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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전때 국군 포로 北에 끌려간 9명 생존”

    베트남전쟁 당시 월맹군 포로가 돼 북한으로 압송된 한국군 참전용사 가운데 9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박정환(朴定煥·58·미국 플로리다 한인회장)씨는 13일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월남전 참전수기인 ‘느시’(전2권·문예당) 출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박씨는 “포로가 된 참전용사 가운데 9명이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다는 미국 국방부의 사실 확인이 있었다”면서 “오는 9월초 북한측과 비전향 장기수 및 국군포로 맞송환을 논의할 때 북한에 억류된 월남전 포로 문제도 함께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지난 67년 육군 소위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68년 1월 월맹군 포로가 돼 2개월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캄보디아 국경 근처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으나 다시 붙잡혀 6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석방됐다.박씨는 “수감생활을 할 때 월맹군 장교로부터 ‘너도 북으로 가라.이미 북한에는 많은 국군 포로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국방부는 박씨의 주장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경운기자 kkwoon@
  • 베트남전 희생자 추모 평화음악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천주교 인권위원회,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국제민주연대 등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는 6일 서울 숭실대에서 베트남전 희생자를 위한 첫 시민행사로 ‘사이공,그 날의 노래’라는 평화음악제를 갖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장사익,노영심씨 등 국내 음악인들이 참전 국군의 잘못을 사과하는 마음을담은 ‘미안해요 베트남(작사·작곡 박치음 순천대교수)’을 부르고,무용가김경란씨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무도 출 예정이다. 베트남국립예술단의 특별공연도 펼쳐지며,부대행사로 베트남 풍물시장,베트남 음식판매,베트남전 사진전도 열린다. 위원회측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에 앞서 30년 전의 베트남 전쟁,한국과베트남의 과거와 오늘을 동시에 돌아보며 전쟁 학살로 피해받는 이들을 추모하고 사과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종군위안부 생활을 했던 문명금 할머니가 기탁한 성금 4,200만원에 국민 성금을 보태 베트남 현지에 역사기념관도 건립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참전 군인들은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행사 계획에 대해 “참전 군인들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한수기자 onekor@
  • [굄돌] 전쟁의 슬픔

    바오닌이라고,베트남의 작가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간 일이생각난다. 때마침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은 터였기에 관심이부쩍 생겨 그를 보려 가기도 했었다.그는 베트남전에 직접 오랫동안 참전하여 상대방 병사를 향해 총을 겨눈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아름다운 소설이었다.페이지마다 스민 ‘전쟁의 슬픔’은 어떤 그럴듯한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정의의 전쟁이란없는 것이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조차 산 것 같지 않은 자로 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바로 며칠 전,파주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로 인해 두 중령이 무릎과 발목 아래를 절단 당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참으로 마음이 아팠다.그러나,졸지에 일을 당한 이들의 참담한 마음을 내가 헤아릴 재주는 없을 것이다.그저께인가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가‘난리’를 벌인 일도 있었다.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고엽제 피해보상 소송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조금만 더고개를 뒤로 돌리면 매향리 미군 사격장을 둘러싼 문제…… 이것들이 내게는 모두 ‘전쟁의 슬픔’으로 보인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오르면,몇 년 전 잠수함이 고장 나 남쪽의 산야에 들어와이리저리 쫓기다 죽어간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특히,열 명이 넘는병사들이 벌거벗은 채 나란히 쓰러져 있던 모습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런가 하면,토벌작전에 나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남쪽의 병사들도 있지 않았던가.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는나의 세대도 실은 전쟁의 기운 속에서 ‘전쟁의 슬픔’을 목도하면서 살아온 셈이다.변화만큼이나 논란 많았던 6월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이제서야 한반도는 전쟁이 강제하는 죽음의 기운으로부터 겨우 한 발자국 멀어진 셈이라고. [방민호 문학평
  • 조국을 위해선 민간인 사살도 무죄?

    전쟁의 비정함을 고발하는 영화가 이제 와서 새삼 새로운 것은 없다.‘라이언일병 구하기’같은 전쟁영화의 ‘완결편’을 보고난 관객들에게 더이상의충격요법을 들이대기란 제아무리 할리우드라도 쉽지 않을 일이다.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Rules of Engagement)에는 그런 딜레마를 스스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영화가 시작되면 교전으로 아수라장이 된 베트남밀림속을 카메라가 충격적 리얼리티로 헤집고 다닌다.그러기를 10여분.그때까진 베트남전을 소재삼은 전쟁영화의 전형을 다시 보게 됐다 싶지만 그게아니다.미국 정부의 음모에 휘말려 전장의 노병이 군법재판에 회부될 때부터는 숨겨진 진실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본격 법정영화로 바뀐다. “제복을 벗느니 총살당하는 편이 낫다”며 평생 독신으로 충성해온 칠더스대령(새뮤얼 L.잭슨)은 예멘 민중의 반미시위 진압을 책임진다.뜻하지 않은시위대의 총격에 부하 사병들이 눈앞에서 죽어가자 갈등 끝에 발사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온 그앞에 떨어진 죄목은 민간인 학살.무장 민간인들을향해 응사를 명한 그가 교전수칙을 어겼는지 여부를 놓고 군 당국과 법정공방이 시작된다.시위대쪽에서 먼저 총구를 열고 살상을 가해왔다는 사실을 밝히려 하지만,사건이 국제문제로 비화되길 두려워한 미 정부가 이미 증거물을 없앤 뒤다. ‘엑소시스트’(1973)를 연출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전장을 무대로 빌렸을 뿐,밋밋한 반전 메시지 이상을 전하려 노력했다.박제된 규율이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에둘러 은유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퇴역 대령 출신으로,칠더스의 진실을 찾아주는 변호사 하지스는 토미 리 존스가 맡았다.1일 개봉. 황수정기자
  • 다양한 시각의 베트남전 특집 마련

    올해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영화나 소설은 베트남전을 다양하게 다뤘지만 TV는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고작이었다.베트남전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들어 TV도 베트남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어려서는한국전쟁을 겪고 나이 스물이 넘는 청년기에 머나먼 이국땅 전쟁터로 떠나야했던 월남 파병용사들.반백의 나이가 훌쩍 넘긴 파월장병의 인간적 고뇌를다룬 프로그램이 선을 보인다. MBC는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29일 밤10시55분)을 준비했다.1부인 ‘전쟁의 기억’과 2부인 ‘희생’으로 나눠 방송된다.‘전쟁의 기억’에서는 30년전 32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살펴본다.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산항 파월 환송식,베트남 도착,당시의 낯설고도 이국적인 월남풍경을 소개한다.백마작전,안케패스 작전 등 큰 전투 속에서 숨진 전우들,그 죽음을 통해 확산되는 전쟁의 공포 등을 보여준다. 2부 ‘희생’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다룬다.하미마을,락빈부락,땅띠마을 등 베트남 현지 마을에 남아있는 증오비석과 당시목격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제작을 맡은 민운기PD는 “공과(功過)는 짚어야겠지만 누가 잘못했다는 일방적 매도는 아니다.한 걸음 물러서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KBS는 특집 드라마 ‘유리구슬’(7월3,4일 밤9시50분)을 준비했다.줄거리는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베트남전에서본의 아니게 양민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50년전의 피해자가 20년 뒤에는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을 설정했다.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고엽제 후유증과 황폐해진 인생 속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깨닫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김형일PD는 “한 개인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담고자 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문화예술 분단장벽 허무나](3)영화

    현실을 이미지로 반영하는 작업이 영화라면,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영화사에서 남북분단은 ‘본의아니게’ 주요소재가 돼왔다. 한반도 분단과 영화를 주제로 최근 논문을 쓴 영화평론가 김의수씨 같은 이는 “7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치고 분단영화 아닌 게 없더라”고 말할 정도다. 분단을 소재로 잡은 영화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끊임없이 만들어져왔다. 초기 반공영화의 대표작으로 첫손에 꼽히는 영화는 ‘피아골’(감독 이강천·1955년).지리산 빨치산의 만행과 여대원을 둘러싼 그들의 갈등,자유의식을 그린 이 영화의 흥행 이후 분단영화는 영화가의 최고 아이템으로 부각되다시피 했다.‘지옥화’ ‘철조망’ ‘오발탄’ 등의 6·25 소재 영화가 붐을일으킨 것이 그 즈음이다. 5·16과 유신 등의 질곡을 거치는 동안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은 정치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60년대에는 상업성이 고려되지 않은,다분히 통치차원의 반공영화들이 줄을이었다.‘증언’ ‘돌아오지 않는 해병’ ‘카인의 후예’ ‘전우가 남긴 한마디’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쯤에서 고개드는 의문.이들 영화가 분단현실 극복의 한 대안으로 기능해온 적이 있었을까.분단을 보는 영화적 시각이 반공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80년대 들어서였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이 비로소 전쟁의후유증과 인간의 고뇌를 담아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분단을 바라보는 영화적 시각은 시대흐름속에서 꾸준히 달라져왔다.대자본이 들어가고 상업논리가 최고 우위를 점하는 최근의 영화제작 현장에서는 더말할 나위도 없다.분단인식을 ‘범국민적’으로 환기시켜준 영화는 단연 ‘쉬리’였다. 남북간 이념대립 자체가 맥락을 이룬 이 영화는 분단과 영화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확실한 공을 세웠다.정치적·이념적 메시지를 가진 영화는성공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부순 것.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분단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영상이미지 시대에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주요한 영화적 테마가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분단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장치로서 영화는 얼마든 큰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제부턴가 베트남전을 ‘지옥의 묵시록’이나 ‘7월4일생’ ‘플래툰’으로 떠올리는 상황에 주목해보라는 주문이다. 물론 여기서 짚고넘어가야 할 문제점도 있다.분단현실이 상품화·오락화 일변도로 치닫는 최근 영화제작 경향에 대한 비판이다. 남북이념의 대립을 부각시키는 영화는 분단 극복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고착을 조장하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에서다.‘쉬리’를 정면겨냥해 “우리쪽을 자극하는 영화는 만들지 않도록 남쪽 언론에 말해달라”고 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멘트는 흘려들을 일만도 아닌 셈이다. 판문점의 긴장을 소재로 한창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미스터리 휴먼드라마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에 쏠리는 관심이 어느때보다 큰 것도 그래서다. 분단현실을 극복하는 데 영화가 주효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은 얼마든포착된다는 게 영화가의 중론이다. ‘공동경비구역’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분단에 대한 균형감각있는 철학이 전제된다면,한반도 분단상황에 대한 지구촌의 성의있는 관심을유도하는 데 영화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올 칸느영화제에서 분단을 겪은 독일 등 유럽권에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많았던 점에 주목,명필름측은 영화를 내년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을 잡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당장 ‘공동경비구역’의 경우 통일대교 촬영을 군당국에 협조요청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했다.올리버 스톤이 ‘플래툰’이나 ‘7월4일생’을 혼자 힘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되는 대목이다. 황수정기자 sjh@
  • 방송사 6·25 50주년 특집 고민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각 방송사의 6·25 특집이 예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북한에 대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새로운 시각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예년에 비해 특집 프로그램의 수가 크게 줄었다.이는 남북정상회담이성공을 거두면서 냉전의 유산인 한국전쟁을 종전처럼 다루기 어려워진 탓이다.아울러 6·25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남북화해의 시각을 담은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게 시간적으로 힘들게 됐다. 드라마는 KBS의 ‘유리구슬’이 유일하다.그나마 6·25 전후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7월3일과 4일(밤9시50분)로 날짜를 늦춰 방송된다.예년의 6·25 특집극이 6·25 전에 방송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유리구슬’은 한국전쟁당시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풍우(정은표)가 베트남전에 참전, 양민학살을 하게 되고 나중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반전운동가가 돼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방송에도 비상이 걸렸다.KBS가 지난해부터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12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은 아직 방송시각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남북한의 분단을 세계 역학구도와 한반도 정치세력의 대결 등에서 풀어나간 1편 ‘분단’은 KBS1에서 25일부터 매일 방송하기로 두달 전부터 확정돼있었다.그러나 18일 방송하기로 예정됐던 KBS1 ‘일요스페셜-6·25 전사자들의 유골찾기’가 25일로 늦춰짐에 따라 방송연기가 논의되고 있다.18일 ‘일요스페셜’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남과 북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서울-평양,2000.6.13-15’가 방송된다. MBC가 23일 방송할 ‘6·25 50주년 특집­한국전쟁’은 내용이 훨씬 늘어났다.프로그램 촬영은 방북단이 돌아온 15일 끝났지만 한국전쟁 참전국을 돌며6개월 정도 해외촬영을 한 부분은 현재 편집과정까지 끝나 손을 쓸 수 없는상태다. 대신 프로그램 말미에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3일간 일정을 담고내레이션을 현재 시점으로 바꾸는 등 대폭 수정할 예정이다.외국인 전문 케이블방송인 아리랑TV에서 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전쟁 참전국에도 배포돼 해당 국가에서도 방송될 예정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현충일 맞이 특집 프로그램…탈냉전시대 다시 찾는 철의 장막

    각 방송사는 6일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뜻을되새기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KBS 1TV는 낮 12시15분 1966년 베트남전 ‘해풍작전’에서 적의 폭탄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하고 숨진 고 이인호 소령의 일생과 철학,군인정신을 베트남 현지를 방문한 미망인 이경자 여사로부터 들어보는 ‘꺼지지않는 호국의 혼 이인호 소령’을 방송한다.오전 10시35분에는 ‘현충원’ 이참전용사와 독립운동가들만 묻힌 곳이 아니라 인명구조 소방관 등 우리 사회와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이웃이 묻히는 곳이라는 점 등 국립묘지의 뜻을 재조명해보는 ‘2000년 6월 대전국립묘지’를 방영한다. EBS는 오전 11시25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미국 여성 언론인 레지 나델슨과 소련의 방송인 블라디미르 포즈너가 발트해에서 아드리아해까지1,200마일에 걸친 ‘철의 장막’을 횡단하며,냉전을 겪은 세대와 지금 자본주의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철의 장막이 지닌 정치·사상·역사적 배경 등을 되새겨보는 ‘특집다큐-다시 찾아 본 철의 장막’을 방영한다. MBC는 ‘아주 특별한 아침’(오전10시40분)에서 26년 경력의 모범 택시기사로 태극기와 관련된 자료를 10만건 이상 모으고 3,500여건이 넘는 잘못된 자료를 바로잡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손복한씨의 ‘26년 올곧은 태극기 사랑’을 방송한다. 특집 영화도 준비됐다. SBS는 오전 11시 군벌득세로 혼란을 겪던 1930년대중국을 배경으로 황비홍의 활약을 그린 서극 감독의 ‘황비홍 무두장군’을내보낸다.헤밍웨이 원작의 ‘무기여 잘 있거라’(KBS2 오전10시40분),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랠프 리처드슨,데보라 커 주연의 ‘새날의 여명’(EBS 낮12시30분)도방송된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는 카를로 콜로디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영화화한 ‘피노키오의 모험’(MBC 낮12시20분),집시 사기꾼으로부터 도망친원숭이와 그를 데려다 기르는 한 소녀 사이의 우정을 그린 ‘다저스 몽키’(KBS2 오후3시15분) 등이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생활지원금 기탁 위안부출신 문명금할머니

    “고국에서 다시 살게 된 것만으로 모든 한을 풀었어요.저보다 더 고생하는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해방 후 중국에 머물다 지난해 9월 영구 귀국한 일본군 위안부 문명금(文明金·83) 할머니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명륜동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공동대표 李海東)를 찾아 “베트남 전쟁 피해자를 위해 써달라”며 지난달 17일 정부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 등에서 받은 생활지원금 4,300만원 전액을 기탁했다. 문 할머니가 기증을 결심한 것은 오랜 전쟁의 상흔을 겪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고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18살이던 지난 35년 봄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일본 사람들의 말에 속아 정신대에 끌려간 뒤 중국 흑룡강성 근처 부대에서 해방 때까지 하루에 20∼30명이나 되는 일본군인들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했던 문할머니는 평생을 악몽과 싸워야 했다. 해방 후 흑룡강성에서 생활해 오다 지난해 64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문할머니는 현재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 10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고엽제 소송’ 원고에 진료기록 제출 명령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柳元奎 부장판사)는 5일 ‘고엽제 소송’ 피고 회사들인 미국의 몬산토사와 다우케미컬사의 진료기록 송부신청을 받아들여 전국 5개 보훈병원에 원고 1만 7,200여명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진료기록을 의사 등 감정인에게 의뢰해 고엽제로 인한 질병 유무를가리기로 해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고엽제 소송’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앓고 있는 질병과 고엽제와의 연관성을 파악함으로써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진료기록 제출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나일주씨 등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 피해자 1만 7,200여명은 지난해 10월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들을 상대로 1인당 3억원씩 모두 5조 1,618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한국전쟁 성격규정 본격 연구 ‘큰 걸음’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한국역사연구회(회장 방기중)가 오는 10일 오전10시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심포지엄을 연다.주제는 ‘한국전쟁의재인식-분단을 넘어 통일로’. 그동안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한국전쟁과 관련해 다양한 학술대회를 가졌지만 역사학계가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역사연구회는 “전쟁기원론·전쟁책임론처럼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접근과 분석을 거부하는 대신 미국·옛소련이 최근 비밀해제한 관련문서에 기초해 한국전쟁자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은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교수의 주제발표 ‘화해와 통일을 위한 전쟁인식의 과제’로 시작한다. 서설 성격의 이 논제에서 도교수는 한국전쟁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규정하고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전체가 구조조정에 돌입한 지금한국전쟁을 올바르게 마무리하는 일이야말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초석”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문제로 꼽은 것은 전쟁 중의 ■정보전 ·특수전 ■양민학살 ■세균전 등이다.그 중에서도 양민학살은 그 규모와 원인측면에서 한국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고 본다. 정병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1949∼50년 38선 충돌과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에서 전쟁전 38선에서 벌어진 남북한 군사 충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복원한다.또 그 충돌이 북한의 전쟁 계획 수립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남북한 지도부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상대방의 도발을 과장해 강조했는데,특히 북한은 38선 충돌을 통해 ?병력 증강과 훈련,무장강화를 이루었고 ■6·25 당일의 전면남침을 ‘정의로운 반격전’으로 내세우는 전쟁관을 수립하게 됐다고 결론짓는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기광서 조선대 북한학과교수는 ‘소련의 한국전쟁관과 개입과정’을 주제발표한다.기교수는 옛소련 자료를 바탕으로 스탈린이 한국전쟁에 소극적·방어적으로 대한 이유와,소련공군의 참전을 사실적으로 밝혀낸다. 이밖에 국방군사연구소의 안정애박사는 ‘한국전쟁기 주한미군사고문단의조직과 활동’을,양영조박사는 ‘한국전쟁기 한국 군부의 재편과 정치화 과정’을 발표한다. 이용원기자 ywyi@. *창원대 도진순교수 ‘주제발표’요약. 미국의 정보전문가 도널드 니콜스는 회고록에서 “왜 우리가 한국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는가”자문하면서 “(농민들의)지게 때문”이라 답한 바 있다.한국전쟁은 베트남전·아프카니스탄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군사전쟁이 아닌폭넓은 대중전선이 병행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은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전선에 동원됐으며 대규모로 학살당했다. 최근 노근리 사건이 문제가 된 뒤 한국전쟁 때의 양민학살이 여러곳에서 터져나온다.한 통계에 따르면 전쟁중 사상·실종·포로·납치된 수는 478만여명에 이르는데,사상자 숫자에서 민간인이 군인의 4∼5배나 된다.이는,옥쇄작전으로 악명 높았던 오키나와전투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군인의 1.5배가 되지않은 사실에 비교하면 기록적인 수치이다.학살에는 우발적인 것도 있지만 단체·조직이 저지른 ‘국가후원적’학살이 대부분이다.미군에 의한 학살도적지 않은데 이는 ‘종족 학살’(genocide)의 면모를 보여준다. 양민학살은(고려때 몽고의 침입이나 임진왜란처럼)대중의 집단 기억에 매우강하게 유전된다.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양민학살에 관한 공식조사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동티모르의 인권문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땅 자기조상의 학살에는 침묵하는 것,이것이 한국전쟁에 관한 우리 인식의 현주소다. 대중적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독해할 때,또 갈등과 대립을 넘어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데 양민학살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 韓國戰 미군포로등 생환 협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은 앞으로 한국전쟁(6·25)·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미군 포로나 실종자들의 생환을 돕는 북한주민 등 특정국가 국민들에게피난처를 제공하고 신변을 보호해주기로 했다. 미 상원은 30일 이같은 내용을 주요골자로 하는 ‘전쟁 실종자 및 포로 생환법 2000’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국무부와 법무부는 곧 구체적인 관련후속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한국전쟁·베트남전쟁 당시 현지에 파견돼 활동하던 중 전쟁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과 군무원들의 생환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특정국가국민들에게 미 법무장관이 즉각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피난처를 제공토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포로나 실종자가 된 사유가 되는 전쟁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한정했으며,이들에게 도움을 준 외국인의 국적을 북한을 비롯해 중국,구소련권 국가,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으로 제한했다. hay@
  • [김삼웅 칼럼] 韓美 현안 어떻게 풀 것인가

    연초 미 정치학회장 로버트 코핸은 한 인터뷰에서 “제국(Empire)이라는 말은 미국을 표현하는 데 적절치 않다.역사상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 확장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대국(Great Power)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미국의 지위는 기술적 지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란 말을 남겼다.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국가)들은 ‘미제(美帝)’ 즉 미제국주의라 부르고우호적인 사람들은 ‘우방’ 또는 ‘혈맹’이라 호칭한다.코핸은 미국이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라지만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는 ‘국내용’이고 수많은 약소국가에 대한 이해 다툼은 ‘신식민지’ 정책이나 ‘속방’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과거 일본제국주의나 독일·러시아제국주의와는 존재양상이 크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두 얼굴의 미국’이 우리에게는 어떤가.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준해방자, 6·25전쟁에서 국가를 지켜준 구원자,배고플 때 도와준 은혜의 나라,수많은 유학생과 이민을 받아준 기회의 나라,상품수출의 최대시장 등 긍정적인 측면이 너무 많다.반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침략을 양해해준 행위,분단의 배후,양민학살,독재정권 지원,대리전쟁(한국전과 베트남전) 조종,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등 부정적 측면 또한 심한 편이다.호오(好惡)와 선악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두 측면 함께 살펴야 개인이나 국제관계나 좋은 부분은 발전시키고 좋지 않은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이다.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80년 광주항쟁 이전까지 “양키 고 홈” 소리가 없는 곳이 한국이었다.그러던 것이 최근 양국관계가 곳곳에서 마찰이 생기고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노근리와 매향리,린다 김,그리고 미8군 소속 매카시 상병 사건이 엎치고 겹치면서 그동안 묻히고 맺힌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주한미군의 본질문제에서부터 행정협정 개정,여기에 미군기지와 훈련장 등이 들어선 ‘공여지’문제,심지어 미군기의 착륙소음과 쓰레기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젠가드러나고 시정돼야 할 일들이지만 한꺼번에 분출되고 이것이 감정적으로 악화되어 양국의 우호관계와 공조체제에 손상을 가져와서는 안되겠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한·미행정협정을 미·일협정이나 나토협정의 수준으로개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노근리나 매향리 사건도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한·미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관계이기 위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전쟁억지력인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크게 기여해온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병력과 예산으로 동북아지역의 안전유지라는 국익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결코 일방적 시혜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로서는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적·역사적 상황을 인식하면서도,“일본이 미국의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는(借船出海)식으로,이 기회를 자주방위의계기로 삼으려는”(李景治 북경인민대 교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의존재는 한반도의 전쟁억지력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과 대립을 완충시키는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감정적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처할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목에서 이를 인식하면서 친미냐 반미냐의 수평논리보다 독일과 일본처럼 그들을 ‘활용’하는 입체논리가 중요하다. ■정상회담 앞둔 반미분위기 우려 우리는 지금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정부의 역량인지 국가의 행운인지,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가 모두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이 기회에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교류협력의 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정상회담의 성공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한미군 문제나 SOFA 문제도 이 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측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미제’가 아닌 ‘우방’이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정신인 ‘합리주의’의 바탕에서 SOFA 문제나 현안을 풀어나가는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미국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 WP, 한국전서 전사한 美형제 사연 크게 소개

    [워싱턴 연합]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한 AP통신 보도와 이를 둘러싼논쟁으로 미국 내의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28일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두 형제의 사연을 장문의 기사로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고등학교 졸업 직후 군에 입대한 밥과 제럼 맥거번 형제는 1950년 한국전에 파견됐으며 다음해인 51년초 중부전선에서 각각 소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던중 불과 10 여일의 간격을 두고 전사했다. 당시 트루만 행정부는 밥과 제럼을 대신해 형제의 아버지인 해슬리 맥거번에게 명예훈장과 은성훈장을 수여하려 했다. 그러나 해슬리씨는 한국전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참전 장병에 대한 국가지원부족에 항의해 수상을 거부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상 제의를 완강히거부했다. 83년 해슬리씨가 사망한 뒤 몇 년이 지나 그의 친척들은 정부에 훈장 수여를 신청했으며,현재 이 훈장들은 두 형제가 졸업한 성(聖)존스 칼리지 고교에 기증,보관돼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충일 맞아 게재한 이 기사에서 한국전쟁은 그 역사적 의미가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걸프전쟁 등에 가려 미 국민들과 언론들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AP통신이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을 보도하고 이 기사의퓰리처상 수상과 관련한 논쟁이 미 언론에서 진행된 이후 과거와는 달리 많은 미국인들과 언론,정치인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 美 “21세기 軍事경쟁국은 中國”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국방부는 전통적인 유럽 중시정책에서 서서히탈피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 및 일본에서 ‘주둔군 지위협정’의 효력이 약해져 형사사건에 관련된 미군에 대한 사법권이 현지 정부에 넘겨질 것으로보고 있다.미국은 또 장차 군사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아시아를 꼽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주 발표될 국방부의 ‘조인트 비전 2020’ 연구보고서를 인용,26일 이같이 보도했다.다음은 그 주요 내용. 미국은 중국을 미래의 잠재적 적국으로 직접 명시하지 않는 대신 중국이 ‘동등한 경쟁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새 방침은 ▲태평양 해역에 공격용 잠수함 증강 배치 ▲아시아 지역 군사훈련 확대 ▲아시아 중점 전략 연구 ▲역내 미군 주둔형태 변화를 위한 외교노력 강화 등 작지만 중요한 여러가지 변화에 반영되고 있다.이는 미국의 군사·외교정책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이 아시아에 새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 도래 가능성과 ▲중국과의 적대적관계 상정 등 두가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현재 워싱턴에서 논의되는 내용의 상당부분은 북한의 군사도발 가능성에 관한 것이지만 미국에 있어 진짜 중요한 문제는 남북한 화해가 달성된 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이같은 관점에서 한국은 이미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싸움에서 북한에 승리를 거뒀으며 이제 남은 것은 평화의 조건을 협상하는 것이다.다음달 열리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은 이 문제에 관해 더욱 예리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새 관심은 두가지 장기적 군사·외교 노력에 반영되고 있다. 첫째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미군 주둔 문제에 관한 재협상 노력이다.이는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이 여전히 환영받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방부의 한국 및 일본 문제 전문가들은 ‘주둔군 지위협정’의 효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형사사건 관련 미군에 대한 사법권이 현지 정부측에 더 많이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들은 또 한국과 일본의 미군 기지들도 장차미군과 현지 군이 공동운영하고 지휘권도 현지 군장교에게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번째 중요한 외교노력은 베트남전 종전 25주년과 필리핀 기지 철수 10년을 맞아 미군이 동남아지역에 재진입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점을 들수 있다. hay@
  • 컬처라인 ‘올리버 스톤’

    ‘올리버 스톤’(컬처라인)은 ‘할리우드의 이단아’ 올리버 스톤 감독(54)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기.일개 무명작가에서 할리우드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행보와 업적을 다뤘다.전기작가인 제임스 리어단은 스톤을 “거대한 의지와 모순의 덩어리”로 규정한다.스톤은 아메리칸 드림의 최상의 측면과 최악의 측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책에는 프랑스 여성과 유태인 증권브로커 사이에서 태어난 스톤이 ‘이질적인’ 부모 아래에서 겪은 문화적 혼란과 부모의 이혼 뒤의 방황,베트남전 참전,영화학교 입학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전2권,각권 9,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美상대 고엽제 소송 혼선 당국자 실수 탓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자들의 고엽제 피해보상 소송을 둘러싼 혼선은 일부정부 고위당국자의 ‘실수’가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정부 당국자는 14일 “지난해 4월 김종필(金鍾泌) 당시 총리가 박세직(朴世直)의원이 들고온 ‘고엽제 관련 서류’에 직함은 뺀 채 서명을 했고 이 서명이 사적(私的) 소송에서 ‘정부 명의’로 이용되면서 사태가 꼬이게 됐다”고 전한 뒤 “정부는 고엽제 피해 보상과 관련해 국가간 소송을 제기한 적이 없으며 외교적 협상을 통해 피해보상을 추진하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김 전총리도 자신이 사인해 준 문서가 재미 변호사 마이클최를 대리인으로하는 ‘사적(私的)’ 소송 서류인 것을 알고 곧바로 최 변호사에게 서명 철회를 알리는 한편 법무부를 통해 미법원에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국장급 관리를 미국에 파견,고엽제 피해보상에 대한 협상을제안했고 올해 안에 협상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한 해외참전 전우회’ 대리인으로지난해 1월 소송을 제기한 최변호사는 같은 해 6월 김 전 총리가 서명한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소장을 변경,우리 정부도 원고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외교통상부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간소송에서 법무장관의 서명만이 법적 효력을 가질 뿐이며 김 전총리의 서명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설명했다.미 정부도 지난해 9월 한국정부가 소송 당사자인지를 문의해 왔고 정부는 ‘아니다’라는 분명한 답변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베트남 공산혁명의 원로 팜 반 동 사망

    [하노이 연합]베트남의 주언라이(周恩來)로 불리던 공산혁명의 원로 팜 반동이 베트남전 승리 2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쟁 기간인 50년대와 통일 시대인 70,80년대에 총리로 재직했던 동은 최근 고령으로 사실상 실명까지 겹쳐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숨지기 전 수개월간 병원에서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들이 노동절 휴간 중이어서 동의 사망은 2일 공식 발표되며 오는 5일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베트남 공산혁명의 주역들 가운데 호 치 민이 이상을 대변하는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를 가졌고 보 응옌 지압 장군이 전쟁 영웅이었다면 동은 베트남의외교와 정부의 틀을 짠 인물이었다. 전쟁 기간중에는 북베트남의 입장을 세계에 알리는 대변인 역할을 맡기도한 동은 1906년 3월1일 쾅 응아이성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는 두이 탄 황제의 비서관이었다. 호치민과 보 응옌 지압이 수학했던 베트남 북부의 명문 코크 호크 대학에서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동은 1925년 하노이의 학생 파업에 참가한 이후 중국과 베트남등을 무대로 호치민 등과 더불어 공산주의 활동을 벌였다.
  • 베트남통일 25돌 축하 호치민서 대규모 행사

    [호치민시티 연합] 베트남 통일 25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30일 옛 사이공의 새 이름인 호치민시티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75년 4월30일 미국이 이끌어온 남베트남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10년 만에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리고 남과 북으로 갈려 있던 베트남이 하나가 된 것을 기념하는 이 행사는 특히 새 밀레니엄과 25주년이라는 의미까지 곁들여대규모로 치러졌다. 그러나 수도 하노이에서 5년마다 치러오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는 이번에는 치러지지 않았다. 대신 하노이는 종전 기념 전날인 29일 앞당겨 레카피유 공산당서기장과 천득렁 대통령 등 정부요인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국회의사당에서 간단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혁명가 열창과 함께 시작된 기념식에서 판반 카이 총리가 기념사를 했으며축하 퍼레이드 등 자축행사가 이어졌다.이날 축하 퍼레이드는 시내 중심가를돌며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하)미국의 상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어느 전쟁이나 그렇겠지만 미국에게 특히 베트남 전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남긴 뼈아픈 전쟁이었다. 호치민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린든 B.존슨이 군사개입을 시작한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동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잊지못할 상흔만 남겼다. 1955년 미군 고문단이 베트남 땅을 밟은 이래 65년 첫 전투병력이 들어가개전,75년 4월29일 미대사관철수 때까지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고 5만8,000명이 희생됐건만 결국 패전의 쓴맛을 봐야 했다. 남북전쟁이 미국의 완전한 통일체 국가형성에 기여하고 세계 1·2차 대전이미국에 부를 가져다 주었다면 베트남전은 정치권력의 부정적 속성과 지방정부의 중앙통제 반발,군산복합체의 상업주의,이에 따른 국내여론 분열과 충돌등 미국의 환부를 여지없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이 받은 상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2차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제일주의를 과시하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이후 걸프전 승전때까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것이라고 역사가 피터 쿠즈니크는 지적했다. 54년 베트남군은 디엔비엔푸 지역 침공으로 프랑스군 3,000명,베트남군 8,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제네바조약을 끝으로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하지만이때 맺은 조약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즉 냉전 대결장으로인도하고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와 소련·중국이 중심이 된 공산주의와의 갈등은한반도의 38선 같은 ‘이념의 국경’ 북위 17도선을 그었고, 한국전에서 끝장을 보지 못한 냉전 강대국들은 베트남에서 재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혁명의 대상인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캄보디아를 통한 루트를 만든 뒤 미군을 공격한 북베트남의 호치민을 단죄한다는 명분에 4명의 미국 대통령은울창한 열대우림 땅속으로 숨은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과 숨바꼭질하며베트남 전쟁이라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주창했던 드와이트 아이젠아워,프론티어 주창으로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존 F.케네디,그의피살로 대권을 인수받은 뒤 차기를 노린 린든 B.존슨,종전이란 국민들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확전에 열을 올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등 역대 4명의 대통령은 그들의 미국내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두 베트남전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미 대통령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베트남전쟁에 M16 자동소총,신형제트전투기,각종 장갑차량,‘에이전트 오렌지’ 고엽제 등 물량공세로 대응했지만 결과는 전례없는 미군의 인명피해에 불과했다.미국은 베트남전장과 국내반전여론이라는 2중 전선에 시달리면서 전략부재를 드러내야 했다. 존슨은 매일 아침 신문과 TV화면을 통해 죽어나가는 미군 모습이 생생하게전달되는데도 불구하고 승전 홍보를 강조하다 여론에 부딪혀 “차기 대권도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했다.닉슨은 비등한 반전 여론 와중에 폭로된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반전 여론은 70년 오하이오주 켄트대학의 반전론자 학생 4명이 경찰총에 숨진 사건으로 정점에 달했고 미국은 결국 75년 4월 베트남 철수와 함께 씁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hay@. *한국에 남긴 교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은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겪고 있는 각종 후유증은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베트남은 인구 7,800만명중 전후 세대가 50%를 넘는다.이들은 돈에 대한 생각이나 의식구조가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세대간 갈등이현안으로 떠오를 정도다.한국의 경우 전후세대가 인구의 80% 가량을 차지한다.올해로 종전 50년을 맞는 한국은 분단의 역사가 긴 만큼 세대간 인식의골도 깊다. 남북간 개발의 불균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베트남은 뒤늦게 북부개발에 나섰지만 베트남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자본 유치도 난관에 부딪쳤다.남에서는 북부를 살리기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고있다는 불만과 함께 남의 제한된 ‘번영’마저 잃을까 불안해한다.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중심으로 남부는 86년 경제개혁 정책을 표방하면서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특히 97년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추락했다.범죄와 마약,매춘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교통망과 상하수도 시설등사회간접자본시설은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남북간 경제격차는 날로 심화돼지난해 상반기 남부의 수출은 22% 증가한 반면,북부는 15% 감소했다. 상호불신과 감정의 앙금도 여전하다.북부인들은 전쟁통에 가족과 재산을 잃은 책임을 남부인에 돌리며 원망섞인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중앙정부내 고위직에 남부인의 진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공직과 공기업에서 득이 되질 못한다. 한국의 경우 통일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베트남의교훈을 거울 삼아 남북의 균형개발과 이질감 해소 등 장기적인 민족화합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균미기자 kmkim@. *베트남 근대사 주요 일지. ◆1859 프랑스군 사이공 점령◆1930 베트남 공산당 결성◆459.2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45 9. 미·프랑스 연합군 베트남 진주◆54 제네바협정서 17도선 남북 분단◆55 남부에 미국지원 응오 딘디엠 정부 출범◆60 베트콩 월남민족해방전선 수립◆65 2 미국의 북폭개시,베트남전 시작. ◆68 9 호치민 사망◆73 1 파리 휴전협정 조인.3월 미군 마지막 철수◆75 4. 29 미대사관 철수◆75 4.30 월남 패망.통일◆76 7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86 6차전당대회서 도이머이 경제정책 도입◆92 12.22 한국과 수교◆95 7.12 미국과 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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