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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쌀 사상초유 대농/정부,추가수입 않기로

    ◎총 3천522만섬 예상/3백평당 생산량 483㎏… 최고 기록 올해 쌀 농사가 유례없는 대풍작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이에 따라 올해 쌀 추가수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농림부는 6일 작황조사 결과 올해 쌀 생산량이 3천5백22만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이는 지난해의 3천2백60만섬에 비하면 2백62만섬(8.0%),올해 정부가 정한 목표량 3천3백70만섬보다 1백52만섬(4.5%)이 많다. 농림부는 3백평당 예상 생산량이 올해 483㎏으로 건국이래 최대생산량(4천2백3만8천섬)을 기록했던 지난 88년의 481㎏을 앞서는 사상 최대 풍작이라고 밝혔다. 88년의 벼 재배면적은 1백26만㏊로 올해의 1백5만㏊보다 20%(21만㏊)가 많았다. 지난 9월 15일을 기준으로 전국 5천개 필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작황조사 결과 1㎡당 평균 22.3포기가 자랐고,포기당 20.2개의 이삭이 달렸으며,이삭당 69.3개의 낟알이 열려 1㎡당 평균 낟알수는 3만1천2백개였다.이는 평년의 2만9천5백개보다 5.8%,지난해의 3만개보다 4%가 늘어난 것이다.〈염주영 기자〉
  • 사살공비 주머니엔 도토리·벼이삭…/무장공비­수색현장 이모저모

    ◎유림,실탄한발 따로 보관… 자살용 추정/군복차림 성묘객 공비의심 연행 소동/수십년 전통 모전리 노래자랑 첫 취소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군 수색대는 지난 28일 공비 1명을 사살한 것을 계기로 수색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8일 상오 사살된 부함장 유림(39)의 실제 모습이 몽타주와 다른 점이 많아 혹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찰조원(27)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한때 나돌기도. 몽타주에서는 유림이 매부리코에 살이찌고 머리숱이 많은 것으로 돼 있으나 매부리코만 일치할 뿐 볼에 살이 없고 머리가 길었기 때문. 군은 『몽타주는 진술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어서 실제와 똑 같지는 않고 10일동안의 산속생활로 수척해졌을 것』이라고 설명. ○…유림의 군복 주머니에서는 야산이나 논에서 채취한 도토리와 벼이삭들이 나와 도피생활 중 휴대식량이 떨어져 배고픔에 시살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또 발에 습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양말속에 러닝셔츠를 찢어 만든 발싸개를 한 뒤 비닐로 감쌌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감색의 두꺼운 털 스웨터를 2개 겹쳐 입기도. 왼쪽 상의 주머니에서는 진통제인 국산 「타이레놀」 3알과 포장지 한개가 발견됐다. ○…유림은 사살 당시 국군복과 비슷한 위장복을 입고 있었으나 계급장이나 명찰은 없었으며 총번과 제조연도가 없는 M16소총 한정,실탄 91발과 캐나다제 브로닝 권총 1정,권총실탄 7발을 소지.소총과 권총에 결합된 탄창에는 실탄 1발씩이 각각 장전돼 있었고 군복 상의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최후수단으로 자살할때 쓰려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M16소총 실탄 1발이 들어 있었다. ○…군은 공비들이 주로 새벽을 이용해 도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지난 22일 함장 정용구 등 공비 2명이 사살된 시간이 상오6시15분쯤이었던데 이어 부함장 유림도 28일 새벽 비슷한 시간에 이동하다 사살됐기 때문이다.24일과 25일 새벽에도 공비 2명이 모습을 나타내 아군과 교전을 했다. 군은 공비들이 밤샘 매복에 지친 아군의 경계가 다소 느슨해질 것이라고 판단,새벽에 이동하는 것으로 분석. ○…28일 상오9시20분쯤 강릉시 성산면어흘리 시내버스 종점에서 20대 남자가 군복하의에 티셔츠를 입고 군화를 신은 채 서성거리다 무장공비로 의심받아 경찰에 연행됐으나 조사 결과 부산에서 온 성묘객으로 판명. ○…모전1·2리 등 강동면 주민이 추석 때면 마을어귀의 농협회관에 모여 낮에는 배구대회 등 체육대회를 열고 밤에는 노래자랑을 하던 수십년된 행사가 올해는 무산됐다. 모전1리 김옥진 할머니(70)는 『추석 때 체육대회와 노래자랑을 거른 것은 내 기억으로 올해가 처음』이라며 아쉬워했다. 칠성산 주변 주민도 밤이 되기 무섭게 문을 닫고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등 이 일대에서는 한가위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무장공비 잔당 소탕작전으로 강원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이 일부 어려움을 겪을 전망. 대회조직위에 따르면 10월7일부터 12일까지 강릉시 사천면 진리 앞 바다에서 요트경기가 열릴 예정이나 군 작전지역이어서 선수단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 때문에 15개 시·도 선수단 가운데 미리 현지에 도착한 대전·경기·경북·인천팀은 연습을 하지 못해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 한강하류서 청동기유적 첫 발굴

    ◎한양대 박물관,부천 고강동서 집터 등 찾아/토기는 중류 여주 흔암리 출토품과 유사/돌칼·벼이삭 등 나와 석기 농경흔적 뚜렷 경기도 부천시 고강본동 산90일대 해발 73m의 야산에서 기원전(BC)900년쯤의 움집자리를 비롯한 청동기시대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다.이 유적은 당시 청동기시대 사람이 벼농사를 지어 삶을 꾸린 농경문화와 관련한 마을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양대박물관(관장 김병모)팀이 지난 7월10일 발굴에 들어가 현재 작업을 계속중인 이 유적은 4기의 움집터와 1기의 돌널무덤으로 되어 있다.움집터의 경우 모두 4기 가운데 2기는 완형이었으나,나머지 2기는 절반쯤 망가졌다.완형의 움집자리크기는 1호집자리가 장축 6.4m,단축 3.2m,2호집자리는 장축 6.2m,단축 3.4m.발굴결과 집자리 바닥은 움을 파고 나서 생토층을 그대로 두고 숯을 깔아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주거지에서는 돌도끼 2점을 비롯,돌촉 5점,반달모양 돌칼 4점,돌끌 2점,돌칼 1점,토기 5점,옥 1점 등이 나왔다.이 가운데 반달모양 돌칼은 벼이삭 등 농작물을 수확하는데 사용한 석기로 농경흔적을 뚜렷이 보여주었다.청동기시대 한강하류에서 벼농사흔적은 이웃 김포에서 출토된 탄화미가 뚜렷이 입증하기 때문에 고강동 청동기 사람도 벼농사를 지었을 가능성이 많다. 한강중류인 경기도 여주 흔암리에서 집자리를 포함한 마을유적이 발견되었으나 한강하류에 청동기시대 집자리가 발견된 것은 부천 고광동 유적이 처음.더구나 고광동 유적에서 나온 곤아가리(구순각목) 및 구멍무늬(공열문)장식으로 이루어진 토기는 여주 흔암리 토기와 거의 비슷했다.이같은 토기문화는 한반도 동북지방 토기문화와 서북지방 토기문화가 한강유역에서 복합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낮은 구릉과 평지로 이루어졌다.지형으로 보아 청동기 사람이 벼농사를 지으면 대규모 마을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지역.한양대박물관은 아직 발굴하지 않은 1기의 집자리 이외에 더 많은 집자리가 이 지역에 산재했을 것으로 보고 연차적으로 조사발굴지역을 확대,한강하류의 선사문화를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이와 함께 여주 흔암리 등 한강유역의 다른 청동기유적에 나타난 문화현상을 비교연구하는 작업도 병행키로 했다. 발굴책임자인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한강하류나 경기 서부지역에서 처음 나타난 청동기유적이 바로 고광동 움집터』라고 말하면서 『사적으로 지정하여 영구보존하는 문제와 향토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적공원조성문제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쌀 3천3백만섬 수확 무난/작황 좋아… 수급 지장 없을듯/농림부

    올해 벼작황이 순조로워 앞으로 기상상황이 좋을 경우 당초 목표했던 쌀 수확량 3천3백70만섬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쌀 재배면적은 87년 이후 9년째 계속 감소하고 있으나 감소폭은 헌저히 줄어들었다. 농림부는 19일 최근 농촌진흥청이 전국 1천1백58필지를 대상으로 벼 생육상황을 조사한 결과,논 한평당 자라난 벼 포기수가 78.4포기,포기당 이삭수는 18.4개로 비교적 좋은 작황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포기수는 4.8포기,이삭수는 0.1개가 증가한 것으로 지난 88년 4천4백20만섬의 수확을 보인 대풍작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병·해충의 발생면적도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줄어 올해 전체 작황은 앞으로 태풍과 같은 재해가 없고 갑작스런 병충해의 확산만 없을 경우 올해 목표치 3천3백70만섬은 무난히 넘어서 쌀 수급에 별다른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농림부는 덧붙였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지난해의 1백5만5천8백86㏊보다 6천여㏊ 줄어든 1백5만㏊로 최종 집계됐다.
  • 쌀 자급기반 흔들려선 안된다/양해영 논설위원(서울논단)

    장사꾼들의 후각이야말로 가히 천부적이라 할만하다. 특히 쌀문제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벼이삭이 채 나오기도 전에 그해의 풍흉을 예측,입도선매까지 했던 그들이다.최근 쌀유통업자들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쌀재고량을 훤히 들여다 보고 매점매석에 열중하고 있다.그래서 쌀값이 1년전보다 21%이상 폭등한 상태다. 가격문제가 아니더라도 쌀상황의 급박함을 정부 스스로가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는 사정에 이르고 있다.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타결에 따라 올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쌀 44만섬의 미질을 6월중에는 결정해야한다.바로 여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정부는 UR타결때 수입의무물량은 모두 주식용이 아닌 가공용으로 수입하겠다고 밝힌바 있고 지난해에 도입한 35만섬도 전량 가공용이었다.그러나 올해는 가공용이 아닌 주식용으로 들여와야 할 입장이다.쌀제고가 심상치 않은 때문이다. 정부보유 쌀재고량은 지난 90년 1천4백만섬(10월말기준)을 정점으로 해서 93년에는 1천2백63만섬.지난해에는 4백72만섬으로 급격히 감소해왔으며 올 10월말 재고는 겨우 2백78만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적정권고량의 절반수준이다.우리는 지난 14년여동안 큰 흉작없는 쌀농사를 지어왔고 쌀에 관한한 걱정없는 시대를 지내왔다. 그러나 바로 쌀풍족시대를 거치면서 소비자나 정부 할것없이 모두가 쌀,더 나아가서는 쌀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대처해온 결과 지금과 같은 쌀문제에 직면하게 이르렀다.중요한 하나의 예로서 쌀재배면적과 생산량의 감소추세를 들 수 있다. 재배면적은 10년전인 87년 1백25만7천㏊였다.작년에는 1백5만㏊였으니까 연간평균 2만5천㏊씩 축소됐고 지난해에는 불과 1년동안에 4만7천㏊가 줄어들었다.생산량도 4천만섬대에 육박했던 것이 작년에는 3천2백60만섬으로 절정기 때보다 20%이상 감소됐다.이에따라 90년만해도 1백8%에 이르렀던 쌀자급률이 92%로 떨어져있다. 이런 추세는 쌀생산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쌀문제가 이제 풍족시대에서 다시 부족시대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쌀값안정과 재고부족을 걱정한나머지 의무수입량 모두를 주식용으로 도입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주식용쌀수입이 농민심리에 미칠 영향과 그에따라 자급기반이 더욱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올농사를 지내봐야겠으나 내년에는 최소수입물량인 53만섬을 초과해서 수입해야 할 사정에까지 이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른바 고소득시대의 진입을 전후해서 주식으로서의 쌀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경향이 짙다.심지어는 쌀 몇백만섬 수입해봤자 돈으로는 얼마되지않고 국내가격보다 5분의 1값에 불과하니 굳이 1백%의 자급률을 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식량의 무기화,안보적 차원의 식량확보문제는 물론이고 식량에 있어서 자급기반이 한번 무너지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산업화시대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퇴색되고 있으나 오히려 산업화될수록 주곡자급의 절대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직접적인 가격지지정책에는 제약이 있으나 정부의 노력여하에 따라 다각적인 방안이 있을 수있다.정부는 쌀문제를 과소평가 하지 말고 쌀자급을 위한 종합적이고 정밀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그 대책속에는 경작농지의 추가적 감소방지,농민소득의 보장문제,기술개발을 통한 단위생산량증대와 함께 생산비절감등이 종전과는 다른 안목에서 다뤄지기를 기대한다.산업화를 후방에서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농업이다.따라서 선진국치고 주곡을 자급 안하는 나라는 없다.일본의 경우 쌀자급을 이루면서도 휴경논이라도 결코 타용도로는 전환하지 않는다.만일을 위해서다.우리는 작년 1년동안에만 1만1천㏊의 논이 도로나 공장건설등 타용도로 없어졌다.그런 단기적인 안목으로는 식량의 장기적인 자급기반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 “한톨이라도 더”… 벼이삭 씻기 안간힘/수해 복구 현장

    ◎갯벌로 변한 농경지 보며 절망·한숨/붕괴된 강둑 쌓기에 국교생도 한몫/음료수·빵등 간식 제공 “따뜻한 인정”/전화불통으로 피해량 확인 안된 곳도 ▷예산◁ 8월의 마지막 휴일인 27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무안천 제방 복구공사 현장. 민·관·군 1천여명에 휴교를 맞은 오가국교를 비롯,부근 6개 초·중·고교생 1백20명은 뒤엉켜 복구작업을 하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폭 24m,높이 6m의 우람한 강둑이 2백20m나 순식간에 떠내려 간 천재 앞에 세상모를 나이인 초등학생들 마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처럼 흘러내리는 흙더미를 담은 양동이를 묵묵히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어린 학생들은 연신 흘려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는 바람에 온몸이 온통 흙투성이였다. 예산군 일대 오가면과 신암면일대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현장에 중장비의 굉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이날 상오 9시. 태풍 재니스가 물러나며 날이 개자 전 공무원에게 긴급 복구령이 떨어졌고 예산군청 직원 1백73명이 현장에 달려 왔다.이어 육군 32사단 8연대 3대대 장병들이 덤프 트럭 6대 등 중장비를 동원해 속속 줄을 이었다. 하늘의 뜻으로 밖에 돌릴 수없는 엄청난 재난복구에 민간 건설업체도 즉각 뛰어 들었다. 예산읍의 대산건설은 불도저 1대,대형 포클레인 5대,덤프트럭 15대를 곧바로 투입하면서 고요했던 참사의 현장은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집과 농경지를 소용돌이치는 흙탕물에 흘려 보내고 간신히 빠져나와 넋을 놓았던 주민들도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마을 뒷산 임시대피소에서 어른들의 낙담을 말없이 바라보던 초·중·고생들도 힘을 합했다.천방지축으로 뛰놀 어린이들도 모래를 담을 주머니를 날라다 주고 말뚝을 전달해주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예산군청 유병(44)토목계장은 『복구작업에 필요한 흙은 대형덤프트럭 2천4백대 분량인 2만4천㎥로 웬만한 산을 옮겨 놓는 것같은 엄청난 작업』이라며 『주민들도 하루빨리 의욕을 추스려 복구의 의욕을 되찾길 빈다』고 말했다. ▷여주◁ 27일 북내면 천송리 천송마을앞 여주∼원주간 42번국도.군장병과 공무원·주민등 3백50여명이 나와유실된 도로 복구 작업을 벌였다. 동원된 포클레인 6대는 굉음을 내며 2m 깊이로 푹파인 도로속에 흙을 퍼담고 있었고 20대의 덤프트럭은 자갈등을 실어 날랐다. 청송마을 주민들은 고생하는 장병과 공무원들을 위해 음료수와 빵등 간식을 제공하며 이들과 마음을 함께 했다. 이날 복구작업에 나선 55사단 소속 김상현 상병(23)은 『교통이 두절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왔다』며 『다른 지역의 피해도 빨리 복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북내면 금당천등 여주지역 소하천 주변에서도 읍·면별로 유실된 제방에 마대와 골재를 쌓는등 복구작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하지만 민·관·군의 이같은 복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주 주민들이 입은 상처는 너무도 컸다. 대신면 당산리 당산벌에는 막 패기 시작한 푸른 벼이삭들이 누런 황토물로 덮여 있고 곳곳에는 죽은 가축과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오씨(54)는 『그동안 피땀흘려 가꾼 벼들이 줄기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며 『이번 농사를 망쳐 영농자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한강 건너편 흥천면 백석리에서 8만여평의 땅콩밭을 재배하고 있는 신명수씨(60)도 『심어둔 땅콩 모두 떠내려갔다』며 『이같은 수해는 처음본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이 마을은 업친데 덮친 겪으로 남한강으로 유입되는 후포천이 불어난 강물로 역류하는 바람에 농경지가 산사태가 난 것처럼 폐허로 변해 버렸으나 아직까지 전화가 불통돼 정확한 피해상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편 여주지역에선 이번 호우로 농경지 1천37㏊와 가옥 56채가 침수됐으며 도로유실 34곳,산사태 3곳,소규모시설파손 50곳등 21억여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 고난의 시절/대약진 운동·문혁때 갖은 고초(두만강 7백리:4)

    ◎1957년 대약진/조선족 농토 모두 국유화… 군사훈련 시켜/1966년 문혁/5만여 동포 간첩·반혁명분자 몰아 고문 고난의 시대와 오늘 요즘 연변의 향진 일선 간부들은 저녁이면 술에 곤죽이 되어 돌아온다.그리고는 아침에 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출근하기가 일쑤여서 위와 간을 버렸다고 한다.그 이유는 상부에서 지시는 내려오고 농민들은 치받아 중간에서 농민들을 달래느라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래서 간부질(노릇)하려면 술재간을 키워야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이 모두 세월 탓이다.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간부들에게 대든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화룡시 남평진 유신촌에 사는 유택모(68)노인은 요새 간부들을 미더워 하면서 개혁개방의 시대에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개혁시대 보람 느끼며 『간부들도 우리네 사정을 알고 위에는 슬슬 거짓말도 하는것 같습데다.우리에게 이롭게 하자는 거디요.고생 끝에 낙이라고 좋은 세월이야요.그리고 등소평 동지는 정말로 감사한 분이십네다.개혁개방을 하니 얼마나 좋습네까.문화혁명 때에 가을을 해도 두달씩 했고 온 하루 뼈 빠지게 일 해도 5전(벼 한근이 9전이였다)수입이였디요.보리고개를 넘기 바쁘게 식량이 떨어지고….도거리(땅을 개인한테 나누어 줌을 이르는 말)를 하니 일년내내 하던 일도 세네달이면 되고 산량이 많이 나고 정말 옛날 지주보다도 훨씬 잘살게 됐디뭡네까.농한기면 버섯이며 약재들을 캐서 팔아 목돈을 쥐기도 하디요.작년에 송이를 따서 열흘 사이에 큰 돈을 벌었다구요.문화혁명땐 자본주의 복벽을 방지한다고 버섯은 고사하고 닭알 한알 팔지 못하게 했으니 원…』 그러나 불모지를 가꾸어 먹고 살만하게 된 조선족 들에게 지난날 불행은 크게 두번 찾아왔다.중국의 조선족들이 못자리판을 이룬 연변에서 「대약진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57년이다.이 때에 간부들은 요즘과 같은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진짜 거짓말을 식은죽 떠 먹듯 내뱉았다.모든 개인의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3년안에 영국을 따라잡는 다고 말대포를 펑펑 쏘아댔다.그 거짓말을 참말로 알아들은 연변 사람들은 몇년 후 차를 사게 되면누가 운전을 할 것이냐를 너나 없이 걱정할 정도였다.꿈도 참 야무졌다. 대약진 운동에 따라 향을 인민공사,촌을 대대,자연부락을 소대로 조직했다.또 농민군사화를 위해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온 마을이 집체식당에서 끼니를 꾸렸다.당시 생활은 집체화여서 먹는 것은 물론 잠자리 까지도 합숙화를 시도했다.농기구의 기계화 명목으로 손수레 바퀴축에 마구잡이로 베어링을 넣었다.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었는데,약진운동은 마치 그 손수레 같은 것이었다. 화룡시 덕화진 천중백(65)노인이 회고하는 당시 연변 농촌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수운 꼴이 많다.그러나 어디 웃음인들 웃을 여력이 있었겠는가….하여튼 그 절박했던 어려운 시절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 보았다. 『하루 진종일 일을 하고도 밤이 이슥해야 잠을 잤디요.밤에는 학습과 논쟁(토론)을 하라고 기래요.눈을 비비면 새벽부터 군사훈련을 시켰댔는데,농촌사람들이 제대로 할리 만무 아닙네까.아 글쎄 「우로 돌앗」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꾸만 위켠으로 돌아 두만강을 향합데다.훈련 받는데서 보면 위켠에 두만강이 있었댓시요.기리니끼리 농사일도 안되고….해봤자 내 일이 아니니까 건성건성이었디요.그런데 명령은 주살나게 떨어져 정신차릴 틈도 없습디다』 ○“3년내 영추월”외쳐 대약진 운동은 허상에 불과했다.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위에서 농사땅 깊이갈이(심경)를 명령하면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곡식을 그대로 둔채 흙을 덮어버렸다.그리고 나서 다음해 씨앗을 뿌리면 곡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땅속에 썩지도 않은 콩대 등이 그대로 깔려있으니 흙이 들떠 곡식이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보고는 늘 전량 완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맞장구를 쳤다.깊이갈이를 해서 1㏊당 36만근의 수확은 거뜬할 것이라는 맞장구였다.36만근이 수확기에 가서는 결국 1만근도 안되게 줄지만,콩꼬투리 하나 남기지 않고 실어가버렸다.먹을 양식이 남지 않았다.그래서 이삭이라도 주워올까 하면,또 명령이 떨어졌다.발갈이요,추비요 하고 다그쳐 제것이라고는 곡식 한톨 가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66년 5월부터 대륙을 휩쓸어 버린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을 뺨쳤다.연변에서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분자,간첩,우파,지주,부농,나쁜 분자,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반동적 지식분자 등의 혐의로 투쟁을 받은 사람은 무려 5만여명이었다.간부,인테리는 모두 투쟁 대상이었다.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거나 편지거래가 있었다면 간첩이고 심지어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용정시 삼합진 북흥의 한인수는 사람들이 목에다가 충(모택동한테 충성한다는 뜻으로 심장을 상징하는 복숭아형 빨간 판에 충자를 쓴 패쪽)자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고 『병아리 잡아 먹는 개처럼 패쪽은 왜 메고 다니는가』라고 해서 반년동안 투쟁을 당했다.그리고 한 무식한 할머니는 모택동의 어록「최저한도의 지식분자」를 「쇠좃 한동이」로 잘못 알고 외우다 1년동안을 욕보았다.한어를 모르는 송석봉은 모두들 한어로 구호를 부르는데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나두…』하고 한마디 외쳤다가 한달동안 끌려다녔다.송석봉의 별명은 지금도「나두」다. 투쟁수단의 가혹정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매는 약과,납을 녹여서 먹이고 쇠를 달구어 물리고 널판에 못을 박고 그 위로 걷게하고 온돌방에 가두어놓고 물 한모금 안주고 불을 때서 데우는 등의 고금 고문수단이 총동원 되었다. ○자살하는 사람 속출 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조창선은 불찜질을 당한 그날 밤 두만강 건너 벼랑밑에 가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시체가 발견되었는데도 죽은 사람의 허리띠가 조선 상표가 붙은 것이라는 것을 트집잡아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못가져 오게 했다.결국 조선에 사는 친척들이 매장을 했다.지금도 묘는 강 건너에 있다. 문혁 당시 주도권을 잡고 사람잡이에 날뛴 사람은 대개 일자무식의 농민,노동자,군인이었다.그들은 노농병선전대라는 이름으로 농촌과 도시의 공장과 직장을 쥐고 흔들었다. 그들의 무지의 실례가 하나 있다.당시 소수민족의 언어를 한어화하였는데 조선말도 한어를 기준으로 고쳤다.연변인민출판사로 들어온 노동자선전대는 조선말 고유어를 한어로 고치는데 요일도 한어화 하여 성기로 고칠것을 주장하고 나섰다.요일이 성기로 되면 월요일은 성기일,화요일은 성기이,일요일(성기일)은 또 월요일과 똑같은 성기일이 될것인데 어떻게 가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걸려 결국 포기되었다.만약 이런 걸림돌이 없었더라면 문화혁명 10년동안의 3천6백55일은 모두 성기로 변했을 것이다.
  • 강사이 오가던 인정(두만강 7백리:2)

    ◎60년대초엔 북한냉면 먹으러 수시 왕래/물길러 오가던 아낙네들 문화혁명뒤에 사라져/용정 백금발전소 전기는 아직도 상계리에 공급 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김 노인은 마을 앞 강건너 북한 땅인 무산군 화평리(화평리­옛 이름은 봇더기)에 사는 조카잔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어느날 강에 나갔다가 강 건너에서 목욕을 하는 조카를 보았다.아무 날 잔치를 한다고 높은 소리로 알리더라는 것이다.그런데 미처 출국 수속을 하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그는 잔치날 강언덕에 서서 형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가깝고도 먼 이웃땅 참으로 두만강 양안의 마을은 가까우면서도 멀다.거리로 계산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국법으로 따지면 멀다.그러나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벽을 쌓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눈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대면 두만강은 보통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국경선 구실을 변변히 못했다.강 양쪽의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통행증이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이 왕래를 했다.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사람들은 냉면 먹으러 대안의 종성으로 다녔다고 한다.개산둔에 가야 식당추념들을 할 수 있었는데 20여리나 떨어졌고 국수맛도 엉망이었다.그래서 가까운 강건너로 가면 걸음도 덜고 입맛도 돋굴 수 있었으니 진짜 꿩 먹고 알 먹기였다.더구나 종성의 냉면은 함경도에서도 제일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연변 텔레비전방송국 아나운서 박홍섭씨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 강을 건너 친척 잔치에 참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달을 놀다가 돌아오려니 그만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디 뭡네까.교두로는 감히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이 다 풀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디요.그래서 두껍고 긴 널빤지를 가져다 량켠 얼음우에 걸쳐놓고 허리에 바줄을 동여매고 건너왔댔시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북한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국경선은 쌀쌀한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그러나 1970년 주은래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후 완화되긴 했다.겨울이면 두만강에서 아이들은 함께 썰매나스케이트를 타는 경우도 있다.말하자면 중국과 북한의 국제경기라 하겠다. 용정시 백금향 동광촌 제3촌민소조(옛명 현암동)는 10여호 오붓한 마을이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마을에서는 두만강물을 길어 음료수로 했다.겨울에 강이 얼면 아예 대안의 북한 상계리에 건너가 물을 길어왔다.온 마을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국경을 넘어 이국으로 간다.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출국했다간 입국했다.아마 중국에서 출국 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을 꼽으려면 이 마을 아낙들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삼 내내 펄럭거리고 다니자니 미안하기 짝없더만요.상계리 분들이 얼굴한번 찡그리는 일없이 반겨 줄수록 죄송했디요.그래서 가끔 사탕,과자며 과일이며 떡을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그러면 상계리 분들은 「이러지 마시라우요.엎음 갚음이랍니다」고 기래요.「우리가 쓰는 전기가 백금발전소의 전기 아닙니까」라면서….물고생을 무던히도 했디요.그때는 언제면 집에서 물을 받아 먹나고 학수고대했는데….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뽐프를 놓아주어서야물동이를 팽개치게 되었다구요.그런데 정작 물고생을 덜고 나자 상계리의 고마운 분들이 그리워집디다.물을 긷는다는 핑계로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세울 명목을 잃은거디요. 동광 마을 김씨가 들려준 국경을 드락거릴 시절의 회고담이다. 북한 땅 상계리와 서쪽으로 마주한 용정리 백금향 안개골에 들어선 백금발전소는 7백리 두만강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소다.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처 이호성과장이 안개골을 답사하고 발전소 건설구상을 구체화했다.그해부터 착수한 공사는 만 10년이 걸려 지난 1970년 5월부터 정식 발전을 시작했다.그런데 상계리는 조개형국으로 된 언덕이 북으로 뻗어내려 두만강이 병풍처럼 둘러선 두렁바위(둘러선 바위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를 핥으며 10여리를 굽이 돌아간다.강을 따라 전깃줄을 늘리려면 인력과 물력 낭비가 엄청나 사전에 북한측과 협의하고 곧바로 조개언덕으로 전선대를 세우게 되었다.그 보상으로 상계리와 상계리에 있는 북한 공전소에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안개골이 전기골로 백금발전소 퇴직간부 서현석(67·경상북도 영천군 고견면 태생)씨는 『예전에 안개골은 이름 그대로 늘 안개에 묻혀 있었수다.발전소가 세워진 후로 안개골은 별무리가 내려 앉은 격이 되었지.안개골이 전등골로 탈바꿈한 셈이우다』라고 말했다. 누누천년 이 땅을 적시며 흘러온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는 테였다.재난을 덮어씌우고 혈육간의 이별을 주고,그래서 아리랑고개 다음 가는 눈물이 강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반 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정복하고 두만강문화를 창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문명시대가 열리면서 두만강 푸른 물이 누렇게 혼탁해졌다.그래도 두만강연안 사람들은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백금향 백금촌 제2촌민소조 박길남(함북 무산군 풍경면 소학동 태생)노인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는 꿩고깃국에 햇 이밥으로 후더운 접대를 했다.연변에서 평강벌 입살이 제일미라 만주국시기 공품이었다고 하지만 백금의 입쌀도 못지 않았다.최몽필잠장은 이밥맛이 어떠냐고 묻고는 수입해온 종자라고 부언했다. 『백금은 연변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고 서리가 빨리 내려 논벼산량이 많이 떨어지는 땅입네다.그런데 백금 제4촌민소조 분이 어느 해 가을 강을 건너가 조선(북한)논에서 잘 영근 벼이삭을 몰래 가져 왔댔습니다.이듬해 그것을 심었는데 그 품종이 지금 백금에 많이 퍼진겁네다.서리가 빨리오는 고산지대에 맞는 우량품종을 수입 한 걸로 봐주시라요.그 다음부터 좋은 소출을 내게 되고 맛도 훨씬 좋아졌고…』 ○봄이면 과일꽃 만개 지난해 11월 2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후더운 정을 한가슴 지니고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을 찾았다.시루형국의 두개의 시루봉사이 안침진 곳에 터를 잡고 강건너 오국산성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모여 앉은 대소 과수농장은 봄이면 과일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싱그러운 사과향기에 젖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된다.현재 1천7백명의 인구에 4백여명 노동자를 가진 이 농장의 과수밭은 4백50㏊.국광,홍성,진홍,계광 등 20여가지 사과품종의 총산이 4백50만근이라고 했다. 광복전에 대소 땅은 거의가 이씨 성을 가진 지주 차지였다.천성이 부지런한 이씨 지주는 북한땅 길주에서 사과묘목을 사다가 아래 시루봉과 웃 시루봉줄기가 만나는 움푹지고 양지바른 비탈에 심었다.그리고 식구들과 소작인들을 총 동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다.사과원을 만들면서 이씨지주의 며느리는 일에 지쳐 죽기까지 했다.이씨지주는 며느리의 묘를 사과밭속에 썼는데 지금도 임자 없는 묘가 쓸쓸히 남아있다.그러나 광복이 나고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지주를 청산하자 자기가 심은 사과가 열매를 맺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씨지주는 몰래 떠나버렸다.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덕해 제1대 주장이 대소로 시찰을 왔을 때 촌에서는 이씨지주과원의 사과를 대접했다.홍조를 띤 처녀의 볼마냥 탐스러운 사과를 받아든 주장은 대대적으로 사과원을 꾸려볼 구상을 했다.그는 요녕성 개현에서 초빙받아온 과수전문가 관치성(만족)을 대소에 파견하여 농장을 세웠다.이씨지주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두만강변에 사과원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몇해 전에 대소과수농장허경진(46)부농장장이 20여리 떨어진 백금향에 초빙되어 가 30㏊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매서운 강바람에 겨울을 나면 얼어 죽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다. 대소 맞은 쪽 대안 마을은 북한 함북 회령군 상수리다.그들은 강 하나 사이두고 대소에 사과꽃이 만발한 것을 볼 때마다 승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느 해엔가 그들은 대소의 사과묘목을 떠다가 옮겼다.한해 겨울을 났는데 무사했다.신심이 생긴 회령군에서는 과수지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시찰을 했다.원래 회령군에는 1천여㏊의 살구나무와 다른 과일나무가 있을 뿐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1985년 가을 대소에서는 묘목을 대량 보내고 이듬해 4월 22일 대소과수 농장에서 관치성,허경진,김수돈(57)등 책임자와 기술자들이 회령으로 건너갔다.그들은 회령군의 6개 이를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했고 자동차로 접수를 싣고 가서 접목 등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85년부터 88년까지 4년동안 대소과수농장에서는 묘목과 접수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1988년 회령군에서는 세 상자의 사과를 따가지고 대소과수농장으로 와서 감사드렸다.1993년 여름에는 대소에 친척이 있는 상수 사람이 친척앞으로 편지를 보내 과수농약을 보내달라고 했다.농장지도부에서는 토론하고 밤을 타서 농약상자들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주었다.이치로 따지면 국경을 사사로이 넘나드는 것은 불법이다.하지만 후더운 인간애앞에서 그런 것들이 때로는 무시되었다.
  • 올 쌀 생산량 목표에 미달/3,407만섬으로 123만섬 적어

    ◎재배면적 격감·가뭄피해 영향/자급률 93%… 수급엔 문제없어/농림수산부 전망 올해의 쌀 생산량은 평년작을 조금 밑도는 3천4백7만섬(4백90만6천t)으로 목표량 3천5백30만섬보다 1백23만섬(3.5%)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농림수산부가 전국 1만개 표본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해 28일 발표한 「9·15 작황」에 따르면 올해 생산량은 냉해가 심했던 지난 해의 3천2백97만섬보다는 1백10만섬(3.3%)이 많을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80년대 들어 3번째로 적은 수확량이다. 목표량에 미달하게 된 것은 재배면적이 지난 해의 1백13만5천㏊에서 1백10만2천㏊로 3만3천㏊(2.9%)가 준 데다 1만여㏊는 가뭄으로 말라 죽었기 때문이다. 10㏊(3백평)당 수확량은 4백46㎏으로 전년의 4백18㎏보다 28㎏(6.7%)이 늘었으나 과거 5년을 기준으로 한 평년 수량 4백49㎏보다는 3㎏이 적다.㎡당 포기수(22.3개)와 포기당 이삭수(19.4개)도 지난 해보다 각 0.2개,벼 천알의 무게인 천립중도 17.3g으로 0.2g이 적다. 그러나 이삭이 팬 뒤 쭉정이를 뺀 포기당 유효 이삭수는 19.3개로 0.3개가 많으며,줄기당 완전 낟알 수도 60개로 4.4개가 많다. 도별 생산량은 강원도가 1백95만섬으로 지난 해보다 32.8%가 증가할 전망이고,경북(20%)과 경남(7.2%) 전남(6.1%)도 생산량이 늘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경기(6.6%)와 전북(3.2%),제주(1.9%),충남(1.6%),충북(0.9%)은 줄어들 전망이다.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수확량이 목표에 못미치므로 기말 재고량이 지난 해의 1천2백64만섬에서 올해 8백6만섬으로 낮아지고,내년에는 6백8만섬으로 떨어질 전망』이라며 『그러나 내년까지는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쌀의 자급률은 지난 해의 96.8%에서 올해에는 87.8%로 떨어지고,내년에도 93.6%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9·15작황」에 담긴뜻/농민 「쌀 포기」 가속… 자급기반 붕괴 우려/내년이후 잉여분 없어 “살얼음” 예상/흉작 등 최악의 경우 식량안보 위협 『쌀이 남아돈다』는 말이 앞으로 과연 자취를 감출 것인가.이제 식량의 자급기반이 무너지는 것인가. 농림수산부의 「9·15 작황」은 우리의미곡정책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올해 생산 예상량인 3천4백7만섬은 평년작을 조금 밑도는 수준이다.물론 흉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만 올 수확량은 앞으로 쌀의 재고량과 식량의 자급기반을 가늠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년까지는 쌀의 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다.내년의 공급량은 올 생산량인 3천4백7만섬과 연말 재고량인 8백6만섬,수입 물량인 35만섬을 합한 4천2백48만섬이다. 반면 수요량은 식량용 3천2백70만섬과 가공용 2백7만섬,종자용 27만섬,감모분 1백36만섬을 합한 3천6백40만섬이다. 따라서 내년 연말(10월 기준)의 재고량은 공급량에서 수요량을 뺀 6백8만섬이다.적정 재고량을 유지하는 셈이다.그러나 문제는 수급 균형의 잣대인 이같은 재고량에서 비롯된다. 정부가 적정 재고량으로 삼는 6백만 섬은 비상시 우리 국민이 2개월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내년의 재고량 6백8만섬은,이 때부터 쌀이 남아돌지 않는다는 얘기이다.최악의 경우 쌀 농사가 기상이변 등으로 흉작이 들 경우 내년 이후 재고량이 식량 안보용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쌀의 생산량과 소비량은 다 함께 매년 평균 60만섬 가량씩 줄어 왔다.수급면에서 대략 균형을 이뤘다.그러나 올해의 경우 재배면적이 예상을 깨고 3만3천㏊가 줄었다. 면적이 이렇게 준 것은 우루과이 라운드(UR) 타결 이후 쌀농사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돼 논에 벼 대신 과수나 채소·화훼 등의 고소득 작목을 심기 때문이다.실제로 배나무 한 그루를 심어 얻는 소득이 논 한마지기 반에 벼를 재배한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쌀의 소비량이 주는 것보다,경지면적이 줄어든데 따른 생산량의 감소분이 더큰 것이다.게다가 올 연말까지 평년 수준의 비가 내린다 해도 강우량이 4백㎜나 모자라 내년 농사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쌀은 전체 양곡 생산량의 87%를 차지한다.쌀 생산량이 줄면 전체 식량 자급도도 떨어진다.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종전까지는 과잉생산과 과잉재고를 걱정했으나 지금은 자급기반이 염려된다』며 『앞으로 공급과 수요가 비슷해져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고 설명한다.따라서 전문가들은 농지거래와 경지정리 및 농업용수 개발사업을 재점검,농민이 쌀에 애정을 갖도록 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볏가리 관행은 삼국시대에 시작”(건널목)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에서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그러나 콤바인과 현장탈곡 등 농업기술의 발달로 옛 농경사회의 가을걷이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그 하나가 노적관행인 볏가리.이 가리의 관행을 다시 들추어 본 민속연구논문 「노적관행론」이 남근우교수(한림대·민속학)에 의해 발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벼를 베어 단으로 묶어 말린뒤에 원형,또는 직사각형으로 쌓아놓는 노적의 호칭도 가지가지.크게 「가리」와 「누리」로 구분된다.가리는 누리를 쓰는 충북 옥천과 경북 고령을 제외하고는 골고루 분포된 보편적 호칭이라는 것.가리 앞에 벼나 나락 등을 붙여 볏가리 나락가리로 부르기도 하고 강원 충북 경북의 산촌지역에서 낟가리란 말도 쓰고있는 것으로 밝혀냈다.그리고 화전이 성행했던 영서·영동지방에는 얼룩가리,얼럭가리란 말도 남아있다고. ○…우리나라에 볏가리를 만드는 노적관행이 출현한 시기를 초기철기시대로 보는 것이 남교수의 견해.왜냐하면 철제 낫이 있어야 밑둥베기로 볏짚까지 거두는 추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그 이전까지는 반달모양돌칼(반월형석도)로 벼이삭을 잘라 추수를 했던 탓에 볏가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벼 밑둥베기를 가능케한 쇠낫은 평북 위원 용연동 유적을 비롯,대동강유역의 정백리 제365호무덤에서 출토되었다.특히 서울 성동구 구의동과 경주 제16호무덤에서 나온 쇠낫은 오늘날 사용하는 낫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생활유적에서는 쇠낫이 발견되지 않고 반달모양돌칼이 더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초기철기시대라 할지라도 밑둥베기와 이삭자르기가 병행되었을 것으로 보았다.따라서 노적관행이 본격화한 것은 쇠낫이 많이 보급되어 밑둥베기가 전체적으로 이루어진 원삼국시대 내지 삼국시대라는 것이 남교수의 결론이다.
  • 가뭄·폭염 여파/잠자리·꿀벌·매미 급증

    ◎병충해 줄어들어 농약 덜뿌려/20여년만에 논메뚜기 등장/습지 줄고 수온 높아져 파리·모기는 감소 고온건조했던 올여름 날씨로 농작물 병충해가 없어 농약살포량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이에따라 꿀벌·매미·여치·잠자리등 곤충류의 번식률이 높아졌고 논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메뚜기 떼가 등장했다. 농촌지역에서는 지난해까지 만해도 병충해가 극심해 벼농사의 경우 수확기까지 5∼7차례의 농약을 살포해왔으나 일조량이 많고 무더위가 계속된 올해는 병충해가 줄어 농약살포를 한번도 안했거나 1회정도 살포했다고 한다. 농약사용이 줄자 벌·메뚜기·매미등 곤충류의 생태계가 활기를 띠어 농촌지역에서는 각종 곤충이 크게 늘어났다. 꿀벌의 경우 예년보다 번식률이 3∼4배 높아져 양봉농가들은 올 꿀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2∼3배가 늘어날 전망이다.특히 맑은 날씨가 계속돼 꽃의 활착이 잘돼 꿀의 양이 많고 당도가 높다고 한다. 양봉농가인 김이제씨(61·충북 옥천군 천산면 명회리)는 『지난봄 30통이었던 꿀벌통이 지금은 3배인 90통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꿀벌 외에도 그동안 논에서 사라졌던 메뚜기 떼가 등장,20여년만에 어린이들이 메뚜기잡이하는 모습을 볼수 있게 됐다. 경기도 평택시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고성대씨(48)는 벼이삭이 여물고 있는 요즘 들에 나가면 벼에 붙어있던 메뚜기가 수없이 튀어 나온다고 전하고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무공해 쌀 생산이라는 효과도 가져왔는데 충북 보은농협조합장 안종철씨(45)는 『올여름 날씨 덕에 농약피해가 적은 쌀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농촌지역에는 매미·여치·잠자리등 곤충들이 예년에 비해 부쩍 늘어 옛농촌의 분위기가 난다고 한다. 농약이나 습도에 약한 이같은 곤충들이 늘어 났으나 연못이나 웅덩이 등에 알을 낳아 애벌레 때 물에서 사는 모기 등 곤충류는 가물어 습지가 줄어들고 수온이 높아짐에 따라 오히려 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에대해 동국대 농생물학과 이해병교수는 『습도가 낮고 살충제를 적게 씀에따라 곤충 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나 왕성한 번식을 한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유기농법으로 전환시켜 상태계의 먹이사슬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쌀농사/가뭄딛고 풍년 예상/농림수산부/기상상태 좋고 병충해 줄어

    극심한 가뭄에도 벼 수확량이 연초 목표치(3천5백30만섬)를 웃돌아 올해에는 풍년이 들 전망이다.전국적으로 기상상태가 좋아 벼의 생육 상태가 아주 좋고 병충해 피해가 준 때문이다. 25일 농림수산부가 국회 농림수산위원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15일을 기준으로 농촌진흥청 시험포장의 쌀 작황을 조사한 결과,벼 포기당 이삭 수는 17.2개로 평년(89∼93년)의 16.5개보다 0.7개가 많았다. 이삭당 벼알 수는 평년의 74.6개보다 2.2개가 많은 76.8개이고 ㎡당 벼알 수도 3만1천3백65개로 평년(3만66개)보다 1천2백99개가 많았다. 이삭이 팬 면적은 전체 재배 면적의 98%이며 평년보다는 3∼5일,냉해가 들었던 지난 해보다는 1주일 정도 빠르다. 특히 8월20일 현재 병충해 발생면적이 69만9천㏊로 평년의 74% 수준에 그치고 있어 앞으로 큰 기상이변이 없는 한 쌀 생산량은 목표치를 무난히 넘어설 전망이다. 병충해 중 피해가 가장 큰 도열병의 경우 발생 면적이 2천㏊로 평년의 9%에 불과했고 벼멸구도 평년의 54% 수준인 17만8천㏊에 머무르고 있다.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벼의 생육상황이 양호해 올해 단보당 쌀 수확량은 평년수준인 4백56㎏를 넘어설 것으로 보이지만 작년보다 재배면적이 3만3천㏊가 줄어 쌀 수확량은 3천5백30만섬∼3천6백만섬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올 쌀수확 3,530만섬 웃돌듯

    ◎4차례 「효자태풍」으로 가뭄피해 거의 회복/46% 이삭 패… 평년작 유지 전망 올해 쌀 수확량이 평년작을 유지해 목표량인 3천5백30만섬을 웃돌 전망이다. 16일 농림수산부와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극심한 가뭄으로 남부지역에서 벼의 생육이 지장을 받았으나 4차례의 태풍이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충분한 비를 뿌려줌으로써 벼의 생장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특히 물을 빼는 시기에 가뭄이 들어 오히려 생육에 도움이 됐으며,풍부한 일조량과 함께 고온이 지속돼 벼의 생장이 빨라졌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12일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이삭이 팬 면적은 전체 재배면적 1백11만5천㏊의 45.9%인 51만2천3백26㏊였다.전년 동기의 출수률은 15.3%였다.강원과 충북 및 경북 등 3개 도의 13개 지역은 벼 이삭이 모두 팼다. 병해충은 66만8천8백81㏊의 논에서 발생,지난해 같은 기간의 75% 수준이다.지난 1일 기준으로 벼의 키는 86.7㎝로 평년보다 7.4㎝가 크며,㎡당 줄기수는 4백47개로 5개 정도가 적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이삭이 완전히 패는 9월 중순이돼야 정확한 작황을 알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생육상태로 보면 최소한 정부가 목표로 잡은 생산량 3천5백30만섬보다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 올 벼농사 평년작 웃돌듯/포기당 줄기수 0.2개 많아

    ◎농업진흥청 조사 올 벼농사는 가뭄이 들었던 지역을 빼고는 평년보다 작황이 좋을 것 같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1일 전국의 17개 시험포장에서 벼의 생육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키는 86.7㎝로 평년의 79.3㎝보다 7.4㎝,지난 해의 77.2㎝보다는 9.5㎝가 각각 컸다.포기당 줄기 수도 18.6개로 평년의 18.4개보다 0.2개가 많았으나 지난 해의 18.8㎝보다는 0.2개가 적었다. 벼 이삭이 나온 면적도 재배 면적의 9.4%인 10만5천㏊로 평년과 비슷했다.시험포장은 농촌진흥청과 각 도에 있는 농촌진흥원이 기상변화가 작황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해마다 똑같은 양의 비료를 주는 등 특별히 관리하는 논이다.
  • 작년 전국쌀증산왕 이천 한천희씨(농산물개방/극복의 현장)

    ◎“다수확 비결은 땅심”… 지력증진에 실혈/토양 정밀조사후 가지·이삭거름 적절히/단보당 8백51㎏ 수확… 농가평균 배 넘어 93년 전국 쌀재배 최우수농가로 선정돼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경기도 이천군 와현리의 한천희씨(42). 한겨울인데다 하늘마저 유달리 춥게 느껴진 6일 하오 김씨는 마당앞 퇴비장에서 열심히 두엄을 개고 있었다.우루과이라운드다 쌀개방이다 해서 전국의 농촌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그는 개방시대의 해결책이 두엄속에 있기라도 한듯 묵묵히 두엄더미만을 뒤적였다. 바쁜 일손에 동네 이장직까지 맡고있는 그는 서울로 떠난 부모와 동생들을 뒤로하고 홀로 고향에 남아 과학영농을 실천해온 의지의 농군이다. 한씨는 지난해 이상저온현상에 따른 극심한 냉해에도 불구하고 단보당 8백51㎏의 쌀을 생산,일반농가의 평균생산량 4백18㎏의 2배 이상 수확을 올렸다. 그러나 농사꾼으로서 이같은 최대영광을 안기까지에는 그의 치밀한 과학영농 추구와 피나는 노력이 배어있다. 지난 91년 이천군 다수확상을 수상한 한씨는 군의 추천에따라 이듬해 경기도 다수확부문에 도전,역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고무된 한씨는 이번에는 전국 다수확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영농방법을 면밀히 분석,우량품종 선택과 지력증진을 위한 최상의 과학영농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때묻은 영농일지엔 제일 먼저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결과가 적혀있다.그는 우선 다수확의 선결요인이 땅심에 있다고 판단,출품할 3단보의 논에 대한 정밀 토양검증을 농촌지도소에 의뢰했다.그리고 지도소의 처방에 따라 단보당 볏짚 5백㎏을 절단해 투입하고 부식함량을 높이기 위해 두엄 2천㎏도 1년간 묵혀 완숙된 것을 사용했다.게다가 전해에 거둬들인 들깨짚 2백여㎏까지 알뜰하게 섞어 토양가꾸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지력향상에 필수인 규산질비료 7백50㎏과 용성인비 3백㎏도 빠짐없이 쓰는 한편 평소보다 5㎝가량 깊은 18㎝이상의 깊이갈이를 했다. 비료는 가지거름으로 단보당 요소 8.3㎏을 주고 이삭거름으로는 단보당 12.3㎏의 복합비료를 투여했다. 한씨는 농민들 대부분이 이삭이 달리기 시작하면 일체의 비료를 사용치 않고 있으나 낱알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삭거름 시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를 낼 논에는 단보당 42㎏의 밑거름과 벼가 썩어들어가는 문고병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농민들이 밭에만 사용하는 붕사 등을 과감히 시비하는등 본답관리를 시작했다.그리고 이앙은 기계를 사용치 않고 손모내기를 했다.이 과정에서 그의 피나는 노력을 지켜본 동네 청년 20여명이 달려들어 품삯도 거부한채 모내기를 돕기도 했다. 물관리는 6월부터 9월 말까지 5∼7일 간격으로 일정하게 실시했다.7월 중순이후 이상저온현상이 지속되자 한씨는 물의 온도를 높여주기 위해 논주위에 투명비닐호스를 설치,대낮의 태양열을 이용해 호스안의 물온도를 2∼3도가량 높여 공급했으며 병충해 방제는 5월 벼물바구미 방제를 시작으로 모두 9회에 걸쳐 실시했다. 지난 76년 군에서 제대한후 물려받은 5천여평의 논을 기반으로 첫 농사를 시작한 한씨는 2년뒤인 78년 장호원읍에서는 최초로 콤바인등을 구입,기계화영농에 앞장서 선배 농군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의 억척같은 농사열기에 수확도 매년 늘어 재산이 불어나갔고 이제는 2만5천평의 전답에 묘목단지와 양돈까지 겸해 연간총소득 6천만원에 달하는 부농으로 성장했다.
  • 올 쌀 감수 370만섬/농수산부,전국 1만곳 작황 표본조사

    ◎3,280만섬 생산 예상… 80년이후 최저/“정부 보유량 많아 수급차질 없다” 올해 쌀 생산량은 평년작을 훨씬 밑도는 3천2백80만섬에 이를 것으로 집계돼 80년이후 13년만에 최대 흉작을 기록하게됐다. 농림수산부는 23일 지난 15일을 기준,전국 1만개 표본지역을 대상으로 벼 작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쌀 예상생산량은 당초 목표량 3천6백50만섬보다 3백70만섬(10.1%)이 준 3천2백80만섬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이는 지난해 생산량 3천7백만섬의 11.4%에 해당하는 4백20만섬이,평년작 3천5백94만섬의 8.8%에 해당하는 3백14만섬이 줄어든 것으로 지난 80년이후 13년만에 최대 흉작을 기록하게 됐다. 이처럼 올해 쌀 생산량이 평년작 수준을 못미치는등 작황이 부진한 것은 지난 5월부터 8월초까지 계속된 잦은 비와 이상저온현상으로 생육이 부진하고 이삭패기가 늦어지는등 병해충 증가와 냉해피해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따라 10a(단보)당 수량도 4백16㎏으로 지난해 4백61㎏보다 9.8%,평년의 4백56㎏보다 8.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도별 예상생산량은 산간지가 많아 조생종벼를 많이 심은 강원도가 지난해보다 33.2% 감소할 것으로 나타나 피해가 가장 심했고 제주(23.8%),경북(20.4%),경남(15.3%)등이 피해가 컸다.그러나 평야지대인 전남(5.1%)과 충남(5.9%)지역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 올해 벼 재배면적은 지난해의 1백15만6천㏊보다 1.8%가 준 1백13만5천㏊인 것으로 집계됐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쌀 생산량이 이처럼 감소해도 연간 일반식용 쌀 수요량이 3천5백만섬 정도이기 때문에 오는 10월말 기준 정부보유쌀이 1천2백40만섬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도 전체 쌀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8월말이후 일조량 충분/벼 냉해 “미미” 할듯/농수산부 조사

    이상저온에 따른 냉해로 흉작이 우려되던 올 벼농사는 지난달 하순이후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피해량이 당초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특히 지금과 같은 날씨가 당분간 지속되면 지역에 따라서는 평년작수준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작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조량은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9일까지 1백13시간으로 평년보다 34시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날씨가 예년기온을 되찾으면서 모를 늦게 심은 남부지방의 특수2모작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의 벼이삭이 모두 패 지난 8일 현재 99.8%의 출수율을 기록했다.
  • 벼 출수율 예상보다 높다/전체 농지의 94%로 “양호”

    ◎저온피해 줄어/2모작 경·전남 다소 부진 최근 날씨가 평년기온으로 회복되면서 벼 이삭이 패는 비율(출수율)이 크게 높아지는 등 벼농사가 저온피해에서 다소 회복되고 있다. 31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30일 현재 벼 이삭이 팬 면적은 1백10만3천4백99㏊로 전체농지의 94.4%에 달해 지난해 같은기간의 99.4%에 상당히 접근했다. 그동안 벼의 출수율은 8월15일 16.7%(전년동기 40.2%)에 그쳤으나 23일 71.6%(전년동기 89%)등으로 날씨가 회복되면서 평년수준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이날 현재 지역별 출수율을 보면 서울·강원·제주등 3개 지역이 1백%를 기록했고 경기 99.9%,전북 99.1%,충남북 98%,경북 92.6%등으로 중부지역은 출수가 거의 끝났다.그러나 2모작을 하는 남부지방의 경우 경남 87.7%,전남 85.7% 등으로 아직도 부진한 상태이며 오는 9월상순이 지나야 출수가 끝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벼 감수 3백만섬 예상/농림수산부 추계

    ◎냉해 계속… 전국출수율 41% 한창 벼이삭이 팰때인데도 불구하고 볕나는 날이 예년보다 크게 줄어 이삭패기가 계속 늦어지는등 벼 소출이 계속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일 하오부터 쏟아지고 있는 남부지방의 호우로 전체 벼 재배면적의 1%가 넘는 면적이 침수되는등 올 벼 작황피해는 더욱 늘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21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모내기를 시작하는 5월 1일부터 지난 20일까지의 일조량은 5백73시간으로 평년보다 1백40시간이,냉해피해가 가장 심했던 80년보다는 7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벼 출수가 지난해보다 2∼7일 늦어지는등 출수상황도 크게 부진,20일 현재 출수면적은 전체 벼 재배면적 1백16만8천6백48㏊의 41.1%에 해당하는 48만2백71㏊에 그치고 있다.이같은 출수율은 지난해 같은기간 73.8%보다 32.7% 포인트가 준 것이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벼 이삭이 여무는 것을 좌우하는 일조량이 크게 부족해 앞으로 이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예상외의 흉작도 우려된다』면서 『출수기를 맞아 도열병이 이삭으로 옮겨가고 있는만큼 철저한 도열병 방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 벼 작황은 현재까지의 상황으로는 대략 3백만섬(8.2%)정도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최악의 경우 생산목표량의 21.7%에 해당하는 8백만섬 감수가 우려되고 있다.
  • “이삭패는 지금이 방제 적기”/농림수산부 병충해 대책

    ◎1차 농약 뿌린뒤 5∼7일후 다시 살포를/돌림도랑·비닐튜브 설치… 논물 데워줘야 냉해는 이상저온이라는 자연이 내린 재앙이긴 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농림수산부와 농촌진흥청은 쌀농사의 냉해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논물의 온도를 높여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평야지대는 수로에서 논물의 온도가 자연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별반 필요없지만 산간지대의 경우 햇볕이 투과할 수 있는 투명비닐튜브나 돌림도랑을 50m이상 설치,논물을 데워줘야 한다. 농촌진흥청의 실험결과 저온현상이 계속될 때 찬물을 직접 댄 논은 10a당 66㎏ 밖에 수확되지 않으나 비닐튜브를 설치하면 3백55㎏,돌림도랑을 만들면 4백19㎏의 증산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삭이 팰때 이삭을 고르게 해주는 다치가렌액제를 잎에 뿌려 준다.이때 에디펜유제·이소란유제·가스가민액제·라브사이드수화제등을 섞어 이삭도열병을 동시에 방제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10a당 5백배액의 다치가렌을 뿌려주면 14% 남짓 더 수확할 수 있다. 또 벼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인산·칼리비료도 웃거름으로 줘야 한다.과석이나 용과린은 10a당 15∼20㎏,염화가리는 4∼6㎏을 주면 된다. 이삭이 패고 10일 정도 지나면 인산칼리 0.5%액을 10㏊당 1백40ℓ를 뿌려준다. 이같은 방법은 저온현상으로 빚어지는 1차적 피해를 줄이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2차적 피해인 이삭도열병을 방제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요즘이 조생종이나 중만생종 가릴 것 없이 이삭이 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도열병이 발생하는데 적합한 20∼25도의 저온이 계속되고 있는 관계로 이삭 패는 시기가 지역에 따라 3일에서 1주일 정도 늦어지고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삭도열병은 한번 걸리면 방제가 불가능하고 벼나 이삭이 쓸모없이 되므로 이삭이 팰때 적기를 놓치지 말고 도열병 약을 뿌려야 한다. 유제·분제·수화제등을 반드시 2차례 방제해야 하는데 ▲1차는 한 논에서 이삭이 2∼3개 팰때 ▲2차는 1차 방제하고 5∼7일쯤 지난뒤 방제해야 한다. 적기에 방제하면 98.8%의 방제효과가 있다.잎도열병이 많이 발생한 논이나 상습지 논에는 반드시 벼 조직에 약물이 스며드는 침투이행성 약제를 뿌리고 비오는 날이 많거나 일손이 모자랄 때는 입제농약을 뿌려준다. 농촌진흥청의 관계자는 『저온현상,즉 천재에 따르는 냉해피해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많지만 도열병 피해는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농가가 적기를 놓치지 말고 철저히 방제하는 것이 요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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