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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쏟아지는 지자체 브랜드, 관광·구매·거주 니즈를 충족시켜라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쏟아지는 지자체 브랜드, 관광·구매·거주 니즈를 충족시켜라

    지역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면 1970년대 말 한 디자이너가 휴지에다 써갈긴 구상 스케치에서 태어난 ‘아이 러브 뉴욕’(I ♥ NY)을 빼놓을 수 없다. 더 뺄 것 없는 간결한 문장이 주는 차가움과 애정을 드러내는 빨간 하트의 뜨거움은 그 자체로 뉴욕이 가진 강한 자부심으로 읽혀 다른 지역 브랜드에는 신화와도 같은 문구가 됐다.이후 수많은 도시들이 나름의 지역 브랜드들을 개발해왔다. 영국 런던의 ‘비지트 런던’(Visit London)처럼 아주 실용적이고 간결한 것도 있고, 덴마크 암스테르담의 ‘아이 암스테르탐’(I amsterdam), 독일 베를린의 ‘비 베를린’(Be Berlin)처럼 재치 넘치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구호도 등장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하이 서울’(Hi Seoul),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 같은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지역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등장하는 데 기폭제가 된 것은 지방자치제 실시였다. 지역마다 자기 지역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저런 이벤트성 사업이나 캐릭터 사업들을 계속 개발해냈다. 이는 결국 축제, 특산품, 이미지를 내세운 이런저런 브랜드들이 쏟아지도록 했다. 워낙 다양하게 나오다 보니 국가브랜드위원회와 한국생산성본부가 조사 발표한 브랜드 분류만 해도 지역·도시·공동·인증·축제·장소·개별브랜드 등 여러 가지로 나눠질 정도다. 문제는 의욕 과잉 때문에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숱하다는 것. 너무 많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 2012년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등록한 것만 따져도 특산물 브랜드는 737개, 축제 브랜드는 758개에 이른다. ‘살고 싶은 지역’ 평가단위가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는 230개나 된다. 따라서 서울신문이 개발한 지역 브랜드 평가지수 SNI에서는 우선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1차로 대상을 추출한다. 올해엔 건국대 강순주(건축학과), 숙명여대 김경아(미술학과), 경기대 박세종(관광개발학과), 성결대 임형백(지역사회학과) 교수 등 지역문제 전문가 52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를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벌여 100개를 추출해냈다. 그 결과 축제의 경우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표 축제로 꼽히는 진해군항제,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보령머드축제, 함평나비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수원화성문화제, 울산고래축제, 강릉단오제 등이 고루 선정됐다. 진해군항제는 원래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일종의 추모제로 시작됐으나 1963년부터 본격적인 군항제로 성격이 바뀌었다. 벚꽃이 만발한 가운데 4월 초쯤 진행되는 군항제는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는 축제다. 지방자치제 실시 직후인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아시아 영화제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광주항쟁의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 역시 한국과 아시아의 대표적인 비엔날레 행사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강원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전남(10개), 부산·경기(각 9개), 충남·전북(6개) 등이 뒤를 이었다. 축제의 성격으로 봤을 때는 지역특산물이 27개, 관광축제 25개, 전통역사 16개 등 순으로 많았다. 지역특산물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것도 무려 737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문가 평가를 통해 100개를 뽑았는데 전국적 명성을 지닌 대표적 지역 특산물 대부분이 포함됐다. 횡성 한우, 안동 간고등어, 의성 마늘, 이천 쌀, 청양 고추, 순창 고추장, 안흥 찐빵, 영광 굴비, 한산 모시, 양양 송이 같은 것들이다. 어디 가면 뭘 먹어봐야 한다거나, 이걸 써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밥상머리에서 주고받던 얘기에 늘 등장하는 것들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21가지, 전남 16가지, 강원·충남 각 12가지다. 과일채소류가 19가지로 가장 많았고, 식량작물·수산물 12가지 등이 뒤를 이었다. 특이한 점은 경기·충북지역 복숭아 브랜드인 ‘햇사레’처럼 지방자치단체나 단위 농협에서 자체 개발한 브랜드도 18가지나 선정됐다는 점이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지역단위의 노력이 나름대로 결실을 본 것으로 풀이된다. ‘살고 싶은 지역’ 브랜드는 보다 넓은 의미다. 축제브랜드가 관광을, 특산물브랜드가 구매를 뜻한다면 살고 싶은 지역은 거주를 의미한다. 어떤 시설이나 볼거리, 먹을거리 차원보다는 시공간과 관계의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다른 브랜드에 비해 조금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지역단위 개발정책의 기본 목적이 바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로 가장 근본적인 평가대상이기도 하다. 100대 지역을 추출한 결과 역시 최근에 뜬다는 곳이 대거 포함됐다. 부산 해운대구, 제주 서귀포시와 제주시, 경남 통영시, 강원 춘천시와 강릉시, 대전 유성구, 경북 경주시, 경기 여주시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명은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박사는 “최근 여가생활에 연관된 관광, 레저, 문화 영역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살고 싶은 지역 평가에는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5데이즈 오브 워(스크린 밤 11시) 조지아의 대통령이던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사회개혁에 실패한 뒤 국민들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자 국면전환용으로 조지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온 친러시아 성향의 자치주 남오세티야 공화국을 무력 침공하는 카드를 꺼낸다. 이에 남오세티야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던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를 주장하고 나서는데…. ■성범죄수사대: SUV 14(OCN 밤 11시) SUV 요원 아만다의 여동생이 임신한 몸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여동생이 구타를 당한 흔적을 보게 된 아만다는 그녀의 전 남자 친구인 제프에 대해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한다. 그러던 중 집 앞에서 여동생의 비명을 들은 아만다는 동생을 덮치려는 전 남자 친구를 보고 총을 겨눈다. 여동생의 진짜 남편은 과연 누구일까. ■고스트 위스퍼러(FOX 밤 10시) 야심한 시간에 멜린다네 집 건너편에 수상한 이웃 토드가 이사를 온다. 같은 시각, 복수심에 가득 찬 혼령이 그 집으로 들어간다. 이웃집의 동정을 살피던 멜린다는 혼령으로부터 토드가 자신의 손녀를 죽인 살인자라는 말을 듣는다.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토드를 미행하는 멜린다는 토드의 행동은 갈수록 수상함을 느낀다. ■와타나베 건물탐방(홈스토리 밤 11시) 도쿄에 있는 오오우치씨 댁을 찾아간다. 도쿄 근교에 자리한 이 집 앞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벚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마침 벚꽃이 만개한 때라 집 안 어디에서나 벚꽃 구경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입지다. 게다가 수 많은 책들이 꽂힌 독특한 책꽂이와 아담하면서 안락한 시청각실도 볼 수 있다. ■수상한 쇼(SBS MTV 오후 5시) 폭염이 유난히 길었던 올 여름, 공포영화와 스릴러 영화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근사한 방편이었다. 동대문 영화관에서 관객들에게 공포영화의 법칙 베스트 5가 뭔지 물어봤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안 듣고, 하지 말라는 일을 혼자 해서 낭패겪는 주인공에서부터 섹시해서 죽음을 당하는 주인공까지. 공포영화에 꼭 등장하는 법칙 1위는 과연 무엇일까. ■원피스 4(애니맥스 밤 8시) 샨디아족 사람들은 갑자기 차가운 태도를 보이곤 한다. 이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영문을 모르는 놀랜드 일행은 그 상황이 답답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무스는 놀랜드와 카르가라 사이가 소원해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선의를 찾아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선의 또한 놀랜드가 카르가라에게 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해 준다.
  • 수백만 마리 하루살이떼 헝가리 도심 ‘폭격’

    수백만 마리 하루살이떼 헝가리 도심 ‘폭격’

    수백만 마리에 이르는 하루살이떼가 도심을 ‘폭격’하는 이색적인 광경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죽기직전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는 수많은 하루살이의 습격은 지난 주말 밤 헝가리 타히토파루시 다뉴브강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날 도시는 마치 ‘하루살이 눈’이 오는듯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는 하루살이떼에 둘러쌓여 위험천만한 주행이 이어졌다. 그러나 도시는 마치 벚꽃이 지듯 짧은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떼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현지의 한 전문가는 “하루살이들은 오랜시간 유충으로 살다가 성충이 되면 짝짓기에만 전념하다 금방 죽는다” 면서 “이날 모습은 죽기 직전 번식을 위해 미친듯이 짝을 찾는 하루살이의 마지막 날갯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헝가리에서는 티사강 주변이 하루살이 목격지로 유명한데 이곳 타히토파루시도 새로운 관광지가 됐다”고 덧붙였다.   사진=멀티비츠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억센 엄마도 한때는 꽃같은 여인이었다

    억센 엄마도 한때는 꽃같은 여인이었다

    그녀에게는 젊은 시절 예쁜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불렸다. 아름다운 로맨스도 꿈꿨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요구된 건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희생적 삶이었다.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아내도 엄마도 아닌 한 여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제목에 ‘어머니’가 아닌 ‘선녀’라는 이름을 앞세운 건 그래서다. 작품은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 흔히 그리는 어머니의 삶과 다르지 않다. 아들을 낳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딸로 태어난 죄로 이름이 ‘선녀’(先女)이고,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한 남편은 매일같이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힘들게 키운 네 자녀들은 더러는 선녀씨를 외면하고, 빚을 떠안기기도 했다. 흔하디 흔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주제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분히 진부한 현실적 소재에 기댄 작품은 그러나 1인 2역의 판타지 형식을 빌려 요령있게 차별화됐다. 둘째 아들 종우가 집을 나간 지 15년 만에 돌아와 돌아가신 선녀씨의 영정을 마주하는데, 선녀씨가 갑자기 영정 밖으로 나와 종우와 마주앉으면서 이야기는 판타지로 빠져든다. 무대 한편의 장례식장에서 선녀씨가 종우에게 자신의 삶을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면, 다른 한편에서는 선녀씨의 삶이 펼쳐지는 식이다. 젊은 선녀씨의 이야기에서는 나이 든 선녀씨가, 나이 든 선녀씨의 이야기에서는 젊은 선녀씨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과거와 현재가 부단히 오가며 새초롬한 젊은 시절 선녀씨부터 침대에 누워 임종을 맞는 나이 든 선녀씨까지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볼거리 많은 무대가 작품의 대중성 확보에 한몫한다. 장면 전환이 빠르고 장례식장, 음식점, 집, 벚꽃길 등 장소를 상징하는 무대 장치와 소품이 다양하다. 선녀씨의 삶 속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펼쳐지면서 관객들은 지루할 틈 없이 무대에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와 볼거리의 풍성함은 관객의 성향에 따라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면마다 웃음 또는 눈물을 선사하지만 다음 장면으로 빠르게 넘어가다 보니 그 감정을 충분히 느낄 여유가 부족하다. 선녀씨의 두 딸과 큰아들의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전개되는 대목에서는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이야기 방식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웃음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인 우스꽝스러운 춤과 몸개그도 때론 부담스럽다. 경남 거제에서 활동하는 극단 예도의 작품으로, 지난해 전국연극제 대상 등 5관왕을 수상한 뒤 서울 대학로로 진출했다. 배우 임호와 이재은, 고수희가 합류하면서 화제를 낳았다. 9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4만~5만원. 1599-0701.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 테마파크의 진화/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일제가 창경궁에 동·식물원을 만들고 벚꽃을 심어 창경원으로 문을 연 때는 1909년 11월 1일이다. 창경원은 이때부터 궁궐이 아닌 유원지로 격하됐다. 1961년 11월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됐고, 회전목마 정도만 있었던 놀이 기구는 1970년대 중반에 공중 기차·비행기·회전목마·회전 꽃차·코끼리차·모노레일 등이 들어서 본격적인 놀이 공원으로 변모했다. 서울 도심에 있던 창경원은 궁궐 훼손이라는 아픔이 있었지만 봄철 휴일에는 수십만명의 상춘객이 찾을 정도로 휴식 공간으로서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몰려든 인파에 미아가 속출하고 소매치기가 날뛰기도 했다. 1973년 어린이날에 맞춰 개장한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창경원보다 4배나 넓은 59만㎡의 부지에 청룡열차, 회전컵, 달로켓, 회전그네, 요술집 등 어린이를 위한 온갖 놀이시설을 갖춰 개장 당시 ‘한국판 디즈니랜드’로 불렸다. 그때엔 서울의 외곽지역이었던 어린이대공원에 쉽게 갈 수 있도록 서울시는 18개 버스노선을 바꾸기도 했다. 창경궁을 복원하기 위해 창경원의 동·식물과 놀이시설은 1984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로 옮겨갔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서울동물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난 2009년 11월 1일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일제가 만든 창경원이 우리 동물원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88올림픽 직전에 문을 연 서울랜드는 미국과 일본의 디즈니랜드를 본떠 ‘세계의 광장’ ‘삼천리 동산’ 등 5개의 테마구역으로 나누어 주제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테마파크는 1976년에 개장한 용인자연농원이다. 개장 20년이 된 1996년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용인에 농원을 만든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약 1500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땅을 개발해 조림을 하고 과실수를 심었다. 영동고속도로로 연결되는 인터체인지는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자 사설(私設)했다. 마성인터체인지다. 개장 초기, 이 회장은 서울 장충동 집을 비워 놓고 자연농원 별장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 놀이시설과 동·식물원이 있는 ‘패밀리랜드’는 1976년 개장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 150원이었을 때 입장료가 600원이었는데 창경원 입장료의 세 배였다. 비싸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에버랜드가 엊그제 개장 37년 만에 입장객 2억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400개가 넘는 전 세계 테마파크 중에서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글로벌 테마파크를 제외하면 처음 세운 대단한 기록이라고 한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흰 민들레 바람 타고 온 마을에 피었네요

    [이 주일의 어린이 책] 흰 민들레 바람 타고 온 마을에 피었네요

    얼었던 땅이 녹을 무렵 엄마 손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씨”라는 말에 명이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귀한 흰 민들레 씨앗을 얻은 것이다. 명이는 문득 4년 전 흰 민들레를 보물찾기 하듯 찾던 유치원 선생님이 떠올랐다. 함께 온 동네를 쏘다니는 단짝 친구 연우도 생각났다. 명이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씨앗 몇 개만 줘.” 엄마의 얼굴이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찡그린 이마엔 ‘옆집이든, 앞집이든 누구에게도 절대로 주기 싫다’고 써 놓은 것 같았다. 엄마는 씨앗 대신 면박만 줬다. “넌 누굴 닮았니? 그저 남 주길 좋아하고.” 마당에 꽃씨를 뿌린 날은 꽃샘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명이는 매일 꽃밭에 나가 흰 민들레를 기다렸지만 노란 민들레만 노란 돗자리처럼 펼쳐졌다.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던 어느 날 명이는 미역 공장 근처 논둑에서 맑은 연두색의 꽃대에서 하얀 꽃잎을 피워 낸 민들레를 만났다. “우리 한 집 뿌리기에도 부족하다”던 엄마의 뜰에는 한 송이도 피지 않았던 흰 민들레가 연우 집 돌담 밑, 석이 집 마당, 도예학교 운동장 등 온 마을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나눔이란 내가 조금 덜 가지는 것,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내놓는 일”이라며 “이 동화에선 엄마가 실천하지 못한 나눔을 바람이 대신 해 줬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개성 있는 화법과 색채 감각으로 산벚꽃, 모란, 민들레로 뒤덮인 시골 마을의 서정을 소담스레 담아냈다. 초등 전학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오늘의 눈] 역사를 잊은 일본의 꼼수 외교/안동환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역사를 잊은 일본의 꼼수 외교/안동환 정치부 기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해군 중장 오노시 다키지로는 본토 방어 계획으로 자살특공대, 이른바 가미카제(神風) 작전을 창안했다. 가미카제 대원이 탑승한 단발 엔진 전투기에는 귀환할 연료도, 생존을 위한 탈출 장비도 제공되지 않았다. 목표물까지 직선으로만 비행했다. 작전이 수립되자 일본 사관학교 출신 장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죽음의 운명이 강요된 대원들은 속성으로 비행 기술을 배운 10대 후반의 ‘소년 비행병’ 1000여명이었다. 그들 중에는 조선 청년 17명도 있었다. 한 송이 ‘사쿠라’(일본 벚꽃)가 그려진 가미카제 전투기가 출격할 때면 여고생들은 사쿠라를 흔들며 전송했다. 일본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오누키 에미코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사쿠라를 소재로 600쪽이 넘는 저서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를 펴냈다. 오누키 교수는 일본인의 심미적 대상이었던 사쿠라가 메이지 유신 후 ‘일본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의 상징으로 변질돼 이용됐다고 분석한다. 사쿠라처럼 사라진 가미카제는 ‘제국 일본’이 무너진 후 한동안 감춰졌다. 미 군정은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군국주의를 고무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교과서에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미 군정이 끝난 후에도 이 원칙을 지켰다. 하지만 일본 개조를 주창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집권한 2001년 정부 검정을 통과한 우익사관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달라졌다. 아시아 침략은 아시아 해방 전쟁으로, 가미카제는 애국심의 상징으로 기술됐다.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 “힘들 때면 가미카제를 떠올린다”는 발언도 했다. 아베 신조 내각의 우경화는 참의원 선거 압승 후 더욱 폭주하고 있다. 내각 2인자 아소 다로 부총리의 나치식 개헌,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의 민도(民度) 발언까지 일상화된 망언은 ‘일방적 폭력’으로 양태가 바뀌고 있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그 속내는 의심스럽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기자와의 사석에서 일본을 ‘부도덕한 파트너’로 규정하며 “일본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일본이 양국 정상회담을 한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듯 포장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외교 채널을 통해 우리 측에 “침략의 정의는 역사가에게 맡기자”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한·일 정상회담의) 가이드라인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뒤로는 정상회담에서 역사 의제는 다루지 말자고 오만한 태도를 취하면서 자국 언론에는 한국의 친중 기조로 일본과의 외교가 무시되고 있다고 정치적 플레이를 한다는 설명이다. 가해자의 역사를 부인하는 지금의 일본이라면 정상회담은 아베 외교의 레버리지를 키워 주는 이벤트만 된다. 스스로 아시아 외교를 붕괴시키며 고립화되는 마당에 한국 측에 정상회담 지연 책임을 돌리는 건 ‘더티 플레이’다. 사쿠라가 아무리 화려하게 피고 진들 ‘끝나지 않은’ 역사 문제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과 어떤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ipsofacto@seoul.co.kr
  • 버스커버스커, 9월 2집 발매…10월 콘서트 개최

    버스커버스커, 9월 2집 발매…10월 콘서트 개최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3’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밴드 버스커버스커가 오는 9월 2집을 발표한 뒤 콘서트를 통해 활동을 재개한다. 버스커버스커의 소속사인 청춘뮤직은 29일 “버스커버스커는 9월 2집 발매를 기념해 오는 10월 3일 부산 벡스코를 시작으로 10월 20일 대구 엑스코, 11월 1-2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3 버스커버스커 콘서트’를 연다”고 전했다. 버스커버스커는 지난해 ‘벚꽃엔딩’, ‘여수 밤바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등 여러 곡을 히트시키며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지난해 5월에는 단독 콘서트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소속사 관계자는 “버스커버스커가 음악 활동 외에 별다른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았던 터라 컴백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무척 높다”고 말했다. 버스커버스커의 2집 콘서트 부산과 대구 공연 티켓은 오는 8월 6일 오후 3시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배낭 멘 여행길에선 낯모르는 이와 “안녕” 하고 입만 벙긋하는 인사만으로도 말꼬리가 길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아주 사소한 호감부터 “너 지금 행복하니?”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는 꿈꾸듯 거닐며 수많은 이방인들과 옷깃 스치는 인연을 맺었다. 이를테면 옷깃스침 동행이랄까. 유럽 땅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나는 마냥 행복했다가 돌연 쓸쓸해지고 그지없이 황홀했다가 못내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순간순간을 맞이한다. about ‘동행’ 본 기사는 SJR EUROPE에서 론칭한 ‘동행’ 상품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총 6개국 18개 도시를 탐방했다. tip 1 동행 상품가 외에 옵션투어 비용, 식비, 자유 여행을 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각종 입장료 등 15박 17일의 현지에서 지출한 여행경비는 120만원 남짓. 기념품 구입 또는 개인 쇼핑 품목이 많을 경우에는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tip 2 파리의 라스파일 시장과 몽파르나스 묘지, 뮌헨의 영국정원과 슈바빙,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비엔나의 레오폴드 뮤지엄, 베네치아의 리도섬과 부라노섬 등은 기본 투어가 아닌 자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했다. 기본 투어에 해당하는 파리,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등의 주요 도시 투어 역시 일부 구간 동행 후 자유로이 움직였고, 옵션 투어 가운데 바티칸 시국은 개별적으로 방문했다. France Mont Saint Michel, Paris 파리에서 지도 없이 걷기 기어코 파리. 파리는 독보적이다. 자정 가까이 늦은 밤에 도착한 파리였지만 여행에 앞서 만난 선배의 말이 실감이 됐다. “아마도 네 마음과 부단히 싸우는 여행이 될 거야.” 어디부터 갈까, 뭐부터 할까, 마음은 급한데 결정은 못하고, 그럼에도 파리에서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여행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가까이에 위치한 호텔Campanile Maine Montparnasse 로비에서 15박 17일간의 동행들과 만났다. 며칠 전에 도착해 이미 파리에 푹 빠진 이도, 스페인이며 어디며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동행을 태운 버스는 파리를 조금 아껴두고 4시간여를 달려 프랑스의 끄트머리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 닿았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신성한 산성, 몽생미셸은 노르망디Normandie 해변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자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도원이다.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다.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바위섬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워낙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썰물의 간격이 짧아 많은 이들이 휩쓸려 버린 탓에 ‘몽통브mont tombe’, ‘무덤 산’이란 고약한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8세기 초반의 어느 날, 인근 아브랑쉬Avranches 지역 오베르St. Aubert 대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예배당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후 서서히 모습을 달리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전투 요새로, 18세기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몽생미셸은 고되고 혼란스러운 노르망디의 역사가 쓸려가고 다시금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밀려오는 축복의 성지다. 그 물살에 실려 동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리는 몽생미셸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섬 꼭대기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호텔과 기념품 가게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는 짧은 물때를 맞추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는 이곳의 대표음식 오믈렛과 사과 파이, 발효주 시드르Cidre 등을 즐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선 수도원에서 갯벌 뒤로 어디서부터가 바닷물인지 모를 그저 눈부신 노르망디 해안을 실눈으로 조망한다. 드디어 정말, 파리의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진작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조식 서비스를 마다하고 향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er.’ 카페 홀을 등지고 바깥 거리 쪽 테라스 좌석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파리지엔의 밥상을 받아든다. 그러나 난 이따금씩 꿈꿨다.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파리지엔들마저 도시의 풍경으로 소비되는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이 도시의 산보객이 되는 순간을.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한가한 무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바로 옆 서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막 문을 여는 참이다. 출근하는 서점 직원들을 따라 들어가 바바리코트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들과 책 구경을 한다. 파리를 담은 사진집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라스파일 시장Marche Biologique Raspail’에 이른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의 오일장처럼, 라스파일 도로변에 장이 선단다. 일요일에는 파리 근교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파는 유기농마켓이 열린다. 운이 좋다. 마침 장날이다. “봉쥬르.” 늘어선 가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인사와 한 손에는 애견,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동네 할머니와의 연속된 조우. 그리고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올리브를 맛보기로 건네는 손길까지 의도치 않게 살가운 일상을 공유한다. 예상치 못했던 진짜 파리지엔의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몽파르나스 묘지Montparnasse Cemetery에는 안내지도를 들고 명망가들의 묘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시장에서 산 빨간 딸기를 베어 먹으며 보들레르 묘 앞에 마주앉은 나는 잠시 시간여행자로 전환된다. 아, 파리에서의 3일은 턱없이 짧다. 나는 파리를 빠르게 읽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튈르리 정원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그 긴긴 길 위엔 셀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의자가 줄지어 있고 그 위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그날 밤, 중세 파리 투어를 했던 동행 몇몇이 해질녘 몽마르트르에서의 낭만을 안주 삼아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장소가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다음날, 동행들로부터 귀동냥한 정보를 중얼거리며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 역시 조식 서비스 대신에 공원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크레이프와 커피로 덜 깬 잠을 달랜다. 조깅하는 파리지엔과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 뒤를 쫓는 단체여행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까짓것 부지런해져 보지 뭐. 반의반, 그 일부만이라도 보겠다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갔다. 역시나 나의 관심사는 미술작품보단 ‘오르세’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므로 두어 시간이면 될 거라는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르세는 물론 파리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다. 그냥 넋 놓기로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한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낯선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에게 초상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2~3분 만에 옆모습 실루엣을 종이에 오려 준다는 거리 예술가 앞에 앉았다. 대개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인지 예술가의 손놀림인지 모르겠더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민망함을 누르는 동안에 완성된 나의 실루엣. 하나도 안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탐이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은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위에서의 센강 유랑이다. 저마다의 파리를 즐긴 동행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듣는 이는 드물다. 알알이 불씨 오른 에펠탑이 가까워진다. 탄성이나 호들갑 없이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리의 밤이 강물 따라 흘러간다. ▶travie info 동행 프로그램은 여행하는 도시 가운데 주요 도시에서 지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1일 투어를 기본 일정에 포함하고 있고 파리에서는 2가지의 옵션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옵션 투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지식 가이드 투어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개인의 여행 기호를 존중하여 얼마든 자유 여행이 가능하다. route 1. 루브르 박물관+중세 파리투어 샹젤리제 거리→개선문→루브르박물관→중식→시테섬→노트르담성당→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시청사→퐁피두센터→사요궁전(에펠탑 조망) route 2. 오르세 미술관+파리 인상파 투어 오르세 미술관→로댕미술관 정원→몽마르트르 언덕(성심성당, 예술인의 광장, 피카소의 작업실, 물랭루즈(조망))→개선문(샹젤리제) Switzerland Interaken,Luzern,Mürren,Mürren 만년설 위로 반짝이던 하루 파리 유랑을 끝낸 동행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꼬박 8~9시간 몸을 구겨 잠을 청해야 한다. 다들 오랜 시간의 쪽잠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잠에 빠진다. 조금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낯선 도로 위다. 예상치 못한 거센 눈발로 좀더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번 여정은 이 야간이동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라하까지 여정의 절반 이상을 이 버스 한 대로 움직인다. 유럽 배낭인데 유레일이 아니고 버스라니 처음엔 갸웃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시간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보다 한두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인터라켄이다. 도시락으로 요기한 동행 대부분이 ‘Top of Europe’ 융프라우에 오를 채비를 한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터라켄에서 나는 과감히 융프라우를 포기했다. 이미 올랐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파리 파노라마가 가시기 전 유럽의 지붕 아래서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놓쳤던 청정마을 뮈렌Murren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착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기 전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홈메이드 스프 한 그릇을 먹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눈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뮈렌에서 단출한 워킹화에 의지하여 곧 미끄러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다. 날쌔게 지나가는 스키어들은 물론 눈썰매 힘껏 지치는 어린 아이들도 탄탄한 기운을 뿜어낸다. 변덕스런 날씨로 여행자 애태우기 일쑤인 그날의 융프라우는 다행히 쾌청했다고 동행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다들 세상 모르고 잠이 들겠지. 하얀 솜사탕처럼 멀리 뭉게뭉게 겹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품속에서 그만큼 달달한 꿈을 꾸면서. 이른 아침인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프스 높은 곳 어디에선가 발을 뗐을 패러글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천이 눈꽃, 상고대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새 루체른Luzern이다. 호반 위로 얌전히 뻗은 카펠교Kapellbrucke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고즈넉함을 맛본다. Germany Füssen, Munich 찰나지만 더없이 벅찬 순간 몇 시간 후 국경을 넘어 독일 퓌센Fussen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전후인데 벌써 어둑하니 날씨가 궂다.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모습이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상당수 장면의 배경이니 말이다. 성의 일부가 보수공사 중인 데다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는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라 아랫마을에서 성의 초입까지 짧은 산책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방향을 틀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뮌헨Munich은 몹시 차분했다. 물론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는 달랐다. 동행들과 우르르 몰려간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홀답게 사람도, 맥주도, 열기도 거품이 일 듯 넘쳐났다. 뮌헨에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동행들이 삼삼오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파리에서의 3박 4일이 짧다 투덜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뮌헨에선 아주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슈바빙Schwabing과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의 잔상 때문이었을 게다. 이젠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바빙과 영국정원의 모습만은 또렷했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전, 자유로운 3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리셉션에서 지도 한 장과 함께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받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곧 멎을 것처럼 숨이 찼음에도 자전거와 유모차가 차례로 엇갈려 지나가고 오리와 거위가 벤치를 돌며 길동무 해주는 영국정원에서 더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그리곤 지그재그로 훑어 내려간 슈바빙. 짧아서 아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다. 전혀. 그곳에 내가 존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차기만 한 걸. 찰나일지라도. 다시 올라탄 동행 버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 깜빡일 때마다 영화 스틸 컷이 된다. 할슈타트로 가는 길이다. 휴대전화로 알림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네트워크 설정을 알리는 메시지. 버스가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네트워크 설정이 달라진다. 독일 통신망을 잡았다가 오스트리아 통신망을 잡았다가. 이윽고 조용해졌다 싶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그곳, 할슈타트 끄트머리에 있었다. Austria Hallstatt, Salzburg, Vienna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가다 여전히 하얀빛을 발하는 눈이 마을을 살포시 덮고 있다. 그만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쾌하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분. 깜빡 졸다 깨나니 어느새 할슈타트Hallstatt 호수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다. 할슈타트를 포함하여 이 일대를 보통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작은 마을들은 알프스 아래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다.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호숫가로 내달린다. 공기 중엔 감탄만이 존재한다. 떠나오기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모차르트, 클림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그들이 태동한 마을, 도시, 공간 그 자체였다. 할슈타트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이후 잠깐의 산책이 허락됐다. 호수 가장자리 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할슈타트의 집들. 집 위에 집, 그 위에 다시 집이 층층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그런 까닭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탈 아래 집의 다락방 또는 굴뚝과 눈이 마주친다. 집 앞 정원, 뒤뜰은 물론이고 담장, 벽면, 창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손질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맞닿은 벽면에 벤치를 놓은 집들이 많다. 허락 없이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등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마을을 관찰한다.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밀려온다. 이미 때는 놓쳤고 아쉬운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투박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한다. 할슈타트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동행 버스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캐리어를 호텔 방에 밀어두고 저녁나절 동행의 지식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을 지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까지 단숨에 잘츠부르크 구시가를 가로지른다.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차례로 맛보며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만찬을 가져볼까 잠시 고민. 하지만 생선요리를 판매하는 이곳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포장하고 기차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슈니첼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장을 본다. 호텔 방 안에 차려낸 배낭여행자의 잘츠부르크식 만찬에 흡족해하며 여행 친구들과 꽤 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Czech 에곤 실레 그리고 카프카 할슈타트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좁다란 골목골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하나. 모차르트 엄마 그리고 에곤 실레 엄마의 고향이 각각 할슈타트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것.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다. 두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포인트. 특히나 엄마의 고향 체스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체스키를 표현한 작품도 상당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익은 에곤 실레의 초상과 작품으로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도 있다. 굴라쉬 브런치를 즐긴 다음 그가 걸었을 법한 골목을 따라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자주 걸음을 멈췄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시야가 트이는 성벽길에 접어들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그 너머의 마을 가장자리를 둥그스름하게 에두르고 그 안쪽에 중세의 시간을 간직한 집들이 소복히 모여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마을엔 아늑한 기운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프라하Prague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화약탑, 천문시계, 카렐교까지 프라하 구시가를 동행 매니저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렐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들을 뒤로하고 다리 난간에 바싹 붙어 프라하 성을 바라본다. 카렐교 건너의 펍에서 벨벳 맥주 한 잔. 부드러운 벨벳 거품이 입술에 닿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나. 잔이 빌 때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셈하게 된다. 달게 자고 일어난 프라하의 아침은 지난밤만큼 아름다웠다. 성비투스성당, 황금소로가 이웃하고 있는 프라하 성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동행 가이드 투어 이후엔 홀로 프라하 시가지를 쏘다녔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끝내 제 발로 찾아갔다, 카프카Franz Kafka를.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내도 아쉬움 가득할 여행길에서 가슴 철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나는 카프카 뮤지엄Franz Kafka Museum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닙니다. 꺼져 가는 꿈과 열정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시간이라는 태양의 갈라진 바닥을-잠수종 속에서처럼-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구스타프 야노우호의 <카프카의 대화> 인용문 中 카프카가 남긴 기록을 보는 사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프라하는 한순간에 반전된다. 숨이 턱 막힌다. 달달한 체코 전통빵 뜨르들로Trdlo를 뜯어먹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곧 프라하를 떠난다. 숨 가쁘게 도착한 다음 여정은 비엔나Vienn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꼭 맛보아야 한다는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에곤 실레와 맞바꾸고 나는 다시금 배고픈 여행자가 된다.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에곤 실레의 체스키는 내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어둡고 울적했지만 나로선 참 반가운 장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간이 다르고 에곤 실레와 나 사이의 시간 또한 다르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풍경이 있고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의 순간에 감사한다. ITALY Vaticano,Rome,Veneziam,Sorrento,Sorrento,Sorrento 냉정해질 수 없는 이탈리아 여행 오늘 나는 생애 첫 야간열차를 경험한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꼬박 12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원했던 베네치아에 닿는다. 이번 동행길에서 가장 기대한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6개의 간이침대가 세 개씩 양 벽면을 의지해 층을 이룬 열차 칸은 비좁았다. 부피 큰 캐리어는 침대 아래 보관함에 들어가지 않아 양쪽 침대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세웠다. 그 위로 다시 작은 짐들을 포갠다. 이제 열차 칸의 여섯 명은 발 디딜 공간 하나 없이 밤을 달린다. 열악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모든 것이 야간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 감행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두근두근했던 그 느낌. 한참 줄을 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슈니첼 한 덩이를 패티로 넣은 버거와 커피 한 병. 자정 가까이 돼서 맛보는 제대로 된 첫 끼니다. 꿀맛. 푸르렀다. 물이 곧 땅인 베네치아Venezia에서는 모든 것이 맑고 푸르렀다. 동행들과 베네치아 본섬 투어에 나섰다. 떠밀리듯 걸을 수밖에 없을 만큼 본섬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 북적임이 베네치아를 더욱 활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물결을 따라 조금 멀리 나가 보자. 배에 올랐다. 리도 섬Lido으로 가는 배다. 매년 가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섬 리도의 4월은 따사로웠다. 흐드러진 벚꽃과 나뭇가지마다 터져 나온 초록 잎사귀들로 봄기운이 물씬했다. 한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세계의 끝은 낮고도 깊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반짝이는 해변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흡수한다.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 양동이와 집게를 들고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사과를 베어 문 젊은 연인. 영화와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다. 리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부라노 섬Burano은 색색이 선명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데칼코마니 풍경을 찍어내는 부라노의 색채는 바다로 나간 이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알록달록 칠을 한 것이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 거품이 절반이나 되는 폭신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녕, 부라노. 안녕, 베네치아.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베네치아의 축복 속에 헤엄치던 나는 어느새 피렌체Firenze 산타마리오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한 마디로 두오모Duomo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두말 할 것 없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곱씹으면서. 찰나에도 시작과 끝은 있다.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인다. 동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로마 떼르미니. 악명 높은 떼르미니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동행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여행지니 모두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지. 주변을 살피고 짐 가방 단속도 단단히 한다. 이제 로마Rome의 법을 따를 시간이다. 이튿날 아침, 로마의 여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나보나 광장까지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의 중심을 통과한다. 촌스럽게 무슨 동전 던지기를 하냐고 피식 비웃었던 나는 어둔 밤 조명 밝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앞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들었고, 칠칠치 못하게 거리에서 무슨 젤라또를 날름거리냐고 흉봤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맛있다는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강 건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마을에 이르러서야 느긋한 한때를 보낸다. 중세로부터 이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라고 했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라도 동네 어귀 작은 카페며 레스토랑 어디엘 들어가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웬만한 부침개보다 훨씬 큰 피자 한 판도 머릿수대로 주문하는 것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와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틈에서 매끄러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훅 들이킨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과 노천카페가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광장으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진다. 조바심쟁이가 모처럼 너그러워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나폴리 항을 곁눈질한 끝에 도착한 폼페이Pompeii에서는 그 폐허 위로 핀 들꽃처럼 가슴 뛰는 생명력을, 아말피 코스트Amalfi Coast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쏘렌토Sorrento에서는 나른해서 더 달콤한 지중해 마을의 여유로움을 삼킨다. 꿈은 아니겠지. 마지막은 아니겠지. 바티칸에서 뜻밖에도 새로이 선출된 교황님의 알현식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이번 여행, 정말 제대로다. 떼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Leonardo Express 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진 폴더 안에 새로이 추가된 이미지 파일만 3,000장. 힘들었던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애틋하게만 기억되는 동행. 나는 지금 또다시, 더없이, 여행을 안달하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SJR EUROPE www.sjreurop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삽자루의 유럽 ‘동행’ 15박 16일 2013년 SJR EUROPE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나는 15박 16일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은 개인의 기호와 예산에 맞게 선택, 자연스럽게 동행 일정 전후로 자신만의 여행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일정 내내 전문 지식 가이드 출신의 인솔자가 동행하여 주요 도시에서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한편 여행자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여행 정보와 노하우는 물론 충분한 자유 일정을 지원한다. 함께하는 낭만과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가장 큰 매력.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퓌센, 할슈타트, 체스키 등 자유 여행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를 경유하는 것도 동행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남부지중해 투어, 바티칸 투어 등 다양한 옵션 투어도 마련해 두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여행자 또는 안전과 도시간 이동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상품이다.
  • 오디션 우승…표절논란…스무살 로이킴, 이 남자의 성장통

    오디션 우승…표절논란…스무살 로이킴, 이 남자의 성장통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음악을 하겠다.” 최근 데뷔 앨범을 내고 뜻밖의 표절 논란에 휩싸인 ‘슈스케’(슈퍼스타K) 출신의 스타 가수 로이킴(20·본명 김상우). 예기치 못하게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그는 “좋은 음악으로 응원해주는 팬들께 실망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 했다. 지난 4월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봄봄봄’에 이어 지난달 선보인 정규 1집 앨범 타이틀곡 ‘러브 러브 러브’도 각종 음원차트를 석권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는 “오디션 스타가 아닌 진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스무살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앨범에 포크 장르를 앞세웠는데.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이문세, 강산에, 김현식, 안치환의 노래를 차에서 자주 틀어주셨고 포크 계열의 음악을 좋아했다. 제가 중간중간 랩이나 락 등 잠시 다른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어도 결국 뿌리는 그쪽에 두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수록곡 대부분의 작곡에 참여한 이유는.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래가는 음악들은 대부분 가수가 직접 만들어 부른 경우가 많다. 재해석되는 곡도 자작곡이 훨씬 생명력이 길다고 생각했다. ‘슈퍼스타K 4’ 결승전 때 처음 자작곡을 선보였고 그 전에도 작곡은 꾸준히 했지만 자신이 없어서 섣불리 선보이기가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그 사실은 알려주고 싶었다. →주로 어디서, 어떤 영감을 얻어서 작곡을 했나. -대부분은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많고 포괄적인 공감대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러브러브러브’는 숙소에서, ‘할아버지와 카메라’는 자동차에서, ‘나만 따라와’는 작업실에서 흥얼흥얼대다가 쓴 곡들이다. ‘봄봄봄’은 캐논 코드를 듣다가 리듬만 잡고 나서 한 시간 만에 썼다. 봄만 떠올리면서 가사를 썼는데 봄에 이별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사를 잘 들어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슬픈 감정이 들어 있다. 원래 봄이 시작되기 전 2~3월에 나오기로 했는데 앨범이 벚꽃이 다 떨어지는 4월로 미뤄졌고 그때 조용필, 싸이 선배님도 앨범을 내서 히트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봄봄봄’을 발표할 당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의 표절 논란이 한 차례 불거졌었는데.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제가 김광석 선배님의 노래를 워낙 좋아하고 비교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봄봄봄’은 자신 있게 제가 직접 쓴 곡이어서 그런지 그때 논란이 불거져도 중심이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더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미국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재학 중으로 ‘슈퍼스타K 4’에서 우승할 때까지 ‘엄친아’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콤플렉스는 없나. -그런 수식어가 부담스럽다. 저도 화를 낼 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일에 짜증도 부리는 보통 스무살 남자일 뿐이다. 그래서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더 키우려고 노력 중이다.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흠이다. 좀 쿨해야 할 필요도 있는데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이다. 요즘 고민은 40년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다.(웃음) →스무살의 나이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데. 열애설로 인터넷이 들썩이기도 했고. -지금 이 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다. 많은 관심이 너무 감사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열애설이 터졌을 때도) 내가 이 정도로 관심을 받아야 될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에 더 집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부모님과 주변 분들도 잘될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고 늘 말씀해 주신다. →가수를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남은 학업은.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데 휴학 연장 여부를 알아본 뒤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음악은 할 것이다. 학업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노래는 평생 제가 해야 될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두루두루 다 해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여유를 갖고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뮤지션으로서 계속 음악적으로 좋은 변화를 시도하고 많은 옷들을 소화해내는 가수로 남고 싶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벚나무에 올라간 고양이/고형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벚나무에 올라간 고양이/고형렬

    고양이 눈엔 햇살이 보인다 그 모양은 마귀 같다 고양이는 빛다발에 걸린다 몸을 기지개 켜며 지붕으로 날아가는, 벚나무 꽃가지는 환상 고양이에게 벚꽃은 없다 네 다리의 뼈가 건너뛴다 흰 공이 되었다 백지가 되었다 바람의 세상 쪽 추억이여, 야옹 하고 돌아보지만 나는 없다
  • [의정 포커스] 노래 ‘나의 영등포’ 만든 조길형 구청장·윤동규 구의원

    [의정 포커스] 노래 ‘나의 영등포’ 만든 조길형 구청장·윤동규 구의원

    “흐르는 강물을 따라 세월을 돌고 도니 삼십년을 하루처럼 마음 다해 사랑했다. 막막한 인생 싣고 무작정 떠나 보니 기차가 멈춘 여기. 아~아~아, 사랑한다 눈물의 영등포 역전. 오늘도 희망 찾아 걷는 사랑하는 나의 영등포~.” 구정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릴 것 같은 구청장과 구의원이 의기투합, 지역 사랑을 듬뿍 담은 노래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과 윤동규 구의원이 주인공이다.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와 고생 고생을 하다 영등포를 제2의 고향 삼아 살아온 지 30년을 훌쩍 넘겼다. 25년 지기인 이들은 영등포구의회 5대 구의회 의장(조 구청장)과 구의원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올해 초 지인들과 함께한 관악산 산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 오르면 저 멀리 한강과 영등포를 내려다볼 수 있어 조 구청장과 윤 의원에겐 옛 생각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윤 의원은 1960년대 ‘아빠의 청춘’을 불러 유명한 가수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처럼 지역을 널리 알리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자랑할 정도의 노래 솜씨는 아니라서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는데, 조 구청장이 평소 마음속에 담고 있던 구절이 있다며 이를 다듬어 노랫말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조 구청장은 혈혈단신으로 고향인 전남 영광을 떠나 서울에 도착했을 때 심경 등을 절절하게 담았다. 고향 전북 김제를 떠나 영등포에 정착했던 윤 의원도 이심전심의 노랫말이 눈에 쏙 들어왔다. 윤 의원은 주변의 추천으로 역시 영등포에 살고 있는 정원수 작곡가를 찾아갔다. ‘미련의 브루스’ ‘빈자리’ 등을 만든 중견 트로트 작곡가인 그는 조 구청장의 가사에 흥겨운 디스코풍 멜로디를 붙였다. 윤 의원은 지역 내 인기 가수로 떠올랐다. 봄꽃 축제, 벚꽃 축제, 효잔치, 케이블 채널의 가요 프로그램 등 벌써 스무 차례 정도 무대에 섰다. 조 구청장은 아직 공개 석상에서 ‘나의 영등포’를 부른 적은 없다. 대신 노랫말을 시처럼 낭독하는 기회를 마련해 보겠다며 웃는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한때 동료였다가 지금은 서로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영등포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함께 노래를 만든 것처럼 수시로 소통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겠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여친보다 종잡을 수 없는 너, 날씨

    여친보다 종잡을 수 없는 너, 날씨

    올여름 전력수급 비상대책의 성패,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2%대 물가상승률 목표, 한겨울 강원도 홍천 산천어 축제의 흥행, 해외 원정 스키여행자 증감에 따른 항공사 수익,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이 많은 일의 결과를 좌우하는 관건 중 하나는 날씨, 즉 기후라고 할 수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2008년 이후 국내 기후변화 양태가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 그대로 기온이 상승하는 기후변화가 그 동안 부각됐다면, 2008년부터는 과거와 극명하게 다른 기상패턴이 보편화됐고 각종 정책에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점진적인 강우량 변화는 신선식품 물가관리를 방해하는 최대 복병이다. 지난 10여년간 한반도 강우량 변화 등을 조사한 이덕배 농업과학원 팀장은 1일 “6월 장마 뒤 무더위, 이후 9월쯤 태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던 ‘쌍봉 형태’의 장마패턴이 2008년 이후 변해 6월에 비가 안 오는 ‘마른장마’가 이어지거나 7~8월에 잦은 강우가 나타나는 불규칙한 패턴이 이어져 저수지 물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강우패턴에 맞춘 물 관리 정책을 고수하는 한 강원도 태백과 경상도 낙동강 상류 지역에서 반복되는 가뭄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팀장은 “여름에 가을장마를 계산해 보의 물을 빼놓았다가 비가 안 오면 가뭄이고, 반대로 물을 빼지 않았는데 폭우가 오면 홍수”라면서 “이상기후는 2009년 고랭지 배추값 폭등, 최근 과일값 폭등 같은 농산물 물가 폭등으로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전력수급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력거래소도 매일 날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전력소비 실태를 보면 산업용이 절반 정도이고 상업용이 30%, 가정용이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날씨가 더우면 상업용 전력소비가 급증해 산업용 전기 수급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완수 전력거래소 수요예측실 차장은 “2030년까지 장기 시나리오가 있어야 발전량 등을 조정할 수 있지만, 변동성이 너무 커 예측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최근 기후변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국지성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앙정부 방침에만 따르며 소극적이었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올봄 각종 벚꽃 축제가 일조량 변화에 따른 개화시기 이상으로 ‘참패’했듯이 지자체 행사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게 됐다. 이상신 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 주변 최저기온이 198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들어 1도 정도 상승했고, 강수량은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들어 17% 증가했다”면서 “지금 추세로 올림픽을 맞는다면 장애인올림픽 기간 중 눈이 녹아 경기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화천 산천어 축제와 같은 지역특화 축제도 이번 세기 말쯤에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일수 기상청장은 지난달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기후변화학회 학술대회에서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기온이 1.8도 올랐는데, 앞으로 40년 안에 2배인 3.2도 가까이 상승해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화가 될 전망”이라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국정운영, 기업의 경영관리, 국민생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예측 정보를 활용해 가뭄지수, 식물성장 기간 등을 분석하는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커버스토리] 둘레길 대해부… 서울 157㎞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대지를 꽉 깨물고 있는 산들의 위용은 인구 1000만 대도시 서울의 또 다른 맛이다. 그래서 ‘불수사도북 무용담’이 넘쳐난다. 불암산에서 시작해 수락·사패·도봉·북한산으로 이어지는 40㎞ 남짓 되는 코스인데 무박 2일에서부터 7~8시간 주파까지 이야기가 다양하다. 뒤질세라 나온 게 ‘삼관우청광’이다. 강남의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광교산으로 이어지는 50㎞ 남짓 되는 코스다. 관악산을 제외하곤 비교적 완만한 흙산이다. 서울 둘레길은 내년 말까지 불수사도북과 삼관우청광을 동그랗게 말아서 한 길로 잇겠다는 것이다. 모두 8개 구간으로 구성된 서울 둘레길의 전체 길이는 157㎞이니까 시속 2㎞의 속도로 하루에 8시간씩 걸으면 완주에 10일 걸린다. 2015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서울 둘레길 완주 무용담이 등장할는지 모르겠다. 구간별로 꼭 챙겨볼 만한 곳이 없을까. 모든 길을 가본 강인호 서울시 산림관리팀장에게 물었다. 강 팀장은 둘레길 조성의 임무를 띠고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강 팀장은 수락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코스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숱한 풍경이 눈에 어리는 듯했다. 설명 전에 조건을 달았다. 산 정상들을 이어 붙인 종주길에 도전, 정복 같은 단어가 어울린다면 산 옆구리를 타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둘레길에 어울리는 건 친밀한 대화라고. 그러니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손 맞잡고 천천히 걸어 달라고. ■수락산~불암산 코스 도봉산역(1호선)에서 시작해 수락산, 당고개, 불암산둘레길, 화랑대역(6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봄철에는 도봉산역 부근 창포원을 꼭 가보세요. 5~6월 창포와 붓꽃이 만발할 때 장관을 이룰 뿐 아니라 꽃, 나비, 곤충 모두 만나볼 수 있어요. 수락산과 불암산은 등산로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둘레길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 뒀어요. 가을에는 잔잔한 제명호와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서어나무 숲을 찾아보세요. 바람과 갈대와 낙엽에 파묻혀 가을 사색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용마산~아차산 코스 화랑대역에서 묵동천을 따라 망우산 자락, 중랑 캠핑 숲을 지나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에요. 꿈틀대며 흘러가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시원해지는 곳이지요. 망우산 공동묘지도 빼놓지 마세요. 기분 좋은 산책길에 웬 공동묘지냐고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서울에서 이곳만은 꼭 지키자고 정한 6곳 가운데 하나가 여깁니다. 오세창, 한용운, 지석영, 조봉암, 방정환, 박인환, 이중섭 등 역사적 인물들이 여기 있어섭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줍니다. ■고덕산~일자산 코스 광나루역(5호선)에서 출발해 고덕산, 일자산, 수서역(3호선)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여기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농촌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암사선사유적지를 낀 고덕산 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게 논두렁, 밭두렁, 미나리 밭이에요. 직업란에다 ‘농부’라고 기재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요. 공원도 무척 많아요. 샘터공원, 방죽공원, 명일공원, 허브천문공원, 길동생태공원…. 아, 습지생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대모산~우면산 코스 수서역에서 대모산, 구룡산 숲길을 거쳐 양재시민의숲, 우면산, 사당역(2호선)으로 연결되는 길이에요. 여긴 300m가 채 안 되는 낮은 흙산들이라 예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 있던 곳이에요. 이 코스의 매력은 깊고 호젓한 참나무숲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는 대도시 고층 빌딩들이에요. 자연과 도심이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길들이지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다 울창한 숲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 양재시민의숲도 꼭 들러 보세요. ■관악산 코스 사당역에서 관악산과 삼성산을 지나 석수역(1호선)까지 갑니다. 관음사, 호압사 같은 절도 있고, 삼성산엔 천주교 성지가 있고, 무당골도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을 모신 사당인 낙성대도 있지요. 종교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거기에다 이 코스에는 숲길 중간에 아주 짙은 메타세쿼이아 숲과 잣나무 숲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왠지 이 코스를 ‘치유의 길’이라 부르고 싶어요. 북카페 같은 것을 더해서 굳은 머리와 무거운 어깨를 털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안양천 코스 석수역에서 안양천, 한강을 따라 가양대교에 이르는 길이에요. 정말 추천 드릴 만한 길은 안양천 둑길. 안양천 제방을 걸어가다 보면 둑 양쪽에 심어 놓은 온갖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터널을 이룹니다. 장미꽃 터널도 좋아요. 물새들이 안양천에 노니는 풍경, 억새와 갈대의 물결, 버드나무의 출렁임까지 모두가 시원한 풍경들입니다. ■봉산~앵봉산 코스 가양대교에서 월드컵공원, 불광천, 봉산, 앵봉산을 거쳐 북한산 둘레길과 만납니다. 월드컵공원이야 이제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지요. 이 공원을 지나 들어서는 봉산과 앵봉산은 능선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 매력적이에요. 특히 팥배나무 숲은 꼭 가보세요. 정식 명칭은 봉산생태보전지역인데 이름에 걸맞게 온갖 식물이 다 있어요. 팥배, 작살, 중국단풍, 미국참나무, 화살, 굴참, 자귀, 병꽃, 노린재, 귀룽, 초피 등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북한산 코스 많은 분이 이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한 북한산 둘레길을 즐기고 계시지요. 서울 둘레길은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에서 시작돼 도봉 옛길까지 함께 갑니다. 북한산 둘레길이야 워낙 유명해 이 길에 대해 두 번 설명드리는 건 불필요할 것 같고요. 다만 4·19국립묘지와 이준 열사 등 독립유공자 묘역, 조선 세종의 딸의 정의공주 묘 같은 역사의 현장들은 꼭 한 번씩 챙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커버스토리-전국 둘레길 대해부] 잠시 느리게 걸어도 좋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

    [커버스토리-전국 둘레길 대해부] 잠시 느리게 걸어도 좋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당신

    바다 건너 남쪽에서 제주 올레길 바람이 불어오며 전국 곳곳에서 길이 뜨거워졌다. 걷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자고 일어날 때마다 갖가지 이름을 붙인 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산자락을 돌며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대세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숲길, 나들길, 자락길, 마실길, 물레길, 언저리길, 너머길 등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길이 너무 많아도 고민이다. 어디를 가볼까 망설이게 된다. 먼저 걸어 볼 만한 길을 산림청과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받아 추려 봤다. 무작정 걷는 데 열중하기보다 지역을, 자연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야 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울릉도 둘레길 울릉도는 섬 전체가 트레킹 천국이다.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부담이 없다. 숲이 울창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계절에 따라 풍광도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방문할 때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해안 절벽과 원시림을 곁에 두고 걸을 수 있어 인기다. 시간 계획을 세심하게 짜야 한다. 포항, 묵호, 강릉에서 오가는 배편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 뭍에서도 배를 타고 3시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당일치기보다는 1박 2일 일정이 낫다. 모두 3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전체 73㎞를 돌아보려면 적어도 3박 4일 이상 일정을 잡아야 한다. 저동에서 현포까지 북쪽 해안을 거니는 1구간(22㎞)이 가장 인기가 있다.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과 저동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탓이다. 무엇보다 경관이 가장 수려하다. 특히 내수전에서 석포까지는 옛길을 복원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가며 호젓한 산길을 거닐고, 발아래로 바다의 풍광까지 만끽할 수 있어 섬 안에서도 최고 길로 꼽힌다. 다리가 연결된 관음도로 건너가 보거나 나라분지를 잠깐 들러 볼 수도 있다. ■ 강화 나들길 문화, 역사와 함께하는 길로 이름 높다. 조선 후기 선비 고재형이 나귀를 타고 돌며 한시 256수에 담았던 길을 되살렸다. 모두 15개 코스 246.8㎞로 이뤄져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갑곶돈대에서 해안 둑길을 따라 초지진까지 가는 2코스 호국돈대길(17㎞)이다. 우리 민족 항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돈대와 진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갑곶돈대 근처에서 북쪽 한계선에 걸친 천연기념물 탱자나무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장어 마을이 있어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해 볼 만하다. 간조시 해안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어 여름철엔 버거울 수 있다. 사찰 모양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 성당인 성공회성당, 조선 철종이 강화도령 시절 살았던 용흥궁, 고려궁지, 강화향교, 강화산성 북문 등 주요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는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18㎞)도 인기다. 시작은 용흥궁부터 출발하는 게 낫다. 고려궁지 인근은 봄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길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걸어도 좋고, 강화군이나 ㈔강화나들길에서 진행하는 걷기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자연 생태가 가장 잘 보전된 곳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생태의 보고라 불린다. 2009년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문화생태탐방로 시범사업지로 선정됐고,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생태관광 분야 한국관광의 별로 뽑히기도 했다. 경북 영주와 봉화, 충북 단양, 강원 영월을 잇는 12자락 143㎞로 구성됐다. 다른 둘레길 등에 견줘 자락길은 평균 거리가 12㎞ 안팎으로 짧아 3~4시간 정도면 한 자락을 둘러보며 ‘힐링’할 수 있다. 특히 국립공원 구역이 많아 원시 자연 그대로 상태가 잘 보전된 숲과 계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여름철에도 걷기에 부담이 없다. 부석사를 비롯해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등 불교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선비길·구곡길·달밭길로 이뤄진 첫 자락(12.6㎞)과 자재기길·서낭당길·배점길로 구성된 마지막 자락(8㎞)의 인기가 높다. 온달산성이 옆에 있는 6자락은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품은 구간이다. 길 이름도 온달평강로맨스길이다. 십승지의풍옛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7자락에서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발자취를 느껴 볼 수 있다. ■ 양구 DMZ 펀치볼 둘레길 민족의 비극을 딛고 둘레길로 다시 태어났다. 한반도 정중앙이자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 양구에 있는 ‘펀치볼’이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생명이 스러진 격전지가 바로 이곳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둘러싼 해안 분지 지형을 놓고 당시 외국인 종군 기자가 화채 그릇을 닮았다며 붙인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란 단어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자연 생태계가 그 어느 곳보다 잘 보전돼 있다.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에 얽힌 이야기들도 곳곳에 뿌려져 있다. 평화의 숲길(14㎞), 오유밭길(14.6㎞), 만대벌판길(17.2㎞), 먼멧재길(16.2㎞) 등 4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각 코스가 5~6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별로 탐방 예약을 해야 한다. 오전, 오후 한 차례씩 100명이다.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이고, 미확인 지뢰 지역과 인접해 있어 반드시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가장 짧은 코스인 평화의 숲길 예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펀치볼 서쪽 부근을 탐방하는 오유밭길, 국내 최초로 람사르 보호습지구역으로 지정된 대암산 용늪을 곁에 두고 있는 만대벌판길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 지리산 둘레길 지난해 5월 274㎞가 모두 연결된 국내 최초이자 최장거리 둘레길이다. 경남 하동~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걷다 보면 3개 도, 5개 시·군, 120여개 마을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모두 22개 구간으로 이뤄져 다채롭게 변화하는 지역 문화와 역사, 삶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한 구간씩 도전해 보는 게 나을 수 있다. 우선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와 청암면 중이리 하동호를 잇는 위태~하동호 구간(11.8㎞)이 있다. 낙동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나누는 길이다. 걷기 적당한 마을길에 특히 양이터재에 오르면 그림 같은 숲길이 계속 펼쳐진다. 대나무 숲길도 상큼하다. 지리산을 한눈에 담으려면 하동군 화개면 탑리 가탄마을과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을 잇는 가탄~송정 구간(11.3㎞)이 제격이다. 조영남의 ‘화개장터’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목아재에 오르면 노고단 등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밖에 걷다가 지역 경계를 건너뛰게 되는 인월~금계(19.3㎞), 덕산~위태(10.3㎞), 산동~주천 구간(15.9㎞)도 매력적인 구간이다. ■ 진안 고원길 북쪽에 개마고원이 있다면 남쪽에는 진안고원이 있다. 산과 물이 많은 진안고원에는 자연친화적인 마을 수백 개가 있다. 진안고원길은 평균 고도 300m 지역에서 살았던 산간 마을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던 옛길을 복원한 길이다. 2010년 한국형 생태관광 10대 모델 사업지로 선정되며 옛길 복원이 본격화했다. 모두 15개 구간 200㎞ 길이 골목과 골목,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모든 길이 걷기 편하게 정비되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하늘과 구름을 벗 삼아 걸으며 100개 마을과 50개 고개를 만나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는 길이다. 방향 지시와 함께 거리를 알려 주는 나무 이정표는 전체 15개 구간 가운데 1~3, 1-1 등 4개 구간에만 설치된 상태다. 영모정에서 원덕현에 이르는 1구간(10.2㎞)이 인기가 높다. 걷다 보면 시골 외갓집에 가는 느낌이다. 300년 넘은 당산나무, 원반송, 여러 정자와 둑집(곡식창고)을 만날 수 있다. 원래 이름이 진안마실길이었다. 전북도 차원에서 마실길 조성 사업을 벌이며 곳곳에 마실길이 들어서자 차별화를 위해 이름을 고쳤다.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대한민국 숲길 1호다. 옛날 궁궐을 지을 때 썼다는 금강소나무가 가득 찬 길이다. 원래 국내 최고 금강송 군락지로 손꼽히던 지역에 2010년부터 자연 친화 숲길을 냈다. 전체 5구간이 계획됐으나 현재 1구간과 2-1구간, 3구간만 다닐 수 있다. 올해 시범 개방된 2-1구간(12㎞)은 주말에만 20명 한정 예약을 받는다. 1, 3구간은 5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화요일을 제외하고 각각 하루 80명만 예약 탐방할 수 있다. 1구간(13.5㎞)이 예약이 빨리 차는 편이다. 김주영 작가의 장편소설 ‘객주’의 무대다. 이 구간은 옛날 보부상들이 울진 해안 지역에서 봉화, 안동 등 내륙 지방으로 넘나들던 십이령길과 겹친다. 그만큼 얽힌 이야기가 많아 즐거운 길이다. 금강소나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3구간(18.7㎞)이 제격이다. 오백년송과 350년 된 미인송을 비롯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수령이 200년이 넘은 금강송 8만 그루가 가득 찬 보호림을 거닐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길을 내다 보니 중간에 2.5㎞ 정도 숲길이 아닌 인도가 있어 아쉬웠는데 이르면 오는 8월 말 완전한 숲길로 코스가 완성된다고 한다.
  • [기고] 우리 문화예술을 재창조하는 생각/윤인휴 전남 광양시 부시장

    [기고] 우리 문화예술을 재창조하는 생각/윤인휴 전남 광양시 부시장

    올해도 3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려주는 매화가 섬진강가에 만개하면서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에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왔다. 이어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이 꽃 잔치를 이루었다. 올해 처음 열린 순천정원박람회에는 20여일 동안 13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해 성공을 예고했다. 다양한 지역 꽃 축제는 단순한 꽃 축제에 그치지 않는다. 꽃 축제는 지역 문화예술과 결합할 때 기업이나 유명상품, 건축, 문화유적 등 못지않게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수입과 국민 소득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한류의 원조 격인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경남 거제도 외도와 강원 춘천의 남이섬은 10년 넘게 매년 20만명 이상의 외국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또 K팝이 일본,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국산품 수출과 관광수입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자원은 꽃처럼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수 있어 끊임없는 변화와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외국 자매도시와의 문화교류 공연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잘 다듬어 상품화해야 한다. 올해 광양 국제매화문화축제에는 11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10개국의 주한 외국대사 부부와 많은 외국인이 다녀갔다. 광양시립국악단과 자매도시인 중국 샤먼시 공연단의 합동공연이 매우 이국적이고 독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합동 공연은 올해로 두 번째로 좀 더 보완하면 예술적 기법도 향상돼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악단 이외에 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도 이처럼 외국의 예술단체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한류’를 세계문화의 큰 주류로 육성하기 위해 전통 문화를 접목하여 새로운 장르로 재창조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일례로 국악과 스포츠댄스 또는 비보이 공연, 국악과 대중음악의 장점을 혼합하는 것이다. K팝 아이돌 가수와 글로벌 스타로 부상한 가수 싸이도 아무나 모방할 수 없도록 판소리, 사물놀이, 북춤, 삼고무(三鼓舞) 가운데 한 요소를 포함시킨 새로운 노래와 안무를 내놓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한, 이 같은 융합 형식을 미술, 연극, 영화 등 다른 예술 분야로 확대하고 연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젊은 예술인들의 진출과 창업이 쉽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등학교나 대학에 학과를 확대해 신설하거나 전문 공연장을 더 많이 짓고 컨설팅,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문화예술의 융합형 업종이 탄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순수예술성과 독자성 침해라는 논란이 일지 않도록 사전에 전문가의 충분한 자문과 지도를 받게 한다. 이는 새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도 일맥 상통한다. 이 같은 노력이 열매를 맺어 문화예술분야에 새로운 형태, 다양한 업종이 탄생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으면 한다.
  • [열린세상] 詩가 없는 봄날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詩가 없는 봄날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시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쓰느냐만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평소 조곤조곤하게 말한다. 그런 그가 이날은 핏대를 올리면서 문학에 대한 정부 정책, 특히 ‘문학나눔’ 사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해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학나눔 사업을 통해 문화 소외 지역 및 계층에 우수 문학 도서를 선정해 무상 보급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사업 내용에 대해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불만이 거세다. 작년에 비해 소설은 연간 116종으로 조금 늘어났지만, 시집은 40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예산도 작년보다 2억 3000만원밖에 증가하지 않아, 종당 구입 호수도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까지 소설과 시 모두 종당 2000부를 구매해 배포했는데, 올해부터는 1200부로 줄어든 것이다.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봄꽃이 만개했다. 철쭉꽃, 목련꽃, 모란꽃, 벚꽃 등이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겨우내 집안에만 계시던 팔순의 노모와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을 산책한다. 공원의 모든 이들이 봄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탄성을 발한다. 청년은 애인에게 꽃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애인은 봄 햇살 같은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향긋한 꽃 앞에서 누가 돈을 생각하고, 출세를 생각하겠는가. 꽃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 순결한 영혼과 정신, 황홀하면서도 고귀한 사랑 등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봄꽃은 세속에 찌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치유해주고, 삭막한 우리네 삶을 화사한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준다. 팔순의 노모께서 공원에 핀 꽃을 보시고는 “해마다 봄이면 꽃은 저렇게 아름답게 피는데, 사람은 늙으면 다시 젊어지지 않는구나”라고 말씀하신다. 봄꽃은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마력도 있는 듯하다. 많은 시인이 꽃을 시의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김소월은 시 ‘진달래꽃’에서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노래했다. 임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진달래꽃에 투사해 임이 나를 버리고 떠날지라도 임이 가시는 길에 자신의 분신인 진달래꽃을 뿌려드리겠다는 것이다. 김영랑은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노래했다. 모란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 시인, 그래서 모란이 지면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시인, 그런 시인에게 모란이 피고 지는 봄은 ‘찬란한 슬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이 봄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와 봄꽃이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시는 본래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아닌 화해와 합일의 세계를, 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지향한다. 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영혼의 교감을 이루는 세계를 강렬히 갈망한다. 그런 시를 통해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황홀한 세계와 만나게 되고, 동시에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이 시대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사회가 아무리 물질적 측면에서 풍족하다 하더라도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를, 그 문화의 정수인 시를 푸대접한다면 그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 영혼을 팔아버린 아이들에게 시집을 읽도록 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시인 친구가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좋은 시를 쓰려고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서 시를 찬밥 대우하고 있는 현 상황은 그래서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시인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시집이 팔리지 않아 시집 내기가 어려운 판국인데 정부가 아예 시를 말살시키고 있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니 진달래꽃이 지고 있다. 떨어지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저 소중한 봄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 보다가, 불현듯 우리 사회에서 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시가 없는 사회와 봄꽃 없는 봄은 무엇이 다를까.
  • [길섶에서] 고샅길 라일락/정기홍 논설위원

    농익은 이 봄날, 만화방창 꽃잔치로 시끌하더니 초록 잎사귀가 봄꽃의 옆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다. 벚꽃의 흐드러짐을 본 게 엊그제인데 세상의 생물은 시절을 먼저 알고 계절의 바뀜을 재촉하는 것 아닌가.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의 애절한 가락처럼 이 봄이 훌쩍 떠날까봐 괜히 우울해진다. 아파트단지 담장 너머로 와 닿는 라일락 꽃향기를 즐긴 지가 얼추 보름 정도 됐다. 꽃은 화사했던 며칠 전보다 덜하지만 그 향긋함은 여전히 으뜸인 듯하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필 때와 다른, 눈과 코의 호사다. 겨우내 먹던 묵은지를 봄나물 겉절이로 바꾼 맛이라 할까. 우리 속담에 ‘국화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봄 개나리가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가을 국화의 우아함과 향기의 그윽함에 비할손가. 국화의 지조를 이름이다. 아직도 코끝을 건드리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꽃마다 지닌 자태와 가치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고향마을 고샅길을 지키던 라일락은 이제 향기를 잃었을까. 40년 전 추억을 떠올려 본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서산 용유지… 늦바람 난 벚꽃

    서산 용유지… 늦바람 난 벚꽃

    호수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물안개 피어오르고 신록과 봄꽃들이 주변을 예쁘게 장식합니다. 그 자태가 단풍 물든 가을 못지않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의 유명 호수들은 밀려드는 사진작가들로 몸살을 앓습니다. 충남 서산의 용유지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른 봄 풍경만 놓고 보자면 자태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빼어나다는 곳이지요. 이맘때 용유지는 딱 그림 병풍입니다. 둥글고 얕은 구릉들이 사위를 감쌌고 벚꽃은 곳곳에 흐드러졌습니다.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와 편백나무들이 수직 세상을 펼쳐 놓으면 둥글게 휜 왕버들과 관목들이 어느새 균형을 맞춰 놓지요. 서산은 여느 지역에 견줘 벚꽃 개화가 늦습니다. 수종도 다양해 5월 중순까지 여기저기서 벚꽃이 피고 또 집니다. 시점만 잘 맞춘다면 늦바람 난 벚꽃에 흠뻑 취할 수 있습니다. 용유지의 봄 풍경에 매료된 이들은 한결같이 경북 청송의 주산지나 전남 화순의 세량제에 견줄 만큼 빼어나다며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인들이 절정에 이른 용유지를 보기란 쉽지 않다. 우선 벚꽃 개화 시기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신록으로 물드는 시기도 마찬가지. 날씨도 변수다. 바람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물살이 일지 않아 명경지수가 펼쳐지고 주변의 모든 풍경들이 물 위로 수렴되는 진기한 장면과 조우할 수 있다. 해 뜰 무렵과 저물녘에 바람이 잦아들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이런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 명불허전의 용유지와 마주할 수 있다. 그러니 도시의 월급쟁이들이 몇년 내리 겨냥만 하다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용유지는 흔히 용비지라 불린다. 표지석에 분명히 ‘용유지’(龍遊池)라고 음각돼 있지만 용비지란 이름이 더 흔하게 쓰인다. 용유지는 인위적으로 조성됐다. 저수지 주변에 자작나무와 메타세쿼이아, 편백나무, 벚꽃 등이 조화롭게 식재돼 있다. 다만 언제, 왜 축조됐는지는 불분명하다. 김재신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 등에 따르면 1960년대 김종필 전 총리 주도로 삼화목장(현 농협 한우개량사업소) 등이 조성되면서 함께 축조됐을 거란 견해가 일반적이다. 강원 횡계의 대관령 목장을 닮은 이국적인 구릉지대가 운산면 일대에 형성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야산의 나무를 베 초지대로 만들었고 산자락 중턱엔 “권력자의 별장으로 추정되는 건물”도 세웠다. 용유지 주변에 메타세쿼이아와 주목 등을 식재한 것도 별장이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용유지 또한 당시 나라를 쥐락펴락하던 ‘용’(龍)들이 ‘노닐기’(遊)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꾸며졌을 거란 추정이 설득력을 갖는다. 호수는 아름답다. 주변을 에두른 벚꽃이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자작나무와 편백나무, 삼나무 등도 신록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연초록 초지대도 싱그럽다. 그 풍경들이 고스란히 물 위에 반영된다. 그야말로 기쁨 두 배다. 호수 주변을 자박자박 걸을 수도 있다. 눈엔 풍경을, 가슴엔 치유를 담는 산책로다. 호수는 출입이 금지된 영역이다. 소들이 풀을 뜯는 목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이 돌 때면 목장은커녕 마을 입구에도 발을 디딜 수 없다. 전염병이 돌지 않을 땐 출입 제한 조치가 상대적으로 완화된다. 문은 잠갔으되 문 옆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 이제 2~3년 내에 마음 편히 용유지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지 관계자는 “벚꽃이 피는 봄철에만 용유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호수 주변에 관목 등으로 울타리를 쳐 방목 한우를 관광객들로부터 격리시킨다는 계획이다. 사실 한우개량사업소는 국내 씨수소의 정자 95%가 생산되는 곳이다. 김 해설사의 표현처럼 “주변에 암소가 있어야 수소의 정자가 잘 ‘영근다’ 해서 암소 축사를 따로 조성”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소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국내 한우 개량 사업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방문객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서산은 내포(內浦·충남 서북부) 불교문화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많은 절집과 불교 문화유산들이 늘어서 있다. 부처님오신날에 맞춰 서산을 돌아볼 예정이라면 단연 개심사가 첫손에 꼽힌다. 절집의 명물, 진분홍 왕벚꽃이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후에 활짝 피기 때문이다. 여미리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지역의 향토 자원을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관광 자원화한 곳이다. 마을 정미소 자리엔 갤러리가 들어섰고 디미방에선 지역 특유의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놓는다. 노란 수선화가 흐드러진 유기방 가옥과 고려시대 세워진 여미리석불입상, 300년 동안 마을을 굽어본 비자나무 등 볼거리도 많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을 나와 647번 지방도로를 타고 개심사·해미 방향으로 달리다 문수사 입구를 지나 첫 번째 마을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마을회관을 지나 11시 방향으로 난 농로를 따라 곧장 가면 용유지 제방이 보인다. 서산마애삼존불상, 개심사, 해미읍성 등이 다 이 지역에 몰려 있다. 가족들이 묵기 좋은 숙박업소를 찾는다면 최근 개장한 ‘백제의 미소’ 펜션(663-0890, 이하 지역번호 041)이 추천할 만하다. 너른 대지에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로 구성됐는데, 별채 형식의 독립된 공간에 황토방과 찜질방이 결합돼 있다고 보면 알기 쉽다. 요금은 인원에 따라 8만원부터다. 서산시 초입의 향토(668-0040)에선 서산의 전통음식인 우럭젓국과 꽃게장, 게국지를 세트 메뉴로 즐길 수 있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우럭에 무와 청양고추 등을 넣고 짭조름하게 끓여낸 우럭젓국, 말린 감태에 밥 한술 얹어 찍어 먹는 비릿한 꽃게장이 일미다. 서산시청 뒤 진국집(664-4994)은 토속 음식 게국지로 소문났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강원 산골엔 304가지 맛·단종의 향기가 있다

    강원 산골엔 304가지 맛·단종의 향기가 있다

    봄바람을 타고 강원 산골마을이 들썩이고 있다. 정선 오지마을 주민들이 300가지가 넘는 산촌 토속음식을 테마로 축제를 마련하고 영월에서는 조선시대 비운의 임금 단종을 추모하는 단종문화제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관광객을 맞는다. 꽃잎이 흐드러지게 핀 주말, 강원 산골마을로 훌쩍 추억의 여행길에 나서보자. 이름도 맛도 생소한 정선 산촌마을 토속음식 304가지가 한데 모여 도시인들을 유혹한다. 간이역으로 하루 두 차례 열차가 다니는 정선 북평면 나전역 앞 시골장터에서 26일 정선토속음식축제가 막이 올라 28일까지 열린다. 국제슬로시티 지정을 추진하는 북평면과 북평면체육축제위원회가 중심이 돼 두 번째로 열린다.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 쪄내는 감자부생이밥, 쌉싸래한 살쿠리나물로 만든 살쿠리밥, 메밀칼국수를 굵게 썰어 내는 콧등치기국수와 느름국, 메밀이나 콩가루로 만든 칼국수 가수기,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올창묵 등 이름은 생경하지만 산촌의 정과 맛이 듬뿍 묻어난다. 준비된 토속음식도 마을별로 각양각색이다. 북평3리는 산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름도 생소한 밥 29개 종류를 준비했다. 인근 숙암리는 가수기 등 12개 종류의 국수를 마련하는 등 14개 마을이 모두 다른 음식을 선보인다. 음식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관광객들이 고루 맛볼 수 있게 적은 양으로 1000~3000원씩에 팔기도 한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됐고 정선 산촌과 농경문화 체험행사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산간 오지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밭갈기와 달구지 타기 등 영농 무료체험과 산촌 생활 및 문화 전시, 산촌놀이 경연, 벚꽃길과 강변길에서 천천히 걷기, 무료 자전거 타기 등 관광객 참여 행사도 마련된다. 영동고속도로에서 북평면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는 인공으로 만든 176m 높이의 백석폭포도 장관이다. 대한민국 대표 전통문화제인 제47회 단종문화제도 영월군 영월읍 장릉과 동강 둔치 등에서 28일까지 펼쳐진다. 올해는 ‘단종의 향기’를 주제로 단종 제향, 국장 재현, 정순왕후 선발대회, 칡 줄다리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행사가 마련됐다. 첫날엔 학생백일장과 민속예술경연대회,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이 열렸다. 둘째 날인 27일에는 전국 유일하게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유서깊은 유교식 제례의식인 단종 제향이 봉행된다. 이날 밤에는 칡줄과 횃불의 화려한 행렬을 관광객이 감상할 수 있는 칡 줄다리기행사가 열린다. 조선 숙종 때부터 시작된 칡 줄다리기는 길이 35m, 무게 6t에 이르는 칡 줄을 200여명 장정이 동·서 양편으로 나눠 메고 영월역과 영월 문화예술회관에서 각각 출발해 동강 둔치에서 만나 승부를 가른다. 단종문화제의 가장 큰 볼거리인 조선시대 국장은 2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스포츠 파크에서 장릉까지 2㎞ 거리에서 재연된다. 조선의 임금 중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단종의 넋을 기리려고 2007년부터 시작돼 단종문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철저한 고증으로 재연된 국장행렬은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현장감과 장엄함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생육신인 관란 원호 선생이 편지, 곡식, 채소 등을 표주박에 담아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에게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표주박 통신체험’이 동강 둔치와 수주면 요선암 일대에서 마련된다. 박선규 영월군수는 “전통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단종문화제가 ‘국장 재연’을 브랜드로 세계화의 이목을 끌고 있다”면서 “온 가족이 함께 찾아 소중한 전통문화를 맘껏 느끼는 행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선·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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