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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철야로 술을 마시고 전화 연락조차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효과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 관록을 유지하면서 남편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19. Q여사에게 (7)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I. <아내→남편>편 [Q여사에게] 남편과 얘기할 틈 없는데 결혼한 지 6년 된 가정주부입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직장 성격상 매일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옵니다. 남편은 퍽 양순하고 가정에도 관심을 갖는 성격이지만 집안일에 대해 얘기할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엔 자세한 얘기를 해줘야지” 하고 날마다 벼르지만 1주일이 지나도 그 기회가 안옵니다. 도대체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술이 덜 취했을 땐 그 분은 주로 자기 얘기만 합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얘기에 그냥 나도 말려들어 정작 해야 할 얘기는 못하고 맙니다. 그분에게 금주를 시키거나 직장을 옮기게 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제 아이까지 생겼는데 그분의 관심은 가정적인 면에서 점점 멀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서울 성북동에서 길정자> 마음의 고향이란 증거예요 당신의 남편은 서울의 전형적인 월급쟁이인 것 같군요. 말은 하지 않지만 샐러리맨으로서의 좌절감, 압박감을 수시로 느껴야 하는 가여운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 마침 술을 하실 줄 안다는 것은 당신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밖에서의 여러 불쾌한 일을 술로 풀지 못하면 심하면 성격 파탄자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일이 흔히 있다고 합니다. 술이 덜 취했을 때 그분이 주로 자기 얘기를 한다고요? 그것이 바로 그분이 당신을 ‘마음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안정될 때까지 해야 할 가정적 얘기는 혼자서 삭이세요. 그리고 열심히 그분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9일자 ▒▒▒▒▒▒▒▒▒▒▒▒▒▒▒▒▒▒▒▒▒▒▒▒▒▒▒▒▒▒ [Q여사에게] 왜 결혼반지를 안 낄까? 결혼 1주년이 며칠 안 지난 25세의 아내입니다. 지금 느낌으로는 제 남편은 저를 무척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집 남편들처럼 밤 늦게 들어오는 일도 별로 없고 매사에 저를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해준 결혼반지를 여지껏 한 번도 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끼기 싫을 뿐”이라는 것이 그이의 핑계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서울 정릉동에서 이영신> 결혼의 부담감을 주지 않도록 반지 끼기 강요하지 마셔요 결혼한 남성의 결혼관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결혼을 당연하고 즐거운 생활조건으로 받아들여 자신이 기혼자임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타입. 또 한 가지는 결혼을 진지한 부담으로 의식하여 기혼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이영신씨, 당신의 남편이 어느 편이기를 바라세요? 아마도 아내의 입장에서는 후자인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분은 이 후자에 속하는 남편인 듯 하군요. 무의식 중이긴 하지만 그분은 결혼이라는 소중하고 힘겨운 부담이 결혼반지로서 어떤 무서운 굴레가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충실한 남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는 통계가 심리학 조사에 나와 있거든요. 반지를 억지로 끼고 나면 사랑스럽던 당신도 가끔 힘든 멍에로 상기되는 수가 있을 거에요. 아내이면서 줄곧 애인이기를 바라거든 반지 끼기를 강요하지 마셔요. 그이에게 당신은 조금도 부담스런 아내가 되지 않겠다는 투지를 지금부터 보여주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1월 19일자 ▒▒▒▒▒▒▒▒▒▒▒▒▒▒▒▒▒▒▒▒▒▒▒▒▒▒▒▒▒▒ [Q여사에게] 매일 술 마시는 남편의 연락도 없는 외박 친애하는 Q여사, 이런 말씀 물으면 어리석은 여인이라고 하실까요? 그렇지만 바가지 긁는 여편네가 되기보다 Q여사의 현답을 듣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여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세 살, 한 살의 남매를 키우는 30세 주부입니다. 남편은 한 반관반민 업체의 주사입니다. 아마 세간에서 말하는 ‘물 좋은 자리’인 모양인데, 술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 반만 응해도 매일 밤 음주가 된다는 거예요. 술 마시는 것까지는 저도 이해해요(물론 건강은 걱정되지만). 그러나 철야로 술을 마시고 게다가 전화 연락조차 없습니다. 걱정이 돼서 못 살겠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효과도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 관록을 유지하면서 연락도 없이 외박하는 남편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서울 제동에서 준이 엄마> 꾀병 공세와 시위를, 애교 있는 보복책도 이제 갓 서른인데 그렇게 현명한 처신을 하시는 것을 보면 준이 아빠가 얼마나 행복한 남편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착하디 착한 아내에게는 가끔 싫증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남편들의 고약한 버릇이랍니다. 아내가 애교 있는 바가지도 긁고 떼도 써서 자신이 가부장적인 권위로 군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심리가 준이 아빠에게 없을까요? 다음 번에 외박을 하시거든 한 번 시위를 해 보세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잤더니 병이 났다고 링거라도 맞는 시늉을 하는 ‘꾀병’ 작전. 외박한 다음다음날쯤 이쪽도 아무 말 없이 친정으로 가버리는 ‘보복’ 작전 등. 그러나 물론 남편이 굴복하고 마는 형식이 되게끔 일을 끌어가지는 말고 단지 “나도 화낼 줄 아는 사람인 줄 아시죠?” 정도의 상냥한 정책이어야 된다는 것은 아시겠죠?<Q>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편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18. Q여사에게 (6)야속한 아내, 얄미운 남편 I. <남편→아내>편 [Q여사에게] 아내의 무지, 미신에 실망 결혼 3주년이 가까워 오는 요즘 저는 아내의 무지에 점점 더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일류 여자고등학교, 일류 대학을 나왔습니다. 대학에서는 전공이 약학입니다. 그런데도 하는 일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생과 다름이 없습니다. 첫딸의 이름을 작명소에서 지어 온 것은 물론 매사에 점쟁이, 관상쟁이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아침이면 어젯밤 꿈을 쳐들면서 남편인 저의 행동까지 제한하려 듭니다. “이빨 빠지는 꿈을 꾸었으니 당신 오늘 자동차 조심하고, 밤에는 술마시지 말고 곧장 오세요” 등등…. 요즘은 점쟁이가 직장을 서쪽으로 옮기라고 했다며 법석을 떱니다. 현재 직장은 동쪽에 있다는 거예요. 다른 점에서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내입니다. 고민의 해결법은 뭘까요? <서울 답십리에서 박> 선의의 거짓말을 슬쩍 해보세요 “그 점쟁이가 왜 그렇게 용하지? 우리 회사가 올해 안으로 사옥을 옮기는데 서대문 쪽이란 말야!”라는 선의의 거짓말 한 마디로 당신의 지금 난관은 해결됩니다. 미신적인 것 빼놓고는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것이지요. 여자가 사랑스러운 것과 미신적인 것은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매력 아닐까요. 대학에서 딱딱한 과학을 했어도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당신의 아내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군요. 세상살이를, 그리고 가정을 신비스럽게 보지 않는다면 누가 점을 치고 관상을 보고 꿈을 믿겠어요. 남편네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바가지를 긁히지 않기 위해서도 희한하고 재미있는 미신의 세계를 아내에게서 빼앗지 마십시오.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16일자 ▒▒▒▒▒▒▒▒▒▒▒▒▒▒▒▒▒▒▒▒▒▒▒▒▒▒▒▒▒▒ [Q여사에게] 아기에게 뺏긴 아내 결혼 2년차샐러리맨입니다. 아내는 알뜰한 데다 미인이고 생후 5개월의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기분 말입니다. 신혼 초, 아니 어린애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아내는 저에게 온갖 정성을 다 들였어요. 손수건, 넥타이, 양말, 좋아하는 음식 등 쑥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시중을 들었죠. 그러던 것이 최근 2, 3개월간 아내는 사느니 아기옷 뿐인가 하면 아기를 얼르느라고 집안 정돈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책의 간수나 부탁한 신문스크랩 같은 일도 내동댕이치고 있거든요. 가장인 나에게 아내가 다시 관심을 갖게끔 할 방법은 없을까요. 아내는 마음이 변한 걸까요. <서울 태평로에서 김> 행복한 푸념 마세요 미스터김! 행복한 푸념, 듣기에도 즐겁군요. 부인의 마음은 여전히 당신과 당신들 두 분의 아드님에게만 집중되어 있음에 틀림없어요. 지금 한창 방긋거리는 아기가 얼마나 귀여울까요. 당신은 직장에 나오기 때문에 하루종일 재롱을 떠는 꼬마에게 엄마가 얼마나 정이 들어 버렸는지 모를 겁니다. 게다가 첫 아이 시중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랍니다. 첫 엄마는 아직 솜씨가 서투르기 때문이죠. 당신의 시중을 전처럼 살뜰하게 들지 못하는 것은 아기 시중에 손이 빌 틈이 없어설 거라고 한다면 제가 너무 여자 편만 드는 걸까요? 혹시 당신은 그동안 극진한 가장 대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퇴근 후라든지 휴일에 아기 시중을 분담해 보셔요. 틀림없이 부인은 그 짧은 빈 시간을 아빠를 위해서 쓸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20일자 ▒▒▒▒▒▒▒▒▒▒▒▒▒▒▒▒▒▒▒▒▒▒▒▒▒▒▒▒▒▒ [Q여사에게] 갈수록 살쾡이 닮아가는 아내… 결혼 3년에 아기가 둘 생기니까 아내는 더 이상 신혼 무렵의 상냥한 아내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집없는 들고양이 같고 때로는 표독한 살쾡이 같습니다. 밤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늦는 날도 있는 것이 젊은 샐러리맨 아니겠습니까? 10시 넘어 집에 들어가면 바가지와 표독한 눈길에 기가 죽어 스위트홈은커녕 “내가 여기 왜 들어왔나” 싶을 정도예요. 때로는 이혼조차 생각합니다. 게다가 맹랑한 것은 말씨까지 타락해버린 것입니다. 저의 말에 대답은 ‘네’가 아니라 ‘응’, 때로는 ‘뭐라구?’입니다. 이 한심한 가정생활을 차라리 정리해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서울 정릉에서 김만식> 남편이 이리 같아서예요 표독한 살쾡이에 심술궂은 이리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내의 눈에 보이는 당신 역시 신혼 초의 당신이 아닐 것입니다. 신혼 초에는 당신도 아마 상냥하고 착한 남편이었겠죠. 아이 둘 낳고 난 아내를 당신은 여성 축에 안 끼워주고 애 기르고 밥 짓는 부엌데기라고 단정지어 버렸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내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요. 영락없는 이리입니다. 그것도 귀한 남의 딸의 일생을 버려놓은. 사나운 짐승은 사납게 다루어야 한다는 쉬운 진리를 당신의 아내는 터득한 모양이죠? 그래서 바가지와 눈총으로 당신을 다루려 드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양처럼 착해져 보세요. 아내는 곧 목장의 상냥한 처녀가 될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2월 2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6. 죽음으로 청산한 학교 교감과 여교사의 사랑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6. 죽음으로 청산한 학교 교감과 여교사의 사랑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8일 오전 3시께 부산시 해운대구 ○○모텔 ○○호에 투숙중이던 金○○씨(회사원)와 鄭○○(여.회사원) 등 2명이 음독 자살을 기도해 중태다. 경찰은 ‘장모님 저희 사이를 인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용서하세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로 미뤄 연인 사이인 이들이 부모로부터 인정을 못받아 동반 자살을 기도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연합뉴스 1998년 4월 28일)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6. 죽음으로 청산한 학교 교감과 여교사의 사랑…50대의 교육자와 젊은 아가씨가 빠진 인생의 함정 -선데이서울 1971년 11월 14일자 가정을 가진 50대의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감과 20대의 아름다운 처녀교사 사이의 괴로웠던 사랑이 1년 만에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모범적인 교육자로 알려졌던 교감과 여교사가 1년 전 첫 정을 나누었던 학교 별관의 피아노 교실에서 1년 뒤 바로 그날 정사(情死)를 해야만 했던 인생의 함정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 번져 두려웠던 양쪽 집안 체면 인천 B초등학교 이경일(52·가명) 교감과 음악강사 김효숙(24·가명)양이 학교 별관의 4평 남짓한 피아노 교실에서 극약을 먹고 쓰러져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청소부(환경미화원) 강모씨(31)였다. 지난 2일 아침 9시쯤 강씨가 평일과 같이 별관 청소를 하다 무심코 피아노 교실의 문을 열어보니 반나체의 두 교사가 피아노 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교감은 부평 성모병원에, 김양은 이웃 기독병원에 옮겨졌으나 김양은 바로 숨지고 이 교감은 당일 오전 숨을 거뒀다. 청소부 강씨는 이들이 죽기 전날인 1일 밤 8시쯤부터 피아노 교실에서 ‘엘리제를 위하여’, ‘장송곡’ 등을 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가끔 있는 일이어서 무심코 흘려 버렸다는 것. 이들이 쓰러져 있던 피아노에는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이 펼쳐져 있었고 김양의 글씨로 쓰여진 낙서 쪽지가 피아노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낙서 내용은 “못이룰 사랑”, “저 세상에서 거리낌 없이 사랑하리”, “아버지 미안해요” 등등으로 애절한 사랑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교감은 김양 아버지의 친구, 김양은 이 교감의 딸의 친구로 두 집안끼리는 왕래가 잦았다. 김양이 이 국민학교에 들어간 것도 이 교감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방과후피아노 교실에서 하루가 멀다고 정열 태워 이 학교에서만도 13년 7개월을 근무한 이 교감은 해방 전 평양사범 강습과를 수료한 뒤 서울에서 D대학을 졸업, 서울의 몇몇 사립국민학교를 거친 독실한 가톨릭 신자. 깨끗하게 생긴 노신사 타이프였다. 김양은 인천 시내 모 여고를 거쳐 2년 전에 서울의 S예술대 음악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 음악강사로 들어온 미혼녀로 아버지는 기독교 전도사로 누가 보아도 모범적인 양가집 규수였다. 이들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지난 여름부터 피아노 교실에서 일어난 두 사람의 죽음이 알려진 뒤 학교에서는 쉬쉬 해왔으나 한입 두입 퍼지기 시작, 최근에는 이 소문을 들은 몇몇 학부형들이 학교에 찾아와 노골적인 항의소동을 벌였고 두 집안에서도 눈치채게 됐다. 두 사람에게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교감과 가까웠던 한 교사에 의하면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양쪽의 집안의 문제였다는 것. 이 교감은 다 큰 자식들에게, 그리고 김양은 부모와 친구를 대할 낯이 없었고 그래서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말. “무서웠어요. 그날 밤. 1년 전 바로 이 장소”라는 피아노실에서 발견된 낙서에 의하면 이들의 사랑은 꼭 1년 전에 시작된 듯. 죽기를 결심하고는 1년을 채우기 위해 미루어 온 듯한 낙서들이 발견됐다. 낙서와 동료 교사들에 의하면 이 교감의 부인은 8년 전부터 심한 위장병을 앓아 온 데다 2년 전부터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자궁암까지 겹쳐 병상의 몸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이 교감은 항상 고독한 모습을 보였고 이를 동정한 김양의 감정이 사랑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흠잡을데 없던 사람이었는데” 모두 침통 “낙서에 적힌대로 1년 전 바로 그날, 이 장소에서 친구의 딸, 아버지와 딸, 교감과 강사”라는 굴레를 벗어나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른 것. 오랫동안 성생활을 억압당해 온 50대의 마지막 정열과 남자를 처음 경험한 젊은 처녀의 사랑이 이 세상 끝까지 변할줄 몰랐던 것. 방과후의 피아노 교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둘은 정열을 불태웠고 때로는 서울, 부산 등지로 사랑의 여행을 떠났다. 바로 죽기 전날 일요일에도 성당에서 미사 를 함께 본 두 사람은 피아노 교실로 와서 늦도록 함께 있었다는 것. 최모 교사는 이들이 자주 동행여행을 떠나는 것을 알았으나 “단 한치의 빈틈도 없이 깔끔한 성격의 이 교감이 설마 죽기까지 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의 이 교감 집에서는 병든 부인이 너무나 엄청난 충격을 받아 병세가 악화, 혼수상태에 빠졌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은 집안 일을 돌보며 죽은 사람을 욕되게 하지 말라”며 침통해 했다. 김양의 집에서는 식모가 아무도 없다며 문을 잠가놓고 열어주지 않았다. 동료교사나 부하직원들에 의하면 평소의 이 교감은 교육자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나 학부형 중 한 사람은 두 교사의 그러한 관계를 알았다면 적어도 두사람을 한 학교에 있지는 않도록 했어야 옳을것이 아니냐고 학교 당국의 처사를 탓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7. 광고 스타의 얼굴값…최고는 김승호와 구봉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7. 광고 스타의 얼굴값…최고는 김승호와 구봉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임시완 CF만 20억대 ‘미생의 힘’/ 혜리, ‘이잉’ 애교 한 방에 억대 몸값 ‘제2의 수지’/ 김수현, 국내외 광고 30여개로 ‘200억 사나이’ 등극/ ‘광고도 대박’ 류현진, 박찬호 버금가는 CF 스타/ 수지 광고수입, 사장 박진영 “100억 정도는 혼자 가뿐히 올려”/ 이상화 CF 몸값 ‘껑충’…“최소 5억원 이상”/ 고소영, CF 5개에 35억원…남편 장동건도 놀란 몸값 톱스타들의 광고CF 모델료를 다룬 기사 제목입니다. 광고주들이 얼마나 선호하느냐가 스타의 인기와 몸값의 척도가 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톱스타들은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광고 출연을 상당히 꺼렸던 모양입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격세지감을 1968년 기사에서 느껴보십시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광고 스타의 얼굴값…최고는 김승호, 구봉서의 100만원…김혜정의 반라는 20만원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27일자 연말을 두 달이나 앞두고 내년치 캘린더가 벌써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모 분위기를 돋우며 새해 일정을 안내하는 이 캘린더 는 화려하고 사치스런 치장으로 ‘경염’(競艶)을 벌이게 마련이다. 화사한 여배우의 얼굴이 또 한번 분주히 팔려가는 시즌인 것이다. 캘린더에 나오는 스타는 대개 인기배우 몇 사람. 단골격인 이들 캘린더·스타들은 여기서도 겹치기에 바쁘다. 그래서 배우 모델의 캘린더는 그해 인기 스타를 결산하는 또 하나의 기록. 인기없는 배우는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상업사진에 안 나가는 스타들도 제법 열을 올린다. 4, 5년 전 엄앵란, 최은희, 김지미, 태현실 등이 독점했던 캘린더 판도는 이제 영화계 인기변동을 따라 상당히 수정되었다. 2개월을 1장 단위로 하는 지면에 등장할 수 있는 정원은 고작해서 6명. 이것이 이제 문희, 윤정희, 고은아, 남정임, 김지미, 최은희 등 주연급이 차지하게 됐다. 이번엔 신인배우 여수진과 손방원이 끼이기도 하고. 이들 캘린더·스타의 모델료가 작년의 2만원 선에서 4만원 선으로 껑충 뛰었다. 당초 왕복 차비 정도의 사례에서 비롯한 것이 이제는 공정가격이 붙었다. 공정가격이란 뜻은 배우가 모두 같은 요금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인기에 따라 높고 낮음이 정해져 있다. 최고는 7만~10만원, 최저는 2만~3만원, 김지미는 물론 여기서도 최고의 개런티고 그 다음이 윤정희·문희·남정임이다. 이들은 포즈 몇 번 취하고 남의 집 안방에 초상화로 장식되는 요금으로 평균 4만원을 받는다. 캘린더 스타와는 달리 돈벌이 목적의 광고 모델로 애용되는 스타도 상당히 많다. 이른바 광고 스타. 전에는 3류 배우나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 최근엔 이른바 톱스타들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얼굴은 TV의 CM, 포스터, 광고영화, 신문잡지의 광고란을 장식하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게 약품광고다. 계약기간은 1년으로 대개 계절 따라 4번쯤 사진을 바꾼다. 광고배우의 요금도 인기와 정비례 한다. 그러나 양측의 친분 여하에 따라 결정되니까 ‘반드시’는 아니다. 인기, 세금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비밀요금에 속한다.‘식욕부진 ○○감퇴’에 유효하다는 약 광고의 김승호가 100만원짜리 모델. 또 TV광고로 ○○조미료를 선전하는 구봉서가 포스터 인쇄물을 포함하여 100만원, 전속기간은 1년이다. 광고 모델, 특히 스타들이 꺼리는 광고가 약 광고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대부분의 톱스타가 거의 약 광고에 나가는 것은 그 적지 않은 수입의 매력 때문인 듯하다. 이들의 모델료는 보통 사람의 최소 10배 이상이다. 이들의 모델료를 들리는 대로 적어 보면 신성일 50만원, 최남현 25만원, 윤정희 35만원, 고은아 20만원, 남궁원 20만원, 신영균 50만원 선이라고 한다. 반라에 가까운 몸으로 풍만한 육체를 과시하면서 신문·잡지 광고란을 장식하는 김혜정도 사실은 20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에 약 광고엔 결코 나가지 않는 것으로 체통을 지키는 스타도 없지 않다. 김지미, 문희, 남정임이 이런 경우다. 일본만 해도 톱스타가 광고에 나갈 경우 엄청난 모델료가 따르지만 그까짓 몇십만원에 이용되기는 싫다는 주장이다. 광고를 즐기는 배우들도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광고영화에는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광고에 나서는 것을 결코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광고 포스터가 스타의 개인생활을 이용해 그 화제에 편승하는 예도 있다. 한창 한국최초의 70mm 영화라고 헛소문을 돌린 ‘춘향’이 제작될 때 ○○크림은 신인배우 홍세미를 기용해 ‘춘향 탄생’을 떠들어댔다. 영화사 측에서 보면 영화 선전도 되고 배우 측에서 보면 배우 선전도 되는 ‘1거3득’의 효과를 본 셈이다. 고은아양을 전속 계약한 ○○제약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홀몸일 때는 ‘예뻐지고 고와지는’을 선전하는 데 이용하다가 임신 소식이 전해지자 재빨리 ‘임신·출산 빈혈에는’으로 품목을 바꿔 내세웠다. 한꺼번에 20편 내외의 영화에 출연하는 신성일은 ‘겹친 피로, 부족한 수면’을 극복케 한다는 약을, 중년 스타 김승호는 중년기에 좋다는 ○○제를, 김혜정은 ‘○○부족, ○○감퇴’에 유효하다는 ○○제를 선전하는 사진에 이용되고 있다. 색쇄(色刷·컬러)로 된 포스터는 그래도 스타의 미모에 손상을 끼치지 않아 약간의 품위를 지닐 수 있다. 제모제를 선전하는 태현실, 미용제를 맡은 윤정희, 냉장고의 고은아는 캘린더 만큼의 선전효과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휴지로 버려지는 신문광고보다는 훨씬 고급이다. 서울에는 광고주와 스타 사이에서 이들의 다리를 놓는 상업 사진사들이 현재 성업 중에 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5. Q여사에게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5)사랑하니까 더 걱정스러운 우리 가족 [Q여사에게] 지나친 어머니의 간섭 세상의 어머니들은 왜 그리 눈치가 없을까요. 저는 결혼 9개월의 새색시입니다. 저는 무남독녀 외딸이고 남편은 7남매의 넷째. 저의 부모님이 외로우실까봐 저희는 살림을 친정에서 차리기로 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순조롭게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너무 자상한 관심이 요즘은 귀찮은 간섭으로 변해가는 것이 탈이에요. 밤이면 불 끄고 일찍 자라고 성화이시고, 아침에는 사위가 식사를 많이 안 한다고 꾸중이십니다. 아무 때나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은 물론 제 속옷 갈아입는 것까지 참견을 하십니다. 우리 두 내외를 너무 갓난애 다루듯 하셔요. 매일 화를 낼 수도 없고 가끔 우울하고 불행한 기분에 빠져버립니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서울 성북동에서 이경아> 어서 아기를 낳아드리세요 하루빨리 아기를 낳아 드리세요.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거예요. 부모의 눈에는 육순의 자식도 어린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따님을 시집 보낸 지 벌써 9개월이 지났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따님을 어른으로 인정하기가 싫으신 거예요. 살림을 따로 났더라도 그럴 텐데 같은 집안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요. 아기를 얼른 낳아 드리면 싫더라도 현실을 인정하시게 될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머니의 관심은 모두 손주에게로만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오히려 따님과 사위에게 무관심한 어머니를 서운하게 생각할 걸요. 당신은 귀염둥이 아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어머니와 다투지 않을 마음의 준비나 해두시죠.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2일자 ▒▒▒▒▒▒▒▒▒▒▒▒▒▒▒▒▒▒▒▒▒▒▒▒▒▒▒▒▒▒ [Q여사에게] 누드 보는 고교생 아들, 불량해진 게 아닐까요 저의 외아들은 올해 16세의 고등학생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성격이 쾌활하고 공부는 보통보다 상(上),스포츠도 몇 가지 취미로 하고 있는 데다 어른들에게 사근사근한 모범소년입니다. 누이도 없이 자란 외아들이어서 어떨까 싶어 가끔 교회의 학생회(남녀)를 집에 초대하는 정도로 여학생 교제를 허락하고 있어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저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얘가 글쎄 누드가 실린 잡지나 책을 탐독하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 애가 훔쳐다 보는 명화집을 열어보니 맨 나체화예요. 요즘은 또 아버지가 보시는 어른 잡지(물론 그 중에는 선데이서울도 끼어 있음)를 열심히 보는군요. 아이가 갑자기 불량소년으로 변신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서울 정릉에서 김> 강압적으로 막지 말고 자꾸 사주는 것이 좋아 애지중지 곱게 키운 외아드님에 대한 그런 걱정은 어머니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틈에 여자의 나체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서 아마 퍽 놀라셨겠죠. 그러나 벌써 열 여섯 살이라니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할 나이입니다. 강압적으로 금서(禁書) 목록을 제시하거나 책을 압수해 버리려 들지는 마셔요. 아드님 같은 모범소년이 반항적인 소위 불량소년으로 변하는 첩경은 바로 어른의 강압적인 명령이니까요. 아무 힌트도 주지 말고 당신이 원하시는 양서를 자꾸 사주시는 길 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한 가지 김부인, 성범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춘화도 같은 것을 즐기는 계층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설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건전한 상식인이라고 미국의 심리학자 데오도어 루빈 박사가 말하고 있으니 이 일 한 가지 때문에 아드님의 불량성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닐까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1월 3일자 ▒▒▒▒▒▒▒▒▒▒▒▒▒▒▒▒▒▒▒▒▒▒▒▒▒▒▒▒▒▒ [Q여사에게] 구식 엄마가 싫어요 18세 밖에 안된 고등학교 3년생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18세란 몸차림을 단정하게 꾸미는 것이 이상할 만큼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어린 것이 모양만 낸다고 늘 꾸중을 하세요. 이제 마흔 밖에 되지 않은 어머니가 왜 그렇게 구식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집에서도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싶고 지저분한 차림으로 밖에 나가는 것은 질색이에요. 며칠 전에는 어머니께서 동생의 생일떡을 돌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기에 머리를 빗고 거울을 들여다본 뒤 블라우스로 갈아 입었거든요. 그랬더니 펄펄 뛰시면서 불같이 화를 내시잖아요. 꼭 저희 친할머니를 닮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어머님을 말예요. 2, 3년 전까지도 우리는 정말 의좋은 모녀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의가 좋기는커녕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슬퍼서 못 견디겠어요. <서울 수유리에서 이현자>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참으세요 정말 얼마나 슬플까요. 10대 때의 그런 슬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랍니다. 나도 어른이기 때문일까요. 일을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와 따님이 마찬가지 아닌가 싶군요. 어머니 편에서 보면 따님이 다 커서 심부름 같은 것도 잘 해주지 않고 어쩐지 자기 품에서 떠나 버리는 것 같은 데다가 몸차림에 마음을 쓰는 것도 어른이 되어 버리는 듯 해서 싫다는 느낌이 드셨던 거죠, 아마. 어머니께서 따님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납득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를 권하고 싶군요. 지금 새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꾸 대항하면 어머니는 아마 현자양이 어머니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걸로 오해하실까 겁나는군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6일자 ▒▒▒▒▒▒▒▒▒▒▒▒▒▒▒▒▒▒▒▒▒▒▒▒▒▒▒▒▒▒ [Q여사에게] 자식에 무관심한 부모 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엄마 아빠에게는 외딸이면서 맏이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동생 둘이 있어요. 엄마는 학교 선생님, 아빠는 회사원인데 두 분 모두 바쁘게 나돌아 다니기만 합니다. 엄마는 주간과 야간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고 아빠는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시게 되기 때문이래요. 저는 가끔 우리는 ‘사는 것 같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에게 한번 그렇게 말했더니 깔깔 웃기만 하시잖아요. 일하는 아줌마가 있지만 동생들을 구박하니까 물 떠다 주고 사과주스 갈아주는 것은 제가 해요. 남의 엄마들은 집에서 전병도 부쳐주시고 카레 라이스도 해주지요. 저는 그런 점이 제일 부러워요. 일요일에도 아빠는 회사 나가시고 엄마는 엄마방에서 쿨쿨 주무십니다. 이런 엄마 아빠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서울 전농동에서 이정연> 불평만 늘어놓기보다 예의를 지키도록 정연양! 착하고 예쁜 정연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동생들에게 물 떠주고 사과주스를 만들어 준다니 정연양의 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정연양이 동생들을 그렇게 잘 보살펴 주니까 더욱 행복하시겠죠? 정연양은 국민학교 5학년이면서 벌써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군요. 얼마나 흐뭇하고 기쁜 일이에요? 엄마 아빠도 남들처럼 정연양에게 카레 라이스도 해주고 함께 즐기고 싶으시겠죠. 그런데 보통 때는 바쁘시고 일요일이면 피곤해서 주무시겠죠? 어른들, 특히 밖에서 일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피곤하답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일요일에 정연양의 손으로 사과주스를 만들어 드려보세요.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3월 30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4. Q여사에게 (4)남자만의 이 고통, 누가 알아줄까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4. Q여사에게 (4)남자만의 이 고통, 누가 알아줄까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하지만 전 남자를 좋아합니다. 제 짐작에는 동성애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때는 “동성연애 할 남성 구합니다”라는 광고를 내볼까 궁리도 해 봅니다. 이런 것이 혹 무슨 병이 아닌지요.”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4)남자만의 이 고통, 누가 알아줄까요 [Q여사에게] 동성연애 병 아닐까요 제 나이 23세가 되도록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삽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 보지 못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남들이 맛본다는 감정의 동요조차도 경험해 본 일이 없습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면 곧이 들리지 않겠지요? 하지만 전 남자를 좋아합니다. 제 짐작에는 동성애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때는 “동성연애 할 남성 구합니다”라는 광고를 내볼까 궁리도 해 봅니다. 이런 것이 혹 무슨 병이 아닌지요. 병이라면 어떻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남들과 다른 괴짜가 되어서 손가락질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울 노량진에서 K 고민생> 고치기 어려운 도착증 동성연애는 정신신경과에서 취급하는 병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이 짐작한 대로 뿌리가 깊은 정신병입니다. 민병근 성심병원 정신신경과장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성연애는 성도착 증상의 일종이며 성격발달 도중에 생긴 결함으로 정상 성격을 구성하지 못하여 생긴 병입니다. 대개의 경우 어려서 부모와 정상적인 애정 교환을 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부작용이 이런 병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원인부터가 이처럼 멀고 막연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므로 치료도 매우 어렵습니다. 상투적인 얘기 같지만 신경정신과적인 전문 치료를 받아야만 치료의 희망이 있는 병입니다. 이 병은 동성연애 증상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성적인 이런 괴짜는 사회적으로도 적응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만일 진단이 동성애로 나타난다면 고질이 되기 전에 고치기를 권합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8월 24일자 ▒▒▒▒▒▒▒▒▒▒▒▒▒▒▒▒▒▒▒▒▒▒▒▒▒▒▒▒▒▒ [Q여사에게] 사돈간의 사랑 때문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25세의 남성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20세 때부터 한 여성을 사랑해 왔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아낍니다. 그러나 수년 동안 끈질기게 반대를 해오는 양쪽의 부모님과 친척들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여인과 저와의 가족관계 때문입니다. 그 여성은 저의 외숙모의 여동생입니다.사돈이 되는 셈이죠. 이런 경우 법률적으로 결혼 신고를 할 수는 없는지요? <대구에서 이성> 사돈간의 결혼, 법률과는 무관 전문가에게 문의했더니 사돈지간이라고 해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법률 조항은 없다는군요. 사돈 간의 결혼을 꺼리는 것은 단지 관습적인 것일 뿐 법률적인 문제와는 관계가 없답니다. 그러나 결혼 당사자인 남자 만27세, 여자 만23세 미만일 경우에는 결혼 신고를 할 때 양쪽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답니다. 그러므로 이성씨의 경우 현재 25세라니 2년만 더 기다리시면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결혼신고가 가능하게 됩니다. 5년간을 견디어 오셨다니 앞으로 2년은 문제가 되지 않겠죠. 용기를 가지십시오. <Q> -선데이서울 1970년 5월 17일자 ▒▒▒▒▒▒▒▒▒▒▒▒▒▒▒▒▒▒▒▒▒▒▒▒▒▒▒▒▒▒ [Q여사에게] 더는 못 기다린다는 약혼녀 29세의 남성이며 현재 월남(베트남)에 있는 미국 토건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23개월 전 이곳에 오기 전 10년 연하의 여인과 약혼을 하고 왔습니다. 처음 떠나 올 때 첫 계약인 18개월만 끝내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12개월만 더 있다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약혼녀가 말을 들어 주질 않는군요. 15개월 되는 때 휴가는 다녀왔습니다. 편지도 약혼녀에게 매일 쓰다시피 하며 2년을 보냈습니다만 곧 간다고 하고 2개월씩 연장하며 지내다 보니 이젠 편지도 끊어져 버린 지 달포가 가까워 옵니다. 어떻게 잘 타일러 계획하고 있는 날까지 있다가 가려 하는데 묘안이 없겠습니까? <월남에서 무명씨> 돌아오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위 글로만 보면 당신에게 월남 근무 기간을 단축하고 싶은 의사는 전혀 없는 것 같군요. 그러니 사태는 절망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겠어요. 당신하고 가까이 있는 것 밖에는 원하지 않는 그녀에게 당신 자신이 돌아와 주는 것 밖에 다른 묘안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등신대(等身大)쯤 되는 장난감 곰이라도 하나 사서 “사랑해!”라는 편지를 가슴에 달아 약혼녀에게 보내 보셔요. 골이 잔뜩난 그녀가 폭소를 터뜨려 버리고 달포 밀린 답장을 쓸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미봉책에 지나지 않아요. 돈도 좋고 일도 좋지만 귀여운 약혼녀를 영영 잃어 버리지 않으려거든 얼른 귀국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Q> -선데이서울 1970년 1월 25일자 ▒▒▒▒▒▒▒▒▒▒▒▒▒▒▒▒▒▒▒▒▒▒▒▒▒▒▒▒▒▒ [Q여사에게] 여섯 번 퇴짜맞은 중매, 부모 고집 꺾으려면… 저는 올해 28세로 집안 일을 책임지고 있는 장남입니다. 불행히도 다섯 여동생이 있습니다. 올 들어 결혼문제가 우리 가정의 큰 문제로 등장해 선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우리집은 부모님의 뜻대로만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만나는 색시마다 이쪽에서 거절하기도 전에 먼저 “시누이가 많다”,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 “월수가 적다” 등 조건으로 거절을 해 옵니다. 자그마치 여섯 번이나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모욕감, 불쾌감이 들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여성을 저 자신이 물색해서 결혼하고픈 마음 간절한데 장차 결혼 후에 오는 부모님의 문책 또는 가정적인 분위기가 염려돼 고집할 수가 없어요. 부모의 고집을 완화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묘한 수단 방법은 없을까요? <경북 의성에서 김재환> 그런 색시 생각 마셔요, 1년쯤 참으며 꾸준히! ‘불행히도 다섯 여동생이’ 라니 그런 실례의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다행이에요. 장남인 오빠를 다섯 공주가 다투어 가며 위할 테니. 시누이 많다고 싫다는 색시들은 거절 당하기 전에 당신이 딱지를 놓을 걸 그랬어요. 어머니와 다섯 누이동생의 살뜰한 위함을 받던 당신을 그만큼 살뜰하게 위해 줄 자신이 없다는 것이 그 색시들의 속마음이니까요. 결혼을 그렇게 거저 먹기로, 편한 취직쯤으로 생각하는 색시는 아예 거들떠 보지도 마세요. 부모님들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앞으로 1년쯤만 참고 선을 보세요. 시누이나 살림형편 문제로 거절을 당하다 보면 그 어른들도 손을 들겠죠. 그러면 29살 노총각이 되시죠. 그때 마음에 맞는 처녀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Q> ▒▒▒▒▒▒▒▒▒▒▒▒▒▒▒▒▒▒▒▒▒▒▒▒▒▒▒▒▒▒ [Q여사에게] 19세의 의붓딸 때문에 39세의 남성입니다. 초혼에 실패하고 방랑 생활을 하던 중 36세가 되던 해 3월 지금의 아내와 알게 돼 여태까지 동거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전 남편 소생이 딸 둘 뿐인 줄 알고 있었는데 동거 2개월만에 다른 곳에 나가 있던 19세짜리 장녀가 들어와 아내와 저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야단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고, ‘아저씨’ 아니면 ‘그 사람’이라고 부르며 밉상을 떱니다. 저로는 의지할 곳이 없으며 동기간도 없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알게 된 뒤부터 고독하고 외로운 마음을 다바쳐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나는 결혼신고도 정리되어 있는 부부 사이이며 아내는 남의 가정부 노릇까지 해가며 나의 성공을 밀어주며 행복한 장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딸들 성화에 우리 내외는 헤어져야 하는 건지, 어쩔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임> 그 딸에게 남자친구 생기면 달라져 40세나 된 남자 분이 의지도 무척 약하시군요. 19세 밖에 안되는 처녀 애의 등쌀에 정당한 부부가 헤어지다니 말이 되겠습니까. 19세쯤이면 어머니의 이성관계에 예민한 나이입니다. 그러나 곧 자기에게도 사랑하는 남성이 생길 것이고 그러고 나면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다가 시집도 가게 되고 하면 모든 일이 무사히 해결될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12월 14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3. Q여사에게 (3)고달픈 자여, 너의 이름은 샐러리맨…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3. Q여사에게 (3)고달픈 자여, 너의 이름은 샐러리맨…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같은 사무실의 남성들 전부가 변태 아니면 색마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고 가는 잡담이 모두 음담패설인 것은 그래도 참아주겠는데 혹시 다방에라도 같이 가면 얼굴이 뜨거워서 못 견디겠어요.”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3)고달픈 자여, 너의 이름은 샐러리맨… [Q여사에게] 직장 분위기에 환멸이 느껴져요. 올해 20세 된 직장 여성입니다. 여자가 직장에 다녀서 뭘 하느냐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여학교만 나온 터이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이 집안이 어려워서는 아닙니다. 집에서는 살림 배우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 직장 생활 1년인데 저는 인생에 대한 환멸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의 남성들 전부가 변태 아니면 색마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고 가는 잡담이 모두 음담패설인 것은 그래도 참아주겠는데 혹시 다방에라도 같이 가면 얼굴이 뜨거워서 못 견디겠어요. 다방 레지 아가씨의 온 몸을 주무르고 야단들이에요. 아침부터 밤까지 이러는 남자들의 심리는 무슨 병일까요. 시집 가서 이런 남자하고 산다고 생각하니 몸이 오싹할 지경입니다. 제가 이상한 여자일까요? 직장을 그만두면 이런 나쁜 기억은 사라지게 될까요? <서울 소공동에서 백> 존경하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을… 그런 직장은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것이 백양의 정신 건강에 좋겠습니다. 남자들이란 자기네끼리 있을 때라든가 직업적인 서비스걸 앞에서는 못하는 소리와 행동이 없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직장과 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들 하지요. 정신생활이 빈곤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좌절만 맛보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해소시킬 만한 취미, 정신적 활동까지도 못갖게 되면 결국 백양이 보고 있는 그런 변태나 색마로 타락해 버리는 것이라고 일부 심리학자들은 설파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백양을 숙녀로 보지 않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심한 정신병자라도 그 광란 중에 자기가 조심해야 할 상대를 구별합니다. 하물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변태증세도 매우 가벼울 것이에요. 예절을 지켜야 할 상대 앞에서라면 레지의 몸을 주물러 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양, 이런 사태는 백양 자신이 아마 몹시 체신없고 경박하게 굴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여자라는 신념을 갖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장담합니다. 걱정말고 시집가세요. <Q> -선데이서울 1969년 9월 14일자 ▒▒▒▒▒▒▒▒▒▒▒▒▒▒▒▒▒▒▒▒▒▒▒▒▒▒▒▒▒▒ [Q여사에게] 간부 여사원이 자꾸 괴롭히는데… 석 달 전부터 저의 사무실 생활은 지옥보다도 더 비참해졌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 2년인 22세의 타이피스트입니다. 그런데 석 달 전 40대 노처녀 타이피스트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타이피스트 경력 20년이니까 물론 초스피드예요. 영어도 잘하기 때문에 외국인인 사장의 비서 역할까지 합니다. 회사가 커져서 채용된 간부급 타이피스트라나요. 그런데 이 간부 여사원이 들어오는 날부터 저를 구박하는 거예요. 오타를 나무라는 것은 물론 전화받는 법이 잘못됐다는 둥,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흉을 봅니다. 그것도 10여명 남자사원이 있는 데서 큰 소리로 빈정거려요. 요즘은 회사를 나오려면 골치가 아파지고 그 여자가 옆에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사무실에서 퇴근을 해야만 두통과 가슴의 고통이 멎는 거예요.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처지는 못되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서울 소공동에서 미스리> ‘아첨이냐, 대결이냐’ 택일을 하세요 22세 아가씨와 40대 노처녀 사이에도 질투의 감정은 생생하게 일어나는 모양이군요. 미스리는 자기만이 피해자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 질투의 감정은 양편에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을 시인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이 말이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요? 문제 해결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미스리가 태도를 돌변해서 이를테면 옛날 소설에 나오는 기생첩이 대감마님 위하듯 아첨하는 법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대판 싸움을 걸어서 응어리 졌던 감정을 푸는 법이 있겠지요. 셋째, 제일 건전하고 상식적인 방법인데 낙서첩을 한 개 마련해 틈만 나면 그 40대 여인의 욕설, 악담을 적는 것입니다. 속이 후련해져서 정작 그 사람을 맞닥뜨리면 미운 감정이 약화될 겁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4월 20일자 ▒▒▒▒▒▒▒▒▒▒▒▒▒▒▒▒▒▒▒▒▒▒▒▒▒▒▒▒▒▒ [Q여사에게] 미스 K가 미워 죽겠는데… 직원이 40명쯤 되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노총각 샐러리맨입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은 직원이 열 명쯤 있고 여자는 미스K 한 명 뿐입니다. 미스K는 이 회사의 터줏대감 격인 모양인데 이 방 안에서는 과장 다음쯤으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29살이래요. 외모만 보아서는 별로 올드미스 티가 나지 않는 이 여자가 하는 짓만은 여간 올드미스가 아닙니다. 나이는 나보다 겨우 한 살 더 먹은 주제에 어른 행세가 대단하거든요. 전화를 실수로 잘못 받는다든지 장부 정리에 미스가 있으면 일일이 망신을 주는 겁니다. 아무리 직위는 저보다 위라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요즘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싫고 그 여자만 옆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할 지경입니다. 속 시원하게 분을 풀어 볼 길은 없을까요. <서울 태평로에서 박> 그 여자를 향해 욕을 마구 해대세요 얼마든지 있지요. 미스K가 듣는 앞에서 욕을 마구 해대는 것은 어떨까요. 이를테면 “내 친구 녀석의 사무실에는 말이야, 되게 똑똑한 여자가 한 명 있는데 말야”로 시작해서 그 여자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가며 빈정거리는 겁니다. 유치하다구요? 이런 때는 한껏 유치해져야 합니다. 게다가 올드미스 아가씨 하나쯤 매혹시켜 꼼짝 못하게 하는 솜씨도 없는 당신이라면 그런 유치한 짓이 썩 잘 어울릴 것만 같은데요. 좀 덜 유치한 방법도 있지요. 수첩 하나를 마련하세요. 틈틈이 그 수첩에다가 미스K의 욕을 잔뜩 써 보시죠. 속이 좀 후련해질 걸요. 당신이 다른 곳에서 분을 풀고 나면 미스K가 좀 덜 미워질 게고 또 그러면 미스K의 태도도 조금은 달라지리라고 믿습니다. 안 그럴까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13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2. Q여사에게 (2)아무도 모르는 짝사랑의 상심, 하지만…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2. Q여사에게 (2)아무도 모르는 짝사랑의 상심, 하지만…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 분 말고 제가 사랑하고 또 결혼할 결심이 서 있는 남성이 따로 있으니 큰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분에게 아무런 사고도 없이 헤어질 수가 있을까요. 그 분은 약까지 준비해 두었대요. 정말 죽을까요?”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2)아무도 모르는 짝사랑의 상심, 하지만… [Q여사에게] 약먹고 죽겠다는 남자 22세의 직장 여성이에요. 오래 전에 한 동네에 사는 남성에게서 사랑의 편지가 왔기에 냉정히 돌려보냈습니다.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애정 고백을 해 온 것입니다. 그러자 그 남성은 방랑의 길을 떠나고 타락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저는 겁이 나서 마음을 잡아주려고 고백을 받은 지 1년만에 만나 주었습니다. 이제는 마음도 잡은 것 같아요. 그만 만나자고 말을 꺼내면 그 분은 죽는 게 낫다면서 울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분 말고 제가 사랑하고 또 결혼할 결심이 서 있는 남성이 따로 있으니 큰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분에게 아무런 사고도 없이 헤어질 수가 있을까요. 그 분은 약까지 준비해 두었대요. 정말 죽을까요? <충북 청주에서 Y녀> 값싼 동정심 발휘하지 마세요 당신 같이 어리석고 마음이 쓸 데 없이 착한 여성 때문에 세상의 공연한 말썽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용기로 거절하고 1년이나 참았습니까. 1년 동안 식힌 그 남성의 마음을 공연스레 다시 불태워 놓고 지금은 또 헤어지고 싶다고요? 죽고 싶으면 그 남성은 1년 전에 죽었겠지요. 지금 만일 죽는다면 당신이 죽도록 사랑스러워서가 아니고 당신같이 어리석은 여자에게 사랑을 우롱당한 것이 분해서일 것입니다. 당신 아니면 죽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당신 자신 이외에는 없음을 명심하세요. 사고가 조금 나든 말든 지금이라도 그 남성의 진심을 우롱하는 짓은 단념하고 헤어지세요. 그리고 ‘인심 좋은 과부, 시아버지가 열둘’이라는 속담을 당신은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당신이 진실로 사랑한다는 그 남성과의 결합 후에라도 당신의 그 값싼 동정심이 함부로 발동했다간 큰 일이니까요. <Q> -선데이서울 1969년 8월17일자 ▒▒▒▒▒▒▒▒▒▒▒▒▒▒▒▒▒▒▒▒▒▒▒▒▒▒▒▒▒▒ [Q여사에게] 그이는 내마음 몰라줘 19세의 여학생입니다. 21세의 남성과 교제하고 있는데 성격이 저와는 정반대입니다. 나는 그사람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불안해서 꼼짝을 못합니다. 음악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영화를 봐도 건성입니다. 식탁에 마주 앉으면 식욕을 잃어버려 물만 마시고 맙니다. 그런데 그 분은 반대로 끝없이 떠들어대고 식욕도 굉장합니다. 자기 몫을 먹고는 내 몫까지 처분해 버립니다. 그가 나처럼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제멋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도 마땅히 불안을 느껴야 하고 아귀처럼 먹어대기보다는 나에게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요? 나는 짝사랑인가요, 그 분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요. 궁금해 못 견디겠습니다. <서울 갈현동에서 원> 당신이 오히려 리드를 미스원의 고민은 짐작할만 합니다. 그러나 떠들어대고 아귀처럼 먹어대는 것과 사랑과는 별 관계가 없으니 우선 안심하세요. 그보다는 미스원께서 좀더 가벼운 기분으로 그 분을 대하도록 해보세요. 그 분이 혼자 떠들어대는 것은 미스원이 너무 불안하고 심각한 얼굴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어색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탈피하려고 이것 저것 얘기를 터뜨리는 것입니다. 우선 미스원도 그 분의 얘기에 자기 의견을 주장해 보세요. 화제를 적당히 돌려도보고 만나는 장소도 바꿔보세요. 항상 듣는 편에 서기보다 이따금 명랑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이쪽에서 리드도 해보세요. 불안감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미스원도 그 분처럼 식욕도 왕성해지고 명랑하게 사귈 수 있을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7월 2일자 ▒▒▒▒▒▒▒▒▒▒▒▒▒▒▒▒▒▒▒▒▒▒▒▒▒▒▒▒▒▒ [Q여사에게] 그 소녀와 친해지려면? 고교를 갓 졸업한 소년입니다. 지난 2월부터 그녀와 냉전이라면 너무나 긴 냉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십번, 수백번 얼굴을 대하면서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습니다. 그녀와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이렇게 돼 버렸는지 저 자신도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저를 싫어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저를 먼저 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도 아니랍니다. 여기서 그녀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언니네 집에 와서 있는 16세의 소녀입니다. 키 크고 조숙한 소녀예요. 매일 매일 얼굴을 대하노라면 가슴만 괴로울 뿐입니다. 예전처럼 편안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정> 좋은 구실을 만들어보세요 소녀가 갑자기 소년에게 연정을 느껴서 당황한 끝에 피하고 외면하기로 결심한 걸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2월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이해될 테니까. 그런데 소년은 그런 눈치도 모르고 흘끔 흘끔 쳐다만 보고 있으니 소녀는 더욱 속이 상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성적인 성격이라니까 좀 힘은 들겠지만 예전과 조금도 다른 일이라곤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 보세요. 한 두 번 피하는 일을 당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옛날 만큼 친근한 태도로 말을 걸어 보세요. “단추가 떨어졌는데 바늘실 좀 빌려 줄래?” 하는 따위의 애교 있는 구실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Q> -선데이서울 1969년 6월 22일자 ▒▒▒▒▒▒▒▒▒▒▒▒▒▒▒▒▒▒▒▒▒▒▒▒▒▒▒▒▒▒ [Q여사에게] 10년 사귄 선원 때문에 올해 32세인 이른바 ‘하이 미스’입니다. 독신주의여서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벌어 먹여야 할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결혼하자고만 하면 당장이라도 허락하고 싶은 남자가 한 사람 있기는 합니다. 10년 전에 처음 사귀어 1년에 겨우 4~5차례씩 만나 온 그 남성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선원이어서 1년중 8, 9개월을 해외에서 보냅니다. 나머지 4, 5개월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근무합니다. 우리가 겨우 4~5차례씩 만나게 되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이때껏 고백다운 고백을 서로 한 적은 없지만 그가 나를,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못잊어 하는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번도 결혼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10년간 그의 ‘청혼’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편지도 서로 보내는 일이 없고 이제 잊어야겠다고 단념할만 할 때 한번씩 해외에서 도착한 그의 편지가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요즘 저의 집에서는 신랑감을 줄줄이 갖다놓고 강제결혼이라도 시킬 기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먼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기에는 어쩐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서울 영등포에서 황> 적극적으로 나가셔요 시시한 자존심을 버리고 이편에서 적극적으로 나가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글로 보아 그는 1년 중 8, 9개월이나 해외에서 보내는 직장생활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진정으로 이 남자 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면 대담하게 결혼신청을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물론 연중 4~5개월만 같이 있는 부부생활을 감당할 만한 각오는 서 있어야겠지요. 10년이나 끌어온 두분의 연애라니까 그것쯤 문제야 없겠지만. <Q> -선데이서울 1969년 9월 28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1. 남탕과 여탕…‘금단(禁斷)의 땅’을 밟은 男女들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1. 남탕과 여탕…‘금단(禁斷)의 땅’을 밟은 男女들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지난 6일 낮 12시쯤 경남 창녕의 한 목욕탕 남탕에 난데없이 22세 아가씨가 ‘풍덩’ 뛰어들었는데, 의령에 사는 이 아가씨는 창녕에 온 김에 목욕을 할 작정으로 들어와...” 사우나 여탕 침입한 제주시 수습공무원 경찰에 체포제주지방경찰청은 사우나 여탕에 침입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제주시 9급 수습공무원 A(30)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오후 10시께 제주시 연동의 한 사우나 여탕에 들어가 5분여간 안을 두리번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제주시 관계자는 “A씨가 자생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사우나에 갔다가 여탕이 있는 층으로 잘못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2014년 12월 18일 연합뉴스 기사)오랜만에 보는 ‘목욕탕 뉴스’입니다. ‘금단의 구역’일수록 호기심과 월경에의 욕망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경계를 넘어 금지된 공간으로 진입한 남녀들에 대한 1단짜리 기사는 예전부터 사회면 귀퉁이 가십란의 단골메뉴였습니다. 과거 뉴스들을 모아봤습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1. 남탕과 여탕…‘금단(禁斷)의 땅’을 밟은 男女들 [알몸의 22세 아가씨, 남탕에 풍덩 몸을 던지자] -선데이서울 1972년 3월 19일자 6일 낮 12시쯤 경남 창녕의 한 목욕탕 남탕에 난데없이 22세 아가씨가 ‘풍덩’ 뛰어들었는데, 의령에 사는 이 아가씨는 창녕에 온 김에 목욕을 할 작정으로 들어왔는데, 남탕을 여탕으로 잘못 안 데다 마침 요금 받는 주인도 없고, 탈의실에 남자 손님도 없어 훨훨 알몸으로 남탕문을 열고 활개치며 들어갔다는 것. 벌거벗은 아가씨가 들어오자 기절초풍한 남자손님 5명은 “무슨 일이냐”고 아우성. 놀라기는 아가씨도 마찬가지. 벌거벗은 몸을 감추기 위해 탕 안으로 뛰어들었는데 탕 속에 있던 남자들도 엉겁결에 중요한 부위만 가리고 벽 쪽으로 도망을 쳤다는 것. 목욕탕 주인이 옷을 갖고 눈을 감은채 들어와 간신히 아가씨를 피난시켰다고. ▒▒▒▒▒▒▒▒▒▒▒▒▒▒▒▒▒▒▒▒▒▒▒▒▒▒▒▒▒▒ [여자가 남탕에…알고보니 슬픈 사연이] -선데이서울 1971년 4월 11일자 지난 2월 27일쯤 경남 마산의 한 목욕탕 남탕에 느닷없이 여성이 들어서서 발가벗은 남성들이 혼비백산했는데. 시골에서 마산 친지집에 다니러 온 30대 여성 한 사람이 친지의 권유로 이날 저녁 이웃 목욕탕에 갔는데, 문맹인 이 여인은 남탕·여탕의 글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매표소에 앉아 있는 7세 꼬마에게 돈을 지불한 뒤 태연하게 남탕 탈의실로 들어섰던 것. 느닷없이 여성이 들어서자 기겁한 남성들은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으며 중요한 곳을 가리느라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고. ▒▒▒▒▒▒▒▒▒▒▒▒▒▒▒▒▒▒▒▒▒▒▒▒▒▒▒▒▒▒ [벌거벗고 여탕으로 풍덩 뛰어든 30대男] -선데이서울 1971년 4월 18일자 지난 3월 25일 오전 7시쯤 경남 삼랑진의 한 목욕탕 여탕에 느닷없이 벌거벗은 남자가 뛰어들어 한바탕 소동. 이 목욕탕은 얼마전 남탕과 여탕을 바꿔 보수하고 신장개업을 했는데 이것을 몰랐던 K(32)는 습관대로 ‘구 남탕’으로 들어갔던 것. 공교롭게도 여탕을 지키는 종업원이 화장실에 간 상태여서 K씨는 훌렁훌렁 옷을 몽땅 벗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뽀얀 김 때문에 목욕하는 사람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을 못해 욕조로 풍덩 뛰어들었다고. 그런데 걸작은 K씨의 능청스런 답변. 다급한 종업원이 “아저씨, 번지수가 틀렸어요”라고 아우성치며 달려들자 끌려나가면서 한 그의 말. “번지수는 제대로 찾았는데 뭘….” ▒▒▒▒▒▒▒▒▒▒▒▒▒▒▒▒▒▒▒▒▒▒▒▒▒▒▒▒▒▒ [동냥 거절에 앙심 품고 택한 것이 ‘여탕 습격’] -선데이서울 1972년 1월 23일자 부산 영도경찰서는 8일 목욕탕 여탕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운 황모(33·주거부정)씨를 즉심에 넘겼는데. 황씨는 7일 오후 5시쯤 영도에 있는 목욕탕에 구걸을 위해 들렀는데 이곳에서 돈을 주지 않고 쫓아내자 분에 못이겨 그대로 욕탕문을 열고 들어간 것. 황씨는 경찰에서 “10원짜리 구걸보다 여자들의 알몸을 실컷 구경했으니 한이 없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고. ▒▒▒▒▒▒▒▒▒▒▒▒▒▒▒▒▒▒▒▒▒▒▒▒▒▒▒▒▒▒ [여탕 몰래 엿보다가 탄성 지른 10대] -선데이서울 1971년 11월 28일자 대구경찰서는 16일 여모(18)군을 즉심에 넘겼는데…. 여군은 이날 오전 7시쯤 대구시내 모 목욕탕에 달린 미장원 안방에 몰래 숨어 들어가 이곳에 뚫린 구멍을 통해 여탕을 훔쳐보다 그만 저도 모르게 ‘여체의 신비’에 탄성을 지르고 말았고, 결국 목욕을 하던 여자 손님들에게 들키고 만 것. 장래가 촉망되는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 ▒▒▒▒▒▒▒▒▒▒▒▒▒▒▒▒▒▒▒▒▒▒▒▒▒▒▒▒▒▒ [여탕에 뛰어들어 기분 낸 정신질환자] -선데이서울 1972년 3월 12일 23일 광주 경찰은 여탕에 뛰어들어 목욕 중인 처녀를 껴안고 소란을 피운 사내를 연행했는데데. 이날 오후 4시쯤 광주 충장로의 한 목욕탕에 이○○(32)라는 남자가 뛰어들어 왔는데 느닷없이 여탕으로 들어가 한참 몸을 씻고 있는 아가씨를 꽉 껴안았다는 것. 파출소에 끌려온 사내는 마구 행패를 부리며 “전화기들이 모두 여자로 보인다”는 둥 횡설수설. 그의 신분을 캐고 보니 3일전 정신착란을 일으켜 가출한 사실이 드러나 정신병원으로 되보냈다고.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0. Q여사에게 (1)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0. Q여사에게 (1)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3세의 가사를 돌보는 여성입니다. 3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그와 결혼할 약속을 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임신 7개월이 되었을 때 그는 중절을 강요하여 유산을 시켰습니다.” 인생살이에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한참 전, 활자 매체도 그리 풍부하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대중 미디어를 통해 고민을 상담하곤 했습니다. 과거 선데이서울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며 많은 이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이 하얀 편지지에 적혀 선데이서울 편집국으로 속속 배달됐고, 기자들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40여년 전 그 시절의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코너의 주요 내용을 발췌, 몇회로 나눠 전달합니다. (답변 중에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보시기 바랍니다.)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 [Q여사에게] 유산(流産) 후에 피하는 남자 23세의 가사를 돌보는 여성입니다. 3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그와 결혼할 약속을 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임신 7개월이 되었을 때 그는 중절을 강요하여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피하는 것은 물론 여러 친구들에게 저의 흉을 보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 옵니다. 소문에는 그가 요즘 다른 여성과 사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공무원입니다. 그의 직장상사에게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해 그를 파면시킬 수 있는지, 결혼을 빙자한 간음죄로 고소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요. <서울 제기동에서 김> 가정법원을 찾으세요 김양의 경우 결혼을 빙자한 간음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성이 이만저만한 돈환(돈주앙·바람둥이)이 아닌 것은 당신의 편지로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쪽 편에서도 단단한 각오로 증거를 수집해 놓은 다음 고소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법원이 이런 일을 해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잔소리 같지만 김양, 그런 남자를 골라서 교제하고 게다가 결혼 전에 몸까지 허락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 자신을 나무라 본 적이 있읍니까. 결혼 전에 성행위를 할 용감성이 있다면 그것을 그 즉시 청산할 만한 배짱도 있어야 현대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1969년 7월 13일자 ▒▒▒▒▒▒▒▒▒▒▒▒▒▒▒▒▒▒▒▒▒▒▒▒▒▒▒▒▒▒ [Q여사에게] 아내있는 남자와 관계 저는 여학교 교무실에서 타이피스트 겸 비서로 일하고 있는 미혼 여성입니다. 여러 선생님 중에서 코주부 K선생은 특히 학생들 간에 인기가 있고 친절하셔서 가끔씩 조그마한 선물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저는 마음 속으로 K선생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 K선생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해 왔고 우리는 데이트를 여러번 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저는 저의 모든 것을 K선생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한번 관계를 갖게 되자 그뒤로 K선생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관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K선생은 이미 결혼해서 아내가 있는 몸, 아이들도 다섯이나 됩니다. 또한 K선생은 우리들의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면 모두가 파멸이라면서 입을 다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관계를 계속하기를 원하고 있으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직장을 그만둘까요? <충북에서 희자>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한마디로 희자씨는 훌륭하다는 K선생으로부터 농락당하고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군요. 선물로 호감을 산 것으로부터 관계를 맺은 후의 태도, 그리고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 한다는 점 등 여러가지로 미루어 보아 K선생은 결코 희자씨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K선생에게 미련을 갖거나 원망을 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처녀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의 방비가 소홀했던 때문이 아니겠어요? 또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겐, 비록 희자씨가 K선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더라도 맺고 끊는 듯이 명확히 감정의 선을 그을 수 있어야 교양인이라 할 수 있겠죠. 먼저 직장을 떠나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죠. 희자씨의 경우 먼저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열쇠입니다.<Q> -선데이서울 1970년 4월 19일자 ▒▒▒▒▒▒▒▒▒▒▒▒▒▒▒▒▒▒▒▒▒▒▒▒▒▒▒▒▒▒ [Q여사에게] 처자 있는 남자의 정부, 새 출발하고픈 약사… 저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무직의 40대 남자와 살고 있는 20대 후반의 약사입니다. 이 남자는 제 아버지의 제자여서 어려서부터 알던 사이입니다. 벌써 10년 전에 그의 꾐에 빠져 정부(情婦)가 된 것이 이제는 살림을 차리고 있습니다. 약방을 경영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남자가 약방을 꾸미는 데도 적잖은 돈을 부담해 주었어요. 물론 저희 집에서는 저를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혼을 한 바 있는 33세의 돈 있는 남자가 청혼을 해 왔고 서로 만나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사실 이런 비정상적인 생활에 진력이 나 있던 차입니다. 만일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저의 과거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또 지금 살고 있는 남자가 순순히 물러나 줄까도 의문입니다. 어떻게 새 출발을 하는 길은 없을까요. <서울 홍제동에서 홍> 지금의 남자와 헤어져 타산 없이 결심하셔요 당신의 복잡한 사연을 읽어 보니 저의 눈앞까지 캄캄해지는 것 같군요.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눈을 뜨다니 정말 딱하지 뭐예요. 게다가 스스로 그 일그러진 관계에서 헤어날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극을 받아서 그런 셈이니. 10년이나 젖은 생활에서 탈피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음에 안주할 배 같은 것(이를테면 새 청혼자)을 생각하는 그런 새 출발이란 이 경우에는 맞지 않아요. 정말 새 출발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우선 아무런 타산 없이 현재의 남자와 헤어져야 하겠죠. 남자편에서도 아마 그런 엄숙한 당신의 결심을 방해하지 않겠지요. 당신이 깨끗이 발을 씻은 다음이라면 결혼이나 연애, 어떤 일도 주저 없이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행운을 빌겠어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27일자 ▒▒▒▒▒▒▒▒▒▒▒▒▒▒▒▒▒▒▒▒▒▒▒▒▒▒▒▒▒▒ [Q여사에게] 초야(初夜)의 충격 때문에 15년 사는 아내 학대 저는 약 15년 전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고는 있습니다만 초야에 받았던 충격 때문에 가끔 술만 과음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아내는 초야 때 숫처녀가 아니었습니다. 완력을 행사하다 보니 지금은 앞 이빨이 두 개나 부러진 불쌍한 여인을 만들었습니다. 취중에 한 일이어서 그런지 기억에는 없는데 깨어 보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남들은 이상에 안 맞는다고 하여 이혼도 잘 하는데 나도 만약 이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녀는 2남 2녀입니다. 행복을 다시 찾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서울 신촌에서 윤일> 민법상 이혼 불가능, 처음부터 사랑했어요? 세상에는 문제도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일생 동안 괴로워하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윤일씨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군요. 결혼 초라면 몰라도 2남 2녀의 가정을 15년간 유지해온 지금, 더구나 ‘15년 전의 부정(不貞)’을 사유로는 이혼이 불가능합니다. 민법상으로 이혼소송을 성립시킬 수가 없습니다. 남들이 “이상이 맞지 않는다”며 하는 이혼을 부러워하시는데 윤일씨의 경우 도대체 무슨 이상이 맞지 않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군요. 육체적으로는 순결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순결하면 여인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조금도 불결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아내를 처음부터 사랑했을까요? 지금이라도 그 좁은 마음을 버리고 다시 한번 아내를 바라보세요. 그 심한 구박을 받으면서 2남 2녀의 어머니 노릇을 해낸 아내가 사랑스럽지 않으세요? 더구나 정작 학대를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당신의 아내인 것을 생각해보면 당신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겠지요. <Q> -선데이서울 1968년 12월 1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9. 정관수술, 과연 정력에 이상 있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9. 정관수술, 과연 정력에 이상 있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정부의 가족계획 포스터입니다. ‘저출산’이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얘기되는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언제 저럴 때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를 너무 안 낳아 문제가 된 게 아주 오래 전 얘기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아주 먼 과거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의 어지간한 40대만 해도 과거 20~30대 시절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장에서 정관수술 받는 대가로 조기 귀가의 혜택을 준다는 등 달콤한 제안을 받아본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과거 많은 남성들이 겁먹고 꺼렸다는 정관수술. 1973년 여성단체가 주관한 행사에서 남성들의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며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 [정관수술(精管手術), 과연 정력(精力)에 이상 있나?강해졌다 약해졌다 말도 많은데]-선데이서울 1973년 7월 22일자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 코리아나호텔에서 국내 24개 여성단체 대표와 각계 인사 40여명이 모인 가운데 가족 계획에 있어서의 남성의 역할이란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가졌다. 이 세미나는 처음으로 여성들이 남성에게 과감하게 문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학계,가족계 획사업 관계자와 정치•문화계 인사 등 다채로운 각 분야 남성들이 초빙된 것도 이날 행사의 특징이었다. 토론의 취지 설명에서 이화여대 이효재 교수는 ”우리나라의 여성은 그동안 출산의 노예로 살아왔다. 자녀를 낳는 것도, 안낳는 것도 그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처럼 몰려 왔다”면 어떻게 하면 단산(斷産)의 책임만이라도 남성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문제를 던졌다. 특히 근래의 여성들은 인구 조절이라는 과제 앞에 피임약을 먹고 루프 등 피임기구를 몸 속에 끼우고 살아야 하는 불안, 인공유산을 해야 되는 위험을 홀로 감수하고 있다고 강조. ”낳는 것은 여자가, 안낳는 것은 남자가” 이 교수의 설명은 피임에서부터 단산에 이르기까지 그 실천을 남성이 솔선해서 해달라는 애절한 호소와도 같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강갈원 박사는 ”이상적인 피임 방법이 개발되었다면 이 세미나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실패율이 전혀 없는 것은 남성의 정관 절제와 여성의 난관 결찰(結紮) 수술뿐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토론은 남자 쪽이 수술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는 정관절제(불임수술)에 대해 집중되었다. 한국의 피임은 전체 대상 인구의 25%가 실시하고 있다고. 선진국의 60% 이상인 것에 비하면 너무도 낮은 비율이고 그 가운데 남자 불임수술은 2%, 여자의 난관 결찰률이 0.5%이다. 나머지는 콘돔과 투약 등 재래식 방법과 자궁내 장치(루프) 등으로 대부분 여자쪽에서 실시하는 것. 남성이 피임에 참여하는 비율은 고작 20%에 그치고 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부인들은 인공유산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기 때문에 한해 약 30여만명이 이 수술을 받고 있으며 그 중 60%에 해당하는 18만여명은 수술 이유가 ‘가족수 제한’이었다. 3명 이상의 자녀를 두어 더 낳고 싶지 않으면서도 대부분의 부부가 불임수술을 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작용이 많고, 수술 비용의 부담을 가지고서도 이를 감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들의 횡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게 여성 쪽의 불만이다. 아이를 낳는 고통과 수술의 고통 등 위험을 맛보지 않은 남편들은 좀더 가정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봉처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러한 갈망 속에서도”남성들의 불임수술이 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느냐”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구구하다. 최선의 방법이라는 남자 불임수술이 도입된 1962년 이래 수술을 한 남성은 모두 3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구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것이다. 가족계획협회 측은 뒤떨어진 이유를 불임수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라고 보고, 수술의 영향에 대한 엉뚱한 기우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수술 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우선 ‘수술’이라는 이름 때문에 겁을 먹고 정상을 비정상화 한다는 생각을 갖고 크게 꺼린다. 마치 불임수술이 옛날 궁중의 내시처럼 거세(去勢)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며 정력이 쇠퇴되는 등 남성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될까봐 심리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 견해다. 남자 불임수술에 대한 걱정은 남성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 여성단체의 대표로 참석한 박모 여사는 ”아내 쪽에서도 남편의 수술이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며 수술 후 남편의 기능이 달라졌다는 어느 부인의 예를 들었다. 정력이 감퇴됐다는 경우였다. 이희영 교수는 ”그 부인의 경우는 남편이 탈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씨 없는 수박이 되었으니 마음 놓고 방종을 하는 거죠. 다른 젊은 여자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니 착실히 뒷조사를 하도록 귀띔해 주세요” 정관 수술로 이상이 생길 리 없다는 확답이다. 이 교수가 수술을 받은 남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술의 정신적인 영향 문제에 대해 전체의 70%가 “아무 변함 없다”로 절대적이고, 20%는 오히려 “좋아진 것 같다”고 답했다. 나머지 10%만 “나빠진 것 같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정관을 잘라 버리는 이 불임수술은 거세와는 전혀 다른 것. 이 수술의 원리는 정자가 나오는 정관만을 묶거나 자르는 것. 몇해 전에는 복원의 미련 때문에 정관을 아주 자르지를 않고 묶어 두는 벙법도 썼으나 최근에는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아예 잘라 놓는 수술을 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잘린 것은 아니다. 다시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지 복원이 가능. 복원수술의 성공율(률)도 크게 기술이 늘어 희망자의 70%는 성공한다고. 수술비는 무료에서 최고 5000원까지다. 수술에 소요되는 시간은 2~3분. 부작용은 4% 미만. 출산은 여자, 단산은 남자가 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로 한 50만 여성단체 회원들이 소리가 바야흐로 메아리치고 있다. <투투 클럽의 정관 수술 캠페인> ”공처가가 됩시다”라는 이색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난 1971년 12월 발족한 ‘투투 클럽’(TWO TWO CLUB)이 이번에는 ”행복을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나와 남성 정관수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투 투 클럽이란 ”딸 아들 구별 없이 둘만 나아 기르자”는 세계적인 추세에 절대 호응, 자녀 둘만 가진 부부 500쌍의 모임. 이들은 ”수고하고 짐진 자여, 모두 바스토닉 왕국으로 모여라”는 유머스러한 현대판 성경 구절을 창작, 남성 피임을 적극 권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해 10월에 이어 두번째로 내주부터 연말까지 500명의 남성에게 수술비용 일체 및 사후관리까지 책임지고 정관 수술을 해주겠다는 계획. 애처가나 공처가(恭妻家)이면 누구나 무료시술한다는 김영목 회장의 말. 희망자는 투 투 클럽으로 문의하면 피부비뇨과, 외과 등 전문의들의 친절히 안내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8. 1만원권 미리 좀 구경합시다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8. 1만원권 미리 좀 구경합시다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신문 2009년 5월 25자 8면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약 한달 후인 6월 23일 이뤄질 5만원권 발행을 예고하는 기사입니다. 그렇다면 5만원권 이전의 최고액권이었던 1만원권은 언제 처음 나왔을까요. 아래 42년여 전의 기사가 있습니다. ▒▒▒▒▒▒▒▒▒▒▒▒▒▒▒▒▒▒▒▒▒▒▒▒▒▒▒▒▒▒ [1만원권 미리 좀 구경합시다]-선데이서울 1972년 4월 23일호 오는 6월1일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 1가마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된다. 2900년 전 기자조선때 자모전(子母錢)이 생겨난 이래 가장 고액권인 1만원짜리 화폐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석굴암 부처님의 인자스러운 모습이 담긴 새 1만원권은 전등불에 비추어 보거나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색깔들이 들어 있어 위조는 100% 불가능하다. 가로 17.1cm, 세로 8.1cm인 1만원권은 지금의 500원짜리보다 조금 큰 편이다. 흑갈색을 주색(主色)으로 하고 앞면에 10가지 색깔, 뒷면에 4가지 색깔이 들어 있으며 앞면엔 무궁화 꽃과 석굴암 부처님 그림이,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1만원권 종이의 질. 영국에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온 용지는 면 80%, 아마 20%를 섞은 최고급지다. 위조화폐를 막기 위해 오른쪽 중앙부에는 세로로 은선(가는 쇠줄로 종이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음)이 들어있고 왼쪽 중앙에는 희게 비어 있는 자리가 있는데 이곳을 전등불이나 햇볕에 비추어 보거나 물속에 넣어보면 또 다른 부처님 모습이 보인다(석굴암 12여래상중 오른쪽 2번째 불상). 게다가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는 가는 색실이 종이 속에 들어있어 가짜 1만원권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김성환 한국은행 총재는 “우선 올해 안에 연말 화폐 발행고 1000억원(추산)의 15%에 해당하는 300억원 어치의 1만원권을 찍어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1만원권이 생겨나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나 걱정하고 있으나 한국은행측은 1000원이나 5000원권이면 몰라도 1만원권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가 처음 생겨난 것은 기자조선 흥평왕 9년(기원전 957년)으로 되어있다. 기록상엔 자모전을 만들어냈다고 되어 있으나 이 자체가 돈 이름이 아니고 큰돈(母錢) 작은돈(子錢)의 두 종류가 있었던 듯. 이보다 앞서 삼한시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했다. 기자조선때 첫화폐 등장…지폐 나온건 불과 80년전 이후 철, 구리, 은, 금등으로 동전이 계속 통용되어 오다가 종이로 된 돈이 처음 생겨난 것은 이조 고종3년인 1893년이니까 고작 80년 전이다. 태환서(兌換署)에서 만들어낸 우리나라 첫 지폐는 호조태환권으로 지폐 한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들어있고 두 용이 끌어안은 여의주 속에 “이 환표는 통용하는 돈으로 교환할 것이라”(此券以通用正貨交換也)고 쓰여있다. 엄격히 말하면 화폐라기보다는 정부발행의 보증수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조 광무6년(1902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의 ‘다이이치’ 은행이 남의 나라에서 ‘부기명식 일람출급 어음’ 즉, 화폐를 만들어냈다. 이 돈은 우리 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측은 군함을 인천항에 몰고 와 이의 통용을 우리나라 정부에 강요했다. 그래서 결국 공식허가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은행권의 시초가 됐다. 우리나라의 1만원은 미화로 28달러에 해당한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최고액의 지폐는 얼마짜리일까? 현재까지는 미국에서 발행된 10만 달러짜리가 최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3900만원이나 된다. 미국 제28대 대통령인 윌슨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나 현재 통용되지는 않고 일부 애호가들의 수집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도 1만 달러짜리가 통용되고 있는데 1944년부터 찍어냈으나 해마다 사용량은 줄어들어 1965년까지 376장이 시중에 나돌았을 뿐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 “이 행운을 찾아가십시오”란 팻말과 함께 장식용으로 걸려 있기도 하다. 액면 가치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돈은 서기 303년에 만들어진 10 아우레이 금화. 단 1개밖에 없는 이 금화는 경매에서 7만 5000달러에 팔렸다. 지폐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중국 사람들로, 그것이 기원전 119년이었다. 그러나 지폐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7세기 당나라 시대 때부터라고. 그러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은행권이 발행된 것은 스톡홀름 은행권. 지금까지 1662년 12월에 찍어낸 5다렐짜리 지폐가 남아있는데 이 지폐는 300여년을 전해와 지폐로선 최고령이다. 가장 큰 지폐는 중국 명나라 때의 1관(貫)짜리로 가로 33cm, 세로 23cm로 어린이들 책가방 만한 크기. 가장 크기가 작은 지폐 역시 중국 것으로 저장 지방은행이 1908년에 만들어낸 5푼(分) 짜리다. 세로 3cm, 가로5.5cm로 성냥갑보다도 작다. 화폐는 아니지만 1961년 1월 24일 1억 1959만 5646 파운드의 액면 값이 적힌 수표가 라자드 브러더스에서 발행되었다. 이 수표는 영국 포드 자동차판매에 관계된 거래에서 쓰인 것으로 종이에 적힌 가치로는 지금까지 사상 최고다. 사람들이 지폐를 널리 쓰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경화(硬貨)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기원전 700년쯤 옛 터키에서 금과 은을 섞어 경화를 만들어낸 게 동전의 비조로 불린다. 1659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10 다렐짜리 동전은 무게가 17.5kg이나 되었다니 많은 돈을 갖고 다니려면 꽤나 무거웠을 듯 하다. 또 야포 섬의 토인이 쓰던 ‘후에’ 라는 석화(石貨)도 꽤 커서 직경이 3.7m나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돈이 아니라 바위를 굴리고 다니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 돌돈 1개로 아내 2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800년쯤 인도의 남부 콜파타 지방에는 ‘바늘머리’ 라고 불리던 동전이 이었는데 1개의 무게가 불과 6.5g.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1654년에 만들어진 인도 무굴 제국의 200 ‘물’ 금화는 명목가치로나 실질가치로나 금화로선 세계 최고. 금2.2kg이 들어 있었다니 돈으로 쓰지 않고 금으로 쪼개 팔아도 본전을 뽑았다고 한다. 가장 가치가 없던 금화는 남아프리카 에서 만들어진 ‘쿠루가’ 금화. 값은 3펜스였다. 인류의 역사 만큼 돈의 역사도 오래여서 세계에서 단 1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동전도 모두 100여종이나 있다고.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7. 여고 3년생의 이유 있는 반항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7. 여고 3년생의 이유 있는 반항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여고생들 ‘체벌’ 반발 집단 수업거부 파문 광주의 한 여고생들이 학교측의 과도한 생활지도 등에 반발, 집단 수업 거부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16일 광주 S여자상업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께 1교시 수업 시작과 함께 3학년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전 학년의 수업이 오전 한때 마비됐다. 이날 시위는 3학년 4~5개반 학생이 수업을 거부한 채 운동장으로 뛰쳐 나온 뒤 이에 동조한 1,2학년 후배들이 뒤따라 나오면서 수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 12~13일 있었던 현장체험교육(수련회)에서 일부 학생들이 숙소로 술을 반입했다가 적발된 뒤 체벌을 받았던 것이 표면적 이유로 알려졌다.(후략) 경향신문의 2008년 6월 16일자 인터넷 기사입니다. 여고생들이 학교 측의 생활 규제가 지나치게 심하다며 교내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학생들의 거침없는 의사 표현이 요즘 와서 한층 활발해진 것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에도 학생들이 찍소리 못하고 지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1968년 9월, 학교 측의 인권침해에 분노한 서울지역 여고생들의 집단행동이 있었습니다.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이런 저항정신이 하나둘 모이고 모여 훗날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로 이어졌겠지요. 또 하나. 46년 전 당시, 땅에 떨어진 성도덕을 개탄하는 기자의 걱정이 지금 시각에서 보면 묘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본문에서 표현한 ‘성매매 여성’, ‘성매매 여성촌’ 등 표현은 ‘성매매 여성’ 등으로 바꿨습니다.) 여고 3년생의 이유 있는 반항…민망스런 일로 터지고만 민망스런 소녀들의 항의-선데이서울 1968년 9월 29일자 제자에겐 묘한 사연…학교측은 아픈 가슴 “학생들을 성매매 여성 취급하는 교육자 밑에서 공부할 수 없다.” 여고 3년생들이 색다른 ‘데모’를 벌였다. 9월 18일 저녁 서울 청량리에 있는 J여상 150여명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 데모를 벌이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그들이 외친 ‘학원의 민주화’는 그들 나름대로 묘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J여상 학생들은 함게 모인 자리에서 김모 교장으로부터 듣기도, 참을 수도 없는 심한 욕설을 당했다. 노한 교장 선생님의 말은 전율과 분노를 일으켰다. 이날 화가 치솟은 김 교장에게도 참을 수 없는 ‘제자의 터무니 없는 배반’이라는 아픈 상처가 있었다. 급기야 몸치장을 하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7명의 학생들이 교장실에 불려갔다. 가방 검사, 주머니 검사 끝에 그 중 2명은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옷을 벗기는 특수한 몸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화근은 지난 7월 17일의 일. 이날 김 교장은 서울 동대문경찰서로부터 낭패스런 소식을 전해받았다. 숭인동 집창촌에서 성매매 여성 생활을 하다 적발된 이 학교 고3 학생 장모(18)양을 인수해 가라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곧 담임 김모 교사를 보냈다. 장양으로부터 신경통으로 무기 결석계까지 받아 놓은 학교당국이 난처했던 건 당연했다. 담임 교사와 함께 학교에 불려온 장양은 또 다른 학생들이 성매매 여성 노릇을 하고 있다면서 울먹였다. 갈수록 태산 같은 사실에 부딪친 교장은 학생들을 집합시켰고, 장양은 퇴학, 이사회 결의 끝에 담임 김 교사는 권고 해직됐다. 성매매 여성를 가린다는 지나친 몸 수색이 학생들 간에 전해지자 방학을 마친 학생들은 제자를 성매매 여성로 오인하는 교육자의 양심을 어린 마음 나름대로 의심했고 19일에는 학교장의 사임, 장양의 담임 김교사의 복직 등 3개 요구 조건을 내걸고 고3 150명이 주동이 되어 무기한 동맹휴학으로까지 사태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세대의 흐름을 탓하기 전에 학교 당국은 당국대로 벌어진 사태를 빨리 수습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동맹휴학…사태 수습에 ‘주모자 처단’ 학교 측의 성급한 ‘용의자’ 색출이 결국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학교는 사태 수습도 강경책으로 나왔다. 우선 ‘주모자’를 처단하겠다는 것. 학교당국은 이번 동맹휴학은 학생들 스스로보다는 배후의 알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발단을 따지고 보면 일부 젊은 층의 문란한 생활은 한번 검토해 볼 일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통칭 ‘종삼’으로 통하는 골목 안 1800여명의 성매매 여성 가운데는 학교에 나가는 여성들도 있다. 낮엔 모대학 국문과에 다니고 밤엔 그 생활을 하는 K양은 유객 행위로 경찰에 잡혀 올 때마다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 진짜 여대생인 것만은 틀림없다. 서울에서 가장 연령층이 어린 성매매 여성들은 거의가 숭인동, 창신동 등 청계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14세, 15세 난 아이들이 시커먼 눈화장을 하고 ‘악의 구렁’에서 킬킬거리며 헤엄치고 산다. 이들 소녀들의 전직은 식모, 차장, 무작정 상경 등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학교엘 다니다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져 학교를 등진 소녀들도 많다. 집에서 매일 신문에 내는 ‘사람찾음’ 광고를 버젓이 보면서도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지난달 경찰에 잡혀온 딸의 기별을 듣고 달려온 L(서울 동대문구 보문동)여인은 딸이 성매매 여성로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당에서 기절해 쓰러졌다. “설마 설마 그 애가…” 엄마가 딸을 보고 부르짖은 최초의 외마디가 비명 같았다. 경찰 통계를 보면 최근 무단 가출하는 소녀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통금시간이 넘도록 거리를 헤매는 소녀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치안국 집계에 의하면 지난 1월부터 8개월간 집을 뛰쳐나간 여자는 모두 6300명, 그 중 3분의 2가 이들 나이 어린 소녀들이었다. 무너져가는 성도덕, 거기 방향 없이 휩쓸려드는 동심을 막는 길을 모색해야 할 심각한 오늘이다. 가정과 학교가 좀더 자라는 동심 속에 생활하고 있다면 J여상고 학생들이 그렇게 동맹휴학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6. 방년 20세의 슬픈 겨울…늘어나는 여성 자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 방년 20세의 슬픈 겨울…늘어나는 여성 자살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한국 자살률 OECD 최고 수준…지난해 하루 평균 40명 스스로 목숨 끊어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 4427명으로 1년 전보다 267명(1.9%) 늘었다. 하루 평균 39.5명이 자살로 생을 마ㅁ감한 것. (중략)연령별로 보면 1년 전보다 30대(3.8%), 40대(6.1%), 50대(7.9%)의 자살률이 증가했다. 자살은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로 꼽혔다.지난 9월 23일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46년 전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기사를 소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당시에도 한국은 최고의 자살률 국가였습니다. 물론 세계 최빈국에 가까웠던 당시와 지금의 자살 원인은 상당히 다르지만 말입니다. 당시에는 특히 여성 자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컸던 모양입니다. 내용을 한번 보시지요. ▒▒▒▒▒▒▒▒▒▒▒▒▒▒▒▒▒▒▒▒▒▒▒▒▒▒▒▒▒▒ “잠깐 참으셔요” 방년 20세의 겨울…늘어나는 여성자살 전체 사인(死因)의 제2위- 선데이서울 1968년 10월 6일자, 1971년 5월 16일자, 1972년 4월 2일자 종합 딱한 여심(女心)몇 가지 사례1: 한낮에 서울 마포의 한 여관에서 이모(20·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 지역 산골 출신인 이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놀다가 4년 전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식모살이, 병원 종업원, 다방 종업원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지만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그녀의 인생은 고달프기만 했다. 이씨는 넉달 전 다방일을 하면서 알게 된 전기회사 직공(23)과 사흘을 한방에서 지내다가 마지막 날 생을 마감하는 극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경찰은 “오늘도 지겨운 하루가 지났다”,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고” 등 이씨의 수첩 메모로 미루어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냈다.(1972년 3월) 사례2: 경기 화성군 반월면의 박모(23·여)씨는 신혼 첫날밤을 치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는 김모(26)씨와 결혼, 첫날밤을 보냈느데 일을 마친 뒤 신랑 김씨가 대뜸 “처녀가 아니다”라면서 이혼을 요구하자 “숫처녀임을 입증하겠다”며 극약을 먹고 자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1971년 5월) 사례3: 최모(32·여)씨는 어머니날(현 어버이날)에 세 딸과 함께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자신과 두 딸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 남편과 사별한 최씨는 “남은 두 아들을 공부시켜 달라”는 요로에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1968년 5월) 사례4: 김모(27·여)씨는 이룰 수 없는 결혼을 비관, 애인 집의 연탄난로에 머리를 묻고 자살했다. 김씨는 애인과 깊은 관계를 맺어 임신까지 했으나 사회적인 흠(전과자)이 있는 남자에게는 딸을 줄 수 없다는 집안의 반대에 좌절, 자살을 선택했다. “엄마의 훌륭한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그분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의 유서다.(1968년 6월) 사례5: 이모(21·여)씨는 조흥은행 본점 12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이씨는 모 공대건축과 2년생. 2년 동안 서울대, 연세대를 계속 낙방한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968년 6월) 사례6: 홍모(35)씨는 11세 어린 연하 애인(24)과 인천의 한 여관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손아래 남자와의 사랑이 빚은 비극적인 정사(情死)였다. (1968년 1월) ▒▒▒▒▒▒▒▒▒▒▒▒▒▒▒▒▒▒▒▒▒▒▒▒▒▒▒▒▒▒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 지라”(마태복음 27장 5절) 유다 이후 많은 인간 가족이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로 자살을 했다. 클레오파트라나 오필리아, 마릴린 먼로는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여심(女心)의 선각자이지만 현대인에 있어, 특히 여자의 경우 자살은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까지 언제부터인가 심상에 뿌리박혀 버리고 말았다. 세계에서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이 제일 높은 나라는 덴마크로 29명에 이른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각 2명 꼴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25명 정도로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덴마크 등과는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판이하게 다른다. 우리나라의 자살이 ‘가난형’인데 반해 덴마크 같은 쪽은 ‘부자형’으로 통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너무나 스트레스가 없어도 파멸적인 고적감을 느끼게 된다는데 덴마크같은 선진국의 자살이 이런 케이스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살 기도자는 여성 쪽에 많은데, 남자와의 비율이 1대 1.3 정도다. 그러나 여자에겐 자살 미수가 많아 실제로 사망하는 숫자는 남녀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 추세를 보면 10대와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한국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인간해약(解約) - 20세가 절정 1967년 한 해 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 시내에서의 여성의 자살은 전체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결핵, 3위는 암이다. 우석의대 산부인과 교실에서 최근 조사한 사인별 사망통계에 의하면 총 대상 1900명 중 결핵으로 인한 사망은 309명이며 2위인 자살은 288명, 3위인 암은 209명이었다. 그 다음이 뇌일혈(뇌졸중) 167명, 모성 사망(임신·분만 관련 사망) 128명, 고혈압 110명 순이다. 자살자 중 36%인 105명은 겨울에 사망했으며 여름 80명, 가을 53명, 봄 50명 등이었다.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여성군(群)은 어느 연령층일까? 우석의대의 조사에 의하면 288명의 자살여성 중 33%인 95명은 20세에서 24세까지의 방년. 다음이 15세에서 19세까지의 10대 여성이며(47명), 25~29세는 46명, 30~34세는 36명, 35~39세는 21명, 40~44세는 18명, 그리고 45~50세는 21명으로 되어있다. 결국 많은 수의 24세 이하 꽃다운 처녀들이 겨울을 택해 스스로 인간해약(人間解約)을 하고 있다고 우석대 조사팀은 말하고 있다. 여자들은 왜 자살에 매료되는가? 장병임 교수(서울문리대)는 가능한 자살예방 수단으로 초자아(超自我)를 역설한다. “정신분석학상의 초자아는 교육이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90%가 애정 문제에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가정교육이라는 하나의 절대수단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요즘 부모들은 딸에게 이성교제(정신적인)는 허용하면서 막상 정조관에 있어서는 애매하고 엄격한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젊은 여성들의의식의 파탄은 부모에게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자살예비역 하루 20명꼴…‘살 수 없어’ 아닌 ‘싫어서’ 성모병원 안에 있는 음독자살예방센터에는 해마다 약 900명의 음독자가 들어온다. 1967년 한 해 동안 이곳 신세를 진 자살 기도자만 해도 남자 355명에 여자 488명 등 도합 843명. 그런가 하면 서울, 연세, 우석, 적십자 등 비교적 큰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실려오는 자살예비역만 해도 하루 20여명을 헤아린다. 지난 1963~67년 5년 동안 성모병원의 자살예방센터에서 치료받은 음독자는 모두 4548명에 이르고 있다. 남자 1975명, 여자 2573명으로 여성 우세는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57%인 2591명이 20대, 17.5%인 792명이 10대다. 16.3%는 30대, 9.23%는 40대다. 여성자살자에게는 자살원인, 자살방법, 연령분포 등 자살 주변에 얽힌 심리적 델리커시가 현란하리만큼 많다. 한마디로 ‘살 수 없어 죽는다’보다는 ‘살기 싫어서 죽는다’가 그녀들의 죽음의 변(辯)인 셈이다. 20대 여성의 경우 자살 원인의 46%가 애정 갈등으로 되어 있으나 간접적이고 충동적인 것까지 합하면 거의 90%가 애정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도니제티의 멜로디 같은 ‘사랑의 묘약’이 그녀들의 목마른 상심엔 필요하다는 얘기다. 좀 묵은 통계지만 이 땅 춘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 자연스럽다고 할 정도로 자살에의 향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수년 전 가톨릭의대에서 3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고생의 49%, 여대생의 62%가 “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의지 박약에서 오는 생활의 도피”라는 뒤르켕의 자살론은 이젠 아무래도 너무 낡은 관념론인 것 같다.  ”한국은 자살자의 천국” 장병임 교수는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의 자살을 최대한 막는 효과적인 처방으로 “올바른 성교육의 실시”를 주창한다. 이성교제 자체를 터부시 하든지, 그렇지 않을 바에야 최소한 정조관에 대한 개념의 정립 만큼은 딸들에게 세워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한국가이던스센터에 찾아오는 여성 중 자살에의 의지를 호소하는 층은 하이틴과 25세 이전의 미혼여성들. 카운셀링의 내용도 이상적인 상대를 얻기 위한 것보다는 이미 저질러진 사건들, 이를테면 처녀성의 상실이라든지 혼전임신 같은 건강치 못한 “어찌 하오리까”뿐이라고 장 교수는 개탄한다. 음독자살예방센터 김종은 교수는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자살예방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 자살자의 반이 약물에 의한 자살을 기도하고 있으며, 약물의 58%가 정신신경안정제인 만큼 이들 약품의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자살약으로 이용되는 정신신경안정제를 거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 태국 정도 뿐이라고 한다. 외국의 경우 한 번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 으레 정신과에 입원시키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35%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독자살예방센터의 집계에 의하면 자살 재기도자는 전체의 10%이며 “또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만도 전체 자살기도자의 43%나 되는 딱한 실정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사건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5. 행복한 주부가 되는 첫걸음···이상적인 혼기(婚期)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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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여성 31.5세에 초산…전체 산모 중 74%가 30대 서울 여성들은 평균 31.5세에 첫째 아이를 낳으며, 전체 산모 중 74%가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서울시의 ‘통계로 본 서울남녀의 결혼과 출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은 32.5세, 첫째아 평균 출산 연령은 31.5세로 파악됐다. 20년 전인 1993년 서울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은 28세, 첫째아 평균 출산 연령은 26.8세였다. ...(중략)... 평균 초혼 연령은 여성이 30.4세로 20년 전(25.7세)보다 4.7세 높아졌다. ...(후략)... (2014년 9월 18일 연합뉴스) 올 9월 기사입니다. 기사에서는 ’만 나이’를 쓰니까 서울 여성들의 평균 초산 연령은 우리 나이로 33세가 되는 셈입니다. 아래는 40여년 전의 기사입니다. 결혼 적령의 마지노선을 25세로 잡고 있네요. 30세가 되면 노화 현상이, 35세가 되면 갱년기 현상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혼인과 출산에 대한 40년의 격세지감을 기사를 통해 느껴 보시지요.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 행복한 주부가 되는 첫걸음···이상적인 혼기(婚期)-선데이서울 73년 7월29일자 여성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결혼연령에 민감하다. 나이가 든 뒤에도 충분히 생식능력을 갖는 남자와는 달리 25살만 지나면 신체조직과 호르몬 활동 등이 쇠퇴되어 임신, 출산 등에 지장을 받는 “젊음의 단명(短命)” 현상 때문. 결혼 적령기는 국가와 민족 문명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원시인이나 원시문명인 채로 있는 현대의 남양군도의 민족들은 결혼 적령기가 훨씬 앞당겨져서 심지어는 소년기만 벗어나면 곧 결혼을 한다. 그런가 하면 풍족한 생활을 즐기는 미국에서는 틴에이저들의 결혼이 유행하는 반면 한국의 남녀들은 20살이 지난 뒤에야 혼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0살이 지난 여성은 노화 현상이 급히 나타나고 35살을 경계로 서서히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임신능력을 잃어간다. 때문에 여성들의 늦은 결혼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나이가 많으면 불임의 위험이 커질뿐 아니라 임신을 하더라도 태아의 발육이 나빠지고 산도(産道)의 탄력성이 감퇴되기 때문에 사산(死産)의 위험이 증가한다. 저능아도 만혼의 어머니에게서 많이 태어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따라서 25살까지는 결혼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 여성이 섹스를 오랫동안 억제하면 공격적인 성격이 되거나 히스테리를 유발시키는 등 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결혼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신체에 따른 정신적인 성숙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정신적 성숙은 다음의 다섯가지 사실을 점검할 수 있다. 첫째, 한 여성으로서 충분히 성숙한 마음으로 이성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을 때. 둘째, 결혼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나 환상적 기대, 자기 중심적인 해석을 하는 대신 결혼이란 엄숙한 사실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의무를 질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셋째, 남성과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와 기교가 갖춰졌을 때. 넷째, 부모와 형제를 포함한 모든 친척들에 대한 강한 애정적 집착이나 결혼 대상자 이외의 교제하는 남성들과의 관계에 대해 체념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됐을 때. 다섯째, 결혼할 상대방과의 일정 기간의 교제를 통한 정신적 교류가 충분히 돼 있을 때. 몽상적인 행복을 결혼에 기대하는 여성은 성격이 이기적이거나 의존적이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파탄으로 이끌기 쉽다. 결혼하려는 남성의 셩격이나 학력 직업 인생관을 충분히 파악하고 특히 자신과의 관계에서 일치되는 점과 견해의 차이를 살피고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 도움말= 백상창(白尙昌·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박사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4.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2)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2)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대전 도심서 알몸으로 돌아다닌 40대 입건대전 동부경찰서는 알몸 상태로 도심을 돌아다닌 혐의(공연음란 등)로 A(4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6시 30분께 동구 도시철도 판암역 인근에서 알몸 상태로 주변을 돌아다닌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 아침 회사나 학교로 향하던 시민이 알몸 상태의 A씨를 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심신미약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어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2014년 12월 1일 연합뉴스) 어떤 사람이 알몸 상태로 거리를 돌아다녀 행인들을 놀라게 했다든지, 어떤 여권운동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나신으로 시위를 했다든지 하는 국내외 뉴스들을 간간이 만나게 됩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있어 ‘벗은 몸’은 꽤 효과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경악을 하면서도 나도 몰래 관심과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의 부름일지도 모습니다. 예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알몸을 내보여 스스로 뉴스거리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사들만 보면 왠지 지금보다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번에 나누어 전해드립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2)[순경이 알몸 매춘여성 끌고가며]-선데이서울 1970년 11월 8일자 1970년 10월 20일 밤 9시 30분쯤 부산 영도구의 사창가 앞길에서 때아닌 스트립쇼가 벌어져 지나가던 남성들이 환성을 지르는 일이 벌어졌는데…. 사건의 장본인은 윤락여성 박모(25)씨. 박씨는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 술을 마구 퍼마신 뒤 길거리로 뛰어나와 추태를 부렸다고. 경찰이 달려오자 박씨는 옷을 하나씩 차례로 벗어 던지며 실감나게 스트립쇼를 연출, 마침내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말았다. 알몸의 박씨를 껴안고 경찰서로 연행하던 K순경(31)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하지 모르겠다”며 묘한 표정을 짓기도. ▒▒▒▒▒▒▒▒▒▒▒▒▒▒▒▒▒▒▒▒▒▒▒▒▒▒▒▒▒▒ [이래도 계집애냐 다방서 알몸쇼]-선데이서울 1971년 2월 7일자 부산의 한 다방에서는 희한한 스트립쇼가 벌어져 숙녀 손님들이 어리둥절해 했다는데…. 1971년 1월 21일 곤드레 만드레 취한 김모(20)씨는 친구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다 옥신각신 시비가 붙었다. 친구 중 한 명이 “계집애 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던 것. 이에 흥분한 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팬티도 남기지 않고 옷을 홀랑 벗은 뒤 “이래도 내가 계집애냐”고 시위를 벌였다. 거기까지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흥이 오른 김씨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다방 안을 활보하며 건장한 남성미를 과시했는데 이 바람에 남녀 손님들이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 [택시동승 거절에 나체쇼]-선데이서울 1971년 8월 15일자 대구경찰서는 1971년 8월 3일 대구에 사는 이모(22)씨를 즉결에 넘겼는데…. 이씨는 전날 밤 8시쯤 대구 시내 거리에서 택시를 타던 같은 마을 최모(40)씨에게 매달려 함께 타고 가자고 아우성을 치다 결국 경찰관에게 끌려갔는데, 파출소로 끌려가서는 단속 경관에게 욕을 퍼부으며 나체쇼를 벌였다는 것. ▒▒▒▒▒▒▒▒▒▒▒▒▒▒▒▒▒▒▒▒▒▒▒▒▒▒▒▒▒▒[통금 걸린 아가씨 파출소서 나체쇼]-선데이서울 1972년 9월 17일자 1972년 9월 5일 새벽 2시쯤 경남 마산의 방범대원 K씨와 H씨는 관내 순찰을 하던 중 통금 시간(자정)을 위반한 윤락여성 윤모(24)씨를 파출소로 연행해 오다가 윤씨에게 따귀를 철썩 맞았다. “왜 죄도 없는 나를 잡아가느냐”는 것. K씨 등은 여자를 상대로 차마 싸울 수는 없다며 치미는 화를 참고 간신히 파출소로 끌고 왔는데…. 정작 일은 그때부터 벌어졌는데, 윤씨가 파출소에 들어오자마자 느닷없이 블라우스와 치마를 훨훨 벗어붙인 것. 너무도 당황해 미처 말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윤씨는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이 돼 “너희들 사람을 우습게 봤어”하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계속해서 아슬아슬 팬티를 무릎 밑까지 내리곤 시위를 하는 통에 모두들 혼비백산해 윤씨를 귀가시켰다고. ▒▒▒▒▒▒▒▒▒▒▒▒▒▒▒▒▒▒▒▒▒▒▒▒▒▒▒▒▒▒ [순경에 알몸공세 편 여인]-선데이서울 1970년 12월 13일자 1970년 12월 2일 오전 1시쯤 인천 동구의 한 골목길에서 박모(31) 여인이 길가는 행인 서모씨를 붙들고 자기와 함께 여관에 들어가자고 통사정을 했는데…. 박 여인이 윤락행위를 하려는 사실을 눈치챈 서씨가 못간다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순찰을 돌던 경찰관이 이를 보고 달려왔다. 결국 박 여인은 파출소로 연행. 하지만 파출소 안에 끌려온 박씨는 갑자기 옷을 모조리 벗고, 마지막 팬티까지 끌어내려 야근으로 충혈된 경찰관들의 눈동자를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고. ▒▒▒▒▒▒▒▒▒▒▒▒▒▒▒▒▒▒▒▒▒▒▒▒▒▒▒▒▒▒ [“외상 화대 갚으라”며 한밤중 알몸 시위]-선데이서울 1972년 7월 9일자1972년 6월 22일 0시 50분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내의 한 약국 앞에서 때아닌 한밤 중 누드쇼가 펼쳐지는 소동이 일었는데…. 술집 접대부인 이모(23)씨가 약국 주인 박모(35)씨에게 “화대 5만원을 내놓으라”며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알몸 시위를 벌였던 것. 사연인 즉, 박씨가 며칠 전 한잔 취한 김에 5만원을 주기로 하고 이씨와 동침을 하고는 여태껏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는 것. 결국 경찰관이 출동했고 이씨은 약국으로 들어가 박씨와 정식으로 따지려고 했으나 이미 박씨는 자취를 감춘 뒤였고 부인하고만 밤새 옥신각신을 했다고. ▒▒▒▒▒▒▒▒▒▒▒▒▒▒▒▒▒▒▒▒▒▒▒▒▒▒▒▒▒▒ [길거리 누드쇼 여인에 경찰관 진땀]-선데이서울 1971년 3월 28일자 1971년 3월 7일쯤 부산 영도구 노상에서는 때아닌 처녀 누드쇼가 벌어져 행인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일이 있었는데…. 장본인은 윤락여성 K(24)씨. K씨는 술에 만취해 지나는 행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큰 소란을 피우다가 이를 제지하기 위해 경찰관이 달려오자 입고 있던 옷을 활활 벗어 던졌다는 것. “이래도 날 잡아 갈테냐. 마음대로 해봐라”면서 누드 시위를 벌였는데, 이에 질겁을 한 경찰은 K씨에게 옷을 입혀 주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3.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 (1)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 (1)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대전 도심서 알몸으로 돌아다닌 40대 입건대전 동부경찰서는 알몸 상태로 도심을 돌아다닌 혐의(공연음란 등)로 A(4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6시 30분께 동구 도시철도 판암역 인근에서 알몸 상태로 주변을 돌아다닌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 아침 회사나 학교로 향하던 시민이 알몸 상태의 A씨를 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심신미약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어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2014년 12월 1일 연합뉴스)어떤 사람이 알몸 상태로 거리를 돌아다녀 행인들을 놀라게 했다든지, 어떤 여권운동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나신으로 시위를 했다든지 하는 국내외 뉴스들을 간간이 만나게 됩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있어 ‘벗은 몸’은 꽤 효과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경악을 하면서도 나도 몰래 관심과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의 부름일지도 모습니다. 예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알몸을 내보여 스스로 뉴스거리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사들만 보면 왠지 지금보다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번에 나누어 전해드립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 기뻐서, 화나서, 슬퍼서, 좋아서…탈의남녀 전성시대(1) [남녀가 벌거벗고 술마셔]-선데이서울 1970년 7월 12일자 1970년 6월 30일 밤 전남 광주의 한 요정에서는 발가벗은 남녀 6명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통에 이웃집 주민들이 때아닌 구경거리를 만났다는데….팬티까지 벗어 내팽개치고 완전한 나체가 된 6명의 남녀는 처음에는 점잖게 옷을 입고 술을 마셨지만, 술이 오르는 것과 같은 속도로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해 급기야는 “이왕 마실 바에는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서 신나게 마셔보자”고 합의하고 활활 벗어 젖혔다고 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기상천외한 광경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게 돼 이웃집 사람들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고. ▒▒▒▒▒▒▒▒▒▒▒▒▒▒▒▒▒▒▒▒▒▒▒▒▒▒▒▒▒▒ [여름밤에 옷 벗은게 뭐 나빠]- 선데이서울 1970년 7월 26일자 1970년 7월 15일 남대구경찰서는 대구시 봉산동에 사는 접대부 한모(21), 윤모(23)씨를 즉결심판에 넘겼는데…. 한씨 등 두 여성은 이날 0시 40분쯤 술에 취해 기분을 낸다고 옷을 훌훌 벗어 팽개치고는 팬티 바람으로 대구 중앙로 거리로 나와 춤을 추다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서에 온 이 여인들은 “한여름 밤에 옷좀 벗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외려 큰소리로 따지더라고. 인천에서도 20대 윤락여성이 알몸으로 다니다 경찰에 붙잡혀 왔는데 장본인은 동인천경찰서에서 즉심에 넘겨진 황모(25)씨. 윤락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이전에도 여러 차례 철창 신세를 진 적이 있는 황씨는 7월 14일 인천의 한 여인숙에서 배모씨(25)와 동침을 하다가 순찰 나온 순경에게 적발되자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팬티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는 갖가지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것. ▒▒▒▒▒▒▒▒▒▒▒▒▒▒▒▒▒▒▒▒▒▒▒▒▒▒▒▒▒▒ [스트리퍼 끌어안고 무대위서 키스]-선데이서울 1971년 8월 1일자 경남 창녕경찰서는 1971년 7월 13일 창녕군 창녕읍 대동리에 사는 이모(22)씨를 업무방해 및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했는데…. 이씨는 전날 밤 10시쯤 읍내 대한극장에서 스트립쇼를 구경하다가 쇼가 아슬아슬한 장면에 이르자, 타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그만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쇼걸 오모(20)씨를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이씨가 벌인 예상 못했던 ‘쇼 중의 쇼’로 공연은 중지되고 극장안은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서에 붙잡혀온 이씨는 “소동을 빚어 미안하긴 하지만 반나체로 춤을 춰 나를 이 꼴로 만든 그 쇼걸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고. ▒▒▒▒▒▒▒▒▒▒▒▒▒▒▒▒▒▒▒▒▒▒▒▒▒▒▒▒▒▒  [동냥 거절당한 청년 훨훨 벗고 알몸 데모]-선데이서울 1972년 3월 12일자 광주경찰은 1972년 2월 25일 김모(24)씨를 공중소란 혐의로 즉결에 회부했는데…. 김씨는 전날 오후 3시쯤 광주 시내 충장로를 순회하며 구걸을 하다가 한 상점에 들어가 동냥을 요구했는데 이곳 주인이 “멀쩡한 젊은이가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살라”고 충고하자 격분, 훨훨 옷을 벗어붙이며 나체로 데모를 했다는 것. ▒▒▒▒▒▒▒▒▒▒▒▒▒▒▒▒▒▒▒▒▒▒▒▒▒▒▒▒▒▒ [‘곤드레’ 20대 아가씨 유원지서 해프닝 쇼]-선데이서울 1972년 8월 20일자 1972년 8월 1일 오후 4시쯤 원주 시내 횡성출렁다리 유원지 한쪽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20대의 늘씬한 아가씨가 술에 엉망이 돼 겉옷을 훨훨 벗은 다음 “시원해서 좋다”며 계속 속옷과 브래지어까지 몽땅 벗어 던지고 완전 나체로 고고춤을 췄기 때문. 이 아가씨는 동네 여성들이 몰려들어 옷을 입혀 주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거부하며 몸을 흔들다가 결국 출동한 경찰관에게 잡혀 갔는데, 구경꾼은 “눈요기 한번 잘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고. ▒▒▒▒▒▒▒▒▒▒▒▒▒▒▒▒▒▒▒▒▒▒▒▒▒▒▒▒▒▒[경찰에 잡혀온 윤락여성이 보호실서 스트립쇼 4시간]-선데이서울 1972년 7월 16일자 1972년 7월 5일 밤 11시쯤 윤락여성 최모(26)씨가 서울역 광장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다 남대문경찰서에 잡혀 왔는데…. 최씨는 보호실에 수감되자마자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발작을 하며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홀랑 벗어던지고 스트립쇼를 벌이기 시작했다. 질겁을 한 당직 경찰관들이 옷을 입으라고 소리도 치고 달래기도 했으나 막무가내였는데, 그렇다고 남자 경찰관들이 보호실에 들어가 억지로 옷을 입히려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형편이라 속수무책이었다고. 최씨는 무려 4시간에 걸쳐 ‘공연’을 계속하다 다음날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벌렁 나가떨어져 잠이 들어 버렸는데. 다음날 아침 의사가 와서 눈을 까뒤집어 보는등 진단을 했는데 결국 가짜 정신병자라는 사실이 들통났던 것. 최씨는 그제서야 경찰관들의 호통을 받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는데. 윤락여성들은 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서울 노량진에 있는 부녀자 보호소에 넘겨져 42일 동안 선도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면해보려고 미친 사람 흉내를 냈던 것. ▒▒▒▒▒▒▒▒▒▒▒▒▒▒▒▒▒▒▒▒▒▒▒▒▒▒▒▒▒▒ [유부녀 욕뵈려다 알몸으로 줄행랑…자수도 힘들겠군]-선데이서울 1971년 9월 5일자 전남 순천경찰은 남편 있는 여인을 욕보이려다 들켜 알몸으로 도망친 사내를 전국에 수배 중인데…. 1971년 8월 19일 새벽 전남 승주군의 A씨(31)는 같은 마을 B(34) 집 담을 타 넘어 들어가서는 살금살금 문고리를 벗기고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B 여인이 비명을 지르자 순찰 중이던 예비군들이 뛰어들어 왔고 이 바람에 A씨는 옷입을 겨를도 없이 알몸으로 줄행랑을 쳤던 것. 수배중인 알몸의 A씨는 아직도 안나타나고 있다는데 자수할 때는 옷을 입고 나오시도록!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줌 인 서울] 공무원 17% 2020년까지 외부전문가로 채운다

    [줌 인 서울] 공무원 17% 2020년까지 외부전문가로 채운다

    2020년까지 서울시 공무원의 17%가 외부 전문가로 채워진다. 시는 공직 개방을 통해 행정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내용의 민선 6기 인사혁신안을 추진한다고 2일 밝혔다. 혁신안에 따르면 시는 2020년까지 외부 전문가 800명을 새로 채용해 현재 8.9%(881명)인 외부 전문가 비율을 17.0%(1681명)까지 확대하게 된다. 또 분야별 보직관리제 등을 통해 기존 공무원 2926명을 전문인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시는 “베이비붐 세대 공무원의 본격적인 퇴직이 시작되면서 약 3000명의 결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금이 서울시 공무원 조직의 전문성 향상과 공직사회의 개방을 추진하기에 적기”라고 설명했다. 혁신안은 ▲적극적 인재 발굴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 ▲열린 인사운영 ▲맞춤형 교육지원 ▲신명 나는 조직문화 등 5개 분야 18개 추진과제로 이뤄졌다. 외부 전문가 채용 내역은 외국인 전형을 통한 글로벌 인재 100명, 도시재생·리스크관리·공공투자관리 등 전문 임기제 공무원 400명,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 100명, 고압가스시설 관리, 사육운영 등 특수업무 분야 전문경력관 200명 등이다. 시 관계자는 “도시 간의 국제 교류가 늘어나면서 외국인 인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고,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변호사·회계사와 같은 전문인력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변호사의 경우 5·6급 정도, 회계사는 7급 계약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시는 2016년 시험관리센터를 설립해 외부 전문가 채용을 담당하게 할 예정이다. 고시로는 매년 8~9명을 뽑고 행정 7급은 50명, 기술 7급은 충원 인원의 10% 수준을 채용할 계획이다. 시는 9급 고졸 공채의 지원 대상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분야별 보직관리제를 적용해 공무원들이 한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게 만들어 전문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김의승 행정국장은 “회계 등 장기간 근무 시 비리 가능성이 높은 부서나 자리의 경우 기존 순환보직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벌써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밖에서 전문가가 들어오면 결국 내부에서 올라갈 자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 “외부 전문가들이 공무원 조직에 적응하기까지의 기회 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커밍아웃’ 모델 김지후 자살 동성애 ‘커밍아웃’을 했던 모델 겸 방송인 김지후(23)씨가 자살한 것으로 8일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7일 오전 9시30분쯤 송파구 잠실동 연립주택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방에서는 ‘외롭다, 힘들다, 화장해서 뿌려 달라.’는 내용이 담긴 찢어진 공책 종이가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가 발견된 데다 타살의 정황을 발견하지 못해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후략) 서울신문 2008년 10월 9일자 1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회의 냉대 때문에 성 소수자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은 최근 뉴스의 단골 소재입니다만, 예전에도 동성애자들의 이런 사정을 다룬 기사는 심심찮게 등장했습니다. 40여년 전의 기사로 들어가 봅니다. 20대 레즈비언 커플의 정사(情死)를 전한 뉴스(1971년)와 동성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룬 뉴스(1969년)입니다. 두 기사에는 ‘동성애’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됐던 당대의 인식과 관점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게 뭔지 여러분들도 한번 찾아 보시지요. ▒▒▒▒▒▒▒▒▒▒▒▒▒▒▒▒▒▒▒▒▒▒▒▒▒▒▒▒▒▒ [신랑도 색시도 20대 처녀…“우린 행복했는데 왜 죄인 취급을 하는지“]-선데이서울 1971년 11월 14일자 스무살을 갓 넘은 아가씨 2명이 여관방에서 죽음을 택했다. 아가씨끼리 3개월 동안 단꿈을 꾸었으나 그 기형적인 사랑에는 부딪치는 장벽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사춘기의 빗나간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사건의 경위는 사춘기 자녀를 딸로 둔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1971년 11월 1일 밤 부산 서구의 한 여관 3호실에서 두 아가씨가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푸른색 해군 작업복 바지에 남자용 스웨터를 입고 하이칼라 머리를 한 총각같은 처녀가 유모(21)양. 그옆에 다소곳이 숨을 죽이고 쓰러져 있는 검정색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가 아내역의 이모(22)양. 경찰이 급히 달려왔을 때 사내 차림의 유양은 완전히 숨이 끊어져 있었고, 이양은 부산시립병원으로 옮겨져 2일 동안의 응급치료를 받은 끝에 살아났다. 극약을 먹고 정사를 꾀한 ‘레즈비언의 최후’였다. 3일 아침 경찰에 불려온 이양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유양의 죽음을 원통해 했다. 자신도 같이 죽지 못했음을 괴로워했다. 이양은 “우리는 돈이 없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었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직장에 들어가 다정하게 지내온 사이. 이양은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동성연애가 얼마든지 있다는데 왜 우리 주위에서는 그렇게 미워하며 죄인 취급을 하느냐”고 경찰관을 붙들고 원망하기도 했다. 두 아가씨가 사랑을 맺은 것은 지난 5월 부산의 어느 섬유 보세공장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같은 동네에 살던 두 사람은 이웃의 소개로 여직공으로 같은 날 입사를 하게 됐다. 한살 아래인 유양은 성격이 아주 쾌활했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출·퇴근도 같이 한 둘은 공장에서는 베짜는 기계를 사이에 놓고 마주보며 일했다. 둘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연인처럼 다정한 눈웃음을 보냈다. 직공 생활 두달째 되던 7월 초 어느날 둘은 일을 끝내고 다방으로 갔다. 유양이 먼저 위스키 를 마시자고 했다. 각자 두 잔씩의 위스키를 마시고는 어지러울 정도가 된 그들은 그길로 충무동의 어느 중국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두 사람은 고량주를 더 마시면서 부둥켜 안고 뒹굴었다. 이양은 처음에는 취한 김에 몸을 주체하지 못해 유양이 하는대로 몸을 맡겼으나 차차 황홀해지더라고 했다. 유양이 이양에게 먼저 “남편이 되겠다”고 제의했다. 이양도 그말이 싫지가 않아 “같이 사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유양은 연하의 남편역이 된 것이다. 근처 여관으로 옮겨간 둘은 서로 살을 부비면서 “헤어지지 말자”면서 부부가 되기로 맹세했다. 다음날 여관을 나서자마자 유양은 이발소로 달려가 머리를 깎아올리고, 국제시장으로 가 바지와 스웨터를 사입고 남장여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관 사람들은 이들이 찾아들 때마다 수군거리며 이상한 눈초리를 했다. 공장의 동료 직공들도 둘 사이를 눈치챘다. 남장을 한 유양이 지난달 24일 공장에서 쫓겨났다. 얼마 후 양쪽 집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둘은 집에서도 쫓겨났다. 이양 등은 도리 없이 여관으로 옮겨 같이 살았다. 이양이 공장에 나갔다 올 때까지 유양은 여관방에서 굶어가며 기다렸다. 이런 생활이 1주일쯤 계속되니까 유양은 이양이 공장에 다니는 것을 말리면서 죽는 날까지 방에서 같이 살자고 우겼다. 헤어져 있는 동안의 외로운 생각이 질투와 비슷한 감정으로 변한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양도 공장을 그만두고 여관에 들어앉았다. 하지만 여관비가 밀리면서 둘은 밥 한끼도 못 먹을 지경이 됐다. “사흘을 굶어도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저 우리는 만족했어요.” 이양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똑같이 가난한 가정에서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집안일을 돌보던 두 사람은 첫 직장을 얻어 나왔다가 불행한 결말을 보게 됐다. 이양은 “유○○에게는 이렇게 된 과거가 있었다”고 전했다. 유양이 17세때 이웃의 30세 된 과부가 매일밤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함께 자고 뒹굴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사춘기 처녀에게 동성연애 심리를 심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유양은 그 과부가 1968년 10월 자살을 해버리자 미친 사람처럼 쏘다니며 자기 또래의 처녀들만 보면 연애 감정이 살아나 괴로워 했다더라고 이양은 전했다. ▒▒▒▒▒▒▒▒▒▒▒▒▒▒▒▒▒▒▒▒▒▒▒▒▒▒▒▒▒▒  [그 여보의 남편은 여자? 간호장교 출신 가장의 단란한 3인 일가]-선데이서울 1969년 3월 2일자 여자끼리 결혼해서 3년 6개월 동안 살고 있다. 두 여자 중 한 여자는 남장(男裝)으로 살아간다. 한 사람은 완전히 남자답고, 한 사람은 완전히 여자답다. “그렇게 사는 데 불만이 없느냐”고 묻는 것은 그들의 금슬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젖먹이를 주워다 기르며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며 이웃이 부러워할 만큼 부부생활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남편 김영철(35·가명)씨와 부인 황연자(30·가명)씨는 황해도 동향 출신이다. 두 사람 다 1·4 후퇴 때 월남했다. 김씨는 황씨 언니의 고향 친구다. 고향이 같고 언니의 친구라는 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1965년 8월 12일 결혼을 했다. 김씨는 여군간호학교 중위 출신. 여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두 동생을 위한 아버지 노릇을 다하기 위해 남자의 역할을 해왔지만 여군이라는 것이 김씨의 ‘중성화’ 또는 ‘남성화’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 여자 부부는 충남 논산에 집을 마련해 행상을 하며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다. 살림이야 가난하지만 자연이 좋아서 이곳에 산단다. “때로는 이웃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합니다. 저것들이 성(性) 불구가 아니고서야 여자끼리 살 수가 있느냐는 거예요. 하지만 우린 문제 없는데, 옷을 벗어 보일 수도 없고….” 몸의 어느 한 구석도 여성이 아닌 곳이 없다는 남편 김씨의 이야기. 여자의 여자됨을 핵심적으로 알려주는 성 기능을,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신체의 핵심적인 부분이 다하고 있지 못할 때 그녀를 완전한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어쨌든 ‘있을 것은 다 있으니’ 여자는 여자라는 이야기다. 남편 김씨는 21세 되던 해부터 14년 간을 줄곧 짧은 머리에 남장을 하고 살아왔다. 남장을 한 초기에는 의식적으로 남자 행세를 했으나 ‘서당개 3년’이라고 이제 십수년간 남자로 살다보니 어김없는 남자가 되었고, 오히려 진짜 남자 뺨치게 남성적이 되었다고 한다. 부인 황씨는 현수(2·가명)라고 이름 지은 아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현모양처 구실을 다하고 있다. 거리에 버려진 젖먹이 어린 생명을 보살피며 거기서 생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고 있다. “불만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족한 표정으로 말하는 부부의 이구동성. 이쯤에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허구많은 남자를 두고 왜들 그러시나? “남자가 싫어서…”라는 것이 부인 황씨쪽의 간단한 변. -여자가 남자를 싫어하다니 무슨 곡절이라도 있으신가? “없어요.” 그러나 남편 김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김씨는 1·4 후퇴 때 두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월남했다. 아버지의 맨주먹 벌이로 간신히 대전간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일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져 결국 장녀인 김씨가 어린 두 동생을 기르고 가르치게 되었다. 김씨는 직장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자 어린 소녀의 몸으로 시장의 채소 리어카를 끌었다. 하지만 네 식구의 최소한의 연명도 어려운 형편. 18세의 소녀 김양은 여군에 입대한다. 아버지의 결사적인 반대를 피해 동향 친구 허모씨 쪽으로 가(假)호적을 내고 입대, 간호장교가 되었다. 간호장교 생활 3년 동안의 얼마 안되는 봉급은 받기가 무섭게 동생들에게 보내졌다. “제대를 하고 나니 막막하더군요. 직업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보다 훨씬 적지요. 우선은 먹고 사는 일이 급했지만 동생들을 가르치는 걸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1년간 곱게 길러온 검은 머리를 잘라내고 바지를 입고 잠바를 걸쳤다. 트럭의 조수도 했고 택시도 몰았다. 남자 아닌 남자의 역경과 수난은 계속됐고 자신의 노력이 집안 살림에 점차 도움이 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제대 후 2년 만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전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노력은 결실을 거뒀다. 첫째 동생은 명문대를 나와 은행에 취직했고 둘째 동생은 파월 백마부대에서 복무 중이다. 어린 동생들 때문에 18세의 꽃피는 사춘기부터 30세가 넘는 생의 황금기를 결혼도 못하고 고스란히 빼앗겨버린 김양, 아니 원일군의 아버지 김씨. 아무런 후회도 아쉬움도 없단다. “이놈(현수)을 훌륭히 키워 의사를 만들어 제가 하고 싶었던 인술을 베풀도록 할 생각입니다.” 남장으로 꾸민 김씨의 20대 시절, 살기 위해 직종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에게 여러 신문, 잡지사의 기자들이 정체를 밝히겠다며 짓궂게 몰려들었다고 한다. “2시간 동안이나 신문기자에게 납치된 적이 있었지요. 옷을 벗겨보고 말겠다 다짐하는 기자도 있었죠.” 이제 어엿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어려운 생활 중에도 1주일에 한번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책을 한다. 앞으로 현수와 같은 불행한 아이가 있으면 몇 명이고 데려다 기르고 싶다는 김씨 부부는 만일 큰 돈을 벌게 되면 꼭 고아원을 차리겠다고 다짐한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 단어 및 문장 표현은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1. ‘제비족’과 ‘꽃뱀’의 어제와 오늘 7명에 15억 뜯고 날아간 제비…8년동안 수배중에도 사기 ‘덜미’ 2012년 김모(40·전과 1범)씨는 내연녀 오모(39)씨를 임신시켜 아이까지 출산하게 한 뒤 돈을 불려 주겠다며 8억원을 빼돌려 달아났다. 김씨에게 속은 건 오씨만이 아니었다. 그는 훤칠한 외모와 재력가인 양 꾸민 이미지를 앞세워 여성들에게 환심을 산 뒤 투자 유치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기를 반복했다. 2006년부터 8년 동안 경찰 추적을 따돌려 온 김씨는 지난 7월 경기 광주시의 한 빌라에서 검거될 당시 또 다른 여성과 동거하며 그 여성의 동생이 소유한 BMW 차량을 몰고 다녔다. 그에게는 사기 혐의 등으로 8건의 수배가 내려져 있었고, 피해자 7명이 김씨에게 뜯긴 것으로 확인된 금액만 15억 5000만원에 달했다.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은 김씨를 붙잡은 것은 서울 강남경찰서 악성수배자 전담팀이다. 전담팀장 권영만(49) 경위는 “수배자 검거에는 ‘첨단’과 ‘무식’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담팀은 한 손에는 휴대전화 위치추적단말기를, 다른 한 손에는 자신들의 소변을 받을 빈 페트병을 들고 불 꺼진 아파트 계단이나 골목에서 꼼짝 않고 수배자를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후략) 11월 28일자 서울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요새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신문, 잡지에 ‘제비족’이나 ‘꽃뱀’이 들어간 기사와 제목이 참 많았습니다. 제비족과 꽃뱀은 적당한 ‘재주’를 이용해 순진한 여자와 남자를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유린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과거 선데이서울에서도 다양한 ‘제비족’과 ‘꽃뱀’의 기사들이 다뤄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 [카사노바 “후회는 없다”…한달 사이 6명의 아가씨 울려놓고 여자는 인기인에 약해] -선데이서울 1971년 10월 3일자 유명 아나운서를 사칭하며 한달 동안 6명의 양가집 아가씨들을 떡주무르듯 요리한 한국판 ‘카사노바’가 쇠고랑을 찼다. 주인공은 서울의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 국군 방송국에서 6개월동안 아나운서 생활을 했다는 백모(29·부산)씨. 백씨는 사문서위조 동행사 등 혐의로 부산 중부경찰서에 구속됐다. 백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밥벌이를 못해 형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실업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백씨는 부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나운서인 부산 M방송국 송모씨를 사칭하기로 하고 지난 8월 10일 부산 동구 범일동 K인쇄소에서 큼직한 명함 100장을 찍었다. 이틀 후에는 위조된 신분증까지 인쇄했다. 그에게 처음으로 걸려든 미끼는 부산 시내 이름난 양장점의 ‘디자이너’ 김영숙(21·가명)양. 대낮에 하릴없이 남포동 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늘씬한 미녀가 지나쳤다. 미녀가 M양장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여겨본 후 다음날 다시 M양장점 앞에 숨어서 지켜봤다. 그녀가 M양장점 직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작전을 세밀히 세웠다. 다음날 낮 1시쯤 한가한 시간을 틈타 그는 조용한 다방을 선택, M양장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가 M양장점이죠? 미스 김 좀 바꿔주실까요?” 단순히 이씨보다는 김씨 성(姓)이 더 흔해서 김양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양이라면서 고운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M양장점에는 김양이 3명이나 됐지만 공교롭게도 백씨가 찾던 김양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사기극은 이렇게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 M방송국 아나운서 실장 송XX올시다. 미스 김을 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한가한 시간이니 차라도 한잔 합시다.” 김양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더니 이내 한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송XX 아나운서’가 프러포즈를 하다니….” 이렇게해서 첫날 데이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첫날 벌써 김양은 백씨에게 반해 밤 12시가 되도록 따라다녔다. 그는 그날로 단숨에 그녀를 ‘정복’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여유를 두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다음날은 데이트 장소를 해운대로 옮겼다. 북적대던 한여름이 지난 조용한 해변을 거닐면서 그는 사랑한다고 능청스럽게 김양의 손을 잡은 후 결혼해 달라고 점잖게 프러포즈했다. 그날밤 해운대 고고·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춤을 춘 후 호텔로 직행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김양에게 자기 신분증과 명함을 내보인 후 “결혼할 몸이니 같이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다”고 얼러 첫시험을 성공리에 끝맺었다. 다음날 행복해하는 김양에게 “늘 아나운서실에서 녹음 중이어서 전화해도 만날 수 없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할테니 방송국에는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일렀다. 백씨는 그후 김양과 세 번 더 만나 즐긴 후 결혼 비용조로 10만원을 우려낸 다음 자취를 감췄다. 다음으로 걸려든 여인은 동구 수정동 김단아(23·가명)양과 박복순(22·가명)양. 둘은 한 동네 사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하루 사이로 백씨의 제물이 됐다.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들은 지난 9월 2일 시내 충무동 S다방에서 처음으로 백씨를 만났다. 한가하게 음악을 즐기고있는 이들에게 백씨가 나타나 명함을 건네면서 데이트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둘이 같이 만났으나 며칠 후 둘은 서로 질투 끝에 싸운 후 따로 따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백씨는 둘을 차례로 유인한후 정복했다. 4번째 희생자는 부산진구 범천2동 김영순(24·가명)양. 명함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 김양은 그날로 자진해서 몸을 바쳤다. 그녀는 백씨와 하룻밤을 즐긴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며 기분좋게 헤어졌다. ”지금도 눈에 삼삼한 여인은 5번째 여인인 김성희(22·가명)였다”고 백씨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4번째 여인을 거친 다음날 시내 초량동 M식당에서 만나 김양은 백씨가 처음 대한 순수한 숫처녀였다고. 15일동안 무려 5명의 아가씨를 거쳐간 백씨는 이제 부산 아가씨에 물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지방을 원정갈 계획을 세웠다. 대구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곳. 여섯번째의 박미숙양(22·가명)은 바로 대구행 고속버스 내에서 사로잡혔다. 명함을 들여다보고는 홀딱 달라붙더라고. 그날로 대구에서 같이 하룻밤을 즐긴 후 부산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대구 박양 집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로 대구에 갈 일이 있다고 마중을 나오게 했다. “바쁜 일정이기 때문에 낮엔 만날 수 없다”고 능청을 떨고는 밤에 만난 박양에게 돈 5만원을 요구했다. 갑자기 회사일로 서울을 다녀와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2일 후에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고는 박양의 통장에 모아둔 5만원을 빼앗아 부산에 내려왔다. 그의 꼬리는 엽색행각 한달만인 23일 들통났다. 첫번째 여인인 김영숙양이 그동안 너무 소식이 없자 전화하지 말라는 백의 당부를 알면서도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실제 송 아나운서와 통화를 하게 된 것. 실체를 파악한 첫번째 김양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우연히 다음날 백씨가 김양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송 아나운서와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이 다방을 들어서는 백의 덜미를 낚아채 수갑을 채웠다. ▒▒▒▒▒▒▒▒▒▒▒▒▒▒▒▒▒▒▒▒▒▒▒▒▒▒▒▒▒▒ [서울 과부 후려먹은 양주(楊州) 춤솜씨…사업자금 안댄다고 죽도록 매질까지] -선데이서울 1971년 4월 18일자 서울의 춤꾼들과 플레이보이들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 났다. 경기도 양주군 화두면 하산리의 시골신사가 서울로 진출, 미끈하고 날씬한 춤 솜씨로 내노라하는 30대 미인들을 후려잡아 명성을 드날린 것. 그런데 이 시골 신사의 솜씨는 결국 ‘돈 우려내기’였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8일 김모(36·무직)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의 고소인은 성동구 신당동에서 미장원을 경영하고 있는 강옥초(34·가명)씨. 김씨는 양주군 화두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춤의 명수로 명성이 자자한 백수건달. 경찰 조서에 의하면 김씨는 지난 1월 2일 신당동 소재 D카바레에서 처음으로 강 여인을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강 여인은 34살 한창 나이에 수수한 미모의 소유자. 거기다가 돌아다니며 놀기에 적당할 만큼 돈도 벌리고 하여 춤을 배운 소위 ‘유한마담’으로 통하는 처지였다. 1월 2일 밤 신나게 두 사람은 한바탕 돌고나서 바로 이튿날 다시 만나게 됐다. 그만큼 김씨의 춤 솜씨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고, 강 여인은 김씨의 용모와 사나이다운 태도에 마음이 끌렸던 것. 이날 밤의 춤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차 숨가쁜 호흡 소리로 이미 의사를 소통하게 됐다. D카바레의 바로 옆골목에 붙은 E여인숙의 방에 들어가 이들은 제2라운드의 춤을 즐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 여인은 김씨가 홀아비인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돈도 인색하지 않게 썼다. 한번 트인 뱃길은 파도도 없다는 옛말처럼 이들은 거의 매일 밤 만나서 춤추고 여관에 가는 짓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김씨의 내심은 강 여인의 그것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돈깨나 쥔 과부를 우선 춤과 육체교섭으로 녹다운 시킨 뒤 적당한 기회를 봐서 돈을 우려낼 심보였다. 김씨는 고향에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본처는 물론 자그마치 5남매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춤을 밑천으로 돈깨나 있는 여자를 꾀어 ‘즐기고 돈도 버는’ 양수겸장의 사기꾼이었다. 영화 구경, 교외 드라이브 등으로 이들의 뜨거운 관계는 무르익어갔다. 지난 2월 25일쯤. 이들의 분방한 애욕행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발전했던 것인지 이날은 강 여인의 미장원 안방에서 회포를 풀었다. 정사가 끝난 뒤 드디어 김씨는 마각을 드러냈다. 사업자금이 필요한데 30만원을 빌려주어야 하겠다고 강요를 한 것. 강 여인은 일언지하에 “안된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정사와 사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 비슷하게 타일렀다.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씨는 벌떡 일어나 팬티 바람으로 가게에 나가 미장원 거울과 창문을 몽땅 때려 부수고 말았다. 이날 피해 추산액이 3000원. 이때부터 그의 정체를 알게된 강 여인은 집요한 김씨의 요구를 거절하며 만나주지도 않았다. 2월 26일 밤 10시쯤 또 다시 미장원을 습격한 김씨는 새로 비치한 거울과 화분을 모조리 깨뜨려 4800원어치의 피해를 입히고 사라졌다. 그러고도 김씨는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 다녔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손댄 게 아니냐”는 등 달콤한 사탕발림에 30대 여자의 마음은 너무도 허약했던 것일까? 3월 6일부터 제기동에 전셋방을 얻더 동거생활에 들어가 버렸다. 이후 강 여인은 날이 갈수록 김씨의 화려한 엽색행각의 전모를 알게 됐다. 시골에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 것은 물론 때로 첩이라는 여자를 끌고 들어와 한방에서 거북한 잠자리를 같이 하기 일쑤. 그 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제3의 여자도 있었고, 숱한 유부녀와 춤솜씨를 발휘해서 여전히 교섭 중인 것을 알게 됐다. 3월 15일 저녁. 김씨는 느닷없이 본처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겠으니 그 위자료 150만원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강여인은 이 요구를 묵살하면서 “이젠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이 소리에 미치광이처럼 흥분한 김씨는 부엌의 칼도마를 들고 들어와 강여인의 얼굴을 여지없이 후려갈겼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이날 밤으로 전셋집을 탈출, 미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김씨은 미장원까지 뒤쫓아와 “네가 미장원을 해먹나 보자. 모조리 죽이고 만다”고 미쳐 날뛰었다. 이튿날 강 여인은 신당동의 K다방에서 김씨를 만나 8만원을 위자료로 지불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이날 하오 그녀는 8만원이라는 위자료아닌 위자료를 김씨에게 주며 이제 이것으로 우리는 그만이라고 당부했다. “지긋지긋해요. 그 사람이 그렇게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최악의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거예요. 저만이 아니고 10명 이상의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우려서 먹고 살아가는 치사한 사람이에요.” 강 여인이 아직도 치가 떨리는 듯 경찰신문에서 토로한 말이다. 4월 7일 오후 5시. 아주 헤어진 줄 알았던 김씨가 다시 미장원에 나타났다. 무턱대고 사업자금을 내놓으라는 요구. 이를 거절당한 김씨은 미장원의 의자와 기물들을 모조리 두들겨 부쉈다. 종업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결국 쇠고랑을 찼고, 악마적인 엽색행각의 종지부를 찍기에 이르렀다. “춤을 즐기는 것을 말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선 그게 사회악으로 빠져들어갈 요인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번 강여인의 예가 가장 대표적인 것인데, 피해자들이 창피해서 어물어물하기 때문에 결국 드러나지 못하고, 이런 백수건들이 활개질치고 다니는 겁니다” 성동서 형사과장의 말이다. 춤 한번 잘못 추었다가 돈 털리고, 두들겨 맞은 강여인. ‘춤 좋아하다 패가망신 하였네’라고 해아할까?  ▒▒▒▒▒▒▒▒▒▒▒▒▒▒▒▒▒▒▒▒▒▒▒▒▒▒▒▒▒▒ [유혹하곤 트집 잡는 밤길의 여인] -선데이서울 1972년 5월 7일자 1972년 4월 26일 아침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실에 중년여인이 어떤 사나이의 멱살을 잡고 들어와 “이놈이 내 몸도 빼앗고 돈도 훔쳐갔다”고 아우성을 쳤다. 경찰은 남녀를 모두 즉결에 넘겼는데, 여인은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모 스웨터 공장직공 이모(36) 여인이고 남자는 코로나 택시 운전사 김모(30)씨. 사연은 25일 밤 11시 45분쯤 충무로의 한 호텔 앞길에서 이 여인이 김씨의 택시를 탄 데서 비롯된다. 택시가 정릉 쪽으로 달리던 중 중구 오장동에서 고장이 나 두 남녀는 같은 여관에 들었다. 처음에는 여자는 마루에, 남자는 방에 잠자리 채비를 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결국 방에서 동침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뜬 여인은 핸드백 속에 넣어뒀던 현금 800원이 없어졌다며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자기가 훔친 것은 아니지만 없어졌다고 하니 800원을 여인에게 주고 차고 주소를 알려준 뒤 이 여인과 헤어져 일하러 직장으로 나갔다. 이 여인은 김씨와 헤어진 뒤 곧 경찰에 김씨를 도둑으로 신고, 형사들이 차고로 달려가 김씨를 잡아왔던 것. 이 여인의 주장에 의하면 마루에서 자고 있는데 김씨가 자꾸 방에 들어와 함께 앉아서 밤을 새우자고 하는 바람에 춥기도 하고 해서 방에 들어갔다가 그만 정을 통했다는 것이나 김씨는 이와는 반대로 이 여인이 알몸으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왔다고 주장. 경찰은 이 여인을 밤거리에서 운전사들을 유혹한 후 트집을 잡아 돈을 우려내는 상습범으로 보고 있다. 영등포경찰서에서도 27일 이 여인과 비슷한 케이스로 최모(38) 여인을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최 여인의 혐의 내용은 1월 6일 0시 20분쯤 영등포구 흑석동 연못시장 앞길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택시 운전사 박모(28)씨를 “집도 없는 몸”이라며 여관으로 유인하여 동침, 박씨가 곤히 잠든 사이 박씨의 옷가지, 구두, 시계, 현금 7000원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 이런 일은 피해자들에게도 창피스러운 일인지라 피해자들의 신고가 없어 이런 여인들을 엄격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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