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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 유럽의 「정치거인」 부상/새 독일총리의 면모

    ◎무력 아닌 마르크화로 통독 위업/집권초엔 “국제감각 없다” 비난도 독일 역사상 두번째로 통독의 과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서독 총리(60),그는 마침내 통일독일의 첫 4년을 이끌어 나갈 「독일의 총리」로 등극했다. 1871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무력으로 독일을 통일한 이후 1백20여년만에 그는 처음으로 군대 대신 마르크화의 위력을 앞세워 독일을 통일,히틀러 이후 최초의 통일독일 재상이 된 것이다.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그의 어눌함과 촌스러움을 꼬집은 농담집이 날개 돋친듯 팔려나갈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았던 콜총리는 이제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유일하게 고르바초프와 견줄수 있는 「정치거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1m93㎝의 키에 1백31㎏의 체중을 지닌 거구 콜총리는 1947년 17세의 나이로 기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59년 주의회에 진출,정치일선에 나서게 된 콜은 그후 64년 중앙당 집행위원,69원 라인란트 팔츠주 총리를 거쳐 입당 26년만인 73년 기민당 당수로 선출됐다. 지난 82년 52세의 나이로 총리직을 맡은 콜은 7명의 역대 서독총리중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에 이어 두번째로 긴 기간을 총리직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가 지닌 정치적 저력을 과시해왔으며 특히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그의 정치감각은 눈앞의 통일을 포착하고 독일의 미래를 예측했던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실정치감각과 강한 추진력 그리고 결단성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 통독문제에 관해 당초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그는 측근들이 아무리 통독을 위한 행동개시를 다그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일단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번엔 주위에서 신중을 기하라고 뜯어말려도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밀어붙이는 괴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콜은 역사에 대한 깊은 식견과 차가운 지성을 지닌 헬무트 슈미트 총리나 명석함과 기민함으로 정평이 난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와는 달리 지극히 평범한 정치인이며 그 평범함이 힘이 원천이었다. 82년 사민당 연정붕괴로 「총리」라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았던 콜. 지난해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또다시「통일독일의 총리」라는 영광을 거머쥐게 된 행운아 콜총리는 20세기 후반 현대사를 움직이는 주역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 “「범민련」참가 3명 석방않을땐 송년 통일음악제 불참”

    ◎북한 중앙통신 성명 【도쿄 AP연합특약】 북한은 2일 만약 한국 정부가 재야인사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서울에서 개최되는 송년 통일음악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 음악인들은 베를린에서 정부의 허가없이 북한측과 회담하고 11월30일 귀국직후 구속된 3명의 재야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재야인사를 구속하는 분위기에서 서울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동구 출신 유권자 기민당 적극 지지/통독 첫 총선 이모저모

    ◎새 인물 대거 등장… 의회 물갈이 예고 ○국민 무관심 속 진행 ○…지난 1년 동안 세계를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통독극」은 2일 실시된 전독 총선으로 대단원을 마감.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이번 선거는 일부 가벼운 소요사태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평온한 가운데 하오 6시(한국시간 3일 상오 2시)에 끝났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경제·사회통합→통독선언으로 이어졌던 흥분과 감격의 시리즈와는 달리 이번 총선은 유권자들로부터 무관심과 외면 속에 진행돼온 느낌. 이같은 상황은 어느 때보다 저조한 투표율이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이 때문에 후보자들은 득표운동에 더욱 애를 먹었다고 호소. ○선거 뒤 겨냥 신경전 ○…이미 현 연정팀의 선거승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기민 기사 자민당 등 연정 3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선거 후를 겨냥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콜 총리는 자민당측이 선거전 막바지에 기민 기사당 연합에 과반수 득표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새로 만들어낸 선거광고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연정 파트너로서 신중치 못한 처사였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선거는 연방의회 자체로 보아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대량 세대교체와 물갈이가 이루어졌기 때문. 과거 동독 쪽에서 당선되어온 1백44명은 민주 의정에의 경험이 전무한 그야말로 신인들이며 이 밖에도 헬무트 슈미트,한스쥐벨 비스니에브스키,리처드 스틸클렌 등 구 제국의회 때부터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노병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 인물들이 대거 등장. ○…동구에서 이주해온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을 적극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소련에서 이주해온 빅토르 니텔은 콜 총리의 개방정책으로 독일로 이주해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기민당에 투표했다고 밝히고 다른 많은 이주자들도 독일 통일을 주도한 콜 총리의 기민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마니아에서 지난 3월 이주해온 마티아스 모스베르거는 『나는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의 실상을 체험했기 때문에 우익인 기민당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 독일총선 콜 총리 압승 확실/기민등 우파 과반수 확보 유력

    ◎선거결과 오늘 상오 판명 예상 【베를린=김진천 특파원】 통일독일의 연방하원을 구성하기 위한 전독총선이 2일 상오 8시(한국시간 2일 하오 4시)부터 독일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천9백90만 독일 유권자들은 이날 통일 후 첫 전독자유총선투표에 참여,신성한 주권을 행사했는데 최초의 비공식 집계결과는 2일 자정(한국시간 3일 상오 8시)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40여 년 간에 걸친 분단사를 청산하고 정치적 통일의 완성작업을 의미하는 이번 총선에서는 헬무트 콜 현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과거의 동서독지역 양쪽 지역에서 고르게 우세를 보여 원내 제1다수당이 될 것으로 보이며 현 연정파트너인 자민당과 기사당의 의석을 합쳐 과반수 의석을 무난히 확보,중도우파 연립정부구성으로 재집권이 확실시된다. 반면 오스카 라폰텐을 수상 후보로 내세운 사민당은 통독비용의 과다지출 등을 공격하며 집권고지를 겨냥한 열띤 득표작전을 폈으나 제1야당에 머무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과거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은 지난 3월 동독총선 때의 16%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실적을 나타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과거의 동독지역에만 분리적용토록 되어 있는 선거법의 특례규정에 따라 5% 이상의 득표를 한 일부 군소정당들이 원내에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2년 이래 처음 실시된 이번 총선에는 모두 40여 개의 정당 단체가 참여,3천6백96명의 후보가 나서 그 중 6백56명이 통일독일 첫 연방하원의원으로 뽑혔다.
  • 통독의 첫 자유선거를 보며(사설)

    통일된 독일은 2일 전독의회의원을 선출함으로써 통일을 정치적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을 끝낸다. 5천9백90만명의 독일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총리를 비롯 6백56명의 연방하원(분데스타크)의원을 뽑는다. 이번 선거는 지난 32년의 라이히스타크(구 제국의회) 이후 58년 만에 치러지는 첫 전독자유선거인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의회와 정부에 과거 동독지역의 경제재건과 내부화합을 통해 진정한 민족통합을 완수할 막중한 과업이 맡겨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독일의 통일을 평가하고 앞으로 독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도 겸한다. 첫 재상에게는 통일작업을 마무리짓는 방향타가 주어진다. 통독의 사실상 첫 총리에는 헬무트 콜 현 총리가 재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통일을 실현시킨 견인차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에게 다시 대임을 주어 동독실업·인플레 등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토록해 통일후유증을 씻어내자는 안정추구 의식이 국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큰 이유의 하나라고 한다.「고통도 전쟁도 없는 통일」을 이룩한 콜 정부에 역사 재창조의 기회를 주려한다는 것이다. 라퐁텐 후보가 이끄는 사민당은 통독에 소극적인 발언으로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졌으며 옛 동독공산당인 민사당은 동유럽개혁여파로 곤경에 빠져 있다. 독일 유권자들은 분단의 어두웠던 시절을 잊고 싶어한다.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여러 차례의 환희와 감격을 맛본 독일인들은 이번 총선을 단순한 「통과의례」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독일 역사의 새 장을 장식할 것이다. 새로 탄생하는 새 정부는 동독에서 지난 40년간 발생한 체제의 갖가지 병증을 재빨리 치유해야 할 것이며 대외적으로 유럽 및 세계의 새로운 질서개편에 적극 대응하는 책무를 떠안게 될 것이다. 독일 총선을 보면서,같은 분단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는 동서독이 통합했던 지난 10월3일의 「통독의 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통독 스케줄을 컴퓨터처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그들의 지혜가 부럽기까지 한 것이다.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 문제에 대해 자신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민족 뿐」이라는 말은 아마 독일사람을 두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말을 떠올리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 문제인 통일에 관해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남북한과 독일의 분단상황이 극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치 않는 바는 아니다. 분단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 경제 문화 및 인적교류가 전면 중단됐었다. 그러나 우리도 뒤늦게나마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주변정세도 남북한 관계발전에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고 국제관계도 더 이상의 대결이 아닌 평화해결방식을 택하고 있다. 남북한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거기에는 호양의 미덕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양측의 대화와 만남은 계속되고 그렇게 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독일의 통일이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 통일독일,오늘 첫 총선/40년만에 전독 하원의원 선출

    【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통일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전독총선이 2일 통일된 독일의 전국 16개주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지난 10월2일 서독의 동독흡수 병합 선언으로 통일을 성취한 독일은 이번 총선을 통해 분단 40여년만에 전독연방 하원을 구성하게 됨으로써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며 통일작업의 정치적 일정을 모두 끝내게 된다. 통일작업을 주도해온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되는 이번 총선에서는 전국 3백28개 선거구에서 모두 6백56명의 의원을 뽑게된다. 이번 선거에 나선 정당과 단체는 기민당 자민당 기사당 등 집권연정팀과 제1야당인 사민당,그리고 과거 동독공산당인 민사당 녹색당 등 23개이며 여성 8백94명을 포함하여 모두 3천6백96명이 새 독일의 선량후보로 나서고 있다. 독일의 총선은 지역구 직접선거와 정당투표에 의한 전국구 비례대표선거를 혼합한 방법을 채택,6백56명의 의원중 절반은 지역구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나머지는 각 정당이 미리 제시한 전국구 후보중에서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비례배분방식으로 의석이 배정된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집권기민당의 45%를 포함하여 연정팀 전체가 54%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승리가 무난한 것으로 보이며 반면 사민당은 34%로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구동서독지역이 부분적으로 별도의 선거규정이 적용돼 동독지역에서는 5% 이상의 지지표만 얻으면 의석을 배정받도록 해 통일과정에서 몰락한 민사당을 포함한 군소정당들의 의회진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선거결과는 3일 상오중에나 밝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전독총선 의미와 현지 표정

    ◎통독 대장정 정치적 마무리/쟁점없어 차분… 콜의 기민당 승리 확실시 2일 실시되는 전독총선은 그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던 독일통일 대서사시의 마침표찍기 작업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해 10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부터 시작된 독일통일작업은 동독총선,경제 및 사회통합,통일선포,국제사회인준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러 왔으며 이번 전독총선으로 동서독통일의 정치적 일정을 모두 끝내게 되는 것이다. 당초 동·서독간에는 「선총선·후통일」방안,즉 먼저 총선을 치러 의회를 구성한뒤 거기서 통일을 선포하자는 계획이 검토됐었고 그렇게 될 경우 이번 총선이 통일작업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꼽혀 왔었다. 그러나 「선통일 후총선」으로 상황이 바뀌어 지난 10월 2일 통일이 선포됨으로써 이번 총선의 중요성이나 의미는 크게 감소된게 사실이다. 게다가 선거 자체만 놓고 볼때도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CDU)의 승리가 이미 기정사실처럼 돼버려 흥미 잃은 게임이 되고 있으며 유권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있다. 예측가능한 선거결과 이외에도 이번 총선전에 열기가 없는 또다른 원인중의 하나는 뚜렷한 이슈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년여동안 민족의 재통일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을 체험해온 유권자들에게 어지간한 선거공약이나 구호 따위는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구동독 주민들이 이번 총선이 1933년 히틀러집권 이래 57년만에 치러지는 자유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지난 3월의 총선을 비롯하여 5월에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 그리고 10월에 주의회 부활을 위한 선거등 올들어서만도 3차례나 선거를 치러 투표권행사 자체가 귀찮게 여겨질 정도가 된 때문이다. 지난 3월의 동독 총선에서는 양쪽의 정당들이 함께 선거운동에 나서 『통일을 앞당기겠다』『동독의 돈을 서독돈으로 맞바꿔주겠다』고 약속,열띤 호응을 보였으나 이번에는 어느 정당도 그런 유의 약속이나 선심 따위를 내놓을 계제가 되지도 못할 뿐더러 자칫 잘못했다가는 역효과만 초래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총선을 이끌어가는 정당쪽에서도 선거붐을 조성할 별다른 묘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조사발표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도 선거전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엠니트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기민당과 기사당 및 자민당 등 현 연립정부구성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54%를 기록,사민당의 34%를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콜총리 개인에 대한 지지도도 54%로 라이벌인 사민당의 총리후보인 오스카 라퐁텐의 38% 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이 독무대 연출을 하고 있는 콜 총리는 선거유세 막바지날인 29일 소련원조를 위한 구호물자 동원령을 내리는등 유권자들에게 저력있는 독일의 모습과 국제 정치지도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등 여유있는 총선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기민당의 연정파트너인 자민당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총재는 15년 외무장관으로 통일문제를 직접 관장해오면서 부각된 「통일의 설계자」라는 이미지를 발판으로 지난번 선거에서의 9.1% 지지율을 배가시키겠다는 작전을 펴왔다. 이들 집권당들에 힘겨운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민당은 「전진의 길」이라는 표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라퐁텐이 전국유세를 펴는 등 득표작전을 벌이고 있다. 사민당은 특히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바그다드 인질석방 교섭으로 회심의 일타를 기도했으나 성과가 신통치 않아 불발로 그쳤으며 기민당측에 대해 통일자금을 너무 많이 썼다고 공격의 화살을 퍼붓고 있으나 유권자들로부터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이 군소정당으로서는 활발한 득표작전을 펴왔으나 과연 원내에 의석을 몇개나 차지할 수 있을지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옛날 공산당에서 당명을 바꾼 민사당은 「강력한 좌파야당」을 캐치프레이즈로 하고 있어 내세울 구호조차 궁색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3월 총선과 관련,자금유출 스캔들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지난번 선거에서의 16% 득표율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거리이다. 이와 같이 이번 전독총선은 정책대결이나 핫이슈에 대한 논쟁보다는 정당지도자들의 인물경쟁 양상으로 진행되어온게 사실이지만 그 결과에 관계없이 통일독일의 새 이정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 베를린 「범민련」 회담 참석 3명/공항서 연행 구속

    ◎추진본부,규탄집회… 석방 촉구 치안본부는 30일 하오1시30분 일본항공 959편으로 베를린에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공동의장 조용술목사(70)와 집행위원장 이해학씨(45) 사무처장 조성우씨(40) 등 3명을 법원으로부터 미리 발부받은 영장에 따라 공항에서 바로 연행해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정부의 허가도 없이 베를린에서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전금철 등과 만나 「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의 결성에 대해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날 김포공항 화물청사 앞 계류장에 도착해 다른 승객들과 함께 트랩을 내려오다 대기하고 있던 수사요원들에 의해 3대의 승용차로 연행됐다. 한편 「범민족대회 추진본부」는 이날 하오4시10분쯤 연세대 경영관 강당에서 문익환목사와 문정현신부·이창복 공동의장 등 재야 인사와 학생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의 구속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3명을 즉각 석방할 것을 주장했다.
  • 사법처리 철회 촉구/범민족 추진본부

    「범민족대회 남측 추진본부」(공동의장 이창복)는 29일 상오 「전민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베를린에서 「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을 결성하고 돌아오는 이해학·조용술·조성우씨 등 3인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즉각 철회할 것을 정부당국에 촉구했다.
  • 전민련 3명에 사전영장/「베를린 3자접촉」/오늘 귀국… 검거나서

    치안본부는 29일 조용술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공동본부장(70)과 이해학 집행위원장(45),조성우 사무총장(40) 등 3명에 대해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조본부장 등은 지난 19일과 20일 이틀동안 베를린에서 북한의 전금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과 정부의 허가없이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을 위한 남북한 및 해외동포 등 3자 실무회담을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이날 현재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는 이들은 30일 상오중으로 JAL기편을 이용,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 「서빙고 분실」이 사라졌다/헐려버린 「공포의 잔영」 20년

    ◎60년대말 설치… 처음엔 대공사건 전담/10·26이후 김재규·정승화씨도 조사 받아 보안사 개편작업의 하나로 지난 10일 폐쇄,건물마저 헐어버린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육군 방첩부대시절인 60년대말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주로 간첩사건의 수사 신문부대로 운용되어 왔다. 용산 서빙고역앞 네거리에서 크라운호텔쪽으로 1백m쯤 가다가 오른편으로 우거진 포플러로 둘러싸인 언덕에 자리잡은 서빙고 분실은 73년 보안사령부 창설이후 각종 「공작」과 이른바 국사범 「수사」의 본산으로 알려져왔다. 서빙고 분실의 정식명칭은 보안사 대공처 6과로 1·2·3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자료실을 운용하고 있고 각 부서마다 15∼20년씩 근무한 준위나 하사관·문관 등 10명내외의 전문요원들이 근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79년 10·26사건 이후에는 김재규 등이 조사를 받았으며 12·12사태 이후에는 정승화 대장도 이곳에서 수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공 시절부터 이곳에서는 서베를린 간첩사건 등 수많은 간첩사건이나 좌익폭력사건 등을적발,조사해 왔다. 보안사가 지금까지 적발한 간첩사건의 8천여명에 달하는 좌익수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81년3월 5공이 출범한 이후 보안사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서빙고 분실은 사회각계 각층 인사들을 협박,회유,고문하는 수사장소로 이용되고 많은 재야인사나 정치인들이 군사재판에 회부되기전에 묵어야했던 공포의 장소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기공사」 「수도공사」 「토목공사」 등의 고문이름이 알려지고 특수 고문기구,방의 구조,설비 등이 일부 소개되기도 했다. 이곳이 「서빙고호텔」로 불려지게된 동기는 김재규 등이 조사를 받았던 방은 대형 침대와 화장실,목욕탕,에어컨,난방시설 등 호텔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였다.
  • 국경 넘나드는 전파가 통독앞당겼다/양독기자들이 본 통독과 언론역할

    『독일통일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국언론연구원(원장 한동원)주최의 이날 세미나에는 통독 이전 서독과 동독에서 각각 기자생활을 경험한 게르하르트 담프만씨(마인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TV저널리즘교수·전 서독ZDF방송 동아시아특파원)와 볼프강 크라인베흐터씨(라이프치히 칼 마르크스대 국제커뮤니케이션학교수·전 동독 드레스덴신문기자)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는 우리의 통일문제와 관련,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이들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동독국민 80%가 서독TV 즐겨/당 통제받는 방송에 염증… “시청률 5%” 89년 가을까지 동독의 대중정보현황은 첫째,완전히 빗나간 동독의 정보정책과 둘째,서독의 대중정보수단,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와 TV의 동독에서의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동독정부의 정보정책은 완전히 중앙의 통제하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중앙당의 정보담당서기의 결정하에 어떤 내용이 어떻게 언제 알려질 것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따라서 비판적인 내용이나 분석은 있을 수 없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문제점들,예를 들자면 비능률적인 경제제도,자연오염현상,인권침해 등은 삭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도되었다. 서방세계에 대한 보도는 일률적이고 적대감정을 유발시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러한 보도들을 믿지 않았다. 당의 직접지휘하에 제작되는 뉴스인 「악투 엘레 카메라」(시사뉴스)가 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정책은 객관적인 정보전달이나 국민의 관심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처럼 국민의 관심사와 정보정책의 차이에서 빚어진 공백을 서독의 언론이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인 조건때문에 동독국민들은 서독의 수많은 라디오·TV방송을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의 국영방송인 ARD와 ZDF는 약 80%의 동독국민이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 TV뉴스프로는 동독에서 평균 시청률이 50%이상 이었다. 이때문에 동독주민들은 동서독이나 유럽등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헝가리의 국경개방과 프라하·부다페스트의 서독대사관에 동독인 대량진입 등이 동독국민들에게 알려졌고,이것은 동독내 저항운동세력의 힘을 북돋워주었으며 89년 가을 마침내 동독의 스탈린주의적인 제도의 붕괴를 가져왔다. 동독의 사회변혁과 함께 언론체제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혁과정은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①변혁의 시초기:89년 가을부터 90년 3월18일 선거까지로 이 기간중에 국민의회에서 의사표현,정보·언론의 자유를 결의해서 당과 무관한 독자기업으로 변신했고 옛간부들이 퇴진,젊은 기자들도 새 편집체제를 구성했다. ②전환기:선거이후 10월3일 통일까지의 시기로 서독언론체제로의 전환기였다. 서독출판사들이 동독으로 진출하고 방송에 광고가 등장했으며 경제적인 측면의 경쟁체제가 등장했다. ③통합시기:10월3일의 통독으로 형식적인 통합은 이뤘으나 물질적·정신적인 실질통합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 동서독 언론이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 동독의 조그마한 도시의 지방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동·서독 사회모습 거짓없이 전달/72년 동독에 특파원 상주뒤 실상보도 어떤 다른 정보전달매체도 TV만큼 독일통일에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떤 다른 매체도 TV만큼 동독공산당(SED)에 위협적인 것은 없었다. 동독과 서독간의 긴 국경선은 서독의 TV방송전파에 유리했다. 또 서베를린은 동독의 한 가운데 섬처럼 놓여있어 TV방송은 사방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특히 정치 엘리트와 인문과학자 및 예술가들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동베를린으로 TV전파가 쉽게 발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독공산당정권은 정치적 선전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동독TV에 비해 진실된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서독TV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독공산당은 처음에는 서독전파의 수신을 방해했었다. 심지어는 과격한 젊은이들을 내세워 서쪽으로 세워진 안테나를 철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동독사람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공급처로서 서독TV수신을 위해 평화적이면서도 꾸준한 투쟁을 계속했다. 드디어 동독공산당은 전파방해를 단념하고 방해공작을 포기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대립이 위험수위를 넘도록 증폭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동독인들이 서독TV에 이렇게 큰 관심과 신뢰를 보인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동독인들을 위해 특별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동독인들이 서독TV방송에서 보는 것은 서독인들을 위한 보통의 정규TV 방송프로였다. 이들 프로들은 국가적인 선전에 의해 조작되거나 의도적인 해설이 담겨있지 않았다. 공산당 선전에 염증을 느낀 동독인들이 서독의 TV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아주 다양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는 동시에 살아움직이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그리고 논쟁이 가능한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 서독특파원들이 동독에 상주(72년말)하게된 이후 서독언론의 동독에 대한 보도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서독특파원 상주사실을 안 동독인들이 편지나 전화로 개인적인 압박과 핍박으로부터 체제에 반감을 갖고 저항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동독의 지식인 작가들과도 긴밀히 접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독TV는 동독시민들에게 동독상황의 참모습을 자세하게 전해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TV방송은 장벽을 넘어 서독의 밝고 어두운 모든 면들을 동독에 보여주었고 동독 매체들과는 달리 동독의 점진적인 몰락을 동독내에 거짓없이 전파했다. 따라서 동독공산당 지도부가 동독과 관련한 국민감정을 형성하지 못한데에는 서독TV에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 범민련 결성 합의/베를린 3자회담

    【베를린 연합】 이해학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등 전민련 대표 3명과 전금철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회 부위원장,황석영씨 등 북한 및 해외 인사들은 19일과 20일 베를린에서 「범민족통일운동기구」 결성을 위한 3자 실무회담을 갖고 이 기구의 공식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약칭 범민련)으로 결정했다고 이 기구의 대변인 황석영씨가 20일 밝혔다.
  • “「전민련」 대표 3명 사법처리”/정부

    ◎「베를린 3자접촉」/“승인없이 북측과 통일운동 논의” 정부는 19일과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을 위한 남북한 및 해외동포 등 3자 실무회담에 정부당국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전민련의 이해학 조국통일위원장,조용술·조성우씨 등 3명을 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전민련 대표들이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고 베를린 범민족회담에 참가해 북한주민과 접촉한 것은 마땅히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며 『이같은 방침을 이미 전민련측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27조는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한 때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유럽안보회의 채택 「파리헌장」 요지

    ◎민주주의 강화… 소수민족 독립성 존중/내년 11월 오슬로서 인권옹호 세미나/시장경제 지향… 번영된 통일유럽 건설/화학무기 금지·영공개방조약 곧 체결 동서냉전의 종식을 공식선언한 역사적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은 21일 「파리헌장」을 채택하고 3일간의 회의를 마칠 예정이다. 다음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파리헌장의 요지이다. ▷민주주의 평화 통합의 새로운 시대◁ 우리들 참가국정상은 커다란 변화와 역사적인 기대의 시기에 파리에 모였다. 유럽에 있어서 대립과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가 존경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유럽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다. 헬싱키 최종문서의 이념은 유럽에 민주주의와 평화·통합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인권·민주주의·법의 지배 우리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를 건설,강화할 의무를 진다. 인권과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법으로 보장된다.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인간과 법의 지배 존중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국내 소수민족의 민족·문화·언어·종교적 독자성을 존중한다. ▲경제적 자유와 책임 경제적 자유,사회정의,환경문제에 관한 책임은 번영에 불가결하다. 자유와 정치적 복수주의는 시장경제발전에 필요한 요소이다. 시장경제 이행을 성공시키는 일은 중요하며 번영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참가국간의 우호관계 유럽에서 새 시대가 탄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유럽제국 미국 캐나다 사이의 우호관계 및 협력을 확대,강화하고 제국민간의 우정을 촉진하기로 결의한다. 유엔헌장 및 헬싱키 최종문서에 따라 모든 나라의 영토보전·정치적독립에 대한 군사력에 의한 위협과 그 행사를 금지한다. ▲안전보장 유럽재래식전력(CFE) 조약조인을 환영한다. 일련의 실질적인 새로운 신뢰­안전조성조치의 채택을 시인한다. ▲통합 「독일문제의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에 커다란 만족을 표명한다. 북미와 유럽 각국 양측의 참가가 CSCE의 기본적 특징이다. 공통행동과 협력·연대에 의해서만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 ▲CSCE와 세계 참가국의 운명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연결돼 있다. 유엔을 지지하고 국제평화촉진에 기여하는 유엔의 역할강화를 희망한다. ▷장래의 지침◁ CSCE의 모든 원칙·조항을 완전 이행하고 나아가 균형잡힌 포괄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인권분야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불가침한 것으로 존중한다. 이 목적을 위해 1991년 11월4일부터 15일까지 오슬로에서 전문가 세미나를 연다. 소수민족보호가 충실히 되도록 협조하는 일이 긴급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91년 7월1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한다. ▲안전보장 CFE조약과 신뢰조성조치(CBM)에 관한 협의의 성과를 한층 강화한다. CBM과 CFE를 계속하여 92년 개최예정인 헬싱키 재검토회의때까지 협의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또 화학무기의 포괄적 금지조약 및 영공개방계획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촉구한다. ▲경제협력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협력은 참가국간 관계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번영된 통일유럽을 건설하는데 유효하다. 시장경제의 확립과 자립경제기반의 창설에 애쓰고 있는 제국에 대해 지원을 계속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환경 참가국은 환경문제 해결의 긴급성과 개별적이고 공동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또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유럽환경기관(EEA)의 설립을 환영한다. ▷CSCE의 새로운 구조와 제도 차기 정상회담은 92년 헬싱키에서 열리는 재검토회의와 함께 열리며 그후 2년에 1번씩 개최된다. 이사회로서 외무장관회담을 적어도 연1회 연다. 이 이사회는 CSCE 정치적 협의의 주요장이 된다. 제1회 회의는 91년 베를린에서 연다. 고급 사무레벨위원회가 이사회를 준비하고 그 결정을 이행하며 참가국의 합의에 따라 긴급현안사항을 검토하는 특별회의 및 각료회의도 개최할 수 있다. 이들 협의사항을 행정지원 하기 위해 프라하에 사무국을 설치한다. 이사회에 의한 분쟁의 위기경감을 지원하기 위해 빈에 분쟁방지센터를 설치한다. 선거에 관한 참가국간의 접촉과 정보교환을 위해 바르샤바에 자유선거사무소를 설치한다. 전가맹국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CSCE 의회 협의회를 통해 각국의 회의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한다.
  • 범민족통일운동기구 논의/전민련·해외동포·북한,베를린서

    【베를린 연합】 이해학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등 전민련 대표 3명은 19일 상오 베를린에서 전금철 범민족대회 북측 준비위원회 부위원장·황석영씨 등 북한 및 해외측 대표들과 만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통일운동기구」 결성을 위한 3자 실무회담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은 상오 10시 기자회견을 통해 19일과 20일 열리는 회담에서 범민족통일운동기구의 명칭 및 조직문제가 집중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 북한에서는 전금철 대표만이 참석했으며 남측 대표로는 이해학씨와 조용술(범민추 공동본부장),조성우(범민추 사무처장)씨,해외동포로는 황석영(범민련 대변인),정규명(범민련 공동의장),임민식(범민련 사무총장)씨 등이 참석했다.
  • 외언내언

    동서대립을 축으로 하여 돌아가던 전후 냉전유럽의 국제질서는 「냉전의 화약고」로 불리던 독일이 통일함으로써 사실상 종막을 고했다. 한 시대의 종언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법. 그리고 새 시대는 새 질서의 구축으로 막을 연다. 19일부터 21일까지 파리서 열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냉전시대의 공식종언을 선언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제일보라는 데 역사적 의미를 둔다. ◆지난 75년의 「헬싱키선언」으로 알려진 CSCE는 베를린장벽과 동구공산체제가 붕괴돼 범유럽적 안보체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이전까지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때만 해도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사적 균형에 기초했던 이 기구가 이번 파리정상회담을 계기로 냉전체제하에서의 평화적 공존개념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평화구조를 선언한다. CSCE의 실질적 출범은 유럽의 양대 군사기구인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유럽재래식무기(CFE)감축협정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빛을 본다. ◆CSCE는 안보면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구현으로서는 높이평가된다. 특히 냉전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으리라는 데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과연 CSCE가 전지전능한 힘을 갖게될 것인가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이 모임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실제로 정치적인 실행에 어려움이 많은 나라들 때문이다. 동구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민주화·인권화가 쉽사리 이루어질까 하는 것. 적대이념과 군사블록으로 갈라졌던 분단을 극복하려는 유럽은 이제 경제커튼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큰 전쟁이 끝날 때마다 또다른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기구는 설치돼왔다. 나폴레옹이 패퇴한 뒤의 신성동맹,1차대전 후의 국제연맹,그리고 2차대전 뒤의 유엔. CSCE정상회담을 보면서 전문가들이 역사의 교훈을 떠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반도의 냉전구도,페르시아만의 전쟁기운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 범민족 베를린회담/오늘부터 강행키로/정부 불허 불구

    【베를린 AFP연합특약】 「범민족적 통일운동체」결성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한 및 해외동포 대표단간의 3자회담에 참석하기위해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의 이해학 집행위원장 등은 18일 정부의 회담참가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당초예정대로 19일부터 회담참가를 강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정부는 지난 13일 대표성과 국민적합의 결여 등을 이유로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의 북한주민 접촉승인신청을 불허했었다.
  • 레닌그라드시도 식료품 배급 실시

    【도쿄 연합】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 시의회는 15일 모스크바시에 이어 20일부터 식료품 배급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16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레닌그라드에서 식료품 배급제가 실시되기는 구독일군에 의한 베를린봉쇄 이후 처음이다. 배급량은 1인당 1개월에 고기 1.5㎏,소시지 1㎏,달걀 10개 등이다.
  •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이익대표부」로 전환

    【베를린 연합】 독일통일과 함께 폐쇄됐던 베를린의 북한대사관이 현재 「이익대표부」로 전환됐으며 북한은 이를 통해 통일독일과의 새로운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다각적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베를린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과거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은 최근 독일 주재 중국대사관에 속하는 북한 이익대표부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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