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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차이나-시진핑 시대 사람들] (2) ‘공산주의청년단 상속자’ 리커창 상무부총리

    [뉴차이나-시진핑 시대 사람들] (2) ‘공산주의청년단 상속자’ 리커창 상무부총리

    내년 3월 총리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한 중국의 리커창(李克强·57) 상무부총리는 시진핑(習近平·59) 국가부주석과 함께 다가올 ‘시진핑 시대’의 양대 축을 이룰 인물이다. 시 부주석이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그룹)과 상하이방(상하이지역 정치세력 그룹)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리 부총리에게는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그룹)라는 굳건한 버팀목이 있다. 어느 면에서는 시 부주석을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적어도 5년 전까지는 시 부주석을 앞서 있었다. 2006년 12월 뉴스위크는 아시아판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 지도자’를 전망하면서 시 부주석 대신 리 부총리를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꼽았다.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가 열리기 한 달 전인 2007년 9월까지도 리 부총리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낙점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안후이(安徽)성 동향인 후 주석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져 왔다. 후 주석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일하던 1983년 말 리 부총리는 후보서기로 그와 인연을 맺어 스스럼없이 ‘커창’ ‘진타오’라고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사제 겸 동지 관계를 이어갔다. 리 부총리가 1993년 겨우 38살에 장관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오른 것도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후 주석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년후 리 부총리는 ‘농업대성’인 허난(河南)성으로 내려가 성장과 당서기를 지냈고, 2004년 12월부터는 ‘동북진흥’의 핵심지역인 랴오닝(遼寧)성의 당무를 주관했다. 이 모든 것은 리 부총리로 하여금 농업대성과 공업대성을 주관한 경험을 갖추게 한 다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불러 올리려는 후 주석의 배려였다. 리 부총리는 후야오방(胡曜邦)에 의해 착공돼 후 주석이 완공한 공청단 세력의 계승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그가 ‘시진핑 시대’의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과반에 육박하는 지분을 가진 동업자이자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렇다 할 지지세력이 없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는 달리 리 부총리는 엄청난 브레인과 힘을 갖추고 있다. 전국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공청단 출신 인사가 당무를 맡고 있는 지역은 18개에 이른다. 리 부총리에 이어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지낸 저우창(周强) 후난(湖南)성 당서기와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당서기 등이 떡하니 뒤를 받쳐주고 있다. 리 부총리가 제1서기이던 시절 서기로 호흡을 맞췄던 지빙셴(吉炳軒) 헤이룽장(黑龍江)성 당서기, 위안춘칭(袁純淸) 산시(山西)성 당서기, 장다밍(姜大明) 산둥(山東)성장, 류펑(劉鵬) 국가체육총국장 등도 ‘리커창 사단’으로 꼽힌다. 후 주석의 노골적이고도 과감한 발탁에 힘입어 공청단 출신은 당·정의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다. 리 부총리 본인의 출중한 ‘개인 플레이’도 기대된다.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모교에서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과정 시 제출한 논문 ‘중국 경제의 3원구조를 논함’은 1991년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경제과학상’을 수상했다. 저명한 헌법학자 궁샹루이(?祥瑞), 자유주의 경제학자 리이닝((勵以寧) 교수 등의 총애를 받았다. 이처럼 재능이나 학벌·경력, 거기에 후 주석의 ‘후광’까지 모든 면에서 시 부주석을 압도했던 리 부총리가 2007년 전대에서 시 부주석에 밀린 것은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시 부주석을 전폭적으로 밀었던 데다, 노골적으로 공청단 세력을 키웠던 후 주석의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리 부총리가 허난성 당·정을 주관하던 시절 에이즈 만연 사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과 함께 자유주의가 만연한 베이징대 출신이라는 점, 망명한 시민운동가 왕쥔타오(王軍濤), 후핑이(胡平一) 등과 친구라는 점 등도 공산당 원로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리 부총리가 상무부총리 취임 이후 이렇다 할 실적이 없어 왕치산(王岐山) 부총리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들어 적극적인 행보로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위커핑 中 공산당 편역국 부국장

    [피플 인 포커스] 위커핑 中 공산당 편역국 부국장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논의는 불타오를 것이고,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 브레인으로 꼽히는 중국 공산당 편역국(編譯局) 위커핑(?可平·53) 부국장(차관급)이 지도부 교체가 이뤄지는 2012년 벽두부터 또다시 민주주의 논의에 불을 지피고 나섰다. 지난 2010년 류샤오보(劉曉波) 노벨평화상 수상 및 원로 당원들의 언론자유 요구 집단행위 이후 중단됐던 중국 내 민주주의 논의가 다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정치 이론가인 위 부국장은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전제 아래 당내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한다. 2006년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에 게재한 ‘민주주의란 좋은 것’이란 글에선 “사람들이 멋진 집과 자동차를 가져도 민주적 권리가 없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누린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인권과 자유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공산당 일당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어서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몸담고 있는 편역국에서도 당내 민주주의 논의 확산 노력은 계속된다. 1930년대 설립된 편역국이란 곳은 ‘공산당 선언’, ‘자본론’과 같은 책을 중국어로 번역해 중국인들에게 사회주의를 전하던 당의 핵심 기관인데, 그가 편역국 내 연구소장을 맡은 뒤 ‘중국 지방정부 혁신 우수상’을 제정했다. 현·촌 단위의 선거 등과 관련된 당내 민주주의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해 상을 준다. 그는 지난 8일 열린 이 상의 제6회 시상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주의와 관련된 의견의 교류는 정부의 정책 시행에도 도움이 된다.”며 젊은이들의 민주주의 논의가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9일 전했다. 주요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 당 서기를 선거로 뽑는 게 무슨 민주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리커창 부총리를 제치고 차기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데는 중앙 공산당 당직자들의 비밀투표가 있었다는 점에서 당내 민주주의를 외치는 그의 주장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제1대 토종 정치학 박사(베이징대)이자 중국식 마르크스주의가 전문인 중국 정치 이론가다. 1993년 편역국 연구소에 들어가 97년 연구소 소장이 된데 이어 2003년부터 부국장직을 맡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한·중 수교 20년] “안보·군사 교류 한계 안타까워”

    [한·중 수교 20년] “안보·군사 교류 한계 안타까워”

    한·중 수교 20년을 바라보는 양국 학자의 시각은 어떨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한·중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돌아보는 양국 관계’를 주제로 마련한 한·중 언론교류 프로그램에서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선딩창(沈定昌) 베이징대 교수를 만나 양국 관계의 발전 방안과 전망을 들었다. “수교 20년도 안 돼 최상위 단계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한·중 외교는 세계 외교가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경제·문화 교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한·중 관계에서 보듯 안보·군사 분야에서는 구조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아쉽습니다.” 강준영(50) 한국외국어대 중국학과 교수는 양국이 1992년 수교 이후 경제·문화·사회 교류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중국은 한국의 1위 무역국이고, 한국은 중국의 3위 무역국일 정도로 경제 영역에선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와 서울을 찾는 중국 관광객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경제교류가 확대되고, 양국 방문이 잦아지면서 서로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나 오해로 인한 갈등도 커지고 있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작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선 큰 문제가 될 소지가 늘고 있다.”면서 “일례로 동북공정의 경우 중국에선 학술적 문제로 보지만 우리나라로선 역사 부정이란 차원에서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을 줄이려면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북한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후퇴하는 듯 보이는 한·중 관계에 대해선 양국 모두 구조적인 한계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중국이 진정한 강국이 되려면 한반도 문제를 세계적인 틀에서 전략적으로 판단하도록 설명하고, 설득하는 길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중 수교 20년] “양국 마찰 상대 입장서 이해를”

    [한·중 수교 20년] “양국 마찰 상대 입장서 이해를”

    “중국과 한국은 수천년 교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근현대에 와서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고, 대치 관계에 놓인 적도 있지만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교류하면 양국 모두 발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베이징대 한국학연구중심 주임(소장)인 선딩창(61)교수는 “양국 관계는 수교를 맺은 지 20년 밖에 안 됐지만 매우 빠르게 발전해왔다.”면서 “북한 문제와 역사 문제, 네티즌 여론 등과 관련해 일부 마찰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세기간 격리돼 있다가 친구가 된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며 양국 관계를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선 교수는 남·북한을 두루 경험한 한반도 전문가이다. 평양 김일성종합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교육관으로 재직했으며, 1994~9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근무했다. ‘한국 외교와 미국 관계’ 등 전문 저서와 더불어 한국 단편소설과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기행문 등 20여편의 번역서를 냈다. 선 교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중국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고구려 역사 문제와 일부 네티즌의 혐한(嫌韓) 문제 등이 불거져 안타깝지만 많은 부분이 오해로 인한 것인 만큼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 한국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대 평가한 측면이 크다.”면서 “서로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중 3국 관계의 전망에 대해선 “한·미와 중·조(북한)관계의 두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며 말을 아꼈다. 베이징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저자와 차 한 잔]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중국은 한국을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을까. 뒤엉켜 있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밑바닥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했다. 중국은 우리를 째려보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아바타’라며 과민반응하기도 한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재경부 차관, 산자부 장관, 국회의원,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등 관계·정계·학계를 두루 거친 경제관료 출신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중앙북스)을 펴냈다. 정 이사장은 “2003년 가을학기 베이징대 초빙교수를 지낸 것을 계기로 8년 가까이 보고 공부한 중국을 105개 분야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는) 중국의 부상이란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이 추락하고 동아시아 축이 상승하는 과정 속에서 중국의 태도가 심각하게 달라졌다. 세계 양대 세력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틈새를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08년 이전 내부 문제에만 관심을 보이며 웅크리고 있던 중국이 힘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자세로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해시대 개막으로 얻어 왔던 경제적 이익 균형과 한·미 동맹체제의 안보 균형의 공존이라는 우리의 생존 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 커가는 중국의 존재감은 우리에게 새로운 외교와 달라진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위축과 중국의 개입주의 확대 속에서 북한을 둘러싼 한·미와 북·중 사이의 긴장도 커졌다. 한·미 동맹 탓에 커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할 수는 없다. 중국은 한국 경제의 젖줄이 되고 있고, 한반도 통일도 중국 동의 없인 불가능하다. 한·미 안보관계를 버릴 수도 없고, 과도한 중국 영향력 확대도 경계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이익 사이의 갈등과 균열을 니어재단의 연구로 진행, ‘연미 화중’(聯美 和中) 개념을 제시했다. “동맹 유지속에서 중국과 전략 대화 심화”로 요약하겠다. 한국은 미국 일변도로 가선 안 된다. 균형외교라는 정교한 개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중국은 우리를 째려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미국에 편향적이란 불만이 있다. 한·미 동맹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이 중국과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딴 꿈을 꾸고 있다고 불신한다. 이성적 친구지만 감성적 타인이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미국이란 슈퍼파워에 둘러싸여 있다는 고립 의식이 강하다. 중화 정서와 함께 다중적인 마음의 밑바닥도 살펴야 한다. 경제적으로 두 나라는 보완적 생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을 친구로 둬야겠다는 바람도 크다. → 째려보는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중국인들도 정책 결정권을 쥔 권력 상층부와 일반인들의 생각에 큰 차가 있다. 중국의 정책결정 과정은 합의를 중시하는 집단지도체제여서 과거 매뉴얼대로 가는 경향이 높다. 보통 사람들은 세계사의 조류 속에서 변화하려 하고 대응도 현실적이다. 세대에 따라 문제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에도 큰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화나 경제 성장에 따른 우리와의 격차도 좁혀지고, 시각 차와 갈등도 함께 줄 것이다. → 바람직한 한·중 관계는 어떤 것인가. -감성적으로도 친구가 돼야 한다. 우리는 중국을 강대국으로서 배려하면서 할 말은 다하고 대등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전략적 수정이 필요하다. 중국과 밀착하면서도 미국과도 적당한 선에서 균형을 취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각은 변화무쌍하고 엉켜 있다. 우리 외교안보 체제가 적응하지 못할 뿐이다. 미국이 우리 현실을 이해하도록 설득하고 새로운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생존과 함께 통일 방정식도 함께 풀어야 한다. → 중국이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지적도 했는데. -10년쯤 후인 2020년이면 정부 주도의 발전체제에서 벗어날 것이다. 국민의 상향요구와 시장의 힘이 커지고, 민주화 진전 속에서 공산당 일당의 사회 운영 골격도 달라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2년부터 10년동안 집권할 시진핑 현 부주석 이후의 ‘포스트 시진핑 시대’에 많은 갈등과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의 불안정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는 한국과 타이완이란 점에서 숙고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중국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 김정일 사후 중국의 역할은. -중국은 아직 북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북한 나름대로 개혁·개방으로 가면 한·중 관계도 순탄하게 풀리겠지만 북한이 고립을 고수하면 양국 관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표현 자체가 완곡하고 느긋해서 그 본뜻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깨닫고 느낄 때는 이미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화가 나도 중국사람들은 마음에 품고 기다릴 줄 안다. 중국은 협상을 잘해야 하는 나라라기보다는 기존 방식으로 협상이 불가능한 나라다. 협상 순서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밀담을 통해 막후에서 주요 사안들을 조정하고,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의외성도 대비해야 한다. 글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태양 비밀 풀어라”… 中 기상 패권 첫발

    “태양 비밀 풀어라”… 中 기상 패권 첫발

    우주개발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이 내년부터는 태양의 신비를 찾아나서는 ‘콰푸계획’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콰푸계획’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관측 위성을 띄워 태양 폭풍, 태양 자기장 등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각종 물리적 현상 등을 100% 파악하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다. 태양의 강렬한 열과 빛 때문에 30% 정도밖에 관측할 수 없는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2003년 베이징대 투촨이 교수 등이 처음으로 개념을 제시했으며 2009년 중국과학원 주도로 국무원 비준을 획득했다. 2015년까지 진행될 1차 콰푸계획에는 모두 3기의 위성이 동원된다. 우선 내년부터 2014년까지 태양이 왕성한 활동기에 들어선다는 점을 감안해 내년에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지구와 태양의 일직선상에 콰푸A 위성을 쏘아올려 24시간 태양 활동 관측을 시작한다. 이어 지구 극궤도에 콰푸B 위성 2기를 쏘아올려 태양 활동으로 비롯되는 오로라 및 지구의 각종 극지 환경변화 등을 관측할 계획이다. 어느 시점이고 지구의 뒤쪽에 숨겨질 수밖에 없는 일반 위성들과는 달리 콰푸 위성 3기는 모두 24시간 태양을 향하게 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구와 태양 사이를 관측하게 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태양 활동으로 비롯되는 각종 지구 재난 예측도를 높이고, 통신장애 등의 원인 규명 및 예방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콰푸계획 참여자인 산둥(山東)대 샤리둥(夏利東) 교수는 “콰푸계획이 성공하게 되면 중국은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우주공간의 기후통계 근원을 확보하게 된다.”면서 “국제적으로도 이 분야의 관측은 사실상 공백상태”라고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초등학생들, 5성급 호텔서 ‘호화판 송년회’

    中초등학생들, 5성급 호텔서 ‘호화판 송년회’

    베이징대학 부속초등학교 4학년 학생 일부가 지난 18일 베이징의 유명 5성급 호텔에서 친목회를 가진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베이징 시사일간지인 징화스바오의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대학 부속초등학교 4학년 2반 학급생 30여 명과 학부모 50명은 송년회와 친목회를 명분으로 고급호텔에서 저녁식사시간을 가졌다. 참가인원 중 약 30명은 식사가 끝난 뒤 따로 뷔페를 신청해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CCTV의 객원평론가인 양위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설사 모든 학부모가 5성급 고급호텔에서의 친목회를 찬성했다 할지라도, 다른 반 학생들을 고려했어야 했다.”면서 “이러한 행동이 잘못은 아니지만 최선의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경제상황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초등학생들의 미래 가치관을 고려하면 지나친 소비는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고급호텔친목회에 참가한 한 초등학생은 “이전에도 이러한 모임은 있었지만 이번에 갔던 장소가 매우 좋았던 것”이라면서 “다른 반 학생들도 호텔에서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 교장은 “호텔에서 송년모임 및 친목회를 갖는 것은 학교가 아닌 학급 내에서 결정한 것이며, 아마도 몇몇 학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모임을 주최한 것 같다.”면서 “학교 측에서는 이러한 모임을 지지한 적이 없으며 최소한 자제하도록 권유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정일 15개월간 네 차례 中 방문 목적은 김정은 안착

    17일 갑작스레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말년에 왜 중국 방문에 매달렸을까. 김 위원장은 2010년 5월 이후 올해 8월까지 네 차례나 병든 몸을 이끌고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특히 올해 5월 중국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6000여㎞를, 8월에는 러시아·중국 방문에서 1만여㎞를 강행군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쫓기는 듯한 방중 행보는 생전에 후계자 김정은에게 보다 공고화된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서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내년 ‘강성대국’ 진입을 앞두고 당장 경제난을 해결하고, 중국 경제개발 현장 시찰을 통해 경제 회복을 부축함으로써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의 현상 유지에 고심하는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중국이 오랫동안 지속해 온 북한 지원 정책을 변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북한에는 시장경제 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외교는 지금까지 아홉 차례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 중 1983년 6월 이뤄진 첫 방문은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경제발전 현장 시찰과 경제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마지막 중국 방문은 지난 8월 25~26일 진행됐다.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 길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대신해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과 회담하고 동북지구를 둘러봤다. 헤이룽장성 치치하얼(齊齊哈爾) 제2선반공장과 다칭(大慶) 도시계획전시관을 시찰했다. 3개월 앞서 5월 20~26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하고 헤이룽장과 지린(吉林), 장쑤(江蘇)성 등을 시찰했다. 헤이룽장성 우단장 하이린(海林)농장, 지린성 창춘(長春) 이치(一汽)자동차공장, 장쑤성 양저우(揚州) 화룬수이궈(華潤水果)슈퍼마켓, 난징(南京) 슝마오(熊猫) 전자그룹 등을 둘러봤다. 2010년 8월 26~30일 이뤄진 방문에서는 장춘까지 날아온 후 주석과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뒤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일대를 참관했다. 지린성 창춘과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기계 제조 및 화학공업, 농업 부문을 시찰했다. 같은 해 5월 3~7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한 후 베이징 보아오(博奧) 생물유한공사를 돌아봤다. 이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쉐룽(雪龍) 산업그룹, 톈진(天津) 경제개발구를 둘러봤다. 동북아 지역 정세 논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진행된 2006년 1월 10~18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한 뒤 베이징 농업과학연구원을 시찰했다. 곧바로 후베이(湖北)성과 광둥(廣東)성으로 이동, 농업·공업·과학 분야의 경제개발구를 참관했다. 후 주석이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뒤 처음으로 이뤄진 2004년 4월 19~21일 방문에서는 후 주석과 회담하고 톈진 경제개발구를 시찰했다. 2001년 1월 15~20일 방문에서는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회담하고 상하이의 발전상에 대해 “천지개벽했다.”고 극찬했다. 2000년 5월 29~31일 최고 지도자로서 첫 방문에서는 장 주석과 회담한 뒤 톈안먼(天安門) 성루와 IT 업체인 롄상(聯想)그룹을 둘러봤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아·태로 전략적 무게중심 옮기는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아·태로 전략적 무게중심 옮기는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외교전략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2박3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 국무장관의 미얀마 방문은 1962년 군사정권 집권 이후 처음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행정수도 네피도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을 만났고, 옛 수도 양곤에서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야당·시민단체 대표들과도 시간을 가졌다. 불편한 관계였던 두 나라의 관계 개선 시도는 미국의 아시아 접근을 상징한다. 클린턴 장관은 앞서 지난달 10일 하와이대 동서센터에서 미국의 외교전략 중심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1월호에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세기’라는 기고를 통해 미국이 왜 중동에서 아·태지역으로 전략 중심을 옮기고 있고, 전략의 원칙과 내용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이 기고문에서 “미·중 관계는 지금까지 씨름한 양자 관계 중에서도 가장 힘겹고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중국 견제가 깔려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방문자리에서 “태평양시대의 대통령”이라고 말했고, 2010년 클린턴 장관은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군도) 분쟁에 “남중국해에 미국은 핵심적 이해를 가진 당사국”이라며 개입 강화 의도를 드러냈다. 클린턴 장관은 “아·태지역이 21세기 경제무역과 전략의 중심이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지역에서 역량을 확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구축 시도, 안보 동맹 확대, 아·태경제협력체(APEC) 주도권 강화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발언과 움직임은 미국의 전략중심이 중동에서 아·태지역으로 옮겨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 같은 조정을 하려 하나. ‘테러와의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태지역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전세계 정치·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이 되고 있고, 미국의 이해관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도권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모순과 갈등이 미국에 파고들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영향력 강화의 빌미를 주는 탓도 있다. 이곳은 정치적 대립과 역사적 모순이 겹겹이 쌓여 있고, 경제적 발전단계도 큰 차이를 보인다. 다른 이념과 생각들이 부딪치고 있다.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의 발전을 막으려 한다. 아·태지역에서 미국 외교전략의 초점은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정하느냐다. 미국의 대중전략 기조는 중국의 빠른 발전과 국력 강화를 막고, 중국의 확대되는 국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중국을 의식한 외교전략의 이동이다. 중국 외교의 중점은 국가발전을 위해 평화롭고 안정된 주변환경의 확보에 있다. 미국은 주변국가와 중국 간의 갈등과 부딪침을 부채질한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중심은 관여와 견제였다. 시기와 사안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원칙은 바뀌진 않았다. 호주 최북단 다윈에 미 해병대를 주둔시키기로 하고 우선 250명을 파견한 것도 중국을 겨냥한 일본, 필리핀 등과의 안보 동맹 일환이다. 미국은 중국을 둘러싼 전략적인 포위망을 만들려 해왔다. 난사군도 및 시사군도(西沙群島) 분쟁 탓에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아시아 국가들도 있다. 미국은 인도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위협’ 견제라는 점에서 인도도 미국과 공감대를 갖고 있고,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독립적 외교를 중시하는 인도가 미국을 추종하거나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사회경제적 개혁, 민주화의 확대, 빈부격차 해소와 부정부패 방지. 낮은 자세로 주변국가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 사려 깊고 조화로운 정책 추구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CHINA HUNAN-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鳳凰古城에서의 밤과 낮 짧거나 긴 머무름 펑황고성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 심종문(SHEN CONGWEN). 그는 펑황고성을 떠올리게 하는 전원 소설 <변경>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중국 역사유물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들 방대한 영토 안에 한 국가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다양한 소수민족들. 그들이 보여주는 문화가 지방마다 다르기에 중국은 여행을 거듭해도 언제나 처음처럼 신선한 느낌이다. 전통가옥과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고성古城’ 혹은 ‘고진古鎭’이 처음은 아니지만 후난성의 고성을 방문했을 때, 그 시간들은 여전히 이색적이었다. 그 고즈넉한 여행을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지혜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02-773-0393 자연이 만들고 지킨 고성마을 고성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므로 배경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펑황고성은 행정구역상으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의 펑황현에 속한다. 1957년에 지정된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는, 자치주 청사소재지인 지소우시吉首市와 루시현瀘溪, 구장현古丈, 후아위엔현花垣, 바오징현保靖, 용순현永順, 롱산현龍山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앞에 상서가 붙은 이유는 상강湘江이 흐르는 후난을 한자로 ‘상湘’으로 표시하기 때문이다. 상서 지역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외국인이 소수민족의 문화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나, 다른 지역의 소수민족은 묘족, 강족, 장족 등이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이곳은 토가족 문화가 강하다. 2006년 기준으로 276만명이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약 71%가 토가족과 묘족이다. 펑황현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청나라 때부터 부르던 것. 현존하는 성곽 터 등은 대부분 원명 시대에 기초를 형성했고, 청나라 때 보수하고 개축했다. 산이 겹겹이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특유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펑황고성은 타강?江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쭉 이어지는데, 목조로 된 가옥을 떠받치기 위해 세워놓은 얇고 길쭉한 나무들이 인상적으로 보였다. 강을 넘어 침범해 오는 적을 방어하고 홍수를 막기 위해 성곽은 강을 따라 세워졌다. 평지가 많은 중국 강남에는 성곽이 드문 편인데 펑황고성은 이런 지형적 조건 때문에 독특한 형태의 고성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아직 옛 건물의 겉모양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호텔, 상점, 카페, 바BAR 등으로 개조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일반 호텔에 묵을 수도 있지만, 다소 불편함이 있어도 타강을 따라 형성된 옛 거리에 묵으면 오래된 도시의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펑황고성에는 타강을 따라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다. 수심이 낮고 해초가 많아 동력배는 이용할 수 없고, 여전히 나룻배와 돛단배가 교통수단으로 유용하다. 이런 유유자적한 모습이야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를 떠나온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다 도시인을 사로잡는 거리 산책 이제 본격적으로 펑황고성 산책을 시작해 보자. 타강을 따라 성 밖으로는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고, 그 반대편인 성 안쪽에는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북문인 벽휘문에는 수심이 낮을 때에도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나룻배와 돛단배 여러 척이 자리하고 있다. 보기보다 민첩한 배들은 관광객을 태우고 일주를 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홍교는 청나라 강희제 때 보수한 후 지금까지 당시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홍교에는 내부에 전망대가 있고, 부근으로 바와 카페들이 즐비하다. 반면, 홍교 건너편에 위치한 승항문쪽에는 소소한 전통 공예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이어지고 있다. 펑황고성은 특별히 사진 촬영을 위한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거리에서 고가의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진 이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풍경 자체가 멋져서 (똑딱이라고 하는) 소형 카메라만으로도 괜찮은 여행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촬영의 적시는 해질 무렵이다. 혹은 해 뜨기 직전의 물안개 낀 모습도 특별하다. 펑황고성의 밤과 낮 풍경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낮의 펑황고성이 손님들로 분주한 상가와 여행객들의 상기된 표정으로 들썩인다면, 밤은 차분한 가운데 화려한 불빛이 타강 전체를 타고 흐른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전광판을 내걸지는 않았다. 어두운 강이 반사판이 되어 불빛이 저 홀로 2배, 3배로 환하게 반짝일 뿐이다. 기념품이야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지만, 토가족과 묘족은 전통 수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이 유난히 빼어나다. 베틀로 직접 짠 천과 그것을 다시 한 땀 한 땀 꿰매 만든 망토와 숄이 예쁘게 걸려 있다. 몇 대에 걸쳐 염색 기술을 전승해 온 공방도 있다. 묘족은 결혼 예물로도 은장식을 준비할 정도로 은 세공품 제작기술이 뛰어나다. 길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액세서리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아낙들의 정성 때문에라도 기념품들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만든다고 촌스러울 거라고 생각은 틀렸다. 자연에서 배운 그들의 예술 감각은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펑황의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간식거리도 다양하다. 중국의 음식은 향이 강하고 또 기름져서 샹차이(고수풀)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에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펑황에서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잎사귀에 싸서 찐 찰밥, 쌀로 만들었다는 두부와 짭쪼롬하고 매운 소스를 뿌린 각종 먹을 것들이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 준다. 후난성 펑황현 사람 심종문 ‘심종문, 22세, 학생, 후난성 펑황현 사람.’ 글은 심종문이 문인생활을 위해 베이징으로 갔을 때 처음으로 머물었던 여인숙의 숙박부에 기록했던 자신의 인적 사항이다. 심종문은 1902년에 펑황현에서 태어났다. 펑황고성 여행에 있어 심종문 생가는 주요한 방문지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출간돼 있는 <변성邊城>은 심종문의 대표작이다. 소설에서는 펑황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지 않지만 소설에 묘사된 장소들을 그려 보면 쉽게 작가의 고향을 떠올릴 수 있다. ”쓰촨에서 후난으로 가는 길에 관가에서 닦은 도로 하나가 동쪽으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노라면 후난 서쪽 경계 부근에 차동茶洞이라 불리는 작은 산성이 나타난다. 거기에 작은 강이 하나 흘러 지나가는데 강가에는 작은 흰 탑이 세워져 있고 그 탑 밑으로 외딴 인가가 한 채 보인다. 이 집에 한 노인과 여자애 그리고 누렁개 한 마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 정재서 역/ 황소자리 노인은 단오절에 성 안에서 열리는 용주 시합에 취취를 데려가고, 부두를 관리하는 순순順의 두 아들 천보天保와 나송儺送이 동시에 취취를 좋아하게 된다. 취취도 둘째인 나송에게 끌리지만 정작 중매쟁이를 내세워 청혼한 것은 첫째 천보였다. 뱃사공은 뱃사공대로 외손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려 애쓰고, 천보 또한 두 번에 걸쳐 청혼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후 천보는 사고로 죽고, 충격을 받은 나송 또한 마을을 떠난다. 얼마 안가 뱃사공 노인이 죽고 취취는 할아버지에 이어 처녀 뱃사공이 된다. 취취는 “어쩌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바로 ‘내일’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나송을 기다린다. <변성>을 읽고 있으면 펑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소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도 있다. ” 누런 흙벽이며 검은 기와며 알맞게 자리잡은 집터며, 모든 것이 주변 경치와 한데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시를 좀 읊을 줄 알고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이 강에 작은 배 하나를 띄우고 그 위에서 한 달여를 노닌다 해도 싫증나지 않을 풍경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신기하고 아름다우니 자연의 거대하고 정교한 모습 하나하나가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 - 정재서 역/ 황소자리 고성 한 켠에서 묘족이 전통 혼례를 선보이고 있다. 묘족 아가씨가 혼례에 참가한 하객들에게 전통 미주米酒를 권한다. 미주는 쌀로 만든 술로 우리 막걸리보다 달콤하고 도수가 약해 음료수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소설보다 극적인 작가의 삶 심종문은 삶 자체가 마치 소설 같은 사람이다. 심종문 생가에는 이러한 그의 일대기와 작품,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심종문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구이저우 총독을 지낼 정도로 권력과 재산을 동시에 지녔었다. 그러나 심종문의 어머니는 묘족 여자였고, 또 아버지는 신해혁명 등에 가담해 점차 가세가 기울게 된다. 심종문은 소학교마저 마치지 못했지만, 상서군벌 진거진의 비서로 지내는 동안 송명대의 그림과 고서, 고전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 학력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었지만 베이징대에서 수업을 청강하며 호적, 서지마, 호야빈과 같은 문인사상가들과 교류했다. 그 중 호적이 교장으로 있는 오송중국공학에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고 학교 학생이었던 장조화에게 반해 끊임없는 구애와 무수한 러브레터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좌익사상은 물론이고 문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 심종문은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후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중국역사박물관에 배속돼 활발한 문화유물학자로 성과를 남겼다. 심종문은 <변성>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펑황과 상서, 그리고 후난 지역의 풍경과 사람을 묘사했다. 아내 장조화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와 <상서산행湘西散行>, <상서湘西> 등이 대표적이다. 심종문뿐 아니라 펑황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예술가로 황영옥黃永玉이 유명하다. 실제로 후난성의 장자지에를 방문해 보면, 동양의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그 펑황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 전세계적으로 알린 화가가 황영옥이다. 타강 강변에 자리잡은 그의 화실 ‘탈취루’ 역시 펑황의 명물인데, 심종문과 그는 친척관계다. 이 밖에 중화민국 초대 내각총리를 지낸 인물인 웅희령熊希齡은 어려서부터 ‘후난성의 신동’으로 그 천재성을 널리 알렸었다. Travel to Hunan ▶펑황고성 찾아가기 펑황고성은 후난성 서부에 위치한다. 장자지에와 이웃해 있어 차량으로 2~3시간여 거리다.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와 인천 사이에 직항편이 운항되고 있으며 비행시간은 약 3시30분여 정도 소요된다. 창사국제공항은 최근 신축을 통해 수용 규모가 크게 확대됐으며, 내부 시설 등이 업그레이드 됐다. 후난성은 아직 곳곳에 교통 인프라 개선이 진행 중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된 창사-장자지에는 4시간이면 이동 가능하며, 창사에서 펑황고성까지는 총 5~6시간이 소요된다. 차량 이동 시간은 향후 더욱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바타> 촬영지 장자지에와 펑황고성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 장자지에가 속한 곳이 바로 후난성이다. 통상 ‘장가계’로 불리며, 장자지에 국가삼림공원, 삭계욕, 천자산, 양자지지에 등이 함께 ‘무릉원武陵源’으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천자산과 원자지에, 보봉호, 황룡동굴 등도 함께 관람하려면 이곳에서 최소 2박 이상 머무르는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와 친환경 차량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걷지 않고 등산코스도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좋다. 또 영화 <아바타>에서도 그 모습을 빌려갈 정도로 독특한 기암괴석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져 중국의 산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장자지에와 펑황고성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로 함께 여행해도 좋겠지만 두 곳을 함께 관광할 경우 5~6일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현재 판매 중인 패키지여행 상품에서는 두 곳을 동시에 방문하는 일정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자유여행을 계획한다면 고려해 볼 만한 일정이다. ▶또 하나의 후난성 고성 베이징 후통을 닮은 간저우고성乾州古城 상서토가족묘족자치주의 청사소재지인 지서우시에도 주목할 만한 고성이 있다. 바로 간저우고성이다. 펑황고성과 달리 시내에 위치해서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입구인 북성문은 새로 지은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줘서 첫인상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안으로 걸으면 금세 베이징의 후통과 비슷한 고즈넉한 옛 건물과 정겨운 골목이 기다리고 있다. 간저우고성은 만용강萬溶江과 천성하天星河,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위치한다. 간저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로 그것이다. 북성문을 빠르게 지나쳐 오른쪽으로 조금만 거닐면 호가당이 나온다. 한 채의 집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연못 주위로 10여 가구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여름이면 호가당이 끼고 있는 넓은 연못에 연꽂이 가득 찬다. 펑황고성이 들썩이고 활기에 찬 모습이라면, 호가당은 도시에 위치하면서도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한가롭다. 연못가에 잠시 앉아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다. 청나라 옹정제 때 지어진 간저우 건주문묘는 호남 지역에서 보존이 가장 잘 돼 있는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 가운데 하나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건주문묘는 중국 문화대혁명 때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모택동 사상이 적힌 현판을 건물 외벽 곳곳에 덧붙여놨었다고 한다. ‘낡은 사상’을 몰아내자고 불교와 유교 유적들을 대거 훼손했던 문화대혁명의 폭풍을 그렇게 피해갈 수 있었다. 창사에서 펑황으로 가는 길은 지서우를 거쳐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지서우를 거쳐야 펑황으로 가는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서우에 방문하게 된다면 간저우 고성을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1 전통가옥을 보존하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후난성 지서우시에 위치한 간저우 고성 2 관광객들에 아랑곳없이 마을 구석구석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3 후난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간저우 문묘, 오래된 멋이 느껴져 좋다
  • [데스크 시각] 소통과 사람다움의 기원/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소통과 사람다움의 기원/박찬구 국제부 차장

    이집트 시민혁명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역할 논쟁이 일었다. 구글의 중동·아프리카 마케팅 임원이었던 와엘 고님이 시위 도중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직후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이집트의 혁명 열기를 고조시킨 고님이 반(反)무바라크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자, SNS도 덩달아 재스민 혁명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종이 신문’ 기자들은 반문했다. “SNS는 혁명의 수단(tool)일 뿐, 진정한 주역은 시민의 의지가 아닌가.”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SNS가 시민혁명의 수단이냐, 주역이냐라는 논쟁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수단이면 어떻고 주역이면 어떠냐, 어쨌든 시민에 의한 역사의 진보가 이뤄지지 않았느냐라는 결과적 명제에서다. 사실 지나온 역사의 변혁에는 종종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수반됐다. 19세기 말 조선에서는 동학혁명 주역들이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려 거사 결의와 계획을 전파했다. 1893년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등 주역 20여명이 주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사발을 대고 서명한 통문이 그것이다. 사발통문은 보안 유지를 위해 혁명 가담자들만 수신자로 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로 일시에 전파되는 SNS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당시로서는 변혁 의지를 담은 소통의 도구였다. 1966년 중국 문화혁명의 시발을 알린 베이징대의 대자보(大字報)는 10년 남짓 지난 뒤 서울의 대학가에도 등장한다. 1980년대 우리 대학가에서는 대자보와 유인물이 운동권 지도부와 ‘학우’를 잇는 커뮤니케이션의 통로 역할을 했다. SNS에 비한다면 공간성과 속보성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 ‘종이’의 속성이긴 하지만, ‘학우’를 결집시키기에 그만한 도구가 없었던 게 30년 전의 현실이다. 시대 변화와 기술 발달에 따라 효과와 파급력에는 차이가 뚜렷하지만 중동의 SNS와 조선의 사발통문, 서울의 대자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가치 욕구가 그것이다. 모반의 역사는 종종 실패의 전철로 남지만, 적어도 21세기의 중동과 19세기의 조선, 20세기의 서울에서는 SNS와 사발통문·대자보가 독재권력과 탐관오리를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다름 아닌 ‘사람’으로 집약된다. 선사시대 각석(刻石·그림이 새겨진 돌)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울주군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岩刻畵) 등에는 자연과 조화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삶의 방식과 체계를 후손에게 알리겠다는 당시 사람의 염원이 담겨 있다. 21세기도 10분의1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주인을 자임해온 인간은 묵은 중병을 앓고 있다. 이념의 동서, 빈부의 남북이라는 종전의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빈부 격차, 양극화, 부의 불균등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신자유주의 심장부인 월가에서부터, 유러피안 드림을 주창하던 유럽대륙, 제국주의 희생양이던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국제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던 선진국의 논이 메말라가자, 그 독소가 먹이사슬의 역순으로 줄줄이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중동의 시민혁명도 시작은 ‘빵’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현재로선 누구도 위기의 종착점을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지성계 일부에서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이 나오기도 한다. 해법을 찾긴 쉽지 않겠지만, 논의의 출발점을 ‘사람’으로 대체하기엔 늦지 않아 보인다. 금융과 자본, 정치와 기업이 차지한 중심부를 그동안 소외된 ‘사람’에게 내주지 않고는 탐욕과 이윤의 사슬에서 지구촌이 살아남기 힘들지 모른다. 대표적으로 지구촌 차원의 금융규제 강화와 이윤의 독식 방지가 사람 사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의 단초일 수 있다. 어쨌든, 다시 시작은 ‘사람’이어야 한다. ckpark@seoul.co.kr
  • [산학연 협력현장을 가다] 싱가포르 과학기술·인력 육성 실태

    중국 베이징대 출신 장전성은 이번 학기 ‘산업연계 석·박사생 프로그램’(JIP)으로 싱가포르국립대 전산계열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JIP프로그램에 따라 박사과정 이수에 필요한 학비 및 기타 경비의 70%를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이 제공하고, 나머지 30%는 중소기업이 댄다. 중소기업에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대학과 중소기업이 공동 프로젝트 수행 등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장전성은 “연구비 등을 제외하고 매달 별도의 보조금을 2500홍콩달러(388만원)씩 받으며 대학과 기업의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JIP프로그램 혜택을 받으려면 석사생은 2년, 박사생은 3년동안 해당 중소기업에서 근무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산업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싱가포르는 외국 기술인력에게 문을 열고 있다. 장전성이 그린카드를 받고 박사 과정에 JIP과정으로 입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1991년 설립된 EDB는 디지털미디어, 녹색청정기술, 항공우주, 의료 및 바이오 등 첨단 산업분야를 국가 성장엔진으로 정하고,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초기 안정화자금과 연구개발 촉진자금 등을 집행한다. 창업 5년내 걸음마 단계 기업에 연구개발(R&D)자금을 지원하는 우리 중소기업청의 창업 R&D 지원사업과도 유사하다. 금융과 물류 산업으로만 각인돼 있던 싱가포르가 첨단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잰걸음으로 달음박질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정부와 중소기업의 첨단산업 육성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정책적 의지가 뒷받침돼 있었다. 클러스터 육성도 지식기반산업 육성 전략 가운데 하나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를 모아놓은 투아스 지역의 바이오메디컬파크도 대표적인 사례로 GSK, 노바티스, 애보트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주롱섬에는 바스프, 듀폰, 엑슨모빌, 미쓰이케미컬 등 에너지·석유화학분야의 95개 기업들이 입주해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EDB는 첨단 분야 기업들에 대한 지분 참여도 하고 있다. 240여개 투자대상 기업들 가운데는 차터드 실리콘 파트너, 셰브론 필립스 싱가포르 화학, 루카스필름 에니메이션 등 다국적 기업들도 적잖다. 중화권 전문가 양필승 다오지중화 한국대표는 “높은 교육 수준과 경쟁력있는 대학,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의 첨단 과학기술 개발 의지와 비전, 중소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 정책들이 결합돼 싱가포르의 경쟁력을 높이며 1인당 소득 4만 달러(2010년 GDP 기준 4만 3867달러)시대를 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시대] 2012년 이후 미러관계/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2012년 이후 미러관계/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2012년 미국과 러시아는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출마를 선언, 다시 대통령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미국 선거 양상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나라 정상의 리더십 교체는 미·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지구촌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요동치고 갈등하던 두 나라 관계는 안정을 찾았다. 오바마의 의지와 노력, 러시아의 필요성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실용적인 자세와 경제 현대화 정책 등으로 두 나라 관계 개선은 성과를 거뒀다. 전략무기 감축 타결도 한 예다. 다음 집권자들 사이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성숙되어 갈까. 올 한해 동안 두 나라의 관계 개선 노력은 2009~2010년보다는 완만하게 진행됐다. 오바마 정부가 국내 정치일정에 시달렸고, 아프간과 이라크 내전 및 중동 민주화 혁명에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했던 탓이다. 오바마는 취임한 직후부터 러시아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2009년 2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뮌헨 연설에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러시아와 여러 영역에서 협력을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해 7월 오바마의 방러를 계기로 화해 노력은 본격화됐고, 건설적인 관계 회복 및 전방위 협력이 모색됐다. 두 나라 관계가 지난 3년 동안 관계 개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깔려 있다. 오바마가 러시아에 대해 뻗은 관계 개선의 손을 메드베데프가 덥석 잡은 순간부터 두 나라 관계는 협력 분위기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오바마 정부의 대러 화해 제스처는 전임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러시아의 국력과 국제위상에 맞게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중동 문제에서부터 핵 없는 세계 건설 및 비핵화 진전 등 각종 국제적 핵심 이슈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틀 안에 러시아를 끌어들여 협조자로서 순치시켜 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용적 경제협력을 내세운 메드베데프 정권의 안정을 도와 양국 관계 및 국제문제 전반을 원활하게 풀어나가겠다는 뜻도 깔려 있었다. 경제 현대화 정책을 내세운 메드베데프로서도 미국의 협력이 절실했다. 그는 “외교는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와 천연자원 수출로 지난 10년 동안 경제적 호황을 누렸던 러시아는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에너지·자원 의존형 경제의 취약성을 실감했다. 이런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 자본과 기술을 들여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메드베데프의 구상이었다. 전략적으로 러시아-유럽연합-미국의 삼각 관계를 활용해 활동 공간을 넓히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두 나라의 협력 관계가 진전되는 동안 미국은 이례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준을 누그러뜨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유럽 및 러시아를 향한 미사일방어시스템 전개 속도와 수준을 늦췄고, 러시아의 민주화 문제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낮췄다. 2010년 6월 메드베데프의 방미 이후 미 국무부는 러시아의 민주화 문제에 입을 다물었다. 동유럽에 대한 미사일 전개도 잠시 중지시켰다. ‘자유 및 민주의 확대 보고서’ 중에서도 러시아 민주화가 명확하게 개선되고 있다고 평했다. 미·러 사이에는 적잖은 모순과 충돌이 존재한다. 두 나라는 근본적인 목표와 입장이 다르고, 지난 3년 동안의 화해 정책도 다른 목표와 이해 속에서 추진돼 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초강대국 부활과 독립국가연합들에 대한 영향력 강화, 전략적 공간 확대를 막으려 한다.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일고 있는 반미 및 애국주의 물결도 이 같은 러시아사회의 미국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보여준다. 당장 현안에 묶여 있는 미·러 지도자들은 두 나라 관계의 안정을 우선적인 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2012년 이후는 어떻게 될까. 리더십의 태도와 의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사흘마다 회초리… 中 ‘늑대아빠’ 열풍

    “사흘에 한번 매를 드니 아이가 베이징대에 합격하네!”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자녀 네명 가운데 세명을 명문 베이징대에 진학시킨 중국 남부 광둥성의 사업가 샤오바이유(蕭百佑·47)는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가 하면 주변 친지들로부터 아이를 맡아 교육시켜 달라는 부탁도 잇따른다. 에이미 추아(중국명 차이메이얼)의 ‘호랑이 엄마’(虎?)에 이어 이번엔 샤오바이유로 대표되는 ‘늑대 아빠’(狼?)가 중국 부모들의 화두로 떠올랐다. ‘호랑이 엄마’가 엄격한 규칙을 정해 놓고 아이들에게 이를 반드시 준수토록 한다면 ‘늑대 아빠’는 수시로 매를 들어 아이들을 훈육시킨다. 대부분 한 자녀만 두고 있어 아이들을 황제처럼 떠받드는 중국 가정에서는 흔치 않은 교육법이다. 특히 샤오바이유의 ‘매 교육법’은 가정폭력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샤오바이유는 ‘사랑의 매’가 자녀들을 올바르게 키운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지키도록 했고, 잘못한 후에는 반드시 매를 들어 규정위반에는 벌칙이 따른다는 점을 일깨웠다”면서 “매는 매우 틀림없고, 과학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국가에 국법이 있다면 자신의 가정에서는 매가 가법(家法)이라고도 강조했다. 매를 들어야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학교나 선생님이 없다면 학생의 진보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가장이 학교 교육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자녀교육 방법을 모른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더욱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가정에서의 ‘사랑의 매’가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 형성을 이끌어 줬고, 그것이 학교교육과 조화를 이뤄 명문대 진학이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명문대생 난자 3만위안에 급구”

    중국에서 베이징대, 칭화(?華)대 등 명문대 여학생들의 난자 밀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난자 거래가 엄연한 불법이지만 명문대 여대생 난자가 수만위안(수백만원)을 호가하면서 ‘검은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신경보가 14일 보도했다. 실제 커뮤니티 사이트인 런런왕(人人網)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코너에 올라있는 “칭화대 및 베이징대 여대생 난자 급구”라는 글에는 신장 163㎝ 이상, 쌍꺼풀 등의 신체조건과 함께 난자 한 개당 3만위안(약 5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적혀 있다. 명문대 여대생 난자 암거래가 성행하는 것은 난자가 필요한 불임부부와 돈을 벌려는 젊은 여성들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한·중·일 원하는 대학서 학점·학위 받는다

    한·중·일 원하는 대학서 학점·학위 받는다

    한국·중국·일본의 대학 및 대학원생 300명가량이 내년부터 원하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학점을 인정받는 데다 학위도 받을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30일 중국 교육부, 일본 문부과학성과 공동으로 한·중·일 대학 공동·복수학위 과정을 도입하는 ‘캠퍼스 아시아’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10개 사업단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각국은 사업단별로 연간 학생 10명씩 100명을 선발해 지원할 예정이다. 캠퍼스 아시아는 지난해 5월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때 대학 교류 확대 차원에서 합의한 사항으로 유럽연합(EU)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EU가 경제, 군사, 정치에 이어 문화적 유대를 높이기 위해 학생·교수 교환, 학점 인정 및 공동커리큘럼 연구 등을 하는 대학 교류 프로그램으로 1987년 본격 시행돼 2008년 31개국 2200여개 대학에서 20만명이 참여할 정도로 커졌다. 캠퍼스 아시아에는 고려대·동서대·부산대·성균관대·서울대·포스텍·한국과학기술원(KAIST)·KDI국제정책대학원 등 8개 대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중국, 일본 대학들과 짝을 이뤘다. 중국에서는 푸단대·광둥외어외무대·상하이교통대·베이징대 등이, 일본에서는 고베대·리쓰메이칸대·규슈대·도쿄대 등이 참여했다. 3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동참한 것이다. 사업단 중에는 다양한 학생 교류 모형 개발 차원에서 1개국에서 2개 이상의 대학이 공동으로 나선 컨소시엄도 2곳 포함됐다. 각국 정부는 지난 7월 신청을 받은 뒤 3국 공동심사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업단 10곳을 확정했다. 캠퍼스 아시아는 학생들이 한·중·일 3개국에서 실질적인 학습 경험을 쌓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 국제대학원-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컨소시엄이 추진하는 ‘BESETO(베·서·도) 국제학 및 공공정책학 복수 석사학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은 각 대학에서 1년씩 수학한 뒤 최대 3개의 석사학위를 졸업과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또 동서대-광둥외어외무대-리쓰메이칸대 컨소시엄의 ‘동아시아 차세대 인문학 리더 양성’ 프로젝트는 각 대학에서 1학기씩 수업을 듣는 ‘이동식 공동교육 프로그램’과 졸업 전 3개월의 해외 인턴십으로 구성돼 있다. 교과부와 대교협은 내년부터 2015년까지 시범사업단에 포함된 한국 측 컨소시엄당 연간 학생 교류 비용 1억 2400만원, 프로그램 개발 비용 1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학생의 왕복 항공료와 매달 80만~90만원의 체재비를 댄다. 학비는 자국 대학에 내면 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아시아 대학생 간 상호 이해 및 국제적 능력 배양을 위해 한·중·일 3개국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라면서 “시범사업을 통해 타당성을 검증하고 내용을 보완해 향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글로벌 시대] 동북아 다자 에너지기구 만들 때다/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동북아 다자 에너지기구 만들 때다/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지난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는 기간 두 나라는 7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원자력 등 에너지 협력과 대형항공기 공동 제작과 우주탐험, 금융 분야 협력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사였던 가스관을 통해 중국으로 운송될 러시아 천연가스 가격 협상의 타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난 2009년 두 나라는 오는 2015년부터 30년 동안 해마다 7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판매키로 원칙적인 합의를 이뤄내고도 공급 가격 이견으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러시아에 중국은 매력과 잠재력을 지닌 고객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판매할 광대한 시장인 동시에 시베리아 등 극지 에너지자원을 개발할 개발자금의 잠재 공급자다. 러시아의 공급능력과 새로운 판매처의 필요성, 중국의 늘어나는 수요가 딱 맞아떨어진다. 2009년 중국은 2억t의 석유를 수입, 세계 제2의 석유수입국이 됐고, 대외의존도는 50%가 넘게 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외 의존도는 2020년에 65%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천연가스 수입은 2010년 300억㎥로 대외의존도가 12.8%에 이른다. 중·러의 에너지 협력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뿐 아니라 전력공급 등에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돼 왔다. 두 나라 에너지 협력은 경제문제이면서 정치문제로, 전략적협력 동반자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중·러의 상호 신뢰가 국경분쟁 해결 등으로 두터워지면서 에너지 협력의 기대 수준도 높아져 왔다. 그러나 국익의 차, 러시아 국내정치적인 고려 등으로 진행과정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순탄치 못했다. 푸틴이 대통령이던 2006년 베이징 방문에서 체결한 3가지 주요 에너지협력 협약에 따르면 두 나라는 8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판매키로 합의했다. 2011년부터 중국에 석유를 공급하고, 러시아 동부와 서부에 동시 수송을 위한 가스관을 건설하고 2014~2015년 가스공급도 시작기로 했다. 극동지역과 동시베리아, 사할린 등과 동부 가스관을 연결해 380억㎥의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보내고, 서시베리아 및 야쿠트 유전지대의 가스는 2015년까지 알타이산맥을 관통해 건설되는 가스관을 통해 2018년부터 중국에 천연가스 380억㎥를 공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럼에도 중·러 에너지협력이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은 러시아가 공급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이익을 지나치게 최대화하려는 욕심과 무관치 않다. 중·러 에너지협력과 관련, 러시아는 경제·정치적 이익 확대를 위해 합의를 무시했고, 공급자로서의 일방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국제원유가와 가스가격이 뛰어오르자, 러시아는 대중국 유류 수출 확대 및 가스 공급을 위해 설치하겠다던 파이프라인 건설을 늦췄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책임자는 최근 “현안은 3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판매하는 문제”라며 딴소리를 늘어놓고 있고, 동부에서 생산되는 액화천연가스를 국제시장에 내다 팔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북한에 가스관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천연가스를 한국과 일본으로 보내겠다는 시도도 중국이 아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아울러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제적으로 에너지확보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에너지 경쟁에 뒤늦게 참여한 후발참여자다. 국제에너지 독점세력에 좌지우지되고 있다고나 할까. 한국과 일본도 에너지 주요 수입국이란 점에서 중국과 입장이 같다. 한국, 중국, 일본과 공급자 러시아가 참여하는 가칭, ‘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 같은 다자 기구를 만들어 한·중·일 삼국 기술과 자본을 러시아에 투자하고, 다자적인 틀을 통해 러시아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법을 추진해야 할 때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대규모 개발이란 측면에서나, 동북아 상호의존의 확대를 통한 협력 강화란 측면에서나 모두 시급한 일이다.
  • 경제이슈, 좀 깐깐하게 보기

    “중국은 외환보유액을 어떻게 사용할까.”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팔아치운다면 미국은 타격을 입을까.” “중국 경제는 결국 연착륙하지 못하고 물가폭등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엄습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무릎을 꿇을까.” ●집값·취업 등 현상의 인과관계 설명 ‘경제, 디테일하게 사유하기’(에쎄 펴냄)는 이 같은 질문을 경제학적인 틀속에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은 국제무역질서, 시장과 정부의 역할 등 거시경제의 구조와 틀만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카드 결제 같은 ‘일상적인 경제현상’에서 집값, 인플레이션, 취업, 주식시장 같은 ‘주목받는 경제이슈’, 가격, 수요와 공급, 효율, 균형 같은 ‘전형적인 경제개념’ 등을 종횡무진 오가며 우리 주변의 경제 현상을 들춰낸다. ●파워 블로그 ‘경제학 노트’ 글 모아 지은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소속 중국인 경제학자 궈카이(郭凱). 베이징대학을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IMF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블로그 ‘궈카이의 경제학 노트’(www.kaieconblog.net)에서 추려 모았다. 2006년 개설한 그의 블로그는 중국 인터넷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경제학 블로그가 됐다. 4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중국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사안들을 정리했고, 2부에서는 미국의 경제위기와 미국 경제의 속성에 메스를 가했다. 3부 ‘생활 속의 경제학’에서는 신용카드, 가사 노동, 소득과 수요 및 행복의 함수관계 등을 설명했다. 4부에서는 정부의 시장 간여, 북한의 몰수식 화폐개혁, 엔론사건과 날씨 거래 등을 비판적으로 살폈다. 저자는 “모래 한 알 같은 현상 속에서 전체를 보고, 세계 경제를 읽으려 했다.”고 말한다. 원 제목은 한 알의 모래와 세계라는 뜻의 ‘일사일세계’(一沙一世界). 1만 7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中서 한국 언론중재제도 소개

    권성 언론중재위원장은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대 법학원과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를 방문해 한국의 언론중재 제도 및 헌법재판 제도를 현지 핵심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 환담했다.
  • [씨줄날줄] 리커창의 연쇄 방문/최용규 논설위원

    지방관리에 불과한 리펑싼(李奉三)의 아들은 더없이 총명했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 1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74년 당시 19세이던 리펑싼의 아들은 중국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농촌에 하방(下放)돼 5년간 고된 농사일을 했다. 한 농민은 훗날 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대단히 총명했고 장난을 치는 일이 없었다. 일도 열심히 해 점심시간에 30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청년은 베이징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하방된 안후이성(安徽省) 펑양현 둥링촌을 떠날 때까지 노동시간 말고는 죽도록 책만 팠다. 그는 2012년 10월 제18차 당대회에서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숙명의 대결을 펼칠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다. 리커창의 베이징대 친구들은 그를 ‘뛰어난 수재’이자 ‘야심가’로 평가한다. 하버드대 유학을 포기하고 중국 내에서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는 쪽을 택했다.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자신의 재능을 전면에 내세워 능력을 과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찬사와 비판이 교차한다. 리커창을 출세가도로 이끈 인물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다. 리커창은 후진타오가 ‘품은 칼’로 묘사되기도 한다. 후와 리는 1980년대 초 인재의 보고로 여겨지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엘리트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최고지도자 후보로 꼽혔던 리키창은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 서열 7위가 되면서 6위인 시진핑에게 밀렸다. 시진핑 뒤에는 상하이방을 호령하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있었다. 시진핑과 리커창의 레이스 이면에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권력투쟁이 숨어 있는 것이다. 서전은 장쩌민의 승리다. 리커창이 이달 말 남북한을 연쇄 방문한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리 부총리가 해당국 영도자들과 회담을 하고 국제문제 등의 공통 관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총리나 부총리는 주로 ‘안방마님’ 역할을 한다. 리커창이 부총리 취임 후 맡은 일도 행정개혁, 경제정책, 의료개혁 등 국내 문제였다. 그런 그가 안방을 벗어나 곧 외유에 나선다. 그것도 중국에 가장 중요한 국가인 남북한이다. 앞서 시진핑은 2008년 6월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상대였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지도자 자리를 놓고 리커창의 역전이 가능할까?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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