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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준 시간여행] 벽보 계몽시대

    [이호준 시간여행] 벽보 계몽시대

    어느 달동네의 조금 후미진 골목일 수도 있고, 해풍에 바래 가는 바닷가 마을을 걷던 중일 수도 있다. 느닷없이 시야가 환해질 때가 있다. 꽃이 활짝 피고 동물들이 뛰어 놀고 전설이 살아 숨 쉬는 풍경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벽화라 부르는 담벼락 그림과 만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만난 벽화는 가끔 기억 깊숙이 묻어 뒀던 풍경을 소환한다. 흑백영화라도 보는 듯 아련한 풍경들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담벼락마다 표어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소위 벽보였다. 상업적 광고도 없지 않았지만 대개 정부나 관공서의 이름으로 나붙은 ‘공공 홍보용’이었다. 눈만 들면 반공방첩이었고 고개만 돌리면 불조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정책 전달이나 국민 계몽을 위한 수단이 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모든 집에 라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TV는 더욱 드물었다. 그렇다 보니 표어와 포스터가 중요한 전달 수단이었다. 계몽용 벽보 중 세월따라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가족계획 홍보였다. 1970년대에는 어디를 가도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반사회적 행위라도 되는 듯 눈총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게 1980년대 들어서는 ‘둘도 많다’,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라는 등의 구호로 바뀌었다. 낮은 출산율이 나라의 근심이 되고, 육아 지원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세상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쥐잡기 포스터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인공이었다. 쥐잡기의 날을 정해서 전국적으로 소탕작전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쥐를 잡는 게 국가적 과제였다. 또 하나의 단골 메뉴는 혼식이었다. 혼식과 분식의 날을 정해 놓고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이었으니, 벽보로 홍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적 문구가 ‘혼식으로 부강 찾고 분식으로 건강 찾자’였다. 먹고사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했던 국가적 과제는 반공방첩이었다. ‘간첩 신고는 113’과 같은 벽보는 없으면 허전했던 담벼락 고정 메뉴였다. 반공방첩에 관련된 표어·포스터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정권 유지 수단으로 등장했던 10월 유신이 슬며시 끼어들기도 했다. ‘유신으로 굳게 뭉쳐 북괴도발 분쇄하자’와 같은 표어였다. 선거와 투표도 단골 소재였다. 선거 때마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벽보가 나붙었다. ‘내 한 표 바로 던져 평화통일 앞당기자’, ‘내가 찍은 바른 한 표 이 나라 기둥 된다’ 등의 문구가 방방곡곡의 담벼락을 장식했다. 누가 뭐래도 포스터의 왕자는 불조심이었다. 지금도 빨간 불꽃이 날름거리는 불조심 포스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늘 따라다니는 문구가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였다. 시대 상황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진 표어·포스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인분을 준 채소를 먹으면 회충·12지장충에 걸린다’는 표어는 언제부턴가 필요가 없어졌다. ‘미신을 타파하고 과학생활 이룩하자’는 문구 역시 실감 나지 않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지금도 벽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사와 공연 등을 홍보하는 벽보는 여전히 유용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또 선거나 계몽, 정당 등의 홍보를 위한 현수막도 드물지 않게 거리에 나붙는다. 하지만 벽보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만큼 홍보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이콘 벽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정치, 사회는 물론 서민들의 서걱거리던 삶이 차례대로 걸어 나올 것 같다.
  • 경기도, 2022년까지 9개 생태관광거점 마을 조성

    경기도, 2022년까지 9개 생태관광거점 마을 조성

    경기도가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해 2022년까지 서해안과 비무장지대(DMZ), 경기 동남부 등 3개 권역에 9개 생태관광거점 마을을 조성한다. 25일 도에 따르면 도는 이런 내용을 담은 ‘경기도 관역별 생태관광 거점 조성사업 추진 계획’을 확정하고 3월 15일까지 시·군 공모를 통해 6개 마을을 우선 선정한다. 생태관광은 생태(자연)와 지역주민 복지향상을 테마로 한 관광 형태로, 수익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게 특징이다. 마을이나 주민단체가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 수익을 내는 서해안의 갯벌 관광과 경기 동부의 광릉숲이 대표적이다. 도는 생태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 7억 5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2022년까지 9개 마을에 모두 2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공모는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다. 희망하는 주민단체는 해당 시·군에 관련 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시·군은 계획서를 검토한 후 추천서를 경기도에 제출하게 된다. 생태 마을로 선정되면 2년간 2억원의 마을환경 개선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탐방시설 등 기반·편의시설 설치와 수선, 골목길 벽화 등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하는 디자인 마을 조성 등이 지원 대상이다. 또 생태관광 상품 기획과 주변 관광자원 연계 코스 개발, 주민해설사 등 전문 인력 양성과 생태 보전 활동 등에 2년간 1억 5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도는 경기관광공사와 함께 전문가 그룹을 구성, 선정된 생태관광 마을에 밀착형 자문, 보조금 집행지침 설명회, 특강, 간담회 등을 한다. 연내에 생태관광 홈페이지와 마을 소개 소책자 제작 등 홍보 활동도 지원한다. 홍덕수 경기도 관광과장은 “경기도는 해안, 갯벌, 산악, 강, 숲, DMZ 등 생태자원이 다양하게 분포돼 생태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이 높다”면서 “생태관광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마을을 잘 육성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주요 생태자원으로는 안산 대부도·대송습지, 시흥갯벌, 고양 한강하구, 한탄강 국가 지질공원, 광릉숲 등이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부천 계남면 만세운동을 아십니까”

    “부천 계남면 만세운동을 아십니까”

    1919년 3월 삼천리강산은 뜨거웠다. 일제 야욕에 항거하는 독립만세운동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마침내 부천에서도 항일 시위가 이어졌다. 100년 전 그날 우리는 민족독립의 새날을 꿈꿨다. 3·1운동 100주년. 부천시는 그때의 함성과 뜨거운 가슴을 기억하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기 위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 ■부천에서 만나는 3.1운동 발자취… 부천 계남면 만세운동 1919년 3월 24일 3·1 만세운동 여파가 부천에도 불어 닥쳤다. 당시 부천군 계남면 중리(현 심곡동·중동 일대) 주민들이 일제의 농민 수탈정책에 불만을 품고 계남면사무소를 습격해 유리창과 벽체·집기류·서류 등을 부수거나 훼손하는 거사를 일으켰다. 당시 계남면사무소 직원들은 다음날인 25일 아침부터 인접 부내면사무소에서 집무했다. 27일에는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면사무소 부근 민가를 일시 빌려서 집무했다. 이런 사실을 당시 부내면 서기 이경응이 경찰서에 밀고했다는 소문이 돌자 시위 군중들이 이경응의 집을 습격해 가옥·가구 등을 모두 파괴해 가옥은 네 기둥과 지붕만 남고 벽과 창문 등은 모두 파괴됐다는 기록이 있다. 부천의 항일 만세운동 사적지인 당시 계남면사무소 자리는 현재 경원여객 차고지(경인로 244-5)로, 최근 항일유적지임을 알리는 바닥돌과 안내판이 세워졌다. 이 밖에도 부천에는 1927년 10월 일본 지주들의 횡포에 대항해 농민조합운동이 있었던 부평수리조합 터(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1927년 9월 24일 당시 소사역 하역노동자들이 일본인 역장의 부당한 처사에 항거해 동맹파업을 일으킨 소사역 하역노동자 동맹파업지(현 심곡본동 부천역사) 등 항일운동 사적지가 있다. ■안중근공원에서 열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항일 민족정신을 기리는 대표적인 장소로 20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반입된 안중근 의사 동상을 유치해 조성한 부천의 안중근공원을 꼽을 수 있다. 시는 오는 3월 1일 이곳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독립선언서 낭독, 국가유공자 표창, 기념사, 삼일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등이 진행된다. 기념공연으로는 부천의 독립운동을 다룬 초이스 뮤지컬 컴퍼니의 연극 공연이 마련된다. 기념식 후에는 시민들과 함께 손태극기를 흔들며 3.1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거리행진을 벌인다. 행진은 안중근공원부터 부천우체국, 뉴서울아파트 등을 지나 시청 잔디광장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부대행사로는 시청 1층 로비에서 ‘3.1운동, 부천과 만나는 100년’ 전시회가 열린다. 부천의 독립운동과 3.1운동 기념사업을 소개하는 전시는 3월 1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다. 한편 안중근공원에서는 매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추모제가 열리고 10월 26일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일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3·1운동 기념 만화벽화, 특별강연, 영화상영, 기념마라톤 등 다양한 기념사업 부천시는 이 외에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한국만화박물관 광장 외벽에는 3·1운동 기념 만화벽화를 조성한다. 박물관 관람객과 시민들의 캐리커처로 3·1 만세운동을 벽화로 재현해 3월 1일부터 8월까지 전시한다. 3월 1일 박물관 로비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태극기 그리기 체험을 진행하고 1층 상영관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생을 그린 영화 ‘동주’를 상영한다. 항일운동 코스튬 플레이어의 만세 퍼포먼스도 열릴 예정이다. 상동도서관에서는 역사릴레이 강연 ‘역사의 그날-시민과 소통하다’를 연다. 3월 2일, 9일에는 한국근현대사 및 민족운동 연구자로 저명한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16일에는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베스트셀러 역사도서를 집필한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 강연한다. 심곡도서관에서도 3월 8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강좌 ‘인물로 배우는 역사, 독립운동가 대 친일파’를 개최하고, 3월 1~10일 도서관 로비에서 항일저항 작품을 전시하는 3·1운동 100주년 도서 전시전을 연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무료 영화 상영도 진행한다. 22일 영화 ‘밀정’을 시작으로 3월 8일 ‘박열’, 3월 15일 ‘귀향’, 3월 22일 ‘암살’이 시청 어울마당에서 저녁 7시에 상영된다. 삼일절에 부천종합운동장에서는 ‘3·1절 100주년 기념 부천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계명대 해외 봉사활동 펼쳐

    계명대(총장 신일희)는 이번 동계방학을 맞아 대대적인 해외봉사활동을 펼쳤다. 에티오피아(2018. 12. 30.~2019. 1. 11.)를 시작으로 태국(1. 3.~1. 15.), 콜롬비아(2019. 1. 9.~1. 23.), 필리핀(2019. 1. 13.~1. 25.), 인도네시아(2019. 1. 13. ~ 1. 26.) 등 5개국에 150여 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콜롬비아는 최초로 국외봉사활동에 나선 곳으로 중남미에서 유일한 6.25 참전국인 콜롬비아에 나라를 지켜준 것에 대해 보답한다는 의미를 크게 담고 있다. 계명대는 지난해 같은 의미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펼친 후 올해 두 번째로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가지기도 했다. 계명대가 콜롬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펼 친 곳은 부에나비스타 시이다. 해발 1700m고지에 위치 이곳 작은 마을을 특별히 봉사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6.25참전 용사인 곤잘레스씨가 이 마을에 살기 때문이다. 90세가 넘은 곤잘레스 씨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였으나, 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본인의 자택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자녀와 손주들을 모두 불러 계명대 방문단을 환영했다. 곤잘레스 씨의 집은 6.25전쟁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집안 곳곳 모든 벽면에는 당시의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를 상시 게양하며, 당시의 모습들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었다. 곤잘레스 씨는 “젊은 시절 비록 다른 나라이긴 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 흘리며 지켜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나를 아직 기억해 주고 이렇게 찾아 준 것 만으로도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며 환대했다. 계명대 국외봉사단은 봉사활동 지역과 조금 떨어진 보고타 지역 국군학교내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고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소식을 접한 콜롬비아 군에서는 사관생도들과 의장대를 파견해 사열하고 애국가를 연주하며 계명대 국외봉사단을 맞이했다. 콜롬비아 국외봉사단 학생 대표인 손한슬(남, 26세, 경영학전공 4) 학생은“처음에는 단순히 참전용사비에 헌화만 하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까지 맞이해 주는 것을 보고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며, “오늘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 이들이 목숨 바쳐 구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 졌다.”고 말했다. 이곳 참전용사비는 불국사의 다보탑 모양으로 만들어져 더욱 그 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봉사 본연의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인스띠뚜또 부에나비스타 학교에 학생들은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벽화와 교실 환경 개선 등 노력봉사와 함께 한글교육, 태권도, K-Pop 배우기 등 교육봉사도 병행해서 이루어졌다. 고지대에 위치한 학교를 연결하는 계단에 난간이 없어 어린 학생들의 낙상사고가 빈번했는데, 이번에 난간을 설치해 줘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시에라 인스띠뚜또 부에나비스타 학교 교장선생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한 적은 누구도 없었다”며 “첫 봉사를 한 사람들이 먼 한국의 대학생이라는 것에 감동을 받았고, 그들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감동을 받아 너무 감사하고 모두가 소중한 인연 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주(22·여·유아교육과 3)씨는 “봉사기간 동안 마을 주민들과 너무 친해져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이름도 다 외울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지려니 눈물이 절로 났다”며, “이곳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동양인들이 자기들을 도와준다는 것에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봉사활동 기간 내 환대해주며 우리를 맞이해줘 오히려 우리가 접대를 받고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폼페이 주택 담벼락에 나르시소스 벽화, 밸런타인 데이에 공표

    폼페이 주택 담벼락에 나르시소스 벽화, 밸런타인 데이에 공표

    스스로를 너무 사랑했던 미남 청년 나르시소스를 담은 프레스코 벽화가 이탈리아 폼페이의 주택 잔해 담벼락에서 발견됐다. 발굴한 이들은 의도적으로 밸런타인 데이에 이를 공표했다.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 때 화산재에 묻힌 채 그대로 도시와 주민들이 화석이 돼버렸다. 고고학자들에겐 시간의 더께를 벗겨낼 수 있는 보물단지 같은 곳이다. 지난 연말에 발굴된 옛 주택 집터에서 벽화가 발견됐는데 또다시 상당히 온전한 상태의 벽화가 발견돼 발굴하는 연구진들은 더 범위를 넓혀 발굴하기로 했다고 알폰시나 루소가 전했다. 그녀는 폼페이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 집터가 있어 앞으로 일반 공개될 여지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벽화가 발견된 곳은 “화려하고 감각 넘치는” 침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천장은 무너졌지만 벽화 디자인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고 떨어진 조각들을 섬세하게 다시 붙였다고 했다. 총괄 책임자 마시모 옥사나는 성명을 통해 “색채가 이렇게 온전하게 보전된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화려하게, 아마도 제국의 말년에 이 집이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나르시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강의 신 세피소스와 요정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사냥꾼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생겨 숱한 여성들이 그에게 관심을 기울였지만 자신은 도통 관심이 없었다. 벽화가 보여주듯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경탄했다. 모멸차게 거절당한 에코가 자연에 귀의해 요정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복수로 나르시소스는 자신의 얼굴이 비친 호수를 응시하다 죽는다. 이 얘기는 로마 시대 예술작품에서도 빈번히 등장한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집착하는 이들을 가리켜 나르시시즘이란 말로 발전했다. 이를 가장 먼저 심리학 용어로 유행시킨 이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옛 복싱 챔피언 ‘노랑 조끼’ 시위 중 경관들에 주먹 휘두른 이유

    옛 복싱 챔피언 ‘노랑 조끼’ 시위 중 경관들에 주먹 휘두른 이유

    프랑스 복싱 챔피언을 지낸 이가 ‘노랑 조끼’ 시위 도중 경찰관 둘에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유죄가 인정돼 실형이 선고됐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주인공은 2007~08년 프랑스 크루저급 챔피언을 지낸 크리스토프 데팅거(37)로 지난달 5일(이하 현지시간) 시위대에 참여한 모자가 경찰관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경관들을 제지하기 위해 완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시위에 동조하는 이들은 파리 시내 담벼락에 그의 모습을 그래피티(낙서나 벽화)로 남겼고,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떴다. 파리 형사법원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30개월에 집행유예 18개월을 선고해 12개월만 이른바 ‘절반의 자유’형을 13일 선고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프랑스의 독특한 징벌로 밤에는 교도소로 돌아와 지내고, 낮에는 바깥에서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다만 법원은 6개월 동안 파리에 머무르지 못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재판을 지켜본 그의 동조자들은 환호했다. 7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상황으로 예측됐기 때문이었다. 데팅거는 사건 동영상이 전국에 좍 퍼진 이틀 뒤 경찰에 자수하며 주먹을 휘두른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며 사과했다. 그 뒤 온라인 모금을 통해 11만 4000 유로가 걷혔고, 야당 정치인들을 비롯해 수천 명이 댓글을 달아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이 모금 페이지는 나중에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폐쇄됐다. 그는 세 아이의 아빠로 파리 남쪽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 자수하기 전에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는 경찰을 보고 격분해 “잘못된 행동”을 한 “보통 시민”이라고 말했다. 그날 현장을 목격한 시위대원 그웨날레 안티노리 르욘쿠어는 이날 재판에 나와 “데팅거는 몸무게가 47㎏ 밖에 안 되는 나와 우리 큰아들이 맞는 것을 보고 참지 못했다. 진압 과정에 너무 많은 폭력이 행사됐다”고 증언했다. 노랑 조끼 시위에 참가하는 인원이 꾸준히 줄고 있지만 이따금 폭력 양상이 벌어지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1800명 정도가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 대부분은 공공 재산 파괴와 경찰에 대한 폭력 행사 혐의라고 AFP 통신은 전했다.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만 1400명이 넘는다고 에두아르드 필리페 총리는 전날 밝혔다. 시위를 지도하는 이들 가운데 에릭 드루엣이 15일 불법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파리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현장 행정] “성내시장 살려 강리단길의 꿈 꼭 이룰겁니다”

    [현장 행정] “성내시장 살려 강리단길의 꿈 꼭 이룰겁니다”

    “시장을 다닐 때마다 ‘밥 좀 먹게 해달라’는 상인들의 말씀에 가슴이 아픕니다.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빈 상가를 문화센터, 북카페, 유모차 대여소 등으로 활용하는 등 더 많은 주민이 시장을 찾을 방안을 찾겠습니다. 성내시장 인근의 강풀만화거리까지 연계해 즐길 콘텐츠가 풍성한 명소 ‘강리단길’로 키우려 합니다.” 이정훈 서울 강동구청장은 ‘시장 마니아’다. 주말에도 가족, 지인들과 시장을 찾아 장을 보며 상인들의 형편을 살뜰히 살핀다. 설, 추석에 두 달치 월급을 전통시장에서 쓸 정도로 시장을 들르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성내동 성내전통시장을 찾은 지난달 29일에도 점포를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다니며 상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 그는 “민선 7기 공약 가운데 하나인 전통시장 환경 개선 사업,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시장 고유 브랜드 개발 등에 힘을 쏟아 강동의 시장을 서울의 명품시장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이 구청장이 이날 찾은 성내시장은 4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강풀만화거리(1㎞ 구간, 13만 2376㎡ 규모)를 두고 있다. 웹툰 작가 강풀의 대표작 ‘바보’, ‘순정만화’ 등의 주인공들이 골목마다 정겨운 벽화로 자리해 있는 강풀만화거리는 거점 장소인 승룡이네집(카페, 만화방, 입주 작가 작업실 등으로 이뤄진 커뮤니티센터), 벽화 해설 투어 프로그램, 아기자기한 맛집과 공방 등으로 지난 5년간 4만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구는 이곳을 인근의 성내시장, 주꾸미 특화골목, 청년 창업 공간인 엔젤공방들과 연계한 문화거리, 일명 ‘강리단길’로 키울 예정이다. 이 구청장은 “오는 3월 말 강풀만화거리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강리단길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현재 예술가 창작존을 만들어 청년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도 하고 거주도 할 수 있는 임대주택 건립 방안을 SH공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규모 산업·상업 시설이 없는 지역 특성상 강동구에서는 10인 미만으로 운영되는 영세사업체가 2만 8425개로 전체 사업체(3만 268개)의 94%를 차지한다. 이 구청장은 6월 천호동에 개소하는 노동권익센터 소상공인팀을 통해 영세사업체 인력과 소상공인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도 구축한다. “노동권익센터는 비정규직, 여성, 청소년, 장애인, 외국인 등 노동 취약계층과 자영업자, 영세사업자 등 구민 모두를 아우릅니다. 불합리한 여건에 대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 노동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이루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탁트인 골목길 만들기, 영등포구청장이 간다

    탁트인 골목길 만들기, 영등포구청장이 간다

    새달부터 밤 10시 순찰활동 계획 채현일 “마을분위기 해치는 거리 도시재생으로 탁 트이게 할 것”채현일 서울 영등포구청장이 당산로16길 일대를 탁트인 골목길로 만드는데 팔을 걷어 붙였다. 6일 주민들과 함께 골목길 곳곳을 누비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했다. 채 구청장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1년 안에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쾌적하고 탁트인 골목길로 바꾸겠다”면서 “거리 가꾸기와 순찰강화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건물주와 협의해 직접 매입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동행한 주민들은 큰 기대를 걸면서 적극적인 동참으로 화답했다. 채 구청장이 당산로16길을 탁트인 골목길 만들기 사업 대상으로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시나브로 골목길에 들어선 이른바 ‘나쁜 카페’ 때문에 골목길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걸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재희 당산1동 새마을금고 회장은 “3월부터 날마다 밤 10시에 순찰활동을 벌일 계획이지만 ‘나쁜 카페’는 손님이 오면 아예 문을 잠그고 영업하기 때문에 구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채 구청장은 “근처에 어린이집이 세 곳이나 된다. 하루빨리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구청 위생과가 적극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방문은 채 구청장이 취임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탁트인 골목 가는 날’ 행사의 일환이다. 천편일률적인 동 신년인사회 틀을 벗어나 참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영등포구가 추진하는 역점사업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묻자는 취지다. 관내 18개 동을 4개 권역으로 나눠 하루에 두 곳씩 채 구청장과 주민들이 ‘탁트인 골목 만들기 사업’을 공유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영등포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자는 것. 그 연장선에서 당산1동 주민들과 채 구청장이 의기투합한 것이 바로 당산골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인 셈이다. 당산1동은 안전하고 깨끗한 골목 만들기를 목표로 ‘당산골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이를 위한 세부사업으로 주민 체험장 만들기, 거리 가꾸기, 주민 벼룩시장 개설, 유관기관 순찰 및 지속적인 캠페인 등의 계획을 공유한다. 이 외에도 무단투기지역 환경개선을 위한 벽화그리기, 양심 로고젝트 설치, 대형 소화기 설치 등 각 동의 추진사업들이 공유될 예정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채 구청장이 구청 차원에서 도와주기로 약속한 만큼 주민들도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자랑할 만한 골목길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백종원의 골목식당’ 컵밥집 사장 “노량진 컵밥보다 퀄리티 좋다고 생각”

    ‘백종원의 골목식당’ 컵밥집 사장 “노량진 컵밥보다 퀄리티 좋다고 생각”

    ‘백종원의 골목식당’ 회기동 컵밥집이 공개된다. 30일 방송되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회기동 벽화골목 편에서는 베일에 싸인 마지막 가게가 공개된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백종원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가게는 연상연하 부부가 운영하는 컵밥집이다. MC들은 다른 곳에서 컵밥집을 운영했다 접고, 다시 또 컵밥집을 개점했다는 사장님의 말에 의아해했다. 컵밥집 사장님은 “노량진 컵밥보다 퀄리티는 더 좋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사장님은 백종원의 컵밥 시식평을 듣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백종원은 닭요리집 메뉴를 정리하기 위해 1대 창업주를 만났다. 아들이 물려받아 2대째 운영 중인 닭요리집은 20년째 회기동을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식당이나 다름없다. 1대 창업주와 백종원의 만남은 긴장이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음식과 장사라는 공통분모로 금세 훈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나갔고, 메뉴 축소에 대해 상의했다. 백종원은 갈비탕 업그레이드 숙제를 내줬던 고깃집에 다시 찾아갔다. 고깃집 사장님은 일주일 동안 갈비탕 맛집들을 다녀온 후, 자체적으로 연구해 발전시킨 갈비탕을 선보였다. 여기에 사장님은 본인이 개발한 새로운 메뉴 ‘고추장 양념 목살구이’를 내놓았다. 이를 맛본 백종원은 돌연 조보아를 호출해 고기를 구워보게 했다. 한편,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30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최명윤 이사장이 말하는 근현대 미술 거장의 ‘위작 감정’“이중섭, 박수근이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이미 나와 있는 책을 정리하는 수준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고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사진으로 싣는 도록·이하 레조네)는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왕에 나와 있는 수십권의 책을 단순 정리하는 레조네는 왜 거액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레조네를 만드는 것은 결단코 반대합니다. 그런 것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 이중섭이나 박수근 작가의 기념재단이 할 일이지요.” 미술계에서 최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의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사업에 대해 미술 감정 및 문화재 복원 전문가인 최명윤(70) 한국미술과학연구원 이사장은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중섭·박수근 뿐만 아니라 이우환(82) 등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 위작 문제와 관련해 ‘과학적 감정’을 제시해 왔다. 이에 미술계 일부는 미운털이 박힌 것처럼 그를 탐탁잖게 본다. “레조네, 정부 아닌 기념재단 사업과거 출판 도록 작품, 진위 논란 많아레조네 게재작, 명확한 근거 입증해야”최 이사장은 “레조네가 자칫하면 위작을 진품으로 인정하는 통로가 되고, 정부가 만든 레조네에 실린 위작은 정부가 진품으로 보증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레조네라고 하면 거기에 실린 그림들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먼저 출판된 자료가 있어서 게재한다는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먼저 출판된 자료의 그림이 박수근 진품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도 진위 논란이 되는 그림도 많은데….” 수개월간 인터뷰를 조른 끝에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개운사길에 있는 한국미술과학연구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은 화학 실험실처럼 약품과 물감, 유리병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벽면엔 캔버스에 노랑 물감을 묻혀 걸어둔 게 보였다. “이게 뭐냐.”라고 물어보니 그는 “시장에 나온 물감을 종류별로 그림을 그려두고 먼지도 날아드는 일반적 실내에서 얼마나 빨리 굳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품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다.그러면서 레조네 제작을 반대하는 이유를 계속 말했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이트에는 박수근, 이중섭 카탈로그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물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공개된 박수근의 자료를 보면 1953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소개된 그림의 경우 국전에 출품됐다는 참고자료를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박수근 사후 20주년, 30주년 전시기념으로 제작된 화집에 실린 기록만을 진품의 근거로 제시한 경우도 있습니다. 박수근 사후 만들어진 화집의 예를 들면 전시회 도록에는 200여 점이 실려 있지만, 실제 전시공간에는 불과 30~40점밖에 걸릴 수 없어 전시회 도록에 실린 그림들에 대한 검증절차가 꼭 필요합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현재 진행된 레조네 사업은 과거의 모든 전시화집에 실린 그림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선행 연구결과로 채택되어 있어 박수근의 진품으로 세탁하는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현재 카탈로그 레조네 사업은 공식적으로는 끝났으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디, 거장들의 작품이 보통 가격입니까. 레조네를 만들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주장하는 이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조네 용역비로 정부가 댄 돈도 세금인데….” “미술계 싸움닭?…먼저 시비 걸지 않아위작 감정에 ‘과학적 감정’…희비 엇갈려검경 감정의뢰에 답할 뿐…이게 나의 일”엄정한 위작 판별로 그에게 미술계의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쌈닭? 관심 없다”고 했다. “제가 먼저 어떤 작품에 대해 진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화랑에서 가짜 그림을 팔고 있다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그들이 뭘 팔든지 관심이 없어요. 검찰이나 경찰의 감정의뢰가 오면 제 나름의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검증한 결과를 수사기관에 넘겨줄 뿐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욕하고, 씹는 사람 절대 대다수는 한 번도 나를 만나 보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감정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데 왜 싸움닭인가.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작품 진위 논쟁)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상 뒤에 죽도와 목도가 보였다. “이런 게 왜 여기 있느냐”라고 묻자 “건강을 위해 검도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을 당할 수가 없어. 가만있다가 상대가 죽도를 치켜들고 들어올 때 재빨리 반격하지.” 검도 기술 설명에 위작 논란과의 싸움이 연상됐다. “작품 진위 판별에는 손해 보는 사람이 있고, 이익 보는 사람도 생기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모두 다 나를 좋아하겠어요.”이중섭·박수근의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가히 ‘국민 화가’로 부를만하다. 최 이사장에게 위작 유통이 얼마나 심각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한참을 말하지 않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매우 심각”이라고 짧게 말했다. ‘요즘 유통되는 작품 과반이 위작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자 그는 “박수근은 더 심각하다”고 에둘러 답했다. 그리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꾹 닫았다. 이중섭·박수근 화백 작품 2800여 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2017년 났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05년부터 12년 동안 지난한 싸움을 해왔다. 한국 미술계 사상 최대의 위작 스캔들이 밝혀지는 데에는 그의 감정결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의 ‘과학적 검증’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가진 인문학 지식과 과학 기법을 합쳐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진짜다’, ‘가짜다’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짜라고 판단을 했으면 왜 이게 가짜인가에 대해 객관적인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럴 때 과학 기기의 도움을 받습니다. 눈으로 보고 말로 설명해도 충분하지만, 과학 기기를 써서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언제까지나 ‘척 보니 좋아’, ‘척 보니 진품 맞아’ 이런 것 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가자는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자는 겁니다.” “‘척 보면 좋아, 진품 맞아’ 하지 말고과학 기법 동원해 객관적 입증 노력감정 기법, 위조범 탓에 메모하지 마라”위작 감별에 동원되는 기기가 질량분석기, 원소분석기, 시편제작기, 고배율 현미경 등이라고 했다. 이런 고가의 기기를 갖출 수 없어 일부 전문기관과 협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설명이 계속됐다. “그림이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노후화와 진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급속한 인위적 노후화에는 차이가 납니다. 액자의 변형과 스타일, 못에 쓴 녹, 캔버스에 낀 먼지, 물감의 상태 …. 그래도 첨예하게 대립하면 소장자와 이해 당사자의 동의 아래에 그림의 아주 일부를 떼어내 조사합니다. 그러면 캔버스 조사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 습관이 나옵니다. 위작범은 바깥으로 드러난 색깔만 따라하니 적발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분석 기법이 새나가면 위작범에게 피해갈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메모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과수가 위조 서명을 감별하듯 화가 특유의 필압(筆壓)도 분석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감정 기법을 설명하면서 쓰지 말아 달라고 세 번 이야기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알려줘도, 일반인에겐 입도 벙긋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정 결과를 수사기관에 “위작임” “위작으로 판단됨” “감정불가” “진품”으로 회신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수근은 가난한 화가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문짝에 거적때기만 있어도 집이라고 하던 시절에 서울 숭인동에 기와집을 샀고, 1963년 전농동에 2층 양옥집을 사서 이사했습니다. 이게 박수근이 가난했을 것이라는 위작범의 생각과 내가 보는 박수근에 대한 생각의 차이점이자 위작 감정의 시발점입니다.” 그는 쉼없이 말을 이었다. “이중섭도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서 담뱃종이에 그림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표현을 위해 담뱃종이를 쓴 것이라고 봅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장판지 찢어서, 아무 종이나 막 찢어서 주야장천 그렸다는 이야기는 웃기죠. 대부분의 담뱃종이 그림에는 이중섭이 서명하지 않았거든요. 다음에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품 스케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요게 재미있으니깐 전시할 때 몇 개 담뱃종이에 그려낸 것이 있습니다만. 화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겉모습만 보고 따라 그리니 위작이 금방 들통나지요.”사무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한쪽 벽면에 가위, 펜치, 드릴, 핀셋, 줄톱 등의 공구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감정을 의뢰받은 그림의 액자를 해체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책상 뒤 작은 서가에는 CD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동안 분석했거나 감정했던 미술, 복원했던 고미술품의 자료와 감정 및 복원 과정을 담아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작 다툼 상대와 관련해 “매너가 좋은 최고의 화상에 유명 대학교수와 같은 일류 평론가, 예리하게 파고드는 변호사가 붙은 거대한 카르텔 같은 집단”이라고 평했다. “위조범,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 부족자연적 노후화, 인위적 급속한 노후화 차이” 왜 그림 진위 감별 업무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게 나의 일”이라며 “대학원에서 작품평가방법론, 감정방법론 이런 것을 가르치는데, 그럼 난 뭘 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감정을 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으라’라는 것이겠지만 난 그들에게 오히려 ‘나쁜 짓을 하지 말든지, 걸리지 말든지 하라’고 역으로 말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에 걸려 압수된 물품에 대해서는 검경은 진위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압수를 당하지 않았으면, 검경이 나한데 안 물어볼 거잖아요.” 그가 ‘과학적 감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박수근, 이중섭 대규모 위작사건’과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이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서울옥션이 2007년 5월 경매에서 판매한 작품으로 4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격주간지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2008년 1월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제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빨래터’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20명 이상의 위원이 진품이라고 한 작품을 그는 과학검증을 통해 확인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 “법원의 주문은 ‘원고의 모든 청구는 기각한다. 피고의 재판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입니다. 또 대법원에 사건검색을 하면 사건 일반 내용에 원고 패소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대다수 일반인은 문제의 빨래터가 법정에서 ‘진품이라고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1940~1960년대 서울에서 몇 곳 안 되는 화방 가운데 두 곳을 운영했다. 최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화방 심부름을 많이 하면서 찢어지고 물감이 엉겨붙어 실려 온 ‘사고 작품’을 많이 봤다. 미대생이어서 작품 손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작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보존과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 랄페르복원기술연구소에서 복원기술을, 고등장식미술학교인 아르데코에서 벽화를 청강생으로 접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미술품이나 문화재 복원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 것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분석하고, 훼손 요인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훼손 요인을 분석하는 상태조사 방법과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진행하는 과학적 분석 방법은 일맥상통하기에 그림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노련한 전문가 사후 감정 어렵다는 건 오해미술재료 기술사 정리 중…정확히 감정 가능”2016년 문제가 된 원로 작가인 이우환 작품 3점에 대해서도 그는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정작 작가인 이우환은 “내 작품이 맞다”고 했다. 문제의 작품은 1978년, 1979년에 그린 것으로 돼 있다. 법원도 모사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 이사장은 문제 그림의 캔버스 재료의 제작기술을 토대로 2010년대 제작된 것임을 입증해 보여줬다. 이런 최 이사장에게도 난감할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떤 그림의 진위를 밝혀달라고 합니다. 그 작가에 대한 비교 대상의 그림도 없이 말입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그래서 ‘미술 재료 기술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양화가 도입된 지 100년 남짓합니다. 초기의 30~40년은 작품 수도 적고 하니 다음으로 미루고, 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60~70년 정도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두꺼운 바인딩 파일을 가져와서 쑥 내밀었다. 열어보니 물감, 캔버스 등의 실물 일부가 표본으로 붙어 있었고, 연도 작가 등이 쓰여 있었다.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시작한 연도, 재료를 구입하는 곳, 어떤 미술 재료를 사용하는지를 취재해 모은단다. “재료기술사는 개인이 하기에는 버겁지만 시작한 일이니 앞으로 10~20년쯤 뒤에는 완성될 것으로 봅니다. 일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소장자들은 현재 위작 감정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죽고 나면, 감정이 어려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재료 변천에 대한 작가별 과학재료 기술사가 정립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감정 뒷이야기를 더 들을까 해서 같이 저녁을 하자고 했더니 최 이사장은 “검도 승단 심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산고 같았던 초연…젊은 후배처럼 그때의 열정 지켜내고 싶어”

    “산고 같았던 초연…젊은 후배처럼 그때의 열정 지켜내고 싶어”

    극이 시작되고 첫 번째로 흘러나오는 삽입곡 ‘푸가의 기법’은 극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전주곡과도 같았다. 곡이 형성하는 특유의 긴장감은 공연 내내 날 선 대사를 주고받는 두 배우의 연기와 맞물려 객석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세계적인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의 대화로 구성된 2인극 ‘레드’는 두 배우가 숨을 틈, 숨 쉴 틈도 없이 함께 공연을 책임지는 작품이다. 2010년 토니상 최다 수상작이었던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선후배 배우 간 불꽃 튀는 연기대결. 2011년 초연 이후 네 시즌째 ‘마크 로스코’로 출연한 중견배우 강신일(59)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친구들이 그 시대에 맞게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내고 추구하면 저는 그것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후배 배우들과 호흡하는 법을 설명했다.‘레드’는 뉴욕 시그램 빌딩의 유명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 로스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현대 미술 사조가 변화하는 가운데 나타난 세대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극중 로스코는 가상의 조수이자 제자인 켄을 고압적으로 대하며 끊임없이 충돌하고 논쟁한다. 궁극적으로 세대 간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의 주제처럼 강신일은 후배 배우들과 호흡하며 자신을 돌아본다고 소회했다. 그는 ‘켄’으로 더블 캐스팅된 김도빈·박정복에 대해 “저보다 20년 이상 젊은 친구들의 열정을 보면서, 내가 젊었을 때 가졌던 열망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며 “젊은 후배들과 같은 열정과 열망을 저 역시 지켜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초연 때 연출가 오경택은 대본을 보고 제일 먼저 강신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시즌을 거듭하며 ‘마크 로스코=강신일’이라는 호평이 나올 만큼 그에게는 의미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는 배우가 한 배역을 계속 독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강신일은 “다양한 성격의 배우들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또 다른 공연을 만드는 것이 옳다”며 “공연은 그림처럼 한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들이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에게 ‘레드’ 초연은 산고를 겪는 것과 같았던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며 “많은 공부를 하며 작품을 잘 다져놨는데, 저에 이어서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강신일이 태어난 곳이 연극판이니 이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영화 ‘공공의 적’(2002),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 등 흥행작에 연이어 출연하며 이제는 지나가는 아이도 그를 알아볼 만큼 유명배우가 됐다. 지난해말 국립극단 연극 ‘록앤롤’에 이어 곧바로 ‘레드’ 무대에 섰고, 일일드라마에도 계속 출연하며 방송과 연극을 오가는 바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을 천생 연극배우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극의 중요성에 대해 “달리기 같은 기초종목을 활성화하지 않고 축구나 야구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연극과 같은 기초예술도 똑같다. 기초예술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삶의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강신일은 인터뷰 말미 공연기획사 측 관계자를 힐끗 보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제 마크 로스코와는 작별해야 할 것 같다”라며 이번이 마지막 출연이 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한 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이 얘기는 처음 하는 건데…. 사실 초연 때부터 동료 배우인 정원중이 ‘마크 로스코’ 역에는 제격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 친구에게도 ‘원중아, 이 역할은 네가 해야 돼’라고 말하기도 했죠. 다음 시즌에 그 친구가 출연한다면 저 역시 (더블캐스팅으로) 함께할 의향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2월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중랑 아이들 ‘별사탕길’ 걸으며 학교 다녀요

    중랑 아이들 ‘별사탕길’ 걸으며 학교 다녀요

    송곡고, 동원초, 이화미디어고 등 서울 중랑구 지역 8개 학교 학생들의 통학로가 안전한 ‘별사탕길’로 탈바꿈했다. ‘범죄예방디자인기법’(CPTED)을 적용해 거리 이미지를 개선하고 안전시설을 확충했다. 중랑구는 지난해 7월 시작한 ‘망우본동 통학로 안전디자인 사업’을 완료하고, 망우로71길 등 주요 통학로를 재정비했다고 24일 밝혔다. 구에 따르면 이 일대는 초·중·고등학생 4200여명이 오가는 통학로지만, 경의중앙선이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어 방음벽, 터널 등으로 인한 어둡고 외진 공간이 많았다. 근처 학교 중 5곳이 여학교인 만큼 안전한 통학로 조성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지역 주민과 학교 관계자, 중랑경찰서 등 관계자들이 협의한 끝에 그해 5월부터 통학로 디자인사업에 돌입했다. 학생 공모전을 통해 별사탕길이라는 디자인 주제를 정하고, 로고와 캐릭터를 각종 시설물과 벽화 등으로 구현해냈다. 철도 옹벽과 터널에는 별빛 그래픽과 조명을 설치하고, 어두운 보행공간에도 희망적인 문구가 담긴 메시지판과 조명을 설치했다. 자율방범대초소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비상벨을 곳곳에 설치했으며, 근처 편의점 3곳을 여성안심지키미집으로 지정하는 등 각종 안전시설도 마련했다. 중랑구는 올해 통학로 개선 작업을 지역 47개 학교 주변으로 확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백종원의 골목식당’ 회기동 벽화골목, 백종원 시식 반응 보니..

    ‘백종원의 골목식당’ 회기동 벽화골목, 백종원 시식 반응 보니..

    ‘골목식당’이 새로운 골목 회기동 벽화골목을 찾아간다. 23일 방송되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열한 번째 골목으로 회기동 벽화골목 편이 첫 공개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열한 번째 골목은 경희대학교가 위치한 ‘회기동 벽화골목’으로 제작진이 장장 6개월간의 관찰 끝에 결정한 만큼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계속되는 섭외 거절뿐만 아니라, 출연을 번복한 가게도 있었다고 알려져 ‘섭외 난이도 최상’ 골목임을 입증했다. MC 김성주 또한 회기동과의 깊은 인연을 소개하며 “가게들이 자주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해 회기동 벽화골목의 험난한 시작을 예고했다. 백종원이 처음 만난 출연자는 직원 경력만 18년에 달하지만, 얼마 전 처음으로 ‘사장’이 된 피자집 사장님이다. 성내동, 청파동에 이은 세 번째 피자집의 등장에 3MC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백종원 또한 시식 직후 “눈물 나오려고 한다”는 의미심장한 시식 평을 남겨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어 백종원은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닭요리집에 방문해 시식에 나섰다. 시식 후 백종원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가늠할 수 없는 평가를 해 현장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또한 ‘백종원의 골목식당’ 첫 고깃집이 소개됐는데, 동네 상권에서 대학 상권으로 상권을 옮긴 사장님 부부는 “이 자리에서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라며 절실함을 내비쳤다. 특히, 부부의 절실할 수밖에 없는 사연에 현장은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한편,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23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따뜻한 기업] 미얀마·필리핀 등에 건설·교육 지원…세계로 뻗는 ‘온정의 손길’

    [따뜻한 기업] 미얀마·필리핀 등에 건설·교육 지원…세계로 뻗는 ‘온정의 손길’

    현대제철은 ‘함께 그리는 100년의 기적과 변화’라는 사회공헌 비전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과 책임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글로벌 사회공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할 예정이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현대제철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은 임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으로, 글로벌 사회공헌 또한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정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개하고 있다.현대제철은 지난 2014년부터 미얀마와 필리핀 등에서 현지 주민들을 위한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미얀마 만달레이주 따웅비라이에서 지역개발사업을 했다. 총 6개 마을에 커뮤니티센터, 식수저장탱크, 학교 화장실 등 실생활에 필요한 건축물들을 지어줬고 벽화 그리기, 위생교육전파 등의 활동을 했다. 특히 임직원들이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해 지역주민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 마을 음악회, 비즈공예 등의 문화교육 봉사도 했다. 2017년부터 3년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필리핀 북사마르주는 외부인의 방문이 적어 관광 수입이 없고, 정부의 지원에도 소외된 빈곤 지역으로 지진과 태풍,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발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다. 현대제철은 해외 봉사 전문기관인 플랜코리아와 함께 향후 3년간 필리핀 북사마르주 내 소외지역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 글로벌 사회공헌은 지난 3년간 중국에서 펼진 스포츠 CSR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016년 중국 유소녀 축구 발전을 위해 한·중 교류 업무협약(MOU)을 맺고 축구 교실을 진행해왔다.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이 포진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가 따핑중학교를 찾아 기술지도를 위한 축구교실을 열고 감독 특강, 한국 초청 등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십년지계’ 희망의 집수리 활동 현대제철은 지난 2011년부터 인천·포항·당진·순천 등의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사회의 에너지 절감을 지원하는 ‘희망의 집수리-주택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 빈곤층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에너지 비용 절감에 기여하고, 수혜 대상이 자립해 에너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 사업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00가구 시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에너지 빈곤층의 주거환경 개선과 에너지 컨설팅을 통해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비 절감뿐만 아니라 에너지 복지를 위한 관련 사업 확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 사회와 소통을 위한 USR 및 임직원 봉사 현대제철 인천·포항·순천공장의 각 노동조합은 지난 2016년 말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이행을 선포한 이후 다채로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도 공장별로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환경·안전·복지 등과 관련한 봉사활동을 펼쳐 지역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현대제철은 임직원들이 자율적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문화 정착을 위해 각 공장과 본부의 특성을 고려한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대학생 봉사단 ‘해피예스’ 운영 현대제철은 지역사회 및 이웃에 대한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나눔 실천을 위해 지난 2009년부터 매년 대학생 봉사단 ‘해피예스’를 선발·운영하고 있다. 매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대학생이 지원할 만큼 대학사회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매년 사회적 문제와 이슈를 근거로 봉사활동 콘셉트를 정해 운영하는데 지난해에는 폐지 수거 어르신을 위한 안전한 손수레 제작 봉사를 했다. 2017년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해피예스 단원들이 개발한 ‘폐지 수거 어르신을 위한 DIY 노랑손수레’는 기존 폐지 수거에 사용하던 손수레보다 30㎏가량 가볍고 보조브레이크를 부착하는 등 안전하게 만들어졌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LA 한인 학생들 “학교 욱일기 벽화 제거하라” 온라인 청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학생들이 한인타운 공립학교인 로버트 F 케네디(RFK) 공립학교 체육관 건물 외벽에 그려진 욱일기 문양 벽화를 제거하라고 촉구하며 온라인 청원을 시작했다. 19일 현지 한인단체 등에 따르면 한인타운 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 30명은 최근 청원 사이트 ‘체인지’(www.change.org)에 ‘RFK 벽화, 증오의 상징을 제거하라’는 방을 개설해 청원을 받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학생들 대다수가 한인이지만 히스패닉계 등 다른 인종 학생도 포함돼 있다. 이 벽화는 할리우드 배우 에바 가드너와 앰배서더호텔 팜트리(야자나무)를 중간에 놓고 주변을 욱일기 형태의 광채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달 LA통합교육구(LAUSD) 측이 이 벽화를 제거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다른 화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해 제거 결정이 보류됐다. 학생들은 “욱일기 모양을 본뜬 이 그림은 나치 문양과 마찬가지로 증오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 침략기의 잔혹한 만행과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벽화가 한인타운 중심가에 있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벽화는 한인타운 중심가인 8가에서 바라보면 학교 건물 사이로 욱일기의 붉은 문양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형태로 보인다. 학생들은 대신 이 자리에 도산 안창호 선생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히스패닉계 노동운동가 세자르 E 차베스의 초상화를 그리자고 제안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도쿄 모노레일역 문에 남겨진 쥐 그림, “뱅크시가 남긴 선물?”

    도쿄 모노레일역 문에 남겨진 쥐 그림, “뱅크시가 남긴 선물?”

    일본 도쿄의 히노데 모노레일역 문에 그려진 쥐가 우산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스프레이로 그려졌는데 지난 16일 발견됐다. 도쿄도 관리들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의 작품이 아닌가 보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가운데 우산을 낙하산처럼 쓰는 ‘우산 쥐’와 매우 비슷해서다. 그런데 관리들도 언제 이 그림이 그려졌는지,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들이 몰랐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리들도 주민들이 알려온 뒤에야 뱅크시의 작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도 트위터에 이 작품이 “도쿄에 전하는 선물”일 수 있다고 적었다. 수기야마 코지 담당 공무원은 뱅크시의 작품이란 것이 알려지면 훼손하는 일이 있을까 우려해 그 문을 떼다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AFP통신에 밝혔다. 하지만 수기야마는 여전히 그림을 그린 주인공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일본에 전문가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실토했다. 뱅크시는 공공장소에 몰래 작품을 남겨놓고 사라지는 익명의 영국 그래피티 작가로 그의 작품은 때때로 엄청난 고가에 팔려나간다. 한편 지난달 18일 웨일스 남부 철강도시 포트 탤벗(Port Talbot)의 한 차고 벽에 그려진 ‘눈 먹는 소년’이 수십만 파운드에 팔렸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그림의 한 쪽은 한 아이가 팔을 벌리면서 내리는 눈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다른 쪽 벽면에는 불이 붙은 통에서 먼지가 내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각각 묘사됐다. 아이를 즐겁게 만든 눈이 사실은 불에 탄 재라는 것을 보여워 공업도시와 철강 생산, 공해 등을 빗댔다는 평가가 나왔다. 차고 주인인 철강 노동자 이언 루이스는 벽화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다가 에식스에 갤러리를 보유한 존 브랜들러에게 판매했다. 이미 뱅크시의 몇몇 작품을 보유한 브랜들러는 최소 2∼3년은 벽화를 포트 탤벗에 두면서, 자신이 보유한 다른 뱅크시 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브랜들러는 “루이스는 작품을 지역사회에 두기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들을 택하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들은 그저 돈을 택했을 것이지만 루이스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다. ‘제2의 도시’다운 화려함과 오랫동안 지켜온 역사가 공존한다. 15개 자치구와 1개 자치군을 두고 있는 큰 도시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친다. 바다 위를 오가는 케이블카, 해변을 환하게 밝히는 마천루의 조명에 부산의 바다는 더 특별해진다. 해수온천에 몸을 담갔다 옛날 시장을 구경하고 구석구석 특색 있는 골목을 하나씩 거닐다 보면 몇날 며칠도 짧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가 2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도시를 머릿속에 그리면 꽤 멀게 느껴지는데 기차에서 딴짓을 좀 하다 보면 금방이다. 커다란 역사를 빠져나오니 북적한 도시 한복판이다. 도시의 소음 사이로 바람을 타고 온 짭짤한 바다냄새가 뒤섞인다. 광장의 팔각 비둘기집이 과거의 시간 한 토막을 떼어놓은 것 같다. 이곳에서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부산의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017년 6월 문을 연 송도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제1호 근대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1913년 7월 문을 연 송도해수욕장은 처음에는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한 휴양시설로 개발됐다. 오랫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었지만 해운대, 광안리 등의 부상으로 한동안 옛 명성을 잃었다. 1964년 건설됐던 해상케이블카가 1988년 운행을 중단한 것은 시설 노후와 이용객 감소 때문이었다. 29년 만에 재개장한 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부활의 상징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암남공원까지 1.62㎞를 운행한다. 옛 케이블카보다 운행거리가 4배 가까이 늘었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에 오른다. 불투명 바닥의 ‘에어크루즈’도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출발한 케이블카는 이내 거북섬 위를 지나 바다 위로 나아간다. 등 뒤로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남항대교, 영도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창 밑으로는 에메랄드빛 물결이 넘실댄다. 부산 바다가 이렇게 맑았나 싶다. 8분 30초간 위로 오른 케이블카는 암남공원 내 전망대에 멈춘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송림공원 앞에 내린다. 바로 앞바다 거북섬은 2016년 5월 해수욕장에서부터 이어지는 구름산책로로 연결됐다. 바다 위 고래조각상 등을 감상하면서 구불구불 난 산책로를 걸으면 작은 암초인 거북섬에 이른다. 바다로 삐죽 솟은 산책로 끝까지 가면 알록달록 방파제 위로 갈매기 떼가 새하얗게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과자를 꺼내 공중에 손을 휘휘 저으면 시력 좋은 갈매기들이 냉큼 날아와 먹이를 입에 문다. 한창 변신 중인 해수욕장 뒤로는 호텔 등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부산의 바다 하면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상전벽해의 아이콘이 된 해운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 부산에 놀러온 여행객들로 겨울바다가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한편에는 빼곡한 고층빌딩이 화려한 대도시의 면모를 자랑하지만 해변 모래사장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한가로운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 해운대에는 공사 중인 인근 새 아파트를 홍보하는 아주머니가 “모델하우스를 보고 가라”며 이른 아침부터 전단지를 돌린다. 홍콩을 닮아가는 해운대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 좋다. 달맞이언덕 아래 자리잡은 ‘미포끝집’은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한 이름난 횟집이다. 야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몰린다.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린시티 쪽 형형색색의 빌딩 조명과 밝게 빛을 내는 광안대교가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바다 전망을 실컷 즐겼다면 바닷속 여행을 떠나 봐도 좋다.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뒤에 위치한 ‘씨라이프 부산아쿠아리움’에는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250종 1만여 마리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열대우림, 심해, 체험존 등 테마별로 꾸며진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면서 신기한 해양생물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카스펭귄, 작은발톱수달 등 귀여운 동물들 앞에서는 아이들이 떠날 줄 모른다. 3000t 메인수조에 투명보트를 타고 들어가 상어를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해운대는 해수온천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온천이 영업 중인데 그중 원조는 1935년 문을 연 ‘할매탕’이다. 류머티즘·관절염·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할머니들이 유독 많이 찾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낡고 허름한 시설일 것 같지만 2016년 최신 시설로 재개장했다. 특히 독립된 온천탕인 가족탕이 있어 인기다.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할매탕 바로 옆 ‘해운대온천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해운대지만 해운대시장에서는 여전히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좁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시장 골목 안에 ‘친구 아이가’, ‘뭐라카노’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머리 위로 빛을 밝힌다. ‘해운대라꼬 빛축제’ 일환이다. 곰장어, 돼지국밥 등 식사부터 어묵, 튀김 등 간식까지 먹거리들이 즐비한 시장을 그냥 지나치긴 힘들다. 설움이 뒤엉킨 미로…단단히 박제된 추억바다를 마음껏 즐겼다면 이제 부산 골목의 매력을 느껴볼 차례다. 국제시장에서 보수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책방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보수동책방골목이 나온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씨 부부가 현재 중구 보수동사거리 입구에 ‘보문서점’을 연 것이 시초다. 손씨 부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그 시절 천막교실로 향하던 많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된 이곳에 다른 피란민들도 하나씩 비슷한 서점을 열면서 책방골목으로 거듭났다. 골목 중간 지점에는 책을 한아름 품에 안은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1970년대 70여 점포가 성행했던 골목의 상징이다. 전성기 때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여전히 천천히 책방들을 둘러보면서 헌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부산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골목 한편에 자리잡은 ‘우진스낵’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 온 분식집이다. 지금도 처음 문을 연 사장님이 온종일 고로케와 도넛을 튀겨낸다. 부담 없는 가격에 사먹는 ‘추억의 맛’은 빛바랜 사진 같은 책방골목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책방골목 사이로 난 더 좁은 골목의 오르막 계단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 본다. 수십 계단을 올라도 다시 그만큼의 계단이 남아 있다. 낮고 작은 계단이지만 개수 때문에 만만찮다. 계단을 다 오르면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다시 계단이 나온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따뜻한 낮이라 계단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다 보니 땀까지 맺힌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야 한다. 행정구역상 대청동인 비탈진 동네에는 주차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집들이 많다. 지형을 이용한 공간 활용이 눈길을 끈다. 알록달록한 공영주차장 건물 옆으로 난 60여 계단을 또 오르니 전망대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너머 남항대교, 부산항 뒤 부산항대교 등이 내려다보인다. 여행자들이 찾아도 좋을 전망대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더 인기인 것 같다. 전망대 벤치에 둥그렇게 앉은 할머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공영주차장 전망대에서 영주동 방향으로 난 산동네 주택가 골목에는 예쁜20여점이 자칫 우울할 수 있는 골목 곳곳에 산뜻한 색을 더한다. 고래, 사슴, 호랑이가 뛰놀고 꽃이 만발한 골목 사이로 동네 고양이가 햇볕을 쬐며 한가롭게 뒹군다. 주택가 아담한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길 중간쯤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관광용 모노레일이 아니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지역 주민들에게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무작정 부산의 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지만 부산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칠 사소한 것도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설된 건물은 그 자체가 역사적 건축물이다. 6·25 때는 미국대사관으로 쓰였고 전쟁 후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활용됐다. 1999년 한국 정부에 반환됐고 이후 부산시가 인수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876년 근대 개항부터 시작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중심으로 부산의 근대사가 사진, 지도, 책자 등과 함께 흥미롭게 전시돼 있다. 옛 개항장 시가지의 가구점, 과자점, 미곡취인소 등 일본식 건물도 재현돼 있다. 관람은 무료다.부산역 앞 초량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텍사스거리도 이색적인 풍경을 더해 주는 골목이다. 텍사스거리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과거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가였다. 한때는 청소년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고 호황을 누렸지만 현재는 쇠락한 모습이 뚜렷하다. 1990년대부터 교역을 위해 온 러시아인들의 방문과 거주가 늘었고 지금은 텍사스거리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러시아어 간판이 빼곡하다. 이런 변화는 이어진 차이나타운에서도 발견된다. 300m 거리 양옆으로 홍등이 쭉 매달려 있는 거리는 빨갛게 빛을 내는 등불과 노란색 불빛 간판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항우와 우희 동상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고 삼국지 벽화가 길게 이어져 있다. 중국 상점·음식점 사이사이로 러시아어 간판들도 보인다. 러시아어로 빨갛고 노랗게 칠해져 있는 게 재미있다.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먹는 콩국과 밀가루반죽튀김 등으로 유명한 오래된 중국집들 사이로 러시아의 보르시(수프), 샤슬릭(꼬치), 빵과 케이크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국제적인 거리의 느낌을 준다.최근 부산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골목으로는 서면 옆 동네인 전포동의 전포카페거리가 있다. 예전에 철공소 등이 밀집돼 있던 동네에 개성 있는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10년 전쯤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대에 300곳가량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부산지하철 2호선 전포역 7번 출구 부근에는 지난해 6월 ‘부산커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김동규(41)씨가 7년 전부터 모은 커피 관련 골동품 420여점이 전시돼 있다. 1850년에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대형 커피분쇄기를 비롯해 각국의 분쇄기, 드립머신, 주전자와 커피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가 없고 커피 판매도 하지 않는다. 김 관장은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거리가 상업화되고 있다”며 “전포카페거리의 특색을 지키고 싶어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다면 기존 카페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전리단길’을 추천한다. 부산진소방서 뒤로 난 골목들에는 전포카페거리가 처음 생길 때의 분위기가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인트 냄새가 나고 철을 깎는 쇳소리가 울리는 골목에는 예쁜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이 다소곳이 자리잡았다. 그 사이로 들어선 인문학 서점과 사진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작은 가죽공방, 목공소, 은세공 가게에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글 사진 부산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잘 곳 :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이 지난달 해운대에 문을 열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셀렉트 서비스 브랜드로 지난해 4월 서울 영등포에 이은 두 번째 오픈이다. 지하 2층, 지상 22층 건물에 총 225개 객실이 있다. 23㎡ 크기의 스탠다드룸으로 구성됐다. 10만원 이하의 가격대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풀서비스 대신 필요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작지만 알찬 피트니스센터, 코인세탁실 등이 구비돼 있다. 2호선 해운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바닷가에서 3분 거리로 주변 관광지를 걸어다닐 수 있는 입지가 최대 장점이다.
  • 행안부 3·1운동·임정 수립 100주년 공모…강북구, 서울 자치구 중 유일하게 선정

    서울 강북구가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공모에 선정돼 특별교부세 2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서울시 자치구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강북구는 다음달부터 오는 11월까지 다양한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강북구는 ‘지난 100년 그리고 앞으로의 100년’을 주제로 치러질 3·1운동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먼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모전을 위해 UCC 영상과 캘리그래피 작품을 다음달 8일까지 접수한다. 3·1운동의 발상지인 우이동 봉황각에는 약 380m에 이르는 타일형 벽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강북구에선 지난해 4월부터 보수·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9월부터 11월까지 강북구 지역 초등학교 14곳을 대상으로 역사·예절 교육도 한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면서 “대한민국과 강북구의 지난 100년, 그리고 앞으로 100년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91억 9263만 1770번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91억 9263만 1770번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바위를 긁어 날짜를 표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 며칠이더라? 지금 몇 시지? 하는 질문을 늘 달고 다니는 우리는 항상 시간을 궁금해한다. 날짜를 알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존재가 인간이다.시간을 안다는 것은 사실 인류생존의 기본조건이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눈물겨운 적응 과정을 거치던 존재였던 연약한 초기 인류에게 머리 위를 빙빙 도는 콘도르를 보고 동물 사체의 위치를 찾아낸 그 순간부터 하이에나가 들이닥치기 전 한 조각의 고기라도 더 뜯어내어 도망치기까지의 시간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온갖 눈칫밥을 먹어가며 근근이 살아남아 석기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사냥하며 서서히 뇌의 크기를 키워나가던 인류는 언제부턴가 여러 번 달이 찼다 기울면 들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에 맞춰 돌창촉을 다듬고 깊은 함정을 파야 했다.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그때를 알아야만 했다. 그때가 언제일까. 그때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기록해야 했다. 최초의 시계는 아마도 특별한 도구가 없어도 시간을 알 수 있었던 해시계였을 것이다. 발 딛고 살던 지구 자체가 시계였던 셈인데 몇 시 몇 분이 아니라 대략적인 때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석영 결정이 3만 2768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라고 하던 때도 지나 세슘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양자 진동하는 시간을 1초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대단한 과학의 시대다. 오늘날로 치면 달력 같은 유물이 등장한 때는 대개 3만 년을 전후한 후기 구석기시대로 알려져 있다. 손바닥만 한 뼛조각 등에 이상한 점들을 찍은 유물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는데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점들이 달의 운행을 표시하는 달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이 시기의 동굴벽화에 털갈이 시기 들소의 특징을 정확히 묘사한 그림들도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확실히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언제나 시간은 우리 인류에게 삶 자체와 같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흘러만 간다.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수백만 년 전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나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만 갔다. 우리에게 시간은 유형이면서도 무형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떤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어떤 때는 느리게 가는 것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고 한다. 느리게 가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하는 시간은 마음의 시간이었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형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늘 똑같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 현재 미래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모두 현재다. 과거는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며, 미래는 우리의 기대와 전망 속에서 존재한다’고 했다. 유형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지만 무형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라니 참 멋진 말이다. 2019년 새해는 즐거운 현재가 이어지길 소망한다.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91억 9263만 1770번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91억 9263만 1770번

    감옥에 갇힌 죄수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언제든지 벽이나 바위를 긁어 날짜를 표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 며칠이더라? 지금 몇 시지? 하는 질문을 늘 달고 다니는 게 요즘 현대인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항상 시간을 궁금해한다. 날짜를 알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시간을 안다는 것은 사실 인류생존의 기본조건이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눈물겨운 적응과정을 거치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가여운 존재였던 초기 인류에게 머리 위를 빙빙 도는 콘도르를 보고 동물 사체의 위치를 찾아낸 그 순간부터 하이에나가 들이닥치기 전 한 조각의 고기라도 뜯어내어 도망치기까지의 시간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자가 사냥 후 지친 틈새 시간을 노려 온갖 눈칫밥을 먹어가며 근근이 살아남아 석기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사냥하며 서서히 뇌의 크기를 키워나가던 인류는 언제부턴가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아침이 오면 따뜻한 바람이 불고 여러 번 달이 찼다 기울면 들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알아야만 했다. 그날에 맞춰 돌창촉을 다듬고 깊은 함정을 파야 했다. 눈칫밥 먹을 필요 없이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그때를 알아야만 했다. 그때가 언제일까? 그때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기록해야 했다. 최초의 시계는 아마도 특별한 도구가 없어도 시간을 알 수 있었던 해시계였을 것이다. 발 딛고 살던 지구 자체가 시계였던 셈인데 몇시 몇 분이 아니라 대략적인 때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석영 결정이 3만 2768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라고 하던 때도 지나 세슘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양자 진동하는 시간을 1초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로 대단한 과학의 시대다.오늘날로 치면 달력 같은 유물이 등장한 때는 대개 3만 년을 전후한 후기구석기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손바닥만 한 뼛조각 등에 이상한 점들을 찍은 유물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는데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점들이 달의 운행을 표시하는 달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이 시기의 동굴벽화에 털갈이 시기 들소의 특징을 정확히 묘사한 그림들도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확실히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사냥감을 찾아 이동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시간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생존의 기술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시간은 우리 인류에게 삶 자체와 같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제나 흘러만 간다.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수백만 년 전 인류가 두발로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더 멀게는 지구의 탄생 그리고 우주의 폭발서부터 언제나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만 갔다. 우리에게 시간은 유형이면서도 무형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잠자리를 찾아가는 소년이 노인에게 ‘할아버진 제 자명종이예요’라고 말하자 노인이 ‘내게는 나이가 자명종이지, 나이 든 사람은 왜 일찍 깨는 걸까? 하루를 그나마 좀 더 길게 보내려고? 저는 잘 몰라요? 하는 장면은 참 정겹다. 어떤 때는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하는 궁금증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고 한다. 느리게 가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하는 시간은 마음의 시간이었다는 결론이 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형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늘 똑같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 현재 미래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모두 현재다. 과거는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며, 미래는 우리의 기대와 전망 속에서 존재한다’고 했다. 유형의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이지만 무형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라니 참 멋진 말이다. 2019년 기해년 새해는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즐거운 현재가 되길 소망해 본다. 글: 전곡선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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