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자 정무2장관에 듣는 여성정책
◎“탁아시설 확충… 여성사회참여 늘리겠다”/직장별 설치의무화·육아휴직제 검토/성폭력특별법 늦어도 연내 매듭 질것/21세기는 개방사회… 여성도 적극적 삶 개척해 나가야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보사·환경·정무2에 4명의 여성 장·차관이 대거 기용됨으로써 새로운 여성정치문화의 장이 열리게 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게 한다.
○재야여성계 포용
그중에서도 여성정책전담부서인 정무2의 권영자장관(56)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와 바람은 크다.그것은 권장관의 그동안 행적을 살펴볼 때 누구보다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여성문제를 통찰하고 있는데다 제도·비제도권 여성계를 조화있게 이끌어 여성지위향상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임자란 평가 때문이다.
취임 4개월동안 산적한 여성문제로 한시도 쉴틈이 없다는 권영자장관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8층,난향기 은은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수수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 드는 청회색 수트차림의 권장관은 경상도억양의 조금은 어눌한 말솜씨가 마치 편안한 맏누이 같은 느낌을 준다.그러나 대담을 시작하면서정연한 논리와 강한 의지,안경테너머 예리한 눈빛이 소문대로 외유내강형임을 알게 했다.
정무2는 여성문제해결을 위한 사령탑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런 자리에 여성문제전문가이신 권장관이 취임,그만큼 기대가 큰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사이 여성문제는 잘 풀려가고 있는지요.특히 89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다 해도 사회관행상 여러곳에 성차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어떤 특별한 대책이라도 추진하고 있는지요.
▲지금 여성계는 바로 그런 점들이 문제입니다.즉 법적으로는 남녀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행까지는 항상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고용평등법에 채용부터 승진까지 전분야의 동등한 대우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를 지켜야 하는 고용주들이 눈에 안뵈는 그물을 드리워 실제시행이 어려운 실정입니다.그러나 이미 공무원채용시 이 제도가 지켜지기 시작했고 최근 전국 29개 은행의 여행원제도 폐지로 금융계에서도 여성이 능력만 갖추면 관리직 승진이 가능케 되는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산업사회 진전에 따른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결혼전에는 문제가 없던 여성들이 결혼후 육아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도중하차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지난 14대 대통령선거때도 정당마다 탁아문제해결을 대여성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는데 구체적인 탁아시설 확충방안은 있는지요.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60년대부터라고 봐야 합니다.그러나 그때는 집안에 유휴인력이 많아 별문제가 없었지만 핵가족화로 보조인력이 줄어든 80년대 후반부터 탁아소 확충이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했습니다.정부도 91년 영유아보육법을 제정,시행중이나 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시설자체가 대부분 저소득층 중심이어서 직장여성들의 어려움이 너무 큽니다.또 일반 근로여성을 위한 주변의 탁아시설이 있다 해도 0∼3세는 거의 불가능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운영시간이 「종일탁아」가 아니라 어려움이 많아 해결책으로 육아휴직제 도입과 직장별 탁아소설치의무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경북 예천 출신인 권장관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56년부터 신문기자로 활동했다.신문사에 다니면서 현재 숙명여대 불문과 하동훈교수와 결혼,1남1녀를 낳아 길렀다.지금은 그 자녀들이 자라 손자까지 본 상태지만 아이들이 홀로서기까지 자녀문제로 가슴죄었고 어려운 순간들을 장관 스스로 너무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육아휴직이나 탁아시설 확충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한 가정만의 일이 아니라 건전한 2세국민을 육성하는 일이라는 거시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이런 점에서 앞으로 탁아시설은 취학전 아동은 물론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확대될 수 있게끔 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개발을 마련중입니다.
여성의 대거 입각에 이어 최근 여성동장·여성파출소장등 여성의 공직진출이 괄목할만한데 이에 대한 현황과 이를 뒷받침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중간관리자 육성
▲현재 우리 여성계는 중간허리가 너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그 때문에 어떤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준비된 인력을 찾기가 힘들지요.행정부내에서도 국장급이 고작 7∼8명에 불과합니다.따라서 중간관리자를 양성,여러곳에서 여성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능력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사법·외무·행정등 각종 고시에 도전할 것을 적극 권장하는 전략을 추진중입니다.
우리사회에는 집안에 그냥 들어앉아 있는 고학력 주부들이 많습니다.이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는 별문제가 없으나 자녀들이 성장,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단조로운 가정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심하면 정신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이 전업주부들에 대한 대책은.
▲과거에는 이런 주부들에게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든지 취미생활을 하도록 권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도 좋지만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주부들이 물과 쓰레기·영상매체등에 관심을 갖고 감시자가 돼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지난번 국회에서 성폭력특별법이 일부 법전문가들의 문제점 제시로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리라고 보는지요.
▲현재 법사위에 계류중인 성폭력특별법은 법체제면에서 실체법과 절차법이 혼동돼 있고 내용면에서도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설치와 가해자 처벌문제등을 동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그러나 법제정활동을 위한 소위가 계속 열리고 있어 아무리 늦어도 금년중엔 매듭지어질 것으로 낙관합니다.
4월말 우리나라가 유엔여성지위위원국에 피선,우리 여성들의 국제무대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준비는 어떻습니까.
○휴일엔 시장 들러
▲우리나라가 유엔 가입국으로 분담금을 내고 또 유엔이 전직원의 35%를 여성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혀 우리 여성들에게도 진출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국제무대에서 우리 여성을 대표해 일할만큼 준비된 인력이 아직 부족,유엔 인턴십훈련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국내에 국제인력훈련시설을 개설,인재를 양성하려고 합니다.또 앞으론 유엔관련회의가 열리면 대표팀에 여성대표를 넣어 현장경험을 넓혀줄 계획입니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유산인 정신대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보상을 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
▲정신대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민족적 수난이자 비극이요 인격파괴입니다.따라서 그 희생자들이 여생이나마 편히 지내도록 해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로 최근 이들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됐고 요사이 생활보호·의료보호·생활안정지원금등 동법의 시행령 제정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정보화사회·고도의 전문직사회·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개방사회로 여성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권장관은 따라서 여성들도 앞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책임있는 시민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요일이면 5살난 손자를 돌보거나 집(서울 은평구 신사동)근처 슈퍼마켓에서 직접 찬거리를 구입한다는 권장관은 여성운동가라기보다는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상한 어머니나 할머니같다는 생각을 하며 장관실을 나섰다.