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로운가
김성우 언론인《돌아가는 배》저자
인생은 의문이다. 세상에 정의는 있는 것인가. 정의가 있다면, 정의는 항상 불의에 이기는 것인가. 정의가 반드시 불의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그래도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의로운 것이 과연 이로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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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크게 질문한다. ‘천도(天道)는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1)
천도가 대정의(大正義)다.
그는 절의를 지키려 수양산에 숨은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두고,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항상 선인의 편’(2)이라더니 백이·숙제는 선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굶어죽고 말았으니.”하고 통탄한다.
그러면서 “조행이 정도를 벗어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안락하고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으며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데도 재화를 당하는 사람이 많으니, 천도는 과연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하고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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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도 천도를 의심한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름으로써 경쟁에서 상대를 능가하게 되고, 일단 능가하게 되면 부유하게도 되어 친구들을 잘되게 해주고 신들에 대한 봉납을 넉넉하게 바치게 되어, 결국은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보다 신의 사랑을 더 받게 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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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인 푸쉬킨은 아예 천도를 부정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상에 정의는 없다.’고. 그러나 천상에도 정의는 없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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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주 부분으로 판단하건대 지금까지 정의는 항상 위험에 처해 왔다.’(5)고 말하듯이, 모든 역사는 정의의 패전보(敗戰譜)다.
’정의는 장님일 뿐 아니라 절름발이’(6)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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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우리 시대에 가장 정의로운 사람’(7)이라 불렀던 소크라테스. 그 소크라테스도 “바른 사람은 행복하고 부정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평생 주장하고, 불의를 행할 것인가, 불의에 당할 것인가를 택일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더니 결국은 불의의 독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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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추방된다.
중국 초(楚)나라의 우국지사 굴원(屈原)은 참소로 쫓겨나자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추방당했다.”(8)고 노래 불렀다.
’그레고리 개혁’으로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로마에서 축출되어 객사하면서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망명길에서 죽는다.”는 임종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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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의는 사람의 길’(9)이요, ‘의는 사람의 대본’(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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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속에 모든 덕이 다 들어 있다.’(11)
정의는 덕의 일부가 아니라 덕 전체요 완전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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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이다.’(12)
’정의는 사회의 질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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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제1차적 기능은 자기가 정의롭지 못한 것에 의해 해를 입지 않는 한 남을 해치지 않는 데 있다.’(14)
그리고 ‘정의란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서로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계약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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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자기 것을 소유하고 자기 일을 하는 것’(16)이다.
그리고 ‘정의란 누구에게서도 그의 소유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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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는 마땅함이다.’(18)
’정의의 목적은 각자에게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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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利) 아닌 것이 의(義)다. 이익을 찾지 않는 것이 정의다.
’무엇을 위하는 것이 있어서 하는 것은 이요.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 의다.’(20)
’이를 보면 의를 생각하라.’(21)고 했고, ‘이를 보고도 양보하는 것이 의’(22)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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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타인의 선(善)이다. 자기 아닌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23)
말하자면 정의는 ‘남에게 좋은 것이요. 자기에게 해 가 되는 것이다.’(24)
성경도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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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는 불의(不義)하고 의는 불리(不利)하다. 이익은 정의에 어긋나고 정의는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다.
이롭지 못한 데도 정의로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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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칼은 칼집이 없다.’(26)
정의는 힘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의는 강자의 이익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27) 라고 공언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정의는 힘 있는 자의 힘이다.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적이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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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가장 약한 자의 권리다.’(29)
아리스토텔레스도 “약한 자는 항상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지만 강한 자는 여기에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30)고 말했다.
정의가 이렇게 약자에게 무력한 데도 정의의 힘을 믿고만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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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이롭지 못한 것이라 하여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 명종(明宗) 때의 사람 노극청(盧克淸)이 가난하여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가 잠시 외지에 나간 사이에 아내가 현덕수(玄德守)란 사람에게 은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극청이 돌아와 덕수에게 “내가 집을 살 때 은 9근 주었고 몇 해 사는 동안 더 꾸민 것도 없으니 더 받은 3근을 돌려 주겠다” 했더니, 덕수가 그대는 의를 지키는데 나만 의를 지키지 못하겠느냐”면서 받지 않았다. 극청이 다시 “내 평생에 의가 아닌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찌 집을 헐하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겠느냐.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면 그 집 값을 돌려 줄 테니 집을 물러달라”고 했다. 덕수가 마지못해 은 3근을 받으면서 “내가 어찌 극청보다 못할 사람인가.”하고는 그 돈을 절에 기부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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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의가 무력한들 정의가 없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부터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생존하고 하늘의 뜻에 거슬리는 자는 멸망한다.’(32)고 했다.
정의가 무너지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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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수훈(山上垂訓)에도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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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사악을 타파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 드물다.’(34)는 말을 우리는 믿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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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가 불의의 과실이라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부귀한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고 세상에서 행복이라 일컫는 것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정도의 정의가 요구된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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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대의 학자 정이(程)는 “성인은 의로써 이를 삼는다.”(36)고 했고,
장재(張載)는 “모름지기 의리의 즐거움이 의욕보다 더하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37)고 했다.
그리고 묵자(墨子)는 결론 내린다.
”의로움이란 이로운 것이다.”(38)
정의는 불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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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이 모토가 모든 사람의 모토라야 한다.
(1) ‘天道是耶非耶’-《사기》 백이전(伯夷傳)
(2) 《노자(老子)》 79장
(3) 플라톤 《국가》Ⅱ, 362b
(4) 푸쉬킨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5) 월터 휘트먼 《민주주의의 전망》
(6) 토머스 오트웨이 《보존된 베니스》
(7) 플라톤 《파이돈》 118a
(8) 《사기》 굴원전(屈原傳)
(9) ‘義人路也’ -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
(10) ‘義者人之大本也’-《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1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1
(12) 존 롤즈 《정의론》 제 1장
(1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4) 키케로 《의무론》 Ⅰ·7
(1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 열전》X, 에피쿠로스
(16) 플라톤 《국가》Ⅳ, 433e
(17)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탄》 Ⅱ
(18) ‘義者宜也’- 《중용(中庸)》 20장
(19) 키케로 《법률에 대하여》Ⅰ
(20) 《십팔사략(十八史略) 남송(南宋) 효종(孝宗) [송학자 장식(張拭)의 말]
(21) 《논어(論語)》 헌문(憲問)
(22) 《예기(禮記》 악기(樂記)
(23)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V·1
(24) 플라톤 《국가》I, 343c
(25) 《신약성서》고린도전서 10:24
(26) 조세프 드 메스트르 《페테르부르그 야화》
(27) 플라톤 《국가》I, 338c
(28) 파스칼 《팡세》 §298
(29) 조세프 주베르 《단상집》 법에 대하여 §17
(30)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Ⅵ·3
(31) 《고려서절요(高麗史節要)》 권13, 명종(明宗)
(32) ‘順天者存 逆天者亡’- 《맹자》 이루(離婁) 상
(33) 《신약성서》 마태복음 5:6
(34) 호라티우스 《카르미나》Ⅲ
(35)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Ⅶ·15
(36) 《근사록(近思錄)》 출처류(出處類)
(37) Ib.
(38) ‘義利也’-《묵자》 경(經) 상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