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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대는 가구가 아냐~”…이불 정리하는 스마트 침대

    “침대는 가구가 아냐~”…이불 정리하는 스마트 침대

    ”침대는 가구가 아냐~” 진짜 가구가 아닌 과학인 침대가 나왔다. 최근 스페인의 가구회사 OHEA는 게으름뱅이에 딱 어울리는 스마트 침대를 공개했다. 이 스마트 침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으로 이불과 베개를 정리해 주는 것. 사용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면 3초 후 침대 양끝에서 로봇팔이 나와 이불을 정리하며 베개 역시 들어 올려진 후 가지런히 놓인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어난 후 잠자리를 정리할 필요가 없어진 셈. 이 침대는 사용자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침구를 정리하는 자동모드와 사용자가 직접 정리를 지시하는 수동모드로 작동된다. 50초 정도면 자동으로 잠자리가 정돈돼 사용자는 항상 깔끔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 OHEA 측은 “사람이 누워 있을 때 이 침대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 면서 “아직 가격과 출시일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곧 판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조선 후기 콘텐츠의 보고 ‘임원경제지’ 개관서 나왔다

    조선 후기 콘텐츠의 보고 ‘임원경제지’ 개관서 나왔다

    ‘조선판 브리태니커’로 불릴 만한 조선 후기의 실학서 ‘임원경제지’의 개관서가 최근 나왔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徐有?·1764~1845)가 30여년에 걸쳐 쓴 책으로 총 54책 113권에 2만 8000여 가지의 지식을 담았다. 흔히 농경서로 알려졌지만, 조선 후기 실용백과사전이라고 보는 것이 책의 성격에 더 가깝다. 농사, 경제, 축산, 의학, 문학, 상업, 의례, 공업, 건축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의학을 기술한 ‘보양지’와 ‘인제지’ 부분은 광해군 때 완성된 허준의 ‘동의보감’과 비슷한 규모다. 단일 저작으로는 조선 최대의 저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하고, 전문적이다 보니 필요에 따라 일부만 번역됐을 뿐 책 전체가 번역된 적은 없다. ●서유구, 정약용과 비견될 ‘실학 대가’ 이번에 나온 ‘임원경제지 개관서’(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는 이같이 방대한 임원경제지의 구성과 구조 등에 대해 해제를 달고, 왜 중요한 책인지를 대중적으로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풍석 서유구는 어떤 사람인지, 실학의 대가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비교할 때 임원경제지는 어떤 수준인지 등이 들어 있다. 고려대 유전공학과를 나와 이 책의 번역에 벌써 10년째 매달리고 있는 정명헌 임원경제연구소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2003년부터 학자 42명이 번역에 참여해 3년 동안 초벌 번역을 마쳤다.”면서 “2014년 3월 번역 완간을 목표로 정본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본으로 만든 뒤 초벌 번역한 것을 교정해 나가면 전집 55권으로 나오게 된다. 정 소장은 “정약용은 89학번, 서유구는 90학번으로 같은 시대의 실학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정조가 사랑한 ‘초계문신’으로, 정약용은 1789년에 갑과 2위로, 서유구는 1790년 병과 14위로 과거를 통과해 관리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정조는 시경 강의에서 500개의 시험문제를 제시하는데 정약용의 답변 중 채택된 답변은 117개로 채택률 20.2%이고, 서유구는 181개의 답변이 채택돼 31.3%에 이른다. 과거시험 결과는 정약용이 더 똑똑했지만, 시경 강의 답안 채택률을 보면 서유구가 더 똑똑했다. 이렇게 똑똑한 서유구는 벼슬을 살다가 작은아버지 서형수의 전라도 유배 등으로 벼슬이 떨어지고, 1806년 고향인 경기도 장단으로 낙향해 18년간 임진강변 장단에서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저술에 들어간다. 이때 그는 경학보다 실용 학문에 심취한다.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실용 기술들은 대체로 서유구가 직접 해보고 써넣은 것으로 보면 된다. 논에 물을 대는 데 사용하는 ‘자승차’(自升車) 같은 큰 기구부터 베개 만드는 법, 밭의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생산량을 늘리는 법,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술과 음식에 관한 정보 등 구체적인 지식을 담았다. 다시 그가 벼슬에 나간 것은 1823년이다. 조선 후기 경학의 대가답게 규장각 제학과 예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 제관과 제학,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다. 아쉽게도 정승의 반열에는 들지 못했다. 또한 벼슬길에 다시 올랐을 때 귀향해 자신이 보고 겪고 느꼈던 조선 후기 가난한 국가 경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서울의 세도가,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그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사대부들이 일상을 개혁하면 국가 경제와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책을 통해 빛을 보지는 못한 것이다. 임원경제연구소의 민철기 번역팀장은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어 전통음식 복원, 신약 개발, 드라마·영화의 문화 콘텐츠,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라고 말했다. ●전액 민간 후원금으로 번역작업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현재 학문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책은 모두 252만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서유구가 중국·일본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아주 정확하게 기록했고, 인용이 부실한 대목도 명확하게 지적해 놓았다. 그 결과 서유구가 직접 자신의 생각과 기술을 저술한 부분이 46만 9000자로 전체 책의 18.6%라고 밝혀 낼 수 있었다. 이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학자들이 박사 학위 논문을 무작위로 베끼고, 자기 복제를 반복하는 행태와는 아주 다른, 엄격한 학문 태도다. 책의 번역에는 도올 김용옥의 제자들인 다양한 전공자와 직업인들이 매달리고 있다. 고전번역원이 아니라 전액 민간 후원금으로 진행된 점도 특이하다.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에 있는 ‘임원경제지’ 초고, 고려대·연세대·규장각의 필사본을 종합해 정비하고, 분야별로 초벌 번역을 마치는 데 10억원이 들었다. 번역 완간까지 25억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건 Inside] (33) 장난에서 비롯된 맹신이 낳은 세모녀의 비극

    [사건 Inside] (33) 장난에서 비롯된 맹신이 낳은 세모녀의 비극

     지난 3월 6일 한 여성이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의 모텔로 들어왔다. 딸들의 표정이 약간 어두운 듯 했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틀 뒤 객실 청소를 하러 들어간 모텔 직원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작은 딸(6)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큰 딸(10)은 이불에 둘둘 말려 침대와 창문 사이 공간에 방치돼 있었다. 화장대 위에는 유서로 보이는 편지도 발견됐다. 엄마 권모(38)씨가 두 딸을 살해하고 자취를 감춘 것이 유력해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직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유서 내용으로 미뤄볼 때 권씨가 자살할 장소를 찾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 수색에 나섰다. 자살을 하기 위해 부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권씨는 결국 10일 새벽 모텔 인근 공중화장실서 경찰에 붙잡혔다. 권씨는 자신의 손을 묶은 채 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옥상에도 올라가봤지만 끝내 목숨을 끊지 못했다고 했다. 권씨는 경찰 조사에서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욕조에서 큰 딸을 익사시킨 것도, 잠 자던 둘째 딸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시킨 것도 자신이라고 말했다. 또 빚이 많아서 죽을 결심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사건은 가난이 원인이 된 참극으로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비정한 엄마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명령을 받았어요. 아기를 죽일 수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문자로 지령 내리는 희한한 신 ‘시스템’의 정체는  권씨가 양모(32)씨를 만난 것은 2010년 9월 학부모 모임에서였다. 나이 차는 꽤 있었지만 권씨는 자신을 잘 따르던 양씨를 동생처럼 여겼다. 같은 나이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감대도 금방 형성됐다.  당시 남편과의 불화로 마음앓이를 하고 있던 권씨는 ‘절친’인 양씨에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털어놨다. 스스로를 모 국립대학교 교직원으로 소개한 양씨라면 평범한 주부인 자신에게 현명한 조언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권씨만의 생각이었다. 양씨가 자신을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포장한 것은 단지 질투 때문이었다. 권씨의 딸이 자신의 아들보다 똑똑한 것을 시기한 양씨가 자신이 뒤쳐져보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언니,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내가 잘 사는데는 다 이유가 있어.”  어느 날 양씨는 권씨에게 희한한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멋진 삶을 누리는 것은 ‘시스템’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동한 권씨는 양씨의 말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일단 시스템에 가입하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지령이 오는데 이것을 그대로 따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무맹랑한 이 이야기는 양씨가 권씨를 골리기 위해 반장난식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하지만 순진한 권씨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처음에는 양씨는 권씨에게 “양씨의 집 문 앞에 피자를 가져다 놓아라.”는 등 사소한 지령들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하지만 시키는대로 꼬박꼬박 잘 따라 하는 권씨를 보면서 양씨는 점점 욕심이 생겼다. 문제는 양씨가 단순한 욕심에 그친 것이 아니라 평소 질투하던 권씨의 딸들에게까지 화살을 돌렸다는 점이다.   ●뜨거운 음식 19분안에 먹기…잔혹한 아동학대 뒤 살해 명령까지  시스템의 지령은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했다. 지령은 크게 금전적인 것과 교육적인 것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기계 등록비 명목으로 뜯어내던 돈은 점차 액수가 커졌다. 권씨는 불법 사금융에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2년간 1억 4000만원을 시스템에 바쳤다. ‘시스템’인 양씨는 이 돈을 가지고 명품 가방을 사는 등 모두 탕진했다. 돈 갈취보다 심한 것은 교육을 빙자한 아동학대였다. 어린 딸들을 전주역 공중화장실에 매일 12시간씩 서있게 한다든지 노숙을 하도록 지시한 것은 예삿일이었다.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끼만 먹게 하거나 뜨거운 음식을 19분안에 강제로 먹도록 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이 명령을 지키지 못하면 대나무 몽둥이로 50대씩 때리라고까지 했다. 때로는 양씨 스스로 매가 부러질때까지 아이들을 폭행했다. 때리다 힘이 부치자 내연남 조모(38)씨까지 끌어들였다.  권씨는 이 모든 지령을 순순히 따랐다. 입단속을 위해 아이들에게 거짓말까지 시켰다. 2년동안 권씨가 ‘시스템’의 지령을 어긴 것은 단 두번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범행이 길어지고 편취한 돈이 늘어나면서 양씨는 점점 범행이 들통 날까 두려워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권씨 가족과 함께 보내고는 있지만 언제 꼬리가 잡힐 지 모르는 일. 양씨는 다시 한번 지령을 이용하기로 했다.  “남편은 물론 친정 어머니, 언니 등 주변 모든 가족들과 연락을 끊어라.”, “너와 남편은 잘못된 인연이다.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이혼을 결심한 권씨에게 ‘시스템’은 더 잔혹한 지령을 내렸다. 아이들이 죽으면 쉽게 이혼할 수 있다면서 구체적인 살해 방법까지 알려준 것이다. 양씨는 한 TV 드라마에서 사고사를 가장해 사람을 질식시켜 죽이는 장면을 보고 권씨에게 따라할 것을 지시했다. 한술 더 떠 권씨에게 아이들을 죽인 뒤 자살하라고까지 했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세 모녀의 목숨까지 요구한 것이었다.   ●비정한 엄마, 검사에게 보낸 편지에 뒤늦은 후회만  권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황당 그 자체였다. 하지만 권씨가 받은 시스템의 문자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사건에 양씨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숨진 두 딸이 다니던 학교와 어린이집 선생님, 권씨의 남편과 친정 식구들 등을 조사한 결과 양씨의 엽기적인 범행이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4월 권씨를 살인 혐의로, 양씨는 살인방조,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아이들을 폭행하는데 가담했던 양씨의 내연남 조씨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장난으로 시작한 ‘가짜 종교 놀음’은 세 모녀를 지옥같은 삶으로 빠져들게 했다. 익사한 큰 딸이 욕조에 들어간 것도 “물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양씨가 있는 전주에 가야한다.”는 엄마의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고통을 받는 것 보다 차라리 물에 빠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경찰 관계자들도 양씨와 권씨, 조씨가 자행한 아동학대 혐의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 잔혹함에 몸서리를 쳤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시스템’이 양씨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권씨는 뒤늦게 오열했다고 한다.  재판을 기다리며 구속 수감 중인 권씨는 담당 검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삶에 대한 확신이 없어 거짓 종교에 휘둘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함께 앞으로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우울증으로 한때 자살 생각했던 패티김

    우울증으로 한때 자살 생각했던 패티김

    23일 오전 9시 10분 방영되는 SBS 좋은아침은 1958년 미8군 무대로 데뷔한 이래 54주년 만에 전격 은퇴를 선언한 가수 패티김을 초대했다. 패티김의 역사는 화려하다. 광복 이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초청한 가수, 196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연을 한 가수, 1989년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연 가수, 1989년 미국 카네기홀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 가수, 2000년 한국 가수 최초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입성한 한국 가수 등등. 패티김에게 따라붙는 말은 언제나 최고, 최초다. 그런데 조금 희한한 최초도 있다. 바로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이혼기자회견을 한 사람이라는 것. 오랜 연예부 기자 활동으로 그때 일을 소상히 아는 방송인 이상벽이 등장해 얘기를 전해준다. 그가 기자 시절 알고 지냈던 패티김의 사소한 일상과 고 길옥윤과의 이혼기자회견에 얽힌 뒷얘기들이다. 이상벽이 들려주는 재밌는 일화 가운데 하나는 시체잠. 자기관리에 철저한 패티김이기에 잠을 잘 때도 목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베개 없이 똑바로 누워 잔다. 옆으로 누우면 얼굴에 주름이 갈까 봐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펴는 버릇까지 있다. 패티김은 아직도 20대와 같은 유연성과 탄력을 갖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자기 관리의 비결은 요가에 있다. 스튜디오에서 직접 고난이도 요가동작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사람도 한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갱년기 우울증 때문이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조영남. 조영남은 패티김에게 “지금 이렇게 죽으면 사람들이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해 동정도 못 받는다.”고 한마디했는데 이 때문에 자살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패티김에게도 소소한 사생활의 기쁨이 있다. 미국에 있는 둘째 딸 카밀라가 딸을 낳은 것. 출산한 딸을 위해 미역국도 끓여주는 등 친정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온 사연을 들려준다. 또 장녀 정아가 낳은 손주들 자랑에도 여념이 없다. 이번 방송에서는 둘째 딸이 낳은 손녀 루나도 방송에 처음 공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속 430㎞ ‘괴물’은 안락하고 조용했다

    시속 430㎞ ‘괴물’은 안락하고 조용했다

    지난 16일 오후, 미끄러지듯 달려온 열차가 경남 창원의 경전선 중앙역 플랫폼에 들어서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새의 부리를 닮은 날렵한 남색 앞부분과 날씬한 측면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열차의 이름은 ‘해무’(HEMU430X).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현대로템, 코레일, 철도시설공단 등 50여개 기관이 2007년부터 5년간 총 931억원을 투입해 만든 시제 차량이다. 해무의 설계속도(최고속도)는 시속 430㎞로, KTX산천보다 시속 80㎞가량 빠르다. 해무가 경부선 서울~부산 구간에서 대전·대구역 2곳만 정차하며 최고시속 400㎞로 상업운행한다면 운행시간은 1시간 36분으로 줄어든다. 전국을 1시간 30분대의 도시국가로 묶을 시속 430㎞급 차세대 고속열차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차량 출고식이 열린 창원 중앙역에는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과 김광재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등 400여명의 관련인사가 몰렸다. 시승객을 태우고 출발한 열차는 인근 진영역까지 왕복 28.2㎞를 오갔다. 천천히 출발한 열차는 이내 시속 150㎞에 이르렀다. 새마을·무궁화호가 함께 운행하는 경전선에선 고속열차라도 낡은 철로 탓에 시속 150㎞를 넘지 못한다. 해무는 이르면 2015년쯤 호남선 오송~광주의 고속철 전용구간에서 시속 370㎞를 웃도는 속도로 상업운행할 예정이다. 목진용 철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달 초부터 진영~밀양 구간에서 비공개로 5차례의 야간운행을 가졌다.”며 “18일부터는 경부선 고속철 구간으로 옮겨져 심야시간마다 속력을 시속 30㎞씩 올리는 테스트를 받는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르면 올 7월쯤 설계속도인 시속 430㎞의 벽을 깰 것으로 보고 있다. 차체는 알루미늄 압출재로 두께를 줄여 KTX산천보다 5% 가벼워졌다. 소음 발생도 5데시벨(dB) 낮췄다. 승차감은 기존 KTX보다 크게 개선됐다. 고급승용차처럼 안락한 좌석과 조용한 실내가 돋보였다. 좌석마다 베개가 부착됐고 의자 머리맡에는 독서등이 달렸다. 좌석 뒤에는 LCD모니터가 부착돼 비디오 시청과 승무원 호출 등이 가능하다. 가족실(6인) 등 다양한 승차옵션도 제공된다. 다만 동력 분산식 열차의 단점인 둔탁한 기계음이 가끔씩 귀를 거슬리게 했다. 앞뒤칸 2량의 기관차 동력만으로 달리던 기존 KTX와 달리 해무는 칸마다 동력이 달려있다. ‘안전’은 해무의 가장 큰 과제다. 국토부는 2015년 상용화 전까지 3년간 10만㎞의 주행시험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최소 5~6년간 시운전하는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짧다. 잦은 사고로 도마에 오른 KTX산천도 5년 가까이 보완을 거듭했으나 상용화 직후 문제가 불거졌다. 현대로템이 KTX산천에 이어 다시 해무를 제작한다는 점도 지적받는다. 전체 부품의 국산화율은 83.7%로 핵심부품의 국산화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해무 개발로 우리나라는 프랑스(시속 575㎞), 중국(시속 486㎞), 일본(시속 443㎞)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빠른 고속철 기술을 보유하게 됐지만 지나친 속도경쟁도 우려를 자아낸다. 독일은 1988년, 일본은 1996년 이후 이 같은 속도 경쟁을 멈춘 상태이다. 글 사진 창원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건 Inside] (29) 음지의 동성애자를…‘3인조 꽃뱀’의 기막힌 사기

    [사건 Inside] (29) 음지의 동성애자를…‘3인조 꽃뱀’의 기막힌 사기

    2010년 7월 교도소 동료였던 세 남자가 한자리에 둘러 앉았다. 맏형 노릇을 하던 유모(41)씨의 호출에 한모(34)·조모(28)씨가 오랜 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얼마 전에 황당한 경험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돈벌이가 되겠더라.” (유씨) 유씨가 늘어 놓은 ‘황당 경험’은 동성애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느 날 혼자 서울 시내 한 찜질방을 찾은 그는 수면실에서 잠을 자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한 남자가 자기 몸을 더듬고 있었던 것.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친 뒤 “성추행으로 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남자는 합의금 200만원을 내놓았다. 알고 보니 유씨가 찾은 곳은 이른바 ‘이반(異般) 사우나’였다. 이반 사우나는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동성애자들이 모여 성관계를 맺기도 하는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말한다. ‘이반’은 이성애자들을 칭하는 일반(一般)이라는 말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쓰여지는 말이다. 합의금을 물어낸 남성은 유씨가 당연히 동성애자일 것으로 생각해 그들만의 법칙에 따라 상대를 유혹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편견에 울던 동성애자들, 사기에 두 번 울다 예상 밖의 소득을 얻은 유씨는 전국에 ‘이반 사우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자는 구상을 했다. 하지만 매번 혼자 움직일 수는 없는 일. 믿을 만한 교도소 동료였던 한씨와 조씨를 범행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유씨는“합의금을 뜯어내 한달에 500만원 이상 벌 수 있고 집과 차도 살 수 있다.”며 한씨와 조씨를 설득했다. ‘동성애자 꽃뱀’의 수법은 간단했다. 외모가 돋보이는 한씨가 팔베개를 해주는 등 동성애자를 유혹하는 게 첫 단계. 낚시에 걸린 상대가 몸을 만지면 한씨가 놀란 척하며 “추행당했다.”고 소리치는 식이었다. 조씨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도 봤다. 빨리 경찰에 신고하라.”고 겁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예상치 못한 소란에 동성애자가 혼란스러워하면 유씨가 “좋게 해결하자.”는 식으로 중재에 나서 합의를 유도했다. 이들은 2010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등을 돌며 모두 29차례에 걸쳐 1000여만원을 뜯어냈다. 합의금은 한번에 통상 70~80만원, 많게는 200만원에 이르렀다. 이들은 “가난한 상대를 만나 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어 전체 액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30~50대 남성들이 유씨 일당의 먹잇감이 됐다. 한씨는 동성애자가 아니었음에도 범행을 거듭하며 점차 동성애를 동경하게 됐고, 그만큼 유혹 기술도 대담해졌다고 한다.   ●원활한 합의를 위한 장치가 오히려…‘꽃뱀’이 꼬리잡힌 이유는 이들이 덜미를 잡힌 것은 한씨의 욕심 때문이었다. 공범들과 헤어진 한씨는 혼자서 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지난달 24일 단독범행을 감행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찜질방에서 그는 여느 때처럼 동성애자를 유혹했다. 상대는 술에 취한 채 짝을 구하고 있던 강모(31)씨였다. “이 아저씨가 어딜 만져? 뜨거운 맛 좀 볼래?” 강씨는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덩치가 크고 위협적인 한씨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공포감도 들었다. 놀란 강씨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도망치다가 한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씨가 먼저 접근하길래 관심이 있는 줄 알고 몸을 만졌다. 원래 그 곳에서는 합의 하에 관계를 맺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강씨의 말에서 이상한 낌새를 챈 경찰은 한씨에 대해서도 조사를 착수했다. 기록을 보니 한씨가 8차례나 집중적으로 강제추행 피해를 당한 사실이 나타났다. 성인 남성이 각기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거듭 추행을 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 더구나 찜질방에서 추행을 당한 한씨가 계속 찜질방을 찾아갔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찰은 이 사건이 한씨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거듭된 추궁에 한씨는 자신이 ‘동성애자 꽃뱀’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자백을 받은 경찰은 나머지 일당들도 검거하는 한편,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신고를 꺼리는 동성애자들의 속성을 이용한 유씨 일당은 스스로 범행 단서를 남겼다. 합의를 쉽게 끌어내기 위해 경찰에 피해 신고를 해온 게 자신들의 악행을 입증할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한 것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조광조(호 靜庵·정암, 시호 文正·문정)의 일생은 짧고 격절(激切)했다. 1519년(중종14) 겨울, 전라도 능주에서 사약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젊은 선비가 남긴 일화들은 금세 신화가 되었고, 후세는 그를 성리학의 순교자로 기억하였다. ●절명시 전승되는 그의 최후 장면은 장엄한 서사다. 그때 조광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정중히 맞이하고, “임금께서 죽음을 명하셨다면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이다.” 라며 죄명을 물었다. 그런데 가져온 명령서에는 죄명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을 대접하는 도리가 이렇게도 초라하단 말인가.” 라면서 “당장에 상소를 올려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일이라 그만둔다”고 훈계했다. 사약을 마시기 전에 조광조는 시 한편을 읊었다. “나라님 사랑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소(愛君如愛父). 나라일 걱정 내 집안일처럼 걱정하였소(憂國如憂家). 밝은 해가 세상을 내리쬐시니(白日臨下土), 밝고 밝게 비추어 내 마음 아시리라(昭昭照丹衷).” 이 서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그는 만고 충신이며, 지순(至純)한 도덕군자이고, 세사를 초탈한 영웅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광조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정착되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기묘사화와 후세의 평가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쉬움으로 일관되었다. 학문이 완숙되기도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니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이(1536~1584, 호 栗谷·율곡)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하기를,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라고 말했다. 조광조를 쓰러뜨린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였다. 그 시작은 1519년 11월 16일(음력) 아침이었다. 중종은 남곤, 심정 및 홍경주와 함께 정치적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사로이 붕당을 지은” 죄로 조광조와 김정, 김식 및 김구 등 4명을 주범으로 몰았다. 윤자임, 박세희, 박훈 및 기준 등도 부화뇌동한 혐의로 엮였다. 붕당의 몸통으로 거론된 이들 8명은 당년 20~30대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각지로 유배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문제가 된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조광조는 “나라의 병통이 이원(利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명맥을 영구히 새롭게 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다시피 사적 ‘이익’의 추구는 성리학의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종반정 때 117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마구잡이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봉된 것이 조광조 등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가 있는 76명의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공신세력은 이에 분노했고, 중종은 반색하였다. 조광조 등이 숙청의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 첫째, 사건의 총지휘자가 중종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훈구파의 우두머리라는 남곤이 실상은 공신이 아니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셋째,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성격은 다양해, 기준과 권전 등의 급진파가 있었나 하면, 김안국·김정국 형제 등 소극적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조광조의 노선이 실은 선배 박경(?~1507)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조광조는 박경의 후계자 1507년(중종2) 박경 등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조광조를 비롯해 그 동지 김식, 공서린 및 조광좌 등이 연루되었다. 주모자 박경은 사림파의 종장(宗匠) 김일손(1464~1498) 계열의 학자였다. 서얼이었던 박경은 정국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변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박경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숙독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성리학의 근본가치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향리 선거법’ 즉, 추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관행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할 것, 특히 서얼과 종친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았다. 청년 조광조 등은 박경의 견해에 공감하였다. 서얼과 종친에 관한 부분을 뺀 나머지 사항들은 고스란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중심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조광조 등은 박경의 뜻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적 리더십 조광조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데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법 집행이 공정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지지가 컸다. 오죽했으면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자 한성부 향도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겠는가. 그때 1000명이 넘는 유생들도 대궐에 난입해 조광조의 구명을 요구했다. 조광조는 소통에 능하였고, 그래서 동지들의 신뢰가 대단했다. 특히 김정 및 한충 등과는 큰 이불과 긴 베개를 펴놓고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의 우정은 죽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또한 조광조는 정치적 명분이 뚜렷했고, 모든 일을 끝까지 정열적으로 밀고나가는 사람이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했다.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어, 겉으로는 칭찬하나 속으로는 욕하였다.”고 할 정도였다. 조광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섰다. ●왕이 최고의 성리학자라야! 조광조는 요순시대의 재현을 확신했다. 1515년(중종15)의 증광문과시험 시권(답안지)에서 그는,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을 통해 황금시대를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펼친 이상(理想) 정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있었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조광조는 이런 주장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왕을 만인의 스승, 즉 군사(君師) 또는 철인군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과 ‘명도’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상정치가 구현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훗날의 예를 보아도 ‘군사’를 자처한 당대 최고의 석학 정조 때에도 요순시대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야 어떻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구현을 위해 중종에게 대학과 중용 공부를 강조하였다. 특히 대학을 중시하였다. “비록 대학 한 권밖에 없다 해도 (왕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광조는 ‘소학’도 높이 평가했다. “세종 때는 오직 ‘소학’의 도(道)에 마음을 썼으므로, 그 책을 널리 반포하였습니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송나라의 성리학자들도 이미 ‘소학’과 ‘대학’이 표리관계임을 말하였다. ‘소학’은 성리학적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교과서요, ‘대학’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중종 물론 조광조 등이 이념에만 매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실제로 공신세력을 약화시켰고,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보급하는 등 몇 가지 개혁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기묘사화라는 역풍에 휩쓸려 좌초하였다. 조광조 등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세를 뒤엎지 못하였다. 왕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종이었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왕은 누구든 불신하였다. 우선 자신을 추대한 반정공신들도 믿지 못했다. 사림파를 요직에 임명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림파라고 해서 중종이 끝까지 총애할 리가 없었다. 중종은 4년간의 정치적 밀월 끝에 결국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처음부터 중종에게는 이상정치의 구현이라는 바람이 없었다. “왕은 (경연에서) 몸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고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용상(龍床)에서 퉁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조광조와 김식 등은 중종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종이 ‘소인’(小人)들에게 쏠리는 날이 올 것을 예측하였다. 특히 조광조는 자신들이 붕당(朋黨)을 만든 죄로 일망타진될 것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위험을 짐작하고서도 왕도정치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니, 그들은 이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조광조의 유산 중종이 공신들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구체화한 것은 1512년(중종7년)쯤이었다. 부왕 성종이 사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중종도 새 인물들을 찾았다. 그에 부응해 이조판서 안당이 조광조를 추천했다. 조광조는 동지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이성동 등 급진파는 삼정승까지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개혁을 외쳤다. 왕과 공신들은 그들을 혐오하였다. 1519년 겨울, 그들은 사화를 일으켜 이상주의자들을 내쫓았다. 그러자 낡은 정치가 재연되었다. 중종은 외척과 권신들을 들였다 내쳤다하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선비들은 ‘불나비’ 조광조를 잊지 못했다. 그들은 조광조의 뒤를 이어 성리학 지상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세웠다. 마침내 백인걸 등의 노력으로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선비들의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여기저기서 굉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본영인 미국 경제가 벌써 몇 년째 신음소리를 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아예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 또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다. 그래서 지금은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의미의 새로움이 요청된다. 우리가 조광조의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다. 21세기의 그 개혁사상가는 구체제의 귀결인 지배와 종속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공존공생의 평화공동체를 일으킬 것이다. 착취와 오염으로 병든 생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백승종(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 ‘인간’ 허균의 기개와 번뇌

    허균(1569~1618) 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설 ‘홍길동전’이고, 더 나간다면 시문집 ‘성소부부고’에 수록된 ‘한정록’ 정도일 터. 늘 그의 작품이 먼저이지 정치와 사상에서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이자 최고의 시인, 문장가, 파직과 재기용을 되풀이한 관리로서의 모습은 쉽사리 언급되지 않는다. 선조~광해군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가졌던 고민이나 ‘점잖은’ 사대부 사회에서 아연실색할 돌출행동 때문에 파직이 거듭되면서도 문학적 역량과 방대한 지식으로 재기용될 수밖에 없던 인물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허균의 기개가 한껏 드러나는 듯한 제목을 달고 나온 신간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지음, 정길수 편역, 돌베개 펴냄)는 그의 면모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시집이자 정치철학서이며 문학평론이고 자서전이다. 허균에게는 명예와 이익을 향한 욕망을 벗고 은거하고픈 마음이 일생 내내 교차했다고 한다. 해서인지 ‘압록강을 건너며’, ‘진상강에서’, ‘수레 위에서’ 등 많은 시에서 ‘어디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이 가득하다. ‘이대로 떠나 산방 주인 되면 어떨까/내 책 일만 권을 차례대로 꽂아 놓고’(‘설날’ 중에서)라는 소망을 가졌던 허균은 ‘어떡하면 만년에 내 마음 지킬까/옛사람의 책 읽고 또 읽으리라.’(‘읽고 또 읽으리라’ 중에서) 바랐지만 2년 후 역모죄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허균은 신랄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고, 그중에서도 호걸스러운 백성(豪民)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이지 한 사람이 윗자리에서 오만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심을 채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수령 노릇을 하는 자는 호민이 출현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유명한 ‘호민론’이다. 대단한 독서광인 허균은 평론도 명쾌하다. ‘양한연의’는 앞뒤가 잘 들어맞지 않고, ‘제위’는 졸렬하고, ‘수호전’은 속임수가 교묘하니 모두 교훈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당대 문인들 사이에서 호평받은 ‘수호전’을 박하게 평가한 것은 오늘날 수호전을 재평가하는 목소리와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이 책 한 권으로 당대의 천재든 혁명가든 반항아든, 허균을 두고 적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어떤 삶의 결을 가졌는지, 어떤 사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95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유토피아의 탄생’ 주강현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유토피아의 탄생’ 주강현 교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곳, 다시 말해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유토피아를 꿈꾼 이상향, 파라다이스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망(大望)을 간구하다 아쉽게도 비명에 간 아기장수 설화 등에 미완의 유토피아가 담겨져 있으며 중국풍 몽유도원도 원류의 유토피아 이야기도 산재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공간이 주어진 한국판 본격 유토피아로 ‘섬-이상향’을 능가한 공간이 있을까. “대개의 경우 유토피아 세계에서 섬이 주목되고 결정적 무대로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은 인류 문명의 그 무엇인가를 함의하는, 이상향적 DNA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섬-이상향’은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적·중세적 기원을 지니는 장기 지속적 담론입니다.” 신간 ‘유토피아의 탄생, 섬-이상향/이어도 심성사’(돌베개 펴냄)의 저자 주강현(57·제주대 석좌교수)씨는 “이 책을 통해 우리식 ‘섬-이상향’의 특질과 그 속에 담겨진 민중의 대망체계를 탐구하려고 했다.”고 저술동기를 밝혔다. 또한 “유토피아 세계의 기본 축은 섬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고 그러한 세계사적 전통에서 예외가 아니다.”라면서 “고통스러운 현실속에서 희망의 출구를 찾고자 했던 민중들의 심성구조가 ‘섬-이상향’ 담론을 지속시켜 온 동력이었고 ‘이어도-이상향’ 담론의 형성과정에서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동서고금의 ‘섬-이상향’ 담론의 궤적을 살피는 것과 오늘날 우리의 대표적인 ‘섬-이상향’으로 자리매김한 ‘이어도-이상향’에 관한 것이다. 특히 ‘이어도-이상향’ 담론은 용암으로 치자면 바로 엊그제 화산이 폭발해 흘러내리기는 했으나 아직 굳지 않은 현대적 서사(敍事)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또 실체가 없었던 전설 속 이어도가 어떻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섬-이상향’ 아이콘으로 부상했는지, ‘섬-이상향’ 서사가 탄생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어도 전설이 오랜 구전의 습득물인가 아닌가 하는 진실게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도(海圖)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어도라는 섬을 자신들의 심성지도에 등재시킨 제주도민의 망탈리테(심성구조)가 중요합니다. 이어도 연구는 민중의 심성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이어도-이상향’을 20세기 한국에서 펼쳐진 ‘섬-이상향’ 담론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하면서 고대 아틀란티스를 꿈꿨던 인류의 ‘섬-이상향’의 DNA가 그대로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제주는 한때 독립왕국이었으나 육지 복속 이후 오랫 동안 소외를 겪었고 권좌에서 밀려난 정치인들의 유배지, 대규모 민중반란 등 20세기까지 이어진 제주민의 고난으로 점철된 삶과 역사적 트라우마가 ‘이어도-이상향’ 담론의 증폭과 확산에 일조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섬-이상향 담론은 바다가 있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섬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이상향 담론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글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다시 기침을 보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이런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읽다 보면 오래전 고향을 지키며 살았던 선식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평생을 땅만 일궈 먹고 사느라 움푹 꺼진 볼에는 주름이 밭고랑을 이뤘고 식솔들 생애까지 걸머진 등은 배롱나무처럼 굽었으며 농사에 이골이 난 손마디는 노새 무르팍처럼 불거져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습니다. 몸을 꿈적이지 않으면 끼니가 거덜나는 세상을 살면서 얻은 신병이 한둘이었겠습니까만 끝까지 그를 괴롭힌 병은 기침이었습니다. 밤마다 자지러지는 기침 소리가 나지막한 토담을 넘어 골목길에 울렸고 그때마다 목울대에 뻗친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두 눈에 핏발이 서곤 했지요. 한바탕 기침에 시달리고 나면 기력이 죄다 빠져나간 듯 넋을 잃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숨길을 고르곤 했습니다. 이웃들도 “해소 기침이 사람 잡는다.”며 안타까워들 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기침 탓하며 농사일을 게을리한 건 아닙니다. 잘 키운 누룩소 앞세워 철마다 논밭 다 갈고 쌀농사, 보리농사 거뜬히 해낸 ‘장골’이었습니다. 그렇게 골병 기침을 쏟아댔지만 죽을병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던지 대처 병원에 간 적도 없었습니다. 가을이면 산도라지를 캐다 엿을 과 먹거나 은행알을 주워 볶아 먹는 게 전부였고, 그러는 동안 그는 기침 때문에 시들어 갔지요. 그러면서 폐병에 먹히고 천식에 주눅들었지만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라며 딱히 누가 보듬어 주지도 않았던 기억을 까맣게들 잊고 삽니다. 지금이야 그때와는 다르지만 아직도 기침을 사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침은 매우 중요한 증상입니다. 호흡기의 문제든, 식도의 문제든 기침을 가볍게 여기다가 엉뚱하게 병을 키우기 십상이지요. 감기, 독감은 물론 폐결핵, 폐암에다 천식 등이 모두 기침과 관련된 질병들입니다. 흔하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니 이상하면 한번쯤 꼭 짚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그게 병도 잡고 고생도 덜 하는 유일한 방책이니까요. jeshim@seoul.co.kr
  • 7순 맞은 양주동(梁柱東) 박사에겐 사연도 많아

    7순 맞은 양주동(梁柱東) 박사에겐 사연도 많아

     「맥주」와 「국보 제1호」하면 누구나 대번에『아, 그분』할 양주동(梁柱東) 박사. 비공식 통계지만 양(梁) 박사처럼 많은 말을 해 왔고, 글을 써온 사람도 드물 것같다. 지금도 그는 TV·「라디오」에서 박학강기(博學强記)를 과시한다. 그 국보 제1호께서 3월24일로 7순 고희를 맞게 됐다.  『내 생일이 호적에 3월24일로 되어서 그만 그걸로 낙찰을 봤지만 사실은 6월24일이야. 그러니까 석달을 앞당겨 에누리로 사는 셈이지.허허허···』  문제의 가가대소가 터져 나온다.「거칠 것 없고」「국보 제1호」를 자처하는 존귀한 몸이지만 아마 호적담당 관리들의 실수만큼은 도리 없었던 모양이다.  3월24일 7순 고희잔치를 기념하여 그의 제자들이「무애선생고희(无涯先生古稀)기념논총간행회」를 만들고 기념 논문집과 양주동(梁柱東) 박사「프로필」이란 책자를 펴냈다.『양주동(梁柱東) 박사 프로필』의 집필에 동원된 각계 인사는 88명. 끗수가 8땅으로 좋다고 했더니『글쎄, 내가 88세까진 살 모양이지』하며 소년처럼 즐거워 한다.  양(梁) 박사가 유도 4단이었다면 아마 누구도 곧이 듣지 않겠지만 사실이다.『그 당시 선생은 30세를 약간 넘은 원기왕성한 연령과 유도 4단의 완강한 체구로써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향가(鄕歌)연구에 열중하였다』고 시인 김현승(金顯承)씨는 회상. 유도 4단인 그는 숭실(崇實)전문학교 교수 시절에 일본인 학자 소창진평(小倉進平)의『향가(鄕歌)와 이독(吏讀)의 연구』를 반박하는 논문으로「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모았다.  30대엔 유도 4단의 체력···빵 먹으면서 캠퍼스 들락  이때 이룩한 그의 학문적 업적은 학계를 뒤엎는 충격적인 것으로「국보 제1호」의 별칭을 만든 계기가 됐다.『지금도, 몇백년 후로도 나의 학설은 정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완강히 주장한다.  『선생은 평소에 빵을 손에 들고 잡수시면서 교문을 들어서실 때가 많았고 얼굴 생김새가 둥글기 때문에 여학생들 간에는「호떡선생」으로 통했다』고 여류시인 김지향(金芝鄕)씨는 회고.  양(梁) 박사의 젊은시절 연애담도 폭로된다. 최정희(崔貞熙) 여사는 언젠가 작고 시인 노천명(盧天命)으로부터『강경애(姜敬愛)와 세상이 휘딱 뒤집히는 연애를 했단 말이야』하는 믿을 만한 정보를 들었다고. 강경애(姜敬愛)는『인간문제』란 장편소설을 쓴 여류작가로서 양(梁)박사와 심각한 사이였었다는 얘기다.  장문평(張文平)씨(독서신문 편집장)는 양(梁) 박사의 원고만 10여년 동안 다루어온 편집자로서『진땀 나는 회고』를 털어놨다. 자모(字母)도 없는 벽자(僻字)·기자(奇字)가 넘쳐 흘러 인쇄소에서 아우성이 터지고 원고지에『「콤마」에 유의할 것』이니『활자의 크기까지 지정해 주어』서 글자 한자도 손대지 못하게 한다. 원고를 쓰면서 필자가『편집까지 끝내준다』(낭승만(浪承萬)씨)는 정도였다.  양(梁) 박사의 깔끔하고 철저한 돈 처리에 대한 평론가 조연현(趙演鉉)씨의 회고. 1967년 대구(大邱) 어느 방송국에 서정주(徐廷柱)씨 등 3사람이 원정 출연했는데 출연료가 3인 합해서 7백원.『봉투에서 돈을 꺼내 여러번 세고만 있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어떻게 3사람이 나누느냐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한참만에「우리 세 사람이 각각 2백원씩 나누면 1백원이 남는데 내가 나이도 제일 많고, 말도 많이 했으니 나머지 1백원은 내가 갖기로 하겠소」하며 2백원씩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이 1백원의 처리가 아무래도 꺼림칙했던지 결국 사회를 봤던 대구(大邱)의 시인 신동집(申瞳集)씨에게 주어야 겠다고 제의하더라는 것. 돈이래야 모두 7백원. 하찮은 액수를 가지고 분배에 철저하려는 양(梁) 박사의 생각은 한마디로 실리주의와 개운한 계산주의라 할 수 있다.  술에 관한 한 양(梁) 박사의 경지는 주호(酒豪). 전 동국대(東國大) 총장 조명기(趙明基)씨는 양(梁) 박사와 1966년 해운대(海雲臺)로 피서여행을 떠났다.『「호텔」4층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선 맥주부터 청하는 것이었다. 한병을 마시고는 베개를 베고 눕고, 또 일어나서 또 한병, 또 누었다 일어나서 마시고 그리하여 3일간에 마신 맥주병의 수가 3백을 넘었으니, 3백번이나 눕고 일어나고 하면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는 볼 생각도 않고 돌아 앉아서 뒷산만 바라보고 혼자 마시고 또 마셨다』  누웠다 앉았다 하며 사흘에 맥주 3백명  양(梁) 박사에 관한 일화는 끝이 없다. 주례자로서도 일가를 이룬 그는『제1단계 부인과의 예비전화 교섭, 제2단계 맥주 두 상자 이상』이면 제자들에게 쾌히 주례를 승낙한다.  소화제 광고에도 나가고 KBS-TV나 동아(東亞)방송(6년째)에 매주 1회씩 출연하여 청중을 즐겁게 한다. KBS 출연료는 1만원, 동아(東亞)방송은 6천원.  방송 수입만으로『약값(술값을 말함)은 되는 셈』이다.  『쓸쓸해요. 친구들은 모두 죽거나 납북되어 혼자 이러고 있으니 외롭기 짝이 없어』  아들 양인환(梁寅煥·37)씨가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어서 부인과 내외만이 살고 있다.  시인이자 승려인 유엽(柳葉)씨는 양(梁) 박사의 욕친구.『주동(柱東)아! 내가 지금 너를 추어 주면 좋겠니』하며 약을 올리고 이렇게 눈시울 적시는 걱정을 해준다.  『어쩌다「텔레비전」에 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씰룩씰룩 하는 것 같은 전에 없던 모습이 나타나니 광선으로 하는 장난이라 전파 관계로 그렇거니 하고 생각은 돌이키고 말지마는 한곁으로는 슬며시 걱정이 되더라. 무엇보담 늙어갈수록 몸조심 해라. 젊을 때와는 다르다』<식(植)> [선데이서울 73년 2월18일 제6권 7호 통권 제227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영어·동화 읽어주며 깊은 잠 유도 ‘스마트 베개’ 나와

    영어·동화 읽어주며 깊은 잠 유도 ‘스마트 베개’ 나와

    애플의 아이폰에서 시작된 ‘스마트 혁명’이 머리맡 베개마저 바꿔놓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과 연계해 불면을 줄여주며 기상 시간을 알려주고,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영어 단어나 동화도 읽어주는 등 ‘스마트 베개’로 진화하고 있다. 수면용품 업체 라비오텍에서 내놓은 ‘해피슬립-사운드필로우’는 스마트폰을 연결해 음악이나 뉴스 등을 들을 수 있다. 뼈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골전도 방식’을 채택해 베개에 머리만 대고 있으면 이어폰이나 스피커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소리 또한 본인에게만 들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해피슬립’ 앱(아이폰 전용)을 내려받으면 ▲숙면 유도 ▲뒤척임·코골이 감지 ▲깨워주기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엄마가 직접 자장가나 구연동화를 녹음해 베개에 누운 아이에게 들려주거나, ‘엠씨스퀘어’ ‘유플레이어’ 등 전용 단말기를 통해 잠자리에서 영어 단어 및 회화 표현 등을 익히는 ‘수면 학습’도 할 수 있다. 가격은 10만~30만원대. 라비오텍 관계자는 “베개 전용 단말기의 뇌파 유도음은 대구대 임상실험을 통해 효과가 입증됐다.”면서 “앞으로 집중력 향상 및 치매 예방 등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기능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기기 전문기업 아이담테크의 ‘아이필로우’도 스마트폰을 연결해 숙면관리, 음악감상 등 다양한 음원을 즐길 수 있다. 이 제품도 골전도 방식을 탑재해 옆 사람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용 수면 앱을 함께 사용해 베개의 효과를 높일 수 있고, 고밀도 하이퍼 소프트폼 소재를 채택해 인체의 무게를 베개 전체로 고르게 분산해 준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10만원대부터, 인체과학 전문업체인 효원생활과학도 스마트폰과 연결이 가능한 ‘에듀올스마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숙면 베개에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음악은 물론 어학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평소 잠을 잘 이루지 못해 머리맡에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 부모님에게도 좋은 제품이라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에게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0만원대부터, 스마트폰 혹은 전용 단말기와 연계해 수면 효과를 높여주는 스마트 베개는 현재 중소 업체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아직은 초기 시장이라 가격도 다소 비싼 편. 하지만 한국3M 등 대기업들도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2분기부터는 본격적인 경쟁이 이뤄질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저자의 제안 가운데 흥미로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경쟁’ 민주주의 대신 ‘일치’(Concordare)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경쟁 민주주의란 지금처럼 선거에서 승리한 이들이 정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일치 민주주의는 선거 득표율에 따른 권력 분점을 뜻한다. 가령 대선에서 A후보가 60%, B후보가 40%의 지지를 얻었다면 내각의 40%를 B후보 정당에다 떼주는 것이다. 외교·국방은 A후보의 정당에서, 재정·보건은 B후보의 정당에 맡기는 방식 같은 것이다. 이런 제안을 내놓는 이유는 권력을 배타적으로 부여하다보니 정치가 극단적인 말과 이념 쇼를 통해 상대를 매도하는 소모적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웃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경쟁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다수결 사상은 정당이 지금보다 명확한 세계관과 어느 정도 서로 다른 체제사상으로 차이가 있던 시절에서 기인한 것”인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차이를 보이는 정당이 있기는 할까 싶은 현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봇대 뽑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겠다고 요란을 떨더니 결국 재벌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음미해볼 법하다. 또 하나는 증세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부자나 재벌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 증세하되 증가분이 어디에 쓰일지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제안한다. 가령 5% 증세를 해서 세수가 10조원 증액된다고 하자. 정부는 이 10조원이 쓰일 곳이 적힌 리스트를 공개한다. 무상급식이나 보육비 지원 사업, 학교폭력 예방 사업, 영어 공교육 지원 사업, 소상공인 보호 사업 하는 식이다. 그러면 A그룹 회장은 자기가 더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다른 일부는 저기에 사용하도록 지정토록 하고 그에 맞게 집행한다. 이는 이익 분배가 겉으로는 경제논리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논리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회장님’들은 꼭 검찰청이나 법원을 드나든 뒤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좋다는 사회공헌임에도 대개의 반응은 “일단 세금부터 똑바로 내시지.”라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제안은 기부금과 세금 사이의 타협이다. 세금이라는 국가 공식 체계를 존중하되, 납세자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오해는 말길.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리하르트 프레히트 지음, 한윤진 옮김, 21세기북스)는 이런 심각한 문제만 다루진 않는다.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교양철학서로 인기를 모았던 저자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반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이며, 사회제도는 이 이타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 덕분에 철학, 뇌과학, 신경학,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에까지 이 논쟁은 번졌다. 이들 학문들을 연결해 복잡계 연구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나오면서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책에도 이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책은 모두 38장인데, 각 장마다 이런저런 이론과 실험이 최소한 2~3가지씩 등장한다. 저자에게 고마운 점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글쓰는 철학자답게 이를 매끄럽게 정리해뒀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위트도 넘친다. 가령 꼬리말이원숭이 실험결과를 두고 인간 본성에 정의감이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다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로 나를 공격했다. 그 불공평의 대상은 나다. 아들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때까지 즐거웠던 베개 싸움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대게 네 살에서 다섯 살의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꼬리말이원숭이의 정신이 나타난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정의감이라 불렀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알랭 드 보통이다. 적당한 지적허영에다 이런저런 실험결과를 핵심만 추려 잘 던져주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독일 사람이어서인지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섬세하고 장황한 문장 대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한다. 동시에 복잡계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산타페연구소 대신, 영장류에 대한 학제간 연구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등장한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끌어들이지만 본격적 논쟁은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서 시작한다. 다윈의 오른편에 ‘사회적 다위니즘’을 주장한 토머스 헉슬리를, 왼편에 ‘상호부조론’을 통해 헉슬리를 강하게 비판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앉힌다. 보통 아나키스트하면 ‘국가 없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책 없이 낭만주의적인 공상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각종 실험 결과들이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는 사실을 지적해나간다. 인간 본성이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지적유희가 아니다. 앞서 봤듯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음미할 대목이 많다. 가령 ‘감성 대 이성’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2001년 심리학자 조나단 화이트의 연구결과를 등장시킨다. 그 결과를 보면 ‘나꼼수’ 김어준이 지난해 내놓은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에서 ‘무학의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던, 이성이란 결국 감정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맞닿는다. 인간이 경제에 대해 윤리와 도덕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배후세력의 조종’이나 ‘좌파 관점으로 덧칠된 경제·역사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직관’ 때문이다. 또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찬양하는 바람에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미국에 대해 저자는 “21세기임에도 여전히 19세기적 비스마르크 사회개혁입법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웃는다. 이는 “미국이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결국은 유럽을 따라갈 것”이라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자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박사의 판단과 맥을 같이한다. 김종인 박사는 독일 유학파인데, 유학 당시 독일은 질서자유주의(책에서는 ‘신자유주의’라 표기된다)가 대세를 장악했다. 저자는 31장 ‘프라이푸르크로 돌아가는 길’에서 질서자유주의의 본산 프라이푸르크학파를 다룬다. 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반지부터 드레스까지…‘전 애인 선물’ 파는 웹사이트

    반지부터 드레스까지…‘전 애인 선물’ 파는 웹사이트

    이별(혹은 이혼) 뒤 옛 애인과 주고받은 선물을 판매하는 웹 사이트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뉴요커 애나벨 액턴(28)은 지난해 크리마스 5일전 동거중 이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자신처럼 이별하거나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쇼핑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호주 출신인 액턴은 전 남친을 위해 준비했던 런던행 비행기 표 2장과 선물 받았던 미술품, 보석 등 더는 쓰거나 갖고 싶지 않은 물건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뒤 이를 팔기 위한 네버라이크드잇애니웨이닷컴(neverlikeditanyway.com)을 개설했다고 한다. 그녀가 만든 웹사이트를 보면 이별 혹은 이혼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전 애인에게 받거나 주기 위해 준비했던 여러가지 물건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커플링은 물론 드레스, 신발, 베개, 심지어 미착용 웨딩 드레스까지 전 애인과 관련된 여러 품목이 올라와 있다. 특히 이들 상품은 실제 가격을 ‘리얼 월드’로, 약 50% 정도에 해당하는 할인가를 ‘브레이크업’(이별)이라는 이름으로 명시돼 있으며 판매자의 사연이 함께 공개돼 눈길을 끈다. 액턴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더 낫다’와 같은 이 모든 말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면서 “난 뭔가 당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뉴욕포스트(위), 네버라이크드잇애니웨이닷컴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도 박사’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도 박사’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

    바다는 생명이다. 섬 사람에게는 운명이다. 그래서 섬에는 생명과 운명이 공존한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섬을 본 사람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뱃사람으로 늘 바다에서 보냈고 어머니는 실종된 아버지가 나타날 때까지 이어도 노래를 부르다 죽는다. 이 소설은 이어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섬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간섭해 왔고 모습지어 왔는지를 그렸다. ‘이어도’는 김기영 감독에 의해 1977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오멸 감독이 ‘이어도’를 흑백영화로 만들어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또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이사장 고충석)에서 올해 처음 영문판 ‘이어도 저널’을 발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어도 노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노 저을 때 내는 여음)/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소나무)의 배여/잘잘 가는 건 잡남(잣나무)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목적지에 들여 나가자(들어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다시 전생(환생) 못하나니라 원(관원)의 아들 원자랑 마라/신의 아들 신자랑 마라 한 베개에 한잠을 자난(혼자 잠자는)/원도 신도 저은(두려울) 데 없다 원수님은 외나무 다리….’ 주로 바다와 힘겹게 살아가는 어부와 해녀들이 불렀다.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구전 민요이자 한많은 노동요인 셈이다. 반어법과 문답법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임(바다로 나간 남편, 아버지)과 이별 없는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피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위험한 뱃길을 이어도 노래로 위안받으며 두려움 없이 바다로 나가고 또 나가곤 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제주도민들은 이 노래를 대부분 부를 줄 안다. 이어도는 살아서는 못 가는 섬, 그러나 한번 가면 못 돌아오는 환상과 애증이 사무친 곳이다. 이어도는 육지섬이 아니다. 평균 수심은 50m, 남북 길이 1800m, 동서 길이 1400m인 수중섬(水中島)이다. 평소 정상봉은 해수면 아래 4.6m에 있다. 섬 정상은 파도가 심한 날이면 수면 밖으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환상의 섬’이라고 한다. 요즘 중국이 이러한 이어도에 대해 욕심을 심상치 않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1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000t급 순찰함을 동중국해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이어도와 가거초(可居礁) 부근 해역에서 순찰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명으로 이어도는 쑤옌차오(蘇岩礁).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 온 중국 정부는 그동안 이어도와 가거초 부근 해역이 중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되는 곳이라는 논리를 펴 왔다. 한국 정부는 독도처럼 이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3000t급 순찰함을 이어도 부근에 보낼 경우 우리의 해양경찰과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3년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할 때에도 중국 정부는 불만을 표시하며 반발했다. 마라도에서 약 149㎞ 떨어진 이어도 부근 해양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수출입선이 지나가는 해상의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심재설 박사를 만났다. 그는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30여 차례나 이어도에 다녀와 이른바 ‘이어도 박사’로 통한다. 특히 그는 가거초 해양과학기지와 황해 중부(군산 앞바다에서 200㎞ 떨어진 곳)에 관측용 부표를 설계·설치한 데 이어 요즘에는 독도 해양과학기지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독도기지가 끝나면 곧바로 백령도 기지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여 해양과학기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심 박사에게 먼저 독도 해양기지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는지부터 물었다. 그러자 민감한 사안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면서 30% 정도라고만 짤막하게 대답했다. 위치에 대해 다시 묻자 독도 인근의 1㎞ 해역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얘기를 이어도로 옮겼다. “육지에서 300여㎞ 떨어진 해양과학기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태풍권(허리케인 등 포함)에서 우리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먼 바다에서부터 태풍을 연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위성 데이터를 검·교정할 만큼 아주 정확하며 생물 다양성 연구에도 아주 중요하지요. 이어도 기지 설치 이후 그동안 수심별로 여러 생물을 채집해 항암성분 등을 추출한 신물질만 300여종이나 됩니다.” 이 밖에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여러 핵심자료를 제공하고 황사 등 대기오염 물질의 이동 및 분포도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항해를 위한 등대 및 수색 전진기지로도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기지 구조물 수명이 50년이라는 그는 “30여개의 관측장비 대부분이 무인자동화 시스템이지만 설계할 때 8명이 15일 정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국립해양조사원 요원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 4박 5일 정도 지내고 있다면서 “이어도 기지는 2003년에 설치한 뒤 2007년부터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활용연구는 계속 해양연구원에서 하고 있단다. 중국이 요즘 들어서 왜 이어도에 부쩍 관심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물었다. “2000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최근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 속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어도 기지를 세울 때 전격적으로 설치한 뒤 나중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때 중국에서 외교채널로 (중국정부와) 상의할 것이지 왜 그랬느냐는 항의를 두 번 정도 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독도 문제처럼 크게 불거졌을 겁니다. 중국은 서해상에 우리 같은 해상 관측기지가 없습니다. 이어도 주변에는 해상자원과 어족이 풍부합니다. 제가 기지에 머물 때 봄가을에는 중국 어선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것을 자주 목격했지요.” 이어도는 중국령 퉁다오(童島)에서 245㎞,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거리에 위치해 있는 해상 생태계의 세계적 보고로 알려져 있으며 연평균 25만여 척의 배가 이곳을 지난다. 그는 이어도를 여전히 막내아들처럼 여긴다. 1991년부터 이어도 기지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정이 흠뻑 들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이어도에 기지를 설치할 때 바지선과 연결한 줄이 끊어져 바지선이 상하이 앞바다에까지 떠밀려 가 애를 태웠던 일, 2003년 태풍 매미가 불어닥칠 때 배터리가 작동이 안 돼 마음 졸였던 일 등이 대표적이다. “먼 바다에 해양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이어도 기지가 우리나라 최초입니다. 쇠말뚝을 박는 일에만 1년 더 걸릴 정도로 어렵게 설치했지요. 수중과 수상의 쇠말뚝을 같이 끼워야 하기 때문에 파도가 조금만 있어도 애를 먹게 됩니다. 나중에 설치가 되고 나서, 아마 전설의 섬에 있는 용왕님이 화가 나서 그러는구나 하는 후일담을 나누기도 했지요(웃음). 설치 3개월 후에 태풍 매미가 불어왔는데 이어도 기지는 정확한 예측으로 피해 규모를 많이 줄일 수 있어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기지에 설치된 구조물들이 지금까지 99%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지요.” 중국 어선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어서 크고 작은 분실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느냐고 했더니 “그런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아무나 올라갈 수 없도록 자동 사다리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 설계 중인 독도 해양과학기지는 이어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라고 귀띔한 그는 2016년 백령도 기지 설치를 끝으로 마지막 꿈인 연안침식 연구에 몰두할 예정이다. 연안 침식은 전 세계적으로 현안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해양으로 진출하는 국가는 흥하고 육지로 가는 나라는 쇠(衰)합니다. 바다에 대해 투자를 게을리하면 결코 안 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심재설은 195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해 해양학자의 꿈을 키웠다. 대전고와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뒤 1985년 해양연구원에 들어갔다. 박사과정은 중앙대에서 ‘항만 및 해안’을 전공했다. 이후 해양연구원에서 연구조교, 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1991년부터 ‘이어도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으며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건설 유공으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가거초 해양과학기지 총괄연구책임자를 맡았으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독도 해양과학기지 구축을 위한 설계 및 시공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쓰나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2009, 역서)와 ‘독도해양과학총서’(2011, 공저) 등이 있다. 이 밖에 ‘연직 원형파일에 작용하는 쇄파파력의 수치해석’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 [굿모닝 닥터] 보습제, 목에도 나눠주세요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깊어지는 팔자주름과 함께 목주름 때문에 속병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모임이 잦은 연말에 라운드원피스를 입은 젊은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목의 피부는 눈가 피부처럼 예민한 데다 얼굴에 비해 피지선의 분포도 적어 쉽게 탄력을 잃는다. 움직임은 많은데 피부를 잡아주는 근육은 거의 없어 얼굴보다 훨씬 노화가 빠르다. 게다가 늘 자외선에 노출돼 ‘세월의 나이테’인 목주름은 늘어만 간다. 목 주름은 가로주름과 세로주름이 있다. 가로주름은 근육 운동방향을 따라 생기고, 세로주름은 노화로 피부가 늘어지면서 생긴다. 세월이 만드는 세로주름은 그렇다 쳐도 가로주름은 생활습관만 고쳐도 예방할 수 있다. 평소 높은 베개를 베거나, 고개를 잘 숙이는 습관은 가로주름을 만들기 쉽다. 자주 턱을 괴는 습관도 경계해야 한다. 목주름을 예방하려면 평소 목을 똑바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잘 때 가능한 한 낮은 베개를 사용하고, 세안 후에는 보습제를 발라 유·수분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한 처방이다. 또 수시로 목을 움직여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고, 외출할 때는 자외선 차단제나 스카프, 터틀넥으로 보호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안티에이징 성분이 함유된 목 전용 화장품이나 케어 제품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게 제품을 골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미 굵어진 주름은 화장품이나 자가관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도드라진 목주름이 신경 쓰인다면 전문의를 찾아 ‘이프라임’, ‘써마지 CPT’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목주름은 노화의 한 유형이므로 치료 후에도 충분한 수면과 수분섭취, 건강한 영양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지나친 다이어트나 스트레스, 피로는 목주름 등 피부노화를 가속화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 원장
  • ‘올빼미족’일수록 악몽 꿀 확률 2배↑

    ‘올빼미족’일수록 악몽 꿀 확률 2배↑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잠이 쏟아진다. 불을 끈 뒤 베개에 머리를 얹고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내 몸과 정신은 온전히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일까. 최소한 뇌세포는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 꿈을 꿀 수 있으니 말이다. 완전하지 않은 수면 상태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여겨지는 ‘꿈’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이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꿈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왜 누구는 더 많은 악몽을 꾸고, 왜 누군가는 꿈을 꾸면서 실제처럼 몸짓을 하는가.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이 최근 게재한 ‘꿈나라’에 대한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재구성해 봤다. 1. 꿈을 믿는가 저널 ‘성격 및 사회심리학’에 발표된 미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판단하고 현실과 비교해 해석하거나 기억한다. 관심이 높을 경우에 꿈을 더 많이 꾸고, 기억도 오래간다. 카네기멜론대 카리 모어웨지 교수는 “실험 결과 사람들은 꿈을 자신의 생활이나 가치관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에 더 많이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행을 하루 앞둔 사람들에게 국가 테러 위협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거나, 해당 경로의 비행기 사고에 대한 과거 사례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날 밤 꿈속에서 비행기 사고를 경험했다. 또 270여명의 남자와 여자를 대상으로 과거에 꾼 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자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 나타난 꿈에 대한 기억이 월등히 많았다. 결국 꿈을 꾸는 것과 꿈의 의미 모두 본인의 생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2. 악몽은 누가 꾸는가 좋지 않은 기억은 꿈, 그것도 악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악몽을 많이 꾸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을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밝혀져 있다.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올빼미족’일수록 악몽을 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터키 유준쿠 일대학 야부츠 셀비 교수 등 공동 연구진은 대학생 264명의 수면 습관과 악몽의 빈도 등을 조사해 ‘수면과 생체리듬 저널’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성인의 80%는 1년에 한 번 이상, 5%는 매달 한 번 이상 악몽을 꿨다. 특히 밤 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 비해 악몽을 꾸는 빈도가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코티졸 분비가 ‘꿈을 꾸는 수면 상태’인 렘수면과 비슷한 사이클을 갖고 있는 만큼 스트레스 호르몬의 증가가 악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3. 폭력적인 꿈은 무엇을 말하는가 꿈에서 극심한 폭력과 충격에 시달렸다. 그냥 기분 나쁜 꿈에 불과한 걸까. 다소 황당하지만 폭력적이고 내용이 생생한 꿈은 미래에 발생할 뇌병변에 대한 경고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과학저널 ‘신경학’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 미네소타 메이요클리닉 연구진은 일부 신경성 질환은 실제로 파악하기 몇 십 년 전부터 환자의 몸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꿈을 꾸는 사람의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꿈을 꾸는 동안에는 몸의 근육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렘수면 상태에서 문제가 생기는 ‘RBD’라는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꿈의 내용이나 형태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꿈속의 공격자에게 실제로 대응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RBD 환자들은 대부분 남성이며, 이들은 꿈을 꾸면서 주먹을 휘두르거나 고함을 지르는 행동을 자주한다. 이는 RBD 환자들이 렘수면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근육과의 연관성이 생기면서, 꿈에서 하는 행동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메이요클리닉이 RBD 환자를 추적해본 결과, 이들은 수십 년 후 대부분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변성 질환을 겪고 있었다. 발병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년이 가장 짧았고, 평균 25년이었다. 4. 남자와 여자의 꿈은 어떻게 다른가 아주 오래 전부터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던 꿈에 대한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남성의 꿈에 성적인 요소가 더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진 성별에 대한 꿈의 차이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역동적이고 생생한 꿈을 꾼다는 점이다. 제니 파커 웨스트오브잉글랜드대 교수는 18~25세인 200명을 대상으로 각기 어떤 꿈을 꾸는지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했다. 그 결과, 파커 교수팀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생생한 꿈을 꿨으며, 일정한 주기를 갖고 강도가 일정하게 변하는 점을 찾아냈다. 바로 생리주기였다. 생리를 앞둔 여성의 경우 보다 공격적인 꿈을 꿨고, 잠에서 깬 후에도 평소보다 더 꿈 내용을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특히 배란 후에 체온이 상승하고, 생리 시작 직전 체온이 떨어지는 등 여성의 체온 변화가 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더 격렬하고 생생한 꿈을 꾸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 “6월항쟁 사진 역사기록으로 영원히”

    “6월항쟁 사진 역사기록으로 영원히”

    최근 이한열기념사업회의 후원계좌에 ‘특별한’ 기부금 16만원이 입금됐다. 보낸 곳은 인문사회 관련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 ‘돌베개’다.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출판사는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학술서적 ‘6월 항쟁’을 계획하면서 지난 8월 기념사업회를 통해 당시 피 흘리는 이한열의 모습을 찍은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72)씨를 찾았다. 정씨는 “사용료는 기념사업회에 후원금으로 보내달라.”며 사진을 게재를 허락했다. 출판사는 6월항쟁 당시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제목의 대형 걸개그림으로도 제작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동료가 부축한 모습의 사진을 책에 실은 뒤 출판에 맞춰 한 장에 8만원씩, 모두 16만원의 사용료를 기념사업회에 부친 것이다. 정씨가 촬영한 지 24년이 지난 이 사진의 저작권을 가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퇴사 뒤 15년 동안 회사가 저작권을 갖는다는 규정에 묶였기 때문이다. 현재 정씨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시위현장 사진이 국내 언론에 실리지 못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그나마 사진이나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외신에 시위 계획을 알려줬다.”면서 “하지만 ‘연세대생 이한열’이 쓰러진 당일은 시위대도 원래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6월항쟁 당시 찍은 사진 180여장을 기념사업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사진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을 경우 내가 죽으면 끝이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두루 알리고 좋은 곳에 쓰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코 골면 머리 미는 ‘곰인형 로봇’ 日서 개발

    코 골면 머리 미는 ‘곰인형 로봇’ 日서 개발

    수면시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들을 위한 기발한 로봇이 등장했다. 귀여운 곰돌이 모습을 한 이 로봇인형의 이름은 ‘주쿠수이-쿤’으로 ‘숙면’을 의미한다. 일본 와세다 대학 연구팀은 최근 열린 세계로봇전시회에서 이 코골이 방지용 곰인형 로봇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베개로 사용하는 이 곰인형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가 일정 크기의 코고는 소리를 내면 한팔을 자동으로 들어 사용자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줘 편하게 숨을 쉴수 있게 해주는 것. 또 사용자가 수면무호흡증으로 혈중 산소 수치가 떨어지는 경우에도 사람의 머리를 민다. 코골이는 심한 경우 수면무호흡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뇌에 영향을 주거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곰인형 로봇이 실생활에 사용되기에는 갈길이 멀다. 잠잘 때는 항상 이 인형을 베고 자야 하며 혈중 산소수치를 파악하기 위해 매번 손에 측정기를 달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스타워즈’ 광팬, 장난감 망가뜨린 부인 살해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영화 ‘스타워즈’ 광팬인 영국 남성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장난감을 망가뜨린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 주에 사는 리키 라 터치(30)는 지난 4월 태국인 부인인 폰필라이 스리스로이(28)를 자택 침실에서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3일 프리스턴 형사법정에 섰다. 터치는 “사건 당일 부인이 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 부부싸움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인이 내가 어릴 적부터 모은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등 ‘스타워즈’ 캐릭터 수집품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데 격분해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터치는 근처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 살해사실을 고백한 뒤 자수했다. 경찰이 사건현장인 집에 도착했을 때 싸늘한 사체로 변한 스리스로이는 이불과 베개에 덮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터치는 최고 종신형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터치는 살해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아끼는 장난감이 눈앞에서 망가지는 걸 본 뒤 이성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땐 내가 이미 부인을 목 조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두 사람은 터치가 2001년 태국 방콕을 여행하다가 처음 만난 뒤 국경을 넘어 사랑을 키웠다. 2003년 터치가 태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했고 2006년부터 영국에서 결혼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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