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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點으로 面을 품고 墨안에 色을 담다

    작가 이희중(49·용인대 교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민화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옛 그림, 특히 조선 민화의 미덕을 살려내는 데 화가로서 승부를 걸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유학을 한 ‘서양화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서양화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서울 안국동 사미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희중 작품전’은 그가 얼마나 우리 민화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화두에 골몰해왔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전시는 문자도와 민화를 재해석한 수복도(壽福圖), 옛 그림의 문양과 현대적 조형요소들을 결합한 우주연작, 민화의 회화적 요소를 다시 읽어낸 풍경연작, 먹으로 그린 명상적 분위기의 기운연작 등 네 부분으로 이뤄졌다. 출품작은 40여점. 이번 작품들은 이전의 그림들과는 기법상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뚜렷한 윤곽선의 내부를 매끈한 단색으로 처리하던 기존의 작업과 달리 무수한 점들로 이뤄진 ‘점묘화’의 형태를 띤다. 마치 고풍스러운 모자이크 벽화를 보는 것 같다. 전시의 또다른 감상 포인트는 먹그림이다. 작가는 ‘우주의 기운’‘대나무의 기운’‘식물의 기운’등 색다른 느낌의 먹그림들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유화물감을 다룰 때와는 전혀 다른 붓의 속도와 힘의 조절이 요구되는 게 바로 먹그림. 그가 새롭게 시도한 먹그림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옛 그림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는 이희중의 작업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다. 전시는 4월 17일까지.(02)736-437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근대명가 서화수장전’ 순회전 12일까지 서울갤러리 전시

    ‘중국근대미술의 아버지’ 치바이스(齊白石),‘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장다첸(張大千), 중국 근대 산수화의 대가 리커란(李可染)…. 대륙의 호방한 기상과 심원한 경지를 펼쳐 보이는 19,20세기 중국 최고 화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태평로 서울갤러리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중국근대명가 서화수장전’이 화제의 전시다. 이번 전시는 세계 순회전의 하나로 호주를 비롯해 일본, 미국, 타이완 등 6개국에서도 열렸다. 출품작은 중국화 거장 60명의 작품 100여점. 호주중화문화예술협회 부회장인 다이메이링과 영국왕실 등록 전문감정사인 그의 아들 다이동니의 개인 소장품이다. 치바이스는 그림뿐 아니라 서예, 시문, 전각 등에 모두 뛰어난 천재 화가다. 그는 늘 “그림은 유사한 듯 아닌 듯 하게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화는 의경(意境)을 추구하는 만큼 서양화의 사생과는 달리 정신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치바이스는 실제로 인물이나 꽃, 새 등을 그릴 때 비례에 맞게 그리지 않았으며 실물과 그리 흡사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전시장엔 ‘종규(鐘)’‘남과(南瓜)’‘패엽초충(貝葉草蟲)’ 등의 작품이 나와 있다. 서양화를 중국에 소개한 최초의 중국 근대화가 쉬베이훙(徐悲鴻)이 “5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화가”라고 극찬한 만능 작가 장다첸. 그는 어느 문파의 그림이든 모사를 잘 하기로 유명했다. 둔황에서 2년 7개월 동안 머물며 둔황의 고대벽화를 그대로 본떠 그리기도 했다. 장다첸의 인물화나 불화 속에 나타나는 선들은 매우 유연하고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어람관음(魚籃觀音)’‘송하고사(松下高士)’ 등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리커란은 ‘이가산수(李家山水)’라는 새로운 유파를 낳은 산수화의 거장이다. 리커란은 치바이스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의 작풍은 치바이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리커란의 산수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준다. 리커란은 화면 속에 그저 존재하는 관조적인 수묵산수가 아니라 생생한 현장감을 담은 생활 속의 산수를 즐겨 그렸다.‘춘우강남(春雨江南)’‘목우도(牧牛圖)’ 등의 작품이 출품됐다. 서태후가 그린 화조도와 도광황제, 위안스카이, 매란방 등의 서예작품도 전시중이다.12일까지.(02)2000-973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십장생’ 리메이크하면 놀이터?

    ‘십장생’ 리메이크하면 놀이터?

    리메이크란 문자 그대로 이미 있는 작품을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더이상 영화나 음악 혹은 드마라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술에도 리메이크가 있다.(주)코리아나 화장품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 스페이스C(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리메이크 코리아’전은 리메이크 미술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색다른 전시다. 참여작가는 김종구, 써니 킴, 이순종, 김지혜, 김태은, 류재하, 임영길, 장희정, 정주영 등 9명. 이들은 산수화, 화조화, 인물 풍속화, 고구려 고분벽화 등 한국의 전통미술 작품들을 텍스트로 삼아 새로운 맥락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들은 전통 소재를 단순히 반복하는 무비판적인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이른바 동양정신이나 한국적 정체성 같은 애매모호한 관념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원작에 동시대적인 의미를 부여, 오리지널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리메이크 예술의 매력이 아닐까. 김종구는 붓과 먹 대신 현대문명의 상징인 쇠를 갈아 거대한 광목천 위에 글씨를 쓴 ‘쇳가루 산수화’를 내놓았다. 바닥에 씌어진 쇳가루 글씨는 카메라 렌즈에 포착돼 높고 낮은 산세를 연출하도록 꾸몄다. 일종의 ‘디지털 산수화’요 ‘메타 산수화’인 셈이다. 이순종은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회화와 영상작품으로 리메이크했다.“여성이 지닌 성(聖)과 속(俗), 영(靈)과 육(肉)의 이중적 속성을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발견했다.”는 작가는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전통 미인도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의 시선으로 재맥락화했다.”고 말한다. 재미교포 작가 써니 킴은 십장생이 수놓아진 한국 자수화를 배경으로 교복 차림의 여학생을 그린 회화작품 ‘놀이터’를 출품했다. 십장생의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교복으로 상징되는 억눌린 여성성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번 전시는 옛 그림들이 지닌 상투적 속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승화시켜 보여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3월 26일까지.(02)547-917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단성사 새달3일 다시 문연다

    한국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대표 이성호)가 3년6개월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새달 3일 총 7개관 1530석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재개관한다. 이로써 지난 97년 복합상영관으로 가장 먼저 탈바꿈한 서울극장, 지난해 11월26일 재개관한 피카디리 극장에 이어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3대 극장이 모두 첨단 극장으로 변신하게 됐다. 1907년 연예공연장으로 개설된 단성사는 1918년 영화전용관으로 개축하면서 한국 첫 영화인 ‘의리적 구토’, 민족영화 ‘아리랑’(1926),100만 관객 시대를 연 ‘서편제’(1993) 상영 등 한국 영화의 중심역할을 해왔다. 지하 2층에는 각종 영화 관련 이벤트가 진행되는 영화홍보관이 마련되며, 한국영화 100년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벽화와 영화인들의 명패도 전시될 예정이다. 또 영화동호회 회원들에게 영사기를 대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단성사 소병무 상무는 “단성사 재개관으로 한국영화 1번지 종로3가의 부활이 가속화될 전망”이라며,“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혁신적인 서비스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개관에 앞서 29일부터 30일까지 2일 동안 6000석 규모의 무료시사회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오픈기념 행사를 마련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天上 그곳, 앙코르와트에 가 볼까

    앙코르는 ‘느낌’이다. 형언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배어 있다. 보는 순간마다, 보는 장소마다, 보는 기분에 따라 각각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유적지의 웅대함에 놀라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의 신비로움과 인류의 위대함에 매료된다. 캄보디아인의 인자한 미소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13세기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던 앙코르 왕조의 몰락과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는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만든다. 또 유적지 곳곳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앙코르 유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사전 지식없이 무작정 찾았다가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돌무더기’의 지루함만을 느낄 수도 있다. 신들이 사는 세계를 이땅에 재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왕조가 멸망된 뒤 수세기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혀있다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앙코르의 느낌속으로 들어가 보자. # 설렘 앙코르 유적과의 만남은 설렘으로 시작됐다. 캄보디아 시엠레압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신들의 땅을 직접 본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늦은 밤에 도착한 탓에 유적지 인근 호텔에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뒤척임 속에 새벽을 맞아야 했다. 호텔을 출발해 처음 찾은 곳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 시엠레압 주변 1000여개 유적지 가운데 앙코르와트와 함께 최고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유적지 매표소에서 3일 동안 자유롭게 유적지를 볼 수 있는 앙코르 패스(40달러)를 끊은 뒤 앙코르톰의 관문인 남문에 도착하자 장엄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교도로는 처음 왕위에 오른 자이야바르만 7세(1181∼1201)때 지은 정사각형 도성이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 복잡했다. 각 변이 3㎞로 돌벽과 해자(성곽 주변의 못)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힌두교의 창조신화인 유해교반(乳海攪拌)이 형상화돼 있다. 다리 난간에는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몸통을 부여잡고 있는 54개의 반인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입구인 남문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얼굴,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화려한 장식물이 먼저 발길을 사로잡았다. #웅대함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 남문을 통과하자 본격적인 신들의 안식처가 눈앞에 펼쳐졌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바이욘 사원은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새겨진 사면 돌탑이 있는 곳.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수백m에 이르는 회랑 벽화에는 다른 앙코르 유적과 달리 당시의 생활상과 위대한 왕의 전투장면이 관광객을 맞는다. 벽화에는 창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크메르인과 밥을 짓느라 분주한 여성의 모습, 투견과 투계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모습 등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복원 공사를 잘못해 무너져 내린 수많은 석축물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했다. 바이욘 사원 북쪽에 있는 바푸온 사원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13세기 이 곳을 방문한 원나라 사신이 쓴 ‘진랍풍토기’에 ‘아침에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도성을 비추던 곳’으로 묘사된 힌두 사원이다. 바로 위에는 3층 피라미드 형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피미야나카스(천상의 궁전) 사원이 버티고 서있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열병식을 거행했던 광장과 코끼리 테라스, 라이왕 테라스를 볼수있다. 앙코르 톰 동쪽에 있는 타프롬 사원(왕의 수도원)은 복원이 어려워 발견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1861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어에 의해 발견될 당시 ‘앙코르 유적은 거대한 나무뿌리로 뒤덮여 있었다.’는 말 그대로 스퐁(열대 무화과 일종)이라 불리는 나무가 사원 곳곳을 뒤덮고 있다. 나무 뿌리가 돌틈 사이를 파고 들어가 사원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로서는 나무를 베어낼 수도 벽돌을 다시 세우기도 어려워 유네스코에서도 복원보다는 현상을 유지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곳은 영화 ‘툼레이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가 사원에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로 알려져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 경외로움 그동안의 앙코르 유적은 서막에 불과했다. 다음날 새벽 5시. 짙은 어둠을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숨죽일 만큼 아름답다는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해자를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는 폭 12m, 길이 540m의 참배도로 주변에는 일찌감치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길은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가르는 갈림길. 죽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잠시 뒤 수미산(세계 중심에 있는 산)을 상징하는 중앙탑 등 5개의 탑 뒤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사원이 시시각각으로 붉게 물드는 장면은 마치 신들이 자신의 세계를 인간들에게 조금씩 내어주는 듯했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돼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 최고로 꼽힌다. 이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사원과 달리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다. 수리야바르만 2세(1112∼1152)때 3만명의 숙련된 장인들이 3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7t짜리 돌기둥 1800개, 높이가 67m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3개의 회랑 벽면과 기둥에 새겨진 정교한 벽화는 힌두교 2대 경전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 라마야나 이야기는 비슈누(힌두교 3대 신 중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화신인 라마 왕자가 팔이 스무개인 악마 라바나에게 강탈당한 아내 시타 왕비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내용으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신화다. 3층으로 된 앙코르와트의 중앙탑에 오르는 길은 70도 경사도. 손과 발을 이용해 기다시피 해야 올라설 수 있다. 신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찌 인간이 두발로 걸어 갈 수 있겠는가. # 아쉬움 앙코르 유적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쿨렌산은 앙코르의 발원지. 앙코르의 건립자 자야바르만 2세(802∼850)가 최초로 도읍을 정했던 곳. 돌무더기 유적에 질린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 볼 만한 코스다. 정상에서 약 10m크기의 와불상과 함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또 툼레이더가 촬영된 멋진 폭포도 구경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반테아이스레이 사원도 볼 만하다. 이 사원은 왕들이 세운 다른 사원과 달리 고위 관료가 지은 사원. 붉은 색 사암으로 지어진 핑크빛의 사원은 규모가 작지만 다른 사원과 비교해 어느 한군데 빠지지 않는 화려한 조각품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곳은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작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사원내에 있는 데비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돼 실형을 받은 일화도 있다. 앙코르 관광의 마무리는 프놈바켕의 일몰. 앙코르와트와 바이욘의 중간지점에 있는 높이 60m의 작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고 가파르지만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 길고도 짧은 앙코르 관광이 끝났지만 신들이 새겨놓은 장엄한 잔상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원들을 돌아보느라 밀려드는 피곤함보다는 다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특히 9∼15세기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서 번성하던 앙코르 왕조와 내전으로 피폐해진 현재의 캄보디아 모습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사원 곳곳에서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여행 내내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했다. 과연 역사란, 삶이란 무엇일까. 알고가면 편해요 앙코르와트 여행은 겨울철이 가장 좋다.11∼2월이 건기로 이 기간이 가장 시원해서 유적을 둘러보기 적합하다.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 기후지만 하루에 몇번 스콜이 지나가는 정도일 뿐 금방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반면 3∼4월은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는 혹서기이며,5∼10월은 고온다습한 우기다.시차는 2시간으로 한국이 오전 10시면 캄보디아에서는 오전 8시다. 화폐는 리엘(Riel)이지만 시엠레압 등 대도시에서는 달러가 유통돼 환전할 필요는 없다. 소규모 상점에서는 거스름돈이 부족하므로 1달러짜리 소액권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1달러는 약 4000리엘 정도.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기전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거나 현지 도착후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권과 여권용 사진 1장, 비용 20달러가 필요하다. 종교는 상좌부불교(소승 불교)이며, 인종은 크메르족이 80%를 차지한다. 유의 사항으로는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생사정이 좋지 않다. 반드시 생수를 사먹는 편이 좋다. 관광지에서는 돌 하나도 가져가면 밀반출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루종일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므로 모자는 필수다. 전화가 거의 없으며, 호텔에서도 1분당 6달러 정도로 비싸다.전압은 220V로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유적지에 들어 가려면 앙코르 패스를 구입해야 한다.1일권 20달러,3일권 40달러,7일권 60달러이며,1일권 외에는 사진을 찍어 함께 코팅해 준다. ‘쏙 싸바이’(안녕하세요),‘쭙닙수’(반갑습니다),‘옥꾸운’(감사합니다) 등 기본적인 캄보디아어를 외워두면 편하다. 가는 길은 시엠레압까지는 직항편이 없어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4시간 20분, 방콕에서 시엠레압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이르면 3월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주 2회 직항편을 준비하고 있다. 숙박은 공항과 앙코르 유적지에서 각각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르 메르디앙호텔’이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리조트형 5성급 호텔로 223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www.lemeridien.com, (02)794-4011. 여행 상품으로는 가야여행사(www.kayatour.co.kr·(02)536-4200)에서 앙코르 문화유적지를 충분히 둘러보는 3∼5일 여행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공항서 급행료 주지마세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는 연간 10만여명의 우리나라 관광객이 찾는 곳.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엠레압 공항에서 한국 단체관광객들은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입국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고 통과하는 특권을 누린다. 공항 직원에게 일종의 ‘급행료’(?)를 지불했기 때문. 실제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우리 일행에게 공항직원이 “10달러를 주면 빨리 통과시켜 주겠다.”는 요구를 했다. 거부하자 한명에 5∼10분가량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급행료를 만든 것은 한국인. 좁은 공항에서 다소 오래 걸리는 입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 뇌물을 건넨 것이 관행화됐다는 게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설명이다. 유적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지 한국인 관광안내원이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유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이다. 얼마전 한국인 관광객이 유적지내 돌탑을 흔들며 심한 장난을 치다 부숴뜨려 벌금 800만원과 함께 한달간 실형을 산 뒤 영구 추방조치되기도 했다. 캄보디아인들은 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앙코르 유적지를 모독하거나 훼손, 파손할 경우 엄하게 처벌한다. 또 현지인들이 우리보다 못 산다고 무시하거나 종교적으로 모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신들의 세계를 관광하기에 앞서 좀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시엠레압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청계천 벽면에 ‘정조반차도’

    청계천 벽면에 ‘정조반차도’

    청계천변 벽면에 조선시대 정조의 화성 행차를 담은 대형벽화가 들어선다. 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는 9일 청계천 광통교 부근 벽면(중구 남대문로 조흥은행 본점∼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에 ‘정조 반차도(班次圖)’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벽화는 높이 2.4m, 길이 192m로 길이 30㎝짜리 정사각형 세라믹자기타일 5120장에 그려지며,2월부터 제작에 들어가 청계천 준공일인 10월1일 공개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시론] 韓·日 과거 60년과 미래/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시론] 韓·日 과거 60년과 미래/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2005년 광복 60년을 맞이한 한국민은 그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정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의 위상을 굳히기 위해 반공과 반일의 기치를 들고 출발했으며 시련 끝에 오늘의 자리에 도달했다. 냉전 붕괴와 6·15 남북수뇌의 공동선언으로 ‘반공’은 ‘민족화합’으로,‘반일’은 ‘공동번영과 미래지향’으로 승화되었고 광복 당시의 노선 선택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반일정책은 단지 식민지지배에 대한 감정적 반발은 아니었고, 전통에 뿌리를 둔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20세기 전세계는 근대화에 그 명운을 걸었으며, 실제로 일본의 서구화의 성공은 한국의 좌절을 의미했다. 일본을 통해 한국에 유입된 근대적 요소는 일본문화에 여과된 것이므로 그대로 계승하게 되면 영영 일본에 문화적 예속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한국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약 30년 한 세대가 지날 무렵부터, 가령 윤이상의 음악, 김은국의 문학 등 한국적 가치에 뿌리를 둔 국제수준의 작품을 전세계에 발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최근의 한류, 곧 한국적 대중문화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 성장률은 세계 평균의 4배를 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그간 육성해온 한국적 가치관과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갖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단행할 수도 있었다. 지난 60년 간 성과의 토대 위에 앞으로의 국가노선은 ‘평화통일’,‘동북아의 중심국가로서의 위상확립’이 될 것이다. 그 작업은 주변국과의 협력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미 6자 회담의 틀은 마련되어 있다. 현재 그 목적은 비핵문제 중심으로 국한되어 있으나, 필연적으로 ‘한반도의 완전평화’, 그리고 ‘동북아시아 공동체 형성’으로 확장되어갈 것이다. 또한 비핵, 동북아공동체 형성과 통일은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영세중립화로 이어진다. 6자의 합의점은 수학의 6원연립방정식과도 같이, 공간상의 6개의 직선이 한 점에 만날 곳을 정하는 일인데, 어느 한 곳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기에 각 나라들과 신뢰관계 구축이 절실하다. 그것은 표면적인 외교언사나 술책의 차원으로는 안 되며 보편적 이상을 공유함으로써 가능하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눈앞의 이해득실을 극복할 수 있으며, 문화교류는 공동번영과 평화로 이어진다. 1998년 민간 주도의 한·일문화교류회는 일본측 히라야마(平山郁夫) 위원이 제의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지정에 관한 일’과 한국 측이 제의한 반세기 동안 인적이 없는 ‘휴전선 일대 자연의 세계자연유산 지정에 관한 일’을 채택하고 함께 추진키로 하였다. 문화 교류의 궁극적 목적이 평화에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히라야마씨의 국제적 영향력과 적극적 활동에 힘입어 북한 소재의 유물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앞으로 여러 나라가 협력한다면 ‘휴전선 일대의 세계평화공원화’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 환경 등 인류적 보편차원의 일이 전세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속에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도 가능하다. 우리는 올해가 을사조약 체결 100년인 것과 가해자의 양심문제를 잊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보다 중한 것은 미래에 있다. 과거 60년 한국은 신생 독립국으로서 정체성 확보를 위해 ‘반대와 배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과 상생’의 길로 세계를 향해야 한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 ‘미술과 화학’ 오묘한 조화

    고대 그리스 철학은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으로부터 출발했다. 물과 불, 흙, 공기를 우주 구성의 4원소로 간주했던 것을 보면 철학의 뿌리는 화학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미술 또한 화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중세의 프레스코나 템페라 기법이 지닌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기름물감도 사실은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용제에 대한 실험의 소산이었다. 미술이 화학과 만난 예는 현대에 들어서면 더욱 흔하다. 미국의 잭슨 폴록은 멕시코 화가 시케이로스의 벽화워크숍에 자극받아 공업용 도료를 활용해 거대한 전면(全面)회화와 ‘드리핑 회화’ 세계를 펼쳤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 조선에서 열리고 있는 ‘케미컬 아트’전은 화학재료야말로 무엇보다 훌륭한 미술 재료임을 보여준다. 참여작가는 구영모 길현수 낸시랭 박진범 박희섭 엄정순 이상희 정훈 한혜성 등 9명. 홀로그램 페인트나 카멜레온 페인트 같은 다양한 빛깔을 내는 화학 신소재와 비료로 쓰이는 요소, 포토그램, 파라핀, 실리콘, 무수프탈산 등 온갖 화학 재료가 동원됐다. 박희섭의 ‘Mother Nature of Pearl’은 아크릴과 비단, 홀로그램 페인트와 전통 소재인 자개를 응용한 작품.1㎏에 300만원이 넘는 고가의 홀로그램 페인트를 아크릴과 자개에 뿌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연출한다. 박진범은 도료나 안료의 원료로 쓰이는 화학제품인 무수프탈산과 천연 원료인 송진으로 만든 직육면체 구조물 안에 일일이 조명을 밝힌 ‘튜브’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무수프탈산은 비등점이 섭씨 131도로 1도만 온도가 내려가도 고체로 변하는 성질이 있다. 작가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냉동실의 성에 같은 형태의 동결된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이상희는 국가경제의 한 축이었던 섬유산업의 대표주자이자 동시에 산업재해의 주범이었던 원진레이온이 철거되기 직전 공장에서 실험도구들을 직접 수거해 만든 오브제 작품 ‘게임의 법칙’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또 신세대 작가 낸시랭은 천사와 악마의 이미지가 결합된 캐릭터를 통해 현대의 물신주의를 비판한 ‘터부 요기니’시리즈에 카멜레온 페인트를 이용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사간이 2002년에 이어 두번째로 기획한 특별전이다.(02)723-7133.1월18일까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잘나가는 그린, 흔들리는 모래판

    잘나가는 그린, 흔들리는 모래판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다. 대부분의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은 자생력이 없어 모기업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모기업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 으레 구조조정 1순위로 스포츠 구단을 올려 놓는다. 물론 반대로 마케팅 효과가 높아 ‘뜨는’ 스포츠도 있다. 불황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요즘, 민족 고유의 스포츠인 민속씨름과 해외에서 건너온 ‘귀족 스포츠’인 골프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LG투자증권 씨름단의 해체로 민속씨름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지만 프로 골프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골프는 철저한 개인 스포츠다. 국가 대항전 등 특별 이벤트가 아니고서는 단체전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구기종목의 프로팀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프로골프 구단이 많이 생겼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적인 마케팅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현재 프로골프 구단은 모두 7개.1983년 코오롱골프단(현 엘로드골프단)을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이동수골프단, 빠제로골프단,LG 팀애시워스, 하이트, 하이마트 등이 줄줄이 창단됐다. 지난 10월에는 오투플러스가 가세했다. 각각 10∼30명의 선수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하이마트는 여자선수만 13명을 보유하고 있다. 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처럼 개인적인 스폰서 계약으로 한 해 수십억원을 벌어들이지는 못하지만, 구단 선수들은 대부분 매년 1억∼1억 5000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모기업은 소속 선수들에게 회사나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의류와 용품을 지급해 홍보효과를 노린다. 골프는 구매력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옷이나 용품을 따라가는 경향이 짙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우승해 ‘신데렐라’가 된 안시현(20·엘로드)이 입었던 옷이 ‘대박’을 터뜨린 게 좋은 사례. 현재 KPGA에 회원으로 가입한 남자 프로골퍼는 3574명이다.1부 투어에서 뛰는 정회원 615명,2부 투어의 세미프로 2569명, 티칭프로 390명으로 구분된다. 정회원은 매년 20명씩, 세미프로와 티칭프로는 240명씩 늘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393명의 정회원과 367명의 준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40∼50명이 추가된다. 아마추어도 탄탄하다. 대한골프협회(KGA)에 등록된 아마추어 선수는 3057명. 초·중·고등학교 선수(1523명)보다 프로 무대를 노리는 대학 또는 일반 선수(1534명)가 많다. 골프장경영자협회 이종관 팀장은 “160개 회원골프장 내장객이 2001년 1000만명을 돌파한 이후 매년 70만∼80만명씩 늘고 있다.”면서 “폭발적인 ‘골프 수요’ 증가가 프로 골프의 팽창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씨름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다. 민족 고유의 스포츠.4세기 고구려 벽화에서 이미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니 역사가 적어도 1500년 이상은 되는 셈이다. 긴 세월을 한민족과 함께 벗해온 씨름이 프로 경기로 다가온 것은 지난 1983년. 당시 정부의 스포츠 장려 정책으로 씨름은 전년도 야구에 이어 프로화가 됐고, 이만기-이준희-이봉걸 등이 화려한 트로이카 시대를 열며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씨름 중계에 밀려 9시 뉴스가 늦게 시작했을 정도였다. 천하장사 상금은 1500만원. 지금의 1억원과 비교하면 작은 액수로 보이지만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트로이카 세대를 이어 강호동 백승일 등 스타들이 끊이지 않고 등장,90년대 중반에도 최고 8개 씨름단을 유지하며 시들지 않는 인기를 과시했다. 심지어 금강급이 없었던 96년에도 91명의 프로 선수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97년 외환 위기에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인기는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씨름단 해체 도미노 현상이 이어진 것. 이후 LG투자증권 현대중공업 신창건설 등 3개 팀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씨름의 우직함이 21세기를 지향하는 기업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신생팀 창단 작업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지난해 경량급인 금강이 부활, 다시 세 체급으로 늘어났지만 올해 프로가 47명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 불황 탓도 있지만 씨름이 좀처럼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팬들을 열광시켰던 기술 씨름이 줄고 있기 때문.90년대 중반 이후 최고 인기 체급인 백두급의 평균 체중이 150㎏을 웃돌면서 기술보다는 힘과 몸무게를 바탕으로 한 승부가 재미를 반감시켰다. 또 김영현 등 골리앗들의 등장이 처음에는 흥미를 끌었으나 과거 이봉걸과는 달리, 수비 씨름에 치중한 것도 이에 한 몫했다. 지난해 경량급 부활로 인기가 다소 회복할 조짐을 보였지만 LG씨름단의 해체 결정은 그로기에 몰려 있는 민속씨름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셈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전문가 진단 “씨름이 골프처럼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는 힘들겠지만 최소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들은 ‘팽창’하는 골프와 ‘고사’하는 씨름의 차이점을 ‘저변’과 ‘돈’에서 찾는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골프는 일반인들도 즐기는 스포츠로 저변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골프장은 물론 모자에서 양말에 이르는 모든 용품이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씨름은 저변이 갈수록 축소돼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쓰기만하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됐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선수층은 점점 더 얇아진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안재 수석연구원은 “씨름은 자연발생적인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인위적인 수요창출이 필요하다.”면서 “흥미진진한 규칙과 젊은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이벤트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또 “씨름은 스포츠의 필수조건인 ‘스타’와 ‘흥행’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길 때 느끼는 관중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체육과학연구원 박용옥 정책실장은 “씨름은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시장에 씨름의 존폐를 내던질 게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특히 “씨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체험교실 등을 통해 친숙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개발하는 한편 일본의 스모처럼 전통스포츠 특유의 위엄과 명예를 나타내는 ‘포장’에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日 호류寺 채색벽화 파편 “한국인 화공 작품” 추정

    |도쿄 이춘규특파원|담징을 위시한 고구려 화공집단이 그렸다는 금당벽화가 소실된 일본 나라의 호류지(法隆寺)에서 사찰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 파편 60점이 발굴됐다고 현지 언론이 2일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파편이 서기 607년쯤 사찰을 창건한 쇼토쿠 태자가 꿈꾼 불교의 이상세계를 그린 벽화의 일부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화공집단에 의해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나라현 이카루카초 교육위원회는 세계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호류지 남문쪽 터에서 불에 타 색깔이 변한 60점의 벽화 파편을 발굴했다. 파편은 가장 큰 것이 세로 4㎝, 가로 5㎝ 크기로 붉은색 안료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으나 복원은 불가능한 상태다. taein@seoul.co.kr
  • 암사동에 역사·생태공원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 건너편에 여의도공원 절반 크기의 역사·생태공원이 들어선다. 강동구는 1일 암사동 선사유적지 인근 3만 3000여평을 역사·생태공원으로 조성, 쌍둥이 문화단지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동구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녹지상태에서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0년 매듭지을 예정이다. 공원 조성사업은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공원의 규모가 커 일시에 추진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10억원을 들여 2007년까지 추진하는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선사유적지, 풍납·몽촌토성과 연계한 대단위 문화관광 벨트가 형성된다. 우선 구암서원을 복원하고 암사동의 옛 이름인 바위절마을의 호상(好喪)놀이를 널리 알리는 전시관, 전통 놀이 등 우리의 옛 풍습을 재발견하는 전통문화체험마을 등이 만들어진다. 구암서원은 17세기 한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임금이 시설 이름을 하사한 서원)이다. 넓이 1186평에 사당과 강당, 재실, 홍살문 등 옛 시설을 되살린다. 복원 뒤에는 다도(茶道) 혼례 제례 등 전통예절 및 예능 교육과 서예 국악 한국학 등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전시실 회의실 공연장 등으로도 사용한다. ‘쌍상여’가 특징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로, 주민 135명으로 이뤄진 보존회가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체험마을에 들어설 농업박물관과 주막 대장간 연날리기터 새끼꼬기마당 등을 묶어 교육·관광 명소로 가꾼다. 2단계 사업에서는 494억원을 들여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대상 면적은 2만 3000여평이며 오는 2008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이 곳에는 1000여명이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야외 선사예술마당’과 5000여명이 동시에 이벤트를 벌이거나 피크닉을 가질 수 있는 잔디광장이 조성된다. 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일화 등을 형상화한 조형벽화, 영상물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정원’도 꾸민다. 나무 그루터기 쉼터, 조개껍데기를 깐 길이 있는 ‘기억의 숲’ 등 주제별 생태 숲 6곳도 만든다. 신동우 구청장은 “선사유적지는 학술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단순해 어린이들의 교육장 외에 관광자원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공원이 조성되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등 관광자원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청장은 이어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초기단계부터 시 문화재위원회를 통한 지표조사를 거치는 등 선사 유적지에 걸맞는 공원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사설] 민속씨름 살려내자

    TV를 통해서나마 흥겨운 씨름판을 볼 수 없는 한가위 명절을 생각할 수 있는가. 민족의 전통스포츠인 씨름이 프로경기로 부활한 지 22년 만에 간판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안타깝고 씁쓸하다. 야구선수 한 명을 스카우트하는 데 수십억원을 쏟아붓는 판에 1년 예산 20억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프로팀 하나를 유지하지 못해 민속씨름이 존폐위기에 처했다니 이 나라의 스포츠 후원기업은 다 어디에 갔고 체육정책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은 씨름이 젊은층에 인기가 없다며 팀 인수를 꺼린다고 한다. 그러나 씨름은 고구려벽화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으면서도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다. 전성기땐 팀수만 8개에 이르렀고 이만기, 이준희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최근 들어서는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같은 인기선수가 등장하면서 체육관이 꽉 차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문제는 관중을 지속적으로 모으기 위한 경기방식 개선과 스타 개발 노력이 적었던 것이다. 씨름은 또한 호방하면서도 재치있는 한국 문화의 진수이기도 하다. 일본의 스모처럼 육성하기에 따라 국제적 관광상품도 될 수 있다. 결코 한때 ‘반짝’ 하고 마는 유행종목이 아니란 뜻이다. LG투자증권 씨름단이 없어지면 프로팀은 2개밖에 안 남는다. 이제 체육당국이 나서야 할 때다. 팀 인수 작업에 중재 역할을 하고 민족문화 보존 차원에서 지원책 마련도 생각해 볼 일이다. 팀인수가 여의치 않은 경우 공기업이 팀운영을 하게 하는 것도 검토하기 바란다.
  • [삶과 경영이야기] (36)NHN 김범수 대표

    [삶과 경영이야기] (36)NHN 김범수 대표

    중국과 일본에서 김범수(38) NHN 대표는 ‘미래에서 온 사람’으로 통한다. 자신들보다 저만치 앞선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인 만큼 그가 하는 얘기들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의 향후 흐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미래의 키워드는 네트워킹이다!” 1991년 봄. 서울대(산업공학)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후배의 자취방에 들른 게 오늘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PC통신 태동기였던 당시 10명 정도가 동시 접속해 채팅 등을 하도록 지원하는 네트워킹 시스템인 사설 BBS(Bulletin Board System)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아∼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며 미래의 네트워킹 시대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남들은 잘 나가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지원했지만 컴퓨터 분야가 승산이 있다는 막연한 일념으로 졸업후 삼성SDS에 특례 보충역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을 하던 1995년, 그는 삼성의 PC통신 사업인 삼성유니텔 설립을 위한 태스크 포스팀에 지원했다. 당시 그는 국내 통신시장의 대세가 PC통신이 아닌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음을 직감했다. 확신도 섰다. 창업을 하기 위해 1998년 9월 사표를 던졌다. ●목표 설정이 성공의 절반 스스로를 “착실함이 첫 번째 강점”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장기 목표와 그에 따른 단기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다. 그의 착실함은 학창시절에서 잘 드러난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세우고 매일 새벽 1시면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2남 3녀 중 장남인 그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한 까닭에 ‘나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모토를 어릴 때부터 갖게 됐다.TV, 친구 등 방해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과후 집에 오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고 한밤중에 일어나 공부했다.3년만에 뜻한 대로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했다. 국내 최초 게임포털인 한게임도 미래는 인터넷 시대임을 예감한 삼성SDS 재직때의 창업 구상이었다.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만큼 게임이 가장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판단했던 것. 곧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SDS 재직때인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48대 PC를 갖춘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을 열었다.6개월만에 5000만원을 벌었고, 그해 연말에 강남 삼성동에 사무실을 따로 내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본격 가동했다. ●“조조보다는 유비가 되어라.”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그는 주저없이 ‘유비 정신’을 꼽는다. 경영이란 사람을 통해 일하는 것인 만큼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론이다. 아직 큰 시련 한 번 격지 않고 단숨에 국내 1위 포털 업체의 CEO로 거듭난 것도 자신의 두 번째 강점인 ‘인화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게임산업협회장이 된 것도 주변에 적이 없어 가능했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줄서기가 없고 경영진간에 신뢰하는 문화가 NHN의 가장 큰 자랑이란다. NHN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도 ‘좋은 사람’ 덕분이라고 밝힌다. 좋은 직장(삼성 SDS)을 팽개치고 PC방에서 한게임 창업을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문태식 한게임 부문장,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NHN차이나 대표, 일본 사업을 성공시킨 그의 친구 천양현 NHN재팬 대표가 그들이다. 합병 파트너인 네이버컴 이해진 부사장도 평생의 동반자다. 국내 1등 포털을 목표로 1000만 이용자 기반을 가진 한게임과 자금 및 아이디어가 풍부한 네이버컴이 만나 계속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일을 벌이는 김 대표와 이를 다듬어가는 이 부사장의 파트너십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직의 인화를 바탕으로 그는 비전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는 CEO다.2000년 당시 ‘인터넷은 공짜’라는 인식을 무릅쓰고 업계 최초로 게임과 포털의 유료화를 단행,NHN의 수익 창구를 대폭 확대해 오늘의 NHN 동력을 키워냈다. 어느 나라에서든 그 나라에 맞는 포털 강자가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몰리는 포털 이용자들의 특성으로 포털은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국내 시장의 최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NHN이 포털이 아닌 게임 부문에 중점을 둔 해외 투자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네이버 재팬과 네이버 차이나는 중국과 일본 현지에서 성공해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사업의 미래는 게임에 있다!” 예컨대 지난 3·4분기 기준으로 매출은 NHN(177억원)이 다음커뮤니케이션(100억원)보다 1.7배 정도만 앞서지만 시가총액은 NHN 1조 3562억원, 다음 4039억원으로 3.4배 높다. 해외투자 성공여부가 시장에서 둘의 격차를 크게 벌려 놓은 것이다. 나아가 NHN은 최근에 국내와 해외로 NHN의 사업부문을 분리했다. 그는 NHN 총괄 CEO이면서 해외부문 담당 CEO이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 사업에 전력 투구하겠다는 의도다. 일본·중국에 이어 내년에는 영어권 국가에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동남아시아 영어권 국가에서 경험을 쌓은 뒤 미국에 진출할 지를 고민 중이다.2001년 미국의 9·11 테러로 전국이 충격에 휩싸이면서 한게임USA가 현지 준비 9개월만에 철수했던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언젠가는 게임으로 승부를 겨루는 국제 게임 올림픽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나는 전형적인 B형 남자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CEO 10명 중 4명은 B형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도 B형이다. 그는 B형 남자가 바람기와 성질(?)이 있다고 하지만 창의력과 추진력도 두루 갖춰 CEO 중 B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업계 인사들과 골프장을 찾는다. 함께 운동하고 식사까지 하면 친해지는 만큼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골프는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해진 부사장과 공동대표를 맡다가 단일 대표로 나섰던 것도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적극성이 컸다는 것이다. 요즘엔 건강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은 소주 한병을 비워야 하는 술자리가 있어 건강검진은 필수란다. 반신욕 열풍이 불기 훨씬 이전인 5년전부터 아침마다 반신욕도 즐기고 있다.40분 동안 사업 아이디어 등 생각을 정리하는 자신만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김 대표는 대학 1학년때 ‘회색 도시’를 주제로 한 벽화가 오늘날 성공 모티브가 됐다고 소개했다. 빌딩 숲속에서 사무실 창밖을 통해 밖을 바라 보는 화이트 칼라의 직장인을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설정하고 달려 왔단다. 이런 일념이 그를 강남 스타타워 34층에서 7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CEO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불혹이 되기도 전에 국내 최고 포털기업을 키워내면서 일단 첫 번째 꿈은 이뤘다고 자평했다. ●균형있는 삶, 꿈꾸는 삶을 살자 이제는 성공 모드를 바꾸기로 했다. 균형있는 삶을 모토로 글로벌 경영과 함께 가족도 챙기겠다는 말이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오는 사이 아들 상빈(11)과 딸 예빈(9)이에게 아버지의 말이 통제력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이 작지 않았기 때문. 한달 전부터 매일 오락 게임을 1시간씩 같이 하며 ‘가족의 울타리’를 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보통 부모라면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그는 “아니다.”라고 했다.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그만둘 아이들이 아니다. 부모와 함께 게임을 하면 불건전한 채팅 등을 막을 수 있다. 최근엔 부인 형미선(36)씨에게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골프를 배우라고 권했다.6개월만에 남편을 능가하는 골퍼가 됐다며 뿌듯해 했다. 그의 좌우명은 모두 꿈과 관련돼 있다.‘꿈꾸는 자만이 자유롭다’ ‘꿈을 꿈으로 끝내지 말고, 꿈을 끝내지 않고’… 등. 꿈을 꾸면 방향과 목적이 생기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 실천하면 목적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열심히 준비하고, 준비되면 도전해라.” 오늘도 그는 네이버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분주히 미래를 준비한다. ■ NHN은 NHN은 인터넷 검색 포털 ‘네이버’와 게임 포털 ‘한게임’을 운영하는 인터넷 전문 그룹이다.NHN은 넥스트 휴먼 네트워크를 뜻한다. 1999년 6월 네이버컴㈜으로 출발해 2000년 7월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합병, 본격적인 인터넷 포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2001년 9월, 현재의 NHN으로 사명을 바꾸고 2002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등록했다. 2002년 닷컴 업계 최초로 순이익 100억원 시대를 열었으며,2004년 상반기 회사 설립 6년만에 반기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코스닥 인터넷 업종 시가총액 1위 회사로 발돋움했다. 2000년 9월 설립한 일본 한게임은 현지 게임포털 1위다. 지난 7월 중국 최대 온라인 게임포털인 롄종을 운영하는 하이홍으로부터 롄종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 김범수 대표는 ▲1966년 서울 출생(본적 전남 담양)▲건대부고 졸업▲1990년 서울대 산업공학과(86학번) 졸업▲1992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석사 졸업▲1992년 삼성SDS 특례보충역 입사▲1992년 양식편집기 ‘Form Editor’ 개발▲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관리 시스템 개발▲1996∼97년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 2.0, 유니윈 98 설계 및 개발▲19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창립▲2000년 NHN㈜ 공동 대표이사 ▲2004년 단독 대표이사▲2004년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경기도 이천 시내를 벗어나 설성면 장천4리, 속칭 독정 마을에 이르면 가래나무가 인상적인 시골집이 하나 있다. 전통 옥새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옥새전각장 세불(世佛) 민홍규(51)씨의 집이다. 오죽(烏竹)과 어우러진 능진수원(能盡水源·생명이 다할 때까지 행한다)이라는 당호가, 집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일러준다. 토불(土佛) 황식에서 시불(示佛) 황소산, 석불(石佛) 정기호로 이어지는 전통 옥새의 제작기법을 계승해 오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를 이천 집에서 만났다. ●열여섯살때 ‘석불’ 정기호 만나 인연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이곳은 용터라고 할 수 있어요. 땅의 기가 세, 아무나 살기 힘든 터라고 하지만 창작활동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지요.” 민씨는 자신의 작업이 방해 받을까봐 동네 면사무소에서 만들어준 ‘옥새 보러가는 길’이란 집 안내 팻말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옥새는 왕이 사용하는 도장으로, 중국 진시황제가 옥에 새긴 도장을 쓰면서 ‘옥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옥새는 도화원 화공이나 교서관·서자관 관원 중에서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인정받는 사람 한 명에게만 그 기술이 전수됐다.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옥새의 전통을 외롭게 이어가고 있는 민씨로서는 그만큼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열 여섯 살에 석불 정기호를 만나 옥새와 인연을 맺은 민씨가 조선왕조 옥새 복원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5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국새를 만든 전각예술의 대가 석불이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옥새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그는 밤잠을 잘 수 없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어보의궤’, 규장각 문서인 ‘보인부신총수’등 옛 문헌을 뒤지며 옥새 제작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더욱 몰두했다. ●옥새문화계승 우리나라밖에 없어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고종황제의 옥새를 찬탈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옥새는 곧 왕권이자 국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는 고종이 쓰던 73개에 이르는 옥새를 모두 빼돌렸다. 그중 절반가량은 현재 복원돼 있는 상태. 민씨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은 해인 지난 98년 일제 때 소멸된 옥새 5과를 경기도 박물관에 복원 기증한 것을 비롯,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옥새를 만들어 기증했다.“돈이나 명예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만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지요. 주위에서 나의 옥새 작업을 격려해 주는 분들이 쌀이며 가전제품이며 여러가지 정성어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전통방식의 옥새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옥새의 맥이 끊어졌고, 일본도 국보급 전각가인 고바야시 도완이 지적했듯이 전통 옥새의 주조기술이 전수되지 않아 재현이 불가능한 상태예요. 국가를 상징하는 옥새는 소중하게 보존 계승돼야 합니다.” 민씨는 먼저 옥새와 옥새전각장이라는 이름의 내력부터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조선 고종 13년(1876)에 제작된 ‘보인소의궤’를 보면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을 보인(寶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을 보장(寶匠)이라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뀐 뒤 고종이 임금의 도장이 보인, 어보(御寶)등 옥새보다 낮은 격으로 불려왔음을 알고 칙령을 내려 옥새라고 품계를 올려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의 명칭도 보인을 새기는 보장에서 옥새를 ‘전각하는’ 옥새전각장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궁중문화 꽃이자 종합예술 옥새는 궁중문화의 꽃이자 명실상부한 종합예술이다.“옥새는 서예와 조각, 회화, 전각, 연금술, 도자기술, 주조기술 등 적어도 7개 분야를 모르고선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민씨의 말. 그런 점에서 민씨는 가히 ‘르네상스 맨’이라 할 만하다.1990년 현대서예협회를 만들어 글씨체 현대화운동을 주도한 민씨는 추상회화와 서예가 접목된 작품들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예 작품에 나부를 그려 넣어 ‘문제작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한 목가산(木假山) 작업은 그의 예술가적 독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툼한 황유목(黃油木) 판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진 산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예술이다. 민씨는 최근엔 모필 대신 죽필(竹筆)를 즐겨 쓰고, 칡뿌리 끝을 두드려 만든 갈필(葛筆)작업까지 시도하고 있다.‘자연과 호흡하는 예술’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다. 또 예서와 행서, 초서, 전서, 해서 등 5체를 섞어 쓴 ‘녹서(綠書)’라는 새로운 서체의 병풍을 완성했는가 하면, 옥새가 묘사된 ‘예궐반차도(詣闕班次圖)’도 그리고 있다.“그러나 중요한 건 다시 옥새입니다. 창작의 고통과 희열은 옥새에 온전히 바쳐질 때 비로소 제값을 다할 수 있지요.” 민씨는 진흙 거푸집을 사용한 전통주조법을 계승하고 있다. 진흙용주(鎔鑄) 기법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고대 주조기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만드는 옥새는 인뉴(印 )에서 더욱 빛난다. 뉴( )는 도장 위에 새겨진 조각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에는 이것으로 관인(官印)의 등급을 표시하기도 했다. 민씨는 최근 삼족오(三足烏) 형상의 손잡이가 달린,4㎏이 넘는 옥새를 4년여 만에 완성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족오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고구려 벽화에는 삼족오가 용이나 봉황보다도 그 위에 그려져 있어요. 격이 더 높다는 얘기이지요. 한 몸뚱이에 발이 세 개라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동양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입니다.” ●무형문화재 지정안돼 안타까워 어느새 옥새와 동의어가 된 세불 민홍규. 그에게는 요즘도 일본으로부터 귀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일본은 문화가 아니라 사람을 수입하려 합니다.” 그의 쓸쓸한 한마디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지금이야말로 살벌한 문화전쟁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옥새는 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민씨는 “문화상등국의 우선순위는 궁중문화의 보존과 대책에 놓여져야 한다.”는 유홍준 문화재 청장의 한 강연 내용을 들려주며 옥새문화는 결코 천민문화가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소돌이(小乭伊·옥새 제작용 망치)를 마치 자식인 양 대견스레 들여다보는 그에게서 장인의 체취를 느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요즘도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며 마당의 대왕가마를 지키고 또 옥새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조그만 결실이 곧 ‘조선 옥새의 비밀-영새부(榮璽 )’(도서출판 인디북)라는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영새부!옥새여 영원하라.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종교플러스] 선암사 부속유물등 7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암사 석마모니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보물 제1419호)과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 및 백자류 등 7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또 해외로 반출됐다가 환수된 ‘수월관음도’ 등 2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와 함께 경북 경주시 인왕동 및 교동 일원에 있는 ‘경주 일정교지·월정교지’를 사적 제457호로 지정하는 한편,‘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를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 서울갤러리서 ‘선사토기 재현’ 개인전 이종능씨

    “흙과 불이 제 인생의 친구가 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얻은 것도 많지요. 한 때는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선사(先史)시대 토기 재현을 필생의 업으로 살아가는 도예가 이종능(48)씨가 ‘도예 20년’을 결산한다.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태평로1가 서울갤러리에서 세번째 개인전을 여는 것. 그의 가마터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리에 있는 ‘도천방(陶天房)’. 말 그대로 ‘도천(陶天)’을 신앙처럼 여기며 오로지 ‘흙·불’과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얼마전 어차피 인생은 서론·본론·결론 등 세토막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서론 인생’을 매듭짓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꽤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본론’이 저를 기다리고 있지요. 앞으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알리는 그런 인생이 될 것입니다. 현재 일본 도쿄 등 몇몇 도시에서 순회전을 계획하고 있지요.” 작품 주제가 ‘선사 토기 재현’이어서 그런지 언뜻 보기에는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본뜬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빚어 순수한 아름다움을 불어 넣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옛 선현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예술가적 쾌감이요, 행복의 극치라고 부연한다. 경북 경주 출신인 그는 부모의 권유로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생각은 딴데 가 있었다.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가마터와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기법을 익혔다. 특히 1983년 지리산에서 분청사기 파편 태토(胎土)를 수집·연구하면서 선사토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제주도·태국의 남방문화의 흐름을 추적했다. 또 중국·몽골·실크로드의 명요(名窯) 산지를 찾아 북방문화권을 연구하며 자신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흙을 빚을 때는 수험생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도자기 이름을 ‘토흔(土痕)’이라고 이름을 짓고 상표등록까지 했지요.” 농사짓는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된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 토기와 청화백자 등 70여점과 도자기 벽화 여섯점을 선보인다.‘내 어릴 적에’‘출산장려’ 등 작품마다 붙여진 이름이 눈길을 끈다.‘흙과 불과 나의 인생’이라는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티나 모도티/마거릿 훅스 지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와 ‘칼라 릴리’ 사진을 찍은 20세기 최고의 여성 사진가이자 ‘망치와 낫’‘깃발을 든 멕시코 여인’을 찍으며 20세기 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활동가였던 티나 모도티 평전.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딸인 그가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영혼의 고향으로 여긴 멕시코로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과 함께 이주한 1992년 이후부터. 당시 멕시코는 디에고 리베라를 중심으로 벽화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로 그는 멕시코 예술가·혁명가들과 교류하며 사회적 변혁의 요구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2만 7000원.
  • [책꽂이]

    ●이판사판 화엄경(성법스님 지음, 정신세계원출판국 펴냄) 화엄경의 세계는 부처와 중생, 부처와 보살, 부처와 세상, 부처와 물질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결국 존재 자체가 부처님이 되는 세계를 일컫는다.‘이판사판’은 원래 화엄경에서 나온 것으로 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대한 판단을 말한다.1만 1000원. ●로마제국 흥망사(에드워드 기번 지음, 황건 옮김, 청미래 펴냄) 로마 제국을 학문적으로 다룬 고전적인 역사서 ‘로마 제국 쇠망사’의 주요 내용을 발췌, 요약한 축약판.18세기 영국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에드워드 기번이 12년에 결쳐 집필한 역작으로 애덤 스미스, 네루, 처칠, 러셀 등이 지혜의 원천으로 삼았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에서 아우렐리우스황제 재위까지의 오현제 시대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거쳐 동로마 제국의 성립과 멸망, 이슬람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 전체 역사를 다룬다.2만 3000원. ●레이첼 카슨 평전(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 펴냄) 미국의 여성 과학자 레이첼 카슨 평전.1962년에 출간된 저자의 ‘침묵의 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켜 세계 곳곳에서 살충제 사용 금지법을 만들도록 했고,‘지구의 날’(4월22일)이 제정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카슨은 유방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고, 알을 낳아도 부화시키지 못하는” 자연파괴 사례를 조사하고 폭로했다.2만8000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단청(한석성 구술, 박해진 정리, 현암사 펴냄) 한국 고대 단청의 면모를 보여주는 고구려 고분벽화, 위는 푸르게 아래는 붉게 칠해 조화를 이루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의 원칙, 임진왜란을 전후로 크게 바뀌는 조선시대 단청 등에 대해 설명. 우리나라 단청무늬의 핵심인 ‘머리초’, 선명하고 강렬한 느낌이 단청 중에서 으뜸인 ‘휘(暉)’, 기둥에 비단옷을 두른 듯한 ‘주의초(柱衣草)’등 짜임새 있는 무늬와 선명한 채색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성석은 구한말 거의 모든 궁궐 단청을 주관한 아버지 동운 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단청 명장이다.2만원. ●중국의 역사와 문화(하재근 지음, 최윤진 그림, 자인 펴냄) 중국의 방대한 역사와 문화를 촌철살인의 유머와 그림으로 풀어낸 교양만화. 인터넷 신문의 논객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황하문명을 알아야 동양이 보이고 한국문화가 보인다고 말한다. 중국과 우리를 애써 분리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황하문명에 속해있다는 걸 당당하게 인정할 때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씌어졌다.1만 1000원. ●피아졸라(마리아 수사나 아치 등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군부독재에 의해 탄압받던 탱고를 민중의 음악으로 부활시킨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야기.‘아르헨티나의 거슈윈’으로 불리는 피아졸라는 탱고를 댄스홀에서 콘서트홀로 가져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골목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을 위해 탄생한 춤곡을 클래식·재즈와 결합시킴으로써 탱고의 역사를 바꾼 것. 그는 자신의 음악을 전통탱고와 구분되는 ‘누에보 탱고’라 불렀다. 피아졸라의 아버지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음악교육을 시켰고, 피아졸라에게 반도네온(라틴음악용 소형 아코디언)을 사줘 탱고인생의 길을 걷게 했다.2만 5000원.
  • 지하철역 벽화 ‘지재권’ 다툼

    지하철역 벽화 ‘지재권’ 다툼

    지하철 역사에 걸린 벽화를 놓고 원작자와 서울시, 설계자, 건설사가 얽히고 설킨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1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한국풍속화가 이모(70)씨는 지하철 3개 역사에 설치된 장식벽화 5점에 대해 “작품을 무단도용,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서울시장, 도시철도공사 사장, 설계사인 L건축의 대표를 상대로 지난 8월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원작을 응용한 설치물 계약의 적법성 여부와 계약이 무효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를 놓고 주목된다. 문제가 된 타일모자이크 벽화는 2001년 설치된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의 ‘한강이야기’(2.5mX30m),6호선 약수역 ‘장생도’(2.5mX15.8m)와 ‘생동’(2.5mX7.5m), 그리고 7호선 학동역 ‘추’(2.5mX9.0m), 학(2.5mX16m)이다. 서울지하철본부의 모 팀장은 “턴키 입찰방식으로 설계ㆍ시공됐기 때문에 시는 발주만 했을 뿐 벽화의 도용 여부를 확인할 의무나 책임은 없다.”면서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대부분의 미술 장식품은 사전에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작품비를 주고 설치했지만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장식벽화는 건축설계자가 자체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른 당사자들의 주장은 약간 다르다. 실제 설계에 따라 S건설사는 입찰을 통해 부산에 본사를 둔 또 다른 S사에게 시공을 맡겼다. 그런데 돈을 줘야 할 S건설사가 그 뒤 부도로 도산하고 말았다. 원래 설계를 담당한 L건축 관계자는 “벽화를 설치할 당시 건설사, 타일작품을 다루는 측과 설계 책임자로 3자가 만나 정식 계약을 맺었다.”면서 “예술작품을 응용한 타일설치 작품의 경우 흔히 원작자 외에 설치물 홍보 등을 업무로 하는 중매인이 있어 관례상 그와 계약했는데 무단도용은 말이 안돼 재판결과에 따라서는 명예훼손 소송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하프타임] CJ클래식 우승컵 도자기로 제작

    29일 제주에서 개막되는 미여자프로골프(LPGA)투어 CJ나인브리지클래식 우승컵을 경기도 이천의 한 도예공방이 도자기로 제작했다. 컵에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한편 ‘버디퀸’ 박지은(25·나이키골프)은 28일 열린 프로암 경기 17번홀(파3·165야드)에서 티샷을 그대로 홀 안에 떨궈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 약 200만원 상당의 오메가 손목시계를 상품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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