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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 미군주둔 필요한가(해외논단)

    미국의 외교전문 계간지 「포린 어페어즈」는 최근호에서 동북아에 미군주둔이 필요한가를 둘러싼 찬·반론의 논문을 게재했다.조셉 나이 미국방부 차관보는 「깊은 관여가 필요한 경우」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 동북아의 미군주둔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반면 찰머스 존슨 미국 일본정책연구소(JPRI) 소장과 E B 킨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일본정치학 교수는 「형해화한 미국방부의 전략:동아시아 안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시대가 달라진 지금 미군의 주둔이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그들의 논문을 요약한다. ◎주둔론/조셉 나이 미 국방부 차관보/“군비경쟁 막고 안보질서 구축/역동적 경제성장의 소금 역할” 동아시아가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데는 높은 저축률과 성공적인 거시경제정책의 운용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그러나 중요하면서도 간과되기 쉬운 것은 이 지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상당 세력의 미군이 주둔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국익은 이 지역에서 우리의 깊은 관여를 요구하고 있다.따라서 한국에 3만6천명,일본방위와 지역안보에 4만7천명등 10만여명의 미군을 유지하고 있다.이같은 미군의 존재는 이 지역에서 무력증강의 필요성을 감소시키고 패권세력의 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지역으로 다음 세기 초반에는 세계경제활동의 3분의 1을 감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과연 이곳에 그같은 경제성장을 지원해줄 정치적 질서와 안보구조가 갖춰져 있는가.군비경쟁과 무력충돌에 의해 기업인들과 투자가들이 피해를 입게 되지는 않겠는가. 냉전이후 동아시아의 전략적 상황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등 다국적 유대조직이 잘 갖춰진 유럽과 비교할때 매우 취약한 상황이었다.결국 미국만이 이 지역에서 지구적 차원의 정치적 경제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다섯가지로 요약된다.첫번째는 완전 철수하여 서구세력으로만 남는 것이다.두번째는 냉전이 끝났다는 이유로 동맹국에서는 철수하나 기존 세력균형 역할은 그대로 맡는 것이다.세번째는 동맹구조를 대체할 느슨한 형태의 지역기구를 만드는 것이다.네번째는 NATO와 같은 지역안보기구를 만드는 것이다.다섯번째는 지도력을 계속 행사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마지막 전략을 택했다.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안보전략은 냉전이후의 새로운 기반위에 기존의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바탕위에 현재와 같은 지상군의 전진배치를 계속 유지하며 지역안보기구의 설립을 촉진하는등 매우 강력한 입장이다.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이익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행정부 정책의 일방적·쌍방적·다원적 양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방적 측면은 현재 동아시아의 미군 주둔이 의회에서 초당적인 합의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쌍방적 측면은 미군의 주둔이 해당 동맹국과 상호안보이익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다원적 측면은 다양한 안보 대화를 새롭게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문제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변수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있다.이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어서가 아니고 아시아에 전진배치된 미군들이 지역안보를 강화하고 동맹국들에 대한 적대행위를 물리치게 해주기 때문이다. 월남전 이후 20년동안의 동아시아 발전을 지켜볼 때 다음 20년간에도 현재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은 아시아에 계속 머물러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철수론/찰머스 존슨 미 일본정책연 소장/“냉전시대 공감대 사라진 오늘/「미 슈퍼파워 자임」은 시대착오” 대부분 냉전시대에 배치된 미군이 시대가 달라진 지금도 동아시아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을까. 동아시아는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면서 미 국방부는 태평양지역에서 기존 관계가 무한정 현상유지되는 방향으로 미국정책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정책추구는 많은 동아시아인들에게 미국의 슈퍼파워 자임이 남들에게 얼마나 허풍스럽게 비치고 있는지를 미국이 아직 덜 깨닫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따름이다.미국이 허풍을 떨고있는 동안 일본과 중국은 이제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에게 말할 그날을 향해 매진할 귀중한 시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매년 3백50억달러이상 소요되는 주일 및 주한 미군 유지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51년 첫 전후 안보조약을 맺었는데 일본 지도층은 현상유지 정책을 강력 주장한 미국방부의 올 2월 보고를 환영해 마지 않았다.역학관계가 일본에게 유리한 쪽으로 크게 변하고 있는데도 미국이 이를 계속 무시할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클린턴 정부는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국가연합 사이에는 다음 세기를 위해 지역적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인식해야 한다.미국이 이 지역과의 군사적 약속을 거듭 확약하는 사이 아시아의 독립성과 직결된 경제적 요인들은 미국의 취약한 위치를 노출시켜 왔다.냉전시대의 공감대가 사라진 지금 미국은 무슨 수로 일본등과의 해묵은 동맹적 유대를 무한정 이끌어갈 것인가. 국방부 말대로 일본을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관한 쐐기로서 계속 활용코자 한다면 미·일 안보조약을 평화적으로 해체하거나 대폭 수정해야 한다.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팽창을 동아시아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보고 있지만 일본을 진정한 동맹으로는 내심 신뢰하지 않은 미국의 태도야말로 아시아 태평양 평화유지에 더 큰 위협인 것이다. 미국방부는 냉전기간중 미국의 참전,주둔,동맹체제 등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기적을 이뤄낸 「산소」라고 은근히 자찬하고 있으나 동아시아 자체의 「정부주도 자본주의」 고안이야말로 공산주의 군사력과 국내해방전쟁를 극복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했다.미국은 한국전에서 고작 소강전이나 유지했고 베트남전에선 졌으며 해외미군 기지중 최대였던 필리핀의 수빅만·클락크기지가 폐쇄된 뒤에도 일체의 불안정이 뒤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아시아를 풍요롭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 방면은 군사력이 아니라 질좋고 값싼 아시아 제조수출품에 대한 미국의 시장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지금은 이도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미 국방부의 현상유지론 중 가장 비난받을 선동조의 주장은 미군의 주둔이 이 지역의 민주화에 일조를 했다는 대목이다.이같은 견강부회등을 살피건대 미 국방부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인 동아시아에 대한 신선한 전략을 상징하기는 커녕 이 지역에 대한 미국정책의 파산상태를 적시해주고 있다.
  • 클린턴,「차분쟁」 해결 낙관/22∼23일 무역협상

    ◎무라야마 일 총리와 곧 논의 【워싱턴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14일 미 일 자동차 분쟁이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일본시장의 개방과 관련,『내 의지는 예전과 다름없이 확고하다』고 강조하고 『성공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5일부터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와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오는 22∼23일 제네바에서 고위 무역협상을 벌일 예정인데 양국간 타협이 끝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은 오는 28일부터 일제 고급승용차에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은 베트남과의 정식수교 여부를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전 실종 미군병사 문제와 관련,베트남 정부가 제공한 문서들을 분석하고 있다면서 이 작업이 완료되면 수교여부를 확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 국무/대베트남 수교 건의/상원선 관계개선 촉구 결의안 곧 제출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베트남과의 완전한 외교관계 수립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식 건의했다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13일 밝혔다. 베트남전 포로였던 매케인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두 적대국이 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적기라고 지적하고 보브 케리 상원의원과 함께 이같은 조치의 승인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매케인 의원은 결의안이 아마도 국무부 수권법에 대한 수정안으로 7월중 제출될 것이라면서 『백악관이 조치를 취하는 데는 상원결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행정부관리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이 곧 내려질 것이라고 내다 보고 그 근거로 지난 75년 4월 미군철수와 베트남 공산화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할 가능성을 들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브루네이에서 열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연례회의 참석차 다음달 말부터 8월초까지 아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베트남간 관계정상화 조치는 베트남전에서 5만명 이상의 전사자와 2천2백여명 실종자를 낸 미국인들의 정신적 고통에 비추어 아직도 치열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소지를 안고 있다.
  • 말연서 시위벌인 4천명 베트남전민 수용소 복귀

    【콸라룸푸르 AP 연합】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외곽 베트남 난민수용소에 수용된 난민 4천명 중 3천명이 5일 자신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며 한때 수용소 철조망을 뚫고 나와 시위를 벌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경찰,그리고 미국대사관측과 회담을 가진 후 난민수용소로 복귀했다고 정부관리들이 밝혔다. 난민들은 『우리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베트남으로 송환하면 집단자살하겠다』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평화시위를 했으나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발포하자 최루탄을 참지못해 철조망을 뚫고 외부로 나갔고 이들중 수백명은 인근 고속도로변까지 행진했다. UNHCR측의 에리카 펠러는 『우리는 다음주까지 그들과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난민들을 오는 8월31일까지 본국으로 송환하고 수용소를 폐쇄하려는 말레이시아정부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러 보스니아 파병 놓고 대립/옐친 “미군 도움 안된다” 반대

    ◎영선 「전술전투단」 구성… 독 파병시사/“유엔군석방 국적통핵 세계와 협상”­영 외무 【런던·모스크바·본·콜로라도스프링스·사라예보 외신 종합】 미군의 보스니아 파견을 들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도 1일 군대를 파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보스니아에 주둔중인 영국군은 전술전투단구성에 착수,본격적인 전투준비테세에 돌입하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31일 미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의 공군사관학교 연설에서 『곤경에 처한 유엔평화유지군 지원을 위해 미 지상군을 보스니아에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미군의 파병은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 보스니아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군대파견움직임에 이어 클라우스 킨켈 독일 외무장관도 1일 『유엔병력 재배치를 지원하기 위해 보스니아에 군대를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독일이 보스니아에 지상군을 보낼 경우 2차대전후 처음으로전투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된다. 【사라예보·런던·파리 AP·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는 1일 또다시 유엔 민정관리 1명을 인질로 잡고 평화유지군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서방권에 대한 도전을 강화하고 있으나 인질 석방문제를 싸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양측을 오가며 직·간접 접촉을 가졌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영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ICRC가 유엔을 대리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와 『직·간접 접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파병 발언 왜 나왔나/세계 위협용… 결행 미지수/대보스니아 정책 전환 시도… 러 반발 무마 과제 클린턴 미대통령이 31일 보스니아전쟁 개입 가능성을 발표,민족분쟁에 따른 영토확장 전쟁으로 3년여를 끌어온 보스니아내전은 새 국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보스니아내전 불개입」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침묵을 지켜왔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최근 보스니아 사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같은 정책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현재 프랑스,영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계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을 외면하면 이들 우방들과 군사·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유엔평화유지군을 인간방패로 삼아 나토와 유엔에 일격을 가하고 있는 세르비아계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체면을 크게 깎아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린턴의 발표는 평화유지군이 철수하기 전이라도 전략상 필요하다면 미지상군을 투입하겠다는 쪽으로 파병 조건을 완화함으로써 세르비아계에 위협을 줘 행동을 제약시키는 동시에 보스니아 사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미지상군이 실제로 보스니아로 파병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국내외의 난관을 넘어야 한다.무엇보다 공화당이 우세한 미 의회와 제2의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 큰 문제다. 오는 96년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클린턴으로서는 단시일내에 끝날 것으로기대하기 어려운 보스니아전쟁에서 명분없이 많은 희생자를 낼 수 있는 파병을 선뜻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클린턴의 외교정책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딜레마인 셈이다. 클린턴의 발언이 있은 후 공화당은 예상했던 대로 일제히 클린턴에 대한 비난에 나섰다.공화당원들은 클린턴의 가장 취약한 점,즉 외교정책의 실패를 또 한번 보게 됐다며 비꼬았다.96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에 나설 보브 돌 상원 원내총무는 『클린턴의 보스니아 전쟁 개입 정책은 의회와 협의없이 이루어 진 것』이라며 『클린턴 행정부가 이 문제로 의회의 승인을 얻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의 지상군 투입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옐친은 보스니아사태 해결을 위한 어떤 나라의 무력사용도 반대한다며 그 이유에 대해 『인질들이 워낙 넓게 산재해 있어 몇백명의 군병력이 투입된다고 해서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미­베트남 고위급회담 시작/베트남전 행불자문제 논의

    ◎양국 수교여부 영향 미칠듯 【하노이 로이터 연합】 미국과 베트남은 15일 하노이에서 미·베트남간의 전면적 외교관계 수립 여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3일간의 고위급회담을 시작했다. 미국과 베트남 정부는 지난 1월 정식관계를 수립하고 하노이와 워싱턴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했으나 베트남은 미국과의 무역상 최혜국 지위는 물론 전면적 국교수립을 바라고 있다. 이번 회담의 주제는 베트남전쟁 당시 전투중 행방불명자(MIA)로 기록돼 있으나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미군 2천여명의 생사 확인 활동상황으로 되어 있으나 미·베트남 관계자들과 제3국 외교관들은 이번 회담이 미·베트남 국교정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한 아시아국가 대사는 『이번 회담의 결과가 클린턴 대통령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베트남종전 20돌 화제의 2인

    ◎국방장관이 격려 라이따이한 최민호 일병/“한국은 나의 조국… 국방의무 당연”/어머니 품안겨 탈출… 시련딛고 꿋꿋한 삶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저 얼떨떨합니다』 베트남전쟁 종전 20주년인 4월30일을 하루 앞둔 29일 이양호 국방장관으로부터 「격려」를 받은 「라이 따이한(한국인 2세)」 최민호 일병(21)은 「졸병」인 자신이 국방장관을 만났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장관은 최근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청년이 한국군에서 복무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베트남전 종전 20주년을 맞아 주인공을 어머니 장티투씨(43·인천 북구 삼산동)를 함께 만나기로 한 것.육군은 이에 따라 28일 밤늦게 육군 제28사단 소속 90㎜무반동총소대 부사수로 근무중인 최일병에게 이날 아침 급거 상경을 지시,「국방장관과 라이 따이한 일병」의 만남이 성사됐다. 인솔장교 송모중령은 『최일병은 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적극적이어서 부대에서도 모범적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최일병이 이등병시절인 지난해 장거리행군에서 모범용사로 뽑혀 4박5일간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최 일병이 우리나라에 온 것은 생후 1년이 막지난 75년. 월남패망 나흘전인 4월26일 어머니의 품에 안겨 사이공에서 마지막 철수선인 우리 해군함정을 탔다.어머니 장티투씨는 73년 당시 월남에 조선기술자로 파견와 있던 최모씨(56)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최 일병은 한국에 입국하면서 자동적으로 주민등록번호 「740307­1079319」를 취득,완전한 한국인이 됐다. 그러나 최 일병은 14세때 어머니가 친척들의 반대로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단둘이 부천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며 최일병을 키워 인천제물포고 정보처리과를 졸업시켰다.어엿한 컴퓨터기술자로 자란 최일병은 지난해 입대직전까지 컴퓨터업체인 삼원전자에서 전자기판설계 일을 했다. 제대후의 계획에 대해 『베트남에 가 외할아버지등 친척을 만나보는 것』을 첫 손가락으로 꼽은 최 일병은 앞으로 계속 컴퓨터를 공부,훌륭한 컴퓨터설계사가 되는 것이꿈이다. 최 일병은 이 장관으로부터 『어려움에 좌절 말고 충실히 근무,자랑스런 한국인이 돼달라』는 당부와 함께 이틀간의 특별휴가증을 얻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베트남 음식점 「라우제」대표 김성창씨/“전쟁 상흔 씻고 민간외교 한몫/자유기고가로 참전… 한·월관계 교량역 30일은 베트남전쟁이 끝난지 20년 되는 날. 베트남전쟁때 주월한국대사관 무관부 직원으로,영자 월간잡지 자유기고가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김성창(57)씨가 맞는 종전 20년의 감회는 남다르다.그는 지난달말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우리나라에선 처음인 베트남 궁중 음식점 「베트남하우스­라우제」를 차린 주인공이다.음식점을 차린 이유는 『지난날 전쟁의 상흔을 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이 식당이지,우리와 베트남의 민간가교 역할을 자임한 「서울의 호치민거리」인 셈이다. 방한켠 색바랜 벽지 위에 비닐로 정성스레 싸여 벽에 걸려있는 베트남 전통의상 분홍빛 아오자이,그 위로 과일나무 잎사귀로 만든 모자와 남녀가 사랑의 정표로 주고 받는다는 농라도 보였다. 두나라가 수교한 뒤 해마다 몇차례씩 베트남에 드나들던 김씨는 지난해 6월 호치민시에서 식중독에 걸려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베트남통」이 되었다.치료해준 응엔 리엔씨(64)와는 의형제를 맺었다.8년동안 호치민(호지명)의 주치의를 지낸 리엔씨는 다음달 20일 김씨의 초청으로 서울에 오게 돼 있다. 김씨는 최근 도 무오이 베트남공산당서기장이 방한하자 숙소에 전통궁중요리 라우제(노양제)를 만들어 보냈고 치료차 우리나라에 온 무오이서기장의 막내아들 통역을 맡을 만큼 「베트남파」로 꼽힌다.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업계관계자들이 하루에도 2∼3명씩 알음알음으로 식당에 찾아와 자문을 구하고 베트남 현지에서도 『한국에 가면 반드시 「옹 김(미스터 김)」을 찾으라』는 말이 퍼져있다. 김씨는 지난 18일 버스에 깔려 숨진 동료 여자연수생의 소식을 듣고 침울해 있는 4천여명의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을 위해 달마다 고향음식으로 생일잔치를 열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당신이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농라를 벗어드리겠습니다」­농라에 얽힌 베트남의 전설을 얘기하는 김씨는 종전 20년의 베트남이 지금 우리에게 수줍게 농라를 내밀고 있다면서 우리도 가슴을 활짝 열자고 말했다.
  • “반외세론 한계”미·아세안과 관계개선(종전20년/베트남의오늘:상)

    ◎호치민대 미국학강좌 개설 2년째/“자주통일 위업” 민족자긍심 드높아/150만 보트피플·사회­자본주의 접목따른 과제 산적 75년 4월 30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베트남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해병 11명을 태운 헬기가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을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처절했던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베트남은 수백만명의 보트피플 문제와 이웃 캄보디아 점령으로 국제적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빈곤탈피를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과거의 적(적)미국과도 화해를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다.변화하는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국이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했다』­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비극적으로 마감할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꼽았다.사실 베트남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베트남전 당시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수행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었음은 물론 지금까지도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해방 20주년」을 맞는 베트남에서는 현재 자신들의 위대한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준비가 한창이다.특히 올해는 공산당 창당 65주년,건국 50주년,건국의 영웅이며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5주년등 갖가지 행사가 겹치는 탓에 나라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호치민 전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으며 붉은색 베트남기와 다채로운 경축 깃발이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를 뒤덮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명백한 패배로 끝난 전쟁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후 19년간 목조르기식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면치 못하면서도 베트남인들은 단결된 민족적 의지로 거대한 나라 미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했다는 자부심만은 종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갖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민족주의적 열정도 경제난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앞에서는 더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같다.지난 86년 12월 6차 공산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본뜬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그 결과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면서 지난해에는 8.9%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가져다 준 혜택을 실감하면서 베트남인들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베트남인들은 이제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해 더이상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고있다.도 무오이 서기장 등 베트남지도자들도 과거에 자신들을 괴롭혔던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 한결같이 『과거는 과거일뿐 우리는 과거에 얽매일 수 만은 없으며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의 협력강화와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92년 7월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지난 78년 12월 캄보디아침공으로 빚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중국과는 이미 91년 11월 관계를 정상화했다.이와함께 베트남은 빠르면 올 7월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 외무장관 및 확대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아세안에 가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베트남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해초 미상원의 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결의안 가결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 1월 미국과 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함으로써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또 과거의 「적」인 미국을 배우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 호치민 시립대학에서는 공산정권수립후 최초로 지난해부터 미국학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적극적인 경제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서구식 다당제 정치개혁을 거부한채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지난 90년 이후 동구에 밀어닥친 민주화 물결에 대해서도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제대로 사회주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이같은 경직한 태도는 90년 당시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베트남의 옐친」이라고 불렸던 찬 수안 바크라는 개혁파 정치국원을 축출한 이래 일체의 정치개혁 움직임을 용납치않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은 시장경제 도입과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부합될수 없는 상반된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달성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이와함께 공산화 이후 1백50여만명에 달했던 「보트 피플」은 아직도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에 따른 남북갈등과 자본주의를 이미 경험한바 있는 남베트남인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국민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 미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맥나마라 회고록에 분노

    ◎잘못된 전쟁 이끈 장본인/당시 정부오도 책임 은폐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한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78)의 회고록이 최근 출간,베트남전 참전용사들에게 쓰라린 전쟁의 상처에 대한 회상과 함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하에서 미국의 베트남전 전면개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맥나마라 전장관은 지난 10일 출간된 「회고록­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당시 미행정부는 베트남 공산군을 군사적으로는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정치적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채 계속 병력을 전장으로 보냈다』고 말하고 자신은 베트남전 수행에 관해 대통령과 견해를 달리 했지만 미국이 유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소련이 용기를 얻을 것을 우려해 침묵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맥나마라의 회고록에 대해 전장에서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은 참전용사들은 『때늦은 후회이며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는 분노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지난 67년 전장에서 실명한뒤 베트남참전 실명용사회를 창설한 존 세일스씨는 『맥나마라의 발언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모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라면서 『전쟁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도록 한 것은 맥나마라와 그 무리들』이라고 분노했다. 베트남전에 작전장교로 참전한 해리 서머스 퇴역 중령도 『베트남전에서는 많은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그러나 맥나마라는 진실을 알면서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이를 숨겨왔다』면서 『그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참전한 병사들을 저버렸으며 미국인 모두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 돌 미 공화당 총무/내년 대선출마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봅 돌공화당 상원 원내총무(71)가 10일 상오(미국시간) 오는 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출마를 공식 선언,대선경쟁에 합류했다. 돌 원내총무는 이날 출신지인 캔자스주 토피카 소재 주의회 건물에서 자신의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후보 레이스 참여선언 안팎/돌 출마… 공화 대선경쟁 가열/「대권 3수」 71세… 작년 양원장악 주역/출마예상자 8명 가운데 지지율 선두 공화당의 최고지도자인 봅 돌상원원내총무가 10일(한국시간 10일밤)내년의 미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선언함으로써 공화당내 대권경쟁은 더욱 가열화될 전망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올해 71세의 돌총무는 공화당내 대권주자가운데서는 가장 선두를 달리고있는데 그가 재출마할 것이 거의 확실한 클린턴대통령을 이길 경우 최고령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공화당내에서 대통령후보지명전에 나설것을 공언한 인사는 돌총무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이다. 이들은 필 그램상원의원(텍사스주),라마르 알렉산더 전테네시주지사,알렌 스펙터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시사평론가인 패트 부캐넌, 유명 라디오방송사회자 앨런 키예스등이다. 이 외에도 리처드 루거상원의원(인디애나주)이 사실상 대선경쟁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고 피트 윌슨캘리포니아주지사도 출마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이에 따라 당내 경선은 8대1이상의 경쟁률을 보일것같다. 돌총무는 대통령도전 3수(수)라고 할수있다.지난 76년 제럴드 포드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으며 80년과 88년에 대통령후보경선에 뛰어들었다. 돌총무는 작년 11월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40년만에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최고원내지도자로서 클린턴대통령의 정책시행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그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공화당의 기본색깔인 보수주의자이지만 당내 정치색채 스펙트럼에서 보면 중도파라고 할수있다. 그는 언제나 왼손으로 악수한다.1945년 4월 2차대전당시 이탈리아의 전선에서 독일군과의 전투중 미육군 소대장이었던 돌은 적의 총탄에 어깨와 쇄골을 부서지고 척추를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어 오른 팔의 신경이 완전히 마비되었던것이다. 돌이 출마를 선언한 이번주는 그가 전상을 입은지 50주년이 되는 시점.베트남전에 징집기피한 클린턴대통령과의 대비를 극대화하기위한 선거전략의 하나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 「제2 한국전쟁」 가상소설 등장

    ◎미 테크노 스릴러작가 톰 클랜시 「옵센터」 발표/미 정보기관 맹활약… 전쟁음모 파헤쳐 테크노 스릴러의 제일인자인 미국 작가 톰 클랜시가 최신작 소설 「옵센터」(Op­Center,미국 버클리사)의 무대로 잡은 곳은 바로 한국이다.지난해 위기의 벼랑끝까지 갔던 북한핵문제와 한반도 전쟁가능성이 그의 구미를 당겼던 것 같다.「옵센터」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리스트에 올라 두달동안 1위였다. Op는 Operation(작전 또는 공작)의 준말이다.소설 「옵센터」는 한국을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몰고간다.그러나 단 이틀동안 숨가쁘게 벌어지는 이야기.할리우드 영화처럼 빠른 장면전환에 갖가지 첨단무기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동원된다.카터와 김일성의 회담,북한내 미군헬기추락등 최근의 실제사건까지 배경으로 넣어 현실감을 돋운다.우리 민족의 사활 문제가 스릴 만점의 흥미거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한국인인 우리가 볼 때는 엉성한 구석도 있고 수긍이 안 되는 데도 없지 않다. 2000년대 중반,한반도는 아직 분단상태이나 통일을 위한 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다.미국에서는 새로운 정보기구 옵센터가 창설된지 6개월 됐다.어느날 한국의 국가적 기념식이 열리던 경복궁 식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구들은 바짝 긴장한다.범죄의 배후로는 자연스레 북한이 지목된다. 이 사고로 한국인 아내를 잃은 옵센터 한국관계 고문 그레고리 도널드(80년대 중반 주한대사 역임)는 더이상의 테러를 막기 위해 홍구라는 인민군 장군을 만나러 비무장지대로 가다 누군가의 총격으로 숨진다.한국 정보기관(KCIA)의 고위간부 김환도 체포된 북한간첩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그 간첩의 집으로 가다 테러를 당한다. 옵센터는 금강산으로 특수대원을 잠입시켜 북한의 노동호 미사일 3기의 탄두가 남한과 일본으로 향해 있고 발사준비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북한이 아닌 제3자가 전쟁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가공할 만한 이 사건의 배후에는 한국의 맹목적 국수주의자 김리 소령이 있었다.정세를 악화시켜 전쟁이 일어나게 하려는 음모였다.먼저,전쟁을 북한이 일으킨 것처럼 꾸며 미국이 북한을 공습해 초토화하도록 유도한다.다음 단계는 한국군의 점령에 의한 통일이다.김리의 정체가 드러나면서부터 옵센터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된다.첨단기기와 기민한 인재들을 가진 옵센터는 한국 정보기관및 북한과 협력해 노동호가 발사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폭파시키고 전쟁 발발을 막는다.옵센터 공작의 완벽한 승리다. 84년 첫소설을 발표한 클랜시는 미·일 가상전쟁,콜롬비아의 마약카르텔,베트남전 등에서 미 정보기관이 펼치는 하이테크 무용담으로 보험대리점 경영인에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작가로 변신했다.
  • 키스논쟁/영화 「침묵속의 봉사」(브로드웨이 “새바람”:7)

    ◎동성애자 진한 입맞춤이 문제로/강제퇴역 당한 여군대령의 실제 이야기/2월 NBC­TV방영… 외부서 삭제 압력/제작진,뮤지컬「거미여인 키스」들어 반발/“남자 동성애 얘기는 2년째 버젓이 공연” 브로드웨이에 밤이 깊어지면 40여개의 대형 브로드웨이극장과 3백여개의 오프 혹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소극장 무대의 막이 일제히 오른다.이 매일 오르는 막은 쉴새 없는 흐름이 되어 브로드웨이가 정체되지 않은 창조공간으로서 생명력을 갖는 원천이 되고 있다. ○공연 시간엔 거리 한산 메디슨 스퀘어파크에서 5번가와 해럴드 스퀘어에서 아메리카스 애브뉴(6번가)와 교차한 브로드웨이는 7번가와 만나는 43스트리트 일대에 타임스 스퀘어를 형성한다.반경 5백m도 못되는 이 일대는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중심지역으로 날이 저물면 몰려드는 인파로 시끌시끌 해지기 시작한다.그러나 막상 하오8시 극이 시작되면 10시30분까지의 두시간 반 동안은 현란한 네온만 남겨둔채 인적이 끊어진다. 이 브로드웨이에서 최근 입맞춤 논쟁이 한창이다.그것도 남녀간의 입맞춤이 아닌 여자끼리의 입맞춤과 남자끼리의 입맞춤에 대한 논쟁이어서 더욱 묘한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 논쟁은 동성애자로 밝혀져 강제 전역당한 여군대령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한 「침묵속의 봉사­ 마거릿 캐머마이어 스토리」를 지난 2월초 NBC텔레비전이 방영하면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이 영화에 나오는 캐머마이어대령(글렌 크로스)과 상대역인 화가 다이앤(주디 데이비스)의 진한 키스장면이 광고주들의 광고 보이콧 위협 등 갖은 삭제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제기됐을때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대뜸 뮤지컬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를 예로 들며 강력히 항의했다.남자끼리의 진한 키스는 물론 한 담요안에서의 정사 묘사까지 나오는 이 뮤지컬이 버젓이 2년째 히트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들의 키스 장면이 문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뮤지컬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소설가 마누엘 퓌그가 1976년 발표한 소설을 극화한 것으로 극도의 공포정치로 매년 수만명이 재판도 없이 「사라지는」 중남미 독재정권치하의감방안 이라는 한계상황을 설정하여 전혀 이질적인 성격의 두 주인공이 극도의 공포감을 이겨나가며 상상속의 구세주인 거미여인으로부터 구원을 받게된다는 내용의 인간애를 바탕으로한 정치극이다. ○토니상 7개부문 석권 영화로도 상영됐으며 92년 런던에서 첫 뮤지컬무대에 올려졌던 이 작품은 93년 5월 브로드웨이 44스트리트에 있는 브로드허스트 극장에서 개막된후 그해의 토니상(영화의 아카데미상과 같이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에 주는 상) 7개부문을 휩쓸 정도로 인기를 모았으며 롱런 채비를 차리고 있던차에 이번의 키스논쟁으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극은 윗부분의 환기구와 아랫부분의 밥그릇이 드나드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육중한 철문으로 외부와 차단된 감방에 정치범 발렌틴(브리안 미첼)과 그로부터 정보를 빼내기 위해 보내진 잡범 몰리나(하워드 맥길린)가 함께 수감돼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모진 고문과 옆방의 비명소리,매일 수십명씩 죽어나가는 정치범 감옥의 질식할 듯한 상황에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발렌틴은 시름시름 앓으며 한마디의 말도 없이 조그만 책 한권에 의지해 지낸다.동성애자인 몰리나는 붉은 꽃무늬의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매일 면도를 하며 머리모양을 매만지는 등 여성적인 몸가짐으로 은근히 발렌틴을 유혹한다. 겉으로는 활기 있게 보이지만 몰리나 역시 두려움과 초조감에서 벗어나려 자신이 우상으로 생각해오던 여배우 오로라가 나오는 영화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하룻밤만 지나면 신부를 죽여버리는 샤플리 왕으로부터의 죽음을 면키 위해 매일밤 재미있는 얘기를 천날씩 들려주던 셰하라자데 왕비처럼 그는 매일같이 독백으로 영화얘기들을 해 나간다. 정치적 투쟁으로 살아온 발렌틴은 동성애자를 극도로 경멸하며 몰리나의 얘기는 물론 모습도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지낸다.그래도 몰리나의 얘기는 지속되고 영화속의 여주인공 오로라는 점차 거미여인(바세나 윌리엄스)이라는 구원의 화신으로 바뀌어 간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발렌틴은 점차 몰리나의 얘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그리고 마침내 몰리나를이해하고 자신도 거미여인의 구원을 기다리는 가운데 몰리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얼마후 몰리나는 출옥하고 발렌틴은 애인 마르타에게 비밀연락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몰리나는 마르타와 접선하려다 기관원들과 벌인 총격전에서 총에 맞아 잡힌다.그는 끝내 자신이 부탁받은 마르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밝히지 않은 채 숨을 거둔다.무대전체에 거미줄이 깔리고 그 가운데서 나온 거미여인과 몰리나의 키스가 길게 계속된다. 또다시 악독한 고문을 받은 발렌틴도 차가운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간다.마침내 그에게도 거미여인의 구원의 손길이 뻗친다.결국 몰리나와 발렌틴이 함께 피안의 세계로 향하면서 막이 내린다. 뮤지컬 「카바레」,「쇼 보트」,「오페라의 유령」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대가 해럴드 프린스 감독이 만든 이 극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수많은 인물들이 군집한 배경화면에 실종자 가족들이 촛불과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으로 처리했다. ○아들 넷 가진 이혼녀 은빛 쇠창살로 된 감옥은 무대에 7층높이의 감옥에 죄수들이 빽빽이 들어찬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감방과 취조실등 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가 하면 순식간에 남태평양의 해변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무대장치와 다양한 조명으로 내용전개에 활력을 주고 있다. 특히 무대 전체를 덮으며 나타나는 커다란 거미줄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쇠창살로 표현되는 독재정권의 탄압·감금에 대한 도피와 구원의 상징으로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편 「침묵속의 봉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동성훈장까지 받은 간호장교 캐머마이어대령이 89년 시애틀에서 미방위군 간호장교 총사령관에 지원하면서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다가 강제퇴역을 당한 뒤 군당국과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서독 근무 때 탱크부대소속 장교와 결혼해 네아들까지 둔 이혼녀 캐머마이어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느끼게 된 것은 88년 7월.아들들과 오레곤의 한 해변으로 휴가갔다가 한 여류화가와 만나 과거 경험하지 못한 만족감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현재 그 화가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가 강제퇴역에불복해 군당국을 미연방법원에 제소하여 법정투쟁이 벌어지면서 동성애자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그녀의 인권투쟁이 전미국의 빅뉴스로 등장했다.그녀는 지난해 6월 복직판결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군당국이 이에 불복,이 사건은 현재 상고심에 계류돼 있다. 이 영화는 칠레의 아옌데 독재정권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혼의 집」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글렌 크로스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제작하고 출연한 작품이다. 이번 영화가 예상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당분간 브로드웨이의 동성간 키스논쟁도 지속될 전망이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작가 제임스 월러 새소설 「보더 뮤직」

    ◎“중년의 사랑 노래한 한편의 서정시”/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의 이야기/NYT,“나이 든 성인용 소설 개척” 평 우리나라에서도 40대 여성을 독자층으로 끌어들여 베스트셀러가 됐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저자 로버트 제임스 월러가 최근 세번째 소설을 써냈다.제목은 「보더 뮤직」(Border music·미국 워너 북스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시더벤드에서 느린 왈츠를」등 두편의 소설을 관통한 중년의 낭만적 사랑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다.월러의 소설은 『줄거리가 단순하고 유치하다』는 일부의 혹평속에서도 최근 몇년동안의 초베스트셀러로 꼽힌다.이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소설가 로버트 플렁킷의 입을 빌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장르,「나이 든 성인용」(OLD ADULT)을 개척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동안 소설의 주류였던 「젊은 성인용」(YOUNG ADULT)은 세상에 나혼자라는 외로움속에서 무언가 확신이 필요한 불안한 청년들을 집중 공략한데 반해 월러의 소설은 삶이 허무하게 지나갔으며 나를 평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래전에 선택했던 것들­자식,결혼등에 꽁꽁 묶여 있다고 느끼는 위기의(?) 중년을 포섭한다. 물론 중년층을 다룬 책은 많지만 월러가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허무감에 대해 단호히 「노」라고 주장하는 것.월러는 그의 책을 통해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며 당신의 고통은 절대 침울한 것이 아니다』고 속삭인다.또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인생에 단한번뿐인 황홀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공식을 전형적으로 따르고 있는 「보더 뮤직」은 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 텍사스 잭 카민의 이야기.이 책은 잭이 한 술집에서 손님으로부터 희롱당하고 있는 무희 린다 로보를 구해 함께 차를 타고 전전하다가 서부 텍사스에 있는 그의 목장에 도달하는 것이 기둥 줄거리다.여기다 늘 모험을 꿈꾸다가 결국 이를 이루고 마는 잭의 아저씨 본 로머의 이야기가 병렬된다.주인공 잭은 린다나 본 아저씨에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즉 일정한 선을 넘나들도록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이는 잭의 공포에 가득찬 베트남전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행동 또는 도덕적 갈등보다는 감정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월러답게 「보더 뮤직」은 서정시와 노래를 연상케 하는 문장으로 감정의 파고를 극대화하고 있다.세파에 치인 중년들은 이 소설로 꽤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다.
  • 풀브라이트와 한국/김학준 단국대이사장·정치학(기고)

    지난 2월9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 미국 연방 상원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은 적어도 세가지 맥락에서 한국에 연결돼 있다. 첫째,그가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면서 입법한 풀브라이트 교환계획이다.국제적 이해의 증진이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믿었던 그는 이 교환계획을 입법화하는데 성공해 사실상 미국 정부의 돈으로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연구하게 했고 또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로부터 미국으로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국은 이 계획의 대표적 수혜자들 가운데 하나이다.적지않은 한국인들이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을 통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또 연수를 받았다. 둘째,그는 미국의 베트남정책을 매섭게 비판했으며 그러기에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여겼다.베트남 전쟁을 민족적 정통성을 지닌 북베트남이 외세의존적 부패정권인 남베트남을 「해방」하기 위한 내전으로 파악한 그였기에 남베트남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을 쏟아넣는 존슨 대통령의 확전정책,그리고 거기에 발맞추는 한국 정부의 베트남 참전이 아주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는 상원 대외관계위원장이라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통해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베트남 전쟁에 대한 청문회를 자주 열어 문제점들을 사정없이 노출시킴으로써 정부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60년대 말에 미국의 대학가를 휩쓸다시피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은 어떻게 보면 풀브라이트 청문회에 자극된 것이기도 했다.그리고 그 반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존슨 대통령은 68년 봄에 「대통령 재출마 포기」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브라이트의 베트남 청문회와 관련해 특히 우리로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김치」발언과 「용병」발언이다.그는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군인들을 「용병」이라고 매도해 우리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산 일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그때 주한 미국대사이던 윌리엄 제임스 포터와 김치 문답을 벌인 것이다. 발단은 『한국 군인들은 김치를 먹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게되면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는 포터대사의 발언이었다.그러자 풀브라이트가 『김치가 뭐냐』고 물었고 포터는 『배추를 소금에 절인 뒤 고춧가루와 마늘을 배합해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셋째,그는 미국의 정치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2개의 코리아 정책」을 미국 정부가 채택하도록 제의했다. 풀브라이트의 의견으로 한반도에는 2개의 국가가 실존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 현실을 공인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는 그 논리위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제의했다.그리고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대화하고 협상하는 가운데 평화공존을 이룩해 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마침내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풀브라이트가 이러한 구상을 내놓았던 때가 지난 70년이었으니 우리 정부로서는 「하나의 코리아」정책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이른바 「한국판 할슈타인 원칙」을 고집스럽게 밀고나갈 때였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풀브라이트의 제의를 비판했다.그렇지 않아도「용병」발언으로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2개의 코리아」를 들고 나오니 풀브라이트가 곱게 보일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히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풀브라이트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셈이다.한국 정부는 73년의 6·23선언을 통해 사실상 「2개의 코리아」정책으로 돌아섰으며 91년 가을에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실현됐다. 베트남 전쟁도 풀브라이트가 내다본 방향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군사력으로는 결코 베트남 민족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리라고 늘 주장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풀브라이트의 죽음을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미국의 유력지들은 미국이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던 지혜로운 정치가」를 잃었다면서 그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풀브라이트가 했던 말들 가운데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의 구상들 가운데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 정계에도 그만한 인물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 호치민시 소재/피카소 고아원/“가족애 넘쳐 입양갈 생각 없어요”

    ◎피카소 손녀 설립… 아이들 기술 가르쳐자립 도와/보모 5∼10년 금혼 규칙 있어도 지원자 줄이어 베트남전이 끝난지 꼭 20년이다.전쟁은 끝났지만 베트남은 여전히 빈곤과 이로 인한 고아들의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호치민시에는 이같은 고아들에게 따뜻한 가정의 역할을 하는 이상적인 고아원이 하나 있다.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손녀 마리나 피카소가 세운 「피카소 고아원」이 그곳. 피카소 고아원은 하나의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다.지난 91년6월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아홉채의 집으로 출발했지만 점점 땅을 넓혀 이제는 모두 24채의 주택이 고아원을 형성하고 있다.게다가 집 주변에는 야외 수영장,체육 경기장,학교,작업장 등도 있어 이곳 2백여명의 아이들에게는 집 이상인 곳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피카소재단은 이 고아원을 연간 20만달러로 운영하고 있다.마리나 피카소가 베트남에 고아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지난 90년 세명의 베트남 어린이를 입양하면서부터.베트남 관리의 안내로 한 고아원을 방문했을 당시 고아원 건물이너무나 낡고 허술해 마리나는 이곳을 인수,개조하기로 결심했다.그가 직접 프랑스에서 데려온 건축가가 손질한 고아원은 코코넛 나무숲을 배경으로 멋진 건물로 탄생했고 그의 이름을 딴 지금의 피카소 고아원이 됐다. 새로운 고아원을 만든 마리나는 이 고아원이 어린이들에게 단순한 보호시설 이상이기를 원했다.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정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우선 마리나는 베트남 여교사 가운데 고아원에서 어머니가 될 사람을 물색한뒤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한 규칙을 세웠다. 피카소 고아원내 아이들은 절대 밖으로 입양돼 나갈 수 없고 어머니가 된 사람은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보살피며 5년에서 10년까지 결혼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그리고 아이들은 반드시 일반적인 교육과 함께 갖가지 기술을 익혀 사회에 나갔을 때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엄격한 규칙에도 어머니가 되려는 사람은 줄을 이었고 새엄마와 형제,자매를 갖게 된 아이들은 끈끈한 가족애 때문에 입양갈 생각은 아예 하질 않는다. 아이들에게 「메」(베트남어로 엄마)라고 불리는 이곳 어머니들은 한달에 70달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아이들의 어리광도 받고 때로는 야단도 치며 여느 어머니들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31세의 교육대학 졸업생인 보 티 투오이는 14개월서부터 15세까지 아이 7명의 어머니 노릇을 한다.투오이의 하루는 새벽 5시30분에 시작된다.아이들을 깨워 운동을 시킨 뒤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학교갈 준비를 해준다.그는 평생 미혼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겠다고 다짐한다.
  • 칸스 미 CIA국장 지명자(뉴스인물)

    ◎공군 정보통… 예비역 4성장군/월남전 참전… 2백회 출격 경력 새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된 마이클 칸즈(57) 장군은 35년간 공군에 복무한 뒤 지난해 9월 전역한 4성장군 출신.전투기 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전역 직전 공군참모차장으로 일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칸즈 장군은 정보를 다뤄본 바 있기 때문에 정보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칸즈 장군은 『냉전은 사라졌지만 지역의 불안정,테러리즘,마약거래,범죄및 핵무기 확산 등이 문제로 등장했다』면서 『이런 시기를 맞아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91년 걸프전 때 국방부에서 합참의장의 수석행정보좌관을 맡아 다국적군의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했다.그가 보좌했던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은 칸즈 장군의 일처리 솜씨를 높이 평가하고 정보국장직에 적합한 인물로 추천했다고 백악관측은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2백회 이상 출격했으며 6천4백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지난 87∼89년 태평양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재직했던 칸즈 국장은 군출신으로는 7번째로 중앙정보국장직을 맡았다. 37년 캔자스주 정크션시티에서 출생,59년 공사를 졸업.77년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가족으론 부인과 두자녀.
  • 윌리엄 풀브라이트/미상원의원 별세

    【워싱턴 AP AFP 연합 특약】 전직 미 상원의원으로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던 윌리엄 풀브라이트가 9일 뇌일혈로 숨졌다.향년 89세. 지난 45년부터 74년까지 30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풀브라이트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반대했던 대표적인 인사로 유명하다.
  • 미­베트남 「자산반환」 오늘 서명

    【하노이 AP 연합】 미국과 베트남은 28일,국교수립에 걸림돌이 돼온 자산반환협정을 조인할 계획이라고 미행정부의 한 관리가 지난 26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두나라가 이 협정 조인 직후 상대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에서 체결될 이 협정에 따라 지난 75년 베트남전이 끝나면서 몰수된 미국의 외교자산 반환 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진다. 이 관리는 하노이의 미연락사무소가 다음달 3일부터 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베트남,이달 대표부 교환/로드 차관보/자산반환협상 등 현안타결

    【워싱턴 AP 연합】 미국과 베트남은 모든 미해결 쟁점들이 완전 타결됨에 따라 이달중 상대국 수도에 외교대표부를 개설하게 될 것이라고 윈스턴 로드 미국 국무부차관보가 9일 밝혔다. 로드차관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협상타결을 가로막아온 베트남전 당시 미국자산반환등 관련 현안들이 모두 해결됐다면서 이달안에 각기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차관보는 그러나 연락사무소의 정확한 개설일자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이 작년 2월3일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수조치를 해제하면서 두나라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해 작년 5월에는 상호 연락사무소개설을 위한 법적인 테두리에 합의했다.
  • 러스크 전 미국무

    【애선스(미국 조지아주) AP 연합】 딘 러스크 전미국국무장관이 20일밤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조지아대학교가 21일 발표했다. 러스크 전국무장관은 존 에프 케네디와 린든 존슨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재임 8년동안 ▲쿠바 피그스만 침공 ▲쿠바 미사일위기 ▲소련과 핵확산금지조약 체결 ▲베트남전쟁등 4가지 중요한 국제적 사건을 다뤘다. 그는 베트남전쟁을 지원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관직에서 은퇴한 후인 69년부터 조지아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해왔으며 몇년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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