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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실벌“통일”합창 전국에 메아리

    ◎남북축구 “팡파르”에 8만관중 열광/가정ㆍ직장서도 TV보며 응원/양측선수 선전때마다 아낌없는 박수/실향민들,“이번경기로 통일의 물꼬 텄으면… ” 45년만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남북축구경기는 남과 북이 어쩔 수 없는 한겨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민족화합의 한마당이었다. 남과 북 가릴 것 없이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면서 서로를 격려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로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잘하는 쪽을 열렬히 응원했다. 23일 하오3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린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엔 국토분단이후 처음으로 서울에 찾아온 북한축구선수단의 모습을 보려고 모여든 시민들이 관중석을 꽉 메웠다. 전국의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경기모습을 TV로 지켜보며 『하루 빨리 남북통일이 돼 이처럼 훌륭한 남북교환경기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경기가 1대0으로 남쪽의 승리로 끝난 뒤 경기장에 울려퍼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의 살던 고향은…」 등을 따라부르는 시민들의 표정엔 통일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남과 북의 선수들은 서로 유니폼을 바꿔입고 운동장을 한바퀴 돌았고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경기장을 떠날줄 몰랐다. 이날의 뜨거운 열기는 경기가 열리기에 앞서 하오2시50분까지 입장을 마친 관중들의 응원으로부터 시작됐다. 남북한선수들이 감독의 인솔아래 2시50분쯤 경기장에 나란히 줄지어 입장하자 관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려 양쪽 선수들을 다같이 환영했다. 이어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들은 선수들이 선전을 할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비록 우리 선수라도 잘못할 땐 안타까운 탄성을 질렀다. 전반 17분만에 우리쪽 황선홍선수가 첫골이자 결승골을 터뜨리자 관중들은 잠실벌이 떠나갈듯 함성을 지르며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어 갔다. 이후 끝내 골이 더 터지지는 않았으나 관중들은 아슬아슬한 슈팅장면이나 과감한 돌파장면이 나올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으며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의 이름을 일일이 합창하며 사기를 북돋워주었다. 1ㆍ4후퇴때 황해도 연백에서 월남했다는 민종익씨(70ㆍ은평구 갈현동 281)는 『남북한 두팀을 똑같이 응원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이번 경기를 계기로 통일의 물꼬를 터 고향의 부모님산소에 갈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중석에는 지난 20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문익환목사도 나와 『오늘 이 축구대회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과 맞먹는 역사적인 일』이라면서 응원했다. 이날 문목사일행 주위에서 응원하던 학생ㆍ재야단체회원 10여명은 「조국은 하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끝에 5분만에 모두 연행되기도 했다. 한편 지하철2호선의 종합운동장역은 입장을 한시간앞둔 상오11시쯤부터 3시간동안 크게 붐볐으며 경기가 끝난 하오5시20분쯤에도 관중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 통독후유증… 동ㆍ서 문화적 차이 심각(세계의 사회면)

    ◎동ㆍ서독 출신들의 현황/언어ㆍ스포츠 등 미식 생활방식에 젖어 서독출신/소 문화 배척,독일인 고유의 색채 유지 동독출신/슈피겔지 “통합은 됐으나 융화되진 못한 상태” 지난 3일의 동서독 통합 이후 독일인들 사이에는 동독 출신과 서독 출신간에 카우보이 모자에서부터 언어사용문제에 이르는 갖가지 문화적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한때 소련의 동맹국이자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던 옛 동독사람들과 지난 40여년 동안 특히 미국과 같은 서방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에 물들어온 옛 서독사람들간에 형성되고 있는 이같은 이질적인 관계를 한마디로 『통합은 됐으나 융화되지는 못한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옛 서독 사람들은 스포츠에서 언어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서 아메리카니즘(미국식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서독 지역의 주요 도시들에는 함부르크 돌핀스,베를린 이글스,카를스루헤 나이츠와 같은 풋볼팀들이 전국적인 아마추어 풋볼 리그를 결성한 채 경기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어나 프랑스어 과목을 많이 가르쳤던 동독의 학교에서 교육받아온 옛 동독인들은 영어가 간간이 섞인 독일어를 쓰는 옛 서독인들의 구어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본에서 발행되는 대외정책 전문잡지 유로파 아르키브의 틸만 흘라데크 부장은 『나치사상을 포함한 나치시대의 완전 몰락 이후 그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섰는데 그들이 선택한 것중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식 생활방식』이라고 말했다. 서독인들은 미국,영국,프랑스의 점령하에서 수립된 서독을 소련 팽창주의에 맞서는 서방동맹으로 흡수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의해 쉽게 서방 스타일을 선택하게 됐다. 그러나 가증스러운 철조망이 가로놓인 국경 너머에서 소련의 점령에 대해 점점 더 큰 분노를 느껴가면서 소련 문화를 철저히 외면하는 생활을 해왔던 동독인들은 독일인 고유의 색채를 더 많이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1933년 권력을 잡은 나치 정권은 미국의 재즈음악을 비독일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금지했으나 독일인의 문화와 성향에 대한 아메리카니즘의 침투 역사는 나치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문화는 2차대전 종전 이후 독일에 진주한 미군이 추잉검과 미국 담배를 들여온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아메리카니즘에 물들어 갔으며 그후 45년 동안 서독에서는 미국 TV시리즈물과 디즈니랜드 스타일의 유원지,심지어는 로데오경기까지 일상화해 왔다. 대도시의 10대들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시끄럽게 거리를 누비고 있고 조용한 도시로 알려진 본에서도 스피드와 굉음을 즐기는 사람들이 미국제 할리 데이비스 모토 사이클 대여점에 몰리고 있으며 또한 프랑크푸르트와 본에서는 미국식 샐러드 바에서의 저녁식사와 시카고식 피자,미국 서부식 스테이크 등이 일상화해 있는 실정이다. 반면 과거 동독 지역의 상점들은 슈퍼마켓이나 부틱과 같은 외래어들 보다는 독일어 간판들을 많이 내걸고 있다. 한마디로 명령계통과 복종으로 대변되는 독일인들의 프러시아식 특성은 서방문화권인 서독에서 보다는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동독에서 더 많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독일에서는 자동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도로의 신호 등 앞에서 파란등이 켜질 때를 고지식하게 기다리는 옛 동독주민들과 카우보이 스타일의 활달한 걸음걸이로 그 횡단보도를 그냥 건너가는 옛 서독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 늘어나는 세부담… 동독재건 달갑잖은 서독인(통일독일의 과제:중)

    ◎지원비용 10년간 8천억불 소요/1인당 1만불 추가부담 불가피/“일자리 줄고 일당 적어진다”… 볼멘 소리도 지난 3일밤 베를린에서 만난 헬무트씨(49)는 『통일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동독지역 사정을 알아보고 돈벌이 사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중북부 고도 첼레시에서 선대로부터 가구점을 물려받아 경영해 오고 있는 헬무트씨는 라이프치히시 투자환경을 둘러보기 위해 가던중 호텔방을 못구해 민박을 하는 같은 아파트에 부부가 함께 방을 잡았다. 『동독지역에 복구사업이 본격화되면 신ㆍ개축하는 건물들이 많아 가구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헬무트씨는 새 건물에 필수적인 카펫이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돼 라이프치히 시내에 큰 점포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침 베를린에서 떠들썩하게 펼쳐지는 통일축제 행사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다음날 새벽 짐을 챙겨 떠났다. 서독인들이 통일에 대한 반응은 얄미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은 어떤 것인가,세금은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등 우리가 보기에는 부수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분단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했건만 서독인들에게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세계사의 새로운 주도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교」 등 거창한 대답을 들어볼 수 없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축제의 거리에도 요란한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나 포스터가 없을 뿐더러 신문들도 주택ㆍ환경문제 등 통일후의 과제와 문제점에 더 큰 비중을 둔 기사를 싣고 있었다. 적어도 서독인에게는 통일이 이념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통일축제기간에도 중부도시 쾰른에서는 사진박람회가,남부도시 뮌헨에서는 10월 축제가 통일보다도 더 큰 관심속에 진행돼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10월 축제장에서 만난 울리히 침머만씨(47)는 『동독지역을 서독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텐데 결국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것 아니냐』면서 『통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너무 서둘러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장의 대형 맥주홀인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로타르 브릿지케군(22)은 『통일이 됐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아르바이트일자리가 줄어들고 일당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독일정부는 향후 2000년까지 동쪽지역 재건에 필요한 재정을 8천억달러 규모로 잡아놓고 내년부터 10년계획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재원확보를 위해 국민 1인당 추가 담세액은 1만여달러(7백여만원)나 되며 서독인들은 이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미 독일정부는 통합과정에서 1차로 1천1백50억마르크의 「통독기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올해에 2백20억마르크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며 서독의 납세자들로부터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침머만씨는 『동쪽제도가 갑자기 붕괴되는 바람에 서독인들에게도 큰 부담을 안겨놓았다』며 『지난해 11월 동베를린 대탈출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없었더라면 통일작업이 시간을 갖고 확실히 추진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일후 동독지역에서는 한달 1만여개씩 9월말 현재 10여만여개의 사기업이 생겨나고 이들중 절반이상이 자금ㆍ경영면에서 서독인들이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사기업들은 당초 서독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기능인력의 부족,경영미숙,낮은 생산성 때문에 서쪽지역의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 붕괴과정에서 동쪽지역에서는 서독지역의 신문ㆍ잡지 등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최근에는 서독의 신문재벌들이 동독신문에 직접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주춤한 상태라고 한다. 베를린의 한 신문연구소에 따르면 서독의 신문들은 1페이지당 필요한 제작인원이 2ㆍ4명이나 동독신문은 5명이나 돼 동독신문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려던 서독신문들이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사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들도 사회주의체제의 동독기업들이 생산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어 생산성이 낮은데다 이들을 해고할 경우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동독지역의 진출을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독 남서부 알브슈타드시에서 칭키스칸이라는 중국 음식점을 경영하는 교민 이종규씨(55)는 『이곳 바덴뷜템베르크주는 독일의 어느주보다도 가장 잘사는 주로 주민들은 통일의 환희보다는 통일후 짊어지게 되는 재정적 부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며 『독일사람들이 통일을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 감정이 없는 국민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도 분단국가인만큼 통일이 절대적인 소망이지만 지나친 기대나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과제로 보고 차분하게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인 사흘간의 통일축제가 끝난뒤인 5일의 베를린시가지는 평상시의 제모습으로 돌아와 축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자신의 나라가 통일이 된 사실조차 잊은듯한 표정들이었다.
  • 시라크 파리시장 특별강연

    ◎“한국은 불의 훌륭한 경협파트너”/과학ㆍ기술 등 상호교류 확대 강력히 희망/대소 관계개선은 한국의 경제력이 바탕 지난 86년 프랑스 총리에 취임,사회당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좌우동거정부」를 구성한바 있는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겸 공화국 연합당 총재가 시사저널 초청으로 내한,19일 하오 신라호텔에서 「유럽과 아시아」란 제하의 특별강연을 했다. 다음은 시라크의 강연요지다. 본인은 여러분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을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아 왔습니다. 본인은 다른 기회에 강조했던 것처럼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판문점도 역사의 운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여년동안 지극히 혐오스러운 북한의 동향에 엄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1988년 가장 세계적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러 사회주의국가가 그 후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됐으며 소련조차 얼마전에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 한국의 위치를 증명해 주는 성공사례들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가장 최근의 커먼 웰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평화적 통일안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의 총리가 지난 9월에 이곳 방문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그후 총리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프랑스 기업체들에 생산성과 상업적 박력을 강화시켜주는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균형을 찾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상업적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신의만 있다면 정치적 적대감으로 악화될 수 없습니다. 양측에서 게임의 룰은 존중돼야 하며 몇가지 오해를 없애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유럽공동체(EC)는 「요새」가 아니며 그렇게 될 의사도 없습니다. 반대로 유럽공동체의 소명은 늘 더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규모 단일시장의 논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동맹관계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를 강화시켜주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에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는데 본인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원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의 극동지역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보기에 한국은 신생산업국 가운데 맨앞에 서서 아시아의 축 속에서 균형요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3국들과의 공동행동에 의거하여 신뢰의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본인은 오늘날 프랑스 기업인들이 한국의 두가지 계획에 제출한 내용의 질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더 넓게는 유럽과 아시아는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한 오래된 문명지역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면 어떤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은 한국에서 프랑스문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우리들은 극동의 문화를,특히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몸에 밴 의타심… 정부만 쳐다보는 동독인(통일독일의 과제:상)

    ◎돈많은 서쪽 동포에 “기대반 경계반”/부동산 소유자들은 옛주인 나타날까봐 “불안” 통일독일은 지난 10월3일을 전후한 사흘간의 축제를 마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45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동서지역 국민들간에는 생활ㆍ의식ㆍ행동에 큰 골이 생겼으며 민족의 동질성회복이 과제로 남게 됐다. 통일과정을 현지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나본 독일인의 얘기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동독인의 기대,서독인의 불안,민족성회복노력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통합된 베를린은 동서의 장벽이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동서를 가르고 있었다. 분명 경계선은 없지만 서쪽에 있다 동쪽지역으로 들어서면 거리의 분위기부터가 달라진다. 서쪽지역의 주택과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고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데다 베란다에는 으레 각양각색의 꽃이 진열되어 있고 창문안쪽에는 하얀 레이스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동쪽지역의 건물들은 한결같이 우중충한 회색에다 군데군데 무너진 벽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거나 유리창이 깨어진채로 방치되어 있기 일쑤다. 하인츠씨는 『자동차 한대 구입하는데 12년,냉장고는 5년,TV는 3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왔다』며 사회주의체제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을 개탄하고 『이제 돈많은 서쪽 동포들이 도와줄테니 상태가 곧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상전차인 에스반이 구부러진 궤도를 돌아가는 금속성음과 군데군데 패인 히틀러시대의 자연석 차도를 달리는 트라비승용차의 매연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공해문제도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이다. 성능이 좋은 벤츠나 BMW승용차를 타고 남부유럽을 여행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 동쪽 주민들의 한결같은 꿈이다. 번화가의 여관 여주인인 마티나 헤미히씨(52)는 하루 숙박료가 1∼3층은 80마르크,4∼5층은 60마르크라고 해 그 이유를 물으니 『낮은층은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이 갖춰져 있으나 높은층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설명했다. 동쪽지역 접객업소뿐만 아니라 주택의 경우도 화장실에 물통과 손잡이가 긴 바가지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화장실이 거실보다말끔한 서쪽 가옥들과 큰 비교가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부를 균등배분한다는 사회주의 이상은 좋은 제도이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는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 독일통일이 남긴 교훈이었다. 여관주인 헤미히씨는 『호네커일당이 다 해먹다 보니 우리는 40년전과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며 『콜이 우리를 살려주겠지요』라고 역시 통일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희망했다.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1백여㎞ 떨어진 슈테그레츠마을을 찾은 것은 통일축제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5일 하오 5시쯤이었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사자주점」을 들어서자 백발의 건장한 주인은 힐끗 한번 쳐다본후 맥주따르는 일을 계속했다. 자리에 앉아도 그는 인사는 커녕 자기자리로 돌아가 마시던 술잔을 계속 비울뿐 주문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벽난로에서 새어나온 갈탄 연기와 담배연기속에서 낡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잡담을 하던 동네주민 10여명도 갑자기 말을 끊은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서독주민들의 경우라면 아파트계단이나 이른 새벽 길거리에서마주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는 세련된 태도를 보인다. 주문한 맥주잔을 다 비우고 『맛이 좋다』고 칭찬하자 이를 호의로 받아들인 주인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당케,당케』를 연발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마티아스 쾨니히(66)라고 소개하며 『축복받은 독일,통일된 조국이라지만 나로서는 앞날이 걱정될뿐』이라며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목재소에서 근무하다 12년전 은퇴한 쾨니히씨는 20여평 크기의 주점과 방이 딸린 이 건물을 한달 수입의 15%인 월 2백마르크의 집세를 내고 살아 왔으나 최근 서독 주인이 나타나 『집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의 임대주택은 자신의 주택이나 다름없었는데 통일과 더불어 새 주인이 나타나 쫓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별다른 불편없이 살아오던 쾨니히씨는 갑자기 나타난 집주인에게 쫓겨날 형편이 되었다. 쾨니히씨와 같이 동독지역에서 주택ㆍ농지ㆍ공장부지의 새 주인이 나타나 생활의 불안을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1천8백만 주민중 1백만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정부는 아직 사유재산환수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부동산을 가능한한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이어서 동독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른 체제에서 반세기 가까이 살아온 독일민족은 과보호와 경쟁상태에서 각기 다른 국민성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의 샤리테병원 정신심리과 의사인 알렉산더 슐제박사(39)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통일의 기쁨보다는 새로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서독지역 주민과 다른 동독지역 주민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슐제박사는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동쪽 주민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밀어 닥칠지 모르며 생활터전도 흔들려 불안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동안 사회주의라는 온실속에서 안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가 색깔도 없이 똑같은 형태가 되었으며 모험을 회피하려는 소시민근성이 몸에 베이게되었다』고 분석했다. 분단 45년만에 양쪽 국민성에도 커다란 단절이 형성된 느낌이다. 한쪽이 시장경제의 경쟁속에서 닳고 닳았다면 한쪽은 사회주의이 과보호 속에서 순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기민,독일지역선거 압승/5주중 4곳서

    ◎평균 44% 획득… 사민당 눌러/콜총리의 정치입지 크게 강화될 듯 【베를린 UPI AFP 연합】 헬무트 콜 독일총리의 기민당이 14일 구동독지역 5개주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4개주에서 승리했다. 이날 투표의 3분의 1 가량이 개표된 가운데 콜총리의 기민당은 작센주등 구동독 5개주 가운데 브란덴부르크주를 제외한 4개주에서 야당인 사민당(SPD)을 누르고 압도적인 승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ARD와 ZDF방송이 보도했다. 이로써 독일통일로 이미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콜총리의 정치기반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ARD와 ZDF방송의 예상집계에 따르면 이들 5개주에서 기민당이 44%,사민당이 25%,구공산당인 민사당이 11%의 평균득표율을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구서독지역에서 유일하게 이날 지방선거를 실시한 바이에른주에서는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사당이 과반수 이상의 승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선거결과로 사민당은 콜총리가 장악해 온 하원에서의 이송법안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상원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됐다. 사민당 후보로 독일총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오스카 라폰테인은 동독지역에서 사민당의 지지기반이 확대된 것은 기쁜 일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선거결과에 대한 실망을 표시했다. 한편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이끌고 있는 자민당(FDP)은 녹색당과 인권단체의 연합체와 함께 7.5%의 득표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 외언내언

    제시 오언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미국의 이 흑인 스프린터를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남자 육상 1백mㆍ2백mㆍ4백m 릴레이와 넓이뛰기에서 우승,4관왕의 경이적인 위업을 이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또 우리 민족에게는 손기정이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마라톤에서 우승해 한국인으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세계 정복의 야욕을 꿈꾸는 가운데 그해 8월1일 개막됐다. 정치ㆍ인종ㆍ이념을 초월한다는 올림픽정신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히틀러는 「비유태계 백인(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 대회를 유치했다. 스포츠를 통한 내셜널리즘을 앞세운 히틀러는 또 3천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 넣었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오언스라는 한 흑인선수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러한 어두운 과거를 가진 베를린시가 2000년도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베를린시 지도자들은 최근 통독 후 가진 첫 합동회의에서 베를린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국민들간의 평화라는 올림픽 이상을 진작시킬 평화적 통일의 적절한 상징이라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개최지의 후보로 나서기로 한 것. 베를린시의 올림픽 개최는 지난 88년 12월의 미 소 정상회담 때 레이건 전 미대통령이 분단도시의 양쪽에서 여는게 어떻겠느냐고 발언한데서 싹텄다고. ◆베를린시는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반경 10㎞ 범위안에 각 경기장을 세워 치르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동베를린시 재건의 일환이기도 한 베를린시의 올림픽 유치안은 대회준비에 약 30억달러(한화 약 2조원)를 투입하며 대신 텔레비전 중계료 등을 합쳐 약 40억달러의 수익을 계상하고 있다는 것. 꿩먹고 알먹는 계획이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냉전은 끝났다. 올림픽으로 동서 대결이 종결됐음을 기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어 93년의 올림픽개최지 결정에서 베를린시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 중국의 대결이 볼만하게 됐다.
  • 둥근 공… 흐르는 핏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한반도의 남북한은 지금 불꽃튀는 설전이나 탁상공론으로서 접촉하기보다 살이 부딪히고 핏줄이 통하는 물리적 접촉으로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듯하다. 평양에서 열렸고 곧 이어 서울에서 열릴 통일축구경기로서 그러하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분단 이후 최대의 남북접촉이라면 서울ㆍ평양간 통일축구는 민족분단 이후 최초 최대의 물리적 육체적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축구는 차고 배구는 때린다. 농구는 넣고 탁구는 치고 정구는 서비스한다. 모든 구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와 더불어 말없이 대화하고 공하나에 마음을 실어 상호 교류한다. 그런데 지금 평양과 서울,서울과 평양간에는 불과 5백그램짜리 축구공 하나가 동포간에 끊어졌던 혈맥을 잇고 체온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공은 둥글다.모나지 않아 정지하지 않으며 항상 흐르며 율동한다. 구기게임이 갖는 묘미와 그 냉엄한 승부성을 얘기할 때 곧잘 그렇게들 표현한다. 구기중에도 특히 축구는 그 특유의 직절성과 의외성으로 해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공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음은 직절성이고그것의 둥글ㅁ은 의외성이다. 공을 구사하는 주체의 기량에 따라 자유자재한다. 축구는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의 국기처럼 여겨져 왔다. 남북 젊은이 대표들의 통일축구 교환경기를 보면서 남북문제 접근도 축구에서 배우며 축구처럼 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기와 같은 축구교환경기는 잘만 하면 양쪽의 동포들을 텔레비전 앞에 집단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측이 서방이념이나 사회풍조(문화ㆍ유행)가 들어오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텔레비전 방송이다. 당시 동독지역의 85%가 서독 텔레비전 방송 가청지역으로서 수백만 동독인들이 서독 제1TV의 분데스리가 축구경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독일의 통일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남북한 축구,아니 모든 경기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판문점의 입씨름으로는 되지 않을 일들이 젊은이들의 「육체적 접촉」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로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도 그랬다. 그 이전 해외경기에서 맞닥뜨리면 민망스러울 정도로 표출됐던 상호 불신감과 적대감이 싱가포르에선 보이지 않았었다. 지난 여름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때도 그랬다. 과거 남북한 스포츠선수들이 해외에서 보였던 날카로운 시선과 대결의식,그리고 그보다 더한 불신감과 적개심은 사실 분단 그 자체의 비극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했다.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천리마」라는 게 있다. 지난 85년 7월호에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와 싸워 2대1로 이겨 우승한 주성철이라는 소년선수의 얘기가 실렸다. 그런데 이 선수의 코치는 1회전과 3회전에서 이겼다면 2회전에서도 이겨 3대0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며 2대1의 스코어가 당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선수도 이를 수긍했다. 그들의 대남 불신감 내지 경쟁심의 깊이를 알려주는 얘기다.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때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북한 선수에게 우승소감을 물었다. 그 선수는 서슴없이 『수령님의 명을 받들어 남조선과 미제들의 숨통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했다.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남북한간 불신과 경쟁심은 이러했다. 그무렵 어느 사회통계에는 한국이 국제경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가 북한(44%),일본(31%),소련(14%),미국(8%),중국(3%)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북한팀과 외국팀이 시합할 때 북한이 승리했으면 하는 희망은 51%였다. 통일은 쉽지 않다. 열망과 기대만으로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과 폭력으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적방법 이외 달리 없는 것이다. 지난 3일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앞 광장에서 역사적인 통독이 선언되던 날 세계는 경이와 찬탄의 눈초리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통독제전의 맨 앞줄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던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유명한 동방정책(OST POLITIK)으로 통독의 기틀을 마련했던 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였다. 브란트에게는 처음부터 패전 독일의 분단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분단된 독일의 부자연스러운 긴장상태는 인류평화를 위해 완화돼야 한다. 독일에 대항하여,또 독일을 제외하고 유럽은 건설될 수 없다』는게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다. 그는 또 진보적 민족주의 신념의 평화주의자였다. 베를린 봉쇄 등 지역분쟁으로 삼엄한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53년 서베를린 시의회의장으로서 브란트는 연방의회에 출석하여 이렇게 연설했다. 『평화적 통일의 쟁취가 어떤 다른 외교적 업무나 계획에 우선해야 한다. 천팔백만 동독인들은 우리의 간섭이나 무관심에 상관없이 어떤 위험에서도 구출돼야 한다. 독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독일문제에 협상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독일 통일을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보다 선명한 목표설정을 통한 통일을 요구한다』 분단국 어느 한쪽의 정치지도자로서 이 이상의 통일절규는 달리 있을 수 없다. 브란트는 지금 행복한 노경에서 그 평화적 통일독일의 실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솟구쳤고 서울에서 율동할 축구공 하나에 집중되는 7천만 동포들의 눈을 의식하며 우리는 지금 거세게 변하는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가 움직여야 할 차례인 것이다. 둥근 공이 흐르듯 민족도 둥글게 모이고 핏줄도 다시 이어져 흘러야 한다.
  • 「통일의 흥분」사라진 독일/박봉식 서울대교수ㆍ국제정치학(서울시론)

    ◎엄청난 통일경비ㆍ실업증가로 고심 작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모든 독일인들은 흥분의 절정에 있었던 것 같다. 금년 10월3일로 다시한번 통일국가가 된 독일은 많은 사람들,특히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간여한 나라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뒷마음에는 서로 다른 그림자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독일통일에 대해 외국인들의 태도는 차치하고 독일 사람들 자신­서독은 서독대로 합병당한 동독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심각한 새로운 현실에 어리둥절한 상태에 있다. 서독은 동독의 재건을 위해 향후 근 10년에 걸쳐 수천억달러의 돈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통일독일의 콜 수상은 서독 사람들에게 통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독으로 부터 철수해야 할 37만명의 소련군을 위해 1백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외에도 동독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독 사람들은 결코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다. 서독 기업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동독 근로자들은 기능이나 노동의 질에서 수준미달로 보이고 있다. 한편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것을 빼앗긴 허탈한 심경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모든 틀이 바뀌어진다. 설혹 실업을 면하는 사람들도 서독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동독인 1천6백만명중에 4백만명이 조만간 실업자가 된다고 한다. 모든 학교의 교원들은 그들이 가르치던 과목이 없어지거나 재조정되는 데에 따르는 재훈련을 받아야 한다. 동독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서독에서는 공산당원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서독이 동독을 합병했기 때문에 동독의 모든 관청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동독 공무원은 채용되더라도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체로 기술직 이외에는 채용이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동독 외무부직원 2천명중 1천8백50명이 해고되었고 나머지 1백50명도 임시계약으로 복무하는 상태다. 65만명에 달하는 동독 공무원이 모두 해임되는 상태다. 이들은 새로운 직장을 위해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짐작이 간다. 나라를 서독에 넘긴 동독 수상은 통일로 인해 동독인의 생활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통독 국회의원이 된 1백40여명의 시한부의원과 동독 수상을 위시해서 통독정부의 각료가 된 몇사람들은 갑자기 거액의 세비를 받아 새 천지를 만난 것 같을지 모르나 동독에 남은 백성들은 앞날이 캄캄할 지경이다. 특히 전쟁전에 동독지역에 토지를 두고 서독으로 피해온 사람들은 옛 재산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거로 부터 쫓겨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전 동독 수상 한스 모드로는 『우리는 서로를 알 시간이 더 필요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동서독간의 교류가 있어 온지 오래다. 그러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막상 통일을 하고보니 서로를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독에는 정신병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군대 경찰 학교 관청 심지어 교회까지 서독에 합병당하고 말았다. 동독의 법관들은 더욱 쓸모없는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얼마씩 1대 1로 바꿔주는 서독돈을 가지고 일용품을 구입하는 기쁨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벌써 잃어버린 동독 생활에 대한 노스탈자가 일고 있다. 12월에 있을 총선거에서 이들의 표의 방향이 어디로 갈까? 이들이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으로 흘러갈때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0월3일,독일통일의 날을 동 서독의 적지않은 민족주의자들은 경축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의 통일독일의 영토에서 제외된 옛 독일땅을 고향으로 하는 백여만명으로 구성된 단체의 사람들은 이번 통일로 일차대전후 독일영토의 4분의 1이 잘려 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잃어버린 땅들이 8백년간 독일 사람들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지금의 역사상황에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의 거의 전역에서 아파트 월세가 갑자기 10배로 늘어나는 생활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통일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유태인이다. 나치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50만명이었던 독일의 유태인은 지금 약 3만∼5만명이라 한다. 이들은 분단과 4대강국의 지배체제가 그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체제였다. 통일에 따라 4대강국의 간섭권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 대한 보장체제가 없어지는 것이 된다. 그들에게는 동독에서 군국주의적 생활과 외국인에 대해 증오로 길들여진 1천6백만 동독인 모두가 두려운 존재이다. 이러한 국내외 복합적인 상황은 물론 통일에서 오는 독일의 새로운 활력으로 용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으며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로 동독이 서독의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안정화되어야 하겠지만 그동안 동서독의 모든 사람들은 통일의 흥분을 가라앉치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요구하는 현실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통일이 아직도 요원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동 서독은 그동안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막상 통일을 실현한 현재 그들은 너무도 서로 다른데 대해 당황하고 있다. 그래도 서독은 경제력으로 소련을 꼼짝못하게 묶어 놓고 동독을 합병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임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당대가 아니면 다음세대에는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내면을 보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 아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통일축구 열리는 평양의 표정

    ◎서커스장에 입장하자 관객ㆍ출연자 기립박수/체육기자연,북측에 이길용씨 생존확인 요청 ○널뛰기 전회비행 선봬 ○…한국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10일 하오 4시부터 평양 광복거리에 있는 평양교예(서커스)극장에서 열린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 평양교예단은 세계대회에서 몇차례 1위를 한 요술(마술) 널뛰기 전회비행(공중트라피스)팀 등이 소속된 북한의 가장 뛰어난 교예단. 북한에서는 서커스의 인기가 대단해 함흥ㆍ청진에도 교예단이 있으며 평양교예단은 평일에는 매일밤 한차례,명절에는 낮과 밤 두차례 공연을 하며 좌석 3천5백석이 빌 때가 드물다고 안내원은 설명. 정동성 체육부 장관 등 한국선수단 일행이 교예극장에 들어서자 출연자들은 문앞까지 나와 반갑다고 인사했고 극장 안에 미리 입장했던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로 환영. 이날 공연에서 계란재주란 코미디를 한 공훈배우 윤광섭 씨(63)는 자신이 배우경력 33년의 원로급이라며 자동차 운전사로 일하다 지난 58년부터 배우생활을 했고 한국 원로가수 김정구 씨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다며『하루빨리 남북의 희극인들도 교류를 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측 보도태도에 촉각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10일 하오 7시쯤 판문점을 통해 행낭편으로 처음 이곳 한국선수단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하자 북측 기자들은 『우리도 1면에 대서특필됐는데 서울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도 크게 다뤘구먼』이라고 말하고 『이번에 온 기자들은 매우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했구먼』이라고 첨언. ○해설없이 사실만 보도 ○…북한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7일 조간에서 한국선수단과 기자단이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7면과 8면(모두 8면 발행)에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북남 통일축구경기에 참가한 남측 선수단 평양에 도착 수많은 군중들 거리에 떨쳐나가 열렬히 환영」제하로 3단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북한 중앙TV는 10일 하오 7시 저녁 뉴스시간에 남북 축구경기를 위해 9일 평양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의 방북소식을 화면이나 해설없이 사실보도만 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남북 통일축구를 위한 한국선수단의 평양방문 기간 동안 일제 때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당시 체육기자 이길용 선생(74)의 생존여부를 확인해 주도록 10일 북한올림픽위원회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요청. 이길용 선생은 1936년 손기정 씨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청전 이상범 화백과 함께 손씨 가슴의 일장기 사진을 지운 후 신문에 게재,일제에 의해 투옥됐었다. 이 선생 가족들은 6ㆍ25 때 남북으로 갈렸는데 이 선생의 장남 이태영 씨(49)도 체육기자로 활약,현재 중앙경제신문 체육부장(국장대우)으로 재직중이다. ○…이날밤 김일성광장에서는 로동당창당 45주년기념 경축무도회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비롯한 1백25개국 경축사절단과 북한의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경축무도회에는 원색차림의 남녀 5천여쌍이 참가,휘파람 등 댄스뮤직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북한 중앙TV는 이날밤 7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경축무도회 행사를 생중계했으나 한국 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 “새독일,유럽패권 추구 않을 것”/“통독의 조타수” 겐셔외무 회견

    ◎“세계평화 구축ㆍ유럽통합에 적극 기여/냉전종식 기류 타면 한반도통일 가능” 독일통일의 한 주역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외무장관은 4일 베를린에서 열린 첫 동서독 합동의회에 참석한 뒤 본에서 가진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지고 유럽의 통합에 노력할 것이며 결코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겐셔장관은 특히 남북한 국민들이 진실하게 통일염원을 실천해나가고 정치인들이 이를 수행해 나가면 머지 않아 통일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관은 할레(Halleㆍ동독영역) 태생으로 독일통일의 감회가 더욱 크실텐데. ▲저는 통일의 이날을 그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저의 정치활동의 가장 큰 꿈을 이루게 되어 몹시 기쁘고 통일독일의 첫 외무장관이 되는 영광 역시 아주 큽니다. ­그동안 유럽공동체(EC)ㆍ유엔 등에서 이들 기구들의 성격과 기능을 존중하면서 독일 통일정책을 꾸준히 펼쳐오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통일은 저의 심장처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독일 통일을 위해 전제가 되는 공통점들은 유럽내에서 먼저 찾아지고 해결되어져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러한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2차대전 후 외교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서부유럽의 단결과 협력이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을 전유럽의 마당(장)으로 불러들이는데 아주 결정적인 기능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유럽인들은 1975년 핀란드 헬싱키에 모여 유럽의 안전과 협력을 약속하는 헬싱키협정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 기회를 통해 반복해 말했듯이 유럽은 하루저녁 사이에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 헬싱키협정같은 것은 유럽내에서 특히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에서 많은 변화들을 이끌어 내는데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프랑스 듀마(Dumas)외무장관은 통일독일은 옛 주도권을 다시 잡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통일독일의 잠재력을 생각할 때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은 없습니까. ▲전혀 그런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통일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새통일독일의 지리적 위치,늘어나는 인구,또 경제력 등을 고려할 때 통일독일의 무게가 늘어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늘어나는 무게를 힘의 팽창이 아닌 더많은 국제적 책임으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통일독일은 무엇보다도 유럽통합을 위해,그리고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것입니다. ­1933년 1월1일부터 유럽단일시장이 형성됩니다. 이 유럽단일시장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 ▲저는 이 유럽단일시장 형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이 단일시장형성은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의 커다란 관심사입니다. ­작가 토머스 만은 독일의 유럽이 아닌 유럽의 독일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독일 마르크화를 주축으로 한 유럽의 게르만화,즉 독일 마르크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높은 것 같은데요. ▲만약 통일독일의 마르크는 남고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의 화폐들이 마르크로 흡수된다면 「헤게모니」라는 말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 독일 정부는 위와 정반대로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통화의 안정과 유럽중앙은행의 불종속을 원합니다. ­평소 장관께서는 경제연합 못지 않게 정치적 연합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일하고 계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식 모델,즉 연방제 구조가 유럽의 정치적 연합에 타당하다고 보시는지. ▲그 누구도 유럽의 중앙국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은 전 유럽의 연방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독일의 연방제모델이 유럽에 잘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통일독일을 미국ㆍ소련과 함께 세계강국으로 보시는지요.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기존 강대국들의 역할도 변할 것으로 봅니다. 세계는 유엔을 중심으로 상호협력해야 합니다. 모든 국가들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제3세계문제ㆍ군축문제ㆍ환경오염문제 등 세계평화를 위해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통일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최근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의 변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은 오랜시간 동안의꾸준한 노력과 준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획기적 사건이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변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기존 이데올로기의 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국민은 1950년부터 3년간의 전쟁으로 분단의 아픔이 더욱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북한 국민 모두 진실하게 통일을 염원하고 추진해 나간다면 그리고 일선의 정치인들이 책임있게 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한반도에도 통일의 그날이 꼭 오리라 확신합니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베를린의 한국교민들이 본 통일 현지좌담

    ◎“「중단없는 교류」가 통독 앞당겼다”/60년대부터 동독지원… 공감대 넓혀가/「반세기의 벽」실감… 국민성격까지 차이/“장벽 무너질 땐 남다른 감회… 통일은 개인업적 될 수 없어” 분단 45년만에 통일을 맞은 통독은 이제 단일국가로서의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같은 냉전체제의 유물이었던 우리나라의 분단과는 달리 양쪽체제가 재결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주어진 통일이 아니라 얻어낸 통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통일과정을 지켜본 대부분 한국교민들의 소감이다. 현재 베를린에만 3천5백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통일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험했으며 남다른 통일염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독일통일의 원동력,통일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이일남 (베를린 한인학교 교장) △조종식 (베를린 한인학교 추진위원장) △박춘식 (재독한국과기자협 회장) △정동양 (한인회장) △이석순 (베를린 한국간호협 부회장) ▲박춘식=지난해 11월 동독 국민들의 대탈출로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전됐지만 사실 독일은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양쪽 체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중단없는 교류를 추진해 왔으며 이러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월3일 독일의 통일에 앞서 동독축구팀이 분데스리가에 편입되고 2개밖에 없는 동독 아이스하키팀이 서독협회에 들어와 대표팀으로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통일작업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우월성 확인 ▲이일남=이번 독일통일은 그동안 반세기동안에 걸친 사회주의 운영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 비교가 끝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온 서독정부는 60년대부터 동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동독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서독측이 동독측에 너그럽게 대해 왔다는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일례로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독정부가 경제적인 이유로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차량들의 검문을 강화하면 그 이유를 눈치채고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동독정부는 모르는 척 하며 종전과 마찬가지로 서독지역과 서베를린을 오가는 차량통행에 대한 검문을 완화했습니다. ○서독 자신감이 원동력 ▲조종식=상대에게 관대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남한이 큰 홍수가 나 북한이 쌀과 옷감을 보내왔을 때 쌀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감의 질이 어떻다느니 하는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것을 보고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흘린 것인지 신문이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통일의식을 갖고 상대방에 너그러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0년을 넘게 독일에 살아왔지만 이곳 매스컴들이 생색을 내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동독국민들은 그러나 어떤 체제가 살기 좋은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대탈출로,또 통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독은 자신감을 갖고 동독의 투정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정동양=이곳에서 볼 때 우리정부의 시책에 현실감각이 결여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동서독이 이미 통일을 하기로 합의를 하고 지난 7월1일 경제통합을 이루어 동서베를린의 왕래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음에도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과 여행자들은 동베를린에 가기 위해서는 현지공관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해 많은 불편을 주었습니다. 분단국의 국민으로 통일이 되는 나라에 찾아와 여러곳을 보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는 동베를린이 동구권에 속하는 만큼 동구권 여행지침에 따라 동베를린을 여행할 경우 외교관ㆍ언론인들은 사후신고를,일반인은 사전신고를 의무화해 현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간섭을 고수해왔습니다. ○통일 뒷처리 완벽 준비 ▲이일남=최근 베를린 시내에는 전 동독지역에서 관광을 하러 오거나 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는 전 서독 사람들이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때문에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나쁘게 말하면 까졌다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전 동독 주민들은 순박하고 어수룩한 면이 있을 정도로 행동과 표정만 보아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동부지방 사람들은 가난에 익숙해 인내심이 강하고 관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체험론입니다. 이에 비해 서부지방 사람은 풍족한 생활을 하다보니 까다롭고 외국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민족이 반세기 가까이 떨어져 생활을 하다보니 국민들의 성격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이석순=서독정부는 통일에 대비해 말없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도로ㆍ통신ㆍ주택확충을 위해 서독은 앞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서독국민들은 더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정부는 장기간에 걸친 재정적인 축적으로 국민들의 납세를 최소화하고 동독의 재건에 신속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현재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도 3년을 먹고 지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가기도 전에 흥청망청 지내는 바람에 막상 통일이 될 경우 통일 뒤처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군요. 최근 통일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에 대비한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동양=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분단국인 한국인만큼 독일통일에 대한 감정이 착찹했던 국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마르크시즘이 독일에서 발전돼 한세기에 걸쳐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시험의 시기를 거쳤는데 처음 시작한 국가들에서 자체내의 문제점들이 곪아터져 막을 내리는 마당에 북한과 중국에서만 아직까지 변화의 징조가 없다는 것이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출발한 사회주의가 동양국가에서 열매를 맺을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완 크게 다른 여건 ▲조종식=우리나라에서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지만 해방후 남한의 권력구조가 소수의 그룹으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문제도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방정책은 아데나워 총리시절부터 추진돼 브란트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같은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총리시대에 꽃을 피운 독일통일이 특정개인이나 특정정당의 성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민과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정동양=제가 독일에 올때는 그야말로 잘 살아보겠다는 한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 잘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통일에서 보다시피 동독의 모든제도가 서독에 통합흡수됨으로써 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는 시장경제이나 사실은 사회시장경제체제 입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와 다르다 하겠습니다. 국가가 세제를 통해 꾸준히 사회복지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제에 대해서는 자체내의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 내부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정부가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 찬스를 재빨리 나꿔챘다고나 할까요. ○한반도에도 기쁨 올 것 ▲이일남=그에 비해 우리의 정치상황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당쟁차원에서 다루다보니 그럴듯한 제안들만 풍성할 뿐 힘의 축적이나 발전이 없습니다. ▲이석순=최근 포츠담 경찰국장이 공산치하에서의 경찰국장을 했다는 데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포츠담시 당국은 한달여의 공백기간이 있음에도 통일정부가 경찰국장을 임명해야 한다며 새국장의 임명을 미룬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국장이 사임한 뒤 누구도 그의 비리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춘식=독일통일이 우리에게는 부러움을 주지만 우리도 어느땐가 통일의 기쁨을 누릴 때가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해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무척 다른 것만은 사실입니다.
  • “바 기구 군사조직 내년초 해체”/고르비 보좌관

    ◎새달 정상회담서 정치동맹전환 논의 【베를린 로이터 연합 특약】 소련의 한 고위 장성은 지난 4일 소련이 주도하고 있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내년초쯤 군사조직을 해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좌관인 세르게이 아크로메예프장군은 이날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군사동맹체로서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내년초 그 활동을 종료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 소련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위상변화일정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6개국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정치기구로 존속될 것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동독이 서독과 통합함에 따라 현재 6개국의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헝가리도 탈퇴할 계획으로 있다. 아크로메예프장군은 또 『비록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될 경우에도 소련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나토가 군사기구로 존속하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한편 6개 회원국은 다음달 3,4일쯤 헝가리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 통독의회,새 선거법 채택/“양독지역서 5% 득표땐 의석 배분”

    ◎개원 첫날부터 총선 정책 공방/“분단 45년의 벽 융화로 극복” 콜총리/“동독 외면한 공약 남발”비난 라퐁텐 【본 AP 연합】 통일독일 출범 3일째를 맞은 5일 전독일 회의가 본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선거법을 채택함으로써 오는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이 당초 계획대로 실시될 수 있게 됐다. 이날 전독일 의회에서 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된 새로운 선거법은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은 동서독간의 선거협약을 대체하게 된다. 새로운 선거법은 통일 독일을 동서독으로 선거구를 양분해 동독출신의 의원은 동독지역 유권자의 5% 지지만 얻으면 원내로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선거법에 따라 민사당과 같은 소규모 정당들도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동서독은 통일에 앞서 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전체유권자 가운데 5%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는 내용의 선거협약에 합의한 바 있었으나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파결을 받음으로써 12월2일의 전독 총선실시가 불투명했었다. 한편이날 회의는 지난달 12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2+4」회담에서 체결된 2차대전 전승국들의 독일에 대한 권리를 종식시키는 협약을 승인했다. 【베를린 로이터 AP 연합】 독일 통일에 따라 구동독출신의 일부 각료와 의원들이 통일된 연방정부에 합류한 가운데 4일 전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전 독일의회(하원)가 구제국의회(라이히스타크) 건물에서 개원,오는 12월의 전독 총선을 겨냥한 정책대결로 첫 통일의정을 장식했다. 회의 벽두 새로 연방정부에 무임소 각료로 입각한 5명의 동독출신 장관들이 콜 총리앞에서 입각선서를 한 가운데 시작한 이날 회의는 나치독일과 스탈린 통치,베를린 장벽에서의 희생자들에 대한 의원들의 추모 묵념과 함께 진행됐다. 서독출신 의원 5백19명과 새로 연방의회에 가담한 1백44명의 동독 의원들을 합쳐 모두 6백63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된 이날 회의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이 국내외에서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지난 45년간 분단의 상처를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 모든 독일인들이 자기희생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역설했으며 사민당과 동독의 구공산당 지도자들은 콜총리와 기민당의 통일정책 등을 격렬히 비난하는 등 통일의회 개원 첫날부터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열띤 설전이 불을 뿜었다. 콜 총리는 통일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면서 『독일을 문화ㆍ경제ㆍ사회 등 제반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융화시키는 일이 앞으로 독일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흑ㆍ적ㆍ황의 독일 3색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베를린의 구제국 의회에서 이날 상오 10시 개회된 회의에서 그는 특히 『독일역사의 양지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지난 40년동안 피폐화한 것을 몇주나 몇달안에 훌륭한 상태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나 이를 빠른 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사민당의 오스카 라퐁텐의원은 그러나 콜 총리가 급속한 통일이 동독측에 가져온 고난을 외면한채 대독일만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12월 총선에서 콜 총리와 대결할 라퐁텐의원은 또 콜총리가 세금인상으로만 가능한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등 통일독일 의회는 개원 첫날부터 사실상의 선거전으로 치달았다.
  • 엄청난 통독비용… 향후 10년간 1조불 든다

    ◎재원마련에 고심하는 독일 NYT 진단/세수 늘려도 예산적자… 국제 금융질서에 파장 클 듯 독일국민들은 오랜 숙원이던 통일을 이루게 됐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느냐로 고심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지는 최근 통일경비조달문제로 고심하는 서독의 모습을 전하면서 통독비용문제는 단순한 독일차원을 넘어 국제금융체계에 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통일은 물론 큰 기대도 갖게 해주지만 통일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골치아픈 문제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콜총리에서부터 평범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지금 독일사람들의 머리속은 오로지 통일비용은 얼마나 들것이며 또 이를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공식통일이 이루어졌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관리들과 경제 학자들은 최종 비용이 향후 10년에 걸쳐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경비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다. 통일과 함께 공무원 인건비ㆍ사회보장기금ㆍ국민보건등 과거 동독이 떠맡았던 모든 금융적 책무를 서독이 넘겨받는다. 이와 동시에 서독은 동독의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을 재건하고 침체된 산업을 재편하는 데 드는 비용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 5∼10년안에 동독의 시설들을 서독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선 공장과 도로ㆍ철도ㆍ공항ㆍ항구ㆍ운하는 물론 학교와 공공건물ㆍ공공주택 등 모든 것을 재건해야 하며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한다. 한편 새 환경속에서 경쟁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많은 동독기업들이 폐업할 게 확실하므로 사회보장기금과 실업수당의 지급도 늘어날게 틀림없다. 문제는 이런 모든 비용을 어디서 조달하느냐는 것이다. 콜정부는 민간부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조세증가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오 바이겔 서독 재무장관은 통독비용의 조달을 위해 연방예산적자가 사상 최대규모로까지 팽창하는 것을 허용하는 한편 서독의 자본시장에서 그 부족분을 메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은 서독에 자금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수출호조에따른 경제활성화로 서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중의 하나가 됐다. 그러나 동독은 이와 반대다. 동독경제는 계속된 침체로 파탄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기업은 40년에 걸친 공산독재와 부패가 남긴 채무속에 허덕이고 있다. 다른 많은 독일관리들처럼 블룸장관도 동독의 경제회복이 빠른 시일내에 이뤄지리란 과거의 예측을 포기했다. 과거엔 서독이 2차대전이후 이뤄낸 것과 같은 새로운 경제기적이 동독에서도 이뤄질 것이란 추측이 많았다. 바이겔재무장관은 통일비용 충당을 위해 서베를린에의 보조금 지급(연간 1백30억달러)과 같은 정부예산을 삭감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세수증대는 모든 수단이 다 실패한 뒤에 마지막으로 쓸 것이라면서 조세증대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같은 정부의 말을 별로 믿고 있지 않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결과 서독국민의 84%는 통일비용이 결국 조세증대를 부를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독기업은 동독에의 투자에 소극적이다. 이들은 그 이유로 동독에서의소유권 불확실,공산독재시대의 습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관료주의의 상존 등을 들고 있다. 동서독 모두에서 통일후 국력이 통일전 동서독의 힘을 단순히 합한 것보다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늘고 있다. 서독은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외국기업들이 동독 재건작업에 참여하길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의 참여여부에 관계없이 통독에 따른 비용문제는 독일차원을 떠나 국제금융체계에 영향을 미칠게 틀림없다. 강력한 자본수출국이었던 서독의 대외자본 흐름이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 새 독일 출범하던 날 이기백특파원 현장르포

    ◎“세계평화 위해 봉사”… 1백만인파 환호/동ㆍ서독인 어깨동무 밤새 거리누벼/“인간의 존엄성 구현하는 국가”선언/“분단위로”… 한국인엔 음식값 절반 할인도 하늘에는 영광,땅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하늘을 수 놓았으며 광장을 가득메운 시민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ㆍ통일』을 외쳐댔다. 3일 통일을 맞은 독일은 2일부터 4일까지의 통일축제기간 전국이 열광속에서 지낸데 이어 5일 상오 10시 제국의회건물에서 동서독 합동의회를 가짐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했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던 3일 0시 베를린시내 브란덴부르크문 주변에서는 이미 초저녁부터 전국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가 손에 손을 잡고 국가인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벨 알레스」(독일이여,이세상 모든 것 위에)를 힘차게 불러대는 가운데 제국의회 앞에 설치된 41m 높이의 국기게양대에 새독일의 흑ㆍ적ㆍ황색의 새국기가 게양됐다. 가로ㆍ세로 10m,6m의 대형국기가 올라가자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를 했으며 폭죽과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아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날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한 운텐덴린덴가와 프리드리히가에는 동서독에서 몰려든 1백만여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혼잡했으며 통일의 순간에는 군중들의 함성과 폭죽의 초연이 가득했다. ○…이날도 역시 통일 전야인 2일과 마찬가지로 2천여명의 예술가ㆍ음악가ㆍ무용가들이 축제로 곳곳에 마련된 수십군데의 임시무대에서 춤과 음악의 향연을 벌여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며 수백군데의 노상 식당과 주점에는 세계 각국의 각종 음식과 주류들이 선을 보여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이들 노상 음식점중에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교민 조중식씨가 차린 한국식 포장마차도 있었는데 조씨는 빈대떡ㆍ만두ㆍ불고기ㆍ잡채 등 네가지 음식을 함께 담은 「혼합한국요리」 한 접시를 10마르크씩에 팔고 있었고 간혹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는 『통일을 못이룬 슬픔을 위로한다』는 이유를 달며 반값인 5마르크씩에 제공했다. ○…마리엔교회의 합동통일 예배가 끝난후 3일 상오 11시부터 필하모니에서거행된 통일국가행사에서 자비네 베르그만 폴 전 동독인민의회의장,리타 쥐스무트 연방하원의장,발터 몸퍼 연방상원의장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각각 연설과 기념사를 통해 독일과 유럽의 단합을 촉구. 한편 메지에르 동독 총리도 이날 통일수시간 전에 가진 고별 방송연설에서 『전제정치를 대신해 법과 민주주의,인간의 존엄을 구현하는 국가가 들어선다』고 독일통일의 의의를 선언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라이히슈탁 앞의 야외무대에서 거리로 나온 군중들에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통일유럽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선언.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지도하의 소련과 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및 『억압과 독재를 부수고 과감히 떨쳐 일어난』 전 동독 국민들에 감사의 뜻을 표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4일 통일 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이날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콜 총리는 통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모든 독일인은 통일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인 독일 통일 이후 동독대표 1백44명이 추가돼 6백63명으로 확대된 의회에서 「독일역사의 밝은 부분」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 사이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면서 『모든 독일인이 문화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융화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가장 큰 과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에 대한 독일의 충성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유럽통화의 단일화 실현속도를 둘러싼 유럽공동체(EC)내의 논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 주동독 북한공관 폐쇄

    【베를린 연합】 동베를린에 주재해 왔던 북한 대사관이 3일 현판을 내리고 폐쇄됐다. 이는 독일통일과 동독 소멸로 동독이 갖고 있던 1백35개국과의 외교관계 역시 모두 사라진데 따른 것이다. 동베를린 글링카가 7번지의 북한대사관에는 2일밤까지도 철창살 출입문 옆에 「조선민주인민공화국대사관」이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었으나 3일 상오에는 이 현판이 사라졌다.
  • 외언내언

    통일독일을 경축하는 1백만 독일인들의 함성과 환호. 베를린시 의사당앞 광장의 감격이 화면으로,활자로 전해져 온다. 통일독일을 두고는 피해당사국들 사이에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다. ◆『…헨델,라이프니츠,괴테,비스마르크…,그들은 독일류의 강력한 전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독일은 온갖 대립 사이를 의념없이 살아 나오고 유한 강을 터득한 가운데 신념이나 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를 서로 접합ㆍ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를 보전하고 있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884)에서 하고 있는 말. 오늘의 동서독일 하나됨도 니체의 이런 지적에 연유함인가. ◆지금부터 5년전쯤,헬무트 콜 수상을 실랄하게 꼬집는 「농담집」 4권이 서독을 휩쓸었다. 동서독이 대치한 상황 아래서 서독의 방첩책임자 티트게가 동독으로 망명하고 심지어 총리의 여비서 부부까지 망명하자 서독국민들은 울화가 치밀었던 것. 「농담집」은 그 분풀이를 하면서 콜 총리를 완전히 「바보 천치」로 묘사한다.그것을 읽은 콜 총리는 『너무 재미있어 나도 웃었다』는 여유. 그럴 수 있는 체제 속의 대기였기에 오늘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 ◆통일이 되었다 해도 안팎의 시련은 지금부터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거인」이 된 독일이 세계평화에의 길에 어떻게 이바지해 가느냐 하는 점. 특히 주변 피해 당사국들은 거기 주목한다. 그 점에서 독일인의 심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던 독일인 하이네의 경고도 재음미해야 겠다.­『프랑스의 애국주의가 전문명국을 포용하는 데 비해 독일의 애정의 실체는 이렇다.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냉기 속의 가죽과 같이 수축하며 외국 것을 증오하면서 세계시민도 유럽인도 아닌 편협한 독일인이기를 원할 뿐 이다』(「로망파」제1장). ◆누가 뭐라해도 오늘의 결과는 게르만족의 예지와 애국애족정신에 기인하는 것. 우리의 남과북­예지도 애국애족정신도 없다 할 것인가.
  • 통일독일 새 출범/분단 45년 종식… 동독 소멸

    ◎전독의회,베를린서 첫 회의/초대 총리에 콜… 「동쪽 인사5명」 입각 【베를린=이기백 특파원】 동서독이 지난 45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의 독일로 재탄생했다. 서독은 3일 새벽 0시를 기해 동독을 흡수통합했고 하나가 된 통일독일은 현재의 서독 국명인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동서독은 이날 0시 새 수도가 된 베를린시 중심가 의사당 앞 광장에서 통일독일의 초대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와 로타르 드 메지에르 동독 총리 등 동서독의 주요 지도자와 1백만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기념식을 갖고 대형 독일 3색기를 게양,동서독의 통일과 독일의 출범을 선포했다. 이어서 4일 상오에는 구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서독의원 5백19명,동독의원 1백44명 등 양독의원 6백63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독일의 첫 의회가 개원됐다. 이날 첫 의회에서 드 메지에르 전 동 독총리 등 5명의 동독 각료가 무임소장관으로 취임선서함으로써 통일정부가 공식 출범했으며 콜총리는 첫 연설에서 통일독일이 서방세계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했다. 통일독일의 출범이 선포되던 3일 새벽 0시 독일전역의 성당과 교회에서는 「자유의 종」이 울려퍼졌다. 베를린시가지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새 독일국가로 결정된 구서독 국가 제3절을 합창했고 수만발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미영불소 등 전승 4개국은 이날 독일의 통일을 알리는 기념식 전의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베를린에 대한 관할권을 공식적으로 독일측에 이양,독일의 통일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독일은 인구 7천8백만명,국토면적 35만7천㎢의 대국으로 등장했다. 독일은 오는 12월2일 전독총선을 실시,의회를 구성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통일독일의 총리직을 맡는다. 독일지도자들은 이날 세계지도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그들의 강력한 새 국가가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다짐했으며 그들의 동포들에게는 나치의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베를린 외곽의 슈트라우스버그에서 벌어진 식전에서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국방장관은 새로 흡수된 군인들에게이제 그들이 나토(북대서양조양기구)의 일원이 됐다고 말했다. 구동독 인민군은 이날 정식으로 전서독군에 흡수되어 새로운 전독군의 일부가 됐다. 한편 독일정부 대변인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독소 우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오는 11월초 독일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독의 11개주에 동독의 5개주가 흡수돼 모두 16개주로 구성되는 통일독일은 유럽 거대국가로 새롭게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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