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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 국제인형극제 61개극단 참가

    ◎국내 최대규모 축제… 오늘부터 18일까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를 꿈꾸는 춘천의 여름 이벤트인 인형극제가 오늘부터 18일까지 시내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제9회째인 이번 춘천인형극제의 참가자는 국내외에서 총 570여명.역대 최대이자 국내 최대규모다. 이번 인형극제를 이루는 세가지 축은 인형극공연과 축제공연,그리고 부대행사. 본행사인 인형극 공연에는 28개 전문극단과 18개 학생극단 등 국내 54개 극단과 독일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등 6개국 7개 극단이 참여,경연을 벌인다.이가운데 스위스 훼르베트리프 극단은 국내에서도 많이 공연돼온 유명동화 ‘장화신은 고양이’를 선보이며 일본 푸크극단은 다양한 인형극을 집합한 인형 버라이어티쇼를 보여준다. 올해 처음 도입한 축제행사는 국악을 주제로 삼아 15일 김덕수패의 사물놀이,16일 안숙선의 판소리 춘향가,17일 이은관의 배뱅이굿 등으로 흥을 돋운다.이밖에 시민과 함께 하는 시가퍼레이드,전야제와 워크숍,책과 인형 전시,거리공연,동요제,벽화그리기와 종이접기 강습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곁들여진다. 봄의 마임축제와 만화축제에 이어 열리는 이번 인형극제가 끝나면 가을의 북 축제,겨울의 눈·얼음축제 등 국제적 예술도시를 지향하는 춘천의 문화축제는 계속 이어진다.
  • 입추와 칠석(외언내언)

    ‘칠월이라 맹추되니 입추·처서절기로다.…늦더위 있다한들 절서야 속일소냐.비 밑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가지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염천의 맹위가 꺾이고 입추의 바람이 가을을 몰아오고 있음을 농가월령가는 알려준다. 오늘이 입추다.엊그제 양동이로 퍼붓듯이 거셌던 장대비때문인지 새벽엔 선들바람에다 매미소리도 쇠잔해진 기미다.늦더위가 더 남았다고는 하지만 9일은 칠석에다 이젠 누가 뭐래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시기적으로 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데서 견우직녀의 설화가 생겨났다.중국에서는 후한때 만든 효당산 석실의 ‘삼족오도’에 견우·직녀성이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평양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견우직녀성이 그려져 있다. 1년에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마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거나 만나고 헤어질때 우는 눈물을 칠석우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대체로 7월이면 비가 잦은 탓에 집안 구석구석에 습기가 차기 마련이다.옷가지며 서책을 습기찬 채로 두었다가 썩거나 곰팡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햇빛이 반짝이는 날을 골라 내다 말려야 한다.이를 ‘쇄서포의’라고 해서 농가월령가의 7월령은 ‘장마를 겪었으니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말리라’고 조언한다. 또 칠석날 밤에는 부녀자들이 견우·직녀성을 향해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고 재주를 비는 걸교의 풍습이 있었다.‘천손운금’은 ‘직녀가 짜놓은 구름같은 비단’이란 뜻의 은하수를 지칭한 것이고 천손은 직녀의 다른 이름이다. 가을은 차고 이지적이면서 그속에 분화산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다.그리고 그 열정이 이지를 어기고 폭발하거나 차가운 이지의 내면에 싸늘하게 숨어버린다.어제 새벽 KAL기 괌추락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불상사였다.상서롭지 못한 잡다한 여름을 씻고 엄숙한 자연의 절후에 옷깃을 여며야겠다.
  • 이집트문명 탐험(활용 인터넷/아동교육 사이트:18)

    ◎피라미드 등 색칠하기 컨테스트/오리엔트문명 근원 절로 깨우쳐 소설 ‘람세스’가 인기를 끌고있는 때에 마침 고대 이집트 문명전이 열려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이번 주에는 찬란한 오리엔트 문명의 한 중심이었던 이집트의 역사에 관해 색칠놀이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Color me Egypt just for Kids(http://interoz.com/egypt/kids/)사이트를 찾아가 보자. 이집트 문명의 태동과정과 역사적 유물에 대한 자료와 함께 색칠그림 컨테스트가 어린이들을 기다리고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하면 스핑크스,파라오,피라미드,람세스대왕 등 간단한 설명이 붙은 그림들이 보이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마우스로 누르면 색칠하지 않은 밑그림이 나타난다. 밑그림은 GIF방식의 그래픽 파일이므로 온라인 상태에서 프린트하거나,그림위로 마우스 커서를 옮겨가 오른쪽 단추를 눌러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다. 홈페이지의 맨 아래부분에 hear라고 쓰인 글자를 누르면 모든 밑그림이 하나로 압축된 파일(colorme.zip)로 들어 있어한꺼번에 전송받을수 있다.이 경우에는 그래픽 프로그램외에 압축을 푸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통신망의 공개자료실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수 있다. 색칠한 작품을 정해진 주소로 보내면 6세이하와 7∼12세까지의 두그룹으로 나눠 각각 1,2,3위를 뽑아 1위 입상자에게는 트로피와 T셔츠를 2,3위 입상자에겐 T셔츠를 준다.갤러리에는 이달의 입상작이 전시되어 있으며,출품작 또한 별도로 매주마다 새로 도착한 작품으로 교체해 전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5천년전인 기원전 2천년경에 시작되어 3천여년간 존재했던 이집트문명의 신비로운 세계를 탐험하려면A History of Egypt for Kids 페이지를 찾아가 보자. 문명의 발원지인 나일강과 통치자였던 파라오,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등에 대한 사진자료와 함께 문명의 탄생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이 실려있다.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된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크,이시스신(저승을 지배하며 곡물의 풍요를 관장하는 오시리스신의 아내로 죽은 자의 내장을 지키는 여신)의 관을 쓰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마지막 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아들 케사리온의 모습이 새겨진 벽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46개가 발견되었으며,제일 큰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것으로 각각 2.5t이나 되는 돌을 230만개나 쌓아올려 146m의 높이로 만들었다는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 발해사 재인식(송화강 5천리:31)

    ◎92년 대규모 ‘무덤떼’발굴 연구 본격화/무기류 등 2천여점 출토/중 10대 고고발굴로 평가 중국에서 발해사 연구는 사실상 도외시 되어왔다.그런데 90년대 들어 시각이 바뀌어 발해사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에 걸쳐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칠색송어장 부근에서 발굴한 발해무덤떼가 그 계기를 이루었다.국가 관계기관으로부터 1995년 중국 10대 고고발굴로 평가된 이 무덤떼는 이른바 칠색송어장무덤군으로 호칭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용암언덕 모래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돌무덤을 비롯,벽돌무덤,돌과 벽돌을 함께 써서 축조한 무덤 등 형태도 다양했다.4만㎡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발굴한 유적은 323기의 무덤과 7기의 제단으로 되어있다.생활용품과 무기류,말갖춤,장신구를 포함한 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323기·제단 7기 그러나 관광객들이 쉽사리 대할수 없는 유물이다.칠색송어장무덤군 출토유물 뿐아니라 중국에서 다른 발해유물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관광객들에게 개방한 유물이있다면 발해진 중앙대가에 자리한 흥륭사 경내의 석조유물 정도가 고작이었다.남대묘라고도 부르는 흥륭사 용암돌담을 돌아 큰 대문옆 쪽문을 들어서면 가지가 휘휘 늘어진 고목이 길손을 맞았다.300년을 자랐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는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그 나무밑에서 쉬노라니 큰 돌거북 대석구가 첫눈에 들어왔다.지난 1976년 8월12일 발해진 발해소학교 울안 1.2m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데,이 절로 옮겨온 것이다.높이 58㎝,길이 1m의 돌거북은 높이 32㎝,길이 1.36m의 대석에 올라앉았다.돌거북은 희한하게도 용머리와 용발을 했다.그러니까 용두용족의 거북인 것이다.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인 돌거북이 왜 용머리와 용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절 맨 뒤쪽에 들어앉은 대웅보전 앞뜰에는 석등탑이 우뚝했다.용암을 쪼아서 만든 석등탑은 높이가 6m에 이르고 있다.기단은 4개의 큰 돌을 이어서 붙여 놓았다.그리고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다.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이 승려를 서천에 보내 불경을 구한 뒤에 세웠다는 석등탑은 애절한 전설도 간직했다.문왕대에 만든 걸작의 대석불도 이 절에 있다.옛 기록을 보면 석불의 높이는 3길이었다.그런데 건륭연간인 960∼963년 사이에 불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지금은 복원되어 1963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모셔놓았다.이 석불 역시 전설을 안고 있다.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하나가 살았다.하루는 고기를 싣고가는 수레에 웬 스님이 올라탔다.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스님이 오간데가 없었다.고기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사라졌던 지점에 이르렀을때 근엄한 여래석불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바로 오늘날 흥륭사의 대석불이라는 이야기다.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석불앞에 넙죽 엎드렸다.이는 석불에 얽힌 전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물고기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길에 여래석불을 만났던 어부는 그 자리에 넙죽이 엎드려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발해유적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그러나 길림성 화룡시 정효공주묘와 같은 중요 고분벽화는 감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유적보호를 위해 일반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이와는 달리 누구라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바위그림이 흑룡강성 해림시 임구현 고려정촌에 있다. 고려정촌은 목단강시에서 75㎞가 떨어졌다.본래는 조선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조선족이 모두 마을을 떠났다.그래서 한족 70가구가 사는 한족 마을이 되었다.조선족과 큰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려정촌이라 불렀던 마을이다.하지만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고 우물마저 메워버렸으니,고려정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무색하게 되었다. ○흥륭사 대석불 전설 역사는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옛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그래서 역사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만,읽고 가꾸는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한다는 집념의 사람들이 있다.흑룡강성 벌리현 향수향 행선촌 최금산선생과 임승환선생이 그들이다.두 분은 3년여에 걸쳐 대하역사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을 합작으로 탈고했다.조사비 등 10여만원의 돈을 들인 이 대하소설은 10부작으로 2백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최선생은 경박호변 남호두가고향이고 임선생은 상경용천부가 고향이니까 모두 발해진 태생이라 할 수 있다.최선생은 대흥구 중학교를 다닐때 학자였던 하숙집 주인때문에 발해와 인연을 맺었다.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2년동안이나 들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새로웠다는 최선생은 ‘발해연의’를 100회나 쓴 적이 있다.그리고 임선생은 조선족과 만족,몽골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속에 남아있는 발해설화와 신화 80여편을 수집 정리한데 이어 ‘발해전’120회를 썼다. ○대하소설 합작 탈고 그들은 발해라는 고대왕국을 소재로 이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쉽사리 합작을 약속했다.두 분의 대하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은 고왕 대조영이 698년 오늘의 요령성 조양땅인 영주에서 나라를 세워 926년 망하기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그렸다.오늘의 중국 동북3성은 물론,러시아의 연해주와 한반도 동북부를 잇는 영토확장을 위해 숨가삐 달린 발해의 영욕이 담겨있다.자그마치 300명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하소설은 발해의 정치,군사,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고구려 벽화」 주제 남북 첫 학술회의

    ◎「문화유산의 해」 맞아 새달20일부터 일서 개최/생활풍속 등 토의… 중·일 전문학자 6명도 참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남북학자들이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제로 하는 학술회의를 오는 7월 일본에서 개최한다.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이사장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일본 학습원대학 동양문화연구소,재일 조선역사고고학협회(조총련 관련단체)와 공동으로 다음달 20,21일 이틀간 일본 동경 학습원대학 창립백주년기념회관에서 개최하는 학술회의에 북한학자 8명이 참가하는 것.남북한의 학자들이 문화재 관련 학술회의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이사장은 『남한의 문화재관리국격인 북한의 문화보존연구소 소속 주영헌,장상열과 사회과학원의 이준걸,역사연구소의 손영종 등 4명의 중진학자가 참가하며 나머지 4명의 참가자 명단도 곧 통보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광개토대왕비 학술대회에 북한이 참가를 거절한 데는 개최지가 남한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이번에는 일본에서 회의를 열기로 하고 조선역사고고학협회를 통해 북한학자들의 참가를 요청해 역사적인 남북회의가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요발표 및 토의주제는 ▲고구려벽화를 통해 본 생활풍속·복식·종교·건축 ▲고구려벽화와 일본·신라·백제고분벽화의 비교연구 ▲고구려고분벽화의 석실구조·재료·기법연구 ▲고구려벽화의 편년과 내용 변천연구 등이다. 우리측 참석자는 김일권(서울대교수),이애주(서울대교수),서영수(단국대교수),김미자(서울여대교수),전호태(울산대교수),이기동(동국대교수),이은창(대전보건전문대교수),안병찬(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씨 등 8명이다. 이밖에 중국측과 일본측에서도 전문학자 6명이 회의에 참가한다.
  • 한국적 분위기속 자연의 경이·생명력/허기태씨 개인전

    ◎25일까지 서울갤러리 주로 자연을 오브제로 택해 한국의 특성을 강하게 화폭에 담아온 작가 허기태씨가 개인전을 지난 20일부터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내 서울갤러리(721­5968)에서 갖고 있다. 허씨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한국적인 분위기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작가.한국의 민화나 고대 원시인들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조형요소와 색채를 화면에 등장시켜 원천적인 생명력을 강하게 이끌어내는 분위기의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혹은 문명비판을 암시하는 분위기의 작품들이 주조를 이루는데 캔버스위에 한지와 유화의 속성을 살려 작업한,「꽃의 사색」 「심상의 미」 「해돋이」 「달의 미학」 등이 모두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25일까지.
  • 청소년의 달 5월/초중고 대학생을 위한 읽을만한 책 69종

    ◎간행물윤리위·서울YMCA 선정/초중고생­백범일지·삼국유사·미래과학총서 등/대학생·일반­선택·위험사회·벤처기업… 할수있다 청소년의 달 5월을 앞두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와 서울YWCA가 청소년·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좋은 책을 선정,최근 발표했다.간행물윤리위 선정도서는 35종으로 독자층을 초·중·고·대학 등으로 구분했으며,서울YWCA가 추천한 책 일반도서 24종,만화 10종은 모두 어린이용이다(괄호안은 출판사 이름). ▷간행물윤리위 추천◁ ◇초등학생 ▲가위 바위 보 ▲달님을 사랑한 굴뚝새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 ▲나니아 나라 이야기(전7권) ▲백범일지(예림당) ▲부엉이와 보름달 ◇초·중·고생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중·고생 ▲미래과학총서(전12권) ▲중고생을 위한 한형조선생의 고사성어 강의 ◇중·고·대생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서해문집) ▲삼국유사(솔출판사) ▲이야기 그리스철학사(전2권) ▲서양보다 앞선 동양문화 91가지 ◇고·대학생 ▲람세스(3권) ▲파우스트(민음사)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명문명답으로 읽는 조선 과거실록 ▲서양문명의 역사(4권)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2권) ▲19세기 일본의 근대화 ▲31가지 테마가 있는 경제여행 ▲부자나라,가난한 국민 일본 ▲조선미의 탐구자들 ▲20인의 한국 현대 미술가(3권) ▲우리 영화의 미학 ▲한국의 자연과 인간 ▲숲속의 문화 문화 속의 숲 ▲다시 찾은 빠리 수첩 ◇대학생 ▲선택 ▲이아고와 카산드라 ▲벤처기업,나도 할 수 있다 ▲위험사회 ▲직업윤리와 한국인의 가치관 ▲윤리질서의 융합 ▷YECA 추천◁ ◇일반도서 ▲쉿,실험중이에요 ▲죠토,벽화 속에서 살아 있는 화가 ▲그곳에 다녀오면 공부할 맛이 난다 ▲어린이를 살리는 글쓰기 ▲동화로 엮어가는 쉬운 글쓰기 ▲최열아저씨의 우리환경 이야기 ▲지구별은 환경실험실 ▲개구장이 산복이▲365일 동화(전8권) ▲녹색꼬리 도마뱀 ▲작은 책방 ▲휠체어를 타는 친구 ▲표범무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빛을 가진 아이들 ▲말하는 남생이 ▲모래밭 학교 빵호돌 ▲성난 수염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검둥이를찾아서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 ▲못난이 악마 야코 ▲기역이와 니은이의 일기 ▲다섯 아빠 이야기 ▲은빛날개를 단 자전거 ◇만화 ▲내동생 꺼실이랑 우리오빠 꺼벙이 ▲달래하고 나하고 ▲돌아온 머털도사 ▲뛰어야 벼룩이지 ▲말썽학년 골치반 맹딴죽 ▲엄마는 요술쟁이 2부 ▲오추매의 사춘기 일기 ▲요정 핑크 ▲우리식구 일곱 ▲아버지 떡 드이소
  • 재외작가 「고국 봄나들이전」 러시

    ◎곽덕준·김기린씨 등 미·일·불서도 높이 평가/시장개방 앞둔 국내 미술계 새 활력소 기대 봄 화랑가에 해외거주 우리 작가들의 전시가 풍성하다. 동아갤러리가 재일동포 작가 곽덕준 초대전(12일까지)을 열고 있고 가인화랑과 유나화랑이 각각 재불작가 김기린전(26일까지)과 유선태전(17일까지)을 가져 미술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와 함께 박여숙화랑이 8∼17일 재불작가 최선희씨를 초대하고 63갤러리도 곽훈·민병옥씨 등 재미작가 2인전을 15∼30일 열 계획이다. 최근 국내 화랑들이 이처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해외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우리 작가들을 앞다투어 소개하는 것은 올해 본격적인 미술시장 개방에 따른 내실다지기 대안의 하나로 풀이되고 있다.즉 외국화랑과 작가들의 국내진출이 예상되는 가운데 역량있는 우리 작가들을 미리 선보여 고객의 관심을 모으자는 것으로 침체된 미술시장에 작은 활력소가 되고있고 미술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특히 우리 젊은 작가들의 해외진출이 가속화하는 시점에서 거꾸로 해외무대에서 인정받는 우리 작가들을 통해 국내 미술계 흐름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인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열리고 있거나 선보일 이들 전시는 대부분 회화와 설치,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서 동·서양의 절충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의 실험적인 형태란 점이 특징.가인화랑의 김기린과 유나화랑의 유선태,박여숙화랑의 최선희씨가 동양적 분위기를 토대로 서양미술의 변형적인 회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 동아갤러리의 곽덕준과 민병옥은 한국에서 겪은 체험을 다양한 조형형태와 회화로 살려내는 작가들이다. 한국 현대미술중 모노크롬(단색회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기린 화백(61)의 전시는 10년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지난 70년대 모노크롬 세계를 보여주는 자리.30여년간 파리에서 작업한 다양한 형태의 모노크롬중 흑백 대비로 인간 삶의 시간성을 진하게 전하는 작품을 보여준다.유선태씨의 경우 「회화를 통한 명상」이라는 평이 있듯이 원초적 삶의 형태와 자연성을 추상적인 분위기로 전하는 회화.「귀향」「귀환」등 작품제목이 드러내듯 향수와 시간의 흐름을 은은한 색채와 간결한 구도로 처리한 작품들이다.최선희씨의 작품은 대부분 바다를 등장시켜 과거 회상을 다루고 있는데 캐나다를 거쳐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의 궤적을 물속에 서있는 사람의 다리와 팔 등 인체부분으로 나타내 비교적 알기 쉽게 처리한 근작들이다. 이에 비해 곽덕준과 곽훈 민병옥씨는 상당히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들.곽덕준씨의 경우 지난 70년대 이후 평면 입체 사진 판화 퍼포먼스 등을 섭렵하면서 일본화단에 충격을 던지고 있는 작가.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품인 60년대 회화부터 「풍화」「사회­벽화」 등 연작들을 두루 선보이면서 작품세계를 요약,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곽훈 민병옥씨는 한국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뿌리를 다양한 작품으로 녹여내는 재미작가들.이번 전시는 「침묵속의 울림」이라는 주제대로 한국의 토양색이 진하게 담겨있는 곽훈씨의 동서양 현대미술 접목과 린넨캔버스에 대담하면서도 즉흥적인 선긋기 작업으로 표현되는 민병옥씨의 독특한작업이 어우러질 것으로 기대된다.
  • 독서 활약 문혜정씨 귀국전/8∼17일… 유화·사진 등 대표작

    독일 화단에서 9년간 활동하다 최근 귀국한 중견작가 문혜정씨(43)가 귀국전을 8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화랑(544­8481)에서 갖는다. 문씨는 독일 국립조형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벽화제작과정을 배워 독일철강연맹공모전과 바덴뷜텐버그 국회청년작가공모전에서 수상,바덴뷜텐버그주가 유망 신예작가에게 주는 예술기금을 받는 등 현지에서 주목받은 작가.독일 유학중 광목천과 포장끈을 이용한 오브제 작업부터 시작해 유화와 사진작업을 병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수년간 작업한 유화 사진 드로잉 대표작을 선보이는데 작가의 내면적인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유화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드로잉,오브제작업을 촬영해 이미지를 변형한 사진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 페루 수도 리마(세계 문화유산 순례:28)

    ◎침략자 유적에 가려 잉카의 영화는 전설로/정복자에 유린된 찬란한 「황금의 도시」/태양의 제전에는 이방인유적 번듯이/산마르틴 광장에는 유럽·남미문명이 함께 호흡 중남미 광대한 대륙에는 마야문명 말고 또다른 신비의 잉카(Inca)문명이 있다.그 문명의 중심지 페루로 떠나기에 앞서,마야문명을 뒤로 한다는 아쉬움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술 데킬라 몇잔을 마셨다.지도로 본 리마는 멕시코시티에서 그리 멀지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멕시코시티를 떠나 페루의 수도이기도한 리마까지는 비행기로만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밤늦은 시각리마에 닿았다.경제사정이 어렵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숙소로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그러나 리마라는 도시 자체는 날이 밝은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리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라서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그런만큼 많은 유적들을 간직했거니와,스페인 식민지시절(1532년∼1824년)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리마는 크게 산 마르틴(San Martin)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20세기 들어 개발한 신시가지로 구분됐다.지금은 일종의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지만 구시가지는 한때 리마의 중심지였다.산 마르틴 광장 한가운데는 당당한 모습으로 말위에 올라앉은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와 스페인,오늘의 남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히론 데 라 우니온」(Jiron de la Union)이라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통했다.약 1㎞에 이르는 이 길 주변에는 각종 상가건물이 빼곡히 들어섰다.마치 서울 명동거리가 연상됐다.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통령궁·시청 청사 등이 관아가를 이루었고,바실리아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통령궁은 식민지시대 건축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1532년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했던 곳이기도 했다.대통령궁은 항상 걔방돼 관광객들이 늘 붐볐다. 입구를 지나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섰다.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 양쪽으로 남미 해방의영웅 볼리바르 장군과 산 마르틴 장군의 흉상이 서있다.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독립운동을 일으켜 남미대륙 전체에 해방의 기쁨을 안긴 인물들이다.그리고 그 아래 로비 대리석 바닥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 문양이 각인돼 있었다.300년에 걸친 속박의 사슬을 끊어냈던 해방 당시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왼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갔다.중간쯤에 170여년전 페루 최초의 대통령이 타던 프랑스제 마차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진열됐다.그리고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주위를 빙둘러 이어졌다.1535년 스페인 특산물 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벽화가 있는 접견대기실,남미 최고품인 니카라과산 나무 장식장 등으로 치장한 기자회견실도 그 주위에 있다.기자회견실에는 잉카제국 마지막 왕 망코의 둘째아들로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가브리엘 곤도르칸키 케초아의 대형초상화가 걸렸다.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장엄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몄다는 귀빈대기실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호화스러웠다. 대통령궁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매일 상오 11시30분이면 푸른색과 흰색 위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먼저 등장했다.어린이들이 전통민속춤을 추고나면 위병교대식이 진행됐다.그 의식은 근엄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페루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페루 역시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성당 건축물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대통령궁 왼쪽에 자리잡은 바실리아 성당도 그중 하나다.1535년에 시공돼 남미 최초·최대의 성당이기도한 바실리아 성당은 1586년과 1746년·1940년 등 세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리마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이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채 유리관 안에 전시됐다.피사로는 1546년 자신의 심복의 손에 죽음을 맞았는데,미라 옆에는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줌의 흙을 보관했다.정복자의 수구초심을 읽으면서 흥망성쇠를 안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는듯했다. 대통령궁에서 3블럭 정도 동쪽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성당과 부속 수도원 역시 장관을 연출했다.1620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이 성당은,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성당 전면을 장식한 돌조각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은 유명했다.1788년에 지하 4층 규모로 만든 카타콤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식민지시대 유적들에 가려 잉카의 흔적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황금박물관」을 맨 먼저 들렀다.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마음속에 들어왔다.태양이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이 흘린 눈물을 의미했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BC) 4세기에서 기원(AD)2세기까지 융성했던 비쿠스 문명에 뿌리를 두었다.그후 차빈·모체·나스카·와리·치무를 거쳐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짝 피어났다.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반지·코걸이·귀걸이·옷핀 등 장신구와 왕관·악기 등이 모두 황금제품이다.심지어 우의까지 금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황금을 다룬 솜씨인 연금술은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모양이다.그러나 풍부한 황금은 유럽 정복자들을 유혹했고,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여행가이드◁ 페루의 화폐단위는 솔(Sol)로 미화 1달러당 2.2솔 정도다.시내에 크고작은 숙박시설이 많으나,안전을 고려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좋다. 세비체·로모살타타·안티쿠초 등 페루 전통음식은 15달러로 조금 비싼 편.그러나 일반식당에서 당일 내놓는 메뉴를 주문하면 3달러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한국식당의 웬만한 음식은 15달러 이상.물론 음료수와 물은 별도 주문이다.팁은 음식값의 10%.리마는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지하철이 없고,출퇴근시간에는 교통난이 심한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30%정도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이다.대통령궁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4∼5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고구려 벽화 도굴 “진상파악”/문체부

    ◎정천 1·2호 고분 외교경로 통해/“타 고분도 상당수 훼손”… 현상파악 안돼/학계 “문화교류 통해 근본대책 세워야” 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은 28일 최근 중국 현지주민들의 입을 통해 뒤늦게 드러난 중국 길림성 집안시 장천 1·2호 고분 도굴사건의 진상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문화재관리국은 그동안 고고학계에서 장천 1·2호 고분이 도굴됐다는 소문을 접했으나 중국 당국이 이들 문화유적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유적공개도 꺼려 사실확인이 어려웠다면서 외교경로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무더기로 도굴당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길림성 집안시 장천 1·2호고분은 5세기 중엽∼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지난 70·72년 중국 길림성문물공작대와 집안현문물보관소에 의해 각각 발굴조사된 이후 당대 고구려 사회구성과 정신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주요한 문화재다.1호고분은 행렬도·수렵도·사신도·예불도·씨름도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총체적인 모음형식을 갖추고 있고 2호고분도 「왕」자 도안과 연꽃장식으로 덮여있어 불교와 고구려 장속 및 사회사연구의 실증적 자료가 된다. 중국에는 고구려 고분이 산재해 있으며 이들중 상당수가 심하게 훼손됐는데도 접근이 쉽지않아 훼손 정도와 현상파악이 쉽지 않다는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따라서 학계에서는 한·중 양국의 문화교류를 통해 더이상의 훼손을 막고 학술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형식 이화여대교수는 『이미 지난 94년 한중문화협정 체결로 고고학 등 공동 학술연구의 토대가 마련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교류가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우리 문화재 보호·보존을 위한 근본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고려 천산대렵도 인물상(한국인의 얼굴:98)

    ◎사냥감 찾는 예리한 눈길에 엽사의 투지가… 그림은 빈칸에다 어떤 사물의 형상을 그려넣은 평면의 조형이다.그림을 그릴때는 종이와 천,널판이나 돌같은 평면의 빈칸이 활용되었다.회화라는 말로도 불리는 그림의 역사는 아주 길다.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그림을 그렸다.프랑스 라스코동굴에는 석기인들이 물감으로 그린 동물그림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에 그린 회화다운 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암각화 바위그림이 더러 있을 뿐이다.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그림으로는 사경 껍데기를 치장한 표장 그림조각과 무덤 벽의 그림 고분벽화가 전해오고 있다.「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화공이나 화승의 이야기가 나오지만,그림은 확인할 길은 없다.솔거의 소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고 고려시대의 그림이 흔한 것은 아니다.불화를 제외하면 똑떨어진 그림은 몇점에 불과했다.공민왕(1330∼1374년)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가 그 하나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비단에다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심하게 낡고 군데군데 삭아 없어진 부분이 많아 그림을 뚜렷이 들여다 볼 수 없다.사냥하는 사람들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듯 싶은데,한 사람 얼굴만이 겨우 알아볼 만큼 남아있다. 그림 왼쪽에 배치한 사냥꾼은 엽사로 대우할만한 신분의 사람으로 보인다.검정에 갈색이 감도는 긴 소매의 천릭(천기)을 입었다.아마 공복인 모양이다.말을 거꾸로 탄 자세를 한 엽사는 왼손으로 오른쪽 말고삐를 낚아챘다.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화제 그대로 겹겹이 싸인 산과 골짜기가 보이는 천산만학이 사냥터가 되었다.그래서 엽사의 말 부리는 재주가 날렵할 수밖에 없다. 엽사는 먼 데다 눈길을 주었다.사냥거리를 두루 살피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바로 뜬 눈이 예리했다.검게 웃자란 눈썹때문에 더욱 눈에 힘이 들어갔다.여차하면 옆구리에 찬 전통에서 화살을 뽑아 활에 잴 판이다.정수리 언저리의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려 그러지 않아도 둥근 머리통이 더 둥글게 드러났다.그래도 모자를 쓰지 않아 머리가 시원해 보인다.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는 몰라도 콧수염과 턱수염을 별나게 키웠다. 공민왕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사냥그림인 「음산대렵도」도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 화가 이종상(이세기의 인물탐구:124)

    ◎학·예 두루갖춘 화단의 「선사」/수묵채화서 판화­벽화까지 장르 경계 초월/번뜩이는 직관으로 세밀·대담한 화풍 일궈 일낭은 곧잘 「용광로의 불길같은 정열」에 비유된다. 또는 한치의 빈틈없이 「하고자하는 일을 완벽하게 성취해낸 실천자」이기도 하다. 소설가 최인호는 『한국에 두 사람의 선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 하나는 바둑의 조훈현이고 다른 한사람은 일랑 이종상화백』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지칠줄 모르는 탐구력과 천재성, 여기에 자존심에 비견되는 욕심마저 겸비하고 있다. 나이 26세때 국전추천작가, 36세에 심사위원을 지냈고 「한국회화」라는 명제아래 심원한 수묵담채와 변화무궁한 구성, 세밀한 필치와 단아대담한 설채로 판화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광활하게 석권하고 있다. 전 국립박물관장이며 예술의 안목이 드높던 최순우씨는 「일랑은 추상이니 구상이니 하는 한계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을뿐 아니라 작품의 폭이나 타고난 화재로 보아 그대로 화가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 말은 옳다. 이른바 수묵채색을 통합한 「현대진경」에서는 지금까지의 구투를 활짝 벗고 고압전선주나 터널, 쇠를 녹이고 달구는 노동현장을 등장시켜 박진감있는 결집을 펼치는가 하면 산수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원형상에서는 「돌기와 억제, 확산과 응축, 끊임없는 생성의 열기」로 조화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격정적으로 일구어놓는다. 평론가 오광수는 「이는 필력과 소묘력, 전통과 맥을 연결시키는 지성의 뒷받침없이는 이루어질수 없는 결과이며 견고한 아카데니즘과 다채로운 실험정신에서 구축된 것」임을 찬탄한바 있다. 그리고 「다방면에 걸쳐 일총한 재주를 보이는 탓에 그의 그림에서는 항상 섬광이 빛난다」고 덧붙인다. ○26세 국전추천 작가로 프랑스의 저명한 레스타니도 그의 「질료에 대한 묵시적 동작성은 마그마속에서 녹아내리는 근원적 생동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먹으로 그린 유려한 수묵화와 대지의 소묘, 이런 선묘를 구성해내는 격랑과도 같은 화면은 그가 회화적 질료표현의 대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의 샘물이 마를줄 모르는 이종상」이란 인물은 「드믈게 만나지는 강인한 거인」으로서 「그를 두고 번뜩인다고 표현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대신 의경을 존중하는 원형상의 특징은 현란한 칠보작업에서도 거침없이 나타난다. 그때의 화면은 「중앙으로부터 꽃처럼 피어나는 구조」「마치 분화구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장으로 사방에 흩어지는 형국이다. 굵은 붓자국이 자유로운 선영을 이루는 가운데 그가 창출한 동판유약화는 장엄한 「천지창조」의 선율이 물결치고 작품이 뿜어내는 결연한 함성에 보는이들은 압도당하고야 만다. ○지칠줄 모르는 실험정신 멜방이 달린 진바지를 입고 7백도가 넘는 불가마(로)옆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일랑의 모습은 62년 국전에 출품했던 바로 「작업」의 주인공이며 오늘의 그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경외심으로 응시하게 된다. 동문민의 「만권서를 읽지 않고 만리고행으로 흉중의 진탁을 씻어버리지 않으면 화가가 될수 없다」는 문구에 공감하여 그는 문기와 서권기가 충만한 「화중유시」를 구사해 내었고 화론이 출중한 것도 화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한동안 지필묵을 둘러메고 강산만리를 돌면서 각지역의 산세나 풍광의 특징을 꿰뚫어 한때는 「지리학자」란 별명을 듣기도 했다. 역사의 내구성과 자연의 미래를 농묵으로 그린 「독도」「남산」시리즈들이 그때의 산물이다. 자연을 그릴때도 자연의 외관을 그리지 않고 자연의 내면의 정기에 파고들어 자연스러운 질서와 형태를 마음속으로 읽어낸다. 생명의 원질을 포착한 기운생동은 「정신주의 향상성」과 현실에 감추어진 정신의 실체로써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에 바탕을둔 최근의 「기시리즈」가 이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의 최근의 작품은 더욱 방대하여 세로 9미터 가로 18미터의 포항문화예술회관의 무대막을 제작하는가 하면 그가 빚은 마리아조각상은 금빛의 장미장식과 함께 눈부신 화사의 극치를 과시해 보인다. 후리후리한 키에 강인한 기상이 특징인 일랑은 소탈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사치를 위해서는 넥타이 하나도 사지 않지만 그림과 관계되는 것은 붓한자루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함부로 전시회를 열지 않을뿐 더러 웬만한 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란 어렵다. 그와 절친한 시인 김형영은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미시적 치밀성과 거시적 대담성」으로 요약하고 있다. 「잠잘때도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하나의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 몇날 며칠을 방황하고 모색하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3,4백호 화면을 힘찬 윤필과 비백의 삽필로 일도양단하듯 단숨에 그려나간다.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을 하던 기개와 열정이 넘친다는 점에서 그의 후학들도 「섬모심」을 금치못한다. ○“잠잘때도 그림 그린다” 원예학을 전공한 부친 이간재씨와 현윤옥씨 사이의 아들 형제중 차남,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서울대미대 입학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어려운 고학생활로 대학을 졸업했다. 월전 장우성의 마지막 제자에다 산정 남정에 이은 「학예를 겸전한 화가」로 한학자 홍진표씨가 「큰 물결일수록 널리 퍼진다」는 뜻의 아호 「일낭」을 지어주었다. 이대 미대 출신인 성순득씨와의 사이에 남매, 5년전 차녀를 잃고 순명의 진리를 깨달아 가톨릭에 귀의했다. 눈코뜰새 없이 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언제나 바쁘다. 낙성대와 중계동, 벽제의 벽화연구소와 평창동 자택 등 네군데의 작업장을 돌면서 성격이 서로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란 좀체로 쉽지않다. 자신의 일에 치열하게 매달리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근원이 수화를 두고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는 손끝이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그래서 사람들이 눈이나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보는, 의재필선에 다다르고 일체공성의 무위신품을 성취하는 일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보 ▲1938년 충남 예산출생 ▲61년 제10회국전 「장」특선 ▲62년 제1회 신인예술상전 최고특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상· 제11회 국전 무감사특선· 문교부장관상수상·최연소 국전추천작가 ▲64년 대한민국국민미술전람회 추천작가초대출품·도쿄국제미술전 초대출품 ▲67년부터 서울대 출강 ▲65­80년 국전 초대출품 ▲74년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 ▲75년 미댈러스주립대초대 개인전 ▲77년 동산방화랑초대 이종상진경전 ▲78년 동국대대학원 철학과석사과정 ▲81년 미부룩클린박물관 드로잉초대전·제1회 한국현대수묵화전 추진위원 ▲83년 문공부해외공보관주관 새한국화단면전초대 출품(뉴욕 LA 런던) ▲86년 서울미술대전 추진위원 ▲88년 현대한국회화전초대작가 준비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88서울미술대전초대작가 추진위원 ▲89년 동국대대학원서 철학박사학위·호암갤러리초대 이종상회화전 「한국화의 새도전 새벽화」 ▲90년 가나화랑초대 90,FIAC(미술견본시장) 그랑팔레 파리 ▲91년 제1회 서울국제미술제 부이사장·현대미술초대전 운영위원·대전엑스포 문화예술위원·가나화랑초대개인전 ▲93년 현대화랑주최 「기호와 상형전」및 현대미술 100년의 열정전 ▲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주최 한중미술교류전 및 파리한국현대미술제·베니스비엔날레·한국현대회화특별전,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장·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장·이종상 회향전(대전한림갤러리)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 〈저서〉 「화실의 창을 열고」「솔바람 먹내음」
  • 멕시코 유카탄주 칸쿤·툴룸(세계 문화유산 순례:26)

    ◎마야문명을 품은 천혜의 낙원/카브리해안에 신이 빚은 비경따라 마야인 손길로 쌓은 피라미드… 궁터… 돌담…/초록빛 바다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멕시코는 천혜의 땅이다.아직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았다.그리고 200만㎢라는 광활한 영토는 고지대의 만년설이나 맑고 투명한 카리브해의 비경을 끌어 안았다.한 문명을 농염하게 꽃피운 멕시코의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혜를 깨우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유카탄 반도의 동쪽끝 칸쿤(Cancun)은 마야문명의 기운이 충만했다.세계적인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칸쿤은 치첸이차에서 동쪽으로 197㎞ 떨어졌다.그토록 먼 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도 아름다운 자연 때문이었으리라.치첸이차를 출발,잘 닦인 고속도로를 따라 드넓은 평원을 2시간30분쯤 달렸다.허름한 건물이 늘어선 구시가지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세계적으로 이름있다는 휴양지 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해변도로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칸쿤의 진면목이 확인됐다.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대형 호텔들과,그 사이사이로 자연조건을 그대로 활용한 갖가지 리조트 시설들….칸쿤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멋들어진 카리브 해안은 신이 태초에 창조한 자연유산이라면,그 주변에 존재하는 마야문명의 독특한 해안양식 유적지들은 인간이 꾸며낸 문화유산이었다.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땅이 바로 칸쿤인 것이다. 칸쿤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영국·프랑스의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던 해안이었다고 한다.그러다 1970년대 멕시코 대통령 로페스 포르티요 집권기에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지금은 각종 국제회의가 쉴새 없이 열리는 등 세계적인 명소로 바뀌었다.해변도로는 총 25㎞에 이른다.리츠 칼튼·피에스타 아메리카나·시저 파크 등 전세계적 체인을 가진 초특급 호텔 10여개와 1급 호텔 62개 등 모두 120개가 넘는 각종 호텔들이 밀집했다.그리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골고루 맛볼수 있는 각종 레스토랑과 바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뿐 아니다.호텔 밀집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렵지 않게 원시의자연을 만날수 있다.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풍광이 펼쳐졌다.카리브해를 수놓은 코슈멜(Cozumel)섬과 여자의 섬이라는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는 관광객들을 향해 연신 손짓을 보냈다.또 청정의 푸른 바다를 노니는 물고기를 쫓아 헤엄치는 스킨스쿠버나 스노클링을 만끽할 만한 스카렛과 셸하 같은 천연 휴양지가 수없이 널려 있다. 마야문명의 흔적이 남지 않았더라면,칸쿤은 여느 평범한 휴양지에 불과했을 것이다.칸쿤은 마야유적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추겼다.그 대표적인 유적은 칸쿤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123㎞ 떨어진 툴룸(Tulum)이다.독특한 해안양식의 마야문명을 드러낸 툴룸은 마야말로 「벽」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툴룸 유적지는 전체가 1m 높이의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남북으로 380m,동서로 170m에 이르는 돌담에는 출입문 4개를 터놓았다.툴룸의 원래 이름은 해돋이를 의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 보았던 마야인들의 호연지기가 한껏 와닿았다. 툴룸 역시 지극히 마야적이라 할수있는 문명유적이 고스란히 남았다.규모는 조금 작았으나 중앙에는 우선 바다를 등진 「캐슬 피라미드」가 우뚝했다.그리고 주변에 「바람의 피라미드」「뒤짚힌 신의 피라미드」「달력의 피라미드」를 거느렸다.「달력의 피라미드」에서는 AD 6세기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록한 일지형식의 달력이 발견됐다고 한다.또 「캐슬 피라미드」앞으로는 마야인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벽화가 외벽 가득히 장식된 「벽화의 피라미드」가 자리했다. 관광객들 틈에 섞여 가장 높은 바위에 올랐을때,유적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풍요의 신 「착」의 장식이 가득한 「캐슬 피라미드」와 마치 등대처럼 버틴 「바람의 피라미드」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그리고 초록빛 카리브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16세기초 칸쿤 해안을 항해하면서 툴룸을 스페인의 미항 세비아에 빗댄 스페인 사람 후앙 데 히르할바의 눈은 그야말로 혜안이었는지도 모른다. 툴룸은 마야인들의 작은 공동체였다.여러개의 피라미드와 귀족들이 살던 궁성터가 있다.궁성터 건너 돌담밖에서는 일반인들이 마야 스타일의 움막을 짓고 살았다.낮은 돌담은 단지 성스러운 지역과 일반 거주지를 구분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뿐이다.엄격한 신분차별이나 군사적 의미의 방어시설로 쌓은 성곽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고 보면,마야인들은 화목하게 생활공간을 공유하면서 공동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분명했다. ▷여행가이드◁ 칸쿤은 유명 휴양지답게 각종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등을 이용하는데 비싼 편이다.하룻밤에 100달러가 넘는 호텔이 많고,각국의 요리를 즐기기에도 값이 만만치 않다.그러나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비교적 싸게 3∼4일 정도 즐길수 있는 방법도 있다.스카렛·셸하 등 휴양시설의 입장료는 310∼350페소(미화 45달러 내외)정도. 툴룸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칸쿤에 있는 호텔에 숙박할 경우 대부분의 호텔이 운영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툴룸 유적지에서는 입장료를 16페소(2∼3달러)씩 받는다.유적지 내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면 7.5페소(1∼2달러)를 내면 된다.
  • 권영필 고대교수,「실크로드 미술」내

    ◎한국미술 “실크로드 미술의 연장선에”/비한족의 미술로서 「중국변방」 평가에 반기/“더이상 헬레니즘·인도문화의 낙수아니다” 중국의 한나라와 고대 로마를 잇던 동서교역로 실크로드.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1887년 처음 명명한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에 처음 열린 이래 동서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다했다.동아시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실크로드는 한때 막을 내리다시피 했지만,19세기 후반 열강의 세력각축장으로 중앙아시아가 각광받으면서 이 비단길은 다시금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했다.「소박주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은 역사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최근 고고미술사학자 권영필 고려대 교수(56)가 20여년간의 연구끝에 펴낸 「실크로드 미술」(열화당)은 실크로드 미술 전반에 관한 국내외 연구성과를 망라한 노작으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실크로드 미술문화가 한국에까지 이르는 경로를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지닌다.서구학자들은 실크로드의 기점이 중국의 장안­현재의 서안­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실크로드 문화의 동쪽으로의 확산을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다.그러나 권교수는 옛 로마시대의 유리잔 등이 경주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크로드 지도는 경주까지 연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나아가 신라의 왕들은 국제교류를 통해 실크로드 미술품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재생산해 실크로드 문화에 대한 그들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고 밝힌다.『그들은 어쩌면 이러한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담지」하고 북방에서 내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보인다. 권교수는 또 실크로드 미술은 「중국의 변방미술」이 아니라 「비한족 미술」이라고 강조한다.지금까지 나온 실크로드 관련서는 문화패권주의적 미학관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 미술을 서방의 헬레니즘문화나 인도문화,중국문화 등이 흘려놓은 낙수정도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위지을승 화법의 근원과 확산」「한국불화에 나타난 산수요소의 원류와 그 발달」「고구려벽화의 복희여와도」「한국의 전통미술,그 내방성과 외방성」 등 13편의 논문과 250여점에 달하는 컬러·흑백 도판이 함께 실렸다.
  • 이 홈패션업체 「바세티」(G7으로 가는 길:56)

    ◎소비자 구매욕구 자극… 새로운 수요 창출/첨단 프린팅기술 개발… 걸작회화 직물에 재현/고무줄 침대보·가정세탁용 카펫 등 대히트 『까다로울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시키는 것이 우리 기업의 생존전략입니다.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부단히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내는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서 상품 기획 이탈리아의 홈패션 업체 바세티의 경영전략은 한마디로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신상품 개발이다.테이블보,침대보,커튼,얇은 이불,소파용 가운 등 천으로 된 제품이라면 뭐든지 만들어 판다.이같은 전략이 적중해 최근 유럽에서의 홈패션 시장이 축소됐지만 바세티의 매출액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제품은 고무줄 침대보.8년전 세계최초로 개발한 이 제품은 날개돋친 듯이 팔리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제조원리는 의외로 단순했다.보통의 침대보는 자고 일어난뒤 아래로 흘러 내리거나 옆으로 돌아가는등 침대에 고정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바세티는 사각의 침대보 가장자리에 고무줄을 달아 침대보를 침대에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침대보에 달린 고무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꽉 조여져 고정되는 것이다. 「페르페토」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침대보는 국내외서 좋은 평판을 받으며 팔려나갔고 특히 일본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2년전부터 시장에 선보인 카펫 「파르테르」도 대히트였다.일반적인 카펫 제품과는 달리 천이 매우 얇아 가정용세탁기에서 세탁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편의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기호와 맞아떨어져 대성공을 거뒀다. 『카펫을 가정용 세탁기로 세탁한다는 개념에 대해 처음에는 회사내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기본적으로 카펫은 부피가 큰 것인데 그러한 제품을 가정용 세탁기내에 들어가도록 만들면 볼품이 없고 왜소해진다는 것이었지요』 이 회사의 수출담당 책임자 움베르토 스쿠리(49)는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천의 두께를 얇게 하는 대신 카펫이 주는 포근한 감각을 최대한 살리고 세탁기로 세탁을 해도 염색이 바래거나전혀 지워지지 않는 기술을 접목,신상품을 개발해 히트시킨 것은 도전적·개척적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바세티는 최근에는 「바세티 아르테」라는 벽걸이용 카펫을 생산·판매하고 있다.우리 식으로 치면 집안에서 일종의 병풍역할을 하는 이 제품은 요즘도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판매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카펫이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벽걸이용 카펫에는 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 대가들의 그림들 뿐만 아니라 손꼽히는 근·현대 작가들의 인물화·풍경화 등이 마치 「원작」처럼 정교하게 「프린팅」되어 있기 때문이다.카펫을 걸어놓은 것인지 그림을 걸어놓은 것이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벽걸이용 카펫도 개발 바세티가 매년 신상품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이같은 능력은 바세티의 우수한 프린팅 기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풍경화나 인물화 벽화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시 직물에 그대로 옮기는 기술분야만큼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자랑한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마치 사진을 촬용한뒤 현상하는 과정과 흡사하다.인물화나 풍경화등을 천에 옮기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먼저 인물화나 풍경화의 사진을 보고 디자이너가 그대로 디자인한다.그 다음 구리로 된 실린더에 기술자들이 이 디자인을 새겨넣는다.색깔을 원화에 있는대로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원화에 들어간 색깔 가지수에 따라 판을 만든다.가령 원화에 7가지 색깔이 사용됐다면 7번의 공정을 거쳐서 프린트가 완성되는 것이다.바세티는 염색기술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현재는 19가지 색깔을 한꺼번에 인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이곳에서 일하는 프린팅 기술자 베르디(41)는 『기술혁신 없이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서 『카펫외에도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그것을 침대보나 식탁보,이불 등에 그대로 재현해내는 기술력은 우리가 세계 최첨단』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19가지 색깔 동시 인쇄 바세티가 생산해내는 천의 디자인은 너무도 다양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황량한 사막,돛단배가 떠있는 바닷가에 야자수가 울창한 모습,찾는 이를 포근히 감싸줄 것 같은 아기자기한 산들,폭풍우치는 바다 등 산수화의 모습만해도 종류가 끝이 없다.물론 인물화나 정물화,풍경화,동물화 등을 재현해 낸 것들도 그 가지수를 셀 수 없다.홈패션업체라는 기업특성 때문에 디자인은 이 회사에서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바세티는 과거 클래식한 디자인에 중점을 두었지만 최근들어 현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디자인도 많이 내놓고 있다.전세계적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30∼40대 중산층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따라서 편의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감각에 부응해 심플한 디자인,도시적인 멋을 풍기는 디자인제품을 다양하게 시장에 내놓고 있다. 바세티가 도시의 젊은 중산층을 겨냥해 만든 제품은 사용하기 편한 특징을 갖고 있다.가능한한 세탁을 덜하는 제품,또 다리미로 안 다려도 되는 제품등 손이 덜가는 제품제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라야 젊은 중산층이 친근감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개발이 생명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창조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끄는 신상품을 개발,시장에 내놓는 기업 바세티.선진국에서 사양산업으로 치부하는 섬유산업에서 고임금을 받는 이탈리아 기술자들을 고용하면서도 막대한 흑자를 내며 지난해 5천억리라(약2천8백억원)가 넘는 매출액을 올린 바세티의 경쟁력은 단순한 생산·판매가 아니라 수요를 창조해내는 신상품개발에 대한 집착 덕분이었다. ◎수출담당책임 움베르토 스쿠리/“홈패션시장 포화상태 아이디어만이 살길” 『우리 회사의 전체매출액중 60%가 외국시장에서 팔린다.아직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시장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시아시장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움베르토 스쿠리 바세티 수출담당책임자는 바세티의 성장비결중 하나는 국외시장의 개척이라고 말했다. ­외국시장은 어떤 식으로 개척하나. ▲우선 유럽에서는 직영점을 늘리는 것이다.매출은 아무래도 직영점이 많아야 늘어난다.현지인들에게 우리제품을 공급하는 프랜차이징점은 직영점에 비해 매출액이 뒤질수밖에 없다.최근 일본등 아시아권에 눈을 돌린 것은 이들 국가에서 홈패션용품들의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시아 시장은 아직 중산층이 두텁지 않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제품을 프랜차이징점에 공급,시장을 공략하는 수준이다. ­바세티 제품의 디자인은 매우 다양하다.이렇게 많은 디자인을 누가 하는가. ▲이탈리아에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많다.주로 이들에게 의뢰해 디자인을 한다.프리랜서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얻을수 있다.회사에 딸린 디자인연구소는 프리랜서들을 관리하는 작업을 하거나,프리랜서가 하기 어려운 디자인 즉 팀워크를 요구하는 디자인을 담당한다. ­바세티 제품은 해외에서도 생산되는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일부 제품만 그렇다.바세티는 제품 전부가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해도 사실상 틀린 말이 아니다.「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고집하는 이유는 첨단기술력을 보유한 장인들을 국외에서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해외생산을 할 경우 바세티의 이미지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신상품 개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10년전쯤부터 유럽에서는 홈패션의 수요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이는 각 가정이 필요로 하는 홈패션을 거의 다 갖추고 있어 더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때부터 구매력 창출을 위한 기획상품,신상품개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 미 한국전 참전비 관리 엉망

    ◎조명장치 고장 방치… 부대시설 공사도 중단/한미우호의 상징·후세 교육의 장 구실 못해 워싱턴 시가지 한복판 몰광장에 세워진 한국전참전비가 건립된지 불과 1년반만에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등 관리소홀로 찾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또 개막 1년후까지 부대시설을 완공토록한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기초공사만 한채 공사를 중단,주변을 어지럽히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이 참전비는 한·미 우호의 상징이자 자유수호를 위한 미국의 의지를 세계에 과시했던 전쟁인 한국전을 기념하고 후세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남기기 위해 95년 7월에 건립됐었다. 관리소홀로 문제가 되는 것은 「회상의 못」과 사암벽화,그리고 19명의 병사상을 아래서 위로 비추는 지상에 설치된 둥근 조명등으로 모두 80개 가운데 20여개는 항상 들어오지 않고 있어 특히 야간에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참전비의 엄숙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참전비의 관리를 맡고 있는 미 육군공병대측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유리섬유에 의해 빛이 굴절 전달되는 피버 옵틱스를 사용한 조명등으로 습기에 매우 약하다고 4∼6개씩 짝지어 지하 매설된 투사기로 조정된다』면서 『등 하나를 교환하기 위해 두명의 인부가 지하 맨홀의 무거운 뚜껑을 들어올려야 하고 전공이 들어가 공사를 해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돼 있어 제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기선,수도관 등이 튀어나온 바닥공사만 된채 중단된 「참전용사인명확인소」도 참전비 전체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 재미작가 강익중(’97 젊은 문화주역:8·끝)

    ◎백남준 대이을 차세대 선두/제47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올해 뉴욕 지하철벽화 완료·일 순회전 가져 새해들어 재미작가 강익중씨(38)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지난해 10월부터 LA MOCA(LA 현대미술관) 에서 열어온 전시가 지난 17일 막을 내린데 이어 오는 5월말 6년째 매달려온 뉴욕 지하철 벽화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그런가하면 8월부터 도쿄를 비롯해 13개월에 걸쳐 일본내 5개 도시를 도는 일본 순회전 준비도 만만치 않다.그러나 무엇보다도 6월부터 11월까지 한국을 대표해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 제47회 베니스비엔날레 참가는 올해 가장 큰 일일 수 밖에 없다. 『사실 올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은 일본 순회전이었는데 뜻밖에 베니스비엔날레 참가작가 선정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올해는 정작 제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진솔하게 되묻고 싶은 한 해입니다』 청주출신인 강익중씨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5살인 지난 84년 도미,현지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힌 인물.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뉴욕에 진출한 미술인이 적지않지만 강씨처럼 순전히 국내에서 기초를 다진후 뉴욕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일어선 작가도 흔치않다.특히 한국이 낳은 천재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가 마치 「후계자」처럼 대우할 정도의 차세대 유망주로 떠오른 것은 비단 한국 미술계뿐만 아니라 뉴욕 등 현지에서 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강씨의 작품은 주로 1호 정도 크기의 작품 수천점으로 벽면을 채워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구성하는 것.전체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로 별도의 작품을 형상화해 모자이크와는 차별화된 모습이다.4∼5년전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빈 시간을 이용해 간편하게 작업하던게 작품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특별한 형태의 작품양식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미 뉴욕에선 기대치 이상이다.「백남준 이후 국제미술계에서 한국을 빛낼 유망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차세대 작가」란 평 답게 그의 흔적은 미국 도처에 산재해 있다.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의 환경조형물 설치작가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청사의 설치 공모에서 치열한 경쟁끝에 최종 수주작가가 됐다.지난해엔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초대작가로 선정됐었고 LA MOCA측은 그의 조각작품중 목각부조 8천여점 영구소장키로 했다. 『작가는 순간적인 영감을 잠시 빌어 감상하고는 버리는 행위를 계속하는 존재로 특별한 창조자가 아니다』고 강조하는 강씨.『그러나 흔히 아이디어로 표현되는 이 영감을 제대로 잡기위해 내 내면의 소리를 가장 충실하게 듣기 위해 노력하는 한 해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 일 나라현 법륭사(세계 문화유산 순례:19)

    ◎한민족혼 숨쉬는 세계최고 목조가람/7세기 아스카시대 불교건축문화의 정수/국보·문화재 190종 2천3백여점 집결/금당 석가삼존상 등 한반도 도래인이 제작/지붕·벽 우리의 옛날집 모습 그대로 일본 나라현 호류지(법륭사)는 일본 문화가 자라나온 모태였다.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서 지난 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류지는 「나무의 문화」인 일본 건축문화의 정수이자 일본 불교문화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람이다. ○5만7천평 동·서원으로 분리 오사카와 나라의 중간 너른 들판 끝 산자락에 위치한 이 절의 18만7천㎡의 경내는 서원과 동원으로 나뉘어져 있다.서원은 산문인 남대문,중문,오중탑,금당,회랑,경장 등으로 이뤄져 있고 동원은 몽전(몽전:유메도노)불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190종 2천3백여점의 국보와 중요문화재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객을 맞는다.서원의 대보장전에는 백제관음상,유메치가이(몽위)관음상,다마무시노즈시 등 일본 문화의 정수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1천300년전인 7세기 아스카시대에 지어진 이 절이 우리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것은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오중탑,금당,중문,회랑,경당은 물론 15세기에 재건된 남대문을 보노라면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 아늑한 느낌을 준다.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지붕과 벽의 단정한 처리가 우리의 옛날 집들 그대로다.불교는 고분문화시대에서 「문명시대」인 아스카시대로 넘어오는 6세기중엽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됐다.고대 시대 일본의 교육은 대부분 승려들에 의해 이뤄졌다.절은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 문화를 한반도 도래인들이 지도했던 것이다. 오노 겐묘(대야현묘)집사장은 『당시 한반도에서 기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일본의 문화를 지도했다』면서 『호류지에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금당의 석가삼존상 뿐이지만 삼존상 제작자인 도리 불사도 할아버지가 도래인이었다』라고 말한다. 호류지는 서기 607년 스이코왕과 쇼토쿠세자가 건립했다.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70년 4월 30일 호류지가 하나도 남김없이 소실됐다고 기술하고 있다.아직도 이 부분은의문에 싸여있다.발굴조사등에 의하면 완전소실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다.재건·비재건 논쟁에 관계없이 이 절의 주요 부분들이 7세기 아스카시대를 대표하는,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문화유산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산문인 남대문을 지나면 바로 중문.깊숙히 덮인 처마,그 처마 밑에 정교하게 새겨진 공포,그리고 신전의 기둥과 비슷하게 엔타시스 양식으로 다듬어진 기둥 등 아스카시대 건축의 정수를 한데 모은 건물이다. 오중탑은 호류지의 말사로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포함된 호키지(법기사)의 3중탑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위로 오르면서 점차 줄어드는 처마의 비례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지난 81년 호류지 5중탑과 비슷한 규모의 나라현 야쿠시지(약사사) 서탑을 재건한 미야다이쿠(궁대공:도목수) 야마모토 가쓰미(산본극사)씨는 『도다이지 대불당 하나 짓는데만 연인원 2백60만명이 동원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81년 서탑 재건에는 2천만달러가 들었다』면서 『호류지 건축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국가권력,한반도에서 건너온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져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금당벽화 소실… 모사품 걸려 금당은 5중탑과 함께 호류지의 눈동자이다.금당의 벽화는 1949년 실화로 소실되거나 그을려 지금은 수액 처리돼 보관돼 있고 현재는 모사품이 걸려 있다.벽화의 제작자는 모른다.고구려승 담징이 그렸다는 설이 있지만 신빙성은 적다고 한다.오노 겐묘집사장은 『담징이 벽화를 그렸다면 150세이상을 살아 활동했다는 말이 되므로 무리가 있다』면서도 『벽화에 고구려적인 특성이 짙은 것으로 미뤄 일본에 붓과 물감을 전한 담징의 제자들이 벽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추론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회랑의 서쪽편에는 경장이 있다.평소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천문 지리학을 일본에 전래했다는 백제학승 관륵승정의 상으로 전해지는 좌상이 안치돼 있다.오노집사장은 『관륵승정은 초대 주지였다』라고 말한다.이어 『지금도 호류지의 주지로 취임하면 관륵상 앞에서 취임식을 갖는다.그때만 경장의 문을 연다』고 말한다. 호류지가 목조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넘어 위풍당당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나라지역이 지진 등 자연재해가 적고 호류지가 나라의 중심지로부터 떨어져 있어 전화 등 재난을 피할수 있었던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다음은 끊임없는 재건과 보수작업 덕분.썩기 쉬운 기둥의 곳곳에는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새 나무를 끼워넣은 흔적이 수다하다. 호류지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다카다 료신(고전양신)스님은 「세계문화유산 호류지」에서 『창건후 200년이 지나면서 호류지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면서 『그러나 쇼토쿠세자시절 호류지에 하사된 오미 가와치 세쓰 등의 영지에서 재원을 조달할수 있었기 때문에 보수가 가능했다』라고 말한다.료신스님은 재원을 모으기 위해 스님들이 분주했다고 말한다.영지 농민들의 땀이 호류지를 지킨 거름이 된 셈이다. ○창건·보수 민중의 땀으로 호류지는 지을 때부터 보수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의 땀으로 쌓아올려진 문화재였다.만요수(만엽집)의 빈궁문답가는 아스카시대 일반 민중들의 어려운 삶을 전해준다.「해초와 같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무너지는 집에 짚을 깔고 앉았다.부모는 머리쪽에 처자는 다리쪽에 웅크리고 있다.부뚜막에는 거미가 줄을 치고 이장은 채찍을 들고 세를 받으러 와 불러댄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까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일까」라고.호류지는 그 시대 백성들의 땀으로 지어졌던 것이다. ◎여행 가이드/오사카서 근철로 15분거리… 인근 고분군 둘러볼만 한국에서 나라 호류지로 접근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루트는 세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는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들어가 공항에서 나라로 들어가는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나라까지 95분 소요된다.둘째로는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시내를 거쳐 호류지로 가는것.오사카시내 텐노지(천왕사)역에서 긴테쓰(근철)노선으로 호류지로 간다.텐노지역에서 15분만에 호류지역까지 도착이 가능하므로 가장 이용하기에 편리하다.한국에서 항공편이 닿는 나고야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나고야에서는 JR 또는 긴테쓰선을 이용해 교토를 경유하거나 직접 나라로 향할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사카에서 나라행 노선을 이용할 경우 호류지역에 도착,왼편 출구로 나가면 20분정도 걸어 호류지에 닿을 수 있으며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는 오른편 출구로 나가면 된다. 호류지 인근에는 호키지,후지노키 고분 등이 산재해 있다.역사기행에 알맞으므로 함께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나라시내로 발을 옮기면 도다이지,야쿠시지,하세데라 등 수많은 명찰들이 반기게 된다.
  • 신화·역사·문학·그림속의 소

    ◎“성스러운 동물” 상징… 인·중선 극진히 섬겨/여유와 한가로움은 「생성의 모체」로 표현 신화나 역사,문학,회화속의 소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그 상징성은 너무 넓고 깊어 몇마디의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소가 풍요의 상징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다.그러나 고대 이집트에서 소는 하늘과 달의 상징이며 한편으로는 대지의 상징으로 죽음과 생성의 양면을 넘나들었다.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관이 암소 형상을 띠고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또 그리스 신화를 보면 황소는 파괴본능을 상징하는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하나의 예로 미노스왕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선물한 황소를 제물로 바치지 않아 그의 아내가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낳는 벌을 받아야 했다. 신화속의 소는 고대에 이미 목축이 존재했음을 반영한다.제주도의 삼성혈 신화는 소·말의 목축기원을 알려준다.수로부인에게 헌화가와 함께 꽃을 꺾어 바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있었다는 설화도 이를 입증한다. 소를 극진히 숭배하는 것은 비단 인도에만 국한된 일이아니다.중국인들은 일찍이 쇠고기를 먹는 행위를 부도덕한 일로 여겨 음식으로 삼지 않았으며,남부지방에는 소를 숭배하는 「우묘」라는 사당도 세웠다.북경 궁의 못가에는 거대한 소 청동상도 있었다.이것은 모두 성스러운 동물이 못과 강,바다를 어지럽히는 악귀를 제지할 것이라는 신념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소는 성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로 일본 야마구치(산구)현에서는 6월15일을 「소의 제례」 또는 「소의 우란분재」라 하여 물가에서 몸을 씻어주거나 바다에서 헤엄을 치게하는 의식을 거행했다.이러한 「우신신앙」은 오사카(대판)의 이즈미(화천)를 중심으로 긴키(근기),주코쿠(중국),시코쿠(사국) 등에서 특히 발달했다. 소는 무엇보다 문학작품이나 그림을 통해 여유와 한가로움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요절작가 이상의 수필「권태」에서 되새김질하는 소가 강한 권태감을 표상하는 것도 이러한 속성의 변형이다.옛사람들 중에는 소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이들이 많았다.김홍도의 「목우도」와 「군선도」 「나들이」같은 그림은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풍요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조선초기의 명상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소는 종종 심리학,그중에서도 특히 분석심리학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심리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암소는 대모를,황소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돼있다.그러니까 소는 모든 것의 근원인 원초적 포괄자,즉 생성의 모체이자 회귀의 장이라는 것이다.또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시한 불교의 십우도가 상징하듯 소는 인간이 찾아야할 참마음을 나타낸다. 기원전 4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던 수메르인이 제작한 황소머리상을 비롯,이집트의 룩소르 벽화,프랑스 구석기 시대의 라스코 동굴화 등 「태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 형상물들은 인간의 역사가 한치의 어긋남없이 소와 함께 해왔음을 웅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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