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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의 낭군님’ 도경수, 남지현 기억 떠올랐다 “나다, 팔푼이”

    ‘백일의 낭군님’ 도경수, 남지현 기억 떠올랐다 “나다, 팔푼이”

    ‘백일의 낭군님’ 도경수가 남지현과의 풋풋하고 애틋했던 과거 인연을 기억해냈다. 지난 22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극본 노지설, 연출 이종재, 제작 에이스토리) 13회는 케이블, IPTV,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 시청률에서 가구 평균 11.3% 최고 14.4%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다시 경신, 지상파를 포함한 전체 월화드라마 1위를 차지했다. tvN 타깃인 남녀2049 시청률에서도 평균 6.3%, 최고 8.6%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닐슨코리아 제공) 이율(도경수)을 피해 달아나려 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선 홍심(남지현). “보고 싶어서. 너 없인 살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율의 애틋한 말에도 “절 데려다 후궁이라도 삼으시게요”라며 차갑게 대했다. 이에 “못할 것도 없지. 난 이 나라의 세자인데”라고 답한 율은 “우리가 한 게 사랑이 아니면, 그게 무엇이냐”라며 홍심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홍심은 이것이 우리 인연의 끝이라며 돌아섰고, 홀로 눈물을 터트렸다. 궁으로 돌아온 율 역시 정제윤(김선호)에게 “그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지켜라.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무탈하도록”이란 명을 내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라진 무연(김재영)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 홍심과 연씨(정해균)는 제윤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고, 율은 명나라 사신 빈례가 다가오자 돌아오지 않은 기억 때문에 걱정이 많아졌다. 궁에 도착한 왕학사(장명갑)는 동행한 아들 진린(진지희)이 시전에서 사라지자 율이 직접 찾아오는 것으로 세자의 능력 검증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한편, 김수지(허정민)의 부탁을 받은 제윤이 홍심과 함께 진린이 무뢰배들에게 납치된 곳에 먼저 도착했다. 제윤이 무뢰배들을 따돌린 사이 진린을 구해낸 홍심은 발목을 다쳤고, 모든 것이 중전(오연아)이 꾸민 일임을 알아낸 율도 그곳에 도착했다. 율은 진린이 여인이었다는 사실보다도 홍심과 제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굳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을 한참 바라보기만 하던 율은 “저들은 공자를 반드시 데려올 것이다”라며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 화가 잔뜩 난 왕학사에게도 “이 연회가 끝날 때까지 공자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왕학사께서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라며 연회를 이어나갔고, 연회가 끝나갈 때쯤 다행히 진린이 다시 돌아오며 율은 국본으로서의 자격을 확실히 검증받았다. 하지만 “장인과 그의 사람들을 조심하세요”라는 왕학사의 의미심장한 충고에 마음이 무거워진 율. 김차언(조성하)이 붙여둔 사람이자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왠지 의심스러운 송내관(이규복)에게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송내관은 궁 밖에서 물건이 든 함을 몰래 불태우려다 발각됐고, 그 함 안에는 어린 시절 윤이서(남지현)가 선물한 붉은 댕기가 있었다. 그 순간, 율의 머릿속에 이서와 홍심의 모습이 교차되며 떠올랐다. 율을 잊으라고 나무라는 연씨에게 “나도 알아. 다 아는데 그게 맘처럼 안 되는 걸 어떡해”라며 집을 나온 홍심이 모전교에 다다른 가운데, 율도 모전교에 도착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율은 홍심을 보자 어린 시절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 서있던 이서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먹먹한 목소리로 “이서야”라고 불렀다. “맞구나, 윤이서”라는 율의 말에 깜짝 놀란 홍심이 “저하께서 그 이름을 어찌 아십니까”라고 묻자 눈물이 그렁해진 율은 “나다, 팔푼이”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었다. 오랜 시간 서로를 그리워했던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백일의 낭군님’, 오늘(23일) 화요일 밤 9시 30분 제14회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가을에도 피어나는 일본 사쿠라 “원인은 강력한 태풍 탓”

    가을에도 피어나는 일본 사쿠라 “원인은 강력한 태풍 탓”

    봄철에 2주 안되는 짧은 기간 피었다 져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여겨지는 벚꽃이 올 가을에도 상당히 많은 꽃망울을 피워 눈길을 끌고 있다. 기상업체 웨더뉴스에 따르면 이달 들어 벚꽃이 동네에 피었다고 보고한 일본인 숫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영국 BBC가 18일 전했다. 전문가들은 연이어 일본을 덮친 태풍 때문에 기후가 바뀌어 이런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화훼협회의 와다 히로유키 삼림학 박사는 NHK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관찰된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겠다”며 “일반적으로 벚나무 잎들은 봉오리가 성장하지 못하게 막는 호르몬을 내뿜는데 올해는 강력한 태풍의 영향 때문에 나무들이 잎을 빨리 떨구어버려 이런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태풍 뒤에 따듯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식물들이 개화하는 시기를 헷갈렸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지금 꽃을 피운 봉오리들은 내년에는 다시 망울을 터뜨리지 않는다. 와다 박사는 설사 그렇더라도 내년 사쿠라 시즌에는 미미한 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전세계에서 벚꽃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일본은 올해 사반세기 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거론되며 적어도 10명 이상 희생되고 광범위한 피해를 낳은 제비 등 연이은 태풍의 내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정읍사문화제 19일 개막

    백제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 ‘정읍사(井邑詞)’를 주제로 한 ‘제29회 정읍사 문화제’가 오는 19일부터 사흘간 전북 정읍시 정읍사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 문화제에서는 다채로운 음악과 화려한 의상을 선보이는 거리퍼레이드와 메이플 스타 오디션 페스티벌, 3차원 조명기법을 도입한 ‘정읍사 러브 판타지 쇼’ 등이 펼쳐진다. 거리퍼레이드는 올해부터 전국 공모를 통해 선정된 40여 개 팀이 참가해 한 차원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자리다. 시내 아양교에서 정읍사공원까지 1.3㎞ 구간에서 진행된다. 메이플 스타 오디션 페스티벌은 지난해 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청소년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올해 해외 신청자 300명을 포함해 모두 1200명이 예선에 참여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행사도 다채롭다. 정읍사 여인 제례, 사랑의 소원 등 달기, 축하공연, 전국노래자랑, 정읍사 가요제 등이 열린다. 행사장 인근 벚꽃로의 아름드리 벚나무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다양한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배치해 밤에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읍사는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가요로, 정읍의 한 행상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바라보면서 밤길에 해를 입지 않기를 기원하며 지어 부른 노래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길섶에서] 처음처럼/황수정 논설위원

    밤하늘 올려다보는 일을 까맣게 잊었다. 도심 불빛에 놓치는 줄도 모르고 놓치는 것이 밤의 하늘이다. 가는귀가 먹었더라도 밤이 내려와 풀썩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시골길에서는 들린다. 어느 영화에서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 했는데. 가을바람에 꺼칠해진 수수밭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속도를 나도 보았다. 분속 수숫대 한 마디쯤. 보름달만 믿고 밤길 한번 걸어 보리라 묵혔던 마음을 지난 보름밤에야 풀었다. 가로등 없는 둑길을 잘 살폈다가 밤보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발끝을 챙겨 또박또박 걷다 보면 보름달 아래 실꾸리처럼 환하게 풀어지는 밤길. 식은 죽 먹기다. 함지박으로 별을 퍼붓는 밤하늘은 시골에서도 전설이 되려 한다. 한참 시력을 맞춰야 별들이 안간힘을 써 돋는다. 분별없는 지상의 인공 조명에 칠흑의 밤은 칠흑이 아니라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행복했었다고. 어느 사상가의 오래된 문장이 발 아래 오래 뒹구는 밤. 돌아갈 수 있다면! 밤은 본디 검어서, 보름달이 뜨면 느리게 걷고, 발소리 내줄 한 사람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던 그때 처음으로.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월급쟁이 출신’ 성만기 원장이 말하는 수목원 40년“오늘 우리 한국 사람은 너무 바쁘게 급하게 삽니다. 오늘 일을 하면 내일 결과가 바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3년이나 5년 계획을 ‘장기 계획’이라고 우깁니다. 조급증 환자같이 살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니, 수목원을 하다 보니 시간의 의미를 체험합니다. 수목원은 최소 100년, 어쩌면 한 300년쯤 지나야 제대로 된 멋과 품격을 풍깁니다.” 수목원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 재벌도 기업가도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이 수목원을 멋있게 가꾸고 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3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소담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향했지만 길가에 촘촘하게 선 전봇대와 얼기설기 걸린 전선이 눈에 거슬렸다. 수목원에 들어서 엔진을 끄자마자 성만기(73) 수목원장이 나왔다. 조성한 지 올해로 40년째인 이 수목원 앞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옥빛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이름 그대로 작고 아담했다.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숲을 걸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나뭇잎은 여름 그대로였다. “저기 저 나무가 스트로보 잣나무입니다. 미국 코네티컷에서 이 나무를 보고 반했지. 나무 대신 씨앗을 가져와 심었는데 저렇게 자랐습니다. 한 40년 자랐을까, 대한민국에서 아마 유일할 겁니다. ‘이스턴 화이트’라고도 해” 설명을 듣고보니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보던 잣나무보다는 흰색이 강했고, 가지들이 피라미드처럼 층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스트로보 잣나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 생물자원이 풍부하다는 겁니다. 저건, 로보참나무야. 독일에선 ‘할아버지가 로보참나무를 심으면 손자가 벤츠를 탄다’는 말이 있지. 그만큼 목재 가치가 높거든.”국내 유일한 잣나무, 국내 최대 참나무 보유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한 나무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 “이건 핀오크 참나무야. 국내에선 제일 클 겁니다. 손기정(1912~2002)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하면서 받은 월계관이 사실은 이 핀오크 참나무 가지로 만든 거야. 손기정 선생을 기념해 서울 양정고등학교에도 저런 핀오크 참나무가 자라고 있지.” 이 나무 높이가 25m쯤 돼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뭇잎이 다른 참나무와는 달리 단풍나무처럼 들쭉날쭉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핀오크를 대왕참나무로 부른다며 그 유래를 설명했다. “1990년 중반 핀오크 참나무를 조달청에 우리말로 등재하기 위해 고민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국립수목원 조무연 박사와 의논했지요.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에 대왕 참나무로 명명했습니다. 목재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도 정말 아름답지요.” “대왕 참나무 이름도 지어···생물자원 풍요”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3년 대한항공에 공채로 입사했다. 승무직으로 4년가량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건축업과 자동차 딜러 등 개인 사업을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으로 1년여 만에 모두 ‘까먹고’ 1979년 대한항공에 재입사했다. 대한항공 재입사 1호다. 수석 사무장 15년과 객실이사(현재의 상무)를 지낸 그의 비행시간은 약 3만 시간에 이른다. 지구를 300바퀴쯤 돌았다. 전 세계 곳곳의 좋다는 곳은 다 가봤다. 2000년 퇴직하고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왜 수목원을 할까. “두 발을 땅에 딛지 않고 하늘에서 승무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그만큼 깎아먹는 시간입니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 일하는 나의 시간, 나의 ‘우주’를 갖자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국의 유명 식물원과 정원을 찾았습니다. 캐나다의 부차드가든, 영국의 큐식물원, 호주의 닐슨파크 등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요. 그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소피스트 로드)’에서 영감을 얻고 수목원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철학자의 거리를 자양분 삼은 문인과 철학자가 많이 나면서 독일의 지적 수준을 높였지만, 하이델베르크보다 더 풍광이 좋은 제 고향 이곳은 궁색한 시골이었습니다. 이를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서 영감···고향 바꾸고 싶어서“수목원을 하는 데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자란 그의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다. “씨앗을 지배해야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세계 곳곳에서 씨앗을 사 들였다. 소담수목원도 어린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씨앗을 발아시켜 성장시킨다. 수목원을 가꾸는데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린다. “요즘 길가 화단을 보면 꽃이 잘 핀 화초를 심는데 이건 1회용이예요. 1회용. 꽃이 시들면 파내 버리고 다른 화초로 갈아 끼우고···, 화초엔 인간의 이기심이랄까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도시의 욕망이 빚어낸 참사입니다.” 그의 비판이 신랄하다. “한번은 뉴욕 외곽의 종묘상에 갔는데 파산으로 ‘땡처리’를 하는 거예요. 평소 400달러 하던 씨앗을 40달러에 팔기에 무작정 종류대로 사들였지요. 한 1330여종이 됩니다. 국내엔 없는 희귀 종자들이 많이 있었지요. 종자를 사기는 했는데, 어떻게 발아시키는지 몰랐고, 당시엔 발아시킬 곳도 없어서 1976년 경기도 광릉임업시험장(현재 광릉수목원)에 그대로 기증했습니다. 당시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죠.” 지금도 국립수목원 종자표본실에는 ‘기증자 성만기’의 이름이 내걸려 있다. 외국 수종실을 만든 이로 기록돼 있다. 희귀종자 등 외국 씨앗 1330여종 국가기증 성 원장은 오솔길의 호젓함을 달래주는 새소리를 따라 걸으며 계속 설명해줬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평양 백화원초대소 앞에 심은 모감주나무”, “이건, 열매를 깨서 하천에 던지면 미꾸라지와 가재가 배를 뒤집고 뜬다는 때죽나무”, “이건, 밤에 잎이 오므라드는 자귀나무”, “이건, 6·25때 숲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돌배나무” 등등 숲 해설사처럼 들려줬다. “저기 보이는 저 참나무, 줄기에 검은빛이 도는 나무가 루브라참나무고, 그 옆에 저 잣나무는 변종이야. 학계에서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어요.”그의 수목원 프로젝트는 아들이 태어나던 1978년 시작됐다. “처음엔 고향 아버지의 밭뙈기 한쪽에 나무 씨앗을 뿌렸지요. ‘쓰잘데 없는 일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대부터 살던 이곳 3만 5000평을 샀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외딴 오지여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땅값이 말 그대로 ‘껌 값’이었다. “여기에 수목원 한다고 땅을 사니 가까운 사람들이 저보고 ‘돌았다’고 했습니다. 땅을 더 살 작정이었는데 그만 1995년쯤 마산 진전면에서 여기까지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 덜컥 나오더라고요. 땅값이 너무 뛰어서 수목원을 더 확장할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때 다리(동진대교)만 놓지 않았더라도 이곳이 확 변했을 겁니다.” 고향 땅 사서 일궈···주말마다 나무 심어 주중에는 승무원으로 세계를 누비고 주말에는 스튜어디스였던 부인과 함께 내려와 종자를 뿌리고, 어린나무를 옮겨심고, 잡초도 맸다. 부부가 항공사 승무원이었으니 사천공항이나 김해공항을 통해 내려오기가 한결 수월했으리라 짐작된다. “가능하면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만 살리고 모두 베어낼 수는 없잖아요. 원래 이곳에 터를 잡았던 소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칡덩굴 등등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4계절 다 아름다우면서도 주위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는 그런 수목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봄에 벚꽃 하나만 피면 좀 유치해 보이잖아요. 현재도 수목원을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한 50~60년쯤 뒤에는 수목원다운 풍모를 보일 겁니다.” 현재 이 수목원에서 자라는 나무만 300여종이란다. 식물은 1000종 이상 심었다. “여기 수목원의 고성의 기후와 토양에 따라 어떤 식물이 가장 계절을 잘 나타내주느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명이고 정체성입니다.” 성 원장은 산책길을 따라 심은 어린 핀오크 참나무를 만지며 “아까 그 핀오크의 씨앗이 발아한 2세예요. 이네들은 고성이 ‘네이티브’인 핀오크입니다. 돈이 급할 때 내다 팔려고 길가에 심었습니다만···. 어릴 때는 볼품 없지만 크면 클수록 똑바로 서서 자랍니다. 나무에 기품이 있지요.” 이 수목원에 성 원장 부부의 전 재산이 다 들어갔다. 그러나 수목원이 미완성이니 아직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국내 유일이거나 국내 최고의 나무가 있는 수목원이 한편으론 경남의 얼굴이고 고성의 작품이지만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자연적 문화공간에 정부 돈은 1원도 들어가지 않았다. 부인 이상숙씨가 카페를 운영하며,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거든다. 수목원을 산책하다 카폐에서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여유가 묻어났다.고향의 얼굴인데도 지원 없어···카페도 운영 “캐나다 부차드가든은 한 개인이 만들었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전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옵니다. 반면 우리나라 천리포수목원은 전세계 목련을 모았고 세계적인 작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돈달라는 것도 아닌데 국가에서 이런 자원을 이용해 국익을 위해 활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도 내가 죽고 나서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관심을 두고, 관리에 참여하면 지역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가 이 말을 하면서 목에 힘이 들어갔다. “형편상 사람을 데리고 쓸 수가 없어 제가 다 합니다. 요즘도 하루 평균 4~5시간 잡초를 속고, 씨앗을 거두고, 나무를 심고 합니다. 운동도 되고 좋습니다. 카페가 문 여는 오전 10시30분 이전에 다 마칩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열정 이외는 식물과는 인연이 없다. “식물 공부, 책으로 혼자 했지요. 조경회사 만수원의 고 김명원씨,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미스터 밀러’(고 민병갈 원장), 충북 진천에 있는 영주농장 이영주 대표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한 창고에는 식물과 관련된 책으로 가득했다. 초창기엔 씨앗만 보고 어떤 특징을 지닌 나무인지 모르니 움이 트더라도 숱하게 죽었으리라. “멘토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삼았습니다. 그 눈빛만 봐도 힘이 났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멘토를 이야기할 때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느꼈을 벽, 고독과 고난 등이 묻어났다. 킹 목사가 멘토···“그 눈빛만 봐도 힘 솟아”성 원장은 산책 도중 중간에 칡덩굴 숲 옆에 서며 “아침이면 굴뚝새 수백 마리가 날아오릅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정글을 이룬 칡덩굴이 나무를 휘휘 감고 넘실거리고 있다. “이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로 작은 우주입니다.” 몇 걸음 더 가다 “이게 백화등이라고, 담쟁이처럼 나무를 감고 올라가 5월이면 아주 향기로운 하얀 꽃을 피웁니다. 어떤 향수보다 더 달콤하고 향긋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님, 이게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것 같아 베어냈습니다’고 말해요. 몇 년 동안 정성 들여 팔뚝 굵기로 키웠는데, 너무나 안타깝지만, 기왕 베어낸 것, 제가 말을 못합니다. 들어와서 보는 것은 좋은데 제발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목원의 가치요? ‘종자 전쟁’이나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지구에 재앙이 닥쳤을 때 씨앗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씨앗저장소가 대표적이다.)는 아니지만 수목원은 훼손된 자연의 복원과 치유입니다. 오늘 일하고 내일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조급한 세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수목원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될 것입니다. 수목원은 시간이 갈수록 진가가 발휘되죠. 그게 느리게 산다는 것, 여유롭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만족합니다.” 산책하던 성 원장이 엎드려 작은 루브라참나무 옆에 우거진 잡초를 손으로 뽑아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이지만 한 자리에 우뚝 서서 수백년을 지키는 거목같은 수목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고성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수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안도현 시인이 서울신문에 당시 감동을 담은 기행문을 보내오셨습니다. 안 시인이 보고 느꼈던, 그리고 언론 매체에선 볼 수 없었던 정상회담 이면의 이야기들을 원문 그대로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북한의 풍경들을 함께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자의 서해 직항로의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보였다. 이른 새벽 해 뜨기 전에 잠을 자지 못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 순안비행장이라 불리던 평양국제비행장 청사는 현대식 건물로 면모를 완전히 바꿨고, 의장대와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의 함성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차범근도, 유홍준도…벅찬 감동에 “왜 이렇게 눈물이”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 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천천히 움직였고 우리는 시민들의 진심 어린 표정 하나하나를 가까이에서 읽을 수 있었다. 버스 바깥도 버스 안도 만남의 감격의 출렁거렸다. 선두에서 남북 정상은 정상끼리, 행렬 뒤쪽에서 같은 동포인 우리는 우리끼리 만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 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썬팅 처리된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볼 날이 없었다. 누군가가 눈물 타령한다고, 감상적이라고 또 이죽거린다고 해도 평양에서는 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공식수행원들의 숙소는 백화원초대소, 특별수행원들의 숙소는 고려호텔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고려호텔은 별다른 장식 없이 조용히 낡아가고 있었다. 1인 1실로 배정된 방에는 사과, 배, 귤, 바나나로 구성된 과일 한 접시와 과자, 사탕, 껌이 담긴 접시 하나가 ‘당신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내게 재떨이는 또 반가운 선물이었고. 호텔 창밖으로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올라 평양 시내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평양역 구내로 화물차와 전철이 쉼 없이 오가는 게 보였다.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호텔 2층 뷔페식당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는데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북쪽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룩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으면서 나는 1930년대 후반 시인 백석을 떠올렸다. ●김정숙 여사 ‘영부인 외교’ 동행한 리설주 여사 ‘깍듯한 환대’ 인상적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와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등 체육계 인사,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14호차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쪽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정장 차림에다 하이힐을 신고 부동자세에 가까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이기 전에 젊은 부부가 웃어른을 모시는 우리의 전통 예절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가 분명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이어서 김원균 음악종합대학을 방문했다. 김원균은 북한의 국가와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작곡한 사람으로 북한 정권 초기 앞장서서 음악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재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 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되었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 ‘그대 없이는 못 살아’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주었다. 남쪽의 대중가요를 선곡한 것도 모두 남쪽 손님들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거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서도 왠지 불편했다. 낯간지러운 가사와 트로트풍의 가요를 내가 모두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 북한 식당을 들렀을 때 점점 남쪽 사람들의 입맛대로 음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과 유사한 것이다. ●‘홀로아리랑’에 눈물…“어떤 난관도 아리랑 고개 넘듯 헤쳐 가야” 환영공연에 등장한 인민배우들의 한복 디자인도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한이 원래의 것을 놓치고 남쪽을 흉내 내는 일로 남쪽을 배려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남북 관계에서 북한은 원래의 북한을 유지해야만 화해와 협력도 대등한 관계 속에서 진전될 것이 아닌가.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되었다. 가사 뒷부분은 이렇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1980년대 후반에 남쪽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가 2018년 평양에서 울려 퍼진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걸어가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와 부인 리설주 녀사께서 주최하는 연회”가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 것으로 나는 평양 방문을 한 것에 대해 우쭐거려 보려고 한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당중앙위 조용원 부부장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금지의 언어가 아니라 소통의 언어로 말하고자 하였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은 찡그린 얼굴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한 한 사람은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양에서 가장 현대화한 지역은 미래과학거리 구역이었다. 여기에는 전에 없던 현대식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곳에는 과학자, 연구자, 교육자들이 주로 거주한다고 했다. 이 거리의 가로수들은 대부분 메타세쿼이아였다. 북에서는 이걸 수삼나무라고 부른다. 이밖에 평양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나무들은 살구나무와 버드나무가 있다. 봄이 되어도 평양 거리에 벚나무들이 벚꽃을 휘날리는 일은 없다.9월 19일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이번 평양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공동선언은 남쪽에 생중계 되었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웅장한 집단체조…남북 정상을 향한 15만 환호는 ‘지축 진동’ 평양 방문은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고,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모두 300g이었다. 평양교원대학은 우리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합친 교육기관이다. “어린이들에게 한 컵의 물을 주기 위해 한 동이의 물을 들이키는 심정으로 가르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평양 방문 때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집에 그 판화를 가져와 펼쳐 놓고 다시 보아도 내 선택이 현명했던 건 분명하다.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보는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지축을 울린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수사일 것이다.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말했다. “남쪽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공연이지. 아이들을 저렇게 동원해서 연습 시키면 가만히 있을 엄마가 한 사람도 없을 걸.” 씁쓸했지만 그게 또 우리의 현실이었다. 1970년대 중반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중학생이었던 나도 마스게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어린 우리는 뙤약볕 속에서 살을 태워가며 연습을 해야 했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북쪽 안내원이 말했다. “여기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엄마는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답니다.”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저녁 9시경이었다. 20일 새벽 4시에 출발한다는 갑작스런 통보가 전해졌다. 평양 방문 내내 우리는 그 다음 일정을 알지 못해 궁금해 하였다. 일정이 정해진다고 해도 남과 북의 안내원 말이 다를 때가 있었다.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실무적으로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특별수행원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백두산은 밤에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간다는 말도 들렸다. 어쨌든 젊은 가수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9월 20일 새벽 1시까지 큰 짐들을 호텔 로비에 내려놓으라는 전갈이 왔다.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되었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서 빈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남북을 위한 백두산의 환대, 이젠 평양도 백두산도 멀지 않더라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의 공기였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마음껏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삼지연의 공기를 팔아 돈을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지연비행장과 그 주변은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터미널이 신축되었고, 활주로는 깨끗하였다. 백두산으로 가는 포장도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깔나무(냑엽송),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말했다. “남쪽에서 오신 나이 드신 손님들을 위해 속도를 80㎞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백두산과 천지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1920년대에 육당 최남선이 쓴 ‘백두산근참기’를 나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꽃은 졌지만 잎은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는 일이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봉투에 넣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백두산과 천지 주변을 마음껏 걸으며 둘러보고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사귀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나의 ‘백두산근참기’는 완결편을 갖게 되었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나부야 나부야’…“78년 해로한 노부부가 그려내는 한편의 동화”

    ‘나부야 나부야’…“78년 해로한 노부부가 그려내는 한편의 동화”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나부야 나부야‘ 최정우 감독 인터뷰하동군, 78년 해로한 화개골 노부부소박하고 아름다운 7년의 기록 “해가 넘어가면 우리도 한 살 더 먹는다. 내일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마루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얼굴 가득 노을 색을 품은 할아버지가 넘어가는 해를 보며 “이제 우리도 한 살 더 먹어…”라고 말한다. 이 모습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부야 나부야’를 연출한 최정우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는 “94세 노인에게 한 해의 마지막은 어떤 감정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독 애정이 가는 이유를 덧붙였다. 지난 5일 본사 3층 회의실에서 ‘나부야 나부야’의 최정우(53) 감독을 만났다.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지리산 삼신봉 자락 해발 600m에 자리한 하동 단천마을에 살던 고 이종수(98)·고 김순규(97) 부부의 7년간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하동의 애처가 이종수 할아버지와 미소천사 김순규 할머니의 소탈하지만 아름다운 마지막 7년의 모습이다. 최 감독은 “‘부부란 무엇이며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작품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건네고 싶었던 작품의 중심점을 소개했다. 최정우 감독은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스트다. 경남 MBC ‘얍! 활력천국-우리동네 특파원’, 대구 KBS ‘사노라면’, 창원 KBS ‘우문현답’까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귀 기울여왔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집 <나무> 중 ‘황혼의 반란’에 나오는 “노인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빌어 최정우 감독은 긴 시간 노인들을 지켜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어디서든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열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긴 시간 직접 카메라로 노인들을 담으면서 얻은 통찰일 게다. 그의 생각처럼 그의 작품 속 노인들은 병들고 초라한 노인이 아니다. 비록 육체는 늙었지만, 지혜와 경륜을 갖춘 온화함으로 후세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최 감독이 영화 ‘나부야 나부야’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노부부를 처음 찾은 것은 2011년 11월이다. KBS1TV ‘세상사는 이야기-오래된 연인’을 촬영하던 시기다. 그는 “(두 분의 이야기만큼은) 명절 특집 확대 편성을 기획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2017년부터 스크린 상영을 위해 영화화 후반작업을 진행하게 됐다”며 TV에서 극장으로 플랫폼을 변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는 한 편의 연극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노부부의 일상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방과 마루, 부엌, 그리고 마당이 노부부의 주 무대다. 나무랄 데 없는 이 아름다운 무대가 대체 왜, 방송에서는 무산되었던 걸까. 최 감독에게 진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방송에서는 노부부가 벚꽃놀이 가기를 원했고, 97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산소에 가기를 원했다. 또한 호흡이 느리고 동선이 한정적인 게 원인이 됐다”며 공간의 다양성, 볼거리의 다양성을 원하는 방송의 특성을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적 호흡으로 완성된 ‘나부야 나부야’는 주연 노부부가 만들어내는 한편의 2인극처럼 조연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노부부의 행복한 모습만을 밀도 있게 담았다. 그는 “7년 동안 지켜본 노부부는 갈등이나 다툼이 없었다. 늘 서로 배려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부를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아흔을 넘긴 노부부가 알콩달콩 동화처럼 사는 모습이 웃음과 재미,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노부부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78년을 해로하며 켜켜이 정을 쌓아올린 노부부 일상의 행간은 하동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채워 마치 한 편의 시집을 읽는 듯 깊은 울림과 여운을 선사한다.고령의 노인들을 그저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영화 촬영 기간 내내 최 감독은 “매 순간이 고민과 갈등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촬영 순간은 할머니가 마당 바지랑대에 걸린 빨래를 힘겹게 걷어낼 때였다. 촬영을 접고 도와 드려야 하나 계속 촬영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많이 힘들었다”며 복잡했던 당시 심경을 전했다. 최 감독에게 영화 제목을 ‘나부야 나부야’로 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비의 여러 상징 중 하나인 환생을 의미를 떠올렸다”며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서 호박잎에 앉은 호랑나비를 보고 계신 모습이 마치 ‘할마이, 할마이…’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르는 듯한 제목으로 ‘나부야 나부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한 7년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최 감독. 그는 “관객도 내가 느낀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심과 사랑, 배려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극장에서 부부나 커플이 나올 때는 함께 손을 잡고 나오면 좋겠다”며 바람을 덧붙였다. 관객의 따뜻한 노년을 위해 뭉클한 물음표를 건넨 영화 ‘나부야 나부야’는 오는 9월 20일 개봉한다. 전체 관람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으로 간 김기림 기념비 日에 건립… 평화 추구한 시인 재평가 되길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北으로 간 김기림 기념비 日에 건립… 평화 추구한 시인 재평가 되길

    시인 김기림(金起林)의 기념비가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 구내에 11월 30일 건립된다. 김기림 시비는 그가 다닌 서울 보성고(송파구 방이동)에 있으나 일본에 기념비가 건립되기는 처음이다. 일제 시대 교토의 도시샤대학을 다닌 윤동주(1917~1945) 시인의 기념비가 1995년 2월, 정지용(1902~?) 시인의 시비가 2005년 12월 도시샤대학 구내에 건립된 바 있다. 김기림이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다닌 도호쿠제국대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관료 양성을 위한 도쿄·교토제국대학과는 달리 연구 중심의 대학을 표방하고 연구의 자유가 비교적 존중된 학교였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교수에 따르면 유대인 사상가 카를 뢰비트가 1936년부터 5년간 나치스를 피해 도호쿠대학에 재직했을 정도다. 1922년에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센다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기림이 도호쿠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아인슈타인에 있을 것이라고 남 교수는 추정한다.기념비 건립은 몇 년씩 걸리던 윤동주, 정지용 때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센다이에서 김기림을 생각하는 한·일 시민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김기림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진 게 지난해 11월. 남 교수를 중심으로 김기림 연구의 권위자인 김유중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진원 서울시립대 교수, 고선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 등이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사업회가 기념비 건립준비위원회로 전환한 것은 지난 6월이다. 기념비 건립에 관심을 보인 외교부가 지원에 나서고, 도호쿠대학에서 협력 의사를 밝히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준비위에 각계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다음은 기념비 건립위원회 한국 측 대표인 남기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 →일본 정치 전공이다. 시인 김기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2년 도호쿠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우연히 김기림이 영문학과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살짝 흥분한 적이 있다.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가 평화를 중심으로 사고한 ‘평화주의자’임을 알게 됐다.→김기림 기념비가 윤동주 기념비, 정지용 시비와 다른 점은. -윤동주는 한국 문학사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뒤 일본에 시집이 번역됐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희생된 시인이기 때문에 과거를 반성하는 일본 시민들이 ‘윤동주 읽기’를 전국적으로 전개했고, 평화운동의 상징적 의미로 읽혔다. 그에 비해 김기림은 일본에서는 덜 알려진 존재다. 센다이 지방에서 김기림을 일찍이 알고 공부한 아오야기 유코 같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가 김기림을 읽는 모임을 만들고 자료를 축적해 책도 냈다. 기념비는 김기림을 일본에서 발굴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윤동주, 정지용 시비는 이미 알려져 있던 한국 문학가를 일본적 맥락에서 재평가하고 기리는 뜻이었다면 김기림 기념비는 그의 일본 행적, 문학적 성과를 드러내는 출발점이다. →도호쿠대학의 협조는 어느 정도인가. -부지 제공을 비롯해 대단히 협조적이다. 우에키 도시야 부총장이 7월 11일 서울에 왔을 때 김기림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기념비 건립까지 생각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보다 3개월 전인 지난 4월 센다이총영사관에서 공공외교 차원에서 도호쿠대학을 방문했는데 그때 이미 한·일 교류에 많은 관심을 총장부터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얘기가 빨랐다. 당시 도호쿠대학 측은 김기림의 학적부도 찾아서 보여줬다. 아쉽게도 졸업 논문은 센다이 폭격 때 불타고 없어진 듯했다. →부지는 결정됐나. -후보지 세 곳을 대학 측에서 제시했는데, 우리가 현장 답사해 보니 벚꽃 두 그루가 있는 개방적인 풀밭이 있었다. 여기가 더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전 도호쿠대학 측이 “좋다”는 허가를 해줬다.→기념비 디자인은 누가 하는가. -시인 이상에 조예가 깊은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에게 상의를 했더니 관심을 보여줬다. 김 교수는 이상을 알아 봐준 김기림에 관심이 있다는데, 기념비에는 그의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일정은. -10월에는 기념비를 발주하고 11월 29일 센다이에서 전야제를 가진다. 30일에는 기념비 제막식에 이어 ‘김기림과 평화’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센다이 시민 중심의 ‘문학의 밤’ 행사도 개최한다. 김기림이 한·일 시민사회를 가깝게 하는 상징이 되어 기념비가 세워진 뒤에도 모임을 갖고 연구가 진전이 됐으면 한다. 또한 남북 문인들이 김기림을 생각하는 기회도 마련됐으면 좋겠다. →기념비 건립의 의미라면. -김기림은 시도 시이지만, 많은 평론을 썼다. 해방 공간에서 시가 문학사에서 갖는 역할이 크지만, 김기림은 평론가로서, 경세가로서의 모습도 갖고 있다. 일본에 의해 굴절되지 않은 조선의 모더니즘을 그만큼 고민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왜 지금이냐’ 는 의미도 중요한데, 한반도의 그 시기를 살았던 지성인, 지식인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이념적 잣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무시하거나 과도한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이 평화 프로세스를 전개하면서 해야 할 것은 분단 정권 수립 이후 지나치게 양극단으로 가 있었던 부분들을 바로잡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통일과 화해로 가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양극단 사이에 난 좁은 길에서 평화를 추구했던 김기림을 평가했으면 한다. 그는 정치적 주의·주장을 떠나 민족의 안팎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분열과 분단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marry04@seoul.co.kr
  • 장범준, 군 복무 중 무릎 부상으로 의병전역 심사 중

    장범준, 군 복무 중 무릎 부상으로 의병전역 심사 중

    군복무 중인 가수 장범준(29)이 무릎 부상으로 의병전역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수도방위사령부 52사단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인 장범준은 지난 5월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으며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 군 관계자는 “장범준이 최근 의병전역 신청을 했으며 이번 주 육군에서 심의가 열린다”면서 “십자인대 파열은 의병전역 사유로 대부분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장범준은 2014년 배우 송지수와 결혼했고, 2017년 5월 입대 당시 딸을 두고 있어서 집에서 출퇴근하며 근무하는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게 됐다. 내년 2월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현재는 휴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엠넷 ‘슈퍼스타K 3’에서 밴드 ‘버스커버스커’로 준우승한 장범준은 ‘벚꽃 엔딩’, ‘여수 밤바다’ 등의 곡을 발표하며 전국민적인 인기를 모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프로듀스48’ 순위, 미야와키 사쿠라 1위 ‘생방송 진출 20인은?’

    ‘프로듀스48’ 순위, 미야와키 사쿠라 1위 ‘생방송 진출 20인은?’

    ‘프로듀스48’ 세 번째 순위 발표식에서 미야와키 사쿠라가 1위를 탈환했다. 24일 방송된 Mnet ‘프로듀스48’에는 세 번째 순위 발표식 현장이 공개되면서 생방송 무대에 진출할 20인이 공개됐다. 이날 진행된 세 번째 순위 발표식은 19등부터 발표됐다. 19등에는 울림의 김채원, 18등에는 스톤뮤직의 조유리가, 17등에는 AKB48 타카하시 쥬리가 이름을 올렸으며 16위는 위에화의 최예나가 차지했다. 이어 15위는 얼반윅스 김민주, 14등은 스타쉽의 안유진, 13등은 큐브의 한초원이 선정됐다. 특히 14등 안유진의 순위 하락은 모든 연습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어 데뷔권 등수 12등부터 1등이 발표됐다. 12등에는 울림의 권은비, 11등은 AKB48 혼다 히토미, 10등에는 AKB48 시타오 미우, 9등 HKT48 야부키 나코가, 8등 NMB48 시로마 미루가 선정됐다. 이렇게 상위권 등수에는 대거 일본 연습생들이 자리했다. 이어 7등 스타쉽 장원영이, 6등 AKB48 타케우치 미유가 이름을 올렸으며 5등에는 플레디스 이가은이 선정됐다. 4등은 에잇디의 강혜원이 차지했고 3등은 WM의 이채연이었다. 1등을 두고 경합을 치룬 연습생은 AKB48 미야자키 미호와 HKT48 미야와키 사쿠라. 1위는 미야와키 사쿠라가 차지했다. 그는 “국프 여러분 마음에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생존자인 20위는 FNC의 박해윤이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밀양 얼음골, 늦더위 날려버리는

    밀양 얼음골, 늦더위 날려버리는

    8월 하순으로 접어들어 계절은 가을로 향하고 있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도 불지만 한낮에는 다시 습기 젖은 무더위가 찾아든다.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사상 최악의 폭염이 긴 꼬리를 남긴 채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더위를 잊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잠시나마 계절을 거슬러 찬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경남 밀양으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이웃한 창원에서는 사격을 즐기며 더위와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다.한여름 더위도 금세 가시게 할 밀양의 명소는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이다.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얼어 있는 골짜기라 얼음골로 불린다. 나라에 큰 우환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 두드리면 종소리·쇳소리·옥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경적과 더불어 밀양의 3대 신비다. 찬 계곡물 돌무더기 틈마다 얼음 꽁꽁 ‘얼음골’ 밀양에는 KTX역이 있어 서울역에서부터 2시간 30분이 채 안 걸리지만 얼음골의 신비를 확인하려면 밀양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영남알프스까지 가는 수고가 필요하다. 대중교통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걸리고 번거로워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밀양 시내에서 울산 방향으로 난 24번 국도를 따라 30여분 달리다 얼음골교차로로 빠져 5분쯤 더 가면 산내면 얼음골 주차장에 이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얼음골의 냉기를 찾는 건 이르다. 휴게소매점 뒤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사과를 바구니에 담아 파는 상인들이 보일 때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공기가 조금씩 느껴진다. 오른편 물이 흐르는 계곡은 바위마다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책을 읽는 노부부, 화투패를 손에 든 사람들, 가만히 누워 여유로움을 즐기는 모습까지 각양각색이다. 아기자기한 돌다리를 건너 천황사를 왼편으로 두고 더 올라가니 냉장고를 열어 둔 듯 시원했던 공기가 냉동실 문을 연 것처럼 차가워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분명 뙤약볕이 쨍쨍한데 냉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졸졸 흐르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얼음골의 실체가 나온다. 수많은 돌이 무더기로 흩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폐허 같아 자칫 실망할 수도 있지만 돌무더기 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꽁꽁 언 얼음이 보인다. 3월 초순 얼음이 얼기 시작해 8월 하순까지 녹지 않는다는데 겨울에는 반대로 바위틈에서 더운 김이 올라온다고 한다. 밀양의 얼음골 사과는 고급 사과로 유명하다. 낮 동안 밀양의 햇볕을 쬐다 해가 지면 얼음골의 냉기를 머금어 그 일교차가 단맛을 빚어낸다고 한다. 밀양의 대추 역시 같은 이유로 이름났다.붉은 꽃 활짝 핀 표충사 고즈넉한 풍경 위양지 얼음골에서 휴식을 즐겼으면 인근 표충사를 둘러봐도 좋다. 천황산을 기준으로 얼음골과 반대편인 남쪽 자락의 표충사까지는 차로 25분쯤 걸린다. 필봉·사자봉·재약봉·문수봉 등 부채처럼 펼쳐진 재약산의 8개 봉우리가 표충사를 감싸고 있다. 신라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절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이 있던 절이라 표충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대선사가 1966년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 널찍한 마당을 둘러 자리한 대광전, 서래각, 사당인 표충사 등을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3층 석탑(보물 제467호) 뒤편 배롱나무에 활짝 핀 붉은 꽃은 야릇한 정취를 더한다. 기왕 밀양에 왔으니 떠나기 전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인 위양지를 잠시 들러보는 건 어떨까. 밀양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20분가량 거리에 있는 크지 않은 못이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못 가운데에는 완재정이 작은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 이르는 짧은 길이 마치 비밀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못의 물 위로 손끝을 대고 있는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오리 한 쌍이 유유히 헤엄치는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시내 남동쪽 방향 20분 거리에는 화려하게 탈바꿈한 삼랑진읍 트윈터널이 가족·연인 단위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2014년 KTX 개통으로 버려졌던 터널이 지난해 화려한 색의 빛을 주제로 한 터널로 거듭났다. 1억개의 LED 전구가 각 450m가량의 상·하행선을 왕복으로 수놓는다. 터널 내부는 한여름에도 영상 14℃를 유지해 더위를 피해 가기에도 좋다.클레이·공기소총·권총 사격…창원으로 밀양에서 한껏 여유를 즐겼다면 창원으로 이동해 다이내믹한 즐거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국제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창원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창원국제사격장이 있다. 국제대회를 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도 클레이 사격, 공기소총·권총 사격 등을 즐길 수 있다. 사격 시뮬레이션 게임도 있어 어린이도 이용할 수 있다. 창원시는 대회에 맞춰 올해를 ‘창원 방문의 해’로 정했다. 이번 대회는 91개국에서 4255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북한 대표팀도 14개 종목에 출전할 선수 12명(남 5·여 7)과 임원 10명 등 22명이 등록을 마쳤다. 창원시는 대회 기간 사격장 내에 관광홍보관을 만들어 지역 대표 관광지와 축제 등을 안내하고 벚꽃빵, 진해콩, 아구포 등 특산물을 판매할 계획이다. 글 사진 밀양·창원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태풍 ‘야기’와 첫 수확한 붉은 사과

    [문소영의 시시콜콜] 태풍 ‘야기’와 첫 수확한 붉은 사과

    “주소를 불러봐.” 공직에서 퇴직한뒤 고향 충주에서 남동생과 함께 사과농사를 시작한 형부가 3년 만에 사과를 처음으로 수확했다며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덧붙여 “사과가 아주 잔 데다, 흠이 많아. 특히 꼭지 부분에 병이 든 것 같이 우툴두툴하고 변색한 부분이 많은데 병든 것은 아니고, 꽃이 일찍 피는 조생종 사과에 많이 발생하는 냉해 영향이라는군. 화학비료는 안 주었지만, 몇 번 소독했으니 깎아 먹도록”이라며 자세한 해설했다. ‘깎아 먹으라’라고 한 당부에 ‘역시 과일농사는 당분 때문에 벌레를 물리치기 어렵구나’ 싶었다. 아직 겨울의 ‘북풍한설’이 남았지만, 올해는 날씨는 정말 많은 사연을 낳고 있다. 올 2월 발뼈가 부러져 텃밭농사를 작파했기를 망정이지, 봄 농사는 냉해로 큰 낭패를 볼 뻔했다.경기도 북부 노지 농사꾼들은 빠르면 4월 초부터 열매 식물의 모종을 심는다. 가지나 고추, 호박, 방울 토마토 등등. 그러나 이 열매식물들은 원산지가 인도이거나 남미의 고온건조한 지역이라서 5월 초순에나 모종을 심어야 한다. 특히 경기도 북부, 노지는 5월 초에도 서리가 내렸다는 기상기록들이 있는 만큼, 너무 빠른 이식은 위험이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수확물을 먹겠다는 욕심으로, 또는 올해는 따뜻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는 냉해가 왔다. 벚꽃이 아름다울 시절에 영하에 가깝게 기온이 떨어지기도 떨어졌고, 그 벚꽃이 피는 시기와 맞물려 꽃을 피우는 사과꽃, 복숭아꽃, 살구꽃 등등은 냉해를 입었다. 이미 어린 사과가 달렸더라만, 형부네 사과처럼 냉해의 흔적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형부네 사과는 ‘조생종’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전국이 폭염과 함께 타는 목마름에 시달리는 탓에, 가뭄피해를 볼지도 모른다. 111년 만에 찾아온 폭염에 다들 화들짝 놀란 탓에 심각한 또 다른 날씨 이변을 감지하지 못했다. 장마가 7월 초에 일찍 끝난 탓에 강우량이이 너무 적다. 중부지역에서 농사지을 물도 말랐다.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가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내놓았다. 경기도내 112개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7.6%로 ‘경계’ 단계다. 한국의 댐이나 저수지는 6~8월에 내린 비를 가둬서 물 부족 국가를 겨우 면하는데, 올해는 비가 너무 안왔다. 태풍을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똑같은 자연재해지만, 가뭄은 인공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 폭염은 87%나 보급된 에어컨으로 어떻게든지 회피해 나갈 수 있지만. 14번째 태풍 ‘야기’가 중국 산둥반도를 따라 올라온다고 한다. 한반도 서해안이 영향권에 들어간다. 일본이 제출한 ‘야기’는 별자리 염소자리를 말한다는데, 폭염도 물리치고 적당한 폭우도 뿌려주길 바란다. 가능한 적은 피해와 함께. 올 가을 수확할 사과에는 봄의 냉해와 여름의 폭염과 가뭄에 태풍까지 담아, 더 붉게 잘익기를. 문소영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태풍 ‘야기’와 첫 수확한 붉은 사과

    [문소영의 시시콜콜] 태풍 ‘야기’와 첫 수확한 붉은 사과

    “주소를 불러봐.” 공직에서 퇴직한뒤 고향 충주에서 남동생과 함께 사과농사를 시작한 형부가 3년 만에 사과를 처음으로 수확했다며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덧붙여 “사과가 아주 잔 데다, 흠이 많아. 특히 꼭지 부분에 병이 든 것 같이 우툴두툴하고 변색한 부분이 많은데 병든 것은 아니고, 꽃이 일찍 피는 조생종 사과에 많이 발생하는 냉해 영향이라는군. 화학비료는 안 주었지만, 몇 번 소독했으니 깎아 먹도록”이라며 자세한 해설했다. ‘깎아 먹으라’라고 한 당부에 ‘역시 과일농사는 당분 때문에 벌레를 물리치기 어렵구나’ 싶었다. 아직 겨울의 ‘북풍한설’이 남았지만, 올해는 날씨는 정말 많은 사연을 낳고 있다. 올 2월 발뼈가 부러져 텃밭농사를 작파했기를 망정이지, 봄 농사는 냉해로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경기도 북부 노지 농사꾼들은 빠르면 4월 초부터 열매 식물의 모종을 심는다. 가지나 고추, 호박, 방울 토마토 등등. 그러나 이 열매식물들은 원산지가 인도이거나 남미의 고온건조한 지역이라서 5월 초순에나 모종을 심어야 한다. 특히 경기도 북부, 노지는 5월 초에도 서리가 내렸다는 기상기록들이 있는 만큼, 너무 빠른 이식은 위험이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수확물을 먹겠다는 욕심으로, 또는 올해는 따뜻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는 냉해가 왔다. 벚꽃이 아름다울 시절에 영하에 가깝게 기온이 떨어지기도 떨어졌고, 그 벚꽃이 피는 시기와 맞물려 꽃을 피우는 사과꽃, 복숭아꽃, 살구꽃 등등은 냉해를 입었다. 이미 어린 사과가 달렸더라만, 형부네 사과처럼 냉해의 흔적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형부네 사과는 ‘조생종’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전국이 폭염과 함께 타는 목마름에 시달리는 탓에, 가뭄피해를 볼지도 모른다.111년 만에 찾아온 폭염에 다들 화들짝 놀란 탓에 심각한 또 다른 날씨 이변을 감지하지 못했다. 장마가 7월 초에 일찍 끝난 탓에 강우량이이 너무 적다. 중부지역에서 농사지을 물도 말랐다.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가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내놓았다. 경기도내 112개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7.6%로 ‘경계’ 단계다. 한국의 댐이나 저수지는 6~8월에 내린 비를 가둬서 물 부족 국가를 겨우 면하는데, 올해는 비가 너무 안왔다. 태풍을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똑같은 자연재해지만, 가뭄은 인공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 폭염은 87%나 보급된 에어컨으로 어떻게든지 회피해 나갈 수 있지만. 14번째 태풍 ‘야기’가 중국 산둥반도를 따라 올라온다고 한다. 한반도 서해안이 영향권에 들어간다. 일본이 제출한 ‘야기’는 별자리 염소자리를 말한다는데, 폭염도 물리치고 적당한 폭우도 뿌려주길 바란다. 가능한 적은 피해와 함께. 올 가을 수확할 사과에는 봄의 냉해와 여름의 폭염과 가뭄에 태풍까지 담아, 더 붉게 잘익기를. 문소영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액티브한 취미생활 제안하는 ‘EDM Swing Night’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액티브한 취미생활 제안하는 ‘EDM Swing Night’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바쁜 일상에 치여 살기보다 취미와 여가생활을 즐기는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하는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도그 요가, 탄츠, 테피스트리만들기, 한강 나이트카약, 나이트러닝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오는 27일 금요일, 한화 금융의 공동브랜드인 Lifeplus는 여의도 63빌딩의 테라스에서 한 여름 밤을 들썩이게 만들어 줄 ‘EDM Swing Night’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역동적인 스윙댄스에 힙한 일렉뮤직을 더해 전에 없는 새로운 장르를 구성하여 고된 일상에 ‘액티브한 즐거움’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이다. 스윙(Swing)은 1930년 대공황의 시기 끝에 사람들을 흥겹게 춤추게 하는 스윙 음악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댄스로 Lifeplus는 ‘EDM Swing Night’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새롭고, 놀랍고,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고자 기획되었다. Lifeplus는 고객이 보다 가치 있는 선택과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삶(life)을 더욱 풍요롭게(plus) 할 수 있도록,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한화 금융 5개사의 공동 브랜드이다. 특히 다채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Lifeplus X 를 통해 봄에는 ‘Lifeplus 벚꽃피크닉페스티벌’을 통해 여의도 벚꽃과 함께 특별한 설렘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서울세계불꽃축제’를 통해 밤하늘의 화려한 낭만을 선물한다. 뿐만 아니라, Lifeplus는 나만의 꿈을 탐색하고 제안하는 버킷리스트 웹사이트, 주말 여가를 위한 큐레이션 앱인 ZUMO 등 지속적으로 삶을 더 풍요롭고, 유익하게 하는 방법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번 ‘EDM Swing Night’는 유명 아이돌 안무팀인 Prepix Studio가 진행하는 스윙 댄스 이외에도, 디제잉이 함께 하는 와인 파티가 진행 될 예정이며, 신청은 오는 22일까지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인 Frip 및 Lifeplus 페이스북을 통해 할 수 있다. Lifeplus는 이외에도 고객의 삶을 더 잘 살게 하기 위한 상품 및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 출시할 예정이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Lifeplus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서울사방 남촌 편이 지난 7일 중구 필동과 예장동, 회현동 일대 남산 아랫마을에서 진행됐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서(小暑)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인터넷 예약에 실패한 네댓 분이 “신문 보고 왔다”며 즉석 합류를 요청해 운영진을 곤혹스럽게 했다.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 40개가 동나는 바람에 진행자용 기기를 양보했다. 많은 인원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니다 보니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미래유산이 비록 국가공인 지정 및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참가자 본인이 직접 겪고 들은 유형과 무형의 소중한 미래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코스이다. 다크투어란 인간이나 자연이 저지른 어두운 현장을 찾는 역사교훈관광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남산골한옥마을(청학동, 조선헌병대사령부)을 출발, 필동 예술통(남학당)~서울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유치장)~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녹천정, 통감관저·총독관저)~문학의 집(중앙정보부장 공관)~서울유스호스텔(중앙정보부 남산본관)~서울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총독부)~남산원(노기신사)~한양공원비(왜성대공원)~백범광장(조선신궁)~안중근의사기념관(조선신궁)까지 빡빡한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김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독창적인 관점의 해설을 열정적으로 들려줘 호응을 얻었다.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21명 중 6명이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면서 해설시간 연장이나 코스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참가자는 늘 걷던 남산 길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남산은 상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서울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보이는 누이 같은 산이고, 서울 바깥에서 봤을 때 서울 진입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서울이 사대문 안을 벗어나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과 한강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조선 말 고종이 종로구 인사동 194(하나로빌딩)에 세운 서울중심점 표식이 지금은 남산 정상으로 남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관문 노릇을 하던 한강 또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관통하는 도심 속 하천이 됐다. 남산은 광화문네거리에 솟아 있던 황토마루(黃土峴) 역할을 하는 중앙산이 됐고, 한강은 사대문을 북촌과 남촌으로 나눈 청계천처럼 서울의 강남과 강북 사이 중앙천이 됐다. 한강이 허리띠처럼 감싼 남산은 명실공히 서울을 대표하는 자연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삼각산(북한산)이 왕조와 왕을 지키는 장풍(藏風)의 산이라면 남산은 백성과 함께 즐기는 득수(得水)의 산이다. 신라의 고도 경주의 남산, 고려 개성의 자남산에 이어 서울 남산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왕조가 백성에게 내준 어울림의 영역이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뒤 백악산(북악산)에 여신 진국백(鎭國伯)을 둔 반면 남산에는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는 남신을 모신 국사당을 세운 데서 나타난다. 남산은 국가의 제례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터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왕묘 중 남관묘가 남산에 가장 먼저 건립됐고 제갈공명을 모신 와룡묘도 따라 들어섰다. 남산 범바위를 중심으로 한 무속신앙이 성행한 이유도 남산을 한양도성의 수호신 목멱대왕이 깃든 신성한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봉수대의 종착 지점을 남산에 둔 까닭이기도 하다. 제왕은 남면(南面)하는 법이다. 남산은 왕이 바라보는 산이다. 이를 쫓아 옛사람들은 마을의 앞산을 남산이라고 불렀다.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 자를 썼다. 남산의 다른 이름 ‘마뫼’는 우리 말 ‘앞산’과 동의어다. 목멱이란 마뫼의 이두식 표기다. 남산=마뫼=목멱 등식이다. 남산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두지 못하게 엄히 규제한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역이기도 했다. 남산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실록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서울사람이 늘 보는 일상 풍경이었다. 남산을 그린 옛 그림 ‘목멱산도’와 ‘은암등록’, ‘장안연우’ 속 큰 소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인 양반촌의 시대는 옛 노랫가락처럼 흘러갔지만 남산만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을 제대로 겪은 산이 또 있을까. 남산 아랫마을 중 회현동(호현동)과 필동, 충무로 일대에는 본래 경주 이씨, 동래 정씨, 안동 김씨, 풍산 홍씨 같은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살았다. 서울에 기반이 없던 다산 정약용 같은 ‘남산골샌님’이나 ‘딸깍발이’ 신세의 남인 선비들도 산등성이와 계곡에 초가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남산산록을 수놓은 귀록정, 노인정, 청학동, 녹천정, 천우각, 쌍회정은 남산풍류의 본거지였다. 한양의 대표적 경관시 중 하나인 정이오의 ‘남산팔영’은 사실상 한양팔경가였다. ‘장소의 윤회’인가. 조선 건국 초 왜국사신 숙소 동평관을 지금의 인현동에 둔 게 화근이 돼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왜군이 진을 친 곳이 예장동(왜장대)이다. 또 300년이 흐른 1885년 일본공사관이 녹천정(통감관저 터)으로 틈입하면서 남산은 수난의 그림자에 덮였다. 황현은 “녹천정을 빼앗아 일본공사관으로 삼은 후로 야금야금 주동, 나동, 호위동, 남산동, 난동과 종현, 저동을 가로지르는 진고개 일대를 점거하여 남촌 50개 동 가운데 30개 동이 일본인 촌이 됐다”고 ‘매천야록’에서 절규했다.남촌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통감부를 중심으로 통감관저, 헌병대사령부, 정무총감 관저(필동 한국의 집)가 집결했다. 명동과 충무로에 화려한 상가가 들어서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 등 경제수탈기구가 남대문에 집결했다. 벚꽃 묘목 1500그루를 들여와 왜성대공원(한양공원)에 심은 게 1907년이었다. 한양도성의 수호신 남산은 일본 국교 신도(神道)에 무참히 유린당했다. 1925년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남산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공간이 됐다. 1932년 남산기슭 장충단 자리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로 둔갑했다. 남산은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산업화 과정에서 훼손됐다. 경성호국신사(용산동 2가) 자리에 해방촌이 들어선 데 이어 적산 처리 과정에서 동국대, 서울중앙방송국, 숭의학원, 미군 통신부대, 외인주택 등 각종 정부기관과 학교, 군 및 종교단체가 파고들어 잠식당했다. 동상과 기념물 그리고 터널과 타워는 남북 체제 경쟁과 정치이데올로기 홍보의 상징물이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중앙정보부는 ‘남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예장자락에 무려 41개의 건물을 차지하고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했다. 그 상처를 씻어내는 진혼곡이 이제야 연주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홍릉산책(홍릉수목원) ●일시: 7월 14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흥미진진 견문기] “해태상 아래에 와인 묻혀 있대” 국회 숨은 이야기에 귀 쫑긋

    [흥미진진 견문기] “해태상 아래에 와인 묻혀 있대” 국회 숨은 이야기에 귀 쫑긋

    예보와 달리 후텁지근했지만 장맛비가 금방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고 하늬바람이 간간이 부는 날씨였다. 여의도 면적의 10분의1을 차지한다는 국회의사당 앞. 듣기 좋은 중음의 소유자인 황미선 해설사의 ‘해태상 아래 백년 후에 먹을 와인이 묻혀 있다’는 말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몰려들었다. 아쉬움에 안타까움을 더한 것은 국회의사당 바로 옆 윤중로에 있는 벚나무 이야기였다. 1911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로 심었던 것을 1981년 창경궁 복원 때 모두 여의도로 옮겨 심은 것이란다. 국회의원들이 각성해서 국력을 키우는 정치를 하기를 바랄 뿐이다. 빛의 카페 2층에서 일행은 편히 앉아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12개 시민공원 중 일부인 여의도 물빛광장이 펼쳐졌다.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마포대교 아래에서 다리 속을 들여다봤는데, 그 웅장함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왼쪽 서강대교와 오른쪽 원효대교를 비교하며 해설이 이어지는 동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에 이르기 전에 그쳐 일행은 다시 쾌적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최초의 비행사 여부를 놓고 말은 많지만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비행을 한 안창남 조종사가 서울 상공을 비행하며 서대문 감옥의 형제들에게 ‘어떻게 지내십니까?’ 안부를 묻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울컥했다. 여의정과 사모정을 지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비경에 잠시 취한 후 버스 정거장 옆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 벙커로 내려섰다. 벙커 안에는 국군의 날 행사에서 ‘큰 자유를 위해서 작은 자유를 희생할 줄도 알고’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올라선 여의도 중심 도로에는 ‘굴착 절대 금지’라는 빨간 글씨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마지막 장소인 여의도광장에서 C47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지난날 역사 속의 아쉬움은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깨달음의 도구이다. 윤중로의 벚꽃과 한강공원의 수목들로 눈은 즐거운 하루였다. 맛있는 점심으로 기운을 회복하려고, 빌딩 사이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쫓아 걸음을 재촉했다. 김은선 독서연구가
  •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1905년 경부선 개통, 1914년 호남선 개통으로 ‘한밭’은 철도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인 대전(大田)으로 급성장한다. 교통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행정 수요가 이곳으로 몰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전 원도심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14개에 이른다. 그만큼 대전이 근현대사의 교통·행정의 중심 도시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대전 원도심 여행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 중구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전시관을 찾을 수 있다. 대전역과 두 정거장 거리여서 외지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근현대사 건물과 빵집 ‘성심당’ 등 원도심 맛집을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숨은 근현대사 건물들을 하나하나 찾는 1920~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①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 ‘근현대사전시관’ 대전을 오랜만에 찾는 사람이라면 대전근현대사전시관보다는 충남도청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은 내포신도시로 도청이 이전된 후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소중한 역사 공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일본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비슷해 1930년대 관공서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건물 벽돌에 새겨진 일본의 상징인 벚꽃 모양을 본 이들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벽돌을 제거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서 결국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을 만큼 웬만한 현대 건축물보다도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본관 1층은 구한말 이후 대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하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영화 ‘변호인’ 등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고풍스러운 계단을 걸어 올라간 2층에는 역대 도지사들의 옛 물품과 1920년대 제작된 무게 1t짜리 금고 등이 전시돼 있다.②일제시대 건축 보고 싶다면 ‘관사촌거리’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10분 남짓 거리에는 관사촌이 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부지사 관사, 국장급 관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사들이 이처럼 함께 모여 마을을 이룬 사례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조성 당시에는 일제 고위 관료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도 활용됐다.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1930년대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옛 충남도청과 함께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공관을 매입해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테미오래’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쯤 시민과 관광객에게 공개된다.③도심 속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 ‘대흥동성당’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을 한 대흥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적벽돌 구조가 대부분인 여느 성당 건축물과 달리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보다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지만 완공하고 난 뒤 명동성당의 실제 크기를 잘못 측정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명동성당보다 작게 지어졌지만, 개발이 더뎠던 주변 원도심과는 오히려 잘 어울려 보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당시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대전 원도심 투어를 하는 이들은 낮 12시나 오후 7시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1969년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종을 치며 50년째 성당의 종지기로 살아온 조정형(71)씨는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한번은 성당 종소리가 달라졌다며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성지순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가 종을 쳤던 것이다. 소리가 달라졌음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종소리는 주민들에게 친숙하고도 독특하다. 대흥동성당은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돼 있다.④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옛 대전여중 강당’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인근 대전갤러리로 가보자.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는 대전갤러리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 이곳은 원래 1937년 대전여중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지역 예술가를 위한 문화전시관인 대전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대전갤러리는 근대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창조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⑤슬픈 역사 홀로 지켜본 ‘옛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망루는 ‘왜 빨리 철거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흉측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6·25 전쟁 때는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가며 교도소를 장악해 서로를 죽인 학살의 장소였다. 슬픈 역사를 지켜봐 왔던 망루는 원래 동서남북에 1개씩 모두 4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전 자유회관 옆에 1개만 남아 있다. 시신을 생매장했던 망루 인근의 우물 자리도 참혹했던 역사의 증인이다.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역사적 의미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인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 의해 재조명됐다. 대전시가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를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대전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제공 ■여행수첩(지역번호 042) →맛집:대흥동성당 인근 원조진로집(226-0914)은 두부 두루치기의 원조로 알려진 식당으로 매콤한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 두루치기가 주메뉴다. 원래 가락국수를 팔던 조그만 포장마차에서 술안주로 두부 요리를 만들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귀빈돌솥밥(255-9198)은 전주식 돌솥비빔밥 전문점으로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모든 나물은 리필이 되니 많이 많이 드세요’라고 적힌 수저통 메모에서 식당의 인심이 전해진다.
  • 오감이 즐거운 송파 프리마켓

    서울 송파구가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해 오는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송파관광정보센터 주변 산책로에서 ‘송파관광정보센터 프리마켓’을 운영한다. 송파구는 “4월 벚꽃축제 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프리마켓을 운영했는데 축제를 찾은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면서 “이벤트 형태로 진행하던 프리마켓을 상시적으로 운영해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29일 설명했다. 프리마켓은 송파마을예술창작소 다락(多樂)이 운영 주체로 나선다. 현재 다락에서 활동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마켓을 넘어 문화를 체험하고 교류하는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운영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손예진 정해인, 벚꽃 아래 훈훈한 투샷 ‘미소도 닮았네~’

    손예진 정해인, 벚꽃 아래 훈훈한 투샷 ‘미소도 닮았네~’

    손예진, 정해인의 훈훈한 투샷이 화제다.최근 손예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동영상 한 개를 올렸다. 영상에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함께 출연했던 정해인과 손예진의 투샷이 담겼다. 벚꽃이 만개한 곳에서 환하게 웃는 손예진과 정해인의 모습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손예진과 정해인은 최근 종영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출연해 연상연하 커플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두 사람은 29일 포상휴가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삿포로로 출국했다.사진=인스타그램, 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AI 로봇, 재활용을 부탁해~

    AI 로봇, 재활용을 부탁해~

    서울 동대문구는 알아서 척척 재활용해 주는 쓰레기통인 ‘네프론’을 설치했다고 21일 밝혔다. 네프론은 캔과 페트병을 자동으로 선별하고 압착하는 자판기 형태의 로봇이다. 장안벚꽃길의 작은 도서관 옆과 전농동 사거리에 2대씩 총 4대를 설치했다.재활용이 가능한 캔이나 페트병을 투입하면 품목별로 분류해 수거하고 휴대폰 번호로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캔은 15원, 페트병은 10원으로 포인트가 2000점 이상 쌓이면 현금으로 쓸 수 있다. 재활용 문화 확산과 동시에 지역 어르신들에게는 ‘착한 고물상’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네프론 1대는 월평균 600㎏ 이상을 수거한다. 연간 기준 8t 이상 규모로 동대문구에서 쓰레기 선별장을 통해 수거하는 페트류와 캔류의 약 3%에 해당하는 양이다. 네프론은 쓰레기를 가져오면 상품 가치가 있는 재활용품인지 아닌지를 가려낸다. 이때 쓰이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AI)이다. 그동안 사람이 쓰레기를 구별해 분리한 반면 네프론은 이미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재활용품을 선별한다. 로봇이 알아서 분쇄·가공도 한다. 강병호 구청장 권한대행은 “연내 경희대와 한국외대 등에 추가 설치하는 등 전 동에도 네프론을 확대함으로써 자원순환도시 구축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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