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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3일 조기통독”으로 쾌속 항진/동독의회의 “통독결의”의미

    ◎“동독경제 살리자”… 불화씻고 통합 확정/국제 공인ㆍ12월 전독총선으로 “대단원” 동서독의 완전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동독의회는 23일 새벽 2시(현지시간) 통독결의안을 가결,오는 10월3일을 40여년간에 걸친 동서독간 민족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선택했다. 지난해 10월 호네커 공산독재를 몰아내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지 1년,그리고 지난 7월1일의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시행된지 3개월여만에 정치통합을 이룸으로써 동서독은 마침내 통일을 완수케 되는 것이다. 동독의회가 채택한 통독결의안은 서독연방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독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즉 연방헌법 제23조가 규정하고 있는 「독일영토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의 「연방가맹」 결정행위이며 동독측의 결정만으로 충분하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3일부터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합됨으로써 정치ㆍ외교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자연히 상실,완전 소멸하게 된다.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켜온 통독작업은 그동안 하루 앞을 가늠해보기어려울 정도로 쾌속으로 진행돼왔다. 동구의 개혁ㆍ개방열기에 곁들여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탈주는 40년 공산독재의 아성을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았으며 때맞추어 불꽃을 댕긴 공산정권 반대시위는 10월에 이르러 전국으로 번져 드디어는 호네커를 몰아내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동서독 국민들의 통일열망은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으며 이어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는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서독 기민당과 함께 조속한 통일달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로타르 드 메지에르의 기민당에 표를 몰아 주었다. 이때부터 통일논의는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몇차례의 양독정상회담을 통해 지난달 1일에는 화폐통합을 주축으로 한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채 두달도 안돼 완전통일을 의미하는 정치통합이 결정된 것이다. 이번 정치통합결정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길지는 않지만 몇주째 동서독내의 정당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우선 양독정당들은 통일선언을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전독총선을 앞서 치를 것이냐로 신경전을 벌여왔다. 양쪽의 집권당인 기민당은 선거를 먼저 치르고 그뒤 통합을 선언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사민당을 중심으로한 야당세력은 정치통합뒤 총선을 치르자는 「선통일」 주장을 내세우며 동독연정에서의 탈퇴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절차문제를 놓고 이같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것은 총선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서 기민당측이 양보,「선통일」방안이 채택되자 이번에는 정치통합일자를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당초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 직전에 정치통합을 선언,현서독의 선거법체제아래서 총선을 치르자고 주장하던 사민당측은 이를 번복,오는 9월15일에 정치통합을 선언하자고 조기통일론을 내세웠다. 사민당은 괴멸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동독의 경제를 가능한한 빨리 서독에 편입시켜 상황을 호전시켜야 한다며 9월12일의 모스크바 「2+4회담」 개최직후에 정치통합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동독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14일이 적당하다고 맞섰고 서독의 콜총리는 동독 공산정권수립기념일인 10월7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10월6일 통일을 선언하자고 동독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같이 각 정당들 간에 각양각색이던 정치통합일정이 10월3일로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독총선일까지의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각 정당 나름대로의 정치적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통독작업을 담당해온 기민당으로서 정치통합일정을 앞당기자는 야당의 주장을 끝내 반대할 경우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유권자들로부터 통일추진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를 간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당초 조기통독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민당 역시 조기 정치통합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민당 못지 않은 통일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전문가들은 동독의 국민경제가 정치게임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당분간 경제사정이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린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드 메지에르 총리는 사민당출신인 발터 롬베르그 재무장관과 사민당추천인 무소속의 피터 몰락 농림부장관 자유당의 크루트빈슈히 법무장관 등 4명을 「실책」을 이유로 사직시켰다. 사민당은 이를 기다렸다는듯 메지에르 총리를 가리켜 『콜의 꼭두각시』라고 몰아붙이며 기민당과의 대연정에서 탈퇴,지난 4월12일 이래 1백30일간 유지해온 동거상태를 마감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앞으로 선거전에서 경제ㆍ사회 혼란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위한 발판 마련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통합 일정이 결정되긴 했지만 선거전을 겨냥한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통합을 전후해서 안팎으로 몇가지 거쳐야할 순서가 남았으나 이는 부수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이 남아 있다. 동서독과 2차대전 전승국인 미ㆍ영ㆍ불ㆍ소 등 4개국 외무장관이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나는 이 회담은아마도 이번에 마지막이 될 것이며 동서독의 점령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동서독의 통일을 보장하는 최종 인증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 1일과 2일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외무장관회담에서 통독의 국제적인 공인절차를 거쳐 11월19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CSCE정상회담에서 동서독의 통일을 재확인하는 성명서가 채택되어 외교적으로 통독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동독 지방의회선거를 거쳐야 한다. 오는 10월14일로 에정되어 있는 지방의회선거는 분단되면서 없어졌던 동독지역내의 5개 주의회의 부활을 위한 절차이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2월2일의 전독총선. 동서독 양쪽 의회가 해산되고 명실상부한 하나의 의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독총선은 통독작업의 가장 핵심적이며 최종적인 절차로 꼽혀왔었다. 그러나 「선통일 후총선」방안이 채택됨으로써 전독총선은 정치통합의 마침표 찍기 작업 정도의 의미만 갖게된 셈이다.
  • 10월3일 통독/동독의회 확정

    【동베를린ㆍ본 AFP 로이터 연합】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통독일자로 10월6일이나 10월7일을 제의하고 있는 가운데 동독의회는 22일 오는 12월2일로 예정된 1932년래 최초의 전독자유선거에 관한 규정을 정한 선거법을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승인하고 이어 통일일자를 결정하기 위한 긴급회의에 들어가 10월3일을 통합일자로 결정했다. 단원제인 동독의회는 이 긴급회의에서 찬성 2백94,반대 62,기권 7표로 10월3일을 통합날짜로 하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 “후세인­응징””의 외길수순/부시의 「예비군동원」 안팎

    ◎“중동 평화정착 위한 불가피한 선택” 판단/사태장기화땐 전비증가등 부작용 클 듯 부시 미 행정부가 페르시아만 사태와 관련,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것은 후세인을 응징하려는 미국의 결의를 다시 한번 과시한 것으로 일단 풀이할 수 있다. 물론 1차적인 목표는 사우디 파병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려는데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3만5천명의 병력을 사우디에 파견했으며 아라비아반도 주변 해역에 50척의 전함과 함께 또다른 3만5천명을 집결시켰으며 이밖에도 4만5천명의 해병이 페르시아만 일대에 배치중이다. 모두 11만5천명이 페르시아만으로 떠난 것이다. 이번에 동원된 예비군은 이같이 본토에서 빠져나간 병력보충과 더불어 사우디 등 현지에서 긴급히 필요로 하는 인원을 선별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것이다. 백악관측의 설명으로는 긴급한 분야가 공수,식품 및 식수수송,육상운송,의약,건설,정보 등이라고 밝혔다. 예비군동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2백10만명의 현역군인을 가진 미국이 현역만으로 사우디 방어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군지휘자와 국방장관을 교체해야 한다』고 까지 비난하고 있다. 전체 병력의 불과5.5%를 이동배치시키면서도 예비군 동원이 필요하다는데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사전문가들은 월남전이후 징병제에서 지원제로 군제를 바꾸면서 이른바 「총체적 전력정책」을 채택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현역병의 숫자는 대폭 줄이되 대부분 전투병력으로 활용하고 유사시 지원병력은 예비군과 주방위군으로 보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육군의 전투지원임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주방위군과 예비군에 의해 수행되고 해군 화물처리량의 93%,해병대 연료보급의 3분의 2도 예비군이 맡도록 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은 76년에 통과된 법에 따라 긴급사태시 의회의 동의를 얻지않고 24시간의 사전통고로 90일간 20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90일간 연장할 수 있다. 당초엔 5만명을 한도로 설정했었으나 80년대초 10만,그리고 수년전에는 20만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미국의 예비군 수는 육군 59만3천,해군 23만8천,공군 13만6천,해병 8만명선으로 1백만명이 약간넘는다. 예비군으로 동원되면 현역과 같은 급료를 받게 되므로 4만명의 경우 월 8천 달러 정도의 경비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예비군동원은 1970년 우체국직원들의 파업으로 닉슨 당시 대통령이 2만6천여명을 동원한 이래 처음이지만 전쟁과 관련해서는 68년 월남전당시 베트콩의 구정공세로 3만5천명을 동원한 이래 이번이 최초이다. 이밖에도 미국은 한국전 당시 1백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했었고 61년 베를린장벽구축때 15만,62년 쿠바봉쇄작전때 1만4천,그리고 50년대와 60년대의 흑인 인종분규때도 5차례나 동원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번 예비군동원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응증결의를 과시하는 것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제로 전쟁을 치르기 위한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번 동원령 발동으로 야기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후퇴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상황에서 소규모기업들의 경우 인원공백으로 인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며 많은 예비군이 동원될 것으로 보이는 병원등에서도 업무에 큰 지장을 줄것으로 보인다. 특히 예비군동원이 별다른 사태진전 없이 장기화할 경우 곳곳에서 터져나오게 될 불만의 소리와 이번 가을의 미 중간선거 등을 고려할때 부시 대통령으로선 이제 결단의 시기만 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 “연정붕괴 불구 10월 통독 불변”/동독총리 기자회견

    【동베를린ㆍ본 로이터 UPI 연합】 로타르 드 메지에르 동독 총리는 동독연립정부가 붕괴됐음에도 불구,사임하지 않을 것이며 서독과 예정대로 오는 10월에 통합을 이룩할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동독 사민당(SPD)출신 각료들은 서독과의 최종 통독협상 개시를 하루 앞둔 19일 당의 지시에 따라 그간 참여하고 있던 연립내각에서 모두 사퇴했다. 기민당(CDU)출신인 드 메지에르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사민당이 동독연립정부로부터 이탈한다고 하더리도 우리는 독일통일일정을 고수할 것』이라면서 『동독정부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 “동독 소군 내주 철수”/서독지 보도… 서독 외무부선 부인

    【서베를린 AP 연합 특약】 소련은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시작할 것이라고 한 서독신문이 18일 보도했다. 함부르크에서 발행되는 빌트 암 존타크지는 이날 다른 매체에 배포된 한 기사를 통해 동독에 주둔중인 약 37만명의 소련군 철수가 다음주 초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소련군의 철수가 오는 91년 말까지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동베를린 주재 소련대사관측은 이에대해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다. 서독 외무부대변인도 소련군의 완전철수가 오는 91년 말까지 완료될 것이란 존타크지의 보도를 부인했다.
  • 동독 재무장관등 해임항의/사민당,연정탈퇴 논의/의원총회 긴급소집

    【베를린 AFP 연합】 로타르 드 메지에르 총리가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발터 롬베르크 재무장관을 해임한데 따른 파장이 동독 연립정부의 안정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물론 수주일 앞으로 다가온 독일 통일 일정마저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메지에르 총릴가 이끄는 기독교민주연맹(CDU) 및 독일사회연맹(DSU)과 함께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민당의 볼프강 티에르제 총재는 롬베르크 장관의 해임과 관련,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연정 탈퇴 여부를 사민당 의원총회에 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티에르제 총재는 이날 열릴 예정인 사민당 의원총회가 연정 탈퇴에 대해 투표로써 결정을 내려주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민당은 동서독의 정치통합을 위한 제2차 양독조약의 체결을 『현상황하에서는 책임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베를린」 같은 장벽 없었다”/휴전선 일반공개 첫날 현장르포

    ◎대전차 장애물만… 북측주장 허구 입증/블록형으로 통로 마련… 차량통행 가능/산악제외,개활지에만 설치… “방어용”확인 【서부전선=박대출기자】 그것은 분명히 거대한 콘크리트장벽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평야지역에서 밀고들어오는 적 탱크의 진입을 저지하기위한 방어용장애물일 뿐이었다. 우선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는 길에는 그것이 없었고 탱크가 오르기 힘든 산등성이 등에도 없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한의 인적ㆍ물적 교류를 차단하는 베를린장벽과 같은 콘크리트장벽」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휴전선 1백55마일 전역에 설치돼 있다고 주장해온 우리측 「콘크리트장벽」의 실체가 10일 내외신기자 및 일반인 등 1백55명에게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장벽은 서울근교 서오릉과 벽제근처의 길이 5백∼6백m짜리 2개와 휴전선 남방한계선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것 등 모두 3개. 참관단 일행은 이날 군관계자의 안내로 이 세곳을 차례로 돌며 북한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버스 4대에 나눠탄 일행은 서울근교의 두곳을 살펴본뒤 상오11시30분쯤 비무장지대 바깥에 설치된 장벽으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30분쯤 가니 높고 길다란,마치 강뚝으로 보이는게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문제의 대전차장애물이었다. 한겹 또는 두겹으로 뻗어있는 철책의 20m쯤 뒤에 설치된 이 장애물은 양쪽으로 산악지대를 잇는 길이 1.4㎞짜리로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북쪽으로 향한 앞쪽은 수직의 콘코리트벽이었으며 경사진 뒤쪽과 장애물위는 잔디로 덮여 있었다. 안내를 맡은 현지 지휘관은 장애물앞에 설치된 철책이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거리에 있는 남방한계선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휘관은 이어 이곳의 대전차장애물이 북한의 전차가 지나갈 수 없는 산악지대사이 군데군데로 15㎞정도 뻗어있다고 말했다. 장애물에는 두곳에 통로가 있었으며 이곳을 통해 병력의 교체,물자보급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통로는 너비 3m 높이 2.7m로 북한측이 보유한 너비 3.27m의 T­55 및 너비 3.35m의 T­62전차만 통과하지 못할 뿐 일반 차량의 통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방벽의 높이가 5∼7m인 것은 북한이 대전차장애물제거 부대까지 보유하고 있기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북한군은 T­55전차를 개조한 MTU전차에 길이 20m의 탑재교를 부착하고 다녀 높이 4m까지의 장애물은 손쉽게 넘을 수 있을 뿐 아니라 T­54,55전차 앞면에 도저삽날을 장착해 흙을 쌓을 경우 가로 세로 2m 높이 4m정도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지휘관은 『장애물은 유사시 적의 전차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원래 전차가 통과할 수 없는 산악지대를 제외하고 개활지대에만 설치한 방어용으로 모두 10곳에 각각 길이 0.5∼3㎞정도로 지난 78년부터 80년사이에 세웠으며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휴전선 전선의 10%정도뿐』이라고 말했다. 일행은 이어 이곳 관망대의 망원경을 통해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에 설치된 북한의 대전차장애물도 볼 수 있었다. 마침 짙게 깔린 안개때문에 희미하긴 했으나 형체는 분명히 보였다. 안내를 맡은 군관계자는 『능선너머에는 5∼6중의 철책선이 설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 2개는 최근 잇따라 우리쪽으로 넘어오고 있는월남자들을 막기 위한 고압선이며 그래서 전봇대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남북한 장애물을 함께 돌아본 강원도 평강이 고향이라는 실향민 김성일씨(70ㆍ은평구 역촌동 586의27)는 『이곳에 와보니 우리측 장애물이 결코 남북한의 자유왕래를 막는 것이 아니란 것을 확신하게 됐다』면서 『정부가 진작 국민들에게 실상을 공개했더라면 보다 빨리 북한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실향민인 홍승철씨(63ㆍ부동산중개업ㆍ서울 성동구 성수2가 4동 114)는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을때 무엇때문에 정부가 무조건 장벽이 없다고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누구라도 이곳에 와서 직접 보면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8월 통독ㆍ12월 총선”제의/양독 사민당

    【동베를린 AP 연합 특약】 전독 총선을 예정된 12월2일보다 앞당겨 오는 10월14일 실시하려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계획이 6일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함에 따라 「5%하한」조항과 함께 총선시기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동서독의 최대 야당인 사민당은 이날 동독의 심각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동독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금주중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통일독일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총선시기는 당초 예정대로 12월중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독일 조기통일 가능성/서독,“10월14일 전독총선”동독제의 환영

    ◎양독,수도 「베를린」 합의 【동베를린 로이터 연합】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총리는 3일 당초 오는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일 총선을 오는 10월14일로 앞당겨 실시하자고 제의했다. 마이치레 총리는 동서독이 합동총선 실시에 앞서 법적ㆍ정치적 체제통합안을 공동마련키 위해 준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날 발표를 통해 지난달 31일 헬무트 콜총리와의 회담석상에서 조기총선실시문제가 논의됐었다면서 이같이 제의했다. 마이치레 총리는 『역사적 중요성을 띠고 있는 첫번째 전독총선을 지방 각주선거일과 같은날인 오는 10월14일 실시할 것을 제의한다』고 말하고 『전독총선은 독일의 정치적 윤곽을 분명히 하는 한편 경제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로이터 AP 연합】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3일 오는 12월2일로 잡혀있는 전독총선을 10월14일에 앞당겨 실시하자는 동독측의 제의를 환영했다. 한편 동서독 협상단은 이날 베를린이 통일독일의 수도가 돼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콜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전독선거의 조기실시는 모든 독일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나는 동독측의 조기선거제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콜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전독선거의 조기실시를 실현시키려면 하원에서 3분의 2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인 사민당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콜총리는 통독조약에 관한 양독정부의 협상이 신속하게 매듭지어질 경우 전독선거의 조기실시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난달 이뤄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합의에 힘입어 오는 9월까지는 통독의 안보적 측면에 관한 회담이 마무리될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독은행단은 동독의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50억마르크(31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 서독야당,선거법개정 동의/중도우파안 수용

    ◎동독 군소정당 의회진출 길터 【본ㆍ베를린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서독의 주요정당들은 1일 동독의 중소정당들의 의회진출을 돕기 위해 선거법을 개정키로 동의했다. 야당인 사민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소그룹이 오는 12월2일의 전독총선에서 대정당과 후보자명부를 함께하는 것을 허용키로 한 콜총리의 중도우파연정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서독 정당중 큰 정당과 동일티켓을 이루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이러한 안은 동독의 중소정당이 의회로 진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득표율 5%를 규정한 서독의 선거법은 그동안 동독에서 논란을 빚어 왔었다. 한스 클라인 서독정부 대변인은 『서독의 제안은 1일 동베를린에서 시작되는 통일협상에서 동독에 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일부터 3일간 동베를린에서는 독일의 정치적통일에 대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콜 서독총리와 데 마이치레 동독총리는 지난 31일 오스트리아에서 총선문제와 관련,회담을 가졌다.
  • 소,통독행보에 제동/「4 전승국과 주권협정」통일의회 인준 요구

    ◎미ㆍ영ㆍ불도 지지… 주권회복 지연될듯/“통일뒤의 4국간섭은 불가”콜총리 【본 로이터 연합 특약】 소련은 통일독일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기에 앞서 2차대전 전승국들과의 협정을 통일독일 의회가 인준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함으로써 동서독의 통일행보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고 서방 외교소식통이 31일 밝혔다. 미ㆍ영ㆍ불 등 나머지 전승국들도 지지하고 있는 이같은 소련의 요구는 오는 12월2일 통일시점에서 독일의 완전한 국권회복을 바라는 콜 서독총리의 꿈을 무산시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동서독 통일직후인 12월2일 총선에 의해 구성될 통독의회가 개원되고 새로운 주권협정을 체결하기까지에는 3∼4주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승국들은 독일의 국경,군사적 지위,베를린문제 등 아직도 독일의 주권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최종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2+4」회담에서 통일독일의 완전주권회복을 위한 지침을 11월까지 마련할 예정이지만 전승국의 권한을 종결짓는 「2+4」회담의 협정은 당사국의 인준을 받기 전에는 발효될 수 없으며 통일독일 의회는 통독실현 이전에는 협정을 인준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콜 서독총리는 통일후까지 전승국들의 권리를 지속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 “24시간 핵 정찰” 미 비행편대 해체

    ◎소의 기습공격 대비,29년 연속 체공/재정난·신 데탕트에 밀려 작전 중단 핵전쟁 지휘장비를 탑재하고 29년5개월간 연속적으로 하늘에 떠있던 미공군의 「최후의 날」 비행편대가 미국의 재정압박과 미소 해빙에 밀려 지난주 지상으로 하강했다. 펜타곤은 이 비행대의 체공활동이 「상시」에서 「수시」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이 고위보좌관들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 이 방침은 지난 6월29일 오마하의 오푸트 공군기지에 있는 SAC(전략 공군사령부)에 전달됐다. 이 비행대는 SAC사령관이 지휘한 중부 미국 상공에서의 작전을 끝으로 지난 24일 하오 2시28분 오푸트 기지에 착륙,29년 연속 체공 비행에 막을 내렸다. 「거울」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이 편대의 작전은 한마디로 냉전의 산물이다. 이 비행대가 처음 이륙한 것은 미소의 대결 속에 베를린에 장벽이 구축된 해인 1961년 2월3일이었다. 이후 미공군은 이 편대 가운데 최소한 1대는 늘 하늘에 떠있도록 했다. 작년 12월 펜타곤은 경비절감을 위해 「거울」편대 소속 항공기 12대에 대한비행근무 해제를 건의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 요청은 소련의 동구 민주화 허용여부를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마당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미 군부가 작성한 「지구 최후의 날」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 비행편대는 「공격이후 지휘통제체제」로 알려져 있다. 다시말해 SAC의 지하사령부가 소련의 미사일 기습공격으로 파괴됐을 경우 이 비행기들이 SAC의 공중사령부로서 전세계의 미군을 통제,성공적인 보복공격을 가하도록 돼있다. 보잉 707기를 개조한 이 비행기들은 미 북서부 일대의 지상 사일로에 있는 모든 핵 장착 미니트맨 미사일및 MX 대륙간 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다. 이 비행편대에는 항공기 1대마다 SAC 장성 1명이 반드시 탑승하도록 돼있다. 소련의 기습공격에 의해 미국의 대통령 부통령 국방장관 SAC 지휘벙커 등이 사망하거나 고립됐을 경우 미 핵전력에 대한 통제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91년에 1천8백만달러,92년에 2천3백만달러의 예산을 절약시켜줄 「거울」비행대의 비행축소가 「유비무환」의 이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SAC의 한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소련의 핵,또는 재래식 공격 기도를 미국이 개량된 첩보위성과 다른 탐지체제를 통해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청천벽력같은 기습을 감행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사민당,연정잔류 선언/통독위회의 결과 환영

    【베를린 AFP 연합 특약】 동독 사민당은 27일 양독의회 대표들이 오는 12월 전독선거를 위한 협정체결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메지에르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티에르제 사민당 총재는 동일규정에 의한 동서독 단일총선은 긍정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사민당의원총회는 연립정부 잔류의 전제조건으로 서독과의 협상에서 사민당을 대등한 동반자로 대우할 것과 동독의 선거규정협상단 대표를 사민당에 할애할 것 등 4개항의 수락을 기민당측에 요구했다.
  • 통독총선방법 이견/“등원득표율인하”동독안/서독 사민당지도자 반대

    【본 로이터 연합】 서독 야당 지도자 오스카르 라폰테인은 25일 독일 통일문제를 둘러싼 동베를린의 정치적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 서독 선거체제의 수정 타협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라폰테인의 이같은 태도는 동독 연합정부가 붕괴위기에 빠져 있는 가운데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총리가 오는 12월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동서독에서 별개의 선거를 치르자던 자신의 종래 견해를 양보한 직후 밝혀졌다. 그러나 동독 기민당(CDU)총재이기도 한 데 마이치레총리는 의회 대표제의 최소 비율과 관련,독일인 전부가 참여하는 총선에서 동독의 군소정당들의 진로를 봉쇄할 수 있는 서독의 현행 5%의 한계 비율보다 낮게 책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의 경쟁자인 서독 사민당(SPD)의 라폰테인은 26일 발행된 뮌헨시의 일간 슈도이치 자이퉁지와의 회견에서 『나는 현행 5%의 비율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라폰테인의 이같은 예기치 못한 발언은 26일 밤에 개최될 것으로보이는 양독의회소속 「독일통일위원회」의 공동회의 개최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문제의 초점은 서독에서 1%의 지지도 받지 못하지만 동독에서는 아직도 최고 15%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구 공산당과 지난해 동독의 민주혁명을 이끌었던 반체제단체들이 범독일 의회에 참여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에 앞서 라폰테인이 주도하는 서독 사민당은 데 마이치레 동독총리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파트너 정당들이 동일한 선거 규정에 합의해야 하며 아울러 5%의 한계치를 더 낮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스 요헨 포겔 서독 사민당총재는 26일 아침 서독에서 강력한 정부를 유지,발전시켰으며 정치적 소집단화를 막아온 선거규정에 대한 수정을 고려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 민족대교류가 튼 첫 「민간 접촉」 범민족대회

    ◎서울 예비회담의 의의와 우리측 대응/남북입장 달라 의제선정등 난제로/북,각계참가 반대로 「범위」 논란 일듯 「8·15판문점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2차회담이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족구성원들의 참여를 권유한 정부측 제의를 전민련이 받아들임으로써 26일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 북한측은 서울 예비회담 참가와 관련,25일 강영훈국무총리 앞으로 서신을 보내 실무대표단의 신변안전보장및 편의제공을 요청했다. 북측은 또 전민련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도 전금철 조평통부위원장등 대표단 5명과 취재기자단 10명을 서울에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정부측도 서울예비회담을 행정적으로 적극 지원한다는 원칙아래 25일 상 하오에 걸쳐 전민련 명의의 북한대표단 초청장 발송과 함께 내무부장관 명의로 된 신변안전보장 각서및 모든 편의제공 의사를 즉각 전달했다. 결국 서울예비회담은 이같은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한 당국의 지원하에 열리는 만큼 남북 관계사에 있어 그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 서울예비회담은 재야단체인 전민련이 초청하고 북한의 조평통이 방문한다는 점에서 분단이래 최초의 「민간급」 접촉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북한대표단의 서울방문은 85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차 남북 적십자본회담이후 5년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6월12일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세부지침이 발효된 이후 처음 있는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나아가 노태우대통령의 7·20민족대교류선언 특별발표이래 남북간 처음 갖는 인적 교류라는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격규정에 대한 남북 쌍방간의 다른 해석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주목되고 있다. 서울예비회담은 지난 23일 통일원·법무·국방 등 3부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참가를 위해 북한대표들과 해외동포들이 우리측 지역방문을 신청할 경우 이를 허용할 것』이라는 전향적인 정부입장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이번 서울예비회담에서는 범민족대회 개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최종 결정한다. 즉,이번에 논의되는 사항은 범민족대회의 의제및 규모,그리고 참가대상과 일정 등이라고 전민련은 밝히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절충을 벌여야 할 난제로는 의제문제와 참가대상문제를 들 수 있다. 범민족대회에 임하는 남북 쌍방간의 상이한 입장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측은 범민족대회를 「7·203노대통령 특별선언」의 취지에 입각,민족대교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에따라 범민족대회는 문맥그대로 범민족적인 차원에서 추진돼야 하며 당연히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인사들이 널리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게 우리측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이럴때만 범민족대회가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물꼬를 트고 남북 관계개선과 통일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측은 범민족대회 성격을 정치선전적인 차원에서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이 올해 시정연설에서 밝힌 조국통일 5개방침의 하나인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근간으로 범민족대회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전민련·전대협 등 재야단체와 친북한 해외동포들만이이 대회에 참여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판문점에서 광복절을 기해 한바탕 정치적인 쇼를 계획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거나 유사한 단체및 인사들이 참여할 때만 자신들의 의도대로 범민족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북측은 우리 정부가 여러차례 밝힌 각계각층의 참가희망을 「남조선당국의 방해책동」으로 몰아붙이며 못마땅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형국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전민련의 태도다. 전민련은 어떻게 하든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겠다는 생각에서 각계각층의 폭넓은 인사들의 참여를 바라는 정부측 제안을 받아들이고 정부측과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각계각층의 참여조건으로 전민련이 제시한 민족대단결 원칙에 대한 해석을 놓고 우리측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반면 북측은 계급성에 입각,적대와 동지개념으로 이를 구분하고 있다. 또한 재야단체는 체제보다는 민족을 앞세우는 상황이다. 통일원측은 이와관련,범민족대회 참가를 신청한 1천만 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등 58개 단체의 대표들도 예비회담부터 참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서울회담에서는 특정단체나 인사들만 참가할 것이냐,아니면 각계각층이 모두 참여할 것이냐를 놓고 상당한 격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참가대상확대문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의제문제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의 대내외선전을 노리는 북측과 이를 반대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전민련측간에 쉽게 합의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은 『남북상호간 비방하거나 자극하지 말고 상호신뢰와 이해를 증진』한다는 차원에서 범민족대회가 치러져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부입장이 어떻게 반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겠다. 통일원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너무 정치적인 사안을 의제로 한다면 대회자체가 관계개선이 아닌 상호비방과 중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분명히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참가대상확대문제등에 대한 묵시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회담장 분위기에 따라 전민련 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염려하고 있다. 결국 이번 예비회담은 전민련이 정부측 의사를 어떠한 형태로 수용할 것인지와 이같은 전민련 입장을 북측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2개의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일원의 다른 당국자는 『이제는 전민련과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예비회담의 성공과 이에따른 범민족대회 개최의 열쇠는 이미 정부손을 떠났음을 의미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한종태기자〉 □범민족대회 추진일지 ▲88년 8월28일=민통련 민청련 등 21개 재야운동단체 서울올림픽기간중 남북한및 해외동포들이 참가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및 범민족대회」 개최를 제의. ▲〃 12월9일=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결성. ▲89년 1월29일=전민련 범민족대회개최 예비실무회담(3월1일 판문점)을 북측에 제의. ▲〃 2월15일=북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대표단 구성. ▲〃 3월1일=전민련대표 10명 판문점으로 가다 당국의 제지로 해산. ▲90년 3월3일=전민련 8·15범민족대회 개최 결의. ▲〃 6월2∼3일=해외추진본부와 북한측대표 서베를린에서 실무회담 개최. ▲〃 7월20일=노태우대통령 민족대교류 제의. ▲〃 7월23일=정부,범민족대회참가 허용,전민련 1차 추진위원회 개최. ▲〃 7월24일=정부·전민련,각계 대표참가에 의견일치. ▲〃 7월25일=민족통일협의회등 58개 단체 범민족대회 참가 결의. 북한,대표 5명 26일 판문점 통과 정부에 통보.
  • 동독연정 다시 위기에/협상 또 결렬/「통독시기」 이견 못좁혀

    ◎자유당 연정탈퇴 전격 선언 【동베를린 외신 종합 연합 특약】 동독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민당ㆍ사민당ㆍ자유당 등은 언제 통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볼프강 티에르제 사민당 총재가 24일 밝혔다. 그는 이날 각당 대표들과의 회담을 마친뒤 『각당의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민당과 자유당은 총선전 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메지에르총리의 기민당은 선총선을 주장하고 있다. 메지에르총리는 회담을 마친뒤 『나는 다른 정당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사민당과 자유당은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며 이날 농민당의 의원 3명도 연정이 붕괴되면 사민당과 노선을 같이할 것이라고 밝혀 메지에르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한편 메지에르총리는 오는 26일 헬무트 콜서독총리와 총선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야기된 동독정부의 위기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민당은 오는 26일 동서독 합동위원회가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할 경우 연정에서탈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독자유당은 24일 연정에서 탈퇴한다고 라이너 오르트레브총재가 밝혔다. 그는 이날 자유당 모임을 마친뒤 『드 메지에르총리와 동독 내외에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연정붕괴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 서울신문,일 방위청장관 단독인터뷰

    ◎“북한ㆍ중국 고립되면 아시아정세 경색”/「평양빗장」스스로 풀도록 도와줘야/“일 전략은 방어”… 군사대국화는 기우/동ㆍ서 신데탕트 맞아도 일의 즉각군축 없다 탈냉전시대를 맞아 일본의 방위전략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특히 한반도군사정세에 대해 일본의 최고방위책임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신문 강수웅 도쿄 특파원은 지난 20일 이시가와 요죠(석천요삼)방위청장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 방위청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신문과 단독인터뷰를 가진 이날 이시가와장관은 북한의 고립에 따른 체제 경직화를 우려하고 소련이 변했다해서 일본의 방위정책을 당장 바꿀수는 없다고 밝혔다. ­일본의 방위당국자 입장에서 아시아,특히 한반도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의 고립화에 따른 위험성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곤란하다. 북한 뿐만아니라 중국도 고립되면 경색화될 염려가 있다. ­북한의 무기개발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핵과 관련된 시설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핵전략에의 관련여부는 알수 없으나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북의 고립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북한이 세계의 조류를 타게되면 지금의 국제정세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지만,경색된 자세로부터 스스로 어떻게 탈피할 것인지가 문제다.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일어났을때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일본이다. ­한반도에서 격한 움직임이 일어나 북한쪽으로부터 난민이 일본에 오는 사태 등을 상정한 「위기관리」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일본의 평화는 한반도의 움직임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에서 분규가 터지면 그 영향은 아시아 전체에 미친다. 일본으로서도 한반도가 가장 평화롭기를 바라고 있다. ­북한군대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가. ▲잡히지 않고 있다. 가장 파악되지 않는 나라이다. 기껏해야 소련의 최신병기를 상당량 받아들이고 있다는 정도이다. ­일본의 방위비에 대해 아시아 여러나라가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보는데. ▲군사비 대국이라는 것은 참으로 반론하기 힘든 면이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6개국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넣어 비교해 보더라도 일본의 방위비가 막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위관계비가 많다고는 하지만 군사대국이라고는 말 할수 없다. 내용과 성격의 문제로서 공격적이 아닌 전담방위라는 사실,핵을 갖고 있지 않은 점,징병제가 아니라는 것,시빌리언 컨트롤(문민통제)이랄까. 여러가지 요소를 보더라도 군사대국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액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위대가 경찰예비대 시절로부터 40년이 지났으나 방위력의 비축이 없었기 때문에 단기간기 대폭 늘린 탓이다. 일본의 위협론이라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되나 이를 불식하기는 힘들다. 동남아시아를 순방했을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헌법 제9조에 따라 군사대국은 될 수 없다고 말해도 헌법은 고치기 쉬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납득시키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동서긴장 속에서 방위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동서의 긴장완화가 이루어진 지금부터는 지역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방위정책의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동서 양블록의 대치가 상호간에 부담을 주어왔기 때문에 민주화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좋으나 거꾸로 일부 지역에서는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긴자(은좌)의 큰길은 평온하지만 뒷골목은 위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그같은 사태에 대비,군사공백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련이 제아무리 민주화의 길을 걸어가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하더라도,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통일독일이 편입되더라도 일본의 방위정책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범지구적인 긴장완화의 진전,지역분쟁의 위험이 해소됐다면 방위계획 대강의 수준을 변경해도 좋겠으나 아직 거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군의 아시아로부터의 철수계획진행,소련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측으로부터 자위대감축요구의 소리가 높다. 솔선해 군축을 추진할 생각은 없는가. ▲미국 및 소련이 군축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은 줄일 수 없다. 그것은 4조엔에 달하는 일본방위관계비의 80%가 의무적 경비로서 인건비ㆍ식량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자연증가만으로 5%정도가 늘어난다. ­지난번 휴스턴 선진 7개국 정상회담때 발표된 정치선언에선 소련의 위협론이 후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본 방위당국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실히 지금까지의 정치선언과는 달리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변했으나 소련의 위협이 없어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소련이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며 환영할만한 것이라고 솔직히 평가한다. 그러나 거기에따라 일본의 방위정책을 즉시 변경해야만 하는가. 그렇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소련의 「잠재적 위협」이라는 일본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는가. ▲지금의 국제정세는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치와 외교는 민주화를 향해 격동하고 있더라도군사적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점이 있다. 그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세계정세에 대한 견해는…. ▲소련이 배가 고프더라도 다시 레닌ㆍ스탈린의 시대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노선은 상당기간 지속되지 않겠는가. 같은 의미에서 군축이 정착돼 갈 것이라고 말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 합동회견 1문1답 요지

    ◎「범민족대회」 특정단체만 참가 무의미/문목사ㆍ임양 석방 현재로선 고려안해 ­우리측 전민련ㆍ전대협 등의 8ㆍ15 범민족대회 참가를 허용하는 것은 북한의 태도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인가. ▲홍성철통일원장관=오늘의 발표는 오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 북한측과 해외의 인사들이 서울에 오는 것을 받겠다는 것과 8ㆍ15 이전에 우리측에서 북한에 가겠다는 사람들을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우리로서는 그 대회가 관계개선과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북하는 우리측 인사들의 무사귀환 보장과 정부가 북한에 제의한 7ㆍ30 실무접촉이 범민족대회 참가허용의 전제조건인가. ▲홍장관=특정단체들만 이 대회에 참가한다면 범민족대회가 의미가 없다고 보며 통일에 보탬이 된다면 북한도 각계각층의 범민족대회 참가를 허용할 것이라고 본다.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함께 북한측은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의 석방을 들고 나오고 있는데 이들의 사면이나 석방용의는. ▲김종남법무부장관=현재로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개폐논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떠한지. ▲이법무장관=북한이 대남 적화통일전략및 자유민주체제 전복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를 폐지할 수 없다. ­북한에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정치범과 그들을 수용하고 있는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법무장관=국제인권단체에 따르면 약 15만2천명의 정치범이 회령ㆍ강성ㆍ은성ㆍ사리원ㆍ영변ㆍ용강 등 12개 지역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정치범 가운데 전총리 이근모,전부총리 홍성룡ㆍ김경련,전국가보위부장 김병하,전부수상 김창봉ㆍ박금철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및 국가보안법의 운용방침은. ▲이법무장관=남북교류협력법은 남북간의 인적ㆍ물적 교류촉진에 있다. 이 법은 다른 법에 우선해서 특별법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법에 의해 사람의 왕래나 물자의 교류는 처벌대상이 안된다. 그렇다고 북한에 들어가 대남 혁명전술전략에 동조하거나 간첩행위등을 할 경우까지도 사면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가올 남북교류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쪽에 설치된 콘크리트장벽을 인원차단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단적인 근거는. ▲이상훈국방부장관=베를린장벽에 설치된 것처럼 수직형 절벽이 아니다. 또 폭이 4∼5m로 넓은 데다가 경사가 완만하며 중간중간 통로가 있다. 이 통로는 장갑차만 못다닐 뿐 지프나 사람은 얼마든지 통행이 가능하다. ­북한측이 이러한 방어용 장애물에 대해 집요하게 철거주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국방장관=한반도의 긴장 뿐만 아니라 통일을 가로막는 원인과 행위가 한국측에 있다는 그들의 상투적인 수법에서 나온 것이다. 이같은 선전을 계속함으로써 한국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반한감정을 유발시켜 내부분열을 꾀하기 위한 속셈임에 틀림없다.
  • 「총선전 통독안」 동독의회서 부결

    ◎「통독시기 협의위」 두기로/연정 붕괴위기 넘겨 【동베를린 로이터 AFP 연합】 통일과 총선시기를 둘러싸고 빚어진 내분으로 자민당과 사민당등이 탈퇴할 것을 밝힘으로써 붕괴위기에 놓여있던 동독 연립정부는 22일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각 정당간에 막바지 타협이 이뤄져 일단 갈등을 진정시켰다. 동독 자민당의 라이너 오르트레프 원내총무는 이날 의회가 재소집된 가운데 기자들과 만나 각당사이에 이 문제와 관련한 『절차상의 타협이 이뤄졌다』고 밝히고 이 타협안은 통독 시기를 결정할 「고위급 기구」를 수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르트레프 원내총무는 이 타협안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연정이 붕괴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동독 연립정부는 「12월1일 통일ㆍ12월2일 총선」을 주장하며 연정 탈퇴를 밝힌 자민당에 이어 제2당인 사민당도 이같은 주장을 담은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자 연정에서 기독교민주연맹과의 연정에서 탈퇴할 것을 위협,붕괴위기에 직면했었다. 12월1일을 서독과의 합병일로 하자는 법안은 기독교 민주연맹을 이끄는 로타르데 마이치레총리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1일 사민당(SPD)의원들이 지지하는 가운데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의회에 상정됐으나 표결에서 결국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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