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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10만명 넘어…베트남전 전사자보다 많아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10만명 넘어…베트남전 전사자보다 많아

    미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사망자가 27일(현지시간) 10만명을 넘어섰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은 이날 오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를 10만 47명으로 집계했다. 미국 첫 사망자 발생 후 매일 900명씩 숨진 셈 지난 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카운티에서 미국 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지 111일 만이다. 사망자 10만명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숨진 미군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35 만3414명의 28.3%에 해당한다.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10명 중 3명이 미국인인 셈이다. 또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전체 주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가 사망한 셈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CNN 방송은 첫 사망자가 나온 뒤 매일 거의 900명씩 코로나19로 숨진 셈이라고 보도했다. 고령자 압도적…빈곤층·유색인종이 더 많이 희생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압도적으로 5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라고 WP는 분석했다. 일부 주에서는 사망자의 약 3분의 2가 80세 이상 고령자들이었다. 노인 요양시설이나 실버타운이 가장 피해가 큰 곳이 됐다. 또 가난한 사람이나 흑인, 라티노 등 유색인종이 다른 인종, 다른 계층에 비해 더 많이 희생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중교통 종사자나 교정시설 교도관·수감자, 공장 직원, 육류 처리공장 직원 등 다른 사람과 가까이 머물며 일하는 사람들이나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섰던 의사·간호사 등도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희생됐다고 WP는 전했다. 또한 부유하고 의료보험을 감당할 여력이 되는 지역은 사망률이 낮은 반면 불법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사망률이 천정부지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은 대부분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가족이나 형제, 자녀, 연인과 포옹하거나 헌신의 속삭임을 듣는 대신 컴퓨터 화면 속 작은 이미지로, 또는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둔 채 가족·친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했다. “코로나19가 미국의 취약점과 격차 노출” WP는 “이번 팬데믹이 미국의 취약점과 위험한 격차를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는 이날까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를 169만 5776명으로 집계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력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 역사 속에는 너무 암울하고 가슴이 미어져서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각인되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순간들 중 하나”라며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상실에 대해 애석하다. 국가가 여러분과 함께 비통해하고 있다”고 썼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속보] 美코로나 사망 베트남전+한국전보다 많은 10만명 넘어

    [속보] 美코로나 사망 베트남전+한국전보다 많은 10만명 넘어

    전세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35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처음 코로나19가 발병한 이후 확진자는 558만 9389명을 기록중이며 사망자는 35만 196명이라고 AFP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유럽으로 사망 17만 3713명, 확진자는 205만 7414명이다. 이어 미국의 사망자가 가장 많아 9만 8929명이며, 영국 3만 7048명, 이탈리아 3만 2955명, 프랑스 2만 8530 그리고 스페인이 2만 7117명을 기록중이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 숫자는 집계기관별로 다른데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로는 9만 8900여명이나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로는 10만명을 넘어선 10만 572명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여전히 늘고 있는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10만명...“트럼프, 공감능력 부족” 지적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10만명...“트럼프, 공감능력 부족” 지적

    미국 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르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능력 부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은 국가적 비극이 있을 때마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메시지에 주력했던 전임 대통령들과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AP에 따르면,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수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이날 오후 현재 미 사망자 수는 존스홉킨스대 집계로 9만8902명,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로 10만572명이다. 그러나 이날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응 실패에 관한 비판을 정치적 공격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데에만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외부의 정치적 때리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을 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150만에서 200만명의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종)수치가 될 것으로 보이는 10만명을 약간 넘는 수의 15∼20배에 해당한다”면서 “나는 매우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았다”라고 자화자찬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테러 후 유가족을 만나 “여러분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고, 미국을 잃은 것도 아니다”라며 “우리가 당신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9·11테러 후 뉴욕 소방관들에게 확성기를 통해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건물들을 무너뜨린 자도 곧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샌디훅 초등학교 총격 사건 후 짧은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섯 번 이상 눈물을 훔쳤고, 이틀 뒤 철야기도 자리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여러분과 함께 울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과 대조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메시지에 대해 앤드루 폴스키 헌터대 정치학 교수는 “그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며 “그는 (공감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장학금 30억”… 50년 모은 상이연금 쾌척한 스님

    “장학금 30억”… 50년 모은 상이연금 쾌척한 스님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몸을 다쳤던 고승(高僧)이 50년 동안 모은 상이연금 등 사재 30억원을 후학 양성을 위해 내놨다. 17일 불교계에 따르면 강원 영월군에 있는 법흥사 주지 삼보 스님이 전날 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열린 ‘탄허 스님 37주기 추모다례재’에서 주지 정념 스님에게 30억원을 기부하는 증서를 전달했다. 삼보 스님은 1970년 베트남전쟁 당시 해병대원으로 참전해 지뢰를 밟아 뒤꿈치를 심하게 다쳤다. 이때 입은 부상 탓에 지금도 걸을 때마다 불편함을 겪고 있다. 그가 기부한 30억원 가운데 상당 금액이 50년간 매달 받아 모은 상이연금으로 알려졌다. 삼보 스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부금을 사용해 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금은 월정사가 세울 ‘탄허장학회’가 운용하고, 삼보 스님은 장학회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올해로 법랍(승려가 된 뒤부터 세는 나이) 55세인 삼보 스님은 16세 때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간 월정사와 정암사 등 여러 사찰에서 안거(安居)를 성안했다. 동국대 재단 이사를 지냈다. 1988년부터 9년 동안, 또 2013년부터 현재까지 월정사 말사인 법흥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오일만 논설위원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아직까지 세계는 기나긴 터널에 갇혀 있다. 미증유의 재앙을 맞아 우리를 포함한 세계적 수준의 동시다발적 인식의 대변환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 경제, 산업, 교육, 보건, 환경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새로운 질서의 흐름이 형성되는 흔적이 뚜렷하다. 이른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바꿔 놓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다. 이런 공통의 인식 체험은 우리를 지배하는 정신세계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에 창궐했던 흑사병이었다. 14세기 전 세계 인구의 3분의1가량이 죽었다는 통계도 있다. 신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싹텄다.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성직자들이 무더기로 죽어 가는 것을 목도한 민중들의 마음은 교회에서 멀어졌고 급기야 신권(神權)의 몰락은 필연의 수순을 밟는다. 신권의 토대였던 정치·경제 권력도 함께 허물어졌다. 흑사병 창궐로 농노 인구가 격감되자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가져왔고 봉건경제가 해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봉건영주의 권력도 스러져 갔다. 대신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상업자본을 축적한 자본가 계급이 등장했고 이는 산업혁명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흑사병이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는 트리거(당아쇠)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우선 기존의 권력질서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세계적 석학 헨리 키신저는 “코로나19가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촉발된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면서 쇠락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누적 사망자 수는 10년 이상 이어진 베트남전쟁 전사자 수(5만 8220명)를 넘어선 지 오래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진자·사망자 수 모두 압도적인 1위의 불명예를 얻은 미국은 이미 글로벌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견했던 니컬러스 블룸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로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로 불릴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중국 역시 이번에 소프트파워(연성권력)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중국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폐쇄적 태도가 도마에 오른 상태다. 미국 대안 세력으로서 중국 권위주의 모델에 대한 신뢰도 급격히 떨어졌다. 어느 일방의 독주가 불가능한 2인3각의 패권경쟁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이런 국제권력의 변동은 기존의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의 필연적 변화를 수반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반(反)세계화 현상’이 일상화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각국의 무역과 이주 등을 크게 제한할 것이란 분석이다. “자유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 시대(wall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던 패러다임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짙어진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18세기 이후 뿌리 깊게 자리잡은 ‘서구 우월주의’의 커다란 균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수(5일 기준)는 330만명을 넘어섰다. 가장 피해가 큰 나라는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대부분 서구 국가였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그들의 형편없는 대처 능력과 부실한 공공의료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인들이 그렇게 닮고 싶어 했던, 서구 선진국들의 실체를 보면서 ‘서구 콤플렉스’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당분간 세계는 극심한 경제침체와 패권 전쟁을 동반한 이중의 혼란이 지배할 것이다. 이런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로선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은 늘 혼돈과 위기 이후에 강점을 발휘하면서 새롭게 혁신해 왔다. 암울한 군사독재와 격렬한 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1997년 초유의 환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을 겪으면서 우리는 재벌 구조조정과 부실기업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던 경험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식이 세계인의 칭송을 받으며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은 사실은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 줬다. 이 자긍심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한 혼돈의 시대에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에너지가 된다. oilman@seoul.co.kr
  • 美 보건당국, 올가을 코로나19의 2차 팬데믹 경고....미 사망자, 베트남전 희생자보다 많아

    美 보건당국, 올가을 코로나19의 2차 팬데믹 경고....미 사망자, 베트남전 희생자보다 많아

    미 보건당국이 28일(현지시간) 올가을 코로나19의 2차 팬데믹을 경고한 가운데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베트남전 희생자를 넘어섰다. 확진자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보건원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소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이코노믹클럽 행사에서 “내 생각엔 바이러스가 돌아올 것이 불가피하며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미국이 나쁜 가을과 겨울을 맞을 수 있다”며 코로나19의 2차 팬데믹을 경고했다. 이어 파우치 소장은 올 하반기 2차 유행이 닥친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 19 백신개발 노력에 대해선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라면서도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파우치 소장은 미국 각 주의 경제활동 재개 움직임에도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그는 “수 주전 우리가 타고 있었던 같은 배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코로나 19로 겪었던 최악의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명을 넘겼으며 사망자도 베트남전 희생자 수를 추월했다. 존스홉킨스대 코로나19 실시간 통계사이트에 따르면, 28일 오후 5시 기준으로 확진자는 101만 717명, 사망자는 5만 8365명으로 집계했다. 사망자는 1975년에 끝난 베트남 전쟁에서 약 10년간 전사한 미군 수 5만 8220명보다 많다. 또 다른 통계사이트인 월드오미터는 확진자를 전날보다 2만명 넘게 증가한 103만 618명, 사망자는 1885명 증가한 5만 8682명으로 집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베트남전 전사자 수 넘어섰다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베트남전 전사자 수 넘어섰다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베트남 전쟁 전사자 수를 넘어섰다. 미 존스홉킨스대학은 28일(현지시간) 오후 7시 32분(미 동부시간)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101만 1877명으로 집계했다. 사망자는 5만 835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이상 이어진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국 군인 5만 8220명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 곳곳에서 경제 부문의 봉쇄 조치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앨라배마주는 이달 30일 만료되는 자택 대피령을 더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5월 1일부터 자택 대피를 권장하는 명령을 시행하고 이때부터 모든 사업주와 소매점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위생 지침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영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이달 30일 의료 부문 사업체들을 시작으로 단계적인 경제 재가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짐 저스티스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는 전날과 이날 양성 환자 비율이 3% 미만이었다며 29일에도 3% 미만을 유지할 경우 약국과 치과의사, 심리 상담사, 물리치료사 등에 대해 30일부터 영업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이어 5월 4일에는 2단계로 직원 1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체, 미용실, 종교시설 등의 문을 열도록 할 계획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메인주는 자택 대피령을 5월 31일까지 연장하되 이를 사실상 권고로 전환하면서 안전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경제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식당과 소매점의 영업을 허용한 테네시주는 이날 추가로 5월 1일부터 체육관도 문을 열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다만 수용 인원은 절반으로 줄이고, 공용기구는 치우도록 했다. 와이오밍주도 5월 1일부터 체육관과 미용실, 이발소 등의 영업을 허용하고, 사우스다코타주도 같은 날부터 술집과 식당, 레크리에이션 시설, 헬스클럽, 미용실, 이발소 등이 문을 열 수 있도록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경제 재가동을 시작할 경우 육아시설을 1단계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몇 주 후면 소매점과 학교가 다시 문을 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앞으로 경제 재가동에 나서면서 병원 수용 능력과 코로나19 감염률, 두 가지 핵심 지표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주는 5월 18일까지 필수적이지 않은 사업체·점포의 문을 계속 닫도록 하고, 자택 대피 권고도 이때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한국 정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공식 사과해야”

    “한국 정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공식 사과해야”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 활동가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30일은 베트남전 종전 45주년이다. 뉴스1
  • “한국 정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공식 사과해야”

    “한국 정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공식 사과해야”

    “한국군의 총탄에 사람들이 쓰러졌는데 나와 딸아이가 맨 밑바닥에 깔렸어요. 귓구멍, 콧구멍, 입으로 핏물이 스며들었어요. 그 피비린내가 잊히질 않아요.” (94세 베트남인 쯔엉티쑤옌) 베트남전 종전일(1975년 4월 30일) 45주년을 이틀 앞둔 28일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시민사회넷)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주장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사과를 간절히 원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유족 103명은 한베평화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통해 청와대에 민간인 학살 진상 조사에 나서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냈다. 시민사회넷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해 9월 답변서를 통해 “한국군 전투 사료 등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한국과 베트남 정부 간 공동조사 여건이 조성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넷은 “피해자의 호소에도 정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했다”며 “베트남전쟁 참전의 역사를 통해 가해의 역사를 성찰하고 우리도 언제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21일 베트남인 응우옌티탄(60)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첫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5년부터 한국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In&Out] 독립과 호국, 게다가 민주까지/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In&Out] 독립과 호국, 게다가 민주까지/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한국의 보훈은 6·25전쟁 희생자와 그 유족·가족을 돌보는 정책에서 시작됐다. 점차 독립운동 애국지사 및 4·19혁명 희생자, 나아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대한 지원 정책 등으로 확대됐다. 한국 보훈 정신의 근간이 ‘독립’과 ‘호국’인 셈이다. 그런데 독립과 호국은 적을 전제한 언어다. 보훈이 일본, 북한, 베트남 등의 ‘적’과 싸우다 생긴 희생에 대한 보답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이러한 보답은 국내적 차원에서는 사회와 국가의 통합에 기여한다.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구화 시대에는 이런 보훈 정책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좁은 의미에서는 일본을 위한 호국적 행위지만 그것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불쾌하게 만들고, 동아시아 정치적 긴장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도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고엽제 피해자를 중심으로 베트남전 참전용사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예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 당시 상대방에게, 특히 무고한 민간인에게까지 피해를 준 사례도 적지 않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내외의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특정 국가의 보훈 대상자가 상대국에 대해 가해자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한국과 베트남 간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증폭되고 있는 만큼 베트남에 대해 적대적인 듯한 정책이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보훈이 전쟁 희생자에 대한 지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전쟁 자체가 사라진 세계, 서로에게 상생이 될 수 있는 문화의 건설까지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북 적대성을 전제로 하는 보훈으로는 통일과 평화 시대를 열 수 없다. 한국은 물론 북한의 보훈 정책(유자녀 정책)도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품을 수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독립과 호국은 오늘의 한국을 설명하는 명백한 근간이지만, 결국은 일본이나 북한도 품을 수 있는 보훈으로 확장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때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5·18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2002)이 주는 보훈적 함축성은 작지 않다. 여기서는 독립과 호국에 비해 ‘민주’를 강조하고 있다. 독립과 호국이 주로 국경 중심의 민족국가 체제 안에서 유의미한 데 비해 민주라는 가치는 종종 국경을 넘어 적용된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보지 않으려는 세력도 여전할 만큼 독립과 호국에 민주적 가치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건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수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축 간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한다. 독립과 호국 유공자를 지속 발굴하고 지원하면서 초연결 시대 민주적 가치를 화학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남북, 아시아, 나아가 세계가 상생적으로 연결되는 보훈의 미래를 꿈꿔 본다.
  • “코로나19에 큰오빠 잃어” 임종 지키지 못한 워런 의원

    “코로나19에 큰오빠 잃어” 임종 지키지 못한 워런 의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 하차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빠를 잃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워런 상원 의원의 큰오빠인 도널드 리드 헤링이 지난 21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86세의 헤링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지 약 3주 만에 오클라호마주 노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런 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나의 큰오빠 돈 리드가 21일 저녁 코로나바이러스로 숨졌다”며 “오빠를 돌본 의료진과 일선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 워런은 “손을 잡아주거나 ‘사랑한다’고 한 번 더 얘기할 가족이 없고, 그를 사랑한 우리가 서로 가까이 할 장례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돼 힘들다”며 임종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헤링은 19세 때 공군에 입대해 B-47과 B-52 폭격기를 몰고 베트남전에서 288번의 전투 임무를 수행한 퇴역 중령이다. 수년 전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헤링은 지난 2월 폐렴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재활센터로 옮겨졌다. 한편 워런 의원은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과 함께 한때 유력주자로 부상했지만 지난 2월 첫 경선이 시작된 후 부진을 면치 못하자 지난달 5일 중도 하차를 선언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물이 없어도 ‘발열팩’으로 데워 먹을 수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 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베트남전이 만든 ‘한국형 전투식량’ 23일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 논문에 따르면 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김치 보급 문제 美 상원 청문회에도 등장”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소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소시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베트남전 기간 5639만 달러 수출 달성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 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0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중 31.3%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첫 국가배상청구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생존자 첫 국가배상청구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처음 제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60)을 원고로 하는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탄퐁사 퐁니마을에 살던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 12일 발생한 ‘퐁니·퐁넛학살’의 생존자로 불과 8살의 나이에 복부에 총격을 맞아 생사를 오갔다. 당시 웅우옌티탄의 가족 등 마을 사람 74명이 학살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올해로 60세가 된 응우옌티탄은 2015년부터 한국을 방문해 그 때의 기억을 공유하며 한국 사회의 책임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당시 총격을 가한 이들이 다름아닌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파월한국군 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8년 4월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시민법정)의 원고로 참여했으며 지난해 4월에는 청와대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지난해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TF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피해자의 용기 있는 소송에 국민이 많은 관심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 정부도 한국 측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TF 팀장인 김남주 변호사는 “지난해 응우예티탄 등 유족과 생존자들이 청와대에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등을 청원 형식으로 전달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단지 국방부가 자신들의 기록에는 민간인 학살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다는 변명만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TF는 이번 소송에서 피해자의 증인뿐 아니라 한국군의 자백에 가까운 진술, 당시 상황을 목격한 미국군의 감찰보소서 등을 증거로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날 베트남에 있어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응우예티탄은 노트북을 통한 화상연결에서 “제 개인의 권리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명예훼복을 위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대립구도 틀이 깨진다… 좌우에서 ‘정체성’으로

    대립구도 틀이 깨진다… 좌우에서 ‘정체성’으로

    미국 백인 엘리트들이 2016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지금도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그토록 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왜 도널드 트럼프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말도 안 되는 협잡꾼의 주장에 다들 집단 사기라도 당한 게 아닐까.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신간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트럼프 당선과 백인 하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엮어 미국의 특이한 정체성을 분석했다. 둘은 재력과 학력에서 차이가 있을 뿐 취향이나 감성, 가치관 등에서는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인종주의적이며, 반페미니스트이자, 거리낌 없이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다. 백인 하층 노동자들은 이런 트럼프를 ‘같은 부족 사람’이라 생각했고, 기꺼이 표를 줬다고 봤다. 국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인 미국은, ‘민족’ 정체성은 약하지만 강력한 ‘국가’ 정체성으로 하나가 된 유일한 국가다. 이런 특징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의 민족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하기도 했다. 냉전의 렌즈로만 바라봤던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베트남의 화교는 인구 비중이 1%밖에 안 되지만, 경제적 부의 70~80%를 장악한 상태였다. 미국이 친자본주의적 조치를 취할 때마다 오히려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수장인 호찌민이 그저 중국의 꼭두각시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호찌민은 화교를 향한 베트남 사람들의 증오를 적절히 활용해 미국을 물리쳤다. 저자는 미국이 간과한 건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화교에 대한 증오였다고 지적한다.미국이 “민주주의가 자유를 사랑하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라크를 침공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당시 복잡한 이라크의 민족 구성과 그들의 갈등을 간과했다. 당시 이라크는 수니파가 집권하고 있었지만, 전체 인구 60%는 반대편인 시아파였다. 민주적 선거 방식은 오히려 시아파 정권을 탄생시켰고 수니파에 대한 처참한 보복과 이에 맞선 무장단체이자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를 낳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에서는 민족과 유사한 ‘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는 데 저자는 우려를 드러낸다. 2017년 2월 캔자스주에서 백인 퇴역 해군이 “우리나라에서 꺼져!”라면서 인도계 미국인을 죽인 일, 그해 5월 열차에서 무슬림을 욕하던 남자가 말리던 사람 2명을 찌른 일 등이 연이어 이어진다. 이제 미국을 바라보는 틀을 좌우 구도가 아닌 ‘부족´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미국의 특징을 설명하면서도, 우리에게 불편한 기시감을 준다.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좌우 이데올로기는 최근 들어 서서히 옅어지고, 대신 경제와 교육수준, 세대, 종교, 성별 등 다양한 정체성 갈등이 좌우 대결을 압도한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를 경계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작은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금기를 자유롭게 꺼내놓고, 비난 대신 관용을 보이며 보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4·15 총선도 끝난 상황에서 책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준다. 너와 나를 나누고 우리 편이 누군지를 가르는 데에 급급하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선거 이후 우리도 작은 한 발을 내디뎌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 가사 적어놓은 종이 11억원 낙찰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 가사 적어놓은 종이 11억원 낙찰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 ‘헤이 주드’의 가사를 폴 매카트니(78) 경(卿)이 적어놓은 종이가 73만 1000 파운드(약 11억원)에 팔렸다. 비틀스 해체 50주년을 기념해 10일(현지시간) 진행된 경매에 250개 물품이 나왔는데 1968년 매카트니가 존 레넌의 아들 줄리안(57)을 위로하기 위해 떠올린 가사를 적어놓은 종이가 낙찰 희망가 12만 8000 파운드의 여섯 배 가까이 되는 가격에 낙찰됐다고 BBC가 전했다. 레넌은 1966년 일본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와 사랑에 빠지면서 신시아와 이혼을 결심했는데 매카트니는 여섯 살 난 줄리안이 부모의 이혼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어 달래려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 비틀스가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 노래를 녹음할 때 매카트니가 종이에 가사를 적었다. 그는 늘 공연을 마무리할 때 이 노래를 청중들과 함께 불렀는데 과거에도 “난 늘 줄리안과 단짝이었다. 차에서 내릴 때 첫 소절 ‘헤이 주드 던 메이크 잇 배드’를 어렴풋이 읊조렸다. 그때는 주드가 더 나은 이름, 더 촌스럽고, 서쪽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물론 경매는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1964년 첫 미국 투어 당시 사용한 ‘비틀스’ 로고가 새겨진 드럼 관련 용품은 희망가의 네 배인 16만 1000 파운드(약 2억 4000만원)에 팔렸다. 3년 뒤 ‘헬로 굿바이’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레넌과 조지 해리슨, 그리고 로드매니저 맬 이반스가 아이디어를 적은 메모, 그림, 각본 등이 6만 7000 파운드에 주인을 찾았다. 또 1969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벌이며 일주일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며 찍은 다큐멘터리 ‘베드 인 피스’에 촬영됐던 레넌과 요코의 ‘배기즘(BAGISM)’ 그림이 7만 5000 파운드에 팔렸다. 드러머 링고 스타가 사용한 놋쇠 재떨이는 3만 2500달러(약 3940만원)에 판매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캐나다 배우·사회운동가 셜리 더글러스 별세

    캐나다 배우·사회운동가 셜리 더글러스 별세

    공공의료·반전 운동 이끌어“비범한 삶 이끈 비범한 여성”캐나다의 배우이자 사회 운동가이며 배우 키퍼 서덜랜드의 모친인 셜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토론토에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86세. 키퍼 서덜랜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어머니가 폐렴 합병증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와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머니는 비범한 삶을 이끌었던 비범한 여성”이라며 “어머니가 오래 투병했으며 가족들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웨이번에서 태어난 셜리 더글러스는 스탠리 큐브릭의 ‘로리타’(1962),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데드링거’ 등에 출연했으며 1999년에는 TV영화 ‘섀도 레이크’를 통해 캐나다 시네마·텔레비전 아카데미가 주는 제미니 상을 받았다. 캐나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셜리 더글러스는 서스캐처원주 주지사를 지냈고 캐나다의 공공 의료 시스템을 만든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의 딸로, 아버지처럼 여러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버지가 도입한 공공 의료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했고,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운동단체인 블랙팬서 등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취업 허가를 받지 못했으며 1969년에는 미등록 폭발물을 소지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적도 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핵 군축을 위한 공연예술가들의 모임’의 캐나다 지부를 공동으로 창시했다. 1965년에 배우 도널드 서덜랜드와 결혼해 키퍼 서덜랜드를 포함한 두 자녀를 낳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베트남전, 초기 3개월간 미군 C레이션 제공“한국음식 그립다” 불만에 ‘한국형 C레이션’‘일본인 생산’ 김치 비판여론…K레이션 개발베트남 군납 수출 30% 차지…외화벌이 기여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물을 끓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발열팩’이 포함된 제품으로 데워 먹을 수도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전투를 마친 뒤 참호에서 늘 ‘따뜻한 밥 한 끼’를 떠올렸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 ●베트남전 파병으로 개발한 ‘한국형 전투식량’ 한국형 전투식량 시초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참전자의 회고록이나 사료 등으로 조금씩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올해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이라는 제목의 첫 논문을 냈습니다. 5일 이 논문을 바탕으로 김치 등 한국음식이 어떻게 참호 속 군인들의 밥상에 올라왔는지 되짚어보려 합니다.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 ●“휘발유보다 더 귀한 고추장·김치를 달라”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 음식으로 구성된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통조림 형태의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군납업체인 ‘대한종합식품’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지고 시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고, 그 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쇠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쏘세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5600만 달러 수출 기여…전투식량 발전 ‘초석’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8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 중 30%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 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 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코로나19 미국 사망자, 한국전쟁 전사자 두 배 될 수 있다”

    “코로나19 미국 사망자, 한국전쟁 전사자 두 배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유행을 전쟁에 비교하면서 백악관은 올해 미국인 사망자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군 희생자보다 많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일(현지시간) 기준 미국인 코로나19 확진자는 18만 8355명이고, 사망자 4053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가 기자회견에서 투사한 프로젝션 자료에 이같이 시사했다고 미국 경제 매체 CNBC가 이날 전했다. 또 코로나19가 질병의 세번째가 사인이 될 가능성도 제시했다.앞서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관계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되더라도 미국에서 올해 10만명에서 24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 모델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리두기와 같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인이 최대 22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전문가들도 최악의 경우 150만명에서 220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건한 예상치의 하단인 10만명이 사망할 경우 베트남전 당시 미군 전사자 수인 9만 220명을 웃돈다. 한국전쟁 전사자 5만 4246명보다는 약 2배 많고,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사자인 11만 6516명에 거의 육박한다. 예측 모델의 상단인 24만명이 사망할 경우 역대 전쟁에서 미군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남북전쟁의 49만 8332명의 절반에 이른다.이와 관련, 미국 연방재난관리처(FEMA)가 국방부에 시신 보관용 가방 10만개를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FEMA 대변인은 “영안실의 만일의 사태”를 포함해 향후 수요에 대한 신중한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은 뉴욕시에는 영안실이 부족해 냉동 트럭 85대에 시신을 임시 보관하고 있다.코로나19 사망은 미국의 질병 사망자 순위도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 온근한 예상치의 상단일 경우 심장병(64만 7457명)과 암(59만 9108명)에 이어 세번째 사망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CNBC는 전했다. 10만명이 희생되면 뇌졸중(14만 6383명)이나 알츠하이병(12만 1404명)머 다음으로 당뇨병(8만 3564명) 희생자보다 많아진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 등의 자료에 따르면 계절성 독감과 폐렴으로도 연간 5만 5672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95세 할머니가 손수 만든 기부용 ‘마스크’ 감동

    [여기는 베트남] 95세 할머니가 손수 만든 기부용 ‘마스크’ 감동

    95세 백발의 할머니가 온종일 재봉틀 위에 앉아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기 위한 선행의 손길이다. 또이째를 비롯한 베트남 현지 언론은 23일 호치민 고밥군에 거주하는 응오 티 끼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다. 할머니는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남편과 아들 하나를 잃었고, 본인도 한쪽 눈을 실명했다. 이에 지난 2015년 베트남의 ‘위대한 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95살의 연로한 나이에 남은 한쪽 눈마저 침침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연일 재봉틀에 앉아 면 마스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스크는 고밥군 여성 연합회로 보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된다. 다섯째 아들은 연로한 모친의 몸이 상할까 염려돼 “일을 그만하시라”고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내일이면 더 늙을 텐데 하루라도 건강할 때 사회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선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부터 재봉틀로 수백 장의 이불을 만들어 전국 가난한 지역에 전달해왔다. 재활용 천을 가져다 세탁하고, 재단해 이불을 만들어 온 것이다. 평생을 함께한 재봉틀, 세월은 흐르고 눈은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세상 구석구석에 필요한 물건을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할머니의 동반자인 셈이다.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내가 지금 건강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이게 행복이지 않겠느냐”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 통신원 litta74.lee@gmail.com
  • 메콩강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느릿느릿… 저만치 행복이 보이네

    메콩강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느릿느릿… 저만치 행복이 보이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라오스까지 가려고 해” “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중에서●인구 700만 작은 도시, 여행자 거리를 노닐다 여기는 루앙프라방 남칸강변에 자리한 부라사리 헤리테지 리조트다. 나무로 지어진 아주 심플한 2층 건물인데 간판이 아니라면 아무도 리조트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실내는 인도차이나의 여느 리조트처럼 천장이 높고 커다란 팬이 돌아가며 열기를 식혀 준다.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침대는 ‘여기 있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푹 쉬어’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강 쪽으로 나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열대의 환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부라사리 리조트에서 묵은 사흘 동안 가장 많이 애용한 공간은 발코니다. 아침에는 이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황색 승복을 입은 어린 노비스(수행자)들이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얼음이 든 비어라오(라오스 스타일이다)를 마시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곤 했다. 그러는 사이 강은 붉게 물들었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인생의 미스터리니 다음번 빅뱅이니 알 게 뭐냐,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이지”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곤 했다. “강 앞에서, 특히 강 위에서 우리 여행자는 그저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환영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구경만 하고 다시 떠나간다. 단지 그뿐이다. 미세하게 긁힌 자국 하나 이곳에 남기지 못한다. 보트를 타고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노라면 그런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부라사리 리조트에서 5분만 올라가면 여행자 거리에 닿는다. 시엥통 사원에서 조마 베이커리까지 약 2㎞에 이르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여행자 거리다. 게스트 하우스와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등이 늘어서 있다. 아침이면 리조트에서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와 여행자 거리를 산책하곤 했는데, 사실 그것 말고는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5년 전 루앙프라방 사진 작업 때문에 이곳에 50일 정도 머문 적이 있었는데, 동네가 너무 작다 보니 보름 정도 머무르자 생일이나 장례식 등 각종 경조사에 초대받는 일까지 생겼다. 사실 라오스 자체가 아주 작다. 남북한을 합친 것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70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는 비엔티안(현지발음으로는 ‘위양찬’)이지만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루앙프라방이다. 루앙프라방을 30분만 걸어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지 알 수 있다. 프랑스 식민지풍의 건물과 라오스 전통양식의 집, 사원들이 어울린 작은 도시는 승려와 아이들, 어슬렁대는 배낭여행자들로 한가롭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자유로움과 순진함,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가득차 있다. 유네스코는 1995년 루앙프라방 지역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가장 아름다운 시엥통 사원, 여유를 만끽하다 라오스는 전체 인구의 95%가 불교도인 불교국가다. 루앙프라방을 걷다 보면 한쪽 어깨를 내놓은 채 주홍색 장삼을 입고 다니는 소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승려는 아니고 수행자다. 일종의 견습 승려인 셈인데 라오스 남자들은 과거에는 의무적으로 3개월에서 1년 동안 사원에 들어가 수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소 간소화해 약 3~6개월 정도 사원에 머물며 불교 경전을 공부한다. 사원은 교육기관 역할도 한다. 교육시설과 교사가 부족한 라오스에서 학식이 높은 계층인 승려들은 선생님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원 옆에 초등학교가 바로 붙어 있는 곳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앙프라방에는 약 50여개 주요 사원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시엥통 사원(왓 시엥통)이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힌다. 라오스 전통 양식으로 건축돼 세 겹 지붕이 지면 가까이까지 내려온 것이 특징이다. ‘황금도시의 사원’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크고 작은 사원 건물 내외부에는 화려한 황금 장식과 각종 보석 장식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사원은 우리나라나 중국 또는 태국의 사원이 보여 주는 종교적인 경건함이나 장엄함은 없다. 날씨 탓일까,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른한 분위기가 절 전체를 감싸고 있다. 거리에서 여행자의 옆을 무심히 스쳐가는 노비스와 비슷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라오스의 사원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압도적인 힘’ 같은 것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했다.●승려들의 ‘탁밧’ 행렬, 라오스의 아침을 깨우다 새벽 5시 30분. 프런트 직원이 문을 두드린다. 아침에 탁밧 행렬을 보기 위해 모닝콜을 부탁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깨워 준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발코니 테이블에 커피도 가져다 놓았다. 이러니 어떻게 루앙프라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탁밧이다. 우리말로 ‘탁발’이라는 스님들의 아침 공양의식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루앙프라방에서만 볼 수 있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서도 볼 수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다. 루앙프라방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새벽 탁밧 행렬이 이어진다. 루앙프라방 각 사원의 승려들 수백명이 마을을 돌며 아침거리를 공양하는데 장엄한 이 행렬은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사원에서 북이 울리면 탁밧이 시작된다. 대략 새벽 여섯 시쯤이다. 이 시간이면 골목마다 사람들(주로 여자)이 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은 채 스님들을 기다린다. 길 저편에서 붉은 가사를 입은 맨발의 스님들이 바리때를 메고 독경을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온다. 사람들은 준비해 온 찰밥(카오니아오)을 조금씩 떼어 스님들에게 공양하는데 이 찰밥과 음식을 준비하고 몸을 정갈하게 하려면 새벽 5시엔 일어나야 한다. 관광객들도 참여할 수 있다. 소수민족들이 공양 물품을 관광객들에게 파는데, 찹쌀밥 외에 바나나며 과자 등도 있다. 이웃나라인 태국인들은 돈을 봉투에 넣어 주기도 한다. 탁밧 행렬에는 300~500명 승려들이 참여한다. 루앙프라방에는 사원만 80개이고, 스님은 1000여명이 있다. 이 지역 스님 절반 정도가 탁밧에 참여하는 셈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승려들이 앞장서고 서열에 따라 승려들이 한 줄로 서서 큰스님의 뒤를 따른다. 승려들은 시주들 앞을 지나가며 바리때 뚜껑만 반쯤 연다. 그러면 시주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물 등을 스님들의 바리때 속에 넣는다. 탁밧 행렬을 지켜보며 흥미로웠던 점은 승려들이 밥과 반찬으로 가득찬 바리때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루앙프라방의 승려들은 아침과 점심 두 끼밖에 먹지 않는다. 먹는 양도 적어 바리때에 담긴 음식이 남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아침 탁밧 행렬에 공양을 하기 위해 나온 주민들 끝에는 걸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나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인도 섞여 있다. 승려들은 바리때에 담긴 음식을 이들에게 나눠준다. 걸인들 역시 당연한 듯 승려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받는다.●독특한 먹거리, 佛·伊·泰 맛에 흠뻑 탁밧 행렬을 본 후 리조트로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라오스는 프랑스 식민지를 거쳤던 까닭에 빵문화가 발달해 있다.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많이 먹는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게 구워진 크루아상이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흡족하게 만들어 준다. 이 리조트에서는 매일 오전 열한 시에 쿠킹 클래스를 진행한다. 라오스인들이 즐겨 먹는 탐막훙(파파야 샐러드)이며 핑파(생선구이), 핑카이(닭구이), 카오피약(쌀국수) 같은 음식들을 만들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루앙프라방은 다양한 라오스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수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인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수를 빼 달라고 하면 된다. 고수를 빼면 맵고 짠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은근히 맞다.여행자 거리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식당이 즐비하다. 현지인에겐 비싼 편이지만 외국인이라면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서양 음식값은 한국에서 먹는 가격의 반도 안 된다. 라오스 음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웃나라인 태국과 베트남,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태국과 그 맛이 비슷하다. 시장 한 켠에서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 다양한 바비큐 구이를 먹을 수 있다. 특히 메콩강에서 잡은 생선 바비큐는 소금만 치고 불에 구웠을 뿐인데 향긋한 맛이 난다. 삼겹살 비슷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한국식 불판을 이용한 돼지고기 구이를 라오스에서는 ‘신닷’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인들이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카오지도 별미다. 바게트 빵을 갈라 여러 가지 재료를 꽉 채운 것으로 유명한 가게에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진을 친다. 라오스 맥주인 비어라오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맛에서 뒤지지 않는다. 라오스에 살다 간 사람들에게 라오스의 추억을 물으면 단연 비어라오를 꼽는다. 해질녘 메콩강변에 앉아 비어라오를 마시며 담소하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다.●다양한 볼거리, 매력이 철철 루앙프라방에는 불교문화 유적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푸시탑은 배낭여행자들이 노을을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328개 계단이 놓인 푸시탑을 오르면 시내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쾅시 폭포는 신나는 루앙프라방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쾅시산에 있다. 오래된 거목으로 뒤덮인 울창한 숲을 지나면 비밀의 풍경처럼 폭포가 드러난다. 여행자들은 폭포 아래의 연못과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특히 폭포 주변의 나무에 만들어놓은 다이빙대에서 젊은이들은 연거푸 물속으로 뛰어든다. 모험과 스릴을 좋아하는 젊은 여행자들이 특히 열광한다. 열대 몬순 기후지역인 라오스의 사람들은 낮보다 밤에 더 활기차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야시장이다. 야시장은 어스름이 거리에 깔릴 무렵 시사방봉 거리에 열린다. 낮 동안 산속에 있던 소수민족들은 여행자들에게 팔 기념품을 보따리에 싸서 하나둘 거리로 나온다. 10분 전만 해도 툭툭과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지나다니던 거리가 어느 새 기념품을 팔기 위해 좌판을 벌여 놓은 상인들로 가득 찬다. 라오스 전통 문양을 새겨 놓은 옷감과 지갑, 종이로 만든 실내등, 촉감 좋은 실크 스카프, 맥주 상표를 그려 넣은 갖가지 색깔의 티셔츠, 나무로 만든 코끼리 조각, 직접 재배한 차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침시장도 가 볼 만하다. 탁밧 행렬을 본 후 가 보는 것이 좋다. 강변의 포티사랏 거리와 푸와오 거리의 교차점에 있다. 시장은 우리네 재래시장의 모습과 비슷하다. 좌판을 깔고 앉은 사람들이 인근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육류, 생필품들을 판다. 우체국 북쪽의 메콩강변에도 열대과일상과 야채가게가 몰려 있다. ●벌써 그리운, 조용한 땅 라오스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식민지 시대에 한 프랑스인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베트남 사람들은 벼를 심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보며, 라오스 사람들은 벼 익는 소리를 듣는다.” 라오스는 베트남과 같은 어수선함을 떠나 조용히 관조하며 살기에 적당한 땅이라는 뜻일 것이다. 루앙프라방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새벽의 탁밧 행렬을 지켜보았고, 폭포로 가 다이빙을 했고 거리를 어슬렁거렸고 리조트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잠이 들곤 했다. 저녁이면 리조트 발코니에 앉아 얼음이 든 맥주잔을 달그락거리며 노을 지는 강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모르겠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놀았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내가 그렇게 시간을 낭비한다고 해도 비난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게다가 난 며칠 정도는 신나게 놀 수 있는 자격은 갖추고 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는 날, 루앙프라방 공항을 이륙해 베트남 하노이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시 라오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라오스를 일곱 번이나 찾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라오스에 자주 가냐고 묻는 이들을 위해 ‘라오스에 도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답을 찾아 두었다. 하루키 영감은 이렇게 말했다. “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는 아직 대답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 라오스까지 가려는 것이니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여행수첩 베트남 하노이 경유, 11월부터 이듬해 4월 여행하기 좋아 베트남항공을 이용,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 루앙프라방으로 들어간다. 인천~하노이는 매일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인천~하노이 4시간 30분, 하노이~루앙프라방 1시간 20분.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통화는 킵(kip)을 사용한다. 태국 바트와 미국 달러도 일상 통화처럼 사용한다. 메인 스트리트와 루앙프라방 전역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호텔, 리조트가 많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10~30 달러. 리조트는 90~150 달러 수준이다. 라오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건기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를 가장 여행하기 좋은 때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찾기 때문에 그만큼 숙박료와 물가가 올라간다. 오토바이를 렌트해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많다. 8만킵(1만 2000원) 정도면 하루 종일 대여할 수 있다. 기름값은 1만킵(1500원) 정도가 든다.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 등 인근 도시로 나가는 미니 버스가 많아 이동에 별 불편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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