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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민주당 ‘이라크 철군안’ 제출

    이라크 철군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내 매파로 통하는 존 머서 펜실베이니아주 하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장래가 위기에 놓여 있다며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을 즉각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했다.머서 의원의 이라크 철군안 제출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이 야당의 정보 조작 및 철군 주장은 무책임하다며 이라크전을 옹호하는 반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민주당측은 “이라크전은 실수”라고 맹공을 가한데 이어 나온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으로 이라크전쟁을 지지했던 머서 의원은 “미군은 이라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이라크 저항군의 주요 타깃이며, 폭력의 촉매자”라며 미군이 6개월내 철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워싱턴 연합뉴스
  • 위장수술?

    의사가 암이라고 해서 위를 70%나 잘라냈는데 뒤늦게 위궤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부산에 사는 김모(68)씨가 이런 불운한 경우. 김씨는 지난 4일 부산 모 병원 의사를 과실치상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김씨는 지난 1월 병원으로부터 위암판정을 받았고,3월에 위의 7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였던 김씨가 수술 후 국가보훈처에 위암 진단서를 내기 위해 병원측에 암 조직검사 결과를 요구했지만 병원측은 “위암이 아니다.”고 답했다. 김씨는 “그동안 받은 진단서에는 병명이 위암으로 기재돼 있었다.”면서 “수술 후 위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의사와 병원은 7개월간 아무 설명도 안 해줘 큰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병원측은 “위를 절제하는 수술을 해보니 궤양이었다.”고 시인했으나 “궤양이 상당히 진행돼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고 해명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통킹만 2차공격 없었다”

    미국 정보당국이 1964년 베트남전 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이른바 ‘통킹만 사건’의 정보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면서도 이라크 정보 왜곡과 맞물려 비판이 가중될 것을 우려,5년 가까이 고의적으로 은폐해왔다고 뉴욕 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통킹만 사건’은 1964년 8월2일과 4일 북베트남측이 통킹만에 주둔 중이던 미군 구축함을 2차례에 걸쳐 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 의회가 같은 달 7일 전면전이 필요하다는 당시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인 베트남전에 돌입하게 된다. 미 국가안보국(NSA) 산하 ‘암호해독술 역사센터’의 로버트 한요크 박사는 통킹만 사건에서 8월4일의 2차 공격은 아예 없었으며, 이는 당시 미군이 입수한 북베트남측의 암호를 잘못 해석한 결과라는 점을 지난 2001년 초 밝혀내 비밀 내부 문건을 통해 상부에 보고했다. 한요크 박사는 역사학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한 뒤 2002년부터 이 내용을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그러나 행정부 고위관료들은 2003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 왜곡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베트남전 정보 왜곡 사실까지 공개될 경우 비난이 가중될 것을 우려, 지금까지 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고위층에서 처음에는 이 문건 공개를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이라크전 정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전쟁을 확대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유도·조작했다는 점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북베트남이 2차 공격을 하지 않았고 미 정보당국이 일부러 이를 숨겼다는 게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통킹만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을 벌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국방장관으로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통킹만 사건에 대한) 정보보고서가 전쟁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美 노엄 촘스키 교수 ‘세계 최고 지성인’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노엄 촘스키(76)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인물로 선정됐다고 영국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16일 보도했다. 신문은 영국의 시사문화잡지 ‘프로스펙트’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미국 잡지 ‘포린 폴리시’와 공동으로 사상가와 정치인, 철학자 등 지성인 100명을 놓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촘스키가 가장 지적인 인물로 선정됐다. MIT 명예교수인 촘스키는 약 2만명이 참가한 이번 투표에서 5000여표를 획득,2500표를 얻은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를 따돌렸다.3위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즈가,4위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각각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현재 활동중인 인물만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결과는 이번주 발행되는 ‘프로스펙트’ 11월호에 소개된다.‘세계 최고의 지성’이란 영예를 얻은 촘스키는 1950년대 MIT의 젊은 언어학 교수로 ‘변형생성문법’을 만들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촘스키의 이름이 일반에게 알려진 것은 베트남전 반대 목소리 때문이었으며 그는 1969년 최초의 정치평론집을 펴낸 이후 40년 넘게 미국의 국내외정책을 일관되게 비판해왔다.연합뉴스
  • 베트남판 ‘안네의 일기’ 화제

    “전쟁을 확대하고 있는 ‘개 같은’ 닉슨(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멍청하고 제 정신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인데 몇몇 잔인한 자들은 우리의 피로 그들이 가진 금(金)나무를 키우려 한다.”(1970년 6월)베트남전쟁 당시 베트콩 진영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미군의 공격으로 숨진 당 투이 트람(여성)의 일기가 베트남에서 출간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7일 보도했다. ‘베트남판 안네의 일기’로 불리는 이 책은 지난 7월말 발매된 이후 지금까지 30만부 이상이 팔려 베트남 베스트셀러 가운데 한 권이 됐다. 트람은 1967년 베트남 중부 쿠앙 응아이의 베트콩 부대에 자원 입대,1970년 6월 숨질 때까지 수첩만한 크기의 노트 2권에 일기를 꼼꼼히 적었다. 일기에는 미군을 향한 분노와 죽음에 대한 공포, 다친 병사들에게 느끼는 연민 등이 진솔하게 적혀 있다.마지막 일기에서는 부모와 친구를 향해 ‘제발 여기로 와서 내 손을 잡아 달라.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적었다. 트람의 일기는 당시 미군 장교로 트람이 속한 부대를 공격했던 프레드 화이트허스트가 발견,35년 동안 보관해 왔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문학에도 한류열풍 일으켜요”

    “문학에도 한류열풍 일으켜요”

    서울 안암동 고려대앞의 외국인 기숙사 크림슨하우스에는 지난 4일부터 몽골, 베트남, 터키에서 온 작가 6명이 머물고 있다. 오전엔 고려대 한국어 문화교육센터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자국 언어로 번역중인 한국 작품을 검토하거나 다양한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진형준)이 올해 처음 실시한 ‘해외 작가 초청교류’의 수혜자들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화관광부의 ‘아시아 문화동반자 사업’에 따라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향후 10년 간 매년 3개국의 작가 6명을 교대로 초청할 계획이다.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를 넘어 아시아 문학인들의 친한(親韓)인력풀을 구성하려는 취지다. 이번에 초청된 작가들은 각 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30∼40대의 중견 시인·소설가들. 몽골작가연맹이 추천한 남바 불임(35·시인), 바타르 갈산스크(33·시인)와 베트남작가협회가 추천한 여성작가 보 띠 쑤안 하(46·소설가), 뉴엔 칸 지(40·시인), 그리고 터키 문화관광부 공무원이자 시인인 야신 에롤 손메즈(40)와 소설가 겸 영화감독인 르자흐 크라치(35)가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남바 불임, 바타르 갈산스크, 뉴엔 칸 지는 이전에 한 차례 한국에 온 경험이 있고, 다른 3명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터키가 한국전 참전국이어서 전쟁에 대해서만 아는 정도였다.”는 야신 에롤 손메즈는 “직접 와서 보니 한국인들이 잘 웃고, 친절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 띠 쑤안 하는 “얼마전 식당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판문점을 함께 다녀왔다.”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분단의 경험도 같고, 추석 같은 명절풍습도 비슷해 친근감이 든다.”고 말했다. 몽골, 베트남은 요즘 한류 열풍이 가장 뜨거운 곳이다. 바타르 갈산스크는 “가수 장나라, 신화 등 한국 가수와 배우는 몽골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방영된 TV드라마는 거의 전부 볼 수 있단다. 터키는 한국 드라마, 가요보다는 한국 영화가 더 유명하다. 르자흐 크라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을 아주 인상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축구선수 이을용의 활약으로 한국 축구에 대한 터키인들의 관심도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문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작가들인 이들조차 겨우 1∼2권 접했을 정도로 열악하다. 남바 불임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소설이나 시를 읽고 싶어하는 몽골인들은 많은데 번역된 책을 찾기가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터키에서도 ‘한국대표소설선’이 거의 유일한 번역작으로 꼽힌다. 르자흐 크라치는 “이청준이나 김영하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하루 빨리 번역출판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영상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빼앗기는 순수문학의 안타까운 처지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뉴엔 칸 지는 “베트남에서 소설은 1000부, 시집은 500부를 초판으로 찍는데 시집은 시인이 자비로 출판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야신 에롤 손메즈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사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이들은 12월24일까지 석달반가량 한국에 체류한다.10년 전 서울에서 2년 정도 체류했던 남바 불임은 이번 연수가 끝나면 고국에 돌아가 그때의 한국 경험을 소설로 엮어낼 계획이다.“한 나라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의 눈빛은 한국을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열의로 반짝였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뀌는 병영…고참없는 동기생부대 생긴다

    일과를 마친 사병이 내무반에서 활동복을 입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또 ‘입대 동기생’으로만 구성된 군 소대와 중대가 운영된다. 물론 모든 사병이 대상이 아니라 우선 일부만 시험적으로 운영된다. 육군이 14일 발표한 병영문화 개선방안의 골자다. 육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통제 위주의 병영생활을 자율적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자율중심 병영생활제를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김동민 일병’의 내무반 총기 난사사건 등 최근 잇따른 각종 군 사건·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같은 병영 개선 제도를 마련했다. 독일식 병영 제도를 본뜬 근무제도는 내무반을 ‘집’처럼 운영하는 개념이다. 사병들은 매일 아침마다 ‘내무반 집’에서 훈련·작업장으로 ‘출근’했다가 일과를 마치면 내무반으로 ‘퇴근’하게 된다. 일과 외의 시간에는 내무반에서도 군복이 아닌 활동복을 입을 수 있다. 상급자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사병들이 가장 힘들게 생각하는 ‘내무 생활’의 부담이 줄어들게 돼 장병의 기본권이 신장될 것으로 군은 내다봤다. 군은 이를 위해 훈련 시간과 개인 여가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일과표를 짜도록 했다. 내달부터 6개 대대를 선정해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그 결과를 분석해 내년부터는 전군으로 확대할 방침도 세웠다. 육군 관계자는 또 “지난 9일부터 예하 2개 사단을 선정해 선임·후임병 없는 ‘동기생 소·중대’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참·졸병 없이 소·중대를 편성하면 친근감이 높아져 전우애가 돈독해질 것을 예상해 만든 제도다. 군 관계자는 “자율적인 병영생활이 보장돼 고질적인 병폐인 언어 폭력과 구타를 근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육군은 일단 1년 동안 동기생 소·중대를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다만 선임병이 후임에게 각종 전술훈련의 노하우를 전수할 기회가 줄어드는 등의 단점도 예상되는 만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내년부터는 희망자에 한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복무했던 부대에 입대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다.6.25 전쟁에 참전했던 1·3·6사단과 베트남전에서 맹위를 떨쳤던 백마·맹호·비둘기부대,GOP 및 전방부대 등 36개 사단이 대상이다. 근속 20년 이상인 현역 간부의 자녀도 지원할 수 있지만 아버지가 현재 복무하는 부대에는 배치되지 않는다. 희망자는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삼성하우젠 K-리그 2005] 이천수 26개월만에 ‘쐈다’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울산)가 K-리그 컴백골을 쏘아올렸다. 김도훈(성남)과 박주영(FC서울)의 신·구 골잡이 대결은 득점없이 끝났다. 스페인 프로축구(프리메라리가)에서 복귀한 이천수는 11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K-리그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8분 추가골을 뽑아내 울산의 2-0 완승을 견인했다. 이천수의 K-리그 득점은 지난 2003년 7월6일 전북전 이후 2년2개월여 만.A매치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9월8일 베트남전 이후 1년 만에 본 골맛이다. 울산은 마차도의 그림같은 다이빙 헤딩 선제골과 이천수의 쐐기포에 힘입어 후반기 4경기 만에 꿀맛같은 첫 승을 신고했다. 올시즌 마수걸이 골이 터진 건 후반 8분 프리킥에 이어진 문전 혼전 상황. 벌칙지역 구석에서 기회를 엿보던 이천수는 상대 수비수가 머리로 걷어낸 공을 오른발 논스톱으로 강슛, 네트 왼쪽 상단을 흔들었다. 개인 통산 16호골. 이천수는 후반 15분에도 중거리 프리킥을 골문 상단을 정확히 겨냥, 골키퍼가 간신히 쳐내는 등 후반 32분 노정윤과 교체될 때까지 복귀 이후 가장 위협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통산 113골로 프로축구 최다득점의 새 역사를 뜯어고친 김도훈(35)과 득점 선두(9골)를 달리는 ‘천재’ 박주영(20)의 신·구 골잡이 맞대결은 9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 속에 펼쳐졌지만 결국 0-0 무승부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포문은 김도훈이 먼저 열었다.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먼저 벌칙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강한 오른발 슈팅을 날린 것. 전반 14분에는 박주영이 수비수 4명 사이로 질풍처럼 달려들며 오른발로 크로스바를 살짝 넘기는 슈팅을 날려 멍군을 불렀지만 불발. 전반 24분엔 수비를 맞고 튕겨나온 공을 달려들며 왼쪽 골대 깊숙한 곳으로 낮은 오른발 슈팅을 날렸지만 권찬수의 선방으로 골은 또 무산됐다. 공방을 거듭하던 경기는 후반 13분 ‘김도훈 도우미’ 모따(25)가 전반에 이어 또 옐로카드를 받아 퇴장당해 FC서울에 유리하게 기울어지는 듯했지만 박주영과 히칼도, 김동진의 슛이 번번이 권찬수의 손에 걸렸다. 오히려 성남은 후반 42분 김도훈이 밀어준 공을 두두가 하프라인을 넘으면서 골키퍼와 단독 찬스를 맞는 득점 기회를 잡기도 했다. 종료 직전 박주영은 김승용의 패스를 오른발로 멈춰놓은 뒤 왼발로 회심의 슛을 날렸지만 또 불발에 그쳐 한숨을 토해냈다. 광주는 ‘대어’ 수원을 2-0으로 잡고 후반기 3연패 뒤 첫 승을 챙겼다. 인천은 전북을 1-0으로 제쳤고, 부천과 포항은 0-0으로 비겼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군대서도 ‘기록’은 중요”

    “진정한 통일의 첫걸음은 휴전선 일대를 공원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연간 6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곧 통일기금으로도 사용되지 않겠습니까.” 최갑석(76) 예비역 소장.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 보기 드물게 장성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최근 이같은 파란곡절의 군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한 회고록 ‘장군이 된 이등병’을 발간,2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그는 이와 관련,“우리나라의 군대는 여전히 기록문화가 약하다.6·25전쟁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면서 후배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더러는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번 출판기념회를 갖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전쟁세대로서 ‘휴전선의 평화공원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47년 2월 국방경비대에 자원 입대, 이등병 군번 ‘1200599’를 받았다. 이후 창군 시절,6·25와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하며 다섯가지의 병과와 38개부대 전속,50여개 보직을 거쳤다.83년 10월 예편.김문기자 km@seoul.co.kr
  • 일제징용 보상특별법 만든다

    정부는 오는 12월까지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추가 보상 등을 해주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특히 강제 동원 사망자뿐만 아니라 부상자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보상 신청 역시 시한을 두지 않고 받아들일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10월에 별도의 민관합동 대책기구를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26일 광화문 중앙청사에서 이해찬 총리 주재로 ‘한·일 회담문서공개민관공동위원회’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하고 지난 1월에 이어 3만 5354쪽 분량의 한·일회담 문서를 추가 공개했다.7400여쪽의 베트남전 파병 관련 외교문서도 함께 공개했다. 일반인 열람은 29일부터 양재동 외교안보연구원 사료연구실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 범위와 이에 따른 정부대책 방향을 확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75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있었지만 사망자에 한해 보상하는 등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추가 지원 방침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 등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해선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사할린 동포와 원폭 피해자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부 관계자는 “청구권협정에서 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증거도 없고, 법적 논리도 없다.”면서 “이제 법적인 근거를 갖고 일본에 외교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한·일협정 재추진 등을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 법적책임 인정을 추궁하면서, 유엔 인권위 등 국제기구를 통해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공개된 베트남전 파병 관련 외교문서에는 정부가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제주도에 유치하는 방안을 미측에 타진한 사실이 포함됐다.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은 “이번 공개가 한·일협정 체결의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적 평가 과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향후 올바른 한·일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상조사 차원에서 1차 피해자 신고접수를 실시한 결과,20만여명이 접수했다. 김수정 강혜승기자 crystal@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당대에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베트남전 참전과 한일협정 체결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중 대로 밀어붙이고 결정하고 주관한 것으로 26일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린 ‘지휘자’이자 실무적인 문제까지 일일이 챙긴 사실상의 ‘연주자’였다. 베트남전 외교문서에 따르면,1967년 9월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외무장관한테는 “미국에는 일단 대통령이 신중히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말해 둬라.”고 ‘전략적 지시’를 내린다. 나중에 박 대통령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되면 직접 의사를 밝히겠다는 심산이었다. 박 대통령은 실제 클리포드 테일러 미 대통령 특사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전투병력 증파는 곤란하다.”고 일단 난색을 표명한다. 앞서 같은 해 3월8일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가 방미할 때 박 대통령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쥐어줬는데, 편지의 내용은 뜻밖에도 ‘김치’ 얘기였다. 실무적인 현안까지 챙긴 대표적 사례다. 친서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식 빼놓을 수 없는 특이한 고유의 전통 부식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월남에 있는 우리 군인들이 먹을 수 있게만 하더라도 사기는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군에 한국음식의 야전식량을 공급하게만 된다면 사기와 전투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각하께서 이 특별한 사정을 양찰하시고 월남의 한국군인들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월남에 있는 한국 군인들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 통조림으로 된 야전식량의 연구, 생산을 이미 9개월 전부터 착수해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라며 “그 제품의 일부는 미 국방부의 식품연구소에 보내 시험 중인데 중간검사 결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를 받아본 존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즉각 ‘조치’를 지시하고, 정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낭보’를 띄운다. 5·16 직후인 1962년 당시 권력 2인자로서 거의 독자적으로 오히라 일본 외상과 담판을 벌인 것으로 지금껏 알려져 왔던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도 알고 보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일일이 지시를 받고 움직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JP는 도쿄에서 ‘의장 각하’에게 친서를 띄워 자신의 동선(動線)과 회담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등 수시로 박 의장의 가이드라인을 구했다. 이에 박 의장은 JP를 ‘귀하’로 칭하는 자필 서신과 훈령 등을 통해 “청구권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등의 지침을 하달했다. 나아가 “일측에서 독도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경우에는 한국민에게 일본의 대한 침략의 경과를 상기시킴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경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할 것”이라는 등의 협상전략을 하달하는가 하면 “혁명정부라고 해도 6억불 이하로 하강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구권 액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61년 발발·73년 휴전 한국 64~66년 파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9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곧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됐다.8년 뒤인 54년 휴전했지만, 이듬해에는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프랑스를 대신한 미군이, 북쪽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통합국가 건설을 둘러싼 대립으로 양측은 73년 휴전 협정 때까지 전쟁에 돌입했다.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61년 게릴라전이나 정보수집·선전·파괴활동 등에 능한 특수부대를 투입시킴으로써 ‘미국 대 북베트남’ 전쟁을 본격화시켰다. 한국은 64년 9월 이동외과병원 장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처음 베트남에 파견했다. 이듬해 2월 미국의 요청에 따라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 2000명이 베트남 땅을 밟았다.같은해 10월엔 “6·25전쟁 때 우방의 파병에 보답한다.”는 명분에 따라 본격적으로 전투부대가 파견되기 시작했다.청룡부대·맹호부대·혜산진부대·백마부대가 66년까지 차례로 파병돼 한국은 규모면에서 제2의 파병국이 됐다. 베트남전쟁은 동원 병력, 사상자 수, 항공기 손실, 탄약 사용량 등 비용면과 파괴력면에서 지독한 전쟁으로 꼽힌다. 일례로 당시 미군이 밀림을 없애려고 다량으로 뿌렸던 제초제로 인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수만명에 이른다.한국군과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났지만 그곳에 버려진 ‘라이 따이한(Lai 大韓·한인2세를 낮춰 부르는 말)’도 참상의 한 자락으로 기록됐다.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등은 베트남전의 참상을 제대로 짚어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美, 파병비용 690만弗 ‘미군장비’로 떠넘겨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美, 파병비용 690만弗 ‘미군장비’로 떠넘겨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정당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군 파병이 한국 경제 도약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우리 정부가 참전을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 전방위 외교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악착 같은 경제·군사외교,‘조금이라도 더’ 당초 우리 정부는 브라운 합의각서를 통해 한국군의 베트남 증파 선행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차관 제공과 전쟁물자·용역의 한국 제공, 한국군 장비 현대화 지원 등을 약속받았다. 특히 1966년 10월24∼2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각오는 각별했다. 회담 11일 전인 13일 외무부는 유양수 주필리핀 대사에게 긴급 타전을 했다. 필리핀이 이번 회의가 평화를 모색하는 회의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 만큼 군사적인 정세의 검토 및 전쟁 노력의 강화 방안이 반드시 의제에 포함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토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정상회담이 소집됐다는 식의 해석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정부는 주최국인 필리핀이 제시한 회의의 가명칭인 ‘마닐라 평화회의(Manila Summit Peace Conference)’에서 Peace를 빼도록 훈령을 보냈다. 필리핀측이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을 ‘아시아의 지도자’로 부상시키기 위해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베트남전에 따른 군사·경제적인 반대급부가 많은 우리 정부가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다. ●미측, 파병비용 정산방식 매끄럽지 못해 파병비용 등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입장과 달리 미측은 부대비용 등 일부를 매끄럽게 정산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브라운 각서에 근거해 1970년 7월부터 이듬해 6월30일까지 소요된 추가경비 690만 달러(당시 원화 27억 8700만원)를 현금으로 조속히 지급해 달라고 미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1972년 11월 주한미군에 훈령을 보내 미지급액 상당의 미군 잉여장비를 한국측에 이양하겠다는 답을 보내 왔다. 결국 수 차례 토의 끝에 우리측은 미측의 헬기 3대,U-21 경비행기 1대 등 430만 달러어치의 군 장비를 취득가의 56%로 계산해 넘겨받았다. 또 64만 달러어치의 전투식량(K-Ration)을 대미 채무변제시 상쇄키로 했으며, 잔액 200여만 달러는 미8군 재고훈련탄을 받기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합의했다. 베트남전 종전으로 미측이 부담해야 할 강제퇴역 한국군의 일시 퇴직금 27억원 가량도 한국측에 전달되지 않았으며, 파월장병의 귀국비용은 태국군에는 귀국 이후 2개월 분이 추가지급됐으나, 한국군에는 지급되지 않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파병 수당 정상지급 확인 경제발전 ‘전용’ 없었다

    주월국군 장병들에게 지급됐던 해외근무수당이 정상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외교문서가 아닌 국방부의 자료에서 드러났다.‘김성은 국방장관과 비치 주한미군사령관간 서신(66.3.4)’ ‘사이밍턴 청문록’ ‘파월 장병에게 지급한 개인수첩’ 등의 자료들이다. 1965년부터 파병 장병에게 해외 근무 수당을 주기로 합의한 한·미는 실무각서와 서신 교환을 통해 일당을 최종 결정했다. 계급별로는 준장 $7.00, 대령 $6.50, 중령 $6.00, 소령 $5.50, 대위 $5.00, 중위 $4.50, 소위 $4.00, 준위 $3.50, 상사 $2.50, 중사 $2.00, 하사 $1.90, 병장 $1.80, 상병 $1.50, 일병 $1.35, 이병 $1.25로 책정됐다. 이는 1970년 미 의회의 베트남전 청문회기록(사이밍턴 청문록)과 파병 당시 장병에게 지급했던 개인수첩에 명기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정부는 80%를 국내 가족들에게 의무적으로 송금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해외근무수당 가운데 일부가 이면계약을 통해 경제개발 등에 전용됐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10월 중순 베트남전 비공개 문서를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새로 알려진 것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話) 등이 여럿 포함돼 있다. ●“제주도, 미군기지 될 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5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국방 각료회담에서 최영희 국방장관은 주일 미군기지의 한국 유치 의사를 피력했다.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기지를 한국으로 옮긴다면 필요한 토지까지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닛즈 당시 미 국방차관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듬해 6월3일 서울에서 열린 2차 국방 각료회담에서는 이전 대상 지역이 ‘제주도’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임충식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오키나와기지를 제주도로 옮긴다면 공군 및 해군기지를 만들어 주겠다. 이 경우 여러가지 면에서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패커드 차관이 “제의를 염두에 두고 세계적인 기구를 포함해서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이 제안은 특별히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정보 수집차 북파 공작원 보내겠다.” 1차 각료회담 때 한국측은 정보 수집력 보강을 위해 북한지역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최 장관은 “제3국이나 일본, 자체 수단 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국제법 때문에 현재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는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라운 주미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첩보원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최 장관은 “내가 헌병사령관 당시 첩자를 보낸 일도 있고 사진도 찍은 일이 있다. 한국은 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1951∼1994년 1만 3000여명의 북파 공작원이 양성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너무 싼 파월 국군 몸값 당시 파월 한국군의 해외 근무수당을 보면 준장∼중장이 일당 7∼10달러였고 이병∼병장은 1.25∼1.80달러였다. 당시 국내에 있던 이병의 월급이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타 국군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태국군의 경우 한국군보다 최고 1.5배(장성급)의 해외근무수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미군 1인의 전쟁관련 전체비용을 1만 3000달러, 필리핀 비전투요원은 7000달러, 한국군은 5000달러로 잡았다는 통계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각국별 해외근무수당은 해당국의 국민소득 등을 감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미측이 대선 때문에 종전 분위기 띄우고 있다.” 철군 논의가 한창이던 1971년 4월 한국 외무부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1972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월남전의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국내(미국)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앞으로 월남에 대한 협력체로 참전국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등도 참여시켜 미국의 책임을 경감시키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월드이슈] “30년전 교훈 잊었나” 美전역 반전물결

    [월드이슈] “30년전 교훈 잊었나” 美전역 반전물결

    30년 만에 미 대륙에 전쟁 반대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신디 시핸의 절규는 지난 17일 미국내 1600여곳에서의 동시다발 촛불시위로 번진 뒤 다음달 23,24일 미 전역과 유럽 각국에서의 대규모 동시 집회로 절정을 맞을 예정이다. 반전 여론의 확산은 급기야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정권의 패배를 위한 전주곡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70년대는 TV, 지금은 인터넷 신디 시핸의 1인 시위가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한 병사의 죽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라는 감성적 코드, 대통령 휴가지에서 시위를 시작한 정치적 모멘트의 포착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안티워 닷컴, 무브온(moveon.org) 등 소위 민주당 외곽조직으로 널리 인식되는 반전 평화운동단체 웹사이트들의 조직적 결합이 주효했다. 이같은 열기에는 미디어 상업주의의 작용 흔적도 나타나지만 후세인 축출 이후 연일 늘어나는 미군 장병의 희생과, 구체적 철군 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전쟁 목표와 명분을 그때 그때 바꾸는 부시 행정부의 ‘속보이는 태도’가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다. 지난 8일 CNN과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 성인의 57%는 이라크 전쟁으로 테러의 위협에서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이는 지난 6월과 견줘 18%포인트나 오른 것이다.“이라크 파병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응답도 54%로 “올바른 선택”(44%)을 크게 앞질렀다. 1970년대 징병의 공포에 시달리던 대학생 등이 대학을 근거지로 벌인 반전 시위와 오늘의 상황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전 때는 미국 중산층 가정을 파고든 텔레비전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미군 철수를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인터넷과 촛불시위라는 지극히 소박한 운동양식의 결합으로 전 세대의 공감을 사고 있다. 시핸을 지지하는 인터넷 모금에는 10달러씩 쌓여 하루 만에 2만 5000달러를 모으는 성과로 연결됐다. 평화운동가 앨런 보크는 안티워 닷컴 기고문에서 “시핸의 시위는 미디어 상업주의에 영합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국민 모두를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요소를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평화운동 진영은 가능한 한 빨리 미군을 귀국시켜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메시지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이 발 뺄 때” 앤드루 바세비치 보스턴대학 교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이제 그만 끝내라´는 기고문에서 미군 지도부조차 이라크전은 승리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미군이 이라크에 더 주둔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며 이 전쟁이 “미션 임파서블”이 돼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군이 떠날 경우 오히려 이라크 지도자들의 단결 지향적 정치활동이 강화될 것이며 주변국들의 감시와 지원 노력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발을 빼도 좋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학 린다 빌머스 교수는 10만명 정도의 미군이 2009년까지 이라크에 주둔할 필요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미군 지도부에 대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5년 더 미군이 머무를 경우 총 전비는 1조 3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럴 경우 미국의 가구당 부담은 1만 2300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부시 이라크전 수행의지 확고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자세다.22일에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해외 참전용사 전국대회에 참석,“미국인들은 이라크와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테러리스트들에 대비해 단결해 있어야 한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세계 대전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90% 이상의 주민이 전쟁을 찬성할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이 지배적인 유타주 시민 500여명은 그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 파이어니어 공원에 집결, 반전 구호를 외쳤다. 그는 24일에도 아이다호주를 방문, 주 방위군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등 연일 대국민 설득에 나설 것이지만 다시 불붙은 반전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이라크전, 베트남전 닮아간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1단계는 미국의 역할을 군사원조, 경제원조, 특수부대 작전 등으로 한정하고 사이공 정권 지원을 통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던 1969년 1월까지이며,2단계는 북베트남 세력이 주도권을 되찾아 격렬한 국지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평화가 모색되던 1974년 8월까지이며 3단계에선 미군 철수와 북베트남 정권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졌다. 현재 미국 안팎에선 3000억달러 이상의 전비를 쏟아붓고 1800여명의 미군을 희생시키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 베트남 전쟁의 1단계 말기나 2단계 초기와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저항세력과 산발적 교전을 거듭하며 이라크가 자체 치안능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인 척 헤이글(공화·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은 “미군이 이라크에 머물면 머무를수록 이라크 전쟁은 더욱 더 베트남전 양상을 닮아갈 것”이라며 “더욱 명확한 철수 시간표를 짜야 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8년 대선 예비주자이기도 한 그는 미군의 이라크 장기 주둔이 오히려 중동지역 안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어떤 기준으로든 지난 2년 반 동안 이라크에서 우리는 승리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가 언급한 2년 반이란 기간은 지난 2003년 5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함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잡았던 때 이후 지금까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영예롭고도 경제적인’ 철수를 선택하지 않고 대신 이라크에 민주 정부를 수립한다는, 성취할 수 없는 목표를 내세움으로써 베트남전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지 앨런(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은 “북베트남 공산 정권과 달리 이라크 저항세력은 국민을 끌어들일 철학과 조직이 없다.”며 두 나라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英전역 새달 대규모 반전시위 테러이후 반전분위기 최고조 |파리 함혜리특파원| 런던 테러를 계기로 영국 내 반전 분위기가 팽배한 것과 달리 이라크전 초기 극심했던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의 대표적인 반전 국가들에서는 최근 전반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시들해지는 양상이다. 유럽연합(EU) 헌법 비준을 둘러싸고 좌파 내부의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반전운동을 주도했던 개혁주의 좌파들이 과제의 1순위를 반전에서 유럽통합 저지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5월29일 치러진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유럽헌법을 부결시키는 등 유럽헌법에 ‘사망선고’를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영국은 이라크전 개전 이후 지속적으로 반전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최근 유럽 반전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7월6∼8일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빈곤퇴치, 반전운동, 반세계화를 앞세운 시민단체 등 전세계 수만명의 시위대들은 회의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에 모여들어 한바탕 ‘축제 같은 시위’를 벌였다. 밥 겔도프가 기획한 ‘라이브 8’콘서트에는 10만∼20만명의 시위대가 참가했다. 영국의 반전분위기는 런던 테러를 계기로 최고조에 다다른 느낌이다.‘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등 반전단체들은 영국인을 테러리스트들의 타깃으로 만든 토니 블레어 정부를 비난하며 블레어의 사퇴와 이라크에서의 신속한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반전단체들은 이라크전 개전을 밀어붙인 블레어 정부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정치세력화까지 꾀하고 있다. 노동당 블레어 정부의 정책에 환멸을 느낀 노동당 당원, 노동조합 활동가, 무슬림 공동체, 좌파조직 등을 아우르며 반전운동을 조직해 온 전쟁저지연합은 2004년 ‘리스펙트(RESPECT)’라는 명칭으로 정당 형태도 갖췄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다 노동당에서 쫓겨난 조지 갤러웨이 의원이 대중적 지도자로 활동 중이며 2004년 런던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린지 저먼이 실질적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 이라크전 개전 2주년을 맞아 영국 전역에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전쟁저지연합은 런던테러 이후 반전 목소리를 더욱 높여 영국 각 도시에서 회원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반전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다음달 24일에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전시위를 계획하고 있다.‘폭탄세례를 멈추고, 전쟁을 멈추고, 군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주장과 함께. lotus@seoul.co.kr
  • 조앤 바에즈 “다시 반전”

    |크로퍼드 연합|미국의 포크 가수 조앤 바에즈가 21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 근처에서 이라크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과거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던 바에즈는 이날 크로퍼드 목장 근처에서 이라크전 희생 장병 유족들과 만나 “내가 베트남전 반대 가두행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시위대는 10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아주 많다.”고 말했다. 바에즈는 이라크전 반대를 위해 크로퍼드 목장 근처에서 무료 저녁 콘서트를 열 계획이며 이 행사에는 1000명 이상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된다.
  •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산토 아리코 지음

    “차도르를 입고 어떻게 수영합니까.” “우리 관습에 왜 당신이 이러쿵 저러쿵 합니까. 이슬람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그녀는 호메이니의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차도르를 벗어 그의 발 앞에 던졌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호메이니에게 그녀가 던진 말,“어디 가세요. 쉬하러 가십니까.” 호메이니를 비롯해 덩샤오핑, 헨리 키신저, 바웬사 등 세계의 거물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는 주눅들기는커녕 그들을 ‘갖고 놀듯’ 이야기를 끌어갔다. 이들은 팔라치의 날카로운 질문공세에 피곤해했고, 승리는 늘 팔라치 몫으로 끝났다.‘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산토 L 아리코 지음, 김승욱 옮김, 아테네 펴냄)는 저널리스트 팔라치의 평범하지 않은 삶과 이력을 독특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수천 가지의 분노를 갖고 인터뷰해 팔라치는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인터뷰어로 유명하다. 권력을 움켜쥔 자들을 철저히 해부했다. 이를 모아 출간한 ‘역사와의 인터뷰’는 미국에서 인터뷰 기법을 위한 교재로 쓰일 정도. 그녀는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마다 수천 가지 분노를 가지고 (인터뷰에)임했다. 그 분노는 수천 개의 질문이 되어 내가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기 전에 먼저 나를 공격했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종군기자로 베트남전쟁에서 중동전쟁, 헝가리 침공에서 남미 봉기, 멕시코 대학살에서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 팔라치는 기사를 쓰면서 자신을 모험가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역사의 현장의 중심에 놓았다. 우주 비행사들과의 인터뷰, 베트남 전쟁기사 등에서 사실 전달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이미지에 환한 조명을 비췄다. 거물과의 인터뷰에서는 결정적인 발언권을 가진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녀는 ‘한 남자’‘인샬라’ 등 소설가로도 성공, 헤밍웨이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능력은 독서광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산이다. 팔라치에게 저널리즘은 단순한 정보전달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기사를 ‘문화의 연장’으로 봤다. 신문에 대해서는 “지적인 능력을 힘차게 자극하는 자극제”라고 정의내렸다. 그녀는 20세기를 뒤흔든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폭로하는 일에 매달려 왔지만 정작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호하는 태도로 신화의 옷을 벗지 않았다. 평생 끊임없이 화제를 몰고 다닌 그녀는 현재 미국 뉴욕에서 암투병 중. 최근 이슬람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 때문에 종교모독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늦여름 밤 다큐의 밤 감동의 밤

    늦여름 밤 다큐의 밤 감동의 밤

    늦여름, 다큐멘터리의 융단폭격이다. EBS가 지난해에 이어 제2회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 2005)을 연다.‘생명과 평화의 아시아’를 주제로 이달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1주일간 진행된다. 출품작만 해도 27개국 116편. 이 가운데서 TV화면으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13개 주제 94편이다. 소규모 라이브 공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 도곡동 EBS 스페이스에서는 30여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물론 모두가 공짜다. 많은 작품을 보여 주려니 편성도 파격이다. 유아와 어린이들의 볼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아침 3시간, 저녁 2시간 반 정도를 제외하고는 죄다 다큐로 편성했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들이다보니 러닝타임도 짧게는 20여분에서 2시간에 이르는 것까지 들쭉날쭉이다. 편성에 땀 꽤나 흘렸다는 얘기가 엄살이 아니다. 이제는 시청자들이 땀 흘릴 차례다. 도대체 뭘 봐야 할까. ●주목할 작품들 EBS는 1회에 비해 2회가 작품의 질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페스티벌 사무국장 김정기 PD는 “1회 때 TV용이 70%, 상영용이 30%였다면 이번에는 그 비율이 거꾸로 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정통 다큐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는 설명이다. 권영만 EBS사장은 “다큐의 강국이라는 네덜란드를 비롯, 세계 7개국의 견본시란 견본시는 다 돌며 2000여편의 작품 가운데 고르고 고른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선지 꽤나 큼직큼직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특히 ‘EIDF 다큐멘터리의 최전선’ 섹션에 배치된 작품들이 그렇다. 민주화 이후를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다룬 ‘달의 형상’, 사하라의 유목민들 생활을 들여다본 ‘낙타와 별밤, 사하라이야기’ 등 이런저런 영화제를 휩쓴, 다큐의 최근 수작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 관련 섹션도 흥미롭다. 이멜다 마르코스, 피델 카스트로, 샤를 드골 등을 다루는 ‘시대의 초상’ 섹션, 이라크·베트남전과 태평양전쟁·르완다 내전 등을 다룬 ‘전쟁과 평화’ 섹션, 자본주의 세계화와 독재, 인권을 통렬히 고발하는 ‘진실을 찾아서’ 섹션 등 생생한 기록물로서의 다큐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이 외에도 4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12편이 겨루는 경쟁부문의 수상작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EBS 스페이스에서 작품이 상영되면 항상 감독과 관객간 대화의 시간을 갖고, 한국 다큐 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 선보이는 등 화젯거리가 풍성하다. ●다큐 외 풍성한 볼거리들 페스티벌에 다큐만 있는게 아니다.‘다큐멘터리 사진전’은 리얼리즘 세계에 천착해 온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사진을 개막식 때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전시한다. 다음달 2일 파주 출판단지에서는 ‘아시아 평화의 길-민족과 국가의 대립을 넘어서’를 주제로 한 국제토론회도 열린다.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촬영인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포럼도 연다.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4번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제작자 입장에서 다큐의 형식과 연출, 영상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한다. 상영·방영일정, 예매 등은 모두 홈페이지(www.eidf.org)통해 알아볼 수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농촌 ‘국제결혼 바람’ 그후] 한집 건너 외국인신부…무관심·언어장벽 고통

    [농촌 ‘국제결혼 바람’ 그후] 한집 건너 외국인신부…무관심·언어장벽 고통

    ‘윗집은 베트남 며느리, 한집 건너 아랫집은 필리핀 며느리’요즘 농촌에선 농촌 노총각에게 시집온 피부색이 다른 동남아 출신 주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연부락마다 한집 건너 외국인 주부가 있을 정도로 이들은 농촌 가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언어와 문화, 관습 차이 등으로 ‘한국인 주부’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서 태어난 혼혈2세는 피부색 때문에 소외되는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수 약자로 전락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농촌지역 자치단체들은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농촌에 늘어나는 외국인 주부 경주시 건천읍에서 버섯 농사를 짓는 최모(48)씨는 올초 베트남 처녀(26)를 아내로 맞았다. 그동안 만나는 한국 처녀마다 모두 ‘농사일이 싫다.’면서 등을 돌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가정을 꾸렸다. “배운 건 농사일밖에 없고 장가는 가야하는데 시집오겠다는 여자는 동남아 여자뿐이더군요.” 경북도가 최근 실시한 ‘농촌거주 외국인 주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북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부는 모두 1544명. 이 가운데 농촌지역 거주 여성은 1292명으로 83.7%를 차지,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여성 대부분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 국가별로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4개국이 93.6%를 차지했고 거주 기간은 2년 이하가 24.8%,3∼5년이 31%로 최근 5년 사이에 한국에 시집온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평균 연령은 31.8세로 20대(38.9%)와 30대(40.1%)가 79%를 차지했다. 특히 주택 및 농지보유 현황, 영농규모 등을 종합평가한 생활수준 조사에 ‘상’은 2.5%에 그쳤고 ‘중’은 54.8%,‘하’는 39.6%로 분류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국내에서 신붓감을 구하지 못한 40대 농촌 노총각들의 국제결혼이 최근 5년 사이 러시를 이루면서 농촌에 외국인 주부가 급증했다.”면서 “이들 가운데 10가정 중 4가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앞으로 빈곤에 따른 가정해체 등 정착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코시안 혼혈 2세도 크게 증가 경북 구미에 사는 석호(4·가명)군은 ‘발달성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아직 우리 말에 서툰 엄마(40·필리핀) 때문이다. 엄마는 “농사일에 바쁘고 가르쳐주는 곳도 없어 인사 등 기초적인 말 이외에 아직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면서 “말뿐만 아니라 한국관습도 서툴러 앞으로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농촌에 외국인 주부가 급증하면서 혼혈 코시안(한국인 남성과 동남아 여성에서 태어난 2세)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 내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코시안은 모두 1534명. 국제결혼 가정 가운데 자녀가 1명인 가정이 44.6%로 가장 많았고 2명 38.8%,3명 이상 16.6%로 조사됐다. 5명을 낳은 외국인 주부도 8명이나 됐고 외국인 주부 중 20∼30대 여성비율이 약 80%여서 앞으로 더 많은 코시안이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혼으로 코시안 자녀를 둔 농촌가정들은 요즘 아이들이 커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바로 인종차별과 혼혈아에 대한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 때문. 필리핀 여성과 결혼해 6살 난 여자아이를 둔 박모(52·경북 청송군)씨는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나중에 아이가 피부색이 다르다며 멸시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낳지 말 것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외국인 주부 정착 지원나선 자치단체 1990년대부터 농촌지역에 외국인 주부가 하나둘 늘어났지만 이번에 경북도가 처음으로 실태조사에 나설 정도로 그동안 자치단체는 이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이번 조사 결과 농촌지역 외국인 주부는 한국어교육과 컴퓨터교육, 기술교육, 요리강습 등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경북 예천군은 시집온 동남아 여성들을 위해 3개월 과정의 한글교육과 음식, 전통예절 등 ‘국내적응 교육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또 영천시는 지역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외국인 주부들의 갈등을 상담해주는 창구를 마련하고 문경시는 2세 양육비 지원과 의료보호확대 등의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경북도는 출신국과 국제통화 비용을 전액 감면해 주거나 정액을 지원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또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교양, 어학, 제빵 등 교육 프로그램에 수강료 감면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세환 경북도 여성정책계장은 “베트남 출신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문제”라며 “바쁜 농촌생활 현실을 고려해 자원봉사자를 가정으로 파견해서 한국어를 교육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권오복 예천 국제결혼가족모임 회장 “더 이상 국제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 경북 북부지역 국제결혼가족모임 회장인 권오복(43·경북 예천군 보문면)씨는 “농촌 총각 4명 중 1명은 외국인 아내를 두고 있을 정도로 우리 농촌에서는 국제결혼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앞으로 국제결혼 부부가 10만쌍 정도는 더 늘어나야 농촌 총각들의 결혼난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도 지난 2003년 9월 베트남 처녀(23)와 결혼했다. 권씨는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처음 베트남에 신부감을 구하러 갔을 때는 ‘이 방법밖에 없을까’라며 많이 망설였지만 2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현재 예천지역에만 국제결혼 부부가 90쌍이 넘는다. 권씨는 이들의 친목도모와 권익보호를 위해 지난 2월 국제결혼가족 모임을 만들었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아내들의 고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만나면 늘 가족같은 분위기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의 화두는 2세 교육문제다. 권씨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엄마가 우리나라 말과 문화에 서툴다 보니 교육문제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구늘리기 사업이 국가 정책사업으로 확대되고 그 핵심에 국제결혼이 있지만 결혼한 외국인 아내에 대한 한글교육과 문화적응 등은 관심밖이다.”면서 “한글학교 상설화와 면단위까지 유아교육시설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씨는 국제결혼 실패 원인으로 부부간 이해부족을 들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한국 문화적응도 중요하지만 남자가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베트남여성과 ‘결혼할래요’ ‘신부찾아 베트남으로 베트남으로’ 요즘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 상대는 중국이나 필리핀보다 베트남 여성이 단연 인기다. 왜 베트남 신부를 선호하는 걸까? 대구지역 K 베트남전문결혼업체에 따르면 베트남은 아직 70∼80%가 농업에 종사하는 등 농경문화가 지배하고 있어 여성들은 농사일에도 익숙하고 농촌 사정에 밝아 결혼 후 한국 농촌에 적응이 빠르다는 것. 특히 불교 문화권에서 자란 베트남 여성들은 한번 결혼하면 좀처럼 헤어지지 않고 자식 교육에 평생을 헌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어 한국 농촌 노총각들의 인기가 높다. 이 때문에 최근 대구지역에는 농촌 노총각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여성을 소개해주는 전문 중매업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농촌 노총각들이 베트남 여성을 선호하자 자치단체와 새마을단체 등이 나서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을 적극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새마을운동 성주군지회는 최근 성주군을 찾은 베트남 타이옹우옌성 관계자와 간담회를 갖고 지역 농촌 노총각과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키로 합의했다. 유충하(41) 사무국장은 “양측이 신랑, 신부에 대해 개인재정 상태와 성실성 등에 대해 보증을 하기로 했고 9월 중 예비조사를 위해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결혼 성사 후에도 베트남 여성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한글교육 프로그램 등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예천군은 농촌총각 가정이루기 사업을 전개, 농촌 총각 16명을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주선하기도 했다.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하는 한국 신랑은1년치 곡식을 장인, 장모에게 바치고 신부를 데려갔던 베트남의 옛 풍습에 따라 500∼1000달러 수준의 지참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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