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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 한반도/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우리나라는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대륙으로부터,바다로부터 침략을 당한 ‘수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병자호란·임진왜란 등으로 우리의 3천리 금수강산은 외적의 말발굽에 짓밟혔고,우리 민족은 살인과 약탈을 당해야만 한 수모를 기억한다. 해방과 더불어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고,조용한 아침의 바다 동해는 미국과 소련의 항공모함이 으르렁대는 무력의 바다로 변하였다.황토빛 서해바다는 죽의 장막인 중국으로 인해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렸다.다만 부산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뱃길 하나만이 유일한 해외로의 통로였을 뿐,바다는 꽉 막혀 있었다.우리의 북쪽은 아직도 남북한 2백만명의 군대가 DMZ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80년대 후반 미소냉전이 종식된 데 이어 세계가 WTO라는 무한경쟁 시대로 돌입함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여건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태평양을 중심으로 환태평양경제권이 형성돼 APEC 국가들의 정상회담이 매년 개최되고 한반도의 양날개인 동해와 서해도 활짝 열리고 있다. 무력의바다 동해가 교역의 바다로 변모하면서 인구 3억명,GNP 3조달러에 달하는 환동해경제권이 형성되고 있다.죽음의 바다였던 서해는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을 꿈꾸는 중국의 도약으로 환황해경제권이 맹활약을 하고 있다. 우리가 시베리아와 중국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목인 북한에는 김일성의 대를 이은 김정일이 과도기적으로 통치하고 있긴 하지만,막힌 북쪽길이 열릴 날도 그리 머지않다.‘막힌 한반도’가 ‘열린 한반도’로 변모하면서,동북아의 관문에 위치한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교류중심국가’가 된다는 것은 결코 망상이 아닐 것이다.
  • 용들의 승리/오동 발레 파리대 교수(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아주의 올바른 문명화 위한 충고/동북아에 치우친 경제력 걸림돌/시베리아 ‘제2캐나다’로 개발을/무모한 서구베끼기 위험성 경고도 【파리=김병헌 특파원】 ‘용들의 승리’는 아시아의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에 출간됐다. 부제는 ‘아시아는 유럽을 앞지를 것인가’.그러나 저자인 오동 발레 파리대학 교수가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맞춰 이책을 출간한 것 같지는 않다.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시아의 최근 위기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발레교수는 현재의 아시아 즉 ‘용’들의 승리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아시아 미래의 승리에 대한 요건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그 방식과 논리도 매우 이채롭다.저자는 종교학자이자 법학자다.지정학적 요인을 근거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한 것은 아시아의 올바른 문명화에 대한 발전적 제안이다.발전적인 문명화는 종교,문화,사상 등을 망라한 문명화라고 강조한다.현재 금융위기가 이러한 문명화의 퇴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직접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관련지어 생각하게 마련이다. 발레교수는 유럽과 아시아를 종교,철학,역사 등 문화인류학적 모든 요소의 대비를 통해 비교,설명한다.아시아와 유럽의 대조적인 위치에서부터 상호간의 모방,종교·문화적 차이,문명의 근원 및 유사점 등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사건과 현실들을 기반으로 미래의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를 당황스럽게 할 것이다.동양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서양에 대해서는 미망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시아의 전설이나 향기도,유럽의 찬란했던 과거나 역사도 아니다. 유럽이 세계 무역무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의 꿈은 시장경제에서 사라지고 있다” 저자는 아시아의 꿈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으며 전통도 사라져 간다고 말한다.그러면 아시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 해법으로 우선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사방 대칭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현재 아시아 경제의 축이 북반구의 일정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한국중국 일본 대만 홍콩에 경제력이 지나치게 몰려있는 것이 문명화과정에서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위 45도 이상은 불모지대라는 점을 강조했다.그는 러시아의 영토인 이 시베리아 땅이 제2의 캐나다로 개발된다면 아시아의 새로운 힘이 될 것이며 여기서 아시아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또 아시아의 인구들이 남쪽 태평양 해안을 따라 집중되어 있는 사실에서도 문명화 오류의 원인을 찾는다.실제 중국 화교의 4분의 3은 중국의 남쪽 해안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그 수도 약 6천만명에 이른다.일본과 한국도 마찬가지다.이 두나라의 교포들은 거리상으론 다소 멀지만 남쪽 해안인 태평양 건너편 미국쪽에 많이 살고 있다.특히 화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인구 5명중 1명이나 되며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저자는 지난 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의 흑인폭동도 한국인들 때문에 발생했다며 이사건이 좋은 예라고 지적한다.태평양 일변도의 세계화가 올바른 문명화에 가장 필요한 문화의 세계화를 아뤄내지 못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편향된 문화의 세계화가 왜곡된 문명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발레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주체성을 잃은 이른바 ‘서구 베끼기 문명화’의 폐해다. 저자는 20세기는 아시아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말한다.아시아의 르네상스는 현대 개념의 대륙 개방에 따른 것으로 서구와 같은 문명화는 아니라고 덧붙인다.하지만 최근들어 서구화 베끼기가 본격화되면서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것이다.아시아 르네상스를 가능케했던 ‘본질을 잃지 않은 문명화’가 퇴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가장 대표적인 국가로 일본을 들었다.일본은 이미 반세기전에 세계의 강자였지만 오늘날은 금융구조의 취약성,부동산 산업의 붕괴,성장속도의 둔화 등 부정적인 의미의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극동이 또다른 유럽이 되어간다는 경고다. 저자는 “그래도 아시아는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유럽과는 달리 저력이 있어 오히려 낫다고 강조한다.그는 역사적인 일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예컨대 영국이 세계 최초 해상왕국으로 필리핀,대만,싱가포르,인도까지 지배했을 당시 세계 3대항구는 로테르담,런던,앙베였지만 20세기 들어서는 싱가포르,홍콩,카오슝이 이들을 앞질렀다는 것이다.아시아는 계속 거대해지는 반면 유럽은 점차 작아지고 있다는 증거중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책에서 한편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적인 공유점과 연관점을 찾는데 특히 노력했다.말미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교류가 미약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문화와 사상의 교류가 없이는 아시아속의 유럽,유럽속의 아시아는 단지 허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책은 아시아 문명화의 위기 뿐아니라 유럽의 위기도 양 대륙간의 단절에서 비롯됐다는 뉘앙스를 풍긴다.철저히 미국과 반대입장에 있는 유럽 시각이란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아시아가 미국쪽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원제 La Victoire des drgons,프랑스 아르망 콜랭출판사,135쪽,98프랑.
  • 불 “TGV 재검토”에 촉각 곤두/DJ 조스팽 총리 특사 접견

    ◎“고속철 좋은결과 바란다” 긍정적 답변/불 정부에 외환위기 극복 협력도 당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5일 하오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집무실에서 프랑스 조스팽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J.M.캉바세르 프랑스·아시아친선협회장을 접견했다. 조스펭 총리가 국회의원을 역임한 개인고문인 캉바세르 특사를 김당선자에게 보낸 것은 경부고속철도 사업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프랑스 정부는 김당선자측이 경부고속철도 추진과정의 난맥상을 파헤치며 사업을 재검토하는데 바짝 긴장해있다.프랑스의 TGV 수출은 지중해부터 시베리아까지 전세계를 TGV로 잇겠다는 야심찬 국가 사업이다.독일 ICE와 일본 신깐센의 추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TGV 건설을 포기하면 프랑스가 받는 타격은 적지 않다. 김당선자는 이날 캉바세르 특사로부터 이같은 조스펭 총리의 입장을 전달받은뒤 경부고속철도 사업이 좋은 결과를 맺기 바란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이 자리에 배석했던 박선숙 부대변인은 “김당선자의 답변은 중립적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지만,김당선자측은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 같다.TGV사업의 계속 여부는 캉바세르 특사와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간의 6일 면담에서 구체적으로 협의된다. 김당선자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프랑스 정부의 협력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캉바세르 특사는 이날 조스펭 총리의 친서와 함께 올랑드 사회당 당수의 친서도 전달했으며,배석한 장 폴 레오 주한 프랑스 대사는 “김당선자는 국제적인 도움으로 한국을 크게 발전시킬 것”이라는 내용의 한시를 대만인 부인 왕수혜씨가 지었다며 김당선자에 선물했다.
  • 외국인 가짜달러 신종 사기/아프리카인 등 5명 검거

    ◎“겁게 처리해 밀반입… 약품값 주면 절반준다” 속여 외환위기를 틈타 검은색 종이뭉치를 약품처리해 밀반입한 진짜 달러라고 속여 거액을 가로채려한 신종 외국인 사기범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5일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인 클리어런스 머천트씨(28)등 2명에 대해 사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B여관에서 무역중개상 이모씨(44·경기 하남시 창우동)에게 자신을 라이베리아 교육부 공무원이라고 속여 접근한 뒤 “1백50만달러 상당의 10달러짜리 지폐를 검정색으로 염색해 밀반입했는데 이를 원상회복시키는 처리 비용을 대면 75만달러를 주겠다”며 돈을 받아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서울경찰청도 지난달 23일 아프리카 카메룬인 타우와 조셉씨(29)등 2명을 사기혐의로 입건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도 지난해 12월27일 라이베리아인 조셉 판갈로씨(31·무역업)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었다.
  • 겨울엔 얼음호텔로 환상여행을/스웨덴 북극 한계선에 위치

    ◎실내외 모든 장식 얼음으로/조각가가 설계 예술성 탁월/순록 가죽 방한복 입고 지내 “동화속의 ‘얼음궁전’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오세요.예술품 감상에 조예가 있는 분은 더욱 환영합니다” 스웨덴 북극 한계선에 위치한 유카스야르비의 ‘아이스 호텔’,즉 얼음으로 만든 호텔이 이색 겨울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이스 호텔’은 말 그대로 얼음으로만 지어진 호텔이다.플라스틱으로 만든 들보만 빼놓고 모든 것이 얼음으로 만들어졌다.지붕,로비바닥,칵테일바,침대 등등….게다가 스웨덴의 유명 조각가가 만든 얼음 조각품들과 특별전시 예술품들이 곳곳에서 투숙객들의 시선을 붙든다. 이 호텔을 처음 설계한 사람은 조각가 윙베 브레크비스트씨.10년전 자신의 작품 보존을 위해 대형 얼음집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어 왔다.에스키모의 전통가옥 ‘이글루’(IGLOO)’에 착안한 것.몇년 뒤 시내에서 방을 얻지 못한한 관광객이 이 얼음집에 투숙한 것을 계기로 정식호텔로 문을 열었다. 매년 전세계 수천명의 사람들이 찾는 이 호텔의 특징은 얼음궁전이란 사실 말고도 해마다 호텔의 모습이 바뀐다는데 있다.유카스야르비의 토른 강이 얼어붙는 10월에 호텔을 지은뒤 이듬해 봄 얼음이 녹기 전에 폐관(?)한다. 해를 거듭할 수록,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먼 이 자연친화적 호텔 건축에 관심을 갖는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늘면서 아이스 호텔은 규모가 커지고 예술적인 면에서도 품격을 더해가고 있다.올해 투숙가능 인원은 100명선. 호텔 경영자인 브레크비스트씨는 이 호텔의 얼음이 매우 투명해 ‘수정궁전’을 연상케 한다고 자랑한다.맑디 맑은 토른 강물의 얼음을 특수절단기를 이용,60㎝ 두께로 잘라낸 것이 그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조각가 바바라 벰씨는 “우리는 건축재료를 자연에서 빌려 쓴 뒤 다시 자연으로 돌려줄 뿐”이라며 비록 6개월 수명인 건축이지만 영구보존 작품을 만들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스호텔의 실내온도는 섭씨 영하 3∼8도.고객들은 실내에서도 방한복을 입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순록가죽과 슬리핑백을 이용하면 잠자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오히려 인공난방을 하는 일반 호텔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상쾌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특히 이곳 칵테일 바에서 얼음으로 만든 잔에다 보드카나 링고베리 주스를 담아 정담을 나누는 여유는 최고라고 고객들은 추천한다. 올해 이 호텔 갤러리에는 특별히 지난 96년 러시아에서 작업중 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일본 사진작가 미치오 호시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브레크비스트씨는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에는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 “70억불 민간은에 직접제공 검토”/세은 부총재

    ◎한국 신용도 높이는데 큰 도움 장 미셸 세베리노 세계은행(IBRD) 부총재는 올해 상반기에 세계은행이 우리나라에 지원키로 한 70억달러를 가능한 빨리,우리 민간은행에 직접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베리노 부총재는 21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이동호 은행연합회장,조흥·외환·신한·한미은행 등 4개 시중은행장 등과 만나 금융권 현안을 논의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과 장철훈 조흥은행장은 이날 세계은행 자금이 민간은행에 직접 제공되면 ‘정부→중앙은행→민간은행→기업’으로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피할 수 있고 은행 신용도를 높인다는 점을 강조,3월과 5월 이후에 지원될 70억달러를 직접 민간은행에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세베리노 부총재는 “과거 세계은행이 중앙은행의 지급보증을 받고 직접 민간은행에 지원금을 제공한 사례가 있었다”면서 “이 방법이 한국의 민간은행은 물론 국가의 신용도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인 만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재벌개혁 장기 계획 독자 요구/세은,IMF와 별도

    세계은행(IBRD)이 국제통화기금(IMF)과는 별도로 우리나라에 대해 금융기관 구조조정 및 재벌개혁(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장기 실천계획을 수립해 추진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IBRD는 이에 대한 독자적인 이행 프로그램을 작성,우리 정부에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잔 미셸 세베리노 IBRD 부총재는 이날 상오 한은을 방문,이경식 총재를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은 IBRD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세베리노 부총재는 “한국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워야 하며,IBRD도 한국에 대해 조언하고 이행을 요구할 장기 비전(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대미술 작가들 한자리에/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 소장품 60점

    ◎몬드리안 말레비치 칸딘스키작품 전시 20세기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20세기의 미술전’이 지난 17일부터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측이 2년전부터 추진해와 성사된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51명의 작가를 추려 모두 60여점을 보여주고 있어 서양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스테델릭미술관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특히 초기 추상의 거장 말레비치 작품소장으로 유명한 곳. 지난해 일본 전시와 같은 내용의 이번 전시는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독일표현주의,추상미술의 원조 세잔과 그 후예인 입체주의,그리고 몬드리안·말레비치류의 기하추상,네덜란드 지역작가들로 구성된 마술적 사실주의,2차대전후 등장한 아르브뤼·코브라그룹·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소개되고 있다.여기에 팝아트나 미니멀리즘,개념미술 작품들이 가세하고 있고 80년대초 독일·뉴욕·이탈리아에서 거의 동시에 보여졌던 신표현주의와 80년대 이후 미술 등그야말로 20세기를 모두 훑는다. 이번 전시의 큰 줄기는 추상미술.주지주의적 기하추상을 시작한 세잔과 그의 영향을 받은 몬드리안과 말레비치,그리고 그후의 색면추상·미니멀리즘의 맥을 더듬어볼 수 있다.또 한쪽은 주정주의적 성격의 반 고흐류로 반 고흐와 칸딘스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여기에 입체주의의 브라크·로랑·피카소,미래주의의 세베리니,추상표현주의의 폴록·드 쿠닝·뉴만,미니멀리즘의 스텔라·라이만 등도 들어있다.무엇보다도 스테델릭미술관의 자랑거리인 말레비치의 작품 5점을 비롯해 몬드리안의 작품 3점을 한 공간에서 비교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3월15일까지.
  • 까레스키 식품의 확산(중앙아시아를 가다:12)

    ◎유목민족의 식탁 점령한 김치/“입맛을 산뜻하게 하는 별미”/양고기·양젖 위주 식사에 적합/신강성­카즈흐­티베트까지 ‘침투’/우루무치 교포 절반이 김치장수 그 끝 없이 멀고 먼 서역에도,어디를 가나 우리 교포들이 살고 있다.그들은 한국의 음식을 먹고 전통식생활에서도 전통을 지킨다.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온 카자흐스탄 학생이 밥을 물말아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학생은 고려인인 자기 할머니도 늘 그렇게 잡수신다고 했다.그들의 식생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김치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도시 큰 바자에 가면 의례히 고려인 까레스키 여인들이 김치와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과 샐러드를 판다.이들은 본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브스크 지역의 원동에 살던 사람들이다.그러다 1937년 스탈린이 강제로 이주시켜 중앙아시아 곳곳에 고루 퍼져 살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서 김치는 까레스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공산권에 여행이 가능해지던 80년대 말부터 이러한 소식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터이다. ○88년 봉급자의 20배 수입 그런데 이번에 신강성의 수도인 우루무치에 가서 김치가 지닌 경제적 잠재력에 크게 놀랐다.1986년 중국에서 자영업을 허용하기 전까지 우루무치의 조선족은 불과 20호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우루무치의 조선족은 자영업을 허용한 이후 늘어났다.심양에서 처음으로 김치장사에 나섰던 한 아주머니가 하루아침에 큰 거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고 부터다.중국의 동북삼성에 사는 조선족들은 우리의 전통식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치장사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이다.그런 점을 고려한 조선족들이 김치장수로 나서 옛날 서역이라 불렀던 신강성까지 왔다. 제일 먼저 우루무치에 온 사람들은 88년과 89년경에는 하루 중국돈으로 약 200원 이상을 벌었다.월수입도 6천원정도나 되었다. 월봉급이 많아야 500원이었던 시절 당시의 수익은 월급의 10내지 20배에 달하는 거금이었다.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90년에는 약 100세대의 김치장수가 우루무치로 몰려들어 조선족이 모두 120세대로 늘어났다.그러나 100여 세대 김치장수가 우루무치시에 있는 네개의 바자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각 세대의 수입이 급속히 줄었다.그래서 그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업을 하든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지금도 100세대 가운데 약 50여 세대가 김치장사를 하고 있다.월 1천여원 이상의 수익을 쉽게 올린다.이 정도면 중국에서 괜찮은 수입인데도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우루무치를 떠나 세계의 지붕 티베트 라사까지 진출했다.조선족 김치장수들의 생활태도는 참으로 놀랍도록 도전적이다.지금도 김치가 지닌 확실한 상품성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신강성에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들어간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19세기 중엽 이전에 중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거의 중국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오늘의 조선족들은 그 이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또는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떠난 사람들의 후예다.그 가운데는 1959년 신강성 해방군 자격으로 현지에 주둔하다가 제대하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1960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견되어 의사와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몇년 전에 정년퇴직한 원로 의사 한분도 신강성에 자리잡았다. 조선족 의사는 처음으로 우루무치에 올 때,난주에서 트럭을 타고 왔는데,17일이나 걸렸다고 한다.그 때 나이 21세의 총각이었다.우루무치 초행길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물었더니 “다시는 못 돌아갈 것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길에는 김치장사를 하기 위하여 멀리 만주에서 온 조선족 네명이 동행했다는 것이다.어떤 이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집 떠난 사람들이니까 선생님의 그 말을 알지,집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라고…,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에 밴 음식 기름기 제거 신강성에는 위글족 이외에 몽골과 카자흐족 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모두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낭이라 불리우는 빵을 먹는 민족이다.이러한 식생활은 신강성을 포함한 전 스텝 지역,다시 말해서 투르크와 몽골의 모든 지역이 같다.스텝의 유목민족들은 말이나 양젖으로 치즈와 요구르트는 물론이고,술까지 빚어서 먹는다.이런 점은 곤륜산맥과 에베레스트 산맥으로 연결되는 고원 티베트에서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유목민들은 양고기와 우유만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유목민족들이 왜 김치를 사먹느냐고 물어보았다.우루무치의 조선족들은 “김치가 산뜻하기 때문”이라고 하나같이 자랑스럽게 말한다.고기와 우유,그리고 치즈만을 먹고 사는 유목민들이 순식물성 발효식품이기도 한 산뜻하고 시원한 김치맛을 한번 보고나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치즈나 마유주도 발효식품이다.하지만 이들 낙농식품은 우유기름 맛을 그대로 담아 입에 밴 육식의 기름끼를 가셔주지는 못한다.그러나 무배추와 파마늘과 고추가루와 생강 등 온갖 양념을 고루 삭혀 발효한 김치는 입맛을 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원한 맛은 정신까지 맑게 해준다.김치에는 고추 매운 맛의 톡 쏘는 자극과 파마늘의 짜릿하고 알딸한 뒷맛,무배추의 살에 양념들이 배여서 숙성될 때 나오는 산뜻한 신맛이 모두 어울렸다. ○개방정책 타고 번져 김치는 어느 육류와도 잘 들어맞는다.미국 카우보이들이 즐기던티본 스테이크와 가장 갈 어울리는 식품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다.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미국인들의 주장이 그러하다.다만 김치는 가벼운 음식에는 그 양념 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육식만 하는 유목민족에게는 안성마춤의 별미인 것이다. 세계의 오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지대에까지 밀어닥친 개방정책은 시장경제를 열었다.김치도 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치는 오래지 않아 유목민들 식생활의 총아가 될 수 있다.김치 없이는 못사는 한국교포들이 도전적으로 김치를 팔고 있는 한은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한반도 탄생’ 재현한다/K1TV 3부작‘…30억년 비밀’ 방송

    ◎최첨단 컴퓨터그래픽 등 사용 복원 46억년이라는 긴 지구의 역사속에서 유라시아 대륙 북동부에 자리한 한반도는 언제,어떻게 만들어졌을까.또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을까.KBS­1TV ‘일요스페셜’팀이 이러한 의문에 도전했다. 4일부터 18일까지 3회에 걸쳐 방송하는 3부작 특집다큐 ‘한반도 탄생 30억년의 비밀’이 바로 그것.매주 일요일 하오 8시. 한반도 전역과 미국·일본·호주 등지에 걸친 폭넓은 취재를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30억년에 걸친 한반도의 과거를 첨단 컴퓨터그래픽을 동원,복원해 냈다.특히 1억년전 한반도에 살았던 4종류의 공룡을 영화 ‘쥬라기공원’의 컴퓨터그래픽팀의 자문을 받아 생생하게 재현해 관심을 끈다.빠른 내용 전개와 웅장한 배경음악,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 등이 시청자들을 시간여행으로 빠져들게 할 예정.이밖에 하와이 화산 분출장면이나 산호의 산란장면 등 신비한 자연의 세계로 빠져들만한 볼거리가 많다. 4일 나갈 1편 ‘적도의 땅’에서는 한반도가 5억7천만년전∼2억5천만년전의 고생대기간동안에는 적도 부근의 얕은 바다밑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강원도 및 평안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석회암층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삼엽층 화석 등이 그 증거.석회암이 만들어지는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지역을 수중촬영했으며,이 과정에서 산호의 산란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또 산호가 석회암을 만드는 과정을 복원했으며,5억년전에 살았던 삼엽층 등 태고의 바다를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했다. 2편 ‘공룡들의 천국’(11일)은 약 1억년전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백악기의 한반도로 돌아가 이땅에 살았던 공룡들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할 예정.한반도 육식공룡의 모델이 된 에크로캔소사우루스를 영화 ‘쥬라기공원’ 컴퓨터그래픽팀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재현하고,전남 해남 우항리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 크기의 익룡 발자국 화석을 바탕으로 익룡의 모습을 재현한다.특히 육식공룡이 초식공룡 무리를 습격하는 장면은 압권. 마지막으로 18일 방영될 3편 ‘불의 시대’(18일)에서는 수백만년전 한반도에서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또 1천여년전 세계적인 규모로 발생한 백두산의 화산분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이를 위해 KBS 특수영상팀은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역에서 약 1천년전 백두산으로부터 날아온 화산재의 퇴적층을 확인했다.
  • 세계속의 통일한국/각계 9인이 말하는 50년뒤 한국

    ◎제2 한강 기적 이루고 세계 중심에/남북 하나로 통일… 경제대국 위치 확고히/한국어가 세계 공용어로 ‘한국문화’ 확산 앞으로 50년동안 우리나라의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많은 사람들은 광복 이후 50년 사이에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민족의 저력이 계속 뻗어나 세계속의 중심 국가로 발돋움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숙원인 남북이 통일되면서 우리 민족은 고유한 특성인 근면·성실·끈기로서 국력을 더욱 신장시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각계 각층이 희망하는 미래 한국의 위상을 들어본다. ○남북 문화이질성 극복 ▲이대영씨(36·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획실장)=활기찬 문화복지국가를 꿈꿔 본다.그때는 압축 성장이 가져온 모든 병폐와 거품이 걷히고 정치 경제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불로소득이 근로 소득을 훨씬 뛰어넘지도 않을 것이며 조세의 형평성도 유지될 것이다.극빈층에 대한 사회복지도 대폭 확대될 것이다.교육도 정상화돼 대학입시를 위해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파묻혀 지내던 우리 청소년들이 각 분야에서 자기 개발을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상재판 시스템 도입 ▲최영로 판사(36·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사법부는 50년 뒤에 지금보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와 법치주의 수호자로서의 역활을 더욱 더 충실히 하고 있을 것이다.나아가 재판의 권위를 더 높일 뿐만 아니라 평화의 중재 및조정자 역활을 완벽하게 수행,국민과 법원과의 거리는 더욱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전국의 도서 및 산간벽지에도 판사가 상주해 재판을 하거나 원격 영상재판시스템이 도 입돼 손쉽게 재판을 받을 것이며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상사원들과 교포들도 현지에 파견된 법원 공무원들로부터 국내와 똑같이 신속한 사법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단일민족 자긍심 넘쳐 ▲조동영씨(74·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통일된 한국은 우선 남과 북의 이질화된 민족의 재결합이 이뤄져 세계에서 몇 안되는 단일민족으로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웅비하는 강한 한민족이 될 것이다. 통일한국은 특히 지정학적으로 볼때 대륙과 해안을 동시에 접하고 있어 국제교류와 경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춰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농업지대가 많은 남한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북한이 상호보완될 경우 남부럽지 않은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교통체계 획기적 발전 ▲추병직씨(49·건설교통부 건설경제심의관)=50년 후 한민족은 통일된 국가로서의 새로운 위상을 찾게 될 것이다.통일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한국어는 영어와 더불어 세계공용어로 자리잡을 것이다. 교통체계의 획기적인 발달로 국토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1시간권의 교통망이 구축될 것이다.자기부상 열차와 무공해 자동차가 보편화되고 인공위성을 이용한 교통관리시스템과 무인조정시스템이 일상화 될 것이다. 국민들의 주거환경도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중·일본과 어깨 나란히▲윤여덕 교수(서강대 사회학)=우리의 미래는 아주 밝다.지금의 난국을 극복한다면 2010년에는 우리 경제가 G7수준으로 충분히 도달해 이후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본다.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국가로 부상해 만주·시베리아 등 대륙쪽으로 팽창을 거듭할 것이다.중국·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시민의식도 이에 걸맞게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제조건이 선행되야 한다.우선 차세대 정치가 중요하다.중국·일본 등 인근국가와의 협력과 경쟁속에서 국제사회의 변화에 감각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소유한 정치가 필요하다. ○강인한 결집력 보일때 ▲임영식씨(41·스탠더드텔리콤 사장)=21세기에 우리나라는 동북아는 물론 세계 질서를 리드해 가는 강인한 체질의 국가로 성장할 것이다. 90년대 말의 IMF 한파는 우리의 경제 체질 개선을 앞당기고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의 기회가 됐다. 향후 세계질서가 정치 논리보다는 경제 논리에의해 좌우된다고 볼 때 남북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50년후의 장미빛 미래는 우리의 강인한 민족 정신과 단결력에 달려있다. 몇년동안은 고생이 되겠지만 내핍 생활과 경제구조 조정을 통해 빠른 시일내에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 ○겉모습 치중 벗어나길 ▲민은자씨(28·ING은행 자금업무부)=‘한국의 세계화’에서 한 차원 더나아가 ‘세계의 한국화’가 정착될 것이다.최근의 경제위기는 알고 보면 무모하게 외부에 우리를 맞추려고 한데서 비롯됐다.앞으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중심을 확고하게 찾아갈 것이다. 미래의 우리 모습을 거창하게 기대하지 않는다.아니,그래서는 안된다.그동안 우리는 너무 겉모습에만 매달려 왔다.이제 우리의 내면,우리의 심성,우리의 문화를 잘 가꾸고 이를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이것이 세계의 한국화다. ○정보화 혁명 완숙기에 ▲박창기씨(37·동방그룹 비서실 경영전략팀 과장)=50년 후 세계는 정보화혁명의 결과,지리적 국경이 무의미한 하나의 지구촌이 된다. 물론 남북은 통일된 한나라로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며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질좋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인기를 끌고 있을 것 같다.생각만해도 뿌듯하다.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1등품 대접을 받지 못했던 설움은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학생 수업방식 대변혁 ▲조미경양(17·한영외고 2년)=오는 21세기에는 초·중·고등학교 수업방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일방적으로 학교에서 지정한 교과목을 이수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다음 세기에는 모든 분야를 다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주일에 2번 이상 쌍방향 정보교환 프로그램으로 집에서 교사와 일대일로 수업을 받고 남은 시간은 학생 스스로 탐구하고 여가를 선용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믿는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은 지금보다 더 영향력이 커지면서 엘리트 연예인 시대가 될 것이다.
  • 고전 읽히기(외언내언)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단 한권의 책밖에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은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단 한권의 ‘편견’은 상대방의 다양한 ‘감성’을 다치기 때문이다.그대신 독일의 알프레드 베버는 ‘두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어느 책이 양서이고 어느 책이 악서인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단지 비문이나 성서처럼 오래된 것이 고전임에 틀림없다.‘고전’이란 누구라도 읽지 않으면 후회하면서도 누구라도 읽기 싫어하는 책이기도 하다.사람들은 책장을 열기도 전에 그 내용이 난해할 것에 지레 겁을 먹지만 좋은 책이란 먼저 읽어두지 않으면 두번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한 출판사가 중고교 독서담당 교사들을 상대로 ‘도서 추천 실태’ 조사결과 그들이 추천한 권장도서는 무려 1천100여권.필독서인 생텍쥐베리에서 헤세 리처드바크 바스콘셀로스 다윈찰스 스티븐호킹에서 심훈 나도향 이효석 박경리 유홍준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명편과 과학과 자연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돕는 책들이 고루 들어 있다.이보다 앞서 한국 갤럽이 전국의 청소년 1천500여명을 상대로 한 ‘한국인의 독서실태’조사에 보면 56%가 한달에 ‘단 한권도 책을 읽지 않았다’고 응답한다.그러나 ‘어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서는 무려 83.2%가 TV시청을 밝히고 있다. TV시청은 휴식이지만 독서는 마음을 살찌우는 양식이다.습관적으로 체질적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당연하게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책 한권 읽었다’는 자랑은 결국 ‘지성’을 해치는 ‘우매’일 것이다.1천여권을 다 읽을 수 없다면 10권을 먼저 읽고 다시 10권에 도전할 수 있다.우리민족의 삶을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대하소설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빼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 고전에는 우리의 미래와 새로운 인생이 들어있다.책을 멀리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이런 경기불황일수록 두 눈에 불을 켜고 책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의 빛을 찾아내보자.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시(중앙아시아를 가다:10)

    ◎중앙아 최고의 도시… 동서문화 교류 요충지/8세기 아랍군에 점령… 투르크족 점차 이슬람화/사마르칸트궁전 벽화엔 고구려인 조문사신이… 오늘날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주의 주도다.그러나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한 중앙아시아 최고도시의 하나였다.그 고도에서는 옛 고려인을 그린 벽화를 만날 수 있다.멀고도 먼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을 만나다니…….그럴만한 사연을 지닌 고도가 바로 사마르칸트인 것이다. 그러한 역사속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동서문화의 교류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동서문화 교류를 통해 세계문화사가 전개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따라서 세계문화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앙아시아역사를 한 차례쯤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대규모 민족이동 첫 파장 중앙아시아 일대 대초원의 역사에서 파상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대규모의 민족이동이다.그 첫 파장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분명치 않다.다만 파장의 주체가 수메루족이 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해볼 수 있다.기원전인 BC3500년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고대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족은 오늘의 터키족이 속하는 알타이어족의 한 갈래다.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연구한 앗시리아학자들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원주민들과는 생활습관 뿐 아니라 언어마저 다른 수메르족이 이 지역에 나타났다.그 수메르족은 뒷날 지금의 중동인종인 셈족에게 흡수되면서 수메르어도 사라졌다.이들 두 사건,다시 말하면 수메르족의 출현과 소멸은 알타이어계의 동양족이 서남쪽으로 이동한 뒤 메소포타미아에 고대문화를 다시 이룩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그것은 민족의 서방이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BC2000년쯤 알타이와 내몽골,시베리아로 코카시안 또는 백인들이 들어왔다.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가 바로 지난번에 말한 아파나시에보문화다.그 다음 8세기쯤에는 스키타이가 기마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제2진으로 도착했다.그러니까 백인의 동방이동은 중앙아시아가 두번째 맞은 파장이었다. 스키타이의 기마술은 카스피해안에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대초원 전지역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보병을 한꺼번에 밀어치울 수 있는 기마전은 당시로서는 가공할 전술이기도 했다.그리고 말은 여러 가축을 이끌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기마술은 결국 본격적인 유목생활을 재촉한 생활수단으로 정착했다.토착의 동양족들은 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이에 따라 민족혼합이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새롭고 강력한 정치집단도 나왔다.BC3세기 몽골에서 발흥한 흉노가 그 집단이다. ○흉노 저지 만리장성 축소 그 시기에 중국의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았다.북쪽의 흉노족을 막기위해서 였다.BC221년에 시작하여 기원후인 AD220년에 끝난 전한과 후한이 기를 써서 막아야 했던 세력은 흉노다.서방의 흉노인 훈제국의 아틸라 칸은 AD445년에 등극했다.그리고 아시아에서 중부유럽에 이르는 지역을 손아귀에 넣었다.동·서 로마를 포함한 어떤 세력도 흉노에 대항하지 못했다. 동로마의 황제 데오도시우스가 아틸라 칸을 살해하려다 발각된 일이 있다.그러나 죽음을 맞을뻔 한 아틸라 칸은 데오도시우스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이다.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방의 사가들이 흉노를 얼마나 질시하고 두려운 눈으로 보았는지를 잘 알수 있다.중국의 정사도 마찬가지다.중국은 흉노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겉치례옷을 걸쳤을 뿐 질시와 두려움은 여전했던 것이다. 동방의 돌궐제국은 한때에 와해되었다.그러나 6세기에 돌권의 후예들이 투르크라는 이름으로 부족연맹을 결성했다.돌궐 또는 투르크제국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흉노와 마찬가지로 돌궐 역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제국들로 나누어졌다.비록 다양한 세력들이기는 했으나 투르크는 같은 문화와 언어,종교 만큼은 서로 공유했다. 그런 투르크에도 변화가 왔다.8세기 초에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아랍 이슬람군에 점령된 것이다.이들 지역의 투르크족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그 뒤에 이슬람지역의 투르크족들은 여러 이슬람투르크왕조를 세웠다.그리고 AD751년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탈라스로 원정한 고선지장군이 이슬람 투르크 세력에게 패했다.중국은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슬람 투르크의 왕조들은 13세기 몽골의 말발굽에 짓밝히는 비운을 맞았다.투르크는 패자이기는 했으나 이슬람문화는 끝까지 지켰다.그리고 유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오스만 터키제국(AD1340∼1922년)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투르크의 영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듯 흉노와 돌궐의 민족이동은 BC3세기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그 사이 몽골의 군사적 제압이 뒤따랐다.그러나 민족이동의 주역들은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편입되었다.이슬람화한 각 지역의 투르크족들은 나름대로 문화적 정체성을 지금도 강하게 지니고 산다.오늘날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 남아서 사는 투르크족이 그들이다. ○‘해뜨는 나라 고구려’ 기록 중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탈라스 패전 이후 시야를 벗어났다.우리의 역사도 그 지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벽화속의 그림이기는 하나 사마르칸트에서 고구려의 사신을 만났다.그 벽화는 아프레시압박물관에 소장되었다.그런데 오르콘 돌궐비문은 카칸의 조문 사절단들이 누구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해가 뜨는 나라 베클리(고구려),타브카즈,티벳,아바르,로마,키르키즈,오츠 쿠르칸,오트우즈 타타르,기단(거란),타타비 등 여러 민족들이 신음하고 울기위해(주문하러)왔다.”고 기록했다. 투르크제국 공식비문에 ‘해뜨는 나라 고구려’가 첫 국빈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공식기록은 고구려 사절단이 어떤 국가의 사절단들과 조우했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다.고구려 사절단은 천산아래 탈라스를 지나와서 세계의 끝에서 온 여러나라 사절들을 만났다.그런 중국 영향권 밖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위해서는 한문이나 한자문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 미 뉴멕시코주 차코 인디언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6)

    ◎1,000여년전 인디언 주거지 그대로/대지 4,000여평에 4∼5층 규모 방 800여개/돌 1억개·목재 20만개 사용… 2만여명 거주 【챠코 국립역사공원(미국)〓김재영 특파원】 흥청거리는 문명의 현장은 그냥 지나쳐도 기운이 돋궈지게 마련이다.그러나 사라진 문명의 남은 터를 응시하는 데는 상당히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현대문명이 가장 발달하고 흥성한 미국에서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의 옛 문명을 구경하는 데는 특히 그러하다.미국에서 인디언 문명의 정화를 찾아가는 길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미국 문명을 잊어가는 행로이기도 했다. 미 대륙에서 인디언 문명의 꽃들은 묘하게 궁벽하고 척박한 곳에서 피어났다.아메리카 인디언의 운명과도 관계된 이 특징은 어떤 면에서 인간문명의 수수께끼의 하나인 것이다.인디언들은 5만년전 얼어붙은 베링해를 걸어 시베리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부터 대서양의 동부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삶의 터전을 일궜다.하지만 기후좋고 먹을 것이 더 풍부한 태평양 연안이나 숲지고 농사짓기 알맞은 동부 지역보다는 서남부의 척박한 사막성 땅에서 인디언 문명이 한층 더 강렬한 색채로 꽃피었다.뉴 멕시코주의 챠코 유적도 그 하나라 할 수 있다. ○알브커키시 북쪽 250㎞ 인디언 문화의 정수를 느끼려면 미국 문명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1천년전의 인디언 주거유적지인 챠코는 인구 40여만명의 뉴 멕시코주 최대 도시 알브커키에서 북쪽으로 250㎞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이동수단인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1천년 전의 그때로 곧장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원시적지역이다.챠코는 한국 절반 넓이로 뉴 멕시코 북서쪽 모퉁이를 차지한 산 후안 분지 한가운데에 있다.북서쪽으로 더 가면 그랜드 캐넌으로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이고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리오그란데 강이 있다.그러나 이 분지는 철저한 사막성의 황량한 평야다. 미국 서부쑥이라는 무릎 크기 식물이 땅을 뒤덮고 있을 뿐 먹을 만한 작물은 좀체 자랄 성 싶지 않다.피니언 소나무,노간주나무가 눈에 띄지만 사람키를 넘지 않아 마땅한 집지을 거리가 없어 보인다.드문드문 있는산도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쑥 올라와 네모반듯한 대지를 이루며 몇 백만년을 부식해가고 있을 따름이다.강수량은 극히 적고 겨울은 또 길고 춥다.바닷가나 강가나 동부의 숲으로 가지 않고 왜 이런 황량하고 열악한 곳에다 삶터를 정했는지 이해가 안될 지경이다. 챠코는 서기 850년부터 1150년까지 지금은 없어진 아나사지 인디언들이 살던 마을 유적지이다.역사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은 선사시대였고 도구도 석기 뿐이었다.1150년 아나사지 챠코인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 뒤 폐허가 된 채 세월의 먼지에 싸여 있다.그러다 700년 만인 1849년 미 육군 중위에 의해 발견되었다.이를 계기로 남북 암석대지(메사) 사이를 가로지르는 챠코 계곡 일대 80㎢에서 3천여 개소의 주거시설을 찾아냈다.챠코의 핵심은 남 메사 바로 밑에 지은 ‘프에블로 보니토’와 ‘쳬트로 케틀’이란 대형 집단주거 시설로 되어 있다. 이 대형주거 시설의 특징은 집이자 마을이란 점이다.4천평에 가까운 대지를 뺑 둘러 담을 쌓고 광장,마당용으로 가운데 일부만 빼놓았다.나머지 땅전체를칸칸이 방으로 채웠으며 그것도 4,5층의 다층구조였다.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의 프에블로 보니토는 방이 모두 800개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49년 미 육군 장교 발견 키바라 부르는 종교적 성격의 원형 공동방을 빼곤 이 방들은 대부분 1∼2인이 거주하는 작은 크기다.벽에 난 창을 출입구로 하면서 계속 잇대어 있다.즉 복도나 정식 문이 없이 벌집같은 단일 연속 구조인 것이다.요새말로 하면 아파트다.고고학자들은 ‘1882년 뉴욕시 57번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아파트형 건축물’이라고 말한다.지금은 건물의 일부 층만 남아있다. 이 시설의 담,벽,방,문 할 것 없이 전체가 자잘한 돌을 차곡차곡 포개고 진흙을 발라 쌓아 세웠다.들보나 문틀받침엔 물론 나무가 사용됐다.석기로 뒷 메사 절벽에서 집채만한 돌을 뜯어내 이를 작고 네모반듯한 파편으로 일일이 쪼개낸 것이다.챠코 주거지에는 1억개가 넘는 돌조각과 20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목재가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된다.목재 중에는 반 톤 가까운 것도 있다.이런나무들은 100㎞ 밖에서 사람들 맨 힘으로 끌고 왔다. ○1,000㎞ 도로 잘 닦여져 프에블로 보니토와 쳬트로 케틀을 중심으로한 챠코 일대에는 방 수로 보아 7천명에서 2만명의 인디언이 공동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작물이 풍성치 못한 사막성 자연환경을 감안하면 대도시 중의 대도시인 것이다.또 이 지역일대에 총 1천㎞에 이르는 반듯한 도로가 이리저리 닦여진 것이 항공사진을 통해 추적되었다.그러나 챠코도 결국 오랜 가뭄 등으로 인구를 먹여살리지 못하자 영원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챠코의 유적을 같은 시대 유럽의 성곽이나 요새에 비하면 원시적인 돌 마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러나 키작은 나무들과 집채만한 돌멩이 뿐인 사막성 땅 현지에 발을 딛고 보면 이 반쯤 무너진 돌 마을은 모래땅이 피워낸 예쁜 꽃임에 틀림없다. ◎여행 가이드/비포장도로… 우기땐 피해야 차코 인디언 유적지를 가려면 우선 뉴멕시코주 최대 도시 알브커키로 가야 한다.알브커키로 가는 미 국내항공편은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공항에서 매일 운행된다.알브커키에서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25번 상행선을 탄 뒤,주도 44번,산 후안 군도 7800번로 진입한다.군도의 대부분은 비포장도로여서 우천시는 피해야 한다.알브커키나 주도 산타페에서 호텔 등에 문의하면 단체관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카자흐 수이강변의 암각화(중앙아시아를 가다:9)

    ◎석·청동·철기 시대별 형상 다양/사슴·말·소·양 등 동물부터 기마병의 전투·출산장면까지/부족 경사·비극 등 기록 도형화/중앙앗시아 거쳐 한반도까지 전래 바위에 새긴 신비로운 그림 암각화는 세계 도처에 있다. 다양한 민족들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라시아 구 대륙 곳곳에서 발견된다. 구 대륙에 속한 한국에서도 암각화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몽골과 시베리아 해안지역그리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는 한국의 암각화와 유사한 암각화들이 보인다. 이 지역은 지난번 지적한 바와 같이 기마민족의 통로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자흐스탄 암각화 지역에 대한 답사를 여러차례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현지에 눈이 쌓이거나 기후가 나빠서포기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건기를 택하여 현지를 찾았다. 알마아타에 있는 카자흐스탄 국립과학원 고고학연구소장인 바이파코프 교수와 암각화연구에 한평생을 바치고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노교수 마라아쉐프가 동행했다. 알마아타에서300㎞나 떨어진 암각화 사이트를 두 곳이나 며칠을 두고 답사한 것은 행운이었다. 칼디쿠르간이라는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이강가의 암각화 사이트를 먼저 찾았다. 이 사이트는 한국의 울주 반구대와는 달리 산 전체 바위 모두가 암각화였다. 사방 40㎝ 이상되는 평면의 검은 바위들이 거대한 산 계곡에 가득히 깔려있고,그 바위마다에는 예외없이 그림이 새겼다. 그러니까 산전체가 선사문화유산이자 미술자료라 할 수 있다. 그림의 주제들은 다양했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사슴과 멧돼지·소와 양 등을 표현한 동물의 세계,둘째 동물의 사냥,말과 마구 및 마차와 마차바퀴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셋째 전쟁과 기마병,넷째 성기와 남녀의 성교 및 여인의 분만장면 등 생식에 관한 그림도 있다. 암각화는 후기 신석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세 몽골시대까지 그렸다. 그렇듯 수이강가의 암각화는 수천년을 두고형성되었다. 암각화의 시대는 석기,청동기,그리고 철기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석기시대 암각화의 주제는 주로 수렵의 대상이 되는 동물들과,소와 양 같은 가축들이다. 그 스타일은 투박하여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세련된 솜씨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형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는 동물들의 스타일이 대단히 정형화한 형상을 보여준다. 그가운데 사슴이 가장자주 나타나거니와 사실적이다. 청동기의 사슴은 한마디로 스키타이 미술이다. 잔인한 스키타이인들은 모든 동물이 생명의 위협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전율을 화면에 연결시킴으로써 얻는 극적인 역동성을 화면에 잘 표현했다. ○산전체가 선사문화유산 이는 생명이 스러지는 전율앞에서 승리의 희열을 만끽하는 잔인한 성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승리자는 건강한 패자의 극적인 죽음에서 생명력을 획득한다고 믿었다 .지난 번에 지적했듯이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그 해골을 차고 다녔던 스키타이의 풍습에서도 그런 성정이 엿보인다. 암각화의 사슴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내달리던 사슴이 당황한 나머지 네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급정거하는 동작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청동기 후기에 오면 말이나온다. 사람이 자기의 의사대로 말을 조절할 수있는 통제수단이 있어야 말을 기마용으로 쓸 수 있다. 사람과 말이 예민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면 기마술은 불가능하다. 그 통제수단은 바로 청동제 재갈이다. 그러므로 청동기에 들어와서 말 그림이 나타났다. 그것도 기원전 15세기를 훨씬 지나서 동부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스테프에 말그림이 비로소나타나기 시작했다. 말이 등장하고나서 처음에는 바퀴 두개의 전차를 그렸다. 그 다음으로 바퀴 네 개 짜리 짐차를 그려 인간의 지혜가 점차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 필요 출산을 신성화 청동기시대에 나타나는 또하나의 주제는 남성성기를 자랑하는 무사와 그들의 전투장면,그리고 성교와 출산장면이다. 흥미있는 점은 성교장면 근처에 출산장면이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들 그림은 청동기라는 신무기를 가진부족사회와 무관치 않다. 한 부족이 이웃 부족들을 복속시켜서 바야흐로 부족연합체인 고대국가 단계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무사가 정치적 영웅이되고,그 영웅의 영도하에 대규모 군사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출산을 전에 없이 신성화하는 가운데 다산을 기원했다. 그런 내용을 암각화에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철기시대가 도래하면 끌과 같이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가늘고 깊은 선을 파서 기마병들의 갑옷과 깃발까지 그려냈다. 그 시대에 맞는 그림들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그림들을 그리고,그림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암각화들을 그린 여러바위가 모여서 이루어진 수이강가 언덕 한 곳에는 가지마다 헝겊을 묶어 둔 나무가 서있다. 그러니까 이 지역 카자흐인들은 이 언덕에 와서 아직도 제사나 고시레를 지낸다는 이야기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개인 화가가 와서 그린 것이 아니라 부족의 의례행사의 하나로 그린 그림이다. 사냥과 전쟁,부락의 경사와 비극,출산과 영웅의 죽음 등 그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만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부족의 행사 차원에서 도형화 했다. 그것은 성스러운 기록이었다. ○주 암각화에도 나타나 남근을 자랑하는 전자와 그의 무기에 관한 것을 그린 청동기시대의 그림들은 어떤 정형의 틀을 분명히 지녔다. 주목할만한 일이다.그 정형화한 그림은 울주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나타난다. 성스러운 그림은 정형을 바꾸는 법이 없다 .여기서 우리가 두가지 점을 시사받는다. 첫째는 대부분의 반구대의 그림이 청동기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둘째 반구대의 문화는 멀리 중앙아시아까지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그 신비로운 암각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그것은 새로운 안목으로 상고사를 올려 보라고 채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금세기 지휘계 개성파 2인 대작음반 둘 국내 상륙

    ◎‘첼리비다케 에디션’­유족 동의로 공개된 11장짜리 앨범/크나퍼츠부쉬의 ‘니벨룽의 반지’­방대한 바그너 작품 56년 실황 첫선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느낀적 있는지.북적대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외로움을 양식삼아 몇날이고 ‘청산’에 살리라 했던 밤이 있었는지.육체는 온통 탈화되고 오롯이 혼만 남는 그런 정화된 밤의 비밀을 아는 이라면 당신은 분명 다음 두 이름에 매혹되리라.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와 한스 크나퍼츠부쉬.모두 20세기 지휘계의 상봉들로 ‘김삿갓’이나 ‘달마’정도를 연상시키는 괴짜들.최근 이들의 대작 음반 두종이 나란히 국내 상륙,‘신도’들의 마음을 달뜨게 하고 있다.‘첼리비다케 에디션’(EMI·3449-9424)과 크나퍼츠부쉬 ‘니벨룽의 반지’ 전곡(뮤직 앤 아트·208-5333). 두 대가는 알게모르게 공통분모가 많다.누구보다 내면이 옹골찼지만 번쩍이는 가짜명성을 외면했던 이들.도통한 지휘봉을 신봉하는 골수 추종자들을 거느렸으면서도 ‘외통수’로 찍혀 음악계에서 신수편할 날 없었던 팔자도 유사하다. 음악적 개성도 닮음꼴.44회전을 33회전으로 잘못 놓은것 아닌가 싶게 느긋한 템포,그러면서도 구조를 장악해 이리저리 밀고당기며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게 음의 벽돌을 쌓아간다. 그런 공력이 빛을 발하는 둘의 주종목은 브루크너.세속의 황금을 외면하며 음의 진수를 만나기위해 칩거했던 이들은 정도차는 있지만 레코딩이 못마땅했던 ‘라이브’주의자라는 점에서도 통한다. 상업적 녹음을 혐오했던 첼리비다케의 드문드문한 녹음을 정리한 것이 ‘첼리비다케 에디션’.그가 분신으로 다듬고 깎아낸 뮌헨필과의 연주다.EMI 100주년에 맞춰 유족의 동의로 공개하는 11장짜리.당연히 세상 햇빛을 처음보는 녹음들로 신비의 첼리비다케 전모에 근접해볼 충분한 물량이다. ▲하이든 교향곡 103,104번 ▲모차르트 교향곡 40번,하이든 교향곡 92번 ▲드뷔시 ‘바다’,관현악을 위한 영상중 ‘이베리아’ ▲베토벤 교향곡 4,5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 〃 6번 ▲바그너 ‘탄호이저’서곡,‘뉘른베르크의 명가수’전주곡 ▲슈만 교향곡 3,4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라벨‘볼레로’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 10장에 ▲바르토크 ‘관현악을 위한협주곡’과 리허설 스케치를 담은 보너스 CD를 곁들였다.그의 ‘브루크너교향곡 에디션’도 발매 추진중. 한편 ‘니벨룽의 반지’는 크나퍼츠부쉬 최고의 음질이라는 56년 실황을 첫선 보이는게 포인트.권력과 부를 보장하는 라인의 황금을 둘러싸고 인간과 신들이 한데 엉켜 쫓고 쫓는 ‘반지’는 바그너의 세계관을 집약해 보여주는 방대한 작품으로 그 상징성은 통시적으로 유효하다.이번 음반은 ‘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4부작을 16장에 담았다. 일급 바그네리안들이 성대의 단단함과 탄력을 다투듯 ‘반지’를 입체화시키는 가운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합류했다.그 음악세계는 격렬하고도 단단해 모노 사운드의 단조로움을 훌쩍 뛰어넘는다.
  • 에이드리언 베리의 ‘갈릴레오에서 터미네이터까지’

    ◎인류문명의 수수께끼들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과학으로 풀어낸 인문교양서 ‘중세의 갈릴레오의 재판’(에이드리언 베리 지음,김용주 옮김)이 도서출판 하늘연못에서 나왔다.지은이는 ‘철의 태양’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영국 태생의 과학저술가.‘중세의 갈릴레오 재판’에서부터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하이테크 인조인간이 등장하는 SF영화 ‘터미네이터2’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연관된 의문들을 폭넓게 다룬다.지은이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은 돌고래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당시 종교 재판관들은 갈릴레오의 저서 ‘세계를 지배하는 두 체계의 대화’의 표지에 그려진 돌고래 그림을 근거로 갈릴레오를 신교도의 주재관이라고 확신했다.‘돌핀’은 1349~1830년 프랑스 왕조시대의 황태자를 일컫는‘도핀(dauphin)’을 뜻하기도 했다.신구교도들간에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2년,당시 프랑스는 신교의 교의를 지지했다.이런 상황에서 편협한 스콜라 철학에 사로잡혀 신경과민 증상까지 보이던 구교도 관리들의 눈에 돌고래 그림은 반역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천재들의 업적은 대부분 젊었을때 이뤄졌다.아이작 뉴턴은 중력의 3법칙을 발견했을때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의 왕자인 흑태자는 열여섯살때 크레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은 다섯살때 그리스어를 마스터했다.또 모차르트는 여덟살때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뇌의 조직은 약 100억개의 신경세포에 의해 서로 연결돼 있다.그러나 늙으면 신경세포가 죽음에 따라 뇌의 기능도 점차 떨어진다.지은이는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퇴화하는 현상을 칩이 계속 오류를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교체되지 않는 컴퓨터에 비유한다.
  •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에 큰 책임/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90년대 초반 러시아 젊은 민주주의 세력들은 서방으로부터 존경받는 한 회원국이 되려고 애썼다.미국과 유럽은 공산주의 이후의 정치·이념적 주요 동지로 인식됐다.서방국가들은 경제원조의 주요 원천이자 발전모델이었다. 그러나 모스크바 분위기는 곧 바뀌었다.친서방 일변도의 개혁이 어려움에 봉착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문제가 걸렸다.안보우려를 없애는 것이 크렘린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활발한 전방위 외교 관심 옐친이 대통령에 재선되면서 그러한 추세는 다시 바뀐다.러시아는 다시 국내개혁을 강조했고 국내적인 필요에 따라 국제전략을 택해 나갔다.91,92년과다르게 더 이상 ‘친서방 경사’를 만들지 않았다.대신 모스크바 정부는 다른 감을 느꼈다.보다 균형된 외교정책을 취하면,서방에서 동방까지,잘사는 나라뿐만 아니라 못사는 나라까지 모든 국가와 가까이 지낸다면,국내 개혁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알았다.국가안보에 대한 우려와 초강대국 야망때문에 러시아는 활발한 전방위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 일본 중국과의 정상회담은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야망을 보여준다.한반도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새 이니셔티브 대상이다.한 고위 공직자는 “한국기업이 벌써 투자기반을 견고히 닦았다.많은 협정들이 맺어졌다.부족한 것은 한국의 안정에 대한 신뢰성과 러시아의 시장 전망이다”고 말했다.러시아가 일본·중국과 경제관계를 활발히 복원하면서 이것이 한국의 활동을 자극한다. 북한 역시 러시아의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다.벌목공등 시베리아·극동의 북한인력을 이제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다.러시아는 북한의 원자재에 관심이 있으며 북한의 원전과 다른 산업시설에도 관심이 크다.나진·선봉이 러시아의 관심을 끈다.나진·선봉지역을 활성화시키는데 북경·도쿄 등과의 협력가능성도 보인다.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러시아는 한반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한반도는 이웃이며 이 지역에 평화가 깨지는 순간 러시아는 즉각 영향을 받는다.북한에서 쏟아지는 피난민이 러시아로 몰려들고 한반도에 있는 핵물질들이 러시아땅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우려 때문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을 없애고 평화를 유지시키려 한다.때문에 크렘린은 평양과의 대화를 추구하고 북한을 개혁·개방 대열에 오르게 노력한다.러시아가 이렇게 하면 북한은 한국에 대해 보다 유연하게 될 것이며 남북한 협력이 보다 용이하게 될 것이다.90년 초반처럼 북한을 고립시키는 일이 더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그러한 선택은 평양정부가 핵무기 개발 같은 보다 위험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북의 개혁·개방 대화 추구 옐친 대통령은 북한의 건설적인 외교정책을 유도하는 방법에 대해 중국·일본 지도자와 의논했다.미국 뿐만 아니라 이들 3국은 북한을 코너에 몰기보다는 건설적인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모스크바 정부는 이해당사자들과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양자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한다.아직도 러시아는 한반도 4자회담에 러시아가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분명한 것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과거처럼 서로 경쟁 혹은 대결하길 원치 않으며 공동보조를 취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유엔의 창립멤버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러시아는 다른 상임이사국들과 함께 지구촌의 평화를 유지할 책임을 갖는다.한국은 확실히 그러한 장이다.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끼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이 있다고 본다.북한을 있게 했으며 평양정부가 50년 6월 남한을 침공한 것을 승인해준 쪽도 소비에트 지도부였다.냉전의 마지막 장을 정리할 역사적 책무를 러시아 정부는 무시할 수 없다. ○통일한국 돼야 중·일 견제 또 다른 시각이 있다.러시아가 혹시 한반도에서 초강대국의 야망이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다.50~70년대 소련은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의 지위를 다퉜고 미국쪽에 속해 있지 않은 다른 모든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든 적이 있다.모스크바 정부는 다극화를 반대했고 특히 당시 중국처럼 양극구도를 깨려는 나라를 비난하기도 했다. 현재의 국제정치 상황은 다르다.러시아는 더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며 세계는 모두 미국이라는 하나의 극이 지배하는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이를 막기 위해 모스크바는 국제관계에서다극화를 주선하려 한다.크렘린은 특히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지원하려 든다.독일이나 일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주려 한다.또 유럽에 대한 영향력 행사 때문에 프랑스·독일 등과 삼각동맹을 구사하려고도 한다.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는 통일 한국의 힘이 구사되길 기원한다.통일한국의 힘이 강할수록 중국이나 일본의 힘이 견제되기 때문이다.때문에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에 다른 어느나라보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의심할 여지 없이 러시아 외교는 최근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심으려 한다.
  • 추억의 선물(외언내언)

    선물과 뇌물의 경계는 모호하다.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은 사례도 조그마하다’(프랑스 속담)거나 ‘선물에는 바위도 부서진다’(세르반테스)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러뜨린다’(구약성서) ‘빈손이면 빈말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솔즈베리) 등 고금의 명언들이 전해진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요즘은 지난 1년동안 신세진 사람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보내는 때다.이 때를 뇌물 전달 시기로 활용하는 이들도 물론 있다.백화점이 연말이면 선물세트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판매수입을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랫동안 백화점의 연말 선물매장에서 밀려났던 내복·수건·양말세트등이 선물품목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한다.국제통화기금(IMF)시대,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어려운 경제난속의 연말연시 선물품목으로 ‘추억의 선물’이 재등장했다는 것이다. 내복이나 수건,양말등은 우리 살림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을 때 주고 받던 그야말로 선물이었다.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던 당시 우리 사회는 가난하지만 따스한 인정을 느낄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나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연말 선물 품목은 조미료 세트나 참치세트로 바뀌었다가 다시 구두표,갈비·한과세트 등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아예 현금과 마찬가지인 백화점 상품권으로 탈바꿈했다.선물을 주는 이의 따스한 체온이 사라지고 대신 뇌물의 성격이 짙어진 것과함께 우리 사회도 삭막해졌다. 불황탓이긴 해도 뇌물이 아닌 조촐한 선물이 다시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가까운 친지끼리 주고 받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좀더 확산돼 불우이웃에게까지 가 닿을 수는 없을까. 올 연말엔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는 온정의 손길이 뚝 끊어졌다 한다.‘광(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긴 하다.그러나 지금 우리 곳간은 사실 내복·수건·양말을 선물하던 때보다는 넉넉하다.생활의 거품은 빼야 하겠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어서는 안될 것이다.어려울 때일수록 이웃을 돕는 마음,더불어 사는 삶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은 빛난다.
  • 러 전설적 발레리노 누레예프 불 망명 36년만에 고국품으로

    ◎사진·의상 등 유품 모스크바 도착/전시장 인파 만원… 추모열기 후끈 러시아출신의 전설적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의 추모열기가 모스크바의 강추위를 녹이고 있다.누레예프 전시회로부터 시작된 이번 추모열기는 모스크바에서 그의 고향인 바슈코르토스탄공화국까지 이어지는 등 러시아 전역에 확산될 기미다. 추모열기에 불을 지핀 것은 ‘누레예프 전시회’.프랑스망명 36년만에 처음으로 그의 활동상을 담은 영화·사진과 전성기때 입던 발레옷등 갖가지 유품이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이다.전시장이 들어선 모스크바 보로트니코프스키12번가 나쉬초키나 화랑은 전시장보다는 추모장에 더 가까운 분위기.영혼을 담아낸 듯한 활동사진·유품 전시홀마다 그를 추모하는 조화들이 그득하다.화랑입구에는 손에 손에 꽃송이를 든 입장객들이 줄지어서 만원이다.그의 영혼을 좀더 가까이서나마 흠모하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회는 4개의 홀로 이뤄졌다.첫 전시실은 전성기때 누레예프의 발레사진으로 채워졌다.모두 누레예프 본인이 소장한 리허설모습,유명 발레리나 파트너와의 열연모습 등이 담겨있었고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라고 화랑측은 설명한다.수많은 역을 맡으며 입었던 옷가지들도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그의 프랑스 파리 저택에서 찍은 생활주변 사진들도 호기심을 끈다. 다른 방에는 TV화면을 설치해 누레예프에 대한 기록영화를 공개하고 있다.자전적인 장면에서부터 관중을 매료시키던 잔상도 함께 담아놓았다. 이번 전시회는 소련이 망명한 그를 반역자로 취급,누레예프에 대한 일체의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누레예프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페테르부르그와 그의 고향등지에서 전시회를 유치하려는 열기 또한 가득하다. 누레예프에 대한 관심이 큰 이유는 대체로 두가지에 초점이 맞춰진다.하나는 발레신동으로서 러시아인들에게는 아직도 다른 연기자가 흉내낼수 없는 천재적인 발레리노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연기할 때 그의 강렬함과 유연성은 단연 관객들을 압도해왔다.다른 하나는 ‘발레철학’을 탄행시켰으며 그의 발레를 더욱 ‘인간적’이게 만든 인생역정 때문이다. 그는 시베리아 바슈코르토스탄의 수도 우파를 오가는 한 완행열차에서 태어났다.5살때 고향에서 부모와 함께 발레를 한번 구경한 뒤 그는 발레에 빠진다.10년만에 그는 ‘바슈키르의 전설’이 된다.다섯살때 발레를 지켜보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는 관객들의 환호의 대상이 된다.당시 소련 최고의 발레무대인 키로프발레단은 곧바로 그를 정단원으로 뽑아올렸다.누레예프는 이후 소련당국이 ‘뭔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짓누르고 있다’고 결론,1961년 키로프발레단원의 일원으로 파리에 갔을때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망명 25년만에 그는 소련당국의 허가로 병중에 있던 어머니를 모스크바에서 상봉했다.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는 못했다.그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이듬해인 1993년 1월6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이번 전시회는 98년 1월23일까지 열릴 예정이나 연장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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