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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세계적선율 봄맞이 음악향연”/「오스트리아 국립방송교향악단」내한

    ◎27·28일 라흐마니노프·슈베르트곡 등 연주/슈타인베르크 지휘­박인혜·쉬르메르 협연 오스트리아 국립방송 교향악단이 서울신문과 한국뮤지카 주최로 오는 27일 하오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과 28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비엔나 필하모니와 함께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금세기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이 교향악단은 라디오 오케스트라로 창설됐다가 지난 69년 새롭게 탈바꿈한 단체.재탄생 이후 각 파트마다 탁월한 능력을 겸비한 단원들을 확보했으며 69년의 초대 지휘자 밀란 호바트는 75년까지 재임하면서 단원들의 기량을 갈고 닦아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도록 이끌었다. 이후 어네스트 보어,브루노 메더나,볼프강 자발리시,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로더 자그로섹등 국제적 명성과 역량을 갖춘 저명한 지휘자들의 연마에 의해 고전주의·낭만주의등 폭넓은 레퍼터리로 활발한 해외공연을 펼치며 오스트리아의 최고 문화사절단이 돼 왔다. 유럽전역뿐 아니라 미국·일본등의 순회공연을 통해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큰 찬사를 받아왔으며 레코딩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벨리니·바그너·요한 스트라우스등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음반을 출반했으며 국내에도 80여종에 달하는 이들의 CD가 수입 시판되고 있다. 첫 내한공연에 1백29명의 단원을 이끌고 온 지휘자 핀커스 슈타인베르크(50)는 지난 89년부터 비엔나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맡아왔으며 런던심포니·로열필하모닉·베를린필·뮌헨필하모닉·비엔나심포니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의 초대 지휘로 국제무대에서 격찬을 받은 지휘자. 이 무대에는 또 한국인 피아니스트 박인혜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마르크스 쉬르메르가 협연자로 나선다. 박인혜는 빈 국립음대에서 피아노교육학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이며 최근 수년간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등 세계적 오케스트라들과 협연,기량을 빛내고 있다. 또 쉬르메르는 깊이있는 음악적 이해와 수준높은 표현력,뛰어난 테크닉등으로 유럽 음악계에서 갈채를 받고있는 오스트리아의 신예이다. 이번무대의 레퍼터리 또한 놓치기 아까운 명곡들로 짜여졌다.27일엔 스메타나의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 제2번 「몰다우」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c단조 작품18」,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G장조 작품88」이 연주되고 28일엔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b단조­미완성」과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KV.488」,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c단조 작품67­운명」이 각각 연주된다. 세계적인 음악단체와 음악인들의 내한공연이 어느 해보다 활발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오스트리아 국립방송 교향악단의 내한연주회는 국내 음악팬들의 욕구를 한껏 채워줄 첫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설 연휴 가족과 함께 음악회 나들이를

    ◎세종회관 「우리춤 우리가락」·정동극장 「추억의 클래식」 공연/세종회관­국악무대·세시풍속 재현/정동극장­고전음악에서 가요까지/가족단위 입장객에 20% 할인 혜택 서울의 도심 두 공연장에서 이례적으로 설날 연휴 특별공연을 마련,눈길을 끈다. 세종문화회관이 20일 하오 2시·6시 대강당에서 「설날 큰잔치­우리춤 우리가락」을 펼치고 정동극장이 18∼19일 하오4시 정동극장과 20일 하오 4시와 21일 하오 7시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추억의 클래식,추억의 소리」 공연을 갖는다. 세종문화회관이 우리 국악을 화려하고 대중적으로 꾸며 가족단위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정동극장은 흘러간 가요와 추억의 클래식으로 향수가 한껏 배인 무대를 제공할 계획이어서 두 공연 모두 놓치기 아까운 무대로 기대된다. 게다가 두 공연 모두 가족할인권(「설날 큰잔치…」)과 효도문화티켓(「추억의 클래식…」)등 20%정도의 할인티켓을 발행키로 해 이들 프로그램에 들이는 양 공연장의 정성이 남다르다. 전통성과 대중성을 조화시키는 「설날 큰잔치…」는 연극인 김성녀의 사회로 인간문화재 박병천(북춤),안숙선(판소리)과 풍무악패등 국악인들과 민요가수 김세레나와 김부자가 출연하며 시립국악관현악단과 시립무용단 전단원이 협연한다. 아울러 세종문화회관 석조광장에는 투호놀이 제기차기 널뛰기등 놀이마당을 벌여 세시풍속을 재현하기도 한다. 우리의 50∼60대에게 문화적 위안을 주는 공연찾기가 힘들다는데 주안하여 「추억의 클래식…」을 준비하는 정동극장은 이들이 젊은 시절에 즐겼던 대중가요와 클래식으로 무대를 꾸민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연주에 「하숙생」의 최희준,「밤안개」의 현미,「노란샤쓰 입은 사나이」의 한명숙,「빨간 구두 아가씨」의 남일해가 히트곡들을 협연한다. 또 50∼60대 클래식 팬들이 과거 돌체등 음악다방에서 즐겨 듣던 베토벤의 「운명」,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행진곡」,차이코프스키의 「비창」등을 들려준다. 이와 함께 영화음악「대부」,「하바나길라」등 추억이 새로운 레퍼터리가 설날을 맞아 시간의 퇴적을 쌓아가듯주름살이 더해가는 관객들을 찾아 나선다.
  • 7∼8월 개최 잘츠부르크 음악제/세계 유명 음악인 대거 참여

    ◎붕 거장 피에르 불레즈·게오르그 솔티 등/50여일간 오페라 9개·연주회 80회 공연 매년 7월 하순에서 8월에 걸쳐 열리는 유명한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96년에는 각국의 유명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전례없는 대규모로 열리게 된다.전임 음악제 총감독이었던 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타계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제라르 모이티에 총감독이 각계로 부터 심한 비난공세를 받고 있지만 내년에는 20세기의 종반을 장식하는 대표적 국제음악제로서 세계 유명 음악인들이 대거 출연해 50여일간 세계음악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96년 축제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간판격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베토벤등 고전과 낭만파 작품은 물론 쇤베르크,스트라빈스키등 현대음악등이 포함돼있으며 9개의 오페라와 약80회의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잘츠부르크의 여름밤을 수놓게 된다.특히 50여일동안 매일밤 공연될 9개의 오페라 작품중 5작품은 종전과 다른 새로운 연출로 무대에 올려져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거장게오르그 솔티는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헤르베르트 베르니케의 연출로 공연하며 바로크 음악 전문인 존 엘리어트 가디너는 피델리오의 초판격인 「레오노레」를 연주하게 된다. 또 지난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로 호평을 받았던 로린 마젤은 역시 슈트라우스의 다른 작품 「엘렉트라」를 힐데가르트 베렌스,레오니 리사네크,카렌 후프스토트등 호화배역을 내세워 공연한다.「엘렉트라」는 특히 일본 연출진이 무대장식을 맡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인 피에르 불레스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피터 스타인의 연출로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을 공연,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선을 보이게 된다. 역시 프랑스의 신예 실뱅 캉브렐링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오베론」을 비롯,쇤베르크의 「달의 피에로」와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등을 잇따라 지휘하게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 이밖에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들의 개별 연주회및 셰익스피어를비롯한 각종 연극도 함께 공연돼 내년 여름 잘츠부르크에는 세계 음악,연극팬들이 대거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 예술의 전당서 31일밤 10시 제야음악회

    ◎저무는 한해 마지막 밤/클래식 선율에 젖는다/성악·기악·클래식 소품 연주/탤런트 김혜자의 시 낭송도 엄청난 사건이 쉴새없이 몰아친 95년의 마지막날,마음을 씻어주는 아름다운 클래식을 들으며 밤을 보내면 어떨까. 서울 예술의 전당이 마련하는 「제야음악회」는 새해를 음악과 함께 맞게 한다는 취지아래 다른 음악회들과 달리 밤10시에 시작한다. 31일 하오10시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펼쳐질 이 음악회는 제야의 분위기에 맞춰 3부가 진행된다.1부에서 기악 및 성악으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키고 2부에 가면 세미클래식 및 소품을 40분정도 연주한다.2부가 끝나면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휴식시간의 리셉션이 약30분간 펼쳐지며 96년 1월1일을 맞는 0시정각에 3부가 시작된다.3부의 연주곡은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베토벤의 장중한 「합창」으로 새해를 연다는 프로그램이 매혹적이다. 예술의 전당이 지난해 처음 시도,2천6백석 전석이 매진되는 대단한 호응을 얻은 이 음악회는 클래식으로는 쉽지않은 이벤트성 공연이나화려한 출연진과 다채로운 연출이 뒷받침된다. 금난새 지휘에 뉴서울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성남시립합창단이 호흡을 맞추고 소프라노 박미혜,메조소프라노 김정화,테너 신동호,바리톤 김인수,피아노 김혜정,바이올린 정세나,기타 안형수등이 등장한다.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에프게니오네긴」중 「폴로네이즈」와 「호두까기인형」,비제의 「카르멘」중 「하바네라」,푸치니의 「라보엠」중 「내 이름은 미미」,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3악장」등.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송년음악회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이 시대의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탤런트 김혜자씨의 시낭송 시간도 예정돼 있다.
  • 국내 인사 축하메시지(서울신문 50돌 특집)

    ◎“통일의 길 밝히는 등불 되라” □초일류국가 도약의 견인차로/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헌정수립 이후 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오면서 언론문화 창달과 민주질서 확립에 끊임없이 노력해온 서울신문의 정론필봉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과 경제적 어려움등을 이겨내기 위해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습니다.반세기에 걸친 대내외적 도전들에 슬기롭게 대처해온 국민의 역량으로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정도로 국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선진권 진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이처럼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이 끼친 영향력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2천년대를 바라보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다가오는 새시대에는 겨레의 숙원인 통일과업 성취는 물론 정신문화를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꽃피워 경제력이나 생활의 질 면에서 세계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명제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넘어야할 장애물과 극복해야할 시련은 산적해 있다고 봅니다.이를 극복함에 있어 우리 언론계에 지워진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하다고 하겠으며,그 가운데서도 활자매체인 신문의 역할과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생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한 공자의 말씀처럼 오늘 창간 50돌을 맞는 서울신문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특히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소망하는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성 회복과 민주 복지국가 건설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울신문이 특정한 정파나 계층의 이익을 떠나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정론을 펴는 고품질의 신문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더욱분발,정진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다시 한번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축하합니다. □독자 입장서 필요한 정보 제공/이영섭 전 대법원장 한 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이룩되려면 첫째로 사법권이 독립되어야 하고 둘째로 언론이 창달되어야 한다.이것이 오랫동안 문화국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정설이다. 서울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는다 하니 감회가 깊다.이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수없이 넘고 꺾어온 쓰라린 탄압과 저항을 용케도 물리치고 오늘의 꿋꿋한 지위를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격이 앞설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여 주기 바란다.어떠한 외세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항쟁할줄 아는 슬기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고,국민을 선도하고 국민을 감읍하게 하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 부패해서는 안된다.어떠한 유혹에도 의연하게 대처할줄 알아야 한다.신문이 쉬는 날은 허전한 삭막감 속에서 그 날을 보낸다.왜냐하면 신문이 주는 청신하고 달콤한 생명수가 끊기기 때문이다. 신문은 지면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면은 적더라도 내용이 알차고 사회의 목탁이 될만한 기사를 많이 실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신문들이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이러한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름대로의 노력과 근면이 필요하겠지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기사를 많이 실어주어야 될 것이다. 언론이 숨을 죽이면 국민들은 생기를 잃는다.춘추의 필봉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척결하고 국민을 선도할 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언론이야말로 독재화로 가기쉬운 나라의 물줄기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잡아줄 것이요,장한 민주화행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서운신문은 이번 창간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한층 분발하여 종전보다 몇곱 더 언론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기를 빈다. 진심으로 뜨거운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몇마디 고언을 빠뜨리고 싶지않다. □서울신문만의 목소리 담아야/이광재 경희대 교수·언론학 지금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이다.세계화·개방화로 경쟁력이 중요시 되는 지구촌 시대이다.따라서 변화의 진행방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신문계에서의 큰 변화는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경쟁의 바람이다.과거의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무한경쟁이다.새롭게 등장한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방송시간이 연장된 지상파 방송은 물론 비디오와 같은 영상물 그리고 신문·잡지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었다. 이러한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있어서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째는 신문환경 변화에 걸맞은 경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경영의 효율화와 질 높은 신문제작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위인설관 형식의 필요없는 자리는 없애고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과 같은 구태의연한 편집국 체제도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그리고 다각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경영의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둘째는 질 높은 뉴스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질 높은 뉴스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을 의미한다.노 전대통령 비자금 취재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벌이 경영하는 신문들이 불신을 받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재벌관련 기사를 취급할때 편향적인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기자와 제작진이 필요하다.인력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전문기자도 새로 채용하고 기존 인력에도 대대적인 재충전을 해야 한다. 셋째는 색깔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서울신문은 서울신문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습관적인 구독도 많지만 중요한 요인은 자기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신문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는 신문 제작의 방향을 「신문인의 입장」으로부터 「독자의 입장」으로 바꿔야 한다.신문인들은 국민(독자)의 알 권리를내세우면서 취재와 제작에 임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독자들이 선택할 매체와 신문이 많고 또 신문 기사 가운데서도 읽어야 할 기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제작되지 않으면 독자들을 잃게 된다.한글전용,가로쓰기,활자 키우기,컬러 인쇄,기사 색인,새로운 뉴스 발굴에 각 신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은 신문은 춘추전국시대이다.과거의 신문들이 갖고 있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는 시대이다.신문끼리는 물론 새로운 매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따라서 과거의 권위주의 신문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색깔이 불분명한 신문들은 오래 지탱할 수가 없게 된 시대이다. 끝으로 서울신문의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스포츠 진흥 지속적 성원 기대/김운용 대한체육회장 서울신문이 창간 반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광복과 함께 창간된 서울신문은 늘 빠르고 정확한 보도로 언론의 정도를 걸어 왔습니다.50년동안 서울신문은 정부와 국민 가운데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격동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명확히 분석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광복과 유엔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하는 비전있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체육계는 실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진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단 한개라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국민의 바람이었던 그때와 동·하계 올림픽 5연속 세계 10위권 진입,태권도 20 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86·88 양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각종 국제종합대회의 줄이은 한국유치와 굵직한 국제스포츠 회의개최 등 세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50년동안 한국스포츠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에 항상 함께 있으면서한국스포츠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한 바 매우 큽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체육인상」을 만들어 체육인들의 사기를 높인 것을 비롯,사이클 야구 농구 배구 등 각 종목의 대회를 주관,한국 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특히 체육전문 일간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체육 발전을 위해 선봉에 서서 체육입국을 향한 걸음을 재촉해주었습니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정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는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착한 마음 옳은 사회 이끌어야/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되어가는 사회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착하게,옳게,아름답게 사는 사회를 원한다. 낯가림이라는 말이 있다.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 가림을 하게 되면 낯가림을 완료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릴 때에 반드시 관여되는 것이 있다.가림의 「대상」과 가림을 하는 「당사자」다.엄마의 얼굴이 「대상」이고 아이가 「당사자」가 된다. 가림의완료를 위해 대상과 당사자는 많은 반복적 접촉을 해야한다.그래야만 아이의 마음 속에 엄마의 얼굴 생김새가 각인된다.각인된 후에는 눈을 감아도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인간 마음 속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대상이 각인되어 있다.하늘 땅 바다 강이 각인되어 있다.대상이 없는 각인은 없다. 착한 마음,옳은 마음,아름다운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태어나자마자 착한 마음일 수 없다.착한 마음 역시 인간 마음 속에 어떤 형식으로이든 각인될 기회를 가질 때 생긴다.베토벤 음악이 없는데 인간 마음 안에 베토벤 음악을 가릴 마음이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냥 산다」와 「잘 산다」라는 말이 있다.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면서,그냥 살아가는 것을 「그냥 산다」라는 말과 상관시킨다면 「잘 산다」는 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상관될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잘 살았으면 싶다. 잘 살려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만은 안된다.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어야 한다.마음의 풍요로움은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이 있을 때 얻어진다.그러한 마음은 그러한 마음을 가능케하는 「가림의 대상」이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는 서울신문이 우리의 마음을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일 수 있게 하는,「가림의 대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착함·옳음·아름다움과 상반되는,어떠한 것을 낳게 하는 기사도 싣지 않는 신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뜻도 된다.
  • 유엔 총회장에 “아리랑” 감동/창설 50돌 경축음악회 성황

    ◎정명훈 등 열연… 평화메시지 울려/갈리 총장·각국대사 “원더풀” 연발 「평화의 전당」 유엔총회장에서 한국 오케스트라의 아리랑 선율이 울려퍼졌다.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음악인들이 한국의 평화이미지를 세계인의 가슴속에 심어줬다.유엔창설 50주년과 광복 50주년을 경축하고 한국의 평화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이 음악회는 7일 저녁 7시(현지시간)부터 2간여동안 유엔총회장에서 대성황속에 열렸다.유엔총회장에서 음악회가 열리기는 유엔 50년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이날 음악회에는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주돈식 문화체육부장관,각국 유엔대사와 유엔사무국 임직원,평화유지군(PKO),교민대표와 뉴욕거주 문화예술인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음악회에는 KBS교향악단과 이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한 정명훈,정명화(첼로),김영욱(바이올린),신영옥(소프라노),김덕수 사물놀이패등 세계 정상급 음악인들이 출연했다.정명훈,김영욱,정명화씨는 KBS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3중 연주곡」과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서곡을 연주했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축사에서 『오늘 저녁의 이 감명깊은 음악회를 50년 전 유엔을 창설하게 한 평화와 화합의 위대한 이상을 상기시키고 우리들의 유엔임무에 새롭게 헌신하도록 하는 계기로 삼자』고 강조했다. 이에앞서 주장관은 유엔의 한국에 대한 도움에 감사를 표시한뒤 『91년 유엔에 정식가입한 한국은 이제 인류의 번영과 평화의 공동목표를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음악회에서 정명훈씨등은 협연이 끝난 뒤 받은 꽃다발을 PKO장병들에게 전해줘 한국의 평화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이날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KBS교향악단과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마당」협연이었는데 동서양의 음의 화합에 특히 각국 유엔대사와 유엔직원들은 탄성을 연발했다.이들은 북,장구,꽹과리,징등 사물이 토해내는 귀청이 떨어질듯 시끄러운 소리 끝에 점점 잔잔해지는 한국적 장단을 처음 대하고 그 오묘함에 「원더풀」을 연발했다. 정규순서가 다 끝났음에도 참석자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연단에 다시 등단한 정명훈씨는 답례로 한국의 민속가요 「아리랑」연주를 지휘했다.일부 참석자들은 「아리랑」이 총회장에 구성지게 울려퍼지자 옆자리의 한국인들에게 그 유래를 묻는등 큰 관심을 보였다.
  • 안의사 죽음맞이… 새삼 옷깃 여민다(박갑천 칼럼)

    이승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어김없이 죽는다.한무제에게 불로불사약 만들어주겠다고 능갈쳤던 선인 이소군만 죽는게 아니다.천년만년 살고자했던 진시황도 쉰을 못 채우고 숨을 거둔다. 어떻게들 죽는가.아나톨 프랑스같이 어머니를 부르다 가기도 하고 베토벤같이 『희극은 안 끝났어』하면서 눈을 감기도 한다.하이네는 종이와 펜을 찾으면서 갔고 발자크는 그의 작품속 의사인 비앙숑을 불러대라면서 저항하다가 간다.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1세는 먹을 생각을 못 버린다.『오늘밤에는 하이데스한테 가서 저녁을 먹어야지』 했다지 않던가.우리의 사육신 성삼문이 『황천에는 머무를곳 없으니 오늘밤에는 뉘집에서 잘꼬』하고 읊었던 사세시와는 대조가 된다할까. 썩은내 나는 죽음과 향내나는 죽음도 있다.서양의 걸주 네로는 굴속에서 죽어야하게 되었을때 이빨 마주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한다.반정소식에 승지의 손을 잡고 다리 아랫소리로 부들부들 떨었다는 연산군과 다를게 없다.그와함께 앙글앙글 놀아났던 장녹수가 군기사 앞뜰에서 목베였을때 그국부에 대고 던진 장안사람들의 돌멩이는 무더기로 쌓였다.그런게 다 썩은내 나는 죽음.남에게 몰강스럽게 군 사람이었을수록 제죽음 앞에서는 대체로 군단지러워지는 법이다. 『충실하게 산 하루가 상쾌한 잠을 자게 할수 있듯이 여낙낙하고 떳떳하게 산 일생은 평안한 죽음을 맞게 한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한다.바로 그게 향내나는 죽음.「은계필록」(저자불명)에 의할때 계곡 장유,수천 정광필등은 숨을 거둘때 그 지붕위로 무지개가 뻗쳤다 한다.그 무지개는 어쩌면 하늘의 향내를 더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알려져온 얘기이기는 하지만 얼마전 발견된 안중근의사 사형상황기록은 새삼스럽게 우리들 마음을 숙연하게 한바 있다.죽음앞에서 그는 끝까지 의연했다.「동양평화 만세」를 못 부르게 하자 그옛날의 성자들같이 기도를 드린 끝에 죽음을 맞는다.사약을 받아들고서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바라보나니/훤히 비춰주리 이내 일편단심을』하고 읊었던(김육의 「해동명신록」) 정암 조광조의 나볏하고 향내나는 죽음맞이를 생각케 하잖은가. 죽음앞에 의젓할수 있는 자세는 다빈치의 말 그대로 이승의 삶이 곱고 바르고 의연한 것일때 가능한 것 아닐는지.주검위에 향내가 덮는 삶들을 살고지고.
  • 음악평론가 박용구(이세기의 인물탐구:80)

    ◎「열린 시각」으로 「평론 외길」 50년/음악·무용 비롯,모든 문화분야 탁발한 이론 전개/「음악 교육론」… 일제가 말살한 우리 정서 부활 노력/저서 「교양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감상 지침서로 유명 「미를 위해서는 깨뜨릴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이는 베토벤의 말이다.또 입사 박용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미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파괴해도 아깝지 않을만큼」그의 의식과 사상은 줄기차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고 언제나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음악계는 말한다.「그것은 예술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 탓」이며 「긴장이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이라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일 것이다. 「박용구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년동안 계속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이는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92년 「낭만음악」(여름호)특집 「작가연구」에서 밝힌 말이다. 같은 글에서 이교수는 「50년에 이르는 평론활동은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잡지나 신문들이 일정한 평론가에게 그 긴기간동안 계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짚고 있다.또 「음악과 무용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그는 예술문화를 제한없이 드나들며」『논리전개도 상당히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치,때로는 대담한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 논조와 사안별로 관심의 소재가 변하는 「논리에 입각한 비평가라기 보다 감각에 의한 비평가」』라고 결론짓는다. ○예술계의 팔방미인 실제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은 넓고 깊고 다양하다.그래서 예술에 관한 한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음악펜클럽 예술평론가협의회 유니세프문화예술인클럽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세계무용연맹(WDA)도 그가 주관하는 단체이고 그가 쓴 「춘향가」「줄리아」「님의 침묵」등 수많은 작품들은 교향시·오페라로 작곡되어 호평받은바 있다. 과연 그의 평문은 어느 지면에서나 탁발한 이론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도저한 주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해방직후 발표한 「아동음악 교육론」은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었고 전5권으로 펴낸 「교양의 음악」의 경우는 클래식음악팬의 음악감상을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지망생과 음악관계 전문가들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섭취시킨 교과서이기도 했다. 「예술가란 어느 시대에서나 환경의 도전자요,권위의 파괴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해온 그는 60년대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쉔베르크 도형악보의 존 케이지·베베른·베르크와 슈톡하우젠에 이르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우호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면 당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한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 등의 전위작업을 「선구자적 도전 정신」으로 평가하여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크게 북돋워주었다.「공간」지에 발표한 일련의 「작가론」에서 특히 백병동을 향해 「음악으로 말할줄 아는 소중한 사람」 또는 「그 노여움이 화염이 되어 역사의 밤을 밝히도록 기대한다」고 감싼 것도그런 맥락에서다. ○한약방집 네째 아들 그의 녹슬지 않는 사회정의감은 87년 6월항쟁과 88올림픽이 끝난후 「예총」에 대한 역할회의론이 일어났을때도 「예총도 뉘우쳐야 한다」는 글에서 심장한 어조를 멈추지 않는다.그는 「예총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고 있다」고 감연히 지적했고 「예총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고 결코 지성인의 모임도 아니며 그 체질은 다만 편견과 독선에 차있다.예총이 이념공동체라면 우선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삶의 조건인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안일에 빠져있던 문화예술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어릴때 소망한 것은 「독립투사」가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독립투사의 조건은 「강인한 인내력과 행동력」이었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두가지 강점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여」 그때부터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체류 기간동안은 주로 「단사들과 더불어 담예논도에 심취」하는 세월을 만들어 나갔다. 도쿄시절의 입사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의 회상은 이런 흔적을 진하게 뒷받침해준다.「그는 예술순례를 주도하는가 하면 예술과 문화전반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이던 모임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한치도 후회함이 없는 그의 사회정의감과 예술분야에 임하는 지성인의 자세는 당시 유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항로는 남보다 파고가 거세고 파란이 심한 편이었다. 경북 풍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박은식씨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졸업후 조부의 고향이던 평양으로 가서 평양고보에 진학,5학년이 되던해 독서회를 조직한 일로 왜경에 검거되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컸으나 부친이 부농인 것과 상반되어 이 마저 포기한채 일본에 밀항했다.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이 역시 체질에 맞지않아 일본의 「음악평론」사에 입사한 것이 음악·무용가가된 계기가 된다. 광복후 조국에 돌아와 첫 평론집 「음악과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였으나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터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시 50년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끝없는 파란」과 「방랑」을 「방랑시인 김삿갓」에 비유하여 스스로 삿갓 입자를 쓴 「입사」란 호를 지어 가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창작희곡 집필 몰두 창작희곡집 「흙비」 후기는 그의 솟구치는 앙양과 침정을 요연하게 드러내는 고백성사와도 같다.「나는 성깔부터가 적을 사랑하라는 박애주의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사랑해야만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여기의 작품들은 사랑에서 보다는 미움으로 해서 쓰여졌는지도 모른다.그만큼 내 생애는 미움에 찬 세월이었다.마음의 눈은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고 처연한 심정을 글귀마다 담고 있다. 그는 82세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모든 사고방식은 활짝 열려있고 목소리는 낭랑하며 행동은 반듯하다.그가 살고있는 세검정 세이장은 20여년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트롬본처럼 말려올라간 예술주택으로 요즘은 지난해 가을 문예중앙에 발표한 「바리데기」후속으로 우리 「무가」의 원천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창작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만이 남길수 있는 단테의 「신곡」 못지않은 명작에의 도전이라는 각오다.가족은 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부인 정덕미 여사와 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그의 주장대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자하는 염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예술미의 창조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원한대로 언제나 「멋대로」 흘러왔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우리 모두가 별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것 같다.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인 자유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한」그는 「가장 선한 장엄미 건축을 위해」 그의 멋과 자유를 파괴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그런 순간을 위해 예술관조의 형안도 끝내 그 빛을 잃지 않을것이다. □박용구 연보 ▲1914년 경북 풍기출생 ▲33년 평양고보졸업,도일,일본대 예술과 입학 ▲37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졸업,일본 「음악평론」사 입사 ▲49년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민교사)출간,도일 ▲50∼60년 일본 도쿄 고마키(소목)발레단 문예부장 ▲52년 일본 「배우좌」연출공부 ▲62년 서울음악평론동인회대표간사 ▲66∼68년 예그린악단단장 ▲70∼76년 공간사주간·운영위원 ▲76년∼현재 음악펜클럽 회장 ▲81년∼현재 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83년∼현재 채동선기념사업회장 ▲86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단장 ▲88∼94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93년∼현재 세계무용연맹 발족(WDA),한국본부 회장,은관문화훈장 ▲94년 창작희곡 「바리데기」(문예중앙 가을호)발표 ▲95년 세계무용연맹 창립총회및 아시아 태평양센터주최 국제무용페스티벌(KIDE)개최 「음악의 별들」(어문각 48년) 「음악입문」(박문출판사) 「음악과 현실」(일지사 49년) 「교양의 음악」전5권(창조사 69년) 「음악의 주변」(창조사 70년) 「음악의 광장」(일지사 75년) 「불멸의 음악가들」(일지사) 「음악의 세계」(계몽사) 「음악이 만나는 자리」(일지사 77년) 「음악의 문」(청한문화사 81년) 창작집 「흙비」(해보라 기획 85년) 「오늘의 초상」(일지사 89년) 「명곡과 명인들」(세광음악출판사)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95년)출간외 논문 무용극본「님의 침묵」 「바리공주」 오페라극본「춘향가」 「줄리아」등 다수
  • 마음들 낙낙하게 닦고 삽시다(박갑천 칼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세 젊은이의 공통점이 분석 보도된바 있다.명랑하고 낙천적인 기질이었다는것.그것은 마음을 낙낙하게 비울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에게 담뱃불 좀 빌리자고 했다가 고얀놈이라고 나무라는 그 어른을 찔렀던 젊은이가 그 세젊은이의 공간에 갇혀있었다고 쳐보자.발자한 그 성미로 제섟에 제가 못이겨 숨이 끊겼을 가능성이 높다.건널목의 노랑불을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문이 열리고 있는데도 「닫힘」단추를 두번 세번 꾹꾹 눌러대는 사람 또한 그 운명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옛사람들의 행적에서는 마음의 터를 널찍히 닦아놓은 경우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종의 자식들이 올라타고 떠들고 오줌을 싸고해도 노여운 빛을 띠지 않았더라는 황희 정승.비가 내려 빗물이 새는 집에서 밤새 우산을 받쳐든 유관 정승은 오히려 『우산이 없는 집은 어찌 지낼꼬』하며 걱정한다.청승을 떨었다고 하기에 앞서 여유로운 마음부터 헤아려보는 자세가 옳을 듯싶다. 반드시 지체높은 사람만이 그랬던건 아니다.이름모를 사람 가운데도 그렇게 가멸진 마음자리를 보인 경우는 적지않다.가령 조선시대 후기의 시인 조수삼의 「추재기이」를 보자.­참외 파는 노인은 대구 성밖에 살았다.이 노인은 자기가 심은 참외가 익으면 길가는 사람들에게 따서 권한다.돈이 있고없고는 따지지 않는다.있으면 받고 없으면 안 받는다.살림 망치기 딱 알맞은 푸서기라 할지 모르지만 세상일을 누가 알랴.베토벤의 제자 신틀러가 「운명」 첫머리의 주제음 「다다다단…」에 대해 『운명이란 이와같이 문을 두드리는 법』이라 했듯이 「다다다단…」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행운이 찾아올지를. 가난하게 살면서 마흔이 되도록 장가못간 약주릅쟁이 이달문은 어떤가.그는 어느날 약방에 들렀다가 「산삼도둑」으로 오해받는다.이달문은 굳이 발명하지 않은채 그 산삼이 제물에 나오는걸 기다릴 줄 알았다.과연 산삼은 이튿날 발견된다.백배사죄하는 주인은 자기가 궤뒤에 갖다둔걸 잊고서 이달문을 의심했던것.생사람 잡는다면서 소리높여 베정적하는 것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 낙낙함인가.그 보답이었을까.임금(영조)이 들어 그를 장가 보내주고 있다. 각박해진 인심을 세상탓으로만 흉하적하지들 말자.그대신 마음의 터에 여유를 심어나가야겠다.그럴때 우리에겐 동살이 비친다.다시 매초롬해진 세 젊은이의 생환이 교훈으로 되고 있지 않은가.
  • 오스트리아(세계화 외국에선)

    ◎몸에 밴 친절­서비스 정신/관광객 80% 2번이상 찾아/음악가·왕가유적 연계 탐방코스 인기/“스키·사이틀 등 스포츠 천국” 적극 홍보 지난해 오스트리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천7백83만명.6백50만명에 불과한 적은 인구에 걸맞지않게 당당히 세계5위의 관광대국이다.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인 외화소득만 연간 1천7백억 오스트리아 실링(약 13조원).국내총생산중 차지하는 비중이 8%로,인접국인 스위스(4%)의 두배다.무역수지 만년 적자를 보전,경상수지를 흑자로 만드는 효자산업이 바로 관광인 것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출생지이자 베토벤 등 무수한 음악가들이 생활한 음악의 나라,중세유럽을 휘저었던 합스부르크왕가 등 찬란한 문화유적,스키의 천국,수려한 경치,좋은 기후조건 등 오스트리아에는 물려받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다.정치적 안정과,빈 등의 상주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행사 유치노력도 한몫 거든다.그러나 오스트리아의 관광대국 유지비결은 관광산업 종사자의 서비스정신을 바탕으로 한 친절과 체계적인 관광사업 개발및 홍보에 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한국홍보자문역인 최춘자씨는 『오스트리아에서는 길가 카페에서 커피를 나르는 직원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자부심에서 우러난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봉사한다』고 강조한다.그래서 관광객중에는 오스트리아를 가장 친절한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한번 왔던 사람은 또 찾게 된다.방문횟수가 두번이상인 관광객이 80%에 육박한다. 지난 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을 맞아 음악회 등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고,내년에는 국호제정 1천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와 함께 합스부르크 왕가를 초점으로 한 66곳의 유적탐방을 부각시킬 계획인 것을 비롯,가능한 모든 것을 관광에 연계시켜 붐조성을 시도한다.관광산업 육성이 거창한 구호로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일상화돼 있다.전세계 1백여곳의 관광청 해외사무소를 통해 매년 새로운 홍보자료를 해당국 언어로 발간,배포하는등 홍보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64·7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인스부르크를 중심으로 외국인 스키회원제를 운영하는 등 스키명소의 이점을 최대한살린다.여름·겨울철에 몰리는 관광객을 계절적으로 다양화시키기 위해 다뉴브강변을 포함,1만㎞의 자전거 도로를 갖춰 사이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위시,하이킹 등산 골프 테니스 등 스포츠활동을 중심으로 한 비시즌 관광 활성화 노력도 기울여 효과를 거두고 있다.9개주중 인스부르크가 포함된 티롤주(38%)와 잘츠부르크주(20%)의 관광객 비중이 높지만,역사적 소도시 14곳 방문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타 지역 관광개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차량 이용 입국자가 70% 이상이고,독일인이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는 93년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수및 수입면에서 2.3% 감소한 불운한 해였다.지중해 해변과 아마존 등 경쟁지에 관광객을 많이 빼았겼다.또 오스트리아 실링이 올들어서만 달러대비 10%나 평가절상되는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입국자는 줄고 출국자는 늘었다. 아시아·태평양권이 급부상하면서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관광경쟁시대를 맞아 항공편 이용자및 여름철 관광객 유치를 늘리는 일이 오스트리아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 컴퓨터와 아동교육/앨런 케이 미 애플컴퓨터이사(해외논단)

    ◎“컴퓨터 앞으로 아이들 무턱대고 내모는건 베토벤 모를 나이에 피아노 레슨 강요하는 것”/스스로 호기심 갖고 다가서도록 이끌어야 전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통신망과 컴퓨터가 아동교육시스템 전반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사용하기 쉬운 컴퓨터의 대명사 「매킨토시」를 만들어 각급학교 교육용으로 보급하고 있는 애플컴퓨터사 앨런 케이이사의 진단을 들어본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기술에 가장 크게 기대를 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교육이다.현재는 데스크탑 수준에서 근거리통신망(LAN)을 이용하거나 공중통신망을 이용해 지리나 역사같은 과목을 교육하는 정도이지만 곧 학생들이 책가방 대신에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올것이다.이제 문제는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컴퓨터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이다. 컴퓨터는 소리로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피아노에 비유할 수 있다.피아노를 통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창조됐다.한낱 소리증폭기라는 기계에 그칠 수도 있었던 피아노가 인간의 욕망과 창의력에 힘입어 위대한악기가 된 것처럼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노트북 등교시대 눈앞에 컴퓨터는 피아노보다도 훨씬 더 심오한 감정과 사상을 표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어린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은 바로 이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화사회라고 해서 무턱대고 아이들을 컴퓨터앞으로 모는 것은 마치 베토벤의 소나타가 가진 아름다움을 채 느낄 수 없는 나이에 피아노를 강제로 배우게 하는 것과 같다.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컴퓨터를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를 가장 잘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다가가서 호기심을 갖고 더 알려는 욕구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컴퓨터라는 도구를 이해하는 것은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내부에서 일으키는 과정과 동일하다. 저명한 작가이자 교육학자인 수전 손택씨는 『모든 이해과정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바꾸어 말하면 모든 과학은 기본적으로 「난센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그동안 잘알지 못했던 대상을 관찰했을 때 느끼게 되는 놀라움이 사물을 더욱더 깊게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워 컴퓨터시대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마셜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절대로 중립적이 아니다.즉 어떤 매체를 통해서 지식을 얻느냐에 따라 정보의 종류와 끼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원칙은 최첨단 매체인 컴퓨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과거에는 종이가 모든 지식을 담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지만 지금은 상황히 엄청나게 변했다.자기신호로 이루어지는 컴퓨터파일이 종이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컴퓨터 또는 통신망을 통해 전달되는 지식 또한 중립적이 아니라는 점이다.즉 컴퓨터로 전달하기 쉬운 종류의 지식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는 것이다.컴퓨터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예를 들어 루브르박물관에서 보는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인터넷을 통해 전송받아 모니터상에 나타나는 모나리자는 절대로 같은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오래된 사진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14인치 모니터나 액정화면에 나타낼 수 있는 정신세계는 한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후면 이러한 개념에 수정을 가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컴퓨터를 통한 교육의 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개인교사역할 수행 컴퓨터는 지금까지처럼 악기수준의 수동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대화형으로 발전해 개인교사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게 된다.가상현실기법을 사용해 효소의 촉매작용을 눈으로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으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를 타고 여행을 하는 기분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컴퓨터자체가 하나의 사물을 두고 다각도의 분석을 스스로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즉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반론까지 곁들여 준다.그야말로 컴퓨터가 더이상 컴퓨터임에 만족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다. ○다양한 대리체험 가능 이밖에도 컴퓨터는 실제와 거의 같은 정도로 다양한 대리체험을 시켜줄 수도 있다.즉 도시에서 병원놀이를 하며 자라난 아이와 시골에서 말과 소를 먹이면서 자라난 아이의 구별을 컴퓨터가 없애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가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꿔놓을 것은 확실하다.남아있는 숙제는 지난 산업혁명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명의 발전을 그대로 믿고 따라오는데 드는 시간을 줄이는 것뿐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 독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거장 마주르 지휘… 강동석과 협연

    2백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26∼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우리 음악팬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지난 여름 뉴욕필하모닉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찾았던 거장 쿠르트 마주르가 지휘봉을 잡고,세계 정상급의 재불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협연하는 무대. 오랜 전통에 걸맞게 베토벤 피아노협주곡5번 「황제」,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슈베르트 교향곡9번 「그레이트」 등 많은 명곡들을 세계 초연한 바 있는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는 이번 한국무대에서 브람스 교향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26일),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강동석 협연)과 브루크너 교향곡 3번(27일),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과 교향곡 7번·8번(28일)을 연주한다.
  • 분단국대통령의 「통곡」/이재근 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장(서울광장)

    유럽순방의 정상외교를 펼치던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7일 통일독일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섰을 때의 장면은 감동적이었다.정치·경제적인 통합에 이어 법률적으로까지 완전 통일된 독일을 방문한 첫 한국의 대통령에게 베를린은 또한 각별한 의미로 다가섰을 것이었다. 여기 이르러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생각했다는 대통령은 『서베를린의 자유는 서울의 자유였다』면서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져 베를린필하모니가 베토벤 제9교향곡의 「환희」를 「자유」로 노래했을 때 서울은 진정한 환희였다』고 연설했다.서베를린의 승리가 서울의 승리였기에 한반도의 통일도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룰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국민의 감회를 전했다.베를린의 활기와 번영을 보면서 그는 남북통일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무서운 책임감」을 이런 형식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분단국 대통령의 「웅변」은 마치 「통곡」처럼 들렸다고 수행기자들은 써보냈다.8일자 조간 서울신문은 숙연한 김 대통령의 베를린연설을 놓고『그것은 차라리 통곡이었다』고 표현했다.웅변속에 숨은 대통령의 상심을 기자들은 읽었을 것이다. 통일은 이제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의 문제이다.그리고 그것은 한반도적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의 진전」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인식이다.그 역사의 진전은 몇가지 방향에서 이뤄져 왔고 또 그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도 필연적이다. 먼저 인간의 자유화를 향한 진전이다.인간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이제 세계의 보편적 가치가 되고 있다.다음으로 민족자주의 회복이다.동일한 언어·혈통·문화라는 기준에 따른 구소련의 해체,독일의 통일이 그것이다.그다음이 평화의 확산이며 세계공동체의 확립이다.동서간의 이념분쟁과 체제경쟁을 매듭짓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축으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예컨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결성등이다.그런 것들이 바로 한반도문제의 세계사적 시야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느냐는 것인데 대통령은 이번 「베를린 연설」에서도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이 아닌 민족공동체 건설이라는 구도에 따라 통일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통한 에너지문제 해결,민간차원의 대북교류,곡물 등 북한에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적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세계에는 지금 거역할 수 없는 세가지 큰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하나는 개혁이다.이 개혁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그런 점에서 이념적이라기보다 실용적이요 현실적이다.다른 하나는 세계화이다.UR협정,WTO체제는 그것을 대표하며 인권,환경,빈곤퇴치 등 「인간안보」를 내세운 사회개발 정상회의 등이 그러하다.세번째가 탈냉전추세의 지속이다.그러나 한반도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냉전의 고도이다.이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남쪽의 냉전적 요소도 완전히 극복해내야 한다는 요청도 된다. 기자들에 의해 「웅변」을 담은 「통곡」으로 묘사된 이 「베를린 연설」을 통해 우리는 김영삼 대통령의통일인식의 지평이 활짝 열렸음을 확인하게 된다.그것은 냉전적 관변 통일론과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를 함께 극복하는 세계사적 인식의 통일론이다. 탈냉전의 시각에서 동반자로 보면서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자는 것,다시 말해 「햇볕론」이다.강한 바람으로 옷을 벗기기보다 따뜻한 햇볕을 쬐여 스스로 옷을 벗게 한다.이럴 경우 북한을 위협하는 강경론은 물론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도 피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게르만인들은 그들 국가 민족의 통일에 관한한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그 역사의 현장에 서서 대통령은 북한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우리의 3단계통일방안의 과정을 축소하기 위해 요구되는 어떤 노력과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했다.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의 베를린 상심기행은 환희의 여로이기도 하다.
  • “휴전선 철조망 박물관행 멀지않다”/(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통독의 위대한 힘 독 경제 성공서 비롯”/본 시장,베토벤교향곡 CD4장 증정 김영삼 대통령은 독일방문 사흘째인 7일낮(현지시간) 수도 본을 떠나 베를린에 도착,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등 통일의 현장을 돌아보고 황태자궁에서 독일 외교3단체 초청으로 연설하면서 한반도통일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본을 출발하기에 앞서 「전쟁과 폭력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한 데 이어 독일 상공회의소에서 한·독경제협력을 주제로 연설했으며 대통령궁에서 헤어초크 대통령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공식환송식에 참석했다. ▷브란덴부르크문 방문◁ ○…이날 하오 베를린 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공항 환영행사가 끝나자 차량편으로 숙소인 에스플라나데호텔로 이동,잠시 휴식을 취한 뒤 베를린시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시찰. 김 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디이프겐 베를린 시장 내외의 안내를 받아 브란덴부르크문 중앙을 통과,주변을 돌아보면서 시종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으며 내심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듯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이어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김 대통령은 수행원들에게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둘러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고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된 날이 반드시 올 것을 확신한다』고 소감을 피력. 옛 동독 치하 동베를린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지난 90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독일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기념물. ▷외교3단체 초청연설◁ ○…브란덴부르크 문 시찰을 마친 김대통령은 지난 90년 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조인된 역사적 장소인 베를린시 황태자궁 대연회실에서 「서울과 베를린,자유와 번영의 동반자」라는 주제로 연설. 아스펜연구소와 독일유엔협회,독일외교정책협회 등 독일 외교3단체의 초청으로이뤄진 이날 연설에서 김 대통령은 분단국 대통령으로서의 통일철학과 함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 김 대통령은 먼저 『독일 국민의 통일 드라마는 분단 조국을 가진 한국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하고 『지난 86년 독일방문에서 내가 처음 만난 베를린은 「격리와 분단」의 도시였으나 오늘 내가 다시 만난 베를린은 화합과 긍지와 희망의 도시였다』고 언급. 김 대통령은 이어 『오늘 활짝 열린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오며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그러나 역사의 힘은 한반도의 통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역설. 특히 김 대통령은 독일의 유럽공동체(EC) 참여가 독일통일을 앞당기는 요인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한국의 세계화는 한반도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촉진시킬 것으로 믿는다』면서 통일을 위해서도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 김 대통령은 이어 『라인강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으로 화답한 것처럼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피력. ▷본 출발◁ ○…김 대통령은 이날 낮 특별기편으로 본 공항을 출발하는 것으로 2박3일동안의 본 방문일정을 종료. 김 대통령 내외는 공항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송하는 교민들에게 다가가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가 하면 교민들과 악수를 나누며 작별인사.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본의 대통령궁에서 헤어초크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공식 환송식에 참석. 김 대통령은 귀빈접견실 입구에 마중나온 헤어초크 대통령에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으며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독 두나라 사이의 우호관계가 더욱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인사. ▷독일 경제단체 연설◁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독일 경제 아·태위원회」 초청연설회에 참석,『한국과 독일 두나라의 경제협력은 양국의 발전은 물론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전체 교역의 40%를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교역과 투자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기업과의 협력확대를 원하고 있다』며 「세일즈 외교론」을 적극 피력. 김 대통령은 특히 『6년전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 독일을 이룬 자유와 번영의 힘은 독일경제의 성공에서 나왔다』면서 독일기업인의 노력을 치하하고 『우리 기업인들도 「한국 통일의 기적」을 또 하나의 영예로 더할 수 있는 날이 멀지않았다』고 강조. 김 대통령은 또 『한국기업이 옛 동독지역의 국영기업을 인수하여 산업구조 조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양국 경제협력의 새로운 유형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정부는 두나라 기업 사이의 투자와 교역,기술협력이 활발히 추진될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할 것』이라고 다짐. ▷희생자기념비 헌화◁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한스 프랑크 독일연방합참의장의 안내로 「전쟁과 폭력정치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본의 「노르트 프리드호프」 기념비에 헌화. 「노르트 프리드호프」는 본 주민과 군인들의 묘지로 본대학 옆에 있던 「전쟁과 폭력정치 희생자」기념비가 지난 80년 이곳으로 이전된 뒤 국가적 애사나 외국 국빈방문 때 헌화하는 곳이 됐다고. ▷독일 대통령 만찬◁ ○…6일 저녁 헤어초크 대통령이 김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주최한 국빈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2시간30분동안 진행. 헤어초크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한민족이 독일통일에 대해 환희를 공유하면서 내심으로는 분단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한반도에서도 분단의 종식이 다가올 것으로 믿으며 평화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통일이 성취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답사에서 『역사는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므로 한국의 휴전선에서 걷어낸 철조망이 베를린 장벽의 파편과 함께 박물관에 나란히 진열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본 시청 방문◁ ○…6일 하오 콜총리와 정상회담을 끝낸 김대통령은 본 시청을 방문,현관 앞에서 바바라 디크만(여)시장의 영접을 받고 2층 고벨린 홀로 입장.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본은 「라인강의 기적」과 「독일통일의 기적」을 만들어 낸 전후 서독의 수도로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하고 『베토벤이 태어난 곳으로 더욱 잘 알려진 본이 유럽과 세계를 위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이어 디크만 시장으로부터 베토벤교향곡 CD 4장이 든 가죽상자를 증정받고 방명록에 서명. ○…한편 대통령 부인 손명순여사는 6일 하오본 외곽의 시립탁아소를 방문,내부시설을 관람.
  • 그것은 차라리 통곡이었다/숙연한 김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

    ◎한반도통일 확신하는 환희의 웅변/「무서운 통일 책무」의 다지머이 가슴 쳐 높이 26m,너비 65.6m.1791년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입구 성문을 모델로 삼아 운터덴 린덴 거리의 서쪽끝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나폴레옹군이 이문을 통해 입성한 이래 수많은 행진과 퍼레이드의 행사장이 됐던,베를린의 18개 옛 성문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브란텐부르크. 김영삼대통령이 7일 통독의 상징물 브란덴부르크를 방문했다.독일이 법률적으로까지 완전히 통일된뒤 이곳을 찾은 한국의 첫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어떤 상념이 떠올랐는지는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다.그는 스스로 이곳을 보고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생각했다고 말했다.곧이어 있은 황태자궁에서의 연설석상에서다. 브란덴부르크는 동서독의 분단과 함께 5개의 성문을 닫았었다.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는 그러나 1989년 12월 22일 다시 통일의 상징으로 명예를 회복했다.그해 11월 9일 국경이 개방된지 몇주 뒤 서독의 콜 연방총리는 모드로 동독총리와 동·서독의 여러 정치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문을 열어젖힘으로써 자신의 이름과 브란덴부르크의 이름을 세계사에 다시 한번 빛나게 했다. 김 대통령은 황태자궁 연설에서 서베를린의 자유를 서울의 자유로 바꾸어 노래했다.그는 연설말미에서 『서베를린의 자유는 서울의 자유였다』면서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져 번슈타인의 베를린 필하모니가 베토벤 제9교향곡의 「환희」를 「자유」로 노래했을 때 서울은 진정한 환희였다』고 말했다.김대통령은 이어 이는 서베를린의 승리가 서울의 승리였기 때문이며 한반도의 통일도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룰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국민의 감회를 전했다.그것은 「웅변」이었다.그러나 이를 듣는 한국 기자단이나 수행원들에게 분단국대통령의 「웅변」은 마치 「통곡」처럼 가슴을 쳤다. 김대통령이 유럽순방 연설문 가운데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황태자궁 연설이었다.너무 많은 주문과 추고때문에 연설문 작성자들은 황태자궁 연설문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흔들 정도다.김대통령이나 한국국민에게 통일만큼 절실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베를린의 활기와 번영을 보면서,또 독일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김대통령은 통일에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특유의 표현인 「무서운 책임감」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김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는 구체적으로 곡물을 비롯,북한에게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저리로 제공할 용의도 있다고 했다.우리의 북한 정책측면에서 이같은 언급은 매우 진전된 것이고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내용이었다.그러나 기자들에게 더 가슴깊이 와 닿은 말은 『우리는 3단계통일방안의 과정을 축소하기 위해 요구되는 어떤 노력과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한 대목의 포괄적인 의미였다. 베를린의 자유를 서울의 자유로 바꾸어 이야기한 김대통령의 꿈꾸는 듯한 표정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3단계과정의 축소를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르겠다는 그 말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김 대통령은 콜 총리가 브란덴부르크문을 열어젖히는 장면과,김 대통령이 앞장서 많은 우리 각료및 정치지도자들과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함께 건너는 장면을 오버랩시키고 있지는 않았을까. ◎독 외교3단체 초청 연설 요지 독일과 나의 인연은 멀리 20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내가 다니던 서울대학교는 유럽식 학풍이 두드러진 곳이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나의 전공이던 철학분야는 독일의 학풍이 풍미했습니다.나의 졸업논문도 칸트의 「비판철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986년 11월초,나는 생애 처음으로 베를린을 찾게 되었습니다.내가 처음 만난 베를린은 육지 속의 섬으로 외떨어지고,다시 동서로 갈라진 「격리와 분단」의 도시였습니다.그러나 오늘 나는 새봄의 기운이 싹트는 이 아름다운 도시의 한 가운데,활짝 열린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이곳에 왔습니다. 돌이켜보면,내가 베를린과 처음 만나던 86년 이후 세계는 바탕으로 부터 바뀌었습니다.지난 10년의 세계는 「인간의 자유화」,「민족자주의 회복」,「평화의 확산」,「세계의 공동체화」라는 방향으로 전진한 것입니다.이러한 역사의 진전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곳이 아마도 이 베를린일 것입니다. 나는 오늘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오면서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세계가 달라졌음에도 한반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그러나 역사의 힘은 한반도의 통일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1957년 독일연방공화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이 독일 통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해 벌어졌던 토론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역사는 당시 독일의 유럽통합 참여결정이 통일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당기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나는 올해 초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목표로 세계화를 선언하였습니다.나는 한국의 세계화가 한반도의 통일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한반도의 독특한 상황 앞에서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독일과 다른 역사를 물려 받았습니다.단절과 폐쇄 속에 남과 북은 이념과제도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이질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우리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화해협력 단계」,「남북연합 단계」,「1민족 1국가」의 3단계 통일방안입니다. 독일과 한국은 각기 유럽과 아시아에서 서로 유사한 경험을 지니며 유구한역사를 이어왔습니다.양국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독일과 한국을 더욱 가깝게 이어준 것은 전후의 세계사가 가져다 준 민족분단이라는 공통의 아픔이었습니다. 특히 자유의 최전진 기지였던 서베를린과 서울은 깊은 운명적 유대를 느껴왔습니다.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져,번슈타인의 베를린필하모니가 베토벤 제9교향곡 「환희」를 「자유」로 노래했을 때 서울은 진정 환희였습니다.서베를린의 승리가 서울의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두도시는 결코 억압될 수 없음을 역사 속에서 실증했습니다.라인강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으로 화답한 것처럼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의 통일로이어질 것입니다.21세기 희망과 세계를 향해 우리 두 나라 국민이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서울과 베를린이 세계공동체의 선봉이 되게 합시다.
  • 세계 유명실내악단 내한공연 러시

    ◎보자르 트리오/비발디 체임버 오케스트라/바르토크 현악4중주단/보자르/40년간 연주회·레코딩 활동 8천회/비발디/여성들로만 구성… 레퍼토리 다양/바르토크/세계 실내악콩쿠르 휩쓸며 명성얻어 새봄을 앞두고 세계 정상의 앙상블을 자랑하는 유명 실내악단들의 내한공연이 잇따라 열려 실내악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이달 중 서울서 연주회를 갖는 실내악단은 미국의 보자르 트리오(14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러시아의 비발디 체임버 오케스트라(16일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희락성전),헝가리의 바르토크 현악4중주단(17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 등. 「아름다운 예술」이란 뜻을 지닌 보자르 트리오는 세계 음악계에 실내악의 장르를 구축시킨 연주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55년 탱글우드 음악축제를 통해 데뷔한 후 세계 무대에서 8천회가 넘는 연주회와 레코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립멤버인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92년부터 보자르 트리오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카바피안,첼리스트 피터 윌리로 구성된 보자르 트리오는 단원 각자의 뛰어난 기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엮어내는 음색과 폭넓은 레퍼토리로 음악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이후 두번째로 갖는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국내 음악팬들의 귀에 익은 모차르트 피아노 3중주 다장조 K.548,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 라단조 작품 49,베토벤 피아노 3중주 내림 나장조 「대공」을 들려준다.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비발디 체임버오케스트라는 3백여년전 안토니오 비발디가 자신이 경영하는 수도원서 공부하는 젊은 여성들로 체임버앙상블을 구성,활동했던 것을 본받아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제작자인 스베틀라나 베즈로드나야가 88년 창단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창설 이후 프랑스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다양한 레코딩 취입과 연주경력을 쌓았다.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와 곡 해석력으로 비발디 뿐 아니라 바흐 모차르트 스칼라티 로시니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글라주노프 등의 작품을 망라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다루고 있다. 10일 예술의 전당에서 첫 연주회를 가진데 이어 16일에는 로시니 노나타 1번,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비발디 바이올린협주곡,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등을 들려준다. 바르토크 현악 4중주단은 실내악의 강국 헝가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연주단.지난 57년 리스트 음악원 출신 학생들로 창단돼 하이든 국제실내악 콩쿠르,부다페스트 국제실내악 콩쿠르,벨기에 국제 현악 4중주 콩쿠르 등을 휩쓸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제 1바이올린 페테르 콤로시,제 2바이올린 게자 하르기타이,비올라 게자 니메트,첼로 메저 라슬로.이번 내한 공연에선 베토벤 현악 4중주 F장조 작품 18의 1,브람스 피아노 5중주 F단조 작품34 (피아노 박승민),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를 연주한다.
  • 설연휴 극장가/신작영화 “봇물”

    ◎영원한…/「정조개혁」 둘러싼 당파 갈등 그려/불멸의…/베토벤의 음악열정·인간적 고뇌/「밴디트 퀸」은 인도 계급사회의 모순 다룬 화제작 올해 설 연휴에는 어떤 영화를 보아야 할까.극장가 최대대목인 구정을 앞두고 신작영화들이 대거 쏟아져나와 영화팬들을 즐거운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하고있다. 28일 하루에 개봉될 영화만도 예닐곱편.이 가운데 특히 화제를 모을만한 작품으로는 한국영화「영원한 제국」을 비롯,할리우드영화「불멸의 연인」,인도영화「밴디트 퀸」등 3편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인화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원한 제국」(감독 박종원)은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18세기,정조 집권시대를 배경으로 왕권과 신권의 정치적 갈등을 그린 작품.정조가 부르짖었던 개혁의 명분과 실체를 한 규장각 사서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미스터리극 형식을 빌려 해부한다.정조를 따르는 남인은 붉은 옷을,심환지를 정점으로 한 노론파는 푸른 옷을 입는 등 적대적인 두 세력의 대립을 색상의 대비로 상징처리한 점이 돋보인다.영조대왕의 비서「금등지사」의 행방을 쫓는 「역사의 퍼즐게임」이 추리극의 묘미를 느끼게 하지만 중첩된 갈등구조가 좀 지루한 감을 주는 것이 흠.성군이자 야심가였던 정조역에 안성기,노회한 노론총수 심환지역에 최종원,작품의 화자인 이인몽역에 조재현,명쾌한 논리로 사건을 규명하는 정약용역에 김명곤,인몽의 처 상아역에 김혜수가 열연했다. 「불멸의 연인」(감독 버나드 로즈)은 악성 베토벤의 음악적 고뇌와 열정을 다룬 전기영화다.소리를 잃어가는 처절한 고통속에서 그가 겪었던 사랑하는 여인과의 만남,격정적인 사랑과 파경을 베토벤 자신의 심경이 담긴 교향곡,협주곡,소나타 등의 음악을 매개로 풀어나간다.영화는 베토벤이 「나의 천사,나의 모든 것,나의 분신」으로 불렸을만큼 사랑했던 여인 조안나(요안나 테르 슈테게)와의 운명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주변과의 끝없는 불화를 통해 한 음악가의 천재적 괴퍅성이 한꺼풀씩 드러나면서 관객은 인간 베토벤의 참모습과 만나게 된다.헝가리 최고의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경의 지휘로 펼쳐지는 기돈 크레머 바이올린,요요마의 첼로,머레이 페라이어의 피아노 선율이 음악영화로서의 리얼리티를 한껏 살려준다.베토벤 역은 「JFK」「드라큘라」「트루 로맨스」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연기파배우 게리 올드만이 맡았다. 「밴디트 퀸」은 지난 88년「신상」이후 두번째로 국내에 소개되는 인도영화.「인도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전설적인 여자산적 두목 풀란 데비의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10대 영화에 들기도 한 화제작이지만 인도 계급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인화성 강한 내용때문에 지금까지 인도내 상영이 금지돼 있다.인도영화의 고전「미스터 인디아」를 연출한 세카르 카푸르 감독 작품.인도의 인텔리 배우 시마 비스와스가 풀란 데비로 나온다.
  • 단구가 「지능높고 오래 산다」고(박갑천칼럼)

    근년들어 혼담이라도 오갈양이면 신장에 관한 말도 나온다.『아니,남자 키가 고작 1백70이란 말예요?』.한세대 전이라면 「장신」쪽이라할 1백70을 「작은편」으로 모는 말투다. 그럴만한 사정은 「93초중고생 체력검사」결과가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그에 의할때 남학생 평균키는 국민학생 1백32.5㎝,중학생1백58.2,고등학생 1백69.7이다.고교생은 1백70에 이르고 있잖은가.이는 고1∼고3 평균치이므로 고3이면 1백70은 대체로 넘어섰음을 알게한다.그러니 1백70이 우습다는 거다(94년 남자평균키는 1백72=경희의대조사). 우리의 체위는 해마다 늘어난다.그래서 국민학생 체위가 구세대어른을 앞지르기도 한다.잘먹은 덕분이라지만 향상된 체위가 반드시 건강한 체력과 비례하는건 아니라는데서 성찰의소리도 나온다.이런터에 미국의 미래학잡지 「퓨처리스트」최근호 기사가 주목을 끌게한다.요약하자면 작은키의 사람이 지능도 높고 우수하며 잔병없이 장수한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인류는 장래를 위해 키를 줄여나가야 옳다는것.그 목표치를 1백22∼1백40으로 잡고 있으니 이는 인류의 난쟁이화운동이라고 하겠다. 그 기사에는 피카소,볼테르등 키작은 유명인들을 내세워 놓고 있지만 일찍이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롬브로소도 그의 「천재론」 가운데 키작은 천재들을 적어 놓은바 있다.알만한 이름들을 몇몇 추려보자.알렉산더 대왕­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에피쿠로스­아르키메데스­에픽테투스(나는 난쟁이다,고 그는 가끔 말했다)­에라스무스­기번­바이런­스피노자­모차르트­베토벤­토머스 모어­하이네­찰스 램­베카리아­발자크­브라우닝­입센­멘델스존…등등.본디 키가 작은 동양의 경우야 서양과 함께 얘기할건 못된다.하여간 우리에게도 키가 작아야 큰일을 해낸다는 말이 있어왔고 또 실제로 키작은 인물들을 역사에서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수 있다.고려 강감찬 장군만이 아니다.「죽창한화」에 보이는 이근이란 당꼬마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일 뿐이다.그는 성인이 됐는 데도 키는 3자 정도였다.하지만 경전·사기에 능통했고 시재 또한 뛰어났다.임진왜란 때는 포로로 잡혀 애끊는 초사를 부름으로써 왜장을 감동시켜 풀려난다. 체위 작은걸로 너무 기죽을 일은 아니다.비록 외모로야 당당한 체위에 눌린다 해도 내면세계란게 있잖던가.
  • 지휘자 원경수(이세기의 인물탐구:66)

    ◎완벽한 화음 연출… 타고난 예술가/탁월한 재능… 악보속 숨겨진 작고고가 의도 읽어내/미·영·러·독무대 활약… 작년 서울시향 맡아“새바람”/부친 반대하자 음악위해 가출… 미·오스트리아서 지휘공부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인 카를 뵘은 『지휘자란 손의 움직임 보다는 내면적인 접촉으로 철학적 사상과 정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토스카니니처럼「악보에 적힌 것을 그대로 소리로」옮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푸르트벵글러처럼「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세밀하게 파헤치는 거장도 있다.어쨌든 지휘자가 지적인 음악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과 예술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사고를 고루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지휘자 원경수는 지휘자의 가장 바람직한 조건중에서 한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주의자에 틀림없다. 한번 들으면 악보를 줄줄이 외우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전문가 뺨치는 편곡실력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직접 다루고 어떤 악기군이 작곡자가 의도한 악보대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면 이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다.첼리스트였던 토스카니니가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지만 원경수는 악보속에 숨겨져 있는 번뜩이는 예술성을 끄집어내어 재창조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뿐만 아니라 콧대 높은 세계적인 연주자일지라도 원경수 예술의 질서속에 그의 소리를 몰아넣음으로써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청중 모두를 일시에 침묵시키고야 만다. ○세상물정엔 어두워 원경수는 한마디로 음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그와 오랫동안 많은 연주를 해냈고 또 그를 경원대 음대 대우교수로 초청한 피아니스트 신수정은『그의 일생은 음악이 바로 종교』라고 단적으로 단정해버린다.평소의 그는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이 천진무구하다.이해타산도 모르고 세상물정에도 어둡다.그러나 음악에 관한한 어떤가.그 자신이 어릴때부터 그래왔던것 처럼 음악에서만은 만능이며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다.기라성같은 세계 정상급과의 협연에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시키기 위해열의에 찬 정열을 식히지 않는다.그래서 처음 그를 만난 사람은 피곤할 수 밖에 없게 된다.그러나 그를 만남으로써 음악이 향상되고 있음을 스스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좀더 새로운것,실험적인 것에 도전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그의 특징은 행사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그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을 지향하는 타입이다.초연 작품을 즐겨 선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의 하나다.윤이상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영국 에든버러대 배리쿠퍼교수가 찾아낸 베토벤 10번 1악장,에네스코의 루마니안 랩소디 2번,그리고 모차르트의 새교향곡 a단조(K16a)초연등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감동적인 명연주들이다. 미국 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였던 그가 지난해 서울시경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을때 정재동이후 키를 잃고 방황하던 시향에 뭔가 범상치 않은 바람이 불 것같은 예감에 음악계는 긴장과 생기가 감돌았다.그리고 그의 시향은 지난 1년간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싱싱한 전열을 가다듬었다.과연 그의 송년음악회는 해마다연주되던 베토벤 9를 과감하게 버리고 「전원」과 「운명」으로 「평화롭고 엄숙하게」 막을 내렸다. 원경수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서 태어났다.당시 화신백화점 전무로 있던 원대참씨와 김계복여사의 3남매중 장남으로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한번 들은 곡은 오선지에 채보하거나 피아노로 방금 옮겨 칠만큼 섬세예민한 음감을 타고났다.부친은 상당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텔리임에도 아들의 음악만은 완강히 말렸다.만약 음악을 계속할 경우 부자의 연을 끊겠다고 말했다.그도 『굶어죽더라도 음악을 포기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와버렸다.그때가 경복고를 졸업하던 47년이었다. ○레코드 한장들고 낭와 그런 결심을 하게된데는 성장과정에서 그가 자기자신에게 해온 하나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끝없이 소리내며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면서 「나는 장래 무엇이 될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것인가」를 자문했고 그리고 무엇이 되든지간에 「주말이나 월급날을 기다리는 틀에 박힌 인생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메뉴인이 연주한 레코드 한장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온 그는 장래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를 능가하는 연주자가 될것을 꿈꾸며 혼자서 독학한 실력으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부산 피란시절에는 이화여대 임시강당에서 바이올린 독주회,이를 인연으로 후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김영욱의 바이올린 레슨을 맡아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김영욱의 집에 기식한 시기도 있다.그후 선배 지휘자인 임원식씨의 소개로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고려교향악단에 들어가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 뵈탕의 솔리스트로 활약하다가 54년 한국을 방문했던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도어 잔슨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유학하기에 이른다.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것은 미국 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와 인디애나대 졸업후 빈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를 전공,61년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 지휘자였던 피엘 몽퇴가 주관한 행커크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부터다.피엘 몽퇴의 제자의 대열에 서게된 그는 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를 거쳐 67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중심지역인 스탁톤에서 40년 역사의 스탁톤 오케스트라를 지휘,다음날「스탁톤 저널」은 『이 오케스트라는 일찍이 이처럼 훌륭한 연주를 한적이 없다.특히 피아니시모의 처리는 섬세한 연주의 심벌이었다』고 대서특필했다.그날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기립박수로 앙코르를 외쳤고 그는 60여명의 후보자 가운데 당당히 새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지휘로 국제무대에 오른 그는 76년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의 저명한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를 지휘.당시 빈 아카데미에 유학하고 있던 시향의 김영목씨 편지에 따르면「그의 연주 티켓은 며칠전에 매진됐으며 동양에서 오는 한 지휘자에 대한 이곳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은 대단하다」고 전한 적이 있다.「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빈 사람들의 긍지와 자존심 자체」였으나 그의 연주는 「그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만족시켰다」고. 퉁퀸스틀러 오케스트라 연주에 앞서 그해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교향곡7번과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를 연주했을때 음악평론가 이성삼은 『원경수의 지휘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지 못하던 서울시향은 오랜만에 융합된 화음과 투명한 톤으로 생기에 찬 발랄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호평했다.이는 그의 국제적 성공을 예고하는 팡파르가 되었다. ○그림솜씨도 뛰어나 아마추어를 능가하는 그림솜씨 또한 유명하다.전람회를 열만큼은 아니지만 흑석동에 있는 그의 집에는 그가 그린 추상계열의 작품들이 벽면마다 장식되어있다.이 그림취미는 그가 지휘할때마다 눈앞에 떠오르는 색채의 멜로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베토벤이 마치 구름처럼 또는 폭포수처럼 곡조의 환상을 이루는 화면속의 장엄미사는 문자 그대로 장관이 아닐수 없다.패션디자이너인 부인 서혜자여사와의 사이엔 알리사(27·재미 변호사)와 저스틴(26·MIT박사학위중)남매, 현재 서울엔 부인과 둘이 살고 있고 건축가 원정수씨가 실제다. 강한 추진력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하고 날카로운 지휘,그의 피아니시모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작고 청려하며 그의 포르티시모는 웅대하고 장쾌하다.어느 한군데도 흠잡을 수 없이 유연하고 세련된 흐름이 원경수 예술의 진수일 것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는 서울시향의 교향곡축제는 그가 편애해 마지않는 말러 심포니로 시작된다.「말러를 가장 말러답게」로 평가되는 바로 그 말러다.말러 자신이 말한대로 「초원의 꽃이 천국의 속삭임을 전달하는」 환상적인 묘사풍은 「음악은 너무 흘러넘치지 않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것같다.언젠가 런던 익스프레스지가 『마에스트로 원과 함께 악보뒤에 숨겨져 있는 음표를 파헤쳐 함께 즐긴다』고 지적한 것처럼 한 예술가의 인생의 경륜과 예술혼이 깃든 지휘는 수준높은 청중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것에 틀림없다. □연보 ▲1929년 서울출생 ▲1945년부터 바이올린 독학 ▲1952년 서울대 음대졸업 ▲1952∼54년 고려교향악단 단원 ▲1954∼61년 메인주 행커크서머스쿨 피엘몽퇴,심포니 오브더 에어의 월터 핸더슨에게 지휘법 사사 ▲1957∼65년 인디애나주립대 작곡·바이올린·지휘전공,신시내티 뮤직콘설바토리 도어 잔슨에게 지휘및 바이올린전공,신시내티심포니 필리핀 마닐라심포니 인디애나주립대 교향악단 지휘 ▲1963년 중서부지역 바이올린 독주순회,뉴올리언스 교향악단 부지휘자 ▲196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지휘전공 ▲1967∼94년 모데스토 심포니,스탁톤 심포니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2년 서울시향 음악감독겸 상임 지휘자 ▲1970∼78년 캘리포니아 스탁톤뮤직콘설바토리및 패시픽유니버시티 강의 ▲1976년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1975∼89년 빈 퉁퀸스틀러(음악가협회)오케스트라 지휘 ▲1976·80년 베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 지휘 ▲1978년 런던 필 지휘(런던 화이어 버드홀) ▲1981년 베를린 괴테 인스티튜트 수학 ▲1982·87·89년 에이레 국립 오케스트라와 칠레 아르헨티나 연주 ▲1984년 서울시향과 미순회 연주 ▲1985년 런던 필 지휘(런던 바비컨센터),KBS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1986년 빈 서머뮤직 페스티벌.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바비컨)▲1988·89년 체코슬로바키아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렉싱턴 필하모닉오케스트라,베를린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1992년 경원대 대우교수 ▲1994년 뉴모스코 스테이트 필하모니 지휘(차이코프스키홀),스탁톤 심포니 명예 지휘자및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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