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니 의견의 충돌과 이해관계의 다름으로 갈등은 불가피했다. 북한산 자락에 짓기로 결정했지만 과정은 지난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산이 보이는 집을 원했고, 또 누군가는 복층의 집을 원했다. 8세대 중 몇몇은 계약과 설계 과정을 전후해서 떠나고, 빈자리를 메울 새 조합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터를 닦고 집이 올라가면서 이들은 그제서야 협동조합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주택협동조합 정관, 주택관리 규약을 만들었고, 더불어 살기 위해 비폭력 대화법에 대해 강의를 듣기도 했고, 각자의 성격유형검사까지 받았다. ‘협동조합…’은 어울려서 산다는 것,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나간다는 것,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는 것에 대한 얘기다. 물론 협동조합을 통해 집을 짓는 과정 또는 실무적인 방법 또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와 달리 ‘망원동…’은 월급 130만원의 생활인이 서울에서 공동체의 방식이 아닌, 그러나 생태적으로 사는 법에 대해 얘기한다. 열쇳말은 ‘공유’와 ‘생태’ 두 개다. 빠듯한 비용으로 둘이서 구입한 낡은 15평 연립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집을 친환경 에코하우스로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절수 샤워기 같은 것은 기본이다. 12ℓ가 아닌, 4.8ℓ짜리 절수형 양변기 찾아 발품을 팔고, 그마저도 싱크대 헹굼 물을 받아 재활용하고, 왕겨숯인 훈탄 단열재를 써서 친환경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에 ‘버릴 물건은 저에게 버려주세요’라고 올려 어지간한 부엌 세간살이며, 소파까지 얻었다. 거창하게 제러미 러프킨이 소유의 종말을 얘기하며 공유경제를 주장하는 식이 아니어도, 또 토마스 피케티가 사회적 공유를 통한 자본주의에 맞서는 식이 아니지만 공유경제의 또 다른 버전인 셈이다. ‘셰어하우스’의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불가피하게, 하지만 즐겁게 진행한 생태와 공유의 생생한 사례들이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집,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게 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늦가을 음향/황수정 논설위원

    구멍 숭숭 뚫린 푸성귀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다. 농약 세례를 뚫고 벌레한테 제 몸 내어준 여유가 신통하다. 구멍 난 배춧잎 속을 혹시나, 탈탈 털어본다. 속잎 사이에 배추벌레 한 마리 가부좌 틀고 들앉았다. 기함해서 변기에 넣고 돌렸다는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운수 나쁜 쪽은 내가 아니다. 수수밭에 술렁대는 바람 소리도 듣다 말고, 가을 흰나비도 못 되고 붙들려 왔는데. 날벼락 맞은 건 너다. 배춧잎 한 장 얌전히 떼서 화단 구석에 놓아준다. 산사의 어느 스님은 공양 배추를 한 포기 정해 밭 벌레들 몫으로 내줬다길래. 새벽 일찍 채마밭에 가면 또각또각, 푸성귀 뜯는 벌레들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이맘때 배춧속 여물기를 기다리던 할머니의 귀 밝던 시절 이야기. 가을벌레들의 전설 같은 가을의 소리. 한밤 뒷창문 너머는 암만 기다려도 벙어리다. 개구리, 매미 소리 쏟아지던 자리에 끝내 귀뚜라미 한 마리 오지 않고. 찬 기운 스미면 울지 않고 못 배긴다는 귀뚜라미다. 가뭄 탓에 야산이고 풀숲이고 가을벌레 씨가 말랐다더니. 귀가 지치도록 퍼붓는 그 울음이 가을비 소리 같다는 옛 글을 읽는다. 계절의 끝물에 애가 타는 환청(幻聽)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중국 반체제 예술가에 레고 기부 열풍부는 이유는?

    중국 반체제 예술가에 레고 기부 열풍부는 이유는?

     중국의 반체제 설치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에게 장난감 레고 기부 열풍이 불고 있다고 CNN이 26일 전했다. 아이웨이웨이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내셔널 갤러리에 정치적 망명자를 재현하는 전시를 하기 위해 레고 블록을 대량 주문했는데, 레고가 공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이웨이웨이가 레고 조각을 변기에 쏟아넣은 사진과 함께 주문을 거부당한 사실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자, 십시일반 레고를 아이웨이웨이에게 보내주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로어 루드 트랭벡 레고 대변인은 “레고 블록이 정치적 성명에 활용되는 것을 알게 됐다면, 판매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웨이웨이는 “지난해에도 미국에서 에드워드 스노든의 얼굴을 레고로 만들어 전시하는 등 비슷한 내용의 전시를 한 적이 있다”면서 “중국 상하이에 레고랜드 건립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이번에 레고 블록 주문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지난 21일 상하이 레고랜드 건립 계획이 ‘영·중 간 황금시대’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발표된 것을 지적한 주장이다. 이에 덴마크에 본사를 둔 레고 측은 다시 “놀이공원 레고랜드는 레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브랜드만 빌려주는 거”이라고 일축했다.  아이웨이는 지난 2011년 탈세 혐의로 81일 동안 구금됐고, 이후 4년 동안 중국 당국에 여권을 몰수당한 채 감시 당했다. 자신의 화실에 설치된 도청장치를 찾아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여권을 돌려받고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길섶에서] 해우재(解憂齋)/박홍환 논설위원

    어른들은 측간(厠間), 즉 ‘뒷간’에는 처녀 귀신이 있다고 겁을 줬다. 시커먼 낭떠러지 같은 측간 밑을 볼 엄두를 못 냈다. 눈을 질끈 감고, 코를 감싼 채 후다닥 볼일만 보고 나오기 바빴다. 사람의 평균 생존 기간을 80년으로 봤을 때 배설을 위해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3년 정도라고 한다. 처녀 귀신이 나온다던 시절에는 훨씬 짧았을 게다. 민가와는 달리 불교는 배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뒷간으로 부르며 터부시했던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소(解憂所)로 승화시켰다. 입측의례라 해서 해우소에 갈 때는 늘 법의(法衣)를 정제했다. 그것도 모자라 볼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버리는 것이 큰 기쁨’이라며 해탈을 위한 진언을 외운다지 않는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는 해우재(解憂齋)라는 이름의 변기 모양 건물이 있다. 생전 화장실 문화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살던 집이다. 사후 수원시에 기증해 지금은 화장실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측간에서 해우소, 그리고 해우재로의 변신. 버리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기쁜 일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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