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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지사 고려때 규모의 90% 복원

    ◎30년 중창불사 마무리… 19일 기념 법회/2만6천평에 전각·전우 등 65채 신개축 신라 불교의 요람으로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 조계종 제8 교구본사 직지사(주지 녹원 스님)가 30년에 걸친 대중창 불사를 마무리짓고 새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김천시 황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자장,고려의 능려,조선의 사명대사등이 머무르면서 한국불교의 지도자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 고려시대 절정기를 맞은 직지사는 선조 29년인 1596년 임진왜란때 43동의 건물중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된뒤 1602년부터 70년에 걸쳐 절을 중건했다. 1681년의 사적기에 따르면 당시의 규모가 8전,3각,12당,3장,4문에 정실만 3백52칸이며 부속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1805년 사세가 기울기 시작 쇄락을 거듭해 경내는 줄어들고 건물은 허물어져 건물 4∼5개의 작은 사찰이 되었다. 지난 58년 녹원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직지사 대중창불사의 계획을 세우고 지난 30년간 대지 1만평,전답 1만2천6백평,임야 3천7백평을 매입하고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60여개의 건물을 지어 「동국제1가람」이라는 옛모습을 되찾았다. 지난 65년부터 시작된 중창불사는 국제불교회관으로 사용될 만덕전등 전각과 전우 34동을 신축하고 31동을 개축해서 모두 65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직지사 관계자들은 『사적비 기록을 토대로 30년간 진행된 중창 불사로 고려시대의 웅장한 사찰 모습의 90%를 복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지사는 오는 10월 19일 만덕전 앞 마당에서 30년의 중창 불사를 마무리짓는 법회를 봉행한다. 이날 법회에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중국,일본,스리랑카에서 불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중창불사의 경축행사는 사진전이 19일까지 열리며 15일부터 19일까지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만등탑 불사가 행해진다. 등탑은 황룡사 9층탑의 모형으로 만들어지며 1만1천개의 등을 장식하는 행사로 신도들의 신청을 받고있다. 15일 하오 3시 잔디광장에서는 정수라,박영미등 인기가수가 참가하는 「산사의 환경음악회」가 열려 환경보호창립대회를겸한다. 17일 하오 1시에는 직지사및 교구말사가 보유한 중요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 박물관이 개관되며 하오 2시 설법전에서는 신라 불교를 조망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 사법개혁의 당위(사설)

    사법개혁 문제를 놓고 행정부와 사법부간에 보인 견해차이는 극복되어야 한다.감정대립의 양상으로만 비쳐서는 안될뿐 아니라 이미 사법부와 행정부가 사법개혁이라는 큰 원칙에 합의하여 함께 추진해 왔기 때문에 방법론의 차이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홍구 국무총리의 발언도 사법개혁의 적극적인 추진을 다짐하는데 뜻이 있으며 사법부와의 협조를 통해 그동안 방향을 잡아온 사법전문대학원설립을 둘러싼 합의를 촉구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국무총리발언에 대한 대법원의 반응은 사법개혁의 발걸음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개혁당위의 전제를 깔고 있다고 믿는다.우리는 오히려 대법원의 반박문이 사법개혁을 위한 상호 의견존중과 꾸준한 제도개혁을 다짐하고 있음을 주목하고자 한다.그러한 사법개혁은 사법부와 행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해온 국민에 대한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미 이총리는 사법부에 대해 물의가 있었던 데 대한 해명을 했으므로 이를 계기로 행정·사법부가 서로 이해와 협력을 하면서 개혁에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 행정부와 사법부간의 사법개혁에 대한 입장차이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사법전문대학원 설치에 방향을 잡았으며 관할권에 대한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선진국의 3배나 되는 과다한 수임료를 물고도 변호사의 얼굴조차 보기 어렵고 몇년씩 걸리는 재판에 이겨도 가산을 탕진하게 되어있는 법률서비스부재와 국제화시대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법률서비스에 대한 수요증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낡은 제도와 관행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사법부와 행정부가 이번 갈등의 표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국민들이 바라는 사법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사법전문대학원 관할권문제도 원만히 매듭지음으로써 직역 이기주의라는 의혹을 불식해야할 것이다.법률서비스의 전문화와 확대강화라는 개혁목표에 충실하기 바란다.
  • 5일 상위(국감중계)

    ◎“국방과학기술 민간에 단계적 이전”­국방과학연소장/“남해안 적조예방·피해보상책 세우라”­농림수산위/저가낙찰 따른 통신선 부실공사 추궁­통신과학위 ▷재정경제위◁ ○…감사2반(반장 정필근)의 광주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의원들은 호남권의 열악한 경제사정에 맞는 세정을 당부하면서 세무조사의 형평성과 덕산그룹 부도에 따른 이 지역 중소기업 지원대책등을 집중추궁했다. 유준상 의원(국민회의)은 『광주·전남북등 호남권의 지역총생산은 전국의 11.1%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올 7월말까지 관내 세수실적이 1조6천1백72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대비 23.6%나 증가했는데 이는 지나친 「세금 쥐어짜기」가 아니냐』고 따졌다. 임춘원 의원(신민)도 『올들어 광주청은 법인세조사 1백11건에 2백98억원을 추징했고,기업체수가 2배에 이르는 PK(부산·경남)지역을 관장하는 부산청은 99건에 2백45억원을 추징했다』면서 「무리한 세무조사」라고 가세했다. 박명근(민자)·이경재·박태영(국민회의)·장재식 의원(민주)은 『덕산그룹의 부도에 따른 지역경제위축과 피해업체에 대해 광주청의 지원대책과 그동안의 실적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정필근 의원(민자)은 『다른 지역과 달리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징세위주의 세정보다는 조세정책 차원에서 보호 또는 지원위주의 세정을 펼쳐야 한다』고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안정남 광주국세청장은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지원과 관련,『향후 2년간 명백한 세금탈루혐의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세무조사를 면제하는 한편 납기연장,환급세액의 조기처리,납세담보완화 등 관계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답변했다. ▷건설교통위◁ ○…한국토지개발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수도권 신도시와 관련한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지적했다. 조진형·정영훈 의원(민자)은 『신도시를 지나치게 고밀도로 개발하고 도로·공원·녹지 등 공공기간시설보다 상업용지를 과도하게 지정,땅장사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상두 의원(민주)은 『토개공은 신도시 가운데 일산을 주거환경 1위로 분석했는데 도서관 하나,문화센터 하나 없는 도시를 어떻게 주거환경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답변에 나선 이효계사장은 『분당 「주택전람회단지」는 아파트 위주의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주거환경을 피할 수 없어 차원 높은 미래의 주거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호화주택건설이 아니냐는 지적에 따라 주택규모를 축소조정했고,되도록 외국산 자재를 사용치 않도록 건설업체에 촉구했다』고 말했다. ▷교육위◁ ○…부산시 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국민학교 급식비리와 학원폭력 근절 대책을 집중 추궁했다. 구천서(민자)·박석무(민주) 의원 등은 『부산지역 35개 국교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급식 비리가 적발돼,교장 15명과 직원 20명 등 모두 35명이 주의 또는 경고처분을 받았다.』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국방위◁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대한 국감에서 여야의원은 연구인력부족 및 질저하,무기연구 개발체계의 개선방안,한·미간 미사일양해각서 폐지문제등을 집중거론했다. 이건영 의원(민자)은 『ADD의 제2 도약여부는 21세기초 자주국방을 이룩할 수 있느냐와 직결돼 있다』면서 『낙후된 ADD의 도약을 위해 통수권적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 임복진 의원(국민회의)은 『국방비의 2.8%에 불과한 연구개발비로 국방과학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80년대후반에서 90년대초까지 ADD의 첨단기술개발 실적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개탄. 의원들은 또 ADD는 국방과학기술 가운데 필요한 기술은 민간기업에 이전하고,첨단무기개발등 국책과제수행에 집중투자할 것을 이구동성으로 촉구했다. 여야의원은 이밖에 『지난 79년 체결된 한·미간 미사일 양해각서는 사정거리 1백80㎞이상 미사일개발을 규제,국제적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보다 더 가혹하게 기술개발을 막고 있다』면서 이 각서의 폐지를 건의하라고 촉구. 배문한소장은 『97년부터 2001년까지 국방중기계획수립시 국립과학연구소의 중점추진분야를 재정비할 방침』이라면서 『중점추진과제 이외에는 업체주도로 단계적으로 전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배소장은 『국제공동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유럽국가와 기술협력을 하고 러시아 등에서 기술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설명하고 『연구개발투자의 30%를 핵심기술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핵심기술의 해외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위◁ ○…경남도에 대한 국감에서 의원들은 엄청난 피해를 내고 있는 남해안 적조문제를 집중거론했다. 최욱철·이길재·김영진 의원(민주) 등은 『이번 남해안 적조는 지난 7월 씨 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 때 유화처리제를 지나치게 사용했고,오염된 하천폐수의 유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적조예방과 피해보상대책을 물었다. 이강두 의원(민자)은 지난 8월 도내 기선권현망어선들이 조업구역을 위반해 전북 해상 등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물의를 일으킨 것과 관련,앞으로 예방대책을 따졌다. 답변에 나선 김혁규지사는 『적조발생을 막기 위해 생활하수와 산업폐수의 배출기준을 강화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안해역 종합관리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또 『하수종말처리시설을 하루빨리 확충하고 적조연구 전담기구와 함께 적조피해 보상기준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사는 이어 『바다의 기름오염사고를 막기 위해 유조선전용항로를 지정하고 해양오염방제기구를 일원화해주도록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충남도 감사에서 의원들은 불법농지전용과 수해복구 지연문제 등을 추궁한 뒤 예산군 신원지구와 삽교천 등 수해지구를 직접 둘러봤다. 박경수 의원(민자)은 『지난 3년동안 여의도의 20배인 농지 1천4백26만7천평을 불법전용해 쌀생산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농지를 호텔과 향락시설 등으로 불법전용하는 행위방지대책은 무엇이냐』고 추궁. 이규택 의원(민주)은 『관계 행정당국의 늑장조치로 수해가 더 커졌는데도 두달이 지나도 복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이처럼 수해복구가 늦어지는 이유를 밝히라』고 촉구. 심대평 지사는 『불법농지전용을 일삼는 공무원은 엄중문책하고 모범공무원은 승진·해외연수 등의 특전을 베풀어 관계직원을 관리하는 한편 불법전용우려 지역에 대한 현장순찰을 강화해 농지전용을 막겠다』고 밝혔다. 또 『수해지구에 대해 임시복구는 마쳤으나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지원기준 및 복구액을 아직 확정하지 못해 도로·제방 등의 항구적인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겨울이 되기 전에 주택 등 시급부분부터 복구작업을 끝내 수재민의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통신과학기술위◁ ○…경북체신청과 한국통신 대구본부에 대한 국감에서 체신청의 적자해소 방안과 통신선로 공사 등의 저가입찰에 따른 부실공사에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됐다. 조영장 의원(민자)은 『경북체신청의 94년도 재정자립도가 51%에 불과하다』고 전제,『재정 확충을 위해 우편요금의 단계적인 현실화가 시급하다』며 우편요금을 인상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김기도 의원(민자)은 『한국통신 대구본부의 수입금 불납 결손처리는 줄고 과오납금이 늘어나는 것은 가입자의 잘못은 줄어 들고 전화국의 잘못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전화국의 고객서비스 개선을 촉구했다. 박근호 의원(민자)은 『집배원의 이직률이 93년 3.8%에서 94년 6.1%로 증가했다』며 집배원의 이직에 따른 충원과 개선대책을 묻고 한국통신이 발주한 선로공사의 저가낙찰이 통신장애로 이어질 경우에 대한 손해배상 대책을 추궁했다. 김충현 의원(민주)은 『오는 97년 체신공사가 설립돼 우정·금융사업이 이관될 경우 경북 체신청의 적자보전 방안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 세기의 법정쇼 심슨 무죄평결/「인종문제」 미의 영원한 약점 부각

    ◎검찰측 결정적 물증 제시못해 패배 자초/평결직후 “무죄에 반대” 62%… 후유증 클듯/거액 변호비용 들인 심슨은 TV출연·자서전 내 돈방석에 대하드라마같던 「심슨재판」은 끝났다.지난 1월24일 재판이 개정된이래 유례없이 재판의 전과정이 속속들이 TV와 라디오등 모든 미디어에 의해 전파됨으로써 그 어떤 사건보다 여론의 생명력이 강한 만큼 평결결과에 대한 반발과 지지가 엇갈리는 재판의 후유증도 만만찮을 조짐이다.USA투데이지가 평결직후 몇시간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상자의 62%인 1백36명이 무죄평결에 반대했으며 82명이 배심원단의 결정을 지지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여론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언론이 표현해왔듯 이번 재판은 「산더미같은 증거」들로 가득차 있었다.피살자의 피가 묻은 심슨의 가죽장갑과 양말,머리카락 등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물을 비롯,검찰측이 제시한 법정자료만해도 4백88가지에 이르렀다.게다가 1백26명의 증인들이 내놓은 온갖 증언들은 혈액과 머리카락의 유전자를 가려낸 DNA분석과 같은 과학적인것이든,영어를 못하는 히스패닉 주민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든 간에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단서를 구체적으로 제공해왔던게 사실이다. 16개월동안 그런 식으로 여론에 축적된 심슨재판의 정보는 그러나 단 4시간만에 흑인 9명,백인 2명,히스패닉계 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아무 쓸모없는 것」들로 변해버렸다. 배심원단이 많은 증언과 증거물들을 제치고 사건발생 시간으로 추정되는 그 무렵 시카고로 출장여행을 떠나는 심슨을 태우고 공항까지 간 리무진운전사의 증언록만을 재요청한 사실은 평결결과가 어떻게 무죄로 나왔는가에 대해 의미있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판단하기 어려운 여러 정황들을 검토하는 대신 단순하게 사건발생시간에 즈음한 심슨의 행적만을 따지는 이른바 「시간대」를 추적,아무리 민첩한 사람이라도 밤 10시 35분경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무참히 살해하고 11시까지 공항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의견을 모았다는 얘기다.게다가 결정적인 물증이 될 수 있는 살인도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검찰측이 제시한 장갑이나 양말등 판단하기 애매한 것보다는 장기간 격리생활에 지친 배심원단의 심리상태에 더 설득력있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 인종차별주의자 형사(마크 퍼먼)의 증거조작으로 비롯된 사건으로 몰고가며 인종편견을 부각시킨 심슨 변호인단의 수석변호사 조니 코크란의 『맞지 않으면 풀어줘라』는 최후변론이 먹혀들어간 셈이다. 심슨이 9백만달러라는 거액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동원한것도 무죄평결에 도움이 된것으로 분석된다.심슨은 거액의 변호비용을 들였지만 무죄평결로 앞으로 돈방석에 앉게될 것으로 보인다.그는 이미 한 유선TV와의 독점인터뷰를 전제로 2백만달러를 받기로 했으며 옥중에서 출판한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돼 4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자신의 로고와 이름등의 사용권으로 번 돈만해도 50만달러가 넘는다.심슨은 앞으로 1천만달러도 훨씬넘게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심슨은 그러나 전부인 가족이 제소한 민사소송과 자녀들과의 재결합문제등을 남겨놓고 있다.그의 재판은 더욱이 미국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냄과 동시에 무엇보다 인종문제는 미국사회의 여전한 약점이자 영원한 난제임을 부각시켰다. ◎미 배심원 제도란/「편견없는 보통사람」이 유무죄 결정… 평결 끝날때까지 격리 합숙생활 미국 헌법은 법전문가를 일부러 기피하고 법을 잘 모르는 「편견없는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재판의 핵심이라 할 유무죄를 결정케 하는 배심원제도를 두고 있다.배심원 선정시 인종을 문제삼아서는 안된다. 재판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12­23명)과 유죄여부를 결정짓는 소배심(6­12명)이 있고 6개월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에 대해 배심재판이 행해진다.그러나 민·형사소송사건의 90% 이상이 배심재판까지 가지않고 양측 협상으로 해결된다. 배심원은 재판이 열릴 지역에서 중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고 영어구사력이 있는 18세이상의 주민중에서 컴퓨터로 순번을 매겨 무작위추출한 뒤 판사·검사·변호사가 질문서 작성·면담 등의 절차를 걸쳐 선정한다.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평결이 끝날 때까지 생업을 포기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채 집단합숙을 해야 하며 주에 따라 1일 5∼50달러의 보수만을 받는다. ◎숫자로 본 심슨재판 ▲재판기간:371일(배심원 선정일로부터 평결 발표까지) ▲심슨수감기간:473일 ▲배심원 격리기간:265일 ▲증인수:126명(변호인측 54명,검찰측 72명) ▲증인신문 자료제시:857건(검찰측 488,변호인측 369) ▲변호인단:13명 ▲검사진:13명 ▲재판비용:약 880만∼900만달러(추정) ▲심슨의 변호사비용:약 900만달러(추정) ▲배심원 1인당 수당:1,325달러(1일 5달러) ▲공식재판기록:5만페이지 이상 ▲보도진 출입증 발급:1일 1,000∼1,100장 ▲기자실 전화라인:250회선 ◎심슨 무죄평결 이모저모/473일만의 석방장면 헬리콥터로 TV 생중계/피해자가족 “미국이라는 나라가 패배한것” 통곡 ○…이번 사건 담당검사들은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보이는 등 망연자실한 표정.니콜과 함께 살해된 골드먼의 아버지 프레드 골드먼씨는 『오늘 평결로 검사측이 아니라,미국이라는 나라가 패배한 것으로 믿는다』고 불만을 토로. ○미 언론 특별호외 제작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언론들은 무죄평결 결과가 나온 3일하오 걸프전 발발이후 처음으로 특별호외를 제작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표시.컴퓨터통신망 인터넷에도 이번 평결 관련의견들이 쇄도했고 외국언론들 사이에서는 믿을수 없는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 ○“살해범 찾는데 최선” ○…「세기의 재판」 주인공인 O J 심슨은 무죄평결 수분뒤 아들 제이슨이 낭독한 성명서를 통해 『이제야 믿겨지지 않는 지난 9개월간의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다』는 말로 첫 소감을 밝힌 뒤 전처인 니콜과의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를 보살피고 니콜의 살해범을 찾아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센트럴감옥에서 절차를 밟은 뒤 4백73일만에 석방된 심슨은 TV가 헬리콥터에서 생중계한 가운데 흰색 승용차편으로 귀가,지난해 살인혐의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심슨가족들은 심슨의 자택정원에서 샴페인 파티를 열고 석방을 자축. ○…심슨 평결이 무죄로 밝혀지자 주로 백인과 흑인을 중심으로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였던 미국전역에는 환호와 실망이 크게 엇갈린 분위기.무죄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LA법원 밖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던 수백명의 심슨 지지자들과 가정,거리에서 TV를 지켜보던 흑인들은 『심슨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제히 환호한 반면,대부분 심슨의 유죄를 믿고 있던 많은 백인들은 『모든게 인종문제로 변질돼버렸다』고 분노.하지만 심슨에 대한 무죄평결로 로드니 킹 사건때와 같은 LA지역 흑인폭동이 재연되지 않아 일단 안도하기도. ○…심슨평결이 생중계되는 동안 대부분 가정과 상점들이 TV를 켜놓는 바람에 전력수요가 급증한 반면 거리는 한산하고 뉴욕증시 거래량과 시외전화 사용량이 평소의 절반이하로 감소. ◎국내 법조계 시각/“지나친 인종문제 부각 사건본말 전도”/“본질흐린 변론에 평결 설득당할 우려”/“엄격할 증거법 채택요건이 되레 맹점” ▲김현 변호사=이번 평결은 검찰측이 제시한 증거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무죄로 판결하는 미국 배심원제의 인권옹호적인 측면을 여실히보여줬다고 생각한다.즉 10명의 범인을 풀어주는 결과를 낳더라도 1사람의 무고한 피고인을 처벌치 않겠다는 것. 그러나 미국 흑인들의 대중적 우상인 심슨사건에서 9명의 배심원이 흑인이었다는 점과 흑백갈등등 인종문제가 지나치게 부각,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돼 사건의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아 여론재판의 성격을 띤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윤세리 변호사=미국 배심제도의 특성은 법률전문가인 검사,변호사들이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경쟁이다.이때문에 평결은 기술적(technical)인 이슈보다 비기술적인 이슈에 좌우될 때가 많다. 이는 비전문가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 즉 유능한 변호사들의 본질을 흐리는 변론에 설득당해 법논리나 법리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평결을 내릴 우려가 있다.이 점에서 배심원제를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심슨은 유능한 변호사를 고르느라 8백여만달러에 이르는 소송비용을 썼다.결국 「유전무죄」의 판결이 아닌가. ▲이경택 변호사=미국은 법대교수등 법률전문가들은 배심원대상에서 제외한다.따라서증거에 대한 법률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배심원들을 위해 미국 사법제도는 증거법에 채택요건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이때문에 법률가들의 견지에서 볼때 증거가치가 있는 증거들이 배제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번 사건은 범행에 대한 의심은 충분히 가지만 범행당시의 목격자나 범행을 했다는 직접증거가 없어 무죄평결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 “건축시설 관리처분 인가권/구청에 재위임은 유효”

    ◎대법전원합의체 판결 건설부장관이 시·도지사에게 위임한 도시재개발법상의 대지 및 건축시설에 대한 관리처분계획 인가권을 서울시장이 구청장에게 재위임해도 당연무효사유가 아니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그동안 조례를 통해 도심지 및 주택개량 재개발사업에 해당하는 조합원에 대한 분양업무를 구청에 위임해 온 관행은 법적효력을 그대로 존속하게 됐다. 대법원전원합의체(주심 이돈희 대법관)는 7일 곽길순씨(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등 3명이 서대문구청장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인가처분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 생산임지에 공원 허용/불법전용 5년 넘으면 제한적 양성화

    ◎산림법 시행령 개정… 이달 시행 이달부터 농림어업인들이 불법전용한 산림 중 농림어업용·주거용으로 일정기간 사용했을 때는 양성화된다.또 산림을 보호하는 보전임지를 산림자원을 생산하는 생산임지와 산림의 공익기능을 높이는 공익임지로 세분하고,생산임지라도 정부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자연 휴양림·공원·수목원 등 국민보건 휴양시설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산림청은 12일 산지관리의 효율화와 임업의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산림법 시행령을 개정,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산림청은 국민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농림어업인이 산림을 불법전용했더라도 5년이상 농림어업용이나 주거용으로 사용했을 때는 이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시장·군수에게 내년 6월22일까지 제출하면 양성화해준다. 또 산지이용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보전임지를 생산임지와 공익임지로 세분하는 한편 보전임지의 면적을 지금보다 10만㏊를 늘린 5백만㏊를 조성할 계획이다.그러나 생산임지에 속해 있더라도 내무부,환경부,시도지사 등과의협의를 통해 수목원·공원·자연 휴양림 등 국민보건 휴양시설을 조성할 수 있도록 했다.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 변호사·검사 개별적 판사방문 금지/대법 「사법제도 개혁안」주요내용

    ◎생보자·국가 유공자 청구 즉시 국선변호인/경매수수료 평균 28%인하… 법전 폐쇄 TV 대법원이 19일 「법관윤리강령」과 함께 발표한 「사법제도 개혁안」은 지난 4월 세계화추진위원회와 함께 마련한 사법개혁 방안을 실현성에 바탕을 두고 구체화시킨 것으로 앞으로 법조의 운영에 커다란 변화를 부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주요 내용을 간추려본다. ▲전관예우근절=이른바 「전관예우」의 관행에 대한 시비와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대법원예규로 「특정형사사건의 재배당에 관한 특별관리제도」를 만들어 7월1일부터 시행한다.이 특별관리제도의 대상은 1·2심의 형사 및 감호사건·구속적부심·보석청구사건 등이다.이러한 사건들은 재판부와 변호사의 친소관계에 따라 정실이 개입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그러나 법률심인 대법원의 상고심사건과 민사사건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별관리를 받는 변호사는 재판부와 같은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변호사다.대상 법원도 퇴직 때의 최종근무 법원을 원칙으로 하되 전보된지 1년 안에 퇴직했을때는 그 직전에 근무한 법원도 해당된다.특별관리기간은 퇴직 1년이내이며 전보되기 직전의 법원은 전보된 때로부터 1년으로 정했다. 각 재판부는 이같은 사건을 배당받거나 배당사건에 해당 변호사가 선임됐을 때는 특별재판부에 재배당을 요구해야 한다. ▲변호사·검사 판사면담 금지=변호사나 검사가 사건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판사실을 방문,사건을 설명함으로써 이뤄지는 재판에 대한 불신을 원칙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다. 9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절차에 관한 지침」이 사실상 사문화 된데 따른 보완책이다.다만 기일의 원활한 진행 및 화해의 성사 등에 따른 절차적인 문제를 협의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엄격한 면담절차를 거쳐 예외적으로 면담을 허용한다.이 때도 면담을 원하는 일시로부터 24시간 전에 그 사유를 밝힌 면담신청서를 제출,법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법조 일원화 실현=지금 1천2백54명인 판사를 2000년말까지 1천5백명,2005년에는 1천8백50명 수준으로 지금보다 50%가량 늘린다.이를 위해해마다 3월과 9월 단행되는 법관정기인사에 앞서 1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변호사들로부터 판사임용 신청을 받으며 선발인원은 퇴직법관수와 법원별 증원요인등을 종합적으로 고려,적임자를 뽑는다.재조경력을 가진 변호사와 연수원졸업때 성적미달로 변호사를 택한 사람이 법관임용을 희망할 때는 고법판사급 이하의 서열에서 문호를 개방한다. ▲법률복지 확충=국선변호를 대폭 확대하기 위해 대법원예규를 개정,재판부의 국선변호인 선정대상 피고인을 ▲한달 평균수입 1백만원미만 ▲6급이하 공직자 ▲생활보호 대상자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 ▲구속 피고인 가운데 경제능력 부족으로 변호인 선임이 어려운 사람등으로 정했다. 민사소송의 고액화에 따른 인지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소송가액의 0.5%인 인지세를 0.5∼0.3%의 3∼4단계로 구분,신축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경매관련 제도 개선=경매수수료를 최고 42%,평균 28% 내리고 집달관의 정원을 33명 늘리면서 그 자격요건도 강화했다.이와 함께 입찰법정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설치,경매브로커들의 관여를 방지한다. ◎“강령 어기면 징계대상”/최종영 법원행정처장 기자회견/전국 법관의견 수렴… 대법관 회의서 의결 『법관윤리강령의 제정·선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법개혁작업의 마무리를 눈앞에 둔 사법부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구노력입니다.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판부및 재판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19일 법관윤리강령과 사법제도개혁안을 발표한 최종영 법원행정처장은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법관윤리강령은 법관 스스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재판에 임하는 자세를 새롭게 해 신뢰받는 사법부와 법관상을 구현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윤리강령을 어겼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 ▲윤리강령은 법관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윤리기준이므로 징계처분의 대상이다.그러나 강령은 선언적·윤리적 기준으로 처벌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강령위배자체로 징계할 수는 없으므로 법관징계법에 따라 처벌을 하게 된다. ­윤리강령의 제정과정은. ▲윤리강령은 미국의 「법관행위전범」과 법조윤리에 관련된 국내 논문을 참고로 초안을 만들었다.사법사상 최초의 윤리강령이라는 점을 중시,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법원행정처 실·국장회의를 열었으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도 충실하게 수렴했다.특히 강령의 제정과 시행이 갖는 의미에 무게를 싣기 위해 13명의 대법관전원이 참석하는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규칙으로 정했다. ­품위유지 등 10가지에 이르는 항목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진통이나 법관들의 이의제기가 있었을 법한데. ▲의견수렴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의 소수의견이 개진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대다수의 법관들은 이같은 윤리강령을 제정하는데 긍정적이었다.특별히 진통을 겪은 항목은 없었다. ◎법관 윤리강령 전문 제1조(목적)이 강령은 신뢰받는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법관이 준수하여야 할 윤리기준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2조(법치주의의 확립)법관은 헌법을 수호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는 책무를 다함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고 법치주의의 원칙을 확립한다. 제3조(사법권독립의 수호)법관은 정치권력·여론 그 밖의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고 자신의 개인적인 사상·가치관·종교등으로부터 오는 편견을 가지지 아니한다. 제4조(청렴성 및 공정성의 유지)법관은 청렴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가진다. 제5조(품위유지)법관은 명예를 존중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부적절한 언행을 삼간다. 제6조(직무의 충실한 수행)법관은 맡은 바 직무를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 제7조(직무능력의 향상)법관은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맞추어 필요한 지식을 익혀 터득함으로써 직무능력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다. 제8조(재판의 신속·적정한 수행)법관은 재판을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진행하며 신중하고 충분한 심리를 통하여 재판의 적정성이 보장되도록 한다. 제9조(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면담의금지)법관은 재판업무와 관련하여 법령이 허용하는 절차 밖에서 당사자 또는 그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 등과 면담하지 아니한다. 제10조(소송관계인에 대한 태도)법관은 소송당사자·검사·변호사 기타 소송관계인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한다. ◇부칙 이 규칙은 95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
  • 대한민국의 출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3)

    ◎첫 행정부 11부·4처로 구성… 총리에 이범석/국호·헌법전문에 상해임정 법통 승계 명확히 1948년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현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 마련된 정부수립 선포식장.7월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이 모습을 나타내자 세종로와 태평로를 꽉 메운 독립국가의 백성들은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단상에는 이대통령 부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신익희 국회의장,김병로 대법원장이,왼쪽엔 맥아더 태평양지구연합군사령관,하지 주한미군사령관,외국사절들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한」·「태한」 등도 거론 이대통령은 『이 정부가 변함없이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모범적 정부임이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하겠다』는 말로 경축사를 끝맺었다.일제의 강점으로 끊겼던 민족국가의 맥이 되살아나는 한편 이땅에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의 성격을 제헌국회 의원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을까.이는 국호를 제정한 과정에서 잘 나타나 있다.헌법 기초위원회는 6월7일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잠정 결정하고 이를 본회의에 넘겼다.본회의 토론에서 몇몇 의원들이 그 의의와 근거를 물었고 일부는 「한」,또는 「태한」으로 하자거나 국민 총의를 모아 참신한 새이름을 짓자는 의견들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기초위원회 서상일 위원장등은 『「대한」이란 국호는 청일전쟁 당시 이미 사용했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이와 함께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에서 수립한 임시정부에서도 그 이름을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최종 결정했다.상해임정에서 쓴 「대한민국」을 국호로 인정하고,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정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새 국가는 그 법통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또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확실히 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첫 행정부는 11부,4처,66국으로 짜여졌다.이대통령은 국무총리에 처음 이윤영을 내정하고 국회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이범석으로 교체해 인준을 받는다.이어 8월 1∼7일에 걸쳐 장관과 처장들을 임명했다.입법부에서는 이승만의 뒤를 이어 신익희가 국회의장이 됐으며,부의장은 김동원과 김약수가 선출됐다.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김병로가 맡았다. 11부의 장관과,4처의 처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내무 윤치영 ▲외무 장택상 ▲국방 이범석 ▲재무 김도연 ▲법무 이인 ▲문교 안호상 ▲농림 조봉암 ▲상공 임영신 ▲사회 전진한 ▲교통 민희식 ▲체신 윤석구 ▲총무 김병연 ▲공보 김동성 ▲법제 유진오 ▲기획 이교선 그러나 조각 결과는 제헌국회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한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조각 과정에서 소외된 한민당은 8월8일 『본당은 시시비비주의로 임할 것이며 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야당 세력임을 자처했다.따라서 한국 정치에 여·야 개념이 이때 비로소 발생했으며 한민당 계열은 이후 야당의 뿌리로 자리잡는다. 대한민국 수립에 앞서 미 군정의 정권이양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먼저 「5·10 선거」실시 열흘만에 군정은 입법기구 노릇을 하던「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문닫았다.이어 6월1일에는 군정재판을 폐지함으로써 입법·사법 두 기능을 마감했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다른 나라들로부터 정통·합법국가임을 인정받는 것이었다.아직 출범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필리핀이 7월4일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사실상」승인한다.8월13일에는 미국과 자유중국도 정부를 「사실상」승인했고 특히 미국은 무초를 외교대표로 임명했다. ○유엔총회 압도적 지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이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5·10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데다 유엔에서 주도권을 쥔 미국이 새 정부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승인」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그럼에도 새 정부는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해의 유엔총회는 9월21일 파리에서 막을 올렸다.이 자리에는 한국임시위원단의 보고서가 제출됐다.위원단은 「5·10선거」를 『전체 한국민의 3분의2를점하는 선거민들이 자유롭고 정당하게 의사표시를 했다』고 밝혔다.선거결과 구성된 제헌국회의 입법활동과 정부형성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보고서는 『미군사령부가 한국정부에 이미 정권을 이양했으며 한국정부는 정상적인 정부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총회의 끝 무렵인 12월7일부터 한국문제가 정식의제로 다뤄졌다.12일 총회는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에 있어 유일한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결의를 통과시켰다.찬성 41,반대 6,기권 1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였다.이 결의문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전국적 정부라는 선언을 조심스럽게 피하긴 했으나,대한민국 정부가 실질상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함축한 것이었다.더욱이 국제적 뒷받침이 거의 없었던 북한정권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확실하고 충분한 국제정치적 근거가 됐다. 유엔총회의 승인으로 자유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잇따라 수립됐다.1949년 1월1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4일에는 자유중국이,18일 영국,2월5일 프랑스,3월3일 필리핀이 뒤를 따랐다.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수교국가는 30개국 가까이로 늘어났다.이에 견줘 북한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소련권에 한정됐다.더욱이 「6·25」가 발발하자 유엔군 참전의 명문을 제공하는등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은 한국의 국제관계에 초석이 되었다. ◎영 소장 「미 한국승인 성명서」/미 “대한민국은 유엔결의로 세운 합법정부”/“카이로선언 연장선상서 탄생” 천명/이 대통령,즉각 “무쵸파견 환영” 답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대한민국 출범을 3일 앞둔 1948년 8월12일(한국시간 13일)미국 국무부가 새 한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영국 런던의 공기록보존소에서 찾아냈다.이 성명서는 비록 장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당시의 미국측 입장이 잘 요약돼 있다. 이 성명서에서 미국은 먼저 한국정부 수립이 1943년 12월 미국·영국·중국등 3국이 합의한 카이로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또카이로선언의 원칙은 포츠담선언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재확인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소련과의 협상 끝에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 정부는 1947년 11월14일 유엔총회 결정에 의해,정당한 과정을 통해 수립된 새 정부를 한국의 합법정부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 및 유엔한국임시위원단과 협상할 대통령 특사로서 로드 아일랜드 출신인 존 무초(John J Muccio)를 파견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한 이 성명은 무초가 초대 주한 미대사를 맡게 될 것임을 일찍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 성명에 대한 답신을 통해 미국이 대통령 특사로 무초를 파견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즉각 찬성한 답신 내용도 런던에서 발굴했다.8월17일 미국에 보낸 답신에서 이승만대통령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한·미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치하했다.
  • 제헌국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2)

    ◎내각­대통령책임제 공방… 대통령제로 결말/여·순 발란 등 소용돌이속 국가보안법 통과 우리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호칭이 등장한 것은 19 48년 7월 12일이다.국가의 기본골격인 헌법이 이날자로 제정되면서 대한민국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그 헌법은 5·10 선거에 의해 개원한 국회가 제정했는데 초대 국회를 제헌국회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과도입법의원 맹활약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 개원되었다.제헌국회는 물론 민주주의 방식의 첫 대의기구다.미군정 아래서 개원되었던 절반의 대의기구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염두에 두면 사정은 약간 달라질 수 있다.그러나 제헌국회는 과도입법의원의원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예행을 거친 국민들이 확실하게 뽑은 1백98명의 선량들이 참여한 국민의 대의기구였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15명이 국회에 진출,제헌국회개원에 깊숙이 간여했다.그들의 경험이 그만큼 존중되었던 것이다.특히 경기도 광주에서 경선 상대가 없이 무투표 당선된 신익희의 역할이 컸다.그는 미군정과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국회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전면에 나섰다.국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회운영에 관한 규칙법안이 이 위원회에 위임되었다. 이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제헌국회는 5월 31일 역사적 개원을 맞았다.제1차 본회의는 당시 최고령자였던 임시의장 이승만의 사회로 열렸다.국회의장단 선거에서 1백88표라는 압도적 표수로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했다.부의장에는 신익희(76표)와 김동원(77표)이 선출되었다.이날 서울 시내에는 경축 꽃전차가 거리를 누비는 가운데 하오2시 제헌국회 개원식이 베풀어졌다. 국회에는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가 설치되었다.이 위원회는 먼저 헌법학자 유진오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선임했다.유진오 전문위원은 내각책임제 및 양원제,3권분립을 중심으로 한 안을 내놓았다.그리고 법전편찬위원회(위원장 김병노)가 작성한 헌법초안을 비롯,임시정부헌장,과도입법의원 제정의 약헌,구미 각국의 헌법을 참고로 기초에 착수했다. 내각책임제안은 곧 바로 이승만의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12일 양원제를 단원제로 하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한 내각책임제 헌법안을 이의없이 채택했다.이승만은 마침내 분노하고 말았다.6월15일 기초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내각책임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책임제로 번안해줄 것을 요구했다.그러면서 측근을 시켜 국회가 내각책임제를 계속 밀고나가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은근히 위협해왔다. 그래서 이승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그를 제외시킨 정치문제논의는 무의미할 정도로 당시 정치상황에서 이승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던 것이다.유일한 정당이었던 한민당이 먼저 굽히고 들어갔다.이로써 6월22일 제17차 기초위원회에서 내각책임제 헌법안은 대통령책임제헌법안으로 번안하기에 이른다.이어 6월 23일 제17차 국회본회의에 대통령책임제 헌법안이 상정되어 20일간에 걸쳐 17차례의 토론을 벌였다. ○헌법안 20일간 격론 대통령책임제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한 것으로 되어있다.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명의의 헌법 전문은 단기 4281년 7월 12일이라고 분명히 적었다.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12일 자정을 약간 넘긴 0시28분에 제3독회를 마쳤다.그렇게 해서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되었다.기초과정부터 풍파를 일으킨 제헌국회의 헌법제정은 파란만장한 헌정사의 장래를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정부조직법은 7월 16일 제31차 본회의에서 제정되었다.17일 공포된 헌법절차에 따라 7월 20일 제37차 본회의에서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8월 3일 제37차 본회의는 이범석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가결시켰다.그리고 이승만의 대통령선출에 따라 신익희가 의장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김약수가 부의장이 되었다.이어 8월 5일 제40차 본회의에서 김병로 대법원장 임명 요청을 동의함으로써 정부수립을 위한 기본조치를 매듭지었다. 제헌국회에서 원내 세력판도의 윤곽이 드러난 시기는 의장단 선거를 전후해서다.이승만의 의장피선은 초당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었지만 2명의 국회부의장 선출에서는 그 색깔이 드러났다.신익희와 김동원의 부의장 피선은 원내세력을 국민회와 한민당이 주도했다는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이 때부터 각 정파 및 무소속의원들은 지연·인연을 따라 독자적 원내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급진적 이론파였던 성인회를 비롯,동인회,청구회가 연합하여 이른바 소장파 그룹을 만들었다.이 그룹은 한민당·이정회와 정립하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이는 10월 13일 긴급동의로 제출한 미군철수 결의안과 한미간의 여러 협정에 극력 반대하는 것등으로 나타났다.특히 미군철수 결의안은 북한 최고 인민위원회가 미·소 정부에 두 나라 군대 철퇴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낸 직후에 나왔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후하여 남한 도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1948년 10월부터는 국군에 침투했던 남로당 세포조직에 의한 무장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10월 2일 제주도군 경비1대대의 반란,10월 20일 제40연대의 여수·순천 반란,11월 20일 대구 제60연대 무장반란이 그것이다.엄청난 사상자를 낸 가운데 곧 진압되었지만,그 잔여세력들은 산으로 들어가 유격전을 벌였다.유격전은 북한의 강동정치학원 정치·군사훈련을 받은 요원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농개법 등 획기적 조치 그래서 국회는 11월 21일 공산주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준엄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당시 상황에서 국가 보안법 제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이에 앞서 9월 7일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1949년 2월 3일에는 농지개혁법을 통과시키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이들 법률의 내용과 집행을 둘러싸고 상당한 혼란과 대립도 뒤따랐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이다.국회안에서 소장파 그룹을 형성했던 노일환,김약수,김옥주등 13명의 의원들이 1949년 5월 20일부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실로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는 제헌국회의 얼룩이었다. ◎하버드대 소장 「사찰요람」/「국회 남노당 프락치사건」 북노당도 개입/당시 부의장 김약수 「배후 조종자」 분류/전 북노당 고위간부 “남북 합작” 증언 1949년 5월 20일 제헌국회의원 노일환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을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경우도 없지않다.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새로운 자료들과 증언을 통해 이 사건 배후에는 남조선 노동당(남로당)뿐 아니라 북조선 노동당(북로당)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친연구소에서 입수한 사찰요람에 따르면 당시 국회 부의장으로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김약수는 「이 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분류했다.이 문서는 그가 1947년 조선공화당을 조직,서기와 선전부장이라는 당직을 맡았던 사실도 들추어냈다.그리고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주한미군 정보처(G­2)의 주간정보보고서는 제헌국회 개원초기 이들이 들어가 있던 무소속구락부를 반우파적 집단으로 평가했다. 이어 주간정보보고서는 무소속구락부가 앞으로 좌익성향 구성원들의 집합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미 군정의 예측은 어느 정도 적중되어 국회활동을 통해 미군철수 결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출하는 등 북한의 주장을 동조하고 나섰다.국회 프락치 사건에연루한 이들은 주로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어 모두 3차례에 걸쳐 13명이 붙잡혀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만난 전 북로당 고위간부의 증언에서 북로당도 깊이 개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이 증언에 따르면 북로당원 성시백(김삼룡·이주하와 함께 6·25가 일어난 1950년 6월 27일 서울에서 처형되었음)이 관련되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남로당과 북로당의 공작이 횡적으로 들어갔는데 그에게 포섭된 인물은 황윤호(진양출신),김옥주(함양출신),강욱중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 감신대 총장 해임요구/교육부,비리확인

    교육부는 7일 지난 학기초 대량 유급사태가 빚어졌던 감신대에 대한 감사를 벌여 교비불법전용과 무인가 대학원 운영 등 비리사실을 밝혀내고 이종수 총장에 대해 해임조치를,박종천 교무처장 등 13명에 대해서는 경징계조치를 취하라고 재단측에 요구했다.
  • 불법전파설비 단속 강화/7월부터 현장압수·수색

    ◎정보통신부/공무원 43명에 사법경찰권 오는 7월부터 불법전파설비를 단속하는 공무원에게 위반자에 대한 압수·수색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사권이 부여된다. 정보통신부는 사법경찰관련 법률이 지난 1월 개정됨에 따라 산하 중앙전파관리소 31명,8개 지방체신청 10명,본부직원 2명등 모두 43명의 공무원이 최근 각 지방검찰청 검사장에 의해 사법경찰관리로 지정됐다고 4일 밝혔다. 이들은 경찰수사연구소에서 4주간의 위탁교육을 거쳐 7월부터 본격적인 사법경찰활동에 들어간다. 단속대상은 ▲허가없이 간이무선국(워키토키)사용 ▲준공검사없이 차량에 무선국 설치 ▲카폰겸용이 아닌 휴대용만으로 허가받은 무선국의 차량설치 ▲통화거리확장 목적으로 증폭기나 안테나 설치등이다. 사법경찰관리로 지정된 단속공무원들은 앞으로 판사의 사전영장을 발부받아 이같은 위반행위를 하는 유통업체나 사용자를 적발할 경우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직접 수사하게 된다. 한편 지난해 불법전파설비를 유통 또는 사용하다 적발된 건수는 1만8천8백10건으로 93년에비해 무려 2.3배나 늘었다.
  • 네팔 룸비니동산에 한국사찰 선다

    ◎조계종 대각사,부처님 태어난 성지에 건립키로/광복50돌 기념 8월15일 기공식 갖기로/대웅전·선원·석탑 등 전통양식으로 건축 부처님이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 한국의 절이 처음으로 설립된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각사는 최근 네팔의 룸비니사원구역에 한국사찰을 건축하기로 네팔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대각사 주지 불심도문 스님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성지의 대지 7천여평을 네팔정부와 99년간 임대차 계약을 하고 앞으로 5년 동안 10억원을 투입,건평 1천5백여평의 한국 사찰을 짓기로 국제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한국 사찰은 룸비니동산 국제사원구역 서쪽에 가로 1백60m,세로 1백60m의 정방형 대지에 건설되며 대지의 임차료는 매년 3백 달러씩이다. 대각사는 오는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기념해서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며 공사는 삼부토건이 맡게된다고 밝혔다. 한국사찰의 설계는 동국대 조경학과 홍광표 교수가 맡았다. 홍교수는 한국사찰의 설계기본 계획은 ▲우리 전통사찰 형식을 살리고▲불교의 만다라형을 도입해서 ▲현대적인 기능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짓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찰에 포함될 건물들은 ▲대웅전 ▲설법전 ▲선원 ▲강원 ▲스님과 신도용 요사 ▲종각 ▲고루 ▲회랑 ▲석담 ▲정문과 측문 ▲연지 ▲석탑 ▲석등 등이다. 현재 일본·베트남·태국·중국 등이 룸비니 개발 계획에 참여해서 자국 사찰 건설 공사를 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번에 19번째로 계약을 체결했다. 룸비니성지 개발계획은 지난 1978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정신이 태어난 이곳을 세계 형제애의 상징으로 가꾸기 위한 유엔의 개발계획의 하나로 국제위원회 산하 15개국이 참여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설정한 국제 사원구역 40여개의 부지에 각국의 사찰이 건설될 예정이며 한국 절이 착공될 부지는 일본·중국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이며 위치와 전망도 좋은 곳이다. 대각사 주지 도문 스님은 『부처님이 태어난 성지에 한국 절을 지음으로써 한국 불교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것으로 본다』며 『절이 완공되면 우리 신도들의 성지순례와 군승등 우리 스님들의 해외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 현암사/을유문화사/동아출판사/학원사/탐구당/창업 50돌 맞았다

    ◎현암,초판본찾기·시민강좌 마련/을유 등 4개사도 기념사업 계획 국내 출판사 가운데 현암사(대표 조근대),을유문화사(정진숙),동아출판사(김현식),학원사(김영수),탐구당(홍석우)등 5곳이 올해 창업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벌인다. 이 출판사들은 광복이후 「민족교육에 한몫을 맡겠다」며 출판업에 나서 갖은 어려움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고 또 그만큼 출판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출판계는 이들의 「창업 반세기」를 큰 경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기념사업을 확정한 출판사가 현암사.현암사는 「50년의 전통,100년의 비전」이란 기치 아래 올 한햇동안 ▲초판본 찾기 ▲시민강좌 ▲환경생태 사진전및 환경답사 캠프 ▲유럽 자전거 여행 ▲독자 사은품 증정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초판본 찾기」는 현암사가 70년이전에 낸 도서 가운데 11종을 골라 그 초판본 소장자에게 내년 1년동안 출간하는 책을 모두 선물하는 행사.해당도서는 「건국공론」「한국공론」「처세철언」「법전」「흙 속에 저 바람 속에」「시장과전장」「한국문학」「신역사서」「신역삼경」「한국의 명저」「한국인」들이다. 이 중 「흙 속에…」는 이어령씨의 첫 에세이집으로,「시장과 전장」은 첫 전작 장편소설로,「한국문학」은 첫 계간 문학전문지로 출판역사에 남아 있다. 현암사는 또 「새로운 삶의 비전,21세기를 향하여」란 주제로 오는 3월17일부터 매달 한차례씩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시민강좌및 대토론회를 개최한다.이 시민강좌에는 김진현세계화추진위원장등 각계 전문가들이 나와 정보화사회·문명변화·통일전망·세계화들을 다룰 예정이다. 이밖에 환경보존 운동의 하나로 다음달 23일부터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를 도는 환경생태사진전을 열며 오는 8월에는 우리의 꽃·나비·새등 생태계와 별자리를 관찰하는 여름캠프를 개설한다. 한편 을유문화사를 비롯한 나머지 4개사는 현재 기념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이다.
  • 주유엔 대사 박수길씨/외교안보 연구원장 이정빈씨

    정부는 11일 주유엔대사에 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을,외교안보연구원장에 이정빈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을 임명하는등 본부 간부 및 공관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인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시드니총영사 민병규 ▲주미공사 정의용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 이창범 ▲2002 월드컴축구유치위원회 사무총장 송영식 ▲장관특별보좌관겸 통상담당대사 김삼훈 ▲의전장직무대리 문동석 ▲아시아·태평양국장 김하중 ▲통상국장 장기호 ▲구주국장 한태규 ▲공보관 유광석◎국제대형사건 처리 역량발군/박수길 주유엔대사 훤칠한키에 구수한 화술이 호감을 주는 보스형. 61년에 외무부에 들어온 국제법전문가. 제1차관보시절 김만철일가 망명사건,도재승서기관피랍, KAL기 폭파사건 등 국제적인 대형사건처리에 외교역량을 발휘. 제네바대사 시절에는 쌀시장개방소신을 밝히다가소환되기도 했다. ▲경북 경산·62세 ▲고려대 법학과졸 ▲외무부 조약국장 ▲외무부1차관보 ▲주제네바대사 ▲외교안보연구원 ◎6공때 북방외교 적극수행/이정빈 외교안보위원장 온유한성품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전형적 직업외교관.업무추진에서는 큰 줄기와 방향을 잡은 뒤 후배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후배들의 신망이높은 편. 1차관보로 재직시에는 한·소수교에 깊숙히 참여하는 등 6공의 북방외교를 적극 수행 ▲전남 영광·58세 ▲서울대 행정학과졸 ▲외무부 중동국장 ▲대통령정무비서관 ▲주스웨덴 대사 ▲외무부 1차관보 ▲주인도 대사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죄와벌(외언내언)

    미 텍사스주 휴스턴의 테드판사는 범죄자들이 두번다시 범법할 마음이 안 들도록 기발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신문지상의 「해외토픽」등을 통해 알려진 인물이다. 한 절도범에게 10년 집행유예기간동안 매달 정기적으로 경찰서마구간 청소를 하도록 했는가 하면 피아노교습중 아이들을 성희롱한 파렴치한의 피아노를 압수하고 그의 집 대문에 죄상과함께 아동출입을 경고하는 내용의 알림판을 걸도록 판결했다.뉘우침이 없는 한 살인범에겐 감방 침대 바로 위 천장에 그가 죽인 사람의 대형사진을 걸도록 했다. 상당수의 범죄자들이 교도소를 밥세끼 공짜로 먹고 시간 때우는 휴게소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단순히 집행유예 또는 징역 몇년 하는 식의 판결로는 이들에게 인과응보나 참회의 의미를 깨닫게 할 수 없다는 게 테드판사의 지론이다. 치안은 국가통치의 요체인 만큼 동과 서를 불문하고 예나 지금이나 모든 나라에서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부문이며 죄를 다스리기 위해 주는 벌도 다양한 것 같다.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왕은 「눈에는 눈」의 동태 응징식 법전을 만들었고 적잖은 후세사람들이 「범법자에 너무 잔인하다」라는 평을 하고 있다.그렇지만 피해자측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나 막강한 세력행사로 무제한의 보복이 가해지는 폐해를 없앤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장개석정부는 살인강도범들을 고공의 비행기에서 남지나해 한가운데 떨어뜨림으로써 공포감을 증폭시켜 흉악범죄발생에 확실하게 제동을 걸었다.중국의 흉악범들은 재판때 고개도 들지 못하고 공개처형되는 경우가 많다.세상을 바로 볼 자격이 없고 쓰레기같은 존재이므로 병균을 퍼뜨리기 전에 빨리 없애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형사정책연구원조사결과 범죄는 이루말할수 없이 날로 흉포화하는데 반해 형량은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죄가 미울 뿐이라는 관용은 좋으나 국민들이 악의 공포에서 해방되게끔 범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명판결이라도 기다리게 되는 요즈음 세태가 아닌가.
  • 세무관련 서비스 확대/법정부록 서식 복사가능

    납세자들은 새해부터 법전의 부록에 붙어있는 세무 관련 서식을 복사해 쓸 수 있다.또 총 2백6개의 세무관련 민원 서식 중 2백2개는 개인컴퓨터(PC) 통신으로 받아 볼 수 있다. 11일 국세청에 따르면 총 서식 중 4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PC통신으로 제공하고 법전 부록의 양식을 확대 복사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민원 서식을 받으러 세무서까지 갈 필요가 거의 대부분 없어지는 것이다. 국세청은 당초 PC통신 서비스 대상 서식을 부가세 과세 특례포기 신고서,법인합병 신고서,분납 신청서 등 1백90종만 하기로 했다가 기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4개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제공키로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전화자동상담제도(TRS)도 개선,현재 음성으로만 제공하는 정보를 민원인이 원할 경우 팩스로도 제공하기로 했다.
  • 박찬종씨 대표 박탈/신민당

    신민당은 9일 당무회의를 열어 박찬종 공동대표의 대표직을 박탈했다. 신민당은 이와 함께 공동대표제를 단일대표제로 하는 당헌개정안을 의결한 뒤 김동길 대표를 단일대표로 선출했다. 신민당은 『박대표가 불법전당대회를 통해 해당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돼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박찬종대표는 『당이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이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유감』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당권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해 일단 당의 조치에 승복할 뜻임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신민당은 박대표와 임춘원의원의 당원권을 2년씩 정지시키기로 했다.
  • 박찬종씨 사과땐 당화합위해 화해/신민 김동길대표

    신민당의 김동길대표는 4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불법전당대회를 치른 인사들이 잘못을 시인한다면 당의 화합을 위해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해 박찬종대표와 화해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김대표는 『박대표의 당직은 여전히 신민당 공동대표』라고 강조하면서도 『당의 분란에 대해 박대표가 사과한다면 이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말해 화해의 조건으로 박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한편 박대표는 김대표의 이날 회견에 대해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김대표의 「선 사과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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