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법제처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격추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감자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가축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근육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46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재경원 재경부로 축소/정부조직개편 2차 시안

    ◎내무부·총무처 행정자치부로 통합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위원장 박권상)는 23일 하오 전체회의를 열어 정부예산과 공무원 인사권을 대통령 직속으로 하는 내용의 정부조직개편안 2차시안을 잠정확정했다. 개편안은 재경원의 예산실을 차관급의 예산처로 바꿔 청와대에 두기로 했다.재경원은 재경부로 축소된다. 이와 함께 비정무직 공무원의 인사를 총괄하게 중앙인사위원회도 대통령직속기구로 설치하도록 했다. 대외통상업무는 별도의 기구를 두는 대신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해 단일화하기로 했다.반면 통산산업부는 산업부로 축소하되 당초 통합하려던 중소기업청은 존치하도록 했다. 내무부와 총무처는 행정관리부로 통합하고,공보처는 폐지해 국정홍보기능은 총리실로,방송관련 업무는 정보통신부로 해외홍보기능은 문화부로 각각 이관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농림부와 함께 농림수산부로 통합되고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부로 승격된다. 정무1·2장관실은 각각 폐지되고 대신 대통령 직속의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돼 정무2장관실의 여성정책을 담당한다.보훈처와 법제처는 총리실 소속 차관급 기구로 두기로 했다. 정부조직개편위는 이날 마련한 2차 시안을 24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고한 뒤 26일 최종 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 얼룩진 헌정(대한민국 50년:4)

    ◎52년 첫 개헌… 87년까지 9차례 뜯어 고쳐/이승만 이어 박정희도 종신집권 노려 헌법손질/69년 3선 개헌­72년 유신 선포… 대통령 간선 고착/전두환 쿠데타 집권… 87년 6월 항쟁 직선제 확립 이승만은 1954년 2차개헌으로 종신집권에의 길을 텄다.그러나 이는 몰락을 재촉했다.1960년 4·19혁명은 마침내 이정권의 무한권력 추구를 좌절시켰고 6월15일 3차 개헌을 가져왔다.큰 골격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다.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률유보조항을 손질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정리하는데 촛점을 맞췄다.그러나 내각제 도입으로 3·5부정선거범 등에 대한 처벌근거인 정·부통령선거법이 소멸되자 혁명 주체세력들은 거세게 반발했다.학생들의 의사당 난입 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집권민주당은 11월29일 이승만 정권하의 반민주행위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 근거규정을 헌법 부칙에 설치하는 4차개헌을 단행했다. 헌법의 수난은 갈수록 심화됐다.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군사쿠데타는 헌정파괴라는 극단적사태를 몰고왔다.국회는 즉각 해산됐다.이듬해 12월16일엔 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5차 개헌이 단행했다.이 개헌안은 인권규정을 보강하고 미국식 사법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3권분립을 강화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핵심 골자는 부통령제 폐지와 정당설립 규제 등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6차 3선개헌 날치기 처리 박정희는 5차개헌으로 부활된 새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중임제한 규정에 부닥치자 전에 이승만이 걸었던 전철을 답습했다.영구집권의 획책한 것이다.중임제한 폐지 개헌안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디ㅊ치자 1969년 10월21일 새벽 국회 제3별관에서 야당의원들을 따돌린채 여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만으로 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3선개헌으로 불리는 6차개헌이 그것이다. 개헌뒤 실시된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에 성공했다.그러나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박정희 634만표,김대중 539만표로 나타난 개표결과는 영구집권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그래서 영구집권을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이것이 바로 헌정 수난의 절정판인 이른바 유신헌법이다. 유신은 1972년 7월17일에 선포됐다.이날은 아침나절 약간 흐렸으나 낮부터는 전국적으로 맑았다.시민들의 생활은 평온했으며 각 관청들만 막바지에이른 국정감사로 다소 부산했다.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국체변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물밑에서는 이를 위한 시나리오가 극비리에 착착 진행됐다.상오9시 국무총리 김종필은 우시로쿠(후궁호랑)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약 20분간 요담한데 이어 10시 15분부터는 필립 하비브 미국대사와 40분간 요담을 가졌다. 유신을 통보한 자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하오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서울 소공세무서에 대한 국정감사를 행하던 재무위에서는 “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회가 해산될지 모른다”는 협박투의 발언이 여당의원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날 상오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박정희 주재로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박정희는 둘러앉은 보좌관과 비서관들을 응시하다가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모두 한번씩 읽어보고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하오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헌법 정지,국회 해산,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개헌,….’달리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너무도 엄청난 일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이어 외무장관 김용식은 하오5시 주한외교사절 23명을 불러 유신단행을 설명했다. 계엄선포 H아워를 1시간 앞둔 하오6시 청와대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소집돼온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령을 의결했고 같은 시간 시내 전역의 주요 공공건물에는 계엄군이 포진하기 시작했다.중대뉴스가 예고된 하오7시,라디오에서는 헌법의 효력을 2개월간 중지시키겠다는 박정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유신이 일단 선포되자 개헌작업은 미리 짜인 각본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작업은 신직수 법무·이경호 보사·서일교 총무처장관과 유민상 법제처장,헌법학자 한태연·갈봉근 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회에서 맡았다.하지만 실상은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팀으로 구성된 일명 ‘기획소위’가 건네준 골자를조문화하는 것에 불과했다.이때 심의회의 역할이 어땠는지는 “이 헌법의 기본골격은 이미 고위층에서 만든 것이므로 골격 자체에는 일체 손을댈 수 없습니다”고 한 신직수의 발언이 입증하고 있다. 개헌안은 유신선포 25일만인 11월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과 대통령의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국회의원 3분의1과 대법원장 등 전법관 임명권 보유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의 무한권력 창출이었다. 박정희에게 유신헌법은 종신집권을 담보해주는 안전판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종말로 향하는 단초이기도 했다.국내 상황은 팽팽한 긴장으로 치달았고 최대우방 미국과도 갈등이 깊어갔다. ○80년 8차개헌 간선제 유지 서울신문이 최근 입수한 미국 국무부의 ‘한미관계의 조사’라는 보고서는 당시 한미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돼 갔음을 보여준다.유신 직후인 73년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를 토대로 국무부가 작성한 이 문건에서 이미 미국이 경제원조 중단과 미군철수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안팎으로 시련을 겪던 유신은 끝내는 1979년 박정희의 피살과 함께 또한번의 헌정중단 및 개헌을 초래했다.공백상태의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1980년 10월27일 복지규정 보강 등으로 위장한 8차 개헌을 실시하지만 권력획득의 핵심인 대통령 간접선거는 그대로 유지했다.전두환 군사정권은 강압적 통치로 일관하다 직선제 개헌 요구로 상징되는 전국민적 저항에 굴복하고 말았다.그래서 87년 6월29일 개헌을 수용하기에 이른다.이 9차 개헌의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헌정 50년을 맞는 올해는 그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정권을 인수인계하는 뜻깊은 해다.하지만 헌법은 또다시 개정의 고비를 맞고 있다.내각제 공약을 내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정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미,73년부터 “유신철회” 압박/본사특별취재반,미 하원보고서 입수 확인/“주한미국 철수” 일방선언­‘코리아게이트’ 돌출 유신이 절정을 이뤘던 197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7년 3월9일 주한 미지상군의 철수를 일방선언했고 6월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사건이 불거졌다.한국내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한국정부의 항의가 거세자 미국은 박동선 사건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코리아게이트를 돌출시켜 한국정부를 더욱 옥죄었다. 모두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철회를 겨냥한 미국정부의 압박전술이었다.그런데 미국은 이처럼 유신에 대해 명백하게 거부태도를 보이기 훨씬 전부터 유신의 몰락을 예견한 교포들의 지적들을 주목했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수단도 강구했었음이 최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문건에서 확인됐다. 이 문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작성한 ‘한미관계의 조사’(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라는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1973년 9월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하고 있다. 문건은 김대중 등 미국내에서 반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과 교포들의 증언을 인용한 것이다.문건은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성으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점차고립되는 상황이고 대미관계에서도 원조와 군사지원을 둘러싸고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문건은 이어 “한국인들은 만약 미국이 일본과의 공조아래 경제원조 및 권사지원 철회로 압력을 가할 경우 박정희 정권은 급격히 붕괴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부터 미국내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FBI의 사찰이 강화됐다.이와 더불어 한미 정부간에 인권침해와 내정간섭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됐던 사실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예산처·인사위 대통령 직속으로/대외통상기능은 외교통상부에 통합

    정부조직개편심의위(위원장 박권상)는 22일 하오 실행위를 열어 재경원을 재경부로 축소하고 예산실을 차관급을 책임자로 한 ‘예산처’로 바꿔 대통령 직속으로 두며,비정무직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인사위원회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는 내용의 2차시안을 확정했다. 2차시안은 논란이 됐던 대외통상기능 재편의 경우 현행 통상산업부와 재경원의 대외통상기능을 외무부로 이관,‘외교통상부’로 통합하는 것으로 최종결론을 내렸다. 또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 ‘행정관리부’를 신설키로 했으며,공보처는 폐지해 국정홍보기능은 총리실로,방송관련 업무는 정통부로,해외홍보기능은 문화부로 각각 넘기기로 했다. 이어 대외통상기능이 분리된 통산부는 산업부로 축소 개편하되 중소기업청은 현행대로 존치시키기로 했으며,해양수산부도 폐지,농림부와 합쳐 농림수산부로 개편하고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부로 승격시키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무 1장관실과 정무2장관실을 폐지하고,대통령 직속으로 여성특별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으며 보훈처와 법제처는 총리실 소속 차관급 기구로 두기로 했다.
  • 대통령 내각 직할체제 대폭 강화/모습 드러낸 정부조직개편 시안

    ◎예산처·중앙인사위 청와대 설치/2안선 총리실로… 총리권한 강화 정부조직개편심의위(위원장 박권상)가 15일 확정,발표한 정부조직개편 시안은 감량화와 효율화의 틀 속에서 대통령의 내각 직할체제 강화,국무총리의 권한 강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개편안은 우선 현행 23개 부처를 16개 안팎으로 크게 줄였다.장관수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폐지하기로 한 장관급 부처는 공보처,보훈처,정무1장관실,비상기획위원회 등 4개에 이른다.또 차관급을 1급으로 격하한 부처는 조달청,병무청,농촌진흥청,산림청,중소기업청 등 5개다. 대통령 직할체제 강화와 관련해서는 청와대 예산처 신설과 중앙인사위 설치가 꼽힌다.개편안은 물론 제2안을 통해 예산처를 국무총리실에 두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으나,국민회의측은 청와대에 둘 뜻을 굳힌 상태다. 부처별 개편안은 다음과 같다. ◇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로 격하.예산실은 청와대 또는 국무총리실에 차관급 예산처를 신설해 이관 ◇통일원=평통사무처와 통합,통일부로 격하 ◇총무처=①총리소속 차관급으로 격하②내무부와 통합해 행정관리부로 전환 ◇내무부=①자치부로 전환 ②총무처와 통합,행정관리부로 전환 ★지방자치관련업무는 지방자치단체로 이양 ◇공보처=폐지하고 총리실에 1급 공보실 설치 ◇법제처=총리소속 차관급으로 격하 ◇과학기술처=①과학기술부로 승격 ②통상산업부,정보통신부와 통합,산업기술부로 전환 ◇통상산업부=①중소기업청을 흡수,산업부로 개편 ②과기처,정보통신부와 함께 산업기술부로 개편 ★통상외교기능은 외무부나 신설될 대외경제부로 이관 ◇보훈처=①국가보훈청으로 격하 ②총리소속 차관급으로 전환 ◇정무1장관실=폐지 ◇정무2장관실=①존속 ②대통령 소속 여성특위 ◇외무부=①외교통상부로 확대,통상외교업무 단일화 ②외무부와 별도로 ‘대외경제부’신설 ◇교육부=①존속 ②과학기술처의과학분야 업무와 통합해 교육과학부로 전환 ◇농림부=①해양수산부와 통합,농림수산부로 전환 ②존속 ◇해양수산부=①폐지 ②존속 ◇조달청=1급청으로 격하 ◇병무청=1급청으로 격하 ◇농촌진흥청=농림부 산하 1급청으로 격하 ◇산림청=①농림수산부의 1국으로 전환 ②1급청으로 격하 ◇중소기업청=산업부로 통합,차관보 신설 ◇중앙인사위=청와대 또는 총리실에 설치 ◇경찰청=①자치부에 존치 ②총리실 산하로 전환 ◇청소년보호위원회=문화체육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전환.대한체육회 등 산하단체는 민영화 ◇비상기획위원회=폐지 ◇식품의약품안전본부=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격상
  • 초반 시행착오 후반 제자리 찾기/대통령직 인수위 활동 중간점검

    ◎출범후 활동 범위 싸고 혼선/새정부 100대 과제 선정 착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5일 법제처와 정무 1·2장관실을 끝으로 정부 각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듣는 일정을 모두 마쳤다.16일부터는 정부 보고내용과 그동안 파악한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간다.지금까지 활동이 ‘재고조사’였다면,이제부터는 ‘사업계획’을 짜는 작업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동안 인수위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이해찬 정책분과간사는 “정부로 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체는 비교적 무난히 잘됐다.그러나 여야의 정권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라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무난’보다는 ‘시행착오’쪽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특히 인수위 출범 초기 사정기관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80년대초 국보위를 연상케 하는 한다’는 홍사덕 정무1장관의 비판이나,인수위 전체 의견이 아닌 ‘인수위발’보도로 혼란이 초래된 일 등은 적지 않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이간사는 이에 대해 “위원 개인의 의견이나 정부쪽의 보고내용이 그대로 인수위 방침으로 전해진 것이 많았고,인수위가 결정하는 기관으로 오인되어 피해를 입은 것도 있었다”고 해명하면서 “인수위원과 정부·언론 모두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반성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혼란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3일 “인수위가 이제는 잘 해나가는 것 같다”고 격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활동초반 ‘현정부의 실정 파헤치기’가 주요임무처럼 비쳐지던 인수위가 14일 감사원에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감사’를 요청한 것도 스스로 활동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일조를 했다는 평가다. 앞으로 인수위는 오는 20일까지 1차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과 함께 새 정부가 추진할 100대 과제를 선정하는 작업을 벌인다.외환위기 극복 등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이전 긴급히 해결하거나 방향을 제시해야 할 22개 긴급현안 과제에 대한 실행계획도 작성한다.이같은 일련의 작업을 바탕으로 김당선자의 집권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그동안 공무원들로 북적이던 인수위 건물은 부처별 업무보고가 끝나면서 조용해지겠지만 인수위원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 외무부 외교통상부로 확대/정부조직개편 초안

    ◎통상부는 중기청과 합쳐 산업부로/8개 부처 통폐합… 예산업무 총리실로 정부조직개편심의위(위원장 박권상)는 11일 정부부처개편과 관련해 3개 초안을 마련하고 이를 13일 전체회의에 상정해 1차 시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조직개편위의 9인 실행위원회(위원장 김광웅)가 마련한 이들 초안은 쟁점인 대외통상외교업무를 별도 기구 대신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확대 개편해 맡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조직개편위의 한 관계자는 11일 “행정쇄신위와 공공정책학회,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실행위에서 3개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하고 “이중 행정쇄신위가 제시한 제1안을 바탕으로 한 초안이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행정쇄신위 개편안은 경제·통일부총리제를 폐지해 재경원을 재무부로,통일원을 통일부로 각각 격하하고 외무부를 외교통상부로 확대개편하는 등 8개 부처를 통폐합하도록 했다.이에 따르면 36개 중앙부처가 34개로 줄고,장관직 4개와 차관직 3개가 폐지된다. 재경원의 예산실과 통계청은 총리실에기획예산처를 신설해 이관하고,대신 조달청과 국세청,관세청을 재경원 산하에 둔다. 외무부와 통상산업부가 나눠맡고 있는 대외통상업무는 외교통상부로 일원화된다.대신 통상산업부는 중소기업청과 합쳐져 산업부로 개편된다. 또 내무부는 총무처와 함께 공공관리부로 전환되고,공보처는 폐지되며 법제처는 국무총리실,보훈처는 보건복지부나 국방부 산하기구로 편입된다. 한편 정부조직개편위는 당초 23일 2차 시안을 확정한 뒤 열려던 공청회를 앞당겨 13일 1차 시안을 확정한 뒤 16일 열기로 했다.
  • 총리실 권한 확대 폭 최대쟁점/정부부처 조직개편 현안 점검

    ◎예산·인사권 등 내각권한 독점 싸고 주목/통상대표부 신설도 부처간 마찰음 소지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위원장 박권상)는 8일 효자동사무실에서 2차 전체회의를 갖고 행정쇄신위와 총무처 등이 마련한 개편안에 대한검토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부부처 개편작업에 들어갔다. 앞으로 정부조직개편위의 활동은 크게 정부 부처 통·폐합과 부처간 기능조정, 공무원수 조정 등의 갈래로 진행된다.그러나 벌써부터 일부 부처간에는 기능조정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등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어 정부조직개편위의 교통정리가 주목된다. 정부가 이날 정부조직개편위에 제출한 개편안의 골자는 2개 원의 축소와 5개 처)의 통폐합이다.재경원과 통일원은 재정부와 통일부로 격을 낮춰 부총리제를 폐지하고 총무처·공보처·법제처·보훈처 등은 총리실,또는 신설될 행정관리부 등에 흡수된다. 부처 통폐합에 있어서 쟁점이 될 사안은 무엇보다 총리실의 확대 폭이 될 전망이다.정부안에 따르면 총리실은 재경원 예산실과 공보처 법제처,그리고 총무처의 일부 기능까지도 흡수하게 된다.여기에 중앙인사위와 금융감독위를 산하에 둔다. 예산권과 인사권 등 내각의 핵심권한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를 절반이하로 축소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내각을 총괄토록 하려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 구상과 다소 방향이 다르다.더구나 초대총리로 자민련 인사가 유력하다는 점에서 집권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향후 역학관계와도 직결된다.때문에 총리실 위상문제는 향후 정부조직개편위의 검토과정에서 가장 밀도있게 논의될 대목이다.경우에 따라서는 대폭적인 수정도 점쳐진다. 통폐합에 따른 부처간 기능조정도 핵심쟁점으로 꼽힌다.대표적인 논란대상은 ‘통상대표부’의 신설여부.외무부는 신설에 반대하고 있다. 작은 정부 구현원칙에 어긋나고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결국 통상외교업무는 외무부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반면 통상산업부는 업무 효율화와 전문성 제고 차원에서 신설해야 한다고 맞서 있다.두 부처의 갈등은 이미 대통령직인수위로 비화돼 통일·외교·안보분과위와 경제1분과위가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통일원과 안기부의 기능조정도 쟁점으로 떠올랐다.김우석 통일원 차관은 지난 6일 “앞으로 정보기관은 본연의 정보수집에 충실하고,대북정책은 정책기관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김차관은 나아가 “남북한 상황을 고려할 때 통일원의 위상은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독자적인 직제개편안을 정부조직개편위에 제출키로 하는 등 통일부로의 격하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중앙부처 개편에 따른 또 다른 관심사항은 공무원 감축이다.97년8월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수는 국가공무원 57만8천여명과 지방공무원 35만5천여명을 합해 93만4천여명.이중 중앙부처 공무원은 전체의 10분의 1인 9만2천명이다. 정부조직개편이 감량화가 목표인 만큼 일정 규모의 감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김당선자측의 시각이다.
  • 총리위상 강화 싸고 양론

    ◎‘우대’ 담긴 개편안에 “청와대도 줄이는데…” ‘2인자’라는 허명속에 대독총리·의전총리라는 자괴감이 없지않던 총리실이 새정부에서 명실상부한 권부로 등장 할 것인가. 일단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후보 시절 이미 총리실의 강화를 공약한데다,현재 당선자 진영이 검토하고 있는 행정구조개편을 위한 각종 시안도 총리실을 크게 ‘우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당선자 진영의 한편에서는 총리실의 위상을 강화하는 작업이 구체화 될수록 ‘그렇게 쉽지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된 현정부의 조직개편안은 총리실에 재정경제원에서 분리된 예산실을 비롯,법제처와 공보처,경우에 따라 정부 인사를 총괄하는 총무처 기능까지 흡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노른자위‘는 모두 차지하는 셈이다. 또 이 안을 만든 사람들이 당선자 진영의 조직개편작업에 다시 참여하고 있는 만큼 당선자 진영의 조직개편위가 택할 수 있는 새로운 개편안 역시 이 범위에서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러나 현재 검토되고 있는 안들에 대해 ‘행정적’으로는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만,‘정치적’인 고려가 되어있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공동정부를 구성하고,99년말까지 내각제개헌을 한다는 ‘합의서’를 상기시킨다. 게다가 김당선자가 비서실을 대폭 축소하는 등 청와대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상황에서 ‘김종필 총리’에 힘을 몰아줄 리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 정부 구조조정위 개편안/총리실 기능 강화 제2권부로

    ◎총무·공보·법제처 흡수… 예산편성권도 보유/부총리제도 폐지… 재경원은 재경부로 축소 정부구조조정심의위원회(위원장 박동서)가 6일 마련한 중앙행정기구 개편안은 총리실의권한강화로 집약된다. 통일 및 경제부총리 제도를 폐지하는데다 총무처,공보처,법제처 등이 총리실에 흡수되거나 산하에 들어와 총리실을 명실상부한 ‘제2의 권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폐지될 부처는 모두 5∼7개 정도가 될 전망이다. 총리실 산하에 설치되는 ‘중앙인사위원회’는 중앙부처 공무원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업무를 담당한다.인사위의 인사위원 5명은 국회 동의를 거쳐 4년 임기로 임명돼 신분보장을 받는다.또 공무원 보수·후생 등의 총무처 업무를 관장한다. 여기다 재경원이 갖고 있던 예산편성권이 총리실 산하의 기획예산처(차관급)로 옮겨와 공정거래위,비상기획위,금융감독위,중앙인사위를 산하에 거느리게 된 총리실의 기능은 대폭 강화된다.재경원은 재경부로 축소돼 금융정책과 국고 및 세제업무 등을 맡게된다. 총무처와 함께 ‘처’단위의독립부서 기능이 총리실로 이관된다.공보처의 국정 홍보 기능은 총리실의 ‘공보실(1급)’로 흡수되고 방송의 인·허가는 정보통신부로,해외공보관은 외무부 또는 문화체육부로 흡수된다. 구조조정심의위는 그러나 내무부·통상산업부·과학기술처 등에 대해서는 최종 결론을 짓지 못하고 복수안을 마련했다.내무부는 조달청과 총무처의 일부 기능을 합쳐 ‘행정관리부’로 통합하는 방안과 ‘자치부’(장관급)로 개칭하는 등의 2가지 방안이 복수 추천됐다. 통상전담부서도 통상산업부와 외무부의 통상조직을 통합한 통상대표부 설치안과 외무부 내에 차관급의 대외통상본부를 설치하는 두가지 방안이 있다.과학기술처는 교육부로 통합하거나 과학기술부로 격상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심의회는 또 기초자치조직인 읍·면·동을 없애 주민의 복지를 담당하는 ‘복지센터’로 개편해 공무원을 감축효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지방행정조직개편안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방행정개편을 취임후 이뤄지는 방안이 유력하다.
  • 반발… 수정… 4차례 우여곡절/법안 통과되기까지

    ◎1차­한은 금통위 하부기관으로 격하/2차­물가책임제 완화·한은지위 원상회복/3차­금통위의결 재경원 재의요구권 부활/4차­금감위 재경원 산하로·한은명칭 유지 금융개혁법안은 그동안 4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다.지난 6월13일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의 심야 3자회동에서 전격 합의한 골격안이 첫번째고 7월10일 강부총리가 수정발표한 것이 두번째다.이후 8월11일 심우영 총무처 장관과 송종의 법제처장이 함께 참석한 5자회동에서 다시 고쳐졌고 지난 13일 국회 재경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표결로 확정된 최종안이 마지막 완성품이다.그러나 금융감독기관의 통합이라는 대명제는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3자회동에서 합의된 1차 내용은 6월16일 강부총리가 발표했다.금융감독기관 통합을 비롯해 한은 총재에 대한 물가책임제와 한은의 금통위 하부기관으로의 지위격하 등 재경원의 일방적인 의지가 반영됐다.그러나 다음날부터 한은과 3개감독기관이 거리로 나서며 반발했고 이총재는 한은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6월19일 신한국당과의 당정협의와 같은달 30일 경제원로회의를 거치면서 법안은 한은의 자존심을 살리는 쪽으로 바뀌었다.7월10일 2차 수정발표에서 강부총리는 물가책임제를 선언적 의미로 톤을 낮췄고 한은 지위도 금통위 산하가 아닌 한국중앙은행의 집행부로 원상회복시켰다. 3개 감독기관의 반발은 여전했으나 법제처 심의에 부쳐져 법안의 개정작업은 착실히 진행되는 듯했다.그러나 이번에는 법제처에서 제동을 걸었다.금통위 의결사항에 대한 재경원의 재의요구권이 삭제된 것과 관련 통화신용정책은 행정권이기 때문에 정부와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며 위헌소지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8월11일 5자회동을 가졌고 재의 심의권은 부활됐다.한은의 위치도 중앙은행의 집행부에서 집행기관으로 다시 바뀌었다.이같은 3차 수정안은 9월초 국회에 제출됐고 그동안 대선정국에 떠밀려 뒷전에 있다 지난주 법안심의를 벌이면서 관심을 받았다.지난 11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반대로 무산위기에 놓였으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12일 “표결로 처리할 경우막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그러나 13일 국회 재경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금융감독위원회를 재경원 산하로 두고 한국중앙은행을 한국은행으로 바꾸는 쪽으로 최종 정리가 됐다.
  • 행쇄위·행정연·상의 심포지엄 주제발표 요지

    행정규제기본법의 다음달 초 시행을 앞두고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와 한국행정연구원,대한상공회의소는 11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규제혁파,새로운 전략과 과제’라는 주제로 공동 심포지움을 개최했다.이날 심포지움에는 고건 국무총리와 박동서 위원장,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정문화 행정연구원장,심우영 총무처 장관,송종의 법제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병균 나산실업 회장,유승민 KDI 연구위원,이계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형만 전경련 이사,최경선 경기도 정무부지사 등이 토론자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주제발표에 나선 안문석 고려대 교수의 ‘행정규제기본법의 내용과 의의’ 및 최병선 서울대 교수의 ‘새로운 규제개혁 추진전략과 과제’의 내용요약은 다음과 같다. ◎행정규제 기본법 내용·의의­안문석 고려대 교수/규제개혁안 공정성 보장이 관건 문민정부출범 이후 불합리한 각종 행정규제가 혁파돼 왔다.신설규제의 범람을 막기 위해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기본법이 제정됐다.그러나 그동안의 규제행정은 기존제도의 틀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앞으로 규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제도적·행정적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된 것이다.행정규제기본법이 제 기능을 하려면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돼야 할 것이다.첫째 법 시행 직후 발족될 규제개혁위원회의 위원들은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돼야 한다.규제개혁행정의 성공은 위원회가 건전한 상식에 따라 공정한 심의를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규제개혁에 성공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배심원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앵글로 색슨국가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둘째로 규제개혁기본법의 핵심인 규제영향평가제도의 성공여부는 비용편익분석에 달려있다.비용분석을 위해서는 경제학,행정학,정책학,회계학 등의 광범위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사무국을 상설화한 것이다.사무국직원들의 전문화를 위해 융통성있는 인사가 필요하다. 위원회에 대한 최고결정권자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위원회의 심의과정이 공개돼야 하고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남겨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감사기구의 긴밀한 협조와 감사제도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국무총리와 민간인의 공동위원장 제도가 실효를 얻으려면 민간인 위원장 중심으로 위원회가 운영돼야 한다.그리고 규제개혁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행정가가 공정한 심판관 또는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새 규제개혁 추진 전략·과제­최병선 서울대 교수/정부 능동성·민간 자율성 결합을 우리나라에서 규제개혁이 부진한 가장 근본적 원인은 목표와 필요성·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지지의 부족과 정치행정적 리더쉽의 빈곤을 꼽을수 있다.규제개혁의 목표를 기업활동의 부담을 경감하고 애로를 해소하는데 두지 말고,시대변화에 부응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공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정부의 역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정부는 종래의 권위적이고 관료적이며 통제지향적인 경제사회 운영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민간은 자율적으로 시장원리를 쫓아야 한다.문제해결을 정부에 미루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정규제기본법의 효과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상설기구로 구성하기 어려운 규제개혁위원회에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위원회의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아니면 총리직속의 장관급 위원회를 설치하고 법에서 정한 위원회는 현재의 규제개혁추진회의로 전환해 부처간 이견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으면 될 것이다.사무기구는 총리실 직속기구로 규제개혁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가진 관료들이 모여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고 일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특히 인사상의 불이익은 물론 규제개혁관련 기구에 근무한 경력이 고위관료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인식이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만연을 초래하는 근본원인이 행정조직의 거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있다.따라서 행정조직을 감축한다고 해도 수요를 조절하지 못하면 규제감축은 어려워진다.규제의 지방분권화는 피할수 없는 대세이다.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간의 규제개혁을 위한 경쟁을 자극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법제정 부처의견 청취 의무화/정부

    ◎입법예고절차 안거친 법령은 반려 앞으로 정부의 입법절차가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9일 졸속입법을 막고 법의 빈번한 수정을 막기 위해 모든 법률은 원칙적으로 입법예고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제업무 운영규정개정안’을 마련,발표했다.그동안은 민생관련 법률을 포함한 법령만 입법예고돼 왔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법령안을 제정할 때 관계부처의 의견청취를 의무화,10일 이상의 의견회신기간을 두도록 했다. 정부는 이같은 관계부처의 협의 또는 입법예고절차를 거치지 않는 법령에 대해서는 법제처장이 이를 반려하도록 했으며 긴급한 법령인 때에는 사전검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한해에 150여건인 입법계획을 모아 매년 3월쯤 관보를 통해 고시하고 입법일정을 바꿀 때는 사전에 알리도록 했다.
  • 퇴임각료 등 22명에 김 대통령,훈장수여

    김영삼 대통령은 7일 낮 지난해 11월 이후 퇴임한 국무위원과 장관급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31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이들중 22명에게는 청조근정훈장이 수여됐다.한승수 전 경제부총리 등 각료를 두번 지내 이미 훈장을 받은 인사는 수여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대통령은 오찬자리에서 “그동안 노고가 많았다.앞으로도 계속해서 문민정부의 이념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청조근정훈장 수상자=이수성 전 총리,강운태 전 내무·안병영 전 교육·김영수 전 문체·정시채 전 농림·안광구 전 통산·손학규 전 보건복지·추경석전건교·신상우 전 해양수산·김한규 전 총무처·김용진 전 과기처·신경식 전 정무1·김윤덕 전 정무2장관,김기석 전 법제처장,황창평·오정소 전 국가보훈처장,박익순 전 비상기획위원회위원장,김기수 전 검찰총장,한영성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위원장,김광일 전 청와대비서실장,이원종·강인섭 전 정무수석.
  • 행정심판위원 16명 위촉

    고건 국무총리는 6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행정심판위원회(위원장 송종의 법제처장) 위원 16명을 새로 위촉하고 위촉장을 수여했다. ◇학계(5명) ▲김철용 건국대 교수 ▲강희갑 명지대 법대학장 ▲홍정선 이화여 대교수 ▲이윤성 서울대 교수 ▲성낙인 영남대 교수 ◇변호사(7명) ▲김학세 ▲노승행 ▲이보환 ▲이진강 ▲이건웅 ▲서정우 ▲황산성 ◇공직자(4명) ▲강신욱 법무부 법무실장 ▲김흥래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김용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구홍일 경찰청차장
  • 재경원/무덥고 답답한 긴 여름/기아·한은법 개정·인사문제 3중고

    ◎기아­정치권 개입에 못마땅한 기색/한은법­연속 수정사태로 모양새 구겨/인사­개각·차관인사서 ‘영전’ 없어 재정경제원이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기아사태와 ‘한국은행법 개정’에다 인사문제로 고민만 늘고 있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은 “기아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며 “기아자동차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고 말했지만 정치권의 개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강만수 재경원차관도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14일 기아자동차를 방문해 말한 것이 그동안 정부입장과 다르지 않다”면서 정치권 개입을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한은법 개정도 연속 수정사태로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강부총리는 이경식 한은 총재,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박성용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장의 ‘4자회담’을 거쳐 지난 6월 16일 정부의 첫번째 안을 발표했다.하지만 강부총리는 지난 11일 이총재,김수석,심우영 총무처장관,송종의 법제처장과의 ‘5자회담’을 거쳐 대통령이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의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수정안을 또다시 발표했다.대통령이 통화신용정책에 책임지지 않도록 재경원이 1차 수정한 지난달 10일의 안에 위헌소지가 있다는 법제처 지적에 따른 것이다.재경원과 법제처가 ‘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인사문제도 심각해 재경원 관리들의 불만이 높다.통상 재경원 차관은 개각때 장관으로 갔지만 이달초에 있었던 개각에서는 예외였다.후속 차관인사에서도 재경원 출신 1급들이 승진하질 못했다.이에 앞서 강경식 부총리는 지난 6월 한보사태로 물러나기로 됐던 장명선 외환은행장의 후임에 신명호 주택은행장을 추천했었다.재경원 출신을 주택은행으로 보낼수 있는 기회였지만 ‘낙하산’인사에 대한 부담때문에 포기해야 했다.‘공기업 민영화에 관한 특례법’으로 담배인삼공사 사장을 공채하기로 한 것도 재경원으로선 불운이다. 고위직만 답답한 게 아니다.당초 부이사관급 과장중 4∼5명을 지방자치단체에 보내 그 만큼 승진시키려 했지만 무산된 상태.강경식 부총리가 외부에 있는 국장급이 원하면 가도록 했기 때문이다.또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통합후 해외연수에나섰던 과장급 20여명이 이달말에 대부분 복귀한다.그러나 그들이 갈만한 자리는 별로 없다.조직이 확대된 공정위에 국장급 2명과 과장급 3명이 나가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느껴야 할 판이다.올여름 재경원의 체감온도는 이래저래 높다.
  • 전국50곳에 사이버기자 신고센터/관계부처 대책회의

    ◎추석·대선 앞두고 전담수사반 활동 강화 정부는 14일 남정판 공보처차관 주재로 내무·노동부,공보·법제처,대검찰청,경찰청,국세청 등 관계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사이비언론 대책회의를 열었다. 추석연휴와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앞두고 사이비언론의 발호를 원천 봉쇄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중앙과 지방 검찰청과 경찰청에 설치된 ‘사이비언론 수사전담반’의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특히 수도권에서는 연말까지 특별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각 부처의 보고내용을 소개한다. ▲공보처=지역별 사이비언론 동향파악을 위해 각 지방의 행정기관과 주요 사업체를 대상으로 서면조사를 정례화한다.각 지방에서도 자치단체·검찰·경찰관계자들로 지방단위 사이비언론대책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내무부=시·도 공보관실,지방 검찰청,언론중재위원회 등 전국 50개기관에 설치되어 있는 ‘사이비기자 신고센터’에 대한 안내와 홍보를 강화한다. ▲대검찰청·경찰청=사이비언론사범은 지난 94년 40명을 붙잡아 32명을 구속한데 이어 95년에는 76명 적발에 49명 구속,지난해는 158명 적발에 100명을 구속하는 등 갈수록 늘어나는 양상이다.올해도 이미 73명을 적발해 41명을 구속시켰다.앞으로 사이비 언론 문제가 특히 심각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과 환경 교통 건축 등 취약분야에 대하여는 검찰과 경찰이 합동으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 법논리 사라진 금융개혁/백문일 경제부 기자(오늘의 눈)

    지난 6월 13일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자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중앙은행과 금융감독 개편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더이상의 만남은 없을 것이다”.이날 밤 ‘4자회동’에서 이 문제에 전격 합의한 뒤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다.그리고 3일 뒤인 16일 보란듯이 기자회견을 갖고 금통위와 한은을 분리하는 내용의 정부안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거세게 반발해도 법논리,즉 무자본 특수법인에게 행정권을 넘겨줄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줄곧 견지했다.법체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한은의 반발을 한마디로 일축했다.그러더니 7월7일 강부총리 김인호 경제수석 이경식 한은총재 박성용 금개위 위원장이 다시 만났다.결론은 180도 바뀌어 공법인인 한은에게도 행정권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역시 3일 뒤인 10일 이같은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강부총리는 법제처에서 위헌 논란이 있을지 모르나 이 문제로 ‘4자회동’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한달전의 말과 똑같았다.위헌 소지가 있으나 한은이 해결할 것이라고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다. 그로부터한달 뒤인 11일 강부총리는 다시 5자회동을 가졌다.박금개위원장 대신 심우영 총무처장관과 송종의 법제처장이 참석했지만 4자회동의 연장선상에 있다.이번에는 금통위 결정에 대한 재경원의 재의 요구를 금통위가 아닌 대통령이 최종 결정토록 했다.다소 미흡하지만 행정권의 최종책임은 공법인인 아닌 정부에 있다는 처음 논리로 되돌아 갔다.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 됐을까.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밀실회동’의 산물때문이라는 지적이다.중앙은행 중립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몇사람이 만나 떡 주무르듯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몇몇이 모여서 논의했기에 ‘적당한 타협과 절충’이 가능했고 반발할 때마다 다시 만나 고치면 된다는 발상이 문제였던 것이다. 재경원이나 법제처가 그토록 내세우던 법논리는 어디로 갔나.제도개선은 주변 여건을 감안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재경원 고위 관계자의 푸념섞인 변명이 우리 정부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 대통령에 금통위 결의 거부권/한은법 개정안 확정

    ◎국회 요구땐 한은총재 출석답변 정부는 통화신용정책과 관련,금융통화위원회가 재정경제원의 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최종 확정,14일 차관회의에 올리기로 했다.〈관련기사 10면〉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이경식 한국은행총재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 심우영 총무처장관 송종의법제처장 등 5명은 11일 상오 서울 롯데호텔에서 조찬회동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이날 회동은 법제처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통화신용정책에 책임을 지지 않도록한 지난달 10일 재경원의 한은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데 따라 한은법 재수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뤄졌다. 정부는 그러나 법제처가 제시한 재경원의 한은 정관변경 승인권을 비롯해 금통위 회의소집권 및 의안제안권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다만 국회나 관련 상임위원회가 특별히 요구하는 경우 한은 총재가 국회에 출석·답변하도록 해 정부정책과의 연결고리를강화했다. 금통위 위원의 신분과 관련,국가 공무원의 신분을 갖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는 대신 형법이나 기타 법률의 벌칙을 적용할 때 공무원으로 간주키로 합의했다.따라서 임금지급은 공무원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와 함께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당초안대로 장관급으로 하되 중앙행정기관으로 하기는 곤란하다는 총무처의 의견에 따라 금감위 위원장은 국무위원 신분을 갖지 않도록 합의했다.정부는 다음주 국무회의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 이회창 후보 선출­인맥과 조직

    ◎정·관·학·언론계 브레인 두루 포진/공직·KS 8인방­이흥규·황영하씨 등 레이스 전부터 활동/국회·위원장그룹­김윤환 고문·강재섭 의원 등이 주축 이뤄/공보팀·청하회­이세중 전 변협회장·고흥길 특보 등 활약 이회창 후보는 ‘인복’을 타고 났다.그만큼 그의 주변에는 유능하고 다양한 인재들이 포진해있다.‘이회창사단’은 이후보가 경기고(49회)와 서울법대(11회),사법고시(8회),대법관,중앙선관위장,감사원장,국무총리,당 대표를 거치면서 다진 인맥과 조직이 주축을 이룬다.이들은 이번 경선과정에서 이회창후보 경선대책위라는 울타리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보가 공직시절 인연을 맺은 측근인사 그룹은 이흥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황영하 전 총무처장관,안동일 변호사,유경현 전 평통사무총장,방석현 서울대 교수가 핵심멤버다.이들을 포함해 황우여 의원과 진경탁 특보,진영 변호사 등 ‘8인방’은 대선캠프가 차려지기 전부터 이대표의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변호사 사무실에 모여 주례회의를 가졌다. ‘이회창사단’의 살림을 책임진 황 전 장관은 이후보가 문민정부 초기 감사원장에 발탁되었을때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함께 근무했다.4·19혁명 참여자들의 모임인 ‘4월회’ 결성을 주도한 안변호사는 지난 90년 경기고 출신 법조인 모임인 ‘경기법조회’의 초대 총무를 맡아 이후보를 고문으로 추대했다.조직 실무를 담당한 유 전 총장은 10대부터 전남 순천에서 내리 3선을 했으며 6공초기 민정당 대변인을 지냈다.이가운데 황 전 장관과 안변호사,유 전 총장은 박찬종 후보와 경기고 54회 동기로 ‘경기고­서울법대(KS)라인’의 핵이다.경선대책위의 홍보­기획업무를 담당한 이 전 실장은 71년 국무총리실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24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관료출신으로 삼성전자 고문을 지냈다. 정책팀은 ‘KS라인’인 진영 변호사가 이끌었다.진변호사는 지난 95년 30,40대 변호사들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인사다.박세훈·한종기 박사가 경제­정치분야를 나눠 맡았고 연설문은 김동선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얻은 ‘21세기 교육문화연구소’ 허경회 소장 등이 주로 작성했다. 지난해 7월19일 구성된 ‘국회의원 이회창후원회’도 주요 인맥이다.최초 발기인 18명 가운데 전직 장·차관 출신만도 9명이다.후원회장인 정재석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김두희 전 법무장관,윤동윤 전 체신장관,김시중 전 과기처장관,황영하 전 총무처장관,이충길 전 보훈처장,황길수 전 법제처장,유경현 전 평통사무총장,이흥주 전 총리비서실장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경선과정의 ‘주역’들은 역시 150명에 육박하는 원내외 위원장들이다.특히 김윤환 고문과 강재섭 의원은 ‘TK(대구경북지역)’의 판세를 이후보쪽으로 기울게 함으로써 대세몰이를 도운 주요 공신으로 꼽힌다. 선대위 상황실장이었던 윤원중 의원도 특유의 상황판단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이후보의 원내 인맥들은 조만간 단행될 당직개편에서 전면에 나설수 있을지 관심사다.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연말 대선을 앞둔 이후보가 당내 화합 차원에서 다른 후보측 인사들을 대거 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공보팀은 주로 기자 출신들이 맡았다.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 고흥길특보를 중심으로 연합통신과 세계일보 출신인 구범회 윤창중씨 등이 선대위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전 한겨레신문 정치부 차장인 이병효 보좌관은 의원회관을 중심으로 지지운동을 벌였고 당료출신의 장다사로씨는 이대표의 ‘그림자’ 역할을 수행했다. 경기고 동기 23명이 만든 청하회도 후원그룹이다.오성환 전 대법관·이세중 전 대한변협회장·배도 효성그룹고문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새미준)’은 이후보를 지지하는 자발적 시민단체로 꼽히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