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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稅制 개편안」 부문별 요약

    ■기업관련 세제 개편 지주회사에 대한 세제지원 재벌들의 지주회사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세제지원 방안이 마련됐다.지주회사는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이 주된 수입이기 때문에 자회사의 지분율이 80%(상장·등록법인 50%)를 넘으면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소득의 90%를 이익으로 더하지 않아 그만큼 법인세를 깎아준다.자회사 지분율이 80%이하면 배당소득의 60%를 이익으로 잡지 않는다.그러나 자회사가 다른 계열사 주식 및 다른 법인의 주식을 1%이상 갖고 있거나차입금이 많을수록 이익금으로 인정해주는 규모가 준다.특수관계에 있는 계열사들이 주식을 공동출자해 지주회사를 설립해도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 과세를 연기해준다.또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이 51%가 될 경우 취득세를 면제해준다. 금융기관 대손충당금 손금산입 특례기한 연장 금융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위해 올 12월31일까지 적용키로 했던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 손비인정 특례시한을 1년간 연장한다. 현물출자·법정관리기업에 대한 과세특례 올해말까지 법인이 현물출자해단독 또는 공동으로 신설법인을 설립할 때 현물출자 법인에 대한 법인세 과세이연등의 지원을 하고 신설법인에는 취득·등록세를 면제하는데 적용시한을 폐지해 영구제도화했다.현재 법정관리·화의 등에 들어간 기업의 채무를면제해준 금융기관에 대해 그 액수를 비용으로 처리,세금을 덜내게 하는 제도도 적용시한을 폐지했다.이와함께 정리절차 개시,화의 개시,파산 신청을한 대기업의 주주가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의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자산을 증여할 때 협력업체들이 받은 재산을 3년후에 3년동안 나눠 소득에 포함시키도록 해 세부담을 덜어줬다.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으로 협력업체를 지원하는데 대한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이다. 부가가치세제 납세편의를 위해 예정고지 대상자를 현재 간이과세자·과세특례자,연간 매출액이 1억5,000만원 미만인 개인 사업자에서 2000년1월부터는 개인사업자 전체로 확대된다.12만 7,000명 정도가 늘어난다.예정고지란 6개월 단위의 정식 과세기간 중간에 임시 납부기간이 있는데 소규모 사업들의 경우 실제 매출과는 관계없이 직전 과세기간(6개월 단위)에 납부한 세액의절반을 내도록 해 연 4회 부가세 신고에 따른 납세자의 불편과 세무공무원의업무량 과다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다. 물품을 사고 난 뒤에 받은 세금계산서는 지금까지 매입세액에서 공제되지않았는데 앞으로는 같은 과세기간내에만 세금계산서를 받으면 공제를 받을수 있다./김균미 기자 kmkim@■양도소득세 세무서장이 기준시가에 따라 세금을 결정해 납세자에게 이를 고지하는 정부결정제도에서 납세자가 스스로 기준시가로 양도세득세를 세무서에 신고하는신고납부제로 바뀐다.단,1년이내에 양도하거나 미등기양도,투기거래,고급주택 등은 실가로 신고해야 한다. 내년부터 시지역에 있는 전용면적 50평이상 아파트와 건평 80평이상 또는대지 150평이상의 단독주택은 모두 부동산양도 신고가 의무화된다.등기신청을 할때 매매계약서,부동산을 산 사람의 거래사실 확인용 인감증명서를 첨부해 주소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부동산양도 신고를 해야 한다.부동산양도신고를 하면서 세금을 내면 세액의 15%를 공제받지만 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액공제를 못 받는다. 고급주택에 대한 양도소득가액을 허위로 신고할 경우,허위신고분에 대한 가산세율이 현재 10%에서 20%로 높아진다.납부시한을 넘길 경우 현재는 하루만 늦어도 가산세가 10% 붙는데 내년부터는 하루에 0.05%씩,연 18.25%를 물린다. 국세청장이 기준시가를 고시하는 대상건물에 현재 공동주택에 2001년 1월부터는 상업용 건물과 단독주택(고급주택 포함)을 추가한다.골프회원권에 대한 양도·취득가액을 현재 기준시가로 하던 것을 실가로 과세한다.이는 2000년 1월부터 앞당겨 실시한다./김균미 기자■관세제도 개선 원유와 석유제품에 똑같이 5%의 관세를 부과하던 것을 석유제품 판매업 개방을 계기로 차등화한다.이에 따라 휘발유 등유 경유 방카유 등 석유제품의관세율을 현행 5%에서 8%로 올린다. 재경부는 석유제품의 관세율 인상이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공식품 완제품의 관세율이 8%인데 비해 현재 원료농산물의 관세율은이보다 훨씬 높다.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입에 의존하는 토마토 페이스트 해바라기씨유 유채유 아몬드 등 8개 농산물 관세율을 현행 8∼50%에서 5∼10%로 낮췄다. 반도체 및 장비에 대해 2000년부터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현재 8% 의 관세가 부과되는 폴리실리콘 블랭크마스크 포토마스크 금속도금기 흑연도가니 석영도가니 여과기 납볼탑재기 등 수입에 의존하는 8개 반도체부품의 관세율을 3%로 낮춘다. 유사제품간 관세율을 조정,수입되는 컴퓨터설계도 테입형 리드프레임은 관세가 없고 발전기용 디젤엔진과 재생스테이플섬유의 관세는 8%에서 4%로 내린다. 관세가 부과되는 이사화물에 대해 여행자 휴대품과 마찬가지로 신고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내년부터는 20%의 가산세를 물린다. 정부가 부과한 관세에 불복할 경우 현재는 심사청구와 심판청구를 거쳐야만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이중 하나만 거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수출물품에 대한 세관의 검사수수료가 면제되는 장소에 세관장이 지정한 장치장,세관검사장 이외에 보세장치장이 추가됐다. 김균미기자 ■특소세 개선안 세제개편에 따른 일부 특별소비세 폐지로 해당 품목의 가격은 내년부터 10∼30%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특소세 폐지품목에는 청량·기호음료 설탕 커피 코코아 자양강장품 등 음식료품과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 VTR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 가전제품,화장품,크리스탈·유리제품,피아노,스키·골프용품,스키장·퍼블릭골프장 이용료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프로젝션TV나 디지털TV 등 1,000만원대에 달하는 고가 TV는 이번 폐지대상에서 제외됐다. 재정경제부의 ‘특소세 개편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자료에 따르면 퍼블릭골프장(18홀,주말)입장료가 7만원에서 4만8,376원으로 30.9%가 인하된다.인하폭이 가장 크다.이어 볼링 볼 가격이 10만원에서 7만1,900원(28.1%),스키장입장료가 4만원에서 3만1,746원(20.6%)으로 떨어져 가격인하폭이 클 전망이다.또 태평양 헤어스프레이(300㎖)는 3,750원에서 3,290원(12.3%),삼성 25인치 컬러TV는 66만2,400원에서 58만2,900원(12%),코카콜라(355㎖)는 400원에서 354원(11.5%)으로가격이 인하된다. 추승호 기자 chu@
  • ‘작은권리 찾기’ 3년째 법정투쟁

    “돈 때문이 아닙니다.법원의 잘못된 점을 고쳐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찾자는 것입니다.” 법원을 상대로 3년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우종락(57·서울 중구 인현동2가 192)씨.우씨는 25일 국가를 상대로 2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서울행정법원에 냈다.법무부 본부배상심의회가 내린 배상금지급 재심신청 기각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도 함께 냈다. 우씨가 법전을 뒤적이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내게 된 것은 법원 소장양식의 ‘사소한’ 잘못 때문.지난 96년 말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을 내려고 서울지법을 찾았던 우씨는 소장 양식에 쓰여 있는 ‘지연손해금 연 5%’의 뜻을 잘 몰라 공란으로 비워두고 소장을 작성했다. 우씨는 결국 97년 초 “집주인은 전세금과 이에 대한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승소판결을 받아냈다.그러나 뒤늦게 20%의 지연손해금을 날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소를 제기한 날부터 소장부본을 받은 날까지 연 5%,소장부본을 받은 다음날부터 돈을 완납할 때까지 연 25%의 비율로지연손해금을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우씨는 “소장양식에는 ‘지연손해금은 5%’란 표현뿐이었다”며 재심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소장양식에 인쇄된 이자율을 수정하는 등 적극적인 의사표시가 없어 관행상 5%의 비율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우씨는 지난해 항소를 거쳐 대법원까지 상고했지만 패소했다.법무부 산하 본부배상심의회에서도 “법원 비치 서류는 민원인 소장 작성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인쇄된 문구는 어떤 구속력도 없다”며 지난 7월 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그러나 97년 말 소장양식의 지연손해금 부분을 소장부본 송달일을중심으로 ‘연 ○%’와 ‘연 ○○%’로 슬그머니 수정,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우씨는 “법을 잘 모르는 민원인들이 법원에서 주는 서류양식에 맞춰 기록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이번에도 지면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국민의 작은 권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換亂사건 1심 판결문 요지

    유죄부분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들은 진도그룹 및 해태그룹에 대한 부당대출압력 부분에 대하여 대출압력을 넣거나 직권을 남용할 범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법정에서의 피고인들의 진술과 관련증인들의 증언을 비롯,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충분히 유죄로 인정됩니다. 피고인 강경식은 개인적 친분으로,피고인 김인호는 주위의 청탁 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진도그룹이나 해태그룹의 담보제공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엄밀한 검토 없이 채권 은행장들에게협조융자를 지시했습니다.피고인들이 금융권을 비롯,경제계 전반에 걸쳐 지닌 영향력에 비춰 해당 은행장들에게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 명백합니다. 다만,피고인들은 협조융자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이득을취하지 않은 점, 진도그룹의 부도로 인한 채권은행단의 고려도 협조융자의실행에 작용한 점,피고인들이 오랫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점 등의 정상을 참작, 자격정지형에 처할 것이되 형의 선고를 유예하기로 한것입니다. 외환위기 책임에 관련된 무죄부분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피고인 강경식의 기아사태 처리와 관련된 직권남용에 대한 판단합니다. 피고인이 윤증현을 통해 종금사들로 하여금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한 동의 여부 의견조회시 부동의하도록 지시,한솔종금의 대표이사인 한동우가 동의 의사를 철회하고 부동의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됩니다.결과적으로 한솔종금한동우로서는 권리행사를 방해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인 강경식에게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권리를 방해받은 결과외에 더 나아가 피고인 강경식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고인이 당시 상황에서 기아사태를 국가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조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채권은행단을 비롯,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해 그 결정사항을 채권단에게 정부의 의견으로 전달하였던 것으로 판단됩니다.피고인이기아사태를 정부차원에서 대처함에 있어서 정책대응상의 오류로 인해 이를조속히 처리하지 못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부분공소사실에 있어서 피고인에게 직권을 남용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피고인 강경식의 외환시장 개입 중단지시와 관련된 직권남용의 점에 관해판단합니다. 피고인은 97.10.28.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고 다만 당분간 환율운용을 한국은행에 맡기기로 했을 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공소사실과 같이 피고인이 금융정책실장 윤증현에게 한은이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보면 피고인으로부터 직접 지시를받았다는 윤증현이나 그로부터 순차적으로 다시 지시를 받은 원봉희,김석동은 모두 피고인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은 “한은총재와 협의해 환율운용을한은이 책임지고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하기로 했으니 그리 알라”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변소에 부합한다 할 것입니다. 또 당시 외국환관리법이나 외국환관리규정에 의하면 재정경제원장관은 위의 각 규정에 근거,한은의 외환시장 개입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개입중단을 포함한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때문에 한은총재의 외환시장 개입에 관한 권한이 방해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피고인들의 외환위기 보고와 관련된 직무유기의 점에 관해 판단합니다. ■먼저 피고인들의 10.29. 보고와 관련된 직무유기에 관해 살핍니다. 피고인들이 97.10.29. 보고 당시의 경제상황을 외환위기로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는상태로 인식하고도 이를 은폐, 축소보고하는 식으로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또 피고인들이 외환시장 거래중단사실을 ‘외환시장의 마비’라는 표현으로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고의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한 것이라 할 수없습니다. ■피고인 김인호의 97.11.8 및 피고인들의 11.10 대통령에 대한 외환사정에관한 보고와 관련된 직무유기에 관해 살펴봅니다. 검찰은 11.8 및 11.10 보고가 축소보고라는 점을 전제로 피고인들은 97.11.8 쯤에는 당시의 외환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IMF에 구제금융지원요청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그러나 재정경제원은 피고인 강경식의 지시에 의해 자산담보부 증권 등의 방안을 검토했고,피고인들과 재정경제원·대통령비서실·한은 실무자들은 11.13에 이르러서야 IMF 이외의 다른 대안들은 당장의 외환위기를 막을 수단이 되지 못하므로 IMF에 자금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11.10보고 당시까지 피고인들을 IMF 구제금융을 당시 외환상황에 대처하기 위한선택가능한 유력한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하였던 것이지 다른 대안의 검토 없이 당장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은 아니었다고판단됩니다. 검찰은 피고인 김인호가 11.8 보고 당시 대통령으로부터의 질책·책임문제·명예실추 등을 우려해 외환위기의 실상을 호도하고 축소보고하였다고 주장하지만,김인호가 11.8 대통령에게 경제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제에 어려움이있으나 세계적인 현상이고 강경식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등으로 사실을호도해 축소보고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인정할 증거도 없습니다.■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피고인 강경식이 11.10 외환위기의 심각성을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하여 봅니다.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강경식이 IMF 구제금융 지원요청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 11.10 보고시 IMF구제금융 지원요청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보고하지않았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근거로 첫째,11.9 대책회의에서 이경식,정규영 등이 IMF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자 강경식이 “어떻게 창피해서 IMF에 가느냐.내 재임 중에는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하나,정규영 이외의 증인은 이와 같은 말을 들은바 없다는 것입니다.둘째,11.10 보고서에서 ‘IMF와의 협의’ 항목을 삭제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이에 관련된 중인들의 증언은 모두 추측에 불과하며 추측만으로 강경식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강경식의 기아사태 처리와 관련된 직권남용의 점,피고인들의대통령에 대한 외환위기 보고와 관련된 직무유기의 점,피고인 강경식의 IMF발표 계획 인계의무와 관련된 직무유기의 점에 대하여서는 각 무죄를 선고합니다. ■피고인 강경식의 주리원백화점 부당대출 압력에 관해 판단합니다. 검사가제출한 증거와 송기태,허종옥에 대한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이석호가 피고인과 윤증현을 통해 조흥은행에 대출을 부탁하였으나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자피고인의 퇴직후 평소 친분이 있던 송기태,허종옥 전무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한 결과,대출이 이루어진 것이지 피고인이 윤증현을 통해 장철훈 은행장에게지시하였기 때문에 대출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입니다.이 부분도 무죄를 선고합니다.
  • 윤관 대법원장 19일 마지막 재판

    “99다23383 수표금사건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오는 9월24일 퇴임을 앞두고 있는 윤관대법원장은 12명의 대법관이 배석한 가운데 마지막 판결을 내렸다. 윤 대법원장은 단 4분 만에 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지만 자신의 판사생활을 마감하는 재판이라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윤 대법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2명의 의견이 엇갈린 이 판결의 다수의견 취지를 읽어내려간 뒤 소수의견까지설명하는 것으로 마지막 재판을 끝냈다. 윤 대법원장은 6년간의 임기 동안 민사 50건,형사 21건,일반행정 17건,세무 12건,특허·가사 각 2건 등 104건을 선고했다.이중 57건을 기각했으며 46건을 파기환송하고 나머지 1건을 이송했다. 윤 대법원장은 특히 104건의 전원합의체 판결 중에서 두 차례 소수의견을제외하고 모두 다수의견을 피력했다.그는 그동안 무노동무임금사건과 삼청교육대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사건,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사건,금융실명제 위반사건 등 시대흐름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판결들에 관여해 왔다. 이종락기자 jrlee@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30) 김지하 담시 五賊(중)

    편집장과 시인은 발행인 앞에서 서로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려고 좀 서투르게 만지기도 하는 등 이 작품이 빛을 보게 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오적’을 읽어 내려가던 부완혁 발행인은 웃음을 억제치 못하면서 “김선생이 알아서 처리 하시죠”라며 미뤄 결국 70년대의 문제작은 바로 5.16특집호에 군부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여러 글들과 함께 실리게 되었고,그 인기만큼 빨리 법정에 서게 되었다.한 신문은 사설에서 “담시는 일종의 광가(狂歌),광언(狂言)에 속하는 것”으로,“맹랑한 헛소리”라고 깔아뭉갰다. “그 담시가 우리 국가와 국민 전체를 도매금으로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면,그것은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북괴도당에 부종하려는 결과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목청을 돋군 이 사설은 계속하여 “전문되는 바에 의하면담시 작자는 북괴 도당의 대남정책인 ‘전면 부정’의 결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붓재주를 놀리는 피해망상에 젖은 노이로제 환자였다고 한다”는,마치 구소련의 정신병동 수감정책과 같은 논리를 폈다.“그작자는 무당이 내렸거나 귀신자귀에 홀린 정신 소유자가 아니면,그 작품은 소위 무당들의 ‘대감놀이’ 넋두리나 미숙한 판소리 흉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문학작품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극언을 해댔다.이쯤 해도 좋으련만 이 글은“병든 작자의 광언같은 것을 인용 게재”한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대해서도 “편집 양식을 일탈한 일”이라고 펄펄 뛰었다.참고로 밝히노라면‘민주전선’은 군부독재 시절에 차마 군부의 부패상은 치고 나설 수가 없어 ‘오적’ 중 ‘장성’에 해당하는 부분만은 삭제하고 나머지만 실었다.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열심히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필화사건 때마다의 사설집만 뽑아 그 필자를 밝혀 내노라면 함부로 붓끝을 못 놀릴 것이다. 어쨌건 ‘광언’ ‘오적’의 ‘노이로제 환자’ 시인을 가둔 당국은 세상이 이 신문 사설처럼 취급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전혀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이미 남정현의 ‘분지’로 필화의 경험이 풍부해진 문단에서는 유파와 세대를초월하여 석방의 목소리가 커졌고,시는 삽시간에 전국 단위에서 지구촌으로번져나가 김지하는 한국에서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문인이 되어버렸다. 조태일 시인이 주관하던 시전문지 ‘시인’을 통해 1969년 갓 시인이 된 김지하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서울대 출신을 비롯한 극소수였으나 ‘오적’사건은 그를 분단 이후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급부상하게 했다.더구나 막상 공판이 열리고 보니 그는 ‘노이로제 환자’도 ‘무당’도 아닌 탁월한 이론가에다 말솜씨까지 갖춰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변호인이 질문만해주면 되었다.그렇다고 변호인이 들러리였다는 뜻은 아닌 것이 당대의 민권 변호인이었던 태륜기·홍영기·한승헌을 비롯한 여러 변호사가 법정을 뜨겁게 달궜고,방청석에는 함석헌·장준하·안병욱 제씨를 비롯한 문인,민주인사,운동권 출신들이 총집결했다. 대법정에서 열렸던 ‘오적’ 공판은 그의 익살과 달변으로 마치 만담장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 때문에 언제나 초만원이었다.나중에 ‘다리’지 필화 때무죄를 언도하여 화제를 일으켰던 목요상 판사(현 한나라당 의원)가 맡았던이 재판은 나중에 네 구속자와 분리하여 김지하만 별도로 심리하게 되었는데,3개월 쯤 지나자 폐결핵 악화로 김시인은 병보석 되었다.다른 네 구속자들도 시차를 두고 하나씩 풀려나 사건이 마무리 되는가 싶었으나 그 해 9월 26일 유서 깊던 ‘사상계’는 문공부로부터 등록 말소처분을 받았고,김지하 시인은 간헐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이 재판을 계속 받아야만 했다. 김시인은 5.16이후 한국사회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면서 그 최고수를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란 다섯 직종으로 지목했다.그는 이부패의 직종을 알기쉬운 한글로 표기한 게 아니라 웬만큼 유식한 인사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도록 옥편을 갖다놓고 같은 음을 찾아 이두식으로 꿰어 맞췄는데,되도록 개견변(犬 )이 들어있는 한자를 선호했다.다섯 도둑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같은 짐승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사설] 삼성車부채 조속 해결해야

    삼성자동차 주요채권단이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위한 추가부담을 거부한삼성그룹에 대해 다음주부터 금융제재를 하기로 결정,주목을 끈다.채권단은삼성그룹에 대해 1단계로 신규여신 중단,2단계로 만기여신 중단과 총수 개인 보증,3단계로 수입신용장 개설과 외국환업무 취급중단 등 제재조치를 발동하고 이건희(李健熙)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별도로 진행하기로했다.삼성그룹에 대한 이번 조치 가운데엔 무역금융 중단이 포함돼 있어 전례없는 강력한 금융제재로 평가된다. 이번 조치는 삼성그룹이 삼성차의 추가 채무보증을 기피한 데서 비롯됐지만 그 파장이 재벌 구조조정 및 대외신인도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게 한다.삼성그룹은 지난 6월 30일 일방적으로 빅딜협상을 중단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삼성차 빚보증용으로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내놓으면서 주식가치가 부채총액 2조8,000억원에 미달될 경우 추가출연을 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한 바 있다.삼성그룹은 채권단이 구두약속을 문서로 제출해달라고 요구하자 ‘시간 끌기 작전’을 하다가 거부하고 말았다. 삼성그룹은 자동차 빅딜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지난해 12월 7일 정부·채권금융기관·재계 간의 빅딜합의를 백지화했기 때문이다.신용경제사회에서 개인간의 합의도 충실히 지켜져야 하는데 국내 상위 재벌이 국민과의 약속을 제멋대로 파기한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은 또다시 채권단은 물론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다.삼성그룹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채무액에 미달할 경우 추가출연을 하겠다고 밝히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국민과의 약속을 두번이나 어기고도 ‘끝없는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을우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또 삼성그룹은 신용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도 보증을 거부함으로써 금융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중소기업은 담보가 없으면 돈을빌리기가 힘든데 재벌은 신용으로 돈을 빌리는 특혜를 누리고도 사후에 빚보증마저 서지 않겠다고 버티는 ‘오만한 행동’에 경악을 금할 수없다.우리가 그동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번 사태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할 수 있다는 한국 재벌의 특수한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재벌그룹을 해체하라는 시민단체와 일부국민여론이 본격적인 행동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이는 새로운 재벌개혁의시발점이 될 수가 있다.삼성그룹은 이 점을 직시하고 삼성차의 부채처리문제를 이번주 내 매듭지을 것을 촉구한다.
  • 황산피습 사망 태완군 PC통신 애도 줄이어

    ‘태완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황산피습 사건의 피해자인 김태완(6·대구시 동구 효목1동)군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PC통신에는 태완군의 명복을 빌거나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한다’며 경찰을 독려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천리안 ID WON313은 “태완이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둔 부모로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부디 못다한 꿈을 이루길 빈다”고 기원했다. MUD4030은 “태완아,이승세상 아쉽고 한맺힌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이승길돌아보지 말고 저승길 마음 편히 가렴.부모님이 보고싶고 사무치게 그립더라도 슬피 울지 말고 마음 편안히 가라”고 빌었다. 범인을 원망하거나 경찰에 범인검거를 촉구하면서 반드시 중형에 처할것을강조하는 글도 쇄도했다. SHIN190은 “이번 사건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또 모방범죄가 나올 지도 모른다.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혼자 가는데 누가 갑자기 황산을 뿌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고 반문했다.LINCOSPE는 “어린이를 상대로 한 모든 범죄는 법정최고형에 처하고공소시효도 무기한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우리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이상 우리도 같은 죄인이다”(CCJ1954) “범인을 꼭 잡아서 똑같이 황산을 덮어씌워야 한다”(JOVIGIRL) “수사권 독립을 외치는 경찰이 이런일 제대로 해결 못하느냐”(막차)등의 의견들도잇따랐다. 또 지난달 태완군의 사연을 PC통신에 올렸던 외삼촌 박재성(38)씨도 다시글을 올려 “다시는 아이들에게 이런 잔인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에게주어진 의무를 지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태완군이 치료를 받았던 경북대병원은 9일 태완군 부모가 미리 냈던진료비 630만원 중 300만원을 가족들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태완군 가족들은 10일 오전 태완군을 화장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모 사찰에 안치할 예정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美담배사 피해보상 평결…2,000억달러 지출 예상

    미국 플로리다 흡연자 50만여명이 5대 담배회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배심원단이 “흡연으로 유발되는 각종 질병에 대해 담배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평결을 내려 미 전역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마이애미 순회법원 배심원들은 7일 담배회사들이 페암등 치명적 질환을 유발할수 있는 유해제품을 판매한 점이 인정돼 원고측에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이에 따라 대표 고소인 9명이 최소 2,00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는 이번 소송에서 담배업체는 최악의 배상액을 지출해야 할 위기에 놓이게됐다. 해당 담배회사는 필립 모리스,레이놀즈 토바코,브라운 앤드 윌리엄슨 토바코,로릴라드,리젯 등 굴지 업체들을 망라하며 담배관련단체 2개도 피고 명단에 올라있다. 지난 94년 시작된 이번 소송은 흡연자들의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 움직임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첫번째 사례.원고들은 담배회사들이 질병 유발,중독성 등 흡연의 위험성을 속였고 담배를 순하게 만들려는 연구를 등한시했을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광고에 노출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측 변호인단은 담배가 질병의 직접 원인이라는 증거가 전혀없으며 담배회사들은 필요한 모든 안전조치를 강구했고 흡연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강변했었다. 배심원단이 평결문을 읽어내려가자 피해자 및 사망자 유족 등 원고측은 법정 곳곳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표했다. 담배 유해판정이 내려짐에 따라 소송은 9명의 대표 고소인에 대한 배상액을산정하는 2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들에 대한 보상액이 결정되면 나머지 원고 50만명의 보상을 위한 개별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빅 파이’ 현대만 먹었다

    ‘현대·삼성은 남는 장사,대우는 본전,LG는 밑지는 장사’. 대기업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빅딜 결산서’를놓고 5대 그룹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삼성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라는 ‘묘수’를 통해 삼성차라는 ‘혹’을 떼면서 동시에 삼성생명 조기상장의 길을 터 일석이조의 이득을 얻게 됐다.그러나 삼성생명 상장에 따른 엄청난 시세차익과 생보사 상장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비난 여론이 들끓어 극복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현대는 빅딜에선 재미를 봤지만 다른 돌출변수로 벌어놓은 점수를 까먹는꼴이다.LG의 반도체 사업을 인수,한때 재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빅딜의 수혜자로 인식됐다.그러나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이 터지면서 최고 경영자가검찰에 고발되는 등 그룹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금강산 사업도 관광객 억류사건이후 사실상 휴업상태에 들어갔다.사업재개를 놓고 정부와 불화조짐을 보이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다. 이번 빅딜에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은 그룹은 LG.한때 총수가 ‘칩거’에들어가면서까지정부와 줄다리기를 했던 ‘알짜배기’ 반도체사업을 끝내 현대에 넘겼기 때문이다.그룹 일각에선 삼성이 ‘버티기’를 통해 삼성차 빅딜을 무산시킨 예를 보며 ‘우리도 좀 더 버텼더라면…’하는 아쉬움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물론 데이콤 주식소유 제한조치 해제라는 반대급부를 얻어 위안을 삼고 있지만 결론적으론 득보다 실이 많은 장사였다는게 대체적인평가다.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군침을 흘렸던 대한생명 입찰참여를 포기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대우는 빅딜로 크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재계 일각에서대우가 유동성 확보방안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혹을 샀던 삼성차 빅딜이 소모전 끝에 무산돼 자체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삼성차 빅딜의 장기화로 대우전자의 매각협상만 늦어진 게 손해라면 손해다. SK는 빅딜영향권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으면서 그룹의 에너지를 내실다지기에 착실히 활용했다.쌍용정유 경영권 인수가 쌍용정유 대주주인 아람코의 반대로 무위로 돌아간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하지만 SK텔레콤 경영권을 위협하던 타이거펀드의 주식을 대량 매집하는 데 성공,경영권 유지의 탄탄한 기반을 닦는 성과를 올렸다. 김환용기자 dragonk@
  • 건교부, 불친절·민원 부당처리 추방 선언

    건설교통부가 불친절과 민원 부당처리,부조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교부는 22일 건설교통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민원인들이 만족할 때까지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건설교통 고객서비스 헌장’을 제정,2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헌장에 따르면 건설교통과 관련된 모든 질의응답이나 인·허가는 법정처리기한의 절반 이내에 처리하도록 하고,만약 이 기간 안에 민원인이 회신을 받지 못하거나 담당 공무원의 오류로 두번 이상 건교부를 방문할 경우 5,000원의 보상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민원인이 사무실에 도착,10분 이상 기다릴 경우 10분당 1,000원씩을 보상해주고 전화 벨소리가 세번 이상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고 담당자가 없을 경우 메모를 전달,반드시 전화를 민원인에게 걸도록 의무화했다. 헌장의 준수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연3회 이상 지적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근무실적에 반영,불이익을 줄 계획이다.분기별로 민원인 만족도도 조사,수범사례를 표창하고 부당·불편사례는 시정 조치키로 했다. 건교부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감사관실 외에 별도의 특별감찰반을 조직,이달말부터 가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26)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下)

    “본인은 오늘로써 부통령직을 사퇴한다.3·15부정선거로 인하여 삼천만 동포의 울분은 드디어 절정에 달하고 마침내 민족의 정화인 청소년 남녀들이불법과 불의에 항쟁하다가 총탄에 쓰러져 그 고귀한 피가 이 강산을 물들이게 됨을 볼 때에 하루라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비통한 심경에 다다른것이다.…이러한 중대위기에 즈음하여 이대통령은 3·15선거의 불법과 무효를 솔직히 시인하고 또 12년간 누적된 비정(秕政)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물러서야 할 것이다.…” 4·19가 일어난 지 나흘만인 1960년 4월23일 장면(張勉)은 기자회견을 갖고 부통령 사임을 발표했다.이틀 뒤에는 순화동 관저를 나와 명륜동 자택으로돌아갔다. 장면은 3·15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3대 부통령 임기는 남아 있는 상태였다.따라서 이승만이 물러나고 3·15선거가 무효로 처리되면,대통령 직은 자연히 장면에게로 넘어오게 돼 있었다.그런데 굳이 이를 포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장면은 회고록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 첫째가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이승만과 자유당에게 ‘정권을 내놓더라도 장면이 바로 계승하지는 않는다’고 보장해 준 것이다.아울러 부통령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함께 진다는 생각과,이승만의 불행을 틈타 권력을 잡는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장면이 부통령을 사직하자 곧바로 이기붕(李起鵬)이 부통령 당선과 국회의장 직을 사퇴했다.나흘 뒤에는 이승만도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이승만과 자유당의 퇴진을 무리없이 유도한다는 장면의 의도가 실현된 셈이다. 내각책임제로 개헌이 돼 새 정부가 출범할 즈음 장면은 대통령이냐,총리냐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공보비서관을 지낸 송원영(宋元英)은 회고록에 “장박사와 그 가족,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은 차라리 장박사가 실제 행정과는 초연한 대통령 자리에 앉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적었다.한 측근이 ▲새 정부가 이승만정권 12년의 비정을 씻을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고 ▲부통령을 이미 했으니이제 대통령을 할 차례라고 설득한사실도 소개했다.그랬더니 장면은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나”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미국도 ‘장면 대통령’을 지지했다.허터 미 국무장관은 60년 6월11일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장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못박았다.“그의 성실·청렴함과 국제정세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장면 자신과 최측근 인사들이 원했고 미국이 은밀히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면은 대통령 아닌 총리 선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송원영의 표현처럼 “신파에 매인 몸이어서 대통령으로 ‘물러날 자유’가 없었던”것이다. 장면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때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됐더라면…”하고 지금도 아쉬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총리에 취임한 뒤 장면은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내각을 이끌어갔다. 아직 총리공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는 일과후 반도호텔 828호실로옮겨 계속 집무했다.회고록에서 밝혔듯 “새벽 2시 전에 취침하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로 성심껏 무슨 일이든 잘해 보려고”했다. 이성모(李聖模)전 비서관은 “장박사는 점심도시락을 꼭 준비했고 저녁식사도 자택에서 날라왔다”면서 “밤에 반도호텔 집무실에서 보고를 다 받고 나면 보통 10∼11시쯤 됐는데 그때까지도 식사를 못해 식어빠진 저녁상이 그대로 놓여 있곤 했다”고 회상했다. 장면정부는 구파의 분당,소장파의 반발 등 정권 내부의 갈등으로 세차례나개각을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리고 이런 것들이 장면 개인,또는 그의 내각이 무능하다거나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주요인이 됐다. 그렇지만 쿠데타가 발생한 61년 5월 장면정부는 이미 기틀을 잡고 있었다.4월2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단일지도체제로 당헌을 개정해 총재 직에 오른장면은 5월4일 3차 개각을 단행한다.당과 정부 양쪽에서 일사불란하게 지도력을 발휘할 구도를 마련한 것이다. 아울러 장면은 7월1일 방미해 케네디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고그 발표시기를 조정하고 있었다.한·일회담 재개도 눈앞에 두었다.미국의 경제원조 규모가 정상회담에서 결정되고 한·일회담에서 배상금문제가 타결되면,지난 3월 시작한 국토건설사업도,작성을 끝낸 경제개발5개년계획도 제 궤도에 오를 터였다.장면정부의 으뜸 목표인 ‘경제제일주의’가 바야흐로 국민의 피부에 와닿을 시점이었다.그런데 쿠데타가 터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쿠데타군에게 당한 까닭은 무엇일까.김영구(金永求)당시 내무차관의 회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61년 3월 말,4월 초쯤이었다.반도호텔 장총리 집무실에 총리,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장도영(張都暎)육군참모총장과 나,네 사람이 모였다.쿠데타설이화제에 오르자 매그루더는 ‘내가 한국군의 작전권을 쥐고 있는데 누가 쿠데타를 하느냐.일어나더라도 금세 진압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장총리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했다.사실 많은 사람들이 미군이 있는 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 쿠데타가 발생하자 장면은 진압에 나서지 못한다.휴전한 지 8년,전쟁의 상흔이 아직 짙게 남은 그 시절,쿠데타 진압이 부대간의 총격전으로까지 비화하면 자칫 북한에게 재남침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것이다.6·25발발 직후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파병을 위해 침식을 잊었던 그로서는,만에 하나라도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장면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 천보산 기슭의 가톨릭공원묘원에 있다.그 곳에세워져 있는 묘비의 글은 장면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공(公)은 민주정치를 수립하고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여 불철주야 심혈을 경주하던 도중,뜻밖인 5·16사태로 경륜을 펴지 못한 채 정치에서 물러나…깨끗한 교육자요,근엄한 종교인이요,불굴의 정치가의 생애였다”- 5·16쿠데타 직후…가택연금등 수난 5·16후 쿠데타세력은 장면(張勉)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대대적으로선전한다.이어 소장파가 폭로한 ‘중석불 사건’을 비롯해 비리 의혹이 제기된 온갖 사건들을 파헤친다. 그러나 몇달 뒤 군사정권이 발표한 ‘장정권 비리’는 당시 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이 냉장고 한대를 뇌물로 받았다는 것뿐이었다.김장관과 친했던장경순(張慶淳) 5대 민의원은 그나마 “냉장고가 아니라 아이스박스였다”고증언했다.김장관의 오랜 친구인 부산세관장이 출장길에 들러 선물로 아이스박스 한통을 놓고갔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이 쿠데타 명분을 세우려고 갖은 애를 써 증거를 찾았는데도 발표거리가 고작 ‘냉장고 한대’였다는 사실은,역설적으로 장면정부가 얼마나깨끗했는지를 확인해준 것이다. 군사정권은 아울러 각종 혐의를 붙여 장면정부의 장·차관과 민주당 간부들을 구속했다.장면은 가택에 연금당했다.가족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20∼30명 정도 집 안팎에서 상주하며 출입자를 감시했다.심지어 가정부가 장보러드나들 때도 장바구니를 일일이 뒤졌다.장면은 감시자의 눈길이 싫어 대낮에도 창마다 커튼을 드리웠다. 연금은 1961년 11월10일 해제됐다.장면은 기독교 서적 번역에 몰두하는 한편 화초를 가꾸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감시가 심해서인가,찾아오는 발길도뜸했다.그가 전도(傳道)한 옛 동료가 영세를 받는다는 연락을 해오면 대부(代父)를 서주느라 문밖을 나설뿐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62년 7월15일 장면은 ‘이주당(二主黨)사건’의 배후자라는혐의를 쓰고 입건된다.이 사건은,민주당 인사들이 일부 군 출신과 짜고 군사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는 소위 반혁명음모의 하나로 발표됐다. 장면에게 걸린 혐의는 거사 성공 후 총리로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자금 100만환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지만 최종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확정되고 결국은 형집행면제 처분을 받는다. 8월28일 법정구속된 장면은 10월15일 보석으로 출감한다.그는 풀려나면서 “제멋대로 잡아넣더니 보석은 무슨…”하면서 개탄했다. 장면이 연루됐다고 해서 떠들썩했던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룬 저작물은 아직도 없다.당시 구속기소된 민주당 인사들도 “그야말로 황당한 조작극이었다”고 입을 모으고,그 중에는 자신이 구속된 사건이 그것이었는지조차 기억 못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이주당 사건’을 마지막으로 장면은 군사정권의 날카로운 칼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다.66년 1월 말 간질환이 재발해입원한 뒤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6월4일 장면은 명륜동 자택에서 영면했다.향년 67세였다.부인김옥윤(金玉允)여사는 지난 90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면은 슬하에 5남2녀를 두었으며 모두 해외유학을 했다.맏아들(張震 서강대 생물학과 명예교수·72)과 셋째아들(張益 가톨릭 춘천교구장·66)만 국내에 있다.수녀인 맏딸(張義淑·69),건축가인 둘째아들(張建·67),정치학 교수인 넷째아들(張純·64·보스턴 리지스대)은 미국에,은행가인 다섯째아들(張興·60·파리은행)은 프랑스에 거주한다.막내딸(張明子)은 80년대 후반 세상을 떠났다. 서울미대 초대학장을 지낸 장발(張勃·98)과 한국 최초의 항공공학자인 장극(86)은 장면의 동생들이다. 이용원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22)-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上)

    장면(張勉)정부는 실로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짊어지고 출범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남긴 유산을 4월혁명에서 확인된 민의(民意)대로 처리하는 일이었다.이정권이 저지른 정치비리인 ‘6대 사건’과 경제비리인 ‘부정축재자 처벌’이 주요 관심거리였다. 6대 사건이란 ▲4·19 때의 발포 ▲장면부통령 저격 ▲서울·경기도 부정선거 ▲민주당 전복 음모 ▲정치깡패 ▲제3세력 제거 음모 등을 말한다.한결같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노려 국민과 야당을 탄압한 사건들이었다.이와 관련한 재판을 ‘혁명재판’이라고들 불렀다. 혁명재판의 진행은 그러나 순조롭지 못했다.먼저 법리상의 문제가 제기됐다.피고인측 변호사들은 “6월15일 헌법이 개정되었으므로 ‘3·15선거’ 때의 관련법은 효력을 상실했다.따라서 몇몇 피고인은 무죄”라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4월혁명유족회’회원들이 법원에 들어와 규탄데모를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그러자 변호사들은 재판이 안전한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는보장이 없는 한 참석하지 않겠다며 출정을거부했다. 혁명재판은 지지부진했고 민심은 부정선거 원흉들이 그냥 석방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장면정부도 사태 진행을 우려했지만 과거 이승만이 했던 것처럼 법원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존중한다는 뜻에서였다.변호사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해 법정으로 돌아오게한 것이 고작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재판장 張俊澤부장판사)는 피고인 48명에게 1심형량을 선고했다.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13명 가운데 3명에게만 사형을 언도했고,8명에게는 무죄·공소기각·면소(免訴)판결을 내려 풀어주었다. 이에 앞서 마산지법은 ‘3·15부정선거’피고인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내린 바 있어 서울지법의 ‘경미한’ 판결이 불러일으킨 분노는 더욱 컸다.장판사는 훗날 “국민감정과 동떨어진데다 기존 법의 한계를 보인 판결이지만 증거에 따라 당시 법대로만 판결했다”고 밝힌다. 온유하기로 유명한 장면도 이 판결에는 크게 화를 냈다.그는 회고록에서 “나 자신도 분격했다.법조문에 의한 공정한 판결이었을지는 모르나 국민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참작했어야 할 것이다.적어도 혁명재판이라는 성격을 띠었다면 말이다.여하간 평상시의 법조문에 의한 것으로도 너무 가벼운 형이었다”고 술회했다. 전국적으로 벌떼와 같은 시위가 벌어지고 3일 후 4·19 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소급입법으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피고인들을 엄중 처벌하라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다. 민의원은 10월13일 ‘민주반역자에 대한 형사사건 임시처리법’을 서둘러통과시켰다.주요 내용은 ▲특별입법을 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하고 ▲관련 피고인들에게는 구속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재판에서 석방되더라도 즉시 재구속한다는 것이었다. 특별입법을 전제로 한 ‘임시처리법’이 통과된 뒤 소급입법을 위한 개헌논의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총리로서 장면은 이를 거부한다.보복을 목적으로한 소급입법은 정치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대신 현행법에서 가장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장면은 민주당 의원들이 소급입법을 놓고 최종 토론을 벌인 현장에서도 강력히 반대했다.심지어 “소급법을 고집한다면 나는 당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까지 굳은 결심을 보였다.그렇지만 소급법은 결국 제정되고,장면은 회고록에서 “격렬한 국민감정과 지배적인 공기로 보아서는 이를 안 할 도리가없을만큼 험악했다”면서 “소급법이 가능하게 된 점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심정을 밝혔다. 장면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원인은 신·구파 갈등과 소장파 반발 등으로 안정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었다.민주당 구파는 이미 분당작업에 들어갔고 소장파도 공공연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 신·구파로 이루어진 제2공화국 행정부와 의회는 사회적 압력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급입법은 구파의 주도 아래 차근차근 진행됐다.민의원은 10월17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 11월23일 통과시켰다.투표에 참석한 200명 가운데 191명이 찬표를 던졌다.부정선거관련자·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고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소급입법을 할 수 있으며,이를 맡을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후속조치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및 특별검찰청 조직법이 잇따라 연내에 제정됐고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 61년 4월 공포됐다. 특별재판소는 61년 1월25일 5개 심판부를 구성,전국 각지의 법원이 맡던 관련사건을 이송받아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이 가운데 제1심판부(재판장桂昌業대법관)는 4월17일 부정선거 사건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내렸다.최인규(崔仁圭)전내무장관에게는 구형대로 사형을,이강학(李康學)전치안국장에게징역 15년,이성우(李成雨)전내무장관에게 징역 7년,최병환(崔炳煥)전내무부지방국장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언도했다. 소급입법은 이후 두차례 더 등장한다.박정희(朴正熙)가 만든 ‘정치활동정화법’과 전두환(全斗煥)의 ‘정치풍토쇄신특별법’이 그것이다.둘 다 구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법이었고,제2공화국에서 소급법을 제정한 당사자들이주로 대상에 들었다.이용원기자 ywyi@-실패한 許政과도정부 4월혁명이 난 뒤 장면(張勉)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넉달이 소요됐다.그 넉달 동안 혁명과업의 첫 처리를 맡은 정치 주체가 허정(許政)과도정부이다. 허정정부는 이름 그대로 과도기에 한시적으로 존재했고 따라서 역사·사회발전에 큰 구실을 하리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정권이다.그렇지만 이승만(李承晩)정권이라는 구체제가 무너지고 처음 등장한 정권이라는 점에서,어차피 4월혁명이 제기한 갖가지 혁명적 요구를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도 사실이다. 허정정부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실제 과도정부가 행한 역할은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도 훨씬 미치지못했다“(孫浩哲 서강대교수 등)고 본다.그 이유는 “4·19 취지에 의거해구체제와의 단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과도정부 자신과 민주당,그리고 4·19혁명에 참여한 중요한 지식인 및 사회세력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타협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崔章集 고려대교수)이다.그 결과 “후계정권(장면정부)에게 제한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혁명’을 수행해야하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주었다.”(韓昇洲 고려대교수)허정은 서울 각대학 교수들이 시위를 벌인 1960년 4월25일 외무장관에 임명된다.이틀 뒤 이승만이 하야하자 그는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대통령승계권을 가진 장면부통령이 4월23일 이미 사임했기 때문이다.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이 된 허정은 각료진 구성을 마치고 5월3일 ‘5대 시책’을 발표한다.‘반공정책을 한층 더 견실하게 전진시키는 것’을 비롯해▲부정선거 처벌대상은 고위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자에 국한하고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단행하며 ▲4월혁명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운운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전 국민이 이 시기에 위대한 관용을 보이고 그 정력의 전부를 국가의 부강과 국민 공익에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해 정치보복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했다.한마디로 “최소한의 정책변화를통해 현상유지를 담보하는 정책”(최장집)을 편 것이다. 이같은 기본원칙은 각 부문에 그대로 적용됐다.먼저 ‘3·15부정선거’등정치비리 관련자 처리를 이승만정권 때부터 유지된 법원·검찰에 맡겼다.이때문에 ‘혁명재판’성격은 사라지고 국민감정이 용납못할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지법 형사1부의 10월8일 선고가 대표적인 예이다.“공판은 장면이 이끄는 다음 정부로 넘겨졌으며,장면정권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의 원인이 되었다”(한승주)‘부정축재자 처벌’도 마찬가지였다.과도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처벌 의지를 여러차례 공표했지만 명백히 ‘축소지향적’이었다.6월 1∼20일을 부정축재 자수기간으로 정했고,7월2일에는 허정이 “부정재산을 정부에 반환하면 형사책임을 감면하겠다”고 밝혔다.사흘뒤 부정축재 1차 조사대상자로 기업인18명,기업체 61사를 공개했다. 결국 과도정부에서는 몇몇 사람이 부정축재 사실을 자진 발표하고 축재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쳤다.장면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밖에 ▲고위장성의 반발을 두려워해 군 개혁을 외면했고 ▲민원(民怨)의 대상인 경찰을 민주화하는 방안도 자리바꿈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허정과도정부는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슬로건을내세웠지만 결과는 “사회 내 어떤 부문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무능과 무작위 탓으로 장면이 이끄는 그후의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한승주)말았다.이용원기자
  • 검찰, ‘조직폭력과의 전쟁’ 선포

    검찰이 지난 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9년만에 다시 ‘조직폭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은 12일 오전 10시 전국 강력부장 및 민생침해사범전담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경제살리기 차원에서 검찰이 모든 역량을 동원,조직폭력배에 대한 무기한 특별단속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이는 90년 이후 구속됐던 주요 조직폭력배들이 대거 출소,조직 재건을 꾀하고 있는데다 유흥업소 영업시간 제한 해제로 조직간 이권다툼이 위험수위를넘어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은 특히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해 폭력조직들이 ‘돈세탁’을 할 경우이를 처벌할 수 있게 하고 범죄를 통해 얻은 부정이익을 모두 국고에 환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직폭력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법’(가칭)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법안에는 조직폭력·마약사건 피해자와 증인에 대해 강력한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도입,법정 밖에서의 비디오 증언과 증인·피의자 분리신문 등을활성화하는 방안도 담을 방침이다. 대검 강력부(任彙潤 검사장)는 이에 따라영상정보 시스템으로 관리 중인폭력조직 404개파 1만1,539명 가운데 주요 조직 117개파 637명을 특별관리대상으로 분류,24시간 밀착 감시에 나서는 한편 조직폭력배를 비호하는 인사들은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명단을 공개키로 했다. 이와 함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경찰관에게 공격을가하거나 검거에 불응하는 폭력배에 대한 총기 사용시 정당방위권을 폭넓게인정해나갈 방침이다.
  • “재·보선 중앙당 개입 않는다”趙世衡대행 밝혀

    여야는 ‘3·30 재·보선’이 과열·혼탁 양상으로 국민의 정치불신을 심화시켰다는 자성에 따라 재·보선 제도를 시급히 보완키로 했다.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31일 기자회견에서 “한달여 후에 치러질재·보선에 중앙당이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면서 “야당이 호응하기를 바라지만,우리당부터라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민회의는 보완대책으로 ▒선거법상 90일 이내로 규정된 재·보선 실시기한을 150∼180일로 늘려 선거를 모아서 치르고 ▒선거일을 토·일요일 등으로 반(半)공휴일화하며 ▒재·보선을 실시해야 하는 법정 잔여임기를 현행 1년에서 그 이상으로 연장하는 식으로 선거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한나라당도 이날 李會昌총재 주재로 주요 당직자회의를 열어 “이번 선거는 정부 여당에 의한 금권·관권선거였다”고 비난하고 이를 막기 위해 재·보선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여야 대책마련 잰걸음

    여야가 31일 재·보궐선거 개선책을 놓고 잰걸음에 나섰다.여야가 현재와같이 ‘죽기 살기’로 재·보선에 매달려 생기는 폐단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다.여야는 재·보선 문제에는 의견충돌이 별로 없어 이르면 다음달 서울 송파갑,인천 계양·강화갑의 재선거부터 개선책이 적용될 것 같기도 하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이날 “선거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국민회의는 앞으로는 재·보선의 경우중앙당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소속의원들이 정당연설회에서 후보를지지하는 연설을 할 수는 있지만 의원들을 동책(洞責)으로 임명해 과열을 부추기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회의는 불이익을 보더라도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부터 동책을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의원의 경우 재·보선은 사유가 발생한지 90일 이내에 하기로 된 선거법상의 시한을 지방의원처럼 180일 정도로 늘려서 되도록 한꺼번에 여러 지역의 재·보선을 치를 수 있는 방안도 거론된다. 선거부정에관한 재판을 빨리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현행 선거법에는 공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끝내도록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중앙선관위가 최근 제시한 선거법 위반사범에 관한 재판을 현행 3심제에서 2심제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이면 재·보선을 치르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을 고쳐 1년 이상 임기가 남았어도 재·보선을 실시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지만,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다만 지방자치단체장이 공석인 경우는 부(副)단체장이 대행해도 별 문제는 없다. 한나라당도 李會昌총재 주재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어 재·보선 실시기한을 연장하는 등 재·보선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특히 재·보선은 물론 선거 전반의 탈법을 막기 위해 선거위반의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安澤秀대변인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등을 상실하면 영원히 후보로 나오는 것을 박탈하는 등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선거법개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보선의 투표율을 높이려는 방안도 검토된다.국민회의 鄭東采기조위원장은 “재·보선은 일요일이나 법정공휴일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주한 美상의 통상압력 주요내용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의 연례보고서 초안을 간추린다. ●광고 TV와 인쇄매체들에 대한 등급조정 체제를 개선하라.외국 및 국내 대행사들의 단체를 설립하라. ●농업·식품 제품표시 요구사항에 국제적인 기준을 인정하라.통관시간을 단축하라.국제적인 시험요구사항과 기준을 받아들이고 유통기한도 국제기준에맞춰 허용하라. ●수의약품 수의약품업체의 약사고용의무를 없애고 수의사로 대체하라.외국업체들이 새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수입차의 구매 판매 리스 등과 관련,국산차와 동등한 세제상 대우를 재확인하라.수입차와 국산차가 평등하도록 세제개혁을 단행하라.자동차 할부금융분야를 외국기업에 개방하라.자동차 수입이 활성화되면 첨단기술이 유입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홍보하라.자동차 관세를 미국보다 높지 않은 수준으로 낮추든지,일본처럼 없애라.배기량 기준의 세제를폐지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라. ●건설·엔지니어링 입찰시 현금예치 의무를 없애라. ●은행 은행에 대한 포트폴리오제한을 폐지하라. ●자본시장 감독 당국의 인력과 전문성이 부족하다.투명하고 일관성있는 규칙을 마련하라.내부자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라. ●정보기술 전자상거래기본법의 ‘사회질서,경제안정 및 기타 공공의 이익’이라는 표현이 무역장벽이 될 수 있는 만큼 삭제하라.전자상거래에 세금을물리지 마라. ●지적재산권 병행수입업자들의 상표사용을 제한하라.저작권 보호대상기간을 국제기준에 맞춰 지난 49년 이후의 작품으로 하라.법원은 지적재산권 위반자에 대해서는 현재의 상징적인 수준의 처벌보다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검찰수사도 제3자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방적인 주도로 이뤄져야 하며 관련 인원을 확충하고 경찰과 검찰 인원에 대한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고용 상여금을 퇴직금 계산에서 제외하라.법정휴가를 폐지하라.부당노동행위의 범주에 회사 뿐 아니라 노조도 포함시켜라.근무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해고기준을 완화하라.보훈대상자의 의무고용을 폐지하라.조기퇴직제도의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라. ●시장접근 생산국의품질보증을 인정하라.화장품과 의약품에 대한 규정을분리하라.커피제품 등에 대한 특소세를 폐지하라. ●의료기기 의보수가표를 정기적으로 출판하라.외국시험자료를 인정하고 중복시험을 폐지하라. ●통신 형식승인 요건과 기준을 단순 명료화하고,케이블TV 위성TV 이동전화PCS 등에 대한 세계적 기준과 규정을 도입하라.통신사업에서 외국인 소유지분 확대를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하라.한국통신을 외국인지분 확대대상에 다시 포함시켜라. 金相淵 carlos@
  • 국고지원금 지급 늑장…시·도 사업추진‘골머리’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부의 국고 지원금이 법정 지급 기한을 넘기도도 지원되지 않아 지자체들이 사업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일 전북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말까지 도에 지원해야 하는 국고 보조금과 지방 양여금,교부세 등 국고 지원금 8,704억원 가운데 총 134억4,000여만원을 회계년도(1월1일∼12월31일)뿐 아니라 예산 출납 폐쇄기한인 2월28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충남도도 교부세는 7,647억원 전액을 지급받았으나,국고보조금 배정액 5,796억원 중 96억원,지방양여금 2,434억원 중 151억원 등 247억원의 국고 지원금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전북도의 경우 지난해 배정된 국고 보조금 5,418억원 가운데 24억6,100만원이 지급되지 않아 경지정리 사업과 임도 설치 사업 등이 차질을 빚고 있다. 지방양여금은 편성예산 1,127억원 가운데 69억4,000여만원이 전달되지 않아일선 시·군들이 수질 오염 방지 시설 등 환경개선 사업과 지방도 정비사업등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교부세는 2,158억원 가운데 40억5,800만원이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일선 시·군은 경지정리 등 각종 사업을 시행하고도 제때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해 행정기관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북도 관계자는“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고 지원금은 기한 안에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 민원처리기간 줄이면 표창

    경기도 의정부시(시장 金基亨)는 18일 민원업무 처리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인·허가 관련업무에 대해 민원처리기간 단축평가제를 3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시는 처리기간 30일 이내인 인·허가 관련 37개 민원의 처리기간을 4등급으로 나눠 처리 결과에 대해 성적을 부여할 방침이다.법적처리기간 3분의1 이내 단축처리는 A등급,3분의2 이내 처리는 B등급이고,기간내 처리는 C등급,지연처리는 D등급으로 분류한다.민원인에게 불편을 주는 C,D등급의 민원은 집중심의 등을 통해 100% 처리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시는 상·하반기 평가 결과 우수부서 및 우수 공무원은 시장이 표창하고 근무평가점수에 반영하는 한편 법정처리기한을 경과한 민원처리 담당 공무원은 문책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을 앞두고 업무분야별로 객관적인 평가방식이 마련돼 있지 않은데다 민원성격에 관계 없이 지나치게 속결처리만을강요하게 돼 민원인 피해는 물론 직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많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의정부시가 접수한 2,292건의 인·허가관련 민원 중 법정처리시한을 넘긴 민원은 589건(25.7%).대부분 도시계획 관련 집단민원 등 처리가 어려운 고질민원이었다. 시 관계자는 “초기 시행착오를 철저히 보완해 민원해결제도로 정착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정부 l 朴聖洙songsu@
  • 공동정권 현주소와 전망(정권교체 1주년:上)

    ◎與 시행착오 떨치고 정책정당 굳혀/金 대통령 내일 기념식서 2與단합 역설/공동정권에 힘실어 앞으로 4년 다지기 18일로 정권교체 1년을 맞는다. 여당으로 거듭난 국민회의는 ‘야당같은 여당’이라는 질타속에서도 건전한 정책정당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고 야당은 초유의 ‘돈가뭄’속에 내홍(內訌)에 시달리며 위상찾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치는 정쟁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치개혁은 아직 먼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정권교체 1년을 맞아 여야 정당의 변신 몸부림과정치행태의 변화,정치개혁 실제·전망 등을 짚어본다. 공동집권 1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두 여(與)는 원래 조촐한 행사를 계획했다. IMF상황에 맞춘다는 취지였다. 조용히 공동정권 1년을 되돌아본다는 데만 뜻을 뒀다. 그러나 규모가 커졌다. 앞으로의 4년을 다지는 의미를 새로 부여했다. 국민회의는 처음에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을 최고위 대표로 했다. 자민련은 朴泰俊 총재로 했다. 그러나 金大中 대통령이 참석의사를 전해왔다. 격에 맞춰 金鍾泌 국무총리도 참석하기로 했다. 규모도 격상된 행사에 맞췄다. 참가인원을 늘렸다. 양당에서 500명씩 참석하기로 했다. 총재단 및 고문,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중앙당 당직자들이 모두 참석한다. 외부인사 100명도 부른다. 직능단체 대표는 물론 대학생도 초청대상이다. 여기에 약간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유공 당원에 대한 포상이 이뤄진다.양당에서 2명씩 뽑는다. 영상물 상영도 계획했다. 金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공동정권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이다. 자민련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자민련은 공동정권에 대한 소외감이 적지않다. 그동안 각종 정책을 둘러싼 이견도 자주 불거졌다. 국민회의측으로서는 자민련이 주요 대목에서 발목을 거는 모양새를 보인 데 대해 섭섭함을 표출했다. 내년에는 내각제 개헌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를 놓고 양당간 기류는 엄연히 다르다. 金대통령으로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충돌마저 우려된다. 행여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여당 어떻게 변했나/투사서 국정운영자로 거듭나기/‘초보운전’ 시선 불구 경제회생 발판 구축 평가 정권교체 1년은 국민회의로선 ‘초보운전당’이란 따가운 시선과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기대속에서 집권당으로의 착근(着根)을 시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단정적 평가는 다소 이르지만 개혁과 경제회생의 ‘전위대’로서 비난과 찬사가 엇갈리는 형국이다. ‘야당투사’에서 ‘국정운영자’로 거듭나기까지 적지않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나 금융구조조정 및 재벌개혁,외화유치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도출,경제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성공적 출발을 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하지만 아직 집권당으로서 체질개선과 원숙한 국정운영은 과제로 남아있다. 완전히 걸러내지 못한 ‘야당 체질’과 어설픈 ‘여당 변신’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정책혼선이 대표적 사례다. 그린벨트 재조정과 팔당 식수댐건설,교원 정년단축과 인권법 제정,중앙인사위원회 설치문제등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하루아침에 번복되는 각종 정책은 국정운영의 차질로 이어졌고 야당의 정치공세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컸다는 지적이다. 지도체제 정비도 시급한 과제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과도체제’로는 험난한 개혁과제를 실현하기에 다소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정치권 사정 등 국정운영의 고비때마다 ‘청와대 지침’을 기다리는 소극적 자세도 시정돼야 할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야당 1년/內訌속 ‘야체질 익히기’ 몸부림/초당적 자세 결여… 李 총재 지도력 도마위에 고대 그리스신화는 바람직한 야당의 모습으로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일관되게 냉철하고 이유있는 비판을 제기한 프로메테우스를 꼽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 차원이 아니라 강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도자와 견제자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혜안(慧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신화학자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유일 야당인 한나라당의 현재 모습은 판이(判異)하다. 한나라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정체성 결여에 있다. 정권교체 1년이 되도록 야당다운 야당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있다. ‘곧은 소리’로 정부여당을 비판하면서도 주요 국정에는 협조를 아끼지 않는 초당적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 사례가 金鍾泌 총리 인준동의안 처리문제. 당내 일부 초·재선의 강경한 목소리에 당 전체가 휘둘려 ‘건전 야당으로 변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정부 여당의 발목이나 잡으려든다’는 비난여론을 떠안았다. 내부 불협화음도 정체성 결여에 한몫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잃은 뒤 줄곧 내홍(內訌)에 시달렸다. 강력 야당을 기치로 지난 8월 李會昌 총재 체제가 출범했지만 비주류의 ‘분파적’행동은 고비때마다 재연되고 있다. 당연히 李총재의 정치력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시대를 초월한 야당의 위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현재 한나라당이 고대 그리스신화의 지혜를 따르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정치행태 1년/정책중심 정치문화 새싹/여야 당리당략에 발목잡혀 입씨름은 여전 정치행태는 구태를 벗지 못했다. ‘식물국회’ ‘방패국회’라는 비난 목소리가 높았다. 당리당략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책중심의 정치문화가 싹트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정치권은 노사정위 출범,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추경예산안,국회의장 선출,총풍·세풍 관련 정치인 사정,제2건국운동시비 등 일련의 쟁점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공방을 계속했다. 민생정치는 항상 뒷전이었다. 여당은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며 책임을 야당에 돌렸고 야당은 ‘표적사정,정치보복’이라며 여당을 몰아쳤다. 국회는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는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으로 얼룩졌다. 새정부 들어 처음으로 맞이한 정기국회도 정쟁의 중심무대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정감사는 총풍·세풍·병풍 등 이른바 ‘3풍사건’의 연장이었다. 예산안도 법정처리 시한을 일주일 넘긴 뒤 한나라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여당의원들의 기립 표결로 처리됐다. 날치기만 아니었을 뿐 과거와 차이가 없었다.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편성이 빌미가 됐다. 그러나 나름대로 평가할 대목도있었다. 여야를 떠나 개혁성향의 초선의원들이 보여준 정책국감이나 각종 정책자료집 발간,각종 세미나와 공청회 개최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의 참여정치 확대는 정치제도 개혁과 더불어 정치행태의 변화 청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여야가 바뀐 의원들은 달라진 환경을 실감해야 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9월말 기준으로 집계한 의원들의 모금액은 국민회의 9,606만원,자민련 6,373만원,한나라당 4,293만원 등 순이었다. ◎정치개혁 어떻게 되나/政爭 휘말려 개혁 ‘소걸음’/여야 “조속추진” 합의만 해놓고 해 넘겨 정권교체 후 여권은 정치개혁 추진에 상당한 무게를 실었다. 정치권이 가장 후진적인 분야로 국민에게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치개혁은 ‘황소걸음’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이 스스로의 개혁 채찍질에 인색했고 국회에서도 수많은 시간을 정쟁에 할애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개혁은 지난달 10일 여야 총재가 ‘빠른 시일내 본격화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돌파구를 여는 듯했다. 국회정치구조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林采正 의원)가 구성돼 일단 국회·정당·선거제도개혁 가운데 국회개혁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안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국회개혁에는 국회의장의 당적 박탈,상임위의 일문일답식 진행,예결위 상설화여부가 요체. 하지만 ‘총풍’ ‘세풍’ 등 정치적사건에 휘말리면서 회기내 국회법 개정은 물건너갔다. 여야가 오는 19일부터 20일동안의 회기로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으나 올해안 처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개혁안 중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여부. 이 망국적인 동서(東西)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회의가 내놓은 개혁안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상황이다. 자민련은 정당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비례대표’를 통한 의원 확보가 불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논란중인 국회의원 정수는 고비용 정치구조 해소를 위해 현행 299명 중 49명을 줄여 250명으로 하자는 데 여야간 이견이 없는 상태다. 국민회의 鄭均桓 사무총장은 “임시국회의 우선순위가 500여건의 민생법률안 처리여서 현재로서 정치개혁 협상은 더 미뤄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치개혁의 한 부분인 국회개혁 역시 내년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 관계기관 대책회의 딜레마(金在晟의 정가산책)

    예산안 처리로 고역을 치른 여권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필요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등 일련의 검찰수사가 번번이 여권의 정국운영에 발목을 잡은데서 나온 발상이다.검찰도 개혁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데 여권과 전혀 교감이 없이 어떻게 개혁이 제대로 진행 되겠느냐는 취지다. 실제로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협상과정에서 ‘총풍사건’이 여러모로 걸림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법정 처리시한(2일)을 하루 앞두고 느닷없이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검찰 수사(총풍사건과 관련)에 응하겠다”는 발표를 한데서 저간의 사정을 읽을 수 있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예비내각 명단을 발표한 날(11월 30일) 韓成基씨 진술이 불거져 나올때부터 “정국운영이 꼬이게 됐다”며 검찰을 원망했다.한나라당 전당대회일에(8월31일) ‘세풍사건’이 터진 것과 겹쳐 더욱 정치공세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 선출때(8월 3일)도 그랬다.수뇌부가 ‘PK 민주계’를 설득하느라 동분서주 하고 있는데 洪仁吉씨의 구속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관계기관대책회의 역할론은 이런 배경을 갖고있다.이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개혁이 지지부진 한 것도 너무 민주적 방식에 연연하다가 실기한 느낌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여권 특히 자민련 중진의원들은 “공권력의 중립을 지키면서 범여권의 횡적 교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야당도 표적사정 등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쑥덕공론에 그칠 공산이 크다.언젠가 국민회의 韓和甲 총무가 金大中 대통령에게 사정 정국에서 여당의 정보소외를 하소연했다가 “나도 보고를 못 받는다”는 대답을 듣고 무안을 당했다는 후문이 이를 뒷받침한다.검찰 독립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그 자체가 성과라는 소신이다.더디더라도 원칙을 후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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