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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40대 에볼라 의심환자 격리, 감염의심 4번째… 정부 비공개

    에볼라 출혈열이 창궐한 서아프리카 기니를 방문하고 귀국한 40대 남성이 고열로 인한 에볼라 감염이 의심돼 격리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 남성과 같이 기니를 비롯해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한 뒤 에볼라 감염 의심으로 격리된 경우가 모두 4차례나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17일부터 기니를 방문한 최모(42)씨가 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다 고열로 인한 에볼라 의심 증상으로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8층에 격리 수용됐다. 귀국 당시 최씨의 체온은 38.9도로 보건당국이 정한 격리 수용 체온기준 38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최씨의 혈액을 채취해 에볼라 감염 여부를 1차로 확인했으나 음성 증상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당국은 최씨가 고열 외에 구토 등의 전형적인 에볼라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어 에볼라 감염 확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에볼라 잠복기인 3주간 격리한 뒤 2차 검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보건당국은 최씨가 방문한 기니에서 에볼라 감염 의심 환자를 접촉하거나 장례식 등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 확인 중이다. 최씨의 상태는 현재 체온이 정상보다는 약간 높지만 처음 체온을 측정했을 때보다는 다소 내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30일 에볼라 대응을 위해 시에라리온에 파견했던 긴급구호대 1진 의료진 1명이 환자를 돌보다 에볼라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자 즉각 독일 베를린 소재 샤리테 병원으로 긴급 후송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국내 에볼라 대응의료시스템 구축에 민관이 협력해 진행해야 한다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일방적으로 비공개 원칙 아래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씨를 포함해 모두 4차례 정도 에볼라 감염 의심 케이스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전형적인 에볼라 감염 증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최씨의 경우도 체온이 계속 내려가고 있어 에볼라 감염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온라인화제] 라면버거, 힐링캠프 하정우, 박서준 백진희, 임용고시 발표, 김우종 지명수배, 쎄시봉 정우, 靑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헤일로 번지점프 공약 이행, 국제시장 800만 돌파

    [온라인화제] 라면버거, 힐링캠프 하정우, 박서준 백진희, 임용고시 발표, 김우종 지명수배, 쎄시봉 정우, 靑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헤일로 번지점프 공약 이행, 국제시장 800만 돌파

    라면버거, 힐링캠프 하정우, 박서준 백진희, 임용고시 발표, 김우종 지명수배, 靑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쎄시봉 정우, 헤일로 번지점프 공약 이행, 오늘 소한, 국제시장 800만 돌파 등이 포털 키워드 뉴스로 올라왔다. ▶ 라면버거 폭발적 인기 롯데리아는 6일부터 부담 없이 즐기는 라면을 햄버거로 형상화한 메뉴 라면버거 50만 개를 한정 판매하고 있다. 라면버거는 삶은 라면을 구워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했다. 라면 특유의 맵고 얼큰한 맛을 나타내기 위해 할라피뇨 소스를 토핑해 닭가슴살 치킨 패티와 어울리는 불닭 콘셉트를 활용했다. 라면버거는 롯데리아의 2015년 첫 한정 제품으로 1999년 출시된 야채라이스 불고기 버거 이후 약 16년 만에 선보인 이색 제품이다. 라면버거 단품은 3400원, 라면버거 세트 메뉴는 5400원이다. ▶힐링캠프 하정우 ‘입담+유머+외모’ 탄탄 ’힐링캠프’ 하정우가 뺑소니를 당해 범인을 추격했던 일화를 공개했다. ‘힐링캠프’ 하정우는 5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서 “’롤러코스터’ 영화를 연출하고 있을 때였다. 밤에 가로수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차가 나를 치고 가더라. 다행히 내 허벅지 부근을 쳤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별 말없이 차를 몰고 그냥 가더라. ‘베를린’을 찍고 체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다. 그 차를 쫓아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운전자와 추격전을 벌이다 골목에서 해당 차량을 발견한 하정우는 “운전자에게 내리라고 했는데 안 내려서 우산으로 차를 내리쳤다. 차주는 끝까지 차 안에 있고 경찰까지 출동했다”면서 “알고 보니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경찰들이 그 사람을 연행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박서준 백진희 또다시 열애설 박서준 백진희가 열애설을 강력 부인했다. 박서준의 소속사 키이스트 관계자는 “박서준 백진희 열애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관계자는 커플링, 커플 패딩, 같은 동네에 사는 것 등과 관련해 하나하나 해명했다. 그는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 커플링이라니 말도 안 된다”면서 “패딩은 회사 팀복이며 이사는 지난해 8월에 갔다. 스타들이 많이 사는 동네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한 매체는 연예 관계자의 말을 빌려 “ 박서준 백진희가 드라마에서 철부지 부부로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뒤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다. 벌써 2년째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에도 두 사람의 열애설이 났지만 양측은 “친한 동료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임용고시 발표 임용고시 발표가 났다. 시도 교육청이 ‘2015학년도 임용고시’ 1차 합격자를 발표했다. 임용고시 발표는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해 세종시교육청, 충남·충북교육청, 강원도교육청 등이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다. 6일 오전 10시 홈페이지를 통해 ‘2015학년도 공·사립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 1차 합격자 및 2차 시험장소를 발표했다. ▶김우종 지명수배, 인터폴에 협조 요청 김준호는 동업자 김우종 대표를 지명수배했다. 경찰이 수억 원의 공금을 횡령해 해외로 달아난 코코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를 검거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5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된 코코엔터테인먼트 김우종 공동대표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울러 해외로 도피한 김 대표가 귀국할 경우 바로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입국 시 통보를 요청했다. 앞서 코코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18일 김 대표에 대해 수년간 회삿돈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 쎄시봉 정우 배우 정우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이어 복고 장르의 영화 ‘쎄시봉(김현석 감독, 제이필름 제작)’에 출연한다. 6일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 CGV에서 열린 쎄시봉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정우는 “실제로 복고 장르를 좋아하는데, 일단 작품이 굉장히 재미있어 선택하게 됐다. 다음 작품인 ‘히말라야(이석훈 감독)’도 복고인데 복고 장르의 영화와 인연이 많은 것 같다”며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 헤일로 번지점프 공약 이행 6인조 보이그룹 헤일로(HALO)가 팬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 헤일로는 과거 공식 팬카페의 회원 수가 1만 명을 넘을 경우 팬들과 함께 번지점프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17일 팬카페의 회원 수가 1만 명을 돌파하자 헤일로는 새해를 맞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율동공원에서 번지점프 공약을 실천했다. 추첨을 통해 6명의 팬을 선발한 헤일로는 고소 공포증으로 참가하지 못한 오운과 윤동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희천, 재용, 디노 등이 45m 상공에서 뛰어내렸다. 헤일로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2만, 3만 명까지 쭉쭉 가야죠”라며 “진취적인 헤일로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국제시장 800만 돌파 영화 국제시장이 6일 오전 8시 개봉 21일 만에 누적 관객 수 800만34명을 기록해 ‘1000만 영화’ 7번방의 기적의 800만 돌파 기록을 4일이나 앞당겼다. 국제시장은 개봉 3주차 주말 이틀 동안 118만4805명을 동원하며 개봉 주말(89만7133명)보다 관객 수가 무려 32%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개봉 15일 만에 500만, 16일 만에 600만, 18일 만에 700만, 21일째 800만을 돌파하면서 조심스럽게 천만 돌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6일 오후 현재 라면버거, 힐링캠프 하정우, 박서준 백진희, 임용고시 발표, 김우종 지명수배, 쎄시봉 정우, 靑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 헤일로 번지점프 공약 이행, 국제시장 800만 돌파 등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단독] 40대 에볼라 의심환자 격리, 감염의심 4번째… 정부 비공개

    에볼라 출혈열이 창궐한 서아프리카 기니를 방문하고 귀국한 40대 남성이 고열로 인한 에볼라 감염이 의심돼 격리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 남성과 같이 기니를 비롯해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한 뒤 에볼라 감염 의심으로 격리된 경우가 모두 4차례나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17일부터 기니를 방문한 최모(42)씨가 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다 고열로 인한 에볼라 의심 증상으로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8층에 격리 수용됐다. 귀국 당시 최씨의 체온은 38.9도로 보건당국이 정한 격리 수용 체온기준 38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최씨의 혈액을 채취해 에볼라 감염 여부를 1차로 확인했으나 음성 증상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당국은 최씨가 고열 외에 구토 등의 전형적인 에볼라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어 에볼라 감염 확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에볼라 잠복기인 3주간 격리한 뒤 2차 검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보건당국은 최씨가 방문한 기니에서 에볼라 감염 의심 환자를 접촉하거나 장례식 등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 확인 중이다. 최씨의 상태는 현재 체온이 정상보다는 약간 높지만 처음 체온을 측정했을 때보다는 다소 내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30일 에볼라 대응을 위해 시에라리온에 파견했던 긴급구호대 1진 의료진 1명이 환자를 돌보다 에볼라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자 즉각 독일 베를린 소재 샤리테 병원으로 긴급 후송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국내 에볼라 대응의료시스템 구축에 민관이 협력해 진행해야 한다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일방적으로 비공개 원칙 아래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씨를 포함해 모두 4차례 정도 에볼라 감염 의심 케이스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전형적인 에볼라 감염 증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최씨의 경우도 체온이 계속 내려가고 있어 에볼라 감염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에볼라 노출 韓의료진 1차 채혈 검사서 ‘음성’

    에볼라 노출 韓의료진 1차 채혈 검사서 ‘음성’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중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독일 베를린으로 긴급 이송된 우리나라 긴급구호대 소속 의사가 채혈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도중 왼손 검지 부위 장갑이 찢어지고 주삿바늘이 피부에 닿아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해당 의사를 관찰 치료하는 베를린의 샤리테 전문병원 측은 3일 “이 의심 환자는 현재로서는 발열 등 에볼라 감염 의심 증세가 없고 전반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라고 밝혔다. 마리오 차야 베를린시정부 보건사회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약 3주간 관찰하겠다. 지금까지 이송과 격리 작업은 잘 진행됐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다만 발열 등 에볼라 감염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바이러스 노출 후 6~12일이기 때문에 이 의심 환자의 상태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환자가 감염 위험군으로 분류된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할 때 오는 10일 전후가 돼야 더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크 베르크만 격리병동 책임의는 에볼라 양성으로 나올 때 대응에 대해서는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약물을 즉시 투입하겠다”며 “그 약물은 동물실험을 통해 환자가 견디기 쉬운 수준에서 에볼라 증세를 약화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감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정부는 의약품 도입과 공급에 대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가 비상 상황 시 의약품 특례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약사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 후 8개월이 지난 뒤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개정안은 생물 테러 감염병 혹은 기타 감염병이 크게 번지는 상황이나 방사선 비상 상황에서 식약처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등 관계부처장의 요청에 따라 예방과 치료 의약품을 국내 수입·제조업자에게 수입하거나 제조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 아직 품목 허가를 받지 않거나 품목 신고를 하지 않은 의약품도 해당된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한국 구호대 의사 에볼라 감염 의심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한 우리나라 긴급구호대 소속 의사 1명이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에볼라 환자를 채혈하던 중 손가락에 주삿바늘이 닿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 약 2주간의 안전교육과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에볼라 진료를 시작한 당일 우려했던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외교부, 국방부 등 관계 부처는 긴급회의를 열고 해당 의사를 3일 오전 독일로 후송해 에볼라 바이러스 잠복 기간인 21일간 감염 여부를 관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만약 감염됐다면 에볼라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독일 베를린 소재 병원에서 치료받게 할 방침이다. 사고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던 중 발생했다. 해당 의사가 이탈리아에서 온 간호사와 함께 채혈을 하던 도중 환자가 움직여 주삿바늘이 장갑을 스쳤고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부위의 장갑이 찢어지면서 주삿바늘이 손가락에 닿았다. 주삿바늘이 살갗을 뚫고 혈관까지 건드렸다면 핏방울이 올라왔겠지만 피부 손상을 포함해 외상은 전혀 없었다. 이 의사는 사고 발생 직후 안전훈련 매뉴얼에 따라 5% 염소 소독약에 30분간 손가락을 담그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대원이 바늘에 찔리거나 긁힌 것이 아니라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당사자의 신상 정보가 드러날 경우 피해나 곤란을 겪을 것을 감안해 사고를 당한 의사의 신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현지에서 이 의료대원의 감염 여부를 수차례 점검한 결과 구토나 발열 등 특별한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고 일단 후송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격리 조치가 끝나고 이상이 없어도 다시 구호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여 입국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긴급구호대 2진과 3진을 예정대로 파견할 방침이다. 2진과 3진은 각각 오는 10일과 다음달 7일 출국해 영국에서의 사전 훈련(1주), 시에라리온 현지 적응 훈련(1주), 본격 의료 활동(4주), 국내 안전시설에서의 자발적 격리(3주) 등의 일정에 따라 움직일 예정이다. 영국 의료인도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중 이와 유사한 사고를 당해 후송 조치를 한 적이 있다고 보건당국은 밝혔다. 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은 “보호복을 입고 벗는 훈련을 수없이 하고 인체 모형으로 실습도 하며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했다”며 “이번 사고는 의료 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돌발 사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쳐 훈련했음에도 진료 개시 첫날 우리 의료인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점에서 의료진 안전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구호대 의료진은 현재 시에라리온 고드리치의 에볼라 치료소(ETC)에 파견된 미국, 이탈리아 등 다른 국적의 의료진과 함께 에볼라 환자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바이러스 잠복기간인 3주 안에 감염 증세 보이는지가 관건

    바이러스 잠복기간인 3주 안에 감염 증세 보이는지가 관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를 돌보던 우리나라 의료인이 에볼라 환자를 채혈하던 중 손가락에 주삿바늘이 닿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에볼라에 대한 우려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의사는 에볼라 양성환자를 대상으로 채혈하던 중 환자가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왼쪽 두 번째 손가락에 주삿바늘이 닿은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사고 발생 직후 5%의 염소 소독약에 손가락을 담그는 응급조치를 취했고 핏방울이 나올 정도로 주삿바늘이 손가락을 찌른 것은 아니지만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당장 발열, 구토 등 에볼라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뒤늦게 증상이 발현될 수 있어 에볼라 바이러스 최대 잠복기간인 21일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극심하게 노출된 경우는 보통 3~4일이면 증상이 나타나고 이보다는 노출 정도가 약하지만 주삿바늘에 피가 날 정도로 찔린 경우는 7~8일이면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파악된 정황으로 볼 때 해당 의사가 에볼라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피가 나려면 주삿바늘이 피부의 내피까지 뚫어야 하는데 한국인 의료인은 외상이 전혀 없었고 외피에도 신경이 있어 뾰족한 것으로 건드리면 따끔한 느낌이 나는데 손가락 바닥 쪽에 스쳐 닿았다고 느낄 정도면 바이러스가 들어갔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설령 감염되더라도 치료를 충분히 받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낙후된 의료환경 탓이지 치료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의 한 병원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중 주삿바늘에 찔렸던 미국 메릴랜드의대 소속의 의사 루빈슨 애덤스는 50시간 만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은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애덤스는 자신의 치료사례를 소개한 논문에서 ‘에볼라 감염 이후 심한 메스꺼움과 많은 양의 설사가 이어졌지만 응급상황에 훈련이 잘 돼 있던 NIH 의료진의 도움으로 며칠 만에 초기 에볼라 감염 증상이 호전됐다’고 적었다. 한국 의사가 치료받게 될 독일 베를린의 병원도 에볼라 환자를 직접 치료해본 경험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에볼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액을 보충하는 것”이라며 “독일에선 에볼라 치료제인 지맵(ZMap)을 투여할 수 있고 유럽에서 완치된 다른 에볼라 환자의 혈청을 사용한 치료도 가능해 감염 시 양질의 치료가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하) 에드윈 풀너 美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전환의 시대, 기로에 선 동북아 정세 전망-해외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하) 에드윈 풀너 美헤리티지재단 설립자

    “새해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지도자들이 긍정적인 자세로 협력을 강화하길 기대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설립자이자 전 이사장인 에드윈 풀너(73) 박사는 지난달 27일 워싱턴DC 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 내내 ‘긍정적으로’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미국 내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그러나 답변 중간중간 긴 한숨을 쉬며 숙고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올해 동북아 정세가 평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5년은 한국 광복 70주년이고 한·일 수교 50주년이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인 한국과 일본 간 갈등과 차이를 보고 있으면 슬프고 힘들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워싱턴과 서울, 도쿄 사이에는 틈이 없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6자회담에서 3국의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에 유화적이고 러시아는 다소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과 일본 친구들에게 미래를 향해 일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를 권한다. 물론 한·일 간 역사적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과 일본은 공유한 이익이 많고 이는 미국과도 공유되는 만큼 더 긍정적으로 함께 일해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개입)능력은 일본 내 주둔부대에 즉각 접근해 미군을 동원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렇게 우리가 공유할 것이 많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외교·안보적인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해 왔고 3국은 최근 정보공유약정도 맺었다. -나는 3국의 국방부·외교부 간 안보협력에 강하게 찬성하는 입장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과 기본적으로 다른 이익구조를 갖고 있다. 한·미·일이 이익을 공유할 때 베이징·평양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3국이 가능한 한 긍정적인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3국 간 미사일방어(MD) 협력도, 북한이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이든 정교한 공격 능력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주한미군 감축 추진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고 그 뒤로 의회 강경파는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철수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긍정적인 관계에 있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서 북한의 그 남자(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를 다룰지 생각해야 한다. →6자회담은 공전하고 미국은 대북 관계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책은. -전략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는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 미국은 경험 많은 맥스 보커스 전 상원의원을 주중 대사로 보낸 만큼 중국이 평양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좀 더 구체적인 요구를 중국 지도부에 전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6자회담을 막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예상보다 6자회담에 관심을 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중동 등 외교정책의 접시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미국이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지한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자 동시에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할 뿐 아니라 3국이 직접 또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이 돼야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 등 가족 및 군부 내 권력 경쟁자들을 제거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영리하거나 또는 영리한 측근들의 조언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비유하자면 아프리카 사냥터에서 동물이 궁지에 몰렸을 때 오히려 맹렬하게 반격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상황이 몇 년 전(핵실험 등)보다 더 악화되면 주변국들은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런 행동을 수용할 수 없으니 관계를 아예 끊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한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중장기 시도를 해왔는데 상당수는 어려움에 처했다.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의 정권 교체 또는 현 정권의 대내외 태도를 바꾸는 방안 등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통령처럼 기회에 대해서는 낙관적이고 싶다. 동시에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구체적 분야를 찾는 ‘물밑 대화채널’이 가동되기를 희망한다. 김정은은 핵을 갖고 있어서 전 세계가 자기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금융제재나 중국을 통한 압박 등 광범위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1965년 내가 워싱턴 싱크탱크에 처음 몸담았을 때 옆 사무실 전문가가 ‘베를린 장벽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베를린 장벽이 생긴 지 겨우 4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는 많은 면에서 북한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도 영원할 수 없고 억압 정권하에서는 어딘가에 금이 생겨 평화로운 방법으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현명한 방법들을 찾음과 동시에 동맹국들과 함께 긴밀히 대처해 가길 바란다. →한·미 동맹이 60년을 넘었다. 한·미 동맹에 대한 평가와 제언은. -한국을 꾸준히, 자주 방문해 온 지난 40년간의 경험상 현재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정부 간, 군대 간 긴밀히 일하는 것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라 양국 국민들의 교류가 왕성해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이제 한국을 세계적 수준의 생산국이라고 평가한다. 더 이상 일본의 소니·도요타가 아니라 한국의 삼성·현대차인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협력 강화를 위한 제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한 나의 접근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주 긴 길 위에 작은 발자국들이니.” 동북아 국가 간에는 서로 다른 시각과 장벽이 존재한다. 이를 함께 극복하고 긍정적인 기회를 찾아가는 것, 작은 발자국들이 모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 리더들이 같은 방향의 많은 발자국을 쌓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 아베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발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희망한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에드윈 풀너 박사는 미국 싱크탱크계의 산증인이자 신보수주의그룹 리더로,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세운 뒤 1977년부터 2013년 4월까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에 자문하는 등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을 거쳐 에든버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자유의 행진’, ‘미국을 위한 리더십’ 등 8권의 저서가 있다.
  • [속보]정부 긴급구호대 1명 에볼라 노출 가능성…독일 후송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한 우리나라 긴급구호대 의료진 1명이 지난달 30일 (한국시간) 에볼라 환자를 채혈하던 중 손가락에 주삿바늘이 닿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 약 2주간의 안전교육과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에볼라 진료를 시작한 당일 우려했던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외교부, 국방부 등 관계 부처는 긴급회의를 열고 해당 의료대원을 3일 오전 독일로 후송해 에볼라 바이러스 잠복 기간인 21일간 감염 여부를 관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만약 감염됐다면 에볼라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독일 베를린 소재 병원에서 치료받게 할 방침이다.  사고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던 중 발생했다. 채혈 도중 환자가 움직여 주삿바늘이 장갑을 스쳤고,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부위의 장갑이 찢어지면서 주삿바늘이 해당 의료대원의 손가락에 닿았다. 주삿바늘이 살갗을 뚫고 혈관까지 건드렸다면 핏방울이 올라왔겠지만 피부 손상을 포함해 외상은 전혀 없었다고 정부는 밝혔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현지에서 이 의료대원의 감염 여부를 수차례 점검한 결과 구토나 발열 등 특별한 감염 증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고 일단 후송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격리 조치가 끝나고 이상이 없어도 다시 구호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여 입국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긴급구호대 2진과 3진을 예정대로 파견할 방침이다. 2진과 3진은 각각 오는 10일과 다음달 7일 출국해 영국에서의 사전 훈련(1주), 시에라리온 현지 적응 훈련(1주), 본격 의료 활동(4주), 국내 안전시설에서의 자발적 격리(3주) 등의 일정에 따라 움직일 예정이다. 영국 의료진도 이와 유사한 사고를 당해 후송 조치를 한 적 있다고 보건당국은 밝혔다.  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은 “보호복을 입고 벗는 훈련을 수없이 하고 인체 모형으로 실습도 하며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했다”며 “이번 사고는 의료 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돌발 사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차례에 걸쳐 훈련했음에도 진료 개시 첫날 우리 의료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점에서 의료진 안전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구호대 의료진은 현재 시에라리온 고드리치의 에볼라 치료소(ETC)에 파견된 미국, 이탈리아 등 다른 국적의 의료진과 함께 에볼라 환자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영상)안젤리나 졸리 연출작 ‘언브로큰’ 2차 예고편

    (영상)안젤리나 졸리 연출작 ‘언브로큰’ 2차 예고편

    한 남자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과 그의 용기를 그린 영화 ‘언브로큰’ 2차 예고편이 깊은 감동을 예고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언브로큰’은 196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다룬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루이 잠페리니는 이민자라는 이유로 괴롭힘과 멸시를 받았던 가족사로 인해 말썽과 반항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중 형의 권유로 육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타고난 집념과 노력으로 19살에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 인생 역전을 이루어 낸다. 이어 1963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5000m 육상 종목에 출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단숨에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한다. 어느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루이 잠페리니는 공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그는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면서도 올림픽 우승을 위해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는 등 꿈을 포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전 수행 중 전투기 고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 추락, 47일간 고무 보트에 의지한 채 표류하게 된다. 삶에 대한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그는 적국인 일본 함선에 의해 구조되고, 850일이라는 기간 동한 전쟁 포로생활을 겪게 된다. 공개된 2차 예고편에는 최연소 올림픽 대표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태평양 표류와 전쟁 포로까지. 쉬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많은 일들을 겪어 내는 루이 잠페리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실존 일물 루이 잠페리니의 “난 삶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는 말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2011년 ‘피와 꿀의 땅에서’로 장편 극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이후 4년여 만에 두 번째 연출작 ‘언브로큰’을 내놓게 됐다. 오는 1월 8일 개봉. 사진 영상=UPI코리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세탁기 파손’ 조성진 LG 사장 한 달 만에 檢 출두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주형)는 30일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조성진(58)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조 사장 조사는 검찰이 처음 소환을 통보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조 사장은 당초 다음달 초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참석 이후 조사를 받겠다고 했지만 압수수색 등 검찰의 압박에 결국 입장을 바꿨다. 검찰은 오전 10시쯤 출석한 조 사장을 상대로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행사 당시 현지 매장 2곳에서 삼성전자 세탁기 5대를 고의로 파손했다는 의혹에 대해 캐물었다. 또 사건이 국내에 알려진 직후 LG전자가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에 조 사장이 관여했는지도 조사했다. 당시 LG전자는 “해당 모델은 세탁기 본체와 문을 연결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이번 일이 글로벌 세탁기 1위 업체인 LG전자에 대한 흠집 내기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감정 섞인 보도자료를 배포해 삼성전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검찰은 조사 결과와 증거물 분석을 토대로 조만간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길용 체육기자상’ 박종복 부장

    ‘이길용 체육기자상’ 박종복 부장

    한국체육기자연맹(회장 김경호)은 제25회 이길용 체육기자상 수상자에 박종복 KBS 스포츠취재부 부장을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박 부장은 1994년 KBS에 입사한 뒤 20년 동안 국내외 스포츠 현장을 누비며 199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결정된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특종 보도를 비롯해 메이저 이벤트인 올림픽(1996년, 2000년, 2004년, 2012년)과 월드컵(1998년, 2002년, 2006년, 2010년)을 취재하는 등 현장 밀착형 기자로 활동했고, 아마추어와 장애인스포츠 발전을 위한 다양한 기획보도로 스포츠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였다. 이길용 체육기자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고(故) 손기정 선생이 우승했을 때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던 이길용 기자의 정신과 체육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한 해 동안 생활체육 활성화에 기여한 기자를 시상하는 생활체육 7330 보도상은 정영재 중앙일보 부장이 받는다. 시상식은 새해 1월 1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2014 체육기자의 밤’에서 진행된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檢 비협조에 괘씸죄?… LG, 신인도 타격 우려

    檢 비협조에 괘씸죄?… LG, 신인도 타격 우려

    세탁기 파손 혐의에 휘말린 LG전자에 대한 검찰의 압박 수위가 점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신호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 LG전자가 해프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경미한 사안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업계와 검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조성진 사장에 대한 출국금지나 압수수색까지 갈 사안이 아니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 사장이 여러 차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사태를 키웠다는 얘기다. 특히 대한항공 등의 사건으로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LG전자의 불성실한 태도에 검찰이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기업 대표에 대한 ‘봐주기 수사’로 비춰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이날 뒤늦게 공식 입장을 내고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경쟁사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주장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인 LG전자의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대외 신인도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조 사장의 출석 불응에 대해 “(조 사장은) 거래처 미팅, 현지 시장 방문, 사업전략 확정, 신제품 출시 점검 등으로 연말연초에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조 사장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석한 뒤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 사장이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여서 미국 출국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여서 연내 조사를 받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분위기다. 피고소인 가운데 조 사장을 제외한 LG전자 임직원들은 모두 검찰 조사를 마쳤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9월 국제가전박람회(IFA) 행사 직전 독일 베를린 시내 가전 양판점 자툰 슈티글리츠에서 자사의 크리스털블루 세탁기 도어 연결부를 고의로 파손한 혐의로 조 사장과 LG전자 세탁기 담당 임원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에 LG전자는 “통상적인 수준의 제품 사용환경 테스트를 한 것일 뿐”이라며 최근 증거위조·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삼성전자 임직원을 맞고소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안젤리나 졸리 연출작 ‘언브로큰’ 2차 예고편

    안젤리나 졸리 연출작 ‘언브로큰’ 2차 예고편

    한 남자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과 그의 용기를 그린 영화 ‘언브로큰’ 2차 예고편이 깊은 감동을 예고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언브로큰’은 196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다룬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루이 잠페리니는 이민자라는 이유로 괴롭힘과 멸시를 받았던 가족사로 인해 말썽과 반항으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중 형의 권유로 육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타고난 집념과 노력으로 19살에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 인생 역전을 이루어 낸다. 이어 1963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5000m 육상 종목에 출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단숨에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한다. 어느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루이 잠페리니는 공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그는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면서도 올림픽 우승을 위해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는 등 꿈을 포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전 수행 중 전투기 고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 추락, 47일간 고무 보트에 의지한 채 표류하게 된다. 삶에 대한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그는 적국인 일본 함선에 의해 구조되고, 850일이라는 기간 동한 전쟁 포로생활을 겪게 된다. 공개된 2차 예고편에는 최연소 올림픽 대표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태평양 표류와 전쟁 포로까지. 쉬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많은 일들을 겪어 내는 루이 잠페리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실존 일물 루이 잠페리니의 “난 삶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는 말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2011년 ‘피와 꿀의 땅에서’로 장편 극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이후 4년여 만에 두 번째 연출작 ‘언브로큰’을 내놓게 됐다. 오는 1월 8일 개봉. 사진 영상=UPI코리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2014 결산]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셀카 사진’ 모아보니

    [2014 결산]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셀카 사진’ 모아보니

    올 한해는 그야말로 ‘셀피’ 전성시대였다. 셀프 카메라 사진을 일컫는 단어인 ‘셀피’는 국적과 상관없이 전 세계인들의 일상이 됐다. 이 중에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사진도 포함돼 있는데,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가장 멍청한 셀카 사진’을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한 사진은 활활 불타고 있는 화재 현장 앞에서 소방관 한 명이 선글라스를 끼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뒤로는 이미 다른 소방관들이 진화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는 이 순간을 기념이라도 하듯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 비난을 샀다. 여성들의 셀카 욕심도 화를 불러일으켰다. 한 소녀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이 대량 학살된 장소여서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베를린의 유대인학살추모공원에서 젊은 여성 2명이 익살스러운 포즈로 찍은 사진 역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한 여성 간호사는 수술이나 응급처치 시 사용하는 장갑을 낀 채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여성의 뒤로는 의사와 또 다른 간호사들이 한 환자에게 시술을 하는 모습이 보여 더욱 충격을 준다. 한 남성은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르는 긴급한 상황에도 셀카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찔한 순간에도 약간의 미소를 더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물에 빠진 한 남성은 그저 현재 상황을 즐기듯 셀카에 열중했지만, 그의 뒤로는 어린 소년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다급한 상황이 펼쳐져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그저 재미만 추구한 ‘어리석은 셀카’가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자신의 뒤를 바짝 쫓는 거대한 토네이도 앞에서의 위험한 셀카를 찍은 남성과, 절벽에 매달린 채 구조를 요청하다 구조요원이 다가오니 “사진부터 찍어달라” 했던 어이없는 중국 청년까지, 예의도 없고 안전의식도 없는 셀카가 올 한해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오디오와 대화… ‘스마트 오디오 시대’

    오디오와 대화… ‘스마트 오디오 시대’

    스마트폰, MP3플레이어 등의 휴대용 기기에 밀려 한때 움츠러들었던 오디오가전 시장이 스마트 기기와 연동할 수 있는 ‘스마트 오디오’ 및 ‘외장 오디오’에 대한 수요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LG전자는 내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스마트 오디오를 대거 선보이겠다고 23일 밝혔다. 스마트 오디오는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기술 등을 활용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와 연결해 사용하는 무선 오디오다. LG전자가 선보일 스마트 오디오는 스마트폰으로 오디오와 대화할 수 있는 홈챗 기능이 탑재돼 있는 게 특징이다. 홈챗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오디오에서 대화 형식으로 파티 음악 등을 추천받을 수 있다. 또 거리에 제약이 있는 블루투스 제품에 비해 와이파이 기술을 적용해 집안 내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고성능 TV의 등장으로 외장 오디오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TV는 대형화되고 있지만 테두리는 얇아져 내장 스피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외장 오디오에 대한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자사 커브드 초고화질(UHD) TV와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한 ‘커브드 사운드 바’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국내 출시 후 두 달간 비슷한 가격대의 평면형 사운드 바의 5배를 넘어서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조성진 LG전자 사장 출국금지…‘세탁기 파손’ 소환 불응

    삼성전자와 ‘세탁기 파손 공방’을 벌이고 있는 LG전자가 삼성전자를 맞고소하면서 양사 간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LG전자는 21일 “지난 12일 증거위조, 명예훼손, 증거 은닉 등의 혐의로 삼성전자 임직원 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언론사에 제공한 동영상에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세탁기에 여러 차례 충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증거물로 제출되기 이전에 훼손이 있었으므로 증거 위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의 한 가전 매장에 진열된 삼성전자의 크리스털블루 세탁기 도어 연결부를 파손한 혐의로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 사장과 연구임원 등을 서울중앙지검과 독일 검찰에 각각 고소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LG전자와 조성진 사장은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지 말고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라”고 반격했다. 조 사장은 이달 초 수차례 검찰의 소환 통보에도 불구하고 전략회의와 내년 1월 6∼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준비 등을 이유로 출석에 불응했다. 이에 검찰은 조 사장을 출국 금지하고 CES 전에 조사를 끝내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장은 CES가 끝나면 검찰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 사장이) 소환을 두어 차례 거부했다”면서 “삼성전자가 제출한 영상을 보면 (조 사장이 세탁기를 누른 힘은) 일반인 정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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