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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훈의 도쿄 필하모닉 어떤 색깔일까

    마에스트로 정명훈(53)이 특별 예술고문으로 취임하면서 우리에게 친숙해진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오는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번 공연 역시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는다. 지난 2001년 정명훈의 영입으로 짧은 시간 내 눈부신 변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 도쿄 필은 그동안 일본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현재까지 정명훈의 열기가 뜨겁다.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대표 주자들을 협연자로 내세워 주목을 끌고 있다. 첼리스트 고봉인(20)과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 쇼지(22)가 바로 그들. 이들은 바이올린과 첼로에서 모두 높은 기교와 정교한 호흡이 필요한 고난도 곡목인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를 연주,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게 된다. 12세에 제3회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첼로부문 1위로 입상한 고봉인은 최고의 첼리스트 요요마가 빌려준 악기를 사용할 정도로 떠오르는 스타 음악가로 정평나 있다. 세계를 돌며 연주하는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엘리자베스여왕으로부터 초청 받아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다. 16세에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일본인으론 처음이자 대회역사상 최연소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사야카 쇼지는 비슷한 연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메타, 주커만을 포함한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공연해왔으며 뉴욕필하모닉, 베를린 심포니오케스트라등과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도쿄필은 이번 공연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1930년대 스탈린 1인 숭배체제에서 만들어진 이 곡은 혹독한 억압에도 꺼지지 않는 민중의 승리와 개인의 낭만적인 의지가 표현된 곡이다. 이미 필라델피아 필하모닉과 쇼스타코비치 4번을 녹음, 화려하고 명쾌한 울림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해석한 정명훈이 이번에는 어떤 음악적 색채를 일구어낼지 기대가 크다.(02)518-7343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서울시 정순구 교통국장

    서울시 정순구 교통국장

    서울시 교통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순구(50) 교통국장. 정국장의 인터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지난 25일 덕수궁 길에 들어섰다.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든 탓인지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사진 배경으로는 딱 좋았다. 정 국장은 “단풍여행 간 지 꽤 됐다.”고 말했다. 공무원에게 가을이란 국정감사를 마치고 나자마자 새해 예산을 심사하기 위해 시의회를 준비해야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특명´ 받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1981년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 국장은 산업정책과, 국제교류과, 기획관리실 등을 두루 거쳤다. 정 국장은 국제관련 업무를 하면서 맺어진 메트로폴리스 총회와의 인연을 먼저 소개했다. 1999년 당시 국제교류과장이었던 정 국장에게 ‘제6차 바로셀로나 메트로폴리스 총회’ 참가라는 막중한 임무가 떨어졌다.‘2002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차기 메트로폴리스 총회 장소를 서울로 유치하라는 특명을 받은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외교부 등과 함께 총회의 서울 유치를 대내외로 공표하며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총회 사무총장은 ‘차기 개최지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시가 어떠냐.’는 말을 넌지시 꺼냈다. 사무총장은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장이었고, 이사회 멤버도 하필이면 라틴·남미계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지요. 결국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회원 도시 대표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습니다. 국제적인 행사에 맞춰서 총회가 열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외국인 400여명 참석 대규모 회의 다행히도 베를린·멜버른시 등이 서울시의 편에 서주었고, 마지막날 리우데자네이루시는 기권했다. 정 국장은 메트로폴리스 총회 서울 개최권을 서울시에 넘겨주고 서울시 뉴욕주재관으로 발령받아 미국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3년뒤.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인사란에 ‘메트로폴리스 서울 총회 총괄 과장 정순구’라고 씌어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무려 400여명의 외국인이 참석하는 큰 회의였다. 월드컵 기간 동안이라 호텔을 예약하거나 총회 참석 인사들을 경기에 관람시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준비팀 모두 열심히 뛴 덕택에 총회는 무사히 치러졌고, 이후 총회의 회원국은 50여개국에서 90여개국으로 크게 늘었다. 또 3년 뒤인 2005년 ‘제8차 중국 베이징 메트로폴리스 총회’에서는 정 국장이 교통국장으로서 서울시 대표로 참석해 서울시 교통체계개편과 관련된 메트로폴리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시 교통체계 마무리 정 국장은 지난해 8월 교통국장 발령을 받았다. 그는 교통 관련 업무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고 말했지만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의 절반이 교통체계 개편으로 인한 시내버스 운행적자를 지적했지만, 시민을 위해서라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총 버스 운행비용은 1조 3000억원인데 15%인 1900억원을 서울시에서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런던·뉴욕시의 지원비율인 30%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요금 100원 올리면 연간 1200억원이 더 들어오겠지만 요금을 올려서 시민 부담으로 적자를 메우려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정 국장은 아직도 ‘서울시 뉴욕주재관 정순구’라는 명함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지금은 없어진 자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예전에 했던 일에 대한 애착때문이기도 하다.“국제 관련 경험을 더 쌓아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가라는 대로 가야지요.”라고 웃었다. 공무원은 시민을 위한 일을 벌이는 데서 기쁨을 얻는 만큼 시민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가서 일하겠다는 것이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윤이상선생 기억하며…

    윤이상선생 기억하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고(故) 윤이상 선생의 10주기인 11월3일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는 공연과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과 통영국제음악제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행사에는 서울을 비롯, 평양, 독일, 중국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물론 심포지엄도 열려 그의 음악세계와 삶을 되돌아보는 총체적인 자리로 꾸며진다. 이번 행사의 핵심은 유럽의 윤이상 선생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주축이 돼 1997년 창단한 베를린 윤이상 앙상블의 연주. 매년 윤이상 음악회를 열고 있는 이 앙상블은 오는 27일 평양 윤이상음악당,30일 베이징 진판음악청, 다음달 1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 커뮤니티하우스,3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으로 순회공연에 나선다. 평양 윤이상음악당 공연은 북한 윤이상연구소가 주최하는 제24차 윤이상 음악회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윤이상 평화재단과 통영국제음악제 관계자 23명도 북측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 이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이색적인 추모 음악회도 준비됐다. 다음달 2일 홍대 앞 클럽 로보에서는 ‘윤이상과 현대 미디어 뮤직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인디밴드 멤버들이 윤이상의 곡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할 예정이다. 윤이상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진다.LJ필름(대표 이승재)이 8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게 될 이 영화는 2007년 말 개봉이 목표다. 한편 그의 고향 통영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다음달 1∼3일 통영 시민문화회관에서 ‘윤이상 국제 심포지엄’이,3일 통영 시민문화회관에서 10주기 추모 음악회가 각각 열린다.(02)723-0364.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윤리논쟁 마침표 찍을까

    배아를 파괴하지 않고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개발됐다고 과학 전문지 네이처 인터넷판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생쥐 대상 실험에서 성공한 수준이지만 인간에게서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면 배아 줄기세포 윤리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미국 생명공학기업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랜저 박사팀은 시험관 수정을 할 때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 전 유전질환 검사를 위해 실시하는 착상전 유전진단(PGD)에 사용되는 초기 단계 배아를 이용한다. 연구팀은 배아의 8개 세포 가운데 1개를 떼어내 배양시킨 결과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었다. 세포가 7개만 남은 나머지 배아는 자궁에 이식돼 정상적으로 성장, 새끼가 태어났다. 다음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 루돌프 제니시 박사 등은 체세포 복제와 비슷한 변형 핵이식(ANT)이라 불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쥐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 핵을 이식했는데, 이 핵에는 배아의 착상을 가능케 하는 유전자의 활동이 차단돼 있어 이렇게 만들어진 ‘불구 배아’는 착상되지는 않지만 배아 줄기세포는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윤리 논쟁의 핵심은 배아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새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인데 새 방법들은 이런 논란을 비켜갈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PGD방법에 대해 호주 모나시 대학의 알랜 트러운손 교수는 “배아 파괴라는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환영한 반면 미 생식유전학연구소의 유리 베를린스키 소장은 “배아에서 떼어낸 세포 1개도 생명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ANT방법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미 대통령 산하 생명윤리위원회의 윌리엄 헐버트 박사는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성장 능력을 갖지 못한 다른 개체”라고 옹호했지만 생명운동가인 리처드 도어플링거는 “배아를 만든 뒤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반대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씨줄날줄] 부산국제영화제/박홍기 논설위원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열렸던 남포동 PIFF광장은 최상의 영화제 장소로 꼽힌다.1996년 9월 출범, 불과 10년 만에 아시아의 정상으로 우뚝 선 영화제에 걸맞을 만큼 여건이 완벽하다. 제1회 영화제의 팡파르를 울리던 당시 광장의 초라한 극장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빨간 카펫이 깔리고 최신 시설을 갖춘 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길 줄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개막식 다음날 쥐소동이 벌어졌단다. 오징어와 땅콩 등 음식물을 맘대로 들고 입장하던 시절이니 쥐들의 출몰 또한 당연하게 여기던 때이다. 베를린 영포럼 집행위원장이었던 인사가 “극장에 쥐가 있나봐. 쥐한데 물렸어요.”라며 오석근 사무국장에게 인상을 찡그렸다.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풀어 놓았더니 “아뿔싸” 고양이란 놈이 영화만 시작되면 스크린 뒤에서 울어대는 바람에 이번에는 고양이를 잡느라 자원봉사자들이 극장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소동이 벌어졌다. 문정수 당시 부산시장이자 조직위원장은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극장 의자에는 껌이 붙어 있고, 아스팔트는 울퉁불퉁하고…”라고 회고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제2회 때 일본 영화 ‘사랑하기’란 작품이 영사기사의 실수로 일부가 불타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다. 때문에 집행위원장이 훼손된 필름을 들고 일본으로 가 필름의 주인인 구마이 케이 감독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사고를 수습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분명 10년 만에 질과 양적인 면에서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4일 폐막된 제10회에는 73개국에서 307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제1회 때 27개국 170편에 비하면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칸·베를린 등 세계적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도 찾았다.‘관객과 함께 한 영화제’라는 기치처럼 관객수도 19만명을 넘어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성장통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의 불모지에서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를 일궈냈듯 이제 세계적 영화제로의 발돋움을 위해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한국문학·작가 세계무대 올린다

    가장 핵심이 되는 분야는 아무래도 문학이다.본 행사를 앞두고 주빈국조직위원회(위원장 김우창)는 지난 3월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신진 작가 62명을 선정해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뮌헨, 베를린 등 독일 주요 도시에서 낭독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 문학의 붐 조성에 노력해 왔다.●`한국문학, 아주 특별한 만남´ 이런 점에서 한국 대표작가 10명이 참여하는 ‘한국문학, 아주 특별한 만남’은 이번 주빈국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하다.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교보문고(사장 권경현)가 주최하는 행사로, 도서전 기간 내내 프랑크푸르트‘문학의 집’에서 열린다.‘문학의 집’은 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로 매년 주빈국으로 선정된 국가가 핵심 문학행사를 여는 곳이다. 낭독회에는 시인 고은 정현종 황지우, 소설가 황석영 이문열 오정희 이승우 신경숙 최인석 김영하가 참가한다. 대산문화재단은 “한국 문학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고, 작품이 독일어로 번역·출판된 작가를 우선 고려해 자문위원단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독일어 번역도서 열람 도서관 운영행사에는 방송 문학프로그램 진행자 루트 퓌너, 시인이자 교수인 우베 콜베, 소설가 토마스 부르시히, 작가 만틴 모제바흐 등 독일 유명 문학인, 방송진행자가 사회자와 낭독자로 자리를 함께한다.‘문학의 집’안에 독일어 번역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낭독회 후 작가 사인회도 갖는다. 이번 기회에 고은, 황석영, 조정래 등 향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한국 작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국내 출판사들의 노력도 두드러진다. 김영사는 전시관 홍보부스에 스티븐 코비, 틱 낫한, 달라이 라마 등 외국 작가들과 고은, 장정일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소개할 계획이다. 특히 2002년 출간한 ‘고은 전집’(38권)을 집중 홍보할 예정. 김영사는 올초 고은 시인의 영문 홈페이지를 따로 제작하는 등 사전 물밑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해외기획실 신수경 팀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고은 시인을 적극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은·조정래·황석영 집중 소개 해냄은 아예 부스 전체를 조정래 작가 단독관으로 꾸민다.여러 작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보다 유럽에 이미 알려진 작가를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유형의 땅’‘불놀이’는 이미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출판됐고,‘태백산맥’도 프랑스어로 3권까지 나왔다. 해냄은 일본어를 비롯한 해외 번역판을 포함해 총 120권의 책을 전시할 계획이다. 창비는 문학 전문출판사답게 황석영, 고은, 강석경, 박완서, 김영하 등 중견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20여명의 작품들을 폭넓게 소개할 예정. 다만 양적으로는 ‘장길산’‘무기의 그늘’등 총 7종 34권이 전시되는 황석영 작가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박수 인심/신연숙 논설실장

    공연장에서 박수 인심이 후하기로는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장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소리에 휩싸인다. 그만큼 공연수준이 높고 관객의 공감을 샀다는 증거일 것이다. 높은 성취감에 감격해하는 연주자의 표정은 보기에도 흐뭇하다. 그러나 뜨거운 박수가 항상 미덕인 것은 아니다. 소나타형식 음악의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전체 악곡의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계적 대가의 공연일수록 중간에 꼭 박수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값비싼 공연에는 기업홍보용 초청티켓 입장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음악애호가라기보다는 ‘이벤트 구경꾼’쪽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 아이러니가 있다. 유명 연주자일수록 이런 관객들의 무례에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번 가을 베를린필 실내악단과 협연한 첼리스트 장한나도 그랬다.‘싱긋’ 미소로 객석을 무마한 후 태연히 연주에 몰입했다. 이런 경험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깊은 예술 도야가 돼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고서야 어찌 진실한 예술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신연숙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송두율칼럼] 독일통일을 잊자

    [송두율칼럼] 독일통일을 잊자

    독일통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신선한 주제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책과 연구논문, 그리고 크고 작은 학회나 토론회가 이 주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독일통일 15주년을 맞아 그러한 주제를 또 다루는 학술토론회에서 필자는 강연을 하게 되었다. 진부하게 들리는 주제지만 통일이라는 주제는 흡사 ‘영원의 철학’처럼 아직은 우리 모두에게 다가서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또 다른 장벽인 ‘휴전선’이 무너질 시간을 나름대로 자신 있게 예언했던 그 많은 주장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는 독일통일의 부정적인 후과(後果)를 강조하고 독일통일을 우리 통일의 반면교사로서 볼 것을 요구하는 주장들이 대신 들어섰다. 한편에서는 독일식 흡수통일에 대한 경고로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한탕주의’에 기초한 감상적 통일론에 대한 경고로서 그러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우리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식이든지 우리는 대개 독일통일을 먼저 떠올리며 그로부터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유추(類推)하게 된다. 물론 베트남의 통일도 한때 그러한 유추의 대상이었으나 오래 전부터 우리의 뇌리로부터 사라졌다. 우리의 사고활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추는 비교하는 대상간의 복잡한 내적 요소들과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을 비교해야만 한다. 그러나 완전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사이의 유추처럼 대칭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비교대상들을 전체로서 유추해보는 이른바 ‘수식적 유추’가 독일과 한반도통일의 비교연구를 강하게 지배해왔다. 이로 인해 합리적인 분석에 의거한 유추보다는 대개 선언적인 내용들이 먼저 자리잡은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과학이라는 이름 밑에서 자연과학적인 엄밀성을 모범으로 한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을 동원해서 독일통일에서 한반도통일을 유추해보려는 시도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많은 경우 햇볕정책 그리고 이의 구체적인 결실이었던 6·15공동선언도 일종의 감상적 통일의 표현으로 보려고 한다.‘뭉치면 죽는다.’는 식의 탈현대적(脫現代的)인 역설까지 동원해서 이른바 ‘퍼주기’식의 통일정책을 비판한다. 그토록 정교하게 구성된 서독학계의 합리적 분석들도 독일통일을 예견치 못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주었듯이, 그러한 ‘과학적’시도도 기본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고 있다. 구조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를 혁파하려고 부단히 움직이는 인간주체의 능동적 역할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민족통일문제도 일종의 사회공학(工學)적인 문제로만 여기게 된다. 이 점에서는 당시 동독의 학계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이 곧 합리성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동독체제에 등을 돌린 이른바 1989년 가을의 ‘탈출혁명’을 예견할 수 없었다. 하나의 사건처럼 불쑥 다가온 통일은 한때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이는 곧 지루한 일상생활 속으로 녹아들었다. 물리적 장벽을 허무는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의 장벽이 저절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바로 이렇게 사건과 일상성이 뒤얽혀 전개되는 삶의 세계로서 통일은 우리에게 현실과 꿈, 물질과 사람, 객관과 주관으로 단순히 갈라 볼 수 없는 하나의 원초적(原初的)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 세계는 분명 고향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였던 그 때를 기억토록 만든다. 고향은 과거를 되살리는 세계다. 그러나 이 원초적인 세계로서 통일은 더 이상 그러한 ‘과거의 고향’이 아니라,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밟아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의미한다. 통일이 바로 이러한 미래의 고향이기에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항상 요구한다. 바로 이 풍부한 상상력을 훼파(毁破)시켜온 독일통일로부터 우리 스스로도 이제는 해방되어야만 한다.
  • ‘동독출신 여성’ 핸디캡 정치력·뚝심으로 극복

    |파리 함혜리특파원|유약한 이미지와 달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못지 않은 추진력과 끈기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앙겔라 메르켈(51) 기민당 당수가 정치 입문 16년 만에 드디어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호(號)’를 이끌게 됐다. 지난달 18일 총선을 2주 정도 앞두고 당초 집권 사민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게 사민당의 맹추격을 받자 ‘메르켈 한계론’이 대두됐으나 특유의 끈기로 사상 첫 여성, 최연소 총리를 쟁취해냈다. 당시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메르켈의 문제점은 동독에서 성장한 전력에다 여성이라는 한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텔레비전 토론에서 유권자에게 정확한 소신을 피력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었다. 따라서 메르켈은 차기 총리 취임 후 이런 과제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날이 불투명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메르켈은 1954년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어릴 적 목사인 아버지의 임지인 브란덴부르크주(州)의 작은 마을 템플린으로 이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민주적 변혁’에 가입,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메르켈은 1990년 3월 동독 과도정부의 대변인 서리에 임명됐고 통일 후 실시된 총선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눈에 띄어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1994년 환경부 장관에 오르고 1998년 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콜 전 총리가 키운 ‘정치적 양녀(養女)’로 2000년 4월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지만 비자금 스캔들이 돌출되자 재빨리 콜과 결별하고 당내 유력 정치인들을 당권에서 밀어낸 뒤 2000년 9월 원내 총무직까지 겸임하는, 남자 이상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2002년 당수로 재선출되고, 원내총무 선거에서도 승리한 메르켈은 지난 해와 올해 초 사무총장 등 당내 일부 중진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사민당이 39년간 집권해 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야당의 총리 후보가 됐다. 요아킴 소이어(56·훔볼트 대학 화학과 교수) 박사와 지난 1998년 재혼했으며 자녀는 없다.lotus@seoul.co.kr
  •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45년 동안 동서로 갈라졌던 냉전의 상징 베를린은 분명 상처받은 도시였다. 그러나 1961년 8월13일 이후 베를린 시를 동서로 갈랐던 43.1㎞의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통독 이후 독일의 수도로 다시 태어난 베를린은 1조유로(약 125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 미래 도시에 걸맞은 인프라를 구축하며 주요 행정기관과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다. 분단 도시의 흔적을 지우고 유럽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베를린 장벽의 잔재는 박물관이나 기념물 외에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곳곳에 들어선 다양한 디자인의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미래 지향적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많은 사람들은 베를린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끝없이 건설 중인 도시’라고 표현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한두번만 가보면 이 표현의 적절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버스는 초(동물원)역에서 출발해 티어가르텐, 전승기념탑, 벨뷔 궁전, 세계문화관, 연방의회 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운터 덴 린덴, 박물관 섬, 알렉산더광장 등 시내의 주요 명소를 지나가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1871년 독일이 제국으로 통일된 것을 기념해 지어진 의사당은 통독 이후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옥상에 통독 이후 투명돔이 지어지면서 통독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투명돔은 내부에 거울기둥들이 다양한 각도로 설치돼 있고, 여기서 반사된 햇빛이 본회의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박물관 섬(Museuminsel)’에서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슈프레강 한복판에 있는 이 지역은 이름 그대로 1830년부터 100년 동안 차례로 지어진 4개의 박물관과 1개의 국립미술관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부터 후기 비잔틴을 거쳐 1900년대에 이르는 건축과 미술의 역사를 담고 있다. 베를린시는 밀레니엄을 맞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 10년 안에 8억2900만유로(약 1조원)를 들여 미술관과 박물관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사가 끝나면 박물관 섬에 있는 5개의 건물은 지하 통로로 연결되고 행정동과 기술센터도서관, 교육시설들이 갖춰지게 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쌓여졌던 두텁고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현대식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 지역의 핵심은 포츠다머 광장이다. 1920∼30년대 유럽 최대의 번화가였으나 전쟁과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폐허로 남아 있었다. 베를린시가 도시의 상징적인 광장을 만들기 위해 1991년 주최한 국제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건축가 힐머와 자틀러가 제안한 복원계획이 당선됐고,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가 설계와 건설을 맡았다. 베를린의 미래를 보여주는 포츠다머 광장에는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40억마르크(약 2조 4000억원), 일본 소니가 13억마르크(약 7800억원)를 각각 투자했다. 광장에는 복합 빌딩을 비롯해 고급 쇼핑몰, 영화관, 카지노, 아파트와 사무실 등 17개의 현대식 대형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간판건물로 꼽히는 소니센터는 뉘른베르크 태생의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한 미래형 복합 빌딩으로 유리와 강철로 만든 돔형의 지붕과 7개의 빌딩으로 이뤄져 있다. ●문화 중심지로의 화려한 복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어있는 운터 덴 린덴(‘보리수 나무 아래’라는 뜻)은 베를린 최초의 계획된 산책로로 2차 대전 이전까지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냉전시절 동베를린에 속하면서 낭만을 잃었다가 지금은 고급 부티크와 카페,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즐비한 베를린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삭막해졌던 베를린 시내는 이제 젊은이들과 예술가들, 무궁무진한 문화적 인프라를 향유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베를린에는 3개의 오페라하우스,100개가 넘는 연극 공연장,17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넘치면서 근사한 레스토랑과 바, 카페 등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통독 15주년 국경일인 지난 3일 국립미술관 앞은 고야 특별전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4∼5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며 지루한 줄 모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터시에서 왔다는 프랑크 엡슈타인은 “베를린에는 친구들도 많고 오페라와 연극 등 볼거리도 많아 자주 방문한다.”며 “베를린이 하나로 합쳐진 뒤 문화적 풍요로움이 더해져 즐겁다.”고 말했다. ●유럽 중심도시로 발돋움 독일 통일로 베를린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대 도시가 됐다. 그러나 유럽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베를린의 변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베를린시는 전체 170㏊에 달하는 지역에 총 1000여개의 새 건축물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도시 계획은 전반적인 도시의 밑그림(STEP)을 기준으로 지역계획(FNP), 구역계획(BEP) 등 단계별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다. 내년 완공예정인 베를린 중앙역사를 비롯해 건축아카데미 복원계획, 스프리 강변의 미트지역에 세워질 업무 및 주거 복합빌딩 지르쿠스, 현대적 시설을 갖춘 오스트반호프 실내 체육관, 티어가르텐 서쪽의 특급 호텔 및 위락시설 지역 KPM쿼터, 스프리강변의 미디어센터 등이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건축의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주독 한국대사관의 신동민 전문연구원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베를린은 미래의 유럽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 정보·첨단 IT·교육 등 지식산업시대를 겨냥한 도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같은 도시의 발전은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철거” “보존” 논란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베를린 서쪽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은 운터 덴 린덴 거리를 따라 10분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을 마주한 베를린 대성당이 나오고 그 뒤로 박물관 섬이 보인다. 고색창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맞은 편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를 끼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철거를 앞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옛 동독 공산당사(Republik)다. 군데군데 깨어진 황동색 유리와 강철로 외관이 장식돼 있고 규모는 매우 큰 편이지만 어딘지 황량했다. 심지어 흉물스러워 보인다. 통일 이후 15년간 방치된 탓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달 17일부터 ‘프락탈 Ⅳ’라는 현대미술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젊은 예술가 25명이 ‘죽음’을 주제로 설치, 비디오 아트, 회화,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시대의 흔적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전시장을 찾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런 대로 건물의 모양새를 갖춘듯 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철골 구조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전시장이 아닌 곳은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출입을 금지했다. 이런 분위기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장 안내를 맡고 있는 힐미라는 청년은 “오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공산당사는 문을 닫고 내년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전시 주제가 ‘죽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는 프로이센 왕궁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 실현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사는 과거 프로이센의 왕궁이었던 건물을 헐고 옛 동독 공산당이 새로 지은 건물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 후 과거의 어두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 건물을 헐고 왕궁을 복원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옛 동독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단 보류했다.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종종 현대 미술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는 서독 지역 사람들마저 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질케 블룸은 “프로이센 왕국은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많은 돈을 들여 복원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한다. 건축이 전공이라는 클라우디아 힐가트는 “공산당사가 분단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역사의 일부”라며 “이대로 보존하면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문화로 가득찬 청계천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거리에/오고가는 사람들 흥겹게 노래한다./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모여 웃음꽃 피우네./푸른 가로수 길가에는 그대 희망찬 발걸음이/불빛 가득찬 청계천에 우리의 소망이 피었네.” 조용필이 부른 ‘청계천’의 모습이다. 눈부신 햇살과 불빛, 푸른 물과 가로수,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 청계천, 그곳엔 흥겹게 노래하고 웃음꽃 피우며, 꿈과 희망과 소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사랑과 기쁨과 미소가 충만해 있다. 청계천은 아름다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다리에 얽힌 역사가 있고, 미소와 기쁨을 자아내는 예술이 있으며, 꿈을 일구고 흥겹게 즐기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이러한 청계천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사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만들고 또 만들어가는 공공공간이다. 그래서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참여’의 문화적 키워드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다. ●청계천은 역사다 ‘하천’시대(조선시대∼1950년대),‘복개’시대(1960∼1990년대),‘복원’시대(2000년대)의 역사적 숨결이 담겨있는 청계천. 우선, 자연하천이자 서민의 생활터전이었던 하천시대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다리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상류층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는 사회계층들의 삶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도성 최대의 다리로서 어가와 사신의 행렬이 지나가는 교통로이자, 정월대보름이면 수천명의 민초들이 다리밟기를 행하던 ‘광통교’, 중인과 상인계층들의 삶터로서 수심을 측정했던 수표와 보물 제838호 수표교의 옛터이자 겨울이면 서민들의 연날리기 명소였던 ‘수표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사연과 역사가 담겨 있다. 물론, 하천시대의 역사는 아직 온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광통교는 원위치에 자리잡지 못했고, 정조가 수원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담은 길이 192m의 세계최대 도자벽화 ‘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나 그곳의 자취를 연상해 볼 수 있다. 수표교도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 있다.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서 청계천의 모습 또한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의 ‘청계빨래터’와 징검다리 속에서만 더듬어 볼 수 있다. 수표교 근처 ‘준천사터’등 천변 곳곳에 위치한 유적 기념비들과 함께, 앞으로 더 복원해야 할 하천시대 청계천의 역사를 성찰하고 그 모습을 꿈꿔보는 것, 그 자체도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가 아닐까. 다음으로, 산업화·근대화의 엔진이자 도심산업문화의 정점이었던 복개시대의 역사를 만나 보자. 복개시대의 대표적 상징물인 ‘삼일고가’,‘삼일빌딩’,‘삼일아파트’를 우선 들 수 있다. 삼일고가는 무학교 아래에 세 개의 ‘존치교각’으로 남아 있다. 건축당시 서울의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은 삼일교 앞에 건재하고, 다산교에서 황학교 사이에 포진한 역시 건립당시 최고의 아파트였을 삼일아파트는 위층이 모두 헐린 채 2층의 영업공간으로 남아 있다. 복개시대의 역사는 무엇보다 여전히 청계천을 지키고 있는 도심산업문화의 자취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표교 부근의 공구, 세운교 부근의 전자·조명, 배오개다리 부근의 시계귀금속, 오간수교 부근의 신발도매, 맑은내다리 앞 관상어 상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과 달리 깔끔한 디자인으로 통일된 간판들의 모습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상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새벽다리를 사이에 둔 한국 최초의 근대시장 광장시장과 건자재 종합시장 방산시장, 마전교에서 다산교 사이의 평화시장들, 영도교 앞 황학동 도깨비시장, 고산자교 부근의 마장동 축산시장 등 상인과 서민들의 삶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던 시장들도 여전히 복개시대 청계천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도심산업문화를 창출한 역사의 기저에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평화시장 앞에 생을 바쳤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있다. 그의 분신장소 앞에는 과거의 낡고 초라한 표석 대신 늠름한 모습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동상이 위치한 버들다리는 전태일 다리로, 부근의 패션의 거리는 전태일 거리로 다시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복개시대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부 상권이 옮겨지고,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시장이 타운으로 변모하고, 허름한 간판과 골목이 새로운 이미지 통합(CI)과 더불어 정비되고는 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생태공원이나 여가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생계공간이자 삶터다. 생태환경 복원에 이어 삶의 공간으로서 문화복원이 이루어지도록 복개시대의 자취들을 꼼꼼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젠 문화도시 서울을 견인할 복원시대의 역사를 체험해보자. 복원공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과 자료와 꿈들, 청계천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제는 마장동 두물다리 앞에 위치한 1728평의 복합문화공간인 ‘청계천문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청계천 시점부에 조성된 2100여평의 ‘청계광장’은 서울광장과 연계해 광장 문화의 새 역사를 선언하고 있다. 삼일교 앞에 조성된 ‘베를린 광장’ 역시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의 임무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공사기간에 영업이 어려운 황학동 벼룩시장 노점상들의 생계공간으로 마련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은 이제 동대문의 명물이 되었다.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35만평의 ‘서울숲’은 복원시대를 상징하는 핵심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복원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만큼 복원시대의 역사는 앞으로 청계천에서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문화를 통해 겹겹이 쌓여갈 것이다. ●청계천은 예술이다 청계천에서는 예술적 혼과 정신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광통교와 수표교, 오간수문의 건축양식에서는 그 시대의 장인정신을,‘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는 김홍도를 비롯한 정조시대 최고의 화가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을 형상화한 마전교의 ‘옥류천’,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오간수교의 ‘문화의 벽’, 청계미니어처와 프로그램분수, 만남과 화합을 상징하는 8도석이 마련된 청계광장, 물과 어우러진 다양한 조각품과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장통교 앞 관철동의 젊음의 거리는 ‘피아노 거리’로 변모해 건반 모양의 돌벤치에 앉아 거리아티스트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청계천의 삶이 예술과 결합되는 다양한 축제들 또한 만날 수 있다. 무교·다동 음식문화축제와 동대문패션축제 등 상권활성화와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축제를 비롯, 다리밟기를 현대화한 답교 퍼레이드 등 다양한 천변 민속축제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막 복원된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은 아직은 협소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청계천에는 다양한 예술적 사건들이 흐를 것이다. 정서와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삶과 사람과 예술을 청계천에서 만들어 보자. ●청계천은 삶이다 청계천은 그속에서 생계를 꾸리고 인생을 가꾸는 상인과 기업들의 삶터다. 또한 청계천은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따라서 청계천의 삶과 사람, 그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들 그 자체가 청계천의 문화다. 준설사업을 시행했던 암행어사 박문수, 천변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던 남이장군, 수표교 밑에서 그림을 그렸던 천재화가 장승업을 만날 수 있다. 복개시대 이 곳의 주인이었던 광장시장 거리의 악사 백연화, 청계천 설치미술가 설승순, 황학동 만물시장의 시인 홍이종, 청계천 하구에서 빈민운동을 했던 제정구,4단밥상 배달 아줌마 박호순, 전태일의 동료였던 재단사 배강일 등도 이곳의 살아 있는 역사다. 영도교 앞 20년 전통 멸치국수 포장마차와 곱창골목의 상인들, 광장시장에 있는 삼류 ‘바다극장’과 오간수교 부근의 ‘뉴서울카바레’에서도 청계천 상인들의 멋과 낭만이 배어 있다. 이제 새롭게 복원된 청계천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삶을 일구어갈까.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서 새로운 추억과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만들어갈까. 그 삶들을 함께 지켜 보자. ●청계천은 참여다 청계천은 함께 만들었다. 청계천을 만든 ‘7인’ 혹은 ‘20인’ 등 언론에서는 특정인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열린 물길을 접하러 그곳을 찾은 수백만의 시민들, 그들의 문화적 욕망이 청계천 복원의 실질적 힘이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 50m 길이로 조성된 ‘소망의 벽’에는 2만여 명의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버들다리 위의 전태일 동상과 4000개의 기념동판에는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를 외치며 수년간 싸워온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는 시민들의 성금이 녹아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계천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매주 문화달리기를 통해 얻은 기금과 시민들의 청계천 문화의 다리 성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청아람’ 등의 자원봉사단도 청계천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심부름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초기부터 생존권 수호를 외쳤던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청계천은 차별천’이라 외치는 장애인이동권쟁취시민연대, 청계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 폭력없는 사회를 외치는 ‘청소년 맑은물 축제’ 참석자들, 그들의 목소리는 청계천을 인권천이자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참여의 소리가 될 것이다. 인근의 기업들도 ‘오천팔백미터 사람, 자연, 문화의 어울림, 희망이 흐릅니다’ 등 다양한 플래카드를 내걸며 청계천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01번 청계천 순환버스, 지하철과 함께 하는 청계천 나들이,2개 코스의 도보관광 등 공공기관도 청계천 문화에 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청계천은 미래고 꿈이다 청계천 문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에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갓 물리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에서 역사와 예술과 삶을 감동으로 조우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화기획들이 산재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문화복원과 문화창출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청계천에서 어떠한 문화를 발견하고, 어떠한 문화를 심을 것인가. 서울시에서는 주변의 문화벨트(북촌, 대학로, 정동, 남촌, 장충, 돈화문길, 서울숲)와 연계해 ‘청계천문화벨트’를 조성한다고 한다. 또한, 청계천 브랜드 개발, 문화공간 및 시설 조성, 관광상품 개발, 축제이벤트 전략 등을 골자로 하는 ‘청계천 장소마케팅 전략’도 구상 중이다.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에서는 ‘전태일 광장과 기념관’을 추진하고 있고, 구보학회에서는 ‘박태원 천변테마파크’를 구상하고 있다. 장애인인권단체에서는 장애인이동권을 찾고자 하고,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청계천포럼을 만들고 있다. 개발업자들은 천변에 초고층 빌딩을 기획하고 있다.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이 있는 도심의 문화갯벌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청계천을 탐색하고, 즐기고, 성찰하고, 싸우고, 만들어 보자. 청계천엔 문화가 흐르고 미래가 흐를 테니까.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상) 베를린 현지 르포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상) 베를린 현지 르포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전역에서는 지난 3일 크고 작은 통독 15주년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분위기는 지난 1990년 10월3일 당시 총리로서 통일의 주역을 맡았던 헬무트 콜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독일이 분단의 역사에 종말을 고한 첫 해의 행복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옛 동독 지역 주민들 사이에 자괴감과 실망감이 팽배하고 심지어 이전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어느덧 통일 15주년을 맞은 독일을 찾아 통일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베를린·포츠담 함혜리특파원|통독 기념일인 3일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는 거대한 축제가 열렸다. 록밴드가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나들이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언제 분단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축제 분위기에 도취해 있는 젊은이들 사이로 간간이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눈에 띈다. 소시지와 감자·버섯 등을 안주 삼아 맥주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흥겹다. ●통일의 두 얼굴 전날 방문했던 베를린 인근 포츠담시의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포츠담시는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로 동독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연방주가 돌아가면서 통독 기념행사를 주관하는데 올해는 마침 브란덴부르크주가 주관했다. 포츠담 시내 중심부의 루스트 가르텐(즐거움의 정원)에서는 ‘미래가 자란다-통일 15주년’이라는 주제로 곳곳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콘서트, 메이크업쇼, 헤어쇼 등 각종 축하행사가 열렸다. 가족·친구들과 어울려 나들이 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민들의 표정은 그러나 그다지 밝지 않았다. 맥주잔을 앞에 놓고 앉아 공연을 감상하고 있던 클로프트 부부에게 지금의 생활이 행복한지 물었다.50세 정도 돼 보이는 클로프트가 오른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어 보인다. 그저 그렇다는 뜻이다. 통일된 후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90년 6.4%였던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04년 19.5%로 치솟았다. 서독 지역(8.9%)의 두 배 이상이다.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에는 공식적인 실업률이 25%에 달하고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18살 된 딸 카트린과 축제를 보러 나온 마리아는 “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좋은 가전제품을 갖추게 된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과거가 그립기도 하다.”고 말했다. ●멈춰 버린 경제성장 외형상 통일은 독일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틀림없다. 옛 동독 지역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동독 지역의 개인소득은 서독 지역의 83%까지 올라가 1991년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주거비용과 공공요금까지 감안하면 87%에 육박한다. 통일은 또 동·서독인 모두에게 ‘반쪽 독일인’이라는 문화적·심리적 콤플렉스를 완전 해소시켰다. 동독 지역의 환경은 개선됐고 인프라도 많이 구축됐다. 법체제도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과 문화재도 복원됐다. 하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같은 생활수준의 향상은 동독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해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독의 동독에 대한 재정이전 덕분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이 이뤄진 1990년 이후 무려 1조 2400억유로(약 1550조원)를 옛 동독 지역에 쏟아부었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해당하는 850억유로가 투입된 셈이다. “문제는 투자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고,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동독 지역의 성장이 멈췄다는 것”이라고 유력지 디벨트의 우베 뮐러 기자는 분석했다. 통일 직후인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보였다. 동독의 1인당 GDP는 1991년 서독 지역의 42.3%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1996년 67.8%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성장을 멈춰 버렸다.2004년의 경우 1인당 GDP는 서독의 67.2%에 해당한다. 동독 지역의 민간경제가 너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독일 전체의 상장기업 가치가 21조유로인데 이 가운데 동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0.1%(14억유로)에 불과하다. 연매출 500만유로 이상인 기업 중 11.2%만이 동독 지역에 소재해 있다. ●인구이동 심화 통독 이후 동독의 인구는 140만명이 줄었다. 이중 60%가 동독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특히 일할 능력을 가진 젊은 층의 이주비율이 높다.IWH연구소에 따르면 1991년 이후 동독 지역의 노동가능인구(15∼65세)가 110만명 줄었다.2004년 동독을 떠난 사람 중 54%가 18∼30세의 청년층이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1600억유로를 사회간접자본 확충, 주택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입했지만 투자효과는 미미하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늘어선 대부분의 건물이 텅 비어 있는 것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다. 대부분 새로 지어지거나 증축된 건물이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일자리도 없어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간 탓이다. 동독지역에는 비어 있는 주택만 100만여가구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5년간은 인구이동이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와 낮은 출생률까지 겹쳐 2020년에 인구는 현재보다 11%가 줄어들고, 노동가능인구는 22%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에 대한 향수 독일 정부는 동독 지원금 부담으로 재정상황이 유럽연합(EU)의 재정 안정화 조약을 위반할 정도로 악화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지만 생산성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낮은 경제성장, 높은 사회보장 비용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만들어 버리고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통일 이후 독일 정부의 동독 경제 통합 노력이 성과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정치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방적인 원조에 ‘중독’된 동독 주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을 정치권 탓으로 돌리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동독 지역 주민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차기 총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lotus@seoul.co.kr ■ 동독지역 주민 슐츠 “기존 일자리 90%가 사라져 월급 없지만 연금이 더 많아” |베를린 함혜리특파원|“감격의 눈물이 복받쳐 올라 참을 수 없었다. 밤에 친구들을 모두 깨우고 우리 집에 모여 소중한 날 마시려고 지하창고에 간직했던 포도주를 따서 축배를 들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1일 저녁 옛 동독 지역의 알렉산더 광장 한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맥주집. 아돌프 슐츠(65)는 통독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 한번 눈물을 그렁거렸다. 기자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던 그는 “한국 국민도 빨리 통일의 감격을 맛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슐츠는 베를린 지역의 일간지 베를리너 자이퉁의 납활자 식자공으로 일했다. ▶독일이 통일된 뒤 피부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동독은 실업이 없었다. 기존의 일터가 90% 이상 사라졌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동독 시절에는 당원이 되고, 당에서 정해 주는 곳에서 일을 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긍정적인 측면의 변화를 꼽는다면. -무엇보다 표현과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었고 곳곳에 경찰이 있고 당원이 있어서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에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곧바로 강등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힘들지 않나. -빵이나 맥주 같은 기본 생필품은 예전이 물론 더 쌌다. 하지만 쓸 만한 가전제품이나 고급품의 경우 구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예전에 동독산 자동차 한 대를 사려면 13년을 기다려야 했다. 웬만한 것도 신청하고 나서 6개월을 기다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전이 좋았던 것도 많다. 교육 시스템은 나라 전체가 동일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주마다 시스템이 달라졌다. 동독에서는 모든 직장에 보육시설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모두 무료였다. 아이들은 무사히 잘 자랐지만 지금은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다. 마약이나 부랑자들로 인한 범죄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 체제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결코 아니다. 자유가 있는 지금이 좋다. 생활도 솔직히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 노동으로 벌었던 월급보다 지금 받고 있는 연금이 많다. lotus@seoul.co.kr
  • 마지막 표심 ‘메르켈 총리行’ 힘실어

    2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동부 드레스덴 선거에서 기민당(CDU)이 승리함에 따라 사민당(SPD)과의 대연정 협상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당 연합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베를린 함혜리특파원|메르켈 기민당 당수는 사상 첫 여성 총리에 한발짝 더 다가설 전망이다. 게르하트르 슈뢰더 총리도 3일 RTL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안정적 정부 출범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모든 것은 사민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사임 가능성을 시사했다. 선거 결과 기민당 소속 안드레아스 레멜 후보가 당선, 기민-기사당(CSU) 연합의 총의석수는 226석으로 늘어났다. 사민당(222석)과의 의석수 차이도 3석에서 4석으로 벌어졌다. 전체 유권자의 0.35%에 해당하는 21만 9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날 투표는 전체 총선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사민당과의 대연정 협상에서 심리적으로 보수 야당측에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의 총선 결과, 집권 연정과 보수야당 연합 모두 과반 획득에 실패함에 따라 이번 선거결과가 주목됐으나 양대 세력간 의석 분포에 의미있는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기민당 후보가 당선됐지만, 정당명부 비례투표에서는 사민당이 약간 앞섰다. 하지만 기민당과의 차이가 크지 않고 보수 야당인 자민당(FDP)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나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의석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사민당 27.9%, 기민당 24.4%, 좌파연합 19.7%, 자민당 16.6%, 녹색당 7.1%를 각각 얻었다. 사민당과 기민당은 드레스덴 선거 결과 서로 가장 강력한 정당임이 확인됐다며 기싸움을 이어갔다. 벨케 카우더 기민당 사무총장은 “사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감안해 연정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롤란트 코흐 헤센주 총리(기민당)는 “이번 선거 결과는 보수 야당이 의회 내 가장 강력한 세력임을 확인해준 것”이라며 “명백히 메르켈 기민당 당수에 유리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란츠 뮌터페링 사민당 당수는 “비례대표 투표에서 사민당이 가장 강력한 정당임을 확인했다.”며 드레스덴 선거 결과는 연정협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기민당 당수는 총선 이후 지난달 22일과 28일 두 차례 비공식적으로 회동, 대연정 구성 방안을 논의했으나 누가 총리직을 맡을지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측은 5일 다시 만나 협상을 계속할 예정이지만 합의도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연정 협상의 진행과정을 볼 때 “11월 중순까지는 새 총리가 선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lotus@seoul.co.kr
  • [쉬어가기˙˙˙] 독일월드컵 개막식 하루 앞당겨

    내년 6월8일 열릴 예정이던 독일월드컵대회 개막식 일정이 하루 앞당겨졌다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결승전을 포함, 대회 주요 경기가 치러질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의 잔디 보호를 위해 이 곳에서 열릴 개막식을 하루 앞당겨 7일 치르기로 조정. 이 곳 첫 경기인 F조 조별리그 1차전도 당초 6월12일에서 하루 늦춰 잔디 회복 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개막경기(A조 1차전)는 당초 예정대로 9일 오후 6시 뮌헨에서 열린다.
  • “1550조 투입불구 옛동독 성장 낙제점”

    |베를린 함혜리특파원|3일은 독일이 통일된지 15년이 되는 날이다. 현재 통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우세하다. 통일 이후 독일 경제상황이 계속 악화됐고, 동서독간 경제 불균형도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력일간지 디 벨트(Die Welt) 동독전문가 우베 뮐러(48)기자는 “통일이후 15년간 독일 정부는 옛 동독지역에 무려 1조 2400억유로(약 1550조원)를 쏟아부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오히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구조적 취약점 때문에 앞으로 15년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뮐러는 15년간 동독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로 독일 대통령의 통일 관련 조언자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통일 15년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독일 통일은 1990년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일 되고 5년간은 그런 대로 잘 진행됐다. 문제는 90년대 중반 이후 정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을 보면 동독은 연 평균 0.6∼0.7%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통일 이후 동독에 대한 서독의 재정지원은 연평균 850억유로에 달한다. 국내총생산의 4%를 쏟아부었지만 동독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앞으로 15년이 남아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정부 지원금은 어디에 썼나. -대부분 복지비용으로 사용됐다.850억유로 중 400억유로가 퇴직연금에 쓰였다.120억유로는 실업수당 등 노동시장 관리에 들어갔다.15∼20%만이 생산설비 투자에 할당됐다. ▶앞으로 15년을 더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850억유로 중 150억유로를 지원하는 통일관련 세금이 15년뒤엔 폐지된다. 연평균 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해야 세수 등에서 부족분을 충당할 수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1%미만에 불과하다. 재정지원이 줄면 공공투자가 사라지게 돼 일자리 85만개가 준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복지비용 증가로 주정부 부채는 눈덩이처럼 증가할 것이다. 독일 전체 문제로 확산될 것이다. ▶인구 이동문제도 우려가 큰데. -통독 이후 140만명이 줄었다. 이중 60%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줄어든 것이고,40%는 자연감소한 것이다. 앞으로 15년간은 인구이동이 더 두드러질 것이다.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로 2020년에 인구는 현재보다 11%가 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들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통일이 너무 갑자기 이뤄졌다. 동독은 적극적으로 서독에 편입되길 원했고 서독은 통일작업에 대한 개념도, 계획도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을 받아들였다. 통일 이후 서독측 대처도 안이했다. 유럽 최대라는 경제력만 믿고 너무 낙관적으로 미래를 봤고, 재정이전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세제, 세율 등 서독 시스템을 동독에 그대로 이전한 콜 정부의 정책적 실수도 컸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만족도는. -여론조사 결과 현재의 생활환경에 만족하는 사람은 서독이 72%인 반면 동독은 52%에 불과하다.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동·서독 모두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한 통일이 이뤄지려면 60년은 걸릴 것이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통일이 가져다 준 이점도 크지 않나. -물론이다. 문화적·심리적으로 볼 때 엄청난 부의 축적이다. 동독지역의 환경도 개선됐고 인프라도 많이 구축됐다. 법체제도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전통있는 대학, 문화재도 복원됐다. ▶한국에 제언을 한다면. -한국의 상황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통계치를 볼때 동서독의 통일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력이 엄청나게 차이나기 때문에 통일 이후 급격한 인구이동이 예상된다. 우리는 계획이 전혀 없었지만 한국은 북한 사람들을 현지에 머물게 하면서 통일 절차가 진행되도록 하는 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남한 정부는 경제여건이 좋아지도록 투자여건을 개발해야 한다. lotus@seoul.co.kr
  • 한국 IAEA이사국 재선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는 29일 한국을 IAEA 이사국으로 만장일치로 재선출했다.IAEA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49차 정기총회에서 한국, 노르웨이, 이집트, 쿠바 등 11개국을 2년 임기의 신임 이사국으로 선출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지난 2년간 IAEA 이사국으로 활동해온 데 이어 앞으로 2년동안 IAEA 이사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IAEA 이사회는 범세계적인 핵 비확산, 안전조치 및 검증,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기술협력 등 IAEA의 제반 기능과 관련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핵심기관으로 35개국 대표로 구성돼 있다.베를린 연합뉴스
  • 손기정 금메달 문화재 지정될 듯

    고(故)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이 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28일 경복궁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국정감사 도중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어 ‘고 손기정 선수 금메달의 국가 반환 및 국가문화재 지정 촉구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이에대해 “고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등 기념품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고 손기정 선수는 메달이 가지는 역사적·민족적·문화적 의의를 감안하여 지난 1979년 국가에 금메달을 비롯한 기념품 200여점을 기증한 바 있다. 이에 육영재단은 ‘손기정기념관’을 건립하여 기념품을 전시해왔으나, 재정문제 등으로 1993년부터 기념관이 휴관되면서 금메달이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손기정이 획득한 유품 중 그리스 고대 청동투구(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이미 지난 1987년 보물 제904호로 지정돼 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송두율칼럼] 세계화와 한국문화

    [송두율칼럼] 세계화와 한국문화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고 있지만 최근처럼 이곳에서 한국문화에 관해 집중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물론 서울 올림픽 때도 한국문화에 대한 소개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소개들은 어디까지나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의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 한국문화 그 자체를 중점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아니었다.9월19일부터 10월2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주간’이라는 문화행사에서 중점적으로 소개되는 국가도 한국이고, 이어 10월19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시회’의 주빈국도 역시 한국이다. 세계화시대에 문화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최근의 집중적 조명은 한국문화의 미래의 지평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도 마련해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응축(凝縮) 속에서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도 쉽게 무너뜨리는 세계화는 지금까지 안으로는 같게, 밖으로는 구별하게 만드는 특성을 지닌 문화의 전망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세계화 속에서 문화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지역적 공간 속에 갇혀있고 또 항상 동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면서도 열려 있는 삶의 형식 전반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가 이른바 ‘맥도널드화’라는 표현처럼 개별문화를 지금까지보다도 더 자본이 형성한 지배적 문화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미국의 소비문화의 전지구적 지배로 귀결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앞의 견해가 세계화가 문화의 다양성을 활성화시킨다고 보는 데 대하여 뒤의 견해는 세계화가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양면성을 지닌 세계화의 복잡한 전개과정 속에서 한국의 문화와 예술이 독일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한국문화가 지니는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어 ‘같음’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한국문화가 지니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다름’을 보다 강조해야만 하는가라는 어려운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같음’만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한국’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다름’만을 강조하다 보면 ‘문화’가 지니는 보편성과 여러 문화간의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결국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같음’과 ‘다름’의 사이에 걸려 있는 긴장된 관계가 제대로 이해될 때 한국문화는 더 이상 지배적 문화의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면서 여러 다른 문화와 공존하면서 이들이 빚고 있는 아름다움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문화임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같음은 다름이 있기에 가능하며 다름은 또 같음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원효의 역동역이(亦同亦異)와 비동비이(非同非異)의 철학은 한국문화가 세계화의 파고 앞에서도 견지해야 할 긴장된 정신의 내용을 잘 풀이해주고 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 주간’행사의 일환으로 ‘베를린 교향악단’의 윤이상의 교향곡의 밤도 있었다. 윤이상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드뷔시의 음악도 함께 연주되었기에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동서양의 음악미학 사이에 있는 같음과 다름의 긴장을 잘 보여주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최근 독일어로 번역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의 낭독회도 있었다. 작가가 왜 현재 런던에서 작품생활을 하면서 ‘세계인’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고민도 들을 수 있는 재회의 기쁜 시간을 필자는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 개별문화가 지니는 경계와 코드를 철저히 허물고 문화를 오로지 유희(遊戱)처럼 여기는 해체주의적 시도도 있다. 그러나 개별문화는 세계화된 문화의 표현형식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항상 남을 수밖에 없다. 민족이라는 담론을 한갓 희화(戱畵)로만 여기는 젊은 여성작가와 민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흥분하는 기성세대의 남성작가가 독일에서 서로 달리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든지 세계화 속에서 한국문화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바로 같음과 다름 사이에 걸려 있는 긴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청계천 ‘베를린 광장’ 개방

    독일 베를린시가 청계천2가 삼일교 남단 한화빌딩 앞에 조성한 ‘베를린 광장’이 27일 개방됐다. 30여평의 광장에는 베를린 장벽, 베를린 ‘곰(熊)상’ 등이 설치됐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허물어진 것으로,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의 콘크리트 덩어리 세 개를 원형 그대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옮겨왔다.베를린시의 상징 동물인 ‘곰상’ 몸통 좌우에는 남대문과 브란덴부르크문을 그려 넣었다.100여년 전부터 베를린시 마르찬 휴양 공원에 설치돼 있던 조명등과 의자 등도 옮겨졌다. 서울시는 “독일 베를린시 측에서 조성 비용 6000여만원을 모두 부담하고 재료도 직접 가져와 조성했다.”면서 “두 도시간 우호의 상징이자 통일을 기원하는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한복입은 웅녀모습 기대하세요”

    “한복입은 웅녀모습 기대하세요”

    강렬한 색채와 힘찬 붓놀림으로 동물과 산수를 화폭에 담아온 한국화가 사석원(45)씨는 최근 ‘곰’ 한마리와 씨름중이다. 지리산에서 뛰쳐 나온 곰이 아니다. 다음달 8일∼11월9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열리는 ‘2005 아름다운 버디베어’서울 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술품’곰이다. 전 세계 곰들의 축제인 이번 행사에는 유엔 회원국 12개국의 예술인들이 각국의 혼과 숨결을 담아 제작한 곰 조형물 124개가 전시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미국의 자유 여신상 등 전 세계의 인물, 풍물 등이 그려진 이 곰들은 둥글게 손을 맞잡고 서서 아름답게 치장한 자신의 몸매를 선보이게 된다. 사씨는 이번 행사 조직위원회로부터 한국의 곰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배동 작업실에서 곰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단군의 자손인 우리에게 곰은 친숙한 동물입니다. 한복 입고 고무신을 신은 웅녀의 모습을 그려 넣을 생각입니다.” 그는 현재 독일에서 특수제작된 흰 곰에 밑칠 작업을 해 놓았다. 깨지지 않으면서 가벼운 특성의 유리섬유로 제작된 2m 키의 이 흰 곰을 앞으로 한국의 색채를 가득 담은 웅녀로 변신 시킬 계획이다. “전 인류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버디 베어 전에 작품 의뢰를 받고 너무 기뻤어요. 유행을 좇아가지 않고 우리의 미(美)를 기반으로 한국의 정체성, 색깔, 문화, 신화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웅녀를 탄생시켜야죠.” 평소 동물들을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내는 그는 이번 곰 작업에서는 민화적 요소를 많이 활용할 생각이다.“붉은 색, 노란색, 파란색 등 밝고 화려한 원색들을 많이 사용하고 곰의 얼굴은 우리 목각 인형처럼 친근하게 표현할까 합니다.” 그는 앞서 지난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방북할 당시 1m 키의 곰 한마리를 제작, 북한에 보냈다. 북한의 이번 행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전시되는 모든 곰들은 경매에 부쳐져 수익금은 아름다운 재단과 유니세프(UNICEF)한국위원회에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 ‘아름다운 버디베어’전은 독일의 한 부부가 지난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계기로 인류의 사랑과 평화를 가꿔 나가자는 취지의 행사를 기획하면서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곰을 내세워 지구촌 나눔 행사로 키워진 이 행사는 지난 2002년부터 세계 순회에 들어 가 독일, 오스트리아, 중국, 터키, 일본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내년에는 북한 평양을 비롯, 호주 등에서도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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