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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1. 정수장학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장학회다.5·16 군사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부산의 유력 사업가이던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모태로 5·16 장학회로 출범했다. 삼화고무와 부산일보를 운영하던 김지태씨는 재산해외도피 혐의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두달정도 구금생활을 했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쓰고 며칠뒤 풀려났다. 서류상으로는 김씨가 자진납부한 것으로 돼 있으나, 유족들은 부산군수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라고 도장을 찍었다면서 명백한 강탈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서류상은 자진납부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실재와 다른, 물목(物目·물건의 목록)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는 김씨의 비망록이 발견돼 이런 의혹은 증폭됐다. 군부세력이 김 사장으로부터 부일장학회를 강탈했는지, 아니면 헌납과정에서 강제력이 동원됐는지에 조사의 관건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장학회는 문화방송 주식의 30%와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다. 2. 동백림 사건 1967년 7월8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사건이라며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발표했다. 고 윤이상씨와 재 프랑스화가인 이응로씨 등 194명이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는 것이다.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을 방문해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발표됐다. 몇몇 독일 유학생들이 북한 또는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인 것처럼 조작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당시에는 3선 개헌을 앞두고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며 대학가 등에서는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런 점과의 연계성도 조사대상이 될 것 같다. 3.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도예종, 여정남 등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한 이후 불과 20여시간 만인 4월 9일 오전 6시에 이들의 사형은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반 유신체제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한 상황에서 저질러졌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며 엄중하게 항의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253명 중 유인태 의원, 이철 전 의원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에게 사형, 징역 15년∼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됐지만 국내외적인 압력에 못이긴 박정희 정권은 1975년 2월 대부분을 석방했다. 사건 진실규명의 핵심은 박정희 정권에 의한 용공 조작여부에 있다.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한 사건 조작, 군사법원 재판부의 공판조서 허위 작성 의혹 등도 진실규명이 필요한 대목들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공안부 검사들마저도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는 ‘항명파동’이 일어났고 그 중 3명은 사표를 던졌다. 4.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된 사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씨는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반유신 활동을 벌였다. 사건 당일 도쿄에서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 간 김씨는 한국 정보기관원에 의해 납치됐다가 129시간 만에 서울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미국이 이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또 배를 이용해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김씨를 수장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5.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청와대 근처 지하실에서 사살됐는지, 센강에 던져졌는지, 아니면….’1979년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7일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행방불명됐고 프랑스측이 함께 수사했음에도 아직까지 미제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박정희 정권 역대 정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을 역임하는 등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으나 내부 권력 투쟁으로 밀려난 뒤 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1977년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중이던 미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반(反)박정희’ 행보를 계속했다. 6.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1987년 11월29일 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3대 대선 투표일을 불과 하루 앞둔 12월 15일 북한 특수공작원인 ‘폭파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압송돼 왔다. 대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이 기내에 라디오 시한폭탄을 설치, 아부다비에서 내렸으며 김승일은 체포직전 자살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7. 중부지역당 사건 1992년 10월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터진 ‘초대형 간첩단 사건’.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지목된 황인오씨가 구속되는 등 62명이 구속되고 300여명이 수배됐다. 단순한 남한내 조직이 아니라 북한 권력서열 22위라는 ‘남파 여간첩 이선실’이 등장했고 전국적으로 노동계, 학생, 단체 등에서 300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한 지하조직으로 발표됐다. 이는 최근 이철우 의원의 ‘간첩 논란’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 사건이지만 사건 연루자들은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고문, 사건 조작 여부 등이 풀어야할 부분들이다.
  • 鄭통일 “북핵 포기땐 포괄 지원”

    鄭통일 “북핵 포기땐 포괄 지원”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28일 주독 한국대사관과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연구소가 독일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과정에 진입하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면서 “핵문제 해결이 궤도에 진입하면 북한 경제회생의 핵심인 에너지 분야의 다각적인 협력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남북대화가 복원되면 북한이 중점 추진사업으로 설정한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 식량과 비료 등 포괄적 농업협력을 추진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하루 전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해 광복 60주년과 6·15 5주년의 의미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와 북·미의 역할, 남북관계의 발전방안에 대해 강연했다. 정 장관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평화 전략’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전쟁 불가 ▲평화 공존 ▲공동 번영 등을 대북정책의 핵심방향으로 삼을 것임을 역설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녹색의자’ 베를린영화제 초청

    박철수 감독의 ‘녹색의자’(영어 제목 Green Chair)가 새달 10∼20일 독일에서 열리는 제 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이 영화 관계자는 “‘녹색의자’가 파노라마 섹션에 추가로 초청됐으며, 초청 사실은 새달 1일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86년 이후 올해로 20회째인 파노라마 섹션은 정치·사회적 변화를 다룬 영화들을 주로 소개하는 분야로, 박철수 감독은 ‘301,302’(96년),‘학생부군신위’(97년),‘산부인과’(98년)에 이어 이 부문에서만 네번째 초청받았다.‘녹색의자’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유부녀와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파격적인 멜로 영화로, 상반기중 개봉할 예정이다. 한편 ‘녹색의자’를 포함해 올해 베를린영화제에는 11편의 한국영화가 출품됐으나 경쟁부문에는 한편도 초청받지 못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베를린영화제 ‘임권택 감독 특별회고전’

    새달 10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제 5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감독 가운데 최초로 ‘임권택 감독 특별회고전’(Tribute to IM Kwon-taek)이 열린다. 동시에 영화제에서는 회고전을 기념해 임 감독에게 특별공로상(Berlinale Camera)을 수여한다. 이번 회고전은 일반 회고전 섹션(Retrospective)과 차별되는 것으로,99편이나 남긴 임 감독의 영화인생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만 열리는 특별 섹션. 새달 12일 ‘춘향뎐’을 시작으로 개막하는 이번 회고전에서는 영화제 기간동안 7편의 영화를, 영화제 이후 베를린의 아르세날 극장에서 3월 말까지 7편을 포함한 모두 2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20편에는 아직까지 외국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임 감독의 60∼70년대 초창기 작품들도 포함됐다. 특히 1982년 ‘만다라’가 제32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국제무대에 첫 선을 보인바 있는 임 감독은, 한국 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가지게 된다. 지난 86년 신설된 이 상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렌 바콜, 메릴 스트립, 케이 쿠마이, 할 로치, 앤 휴이, 코스타 가브라스 등 세계 영화계에서 공로가 인정된 소수만이 수상했던 상이다. 영화제 기간 임 감독은 현지를 방문해 ‘감독과의 대화’와 기념 리셉션, 시상식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임 감독은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로도 큰 영광”이라며 “함께 일했던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관타나모 수감자 집단 자살 시도”

    |베를린 연합|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수감자들이 지난 2003년 집단 자살을 시도했으며, 지금까지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한 사례가 모두 수백건에 이른다고 25일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했다. 슈피겔 인터넷판은 이러한 집단 자살 시도가 미국이 2003년부터 재판도 없이 이들을 구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데 항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이 사실을 미군 소식통이 미 언론에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슈피겔에 따르면 2003년 8월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 사이에만 수감자 23명이 감옥 안에서 옷으로 목을 매어 집단 자살을 시도하는 등 2003년 한해 동안의 자살과 자해 시도만도 각각 120건과 230건에 달했다.
  • “韓人, 독일서 무장 인질극”

    |베를린 연합|한국인으로 알려진 한 남자가 21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노이스시(市)에서 무장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고 24시간 뉴스전문 방송 N24가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독일 시민권을 가진 32세의 한국계로 알려진 이 남자는 마약거래 혐의를 잡고 현장을 덮친 경찰관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다 총을 쐈으며 경찰관 1명이 총에 맞았다. 이 과정에서 흉기에 찔린 경찰관 1명은 빠져 나왔으나 총에 맞은 경찰은 인질로 붙잡혀 있다고 경찰 대변인은 밝혔다. 사건 현장인 다가구주택 내에 이 남자 외에 다른 일당이 있는지와 인질로 잡힌 경찰관의 용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 대변인은 설명했다.
  •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음

    영화사에서는 흔히 영화의 기원을 100여년 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벌인 활동사진 이벤트에서 찾는다. 그러나 영화는 사실상 뤼미에르 형제보다 두 달 앞서 베를린에서도 막스 스클라다노프스키에 의해 상영됐다. 움직이는 환영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카메라 옵스쿠라(어둠상자) 실험이나 18세기 에티엔 가스파르 로베르송의 판타스마고리아(마술환등) 같은 선구적인 실험들도 있었다. 요컨대 영화는 한 번의 ‘빅 뱅’으로 탄생한 게 아니라 여러 사건들의 연속 속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음, 이순호 등 옮김, 열린책들 펴냄)는 이처럼 열린 시각으로 세계 영화의 역사를 다룬다.1000쪽 가까운 분량에 색인 항목만 1만개가 넘는 이 책은 무엇보다 백과사전적인 서술의 방대함이 독자를 압도한다. 전 세계 80여명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대중의 성장과 양차대전 등 20세기를 특징짓는 사건들이 영화에 미친 영향이나 1980년대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나타나는 백인 피해의식의 배경 등을 살핀 글들은 영화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영화는 다른 산업과 달리 개인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개인, 즉 스타를 창조한다. 영화사에서 스타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책에는 위대한 영화인 132명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설명보다 천재 감독 오슨 웰스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 더 보탬이 된다는 게 이 책의 입장이다.5만 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럼즈펠드 獨기피?

    |베를린 연합|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다음달 11∼13일 열리는 제41회 뮌헨 연례안보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최종 통보한 것은 자신이 전쟁범죄자로 기소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21일 독일 언론들이 비꼬았다. 호르스트 텔취크 뮌헨 안보회의 조직위원장은 이날 뮌헨지역 일간지 ‘아벤트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국방부 서열 3위인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담당 차관을 대신 참석시키겠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인권단체 헌법권리센터(CCR)와 독일 변호사단체가 지난해 11월 럼즈펠드 장관 등에게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책임을 묻는 형사 고발장을 독일 연방검찰에 제출했었다. 이들 단체가 독일에 고발장을 접수시킨 것은, 독일 형법이 전쟁 및 반인륜 범죄 등에 대해서는 범죄가 독일 밖에서 이뤄지고 행위자가 독일인이 아니라도 기소할 수 있도록 재판 관할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뮌헨 연례안보회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국가의 국방 및 외무장관 등 각료 40명과 민간연구소 관계자, 안보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하는 민간 차원의 가장 권위있는 국제안보 협의기구이다. 텔취크 위원장은 “이란 문제 등 많은 민감한 현안이 있는데 럼즈펠드 장관이 불참하는 것에 많은 유럽측 참가자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 독일 언론은 럼즈펠드 장관이 설사 기소되지 않더라도 이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부상되는 일을 원치 않은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뮌헨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유럽측으로부터 공격만 받고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도 분석했다.
  • 서울시향 “뉴욕필과 어깨 겨눈다”

    서울시립 교향악단이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베를린 필하모니오케스트라나 뉴욕필에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탈바꿈한다. 또 세계적인 상임지휘자도 영입한다. 한국원로교향악단 이진수 이사장 등 각계 인사 20명은 21일 재단법인 서울시립 교향악단 설립 발기인대회를 갖고 “세종문화회관 소속인 서울시향을 독립적인 운영·홍보체계를 갖춘 재단법인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시향이 재단법인화가 되면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서울시향의 재단법인 출범과 함께 세계적인 상임지휘자를 영입한다는 계획에 따라 현재 후보 접촉을 하고 있다. 시향과 협연 경험이 있는 체코필 종신지휘자 블라디미르 발렉, 애틀랜타 심포니를 미국 10대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린 요엘 레비 등이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오는 3월 중순까지 상임지휘자와 부지휘자 영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 단원평가제 등 단원들의 기량을 끌어올릴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단원들의 처우도 대폭 개선한다. 또 연주 횟수, 경영 실적 등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할 방침이다. 이밖에 정기공연은 물론 시민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대폭 늘려 시민들이 부담없이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서울시향 전용 음악당을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시는 이미 시향의 재단화설립에 관한 조례개정안에 대한 입법 예고를 마친 상태다. 시의회 의결을 거쳐 조례가 공포되면 법인설립 등기를 끝낸 뒤 오는 7월쯤 창단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시향의 재단화 과정에서 현재 시향에 소속된 연주자 가운데 상당수가 물갈이 될 것으로 알려져 진통이 예상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입방아에 오른 ‘한청→서우얼’

    서울신문이 중국 외교부 신문사(新聞司)에 공식으로 등재된 이름은 ‘한청르바오(漢城日報)다. 수도 서울을 표기하는 한자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통용되는 ‘한청(漢城)’이란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는 19일 수도 서울의 중국명 표기를 한청에서 ‘서우얼(首爾)’로 변경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관영 신화사와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은 20일 서울의 한자명 표기 변경에 대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발언과 배경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신화사는 특별한 논평없이 “서울시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漢城)가 서울의 실제 발음과 달라 혼선을 빚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과 비슷한 서우얼(首爾)로 변경하기로 했다.”는 발표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워싱턴(華盛頓), 베를린(柏林), 카이로(開羅) 등 중국에서 통용되는 수도명의 사례도 함께 전했다. 반면 후베이(湖北)에서 발행되는 추톈(楚天)도시보 등 일부 언론들은 “국제관례에 따라 서울의 중국명 표기를 바꿨지만 극심한 혼란과 불편을 가져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청에 익숙한 중국대륙과 타이완, 마카오, 홍콩, 동남아 등 15억명의 한자문화권에 새로운 이름을 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한문화(漢文化)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인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한청(漢城)’의 발음은 기세가 있으나 서우얼(首爾)은 그렇지 못하다.”,“한국인들이 뭐라고 부르더라도 우리는 한청으로 부르자.”는 등 ‘자국문화 중심’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일부는 “대국답게 한국의 선택을 존중하자.”는 반응도 나왔지만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서울이란 엄연한 이름이 있음에도 ‘한(漢)나라의 도시(城)’란 의미의 한성(漢城)으로 불리는 것은 모양새는 물론이고 국가적 자존심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안이다. 이 시장의 말대로 ‘서우얼’로의 변화는 ‘국제관례나 세계사회의 공통된 인식’에 따른 정당성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우얼’의 낯선 이름이 중화권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될 때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국인 저변에 깔려 있는 문화적 배타성을 극복하고 한청을 대신한 ‘서우얼 이름 되찾기’에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 일반인들이 적극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oilman@seoul.co.kr
  • [함혜리특파원 유럽은 지금] 되살아나는 나치 망령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나치 때문에 유럽이 시끄럽다. 영국에서는 얼마전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20) 왕자가 친구 생일파티 가장무도회에 카키색의 나치 제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 ‘선’지 표지에 실리면서 왕자의 분별력 없는 행동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해리 왕자의 무분별한 행동에 크게 분노한 찰스 왕세자는 해리 왕자에게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라고 지시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76) 당수가 최근 극우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두고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유대인단체와 반 인종차별주의단체가 격분한 것은 물론 좌우 할 것 없이 정계가 일제히 르펜을 비난하고 나섰다. 급기야 검찰은 르펜의 발언이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는 발언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고 1년의 징역형과 4만 50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는 RTL 라디오와 회견에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을 다른 나라 점령과 비교한다면 고통이 가장 경미했던 곳은 프랑스였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전후 60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런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아돌프 히틀러 최후의 날들을 그린 독일 영화 ‘추락’이 프랑스 개봉과 함께 논쟁의 불씨로 떠올랐다.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히틀러가 최후 12일 동안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현실에 번민하며 자살을 준비하는 인간적 면모를 2시간30분짜리 영상물에 부각시켰다. 이 영화는 독일군이 소련군과 연합군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구도로 짜여 있어 역사적 내막을 잘 모르는 관객들, 특히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이라면 끔찍한 전쟁 범죄자와 측근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lotus@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EBS 오후 11시)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사는 게리는 히피 흉내를 내고 소매치기나 일삼는 청년. 아버지 주세페는 건달 생활을 청산 시키기 위해 게리를 영국으로 보낸다. 런던에서 게리는 친구 폴과 허름한 히피숙소에 거처를 마련한다. 어느날 IRA는 영국 런던의 한 레스토랑을 폭파했고, 바로 그 시각에 게리와 폴은 멀지 않은 곳에서 창녀의 지갑을 털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테러방지 특별법이 통과되고, 이듬해 둘은 엉뚱하게도 테러범으로 체포된다. 육체적·심리적인 고문에 못이겨 제리는 이미 작성된 자백서에 사인을 하고, 이어 공범으로 아버지와 고모가 체포된다. 감옥에서 모든 걸 포기한 아들과 정의를 믿는 아버지. 하지만 서서히 제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맞서 싸우는 법을 배워 간다. 우연히 변호사인 가렛이 이 사건의 기록을 보게 되면서 14년이 지난 사건을 재수사한다. 가렛이 그 당시 비밀시된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게리의 무죄가 증명되지만, 이 기쁜 소식은 한 발짝 늦었다. 영화는 무모한 공권력을 비판하는 칼날로 부정(父情)을 제시한다.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를 사적인 소재로 풀어가면서, 역사 속 투쟁에 명분이 아닌 피와 살을 덧붙이는 것. 한 가족의 사랑과 개인의 성장과 역사적 진보를 평행선에 놓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14년 동안 별다른 증거없이 복역한 제리 콘론의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프라하의 봄’‘갱스 오브 뉴욕’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제리를 연기했고,‘나의 왼발’로 데뷔한 짐 셰리던 감독이 연출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1993년 작품.133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아나콘다(MBC 밤 12시30분) 인류학자 케일은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함께 아나콘다라는 뱀을 신의 파수꾼으로 신봉하는 아마존의 쉬리샤마족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난파된 보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샤론을 만난다. 샤론은 자신을 살려준 대가로 이들의 가이드를 자청하고, 이때부터 의문의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전문 밀렵꾼인 샤론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이들은 이미 아나콘다의 근거지로 들어간 뒤였다. 거대한 아나콘다의 위협이 서서히 다가오는 가운데 샤론은 배의 실권을 쥐게 되고, 아나콘다를 생포하려는 샤론 때문에 촬영팀의 게리와 그의 연인인 데니스는 아나콘다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 존 보이트, 제니퍼 로페즈, 아이스 큐브가 출연했고. 루이스 로사 감독이 연출했다.1997년 작품.89분.
  • 미리 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미리 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1. 미국의 24시간 뉴스채널 CNN이 서울 한강 노들섬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를 화면에 띄웠다.CNN은 뉴스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국로고와 함께 각국의 랜드마크를 브라운관에 내놓는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던 광화문과 남대문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대신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CNN의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2. 노들섬에는 공연 관람외에도 산책하기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공연이 끝나는 오후 10시쯤에는 인근 노천카페에서 예술과 문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매주 한번씩 노들섬에서 오페라와 공연 등을 즐긴다는 회사원 김민서(31)씨는 “노들섬 주민이 다됐다.”고 말했다. 위의 두 장면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성공적으로 조성됐을 때를 그려본 가상 시나리오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조개껍질 모양의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짓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이 시장은 “국제 공모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2007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규모와 예산은 한강에 세워지는 오페라하우스는 어느 정도 규모에 예산은 얼마나 소요될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은 영국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프랑스의 바스티유오페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등이다. 이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이나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규모로 세워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국제현상공모로 건축설계를 완성하면 외관이나 내부시설 등 세부적인 사항은 달라진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2679석의 콘서트홀을 비롯 오페라, 발레, 현대무용 공연용 1547석의 오페라극장,554석의 드라마극장과 300∼400석 규모의 소극장 2개를 갖추고 있다. 지난 1993년 완공된 서초동 예술의 전당내 오페라하우스는 규모면에서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하다. 연면적 1만 3200평에 말굽형 객석으로 234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을 비롯해 정통연극을 중심으로 무용, 뮤지컬, 오페라 부파, 오페레타 등을 소화하는 710석의 토월극장, 실험적인 소규모 공연을 위한 300∼600석의 자유소극장이 들어 있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은 연건축 4만 6000여평의 9층 건물로 지난 1989년 세워졌다. 본극장이 2700석, 좌석가변극장 600∼1000석 등 공연장 3곳과 11개의 연습시설을 갖추고 있다.1984년 착공했으며 1989년에 완공됐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의 규모는 입주기관이나 산하 단체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유럽의 여러 오페라하우스나 세종문화회관처럼 극장에서 직접 오페라단과 발레단, 교향악단 등을 운영하면 연습공간 등이 추가로 필요해 규모가 늘어난다. 대신 브로드웨이의 상업극장이나 예술의 전당처럼 공연장만 지은 채 외부공연을 계속 유치하면 공연시설만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은 무대에 세울 소프트웨어를 계속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점도 있다. ●2007년까지 완공가능할까 오는 12월 개관하는 고양시 일산아람누리(문화센터)는 총공사비가 1250억원 정도 들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2000석의 오페라극장을 비롯 1500석의 콘서트홀,300석 정도의 실험극장, 야외공연장, 도서관, 전시시설 등이 계획돼 있다. 연면적은 1만 6300여평으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들섬 부지매입 비용과 건축설계 공모금, 공사비용 등을 고려하면 줄잡아 1500억∼20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 셈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건축물로 평가받으려면 보다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의 객석 점유율은 50∼60%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페라하우스가 제대로된 역할을 하려면 화려한 건축물 이외에 관객들을 흡수할 공연물도 필수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이 밝힌 2007년 완공은 무리라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아무리 빨리 지어도 공연장의 공간배치 등 기초 타당성조사와 국제공모에만 2년이 소요된다. 순수 공사기간에 최소 2∼3년이 걸리는 데다 노들섬은 한강위에 놓인 섬인 탓에 만만치 않은 물막이 공사까지 더해져야 한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계획하면서 설계에서 완공까지 기간을 3년으로 정한 것은 공사가 부실해질 소지를 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노들섬은 어떤곳인가?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는 노들섬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302의 146에 위치한 면적 1만 3700여평의 타원형섬이다. 현재 테니스연습장인 일부분을 빼면 모래더미와 갈대숲으로 뒤덮인 황량한 모습이다. 조선시대부터 물맛이 빼어난 우물물을 왕궁에 바쳐오던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가 놓이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수영장과 낚시터,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휴양지이던 노들섬이 모래산과 쓰레기더미로 바뀐 것은 지난 1997년 섬의 소유주인 ㈜건영이 부도를 내면서 부터다. 지난 1986년 섬을 불하받은 건영은 1996년 유람선센터와 식당, 스포츠시설 등을 갖춘 유원지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 1983년 도시계획용도상 자연녹지지역 유원지시설로 이미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성사업 인가를 받은 뒤 건영이 부도를 내 무산됐다. 이후 노들섬을 서울에서 대전을 잇는 헬리콥터 정기운항기지와 미군 헬기장 등을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모두 무산됐다. 현재 섬의 공시지가는 평당 200만원 정도로 섬 전체의 가격은 273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최근 건영측과 매입의사를 타진하고 있으나 매입비용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건영은 섬을 공시지가로 매입해 달라는 주장인 반면 서울시는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를 밑도는 만큼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곳을 오페라하우스의 최적지로 꼽은 만큼 서울시가 매입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청계천 복원과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통해 ‘문화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이 시장의 의도가 함축돼 있다. 서울의 한 가운데 위치한 노들섬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다는 상징성까지 내포하고 있어 오페라극장의 위치로는 최적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2월초∼중순이면 매입 여부에 대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노들섬은 서울시의 랜드마크를 세우기에 매우 좋은 입지이기 때문에 매입이 이뤄지면 국제적인 건축 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영과 채권사는 “가격만 맞으면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부지 구입예산 등으로 이미 400억원을 편성한 상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10주기를 맞아 올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사업들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윤이상 평화재단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원택 황석영 이강일)는 지난 11일 대표발기인 모임을 갖고 “새달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전체 발기인대회를 열고 3월쯤 재단을 공식출범시킨 뒤 선생의 생전 업적을 재조명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본격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민감한 현안이자 역점사업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78)씨의 한국방문. 재단측은 “선생의 생전에 이뤄지지 못한 고국방문이 10주기에 부인을 통해서라도 이뤄져야겠기에 정부의 협조를 얻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기록한 ‘상처 입은 용’을 재발간하고 이를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다.“영화제작건은 LJ영화사와 구두합의를 마친 상태이며,3월에 제작발표회를 가질 것”이라고 재단의 관계자는 귀띔했다. 1979년 윤이상이 직접 설립한 평양 윤이상관현악단 초청공연도 올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 관현악단은 이수자 여사와 같은 시기에 방한을 목표로 실무협상 중이다. 윤이상의 대중적 복권을 위한 대표적 프로그램은 ‘평화콘서트 전국투어’. 윤이상 작품을 테마로 한 크로스오버 대중콘서트를 서울과 지방을 돌며 개최해 ‘윤이상 붐’을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가 수록된 평양국립교향악단 연주의 윤이상 음반 정식발매,10주기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국·독일·일본 3국 연주자들로 구성된 기념음악회(10월 예정), 윤이상·이응노·천상병 등 3인 작품전, 친필악보와 유품전시회 등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재단 발기인은 각계 저명인사 29명. 윤이상의 외동딸 윤정씨를 비롯해 박재규 경남대 총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종수 KBS이사장, 원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김민 서울대 음대학장,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납치, 수형생활을 하기도 한 윤이상은 199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연주자들이 서울~평양을 오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했다.1995년 11월3일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日 문화대통령 한국 강단 선다

    日 문화대통령 한국 강단 선다

    일본의 ‘문화대통령’으로 칭송받고 있는 세계 문화산업계의 대가 기타모토 마사타케(北本正孟·71)가 한국대학의 교수가 됐다. 기타모토는 고(故) 손기정 선수를 뒷바라지하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로 키운 기타모토 마사미치(北本正路)의 아들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 영산대(총장 부구욱)는 기타모토 마사타케를 11일자로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일본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문화 디자인 전문가’로 활동해온 기타모토는 전시, 박람회, 이벤트업계의 정상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70년 일본 오사카엑스포의 책임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85년부터 4년마다 열리고 있는 세계음식박람회(오사카)와 세계적 가을축제인 ‘미도스지 퍼레이드’ 등을 기획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93년 대전엑스포에서 일본 정부관 행사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맺기 시작해 2001년 이천 세계 도자기엑스포를 기획하기도 했다. 영산대 관계자는 “기타모토는 세계가 공인하는 문화산업계의 대가”라며 “실제적인 지식전달 등 현장감있는 실무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돼 석좌교수로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새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점술인이다. 개명한 세상에 누가 미신 따위에 솔깃하랴 싶지만, 일간지조차 새해를 맞아 국운이 어떠할지를 점친다. 옛날부터 이 땅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뿌리도 제법 깊어서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고려비기(高麗秘記)’,‘고경참(古鏡讖)’이 고대의 예언서라면,‘삼한회토기’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종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18세기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던 ‘정감록’은 국가의 탄압으로 간행되지 못한 채 다종다양한 필사본만 유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감록’은 1923년 드디어 활자화되었고 그것이 사실상 정본 취급을 받고 있다. ‘정감록’의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이 멸망하는데, 그 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로 압축된다. 아무 해에 무슨 사단이 터진다는 식의 짤막한 예언이 대부분인데, 한국의 예언서가 대개 그렇듯 60갑자로 햇수가 적혀 있어 세월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언서에 보이는 민중의 공포 ‘정감록’의 비교적 앞쪽엔 이런 오싹한 대목이 있다. 원숭이해 봄 삼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팔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오고,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한강 이남 100리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끊어지고, 인적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전쟁영화의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은 수도권 전체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작년 2004년도 원숭이해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든 한 해였고 북한의 핵문제로 전쟁 걱정도 컸었다. 북핵문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책이 화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땅에 그런 참극은 없었다.‘정감록’의 예언이 틀린 셈이다.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렇단다. 과연 ‘정감록’에는 민심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나 보다. 서울로 통하는 관문 인천 앞바다에 적을 태운 배가 1000척씩이나 들이닥친다고 했다. 그런 변고가 없다.1592년의 임진왜란, 그보다 5년 뒤의 정유재란도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참혹한 예언은 뜬금없이 나오는 예가 없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쏟아진 폭탄이 불꽃놀이 같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을 헤아렸다. 훗날 이라크에 예언서가 작성될 경우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남긴 상흔은 집단적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정감록’에 담긴 이 대목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봐야 한다. 우선 인명의 대량 살상을 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안성 등의 지명이 등장하는 것도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감록’의 예언은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1894년 7월 하순 일본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다가 아산(牙山)·풍도(豊島)로 내려가 청의 해군과 한바탕 싸웠다.‘정감록’에 나오는 인천 앞바다 운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격전지 아산과 풍도는 바로 예언서에 언급된 남양의 코앞이다. 그 뒤 일본군대는 천안 부근의 성환(成歡)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평양에서 청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정감록’에 나오는 안성, 죽산 등도 실제의 전쟁터 성환에서 멀지 않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민중은 공포에 떨었고 이것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정감록’에 아로새겨졌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다.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서양오랑캐’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위기의식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1840년 여름, 영국은 4000명의 병력으로 중국의 다구·톈진(天津)을 위협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물밀 듯 난징(南京)으로 쳐들어갔다. 아편전쟁의 놀라운 소식은 연달아 한국에 알려져 조정은 물론 민심마저 발칵 뒤집혔다. 외침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불과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함대가 쳐들어와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당황한 나머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국과 교섭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속에서 각종 소문과 예언이 유행했다. 갑자기 1000척의 배가 쳐들어와서 수도권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예언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일 것이다. 거기에 청·일전쟁의 집단기억이 덧칠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정감록’에 숨겨진 비밀을 읽는 법 10년쯤 전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이상세계를 탐구하던 내 눈길이 예언서 ‘정감록’에 닿았다. 한국역사상 대표적인 예언서라면 다들 ‘정감록’을 첫손가락에 꼽았기에 그 책을 끌어당겼던 것인데 실망이 컸다. 거기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것도 안 보였다.‘정감록’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술은 없고 대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거듭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정감록’이 지닌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정감록’에는 비밀스러운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정감록’의 한 줄 한 줄은 수천년 동안 생성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였다. 민중은 공포와 절망에 떨면서도 예언 가운데 희망의 빛을 감춰두었던 것이다. ‘정감록’의 문화적 코드는 예언서를 예언서로서 바라보는 편협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자구의 해석에 매달릴 경우 ‘정감록’은 그저 단편적이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정감록’을 읽는 옳은 방법은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의 앞뒤를 재고 정치와 문화를 하나로 뚫어서 읽을 때, 그 비밀스러운 코드는 비로소 풀릴 것이다. ‘정감록’의 밑바탕에는 풍수지리설과 선천후천 교대설(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곧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이 있다. 맥맥이 흐르는 미륵신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감록’은 한국문화의 젖줄이다. 따지고 보면 동학, 증산도, 원불교와 같은 근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정감록’으로부터 생명수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정감록’과 김지하 ‘정감록’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한국의 지식인 몇몇도 오래 전부터 ‘정감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 김지하다.‘오적’이란 시를 비롯,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맞서 싸운 그의 투쟁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김지하는 사상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생명이니 살림이니 하는 토종의 생각으로 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주의 주장을 아우르고 싶어했다. 그런 김지하가 ‘정감록’을 즐겨 인용하였다면? 김지하는 사실 ‘정감록’을 본떴으며,‘정감록’의 정수를 꿰뚫어 보았다. 이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김지하의 책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의 ‘오행’이란 시가 앞서 살핀 ‘정감록’의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그 해 여름 복중 큰 눈이 내리고, 큰물이 지고, 큰 흉(凶)이 들고 안성과 죽산(安竹)과 수성과 당성 사이(隨唐間)에 굶어죽은 송장이 산처럼 쌓이고 비석이 땀을 흘리고 우물에 피가 솟고 대꽃이 피고 운운. 여기서 김지하는 전쟁의 참혹상을 흉년의 비극으로 바꿔놓았지만 지명도 그대로 두었고 얼개도 ‘정감록’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앵적가’의 경우는 더 심하다. 안성과 죽산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며 하는 식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김지하의 패러디는 계속된다.‘이 가문 날에 비구름’에서는 아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감록’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이 작품은 동학의 역사를 한 편의 유장한 시로 풀어낸 것인데,‘정감록’을 빌려다가 최제우가 동학을 개창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왜 김지하는 ‘정감록’을 자꾸 빌려다 썼을까. 단순히 그 예언서의 몇 대목에 관심을 둔 것일까, 아니면 ‘정감록’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일까. ●‘정감록’이란 민중의 밥그릇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정경모란 이름도 생각난다. 그는 80년대 중반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 남북통일에 관한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에는 ‘삼선각 운상 경륜문답’(‘찢겨진 산하’의 저본)이 실려 있다. 정경모는 그 글에서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세 사람이 천상에서 만나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마치 ‘정감록’에서 정감, 이심 및 이연이 금강산 비로봉에 앉아서 나라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경모와 김지하가 ‘정감록’의 형식과 내용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사상가 또는 운동가였고, 그 점이 ‘정감록’을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감록’에 담긴 예언의 내용 못지않게 지난 수백년 동안 민중이 사용해온 비밀스러운 화법을 터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언서가 그렇듯 민중은 겉으로 절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감춰두고 싶어했다. 김지하 등은 그 점을 간파하였다고 할까. 그런 그들에게 ‘정감록’은 일종의 교과서였을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은 실의에 빠진 민중을 고무하고 싶었고 따라서 민중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고, 그렇게 믿어진다. 조선 후기부터 오랜 왕조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던 민중은 ‘정감록’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잊을 만하면 ‘정감록’을 매개로 한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 때마다 수십 또는 수백명의 연루자가 붙잡혀 가 매를 맞고 더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양반들의 조선이 영영 망하고 말 것이다. 천지개벽하면 시쳇말로 개똥쇠에 불과한 이 몸도 운대가 풀릴 것이다.”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으로 예언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리라. 집권층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금서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정감록’은 합법적으로 출판되지 못한, 그러나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일제시대까지도 그 인기는 여전해 ‘정감록’이 점지한 길한 땅을 찾아 수만명이 정든 고향을 버렸다. 일제시대 계룡산자락에는 불과 수년새 작은 읍 하나가 들어설 정도였다. 무수한 민중이 한 글자씩 ‘정감록’의 예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김지하가 ‘정감록’을 방불케 하는 담시를 연달아 지은 것도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울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정감록’은 예나 지금이나 기댈 곳이라곤 전혀 없는 민중의 희망을 퍼 담는 밥사발이다. ● 정감록이란 조선후기부터 유행한 대표적인 예언서이다. 정도전, 정여립 등이 저자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 민중들 입장에선 위로와 희망의 터전이었다. 곧 조선왕조가 망한다,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라,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수십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新)종교단체가 등장했다. 겉보기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인데, 풍수지리설·해도진인설·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그들의 대화엔 은어(隱語)가 많아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엇비슷한 온갖 예언서를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 백승종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現 푸른역사硏 소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 역사硏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진단학회 총무이사 ●저서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2003년)‘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년)‘아버지 난 누구에요’(궁리,2001년)등 다수.
  • [좋은도시 만들기] (8)서유럽 건축물의 공공성

    [좋은도시 만들기] (8)서유럽 건축물의 공공성

    서유럽 건물은 사유 공간이면서도 빌딩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보행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공용 공간을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건물을 둘러보면 대중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한 배려를 여기저기서 읽을 수 있다. 1층 건물의 일정 부분을 비워둬 사람들이 건물 안을 거쳐 통과하도록 하거나 도보로 여기저기 상점을 천천히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보행자가 접근하기 어렵고 불편하게 만드는 국내 빌딩과 대조적이다. 보행이 쉽게 거리를 만드는 것은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뿐아니라 자동차를 덜 타게 함으로써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빌딩 1층은 개방공간 1990년대 조성된 런던시의 신도심 카나리 워프와 브로드게이트 지구는 ‘보행자 중심의 타운’으로 유명하다. 19만 5000여평에 달하는 카나리 워프지역에서 템스강변쪽은 우리의 주상복합빌딩과 흡사한 형태의 고급주거단지로 조성됐다. 주민들이 즐기는 공간은 ‘중정(中庭:건물 중간에 위치한 정원)’으로 최소화했다. 고급주택가라고 담을 둘러치지도 않았다. 가로나 물가에 산책길을 만들어 주민과 일반시민들이 함께 이용하도록 했다. 금융 관련 오피스가 밀집해 있는 업무지구 역시 보행자 위주로 설계됐다. 지하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건축물의 1층을 통해 걸어서 쇼핑센터, 상가, 옥외광장, 옥외공원 등 중심지구의 대부분을 갈 수 있다. 상가와 거리가 활성화되는 정도는 “자동차 속도에 반비례한다.”는 도시 계획 원리를 충실히 따른다. 보행자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거리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사통팔달의 빌딩 숲 도심 또는 빌딩의 공공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브로드게이트지구에서 더욱 눈에 띈다. 빌딩들이 많지만 꽉 막힌 느낌은 덜하다. 3만 6000여평에 14개의 대형 빌딩으로 구성됐지만 어느 곳도 막힘이 없는 사통팔달의 보행통로를 확보하고 있다. 이 지구는 리버풀 스트리트역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건축물이 개발됐다. 구체적으로는 도심지역의 경관과 개별 기업의 이미지가 뚜렷한 빌딩군으로 짜여져 24시간 업무체계가 가능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의 빌딩들은 오픈 스페이스와 광장, 산책로, 매점, 저층부 상가와 부대시설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지구 전체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빌딩의 1층부는 열린 공간이어서 보행자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빌딩의 아케이드는 철도역사와 일체화되어 있고 도심광장은 다양한 부대시설과 연계되어 상권을 형성한다.‘브로드게이트 어리나(arena)’로 불리는 야외극장은 빌딩숲 속의 중정공간을 하나의 무대장치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여름에 각종 콘서트와 전시 공간으로, 겨울에는 야외스케이팅 등 이벤트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빌딩 이용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에 대비한 신도시 모델 독일의 포츠다머 플라츠지구는 동·서독으로 분리되었던 지역을 신도심으로 꾸민 곳이다. 이곳은 통독 수도 베를린의 새로운 도심으로 부상되고 있다.1990년부터 조성된 15만여평 규모의 이 지구는 소니사와 다임러 벤츠사 등 국제적인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한 사례로 꼽힌다. 기업투자가 많았음에도 사회 공공성이 부각된 성공적인 신도심 개발사례 중 하나다. 주거, 상업, 영화, 전시 등 복합기능이 어우러져 있다. 방사선도로를 따라 구획된 사각형 또는 삼각형의 도시블록에 각 건축물들이 중정을 두고 가로변으로 배치되는 전형적인 베를린의 ‘블록형 도시건축물’을 보여준다. 동쪽의 도시공원은 넓은 잔디공원으로 조성됐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또 인접한 하천과 연계, 남서측으로 생태 공간을 형성해 단지의 친환경적인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중심가로를 상업아케이드로 채워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인접 건축물의 양측 벽면을 유리 아케이드가 덮고 있는 전형적인 유럽의 갤러리아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이 유리 아케이드는 여닫을 수 있게 설계됐다. 실내외의 자유로운 아케이드 공간 연출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소니센터 빌딩의 중정공간은 일본의 후지산을 형상화한 막구조 지붕이 씌워져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 ■ 파리市 홍보담당관이 말하는 ‘도심개발 기준’ “고층건물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리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의견입니다.” 파리시청 홍보담당관 라이오넬 보르도씨는 “파리시 도심개발의 기준은 ‘과거를 존중하는 시민의 의견’에 있다.”고 밝혔다. 이는 105㎢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 200만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 파리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유지시켜온 힘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20년 후의 모습을 준비하고 있는 파리시로부터 도시계획의 철학과 시민의견 수렴방법, 공공성 확보 등 그들의 고민과 지혜를 가늠해 본다. 현재 추진 중인 도시기본계획(PL U,pan Local d‘urbanisme)의 주요골자는. -20년간 파리시를 변화시킬 기본 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건물의 신축, 기존건물의 이전, 공간이용계획과 유적지 보전 등을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파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그리고 파리 시민들이 파리에서 어떻게 살게 될지를 규정하게 될 것입니다. 도시계획상의 어려운 점은. -파리 구시가지(도심)에는 4000여개의 보호대상 건물이 있습니다. 이들 건물은 대개 200∼1000년에 달하는 낡은 건물들로 업무나 거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파리순환도로를 기준으로 건물높이 제한, 주거공간 비율 등 신·구시가지에 대한 개발형태를 놓고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민 정서상 과거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해 21세기형 도시로 거듭 태어나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규제 기준은. -파리만의 독특한 개성, 유적의 보전 등으로 아름답고 삶의 질이 향상된 도시건설이 PLU의 핵심입니다. 이에 따라 구건물의 모방을 자제하고 새로운 컨셉트의 건물 신축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축건물이 주변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지속적 개발의 논거와 맞아야 합니다. 건물의 최대높이 규정(37.5m, 최고 11층 정도)에 대한 변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업지구와 서민임대주택단지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파리 중심부 및 서부지역의 거주용 건물신축에는 우선권을 줄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서민주택이 많이 부족한 구역의 신도시계획 프로그램 작성시 사회복지주택(저소득층이 사는 공공임대주택의 일종)의 비율을 25%로 강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결정 과정은. -2001년 9월 이후 지금까지 파리시는 121개 구역 의회를 통해 각 구역이 우선시하는 중점사안들을 자문했습니다. 전문가,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은 이를 통해 파리시에서 제기되는 건축, 유적, 거주정책, 교육, 고용확충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의견 1만 1000여건을 제안했습니다. 파리시는 이중 많은 부분을 내년 말 파리시의회에 상정, 오는 2006년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집단민원에 대한 기준은. -파리시의 입장은 주민보다 대상지역의 상인입장을 우선 고려합니다. 상인들은 피해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재개발 이전과 이후의 매출액을 비교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일반적으로 없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집값의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개발 과정상의 불편은 ‘참아달라.’고 설득합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특별취재팀 ●북유럽팀 이상일 논설위원(특별취재팀장), 김세용 건국대 교수 ●서유럽팀 이동구 기자, 이정형 중앙대 교수 ●미 국 팀 장세훈 기자,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
  • [지진해일 대재앙] 슈뢰더 “피해국가 부채 탕감해주자”

    |베를린 연합|동남아·서남아 지진 해일 참사를 계기로 향후 재난 피해와 관련된 국제적인 응급구조·구호 및 복구지원 체계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독일 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그동안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 및 민간 구호단체들이 재난 피해국에 따로 지원하던 것과 달리 외채를 공동으로 탕감하고 지원 활동을 효율화하려는 다자간 국제회의까지 모색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방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과 선진 8개국(G8) 회의는 쓰나미(지진 해일) 피해국에 대한 부채의 일부 탕감이나 상환유예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토대로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처럼 유엔 등 국제기구가 공동 주최하고 주요 국가와 피해 당사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회의가 올해 안으로 열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날 “피해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책임과 장기간의 지원을 바란다.”면서 “부유한 모든 나라들은 해당 지역의 재건을 떠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총리는 미리 배포한 신년사에서 “독일은 유럽연합(EU)을 통해 유엔과 세계은행이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피해국들을 효율적으로 돕도록 촉구할 것”이라면서 “부채의 일부 탕감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인도네시아와 소말리아의 외채 상환 유예를 파리클럽에 제안하겠다고 밝혔으나 신년사에서는 부채 탕감까지 거론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피해지역 11개국의 외채 상환유예를 파리클럽 회의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외채삭감 논의를 위한 G8 회의 개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모든 제안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에 동조했고 최대 채권국인 일본도 이같은 논의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을유년(乙酉年)은 ‘희망의 해’다.60년 전 35년간의 일제 강점을 털어내고 광복을 맞은 것이 서력(西曆) 이후 서른두번째의 을유년이었고, 오늘 맞은 새해는 바로 서른세번째 을유년이다.60년 전 을유년에 온 나라 구석구석 넘실댔던 기쁨과 희망의 물결만 생각해도 새해 아침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전에 지나간 서른한번의 을유년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선조들도 비교적 평화로운 한해를 보냈던 것으로 보아 새해는 커다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시작해봄직하다. 세계적으로도 2차대전 종결 및 니케아종교회의 등 희망적인 해가 많았다. 을유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주요 사건을 시대별로 살펴본다. ●325년 로마제국 니케아종교회의 기독교는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출발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온 메시아를 자처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초기의 은 생애동안 성공했을 뿐 곧 혁명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후 예수의 추종자들은 갖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몇몇 도시들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신앙관용령(밀라노칙령)을 선포한 데 이어,325년 니케아에서 모든 교회 대표자들이 모인 최초의 전 기독교 회의를 열어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로마제국 전역에 교회조직이 발달했다. ●1225년 최우, 정방 설치 고려 무신정권 수장이었던 최우가 고려 고종때 자신의 집에 ‘정방’이란 관청을 설치했다. 무신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지만 국가의 행정실무를 무신만으로 처리할 수 없어 정방을 두고 젊은 문사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 이곳에선 문무백관의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인사 명부와 함께 고과를 매겨 왕에게 올리면 왕은 그것을 결재할 뿐이었다. 이를 통해 최씨 정권은 문무백관을 실제로 장악할 수 있었다. 최씨 정권 몰락후 정방은 궁중으로 옮겨져 국가기관이 되었다. ●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 충렬왕 11년,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일연은 1277년 이후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삼국유사를 편찬하기 시작해 5권2책으로 완성했다. 삼국유사는 왕명으로 편찬한 기전체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달리 자유로운 형식으로 단군신화에서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지 않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연은 나름대로 철저히 사실을 고증해 책을 편찬했다고 한다. ●1645년 소현세자 죽음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때 볼모로 청에 끌려갔다. 청에 9년간 머물며 청과 조선 외교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귀국할 때 천문·수학·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왔다. 귀국하자 반청파들은 그를 친청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가져온 서양서적도 불태워버렸다. 인조 23년 4월 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화가 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가 나흘만에 죽었다. 이때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고, 피를 쏟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독살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후 소현세자 빈도 인조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듬해 사약을 받았으며,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막내만 살아남았다. ●1885년 거문도사건 발생 갑신정변(1884년) 이후 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선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여 청·일 양 세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러시아도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조선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그해 3월 선제공격을 감행,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의 중간에 있어서 러시아 동양함대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결국 조선을 제외한 러시아·청·영 3국이 교섭을 벌여 러시아는 조선의 어떠한 영토도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1887년 2월 영국함대는 철수했다. 그해 8월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의 근대식 중고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한성전보국이 개국(서울∼인천간 전신 개통)했고 대원군이 청에서 귀국했다. ●1885년 인도국민회의 결성 영국에 의한 식민정부에 의해 교육받은 인도인들이 구성했다. 후일 간디의 지도아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영국과 전국적으로 싸우며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5년 일본 항복, 한국 광복 8월15일 일본 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2차대전이 종결되고 한민족도 광복을 맞았다. 이에 앞서 5월2일엔 베를린이 연합군에 점령당했고,5월8일 독일이 항복했다. 9월2일 맥아더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책을 발표했으며,9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언됐다.9월7일엔 미 극동사령부가 군정을 선포하고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결성됐다.11월10일 미군정이 인민공화국을 비난했다는 것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매일신보’가 정간됐다가 11월25일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속간되었다. 조선일보(11.23), 동아일보(12.21)도 복간됐다.12월30일 송진우가 피살되고,31일부터 신탁통치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예언으로 읽는 우리역사]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6일부터 매주 목요일 연재

    [예언으로 읽는 우리역사]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6일부터 매주 목요일 연재

    서울신문이 새해부터 역사학자 백승종(47·푸른역사연구소장)씨의 역사 문화 에세이 ‘예언으로 읽는 우리 역사-백승종의 정감록(鄭鑑錄) 산책’을 연재합니다. 1월6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실릴 이 연재물은 우리 사회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민족의 예언서 ‘정감록’에 담긴 의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가는 고급 에세이입니다. ‘정감록’은 동학을 비롯한 새로운 종교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변혁운동의 추동력도 바로 ‘정감록’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이른바 ‘감록촌(鑑錄村)’이 생겨났을 정도로 ‘정감록’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민간신앙의 경지에까지 오른 ‘정감록’의 본질에 대해 우리는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필자에 따르면 ‘정감록’은 18세기 전반 함경도에서 출현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적지 않은 내용상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 ‘민중의 저작’인 셈입니다. 그런 만큼 ‘정감록’의 비의(秘意)를 정확히 해독하기는 어렵습니다.‘…백승종의 정감록 산책’은 그 비밀의 코드를 여러 문헌 자료와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독자와 함께 풀어가는 흥미로운 지적 여정이 될 것입니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와 독일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를 지낸 필자는 국내 미시사 연구의 개척자로,‘정감록’에 관한 논문을 6편이나 쓴 최고의 ‘정감록’ 학자입니다.‘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등 대중적 역사서를 낸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합니다. 새들은 태풍을 미리 감지하고 안전한 곳으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도 뭔가 큰 일이 닥쳐올 것 같으면 ‘정감록’을 서둘러 훑어 보았습니다. 거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살아내는 예언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백승종의 정감록 산책’은 ‘정감록’이 결코 단순한 혹세무민의 비기(秘記)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참서(讖書)가 아님을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필자의 자유분방한 붓끝을 좇다보면 어느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고 사유의 지평이 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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