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최대 탄소펀드 회사 英 기후변화캐피털
|런던(영국) 안동환특파원|“탄소배출권 시장이야말로 그동안 아무 가치 없다고 여기던 온실가스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만 탄소 감축에 투자해도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있죠.” 런던 템스강의 명물 ‘타워브리지’가 내려다보이는 세계 최대 민간 탄소펀드회사 기후변화캐피털(CCC:Climate Change Capital).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면 전세계 어디라도 찾아다닌다는 창업자 제임스 카메론 부회장은 시장경제 메커니즘만으로도 충분히 온실가스 감축에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003년 창업 뒤 고속성장
“지금이야 우리 회사가 미국, 중국, 스페인 등 세계 각국에 140여명의 펀드매니저를 두고 있지만 불과 5년 전 회사를 세울 때만 해도 사무실 하나에 직원이 5명에 불과한 조그만 회사였습니다. 기후변화라는 이슈가 우리에겐 커다란 기회였죠.”
디렉터 팀 모켓은 기적적인 회사 성장사를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2003년 세계 첫 민간 탄소펀드이자 CCC의 대표 상품인 ‘청정기술 사모펀드’(CPE:Clean tech Private Equity)를 출시해 목표 설정액 2억유로(약 3200억원)를 지난해 무난히 달성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전문 투자펀드 ‘벤투스’(VCTs)도 출시, 독일 태양광업체 설파셀과 미국 온실가스 컨설팅 업체인 퀄리티톤스 등 세계 주요 친환경 기업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다.
현재 CCC는 매달 5000만∼6000만파운드(약 1000억∼1200억원)의 펀드 판매고를 기록하며 총 투자액이 8억유로를 넘어섰다.2010년쯤에는 세계 탄소시장에서 8%가량의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온실가스도 줄이고 돈도 벌고
“우리의 사업 모델요? 간단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나라에서 배출권을 가져와 유럽과 같은 지역에 내다 파는 거죠. 그러고는 차액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면 됩니다.”
제임스 부회장은 CCC의 수익 모델을 설명하며 자신들의 사업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 중국 저장성의 ‘저장쥐화’라는 에어컨 냉매 제조 회사의 경우 그동안 냉매 제조 과정에서 수소불화탄소(HFC-23)라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다.CCC는 2006년 이 회사에 온실가스를 분해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고, 여기에서 295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권(CER)을 확보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꺼리고 있지만 탄소펀드들이 통상 중국 CDM(개도국 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권 확보) 사업을 통해 얻는 배출권 원가는 t당 10달러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월 현재 유럽기후거래소(ECX·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에서 거래되는 이산화탄소 배출권 가격이 t당 25유로(약 4만원)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CCC는 이 사업만으로도 최소 3억달러(약 3050억원)가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돈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해법”
“지난 20여년 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지구 온난화 문제의 정해진 해법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끊임없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만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죠. 결국 ‘돈’이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로 설명하는 제임스 부회장은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시장메커니즘의 강화를 역설했다.“배출권 거래제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문제를 돈으로 배출권을 사서 해결하게 만든다.”는 환경 단체들의 비난을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혁신을 거듭하는 기업의 이윤추구 동기야말로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는 게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그와 기후변화캐피털사의 신념이다.
“한국은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체제에서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대대적인 사회·경제 구조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리도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재 한국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저탄소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필요로 하는 거대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sunstory@seoul.co.kr
■ 세계 탄소펀드 현황 - 40여종 70억弗 규모 운용
탄소 저감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조성되는 탄소펀드 시장은 선진국들이 싼 값에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탄소펀드의 효시는 세계은행이 2000년 4월 선보인 ‘PCF(Prototype Carbon Fund)’로 현재 규모는 약 1억 8000만달러(약 1830억원) 정도다. 세계은행은 PCF를 비롯해 10여종의 탄소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40여종의 탄소펀드가 있으며, 규모는 70억달러(약 7조 1200억원)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종의 탄소펀드가 판매되고 있다. 탄소펀드의 주요 투자자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닌 선진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다. 교토 의정서 체제가 시작되면서 탄소 거래 방식이 대단히 복잡해진 탓에 투자 자금의 운용은 대부분 세계은행, 전문 컨설팅 회사, 민간 금융기관 등이 대행하는 추세다.
미국·영국 뿐 아니라 일본·오스트리아·벨기에·독일·네덜란드·핀란드·덴마크 등도 자신들이 만든 탄소펀드를 직접 운용하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일본 탄소거래제의 교훈 - 정부가 탄소비즈니스 견인
|도쿄 박상숙특파원|1997년 교토 의정서가 채택됐을 때 일본 경제계는 사색이 됐다. 의장국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일본 정부가 배포 크게 공표한 온실가스 삭감량은 1990년 대비 6%. 당초 예상했던 2.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
전력, 가스, 철강 등 이산화탄소(CO) 배출이 많은 기업들에는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았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던 에너지 절약 기술로도, 삼림 흡수로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촉수 빠른 종합상사들은 탄소에서 ‘블루오션’을 봤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의 다가미 다카히코 수석연구원은 “국내에서의 온실가스 삭감 한계와 고비용 탓에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일본 종합상사들이 CDM(개도국 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권 확보)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쓰비시나 마루베니 등은 CDM 프로젝트 발굴을 위해 광맥을 찾듯이 세계 각지를 뒤지고 다니며 탄소 비즈니스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일본의 탄소 산업은 ‘후쿠다 비전’을 통해 한층 탄력 받고 있다. 후쿠다 총리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60∼80% 삭감, 배출권 거래제의 연내 도입을 천명했다. 최대 지자체인 도쿄도 의회도 최근 도심의 오피스텔을 포함한 대형 업무용 빌딩 등에 이산화탄소 삭감 의무량을 부과하고,2010년 지자체 처음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환경 조례를 통과시켰다.
배출권 중개기업인 낫소스재팬의 다카하시 쓰네오 대표는 “결국 정부가 강제적으로 삭감 의무량을 정해줘야 (민간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냐.”며 관(官)쪽의 의지가 탄소 비즈니스를 견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10월 출범을 앞둔 배출권 거래 시스템의 운용 방식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일본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유럽 배출권거래시장(EUETS)은 초기엔 배출권을 무상 배분했지만 점차 기업들이 경매를 통해 구입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풍력, 바이오매스 등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가 풍부해 상대적으로 싼 값에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는 유럽과는 상황이 다르다. 자원 빈국인 일본은 배출권을 얻기 위해 산업계 전체가 막대한 가격 경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다가미 연구원은 “산업 경쟁력의 저하는 물론 기업의 ‘카본 리키지(carbon leakage·온실가스 절감 비용이 적은 나라를 찾아 공장을 이전하는 현상)’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현재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산정할 때 생산단위 당 에너지효율개선지표를 활용하는 경제산업성의 방식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높이고 기업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으로서는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alex@seoul.co.kr
<특별취재팀> 미래생활부 박건승부장(팀장)·박상숙·오상도·류지영·박건형·정현용기자, 도쿄 박홍기 특파원, 사회부 홍지민기자, 국제부 안동환·이재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