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베를린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 안보리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 집값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 휴가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 살처분
    2025-12-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31
  • [Beijing 2008] 올림픽 44년만에 쾌거 자유형 400m 아시아新

    언제부터인가 ‘국민 남동생’에게 당연한 것처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 기대됐다. 사람들은 은·동메달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다. 박태환(19·단국대)의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터. 그가 지난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우승했지만, 올림픽은 차원이 다른 무대다. 게다가 정상급 선수들의 실력은 백지장 차이여서 미묘한 변수에도 승부는 뒤바뀌기 마련. 하지만 박태환은 모두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10일 베이징 내셔널아쿠아틱센터(워터큐브)에서 열린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1초86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은 것. 박태환은 한국이 올림픽 수영에 도전한 지 44년 만에 첫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해 워터큐브에 애국가가 울리도록 했다. 아시아인이 올림픽 자유형 남자부에서 우승한 것은 일본의 데라다 노보루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자유형 1500m에서 우승한 뒤 72년 만. 자유형 400m에선 사상 처음이다. 박태환은 전날 예선에서 3분43초35로 한국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날 1.49초를 단축, 하루 만에 한국기록을 고쳐 쓴 것은 물론, 전날 장린(예선 2위·3분43초32)에게 내준 아시아기록도 되찾았다. 박태환에 이어 장린(중국·3분42초44)과 라슨 젠슨(미국·3분42초78)이 은·동메달을 나눠 가졌다. 반면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그랜트 해켓(호주)은 초반 오버페이스를 한 탓에 3분43초84로 6위에 머물렀다. 박태환은 결선 진출 8명 가운데 0초69로 가장 빠른 출발신호 반응속도를 보였지만 잠영에서 뒤처져 50m까지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슬금슬금 속도를 붙인 박태환은 200m 지점에서 해켓을 간발의 차로 제친 뒤 폭발적인 스트로크로 앞서 나갔다. 안간힘을 쓰던 해켓은 체력이 떨어져 300m 이후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박태환은 이날 오후 자유형 200m 예선에서 1분46초73(6위)을 기록,16명이 겨루는 준결에 올랐다. 예선 8조에서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1분46초48)와 겨룬 박태환은 “옆 레인에선 처음 겨뤄봤다. 너무 잘하는 선수라 하나하나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11∼12일 자유형 200m와 15,17일 자유형 1500m에서 또 다른 신화 창조에 도전한다. 베이징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日언론 “박태환의 우승은 아시아의 쾌거”

    日언론 “박태환의 우승은 아시아의 쾌거”

    “박태환의 남자 자유형 400m 우승은 아시아의 쾌거” 베이징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에서 우승한 박태환에 대해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도 역시 ‘아시아의 쾌거’라며 비중있게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천식을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한 소년이 수영계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 남자자유형 종목에서 아시아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은 지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자국의 테라다 노보루(寺田登)의 1500m 우승 이후 72년만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서양선수의 독무대였던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지난해 봄 세계선수권에서 아시아선수로 첫 금메달을 땄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유력 스포츠신문인 닛칸스포츠는 “아시아 수영계에 역사적인 쾌거가 있었다.”며 “서양선수가 독점해 오던 남자 자유형 400m를 한국의 18살 박태환이 제패했다.”고 보도했다. 또 “같은 종목에 출전했던 마츠다 타케시(松田丈志)가 일본신기록을 기록하고도 예선에서 탈락했던 만큼 아시아국가가 금・은을 독점한 사실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스포니치 역시 “박태환이 장린과의 아시아대결에서 승리하며 한국수영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고 전했다. 신문은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부정출발로 실격당하는 등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이날 승리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Beijing 2008]한국수영 올림픽 도전史

    [Beijing 2008]한국수영 올림픽 도전史

    한국 수영의 진화는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등장할 때까지 세계 무대에서 변방에 불과했다. 1970년대 ‘아시아 물개’ 조오련이,1980년대 ‘아시아 인어’ 최윤희가 있었지만 아시아에서 최고였을 뿐 세계 무대와는 격차가 컸다. 1970·1974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2관왕에 올랐던 조오련은 1972년 뮌헨올림픽 자유형 400m와 1500m에 도전했지만 모두 예선 탈락했다.1982년 3개,1986년 2개 등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휩쓸었던 최윤희도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배영 100m와 200m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세계선수권도 마찬가지였다. 박태환에 앞서 결선에 오른 경우는 겨우 두 차례뿐이었다.1998년 남자 접영 200m에서 한규철이,2005년 여자 배영 50m에서 이남은이 결승에 올랐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수영은 조금씩 도약했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19살로 서울대 1학년이었던 남유선이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서 한국의 올림픽 도전 사상 최초로 결승에 올라 7위를 기록했다. 중학교 3학년 나이로 이 대회에 나섰다가 부정출발로 실격의 아픔을 겪었던 박태환은 이때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한국 수영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박태환은 2006년 범태평양 수영 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내며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세계 규모 대회에서 메달을 수확했다. 이어 같은 해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고,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400m 자유형에서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빛 물살을 갈라 세계를 경악케 했다. 박태환은 아시아 수영사도 새로 썼다. 동양인으로서는 72년 만에 올림픽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과거 수영강국이었던 일본이 1932년 LA대회 자유형 1500m와 100m에서,1936년 베를린 대회 자유형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금맥이 끊어졌던 것. 드디어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마저 정복하며 이 종목에서 자신의 시대를 선언한 박태환에게 남은 과제는 세계 신기록 작성이다.3분41초86으로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더 단축한 박태환은 ‘인간 어뢰’ 이언 소프(호주)가 2002년 작성한 3분40초08의 세계기록까지 1초78을 남겨 놨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는 왜 스포츠에 빠져드나

    우리는 왜 스포츠에 빠져드나

    이런 광고문구가 있었다. 스포츠는 살아 있다! 활어처럼 퍼덕이는 스포츠 정신의 원형이야 따로 장황하게 웅변하지 않아도 모두들 공감할 터.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이 궁금하다. 구구한 설명이나 설득없이도 어째서 인간은 스포츠의 매력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또 거기에 사로잡히게 될까. 바야흐로 세계의 시선이 한 점으로 쏠리는 올림픽 시즌.‘매혹과 열광’(한스 굼브레히트 지음, 한창호 옮김, 돌베개 펴냄)은 스포츠에 그 어떤 매력의 자장이 있어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는지,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고찰한 책이다. ●미적 감수성 자극하는 스포츠 미학적 분석 스포츠의 사회적 의미를 따져 보는 책은 이전에도 꾸준히 소개돼 오긴 했다. 하지만 스포츠를 음모론의 도구로 바라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동원, 민족주의, 상업주의 등의 교묘한 기제로서 스포츠의 의미가 해석됐음이다. 책의 차별점은 그 지점에서 찍힌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지은이의 분석과정에서 스포츠는 정치·사회적 음모론의 대상이 아니다. 스포츠를 향한 대중의 열광이 유의미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기본적 사실에는 저자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배경은 철저히 미학적 논리에 기댄 채 단순명료하게 정의된다. 한마디로 “스포츠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문학서적이나 연주회장의 음악, 박물관의 그림, 무대 위의 극예술 등과 똑같이 스포츠가 인간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는 주장이다. 스포츠에 내재된 보편적인 매혹의 요소들이 긍정의 에너지로 발산된다는 것. ●극한·인체·혼돈속 아름다움의 구현 미학적 해석에 충실한 책에 따르면, 스포츠의 매혹에는 그를 뒷받침해 주는 결정적 요소들이 있다.▲무질서의 혼돈 속에서 표현되는 아름다운 형상 ▲인체의 한계지점을 오가는 힘과 기술 ▲정확하고 빠른 소통과 팀플레이 ▲인체와 도구(말, 자동차, 라켓 등)의 환상적 조화 ▲절묘한 타이밍 등이 그들이다. 책은 관련 사례들을 역사 속 스포츠 현장을 뒤져 적시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미국 대표선수로 출전해 육상 4관왕을 차지했던 제시 오언스. 계산되지 않고 ‘무의지적’으로 구사한 초인적 몸동작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특별한 기술없이 멀리뛰기에서 가볍게 세계기록을 깨버린 순간, 자신도 놀라고 당황스러워 “관중에게 거의 사과하는 태도”를 보였던 오언스를 상기해 보자고 주문한다. 로마올림픽 육상 3관왕인 윌마 루돌프의 역주도 마찬가지.“그의 육체와 다리는 뇌가 보내는 지시사항을 따르기보다는 어쩌면 어떤 수학적 공식의 명령을 받는 듯하다.”고 묘사한다. 스포츠 현장에는 과학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미(美)의 또다른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희의 순간 ‘진리의 顯現´ 경험 덩크슛을 하기 몇초 전 샤킬 오닐이 공중으로 떠올라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짧은 순간은 또 어떤가. 열혈 스포츠팬이기도 한 저자는 완벽하게 철학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어떤 신체가 예기치 않게 공간에 등장하고 재빨리,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아름다운 형태를 띠는 것은 일종의 ‘에피파니’(epiphany:진리의 순간적이고 예술적인 현현(顯現))”이라고 전제하고, 그것이 곧 스포츠를 관전할 때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환희의 원천이라고 규정한다. 덧붙여, 그 순간이야말로 관람자 개개인의 미적 반응 수준이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 일관되게 미학에 근거한 해설은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인상을 던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포츠 동선 하나하나의 은유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식견을 아낌없이 빌려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다. 세계 스포츠사를 장식했던 명장면들, 알려지지 않은 올림픽 뒷이야기 등은 스포츠팬들에겐 ‘덤’ 이상의 쏠쏠한 읽을거리다.1만 4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독도라이더가 간다 3

    독도라이더가 간다 3

    유럽 홍보 활동 중 만난 북한 사람들 베를린에 울려 퍼진 조선의 노래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세계의 수많은 수도 가운데 이곳만큼 흥망성쇠, 영광과 고난을 함께한 도시도 드물 것이다. 티어가르텐의 중심부에 있는 전승기념탑은 그 영광의 나날들을 잘 보여준다. 이 탑은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1년 프랑스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베를린은 20세기가 시작하면서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연달아 패배했고, 특히 2차 대전 말에는 연합국이 ‘악의 제국’의 심장부인 베를린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1943년 연합국의 집중포화로 무너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아직도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승리의 사두마차가 위용을 뽐내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 서 베를린을 나누는 기점이 되어버렸다. 1990년 다시 하나가 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베를린. 바로 이곳에서 오늘 이곳에서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사실 우리에게는 월드컵보다 더 의미가 큰 공연이다.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보니 리허설 중인 모양이다.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눈에 북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접해보았지만 이렇게 강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기는 처음이다. 한마디로 묘한 기분이다. “오빠, 문 닫고 나와요. 리허설 하는데 그렇게 오래 지켜보는 거 아니에요.” 민영이(유럽 홍보 활동을 위해 새로 합류한 독도라이더의 유일한 여성 멤버)의 핀잔에 화들짝 놀라 얼른 문을 닫았다. 오늘따라 잔소리도 많고 웃음도 많은 민영이. 딱 강석이 형이 무슨 유명한 건축물 앞에 섰을 때의 반응이다. 우리 모두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이지만 그래도 전공은 속일 수 없나 보다. 국악을 전공하는 민영이는 오늘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같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도 얼른 홍보물을 정리하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무대 중앙의 ‘도이췰란드’라고 쓰인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쓴 엉성한 글씨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무대며 조명이 너무 열악했다. 첫 곡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반갑습니다’였다. 다섯 명의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나 둘 객석으로 걸어나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두 번째 곡에서는 여성 성악가가 앞줄에 앉은 외국인과 함께 춤을 춰 보였다. 숙련된 무대 매너와 시종일관 밝은 미소에 사람들 모두 환호를 보냈다. 성악가들이 하나같이 목소리가 맑았다. 특히 여성 성악가들은 고음 처리가 너무도 깨끗하여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젓대’라는 처음 보는 악기도 등장했다. 모양은 거의 대금과 흡사하다. 민영이가 계량한 대금 같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대금이랑 소리는 거의 비슷한데 음이 좀 더 다양한 거 같아요. 소리 내는 부분이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연주하기도 쉬울 것 같고요. 그런데 시김새(전통음악에서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 올라가는 음, 내려가는 음, 꺾어지는 음을 일컫는 말)가 좀 트로트 같네요.” 다른 얘기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트로트 같다는 데는 공감했다. 젓대 연주뿐만이 아니라 성악가들의 노래도 전체적으로 트로트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들으면 촌스럽고 어떻게 들으면 구수하다. 이어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반주 음악과 함께 장구를 멘 무용수가 사뿐사뿐 걸어나오더니 이내 화려한 연주와 춤을 선보였다. 전통 무용이라면 조지훈의 ‘승무’에 나오는 정적인 동작들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견문이 많이 얕았던 것 같다. 춤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현란했다. 마지막 곡 ‘다시 만납시다’가 흘러나올 무렵 우리는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모터사이클을 세워놓은 곳에 간이 부스를 만들었다. 이곳에 참석한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는 활동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서명까지 받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보다 값어치 있는 보물이 될 것이다. 곧 건물에서 하나 둘 북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에는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다. 하지만 즐겁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바로 우리의 얼굴이고, 옆 사람과 재잘거리는 그들의 말 또한 익숙한 우리말이다. 여행 내내 백만 번은 했을 “안녕하세요. 저희는 독도라이더입니다”라는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이 다가왔다. 한 북한 청년은 우리의 모터사이클이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조금은 뿌듯한 목소리로 “국산 모터사이클이에요” 하고 말해주자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다들 외부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경계하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설명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독도 엽서와 지도를 기뻐하며 받아갔다. 그리고 몇몇은 우리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서명란에 이름을 남겼다. 국적에는 ‘조선 사람’이라고 적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저기 계시는 분이 홍창일 북한 대사이니 가서 서명을 부탁드려 보십시오.” 한 사람이 나에게 넌지시 뜻밖의 정보를 알려주고 갔다. 유럽 한복판에서 이렇게 북한 대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좋은 기회이지만 한편 긴장이 되었다. “이러다 한국 돌아가자마자 보안법에 걸려 끌려가는 거 아냐?” “요즘도 납북되는 사람 있다던데.” 우리는 무시무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일단 부딪치고 볼 일. 씩씩하게 다가가 우리의 활동 취지를 설명해 드리면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정중하게 부탁드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슬슬 불안해지던 찰나 대사님이 천천히 입을 여셨다. “어디서 서명하면 되나?” 그리고는 우리의 안내에 따라 간이 부스로 이동해 서명을 남기셨다. 내친김에 나는 “세계 횡단을 마치고 귀국할 때 중국이 아닌 북한을 통해 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대사님은 그저 “몸 건강히 여행하시오” 하는 말로 답하셨지만 그 속에 묻어 있는 한 조각의 따스함을 우리는 잘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6년 독일의 여름, 그 열기와 조금은 동떨어져 조용히 베를린을 울리고 간 조선의 노래…. 그래서 더 애틋하고 인상 깊었던 공연과 북한 사람들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직 우리 땅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얼마든지 그 경계선이 사라질 수 있으리라. 글·사진 김영빈(독도라이더 팀장, 서울대 4학년) 2008년 7월 샘터에서 출간된 <독도라이더가 간다 - 21개국 3만4천 킬로미터, 232일간의 논스톱 모터사이클 세계 횡단기>를 통해 더욱 짜릿한 그들의 모험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08년 8월
  • 獨, 옛 동독 따라잡기

    “옛 동독식으로 스포츠 강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 통일 이후 올림픽 무대에서 쇠락한 독일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고 있다. 한때 세계 스포츠 무대를 주름잡았던 옛 동독처럼 엘리트 체육학교를 집중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동안 독일은 약물 복용,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높았던 동독식 훈련법을 기피해 왔다. 하지만 통일 이후 올림픽 메달 수가 급감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과거 국가주의식 엘리트 체육학교 복원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 정부가 체육학교 체육관, 수영장 등의 시설 정비에 올해에만 2억달러 가까이 투입했다고 2일(현지시간) 전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통일되기 전까지 동·서독은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았다.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동독은 금·은·동 합쳐 102개의 메달로 종합 2위에 올랐다. 서독도 메달 수 40개로 5위에 랭크됐다. 동독은 1980년 미국, 서독이 보이콧한 모스크바 올림픽에선 126개의 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과 동시에 독일은 올림픽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82개(3위)를 기점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56개(5위),2004년 아테네 49개(6위)로 점점 뒤처졌다. 위기감을 느낀 독일 스포츠계는 ‘결단’에 나섰다.2003년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은 옛 동독식 모델을 따라 국가차원에서 스포츠 유망주를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일본,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 지원을 하는 것도 자극제가 됐다. 총 39개의 엘리트 체육학교를 지정해 집중 지원에 들어갔고 올해 1억 9650만달러가 투입됐다.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규모다.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 관계자 마이클 시르프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2004년 때와 같은 6위를 사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Metro] 기후리더십회의 홍보단 발대식

    내년 5월 서울에서 열리는 ‘C40 기후리더십 그룹’ 정상회의를 홍보할 대학생 사절단 발대식이 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명의 홍보사절단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C40 정상회의는 서울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이 회의를 세계 곳곳에 알리는 데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홍보 사절단의 대학생들은 영어, 중국어, 일어 등에 능통한 국제대학생자원봉사연합회 소속이다. 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뉴욕, 베를린 등 7개 해외도시를 방문해 서울 회의를 홍보한다. 세계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배출하는 대도시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출범시킨 C40 그룹은 서울, 런던, 뉴욕, 파리 등 40개 회원도시와 13개 준회원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3차 회의는 내년 5월18∼21일 서울에서 개최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토요영화]그르바비차

    [토요영화]그르바비차

    ●그르바비차(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25분)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의 작은 마을 그르바비차. 이곳에서 에스마(미르자나 카라노비크)는 12살의 딸 사라(루나 미조빅)와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없다. 에스마는 사라에게 “아버지는 보스니아 내전 때 전사한 전쟁 영웅”이라고 말해준다. 에스마의 일상은 곧 사라를 위한 일상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그녀는 시내 한 클럽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어렵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전사 증명서를 떼어달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데, 전사자 가족에게는 경비가 면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마는 증명서 발급을 계속 미루기만 한다. 화가 난 사라는 어머니에게 대들지만, 곧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전쟁 와중에 수용소에서 집단강간을 당해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다. 사라는 방황을 시작한다. 가슴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대신 출생의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지독한 고통이 자리잡는다. 영화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상처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내전때 세르비아군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 여기서 보스니아 여성 2만여명은 세르비아 혈육을 낳기 위한 이른바 ‘인종 청소 프로젝트’에 따라 조직적인 강간을 당했다.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세르비아군의 만행이 빚은 시대의 참극을 직설화법으로 고발한다. 감추면 감출수록 상처는 덧나기 마련인 것. 즈바니치 감독은 조국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털어놓았다. 구차하게 에두르지 않고 딸에게 출생비밀을 알려주는 극중 에스마의 캐릭터도 그런 감독의 용기에서 가능했을 듯 싶다. 올해 34세인 즈바니치 감독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출신이다.1998년 옴니버스 영화 ‘메이드 인 사라예보’에 참여하며 감독으로 입문했다. 몇 편의 TV드라마를 연출한 뒤 처음 찍은 장편영화가 ‘그르바비차’. 이 데뷔작으로 지난 2006년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을 영화다. 엄청난 진실의 소용돌이 끝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딸이 버스에 올라 말없이 어머니와 나누는 그 눈빛. 모녀의 화해를 암시하는 평화롭고 잔잔한 화면 위로 보스니아 내전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진하게 오버랩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황석영의 ‘청춘 기록’

    황석영의 ‘청춘 기록’

    원조 ‘구라’, 소설가 황석영(65)씨가 또 하나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번에는 자전적 성격이 짙은 성장소설이다. 지난 2월 말부터 5개월간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화제가 됐던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이 한 권의 장편소설로 묶여 나왔다. “언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와 상처받은 내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작가는 출간에 맞춰 기자들과 만나 “회한이나 감추고 싶었던 것, 옛날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게 힘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아픔이 있었던 그때가 내 소설의 사춘기였던 것 같고, 그래서 나에겐 참으로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은 주인공 ‘준’의 사춘기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뒀던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상처받은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고등학교 자퇴, 두 번의 가출, 무전여행, 일용직 노동자와 오징어잡이배 선원, 제빵집 종업원, 입산수행, 베트남전 참전, 방북, 망명, 투옥, 출소…. 작가는 이런 파란만장한 개인사 가운데 베트남전 참전길까지의 청춘기를 이번 소설에 담았다. 영길, 인호, 상진, 정수 등 소설속 친구들도 모두 이름만 다를 뿐 지금도 옛일을 회상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실제 죽마고우들이다. 작가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지만 전제가 있다.“자기가 작정해 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 작가는 또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다.”면서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라고 덧붙였다.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우리 이름. 통상 금성은 새벽에 동쪽에서 많이 보여 ‘샛별’로 불리지만 공전주기상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나타날 때는 ‘개밥바라기별’로 불린다. 식구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결국 작가는 방랑자나 자기 행로가 정해지지 않은 성장기 무렵을 빗대 제목으로 차용한 것은 아닐까. “1989년 11월9일 오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장벽이 부서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아름다운 개인’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인위적으로 만든 장애는 언젠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다섯 해를 보내면서 일상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과 일상은 그후 제 문학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습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이 자신의 문학적 연대기에서 새로운 ‘표지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형성된 자신의 문학세계의 뒤안에 이런 개인적 방황과 잃어버린 내면세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인터넷 연재 기간에도 적지 않은 화제를 낳았다.5개월 동안 180만명의 네티즌이 접속했고, 매일 100∼200개의 댓글이 붙었다.‘초딩’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네티즌들은 이런 토론광장을 ‘별광장’으로 부르며 촛불집회는 물론 소소한 개인사까지 대화를 그치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블로그 방문객 중에서도 “현실 광장으로 나가자.”고 강력히 선동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별광장’은 중립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네티즌 180만명 접속… 연재기간 내내 화제 작가는 “투표로 뽑은 대통령에게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그러나 젊은이들의 이런 행동을 세계화된 문화적 시스템으로 보고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좌우, 진보·보수를 가르는 것도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10년간은 ‘청년작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힌 작가는 지금 ‘강남형성사’라는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 작품을 더욱더 ‘인터넷적’으로, 또 ‘이미지적’으로 써나갈 작정이다.1만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건국 60주년] 배려와 젠틀맨십 키워야 정치 성숙해진다

    [건국 60주년] 배려와 젠틀맨십 키워야 정치 성숙해진다

    지난주 국제 정치의 최대 이벤트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베를린 연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엔 조연도 있었다. 경쟁자인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이었다. 그는 오바마가 20만 청중을 만끽할 때 미국 내 한 독일 레스토랑에서 소시지를 씹는 초라한(?) 이벤트로 응수했다. 우리 정치문화라면 어땠을까. 독일이나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대규모 청중 동원 맞불집회를 열지는 않았을까. 실제로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 진영의 주요 유세전략 중 하나는 노골적인 ‘맞불놓기’였다. 상대후보가 판을 벌일 때 그것을 기꺼이 인정해 주고 자신은 다음 기회를 도모하는 것, 이것을 젠틀맨십(gentlemanship·신사도)이라고 부른다면, 우리 정치에는 다른 무엇보다 젠틀맨십이 부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미세한 정치문화의 질적 차이가 중진국 정치와 선진국 정치를 가르는 분기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 정치는 분명 지난 60년간 ‘하드웨어’ 측면에서 괄목할 만큼 진전했다. 서양에서 수백년에 걸쳐 일군 민주주의를 우리는 반세기 만에 이뤄냈다. 왕조국가의 잔재가 남은 식민시대에서 군사독재를 거쳐 평화적 정권이양과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 이토록 짧은 시간을 들인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부정부패 추문은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투명해졌고, 정치인에게는 ‘○사모’ 같은 자발적 팬클럽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국민에게 짜증을 넘어 혐오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젠틀맨십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주문이 “제발 싸우지 좀 말라.”는 것인 점만 보더라도 우리 정치의 숙제를 알 만하다. 어느 나라 정치인이든 싸운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비신사적으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말뿐 아니라 몸으로도 싸운다. 미국은 의회 시정연설 때 평소 대통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의원들이 모두 기립박수로 대통령을 맞으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우리는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 입장 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기 힘들다. 미국 의원들이 전부 대통령을 존경해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젠틀맨십을 어기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문화적 토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우리 정치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위해 신어야 할 마지막 신발은 젠틀맨십과 같은 무형의 ‘소프트웨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한국정치의 모든 악을 정치문화가 아닌 제도(권력구조) 탓으로 돌리며 입헌 100년도 한참 안 된 이 시점에 10번째 개헌을 운운하고 있다. 헌법이 문제라면,200여년 전 만들어져 권력구조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도 유지되고 있는 미국의 헌법 체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제도가 문제라면,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지 40일이 넘도록 국회 문을 안 여는 식의 ‘습관성 위법 증후군’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비 ‘닌자어쌔신’ 액션 촬영장면 공개

    비 ‘닌자어쌔신’ 액션 촬영장면 공개

    비 주연 영화 ‘난자어쌔신’의 액션 촬영 장면이 독일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독일 ‘슈피겔TV’는 베를린에서 촬영한 닌자어쌔신의 메이킹 영상 일부를 지난 30일 공개했다. 방송된 영상에는 베를린 도로와 창고 등에서 촬영한 비의 액션신을 중심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담겨있다. 영상에서 보여진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비의 촬영 장면은 ‘액션영화 입문생’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닌자어쌔신의 불안요소로 비의 액션연기 경험부족을 꼽았던 액션영화 사이트 ‘쿵푸시네마’도 이번 영상에서 보여진 비의 모습에 “충실한 훈련이 바탕된 좋은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편집과 카메라워크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데도 액션이 좋다.”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비는 슈피겔TV와의 인터뷰에서 “쿵푸와 태권도, 태극권 등의 무술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액션”이라며 “한마디로 ‘닌자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12월부터 여러 무술을 배우고 훈련해 왔다.”며 연기를 위해 특별한 훈련을 거쳤음을 강조했다. 한편 슈피겔TV의 이 영상은 ‘쿵푸시네마’ ‘트위치’ 등 미국 영화사이트에 실려 현지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의 할리우드 첫 주연 영화 닌자어쌔신은 2009년 3월 전세계 동시개봉 예정이다. 사진=슈피겔TV 영상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촛불 100일 (中) ] 진화하는 집회 문화

    [촛불 100일 (中) ] 진화하는 집회 문화

    촛불집회는 인터넷이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요한 플랫폼으로서 우리 일상에서 역동적인 소통공간이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과 집단간의 소통이 빨라지고 다양해졌으며, 이는 시민 참여 방식 자체를 크게 바꿔 놓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IT(정보통신) 기술을 꼽았다. 집회 현장의 시민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 와이브로(wibro)와 같은 무선 인터넷 기술로 중무장했다. 이로 인해 국내의 집회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해외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e-민주주의’ 가능성 열어 촛불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여론을 형성하고 확산시켰다. 촛불집회를 통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시민들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보도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공동기획취재팀이 조사한 결과, 촛불이 점차 거세진 5월25일∼6월10일 개인방송 인터넷 사이트인 ‘아프리카’에서 생중계된 촛불집회의 누적 방송 개수가 1만 7222개, 누적 시청자 수는 775만명이었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이라고 보면 15.5%에 달하는 숫자다. ‘아프리카’에서 촛불을 주제로 생방송을 했던 BJ(인터넷방송 진행자)들도 425명이었다. 포털사이트 생중계나 블로그,UCC 등에 문자가 게시글로 중계되는 것까지 합치면 대략 수천명의 시민 기자들이 집회 현장을 뛰어다닌 셈이다. 이들은 동영상, 댓글을 통해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다.6월1일 ‘여대생 군홧발 동영상’은 촛불을 재점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아프리카’ 시청자 수는 127만명을 기록했다.6월7일 72시간 연속집회,10일의 100만 대행진도 각각 56만명,70만명이 시청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IT기술의 발전을 발판삼아 기존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이 반영돼 나타난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문화된 기자가 아닌 탓에 편향적 시각, 감성적 이슈 주력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트리트 저널리즘 편향적 시각등 부작용 낳아 사이버 커뮤니티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생산한 정보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인 ‘마이클럽’과 ‘DVD 프라임’ 등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집회 참석을 이끌어낸 사이버 커뮤니티는 총 20여곳에 달한다. 마이클럽의 ‘종알종알 연예계’ 게시판은 연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지만 27일 현재 이곳에서 ‘촛불’이란 단어로 검색을 하면 1만 2740개의 글이,‘광우병’으로는 6949개의 글이 검색된다. 요리 커뮤니티인 ‘82cook.com’사이트의 자유게시판 방문자 수를 보면 4월에 평균 2만∼3만명에 불과했던 것이 5월과 6월을 거치며 최대 22만명으로 급증한다.5월부터 게재되는 글의 90% 이상은 광우병과 촛불집회와 관련돼 있다. 또 회원들은 6월22일 커뮤니티 단독으로 100여명이 거리행진을 하면서 언론사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인터넷 통해 전세계 교민·유학생으로 확산 촛불집회는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 교민과 유학생들로 퍼져나갔다.6월1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텍사스대학 교정에서 촛불집회가 열린 데 이어 6월7일 뉴욕,6월11∼12일 미시간주 미시간 대학에서 촛불이 등장했다. 또 프랑스 파리(6월1일), 독일 베를린(6월1일·7일)·프랑크푸르트(6월7일), 호주 시드니(6월7일), 영국 런던(6월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6월1일)에서 각각 촛불집회가 열렸다. 재미교포들은 성금을 모아 국내 일간지에 지지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이번에 나타난 촛불 네트워크의 연계성과 확산성은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속도의 차이를 확인해줬다.”면서 “이런 속도와 촘촘한 네트워크가 촛불 집회의 실질적인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촛불집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뛰어넘는 컨버전스(융합) 시대의 새로운 시민참여 사례”라고 말했다. 류석진 서강대 교수는 “약한 연대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형 사이버 커뮤니티의 등장은 향후 새로운 직접 ‘e-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공동기획취재팀 ■ 네이버와 다음 어떻게 달랐나 21일 시청… 31일 3시 경복궁… ‘다음’ 시간관련 검색어 자주 등장 촛불집회 기간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이용자와 다음 이용자 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색어 총량에 있어서는 네이버가 많았지만 특정 검색어에 대한 검색 기간은 다음이 길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네이버 검색어가 단어 중심인데 반해 다음은 문장 중심이어서 네이버보다 검색어 길이가 길었다. 다음에서 ‘주저앉은 소’,‘공영방송 힘내세요.’,‘세종로 모래 부족’ ‘폭력 경찰 물러가라’ 등 문장 중심의 검색어들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또 다음에는 시간 관련 검색어가 많이 등장했다.‘21일 시청’ ‘22일 촛불시위’ 뿐 아니라 ‘3시 경복궁’ ‘오늘 3시 경복궁’ 등 시간 관련 검색어가 매우 자주 나타났다. 이는 실시간 집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의 정보를 이용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검색어의 총량과 분포를 보더라도 네이버는 주요 촛불집회를 전후로 매우 높게 집중적으로 검색어가 분포돼 있는 반면, 다음은 꾸준히 관련 검색어가 랭크돼 있고 기간도 네이버보다 15일 정도 길다. 검색어 순위 가운데 촛불집회 관련 검색어가 1위를 한 경우를 조사한 결과, 네이버는 ‘김밥할머니 폭행’ ‘여고생 실명’ ‘여중생 폭행’ ‘서강대녀’ ‘광우병 시위’ ‘김지하’ 등이 1위를 한 적이 있는 검색어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다음은 ‘어느 의경의 눈물’ ‘정선희 사퇴’ ‘서강대녀’ ‘82쿡 닷컴’ 등이 1위를 했다. 특히 ‘서강대녀’가 두 곳에서 모두 1위를 한 검색어라는 점이 특이하고 촛불집회에서 압도적으로 인기를 받은 ‘고려대녀’의 순위는 모두 낮게 나타났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공동기획취재팀 ■ 문자·인터넷 등 네트워크형 운동 업그레이드 시대마다 달라진 촛불 1980년대가 민주화운동의 시대라면 2000년대는 촛불운동의 시대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는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와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과거 촛불집회가 진보단체와 대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반면 광우병 촛불집회의 선도세력은 중·고생이었다는 점이다. 2002년 촛불집회에서는 ‘지도부’가 집회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깃발이 시위대 중앙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8년에 이르러 촛불은 과거 경험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온라인 발전과 연동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2002년 촛불집회는 당시로서는 과연 얼마나 모일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실험이었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끌어냈다. 2004년 촛불집회는 전형적인 정치운동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게시판 토론과 퍼나르기 등 네트워크 확산형 운동이 등장했다. 인터넷 패러디가 인기를 끌면서 유희적인 정치참여문화도 나타났다. 2008년 촛불집회는 한층 복합적이다. 초기에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이라는 정책반대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정권반대운동 성격도 갖게 됐다.2008년 촛불집회는 지도부의 역할이 제한적인 수평적인 네트워크 운동이다. 인터넷 토론으로 방향을 정하고 집회현장은 축제 분위기로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1980년대 쇠파이프와 화염병,‘지랄탄’으로 뒤덮였던 ‘거리’를 대체했다는 것과 비장함이 지배하던 엄숙한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바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촛불 참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인 존재”라면서 “집회를 축제와 소통의 공간, 민주주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바로 이 대목이 촛불의 진화가 어떻게 계속될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할 이유”라고 덧붙였다. 공동기획취재팀 ■ 최다 클릭인물 1위 이명박 대통령 2위 진중권 교수·3위 정선희씨 4위 정운천·나경원·김밥 할머니 촛불집회는 각종 사건 사고와 무수한 말들로 넘쳐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통해 촛불집회 기간 동안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과 사건을 알아봤다. 공동기획취재팀이 5월1일∼6월22일 53일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종합검색어 순위 30개 가운데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색어만 추출해 조사한 결과, 인물 검색어 순위는 이명박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53일간 검색어 순위에 총 24차례 등장했다. 이는 4월6일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대통령 탄핵 청원,6월6일 ‘촛불집회 배후’ 발언 논란,6월19일 특별기자회견 등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여론의 추이를 움직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로 총 5차례 등장했다. 진 교수는 진보신당의 인터넷 생중계 ‘칼라TV’의 진행을 맡아 현장을 누비면서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집회 현장에서 보수단체 회원에게 뭇매를 맞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3위는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집회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라 자진 하차까지 했던 개그우먼 정선희씨가,4위는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과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집회현장에서 노점상 단속직원에게 폭행을 당한 ‘김밥할머니’가 동시에 올랐다. 5위는 ‘촛불집회는 천민민주주의’, 출국금지당한 누리꾼은 조폭이나 횡령배’등의 발언을 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차지했다. 이 외에도 아내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탤런트 김뢰하씨,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화제가 된 ‘서강대녀’,‘고대녀’ 등의 인물이 5위를 차지했다. 최다 검색어 순위를 보면 1위는 이명박 대통령으로 관련 검색어가 24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이 대통령은 전체 검색어의 21%를 차지했다.2위는 촛불 관련 검색어(16건)로, 구체적으로는 ‘촛불집회’,‘촛불집회 생중계’,‘아프리카 TV’,‘여중생 폭행’ 등이었다. 또 3위는 ‘광우병 증상’ 등 광우병 관련 검색어(10건)였다.4위는 ‘100분 토론’(7건)이 차지했다.100분 토론은 촛불집회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검색된 것이 특이했다.5위는 ‘진중권’(5건)이었다. 조희정 상임연구원은 “온라인에서는 주로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기간에 맞춰 누리꾼들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일상적인 관심보다는 언론 보도가 있거나 주요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만 관심도가 급상승했다.”고 덧붙였다. 공동기획취재팀
  • 타임즈가 선정한 올림픽 최고의 순간은?

    타임즈가 선정한 올림픽 최고의 순간은?

    2008 베이징올림픽을 9일 앞두고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유력 일간지 타임즈가 ‘올림픽 게임 최고의 순간 Top 50’(Top 50 greatest Olympic Games moments)을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순간 50에는 올림픽 경기 중 발생했던 에피소드 또는 뛰어난 기록을 달성했던 참가 선수의 활약 등이 담겨 있다. 1위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에피소드가 선정됐다. 캐나다 선수인 벤 존슨(Ben Johnson)은 남자 육상 100m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며 환호를 받았지만 이후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실격처리를 받았다. 이후 벤 존슨은 올림픽 약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기억됐다. 2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100m·200m 멀리뛰기, 400m 계주에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제시 오언스(Jesse Owens)가 차지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는 미국 육상대표로 출전해 독일 민족이 속해있는 아리아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했다. 이 경기는 아리아족을 물리치면서 독재자 히틀러의 사기를 꺾은 희대의 승리로 기억되고 있다. 3위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미국의 밥 비먼(Bob Beamon)이 세운 멀리뛰기 기록이 차지했다. 당시 가까스로 결승전에 오른 밥 비먼은 이 올림픽을 통해 23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4위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찾아든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차지했다. 당시 테러리스트 집단이 이스라엘 선수들의 올림픽촌 숙소를 습격해 전 세계를 경악케 했으며 이로서 올림픽대회가 국제 테러리스트 집단의 목표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계기가 됐다. 5위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당시 흑인이었던 토미 스미스(Tommie Smith) 존 캐롤스(John Carlos)가 차지했다. 남자 200m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동메달은 차지한 두 사람은 시상식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인종주의에 저항해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결국 두 사람은 미국 국가대표 자리를 박탈당했으며 이 사건은 미국 인권운동의 중대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밖에도 서울올림픽 당시 미국 다이빙선수 그레그 루가니스 (Greg Louganis)가 발판에 머리를 부딪치는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에피소드, 1960년 로마올림픽 당시 에디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가 맨발 투혼으로 마라톤 금메달을 거머쥔 일 등이 16위, 40위에 올랐다. 사진=역대 올림픽 엠블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금강산 국제공조 외교망신만 불렀다

    망신도 이런 외교 망신이 없다.“국가와 인종, 종교 간의 벽을 허물어 ‘마음의 냉전’을 허물자.”는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베를린 발언에 전 세계가 환호하는 즈음, 남북은 국제사회에 냉전적 반목의 구태를 여실히 보여 줬다.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 F) 의장성명에 당초 포함됐던 금강산 피격사건 관련 내용과 10·4선언 관련 내용이 지난 25일 16시간 만에 삭제됐다. 정부가 “왜 논의도 안된 10·4선언을 넣었냐.”고 항의하자, 마침 북한으로부터 금강산 관련 내용을 빼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던 의장국 싱가포르가 최종안에서 둘 다 제외했다고 한다. 이번 일은 금강산 피격사건의 국제공조 시도가 북한의 반발만 살 뿐 진상규명 등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안될 것으로 관측돼왔음에 비춰볼 때 예견된 외교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사전, 사후 정부내 충분한 의견조율이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외교부 관계자들이 ARF 참가국들에게 금강산 사건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던 때,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금강산사건은 남북문제이므로 남북끼리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혀 부처간 엇박자를 표출했다. 또 외교부는 당초 “아쉽지만 (10·4선언 관련 내용을) 수용할 만하다.”고 결론 내렸다가 뒤늦게 청와대의 강한 반발 기류를 감지하고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거듭 강조하건대 외교안보 라인의 어설픈 상황판단과 전략·전술 부재 등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 남과 북이 치열하게 대결하는 다자간 국제회의에서 어느 일방의 손만 들어주는 성명이 채택된 바 있는가. 정부가 금강산 국제공조를 외치는 순간 북한도 무언가 도모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면 그것으로 잘못이고, 예측은 했으나 대비하지 못했다면 알고도 막지 못한 잘못이 더 크다 하겠다.
  • [2008 美 대선] 파리지앵 사로잡은 오바마

    |파리 이종수특파원|“오바바, 당신은 세계를 바꿀 수 있어요!” 미국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25일(현지시간) 파리 방문 때 환호 행렬에 등장한 환영 문구다. 그는 파리에 다섯 시간밖에 머물지 않았다. 베를린을 거쳐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들른 정도였다. 그러나 환대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날 부르제 공항에 도착한 오바마 의원은 엘리제궁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1시간 대담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런던으로 향했다. 그가 엘리제궁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 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환영의 손길을 보냈다.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84%가 오바마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3월 프랑스를 방문한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의 지지도는 33%였다. 프랑스 언론들도 유럽에서의 ‘오바마 열기’를 앞다퉈 보도했다. 르몽드는 1면에서 ‘유럽이 오바마의 마력에 빠졌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일간 르 피가로도 “유럽은 미국의 가장 좋은 동반자”라는 오바마의 베를린 연설 내용 등을 1면 톱기사로 전했다. 리베라시옹은 1면 전면에 걸쳐 ‘오바마니아’ 열풍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같은 ‘오바마 열기’에 대해 리베라시옹은 “오바마는 대도시 인근 빈민가 지역에 사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가 이룬 ‘아메리칸 드림’이 프랑스 빈민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6200만여명의 프랑스 인구 가운데 12∼14%가 아프리카 출신으로 대부분 빈민가에 거주하고 있는데 높은 청년 실업률 등으로 크고 작은 소요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인권단체들이 오바마의 방문을 계기로 인종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오바마 열기’의 다른 배경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유럽인들의 실망감을 꼽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편 오바마는 파리 방문에서 “전 세계가 이란에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사르코지 대통령과 합의했다.”며 “이란은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 방문에서는 고든 브라운 총리와 회동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나라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대서양 양쪽 미국과 영국이 관계를 어떻게 강화하느냐가 총리와 나 모두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정치 팝스타’ 베를리너를 열광시키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베를리너’들도 버락 오바마의 비전과 변화의 메시지에 열광하며 환호했다. 베를린 시민 20만명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오바마의 연설을 듣기 위해 냉전체제 붕괴의 상징인 승전탑 주변으로 운집했다. 승전탑 주변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30분간 계속된 그의 열정적인 연설에 군중들은 “오바마”를 연호하며 환호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미국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45년전 케네디대통령 ‘나는 베를린 시민´ 연상 45년 전인 1963년 6월26일 서베를린에서 100만명의 군중 앞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명연설을 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바마는 이날 60년 전 옛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맞서 15개월간 계속된 미군의 베를린 공수작전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켜낸 베를린 시민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또 동구 붕괴를 촉발한 베를린 장벽 붕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서 오바마는 트레이드 마크인 ‘화합’과 ‘변화’를 역설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소원해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향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는 “국가간 단합과 협조는 선택이 아니라 인류의 안전과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면서 “세계인을 갈라놓은 인종과 종교간 벽을 허물고 단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유럽은 지구촌 공동의 운명을 잊어왔다” 그는 미국 혼자 힘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폭력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테러와 기후변화, 다르푸르사태 등 전지구적인 도전에 맞서기 위한 협력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진정한 협력과 진보를 위해서는 서로의 주장에 귀기울이고 배우며 무엇보다도 신뢰하는 동맹국들이 필요하다.”면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세계인으로서 책임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나는 우리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후예들임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서 “단호한 마음으로 우리의 운명을, 새로운 세계를 다시 한번 만들어 나가자.”며 연설을 마무리지었다. ●反오바마측 “공허한 말잔치” 즉각 공격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가 워싱턴과 유럽을 갈라놓고 있는 통상과 국방, 외교 등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서는 모호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유럽인들을 만족시켰다.”고 평했다. 오바마 비판론자들은 “공허한 말잔치였다.”며 즉각 공격하고 나섰지만 미국과 세계를 이끌 차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오바마는 독일에 이어 25일 프랑스,26일 영국 방문을 끝으로 첫 중동·유럽 방문일정을 마무리짓는다. 오바마는 그 여세를 몰아 다음주부터 미국 내 유세에 돌입한다. kmkim@seoul.co.kr
  • 오바마 베를린 연설 요지

    독일인들은 동·서를 가로막고, 자유와 독재, 공포와 희망으로 갈라놓았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로써 민주의 문들이 열리고 시장도 열렸습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가까워진 지구촌은 새로운 위험도 함께 동반했습니다. 이제 지구촌 이웃들간의 동반자관계와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공통의 안전을 보호하고 삶의 조건을 진보시킬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위험과 도전은 우리를 갈라놓는 새로운 장벽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부국과 빈국사이, 토착민과 이주자 사이, 기독교도와 회교도 및 유태교도 사이의 그러한 장벽들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이 왜 자기 내부만으로 향할 수 없는지를 말해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럽은 미국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미국과 유럽을 묶고 있는 강한 유대의 새로운 다리를 지구촌에 놓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함께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해 나갈 때입니다. 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아프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을 격퇴하기 위한 결심을 새롭게 할 때입니다. 등을 돌리기엔 우리의 너무 많은 것들이 걸려 있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란 목표를 새롭게 할 때입니다. 그리고 세계화속에서 뒤처진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때입니다. 세계는 우리를 주시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구촌에서 잊혀져 버린 한 모퉁이에서 기회와 존엄, 안전과 정의로 충만한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미얀마의 저항인사들의 인권을 위해, 이란의 블로거들을 위해, 짐바브웨의 탄압받는 투표자들을 위해 나서지 않으시겠습니까. 방글라데시의 기아로부터 어린 생명을 구하고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베를린 시민들이여, 세계인들이여, 지금이야말로 행동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것은 동시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상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열망입니다. 그것은 공포로부터의 자유며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새로운 세대, 우리 세대는 이러한 이상을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들을 실현시켜 온 존재입니다. 눈은 미래를 향하고, 가슴에는 결심을 품고 우리의 운명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다시 한번 만들어 나갑시다.
  • ‘反美’ 카리브해 신냉전 격전지로

    ‘反美’ 카리브해 신냉전 격전지로

    중남미 카리브해가 신냉전의 전초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역 주도권을 행사해온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러시아, 이란 등 미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야금야금 세를 넓히는 중이다. 여기에 남미 좌파의 좌장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끄는 석유동맹 ‘페트로 카리브’의 세력 확장도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때 미국의 앞마당으로 여겨져온 카리브해가 신냉전의 격전지로 변모하고 있다고 2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 언론은 최근 러시아 정부가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군사 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는 보도를 잇따라 내보냈다. 인테르팍스통신은 23일 러시아를 방문중인 차베스 대통령이 자국내에 러시아군 기지의 설치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10억달러 상당의 러시아 무기 구입 계약을 비롯해 양국간 군사협력 강화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공군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해 쿠바에 핵폭격기 기지를 세우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21일 보도했다. 미국의 동유럽미사일방어(MD)계획에 맞선 대응전략 차원이라는 분석을 곁들였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적으론 이같은 보도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러시아가 남미를 워싱턴과의 힘겨루기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확실히 감지된다.“쿠바에 공군 시설이 설치되더라도 군사 기지가 아니라 중간 급유 시설이 될 것”이라는 러시아 국방장관의 말은 러시아가 남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의 코앞인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을 설치한다면 러시아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한 것이라고 타임은 분석했다. 베네수엘라가 만든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의 석유 동맹 ‘페트로 카리브’도 부쩍 탄력을 받고 있다.2005년 출범 당시 14개 회원국에서 현재 18개국으로 늘었다. 고유가 시대에 연 1%금리,25년간 장기상환 조건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들어 바베이도스 같은 친미 국가들도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석유를 무기로 반미 성향의 정치적 동맹을 구축하려는 차베스의 야심이 고유가 덕에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핵개발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도 니카라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카리브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지각 변동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남미 정책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경계태세를 지속적으로 늦춰온 데다 부시 행정부도 남미에 관심을 덜 쏟으면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다극체제가 들어설 여지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조하나 멘델슨 포맨 선임연구원은 “페트로 카리브와 경쟁하기 위해선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에 바이오연료 생산 지원, 폭력사태 억제, 환경재앙 대비책 등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환경 난민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지역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국전쟁 희귀 컬러사진 공개-화보] 휴전 55주년… 이땅의 평화는 아직

    [한국전쟁 희귀 컬러사진 공개-화보] 휴전 55주년… 이땅의 평화는 아직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전 당시 미국 NBC방송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존 리치(91)가 휴전 55주년을 맞아 자신이 직접 찍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모습이 담긴 컬러사진들을 처음 공개했다. 리치는 한국 전쟁 발발 직후 한반도에 종군기자로 파견돼 거의 3년간 한국전의 실상을 보도했다. 리치는 도쿄와 베를린·모스크바·파리 등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으며,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NBC 아시아 담당 선임기자로 활동하다 당시 NBC뉴스의 모회사인 RCA 부회장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메인주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리치는 24일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내 코러스하우스에서 한국전쟁과 전후 한국에 대한 특별강연을 했다. 그가 소장해온 컬러사진 300여점 가운데 40점은 오는 8월12일까지 코러스하우스에서 ‘한국에서의 전쟁’과 ‘한국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전시된다. 리치는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을 포함해 소장해온 한국전 관련 컬러사진들을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kmkim@seoul.co.kr
  • “도시 간 정보격차 해소를”

    세계 각 도시의 대표들이 전자정부의 미래와 도시 간 협력방안 등을 논의하는 ‘세계 전자정부 시장 포럼’이 8일 1박2일의 일정으로 개막됐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유엔경제사회국(UNDESA)과 유엔전자정부센터(UNGC)가 후원하는 이 포럼에는 세계 35개 도시의 시장 및 대표들이 참석했다. 베를린, 샌프란시스코, 상파울루, 바르셀로나, 밀라노, 암스테르담, 본, 마닐라, 자카르타, 나이로비, 퍼스, 케이프타운, 베이징, 헬싱키 등 주요 도시가 망라돼 있다. 오세훈 서울 시장과 세계 도시 대표들은 이날 “전자정부 실현을 위해 각 도시들이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의 ‘서울 전자정부 선언’을 채택하고, 세계 도시 전자정부 협의체의 구성을 발의했다.‘서울 전자정부 선언문’에는 ▲전자정부 추진을 위해 도시들이 서로 협력할 것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를 만들 것 ▲각 도시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서울에 전자정부 협의체의 구체적 사업내용과 차기 총회를 준비할 사무국을 두기로 했다. 오 시장은 “오늘은 세계 도시의 시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미있는 출발을 한 날”이라면서 “전자정부 분야의 국제적인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각 세계 도시가 발전하고, 시민들도 보다 나은 삶을 향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영상메시지를 통해 “전자정부는 현재 행정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만들고 있고 삶의 질도 향상시키는 중”이라면서 “향후 포럼이 더 많은 인류에게 꾸준한 혜택을 안겨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는 미래학자인 MIT 미디어랩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박사가 참가해 전자정부의 미래전망과 정보격차해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네그로폰테 박사는 이날 오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시울시의 ‘천만상상 오아시스’사업을 언급하며 “1000만명의 상상력이 현실로 실현되는 과정이 너무 놀랍고 환상적.”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또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고 본다.”면서 “한국은 이미 경제나 정보통신 분야에서 이미 큰 성과를 이룬 만큼 가난한 도시들에게 나눠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