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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名士의 책읽기] 김진선 前2군사령관 ‘호치민 평전’

    대한매일은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신간을 소개하는 ‘명사의 책읽기’ 코너를 신설했습니다.첫회는 호치민연구가로이름높은 김진선 전 2군사령관의 ‘호치민 평전’(찰스 펜지음,김기태 옮김,자인 펴냄)입니다. 호치민은 불란서 영국 중국 옛소련 홍콩 태국과 베트남 등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열 번이나 바꾸어야 했다.홍콩과 중국에서 감옥 생활도 보내는 등 베트남 독립을 위한 그의 생애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약소국의 지도자였기에 불란서와 미국에게 네번이나 피가끓어오르는 배신을 당한 후 내린 결론은 무력으로 이기는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베트남인들은 맨주먹뿐이었다. 이때 그들은 호치민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쳤다.20세기 최강인 프랑스와 미국에게 차례로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지금의 베트남을 세우게 한 원동력은 호치민의 정의롭고순수한 정신과 베트남인들의 단결이었다. 지도자로서 그의 일생이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겪은 고난의 길이 단 한줌이라도 자신의 영광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아니고 오직 베트남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를 좋아하고 정감적이어서 흔히 세상에서 보는 정치인들처럼 혀끝이나 머리로 말하지 않았고 가슴으로 얘기한 사람이었다. 그가 공산주의 세력과 제휴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어쩔 수 없었다.이 책은 그가 오직 베트남인의 자유와독립에 생애를 건 순수한 민족주의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유서에서 ”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나를 위하여 동상을 세우지 말라.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베트남의 남부 중부북부에 나누어 뿌려라.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와독립뿐이다.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싸우라”고 했다. 또 주석궁이 호화스럽다하여 수리공의 집에서 살았으며 각료회의도 누각에서 했다. 그는 베트남 민족과 결혼하였다하여 79세의 총각으로 이세상에 자식도 재산도 보석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은 정부에서 종용하지 않지만 그의시신이라도 보기 위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승리하고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찾은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베트남은 미국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대항하여100%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으며 호치민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의 정신적 유산이 있는 나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에도 자기의 욕심과 개인의 명예를 100% 완전히 다 버린 호치민과 같은 순수한 지도자가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백성이 그 얼굴만 보아도 사랑을 느끼고 진실을 볼 수 있으며 일할 기분을 느끼게 되는 그런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빈털터리로 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호치민과 같은 지도자를 보고싶다. 작은 체구이지만 순수성이 태산도 머리를 숙이게 한 호치민,그의 지도자 상에 경의를 표한다.
  • 윤주영 전 문공장관 베트남서 사진전시회

    [하노이 연합] 칠순의 윤주영(尹胄榮·73) 전 문공장관이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틈틈이 모아온 베트남 사진전시회를 갖는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5공화국 시절 문공장관까지 지낸 윤 전장관은 10~17일까지 하노이의 항바이전시장에서 ‘윤주영이 본 베트남의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베트남에서의 첫 사진전시회를 개최한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전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윤 전장관은 이번 전시회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다음해인 93년부터 4차례 베트남을 방문해 찍은 사진 중 여자들과 관련된 사진만 골라 94점을 베트남 애호가들에게 소개한다. “전쟁의 아픔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베트남 여인들의 고뇌와 생활상을 조명함으로써 베트남인들에게는 격려를,한국인들에게는 교훈을 주기 위해 전시회를 갖는다”는 윤 전장관은 이번 전시회에 고엽제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과 베트남의 신앙,여인들의 근면 협동,여인들의 문화축제,발랄한 아오자이의 모습 등을 주로 내놓았다.
  • 외국인 산업연수생 상대 금품 강탈 ‘베트남 조폭’ 첫 적발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강탈해온 베트남인들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적용되는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북부경찰서는 20일 ‘하노이파’를 결성,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돈을 빼앗은 베트남인 웬공리씨(25) 등 5명을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하고 일당 4명을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새벽 1시30분쯤 서울 도봉구 창2동 D빌라 지하 단칸방에 복면을 쓰고 들어가 영 만드씨(28) 등 베트남인 산업연수생 3명을 흉기로 찌르고 300만원과 휴대전화 5대를 빼앗는 등 지난 한달동안 6차례에 걸쳐 3,00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96∼99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뒤 산업현장을 이탈한 불법체류자들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알고 지내는사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난달초 하노이파를 결성,‘빼앗은 금품은 공동분배하고 검거되더라도 절대 밀고하지 않는다’는 등의 행동강령까지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요리 비화]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마디에 ‘뿌듯’

    9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세안 정상회담이 개최됐을 때,하노이대우호텔에 머물렀던 김대중 대통령 일행의 조찬을 만들었던 뿌듯한 기억이 새롭다. 굵직굵진한 연회가 마무리되고 한국에서 온 요리사들이 저녁을 굶는 바람에 얼큰한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해졌다. 한 한국청년이 경영하는 하노이 시내 한식집을 찾아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검은 양복차림의 건장한 한국청년들이 들이닥쳤다.“백운하씨가 누구요?” “접니다”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죄송합니다만,내일 아침 대통령께서 드실식사를 준비해야겠소.” 택시를 타고 급히 호텔에 돌아와보니 한식 식기류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서양식기에다 담을 수도 없고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더군다나대통령 입맛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인데…. 다시 한식당에 돌아가 그릇이며 수저 등을 들고 왔다.조찬 준비를식당이 아닌 연회장 복도에서 해야 했다.음식을 최대한 따뜻하게 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전날 퇴근도 하지않은 베트남인 조리사 3명이 거들었다. 인원은16명.조식은 간단하면서도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고 소화도 잘되는 음식이어야 했다.미역국에 조기구이,서너가지 밑반찬.서민의 식기에 어울리는,아무런 기교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었다. 조찬이 들어간후 복도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김대통령의 그릇은 물론,수행원들의 그릇 모두 싹싹 비워져있었다.서울의 맛이 무척 그리웠던 덕이었다.허름한 한국식당에서 급조한 식기로 고생 끝에 만든 음식들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김대통령께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셨고 “참 맛있게 잘먹었습니다.고생하셨어요”라는 말까지 남기셨다.다른 수행원들도 흡족한 표정으로 일일이 손을 내밀었다. 요리사의 보람이란 것을 새삼 느꼈고 이때의 자긍심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기만 하다. 힐튼호텔 조리부 백운하씨
  • 美·베트남 ‘과거정리’ 돌입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6일 2,000명의 대규모 대표단과 함께 하노이에 도착,베트남전 종전 후 미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서방에 대한 문호개방을 확대하고 경제개혁을 추구해온 베트남으로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은 베트남에 대한 외국투자 유치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동남아시아에서 급격히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큰 의미를 갖는다. 베트남은 그러나 거대한 미국 경제력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으면서도 과거 적대국이었다는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아직도 공산당 독재가 지속되고 있다는 체제 문제도 겹쳐 있다.클린턴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거론할 가장 중요한 현안은 경제협력과 함께 베트남의 인권 문제다.그러나 베트남은 베트남전쟁중 사망한 300만명의 베트남인들에 대한 보상 문제로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격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유세진기자
  • [기고] 한국옷 베트남 특별전을 열고

    “유물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 전시회 준비를 위해 미리 가 있던 직원은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를 전화에 실어왔다.비행기의 수송 용량이 작아 파우치 편으로 보낸 유물이 방콕공항에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그동안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는데 또 이런 예기치 않던 일이 생기다니.개막식까지는 불과 3일,그리고 주말.목이 타들어 가는 긴장감 속에서 또 어렵게 한 고비를 넘겼다. 종전 25주년,정도(定都) 990주년을 맞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복식문화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아름다운 한국 옷의 선과 미소’전은 계획 단계부터 이렇게 여러 사람의 애간장을 태웠다.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에 맞게 모든 전시내용을 사전 검열받아야 했다.한 걸음 나갈 때마다 어려움을 겪게 하는 현지 공무원들의 태도는 “나도 저런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의 시간도 갖게 했다. 그러나 하얗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뒤 17일 열린 개막식장.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현지 언론들의 뜨거운 취재 열기,그리고 눈부시게 화사한 한복을 보며 찬사를 보내는 베트남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서 그동안의 조바심과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말이 쉬워‘문화교류전’이지 서로의 가슴을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일인가.전쟁으로 응어리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아직 한번도‘한국’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베트남인들에게 우리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한복에 실어 보냈고,그들의 화답은 기대 이상으로 순수하고 뜨거웠다.월남 파병 이후 30여년 동안의 기나긴 악연의고리가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 같았다. 문화는 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조금씩 스며들어 흠뻑 취하는 정취가있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국제간 문화교류는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그러나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베트남 한복 전시회는 시작에 불과하다.이제는 우리에게 있어특별한 의미와 인연을 가진 나라들부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작은 출발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사슴의 눈망울을 닮은 베트남 사람들과또 다른 의미 있는 만남을 기대한다. 宋 秀 根 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장
  • [ASEM 참가국 주재 大使 기고](6)白樂煥 베트남주재 대사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베트남은 놀라울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라는말은 베트남 고위 인사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하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산업화,현대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혁·개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의 개혁·개방은 19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본격화되었고,이후 외국인 투자의 적극적인 유치와 함께 규제 완화 등 경제 관련 법령을 정비해 왔다. 또 베트남은‘세계화’를 통해 국제사회 편입 노력을 최우선 국가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는 1992년,미국과는 1995년에 국교를 수립하는 등 미수교국과 국교를 수립했고,특히 1995년에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아태경제협의체(APEC) 등 국제기구에 참가하게 됐다. 따라서 베트남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한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관계 증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자국의 국가 발전 전략에 부합된다고 보고 있다.첫번째는 정치·안보적 측면이다.베트남의 역사는외세와의 투쟁으로 일관된 까닭에 베트남인들에게는 외세로부터의 자주성 확보가 가장 중요한 국가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베트남인들은 장기적으로 주변 지역에서 패권국가의등장을 막고,자국 및 지역의 독립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일종의세력 균형 장치로 ASEAN 외에도 아시아·유럽 정례 협의체인 ASEM에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안보적 중요성이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반면 두번째는실질적 이익,즉 경제적 측면이다.베트남은‘도이머이’이래 경제·사회 각 부문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나,현대화·산업화가정상 궤도에 올라서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베트남은 ASEM을 통해 유럽 국가들의 선진 경험과 기술을 배울 수있는 유용한 기회를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자국의 산업화를 위한 보다 많은 유럽 국가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자국이 가장 낙후된 것으로 평가하는 정보통신 분야에서의협력과 선진 기술 취득에 효과적인 역내 국가간 교육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취하고 있는‘트랜스 유라시아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사업’과 역내 국가간‘정보 격차 해소’등에 성원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베트남은 새 밀레니엄시대 최초로 열리는 제3차 ASEM회의가 최근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특히 베트남은 ASEAN 의장국 자격으로 ASEM에 참여하고,중국과 함께 ASEM에서 아시아측 조정국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베트남이 국제 사회로의 편입 노력을 개시한 지는 일천하나 경제 발전과 국제 사회 편입을 국가정책의 지상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향후 베트남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같은 다자무대를 통한 베트남의 국제 사회 편입 가속화는 8년 전수교 이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베트남 양국 관계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白樂煥 베트남주재 대사
  • 베트남전 민간인 사살 소대장에 무기刑 선고

    대법원이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민간인을 사살한 한국군 소대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이 31년 만에 밝혀졌다. 당사자는 당시 사건이 조작됐다며 대한변협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14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69년 베트남에 파병된 육군 ○○사단 ○○연대 화기소대장 김모씨(59·목사)에 대해 살인 및 명령위반죄 등을적용,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가 68년 7월 소대원들과 함께 매복 중 주변을 지나던 베트남인 7명을체포,그중 5명을 사살했다는 군 검찰의 기소내용을 인정한 것이다. 김씨는 1심인 보통군법회의(군사법원 전신)에서 사형을,고등군법회의에서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83년까지 15년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나 88년 사면 복권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
  • 金宇中씨 사법처리 수순인가

    대우가 지난 20년간 영국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75억달러 이상을 불법 관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 결과에 따라 김우중(金宇中)전 회장에게 경영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사안에 따라 강도 높은 사법처리도 예상된다. 외환위기의 원인제공자로 몰렸던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난해 8월 국민적 관심사였으나 아직 검찰이나 금융당국은뚜렷한 입장표명이 없다. 그러나 정식 회계장부에 포함되지 않은 자금의 조성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수십억달러를 해외 비밀계좌를 통해 운용해온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사법처리에 미온적이던 검찰과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1일 “대우그룹의 자금조달과 분배역할을 맡았던 ㈜대우가 위장거래를 통해 국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수출대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는 등 문제가 있어 회계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6월말까지 조사를 마치고 7월초 김 전 회장 등 당시 핵심 경영진들에 대한 처리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다.김 전 회장은 외환관리법위반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법 위반혐의로 고발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날 김 전 회장과의 전화통화나 측근과의 접촉여부에 대해 “밝힐 단계가 아니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현지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하고 베트남에 잠시 머문 뒤 8개월째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요양소에서 지병인 심근경색 치료를 받고 있다. 부인 정희자(鄭禧子)씨는 미국에 체류하면서 가끔 독일에 들러 김 전 회장을 간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김 전 회장의 식사는 대우가 베트남에 세운 호텔의 베트남인 요리사가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생활지원금 기탁 위안부출신 문명금할머니

    “고국에서 다시 살게 된 것만으로 모든 한을 풀었어요.저보다 더 고생하는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해방 후 중국에 머물다 지난해 9월 영구 귀국한 일본군 위안부 문명금(文明金·83) 할머니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명륜동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공동대표 李海東)를 찾아 “베트남 전쟁 피해자를 위해 써달라”며 지난달 17일 정부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 등에서 받은 생활지원금 4,300만원 전액을 기탁했다. 문 할머니가 기증을 결심한 것은 오랜 전쟁의 상흔을 겪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고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18살이던 지난 35년 봄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일본 사람들의 말에 속아 정신대에 끌려간 뒤 중국 흑룡강성 근처 부대에서 해방 때까지 하루에 20∼30명이나 되는 일본군인들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했던 문할머니는 평생을 악몽과 싸워야 했다. 해방 후 흑룡강성에서 생활해 오다 지난해 64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문할머니는 현재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 10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金宇中 前대우회장 獨 시골농장서 칩거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00㎞쯤떨어진 시골의 한 농장에서 체류중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대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농장 일부를 빌려 수행비서,베트남인 요리사등 2명과 함께 생활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은 외부 인사들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면서 “사돈인 김준성(金埈成) 이수화학 회장 등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도 “일부에서 김 회장의 체류지가 휴양지로 알려졌으나 정확히표현하면 한적한 마을”이라고 말했다.이어 “김 전 회장이 유럽 각지를 다니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최근 증권가에 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면서 “김 회장은 독서로 소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러 억류선원 153명 12일 풀려나 귀국

    러시아 극동지역의 페트로파블로프스키항에 억류중인 한국 어선 3척의 선원286명 중 153명이 오는 12일 오전 블라디보스토크공사 소속 전세 여객기 편으로 귀국한다. 7일 해양수산부와 어선 소유주인 신라교역에 따르면 해양부 당국자와 신라교역 고문변호사가 현지를 방문,교섭한 결과 선박 운항에 필요한 필수인원만남기고 153명의 선원을 12일 전세기 편으로 귀국시키기로 합의했다. 억류된 배는 트롤어선인 한진·신안·한일호 3척으로 한국인 132명과 인도네시아인 127명,베트남인 27명 등 선원 286명이 타고 있다. 해양부측은 러시아 검사가 법원의 1차판결에 불복,항소해 늦어지고 있으나오는 10일 열릴 2차공판 결과에 따라 담보금을 내면 어선도 석방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쿼터 위반이 경제수역 내에서 일어났고 회사측이 쿼터 위반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유엔해양법과 한·러어업협정에 따라 처리돼야 하나 현지검사가 러시아 국내법 적용을 주장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억류된 어선들은 지난 3월16일 오호츠크해 러시아경제수역 내에서 명태잡이를 하다 어획량을 초과한 혐의로 억류됐다. 강선임기자 sunnyk@
  • [기고] 과거 아픔 딛고 미래향한 협력을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TV연속극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학생들은 한국 탤런트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한국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흉내내고,대학 한국학과는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다.젊은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제일 좋아하고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사회지도층은 한국제 TV로 우리 연속극을 보면서 농업사회가 어떻게 첨단공업사회로 변모해 가는지,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전통문화는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배운다. 한국 기업들은 30억달러 거액을 투자해 베트남의 공업화를 앞장서 지원하고있는데 모두가 베트남 근로자들의 우수성에 탄복한다. 여행용 가방 제조업체는 근로자들이 워낙 우수하고 성실해 불량품 발생률이 0.01% 이하(세계기록)다.베트남은 조선강국으로 성장할 잠재력도 매우 커 우리 업체가 지원하고있다. 우리는 수교이후 매년 12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내 개인소득이 350달러수준인 국가에서 기대이상으로 큰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면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엄청난 대가를 치뤘다고 고백하며,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전쟁을 피해 평화적으로통일해야 한다고 우정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은 강대국에 시달리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온 역사적 공통점에 서로 친근감을 느낀다.그들은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때 남부월남을 지원했던 우리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지 못하므로,아픔은모두 덮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의와 협력을 다져나가자고 제의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과거 전쟁 상대국인 미국,프랑스,일본,중국,캄보디아에 대해서도 똑같은 입장이다.베트남인들의 전향적인 생각과 ‘도이머이(개혁)정책’덕분에 10년만에 국민 절반이 굶주리던 상황에서 베트남은 세계 제2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이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고 굶주림과 빈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성심껏 돕고 있다.많은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10만명근로자들을 국제수준으로 훈련시켜 베트남 수출산업을 일으켰다.한국 정부도EDCF(대외경제협력기금)자금 1억2,000만달러를 투입해 발전소,상수도,도로,백신공장 건설을 지원했다. 베트남 국민 80%는 농촌에 살고있고,그중 15%는 극빈층이다.그래서 베트남정부는 빈곤타파와 도시와 농촌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작년에 농촌개발모델 중 가장 성공적인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입했다.우리 정부는 베트남의낙후된 공업고등학교 세곳에 1,000만달러어치의 첨단학습 기자재를 지원해컴퓨터,자동차,전기,에어컨 기술자를 양성하도록 도왔다.의료기기 제공,무의촌지역 병원건설같은 인도적 지원사업을 벌이면서,첨단과학기술 분야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의 퀴년,냐짱(나트랑)지역에서는 전문학교지원(250만달러),중학교 건립,소규모 병원건설,태권도 체육관 건립을 지원했다.현대가 조선소를 건립한 냐쨩지역은 중공업 중심지로 부상해 경제 붐을일으키고 있다.중부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제일 컸고,가장 빈곤한 지역인데다홍수피해마저 잦은 지역이므로 교육,직업훈련,의료분야 지원을 계속한다는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징기스칸 시절 막강 몽골대군을 물리친유일한 민족인 베트남인들은 오늘도 놀라운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유달리 자존심과 긍지가 강하다.그들은 최근 우리 지도자와 정부,기업들이 베트남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지원해주는데 대해 감명을 받는다.우리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경제협력을 계속하고 기업도 투자활동을 하는데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기업에서 베트남 근로자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도와주고 직장에서는 한국인이나 베트남인 가리지 않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경조사 때는 모두가 기쁨과 슬픔을 나눠주는데 대해 고마워한다.공장 인근지역의불우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쳐주는 것을 보고나서 과거의 의심을 모두떨쳐버리고 한국인을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은 진정 한국과 베트남이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그들은 소득이 낮다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제발 보이지 말아달라고 청한다.요즘 서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외국근로자돕기운동’은우리가 앞으로 국내외에서 계속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조원일 외교안보硏 연구위원 前베트남대사.
  • “미래로”하노이·호치민 축제물결

    [호치민시티·워싱턴 외신종합] 베트남종전과 통일 25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30일 옛 사이공인 호치민시티와 수도 하노이 등지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새벽 6시 30분 월남 시절 대통령궁이었던 독립궁에서 치러진 기념식으로막을 올린 기념행사는 각계각층의 퍼레이드와 각종 문화행사 등으로 이어졌다.기념식이 펼쳐진 독립궁에는 전면에 국가지도자인 전 호치민 대통령의 초상이 드리워져있고 양편에 베트남기와 공산당기가 걸렸다.기념식과 퍼레이드외에도 시내 각 가정과 거리마다 베트남기를 내걸고 각종 애드벌룬과 플래카드를 선보여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연출. ■수도 하노이에서 5년마다 치러오던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는 베트남정부의실용주의 노선이 반영된듯 이번에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치러지지 않았다.대신 29일 앞당겨 레카피유 공산당서기장과 천득렁 대통령 등 정부요인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국회의사당에서 간단한 기념행사를 가졌다.혁명가 열창과 함께 치러진 기념식에서 판반 카이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종전 25년만에 정치 외교경제등 모든 면에서 안정을 돠찾았다”고 선언하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가자고 촉구했다.카이 총리는 기조연설을 통해 ‘베트남전 책임론’을제기.카이총리는 “종전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베트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는 참전국들의 책임이 크다”고 밝히고 “참전국들은 책임있는 태도로베트남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전에서는 베트남군 300만명,미군 5만8,000명,한국군 5,000명,호주군500명이 죽은 것으로 돼 있고 미국의 고엽제 살포로 400만명의 피해자가 생긴 것으로 베트남은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용사들이 베트남종전 2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위령비를 세운다.대한월남참전복지전우회(이사장 김문구)는 5월 2일 베트남중부 쾅남성 디엔증사 하미마을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베트남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 기공식을 갖기로 했다.하미마을은 베트남전 중 청룡부대 작전지역으로 전투가 가장 치열해 주민들의 피해 또 한 컸던 곳. ■미국 정부는 25년 전 베트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등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된 참전 용사들에 대한 보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공화당의 유력상원의원인 짐 제퍼즈가 28일 촉구.제퍼즈 의원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회견을갖고 “지금이야말로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군 복무시 생긴 건강상의 문제에 대한 보상 문제를 다룰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
  • 베트남 “고엽제 후유증 심각”

    [하노이 연합] 베트남 정부가 처음으로 베트남전 참전국들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음을 시사해 발언의 진의가 주목되고 있다. 판 투이 탱 베트남 외무부 대변인은 28일 외국언론사들로부터 ‘베트남이공식적으로 미국에 전쟁보상을 요청할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사실이라면 언제 요청을 할 것이며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직접적인답변은 회피한 채 “미국과 관련국들은 전쟁책임이 있다”고 강조함으로써보상요구 가능성을 내비쳤다. 탱 대변인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전쟁이 끝난지 25년이 됐지만 베트남인들은 아직도 심각한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특히 고엽제 살포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상)현황

    호치민시티(옛 사이공)의 중앙광장 한 편에 혁명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이 초상화 밑에는 ‘공산주의의 위대한 승리는 1,000년을 지속할 것’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그의 초상화가 바라보는 광장 건너편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패션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입간판이 서있었다. 지금은 베트남 당국이 통일 25주년 기념을 위해 철거했지만 크로포드는 호치민과 나란히 서서 미국산 고급시계를 사라고 베트남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호치민의 초상화와 크로포드의 입간판은 베트남전(베트남인들은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이 끝나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이 통일된지 25주년을 맞는베트남의 오늘을 잘 보여준다.미국은 베트남의 적이었고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베트남 지도자들에게는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적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이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 7,800만 가운데 절반 이상이 75년 통일 이후 태어났다.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베트남전쟁을 아는 이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역사의일부분일 뿐이다.30일의 통일기념일도 그저 휴일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이들에겐 많은 돈을 벌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전히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베트남 지도층과 이같은 젊은이들의 의식차이는 오늘날 베트남이 안고 있는 고민을 대변해준다.전쟁은 베트남에 통일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0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국민의 80%가 시골에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깨끗한 식수와 전기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통일 후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안간힘을 썼던 베트남은 결국 86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이모이’(혁신) 정책을 채택했다.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문을 연 것이다.95년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재개했다. 도이모이 정책은 외국인 투자를 불러오는 등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95년 9.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지난해 4.8%로 뚝 떨어졌고 96년 최고 9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국인 투자도지난해에는 14억달러로 격감했다.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베트남의 개혁이 외국으로부터 신뢰를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베트남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마무리짓고도 최종 단계에서 조인을 연기했다.무역협정이 조인됐다면 수출도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공산당의 사회 장악이 약화되고 국가지배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지도부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외국 투자가들로선 베트남의 개혁정책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와 자주독립노선을 유지하면서 경제 개방에 의한 경제개발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와 경제 개방이 양립하기 힘들다는데 있다.개혁을 택할 것이냐 보수를 택할 것이냐 베트남은 지금 생존을 위한 심각한 교차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전쟁은 실제로 25년전 끝났다.그러나 베트남에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베트남 지도자들은 경제를 통한 미국 등 서방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고생각하고 있다.이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그러나 전쟁 후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들과 다르다.베트남이 잘 살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로 진입해야 한다.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각이다.젊은이들은미래지향적이다. 과거지향의 지도층과 미래지향의 젊은이들간에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가치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남쪽은 외국인 투자도 많고 그런대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북쪽은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베트남 정부는 북쪽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쪽에의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부지역을 살리기 위해 남부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통일이 됐다고 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과북은 대립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적인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면한 국민성,높은 교육열 등 베트남의 가능성만은 무한하다는데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들은 베트남만큼 잠재적 가능성과 현실과의 괴리가 큰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세진기자 yujin@. *100만명 아직도 고엽제 후유증.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된 지 25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통일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베트남인들의 희생은 철저히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다.남북 베트남 출신간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골은 여전히 깊다.10년간 지속된 민족전쟁에 따른 빈곤문제,고엽제 문제와 실종자 및 난민(보트피플)문제,미군과 최근 불거진 한국군의 주민학살 문제 등 당면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300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이사망했다. 이중 200만명이 민간인이다.북베트남 군인중 30만명이 실종됐고남베트남 군인의 실종자수는 아예 잡혀 있지도 않다.100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한편 미군은 5만8,000명이 전사했고 2,000여명이 실종됐다.한국군은 4,960명이 전사했다. □민족갈등 종전후 100만명 이상이 베트남을빠져나갔다.40만명 가량은 '재교육‘ 명목 아래 수용소에 보내졌고 140만명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남부의 ‘신경제구역’에 강제이주당한 뒤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똑같은 전쟁 참전군인 유족이지만 남베트남 군인의 유족들은 얼마 안되는 연금마저 받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베트남의 한 언론인은 “1975년에 지리적으로 남북이 통일됐고 76년에 법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웠지만 정서적으로 완전히 통일이 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그만큼 남북간 감정의골이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직도 당서기장,총리,대통령 등 3역을 뽑을 때 묵시적으로 지역 안배를 하고 있고 경제특구를 설정할 때도 마찬가지다.이같은 지역갈등은 베트남의 완전 개방을 가로막는 요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고엽제 문제 미군이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정글 속에 설치된 근거지를 찾아내기 위해 62∼71년까지 정글에 쏟아부은 고엽제는 약 4,200만ℓ. 베트남 정부는 현재 7,800만 인구중 100만명이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고엽제는 암,면역결핍증,기형아 출산 등의 주원인으로 알려져왔으며 특히 최근 미 공군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고엽제는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미국이 지원을약속했고 1월부터 베트남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매달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보상금 규모가 턱없이 미미해 이들은 적절한 치료는 차치하고끼니를 때우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난민(보트피플)문제 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찾아 무작정 배에 몸을 실어 망망대해로 떠났던 이들에게 세계는 동정적이었다.상당수가 홍콩,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필리핀,한국 등지의 난민촌을 거쳐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 재정착했다.그러나 80∼90년대 경제난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세계의 시선도 냉정해졌다.이들은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 본국으로 이송됐다.되돌아온 이들을 끌어안고 경제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과제다. □양민학살 문제 미군은 68년 3월16일 무방비 상태의 미라이 주민 수백명을학살했다.이 사건은 미군의 수치와 은폐의 동의어가 됐고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최근 들어서는 한국군의 주민학살 논쟁까지 가세했다.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문제로 접어두고 경제개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언제든 보상문제는 당사국간에 현안으로떠오를 수 있다. □대미관계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3월 베트남을 방문,고엽제 피해자에대한 지원을 약속했다.실종자 문제는 양국이 합동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조사중이다.아직 양국간 전쟁과 관련 어떠한 보상협상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본협상이 이뤄질 경우 어떻게 결론날지 미지수다. 김균미기자 kmkim@
  • 日극우세력 ‘조직적 이지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 도지사의 ‘3국인’ 발언을 비판하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식인들이 강도높은 집단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을 맹렬히 비판하며 지난 12일 지사직 사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재일동포 신숙옥(辛淑玉·41·여)씨 사무실에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로부터 협박성 전화와 팩스,이메일이 잇따르고 있다. 신씨측은 “12일 이후 지금까지 20여건의 전화 등을 통해 ‘한국이 베트남전쟁때 베트남인을 학살하고 사죄한 적 있나’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협박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씨측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비슷한 협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말을 종합해보면 조직적인 행위일 수 있다”고 말해 일본 내 극우 세력의 정치적 집단괴롭힘(이지메)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신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인 작가 미야사키 마나부(宮崎學)씨의홈페이지에도 익명의 협박 메일이 상당수 들어오고 있다.미야사키씨는 “상당히 조직화된 움직임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도쿄도청 광장에서 열린 이시하라 발언 항의 집회에 참가했던 도쿄의 한 여성 시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집단 성폭행하겠다”는 내용을 포함,무려 300여건의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홈페이지에 이시하라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던 그녀는 악의적인 메시지가 잇따르자 게시판을 폐쇄했다. 도쿄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사에는 이시하라 발언 직후 항의전화가 빗발쳤으나 최근 들어 이시하라 발언을 지지하는 전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실정이다. 신씨 등은 19일 문서를 통해 ‘유감’의 뜻을 표명한 이시하라 지사의 사과가 미흡하다고 보고 21일 오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응책을 발표할 계획이다.재일동포 작가 양석일(梁石日)씨는 “유감이라는 표현은진정에서 우러난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문서에서 “재일 한국·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 지극히 유감”이라고 해명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인물 포커스] 한국인으로 첫 베트남훈장 받은 조원일 대사

    [하노이 연합]조원일(趙源一) 주베트남대사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0일오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여하는 우의훈장을 전수했다. 92년 12월의 한·베트남 수교이래 8년만이며 외국인으로서는 스웨덴과 쿠바대사에 이어 3번째다. 베트남 외교부에서 훈장을 받은 조대사는 “베트남과 한국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것”이라고 훈장의 의미를 평가했다.다음은 조대사와의 일문일답. ◆소감은. 25년전만해도 적대관계였던 베트남으로부터 훈장을 받으니 한국민 전체에 수여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다. ◆훈장을 받게 된 이유라면. 지난해 베트남 중부지방 물난리때 외국대사로 가장 먼저 달려가는 등 베트남이 어려울 때마다 꾸준히 도왔다.97년 부임초기 우리 기업들과 베트남 근로자간 노사분규가 잦을때 세미나 등으로 수습해준 데도 고마워하는것 같다. ◆양국간 공감대를 어떻게 마련했나. 특수관계를 감안,정치·경제보다 문화와 인적교류에 신경썼다.코베트(KOVIET) 등 민간단체의 인적 물적 지원,문화예술단 교류,한국드라마 상영,언론기관간 상호 홍보 등이다. ◆베트남에서 못다 한 일은. 미수금 해결 등 사소한 문제며 후회없이 3년 임기를 보냈다.베트남이 보다과감한 개방정책으로 선회,한국과 더욱 활발히 교류하기를 바란다. ◆베트남 한국인들에게 당부할 말은. 베트남인들은 무작정한 물적지원보다 인간적 상호이해를 원하고 있다.계산기만 두드리지 말고 베트남인들과 인간적 관계를 먼저 맺으라.
  • 베트남 외환 자유화

    [하노이 연합] 베트남은 외국인과 재외 베트남인들의 국내송금을 촉진하기위해 외환취급 허가제를 없애는 등 오는 10일부터 외환취급을 자유화하기로 했다. 최근 줄어들고 있는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취해진 이 조치는 특히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들과 미국 등에서 거주하는 베트남 교포들의 국내송금을 늘리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조치에서 베트남 중앙은행은지금까지 허가증을 가진 금융기관에만 허용했던 외환취급을 모든 금융기관에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외화를 사고 팔 때 받던 수수료도 없애기로 했다. 또 중앙은행은 외국으로부터 송금돼 온 돈을 받은 사람은 그동안 상당액의수입세를 물었으나 이것 또한 폐지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도 비용을 국내로부터송금받는데 다소 유리하게 됐다.
  • [지구촌의 밀레니엄 공관장 현지 리포트] 베트남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역사적 행로를 걸어온 나라를 찾으라면 단연코 베트남을 꼽게 된다. 금세기에 들어서도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의 아픔을 똑같이 겪었다.베트남은 독립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외세와 투쟁해 왔다.그리고 마침내 독립과 통일을 성취했다.피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의 어두운 과거를 역사속에 남기고 새 천년을 맞는 베트남인들의 감회는 그래서 남다를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는 그러나 새천년을 맞았다고 해서 특별한 조직을 만들거나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수립한 내실있는 계획을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1986년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도입했던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의 성과에 힘입어 지금도 농촌지역 개발과 세계시장 진출에초점을 두고 ‘제2의 도이모이’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이모이 정책이 도입될 무렵인 80년대 후반만해도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연간5백만t이 넘는 쌀을 수출하는 세계 제2위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현재 베트남은 주요 투자국인 아시아 국가들이 97년 경제위기를 당한 이후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연평균 9%가 넘는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경제성장 엔진을 가속화하면서 도시와 농촌간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농촌지역 개발 10개년 계획을 입안중이다.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효율적인 농촌개발 모델로 도입하기 위해 정부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단이 지난해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새마을 운동이 자신들의 농촌개발 모델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때문이다. 농촌개발을 기반으로 공업화와 정보화를 달성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강한 국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베트남과 미국의 무역협정 체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점도 획기적인 진전의 하나다.아직 ‘베트남전의 후유증’이 남아있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저항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지만 협정체결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미국과의무역협정 체결은 국가적인목표인 공업화와 현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듯하다. 현재 약 8만여명의 베트남 근로자가 우리가 투자한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베트남과 미국간 무역협정이 발효되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분야에 투자한우리 기업들이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기업의 진출 초기엔 일부 한국인 관리자들이 베트남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고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아 외국인 투자기업 중 노사분규 발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했다.하지만 지난 몇년간 우리기업들의 노력으로 상호협력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우리의 TV드라마 수출도 활발해 현재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드라마가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다. 문화적으로 우리와 너무나 가까운 베트남과 미래 지향적인 굳건한 협력의틀을 만들어 가는 진지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조원일 駐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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