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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드라이브] 트랜스포머·파워레인저 뛰는데… 태권브이 달려!

    아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다 알 것이다.‘파워레인저 매직포스’의 엄청난 ‘포스’를. 어린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고∼파이트 파워 파워 파워레인저∼’로 시작하는 주제가를 불러제친다. ‘파워레인저’가 아직 뭔지 모르신다고? 일본 도에이 컴퍼니가 제작한 SF 액션 모험극인 ‘파워레인저’는 평범한 10대 5명이 마법전사로 변신해 악의 세력에 맞서 지구를 구한다는 게 기둥 줄거리다. 말하자면 국내에서 제작된 ‘지구용사 벡터맨’ 같은 어린이용 드라마다. 1975년 ‘비밀전대 고레인저’로 첫 전파를 탄 이래 올해로 32년째를 맞고 있는 이 시리즈는 현재 국내 한 케이블 채널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우리가 ‘B급’이라고 낮춰 부르는 이 시리즈의 영향력은 실로 놀랍다.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 뮤지컬로 무한대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이 시리즈의 극장판이 이달 17일 개봉된다. 검증된 인기에 예매가 폭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이들을 극장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난감에서 출발해 1984년 TV만화영화로 만들어진 뒤 20년 만에 다시 실사 영화로 제작됐다. 바로 ‘트랜스포머’다. 할리우드는 월등한 기술을 앞세워 상상만 하던 변신 로봇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고, 국내에서 개봉 1주일 만에 260만 관객을 너끈히 돌파했다. 미·일 양국의 로봇 전사들이 관객몰이에 나서고 있는 이때 우리의 ‘로보트 태권브이’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올초 디지털로 복원돼 30년 만에 관객과 만난 태권브이. 어른들의 평은 엇갈렸다. 어린시절을 다시 추억할 수 있어 좋았다는 쪽과 요즘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쪽. 하지만 아이들은 열광했고,75만명을 동원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태권브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될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은 입증된 셈이다. 이에 힘입어 태권브이도 변신을 준비 중이다. 새달 피규어 인형으로 첫선을 보이는 태권브이는 2년 뒤 극장용 3D애니메이션으로 나올 계획이다. 장차 실사영화는 물론 테마파크의 주인공으로도 입지를 확장해 나간단다. 과거의 향수만을 만지작대다가 또다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기우였다. 조만간 우리 아이들 입에서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하는 노랫소리가 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인권변호사 에바디의 회고록 출간

    ‘다음 처형할 대상은 에바디’ 200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시린 에바디(60)는 1990년대 후반 암살된 지식인의 가족을 변호하기 위해 정부 관료와 암살 전담반이 나눈 대화록 파일을 열람하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러나 보통사람에게는 소름이 끼칠 이런 ‘사건’도 에바디에게는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시린 에바디, 아자데 모아베니 지음, 황지현 옮김, 황금나침반 펴냄,2007)’는 정치적 억압과 유혈 투쟁으로 격동의 역사를 살아온 이란에서 여성과 아동의 인권 수호에 앞장선 시린 에바디가 쓴 회고록이다. 1947년 이란 하마단에서 태어난 에바디는 당시로서는 아주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는 에바디와 남동생을 아들과 딸로 구분하지 않았고, 또 아버지는 어머니를 지극히 존중했다. 이렇듯 이슬람국가 답지 않은 집안 분위기에서 평등의식과 자존감을 키워온 에바디는 자연스럽게 불합리한 처사와 불평등에 비판의식을 갖게 됐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에바디는 1970년 23세의 나이로 이란의 첫 여성 판사가 됐지만 영예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 강경 보수파의 신정 체제가 ‘여성은 법 집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듬해 판사직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에바디는 단순 사무직으로 강등됐다. 하지만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는 등 엄혹한 세월이 닥쳤지만, 조국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에바디는 1992년부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에바디는 여성의 생명 가치를 남성의 절반으로 규정하고, 여성의 이혼권 및 자녀양육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 체계를 바꾸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에바디는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무슬림의 한 사람으로, 진정한 이슬람 율법은 여성의 평등권 및 민주주의 가치와 공존하는 것임을 입증해보인다. 그에게는 2001년 노르웨이의 국제적 인권상인 라프토 상을 비롯해 권위있는 상이 잇따라 주어졌다. 하지만 상의 목록보다도 더 빛나는 것은 무자비한 가부장적 체제와 편파적 법전 해석에 맞서 온몸으로 싸운 에바디의 피와 땀 그 자체이다.1만 2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재테크 칼럼] 탈세 기회비용 커졌다

    서울에서 2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A씨.3년 전 4억원을 주고 취득한 주택을 8억원에 팔려다 보니 중과세율 등으로 세금 부담이 너무 컸다.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하다 시세보다 싸게 파는 조건으로 매수자와의 계약서 금액을 7억원으로 줄여서 신고하려고 한다. 사려는 사람도 매매가액을 기준으로 취득·등록세가 부과된다.‘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곤 한다. 그러나 고민이 지나쳐 절세를 넘어 탈세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이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과세당국이 전체 경제행위를 모두 아우르면서 법전에 규정된 세금을 모조리 징수하는 것은 행정력 상의 한계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납세자 입장에서는 ‘과세당국이 여기까지 알겠냐.’면서 법적 기준에서 허용하지 않는 탈세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 가산세라는 기회 비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말 세법이 개정되면서 신고불성실 가산세가 기존 10∼20%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신고하지 않거나 과소 신고하면 40%까지 높아졌다.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소득을 실제 발생액보다 적게 신고하면 10%, 신고를 하지 않으면 20%의 가산세를 내야 한다. 납부할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거나 미달 납부한 경우엔 미납(미달)금액을 기준으로 일일 0.03%(연 10.95%)의 납부불성실 가산세도 부담해야 한다. 사례와 같이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뒤 양도차익은 실제보다 1억원이 줄어든다.50%의 중과세율을 감안하면 탈세액은 거의 5000만원에 이른다. 다운계약서를 통해 양도가액을 1억원 줄인 것은 부당과소신고에 해당하므로 탈세액 5000만원에서 40%의 가산세를 적용하면 2000만원의 신고불성실 가산세가 부과된다. 또한 양도세 확정신고기한인 다음연도 5월 말까지 미납할 때는 미납세액에 대해 연 10.95%씩 납부불성실 가산세도 내야 한다.4년 정도 지난 뒤 발견되면 219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즉 양도세 추가분(5000만원)에 신고불성실(2000만원)과 납부불성실(2195만원)의 가산세를 합하면 9195만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는 탈세로 줄어든 양도세액의 84%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근 시세보다 낮은 가액으로 신고하면 세무조사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부동산 거래신고제 등이 도입되면서 과세 환경이 투명해지고 과세당국의 소득파악 기법도 날로 발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늘어난 가산세율 만큼 탈세의 기회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이 보다 현실감 있게 느껴질 것이다. 이신규 하나은행 전문가팀장 세무사
  • [윤설영 기자의 고시 블로그] 사법시험장의 어머니들

    서울시내 4개 대학에서 2차 사법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 1차 시험에 합격하거나 지난해 합격해 1년 유예를 받은 수험생 5000여명이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9일 시험장 중 하나인 한양대학교를 찾았다. 시험 시작 2시간 전인 아침 8시가 되자 긴장한 모습의 수험생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여느 시험장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적막감에서 오는 긴장감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는 선후배들끼리 나누는 “시험 잘 봐라.”하는 덕담 말고는 사소한 잡담도 하지 않았다. 간혹 담배 연기만 모락모락 올라왔다. 시험장 밖에선 또다른 초조함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수험생의 어머니들. 시험장 앞 벤치에 수험생들의 어머니로 보이는 20여명의 중년 여성이 시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10여년전 아들·딸들이 수능시험을 치를 때도 이렇게 초조한 시간을 보냈을까. 일찌감치 성경책을 펴놓고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한 어머니는 전날 아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는 아들이 생수에 김밥을 먹고 소화가 잘 안돼 떨어진 것 같다.”면서 “올해는 끓인 물과 도시락을 직접 싸왔다.”면서 초조해 했다. 어떤 어머니는 딸이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까지 들어가 자리를 확인한 뒤 안심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험장까지 법전을 들고 계단을 오른 것은 딸이 아닌 어머니였다. 이 학교의 한 교직원은 “매년 시험 때마다 보던 광경이어서 별로 신기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 걱정이 앞서는 어머니의 마음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를 뽑는 시험이다. 성인이 다 된 아들 딸들이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의지하는 모습이 미더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snow0@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지방에는 중인이 맡을 관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신분은 호적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와그너 교수가 1663년에 작성된 서울 북부 호적을 분석해 보니 양반 신분의 호주가 16.6%, 평민 신분의 호주가 30%, 노비 호주가 53.3%였다고 한다. 양반은 현(顯), 평민은 작(作), 노비는 천(賤)이라는 표시로 구분되어 있다. 평민 호주도 171호 가운데 67호가 비(婢), 즉 여종을 아내로 맞아 살고 있었다. 노비의 비율이 이렇게 많은 것은 양반이 많이 사는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중인은 워낙 적어 평민 속에 묻혀 있었다. ●중인들은 직업상 성안에 많이 살아 규장각에 ‘북부장호적(北部帳戶籍)’이란 책자가 소장되어 있다. 이 호적 첫 줄에는 ‘강희이년계묘식년북부장호적(康熙二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이라는 제명이 쓰여 있는데,‘3년마다 작성하는 관례에 따라 1663년에 작성한 서울 북부지역 호적’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북부는 사대문 안의 북부가 아니라 사대문 밖의 북부이다. 사대문 안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의 5부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도성 밖 10리를 성저(城底)라고 했는데 이에 해당되는 북부 주민들이 이 호적에 실려 있다.16개 마을의 681호가 152장 분량으로 정리되었다. 망원정계(망원동) 141호, 연서계(역촌동) 96호, 합장리계(합정동) 89호, 성산리계(성산동) 57호, 여의도계(여의도동) 44호, 증산리계(증산동) 41호, 수색리계(수색동) 43호, 가좌동계(가좌동) 39호, 신사동계(신사동) 32호, 세교리계(서교동) 23호, 말흘산계(홍제동) 20호, 홍제원계(홍제동) 16호, 연희궁계(연희동) 16호, 양철리계(대조동) 11호, 아이고개계(아현동) 10호, 조지서계(홍제동) 3호 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섞여 있다. 조지서(造紙署)는 종이를 만드는 관청인데, 인왕산에서 창의문을 나서면 오른쪽에 있었다. 호수가 많다고 반드시 큰 마을은 아니다. 양반들이 사는 마을은 아무래도 집이 크기 때문에 호수가 적고, 노비들은 몰려 살다 보니 호수가 많아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평민들은 군역(軍役)을 지고 있었는데, 북부 평민의 군역은 보병(步兵) 3호, 마병(馬兵) 29호, 포수(砲手) 27호, 보인(保人) 7호, 한량 4호에 정병(正兵) 21호, 내금위(內禁衛) 등 12호, 무과 급제자인 출신(出身) 7호 등이 있었다. 군역 이외의 특수직역으로는 역리(驛吏) 38호, 어부 4호, 서리(書吏) 2호, 장인(匠人) 1호, 봉수군(烽燧軍) 1호가 있었다. 관직이나 품계 보유자로는 내시(內侍) 9호, 관직 보유자 20호, 품계 보유자 3호, 율학교수(律學敎授) 1호가 평민으로 분류되어 있다. 내시는 평민으로 분류되었지만 양반 색채가 짙으며, 모두 노비를 소유하고 있다. 와그너 교수는 서리와 어부의 아들도 모두 역리라고 밝혔는데, 서대문에서 홍제원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연서역(延曙驛)이 있었기 때문에 역리가 많았다. 이 마을은 지금도 역촌동(역마을)이라 불린다. 평민 가운데 서리 2호와 녹사 1호, 율학교수 1호가 중인 집안이다. 양반 출신의 처는 씨(氏), 평민 출신의 처는 조이(召史·이두식 표기), 노비 출신의 처는 비(婢)라 불리는데, 상류층 양반의 처는 대부분 씨로 표시되었지만 하류층 양반과 중인의 처는 씨, 조이, 비가 섞여 있어 중인이 양반과 평민 사이의 신분임이 드러난다. ‘북부장호적’만 가지고 서울의 중인 비율을 계산할 수는 없다. 한성부 북부는 성안에 9개방, 성밖에 3개방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자료에는 성밖 마을 호적만 남아 있다. 중인들은 직업상 관청이 많은 성안에 살기 때문에, 성밖 마을 자료만 가지고 전체 비율을 짐작할 수는 없다. 호적에는 4대조가 기록되기 때문에 중인들이 어느 집안과 혼인하여 전문직을 세습하는지 알아보기 좋다. 북부 호적에 나타난 중인의 직역으로는 율학교수, 산학훈도(算學訓導), 산학별제(算學別提), 역관(譯官)이라는 기술직과 녹사(錄事), 서리라는 행정직이 있다. ●수색에 살던 중인 율학교수 가족 수색리에 살던 율학교수 김익상(金益祥)은 전형적인 중인이다.‘용궁’이라는 본관부터 중인임을 나타내며, 외가인 오산 박씨도 역시 중인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산학(算學) 훈도와 별제였다. 장인 송인남도 율학교수여서, 전문직끼리 혼인하는 습관을 보여준다. 중인 전문직을 선발하는 과거가 잡과인데, 역과, 의과, 음양과, 율과의 네 종류만 실시하였다. 격이 떨어지는 산학(算學)은 화원(畵員)같이 취재(取才)라는 시험으로 선발했다. 문과는 각도에서 1차시험을 치렀지만 율과는 서울에서만 실시하여 18명을 뽑았으며,2차시험인 복시에서 9명을 추려 선발했는데 형조(刑曹)에서 주관하였다. 문과같이 임금 앞에서 치르는 3차시험 전시(殿試)는 따로 없었다.‘대명률(大明律)’은 책을 보지 않고 돌아앉아 외었으며, 당률소의(唐律疏議)·무원록(無寃錄)·율학해이(律學解)·율학변의(律學辨疑)·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펴놓고 읽게 하였다.‘무원록’은 글자 그대로 원통하게 죽은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부검(剖檢)하는 방법을 기록한 책이고,‘경국대전’은 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의 순으로 편집된 조선의 종합 법전이다. 율과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이 찍힌 백패(白牌)를 주고,1등에게 종8품계,2등은 정9품계,3등은 종9품계를 주었다. 율관은 종6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형조에서는 법률·소송·노예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는데, 율학청(律學廳)에서 법률을 가르치는 책임자가 바로 종6품 율학교수이다. 형조에서 중인으로는 가장 높은 관직이며, 그 아래 종7품의 율사(律士)와 정9품의 율학훈도를 두었다. 율과시험에 응시하려면 율학청에서 법률공부를 해야 했는데, 법률문서가 한문과 이두(吏讀)로 복잡하게 쓰여서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율학생의 정원은 형조에 40명을 비롯해 전국 부(府)·목(牧)·군(郡)·현(縣)에 배정되었으며, 검률(檢律 종9품)이 각 지방에 파견되어 법률 해석과 교육을 담당하였다. 망원정계에 살았던 녹사 고승길(高承吉)과 서리 김자순(金自順)·오영철(吳英鐵)은 행정직 중인인 경아전이다. 조선 초에는 과거에 응시할 실력이 없는 양반들이 행정 말단에 녹사로 서용되어 기한을 채우다가 지방 관직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는데,17세기 이후에는 양반에서 완전히 탈락하여 중인의 일자리가 되었다. 고승길의 증조부는 통정대부였지만 부친과 조부, 그리고 외조부까지 모두 충순위(忠順衛)나 충의위(忠義衛)라는 특수 군역을 지녔으니 말단 양반에서 탈락한 중인이다. 처 오씨도 씨(氏)로 표기되었으니 양반 출신이다. 서리는 녹사에 비해 격이 떨어지며 인원도 많다. 김자순과 오영철의 부·조부·증조·외조 가운데 서리가 없었으니, 세습직이 아니다. 김자순의 부친은 어부였는데, 조이(召史) 처에게서 낳은 아들은 천역인 역리(驛吏)가 되었다. 오영철이 사비(私婢) 처에게서 낳은 아들은 사노(私奴)가 되었으니, 재산을 축적하여 중인 신분으로 자리잡는 서리들과는 거리가 멀다. 천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903년 성안 3개 지역에 중인 호주 1명뿐 갑오개혁 이후에 호적제도가 바뀌자 1903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신호적 양식으로 조사한 호구표가 일본 교토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2만 4000장 분량이다. 이 많은 분량을 모두 조사 분석할 수 없으므로, 조성윤 교수는 성안 3개 방(坊)과 성밖 3개 방을 선정해 분석하였다.240년 전의 호적과 크게 달라진 점은 갑오개혁으로 노비가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4조와 외조를 기록하는 법은 여전하였다. 조교수는 6개 방에 양반 호주 903명, 중인 호주 1명, 평민 호주 1390명, 근대직업을 가진 호주 98명이 살았다고 통계를 냈다. 성안 3개 방에 중인 호주가 1명뿐이라는 것은 뜻밖인데, 갑오개혁으로 정부조직이 달라져 근대직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성윤 교수는 다른 자료를 통해 19세기 중인의 비중을 보여 주었다. 첫째는 ‘속대전’에서 서리 정원을 1400명 정도로 규정했는데 그 가족을 합치면 상당한 규모라는 점이다. 둘째는 1882년 임오군란에 파괴된 중인 부잣집만 해도 70여채였다는 점이다. 셋째는 1801년 서울에 거주한 천주교인이 양반 73명, 중인 75명, 평민 103명, 천민 27명이었으니 그 가운데 중인이 27%나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숫자들은 특수한 자료지만, 중인의 존재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증거는 될 것이다. 다음 호에는 중인들의 족보를 통해 전문직이 어떻게 세습되었는지 밝혀 보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정치적 파장 고려… 7시간 20분 열띤 토론

    정치적 파장 고려… 7시간 20분 열띤 토론

    7일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4층. 오전 10시부터 굳게 잠겼던 회의실 문이 오후 4시쯤부터 간헐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선관위 실무 직원들이 하나둘씩 들락거렸다. 선관위원들도 손을 씻기 위해 잠시 복도로 나왔다. 회의장 바깥에서 기자들이 따라 붙었지만 선관위원과 선관위 직원 모두 “곧 결정이 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오후 5시20분, 회의 시작 7시간20분만에 결과가 발표됐다. 양금석 공보관이 2층 브리핑실에서 A4 2장 분량의 발표문을 읽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퇴근하는 고현철 선관위원장에게 기자들이 ‘청와대 반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지만,“충분히 토론해 결론 내렸다.”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사전선거운동 여부와 관련해 선거위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정도로 격론을 벌인 선관위원들은 후련한 듯하면서도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출근할 때의 경직된 모습은 많이 가셨다. 출근하던 선관위원들은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논의해봐야 한다.”며 급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심지어 회의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될지 물어도 “알 수 없죠.”라며 웃을 뿐이었다. 한 위원은 청와대의 변론기회 신청에 대한 견해를 묻자 “양측 의견이 이미 나와 있는데요.”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펴다가는, 변론 절차가 필요 없다는 뜻이냐고 다시 묻자 “의논해 봐야죠.”라며 말을 아꼈다. 오전 10시 고 선관위원장이 “선관위 전체회의를 개의합니다.”라고 의사봉을 두드리며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연설내용에 대한 위법성 여부 심사가 시작됐다. 선관위원석에는 선거·정당·정치자금 법규집과 대법전, 선거관리위원회 법규집, 국민투표법령집 등 4권의 책자가 놓였다. 일본 출장 중인 임재경 위원을 제외한 선관위원 전원과 조영식 사무총장을 비롯한 선관위 간부 10여명이 배석했다. 회의실 바깥에는 선관위 직원이 배치돼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청사 주변에도 전경 1개 중대를 배치했다.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 사전선거운동 여부 판단, 사조직 관련 내용 등 안건이 한꺼번에 회의석상에 올라갔지만, 오전에 선관위원들은 청와대의 의견진술 요청에 대한 심리를 먼저 했다. 청와대 요청을 기각하기로 했다는 결정은 서면으로만 공개됐을 뿐 구두 설명은 없었다. 청와대 요청을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례도 없고 의무도 없으니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후문이다. 회의장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오후 4시쯤 사실상 결론이 났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문구를 작성하고 다듬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면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사안별 표결 내용과 소수 의견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회의에서 결정했지만 취재경쟁 끝에 공개됐다. 홍희경 나길회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선관위의 엄정한 결정을 기대한다

    중앙선관위가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발언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시켰고, 청와대는 “선관위가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리면 헌법소원 등 쟁송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특히 청와대가 선관위의 판단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중앙선관위원들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실정법에 따라 엄정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중앙선관위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변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선관위원 전체회의는 재판과 다르다. 증거 자료를 놓고 선관위원들이 독자적으로 위법성을 판단하는 자리다. 때문에 조사 대상자들을 회의에 참석시켜 소명하는 절차를 가진 선례가 없다. 청와대에 이같은 의견진술 기회를 준다면 특혜로 비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생생한 특강 발언록과 당시 정황이 모두 녹취되어 있다. 이들 자료만으로도 선관위원들이 판단을 내릴 근거는 충분하다고 본다. 청와대가 헌법소원 운운했지만 그 또한 선관위원들이 염두에 둘 이유가 없다. 다수 법전문가들은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법리상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데 국가권력 행사의 최고당사자인 대통령이 내기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라고 말끝을 흐리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엄포에 선관위의 중립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정치중립 및 사전선거운동 위반 여부와 함께 참평포럼의 선거법상 사조직 여부를 가려야 한다. 참평포럼이 대선국면에서 위법 행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활동의 한계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평포럼은 선관위의 결정을 겸허하게 기다리기 바란다.
  • 국세청이 밝힌 투기수법

    국세청은 4일 경기도 동탄 신도시 예정지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원주민 명의를 빌려 농지를 사들이거나 탈루한 사업소득으로 토지 등을 사는 등 이들 지역에서 적발된 투기수법을 공개했다. #사례1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 거주하는 원주민 이모(70)씨는 지난 3월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는 동탄면 일대 농지 7500㎡(추정 시가 16억원)를 사들였다. 국세청은 그러나 이씨가 뚜렷한 직업이나 소득원이 없고, 제3자에게 명의를 빌려준 혐의가 짙다고 보고 관계기관에 통보했다. #사례2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문모(44·여)씨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12차례에 걸쳐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는 화성시 동탄면과 용인시 남사면 주변 주유소 용지를 포함해 토지 1만 1300㎡(추정 시가 52억원)를 사들인 뒤 이중 1400㎡를 팔면서 양도소득을 낮춰 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문씨는 최근 5년간 연평균 신고소득이 4000만원밖에 안돼 사업소득금액을 탈루했거나 사업용 대출자금을 불법전용한 혐의가 드러나면 세금 추징은 물론 대출금을 회수토록 금감위에 통보할 계획이다. ●신종 투기수법 박모씨 등 6명은 수용예정지역 안에 연립주택(103가구)을 보유한 법인을 60억원에 인수, 주택지분작업을 마친 뒤 기획부동산회사를 통해 무주택자 90명에게 연립주택이 수용되면 33평형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진다면서 평균 2억원에 판 뒤 9000만원에 양도한 것처럼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100억원의 법인세 등을 탈루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등 10개 지역의 철거예정 다가구주택 등을 매집한 뒤 다세대주택으로 전환·분할한 뒤 미등기전매하는 수법으로 양도세 등 100억원을 탈루한 사례도 적발됐다. 부동산 투기꾼들 사이에서는 원주민 소유의 주택을 매매할 때 보상금과 입주권 모두를 매매 대상으로 하는 경우를 ‘통물건’, 보상금은 투기세력이 갖고 입주권만 매매하면 ‘껍데기’라는 은어로 각각 통용된다.‘돌려치기’는 분양권 매매 의뢰를 받은 중개업자가 투기꾼들과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가격을 올리는 수법이며, 이렇게 해서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분양권을 실수요자에게 파는 걸 가리켜 ‘막차 태워 시집보내기’라고 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EU 헌법부활 갈등 ‘미니 조약’으로 봉합?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연합(EU)의 헌법 부활을 놓고 갈등해온 EU가 ‘미니 조약’으로 절충점을 찾을 전망이다. EU헌법 부활을 주도해 온 EU순회의장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헌법’ 대신 이전의 ‘EU창설 조약’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새달 21,22일 열리는 EU정상회의에서 헌법부활을 둘러싼 갈등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이를 위해 27개 회원국의 헌법전문가들을 베를린으로 초청, 비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상에 참여한 한 외교관은 “독일이 헌법부활 대신에 EU창설 조약을 단순히 개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메르켈 총리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헌법부활에 반대하는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을 무마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독일의 ‘미니 조약’ 구상은 EU헌법 초안에 담긴 EU국가(國歌)와 국기 사용,EU 외무장관직 신설 등을 제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절충안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아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스페인·이탈리아 등 이미 EU헌법을 비준한 18개 회원국의 반발이 문제다. 또 메르켈 총리가 절충안에 포함시키려는 이중다수결재 표결 방식도 쟁점이다. 이중다수결재는 EU의 의사결정 구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역내 인구의 65%와 27개 회원국 중 15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주요 정책을 결정하자는 방안이다. 이에 폴란드는 자국의 의결권 비중이 낮아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vielee@seoul.co.kr
  • [현장 행정] 서초구 신문고 민정진언 재현

    [현장 행정] 서초구 신문고 민정진언 재현

    백성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임금에게 직접 고했던 태종대왕 신문고(申聞鼓)민정진언(民政進言)이 605년 만에 고스란히 재현됐다.16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구민회관에는 호위무관 금군(禁軍)들 사이로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인 어전기장(御殿旗章)이 펄럭였다. 두 줄로 도열한 문무백관(文武百官)사이 용포(龍袍)를 두른 이가 조선 3대 임금이자 신문고 제도를 만든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대왕이다. 옆에는 원경왕후가 앉아 있다. 태종의 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환관(宦官)들과 근접경호를 펼치는 별시위대장(別侍衛隊將·지금의 경호실장)의 모습도 보인다. 무대 오른쪽에는 당시 궁 문루(門樓)위에 달았다는 신문고가 보인다. ‘둥둥둥’ 신문고가 울리고 북을 울린 30대 남자가 임금에게 사배(四拜)를 올린다. “배(拜), 흥(興), 배, 흥…평신(平身).” 절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배’소리에는 절을 하고 ‘흥’에는 허리를 핀다. 이렇게 4번.‘평신’이란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왕에 대한 예를 마치는 것이다. 이어 박첨지라는 자의 진언(進言)이 이어진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우면산에 나무들이 말라죽고 숲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날 신문고 민정진언 재현을 위해 연극인, 무용가 등 무려 120여명이 무대위에 올랐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로 보기엔 쉽지 않은 규모다. 의상과 도구 무대배치, 진언의 순서 등은 모두 전문가의 고증에 의해 하나하나 재구성됐다. 행사관계자는 “역사의 현장을 재현, 구민들에게 보여 주는 행사인 만큼 가능한 고증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했다.”면서 “단 언어와 내용은 현대에 맞도록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신문고 문화제는 박성중 서초구청장이 태종대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헌릉제향’봉행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신문고 재현행사’,‘조선초기 관직개편 임명식’, 집필을 완료한 법전을 왕에게 보고하는 ‘진서의(珍書儀)’,‘왕자교육’ 등의 재현행사가 극의 형식으로 진행 됐다. 특히 이 중 태종의 자식사랑이 깃든 양녕, 효령, 충녕, 성녕 등 4명의 왕자교육의 현장에는 서초구 초등학생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서초구는 ‘태종대왕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내 내곡동에 태종의 묘인 헌릉(獻陵·사적 제194호) 등 역사유산들이 있다. 하지만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게다가 구가 생긴 역사도 19년밖에 안돼 역사나 전통보다는 신시가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서초구는 태종을 서초의 역사 아이콘으로 삼고 그가 만든 신문고 진언을 도심 역사축제로 발전시켜 관광자원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같은 배경에서 행사는 모두 영어와 일어로 동시통역됐다. 이쯤 되면 서초구의 태종 띄우기는 이유 있는 선택인 셈이다.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지역에 헌인릉과 효령로, 정도전 가묘 등 문화유적 등이 있음에도 그간 서초가 현대적인 이미지에 가려 있던 점이 늘 아쉬웠다.”면서 “서초구민에겐 역사적 자긍심을, 다른 시민들에겐 역사를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상생의 길 열자”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불기2551년 부처님오신날(24일)을 맞아 “부처는 본래 나지 않아 오고 감이 없고 법(法)은 본래 없어지지 않아 온 누리에 가득하다.”는 내용의 봉축 법어를 14일 발표했다.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무명(無明) 속에 걸림 없는 지혜를 빚어낸 이는 곳곳에서 부처를 이루어낼 것이요, 나고 죽음 속에서 무생(無生)의 눈을 뜬 이는 생멸(生滅) 없는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특히 “대립과 투쟁 속에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이룬 이는 화해를 빚어내어 상생의 길을 열 것이며 탐욕 속에 들어 있는 이타의 덕성을 깨달은 이는 평화와 안락을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라며 “무명은 도(道)를 이루는 바탕이요, 삼독번뇌(三毒煩惱)는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7) 나폴레옹·드골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나폴레옹과 드골이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이들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폴레옹과 드골은 프랑스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기에 두 인물의 지도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대혁명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제도 전반에서 근대국가로서 프랑스의 기틀을 다졌다. 샤를르 드골(1890∼1970)은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일으키고 프랑스를 독일과 맞먹는 공업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自我),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탓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강력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됐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840년 12월15일 아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유해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거쳐 앵발리드(상이군인병원이라는 뜻) 앞 마당에 도착했다.10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지 19년 만에 파리에 돌아온 영웅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센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앵발리드 지하에 안치됐다.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재략과 강력한 의지로 정상에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 몬 침략자이자 독재군주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그는 52년의 짧은 생애 동안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200년 전 나폴레옹이 만든 많은 제도들이 아직까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현(縣)이라고 불리는 98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이 행정단위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으며 행정능률을 배가시켰다. 그는 또 수백년간 이어져온 방대하고 모순된 구법전과 법률을 재정비해 간결명료한 최초의 근대적 민법인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세습 귀족제의 폐지, 상속권의 평등, 인종차별 철폐, 결혼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한 이 법전은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근대 유럽국가들의 법전편찬에 본보기가 됐다. 그는 국립 프랑스 은행을 설치하고, 전국에 세무소를 설치해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그만큼 프랑스를 변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파리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를 통치의 중심지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범 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거리, 웅장한 건물, 분수대 등을 짓도록 했다. 그 중 하나가 파리의 상징물이 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4년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명령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외관의 마들렌 성당도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뒤편의 방돔광장에 있는 청동제 원기둥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노획한 1200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갖춘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및 이집트 원정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나폴레옹 없이 프랑스 근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마지막 거인’ 드골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프랑스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전쟁 중 영국에서 반(反)나치 항전을 지휘한 드골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됐다.1946년 제 4공화국이 들어서고 전후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자신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제 4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 드골은 ‘조국의 구원자’로서 당당하게 복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 입각한 제 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1958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알제리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평화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 프랑스는 일찍이 한번도 참된 프랑스였던 적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앞으로!’를 외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효과적인 경제·사회 모델,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어우러지면서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급속하게 안정됐다. 드골은 아데나워 독일 수상과 함께 독·불협력 시대를 정착시키고, 반미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핵무기 개발과 군수산업 개발에 전력했다.“우리의 운명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첨단 항공우주기술, 초고속열차(TGV), 컴퓨터산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967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산업국이 됐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들이 합세해 일으킨 68혁명 여파로 1969년 4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0년 11월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 5공화국 헌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시라크를 비롯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파출신들이 집권층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직업공무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드골이 설립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 중심가의 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 핵잠수함 샤를드골 호 등 그의 이름을 붙여 ‘마지막 거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최근 프랑스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중도우파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공화국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세계화, 유럽연합의 확장, 이민 2·3세들의 통합문제 등으로 프랑스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르코지가 과연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커지는 전공노 ‘내홍’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합법노조 전환 여부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게다가 뾰족한 해결책도 없어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전국대의원대회 합법전환 투표 무산 전공노는 당초 지난 28일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합법 전환을 위한 찬반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도부는 대의원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대의원대회 자체를 무산시켰다. 게다가 지도부는 대의원대회 하루 전인 27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긴급 소집했지만, 이번에는 합법 전환을 찬성하는 집행위원들이 “대의원대회에 찬반 투표 안건 상정을 보장하지 않는 한 회의는 무의미하다.”며 불참을 통보해 불발에 그쳤다. 앞서 지난 2월에도 찬반 투표 실시 여부를 묻기 위한 대의원대회가 열렸지만, 지도부의 ‘단상 점거’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공노는 현재 전국 186개 지부 가운데 4분의1인 46개 지부가 합법화를 선언한 상태다. 게다가 전체 조합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합법 전환을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도부 상당수 신분불안 우려 `속사정´ 이처럼 합법 전환을 반대하는 지도부와 이에 맞서는 ‘반(反) 지도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평형선을 달리는 데는 속사정이 있다. 우선 지도부 가운데 상당수는 그동안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강제 퇴직돼 공무원 신분을 상실한 만큼 합법 전환할 경우 신분이 불안해질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는 합법 전환 이후 현 지도부를 상근직원으로 채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공무원조직 내에 퇴직 공무원이 근무하는 기형적 형태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합법´ 희망 세력 집단이탈도 쉽지 않을 듯 정부 관계자는 “법외 노조의 내부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 뒤 “다만 강제 퇴직된 공무원을 복직시키거나 합법 조직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합법 전환을 원하는 세력의 ‘집단 이탈’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공노에서 탈퇴할 경우 그동안 적립해 놓은 150억원 정도의 조합비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력간, 개인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내홍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경우 최대 공무원단체이자, 지난해 공무원노조 합법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전공노의 위상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웃사랑 실천이 곧 구원이고 해탈”

    기독교와 불교의 요체는 구원과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기독교)과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자력 해탈’(불교)은 두 종교의 가장 핵심이면서도 그 목적과 방법이 상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구원·해탈의 인식과 방법도 점차 열린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넘어선 남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이라는 법전 조계종 종정의 일갈은 그런 측면에서 빛이 났다. 지난해 5월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붓다와 예수’라는 주제로 공동 모임을 가져 주목받았던 한국불자교수연합회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가 이번엔 ‘구원’과 ‘해탈’의 현재적 의미를 화두로 종교의 공동 본질 탐색에 나선다.27일 오후 1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국제회의장에서 여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과 해탈은 무엇인가’주제의 학술회의에서다. 고려시대 태고(太古)스님은 ‘만법이 돌아가는 하나의 진리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화두 참구 끝에 득도했다고 한다.‘모든 종교는 동일하며 길은 다르더다도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27일 학술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천하에 진리는 둘이 아니고, 성인의 마음도 둘이 아니다’(天下無二道,聖人無兩心)라는 공동 인식아래 자비와 사랑을 토대로 한 구원과 해탈의 실천방안에 뜻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장)씨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는 요즘, 구원도 근원적 관계성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상호 소통하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 측면을 구체화시킬 때 구원은 완성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소외된 남을 남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보는 가운데 의식적으로 남에게 맞추는 것이야말로 내적 개인 구원의 징표이자 사회 구원의 시작이며,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데서 구원은 최고의 구체성을 띤다.”고 못박았다. 이민용(참여불교연대 공동대표)씨는 “무아·무상 등 무(無)를 강조하며 열반으로 이끄는 불교는 기독교의 서구인들에겐 허무주의에 다름아니었지만 점차 부정주의적 현실관을 극복하는 최대의 이상론으로 격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불교에서 현장을 떠난 이상 세계(천국)가 있을 수 없고 천국의 전제없이 현실은 발붙일 근거가 없다.”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느니라’‘성령이 너희 속에 계시다’는 기독교의 구원론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명권(코리아 아쉬람 대표)씨는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하지만 불교의 해탈은 개인이 깨달음을 추구한 뒤 중생을 제도하는 상이한 구조를 띤다.”며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새로운 계명을 실천하는 구원이나 해탈의 결과 깨달음을 사회 속에 실천하는 보시는 결국 사회적 구원이라는 연대적 해탈로 만난다.”고 주장했다. 즉 ‘십자가’의 자기부정으로 출발해 만인의 대동사회를 열어가는 ‘만다라’의 조우, 그것은 유토피아를 넘어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키는 것이요, 극락을 이땅에 실현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아버지의 복수/황성기 논설위원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에 기초한 성문법이다. 눈을 멀게 한 자는 눈을 멀게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면 손을 자른다는 끔찍한 형벌을 세세히 담았다. 인간은 자신이나 가족이 위해를 당하면 응징하고 싶어진다. 복수의 본능이다. 응징할 권리를 신이나 공권력에 맡겨서는 성에 차지 않는 인간은 사적 징벌의 형태로 복수를 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연작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가 그렇다. 영화가 갖는 메타포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인간이 겪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준다는 게 공통의 줄거리다. 집단화한 보복도 흔하다. 이라크 전쟁은 집단 보복의 악순환을 잘 보여주는 현재진행형 사례다.9·11테러로 촉발된 무자비한 전쟁은 누가 미국에 응징의 권리를 부여했는지 찬찬히 물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금도 이라크 땅에서 벌어지는 희생의 뒷면을 들추면 문명 대 문명, 종족 대 종족의 복수와 적개심이 이빨을 드러낸다. 유대인 출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도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유혈 보복의 부조리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현대는 사적인 보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가 법이란 이름으로 보복을 대신해 준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폐지하지 않고 있는 사형제는 살인이란 최고의 폭력에 부과하는 최고의 응징이다. 형법상 인신구금, 민법상 배상이 있는데도 살인을 살인으로 징벌하는 것은 21세기 사고로는 용납하기 힘들다. 박찬욱의 복수 연작 속 주인공의 심정에는 공감한다. 그럼에도 꺼림칙한 기분인 것은 공권력에 의한 살인도 그럴진대 사적 살인으로 잔인한 보복을 가해서일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 술집에서 폭행 당한 아들을 위해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보복 폭행을 했다고 한다. 해당 기업이 부인하고 있어 진위는 경찰 수사에서 가려질 것이다. 놀라운 일은 네티즌 반응이다. 재벌가의 조폭적 행태를 비난하는 한편에 “저런 아빠 둬서 좋겠다.”는 댓글이 눈에 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지만 아들의 처신을 꾸짖지 못할망정 사적인 보복은 안 될 일이었다. 그의 옹호는 더더욱 유치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로스쿨의 영화들/김성돈 지음

    “국가는 도박이나 복권에 중독된 자들을 호구로 삼아 부를 축적하는 타짜이고, 국가와의 합의를 통해 각종 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은 바람잡이이며, 이러한 일들을 성사시키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는 여야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을 도박판의 설계자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비유일까.” 영화 ‘타짜’를 위와 같은 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는 김성돈 성균관대 형법학 교수이다. 형법의 해석과 정책을 주로 연구해온 소장 법학자는 30편의 영화와 법 이야기를 한데 엮어 ‘로스쿨의 영화들(효형출판 펴냄)’을 썼다. 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는 폭력의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이 인간의 욕망이란 지점에서 만난다고 설명한다. 범죄단체 조직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모두 폭력의 공급만 차단하는 법이다. 따라서 폭력의 수요를 없애는 자금세탁방지법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대마초 재배를 생계수단으로 삼은 미망인이 대마초로 온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영화 ‘오! 그레이스’에서는 대마초 합법화의 단초를 읽어낸다. 현재 대마초 금지의 유일한 근거는 1951년 헨리 안스링거가 만든 ‘관문이론’밖에 없다. 이 이론은 “대마초 자체는 위험하지 않지만, 헤로인에 중독된 젊은이들 50% 이상이 대마초를 했기 때문에 대마초를 금지해야 한다.”는 허구적인 내용이다. 지난 2003년 마약관련 단속대상 통계자료를 보면 연예인은 전체의 0.1%밖에 안 되는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권력은 연예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마초는 치명적 마약’이란 대대적 여론몰이를 한다.70년대 제정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경우에 따라 살인죄보다 중한 10년 이상의 징역과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란 서구와 비교할 수 없는 중한 형벌로 대마초를 다스린다고 지적한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적용되는 무죄 추정의 원칙,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유용한 인권보호 원칙도 영화와 함께 소개된다. 법학자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영화는 그의 시선이 법전처럼 딱딱하지 않은데다 남보다 한발짝 앞선 것이기에 더욱 재미를 더한다.1만 1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전공노 합법전환 급물살 타나

    최대 공무원 단체이자 법외 노조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합법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이달 말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최종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강성 이미지를 고수해 온 전공노가 제도권으로 편입될 경우 공무원노조 활동에 지각 변동이 예고된다. 전공노 관계자는 10일 “최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오는 28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기로 확정했다.”면서 “대의원대회에서는 합법 전환을 위한 찬반 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노는 지난해 1월 공무원 노조가 합법화된 이후에도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법외노조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전공노 사무실 폐쇄’를 계기로 일부 소속 단체가 독자적으로 합법 노조로 전환하는 등 내부갈등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행정자치부가 지난 3월 각 지자체에 “전공노 조합원들의 조합비 자동 이체를 해지하라.”고 권고하는 등 ‘돈줄 막기’에 나서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 합법 전환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서울, 부산, 광주, 전남 등을 중심으로 합법 전환을 위한 찬반 투표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총투표는 이르면 다음달 안으로 실시될 전망이다. 이어 올 하반기에는 노조설립 신고 절차를 마무리해 합법 노조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공노 가입 공무원은 모두 14만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중 조합비를 납부하는 공무원은 6만 5000여명이다. 전체 노조 가입대상 공무원이 27만 50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전공노가 합법노조로 전환할 경우 공무원연금 개혁 등 처우 문제에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지난 2월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집행부의 단상 점거로 ‘합법 전환을 위한 총투표’ 안건 상정 자체가 무산된 적도 있는 만큼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1차 첫 합격

    시각장애인 2명이 처음으로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법무부는 5일 올해 치러진 제49회 사법시험 1차 합격자 2808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서울법대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최민석(24)씨와 또 다른 최모(26·서울법대 졸)씨가 이 명단에 포함됐다고 밝혔다.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민석씨는 서울대가 특수교육 특별전형을 실시한 이래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2004년 법대에 당당히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인 1992년 녹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어 다니던 일반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최씨는 3년간 기도원에서 절망에 빠진 마음을 추스른 뒤 특수학교에서 공부에 매진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 합격 당시 “장애인들의 권익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던 그는 “아직 1차 시험을 합격한 것에 불과하다.”며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법전과 수험용 서적을 일일이 워드 문서로 옮기고 컴퓨터로 음성화시켜 공부하는 등 아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대학 입학시절 포부를 그대로 갖고 있는 민석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사법시험부터 시각장애인들이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가 있는 별도의 시험실에서 일반인보다 1.5∼2배 긴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도록 했으며 작년과 올해 각각 3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응시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책꽂이]

    ●청렴과 탐욕의 중국사(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돌베개 펴냄) 중국 전제 왕조의 관료는 황제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였다. 명 왕조 이전까지 재상은 상권(相權)을 바탕으로 군권(君權)을 견제했으며, 조정의 관료들은 상소와 간언을 통해 황제에게 충고하며 국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더욱이 백성들과 직접 부대끼며 정책을 시행한 지방관들은 백성의 삶의 질을 좌우한 더없이 중요한 존재였다. 이 책은 중국의 관료 가운데 대표적인 청백리와 탐관오리를 중심으로 진한시대 이후 청 왕조 말기까지 2000년 중국사를 살핀다. 대표적인 청백리로 범중엄·포청천·화신·임칙서를, 대표적인 탐관오리로 양기 부부·엄숭 부자·화신 등을 꼽았다.1만 1000원.●마녀의 한 다스(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마음산책 펴냄) 러시아어 통역사인 저자가 세계 각국에서 겪은 일화를 엮었다.13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불길하고 사악한 숫자로 간주돼 왔다.‘13공포증(triskaideka-phobia)’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그런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오히려 좋은 숫자로 여겨진다. 송대에 확정된 불교 법전은 13경으로 정리됐고, 중국 불교에는 13종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음력 3월13일 13세 소년소녀가 옷을 차려입고 보살을 참배하는 ‘13참배’라는 행사도 있다.13의 의미가 이처럼 문화권마다 다르 듯,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1만 1500원.●부르주아 사회와 패션(필리프 페로 지음, 이재한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기호와 이미지’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대인들은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소비한다기보다는 이미지나 외양적 가치에 매몰되는데, 이는 상징적 가치 즉 기호의 소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소비의 무대를 19세기 의복에 맞춘다.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겉과 속을 그들의 겉옷과 속옷을 통해 살핀다.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의복으로서의 속옷, 그것은 유혹의 결정적 도구이자 방해물이다.2만 6000원.●주역의 발견(문용직 지음, 부키 펴냄) 3000여 개의 주(注)와 소(疏)가 있을 정도로 해석이 분분한 ‘주역’은 유교 오경 가운데 으뜸으로 동양 최고(最古)의 고전에 속한다. 그러나 바둑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주역’은 철학서가 아니라 단순한 점서(占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역경(易經)은 무당의 보고이고 역전(易傳)은 그 설명인데, 무리하게 역경까지 체계화하려 함으로써 오류가 거듭됐다는 것이다.1만 6000원.
  • 부산서 전국 첫 지역 공무원노조 출범

    부산에서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와는 별개인 합법적인 공무원 노조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의 전공노 조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산공무원 노조는 19일 지난해 합법전환을 결정한 전공노 부산시지부와 해운대구지부 조합원들로 결성된 ‘부산공무원노조’ 설립신고서를 이날 부산지방노동청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부산공무원노조 측은 부산시와 자치구·군은 함께 가야 하는 조직인 만큼 하나의 노조로 단결해 역량을 키우기 위해 지역 공무원 노조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법외 노조를 고집하고 있는 전공노와는 별개의 지역 공무원 노조라고 덧붙였다. 부산공무원노조는 이에 앞서 지난 15일 창립총회를 갖고 황주석 전공노 부산시 지부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조합규약을 정했다. 부산공무원 노조의 조합원은 3500여명에 이른다. 부산공무원 노조에 가입한 시청과 자치구·군 노조는 지부형태로 운영되는데 시지부와 해운대구지부는 4월 중에 지부장을 선출한 뒤 5월에 출범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부산공무원노조는 또 부산시와 16개 자치구·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가입신청서를 배부하고 조합원 모집에 들어갔다. 황 위원장은 “나머지 15개 구·군의 전공노 지부들도 이달 말쯤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합법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하고 부산공무원 노조에 가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공노 지도부가 합법전환 여부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지부와 해운대구 지부가 별개의 지역 공무원 노조를 결성해 합법화함에 따라 다른 지역의 전공노 조직에도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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